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KF-X 사업의 주요 쟁점과 성공조건

醉月 2015. 12. 5. 14:10

[현안총정리] KF-X 사업의 주요 쟁점과 성공조건

13가지 의문사항과 해법

⊙ KF-X 사업 관련, 전투기의 기술적 측면 숙지한 전문가·정치인 적어
⊙ 미국, 에이사 레이더 체계통합기술 관련 E/L 승인한 나라 없어… 우리가 이를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은 잘한 일
⊙ 4대 핵심기술 이전의 핵심은 ‘체계통합기술’… 현재 한국, 기술 3분의 2 이상 확보
⊙ ‘R&D 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확신 갖고, KF-X 국책사업단 바로 구성해야

趙辰洙
⊙ 59세.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 및 석사, 미국 퍼듀대 항공공학 박사.
⊙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 공군 F-X 평가단 및 항공사업지원 자문위원 역임.
現 공군 정책발전 자문위원, 방위사업청 KF-X 전문위원, 한국항공우주산업 산학위원장,
국방 NCW 포럼·한국국방안보포럼·한국방위산업학회·국토부 항공안전기술원 이사.
4세대 전투기인 KF-16. 탐지거리가 대폭 향상된 레이더와 미사일 및 폭탄 등의 무기체계를 탑재하고 있는 4세대 전투기로는 F-14ㆍ15ㆍ16ㆍ18, MIG-29, Su-27 등이 있다. 이 중 F-16은 전 세계에 5000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2010년 초 항공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2020년까지 생산 규모를 200억 달러(약 22조원)로 확대해 국내 항공산업을 G7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항공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시동을 건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KF-X·일명 보라매 사업)’의 탐색개발이 2011년 국방과학연구소(이하 ADD) 주도로 본격화됐다. 이 작업은 인도네시아와 공동으로 18개월 동안 진행했으나, 2012년 사업 타당성 재평가를 의뢰받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기술부족 및 경제성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방위사업청은 2013년 다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의뢰해 기술성을 검토했다. 사업 타당성이 있는 걸로 나와 2014년 7월 ADD가 제시한 형상으로 ‘국내 주도 개발’을 하기로 결정했다.


전투기 모르고 자기주장 펴는 이 적지 않아

KF-X를 국내 개발로 결정한 것은 용이한 정비와 예산절감 때문이다. 전투기는 30년 이상 업그레이드하며 사용하는데 폐기 시점까지 들어가는 수명주기비용, 즉 LCC가 도입 비용의 3~4배에 달한다. 국내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전투기 국산화 개발 사업을 뛰어넘어 자주국방과 미래 한국의 몇 안 되는 먹거리 중의 하나인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우선협상대상업체로 선정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이 KF-X 사업의 4대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하면서 지난 13년간 갑론을박 끝에 사업 추진을 결정한 KF-X 사업이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 수많은 기자가 다양한 매체에서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군사전문가’라는 사람들이 TV, 라디오에 나와 자기 의견을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KF-X 사업을 ‘권투선수들이 샌드백 치듯’ 비판하고 있다. 여야(與野)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책임론과 실패 가능성을 언급하며 KF-X 사업을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심지어 “실패가 확실하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다.

항공전문가로서 정말 아쉬운 점은, KF-X는 한국형 첨단 전투기를 개발하는 국가적 기술 개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항공전문가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현실이다. KF-X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KIDA, KISTEP 연구원이나 언론인, 정치인들은 비행기를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항공전문가들이 아니다.

KF-X 사업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지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특히 비행기나 전투기와 관련해서는 기술적 측면을 ‘특별히’ 많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 글이 언론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그리고 전투기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할 때는 초기 설계가 아주 중요하다. 전투기는 30~40년 동안 양산하면서 성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따라서 처음 전투기를 설계할 때 향후 성능 향상 가능성까지 최대한 반영한다. 통상 ‘BlockⅠ·Ⅱ·Ⅲ’ 식으로 새로운 버전을 명명한다.

