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의 세계
“좋은 경험들은 나누고 잠수함과 함께 22년 독자와 생각은 합칠것”
- 시리즈를 시작하며
1992년 10월 14일 독일에서 건조된 잠수함에 태극기와 해군기가 게양됐다. 우리 해군 첫 잠수함 ‘장보고함’(1200t급) 인수식이 독일 현지에서 열린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잠수함 부대는 ‘20년 무사고’란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다. 잠수함은 해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자 해군력을 평가하는 척도다. 세계 각국이 잠수함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한국 해군 잠수함부대에서 군 생활 대부분을 보낸 문근식 해군대령을 통해 ‘잠수함의 세계’에 잠망경을 담아 보기로 했다.
장보고함·214 잠수함 도입사업 등 두루 경험 궁금증 나는 모든 것 흥미 곁들여 풀어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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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진수한 214급 중형 잠수함 손원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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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식 해군 대령 mksnavy@naver.com |
문근식 대령 프로필
▲ 해사 35기
▲독일해군 잠수함전술 및 운용과정 유학( 1990 ~ 1992)
▲ 해외(독일) 장보고함 인수 작전관(1993)
▲박위함 인수부장(1995)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 국내 유일 유학(1998)
▲ 나대용함 인수함장(1999)
▲해군본부 중잠수함(SSX)사업처장(2004)
▲93잠수함전대장(2005)
▲방사청 잠수함 사업팀장(2007)
▲한미연합사령부 해상작전과장(2008)
▲잠수함 국외(독일) 사업관리실장(2009~ 2012 )
▲논문 및 저서 : ‘모티베이션에 관한 실증적 고찰’(경영석사)ㆍ ‘U-BOAT의 비밀일기’ (번역서 2003.2)
▶軍에서 무료로 받은 지적 재산권 반납하고 전역하라?
지난 5월 어느 날 해군에서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독일에서의 3년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국방일보의 모 기자가 내게 “군에서 무료로 획득한 잠수함 전문성은 지적 재산권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잠수함에 관련한 궁금한 사항은 잠수함 전문가인 문 대령께 물어 봤는데 이제 전역하면 어떡합니까? 군에서 무료로 터득했으니 전역 전에 국방일보를 통해 내려놓고 가세요” 하고 따지듯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평소 알고 있기에, 특히 30여 년간 상명하복의 단순한 군 생활에 익숙해진 내게 재미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거절했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문해 보았다. “나는 잠수함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전문가라면 그 전문성을 후배들에게 남겨야 맞는 것 아닌가?”라고.
▶사전적으로 볼 때는 잠수함 전문가
국어사전상 전문가(專門家)는 “특정분야의 일을 줄곧 해 와서 그에 관한 풍부하고 깊은 지식이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돼 있다. 이러한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한 분야에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소위 말해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빈턴의 연구결과가 말하길, 어느 분야건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레빈틴이 작곡가·소설가·피아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를 조사해 보니 어느 분야든 1만 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가 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 연습해야 나오는 분량이다. 그럼 나는 잠수함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해 왔는가. 내가 잠수함 사업에 뛰어든 시기는 1988년이므로 지금까지 약 24년이 흘렀으며, 이 중 한미연합사와 목포에서의 근무 2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22년을 잠수함 획득사업 및 승조원 생활을 했으니 사전적으로 나는 잠수함 전문가가 맞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비전문가로 소문이 날지 걱정도 된다.
▶잠수함 운용국에서 전문가 확보는 필수적
새로운 잠수함 한 척을 설계해 건조하는 데까지는 통상 12년 내지 15년이 소요된다. 물론 획득사업의 성격상 급하게 획득하고자 한다면, 즉 예산·기술·생산 인력과 시설 등이 뒷받침되고, 미국의 최초 원자력추진 잠수함 노틸러스와 같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경우는 6~7년으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 건조가 완료되면 해상 시운전과 군함으로서 전력화 과정이 2년 정도 소요된다. 즉 하나의 잠수함을 군함으로 취역시키는 데는 엄청난 기간이 소요되며, 이것도 사업구상 단계에서의 사업전문가, 건조단계에서의 건조 전문가(기술인력) 그리고 시운전 및 전력화 단계에서의 전문가들이 확보됐다는 전제하에서의 기간이다. 이러한 잠수함 획득사업, 건조, 그리고 운용경험을 두루 경험할 수 있기는 실로 어렵지만 필자는 다행히 한국 최초의 잠수함 장보고함을 독일에서 도입할 당시부터 현재 추진하고 있는 214 잠수함 도입사업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분야별로 전문가가 보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잠수함을 보유하려고 할 때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호주의 콜린즈급 잠수함 확보 지연 사례, 인도의 원자력잠수함 확보 실패 사례 등은 전문가들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잠수함을 가지려다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험 물려줘야!
해군에 잠수함이 없던 시절에는 미국잠수함을 이용해 잠수함을 잡는 대잠전(Anti submarine warfare)훈련을 했으며, 이 훈련은 해군에서 가장 비중이 컸고, 초급장교에게 인기 있는 훈련이었다. 나는 대위 시절 잠수함 잡는 훈련의 대가가 되기 위해 1986년 6개월간 미국해군에서 주관하는 대잠전 과정 유학을 다녀왔다. 초급장교 시절 대잠전 유학을 이수하면 그야말로 선배들이 데려다 쓰고 싶어 하는 장교 1위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나는 대잠전 유학이수 시기가 한국 잠수함 확보 시기와 맞물려 어학자원이 필요하던 시기에 미국 유학 후 곧바로 독일 잠수함 인수 승조원 후보로 선발됐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상전투함도 알고 잠수함도 아는 경우가 되어 잠수함 인수 후 해군 전 부대를 다니면서 잠수함을 이렇게 잡아라! 하고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의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다음 주부터는 매주 독자들이 잠수함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글로 전개하려 한다. 물론 적에게 유리한 기밀사항은 제외하고 사실들을 흥미를 곁들여 적으려 하는데 독자들의 큰 격려 없이는 불가할 것 같다. 다행히 글을 준비하면서 잠수함 관련 서적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그동안 우리 선배님들이 많은 정리를 해놓았음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글 중에 속하지 않은, 필자가 경험한 것들 위주로 정리해 볼까 한다. 하지만 좋은 글들은 선배님들 글에서 퍼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점 널리 양해해 주실 줄로 믿으며 용기를 낸다.
아무튼 해군생활 31년 중 3분의 2를 잠수함 분야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특히 마지막 해군생활 3년을 독일에서 잠수함 사업을 하며 마치도록 배려해 준 해군에 감사드린다. 또 이러한 좋은 경험을 해군과 후배들에게 글로 남기도록 기회를 주신 국방일보 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200톤 이하는 ‘정’ 300톤 넘으면 ‘함’
- 1000톤 이상은 대양형·중잠수함 300~800톤급은 연안형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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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크기 비교 |
▶원자력 잠수함은 ‘진짜 잠수함’이라 부른다.
