풍류, 술, 멋

샹그릴라(Sangri-La)_ '내맘속의 해와 달'

醉月 2008. 10. 29. 09:05

진짜 샹그릴라는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곳

 

▼ 운영자 알림: 샹그릴라(Sangri-La)는 티베트어로 '내맘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마을이죠. 소설은 주인공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샹그릴라'에 불시착하면서 겪게되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샹그릴라는 유토피아, 무릉도원과도 같은 말로 사용이 됩니다. 도깨비뉴스 독자 이준만씨는 중국의 오지만을 다닌다고 합니다. 이에 이준만씨는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와 거의 비슷한 마을을 찾아 도깨비뉴스 독자들을 위해 이렇게 사진과 글을 보내왔습니다.

 

사진과 글이 길기도 하지만 샹그릴라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합니다. 그래서 짧게 끝낼 수 없어 2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샹그릴라(Shangrila)를 찾아서!

내마음의 샹그릴라는!

 

문득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었다. 무거운 봇짐을 메고 오로지 나 자신의 무게만큼 무거운 마음을 털어 버리려 중국의 오지를 순례(?) 아니 오히려 낯선곳에서 방황하고 싶어졌다. 주위의 모든 인연의 끈을 잠시나마 잊어 버리고 나는 자연의 깊숙한 끝에서 순례자의 가벼운 발걸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이 샹그릴라이다. 그래, 샹그릴라라는 곳을 찾아 삶을 살아가는데 마음에 담아있는 그 삶의 무게가 하나의 깃털처럼 가볍다면-단 하루라도- 이 세상에 그처럼 행복한 삶을 찾아보고 싶었다.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스무살의 생동하는 기운을 가진 순례의 길이 과연 가능하다고 느껴지지는 아니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띠엔(中甸)이 곧 샹그릴라라고 하였지만, 또한 수많은 한국 여행자나 외국인은 중띠엔을 보고는 샹그릴라라고 감탄을 하고 인터넷상에 많은 글을 소개하였지만, 나의 눈에는 중띠엔은 전혀 샹그릴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묻고 물어서 진짜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샹그릴라와 거의 흡사한 곳을 찾아 가게 되었다.

 

페이라이스(飞来寺) 에서 바라본 아침 햇살의 매리설산

 

운남성 페이라이스(飞来寺) 에서 아침 매리설산에 비추는 일출을 구경하고 시땅(西当)으로 향하였다. 약 1,200m의 높이를 차로 내려가야 한다. 온통 구불구불한 길을 한 없이 돌고 돌아 내려오니 바로 란창지앙(澜沧江)대협곡이 나온다. 이 곳의 최고 고저차는 약 4,740m로서 길이는 150km다.

 

90도로 깍아내린 산에는 나무하나 없는 황량한 산밑을 돌아 대협곡이 지나가니 우리는 잠시 멈추어서 대협곡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한 굉음이 발끝 천길 낭떠러지 아래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 우측길로 가면 밍영빙추안(明永冰川)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시땅(西当)을 지나 라사(拉萨)로 가는 길이 나온다. 보통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은 페이라이스(飞来寺)에서 아침 일출을 보고 나서 밍영빙추안(明永冰川)을 구경을 하고는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을 다 본 것으로   샹그릴라의 모습을 전부인양 인식한다.

 

또 가이드들도 그렇게 인도하고, 편한 길로만 여행하고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밍영빙추안(明永冰川)은 생략하기로 하고, 시땅(西当)으로 들어갔다. 란창지앙(澜沧江)대협곡을 돌아 가는 저지대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이곳에는 마을 곳곳마다 온통 호두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에는 온갖 가축들이 한가롭게 아무데서나 풀을 뜯고 있었다.

 

 앞으로는 4-5000m의 깍아내릴듯한 산 사이로 강이 흐르고, 뒤로는 4000m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줄기들이 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고 아이들은 때가 뒤범벅이 된 얼굴과 손, 옷이지만 가축들을 돌보며, 저 고도로 발달된 바깥 세상과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 같은 옛날 모습이 살아 있었다.

