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李龍在의 맛있는 상식_01

醉月 2012. 3. 19. 08:11

피자(PIZZA)

맛의 핵심은 토핑이 아니라 도우에 있다

⊙ 대부분 피자, 토핑 부각시켜 도우의 맛이나 식감 가려
⊙ 350~550℃의 화덕에 5분 구운 피자가 가장 맛있어
⊙ 모차렐라 치즈는 송아지 위에서 추출한 효소와 우유로 만들어

이용재
⊙ 한양대 건축과 졸업. 미국 조지아 공대 건축학 석사.
⊙ tvs디자인(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근무-두바이 포함 해외 프로젝트 담당.

 ⊙ 저서: 《일상을 지나가다》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번역).

 

  음식 세계에도 ‘오타쿠’가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예일대학 출신이며 전 루빅스 큐브 챔피언이기도 한 제프 바라사노(Jeff Varasano)는 피자 오타쿠다. 피자 애호가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오타쿠의 반열에 이르게 된 데는 나름 사연이 있다.
 
  피자로 유명한 브루클린 출신인 그는, 남부의 도시 애틀랜타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주 초기에는 의욕에 넘쳐 맛있다는 피자집을 찾아다니지만 곧 백전백패에 괴로워하고, 아예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조리법을 비롯한 자료를 모으는 한편, 이탈리아의 나폴리,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비롯한 미국 북동부 지역의 피자를 끊임없이 먹으며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다.
 
  6년 동안 계속된 실험의 결과는 2만2000단어라는, 실로 방대한 양의 문서로 정리되고 이는 곧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연구 결과를 더 큰 서버로 옮겨야 될 정도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결국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버리고 자신만의 피자 레스토랑을 차린다.
 
  그의 연구 대상은 ‘미국식 나폴리탄 피자’(Neapolitan-American Pizza)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피자는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온 이민자들을 통해 1900년대 초 맨해튼에 처음 선보인 피자다. 여러 형태의 피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그의 실험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피자에 대해 품고 있는 오해나, 피자의 문제점이 보인다.
 
  피자는 파스타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다. 재료의 오남용(誤濫用)이나 변형이 심한 서양음식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몸에 나쁜 음식이라는 오명도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춘다는 명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나쁜 음식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건 억울한 면이 있다. 제프 바라사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피자의 조건을 살펴보고, 그 누명도 벗겨보자.
 
 
  도우도 발효된 빵
 
예일대 출신의 루빅스 큐브 챔피언이었던 제프 바라사노(Jeff Varasano)는 피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피자 레스토랑을 차렸다.  제프 바라사노의 연구 결과는 어림잡아 A4용지로 70~80장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부분은 ‘도우’(Dough), 즉 피자의 바닥을 이루는 반죽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토핑’(Topping·도우 위에 올라가는 고명)에 밀려 천대받고 있지만 사실 도우는 피자의 핵심이고, 이는 밀을 탄수화물의 주공급원으로 삼는 서양 식문화에서 실로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그렇다면 대중화된 피자에서 도우보다 토핑이 더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피자의 도우 또한 발효과정을 거치는 빵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빵의 완성 과정은 우리 음식 문화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는 김치나 장류 같은 숙성 발효 음식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미생물이 관여하는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그 맛이 발달되기 때문이다.
 
  피자 도우를 이루는 재료는 실로 간단하다. 밀가루, 소금, 물에 맛과 식감의 변화를 이끄는 효모가 전부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하면 ‘글루텐’(Gluten)이라는 단백질이 형성되어 반죽에 탄성을 불어넣고, 이는 발효를 통해 생기는 공기방울을 머금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우리가 좋아하는 쫄깃한 식감을 낸다. 피자 월드컵과 같은, 맛보다 재미 위주의 국제 대회에서 도우 늘이기 종목이 열릴 수 있는 것도 글루텐을 통한 탄성 때문이다.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즐겨 먹은 마르게리타 피자.  발효 효과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복잡한 생화학적 과정을 통해 특유의 풍미를 불어넣는 것으로 그 임무를 완수한다. 발효를 제대로 거친 빵에서는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으며, 구수하고 담백한 풍미가 가득하다. 제대로 발효된 빵은 소화가 잘된다는 주장 또한 있다.
 