연재 기간 중 독자들과 원활한 호흡을 위해 잠수함 종류, 그리고 관련용어들부터 이야기하고자 해 지난주부터 잠수함 종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독자들로부터 궁금증을 해소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는 잠수함의 크기에 따른 분류를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난주 원자력 잠수함을 이야기하면서 디젤 잠수함과 성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했더니, 그 큰 성능 차이를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필자가 글을 시작하면서 독자들과 생각과 경험을 같이 나누겠다고 약속한 대목과 일치해 기분이 좋아, 먼저 독자의 주 질문에 답을 하고 진도를 나가야 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자력 잠수함은 디젤 잠수함이 갖고 있는 약점을 극복한 ‘진짜 잠수함’이라는 것이다. 어떤 잠수함 함장이든지 물속에서 적에게 탐지되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있으면서 은밀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적함에 다가가서 어뢰공격으로 격침하고 새침데기 같이 모른척하고 현장을 유유자적하게 이탈하고 싶어 한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산수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둘레가 4만120㎞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계산을 해보면, 원자력 잠수함은 평균 시간당 약 20~25노트(40㎞)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 속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가정할 때 40여 일이 걸리며, 이 기간 중에 항구에 들러 연료와 식품을 재보급받지 않아도 된다. 반면 디젤 잠수함은 평균 이동 속력 시속 6~8노트(12㎞)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 속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다고 가정할 때 140여 일이 걸린다. 물론 중간에 연료 재보급은 물론 식품도 몇 차례 재보급받아야 한다. 달리는 속력으로 말하면, 원자력 잠수함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포르쉐라고 한다면, 디젤 잠수함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군용 지프 정도가 아닐까? 왜 이런 쓸데없는 비교를 하느냐 하면 포클랜드 전쟁의 교훈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한 1982년 4월 4일 영국은 본토에서 8000해리 떨어진 포클랜드 해역에 원자력 잠수함 5척과 디젤 잠수함 1척을 기동전단에 배속시켜 출정하게 한다. 원자력 잠수함은 10일 만에 전쟁해역에 도착해 아르헨티나 순양함을 격침함으로써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지만, 함께 출발한 오베론급 디젤 잠수함은 주로 수상항해를 해 전력 질주했지만 5주 후에나 전쟁해역에 도착함으로써 원정작전에서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다음은 주 제목으로 설정한 함정 크기에 따른 잠수함 분류를 계속 살펴보기로 한다.
▶크기로 분류할 때는 잠수함·잠수정으로 호칭
다음은 크기에 따라 한국에서는 대형 잠수함, 중형잠수함, 소형잠수함 또는 대양형 잠수함, 연안형 잠수함 등으로 혼용해 부르며, 영어식으로는 중대형잠수함은 Submarine 소형은 Submarine Midget으로 부르고, 독일에서는 U-109, TYPE 7C, Type 212 등을 혼용해 부름으로써 그 크기와 용도를 판단한다. 각국은 편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호칭하지만 주로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기준으로 크기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양형 잠수함/중잠수함 : 1000톤 이상 크기의 잠수함. 한국의 209잠수함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규 잠수함은 거의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연안형 잠수함 : 300~800톤 잠수함, 독일의 U-206,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등이 이 부류의 잠수함이다.
●잠수정 : 50~200톤,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 이 부류다. 크기에 의한 분류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209급 이상은 잠수함으로, 200톤 이하는 잠수정으로 칭한다.
▶정말 헷갈리는 사용 용도, 무장에 따른 영문표기
우리나라와 서방측에서 잠수함의 고유 함 번호 앞에 붙이는 대표적인 영자가 S, SS, SSM, SSK, SSC, SSN, SSG, SSGN, SSBN 등이고 러시아 진영에서는 독자적으로 K자를, 그리고 독일에서는 U자와 S자를 혼용해 붙인다. 먼저 S는 주로 유럽국가 독일·덴마크·스페인 등에서 고유 잠수함 번호 앞에 붙이는 Submarine이라는 의미이며, 미국 등에서 붙이는 SS는 Silent Service라는 의미를 담아 Submarine에 붙이는 이름이다. SSM은 소형잠수함에 붙이는 Submarine Midget라는 의미이며, SSK는 잠수함 공격용 잠수함 Anti-Submarine-Submarine에 Killer의 K를 따라서 SSK라고 칭한다. SSC는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에 전통적인 또는 재래식의 등으로 해석되는 conventional의 앞 자 C를 붙여 편의상 원자력추진 잠수함과 구별한다. 그러나 통상 디젤 잠수함은 C를 생략하고 SS만 사용한다. SSN은 Nuclear Powered Attack Submarine의 약자이며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잠수함에 붙으며, 미국에서는 이 잠수함을 전통적으로 러시아 잠수함 추적용으로 사용해 왔고, 수상 전투함뿐만 아니라 대 잠수함 공격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원자력추진 공격 잠수함이라고도 부른다. SSG는 Guided Missile이라는 의미의 약자 G를 디젤 잠수함에 붙임으로써, 이는 추진은 디젤로 하면서 유도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예를 들면 구소련의 줄리엣급 잠수함 등이 있고, SSGN은 추진은 원자력으로 하면서 핵미사일이 아닌 유도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예를 들면 미국의 전략미사일 탑재 원자력추진 잠수함 중 전략 미사일(핵탄두)을 제거하고 토마호크만 탑재한 카메아미아함 같은 잠수함이다. SSBN은 Ballistic Missile Nuclear Submarine의 약자이며, 추진은 원자력이면서 대륙 간 전략미사일(핵탄두)을 탑재한 잠수함을 말한다. 러시아 진영에서는 독자적으로 잠수함 고유번호 앞에 K자를 붙이나 이는 건조 일련번호이며 서방측에서는 모든 러시아 잠수함에 대해 별도로 분류된 A(알파)급부터 Z(줄루)급 등 주로 알파벳을 붙여 함 종류를 구분한다. 한편 독일 해군도 지금은 잠수함 고유 흘수번호에 S자를 붙이지만 전통적으로 자국 내 식별을 위해서는 U자를 붙여왔다. 독일 잠수함을 U-보트라고 하는 이유는 독일어로 잠수함을 운터제 보트(untersee boot)라고 하기 때문이다. Untersee는 수면 아래라는 뜻이며, 함정을 쉬프(Shiff:주로 대형함)와 보트(Boot:주로 소형함, 보조함)로 구분할 때 잠수함은 보트(Boot) 부류에 속한다는 뜻이 된다.
추진 동력·크기·탑재 무기 등이 ‘種의 기원’
바닷속엔 어떤 종류의 잠수함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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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LA급 잠수함(원자력 잠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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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7C형 잠수함(디젤 잠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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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분열에서 얻어지는 에너지 사용 원자력 잠수함
통상 잠수함은 추진방식, 함정크기, 탑재무장 및 사용 목적에 따라 구별한다.
독자들에게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잠수함은 종류가 너무 많아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을 잠수함이라고 부르고 어떤 것을 잠수정이라 하는지, 또 원자력 잠수함이 맞는지 핵잠수함이 맞는지, 재래식 잠수함인지, 디젤 잠수함이 맞는지,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인지 등등, 물론 필자같이 잠수함을 오래 탄 사람들은 전혀 어렵지 않게 구별하지만, 가끔 듣는 독자들은 많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잠수함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종류별로 부르는 명칭부터 정리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분류하는 방식은 주로 미국식, 독일식을 바탕으로 구분하는바 이를 정리해 보면, 우선 가장 중요한 분류는 추진 방식에 의한 분류이고 그다음이 크기, 탑재무장 및 사용 목적 등에 따른 분류다.