 

진짜 샹그릴라를 찾기 위해

 

운전기사는 시땅(西当)의 온천에까지 태워주었다. 이곳에서부터 위펑(雨峰)마을을 들어가기 위한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나는 그냥 저 4,000미터를 걸어서 갈 작정이었고,   몇몇 중국인 여성들은 말을 타고 넘어가려고 준비들을 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모두 가벼운 짐만 들고 걸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갈 욕심으로 발을 내디디기 시작하였다. 

 

짜랑(扎朗)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매리설산

 

사실 이곳을 넘어가면 어떤 형태의 또 다른 모습이 있을까는 전혀 상상해 보지 않고는 무작정 이산을 넘어 가야 겠다는 생각만 갖고,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란창지앙(澜沧江)대협곡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가끔 당나귀들이 물건들을 가득 싣고 방울 소리를 울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산기슭의 초원에서는 마오니우(牦牛;야크)들이 방울 소리를 내면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방울 소리는 마치 산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와 같아 처음에는 이곳에도 절이 있어서 풍경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나귀들은 이 길들을 익히 아는지 제각각 길들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고 이 당나귀들의 어린 주인은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덧 이 산의 정상 짜랑(扎朗) 정상을 다가올 즈음 길목에는 온통 티벳어로 쓰인 천에 국기처럼 매달아 길 길목에서부터 휘감아 놓은 모습이 눈 앞에 보였다.

 

나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이런 모습들을 자주 보았기에 별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유난하게 많이 휘감아 놓은 것이 약간의 의아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곳을 지나자 산 정산에서 바로 앞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 이 마치 내 코앞에 불쑥 나타나 “나 여기 있네”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가깝게 다가선 저 봉우리를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산 아래에는 평화로운 목장과 따가운 햇살, 단풍이 어울어져 있고, 바로 한치 앞에는 만년설이 있는 곳,

이 곳으로 가기 위한 길은 오직 하나, 그리고 이곳의 운송수단은 말, 당나귀, 노새뿐이었다. 다른  어떠한 운송수단은 어차피 무용지물이다.

 

짜랑(扎朗)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매리설산의 모습

 

아! 이곳이 내가 찾던 샹그릴라이다.

 

저 계곡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은 어떤 곳일까? 과연 내가 찾는 오지중의 오지로서 내 마음속에 그리던 샹그릴라 같은 모습일까? 아내는 내가 만족할만한 장소일 것이라고 장담했건만,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고 따가운 햇살 속에서 코 앞에 다가온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을 바라보며 잠시 명상에 잠기었다.

 

 이젠 하산길이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힘든 오르막길을 잊고는 조금은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 내디어 보지만, 그것은 나의 착오였다. 산길의 60도 정도의 경사를 끊임없이 내려가야 하는 길에서는 오르던 힘든 모습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뒤따라오는 말도 사람을 태우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가는 데에는 무척 힘든 모습이었다. 중간 중간 서서 콧바람을 연거푸 내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네발 달린 동물들은 오르막길에서보다는 내리막에서 더 힘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랗게 물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의 절경을 카메라에 담고는,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한 발 디뎌보지만, 이젠 온 몸이 지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국의 젊은 여행객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지친 몸을 그늘에 앉아 기대어 쉬는지 나의 시야에서 아득히 멀어져 버린 것이다.

 

짜랑 고개에서 샹그릴라를 향해 말을 타고 가는 여행객

 

티벳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하루에도 수만번 포기하고픈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이곳을 오면서 정녕 포기하고픈 수많은 생각과 차라리 말을 타고 편안하게 트래킹을 하며 복잡한 마음이 교차를 하였지만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바의 순례가 아니다. 어차피 복잡한 도심을 떠나 어느 낯선 오지에서 순례와 방황을 하려고 떠났던 여행인데, 이런 어설픈 고난에 무너진다면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창피한 모습인가? 이렇게 마음을 추스리고는 내려가기를 한참 후, 어느 덧 샹위뻥(上雨崩)에 있는 산장에 도착하였다.

