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龍在의 맛있는 상식_02
세계의 여름 음식
바비큐(미국식 이열치열 요리)에서 모히토(헤밍웨이의 칵테일)까지
⊙ 이탈리아식 생선회 카르파치오, 라틴아메리카식 물회 세비체
⊙ 맵고 화끈한 음식엔 독일 맥주 에르딩거나 파울라너가 최고
이용재
⊙ 한양대 건축과 졸업. 미국 조지아 공대 건축학 석사.
⊙ tvs디자인(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근무-두바이 포함 해외 프로젝트 담당.
⊙ 저서: 《일상을 지나가다》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번역).
한여름, 이열치열(以熱治熱)의 계절이다. 시원한 냉면도 좋지만 삼계탕과 같이 뜨거운 음식 생각 또한 간절해진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더위와의 싸움에서 정면대결을 선호한다. 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에서 아주 매운 고추가 든 음식을 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더운 음식을 먹고 한바탕 땀을 흘리면 체온이 낮아지지만, 그보다 정면대결을 통한 정서의 시원함을 추구하는 것이 이열치열의 핵심이다. 결코 더위에 꺾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음식을 통해 발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열치열이 만국 공통의 음식 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역시 더위를 식히는 쪽으로 여름 음식이 발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식 以熱治熱, 그릴링과 바비큐
이열치열식(式) 음식 문화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의 그릴링(Griling)이나 바비큐(Barbecue)이다. 뜨거운 불로 조리하지만 여름에 이 음식들을 더 즐긴다. 조리 과정 자체가 야외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 조리 방법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대부분 그릴링을 바비큐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릴링과 바비큐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그릴링은 직화(直火)를 이용한 조리 방법으로, 우리 식으로 치자면 ‘굽기’다. 연탄이나 가스불 위에 재료를 올려놓고 복사열로 익힌다. 온도도 1000℃를 쉽게 넘기며 당연히 조리 시간도 짧다. 고기만 놓고 본다면 스테이크와 같은, 정육 부위를 조리할 때 쓰는 방법이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의 음식 문화에서 바비큐는 거의 유일한 고유의 조리법이다. 그릴링이 복사열을 이용해 조리하는 것과 달리 바비큐는 대류열(對流熱)로 재료를 익힌다. 공간 전체를 덥힌다는 측면에서 오븐에 조리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조리 온도가 비등점인 100℃ 전후로 매우 낮다는 점이 다르다. 온도가 낮은 만큼 조리 시간도 대여섯 시간에서 하루에 이르기까지 길다.
바비큐 부위는 어깻살(돼지), 양지머리(소)와 같이 질기고 기름기가 적어 정육용으로는 적당치 않은 부위를 주로 쓴다. 낮은 온도에서 익히는 만큼 조리 시간도 길다. 스테이크는 미디엄 정도로 덜 익혀 먹지만, 바비큐는 예외 없이 ‘웰던’이다.
그릴링 요리는 더운 날씨에 맥주를 마셔가며 집 뒷마당에서 즐기는 음식인 반면 바비큐 요리는 전문 식당에서 먹는다. 가정식으로 소량을 조리할 경우 그 맛을 내기 힘든 탓이다.
제대로 된 바비큐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전문 식당의 ‘핏(fit·구덩이)’이라고 부르는 대형 조리 공간이 필요하다. 나무로 불을 때 고기에 배인 훈연향이 바비큐의 매력으로, 히코리(hickory)나 메스키트(Mesquite) 나무를 주로 쓴다.
바비큐 문화는 미국 캐롤라이나주(州)부터 텍사스주에 이르는 동남부에서 중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돼 있다. 이 지방에서는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기점으로 다양한 바비큐 경연대회가 열린다. 프로페셔널 바비큐 조리사들이 차에 이동식 핏을 달아 끌고 다니며 자웅(雌雄)을 겨룬다.
유럽의 여름 수프, 가스파초와 비시슈와즈
수프는 보통 전채요리로 따뜻하게 먹는 국물 음식이지만 예외적으로 차갑게 먹는 것들도 있다. 당연히 여름에 더 즐겨 찾게 된다. 스페인 여름 별미인 가스파초 수프. 새우를 곁들였다.
