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국방개혁을 고발한다
[졸속 국방개혁을 고발한다 <上> 육군]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卓上개혁 307 vs 2020 전쟁
2020에 따라 해병대 병력을 줄여가던 국방부는 연평도 포격전을 치른 후 오히려 증강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2020이 주먹구구식으로 해병대 감군을 결정했다는 증거다. 통일기 한반도의 안보를 뒤흔들 수 있는 국방개혁 2020의 오류와 국방개혁을 둘러싼 우리 군의 갈등을 육·해·공군별로 3회에 걸쳐 정밀 분석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은 국방개혁으로 내전(內戰)에 준하는 내홍을 겪었다. 코앞에 다가온 제18대 대통령선거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 내전은 다시 확전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거대 군(軍)인 육군이 한편이고, 소군(小軍)인 해군과 공군이 한편이 돼 대립하는 구도다. 양쪽이 들고 있는 무기에는 똑같이 ‘국방개혁’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육군이 추진하는 국방개혁에는 ‘30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고, 해·공군의 국방개혁에는 ‘2020’이라는 번호가 찍혀 있다. 국방개혁 307(이하 307)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겪은 2010년 말부터 적극 검토되었다. 307은 서열 1번인 합참의장이 군령-군정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라, “통합군을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법제화 성공
육군 대장 출신인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면에 나서서 307 입법화를 추진했지만, 해·공군 측이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307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북한의 국지도발 위협을 억제하려면 307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공군 측은 307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빙자해 육군 중심의 비민주적인 통합군을 창설하려는 계획이라고 비판한다. 육군에서도 일부는 “307의 군 상부구조 개편안은 통합군을 만들자는 것이라 문제가 있다”며 307 입법화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국방개혁 2020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다. 2020의 핵심은 당시 54만7000명이던 육군을 17만7000명 줄여 2020년에는 37만 명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4개월이던 육군 병사의 복무기간을 2014년 18개월로 줄이는 등 의무병의 복무기간 단축을 내걸었다. 이 계획은 많은 지지를 끌어냈다.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보수세력은 반대했지만, 이들을 대변하는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복무기간 단축에 반대할 경우 예상되는 감표(減票)를 의식해, 2006년 12월 조용히 2020을 법제화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국방개혁법)’ 통과에 협조했다.
이로써 오래전부터 통합군을 외치며 해·공군을 압박하던 육군이 오히려 ‘개혁의 칼날’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육군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일어나자 육군이 절대 다수인 합참이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갖는 307을 강력히 추진해 해·공군과 날 선 대립을 벌였다. 해·공군은 2020으로 육군의 숨통을 조이고, 육군은 307로 해·공군의 목을 졸라, 종국에는 양쪽 모두 쓰러지는,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동귀어진(同歸於盡)’ 형세를 보이게 된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는데 한국군은 심각한 적전(敵前) 분열 상태에 놓인 것이다. 지금부터 왜 국방개혁이 한국군을 분열시키게 됐는지를 정밀 검증한다. 이 취재를 위해 기자는 육·해·공군의 전현직 장성 10여 명을 만났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들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 해병대 감군-증강 혼선
2020은 2005년 기준 68만1000명인 한국군을 26.6%(18만1000명) 줄여 2020년 50만 명으로 한다는 것이 요체다. 한반도의 냉전은 끝나지 않았는데 4분 1에 달하는 병력을 줄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재검토해 변경해야 한다. 2020은 해·공군 병력에 전혀 손대지 않고 지상군만 육군에서 17만7000명, 해병대에서 4000명을 축소하기로 했다.
당시 육군 총병력은 54만7000명이었으니 무려 32.3%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해병대는 2만7000명이었으니 25.9%를 감축하는 것이 된다. 지금부터 주목할 것은 해병대 감군 4000명의 변화 추세다.
북한과의 충돌이 잦은 서해 5도에서 가장 중요한 섬은 백령도와 연평도다. 이 때문에 해병대는 백령도에 3000명으로 구성된 6여단을, 연평도에 1000명으로 편성된 연평부대(마이너스 연대)를 뒀는데, 이것이 서해 5도에 배치된 해병대 전력의 대부분이다.
2020은 ‘놀랍게도’ 서해 5도에 전개된 해병대를 300~400명으로 줄여, 4000명 감군을 실현하기로 했다. 대신 서해 5도에서 발생하는 위기에는 해·공군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2020이 서해 5도에 배치된 해병대 병력을 1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군 정보에 밝다고 하는 기자도 간과했다.
그러는 사이 복무기간 단축은 대단한 힘을 발휘해 2009년의 한국군은 2005년보다 2만6000여 명이 줄어 있었다. 2만6000명은 2020년까지 줄이기로 한 18만1000여 명의 14.3%에 해당하는 큰 수치였다. 이러한 감군이 부담스러웠기에 이명박 정권의 국방부는 2009년 6월 ‘2020년에 달성할 총 병력은 원안보다 1만7000명이 늘어난 51만7000명으로 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2020 1차 조정안’을 발표했다(이 조정안의 정식 명칭은 ‘국방개혁 기본계획 2009~2020’이다).
국방부는 내부 구성원 중 육군이 절대 다수라 ‘육방부’로 불린다. 국방부는 ‘육방부’답게 덜 줄이기로 한 1만7000명을 전부 육군에 할당했다. 서해 5도의 병력을 줄이고 있는 해병대의 고통은 외면한 것이다. 그런 시점에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졌다. 합참 주도로 한국군 최대 훈련인‘호국훈련’을 하고 있던 때였다. 이 때문에 한민구 합참의장 이하 전 지휘관은 정위치 상태에서 연평도 포격전을 보고받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바로 보고를 받았다.
연평도 포격전은 무려 1시간7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한국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부장관, 한민구 합참의장은 어떠한 결심도 하지 못했다. 한국군은 북한이 서해 5도를 향해 도발하면 공군을 동원해 대응한다는 작전계획(작계)를 갖고 있었으나 실행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는 사이 대령인 연평부대장만 홀로 결심해 대응 사격을 했다. 한민구 합참의장 등은 현장 지휘관에 일임했다는 논리로 뒤로 숨어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 때 맥 못춘 軍
연평도 포격전이 끝난 후 이것이 큰 문제가 됐다. 세계 10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대한민국 군 최고 수뇌부가 북한군의 포격 도발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다니…. 게다가 불과 8개월 전에 천안함 피침 사건을 당했는데 말이다. 정부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경질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리고 서해 5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해병대 감군을 취소하겠다는 의견을 ‘선제적으로’ 흘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2명의 전우가 전사해 울분을 토하고 있던 해병대를 달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겠다고 했을 때 해병대사령부는 백령-연평도에 장사정 타격 수단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국방부는 “위기상황이 벌어지면 공군으로 대응해줄 테니 염려 말라”는 말로 묵살했었다. 때문에 재빨리 한국판 방사포인 ‘구룡’ 다련장로켓과 K-9 자주포 등 장사정 무기와 운용할 포병을 증강했다.
이어 해병대사령부를 중심으로 서해 5도 방위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를 만들었다. 서해 5도의 포병 증강과 서방사 창설 등으로 해병대병력은 오히려 1000명 늘어났다. 2020 원안에 따른 4000명 감군을 포함하면 5000명이 늘어난 셈이 되었다. 지난 8월 29일 국방부는 ‘2020 제2차 조정안’이라고 할‘국방개혁 기본계획(2012~ 2030)’을 발표하면서 1000명이 늘어난 해병대 증강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해병대는 2020 체제에서 유일하게 병력이 증가하는 군이 되었다.
이는 2020 원안에서 50만 명으로 감군한다는 결정이 확실한 안보 위협 분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윤광웅 장관이 이끈 국방부는 어떠한 판단으로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기로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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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사는 옥상옥
흥미롭게도 안보 전문가들은 연평포 포격전 후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 증강에 반대했다. 이유로는 ‘옥상옥(屋上屋)’의 문제를 들었다.
1개 사단은 보통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로 편성된다. 보병연대는 2400명으로 구성되나 포병연대는 보병연대의 70%인 1700명으로 편성된다. 그런데도 포병연대는 사단 전체 화력의 85%를 담당한다. 병력은 작아도 화력만큼은 화끈한 것이 포병이다. 따라서 포병을 증강하면 보병은 큰 폭으로 줄여도 된다.
