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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에서 원효의 ‘일체유심조’ 되새기며

醉月 2009. 4. 21. 10:08

가야산에서 원효의 ‘일체유심조’ 되새기며…

▲ 가야산 자락에 깃든 상왕산 개심사의 어느 봄날 오후 풍경. 각기 수형이 다른 벚나무가 범종각을 중심으로 저마다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 선경을 이루고 있다.

 

 좀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걷기 여행에 관한 한 원효 대사를 따를 이 또 있을까 싶다. 반도의 허다한 절에 스님의 자취가 서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대는 7세기. 그러니 그 많은 절을 세울라 치면 그리도 바삐 발품 팔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우리 화엄종의 개조 의상 스님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두 스님이 뜻한 바 있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물론 걸어서였으리라. 방향은 서해. 바다 건너 당나라로 데려다 줄 배를 타기 위해서다. 그 목적지는 당진 아니면 당항진일 가능성이 높다. 당항진이라면 훗날 흥선 대원군을 납치한 청나라 배가 뜨고 또 그를 태운 귀국선이 닿았던 남양만(경기 화성시)이다.

 

 그리로 가던 어느 날. 두 스님은 한 동굴에서 밤을 보내게 됐다. 그 다음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벌레 썩은 물을 감로수처럼 맛있게 들이킨 원효 스님의 일화다. 이튿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스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일체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화엄경 구절)임을 대오각성하고는 당나라 유학결심을 파기한다. 그리고 그 길로 신라로 되돌아가 민중불교의 초석을 일으키는 데 헌신한다.

 

 이 극적인 사건. 그 토굴이 어딘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당항진 부근 어디쯤이려니 하는 추측만 구전될 뿐이다. 그런데 최근 충남 예산과 서산의 가야산 자락에 이 토굴이 있다는 설이 제기됐다. 궁금했다. 어째서 가야산인지. 그래서 그 주장을 편 가야산연대(공식 명칭 가야산 지기키 시민연대·회장 이지훈)의 홈페이지(www.keepgaya.org)부터 뒤졌다.

 

해골물 마시고 깨달은 원효의 ‘일체유심조’ 되새기며

 그 근거는 이랬다. 가야산(해발 678m)은 내포(內浦)의 중심이다. 내포란 ‘내륙의 포구’, 곧 서해로 연결된 물길로 배가 드나드는 고장(태안 당진 서산 예산 홍성 등 10곳)이다. 그 내포 열 고을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야산 지세로 형성된 지형이라는 점인데 그 물길의 수원이 가야산이어서다. ‘내포’가 예로부터 한 문화권으로 인식돼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가야산연대 이지훈 회장의 말이다. “당나라 고승의 사상을 기록한 중국책 ‘송고승전’을 보면 원효와 의상 두 스님이 661년 당주계(唐駐界·당나라 군대 주둔지)에 당도했다고 적혀있습니다. 당시는 백제 멸망 후 일어난 부흥운동이 내포를 중심으로 한창이던 때여서 소정방의 당군이 내포에 주둔 중이었지요. 두 스님은 내포의 어느 산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가야산 자락의 원효 봉입니다. 실제로 주변에 토굴도 여러 개 있고요.”

 

 가야산 지도를 보면 좀 더 확연해진다. 가야산은 충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금북정맥의 핵심. 동으로는 예당평야, 서로는 서해안(서산시)과 태안반도를 거느린다. 평지에 우뚝 솟아 남북으로 달리는데 그 산자락은 400∼600m급으로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산자락만큼은 치마폭처럼 넓다.

 

 

 그 마루 금(능선)을 살펴보자. 가야봉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해미읍성(서산시 해미면)의 뒷산인 석문봉(653m)을 거쳐 일락산(521m)을 지나 개심사와 서산 마애삼존불이 깃든 상왕산(402m·서산시 운산면)으로 이어진다. 남동쪽으로는 예산군 덕산면의 원효봉(465m)으로 이어진다. 원효 대사를 각성시킨 토굴로 주장되는 바로 그곳이다.