KF-X의 경우 2022년까지 시제기 6대를 만들고 공대공(空對空) 기능 등을 추가해 2023년 ‘Block I’ 기체를 양산할 계획이다. 이 전투기의 성능은 통상 우리 공군 작전용어로 규정할 때 ‘미디엄급’에 속한다(로·미디엄·하이급 전투기가 있다). 현재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경공격기 F/A-50이 로급, 앞으로 들여올 F-35A는 하이급이다. KF-X 사업 초기 양산될 Block I은 2025년부터 총 120대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공대공/공대지(空對地) 전투 능력을 갖춘 ‘Block II’는 2028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이제부터는 KF-X 사업과 관련해 현안이 되고 있는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 알아보자.


1. KF-X는 몇 세대 전투기인가?

1세대 전투기인 F-86 세이버. 제트 엔진을 단 첫 전투기이다.
휴대전화도 2G, 3G, 4G 하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에서는 ‘세대(Generation)’로 전투기를 구분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미국의 본격적인 프로펠러 전투기에 이어 한국전쟁에 등장한 미국의 F-86과 소련의 MIG-15와 같은 아음속(亞音速·음속보다 약간 느린 속도) 제트 전투기들을 통상 1세대 전투기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종료 후 프랑스, 미국과 구(舊)소련은 초음속 제트 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고, 레이더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미라지 계열 전투기와 F-100, F-104, MIG-19 등이 등장했다. 이들을 2세대 전투기라고 한다.

1960년대 들어 2세대 전투기들보다 더 빠르고 유상하중(Pay Load·연료와 무장을 최대한 탑재하는 정도·유효탑재량)을 대폭 늘려 폭탄을 많이 싣고 더 강력해진 레이더로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까지 장착한 전투기들을 3세대 전투기라 부른다. 미라지 F-1, MIG-21·23·25, Su-15·16, F-5·4 같은 당대 최고 성능의 전투기들이 이에 해당한다. 베트남전의 발발로 F-4는 장거리 비행을 위한 공중급유 기능까지 갖췄지만, 조종사가 ‘유압조종장치’를 이용해 전투기를 몰아야 했기 때문에 많은 체력이 소모됐다. 조종사의 육체적 능력에 따라 전투기의 기동성이 좌우되기도 했다.

공중급유가 가능하고 유압조종장치가 달린 3세대 전투기 F-4(위)와 F-5.
3세대 전투기 출현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컴퓨터 게임에 사용하는 조이스틱(Joy Stick)이 전투기 조종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투기에 장착된 디지털 컴퓨터와 조종간을 선으로 연결해 전투기를 손쉽게 제어하는 방식의 FBW(Fly-By-Wire) 시스템을 갖춘 기체가 4세대 전투기이다. 4세대 전투기는 탐지거리가 대폭 향상된 레이더와 미사일 및 폭탄 등의 무기체계를 모두 탑재하고 있다(체계통합). F-14·15·16·18, MIG-29, Su-27, 미라지 2000과 같은 4세대 전투기들 중 F-16은 전 세계에 5000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우리 공군도 KFP(Korea Fighter Program) 사업을 통해 최초로 전투기다운 전투기인 F-16을 도입했다.

‘4.5세대’ 전투기는 4세대 전투기와 비교해 더 멀리 보고, 여러 표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능동형전자주사(AESA· 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또한 4세대 전투기보다 향상된 컴퓨터와 항공전자 시스템을 통합해 ‘족집게’ 미사일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한적 레이더 반사면적(RCS) 감소 기술을 적용해 스텔스 기능도 일부 갖췄다. 제1·2차 F-X 사업으로 도입된 F-15K, 제3차 F-X(차기 전투기) 사업의 후보 기종 중 하나인 타이푼 유로파이터(Typhoon Euro-Fighter), 제1차 F-X 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던 라팔, 우리가 개발할 KF-X Block II가 이에 해당한다.

제5세대 전투기는 현존하는 전투기 중 최상의 전투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걸프전에서 맹활약한 F-117 전폭기나 B-2 폭격기와 같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스텔스(Stealth) 기능과 예술적 경지의 항공전자(State of the Art Avionics) 시스템이 결합돼 있다. 5세대 전투기인 F-22가 세상에 나오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F-35, 러시아의 PAK T-50, 중국의 J-20 등이 5세대 전투기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5세대 전투기가 되려면 전투기 설계 초기부터 스텔스 기능을 낼 수 있는 형상을 갖춰야 한다. 우리가 개발하려는 KF-X의 모형이 F-22, F-35와 비슷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이는 5세대 전투기(KF-X Block III)로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KF-X의 ROC가 갑자기 변경됐다?