해병대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서해 5도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라고 했을 때 강력한 장사정 무기(포병화력)의 증강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의 진실은, 인민군 4군단의 포병여단이 방사포를 동원해 공격했을 때 마이너스 연대급인 연평부대에서는 K-9 자주포 6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중대에 해당)로 대응한 것이다. ‘여단 대 중대’의 대결로, 비교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따라서 K-9과 ‘구룡’ 등을 증강하면 4군단 포병여단에 밀릴 이유가 없다. 여기에 정밀한 적진 관측으로 적의 포격 조짐을 찾아내는 UAV(무인 정찰기)와 사격을 가한 적 포대의 위치를 잡아주는 대포병(對砲兵)레이더를 추가 배치한다면 서해 5도의 방어는 확실해진다. 포병에는 항공기를 잡는 방공(防空)포병도 포함된다. 한국은 자주(自走)대공미사일인 ‘천마’와 자주대공포인 ‘비호’를 갖고 있으니, 이를 배치한다면 북한 전폭기의 폭격에도 대응할 수 있다.
상륙을 시도하는 북한 함정은 ‘움직이는 화력’인 전차로 잡는 게 좋다. 전차의 포는 직선으로 포탄을 날리기 때문에 장갑이 두꺼운 적 전차도 일거에 무력화한다. 접근해오는 함정은 적 전차보다 큰 표적이므로 전차포로 대응하면 한 방에 수장시킬 수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전차를 많이 배치하면 북한 함정은 상륙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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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와 합참은 연평도 포격전이 있은 후 이러한 화력을 집중 배치했다. 그렇다면 서해 5도에 배치해놓은 해병대 보병은 대폭 축소해도 된다. 보병은 간첩 침투를 막는 경계작전과 적이 상륙한 후 대응 전투를 할 때 주로 필요하다. 좁은 섬에 보병이 밀집해 있으면 적이 선제 사격과 폭격을 할 때 희생자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전략가들은 서방사도 불필요한 조직으로 본다. 화력을 증강시키고 유사시 공군력 투사만 보장한다면 서해 5도는 기존 체제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포병을 증강했다면 서방사야말로 국방개혁으로 없애야 할 군살 조직”이라고 말한다.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 감축도 주먹구구였지만 증강도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한다. 과학적으로 위협을 분석하고 ‘비용 대 효과’를 따져본 병력의 증감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우습게 결정된 ‘50만’ 감군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노무현 정부가 무엇을 계기로, 어떤 근거로 50만으로 감군할 결정을 했느냐는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2020을 결정하기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이 감군을 시도했다. 럼스펠드의 국방개혁은 가혹했다. 유럽 냉전 종식 후 미국은 18개이던 육군 사단을 12개로 줄였는데, 럼스펠드는 10개를 만들라고 했다.
럼스펠드가 국방개혁을 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도 감군에 들어갔다. 미국은 전 세계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지만, NATO는 지역 위기에만 대응하니 한결 쉽게 감군할 수 있었다. 그 때인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프랑스의 여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야기한 후 ‘필’이 꽂혀 50만으로 감군할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2020은 과연 그렇게 시작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2020을 담당했던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이를 확인해주었다. 김 씨는 주간동아 2011년 12월 29일자에 기고한 기사에서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여성 국방부 장관인 미셸 알리오 마리를 만나 프랑스의 군 개혁에 관한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아 2020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 기사에서 ‘프랑스 여성 국방부 장관의 열정에 자극받은 노 대통령은 법과 제도에 의해 장기적으로 추진되는 국방개혁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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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감군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가 무너지던 1990년 프랑스군은 54만8000명이었다. 유럽 냉전이 끝난 1994년 프랑스는 군 병력을 50만2000명으로 약간 줄였다. 1999년부터 유럽에서는 안보 지형을 바꾸는 일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NATO의 적이었던 구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가 NATO에 가입한 것. 그러자 2000년 프랑스는 39만4000명으로 감군했다. 2004년에는 소련의 일원이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구(舊)공산권의 일곱 나라가 NATO에 가입했다.
이로써 유럽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NATO로 통일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징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제로 돌아섰다. 프랑스의 여성 국방부 장관은 이러한 변화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안보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의 한계를 지적한다. “노 대통령은 유럽의 감군을 개별 국가 단위가 아닌 ‘NATO 대 러시아’ 관계로 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만큼 유럽 국가들은 절대로 안보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유럽 냉전 종식 후 NATO를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하나로 줄어들었다. 현재 유럽에 있는 NATO 회원국의 총병력은 209만7000명인데 러시아는 101만 명이다. 유사시에는 미국과 캐나다도 참여하므로 NATO의 병력은 3대 1 이상으로 러시아를 앞선다. 이런 상태에서 유럽 국가들은 대규모로 감군하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는 23만4000명으로, 독일은 24만6000명, 영국은 19만8000명으로 군 병력을 줄였는데, 이는 그렇게 해도 안보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육군의 감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휴전선에 있는 육군 부대를 강력하게 공격해주면 좋겠다”는 뼈있는 말을 한다. 그래야만 연평도 포격전 후 해병대가 증강됐듯, 육군도 감군의 족쇄를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노무현 정부의 주먹구구식 감군과 증강을 빗댄 날카로운 비판이다.
◆ 육군 사단 수 감축 문제점
2020 원안은 육군의 병력뿐만 아니라 부대 수도 강력히 줄일 것을 요구했다. 육군의 제대(梯隊)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단인데, 2020 원안은 당시 47개이던 사단을 20개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분의 1이 넘는 135%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단 수 축소는 병력 축소 이상으로 논쟁 대상이 됐는데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사단의 종류부터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육군에는 세 종류의 사단이 있다. 정원의 85~90%를 현역으로 편성해 전방 작전을 하는 ‘상비사단’, 60~70%의 현역으로 구성돼 후방에서 각 도(道)방위를 담당하는 ‘향토사단’, 15~20%의 현역을 주축으로 한 ‘동원사단’이 그것이다. 유사시 동원령이 내리면 예비군이 입소하는데, 상비사단은 동원예비군, 향토사단은 일반예비군을 받아 편제를 완성한 뒤 자기 지역 작전에 들어간다. 동원사단은 동원예비군을 받아 완편한 후 전방으로 이동해 지역군단의 통제를 받으며 상비사단을 후원한다.
사단 수 유지에 겨우 성공한 육군
2005년 육군은 ‘22개 상비사단+11개 향토사단+14개 동원사단=도합 47개 사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개로 줄이라고 했으니 육군은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기세에 눌려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려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육군 장성들이 대거 포진한 국방부의 간부단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육군은 궁리 끝에 ‘먼저 14개 동원사단을 해체하고 이어 다른 사단을 줄인다’는 시차별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갑갑했던 육군의 숨통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조금 트이게 되었다. 2009년 6월 국방부는 2020 1차 조정안으로 육군 감군 규모를 1만7000명 덜어주면서, ‘2020년 상비사단과 향토사단은 합쳐서 20개, 동원사단은 4개로 해, 도합 24개로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새로 10개 사단을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없애기로 한 동원사단 4개를 살려낸 항목이다. 전시에는 10개 사단을 편성할 수 있으니 전시의 총 사단 수는 34개가 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마무리된 2010년 12월 이명박 정부와 가깝다는 평가를 들은 김상기 총장이 취임한 후 육군은 사단 수 축소에 본격 대응했다. 그 결과 올해 8월 발표된 2020 2차 조정안에서 육군은 병력을 덜 줄이는 카드는 받아내지 못했지만 ‘사단 수 유지’라는 예상외의 큰 선물을 받아냈다. 전시에 10개 사단을 추가 편성한다는 것은 그대로 둔 채, ‘평시에 22개 상비사단, 11개 향토사단, 4개 동원사단, 도합 37개 사단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2020 원안에는 사단을 20개로 한다고 돼 있었는데, 1차 조정안에서 전시편성 10개를 포함해 34개(상비·향토 20+동원 4+전시편성 10)로 바꾸고, 2차 조정안에서는 전시편성 10개를 포함해 47개(상비 22+향토 11+동원 4)로 변경시켰다. 전시에 편성되는 10개 사단은 동원사단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육군은 2005년과 같은 14개 동원사단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된다. 육군은 노무현 정부가 애써 추진한 사단 수 감축을 점진적인 증가(20개→24개→37개 사단)와 ‘전시 창설(10개 사단)’로 무력화한 것이다.(표 참조)
대신 육군은 2030년에 상비+향토+동원을 더한 사단 수를 28개로 줄인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2030년은 먼 훗날이니 육군이 28개 사단을 만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러한 육군의 노력은 대단한 ‘자군(自軍) 이기주의’로 보인다. 육군은 국방부를 장악하고 있기에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국방개혁을 변형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육군이 사단 수를 유지하려 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진정이 있다.