 

 이 스토리를 추적하다 보니 실제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원효 스님에 대한 추리도 흥미로웠지만 서해가 조망되는 가야산의 마루 금 종주코스가 걷기에 그만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쳐서다. 출발점은 서산의 개심사.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진 고목 가지에서 피는 분홍빛 벚꽃, 나무를 켜지 않고 구불구불 자란 상태 그대로 기둥삼아 지은 절집의 고운 뒤태가 인상적인 고찰이다. 게서 산길로 25분쯤 오르니 상왕산, 다시 능선 따라 남쪽으로 1.6km를 걸으니 일락산 정상이다. 평소 같으면 능선과 정상에서 서해가 훤히 조망되련만 오랜 가뭄에서 비롯된 연무현상으로 해미와 운산 두 면(서산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일락산 정상을 내려서면 사이고개다. 동으로 용현자연휴양림, 서로 일락사를 잇는 포장도로가 능선을 가로지른다. 그 마루 금을 따라 등산로가 났고 그 길은 석문봉을 향한다. 가야산은 온통 소나무 숲이다. 그런데 그 소나무가 아주 특이했다. 어느 한 그루도 똑바른 것이 없었다. 죄다 용트림하듯 뒤틀렸다. 한 뿌리에서 서너 그루가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꿈틀대듯 제각각 자라는 모습도 특별했다.

 

 산보하듯 걷기를 한 시간. 태극기 휘날리는 석문봉 정상에 닿았다. 아래로 서산시 해미읍 일대가, 주변으로 가야봉과 원효봉을 잇는 산의 마루 금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의 돌비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내포의 정기가 이곳에서 발원하다.’ 간척사업 벌이기 전 일대의 원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수백 개 손가락처럼 서해안 평지고을을 두루 아우른 가야산자락, 그 사이로 물이 흐르고 그 물가로 마을이 들어선 내포 고장의 옛 모습을.

 

 

 이날 걷기여행은 게서 그치지 않았다. 석문봉에서 옥양봉(621m)으로 이어졌다(거리 1.57km). 옥양봉의 암봉 정상부는 고정 자일을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오르기가 난감했다. 하지만 올라서자 널찍한 공간과 더불어 멋진 전경을 선사했다. 하산 루트는 가파른 계단 길이다. 50분 후. 트레킹 트레일이 시작되는 상가리(예산군 덕산면)에 도착했다. 시작은 서산 땅이었지만 끝은 예산 땅, 온천과 워터파크형 온천스파인 스파캐슬이 있는 덕산이다.

 

 마을회관으로 가던 도중. 역사의 터를 지난다. 남연군 묘다. 남연군은 흥선 대원군(고종의 친부)의 아버지. 1868년 발생한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현장이다. 왕릉의 모습을 한 묘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석문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옥양봉과 가야봉이 좌청룡 우백호 되어 이곳을 감싸 안은 형국이었다. 이곳은 천하명당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흥선이 이 자리에 있던 가야사를 불태우고 불탑까지 무너뜨리면서까지 집착할 정도로.

 

 하지만 과연 명당인지는 의문이다. 아다시피 흥선은 왕손이었지만 ‘상갓집 개’ 행세로 목숨을 부지했다. 안동 김씨 외척세력의 위협이 하도 거세서다. 그래도 왕위에 대한 야심만은 접지 않았다. 그가 이 땅에 남연군 묘를 이장한 것이 그 증거다. 그는 지관에게 명당 터를 부탁했고 지관이 추천한 두 곳, 2대에 걸쳐 황제를 낼 곳(가야산 동쪽)과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릴 곳(광천 오서산) 중 황제의 터를 선택했다.

 

 그 7년 후. 흥선은 차남 재황을 얻고 재황은 11년 후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고종)에 오른다. 그 아들 역시 뒤를 이은 순종이다.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에 등극했다. 2대에 걸쳐 황제를 얻는다는 지관의 말 그대로다. 과연 명당이었다. 그러나 그 무덤은 오페르트에게 도굴된다. 그래도 명당일까라는 의문은 그래서 남는다.
 