추진 방식으로 분류할 때는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이냐 원자력추진 잠수함이냐로 구분한다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을 재래식잠수함,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핵잠수함으로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추진 방식에 의한 분류가 중요한 이유는 성능상 너무나 차이가 크기 때문이며, 즉 성능이 월등한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어느 국가나 보유할 수 없게 강대국에 의해 통제돼 오기 때문에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만 보유한 국가는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갖는 것이 꿈이다. 먼저 추진 방식에 의한 분류로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이후 약칭 디젤잠수함으로 표현)에 대해 알아보면, 이는 디젤엔진을 가동해 발전기를 구동시키고, 발전기에서 생성되는 전기로 추진모터를 작동시키고, 모터는 프로펠러를 회전시킴으로써 잠수함이 전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을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 약칭 디젤 잠수함이라고 부른다. 물론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은 발전기에서 생성되는 전기를 곧바로 추진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물속에서 장기간 항해하기 위해서는 축전지에 충전을 시켜서 사용한다. 왜냐하면 물 속으로 들어가면 디젤엔진을 작동시킬 공기가 없기 때문이며, 물속에서 이미 충전된 전기를 다 사용하면 물 위로 올라와서 엔진을 다시 작동해야 하고, 잠수함은 이때가 적에게 선체를 노출시키는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장치가 선체는 물 아래에 두고 공기흡기 통만 물 위로 내놓고 수면 아래에서 엔진을 가동시켜 추진하고, 전기를 충전하는 스노클 장치다. 이 모습은 마치 해녀가 몸은 물속에 두고 빨대로 수면상의 공기를 흡입하면서 수영하는 원리와 같다. 이러한 추진 방식을 일반적으로 재래식(전통적인) 추진방식이라 하여 디젤 전기추진 잠수함을 재래식 잠수함이라 부르는데, 이를 혹자들은 구식 잠수함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추진 방식이 재래식,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뜻이지 잠수함 장비가 구식, 재래식이라는 뜻은 아님을 밝혀둔다.
다음은 수중 지속시간이 향상된 디젤 잠수함인데 이는 통상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system: 공기 불요 추진 체계, 또는 무급기 추진체계로 번역됨) 탑재 잠수함으로 호칭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디젤 잠수함과 차이점이 있다면, 전통적인 디젤 잠수함 대부분은 수상에서 축전지를 완전히 충전한 후 물속에서 경제속력으로 항해할 때 부상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약 3~4일이지만, 이 추진 체계를 탑재함으로써 수중 지속시간을 2~3 주 정도 연장시켰다는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AIP를 탑재한 디젤 잠수함이나 통상 우리는 약칭 AIP 잠수함으로 부른다.
다음은 잠수함의 추진에 핵분열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잠수함인데, 통상 원자력추진 잠수함 또는 핵 추진 잠수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혹자는 핵잠수함이라고도 표현함으로써 핵잠수함은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 신문지상에 미국의 원자력추진 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했다고 하면 마치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으로 오해해 환경 운동가들의 시위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어 필자는 이 기회에 독자들에게 원자력추진 잠수함, 약칭 원자력잠수함으로 통칭하기를 제언한다. 아직도 핵이라는 말은 한반도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니 말이다. 원자력 잠수함의 추진 원리는 원자로에서 고농축 우라늄 U-235를 핵분열시켜 고온에 의한 증기를 발생시키고, 이 고압 증기로 터빈을 회전시키며 터빈이 추진 전동기를 회전시키고 최종적으로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함이 전진한다. 그러나 원자력추진 잠수함도 비상시에 대비해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 다니며 이는 원자로에 이상이 있을 시 사용한다.
설마 했었는데 獨 U-21 실전 투입 대마 잡아오다
어뢰 4발로 英 순양함 격침 영국은 ‘기뢰로 침몰’ 오판
영국에서 발행되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군사전문지 ‘Jane's Fighting Ship’을 보면 조금은 의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각 국가의 해군 무기체계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 장(章)을 장식하는 것이 강렬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10만 톤짜리 항공모함도, 강력한 무장을 자랑하는 일만 톤급의 순양함도 아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예외 없이 보일 듯 말 듯 물 위에 드러난 거무칙칙한 둥근 선체, 바로 잠수함이 등장한다. 이는 무기체계로서 잠수함의 위상을 말해주며, 이렇게 잠수함의 위상을 끌어올린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1,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독일 U-보트의 맹활약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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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최초로 어뢰로 순양함을 격침한 독일의 U-21 잠수함(위 사진)과 2005년 취역한 독일해군 최신 |
● 당시 잠수함이 가솔린엔진에서 디젤엔진으로 발전한 것은 디젤잠수함에 원자로를 탑재한 것과 같은 기술적 혁명
사실 디젤 잠수함은 1912년에 미국에서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탑재하면서 건조가 시작됐다. 이전 잠수함에 사용되던 가솔린 기관은 사용연료가 가솔린이어서 발화점이 높아 화재위험이 컸고, 연비도 낮아 장거리나 대양 항해에는 부적합했다. 이와 비교해 발화점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유(디젤유)를 사용하는 디젤기관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높은 데다 연비도 좋아 잠수함의 항속거리를 크게 향상시켰다. 독일의 루돌프 디젤연구소에서 연구한 디젤엔진을 미국 잠수함에 적용했다는 점도 역사적 아이러니다. 미국에서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장착하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 해군의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었다. 잠수함에 디젤엔진이 탑재된 사실은 잠수함 역사에서 보면 디젤잠수함에 원자로를 탑재한 것과 견줄 수 있는 정도의 기술적 진보였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당시만 해도 잠수함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체계라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 독일은 영국의 막강한 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잠수함을 선택
당시 해전의 중심은 중무장한 대형 전함이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각국은 국가 총생산의 0.1%에 해당하는 고가(高價)를 지불하면서 2~3만 톤에 이르는 대형 전함(戰艦)들을 건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시기 최강의 전함 보유국은 경쟁국인 독일에 비해 2배의 전함 총톤수를 갖고 있던 영국이었다. 영국의 상대국이던 독일은 이러한 영국의 지배권에 도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노력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프랑스와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해 막강한 육군을 유지해야 하는 독일이 막대한 경제력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건함(建艦)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은 영국의 막강한 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고민하게 됐는데 그 하나로 잠수함을 선택했다.