가스파초(Gazpacho)는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비롯되어, 에스파냐 전역은 물론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과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즐겨 먹는 찬 수프다. 조리도 비교적 간단하다. 주재료인 토마토를 비롯해 오이나 양파, 마늘을 소금에 절여 그 맛을 충분히 끌어낸 뒤 갈아서 만든다. 서양의 여름 음식 개념에 충실하게 불에 익히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토마토의 시고 단 맛과 나머지 야채의 신선함이 차갑게 먹었을 때 극대화되어, 더위에 잃은 입맛을 돋워준다.
비시슈와즈(Vichyssoise)는 유럽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 사이에서 자조적인 농담거리로도 종종 등장하는 수프다. “이봐 웨이터, 왜 수프를 차갑게 내왔나?”라고 따졌더니 “원래 그렇게 먹는 것”이라는 대답에 머쓱해졌다는 농담이다.
감자가 주재료인 비시슈와즈는 가스파초와 달리 끓인 후 식힌다. 감자에 전분이 많으니만큼 식혔을 때 너무 걸쭉해서 무겁지 않게 조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감자 맛의 무거움을 덜어주기 위해 향신채인 대파나 양파의 향긋함을 더해준다.
지극히 프랑스적인 이름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농담의 맥락과 달리, 이 수프의 기원에 대한 설(說)은 여러 갈래다. 그 가운데 미국에서 프랑스인 셰프에 의해 지금처럼 차게 먹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고향인 ‘비시(Vichy)’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서양 음식에서는 드문, 날고기나 생선에 대한 선호 또한 계절적인 특성에 따라 불이나 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양의 대표적인 날음식은 카르파치오(Carpaccio)와 세비체(Ceviche)이다.
카르파치오는 이탈리아 음식이다. 원래는 기름기 적은 소 또는 송아지 고기를 얇게 저며 올리브기름, 바닷소금 등의 간단한 양념과 장식 야채 약간을 곁들여 내놓는 전채였다. 그 색감이 베네치아의 화가 비토레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의 그림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날음식은 카르파치오와 세비체, 샐러드론 카프레제
이렇게 고기가 주재료였지만 요즘은 확대 해석되어, 같은 방식으로 내놓는 생선 또한 카르파치오라 부른다. 일본 생선 문화의 유입으로 방어(일본식으로 ‘하마치’라 부른다) 등도 많이 쓰인다. 비슷한 음식으로 ‘크루도(Crudo)’가 있는데 이는 ‘날것’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다. 우리의 회처럼 날것 그대로를 먹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세비체는 라틴아메리카의 날음식이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음식이 아니다. 레몬 또는 라임의 과즙, 즉 산에 재워 단백질인 생선살을 익히기 때문이다. 마트나 백화점 식품부에서 포장된 회를 샀는데 레몬조각이 닿은 생선살이 불투명하게 변한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비체의 조리 원리로, 산에 의한 단백질의 변성이다. 식감은 변하지만 열로 조리했을 때에 비해 맛은 변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과즙에 양파나 고추 등을 섞어 재운 상태에서 생기는 국물과 야채를 함께 버무려 먹는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물회와도 비슷하다. 하와이의 폴리네시아 원주민 음식인 ‘포케(Poke)’ 등도 비슷한 음식이다.
샐러드는 계절 구분없이 먹는 서양음식이지만, 제철 야채가 풍부하므로 특히 여름에 제맛이다. 야채와 드레싱의 조합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클래식한 샐러드 가운데는 카프레제(Caprese)가 단연 여름의 대표주자다.
이탈리아 카프리 지방의 스타일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기는 했지만 그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1950년대, 이집트의 왕 파루크 1세에게 대접한 음식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리법도 실로 간단해서, 생 모차렐라 치즈와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보기 좋게 담은 뒤 올리브 기름과 굵은 바닷소금, 후추를 입맛 따라 둘러주고 허브인 바질을 올리면 된다. 토마토, 치즈, 바질을 함께 먹어야 그 맛과 식감의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조화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만들기 간단하면서도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등의 달지 않은 여름 화이트 와인과 특히 더 잘 어울린다. 파티나 가족 모임의 분위기를 돋우는 전채로 안성맞춤이다. 모든 재료를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데, 특히 요즘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대저(일명 ‘짭짤이’) 토마토가 단맛, 짠맛, 신맛을 조화롭게 갖추고 있어 제격이다.