북한 안정화에 11개 사단 필요
육군이 사단 수를 2005년 이전과 똑 같이 유지하려는 첫째 이유는 북한 안정화작전 때문이다. 안정화 작전은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적진에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펼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무대로 군정(軍政)을 편 것처럼 한국군이 북한 지역에 들어가 치안 등을 확보하는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인민군 무장해제’다. 모든 인민군이, 북한에 들어간 한국군에 순순히 무기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일부는 무기를 들고 게릴라전인 ‘빨치산 투쟁’을 펼치게 된다. 북한 안정화는 일차적으로는 빨치산을 북한 주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빨치산을 조기에 소탕해야 달성된다. 이렇게 하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비롯한 많은 생필품을 제공해 그들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른바 선무(宣撫)공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선무공작을 하려면 북한 구석구석까지 뻗치는 행정조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 빨치산은 이라크에서처럼 도시게릴라전을 펼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산악에 은신해 투쟁할 가능성이 높다. 혼란에 빠진 북한에는 산골마을까지 뻗치는 행정조직이 있을 수 없으니, 진주한 우리 군이 대행해야 한다.
북한 안정화작전을 위해 필요한 병력이 얼마냐는 빨치산 투쟁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1도(道)에 1개 사단을 두되, 평양은 인구와 시설이 밀집한 중요한 곳이니 남북으로 나눠 2개 사단은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도는 9개(북한 강원도 포함)이니, 11개 사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2020 원안에 2020년 상비사단과 향토사단을 더한 수를 20개로 한다고 해놓았으니, 육군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20개 사단을 ‘상비 12+향토 8’로 구분한다면, 한국은 전투력이 강한 상비사단은 1개만 남기고 모두 북한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 남한 지역은 일반예비군이 많이 섞인 향토사단으로 지키는 것이다. 통일기의 한반도는 혼란할 텐데 남한 지역이 위험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빨치산들이 남한 지역으로 넘어와 준동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내전에 준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육군이 사단 수 감축에 강력히 반발한 첫째 이유다.
이 때문에 37개 사단을 유지하고 전시에 10개 사단을 편성한다는 2차 조정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50만으로의 감군을 명시한 국방개혁법의 독소 조항 때문에 병력 감소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은 힘과 지략을 갖고 있기에 병력은 장비 이상으로 중요한 전력이 된다. 특전사 중의 특전사인 707부대원이나 정보사의 HID 요원(북파공작원)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병사의 전투력과 은밀한 침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랜 세월 ‘100만 대군’은 강한 군대를 상징하는 말로 쓰여왔다. 아무리 장비가 발전해도 지상전에서는 많은 병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경영학(마케팅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근대 군사이론 중에 프레더릭 란체스터가 만든 ‘란체스터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 중의 하나는 ‘적과 내가 가진 무기의 성능이 비슷하다면 인원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란체스터는 이 이론을 심화시켜 ‘병력을 반으로 줄이려면 장비는 네 배로 증강해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병력을 3분의 1로 줄이면 장비는 아홉 배 증강시켜야 한다.
‘전쟁론’을 쓴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도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수의 우세 법칙(Law of Numbers)’을 만들어냈다. 2차 조정안은 사단 수 유지는 실현했으나 육군 감군은 막지 못했다. 여기서 상당수의 전문가는 “국방개혁법은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육군 의무병의 복무기간을 24개월로 복원해 더 이상의 육군 감군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럼스펠드 vs 신세키 논쟁
위기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감군이 안보와 국익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는 외국과 국내 사례를 통해 분석해볼 수 있다. 외국 사례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와 같은 시기 미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일본계 미국인 에릭 신세키 대장의 격돌을 꼽을 수 있다.
유럽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은 18개이던 육군 사단을 12개로 줄였다. 그런데도 럼스펠드 장관은 ‘앞으로는 북한·이란·이라크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 후원하는 테러전 같은 작은 전쟁만 있다’고 보고 대(對)테러전은 해·공군력과 경(輕)기동화된 육군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육군 사단을 10개로 줄이게 했다. 이에 대해 신세키 총장을 중심으로 한 육군은 “대테러전에 승리한 후 장악한 지역을 평정하는 안정화 작전을 펼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9·11테러 후 이라크전 개전이 임박한 2003년 2월 신세키 총장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후 종파 갈등이 심한 이라크를 안정화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럼스펠드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럼스펠드 장관과 울포위치 부장관은 “한참 틀린 이야기다”라고 비판하고, 신세키 총장을 조기 퇴진시켰다.
이라크전은 1차적으로는 미사일 발사, 2차적으로는 항공기 투사로 모든 표적을 날려 ‘적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작전은 하늘을 통해 펼쳐지기에 ‘A-데이’ 작전으로 명명됐다. A-데이 작전이 성공하면 지상군을 투입해 강력한 A-데이 공격으로 고립된 채로 살아남은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수도를 포함한 적지를 장악해 승리를 확인하는 ‘G-데이’ 작전을 구사한다. 3월 20일 A-데이 작전을 개시한 미국은 육군으로 하여금 작은 전투를 하게 하다, 5일 뒤 본격적으로 주공인 3사단 등을 진격시키는 G-데이 작전을 펼쳤다.
종전 선언 후 수렁에 빠진 미국
G-데이 작전도 대성공을 거둬 미군은 한 달도 안돼 이라크 전역을 장악했다. 5월 1일 신속한 승리에 고무된 부시 대통령은 주요 작전이 끝났다는 종전 선언을 했다. 미국이 수렁에 빠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미국에 반대하는 각 종파가 여러 마을을 무대로 게릴라전을 펼친 것이다. 이라크에 투입한 지상군은 해병대를 합쳐도 최대 17만여 명에 불과했다. 전투를 해온 부대들은 분대나 분대보다 작은 조(組) 단위로 쪼개 대응해야 했다.
잘게 쪼개진 미군은 숨어 있는 게릴라들이 쏜 총알과 자살폭탄 테러 앞에 맥없이 쓰러져갔다. 럼스펠드가 간과했던 안정화작전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이 위기를 동맹국 파병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국을 비롯한 36개국이 1만3000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했다. 2007년 견디지 못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10개인 사단 수는 그대로 둔 채, 3개 사단 규모가 넘는 5만 명의 장정을 더 뽑아 이라크 등에 보낸 것. 5만 명을 증강한 후 안정화 작전은 조금씩 성공을 거둬, 2011년 12월 15일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 이라크전이 끝났다는 공식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이 실질적인 전투는 1개월 10일 만에 끝내놓고도 안정화작전을 하는 데 8년 8개월을 보냈다는 것은 안정화작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하기 직전 신세키 전 총장의 선견지명을 인정해 그를 보훈처 장관에 임명했다.
이라크전에서 간신히 수렁을 헤쳐 나온 미국은 그 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안정화작전은 그 지역 군대에 맡긴다는 입장을 취했다. 북한을 무대로 한 안정화작전에 미 육군은 투입하지 않을 터이니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이 지상군을 파병해 해결하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육군 병력의 30%를 줄이는 초대형 감군에 들어갔다.
6·25는 막아냈어야 할 전쟁
부족한 병력이 빚은 안보 위기는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6·25전쟁은 10대 8의 싸움이었다. 북한 육군이 10개 사단, 한국 육군이 8개 사단이고, 병력 수도 얼추 10대 8의 비율이었을 때 이 전쟁이 일어났다. 지상전은 공자(攻者)가 방자(防者)보다 세 배 이상 전력이 강해야 이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군은 6·25 때 북한군 남침을 충분히 막아냈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군이 처절하게 패한 것은 한국이 북한의 침략 의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북한은 성공적인 기습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한국은, 미군이 참전함으로써 극복했다. 미군의 참전으로 남쪽의 병력이 많아졌을 때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반대로 중국군의 참전으로 북쪽 병력이 많아졌을 땐 1·4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 등 여러 나라 군대가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전쟁을 지시한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이 정전 의사를 내비친 후, 지루한 진지전을 거듭하다 정전(停戰)을 맞게 되었다.