▶영국은 잠수함을 비열한 무기체계로 폄훼해 재앙 초래
독일이 잠수함 전력을 증가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 당시 세계의 해양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잠수함을 부정적이고 비열한 무기로 간주하면서 잠수함에 의한 공격을 야만적인 행위로 비난하는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이것은 영국이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는 뚜렷한 무기체계가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현실을 토대로 1907년 헤이그 평화회담에서 잠수함을 포함한 모든 전투함의 교전 규칙을 ‘군함이 적국의 상선을 격침하고자 할 때는 정선(停船)시킨 뒤 경고를 하고 승무원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 격침한다’는 합의사항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합의는 나포한 인원을 태울 공간도 없고, 이 사람들을 자국(自國)의 항구까지 호송할 수도 없는 잠수함은 공격하지 말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합의를 할 경우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독일해군의 지휘부도 이것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 당시 잠수함이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험적으로 실전에 투입한 잠수함, 세계를 놀라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해군은 이왕 잠수함을 만들었으니 한번 투입해 보자는 심정으로 잠수함을 실전에 투입한다. 이때까지도 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역사를 바꿀 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최초의 어뢰공격에 의한 U-21의 영국 순양함 격침
1914년 9월 5일, 훗날 독일과 유틀란트 해전을 치르게 될 대영 함대사령관 제리코 제독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스카파 플로(Scapa Flow)에 제2전투전대만을 입항시키고, 나머지 함대를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로취유(Loche Ewe)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움직임은 독일해군의 잠수함 U-21 함장 오토 헤르싱(Otto Hersing) 소령에게 관측되고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오토 헤르싱 소령은 거대한 함대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그의 젊은 피는 계속해서 공격 욕구를 분출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잠수함은 필요에 따라 잠시 수중에 머물 수 있는 가잠함(可潛艦) 수준에 불과했고, 어뢰 속도도 20노트(시속 36㎞) 정도에 불과해 공격의 결과에 대해 그리 신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잠수함으로도 수상함을 공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토 헤르싱 소령이 지휘하는 독일 잠수함 U-21은 영국 함대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함대의 측면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한 척의 영국 순양함을 향해 4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공격을 감행한 후 이어지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당시 잠수함에는 음파탐지기(소나)가 없었으므로 어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오토 헤르싱 소령의 초시계 바늘이 ‘0’을 가리킬 때, 영국 순양함 패스파인더(Pathfinder) 함은 대폭발에 휩싸였고, 침몰과 동시에 승조원 296명 중 259명을 수중으로 끌고 가 버렸다. 곧바로 U-21의 승조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오토 헤르싱 소령도 잠망경을 통해 불타오르는 영국의 대형 순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수함이 드디어 실전에서 전과를 남긴 것이다. 당시 해상 상태가 좋지 않아 영국함대는 이것이 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순양함의 침몰 원인이 떠내려 온 기뢰(機雷)에 의한 것으로 판단할 정도였다.
獨U-보트에 아사위기 영국 美참전으로 기사회생
美 막대한 물량공세에 獨 패배 끌려가던 U보트 스스로 침몰
▶독일 잠수함 U-9, 한 시간 동안에 영국 순양함 3척을 격침하다 U-21 잠수함이 최초로 어뢰공격으로 영국 순양함을 격침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1914년 바로 그해 9월 22일, 오토 베디겐(Otto Weddigen) 대위가 지휘하는 U-9 잠수함이 1시간 동안에 영국 순양함 3척(Aboukir, Hougue, Cressy)을 침몰시키고 승조원 2200명 중 1459명을 수장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잠수함에 대한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침한 이후 거의 3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해양을 지배해온 영국함대에 최고 치욕으로 기록됐다. 당시 영국 해군 참모총장이던 피셔 제독(提督)은 “넬슨 제독이 그의 전 생애 동안 수행한 전투에서 희생시킨 병사보다 더 많은 병사를 잃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15일 오토 베디겐 대위는 또 한번 영국 순양함(Hawk)을 격침함으로써 최초로 ‘잠수함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함장들의 전투 경쟁도 시작됐다.
▶독일 U-보트 드디어 바다의 종결자로 군림하기 시작!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군함, 상선, 민간선박까지 무제한 공격하다
제1차 세계대전 초창기만 해도 독일 잠수함은 영국 국기를 달고 있는 전투함이나 물자수송선만을 공격했다. 그리고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만들어진 전투수행규칙을 준수해 민간선박들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지 않거나, 격침할 일이 있으면 승조원에게 미리 경고해 구명보트에 탑승할 시간을 줬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있는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회피하고자 영국의 민간선박들은 중립국 국기를 게양하고 항해하기 시작했다.
헤이그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전투수행규칙은 잠수함에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독일 잠수함이 전투수행규칙을 지키다가 무장한 상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적의 수상전투함에 쫓겨 다니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합국 측에서 독일 잠수함을 격침하고자 민간선박으로 위장한 전투함까지 동원하자 1917년 독일해군은 영국으로 접근하는 모든 선박을 무제한 공격한다는 이른바 ‘무제한잠수함 작전’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영국을 항복 직전으로 몰고 가다
●미국의 참전으로 영국은 기사회생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은 엄청난 결과와 파장을 불러왔다. 복잡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전투수행규칙에서 해방된 독일해군의 잠수함들은 1917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444척, 총 90만 톤의 선박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독일 해군지휘부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U-보트 수를 150척 이상으로 늘려 군수물자 수송선박을 지속적으로 격침함(통상파괴전)으로써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독일 잠수함에 의해 해상교통로가 차단된 영국은 대외무역은 물론이고 영연방(英聯邦)에서 오는 증원 병력의 수송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 요소인 연료의 재고가 8주분 이하로 떨어지면서 영국의 전쟁지도부는 항복 또는 평화협상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가 흘렀다.
브레이크 고장 난 차(車)가 내리막길을 타듯 패전(敗戰)의 길로 치닫던 영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을 찾게 됐다. 영국은 자국의 강력한 첩보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중에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독일이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만약 미국이 참전한다면 독일이 라틴 아메리카 정부를 지원하려고 한다는 주미 독일대사의 서한을 찾아낸 것이다. 이 서한은 미국에 전달됐다. 이 서한의 내용은 사실 주미 독일대사가 미국의 참전을 걱정해서 이를 견제하는 방안에 대해 타당성을 개인적으로 검토한 것에 불과했지만 당시 고립주의를 지키고 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윌슨 대통령의 격분은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국적의 선박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참전의 명분은 더욱 명확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원인과 배경은 훗날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됐다. 현재 미국의 참전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문서 공개를 통해 확실하게 그 원인과 배경이 밝혀진 만큼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역사적 평가는 수정돼야 할 것이다.
한편 1918년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면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의 수송선과 이를 호위하는 호위함대를 전쟁에 투입했다. 이러한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은 아사(餓死)직전에서 극적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영국 선박 90%가 U-보트에 의해 침몰
●전투에선 이겼어도 전쟁에 진 U-보트들, 적 항구로 끌려가다 스스로 침몰
미국의 참전으로 불리해진 상황 속에서도 독일의 U-보트들은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2500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1218만 톤의 선박을 격침하는 전과를 달성했다. 당시 격침된 영국 선박의 90%는 독일 잠수함에 의한 것이었다.
잠수함이 이러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지만, 미국이 막대한 물량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에 비해 독일해군은 잠수함 척수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사용될지도 모르는 수상함 건조에 더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해군의 정책은 역사적 아이러니이자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결국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독일해군, 특히 독일 잠수함들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장해제 및 전쟁 배상금으로 영국의 스카파 플로 항구로 끌려가던 해상에서 독일 잠수함들은 마지막으로 독일 해군기를 올렸다. 이 신호를 시작으로 독일해군의 모든 잠수함은 선체바닥에 있는 충수구(물을 채우는 장치)를 열어 막대한 해수를 함 내부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스스로 침몰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례로 스스로 침몰하는 독일 잠수함의 행동에 놀란 영국해군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이 엄포에 굴복한 독일 잠수함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이렇게 독일의 잠수함은 한 척, 한 척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검푸른 바다 밑으로 사라져 갔다. 위대한 잠수함 강국의 역사를 기록한 채 말이다.