KF-X의 수요자인 공군은 ROC (Required Operational Characteristics·요구운용특성)를 2002년에 처음 수립했다. 당시 공군은 ‘미디엄급’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쉽게 말하면 4세대인 T-50보다 강력하고 F-16보다 성능이 조금 더 우수한 전투기를 ‘국산’으로 개발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 사업의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ROC의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업 추진 가능성이 급물살을 타면서 국방과학연구소는 최초 ROC 이후 발전된 전투기 기술을 염두에 둔 전투기 모델(C103) 형상을 내놓았다(흔히 이를 탐색개발이라고 한다). 공군은 탐색개발 결과를 근거로 ROC를 업그레이드했다. 그런데 이 ROC에는 5세대 전투기에 필요한 스텔스 성능이나 내부 무장(武裝) 공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KF-X 사업이 본격화돼 초기 설계에 들어갈 때 이런 사항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통상적으로 한 국가의 무기체계에 대한 ROC는 적대국의 주요 정보가 되기 때문에 비밀로 분류돼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이 글에서 더 이상 언급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 KF-X가 엔진 2개 형상으로 결정된 이유는?

2014년 7월 KF-X 형상을 C103(엔진 수 2개) 형태로 결정하기 전인 2013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은 KFX-E(엔진 수 1개)를 제안했다. 한창 논쟁이 벌어졌던 ‘단발이냐’ ‘쌍발이냐’의 논란의 출발이었다. 단발이나 쌍발이나 고장률(사고율)은 같은데도 공군이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쌍발 엔진을 원했다는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비행기를 설계할 때 엔진 숫자를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특정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후 그 엔진의 추력에 맞춰 설계하는 경우다. 과거에는 시중에서 구입 가능한 엔진의 종류가 많지 않아 그렇게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필요한 총 추력을 산출해 이에 맞는 엔진을 찾거나, 원하는 엔진이 없을 경우 충족조건에 가장 가까운 엔진을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하도록 계획을 짠다.

필요한 총 추력은, 최대 속도와 가속력 같은 항공기 성능 변수는 물론 유상하중까지, 여러 변수를 종합판단해 결정한다. KF-X C103 형상의 성능을 엔진 1대로 내려면 엔진의 최대 추력이 3만5000파운드가량 되어야 한다. 이런 높은 추력을 내는 군사용 엔진을 우리가 사올 수가 있다면 엔진 1개를 사용하는 것이 기술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현재 F-35A가 사용하고 있는 ‘PW F135’ 엔진이 이 조건을 충족한다. 문제는 이 엔진을 미국이 절대 외국에 팔지 않는다는 데 있다. 따라서 KF-X C103 형상은 최대 추력 2만 파운드를 내는 엔진 두 개를 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쌍발 엔진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현재 미국 GE의 ‘F414’ 엔진과 유럽 컨소시움 Eurojet의 ‘EJ200’ 엔진이 KF-X 엔진 조건에 충족되는데 두 회사는 서로 자기네 엔진이 뛰어나다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전투기는 갈수록 ‘추력 대 중량비(총 이륙 무게와 비교해 추력이 얼마나 높은가)’가 높아지고 있다. 즉 더욱 강력한 엔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거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공대지 미사일(타우러스 등)과 지상 공격용 무기체계(벙커 버스터 등)의 하중(보통 1개당 1.5톤 이상)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항공무기체계 탑재 중량 증가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중대형 항공기에 탑재되어 시험되고 있는 레이저 무기체계가 전투기용으로 개발될 것이 확실하므로 대용량 전기발전기 탑재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가 쌍발 엔진 형상으로 결정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4. KAI가 단발 엔진 KFX-E를 제안한 배경은?