6·25전쟁 때 막강한 전투력을 갖고 있던 미국 육군은 여러 차례 중국군의 대병력에 걸려 고전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2사단은 평북 운산에서 훗날 ‘인디언 태형(笞刑)’이란 별명을 얻은 중국군 포위전에 걸려, 사단이 궤멸하는 피해를 보았다. 장진호 이북으로 진격했던 미 해병대 1사단도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느라 큰 고생을 했다. 이는 첨단 전력도 대병력의 포위전에는 큰 힘을 쓰지 못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추진한 정전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한국군 60만 명을 현대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북한군 병력은 45만 명이었다. 이는 ‘적은 병력으로는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데서 나온 것이었다. 덕분에 정전 후 한국은 큰 폭으로 병력을 증강해 북한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러자 북한도 따라서 병력을 늘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날 무렵 남북한 병력은 대등해졌다. 정전협정을 맺으면 전쟁을 했던 나라들은 감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북한은 오히려 병력을 늘리는 ‘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5·16 이후로도 북한은 계속 병력을 증강시켰으나 박정희 정부는 횡보(橫步)를 했다. 횡보를 한 첫째 이유는 미국이 현대화를 이유로 지원해주기로 한 한계가 한국군 60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증강은 120만 명 선에서 멈췄다. 이것이 위기를 불렀기에 박정희 정권은 예비군을 창설하고, 껍데기만 남은 유엔군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가진 미군에 안보를 맡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를 만든 것이다. 한국군사(史)에 밝은 한 전문가는 “박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를 만들어 연합사에 한국 방어를 위임함으로써 부족한 병력 문제에 대처했다”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연합사를 창설할 무렵 한국군이 60만, 북한군은 120만으로 1대 2의 비율이었다. 이러한 체제는 대단히 위험한데, 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유사시 미국에서 올 증원군으로 해결했다. 미국은 연합사를 통해 한국 방위를 책임지기로 했기에 데프콘 2 이상이 선포되면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 등에 따라 최대 69만 명의 미군을 한반도에 보내기로 했다. 유사시 남북의 상비병력은 129만 대 120만으로 대등해지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이것으로 북한의 침공을 억제하고 여력(餘力)으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법을 근거로 육군을 대폭으로 감축하고,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 한국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연합사를 해체하도록 했다.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정책 두 개를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놀랍게도!
◆ ‘무늬만 사단’인 상비사단
2020 2차 수정안으로 육군이 사단 수를 2005년과 비슷하게 유지하게 됐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국방개혁법 25조 1항에 의해 육군 병력을 지속적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병력은 줄었는데 사단 수를 유지한다면, ‘무늬만 사단’이 된다.
실제 병력은 연대급인데 이름만 사단인 ‘뻥튀기 부대’가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대규모 감군이 일어나지 않은 현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한미 육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 육군은 50만2000명으로 10개 사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 육군은 약 52만 명으로 37개 사단(22개 상비+11개 향토+4개 동원)을 형성하고 있다. 총 병력은 비슷한데 사단 수는 3.7배 많은 것이 한국 육군이다. “미국은 사단 수를 셀 때 빠지는 여단급 부대가 많아 그렇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으니, 미국 사단 수를 한국의 상비사단 수와 비교해자. 이렇게 해도 한국 사단 수는 미국보다 2.2배 많다는 결과가 나온다.
현실을 들여다보자. 한국은 1만1500명으로 보병사단을 편성한다. 기계화보병(기보)사단은 보병사단보다 3배 정도 전투력이 강하기에 9900명으로 편성한다. 미 육군은 이름은 보병사단이어도 성격은 기보사단이 대부분이다. 미국 사단은 1만6000~1만7000명으로 편성된다. 최근 미국은, 제4보병사단을 전투력이 더욱 강한 디지털 사단으로 개편하면서 4사단만 1만4000명으로 줄였다.
대충 잡아도 미국 사단의 병력은 한국 상비사단의 1.5배에 달한다. 이러니 한국 사단은 미국 사단에 비하면 ‘속 빈 강정’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3각 편제’ 퇴색한 육군부대
물론 미국 사단이 세계 사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사단이 미국 사단보다 약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의 한국 상비사단은 줄어드는 병력으로, 육군 편제의 기본인 3각 편제가 흔들려 고통을 받고 있다. 왜 3각 편제가 지상군의 기본이 됐는지, 분대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분대보다 작은 전투단위를 ‘조(組)’라고 한다. 전략가들은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분석해, 조를 몇 명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해왔다. 그러다 3명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냈다. 3명을 1조로 해 전투하면, 1명이 희생돼도 2명이 의지해 위험을 헤쳐나오지만, 2명을 1조로 했다가 1명이 희생되면 남은 1명의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3명을 1조로 하면 전투력도 배가된다. 왼쪽에 있는 전투원이 좌측의 적을 벗겨내고, 오른쪽 전투원이 우측의 적을 밀어낼 때 가운데 있던 전투원이 돌격해 뚫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확대하면, 오른쪽 조가 우측의 적을 제압하고, 왼쪽의 조가 좌측의 적을 유효사거리 바깥으로 밀어내고 엄호해주는 사이, 가운데 조가 돌진하는 분진합격(分進合擊)을 할 수 있게 된다. ‘십장(什長)’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것을 보면, 1사람이 지휘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0명이 적정이다. 그래서 분대는, 3명-3조에 분대장을 보태 10명으로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3개 분대로 1개 소대, 3개 소대로 1개 중대…3개 연대로 1개 사단을 만드는 3각 편제가 정착됐다. 2022년 육군이 30% 정도 병력이 줄어든 38만7000명으로 22개 상비사단을 만든다면, 분대에서 사단까지의 모든 제대(梯隊)에서 정원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2명-3조에 분대장’식으로 분대를 7명으로 구성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대가 안정화작전에 투입되면 제대로 작전하기 어려워진다. 자칫 ‘적군의 밥’이 될 수 있다.
앞에서 밝혔듯 현재 상비사단의 완편율은 85~90%이다. 그러나 동해안을 지키는 모 사단의 경우 형식은 상비사단이나 실체는 향토사단과 같아서 완편율이 60%대에 불과하다. 한국 사단의 완전성 결여는 고질이어서, 병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상비사단에는 신병을 훈련시키는 신병교육대(신교대)가 있다. 신교대는 전투부대가 아닌 만큼 사단 직할로 두어야 한다. 16개인 한국군 보병사단(나머지 6개는 기보사단) 가운데 신교대를 사단 직할로 운영하는 것은 1사단뿐이다. 나머지 사단은 작전을 하는 보병연대에 신교대를 끼워놓고 있다.
전방 사단은 2개 연대로 휴전선을 지키고, 1개 연대는 사단 예비대로 활용한다. 휴전선을 지키는 2개 연대는 3개 전투대대로 편성돼 있다. 그러나 예비 연대는 병력이 부족해 2개 대대는 전투대대로 구성했으나 1개 대대는 신교대로 편성해 놓았다. 이러니 예비연대는 연대 단위의 훈련을 하지 못한다. 예비연대는 유사시에 대비해 연대단위의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데, 2개 대대뿐이라 절름발이 훈련을 한다. 지금도 이러한데 2022년 병력이 38만7000명으로 줄어든다면 상비사단은 제대로 된 작전도, 훈련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완전성 결여에 대해서는 육군에서도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육군이, 완전성 유지를 통한 전투력 증강보다는 부대 수를 유지해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방개혁법 25조 1항을 거스르는 것은 심각한 항명자(抗命者)가 되는 길’이기 때문에 육군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도 침묵한다.
군살 아닌 생살 도려내는 개혁
육군은 2020 조치 이전(2005년 이전)에도 완전성을 갖추지 못하고 운용됐다. 그러한 육군 병력의 30%를 줄여놓고 전면전과 국지전, 북한 급변사태 등에 대응하라는 것이 국방개혁법 제정으로 현실화한 2020이다. 북한 급변사태 같은 유사시, 국익을 지키며 ‘우리의 아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대군이 있어야 한다.
2020은 냉전이 완전히 끝난 프랑스의 감군을 보고 흥분해서 즉흥으로 추진된 탁상공론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익과 북한을 이롭게 한다.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탁상(卓上) 공론(空論)에 따라 육군을 가혹하게 감군한 조치가 2020이라는 것이다.
육군 병력을 줄이는 2020의 문제점을 지적하다보니 ‘육군은 정말로 군살 없는 군대인가’란 의문이 인다. 육군은 대군이기에 군살이 숨어 있기 좋은 구조다. 육군에도 줄여할 조직은 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상술하기로 한다. 2020은 군살 줄이기를 이유로 생살까지 잘라내 문제라는 것이 전략가들의 지적이다.
● 육군 유도탄사 공군에 배속… 방포司 중심 전략司 필요
● 북한군 표적정보 독자 파악 시스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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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개혁안에는 두 가지가 있다. 2005년 마련된 ‘국방개혁 2020’과 천안함 폭침사건 후 2011년 3월 7일 국방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방개혁 307’이다. 국방개혁 2020은 공군 병력 축소를 언급하지 않았다. 307도 마찬가지다. 공군은 개혁할 것이 없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공군에도 손을 대야 할 부분이 많다. 공군 개혁은 군 전체 개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공군은 307에서 거론한 군 상부구조 개편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5년 12월 1일 대한민국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미군으로부터 환수한다. 그날부로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합참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평시 작전권을 모두 행사한다. 미군은 한국사령부(Korea Command)를 만들어 주한미군을 지휘하며 유사시 한국군을 지원한다. 이는 한국에 두 개의 최고사령부가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반도 전쟁은 북한이라는 하나의 적과 싸우는 것인데, 합참과 미군(한국사령부)이 따로 대응하게 되었다.