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 영국 ‘초상집’ 독일 ‘잔칫집’ U-47, 英 전함 격침 양국 분위기 극과 극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잠수함이 전쟁에 공헌한 가장 큰 전과로 영국으로 향하는 전쟁 물자 수송선박에 대한 무제한 통상파괴전으로 영국을 항복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순양함을 격침한 U-21, U-9 등 잠수함의 활약을 최고의 전투로 꼽는다. 이유는 군함을 공격할 때 모든 것을 걸기 때문이다. 상선 공격은 처음 실패할 경우, 제2ㆍ제3의 재공격을 시도할 수 있지만 군함은 공격에 성공하면 살아남고 실패하면 오히려 공격을 받아 모두 죽을 수 있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역사상 위대한 전투는 모두 사활을 걸고 치른 것으로 기록된다. 이 목숨을 건 전투들이 대부분 해상에서 이뤄졌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는 적 항구까지 침투해 영국의 전함을 격침한,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빛나는 잠수함 전투사례 중 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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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파 플로기습작전에성공한제2차세계대전 대표잠수함 유형, U-995. 총 693척건조됨. |
▶U-47, 영국 국민을 우롱하고 독일 국민의 사기를 드높이다
● U-47의 스카파 플로 기습작전은 은밀 작전의 대성공
제2차 세계대전 중 되니츠 제독은 해군 지휘부에 300척의 잠수함이 있으면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되니츠 제독은 어쩔 수 없이 큰 쇼(show)를 기획하게 됐다. 히틀러가 거대한 쇼를 좋아한다는 특성을 알고 그를 만족하게 할 만한 큰 쇼를 성공해 잠수함 함대에 대한 지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되니츠는 쇼를 성공하고 자신이 의도한 대로 그 효과를 충분히 얻기 위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의 전과에 버금가는 전과를 내야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독일 잠수함이 영국 해군의 스카파 플로 해군기지에 침투해 정박 중인 전함을 격침하는 작전 계획이었다. 스카파 플로 해군기지는 영국 함대의 주력(主力) 기지임은 물론이고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잠수함을 비롯해 79척의 독일 군함이 무장해제를 당한 채 7개월이나 억류돼 있다가 항복을 거부하고 스스로 침몰을 선택한 독일인의 한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쇼의 주인공은 U-47의 귄터 프린 함장이었다. U-47은 1939년 10월 8일 킬(Kiel) 항을 출발해 10월 13일 새벽에 스카파 플로 외항에 도착했다. 물론 영국 해군도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항구 입구에 폐선을 침몰시켜 수로를 좁게 만들어 놓은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그물망을 설치하고 구축함 등으로 경비하면서 기지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U-47 함장은 절묘하게 잠수함을 몰고 항구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마침내 U-47은 표적을 발견하고 한 발에 이를 명중해 침몰시킬 수도 있었지만 총 3발의 어뢰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한 발의 어뢰 폭발음만 들렸을 뿐이고, 여전히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았던 로열 오크함은 손상 없이 건재했던 것이다. 어뢰 불량이었다. U-47의 함장 귄터 프린 소령은 순간적으로 작전을 포기할까 망설였으나 다시 이를 악물고 3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다리던 순간, 이윽고 연속적인 대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영국의 전함 ‘로열 오크(Royal Oak)’가 천천히 침몰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그리고 또 한 발의 어뢰가 수상항공기 모함을 대파한 전과를 확인하고 U-47은 신속하게 항구를 탈출했다. 되니츠가 계획한 쇼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해서 독일 잠수함 함대는 과거 자신들이 경험한 스카파 플로의 비극(悲劇)을 영국에 되갚은 것은 물론이고 히틀러와 독일 국민의 큰 관심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되니츠 제독은 잠수함 건조 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 전쟁영웅을 향한 국민적 열광, 또 다른 영웅을 만든다
물론 작전 성공 후 U-47이 모항인 킬에 돌아왔을 때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음은 물론이다. 입항할 때 부두에는 해군 참모총장 라에더 제독이 환영 나왔으며 함장 프린 소령은 즉시 베를린으로 가서 꽃 종이를 뿌리며 환호하는 베를린 시민의 환영을 받은 후 히틀러로부터 직접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 작전은 역사상 잠수함의 은밀성을 가장 잘 활용한 성공적인 작전의 한 예로 기록되고 있다.
‘국민의 사기를 드높여 준 성공한 작전! 국가원수의 직접 격려!’ 그것은 수많은 U-보트 함장들의 충성심을 유발했으며, 바다에서 전투하다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여겼던 U-보트 전사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줬음이 틀림없었다.
▶이리떼 전술의 성공, 잠수함 강국 위치 확고히 하다
영국 함대의 강력한 해상봉쇄 때문에 독일 해군 수상전투함이 항구에 묶여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독일의 잠수함 함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이 거뒀던 영광을 되살리고 있었다.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 부대가 사용한 전술은 이리떼(wolf pack) 전술이었다. 칼 되니츠 제독이 포로수용소에 있던 시절에 창안한 이 전술(戰術)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됐다.
먼저, 잠수함을 넓은 대서양에 분산시켜 초계라인을 형성하며, 먼저 적 수송선단을 탐색하도록 계획한다. 다음으로 초계 중인 잠수함 중 한 척이 적의 수송선단을 발견하고 이를 잠수함 사령부에 보고하면 사령부는 주변에 있는 독일 잠수함을 최대한 동원(動員)해 집결시킨다. 어느 정도의 척수가 확보되면 잠수함 여러 척이 적의 대잠 방어망을 뚫고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서 수송선단을 파괴함으로써 전과를 확대한다.
이리떼 전술은 큰 효과를 발휘해 한 번에 20척이 넘는 수송선을 격침한 사례가 있을 정도였고, 1942년까지 영국을 다시 한번 거의 파산 상태까지 몰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에 대해 영국의 처칠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서 독일 U-보트와의 전투를 ‘대서양 전투 (Atlantic Battle)’로 이름 짓고 “전쟁 기간에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오직 U-보트에 대한 공포였다”고 술회(述懷)하기도 했다. 연합국의 대잠 능력의 현저한 발전과 미국의 참전으로 U-보트 작전이 쇠퇴하기는 했지만 독일 잠수함 부대는 제1,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연합국 군함 148척을 격침하고 45척을 대파했으며 상선 2759척을 격침해 총 1411만9413톤에 달하는 손실과 20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혔다.
실로 해전사에 기념비적인 전과를 기록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이 잠수함을 보유하려는 열망을 낳게 한 불멸의 무기체계가 된 것이다.
숨어라 … 찾아라 … 잠수함 vs 대잠함·항공기 오늘도 숨바꼭질
- 한국 잠수함의 태평양 정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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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함정 총출동 림팩훈련 ‘국력 바로미터’
한국은 12번 참가 … 필자는 2002년 훈련 새로운 전술 보며 발전의 원동력 기회로
한국 해군 잠수함으로는 세 번째로 림팩훈련에 참가한 나대용함의 하와이 입항 모습. ▶잠수함을 이해하려면 간접적으로라도 타 봐야!
잠수함 훈련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 잠수함과 원하는 수준의 훈련을 할 수 있지만, 20여 년 전 한국 해군에 잠수함이 없던 시절 미국 잠수함과 대잠훈련(대잠함과 대잠항공기 등이 참여하는 잠수함 잡는 훈련)을 하려면 통사정해야 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훈련이 서브 팸(Sub-Fam : Submarine -Familization)이라는 훈련이다.
한국말로는 잠수함 친숙 훈련이다.