그렇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이 C103에 비해 저(低)체급인 싱글 엔진 KFX-E 형상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ADD가 제안한 C103 형상의 전투기를 개발할 자신이 없어서 KAI가 발을 빼려 했다는 ‘치킨(Chicken) 논리’를 편 사람도 있었다. KAI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개발해 온 T-50과 파생형인 F/A-50을 베이스로 한 KFX-E로 KF-X를 개발할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로 개발비용도 줄이고 개발 위험 부담도 감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과거 KF-X 국내 개발을 반대해 온 한국개발연구원이나 KIDA가 내세워온 소위 ‘경제성’ 논리에도 부합한 것이 싱글 엔진이었다. 그런데 당시 KAI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KF-X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였다. 2012년 탐색개발이 끝나고 ADD는 C103 형상을 기본으로 한 KF-X 개발 총 예산을 6조원 이내로 정부에 보고했다. 넘어야 할 절차(예를 들어 대한항공과의 경합 등)가 남아 있었지만 자사(自社)가 KF-X의 체계 개발 업체로 선정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던 KAI는 개발비용이 9조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과연 정부(기획재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확보해 주겠느냐 하는 우려였다. 결국 KAI는 나름대로 당시 공군의 ROC를 충족하면서 6조원 이내로 개발할 수 있다고 확신한 KFX-E 형상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경제성이냐, 기술성이냐의 논란은?

제1ㆍ2차 F-X 사업으로 도입된 4.5세대 전투기인 F-15K. 우리가 개발하려는 KF-X도 4.5세대 전투기이다.
항공기 개발 사업은 위험 요소가 많다. 또 10년이 넘는 오랜 개발 기간과 수조~수십조 원 사이의 돈이 들어가는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다. 물론 상업용 항공기는 대부분 민간 항공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하고 개발한다. 통상 정부가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벌이는 전투기, 헬기, 수송기 같은 군용기 개발 사업의 경우에는 경제성과 기술성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개발 과정에서의 비용과 개발 완료 시 수출해 수익을 창출하는 ‘경제성’과 국내 개발로 인한 기술 향상으로 타(他)산업으로의 파급효과를 높이고 국가적 첨단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성’이 그것이다.

물론 군용기 시장과 기술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미국은 경제성과 기술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KF-X 사업의 경우, 우리 정부도 두 가지를 다 만족하는 사업계획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투기 개발을 처음 하는 우리로서는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전투기를 개발해 온 미국도 F-15에 이은 저가형 F-16을 개발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전투기를 만들었다. 또한 단발 전투기만이 수출 가능하고 쌍발 전투기는 수출을 못 하게 했다. 이를 근거로 단발이냐, 쌍발이냐 하는 논란이 벌어졌을 때 KFX-E 형상을 선호하며 경제성 우위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수출이 절대 불가능할 것으로 봤던 T-50(F/A-50)이 요 근래 수출이 되는 것을 보면, 15년 이후의 시장 상황을 전제로 경제성 여부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 정부는 여러 고심 끝에 기술성과 자주제공권 확보를 위해 KF-X를 국내 주도로 개발, 전력화하기로 결정했다. 옳은 결정이다.


6. 공군과 KAI의 승리?

일부 언론은 2014년 5월 10일 주철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주재한 KF-X 관련 회의에서 E/L(Export License·수출 승인)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단발이냐, 쌍발이냐, 즉 경제성과 기술성 사이, 청와대가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ADD가 제시한 C103 형상의 개발비용이 8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단발 엔진(KFX-E 모형)으로 가야 개발비도 낮출 수 있고 수출도 가능하다는 KAI의 ‘경제성’ 논리가 힘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ADD와 공군은 ‘기술성’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여기에 반대했다. 이에 청와대는 저비용의 KFX-E로 갈 것인지, 엔진 2개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C103 형상으로 갈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던 것이다. 이후 청와대에서 KF-X 관련 회의는 여러 번 열렸다. 마침내 방위사업청은 심의위원회를 만들어 작년 7월 두 가지 형상에 대해 심의했다. 최종적으로 C103 형상이 채택됐다. 대폭 늘어난 비용이 관건이었으나 정부가 이를 수락했고 KF-X 체계 개발 우선협상대상업체로 KAI가 선정된 것이다.


7. 인도네시아가 참여하게 된 배경은?