전쟁을 하거나 대비할 때 지켜야 할 대원칙 중의 하나가 ‘지휘의 통일’이다. 하나의 전구(戰區)에 두 개 이상의 지휘부가 있으면 혼란이 일어나므로 반드시 한 개 지휘부만 유지한다. 2015년 12월 이후 한반도 전구에는 두 개의 지휘부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사령부는 직접적인 전투를 회피하겠지만, 공격받으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양국은 군사협조기구를 만들어 지휘의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
군사협조기구의 대표는 중장으로 할 예정이다. 양측 중장이 만나 합의한 내용을 대장이 이끄는 합참과 한국사령부가 따르라는 것인데, 계급을 중시하는 군 속성상 유사시 이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양측 지휘관이 대등하게 만나면 의견이 갈릴 때 해법을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지휘관 사이에 차등을 둔다. 한미는 연합사에 같은 대장을 보내지만,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 맡게 한다. 의견이 갈리면 미군 대장이 결정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민족 자존심을 해친 것으로 보았지만, 전쟁을 아는 전략가들은 강한 전력을 내놓은 쪽이 사령관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적한다. 전력이 강한 쪽이 사령관을 하지 못하면 연합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합사는 지극히 실전(實戰)적인 조직이다. 미군은 걸프전, 코소보전, 이라크전 등에서 ‘지휘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를 구성했다. 그때마다 롤 모델로 삼은 것은 한미연합사였다. 이러한 연합사를 민족 자존심 때문에 해체하고는 위기 대응이 염려돼 군사협조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국방개혁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개혁을 돈 써가며 해놓고, 군사협조기구를 만들어 다시 지우는 격이다.
‘한 지붕 두 가족’ 사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전작권을 환수해도 한국 공군은 전·평시 모두 미 공군과 연합작전을 하기로 했다.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렇게 된 이유는 미 공군이 제공하는 화력과 정보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한다. 적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해 표적으로 정하고, 추적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표적정보 운용 제대로 못하는 한국
미 공군은 표적정보를 많이 확보하고 정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 공군은 표적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KH-12와 라크로스 정찰위성, 정확한 좌표를 잡아주는 GPS 위성, 적진에서 실시간 정보를 보내주는 고고도 무인정찰기 등을 운용한다. 특수목적용 항공기도 많아, 미 공군과 연합해 싸우면 적은 희생으로도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러니 연합공군의 지휘권은 미 공군이 행사한다. 한국 공군은 합참과 미 공군 양쪽의 지휘를 받게 돼 유사시 혼선이 생길 수 있다.
미 공군이 확보해주는 표적정보는 유도탄사령부(유도탄사)를 비롯한 육군과 한국형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해군 이지스함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육·해군도 미 공군의 표적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군은 전작권을 가져와도 미 공군의 지휘를 받는 처지가 된다. 결국 한국군은 중요한 작전은 미 공군의 통제를 받고, 소소한 작전은 합참이 지휘하는 2중 구조의 ‘샴쌍둥이’ 군대가 되는 것이다.
인류 전쟁 역사는 지휘 계통이 통일되지 않은 군대가 패배해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연합사처럼, 한쪽을 사령관으로 하면 다른 쪽은 부사령관 식으로 두는 지혜를 택했다. 사령관의 판단이 틀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혼란보다는 대등한 두 지휘관이 대립함으로써 오는 혼란이 훨씬 크기에 차등을 선택했다. 현실이 이렇다면 자존심 때문에 연합사를 해체할 이유가 없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이를 추진했고 이명박 정부가 추수(追隨)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VIP가 이용하는 서울공항의 정식 명칭은 공군 성남기지다. 공군기지 중 휴전선에 가장 가까이 있다. 유사시 한미 공군은 북폭(北爆)을 시도하고 북한은 총력으로 방어할 것이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폭격이나 공중전에 들어간 전투기는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급격한 회피기동을 하므로 연료를 금방 소진한다. 연료가 떨어지면 돌아와야 하는데, 연료 사정이 급박하면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성남기지에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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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기지에는 두 개 활주로가 있다. 평소에는 주활주로만 쓴다. 부활주로는 유사시에만 쓰게 돼 있다. 그런데 롯데그룹이 부활주로의 연장선 옆에 100층이 넘는 롯데월드타워를 짓고자 했다. 공군은 유사시 부활주로를 써야 하므로 40층 이하로 지으라고 했으나 롯데는 굽히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친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대해서는 공군 작전에 영향을 준다며 끝까지 허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이를 허가하려고 했다. 김은기 총장 등 공군 수뇌부가 반대하자 이명박 정부는 김 총장을 퇴진시키고 이계훈 씨를 총장에 임명해 밀어붙였다. 이 총장의 공군본부는 부활주로의 방향을 틀어 롯데월드타워 허가에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는 방향을 틀었다 해도 부활주로에는 어떠한 비행기도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롯데월드타워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조종사가 자칫 조작 실수를 하거나 강력한 바람이 불면 착륙하려던 항공기가 롯데월드타워에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륙용으로만 사용하게 했다. 그런데 그냥 이륙하는 게 아니라, 이륙 순간 롯데월드타워 반대쪽(오른쪽)으로 최대한 꺾어 날아가도록 했다.
대못 박은 이명박 정부
성남기지에는 수송기와 정찰기 등 덩치 큰 공군기를 운용하는 혼성비행단이 주둔한다. 큰 비행기는 양쪽 날개에 엔진을 달고 있기 때문에 왼쪽의 엔진이 꺼지면 비행기 몸체가 왼쪽으로 회전해 롯데월드타워와 충돌할 수 있다. 이런 사고 사례가 있어 공군은 공항 주변엔 고층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공군의 건의를 무시했다. 안보와 안전을 위협하는 쪽으로 역주행을 한 것이다.
공군의 정신 개혁은 절실한 주제다. 표적정보 문제도 공군이 의식을 바꾸면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한국은 인적정보(HUMINT)와 신호정보(SIGINT), 영상정보(IMINT) 등에는 상당한 투자를 했으나 표적정보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군 것을 받아 쓰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군은 표적정보를 담당하는 전술정보전대를 한미연합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운영하는 아리랑-3호와 3A호, 조만간 발사할 5호 위성에는 첨단 관측장비가 탑재된다. 이 위성들의 능력은 10여 년 전 미 공군이 운용했던 정찰위성만큼 뛰어나다. 지난 10월 7일 한미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한국은 고고도 무인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0월 10일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이 한국 상공을 지나는 인공위성을 추적 감시하는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시스템(SLR)’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를 활용하면 공군은 한국형 표적정보를 발전시킬 수 있다.
지금 한국 공군이 갖춰야 할 조직은 전략사령부(가칭)이다. 이 사령부는 전술정보전대와 육군의 유도탄사, 공군의 방공포병사령부(방포사)를 합치고, 우주비행단을 창설하는 식으로 만들 수 있다. 유도탄사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유도탄 공격 지역이 공군기가 작전하는 지역과 겹치기 때문이다.
한미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유도탄사는 사거리 800km의 지대지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육군에는 이렇게 먼 거리에서 싸우는 부대가 없다. 육군 제대 가운데 가장 큰 군단은 작전종심(縱深)을 150km로 잡고 있다. 그러나 군단이 보유한 무기 가운데 공격 거리가 가장 긴 것은 사거리 40km의 K-9 자주포다. 차기 MLRS(다련장 로켓)가 배치돼야 60km떨어진 표적을 때릴 수 있다.
기동부대는 화력의 지원 범위 안에서 진격하기 때문에 군단의 실질적인 작전 종심은 60km다. 최대 100km를 넘기는 어렵다. 전선에는 아군과 적군이 밀집해 있는데, 그곳을 ‘강력한 화력’을 가진 공군기로 공격하면 아군이 희생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군은 육군 작전종심 밖에서 작전한다. 그곳이 전선에서 100km쯤 떨어진 곳인데, 이 선을 전문용어로 ‘전방전투지경선(FB)’이라고 한다.
전략사 창설 필요
전방전투지경선 밖을 공군과 유도탄사가 함께 공격하면 같은 목표를 양쪽에서 때리는 중복 사격이 일어날 수 있다. 유도탄이 날아가는 공역에 우리 공군기도 비행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려면 유도탄사를 공군으로 보내 전방전투지경선 너머의 작전은 공군이 총괄 지휘하게 해야 한다.
유사시 한국이 직면할 최대 위협은 북한의 미사일 기습 사격이다. 이를 막는 부대가 방포사다. 그러나 방포사는 침투한 북한기는 격추해도 북한 미사일은 요격하지 못한다. 미사일을 잡는 미사일인 PAC-3(개량형 패트리어트)가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PAC-3를 도입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TMD(미사일 방어)체제에 가입하게 되고 대화에 응하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PAC-3 도입을 무산시켰다. 그때도 공군은 순응했다.