 

산장의 휴게소에 짐을 풀고는 창가에 걸터앉아,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을 바라보며 샹그릴라의 소설에 나오는 경관들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온통 사방이 높다랗게 솟은 산, 샹그릴라에는 사원이 있는 곳과 마을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나뉘어져 있고, 앞에는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설산으로 인해,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곳, 이 샹그릴라를 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길만이 있는 데 이곳을 찾기에는 보통사람에게는 결코 쉽지않은, 그리고 한달에 한번 정도 외부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갖고 오는 것 외에는 샹그릴라는 자연에 의해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주인공은 누군가에 의해 이런 샹그릴라에 납치되어 왔지만 주인공은 이런 세계에 매력을 느끼고 서서히 이곳 사원의 원장과 많은 대화를 통해 사원의 다음 주인이 될 것을 약속하지만, 18세 소녀에 대한 연정 때문에 갖은 고생 끝에 이 샹그릴라를 탈출하게 된다. 비록 18세 소녀는 이곳을 빠져나가자 65세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또한 이곳 샹그릴라에서는 모든 생활이 자급자족을 하는 형태이지만, 그렇다고 외부세계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발간된 도서와 잡지마저 갖추어져 있고, 분노도 욕심도 없는 평화와 조용한 대화만이 이 샹그릴라의 정서인 것이다.

 

샹위뻥(上雨崩) 마을

 

산장에서 바라본 샹위뻥(上雨崩) 밑에는 시아위뻥(下雨崩)마을이 있었다. 이 곳 마을을 들어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걸어왔던 길외에는 어디로 향하는 길은 없다. 그리고는 나머지 삼면의 산들은 도저히 오를 수도 없는 절벽에 가까운 곳이다.

 

나는 하오의 늘어진 햇살이 숨어들때까지 이 곳을 좀 더 구경하려고 아랫마을을 구경하려고 이리저리 다녀보았다. 산장에서 바로 밑 계곡까지 가는 것도 거의 절벽이었다. 이 맑은 계곡물은 아마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려오는 아주 맑은 물일 것 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맑은 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랫마을에는 목장 같은 것이 있어 야크, 돼지, 산양, 말들이 자유로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가도 가축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풀만 뜯고 있었다. 이런 가축들에게는 이 곳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주인인 듯, 한 번 힐끗 보고는 풀을 뜯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햇살은 마치 한국의 여름 햇살보다 더 따가왔다. 이곳에 며칠만 있으면 아마 온 몸이 새카맣게 탈 것만 같았다. 

 

야크가 쟁기를 끌고는 밭을 갈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밭고랑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바람도 차지않고, 온유한 바람만이 살랑거리며 한 겨울에도 여름 같은 햇볕, 메이리슈에산(梅里雪山)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풍부한 물, 수레바퀴는 통나무를 직접 깍아 만든 원시적인 형태의 모습, 마을의 집에는 아무도 없는지 온통 조용한 모습이고,아이들의 얼굴과 손, 그리고 옷에는 온통 시커먼 때가 꼬질꼬질 묻어서 마치 흑인을 연상케하지만 그들의 해맑은 미소에는 천사 같은 모습이 담겨있다.