2003년과 2007년 사이 사업타당성 검토를 의뢰받은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국방연구원은 KF-X 사업에 대해 부정적 결론을 냈다. 그러나 ADD, KAI 그리고 공군은 지속적으로 사업 추진 의지를 불태웠다. 이에 방사청 IPT(통합사업관리팀)는 기획재정부에 개발가능성을 계속 타진했고, 기재부는 총 사업비 중 해외지분을 20% 확보하고 참여 기업의 지분도 20% 이상 확보한다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길을 열어줬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해외 여러 국가에 의사를 타진했고, 2010년 7월 인도네시아와 차기 전투기 공동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듬해인 2011년 CRDC(공동개발연구소)를 설립해 탐색개발을 같이했다. 이어 2014년 10월 우리 정부와 인도네시아는 KF-X 국제공동개발기본합의서(PA)를 체결했다. 최근 들어 우리가 KF-X 사업에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동안, 인도네시아 국회는 지난 10월 KF-X에 85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자키로 결정했다. 우리보다 인도네시아가 더 적극적이다.


8. E/L(Export License·수출 승인)이란?

“제3차 F-X(차기 전투기)로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F-35A를 선정하면서 KF-X에 필요한 25개 항목을 Off-Set(절충교역)으로 들여오기로 했으나 이 중 4개 핵심기술을 미국 정부가 E/L을 허락하지 않아 기술이전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KF-X 사업 중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E/L이란 유출돼서는 안 될 고유 기술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과 제도로 규제하는 방식을 통칭한다. 여기에는 실제 물건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사업계획 등의 문서, 사람까지 포함한다. E/L 리스트에 있는 모든 사항의 국외 반출은 해당 국가 기관의 허가, 즉 E/L을 받아야 가능하다. 해당 품목의 E/L을 승인할 때도 ‘특정 국가 수출 금지 또는 허가’ 등의 까다로운 부대조건을 붙인다.

특히 전 세계 방위산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에서의 E/L 획득은 매우 까다롭다. 실례로 미국의 E/L 리스트에 있는 엔지니어가 한국에 와서 세미나에 참석하려 해도 E/L 승인이 나지 않거나, 승인이 지연돼 강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스라엘 항공기를 생산하는 국영업체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의 경우, 이 회사의 초청으로 현지에 가서 협의를 하는 데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E/L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4대 핵심기술은 특정 장비를 개발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4개 하드웨어를 KF-X 전투기에 통합하는 ‘체계통합기술’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後述)하겠다. 록히드 마틴이 약속한 21개 품목 기술이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할 때 21개 기술이전에 대해서는 큰 문제 없이 이행될 것이라 확신한다.

4대 핵심기술 E/L 승인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거절될 것을 미리 알고서도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고, 또 한민구 국방장관이 대통령 방미(訪美) 수행 시 미국 정부당국에 직접 요청했는데도 거절당했다는 등의 얘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필자가 보기에 규정과 절차를 우선시하는 미국의 시스템으로 볼 때 이는 당연한 결과다. 특히 능동형전자주사 위상배열(AESA·에이사) 레이더 체계통합기술의 경우, 미국은 어느 나라에도 E/L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L 승인을 위해 노력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KF-X에 필요한 4대 핵심기술 확보는 미국의 E/L 승인에 의한 기술전수로 가는 길이 최선의 지름길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9. 4대 핵심기술은 정확히 무엇인가?

KF-X 센서 통합에 의한 임무 구현 방법도.
KF-X 사업의 목표 중 하나는 독자적 성능 개량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4대 핵심기술 확보는 전투기 독자 개발에 중요한 요소이다. 4대 핵심기술의 자립화 자체가 KF-X 사업의 중요 목표이기도 하다.

우선 4대 핵심기술 중 가장 중요한 에이사 레이더에 대해 알아보자. 이 레이더는 안테나가 고정된 상태에서 전파각도를 전자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공대공, 공대지, 공대해 표적에 대한 다중 동시 탐색·추적하는 기능을 갖춘 최첨단 전자식 레이더이다. 기계식(MSA) 레이더는 사람의 눈, 에이사 레이더는 잠자리의 눈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사람 눈은 옆에 있는 목표물을 보려면 눈동자를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볼 수 있지만, 수많은 작은 눈으로 이루어진 잠자리 눈은 눈동자 움직임 없이 훨씬 넓은 각도를 볼 수 있다.

적외선 탐지 추적장치(IRST·Infra-Red Search & Track)는 용어 그대로 적(敵) 전투기나 대공(對空) 미사일에서 방사되는 적외선 신호를 탐지·추적해 조종사에게 표적 정보를 알려주는 전자장비이다.