  김치나 장류만큼 섬세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빵의 발효 또한 생명체가 관여하는 민감한 과정이다. 인내가 깃든 시간은 물론, 온도나 습도와 같은 외부 조건에 맞춘 조정과정이 필요하다. 그날그날의 여건에 따라 반죽의 상태를 관찰하고 재료의 배합비나 발효 여건 또는 시간을 미세조정해야만 언제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장인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며,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는 대량생산 과정에서는 좇기 어려운 목표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자가 토핑을 부각시켜 도우의 맛이나 식감을 가려버린다.
 
 
  고온에서 단시간 구워야
 
그라노의 마르게리타 피자.  피자 또한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음식이니 재료가 지닌 본래의 맛을 살리는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친다. 잘 발효되고 숙성된 도우가 맛의 바탕이며 핵심이다. 거기에 최소한의 소스와 토핑으로 악센트를 주는 것이다.
 
  도우가 맛이 없다는 건, 반찬을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렸지만 밥이 맛이 없는 경우와 같다. 불고기와 된장찌개가 아무리 맛있어도 같이 먹는 밥이 맛이 없다면? 답은 뻔하다. 또한 조리의 이치를 따져 보아도 지나친 토핑은 맛있는 피자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토핑이 많을수록 수분도 많이 빠져나와 피자를 질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피자는 요즘 우리 외식 산업계에 만연하는 ‘질보다 양’ 추구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보기에만 좋지, 본질인 맛은 없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조리에 대해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피자는 오븐에서 굽는다. 밀폐된 공간에 재료를 넣고, 건열(乾熱)로 재료의 수분을 없앤다. 조림과 같은 몇몇 조리법을 제외하고, 서양 조리의 원칙은 ‘센 불, 짧은 시간’이다. 그래야 적정량의 수분만 없애고 나머지는 재료에 남겨두어 본래의 맛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피자 또한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높은 온도에서 짧은 시간 동안 구워야 한다. 그렇다면 맛있는 피자를 위한 적정 온도는 몇 도일까?
 
  제프 바라사노도 그렇지만, 맛있는 피자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또 있다. 미국의 여성지 《보그》(Vogue)의 음식 평론가로 20년 가까이 활약한 전직 변호사, 제프리 스타인가튼(Jeffery Steingarten)이다. 장작을 때는 벽돌 화덕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해서 얻은 온도의 범위는 350~550℃ 사이, 제프 바라사노의 실험 결과와 일치한다. 이는 최고 250℃까지만 올라가는 가정용 오븐을 ‘정상적으로’ 돌려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온도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오븐의 안전장치를 훼손시켜,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온도를 올리는 모험까지 강행한다. 이렇게 해서 올린 높은 온도에서 피자는 1분20초~5분, 길어야 7분대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완성된다.
 
  정통 피자를 표방하며 화덕을 갖추고 있는 음식점에서 피자를 먹게 된다면 조리 시간을 확인해 보는 것도 피자에 곁들인 작은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이렇게 불지옥에 가까운 온도에서 버틴 피자는 바닥과 가장자리에 그을린 자국을 훈장처럼 얻게 된다.
 
[이용재 추천]
 
  제대로 된 피자를 즐기고 싶다면 이곳에
 
살바토레 쿠오모 더 키친의 칼조네 피자.  도우에 비중을 두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맛보려면 신사동의 그라노(02-540-1330)와 살바토레 쿠오모 더 키친(02-3447-0071)이 괜찮은 선택이다. 그라노에서는 시간을 재어 보았다. 2분30초 만에 피자를 꺼내 생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뒤 다시 오븐에 넣어 1분30초, 반쯤 녹은 치즈는 뜨거운 도우와 함께 묘한 느낌의 온도 대비를 선사했다.
 
  ‘모든 재료는 오븐에서 불을 처음 만나야 한다’라는 제프 바라사노의 주장처럼, 토마토 소스도 미리 끓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도우는 약 1cm 정도의 두께로, 겉과 속의 부드럽고 바삭한 대조가 좋고 발효 및 고온 조리에서 얻은 구수한 밀의 풍미가 두드러진다.
 
  살바토레 쿠오모 더 키친의 피자는 도우가 훨씬 더 얇은 반면, 쫄깃함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거기에 완전히 녹은 치즈를 더하면 살짝 질척거리는 느낌도 들지만, 그 나름 자연스럽다. 피자를 넣는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5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군데 모두 열린 주방에 오븐을 부각시키는 공간인데, 이탈리아어를 우리말 억양으로 크게 외치는 살바토레 쿠오모의 서비스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두 군데 모두 1인당 최소 예산 2만원대.
 