샹위뻥(上雨崩) 마을 (마치 소설에 나오는 콘웨이가 머물렀던 사원이 있는 마을과 같다)

 

어느 5살된 여자아이가 마치 숯가마에서 방금 나온듯한 모습으로 과자를 먹으며 나한테 다가왔다.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금방 친한 친구처럼 나에게 시커먼 손으로 과자 하나를 집어서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나는 거리낌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먹고는 내가 갖고 있는 초콜릿을 주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나라건 순수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시커먼 얼굴에서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에는 발달된 도심에서 자라 컴퓨터 게임과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에 젖어든 아이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중띠엔(中甸)이 샹그릴라가 아니라, 이곳이 과연 소설속에 나오는 진짜 샹그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소설속에 묘사된 정경이 이렇게 꼭 들어맞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샹그릴라라고 바꿔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기뻤다. 내가 그렇게 열병을 앓듯이 동경해오던 마음속의 샹그릴라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생각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긴 여정의 고달픈 심신마저도 내가 샹그릴라를 찾았다는 기쁨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이곳에서 샹그릴라의 공기를 마시며, 이곳 마을 주민들과 호흡하는 소설속의 주인공 콘웨이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쇼팽이 발표하지 않은 곡을 쇼팽의 조수에게서 배우고,사원의 원장과 선문답을 해가며 밤을 지새는 콘웨이는 18세 소녀에게 느끼는 연정 때문에 이곳 샹그릴라를 탈출하지만, 그 후에 그의 강렬한 의지와 이곳에 맞는 인생의 철학과 경험들이 그를  다시 이곳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혹자는 중국정부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포기하고, 한갓 37세의 영국의 청년이 쓴 하나의 소설속에 나오는 이상향 샹그릴라에 집착하여, 너무 상업성에 집착을 하는가 하는 의구심과 통렬한 비판을 하지만, 상업성을 따지자 보면 서양인들처럼 물질적인 것에 집착을 하는 사람들도 그리많치 않을 것이다.

 

시아위뻥(下雨崩)마을의 목장들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 주민이 살던 곳과 흡사하다)

 

제임스 힐튼이 상상력에 의거하여 쓴 소설이라고 하지만, 자그만한 실마리마저 제공되지 않는 순수한 상상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위롱쉬에산(玉龙雪山)에 가면 어느 작은 농가가 있는데, 거기에서 제임스 힐튼이 7년여동안 이 농가에 머물렀던 곳이 있다고 한다.

 

어느 학자는 샹그릴라는 바로 제임스 힐튼이 다녔던 케임브리지 대학이라고 혹평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가 바로 샹그릴라이며 이 곳 캠퍼스 도서관에서 그저 상상으로 그려낸 샹그릴라를 후세 사람들이 상업성의 발동으로 그려진 이상향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인터넷 어느 블로그에서는 더친을 보고, 비래사에서 매리설산을 보고는 더친이 곧 샹그릴라라고 단정지었다. 나는 더친도 또한 소설속의 샹그릴라 모습에 조금도 근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식으로 평가하든, 물질 만능주의에 살아가는 현세에서 개개인마다 마음속에 이상향인 샹그릴라를 그려가며 산다는 것은, 분명 물질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분명 우리 인간의 영원한 염원이며, 우리가 갖고 싶은 근본적 욕망이며,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샹그릴라는 각자 마음속에 있다

 

 

 

샹그릴라에서의 여행과 파티…

 

이튿날, 온 몸의 피곤이 다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눈을 떴다. 산장이래야 난방시설도 없고, 각 방에는 전기도 안 들어 오고, 따뜻한 물은 이 마을 모두 태양열을 이용하여 온수를 사용한다. 그런 저런 불편한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난 밤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 일찍 취한 것 같다.

 

 

 

이곳은 워낙 깊은 골짜기이기 때문에 이곳에 햇볕이 드는 시간도 다른 곳보다도 늦은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에 비출 때 그 모습은 너무 가까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산장에서 바라본 매리설산의 모습 

 

다음 목적지는 따뻔잉(大本营)과 삥후(冰湖)를 구경하는 코스이다. 아내는 말을 타고 가기에 나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혼자 짐을 가지고 출발을 하였다.