전자광학 추적장치(EO-TGP· Electro-Optical Targeting Pod)는 전자광학 및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주야(晝夜) 관계없이 표적을 탐지·추적하며, 레이저를 이용해 지상 표적을 족집게처럼 타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다.

RF(Radio Frequency) Jammer는 주파수 전자파 방해장비이다. 적에게서 위험 전자파 신호를 수신해 고출력 전자파로 적의 전자장비를 교란시키는 장비인 것이다. 레이더경보수신기(RWR·Radar Warning Receiver), 디스펜서(CMDS·Counter Measures Dispenser System)와 함께 전자전(電子戰)의 핵심 장비이다.

4개 핵심 장비를 전투기의 임무 컴퓨터에 통합시켜 연동해야 하는데 바로 이 ‘체계통합’이 고난도의 기술력과 경험을 필요로 하며 오랜 시일이 걸린다. 이 중 AESA, IRST, EO-TGP 등 3개 센서는 권투선수로 치면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공격을 감지하는 5개 감각기관이며, 마지막 임무 컴퓨터와 무장체계는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뇌와 중추신경에 해당한다(〈그림〉 참조).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3개 센서가 획득한 정보는 임무 컴퓨터를 통해 조종석 앞 계기판에 붙어 있는 다기능 시험기(디스플레이 화면), 계기판 위의 전방 시현기, 조종사 헬멧 시현기에 표시된다. 조종사는 이를 토대로 공대공,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폭탄을 투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즉 센서류, 조종사, 무장체계 등이 권투선수처럼 한 몸이 되어 단 1초의 오차 없이 통합하는 ‘체계통합기술’에 대해 미국은 E/L 승인을 걸어놓았다.


10. E/L 승인 거절에 따른 해결책은?

최고의 전투기인 5세대 전투기 F-35. 우리 군은 F-X 사업으로 40대를 들여올 예정이다.
소위 4대 핵심기술에 대해 미국 정부에 E/L 승인을 요청한 것은, 관련 체계통합기술을 전수받으면 개발 위험을 그만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투기 개발 사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전력화 시기를 제때에 맞출 수 있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KF-X Block II’, 더 나아가 ‘Block III’ 개발이 용이해진다. 물론 미국의 E/L 승인으로 소위 ‘블랙박스’를 열어볼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L 승인 시의 부대조건에 따라 모든 관련 액션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에이사 레이더 개발 및 체계통합에 미국은 19년, 유럽은 22년 걸렸다는 얘기가 있다. 에이사 레이더를 전투기에 통합해 연동하는 기술이 고난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에이사 레이더 관련 기술이 최근 많이 공개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ADD와 LIG넥스원 등이 2006년부터 필요한 하드웨어를 상당 부분 개발해 놓은 것도 사실이다. 다른 3개 기술(IRST, EO-TGP, RF Jammer)도 함정, 지상용으로 개발해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다. 필자 견해로는, 3개 기술의 하드웨어를 항공용으로 소형화·경량화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체계통합 업체의 도움을 얻고, 미국 E/L 관련 사항들을 기술적으로 피해간다면 ‘Block I’ 시제기가 나오는 2022년까지 체계통합이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문제는 에이사 레이더 체계통합기술이다. 이미 미국이 E/L 승인을 거부했고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에이사 레이더 체계통합기술은 제3국의 기술지원을 받든지 아니면 국내 개발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술로 ‘Block I’의 양산 시점까지 레이더 체계통합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 B’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정부와 KF-X사업 본 계약을 체결해 개발을 시작하면 1년 뒤에는 시스템 기능 검토회의(SFR·System Functional Review), 2년 반 뒤에는 기본설계 검토회의(PDR·Preliminary Design Review)를 한다. 따라서 늦어도 PDR을 할 때까지 에이사 레이더 국내 개발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미 검증돼 운용 중인 체계를 구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산 하드웨어와 체계통합기술을 미국 정부를 통해 E/L 승인 없는 FMS(Foreign Military Sales·미 정부 보증 대외군사판매제도·F-35 도입과 같은 방식)로 들여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경우 E/L 승인을 받지 않은 상황이므로 관련 기술을 우리가 열어볼 수 없다. 즉 ‘블랙박스’ 형태로 도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뜯어보거나 분해할 수는 없는 조건으로 단순히 돈을 주고 사용하는 셈이다.