미국 잠수함은 일정 침로로 수상항해, 잠망경 및 스노클항해 그리고 수중항해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잠망경·통신·스노클·레이더 마스트 등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고 수중으로 완전히 들어가 기동하면서 “내가 바다에 나오면 이런 모습이니 나를 잡으려면 잘 보고 눈과 탐지장비를 숙달시키시오!”하는 서비스 훈련이자 기초 중에 기초훈련이다. 우리 대잠함과 대잠항공기는 잠수함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멀어지면서 눈으로 숙달하고 레이더·음파탐지기로 잠수함을 탐지하는 요령을 숙달하게 된다.
이런 훈련을 익힌 뒤 잠수함을 물속에 들어가게 하고 자유공방전을 벌여도 음파탐지기로 잠수함을 잡을 확률은 20∼30%에 불과하다.
양측이 알고 지정된 구역에서 이 같은 훈련을 벌여도 잡을 확률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망망대해에서 잠수함을 탐지하기란 정말 어렵고도 힘든 작전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도 잠수함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전문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기보다는 중간 중간에 부담 없는 읽을거리를 펼쳐볼 생각이다.
다행히 필자가 2002년 나대용함을 몰고 126일간 하와이 림팩훈련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것들을 설명한다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잠수함 생활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부터 약 4회에 걸쳐 독자들을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로 모시고 가면서 잠수함 생활에 대한 친숙 훈련을 하고자 한다.
▶한국 잠수함 림팩훈련 도전과 성공
림팩(RIMPAC : 환태평양)훈련은 미국이 주도해 하와이제도와 인근의 해상에서 실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지는 해상기동훈련이다. 훈련의 내용은 가상의 2개 국가 간에 영유권 분쟁이 무력충돌을 수반한 정치적 갈등으로 번져 전쟁이 발발하면, 참가국 해군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하와이제도 일원의 태평양에서 가상으로 전쟁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해상훈련은 20여 일간 실전과 다름없이 진행된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원자력 잠수함, 이지스급 군함과 구축함 외에도 해병대·해양경비대까지 참가하며, 각 나라도 자국이 갖고 있는 최신형 전투함을 참가시킨다. 덕분에 2년마다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는 림팩훈련 참가국들의 국력과 해군력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변한다. 각 나라들이 이끌고 온 군함은 곧 그 나라의 국력을 대변하고 훈련의 성과로 각 국가 해군의 작전수행 능력을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최신 해군 무기의 성능과 우리의 성능을 비교해 볼 수도 있고, 해상훈련 과정에서 선진국의 새로운 전술을 접할 수 있으니 림팩훈련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첨단 해군력을 둘러보고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훈련 일정에는 각국이 보유한 첨단무기의 실제 사격(live fire)도 포함된다. 폐기 처분해야 할 군함 표적을 물 위에 띄어 놓고 잠수함을 포함한 각 나라 군함들이 유도탄과 함포를 쏴 표적을 침몰시키는 과정도 들어 있다.
▶한국 해군의 림팩훈련 참가 역사
림팩훈련은 1971년에 최초로 실시됐으며, 필자가 참가한 림팩 2002 훈련은 18번째 훈련이었다. 한국 해군은 1990년에 최초로 참가한 이래 2012년까지 12번 참가했으며 한국형 구축함(DDH) 2척,잠수함(209급) 및 P-3C 등 수중·수상·항공의 입체전력으로 구성됐다.
한국 해군 잠수함은 1998년 이종무함이 최초로 참가한 이래 2년마다 참가하고 있으며, 나대용함은 3번째로 훈련에 참가했다. 특히, 2002년에는 나대용함이 한국 잠수함으로는 최초로 잠대함 유도탄(SUB-HARPOON)을 발사하는 훈련이 포함돼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훈련이었다.
아울러 실전과 다름없는 해상훈련과 무장 실제사격을 마치고 입항하면 곧바로 강평회를 연다. 이때 피치 못할 각 나라의 능력이 적나라하게 평가되는 고통스러운 자리가 이어진다.
약 20일간 해상훈련 도중 장비 고장으로 훈련을 중단하고 들어온 군함,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행동을 한 군함,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격침 판정을 받은 군함, 무장실사를 제대로 못한 군함, 이런저런 사유로 훈련 동안 지휘부를 긴장시킨 군함 등의 갖가지 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훈련 중 의사소통과 전문처리 등이 영어로 이뤄지고,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환경에서 훈련이 진행되므로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원양훈련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림팩훈련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통상 6개월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이 기간에는 승조원들이 평소보다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림팩훈련 준비를 위한 종합계획(Master Plan)과 월간·주간 단위의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해 준비 상태를 면밀하게 살핌으로써 모든 사항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나대용함은 3개월간의 사전 수리 기간 중 열대 해역에서 고장이 발생될 수 있는 장비를 집중해서 정비했고, 예기치 못한 장비 고장에 대비해 충분한 수리부속을 확보하는 한편, 승조원들의 자체 수리 능력 배양에 집중했다. 또 훈련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매일 1시간씩 영어학습을 했으며 주기적인 평가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임전(臨戰)해서는 필승을 해야 하는 군인으로서 장교뿐만 아니라 부사관을 포함한 모두가 혼연일체로 해전에서 승리를 위해 전술을 연구하는 등 제반 분야에 대해 빈틈없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반도 근해의 잠수함 작전 환경과 하와이제도 근해의 훈련 환경은 사뭇 달라 전 승조원이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 림팩훈련, 태극기 휘날리다
- 신상·신체 결함 등 승조원 선발 깐깐한 체크 장비 점검·부속 준비 등 참가국 모범 모델로
나대용함 승조원들과 하와이 교민들이 친선축구를 하기 전 기념촬영하고 있다. 필자 제공 ▶대잠전에서는 한 길 사람 속도 열 길 물속도 모른다?
지난달 29일자 글 중 잠수함과 수상대잠함 간 자유공방전 국면으로 들어가면 잠수함을 탐지할 확률이 20~30%에 불과하다고 하니까 실망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대잠전에서는 맞지 않다.
한 길은 어른 키만 한 길이의 단위라고 하니 열 길은 대강 한국사람 키로 하면 16~18m 정도 되지 않을까? 햇빛의 투과도로 보면 빛의 양은 수심에 따라 급격히 줄어들어 1m 수심에서는 표면의 45%, 10m 수심에서는 16%, 100m 수심에서는 1%만 남게 되는데 해수에 부유물이 많을수록 투과 수심은 감소해 암흑천지요, 여기에다가 잠수함을 탐지할 때 사용하는 음파는 수온·밀도·염도 등과 어우러진 해수라는 매질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투과하면서 굴절도 많이 일으킨다. 그러니까 바닷속은 눈으로 들여다보기도, 음파를 보내 탐지하기도 어려운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물 위는 공기라는 단순한 매질에 의해 소리와 전파가 전달돼 레이더에 의한 표적탐지가 쉽지만 물속은 바닷물 온도·밀도·염분도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매질을 통해 표적을 탐지하는 수단인 음파가 전달되기 때문에 음파의 전달이 정직함이 없다.
