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길 같은 산책로 … 그 길을 걷고 싶다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blog.naver.com/travelmaker |
대나무골 담양은 늘 푸르다. 어딜 가나 사시사철 푸른 대숲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담양에는 대숲만 좋은 게 아니다. 대숲보다 더 기품 있고 울창하며 내력 깊고 아름다운 숲이 적지 않다. 조선 중기에 호안림(護岸林)으로 조성된 관방제림, 우리나라 ‘전통 원림(園林)의 백미’로 평가되는 소쇄원의 숲, 1970년대 가로수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메타세쿼이아 길 등이 바로 그런 숲이다.
그 가운데서도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 길은 서로 인접해 있어서 한걸음에 둘러볼 수가 있다. 게다가 담양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죽녹원과 연계하면,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에 이르는 꿈길 같은 산책로가 완성된다. 우리 땅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숲길의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다. 그것이 ‘건강의 길, 사색의 길’의 첫나들이 길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관방제림·죽녹원·메타세쿼이아 길 ‘숲길의 종합선물세트’
죽녹원(061-380-3244)은 전남 담양읍 향교리 일대의 오래된 대숲에 조성된 테마공원이다. 담양군청이 담양향교 주변의 사유림을 매입해 면적 16만5000여㎡(5만평)의 테마공원으로 꾸몄다. 2004년 개장한 이 죽녹원에는 길이 440m의 운수대통 길을 비롯해 죽마고우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추억의 샛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성인산 오름길 등의 테마 산책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총 길이 2.2km의 이 산책로는 어느 길로 들어서도 막힘없이 다른 테마의 길에 자연스레 들어서도록 동선이 꾸며져 있다.
맹종죽, 왕대, 분죽 등 다양한 대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죽녹원 곳곳에는 정자와 누각, 쉼터 등이 설치돼 있다. 정자와 누각에 걸터앉으면 대숲의 청신한 기운이 오감으로 느껴진다. 이따금씩 스치는 대숲바람, 숱한 댓잎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 댓잎차를 마주한 듯 코끝에 진동하는 대나무 향기, 늘 변함없는 죽로차(竹露茶)의 파릇한 잎 등이 오롯하게 보고 듣고 느껴진다. 또한 죽녹원은 장마철에도 쾌적하고 시원하다. 바람도 잘 통하고 보기도 좋도록 원래의 숲을 알맞게 다듬은 덕분이다.
죽녹원 앞으로는 영산강의 최상류인 담양천이 흐른다. 물빛은 의외로 깨끗하다. 돌 징검다리 사이로 송사리, 피라미 등이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물가에는 고마리, 창포, 마름 같은 수생식물이 촘촘하게 자라고 있어서 잘 꾸며진 생태학습장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담양천에 많은 물고기가 서식하게 된 요인 중에는 관방제림도 빼놓을 수 없겠다. 옛날에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던 어부들은 바닷가에 어부림(魚付林)을 조성했다. 바닷가의 울창한 숲은 파도와 바람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경남 남해군의 물건리 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이다. 그러므로 관방제림에 늘어선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커다란 나무 그늘도 물고기들을 담양천에 불러모으는 어부림이나 다름없을 성싶다.
관방제림은 담양천의 남쪽 제방을 따라 1.5km가량 이어진다. 시원스런 풍광을 자랑하는 강변 제방에 면적 10만2921㎡(3만1000여 평)의 울창한 숲까지 들어서 있으니, 문자 그대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원래 이 숲은 조선 인조 때인 1648년 담양부사 성이성이 수해를 막기 위해 처음 조성한 호안림이다. 그 뒤로 철종 때인 1854년에는 황종림 부사가 연인원 3만명을 동원해 오늘날과 같은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당시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등을 700여 그루나 심었지만, 현재는 420여 그루만 남아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인 푸조나무(111그루)다. 성장이 빠르고 뿌리를 깊게 내리는 습성을 가진 푸조나무는 호안림의 수종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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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나 휴일이면 전국 관광객들로 북새통
관방제림의 일부는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에는 185그루의 노거수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무려 300~400년에 이르는 나무도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관방제림은 우람한 고목들로만 숲을 이루고 있어 산책하기도 좋고, 나무 아래 벤치나 평상에서 책을 읽거나 오수를 즐기기에 좋다. 강물이 흐르고 숲이 울창하니, 아무리 삼복염천의 불볕더위라도 여기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숲 전체가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으로 치장되는 11월 초순경과 막 돋아난 연둣빛 신록이 싱그럽기 그지없는 4월의 풍광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숲은 2004년 산림청에서 주최한 ‘제5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학동교와 가까운 동쪽 끝 부분의 관방제림에는 근래 심어진 나무가 많다. 원래의 숲이 훼손된 바람에 근래 들어 나무를 다시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천연기념물 구역 내의 수백 년 묵은 거목 같은 기품과 자태를 갖추려면 앞으로 숱한 풍상을 견뎌야 될 듯하다. 하지만 그 부근의 24번 국도변에는 조성된 지 30여 년 만에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란 메타세쿼이아가 열병하듯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꼽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실제로 이곳 가로수길은 2002년 ‘제3회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의 거리숲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낙우송과의 낙엽침엽교목인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같은 ‘살아 있는 화석식물’이다. 화석을 통해 신생대 초기까지 북반구에 번성했을 것으로만 추정됐던 이 나무는 1941년 처음 실체가 확인되었다. 중국 쓰촨성(四川省)의 양쯔강 상류 유역에서 높이 35m의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발견된 것이다. 그 뒤로 자생지가 속속 발견되었고, 1960년대부터는 가로수나 공원 조경수 등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 국가 차원으로 추진된 ‘전국 가로수길 조성사업’ 당시 시범지역인 담양에 처음 심어졌을 때만 해도 이 나무는 매우 귀한 수종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심어진 메타세쿼이아는 한 해 평균 1m나 자라서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수백 년 묵은 고목처럼 우람해졌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이제 죽녹원과 함께 담양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만 되면 학동교차로와 금월교차로 사이의 약 1.7km 구간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장바닥처럼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
그땐 사색은커녕 길을 걷는 일조차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그 분주함으로부터 당장 벗어나고픈 마음뿐이다.
메타세쿼이아 거목의 열병을 받으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거나, 대한민국 최고 가로수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담양읍내에서 하룻밤 묵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새벽에 찾아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짧은 길에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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