에이사 레이더 체계통합기술은 국내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후속 양산 시까지 반드시 자립화해야 한다. 레이더와 관련한 위험관리(Risk Management) 비상계획(Contingency Plan)과 이미 확정된 총 개발비 이외의 예비예산 확보도 필요하다. 이 예산이 약 2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미국의 E/L 정책도 주변 상황과 기술발전, 해당국과의 이해관계 상황에 따라 변하므로 미국의 E/L 승인 상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11. 우리가 확보한 기술은 과연 몇 %?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10월 28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내에서 핵심기술이 개발 가능한가”는 질의에 대해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을 하는데 412개 분야의 기술이 있는데 89%는 이미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머지 10%는 절충계획을 통해 받거나 해외 협력을 통해 개발을 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서 “4가지 기술이 모두 그 기술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술 수준은 14%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14%에서 90%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국내 기술 자립도는 과연 몇 퍼센트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술 자립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14%의 근거로 2014년 실시한 KISTEP의 KF-X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기술성숙도) 조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TRL은 각 품목마다 1~9단계로 표시할 뿐 전체 기술 자립도를 숫자로 표시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김관진 실장의 ‘89%’도 납득하기 어렵다.

흔히 국내 기술 자립도를 ‘국산화 개발 착수 및 성공 가능성’의 척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KF-X 사업은 연구개발(R&D)사업으로, 무(0%)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있고 100%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1000퍼센트 이상의 결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항공 R&D 사업에 관여해 온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다면, 우리는 대략 KF-X 개발에 필요한 기술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시간, 인력과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는 더 들어갈 것이라고 보이나, KF-X의 국내 주도 개발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KF-X 사업은 전력화 일정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해당 기술의 ‘적기 개발 실패에 대비한 플랜 B’를 반드시 수립해 놔야 한다.


12. 성공 확신의 근거는?

R&D 과제를 시작할 때 “외국 선진국도 10년 이상 걸렸는데 당신네가 제시한 기간 내에 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쟁점이 되고 있는 4대 핵심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R&D 기술 자체가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10년 걸렸을 스마트폰을 중국이 불과 1~2년 내에 거의 모든 기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한다. 우리나라의 전자제품 신형은 6개월도 안 돼 시장에 나온다. 필자가 운영하는 대학 연구실도 10년 전 같으면 2~3년 걸렸을 ‘데블킬러’라는 단거리 자율항법 유도 무인기의 기본 시험비행(시제품 설계·제작 포함)을 1년 만에 끝냈다. 또 10년 전 같으면 5년 정도 걸렸을 무인항공기의 특수 추진장치를 1년 반 만에 설계·특성 검증을 완료해 해외 특허까지 출원 중이다.

이게 가능한 데는 첫째,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3D 프린터 등의 등장, 둘째 더욱 빨라지고 값이 싸진 컴퓨터 하드웨어 출시, 셋째 과거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기술정보, 넷째 CAD/CAM/CAE(전산상세설계)와 CFD(전산유체해석) 같은 소프트웨어의 발달 등 기술개발 환경이 급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투기를 개발할 때 필요한 전산 성능 예측, 풍동(風洞·바람을 일으켜 기류가 물체에 미치는 영향) 시험용 모델 제작에 필요한 기간은 10년 전에 비하면 거의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따라서 과거 선진국이 동일 핵심기술 개발에 걸린 기간과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KF-X 사업을 ‘죽음의 행진’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기술성장을 달성해 온 R&D 종사자들에 대한 모독이고 한국의 앞날에 초를 치는 격이다.


13. KF-X 사업의 성공조건

2014년 7월 국내 주도 개발로 결정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의 형상모델 C103.
위에서 설명한 E/L 문제와 해결 방안 등 기술적인 사항 외에 KF-X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책사업단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사실 E/L 문제는 KF-X 사업 추진 결정이 난 직후부터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와 국가적 차원에서 협상을 벌였어야 할 사안이다. E/L 소관 부처인 미국 국무부에 해당하는 부처가 우리에게는 없다. 18조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임에도 탄탄한 조직·책임·권한을 부여받은 컨트롤 타워도 없다. 그러다 보니 방위사업청이 E/L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고심해도 미국이 방사청을 ‘무기구매 정부기관’ 정도로 본 측면도 없지 않다.