잠수함 함장은 그래서 바다에 나가기 전에 해역별 음파전달 조건 등 해양환경 자료를 숙지하고 당일 그 해역에서의 예상 음파 탐지거리(PDR:Predicted Detection Range) 등 중요한 것은 외워서 나간다. 그래야 표적은 먼저 탐지하고 잠수함은 표적에서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 내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통계적인 데이터를 갖고 작전한다고 할지라도 바다는 매일매일 해역에 따라 바람·온도·수중 생물들의 활동 소리 등이 범벅돼 변화무쌍한 음파전달 조건을 만들기 때문에 잠수함은 물속에만 들어가면 기고만장해지고, 대잠함은 이것을 피난처로 삼는 잠수함과 싸워야 하니 실로 피곤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잠수함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지 잠수함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잡고 잡히는 잠수함과 대잠함, 대잠항공기의 이야기는 차후 전사 속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 회에도 하와이로 가기 위한 잠수함 친숙훈련을 계속하고자 한다.
▶잠수함 원양항해 훈련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나?
●첫째, 눈빛만 보고도 서로 알 수 있는 승조원을 준비
조직의 성패는 그 구성원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를 잠수함에서는 더욱 실감 나게 느낀다. 이 설명에 앞서 우선 잠수함 건조의 미학을 말하고 싶다.
완전한 진원으로 된 깡통과 같은 선체에 모든 장비를 균형 잡아 배치하고 배관·케이블로 된 신경조직을 만들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술은 참으로 놀랍다. 특히 함의 중앙에서부터 함수·함미의 균형을 잡아주며 장비의 정확한 상하 배치로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은 예술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 무기체계 중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장비가 잠수함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잠수함은 수중에서 높은 수압을 받기 때문에 작은 손상에도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상함은 선체에 구멍이 나도 응급처치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잠수함은 높은 수압으로 인해 순식간에 함 내 전반에 걸쳐 피해가 따른다. 잠수함 승조원은 이러한 비상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훈련에 익숙해져 있어야만 한다.
잠수함이 수상함보다 복잡한 이유 중 또 하나는 비상 시 운용되는 장비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비들은 각각 자동모드, 반자동모드 그리고 수동모드 운용개념으로 운용되는데,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 사람이 강제로 작동시켜 승조원의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수함 승조원을 양성하는 데 약 1년여 기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사람의 능력에 따라 숙달되는 정도가 달라서 비교적 우수한 승조원을 선발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모든 사고는 승조원의 서툰 장비조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잠수함 승조원들은 잘 안다. 특히 작동법을 잘 알아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경계 대상이기 때문에 승조원들은 잠수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이고 상하 간 눈빛만 보고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려야 한다.
하와이까지 대장정을 위해서는 우선 가정에 문제가 있는지, 개인 신상에 문제가 있는지,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는지 등 완전하게 신상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훈련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40명의 승조원 중에서 이러한 문제가 있는 대원은 우선 선별해 잠수함에서 내리도록 하고 타 함에 근무하고 있는 승조원 중 우수한 승조원으로 교체한다. 이렇게 최종 40명이 선발되면 특수 신체검사를 하고 긴 항해를 준비한다.
●둘째, 장비 고장 시 2중3중 대비책은 잠수함의 특징
통상 긴 항해를 앞두면 무엇보다 장비가 완벽히 작동하도록 점검하고 만약을 대비해 수리부속품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지금까지 하와이 대장정에는 가장 최근에 건조된 잠수함 또는 6년에 한 번씩 조선소에서 이뤄지는 정기수리(약 8개월간 분해수리)를 가장 최근에 마친 잠수함을 먼저 지정해 왔다.
이는 장비 신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함정의 장비책임자들은 주요 장비의 과거 고장사례, 수리사례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고장에 대비해 충분한 수리부속품을 준비한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로 림팩훈련 기간 중 한국 잠수함만 유일하게 훈련 도중 장비고장을 일으키지 않아 외국 해군으로부터 부러움과 칭송을 받았다. 이는 모두가 출항 하루 전까지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수리부속품들을 준비하며 고장 시 대비 2중3중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전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잠대함 유도탄 첫 발사 나대용함 ‘일발필중’ 솜씨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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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먼저 해군사관학교 3기 동문 김광식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선배님 ! 얼굴도 모르는 후배에게 편지로 칭찬해 주시고, 글쓰는 데 참고하라고 일본 잠수함 소설책까지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6회에서 독자가 보내주신 질문 “잠대공 미사일 개발은 어디까지 왔나?”를 나중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고 이번 회는 나대용함이 하와이에서 한국해군 최초로 잠대함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하와이 정벌기를 마치려 한다.물속에선 전등으로 밤낮 구분 마음 평정 위해 종교활동 필수 산소 부족 과도한 운동은 금물
잠망경으로 관측한 표적 항공모함. 잠대함 미사일을 잠망경으로 촬영한 모습. ▶림팩훈련 참가 해저 5만리 대장정
● 물속에서는 전등을 켜고 끔으로써 하루 시간을 알린다.
어떤 사람들은 잠수함에 유리창이 있느냐고 묻는다. 현대 잠수함들은 통상 물속 300~500미터 정도에서 높은 수압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압력선체 전반에 압력을 일정하게 받도록 같은 재질로 완벽한 원형으로 건조돼야 한다. 따라서 일정 부분을 강도가 다른 유리 같은 투명한 재질로 할 경우 약한 수압에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된다.
또한 청명한 날씨라도 수중 10미터만 들어가면 앞을 볼 수가 없어 유리창이 필요 없다. 따라서 수중에서는 밤낮 구분이 없으며 오로지 당직자가 전등을 켜주면 일어나고 꺼주면 잠을 잔다. 그러니까 시계를 보고 밤낮을 구분하는 것이다.
결국 당직근무 시간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정비 및 훈련시간을 제외하고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든지 아니면 독서를 하게 된다. 당연히 물속에서는 TV를 볼 수 없으니 독서를 많이 할 수밖에. 독서하지 않는 사람, 잠수함을 태우면 습관이 바뀔까?
●마음의 평정을 위한 종교 활동도 필수적
군에서 종교생활을 권장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각자의 정신력을 강화한다는 수단이기도 하다. 절대자의 능력은 물속에도 미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같은 공간 내에서 찬송ㆍ찬불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입정하면서 안전항해에 대한 감사와 임무완수에 대한 각오를 되새긴다.
국내에 있으면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 사소한 장비고장이나 인원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하와이 왕복항해와 해상훈련을 수행하는 해저 5만리의 여정에서 나대용함의 승조원들과 장비들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승조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함장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기도하며 개개인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해 준 덕분이 아닐까?
●기관장의 1호 지시, 물을 아껴라!
출항하기 전에 잠수함 탱크에 물을 받아가지만 아껴서 써도(중요한 부분만 씻어도) 1주일 정도면 바닥이 난다. 잠수함에 있는 조수기(말 그대로 물을 만들어주는 장비)를 이용해 해수의 염분을 제거해 식수 및 샤워를 하는 데 사용하지만 하루 2000리터 정도만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물을 아껴야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해수를 정제한 물을 마시게 되니 물맛이 달라진다.
조금 더 길게 항해를 하게 되면 샤워 횟수를 지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조수기가 고장이라도 나면 함 내 분위기는 썰렁해진다. 물을 잘 공급해 주는 기관장이 인기가 좋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기관장은 물을 아끼기 위해 승조원 수염 기르기 대회를 한다. 가장 멋있게 수염을 기르는 승조원에게 상품을 수여한다. 황제수염, 심봉사수염, 선비수염 등등… 재미있는 분위기를 잡아보지만 결국은 물을 아끼기 위한 기관장의 작전이다.
●기관장의 2호 지시, 과도한 운동은 삼가라?