 

샹위뻥(上雨崩)마을을 지나는 중에 초등학교를 지나가기에 빼꼼이 열린 문틈 사이로 바라다 보니 조그만 간이 의자를 놓고 약 10명의 아이들이 젊은 여교사한테서 수업을 듣는 것을 보았다. 수업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려고 하다, 나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저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침 날씨는 매우 쌀쌀할 정도로 차서 손을 비비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을 옮겼다.

 

초등학교 쉬는시간. 교실도, 책상도, 의자도 없다. 유일하게 있는 여교사가 아이들과 놀고 있다.

 

그곳의 삼림은 정말이지 자연 그대로 원시림이다. 작게는 한 아름드리, 어떤것은 거의 족히 서너 아름드리 침엽수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솟아있다. 이런 관목들 사이로는 두꺼운 이끼들이 3~5cm 씩 층을 이루고 있다.

 

정말이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원시림이다. 잡목들 사이로는 가시오가피 나무가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계곡에는 맑은 물이 강처럼 흘러 굵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어느 덧 따뻔잉(大本营)에 도착하였다.

 

따뻔잉(大本营)

 

이 곳에는 여러 채의 통나무 집들이 있었다. 이곳은 1980년대 중국과 일본의 탐험대들이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을 정복하기 위해 베이스 기지로 삼았던 곳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목적지인 삥후(冰湖)를 찾아 나섰다. 설산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지만, 이제 부터는 숨이 턱에까지 올라온다. 워낙 고지대이다보니 조금만 가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는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삥후(冰湖)를 찾아 가는 곳에 어떤 이정표도 없어 무척 찾기가 힘들었다.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설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계곡에서는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고는 설산 아래까지 도착하였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때 까지 올라가려고 눈을 디뎌보자, 나의 발이 거의 무릎 이상 빠지기에 여기가 내가 올라 갈 수 있는 한계이구나. 그 이상은 전문 산악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구나 하며 삥후(冰湖)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하였다.

 

  삥후(冰湖)를 찾기 위해 설산의 끝에 다다렀다. 그러나 길이 더 이상 없고 눈이 무릎위까지 쌓여있었다.

 

어제 고지대를 등산했던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4~5시간을 걷다보니 이제 배고픔과 허기에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사실 가는 곳곳에 휴게소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먹을 준비를 단단히 하지 못한 것이 약간은 불찰이었지만 배낭에 들어있는 초콜릿 몇 개와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더군다나 다른 여행객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산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한참후에  다른 중국인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삥후(冰湖)를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면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설산의 깍아내린 절벽의 동굴안에 있는 호수였다. 겉에서는 도저히 찾기 힘든 곳이고, 이곳 주민들도 이곳을 신성시 여기며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어느 덧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곳은 해질녘 이후에만 전기가 공급된다고 한다. 그래서 휴게실에만 등이 켜지고, 여행객들은 휴게실에서 식사와 술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야외 통나무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어둠이 내려 앉은 이 곳 내가 명명한 샹그릴라를 바라 보았다. 바로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설산의 하얀 빛 반사때문이지 이런 깊은 계곡에는 어둠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 아니했다.

 

잠시 후 불도 켜지지 않는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고 할 때, 산장 주인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한국 친구 휴게소로 오라고 하면서…….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휴게실로 들어가니 많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맥주와 안주를 놓고 파티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주인의 말은 이곳에는 사실 한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하며, 외국인들은 가끔 온다고 한다. 그래서 산장주인이 한국인 친구를 위해 오늘 파티를 연다고 하였다.

주인은 다른 중국 여행객들에게 한국에서 온 우리들의 친구라고 소개를 하였다.

 

산장주인이 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등이 보이는 사람이 산장 주인이다.

 

이 곳 마을의 젊은이들과 중국 각 지방에서 온 여행객들, 심천, 광주, 북경, 중경, 항주등 각 지방에서 온 젊은이들과 술을 마시며 하나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곳 젊은이들의 전통춤을 같이 어울려 추었다.

몸의 움직임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게 되었다.