◇스파캐슬 가야산 특별패키지: 가야산과 석문봉, 옥양봉에서 하산하면 모두 한곳에 다다른다. 상가리(예산군 덕산면)다. 덕산은 온천으로 이름난 고장. 트레킹을 마친 후 귀로에 온천마을을 지나게 되니 온천욕 한 탕쯤은 ‘참새 방앗간’ 격이다. 덕산에는 여러 온천시설이 있는데 스파캐슬은 온천수를 이용해 워터파크와 사우나를 운영하는 제대로 된 스파다.

 

▲ 스파캐슬 덕산온천의 스파캐슬 천천향

 

 트레킹 대신 가야산의 숲길 걷기를 원한다면 스파캐슬의 특별패키지를 권한다. 가이드를 따라 원효대사 해골바가지 일화 터를 답사하고 가야산 숲을 탐방하는 코스로 도시락과 스파가 포함됐다. 사우나를 선택하면 1만6000원, 천천향(스파+워터파크)을 이용하면 3만5000원. 25일, 5월 9, 16일, 6월 13, 27일(오전 10시 스파캐슬 출발)에만 있다. 예약 02-3470-8076, www.m-castle.co.kr
 
 ◇서산 맛 집 ‘해미쌈밥’: 해미는 내포에서도 석문봉의 아래 고을로 가야산 여행길에 반드시 들러볼 만한 곳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평지읍성인 해미읍성이 원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서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서산의 참 맛을 담은 ‘해미쌈밥’(7000원·사진)이다. 쌈밥이란 갖가지 푸성귀로 쌈을 싸 먹을 수 있도록 강된장(찌개)을 밑반찬과 함께 내는 상차림.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여주인 김순희 씨가 우렁이를 넣고 끓여 감칠맛을 돋운 우렁이된장으로 객손의 입맛을 정복한다.

 

▲ 서산시 해미면에서 맛보는 별미 '해미쌈밥'. 푸성귀에 밥을 올린 다음 우렁이를 넣고 끓은 담백한 강된장찌개를 올려 쌈을 싼다.

 

 게다가 대부분 먹을거리가 모두 가족 손으로 생산한 것이어서 더더욱 입맛이 돋는다. 된장은 시어머니가, 김치는 친정어머니, 푸성귀는 팔순의 친정아버지가, 쌀은 오빠가 직접 재배해 대준다고 한다. 친정과 시집 모두가 서산 사람들. 그래서 해미쌈밥은 서산의 맛이라 할 만하다.

 

 점심시간(정오∼오후 1시 반)을 피하는 것이 요령. 영업은 오전 11시∼오후 10시, 넷째 일요일은 쉰다. 해미읍성 앞 서문 삼거리의 해미면사무소 건너(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95-8). 041-688-5084

 

트레킹 정보
 ◇트레킹 출발점 찾기 ▽개심사: 서해안고속도로∼서산 나들목∼국도 32호선(운산 방향)∼지방도 647호선∼개심사 ▽일락사 주차장: 서해안고속도로∼해미 나들목∼황낙저수지∼일락사 주차장 

 ◇트레킹 ▽코스1(개심사 출발) △거리: 12km △소요시간: 4시간 △지형: 능선 △난도(1∼5): 약간 어려운 ‘3’ △특징: 해미읍과 서해 바다 조망하는 능선 종주, 송림 숲길 △루트: 개심사∼상왕산∼사이고개∼사이봉∼석문봉∼옥양봉∼남연군 묘 ▽코스2(일락사 주차장 출발) △거리: 7km △소요시간: 3시간 △난도(1∼5): 적당한 ‘2’ △지형 및 특징: 코스1과 동일. △루트: 일락사 주차장∼사이고개∼사이봉∼석문봉∼옥녀폭포∼남연군 묘

 

트레킹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는 하루 일정으로 가야산 석문봉을 다녀오는 트레킹(코스2)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출발(서울 광화문 잠실)은 19, 25, 26일이며 참가비는 4만5000원. 아침(간식)과 점심(해미쌈밥)식사, 여행자보험, 안내비 포함. 02-720-8311

 

도깨비뉴스 여행전문 리포터 동분서분 report2@dk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