공군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전투기 조종사 제일주의’다. 새 전투기를 도입하는 제3차 FX사업은 적극 추진해도 다른 무기 도입에는 건성으로 대한다. 유사시 한국군이 북진하면 방포사 부대도 따라서 이동해야 한다. 방포사가 북진하면 그만큼 북한 공군기의 작전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방포사는 중요한 전력인데도 전투기 제일주의의 공군은 이들을 ‘2등 공군’으로 여기고 있다.
적은 인공위성으로 한국군을 감시 정찰할 수 있다. 따라서 유사시 한국 상공을 지나는 적 정찰위성을 찾아내 격추시켜야 한다. 그 시작이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시스템’이 될 수 있다. 우주를 감시해야 위성을 격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위성요격기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 위성 감시에서 시작해 위성 요격으로 발전할 우주비행단을 만들어 우주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공군은 방포사와 전술정보전대에 육군에서 넘어올 유도탄사, 새로 만들 우주비행단 등과 합쳐 전략사 신설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증원도 하는 것이 개혁이다. 공군은 전략사령부와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를 양축으로 삼아, 공군 작전의 꽃인 ‘전략적 마비전’을 펼쳐야 한다.
전략적 마비전은 항공력과 미사일 전력으로 적 전략시설을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로 날려 적을 마비시키고, 육군으로 하여금 쉽게 승리하게 하는 전술이다. 전략적 마비전은 1989년 미 공군의 존 와든 3세 대령이 발표한 것인데 이를 슈워츠코프 중부군사령관이 받아들였다. 그는 이 전술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에 적용해, 큰 희생 없이 42일 만에 걸프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그 후 미 공군은 더욱 정교해진 전략적 마비전을 준비해놓았다가 2003년 이라크 전에서 펼쳐 보여 이른바‘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전략적 마비전은 공개된 전술이기에 북한도 연구할 수 있다. 북한도 이 개념에 따른 작전을 만들어 선제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스커드와 노동 등의 미사일을 일시에 발사하고 전 공군기를 띄우는 A-데이 작전을 펼치면, 한국은 ‘신(神)도 막지 못한다는 공황(恐慌)’에 빠져든다. 세계 10위권의 국방비를 사용하는 강국 한국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 도처에서 돈좌된다.
공군은 이러한 기습공격을 억제하고, 전면전 시에는 전략적 마비전을 수행하며, 북한 급변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자주적인 표적정보 운용과 공세적인 공군력 운용이다. 공군력을 공세적으로 운용하려면 ‘대규모 편대군(群)’ 능력을 갖추고 작전 개념도 공격적인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공군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공세적인 공군력 운영 필요
지금 공군은 항공력의 30%는 육군 전투를 지원하는 근접항공지원(CAS)을 위해 대기시키고, 또 다른 30%는 북한기가 내습했을 때 요격하는 방어제공작전(DAI)을 위해 떼어놓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40%의 전력으로 미 공군과 함께 대규모 편대군 공격을 벌이거나 단독으로 항공차단작전을 하려고 한다. 40%만 공격용으로 할당해놓은 것인데, 표적정보가 약해 그나마 미 공군에 예속돼 작전한다.
미 공군이 준비가 안 됐다며 뒤로 빠지면, 공군은 방어전만 하며 북한의 A-데이 공격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응은 더 큰 위기를 부르므로 전략가들은 공세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방포사가 전력을 다해 방어하는 사이, 공작사와 유도탄사는 모든 공군기를 출격시키고 유도탄을 발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세적 대응전술에 따르면 기본훈련기 KT-1을 개조한 경공격기 KA-1은 근접항공지원을 위해 대기시키지 않고, 개전 첫날 출격시켜 전선 바로 앞에 있는 인민군 전략시설을 부순다. 항속거리가 짧은 F-5와 고등훈련기 T-50을 개조한 공격기 FA-50은 방어제공작전을 위해 빼놓지 말고 바로 이륙시켜 북한군 방공망과 전방전투지경선 인근에서 다음 공격을 위해 모여드는 북한 지상군을 파괴시킨다.
그리고 F-4와 KF-16, F-15K를 총동원해 평양 인근의 방공망을 파괴하고, 유도탄사가 쏜 미사일과 함께 북한 깊숙한 곳에 있는 전략시설을 공격한다. 이러한 대응을 하려면 평소에 정교한 표적정보를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미 공군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공군 중심의 지휘체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공군은 대규모 편대군 공격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공격은 항모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함대처럼, 엄청난 공군기를 띄워 공격한 후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투기와 경보기, 급유기, 적 레이더망을 파괴하는 대공(對空)제압기, 적 레이더망과 통신망을 교란하는 전자전기 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중에서 한국 공군이 갖지 못한 것이 급유기와 전자전기다. 전자전은 다른 장비로 수행할 수도 있지만 공중급유는 급유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공군은 전투기 제일주의에 젖어 급유기 사업은 자꾸 미루고 있다. 급유기를 도입하는 KC-X 사업은 3차 FX 사업 다음이다. 급유기도 표적정보처럼 미 공군 것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생각으로 한미동맹만 강조하고 있어, 급유기 도입사업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이러니 전작권 환수는 말로는 개혁이지만 실제로는 퇴행인 허울뿐인 개혁이다. 민족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연합사부터 해체할 것이 아니라, 한국군이 자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
조지 부시 정부 때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국방비 절약에 치중해 연합사 해체에 동의했으나, 지금의 미국 정부는 대(對)중국 포위를 위해 연합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실질적인 안보와 통일을 원하는 한국 전략가들과 함께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 제일주의 버려야
지난 4월 셔먼 연합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연합사령관을 맡아 자존심을 상했다면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게 하면서 연합사를 존치시키자”고 제의했었다. 연합사를 유지하면 샴쌍둥이 문제는 단숨에 해결된다. 강력한 표적정보와 대규모 편대군 공격, 전략적 마비전 수행 능력을 가진 미군이 한반도 방위를 함께 책임지니 북한 급변사태 대응도 빨라진다.
공군은 국방개혁 307 추진을 기정사실로 보고 군 상부구조 재편만 반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를 낮추게 하고 급유기 도입을 추진하며, 전술정보전대의 능력 배가, 유도탄사의 공군 전환, 방포사의 전력 증강, 우주비행단 창설 등을 추진해야 한다. 연합사 존폐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밝혀야 한다. 전략가들은 그것이 샴쌍둥이 군대를 만들지 않으면서 통일에 대비하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 육군화한 해병대, 상륙전 큰소리 쳐도 능력 의문
● 해군 7만, 해병대 2만8000명으로 증강 주장 대두
● 제해권 장악 위해 잠수함 30척, 구축함 20척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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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천상륙작전 60주년 기념행사(큰 사진). 유사시 해군과 해병대는 청천강과 원산만 동시 상륙을 성공시켜야 한다(작은 사진).
한미연합군 사령관이 취임 후 가장 주의 깊게 점검하는 한국군 부대는 어디일까? 육군 특전사? 아니다. 해병대 1사단이다. 이유는? ‘최초의 공격군 부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6·25전쟁사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개전 직후 낙동강으로 몰렸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한미 해병대가 숨통을 터주자, 비로소 낙동강전선에 몰려 있던 육군이 전선을 돌파하며 전진했다.
전쟁을 기획하는 사람들만큼 치밀하게 지정학(地政學)을 따지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길쭉한 반도이기에, 한번 밀리면 지상군만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어렵다. 상륙군으로, 밀고 내려와 ‘잔뜩 길어진’ 적의 중허리를 끊는 ‘훅(hook)’을 날려야 한다. 훅은 양쪽에서 동시에 날려야 효과가 커진다. 한반도에서 가장 잘록한 곳은 원산만에서 청천강 하구를 잇는 선이다. 그곳의 직선 길이는 국방개혁 2020으로 이루겠다고 했던 미래형 군단의 진격거리(작전종심)인 150km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의 선공(先攻)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육군은 현 위치에서 막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을 지킬 수 있다. 이때 한미 해병대가 청천강과 원산만에 동시 상륙해 양쪽을 잇는 공세이전 작전을 성공시키면, 전선의 육군은 돌파구를 형성해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하게 된다. 청천강으로 상륙한 해병대는 평양도 점령할 것이므로 인민군은 머리가 잘린 뱀처럼 몸부림치다 쓰러지는 것이다. 이 작전은 ‘조중(朝中)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른 중국군의 참전을 막는 중요한 방법도 된다.