 

이 마을의 젊은 여성들의 의상도 멋하고는 아주 먼, 때가 더덕더덕 달라붙은 옷으로 흥겨운 춤과 노래를 참 잘 불렀다. 젊은이들은 말이나 당나귀를 끌고 산을 넘을 때나 일을 할 때 고성의 느린 템포의 노래를 잘 부른다. 아마 힘든 일을 하면서 그런 애달픔을 노래로 표현하는 우리 옛날 사람들의 소리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이에 아주 먼 이곳에 와서 순수한 젊은 사람들과 흥을 나누고, 이들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은 나로서는 정말 잊지못할 하루의 밤이었다. 그렇다고 진수성찬이 가득한 대접이 아닌, 이 사람들의 따뜻한 사람 대 사람의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오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인간미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숨막히는 순간들의 긴장속에서 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마치 소설속에 나오는 주인공 콘웨이가 샹그릴라에 들어와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들은 여행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적은 돈으로 이 샹그릴라에서 살지만, 그들은 언제나 흥이 있다. 남녀 노소 일을 할때면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때묻은 옷을 입고 매일 매일 생활하지만 언제나 웃는 미소를 아끼지 않는다.

 

약 밤 11시가 가까워지자, 산장 주인은 여행객들이 내일 아침 또 산행을 해야하니 내일을 위해 이것으로써, 오늘의 한국인 친구를 위해 마련된 파티를 마치자고 제안하며 각자의 숙소로 모두 헤어졌다. 그리고는 어둠속에서 창가에 비추는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의 하얀 눈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우리의 목적지는 션푸(神瀑)였다. 신선이 산다는 폭포이다.

시아위뻥(下雨崩)마을을 지나, 목장에서는 야크, 양, 말, 당나귀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과연 목가적인 풍경이 이것인가 라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었다. 이 곳 션푸(神瀑) 가는 길에 서너 가족의 장족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산 꼭대기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하고, 션푸(神瀑)에 가서도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말을 타고 가던 여행객도 2/3 지점 부터는 말이 갈 수 없으니 걸어가라고 해서 나와 함께 산을 올랐다. 목적지에 가까이 올때쯤 어디선가 계속적으로 대포쏘는 듯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마치 멀리서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하는 듯하기도 했다.

 

션푸(神瀑). 신선이 산다는 폭포이다

 

목적지에 다가오자, 그 소리는 폭포의 꼭대기에서 눈덩이와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대포 소리와 같았던 것이었다. 폭포의 높이는 족히 500m는 되어 보였지만, 우기가 아닌 건기에는 많은 물이 흘러내려오지 않아 아쉬움은 있었다.

 

그대신 작은 곳에는 폭포물이 쉴새없이 떨어졌다. 장족들은 그 폭포의 줄기를 맞으며, 또한 물을 마시며 기도를 하였다. 우리는 많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오늘 이 샹그릴라를 빠져나와 페이라이스에서 오늘밤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우리는 중띠엔(中甸)으로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하산을 하였다.

 

산장에 들러서 배낭을 꾸리고 산장 주인에게 환대해 주어서 정말 고맙고, 이 곳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인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산장 주인은 내년에 다시 한번 꼭 오라고 하면서 우리를 멀리까지 따라오며 배웅해 주었다.

 

 

나는 비래사에서 설산아래 깊숙이 감춰진 샹그릴라에서의 추억을 머리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기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주인공 콘웨이는 다시 이곳을 찾아 갔을까??

 

이 고개를 넘으면서 나는 수십 번도 더 뒤를 바라보며, 이곳 샹그릴라를 찾아 몇 날을 헤메었던가.  이제 이 고개를 넘으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며 한 번이라도 이곳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훗날 다시 이 곳을 찾는다면 그 때는 이곳도 많이 발전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다면, 이 아름다움을 상실할 것이 너무나 확연하다.

 

내 마음의 샹그릴라!

내가 명명하고픈 샹그릴라, 상위뻥(上雨崩)과 시아위뻥(下雨崩)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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