  프랜차이즈 또는 패스트푸드화된 미국식 피자는 파파존스(1577-8080)가 좋은 선택이다. 비교적 후발주자인 셈이지만, 패스트푸드의 울타리 안에서 성실한 피자를 낸다. 도우도 겉은 바삭하며 풍미가 괜찮았지만, 온도와 시간의 비례 관계 때문인지 너무 수분이 빠져 뻣뻣했다. 미국에서도 탄탄한 입지로 사무실 야근 저녁의 붙박이 메뉴였는데, 그 맛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1인당 최소 예산 1만2000원대로, 레스토랑 피자에 비해 딱히 저렴한 선택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모차렐라 치즈
 
  미국식 나폴리탄 피자는 ‘마르게리타 피자’(Margherita Pizza)에서 비롯되었다. 이름의 유래에 여러 설이 있지만, 마르게리타 여왕의 이름을 땄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1889년 여왕의 나폴리 방문 때 접대음식으로 처음 선을 보였는데 이탈리아의 국기 색을 딴 재료, 즉 토마토(빨간색), 모차렐라 치즈(흰색), 바질(허브의 일종·녹색)을 얹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피자는 세계 각국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그 대부분은 토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우를 기본이며 핵심으로 여기고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니 너무 많은 양을 올리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피자의 변신에 기본적으로 제한은 없다. 그러나 이제 변신의 성공 여부는 물론, 음식 자체의 안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만 한다. 현대 과학의 발달 탓이다.
 
  치즈 또한 피자에서 빠져서는 안 될 재료다. 대표주자는 녹으면 쭉쭉 늘어나는 ‘모차렐라’(Mozzarella)다. 송아지의 위에서 추출한 효소(Rennet)를 우유에 더하면 주요 단백질인 카세인이 엉겨 응유(凝乳·Curd)가 되는데, 이를 뜨거운 물에 담가 덩어리로 합친 뒤 늘여 자르면 모차렐라 치즈가 된다. 그 이름 또한 ‘자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mozzare’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모차렐라 치즈의 대부분은 우유로 만든 것인데, 물소 젖으로 만든 것이 원형이며 고급이다. 막 만든 생(生)치즈는 순두부와 같은 질감을 지니고 물기가 많기 때문에 초고온에서 조리가 가능한 경우에만 쓰인다. 또한 유통기한도 짧아, 대중적인 피자에는 물기를 빼서 딱딱하게 만든 것을 쓴다.
 
  여기에서 현대 과학의 발달에 기댄 음식의 안전 문제가 불거진다. 열을 가했을 때 녹아서 늘어지면 쉽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조 치즈가 끼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모조 치즈의 문제는 최근 우리나라를 한번 휩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소규모 피자 배달 업체에서 쓰는 치즈의 대부분이 사실은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모조 치즈는 킬로그램당 6000~7000원대인 데 반해 진짜 치즈는 1만5000원대다. 그 차이만 놓고 보아도 저렴한 피자를 의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가짜 치즈 등장
 
파파존스의 피자.  그렇다면, 모조 치즈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치즈의 입지가 굳건하고 채식 문화가 자리 잡은 서양에서는 드러내놓고 모조품임을 밝히는 치즈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두부 등을 이용해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모조 치즈 조리법 또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조 치즈의 주재료가 식물성 기름이라는 점이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모조 치즈의 주재료인 팜유는 부분적으로 수소화(水素化·Hydrogenation)되어 동물성 지방과 유사한 굳기를 지닌 식물성 지방이다. 최근 우리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트랜스지방, 그리고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를 통한 심장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유와 응유효소로만 만들 수 있는 것을 흉내 내기 위해 산도조절제나 증점제, 합성착향료 등의 화학적 첨가제를 더한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자연스러운 먹을거리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완성을 향한 사람의 집념과 그 결과물로 음식의 의미, 또는 되어야 할 바에 대해 알아보았다. 원래 우리 문화가 아니었던 것을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현재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모습, 즉 원형의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 둘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변화의 단계를 하나씩 짚어보면, 원형의 변이와 그로 인해 비롯된 오해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늘날 피자가 짊어지고 있는 굴레를 벗기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실로 간단하다. 많은 음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건강에 관한 논쟁은 사실 음식 그 자체보다 임의로 가한 변화가 원인이며, 그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절제와 균형은 먹는 각자의 선택과 책임이지, 먹히는 음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