그러나 6·25 때는 전세가 다급해 청천강이 아닌 인천에 상륙했다. 병력도 적어 ‘동시’가 아닌 ‘시차별’ 상륙작전을 폈다. 인천상륙 후 해병대 병력을 빼내 원산상륙을 시도했는데, 쾌속으로 진격한 한국 육군이 먼저 원산에 도착해 ‘충격과 공포’를 주는 상륙전 효과를 동해안에서는 거두지 못했다. 지정학적 조건은 그대로이고 역사는 반복되니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과 북한 급변사태를 준비하는 ‘우발계획 5029’에는 6·25 때 이루지 못한 꿈이 반영된다. 해병대는 여전히 최초 공격군이 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 때는 신속히 평양을 장악해 북한 지도부를 체포하고, 인민군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미군은 북한 핵시설과 북한 핵 과학자 장악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역시 청천강 상륙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새로 오는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 해병대 1사단의 상륙전 능력부터 점검한다.
이러한 해병대를 이동시키고 밀어주는 것이 해군이다. 해군과 해병대는 한 세트로 움직이므로 국방개혁은 유사시 두 군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먼저 해병대부터 살펴보자.
미 해병대 사단은 미 육군 사단보다 병력이 많다. 육군의 분대는 10명으로 구성되지만 해병대의 분대는 13명이다. 이유는 상륙전 때문이다. 과거의 상륙전은 좁은 해안에서만 시도됐기에 많은 희생을 낳았다. 분대 작전이 가능하려면 10명이 필요한데, 상륙전에서 3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보고 최초 분대원을 13명으로 구성한 것이다. 상륙에 성공한 해병대는 무조건 내륙으로 밀고 들어가 전과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뒤에는 물, 앞에는 적’으로 막힌 절박한 상황에 빠져 궤멸할 수 있다.
‘고인 물’ 해병대
그래서 해병대는 육군보다 더 많은 보급품과 더 좋은 기동장비를 갖춘다. 미 해병대는 전투기까지 갖고 있다. 적진에 상륙해도 공항이 없으니, 평지만 있으면 뜨고 내릴 수 있는 수직이착륙기 ‘해리어’가 필수다. 헬기도 다량 보유한다. 헬기는 상륙함을 타고 온 해병대원들을, 적 포탄이 떨어지기 힘든 먼 바다에서 태워 해안선 너머 안전한 곳에 강하시키는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수행한다. 그리고 해리어기와 함께 공지(空地)기동전을 펼친다. 기동전 능력은 미 해병대가 갖춰야 필수 분야다.
이 때문에 미군은 해병대 사단+해병대 비행단+해병대 군수지원단을 묶어 가장 빠르게 상륙하고 가장 빠르게 돌격하는 원정군을 만들어놓았다. 미 해병대는 유사시 가장 먼저 출동하는 신속배치군, 다목적 대응군, 국가기동군이 된 것이다. 해병대를 소재로 ‘소수정예’를 뜻하는 ‘어 퓨 굿 맨(A few good man)’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 해병대도 ‘어 퓨 굿 맨’을 지향하는가.
소수정예는 우수한 기동장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수도권에 포진한 육군 부대들은 K계열 국산 신무기로 무장해 있다. 그러나 해병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M계열 무기 일색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의 연간 국방비는 300억 달러 정도인데, 이 중 해병대 몫은 10억 달러 정도다. 여기에서 인건비와 운영비 등에 9억 달러가 소모되니 전력증강비로는 1억 달러만 할당된다.
1억 달러는 F-15K 전투기 한 대나 이지스 구축함의 10%, K-2 흑표전차 12.5대를 살 수 있는 ‘껌값’이다. 이러니 한국 해병대는 “악으로 깡으로!”를 외치거나, 처연하게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는 가사의 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1987년 해병대 사령부가 해군에서 독립했지만, 해병대는 해군을 통해 예산을 배정받아왔다. 해군은 자기 예산도 부족해서 헉헉대느라 해병대 예산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이것이 해병대를 ‘찬밥’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다행히도 올해 이 구도가 깨졌다. 해병대는 해군을 거치지 않고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바로 예산 배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1조 원(약 10억 달러)을 넘긴 예산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간 배정된 예산이 적었다고 해서 무조건 해병대를 두둔할 수는 없다. 해병대에는 그들도 모르는 고질이 있기 때문이다. 전방의 육군 사단에선 연대를 돌려가며 고르게 최전방을 경험시킨다. 그러나 해병대는 고정 불변이다. 물도 고여 있으면 썩는데, 부대가 고정돼 있으면 복무 태만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그 유명한 해병대의 기합도 한번 배정되면 계속 같은 곳에서 근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라고 분석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부대를 일부 빼내,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기습을 해야 한다. 전투 중인 부대를 빼내는 것을 ‘접적이탈(接敵離脫)’이라고 한다. 일부 부대를 접적이탈시키면 나머지 부대가 맡아야 하는 전선이 늘어나기에, 전선 지휘관들은 접적이탈 명령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러한 접적이탈을 강행해 대승을 거둔 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당시 접적이탈 대상 부대는 한국 육군의 17연대였다.
해병대 2사단은 육군 사단처럼 김포-강화 지역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병대는 “육군 같았으면 2.5개 사단이 맡았어야 할 지역을 해병대는 한 개 사단으로 지킨다”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이 자랑의 이면에 심각한 병폐가 숨어 있다. 맡은 지역이 너무 넓다보니 해병대 2사단은 예비부대 없이 모든 연대를 경계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백령도의 6여단과 연평도의 연평부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고인 물 증후군이 발생하고, 육군보다도 더 지역에 고착돼버렸다.
해병대 항공단 창설해야
어렵겠지만 해병대 2사단은 2개 연대로 경계를 하고 1개 연대는 접적이탈 작전에 대비해 예비로 뽑아 상륙군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육군처럼 세 연대를 돌려가며 경계와 상륙을 모두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해병대 1사단은 상륙군이라는 이유로 훈련 삼아 GOP 경계에 투입될 때를 제외하곤 아예 전선 경험을 하지 않고 있다. 중추 상륙군이라면 전선 경험이 많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문제는 해병대 1사단 예하 대대들을 2사단과 6여단, 연평부대 예하의 대대들과 교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지금 해병대에 꼭 필요한 것은 헬기 항공단 창설이다. 한국은 국산 기동헬기인 수리온을 개발한 데 이어 한국형 공격헬기를 개발하려고 한다. 이 헬기를 양산하면 해병대에도 제공해야 한다. 항공단 운영을 위해서는 2000명 정도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해병대는 오락가락한 국방개혁 덕분에 1000명을 증원받게 됐으니 이들을 활용해야 한다. 나머지 병력은 불필요한 조직에서 차출한다. 연평도 포격전 후 합참이 해병대 사령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준 서북도서방어사는 해병대조차 필요 없다고 하는 군더더기다.
전쟁을 아는 사람들은 백령도와 연평도에 여단과 마이너스 연대라는 큰 병력을 배치한 것도 낭비 중의 낭비라고 지적한다. 섬 방어는 화력과 공군력, 해군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으니 도서 방어 병력은 최소화하고 해병대 항공단 창설 요원으로 돌려야 한다. 이로써 공지기동 해병대를 만든다면, C4I 체제 확충이 필요하다. 여기에 투입할 요원도 서방사 해체와 도서부대 축소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기간(基幹)편성’체제의 도입이다.
기간편성이란 평시에는 장교와 부사관만으로 부대를 운영하다 유사시 동원된 사병을 입소시켜 큰 부대를 만드는 것이다. 기간편성을 가장 잘하는 것이 일본 자위대다. 자위대의 평시 병력은 23만도 되지 않지만 유사시 80만으로 늘어난다. 예산 확보와 기간편성은 해병대를 진짜 상륙군으로 만드는 두 바퀴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해군은 자기 필요에 의한 비전을 내놓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비전은 해병대와 연계해 그려야 한다. 미래의 해병대를 그릴 수 있다면, 해군 비전은 더 명확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해병대를 상륙군화하는 방안을 거론했지만, 한국 능력으로는 상당시간이 지나도 사단 규모의 해병대를 상륙시키기 어렵다. 이 때문에 연대 규모의 해병대(연대상륙단)를 상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연대상륙단을 상륙시키는 데도 해군은 상당한 전력 증강을 필요로 한다.
독도함 3척으로 늘려야
한국 해군이 자랑하는 헬기탑재 대형상륙함(LPH)인 독도함은 대대상륙단을 간신히 태울 수 있는 규모다. 따라서 연대상륙단을 가동하려면 하루빨리 독도급을 3척으로 늘려야 한다. 독도함은 12~16대의 헬기를 실을 수 있으니 3척이 있으면 연대상륙단이 탈 헬기항공단도 얼추 싣는다. 해병대 상륙단이 전투를 치르며 상륙하는 것을 ‘돌격상륙’이라고 한다. 이로써 교두보가 확보돼 후속부대가 들어오는 것은 ‘행정상륙’이라고 한다.