늦긴 했지만 하루빨리 책임과 권한이 있는 ‘KF-X 국책사업단’을 구성·발족해야 한다. 단군 이래 최고가(最高價), 최고 난제의 무기개발 사업이라고 별명이 붙은 만큼, 국책사업단은 국방부를 넘어 최소한 국무총리 직속으로 둘 필요가 있다.

추진력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사업단 구성에서의 핵심은 사업단장 선발이다. 사업단장 후보는 전투기 체계는 물론 체계개발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와 경험이 있어야 한다. 또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관과 원활히 소통해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울러 국회,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기술 문제가 발생할 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업단에 설치할 분야별 ‘상설위원회’는 사업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받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가끔 모여서 진행상황만 보고받고 만찬이나 하고 헤어지는 형식적인 위원회는 전혀 필요 없다.

둘째, 사업지연과 소요 예산 증가에 대한 대비책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 외국 사례도 그러하듯 대형 R&D 사업은 시간적으로 지연되기 마련이다. T-50의 경우 탐색개발에 3년(1992~1995), 체계개발에 8년(1997~2006), F/A-50 경공격기 개조개발에 4년이 더 걸렸다. KF-X는 18개월의 탐색개발을 거쳤고, 2025년 ‘Block I’의 실전 배치까지 10년의 기간을 잡고 있다. T-50은 고등훈련기로 안정성과 기동성에 중점을 둔 기체지만, KF-X는 본격적인 4.5세대 전투기이다. 항전장비와 무장통합 등의 난관을 거쳐야 하므로 개발 사업 지연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개발비용도 늘어갈 것이기에 이를 대비한 대책과 대안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셋째, 사업지연에 따른 공군전력 공백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KF-X 사업이 최초 계획보다 이미 10년 이상 지체됐다. 공군의 전투기 보유 적정 대수 부족 등 전력 공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군 당국은 지금부터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 퇴역 예정인 전투기들의 수명연장, 국외에서 전투기 리스, 중고 전투기의 해외도입 또는 F/A-50 경공격기 추가 양산 배치 등 해결책은 얼마든지 있다. 당사자인 공군은 예산, 효용성 및 작전계획 등을 고려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KF-X에 대한 ‘R&D 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 지난 11월 초 국내 4위 제약사인 한미약품이 다국적 기업 사노피에 4조8000억원 규모, 미국의 얀센에 1조원 이상의 신약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2000년대 들어 한미약품은 9000억원에 달하는 공격적인 R&D 투자를 해왔는데 그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KF-X 사업도 국가적인 R&D 사업이다. 우리는 고등훈련기인 T-50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KF-X는 예술 경지의 기술(State of the Art Technology)을 바탕으로 하는 첨단 국산 전투기이다. 그만큼 어렵다. 한미약품 사례와 같이 KF-X 사업도 “연구개발(R&D) 투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과 의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KF-X 사업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KF-X 사업은 통일한국의 전방위 자주국방의 핵심전력으로 공군이 필요로 하는 전투기를 연구·개발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런 사업이 정치권의 정략적 이해관계나 단순한 ‘경제성’,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전문가의 엉성한 식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F-16 전투기가 40여 년 동안 진화해 왔듯이 시제기부터 완벽한 전투기는 항공 역사상 없었다.

탐색개발 결과 탄생한 KF-X의 기본 형상인 C103은 본 개발 과정에서 C104·105·106 형상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시제기 출고 후 시험평가 및 개량 사업을 통해 ‘Block I’이 완성되고 이어 ‘Block II’를 거쳐 F-35 성능을 능가하는 ‘Block III’가 우리 영공을 날 것이다.

미국 정부가 E/L 승인을 거부했다고 사업 포기론까지 등장하는 것은 조선, 자동차, 전자 분야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전면 재검토 운운하는 것도 지난 13년 동안 KF-X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을 무용지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는 예산과 기간만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KF-X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항공산업이 미래 먹거리의 핵심 산업 분야가 되도록 모든 전문 인력이 합심해야 한다. 최근 중국과 일본은 자국(自國) 기술로 중형 여객기를 세계에 선보였다. 전투기 개발 능력을 토대로 민항기까지 손을 대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보라매는 당장 날아야 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더 이상 ‘한강의 기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