시원한 중국냉면과 건두부 냉채
중국에는 없는 중국냉면은, 한국에선 우리 고유의 냉면에 밀려 상대적으로 유명세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여름철 한 끼니 시원하게 때우기에는 아쉬움이 없다. 이제는 꽤 많은 중국집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데, 관건은 일단 굵은 밀가루 면의 쫄깃함이다. 국물이 차갑기 때문에 쫄깃함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장면이나 짬뽕 같은 뜨거운 면류보다는 살짝 부드러워야 한다.
명동 우체국 옆 대사관 골목의 화교 중국집들은 그 명성만큼 훌륭한 음식을 내지 않지만, 개화(02-776-0508)의 냉면은 여름 별미로 손색이 없다. 닭으로 우려낸 무겁지 않은 육수에 해파리, 오향장육, 가죽나물 등의 고명이 다채로운 맛과 식감을 선사하는데, 그 모두를 의문의 재료 땅콩버터가 신기하리만치 한데 잘 아우른다. 찬 국물에 섞는 땅콩버터의 효과를 믿지 못하겠다면 한번쯤 먹어볼 만하다. 1인분에 8000원으로 다른 메뉴보다 비싸지만 가치는 있다. 단, 고명 가운데 생마늘은 적당히 걷어낼 것을 권한다.
자장면을 팔지 않는 ‘진짜 중국집’도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곳에는 탕수육 대신 궈바오러우(鍋包肉)가 있고 대부분 양꼬치를 판다. 요리보다는 술집의 개념으로 안줏거리가 될 만한 요리를 파는데, 그 가운데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름에 잘 어울리는 일종의 냉채로 건두부 무침이 있다. 건두부는 이름 그대로 두부를 눌러 말린 것으로, 특히 돼지고기를 얇게 채 썰어 춘장에 볶아 야채를 곁들여 내는 경장육사(京醬肉絲)를 싸 먹는 단짝이다.
건두부는 두부 특유의 고소한 맛과 말렸을 때 얻을 수 있는 꼬들꼬들함이 매력적이다. 건두부는 고춧가루와 식초 양념으로 매콤새콤하게 무쳤을 때 그 맛이 잘 살아난다. 여기에 오이의 아삭함을 더하면 칭다오로 대표되는 중국의 맥주와 찰떡궁합이다.
건두부 요리는 동북식 중국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건대입구역 부근 차이나타운에서 양꼬치와 가지튀김 요리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매화반점(02-498-1939)에서 ‘고향냉채’라는 이름으로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독특하게 양장피를 섞는데, 그 흐물거리는 식감이 두부의 꼬들거림을 만끽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단점이 있다.
애주가들을 유혹하는 여름 술
계절도 계절이지만, 음식과의 궁합 차원에서 주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와인으로, 포르투갈의 어린 와인 ‘비뇨 베르데(Vinho Verde)’를 추천하고 싶다. 비뇨 베르데는 그 어린 맛과 향, 또는 살짝 감도는 연두색 때문에 ‘녹색 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가 쿠바에 체류할 당시 즐겨 마신 칵테일 모히토.
도수가 낮고 탄산도 살짝 머금고 있으며, 신맛이 두드러지고 복숭아 등의 과일향도 지니고 있어 여름철 와인으로 단연 으뜸이다. 샤르도네와 같이 굵은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취향 탓에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흠이다. 기름기가 많지 않은 어패류 음식이라면 모두 잘 어울린다.
진이나 보드카 토닉도 좋지만, 여름의 칵테일이라면 단연 모히토(Mojito)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작가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무는 동안 즐겨 마셨던 것으로 알려진 이 칵테일은 그의 사망 50주기를 맞아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모히토는 박하와 라임에 설탕을 넣고 으깬 뒤 럼과 탄산수를 더해 만든다. 카리브해의 청량감이 가득한 칵테일이다. 홍대 주차장 골목의 바 팩토리(02-337-3133)에서 제대로 만든 모히토를 마실 수 있다.
여름이라면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더운 날씨에는 에일보다는 가볍고 상큼한 밀맥주 종류가 더 잘 어울린다. 벨기에의 호가든(Hoegaarden)이 대표적이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라이선스 생산되어 맛이 떨어진다.
흔히 ‘헤페바이젠’(Hefeweizen: 효모ㆍhefe와 밀ㆍweizen의 합성어로, 상면발효 후 효모를 걸러내지 않은 맥주)으로 불리는 독일 맥주 가운데 ‘에르딩거(Erdinger)’나 ‘파울라너(Paulaner)’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쉽게 접할 수 있다. 화끈하게 양념 된 우리 음식과 궁합도 잘맞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