한 개의 연대상륙단이 돌격상륙에 성공하면, 해군은 재빨리 두 개의 연대상륙단을 행정상륙시켜, 해병대가 사단 규모로 진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병대가 소모할 군수품을 교두보에 신속히 양륙(揚陸)하는 작전을 펼친다. 한반도 전구(戰區)는 좁기 때문에 해군이 신속히 기동하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사단급 상륙이라는 ‘초대형 훅’을 날릴 수 있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제해권 확보인데, 이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같은 시각 반대편 해안으로 대대상륙단을 투입하는 ‘스몰 훅’을 날린다. 상륙함(LST)은 중대에 못미치는 병력과 장비를 싣기 때문에 스몰 훅을 날리려면 해군은 8척의 상륙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재 해군은 4척의 상륙함을 갖고 있으니 두 배로 늘려야 한다. 대대상륙단이 돌격상륙에 성공하면 바로 2개의 대대상륙단을 행정상륙시켜 연대 규모의 해병대가 내륙으로 돌진하게 한다.
양면(兩面)작전 강요는 적을 패주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때 미 해군이 1개 해병대 원정군을 투입한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유리해진다.
한쪽에서는 미 해병대 원정군과 한국 해병대 대대상륙단(상륙 후 연대상륙단으로 확대), 다른 쪽에서는 한국 해병대 연대상륙단(상륙 후 사단으로 확대)이 상륙해 평양을 점령하고 양쪽을 이어버리면 한반도 위기는 중국군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고 조기에 진압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 해병대는 한미연합을 강조한다. 전작권 전환 후에도 공군은 미 공군과 연합으로 작전하기로 했는데, 해병대도 같은 구도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적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한국 해병대가 해군 상륙함을 타고 몰려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상륙함은 덩치는 큰데 속도는 느리고 방어장비는 미약하니 최고의 표적이 된다. 북한 잠수함정이 어뢰를 쏴 이들을 격침시킨다면 한국군 작전은 순식간에 엉켜버린다. 어디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 것이다.
적은 선제공격으로 더 큰 도발을 할 수 있다. 그들이 정한‘D-데이’이전에 상어급과 연어급 잠수함정을 한국의 큰 항구로 침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어뢰를 쏴 항구로 들어오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초대형 유조선을 격침시키면, 모든 해운사는 한국행을 거부하게 된다. 항구로 들어오는 항로는 가라앉은 배로 막혀버리니 항구도 봉쇄한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한국민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국은 상륙전 감행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30척 잠수함론
이러한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먼저 북한의 잠수함정 기지를 봉쇄해야 한다. 우리의 잠수함이 먼저 침투해, 기지에서 나오는 북한 잠수함정을 격침시켜야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작전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의 잠수함 수가 너무 적은 것이다.
한국은 장보고급 9척, 손원일급 3척을 갖고 있으나, 북한은 70여 척의 잠수함정을 갖고 있다. 12척의 잠수함으로 70여 척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한 D-데이 이전에 기지 밖으로 나온 북한 잠수함정을 일일이 추적해야 하니 한국은 더 많은 잠수함을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군이 같은 판단을 하고 있어, 전단 규모인 잠수함 전력을 사령부급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장보고급 9척에 손원일급 9척으로 잠수함사령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해군 전략가들은 ‘잠수함 30척론’을 주장한다. 과거 한국은 돌고래급과 코스모스급의 작은 잠수정을 갖고 있었다. 연어급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UDT와 해군 첩보요원의 침투, 그리고 매복 작전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전략가들은 이것까지 의식해 30척 잠수함론을 주장한다.
구축함 20척으로 기동함대 편성
확실한 잠수함정 세력 확보로 수중 우세가 보장된 다음에는 소해전(掃海戰)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군의 상륙이 예상되면 적은 상륙 예상 해안에 기뢰를 깔 것이기 때문이다.
소해전 능력이 구비되면, 전투함으로 상륙함 세력을 보호하며 거대한 상륙전을 준비한다. 한국군이 소해작전을 완료하면 적은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 공군기로 상륙군을 막으려 한다. 미 해군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거대한 함대를 사용한다. 항모에서 이함(離艦)한 해군 전폭기와 상륙모함에서 이함한 해병대의 수직이착륙기, 구축함과 잠수함에서 발사한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로 적기와 적 공군기지, 적 미사일 기지, 포대를 초토화한 후 해병대를 상륙시키는 것이다. 바다에서 지상으로 압도해 들어가는 이 작전을, 미 해군은 ‘From the Sea(바다로부터)’ 전략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 해군은 이러한 능력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한미 연합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자 한다. 이지스 구축함과 한국형 구축함 등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를 만들어 제해권을 갖는 것이다. 이 구축함에는 한국형 토마호크인 ‘현무-3’ 순항미사일이 탑재된다. 현무-3의 사거리는 500km가 넘으니 머나먼 바다에서 적 해안과 전력 거점을 초토화할 수 있다.
연대전투단이 탑승한 상륙함정을 보호하며 돌격상륙을 성공시키려면 20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함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3분의 1인 기동전단만 있다. 한국형 From the Sea를 구사하려면 전투함과 잠수함 세력을 3배 정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국방개혁 2020과 307은 해군 병력을 줄이지 않았다. 이는 해군을 위한 배려 같지만 현실과는 맞지 않다. 대양해군을 외치기 전 한국 해군에서 가장 큰 전투함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다 넘겨준 2500t급 구축함(DD)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큰 전투함은 7500t이 넘는 이지스구축함이다. 2차 한국형 구축함은 4500t이고, 상륙함인 독도함은 1만6000여 t에 달한다. 과거에는 잠수함이 없었으나 지금은 많아졌다.
큰 함정은 당연히 많은 승조원을 필요로 한다. 없었던 잠수함을 도입했으니 잠수함 승조요원을 새로 편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병력이 늘어났어야 하는데 해군병력은 30여 년간 4만 명으로 요지부동이다. 병력을 늘려주지 않자 해군의 ‘해병대 파먹기’ 현상이 일어났다.
해군의 해병대 잠식 심각
해군은 P-3C 초계기와 구축함 등에 탑재하는 헬기 등 상당한 항공기를 운용하기 위해 6전단을 갖고 있다. 6전단은 해군이 해병대에서 ‘빼앗아’온 것이다. 1973년 해군에 합병될 때 해병대는 해군에는 없는 항공단을 갖고 있었다. 해군은 항공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해병대 항공단을 토대로 6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1987년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할 때, 6전단을 잡아놓았다. 이 때문에 해군과 해병대는 지금도 항공단 문제를 놓고 날선 대립을 한다.
상륙전을 하려면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상륙은 함정에서부터 시작되므로 해군은 해병대와 함께 상륙훈련단(NATU)을 만든 뒤 상륙군과 장비를 태우고 싣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런데 해병대가 독립하고 해군은 인력부족으로 고통받게 되자, 해군은 이 부대를 없애버렸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 후 해군과 해병대는 말로만 상륙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상륙한 해병대가 필요로 하는 군수품은 해군이 보급해줘야 한다. 배로 싣고 온 물품을 육지에 풀어놓기 위해 해군은 ‘해안단’을 운영해왔으나, 지금은 같은 이유로 없애버렸다. 그래서 뿌리가 같은 해군과 해병대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해군의 병력 부족은 너무 심각하다. 최근 최윤희 해군 총장은 3400명 증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은 병력 감축을 대세로 보고 있기에 이를 들어줄 뜻이 없다. 그러나 해군 처지에서 3400명은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마찬가지여서 답답해한다. 해군은 장비를 다루는 기술군이기 때문에에 육군이나 해병대처럼 기간편성을 할 수도 없다.
해군은 4만 명인 병력을 공군 수준(6만 5000여 명)으로 늘리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 때의 국방부 장관은 손원일 이후 첫 해군 출신인 윤광웅 씨였다. 윤 장관이 해군 병력 문제를 해결해줬어야 했다. 공군은 공군 출신인 이양호 씨가 국방부장관을 할 때 육군의 방공포병을 넘겨받아 세력을 키웠다”며 아쉬워한다.
해군과 자주 다투는 해병대도 해군의 병력 증강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해병대 대령 출신의 김현기 박사는 “해군 병력의 증강 없는 해군력 확충은 해군에 대단한 무리를 가져온다. 정부는 통일을 내다보며 해군 병력을 7만으로 증강해야 한다. 향후 국방개혁은 해군 7만에 해병대 2만8000명인, 해군·해병대 10만 양병론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