잠수함이 작으면 작을수록 함내 대기관리가 중요하다. 함내에서는 승조원들의 호흡으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줘야 하고 산소가 부족하면 압축해 싣고 간 산소를 방출함으로써 대기를 관리한다. 과도한 운동을 하면 많은 산소를 소모하기 때문에 과도한 운동은 금한다.
물론 3000톤급 이상의 디젤 잠수함 또는 원자력 잠수함의 경우 산소 발생기가 있어 이러한 제한사항이 완화되겠지만 아무튼 잠수함에서의 과도한 운동은 환영받지 못한다. 독일해군 잠수함에서는 1인 시간당 산소 소모량은 운동할 때 26리터, 당직근무 시 24리터, 누워 있을 때에는 22리터로 통계화해 산소 소모량을 억제하고 있다. 너무 째째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한다.
우리 209급 잠수함은 작전을 할 때 1일 이산화탄소 제거 화학물질 사용비가 유류 사용비의 3배 정도 된다. 하지만 이는 스노클 시 외부공기를 흡입하기 때문에 스노클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무튼 함 내에서 과도한 운동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저절로 체력이 저하됨을 느낄 수 있다. 함 내에서 운동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3000톤급 정도는 돼야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승조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잠수함을 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대용함 최초로 잠대함 유도탄 발사에 성공하다
림팩훈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가상전투훈련에서 나는 보다 많은 적함을 격침할 욕심으로 훈련 주최국인 미 해군에 더 넓은 전투구역을 요청해 나대용함은 전투구역으로 100×100마일을 할당받았다.
가상적군인 청군의 P-3 항공기 2대가 24시간 초계하는 상황에서 하루 2회 정도 축전지 충전을 위해 잠망경심도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가 대잠 항공기인 P-3가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된다.
나는 훈련을 하면서 디젤잠수함으로 광활한 대양에서 작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해역에서 연안 가까이에 위치해 작전한다면 어선·상선들의 소음에 묻혀 숨을 곳이라도 있지만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참으로 숨을 곳이 없었다. 훈련을 하면서 P-3 항공기를 따돌리기에 급급했으며 급기야 16시간 이상 수중의 일정한 심도에서 정지(Hovering)하는 회피전술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공격을 해야 하는 수송선단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음파가 잘 도달하지 않는 음영(陰影) 구역을 이용해 가까스로 수송선단에 접근, 2회 공격함으로써 11척 10만 톤 가까운 격침 성과는 얻었지만 가상 피격상황을2 회피하지 못했다. 대양에서 디젤 잠수함은 한번 탐지를 당하면 쉽게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원자력 잠수함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튼 피말리는 가상전투 국면을 성공적으로 종료하고 나대용함은 한국해군 최초로 72㎞ 떨어진 미 해군 퇴역순양함 White Planes에 대해 실제 잠대함 유도탄을 명중시킴으로써 일발필중의 사격 능력을 과시했다.
마침 그날이 목요일이었는지라 우리는 케이크와 더불어 조촐한 함내 맥주파티를 했다(독일해군도 매주 목요일을 “바닷 사람의 일요일/Seaman Sunday”이라 해 출동 중 잠수함 내에서 파티를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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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숙달+참가국 제원 정보’ 多 꿰야 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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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팩훈련 가상전투 세 번 공격당하면 아웃 정확한 항해 위해선 꼼꼼한 해도 연구 필수
하와이에 상륙한 나대용함의 승조 장병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잠수함은 잡아본 사람이 잡는다. 대잠전은 경험이 최고!
태평양 정벌기를 계속 이야기하기 전 먼저 독자들의 높은 관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달 22일 자 글(200톤 이하는 잠수정, 300톤 이상은 잠수함)은 국방일보와 유용원의 군사세계에 게시되자마자 이틀 만에 조회 수 3만 건을 돌파하더니 지금도 꾸준히 상승하여 3만7000건을 훌쩍 넘었다. 29일 자 글(림팩훈련)도 조회 수가 2만4000건을 상회하고 있다. 애초 처음 글을 시작하기 전 들뜬 기분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은 반면 과연 독자층이 있을까 걱정 어린 의문을 더 많이 한 게 사실이다. 지금은 이 같은 독자들의 폭발적 관심과 성원에 힙 입어 더 열심히 잠수함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매일매일 새롭게 하는 중이다.
훌륭한 학생이 훌륭한 선생을 만든다.(?) 29일 자 글에서 잠수함은 잡기가 어려우므로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어떤 경험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필자가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 유학 시 찾은 답안은 ‘시도 때도 없는 훈련’이라는 것이다. 나토 회원국 잠수함은 언제라도 단독으로 이동을 시키지 않는다. 나토 회원국은 협약에 의해 공동으로 군비를 분담하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공동으로 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잠수함이 스페인 인접 해역을 지나가면 스페인 해군 대잠함, 항공기들은 당연히 ‘벌떼’(?)같이 달려들어 잠수함 잡는 연습을 하고 잠수함은 이를 공격하고 회피하는 연습을 한다. 잠수함은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이 잘 잡는다.
음탐사(음파를 이용해 표적함을 탐지하는 함정의 부사관)는 음파탐지기 전시 화면에 나타나는 잠수함 흔적만 보고 잠수함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육상훈련장에서 훈련하면서 잡아본 것과 해상에서 실제 잡은 것과 비교해 분석하는 경험이 절대 필요하다. 일본이 왜 수십 년간 겉으로는 잠수함 보유 척수를 16척이라고 표방(지금은 22척 체제 유지)하고 실제로는 2~3척의 잠수함을 더 보유하면서 이들을 훈련함으로만 운용해 왔는지? 대잠초계기 P-3기는 왜 그리도 많은 100여 대를 운용하고 있는지? 원자력 잠수함만 운용하는 미국은 왜 비싼 돈을 주고 스웨덴의 고틀란트급 디젤 잠수함을 임대해 표적함으로 운용하면서 원자력 잠수함에 디젤 잠수함 잡는 훈련을 시키는지 등을 살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잠수함은 80%를 눈으로 잡아내고 20%는 전파 및 음파탐지 장비로 잡아내며 그중에서도 80%는 잡아본 사람이 잡는다는 것이 정설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신념은 기적을 낳고 훈련은 천재를 만든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전투천재가 필요하다. 이 정도로 대답을 하고 오늘도 잠수함 친숙훈련을 위해 하와이로 계속 가 보자.
▶원양훈련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나?(계속)
●세 번째, 교육훈련은 눈 감고 할 수 있는 수준, 전투 정보는 모두 암기
림팩훈련은 각종 전투의 경연장이며, 해상 신무기체계 시험장이기도 하다. 특히 디젤 잠수함은 원자력 잠수함에 비해 기동성과 속도가 떨어지는 관계로 전술적으로 숙달되지 못하면 공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격 당할 가능성이 많다. 함장을 비롯한 장교들은 이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출국 전 육상 전술훈련장을 이용해 충분한 전술과 노하우를 터득해야 한다.
그 과정은 우선 참가국 함정의 제원 및 특성을 모두 암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파로 식별하기 위해 참가함정의 추진기 특성, 음파탐지기 및 레이더 전자파 주파수 범위 등을 암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공격 전 잠망경에 의한 신속한 식별을 위해 멀리서 함정의 형상만 보아도 어느 함정인지 알 수 있도록 함정 실루엣 등을 암기해야 한다.
말이 쉬워 암기지 수십 척이나 되는 참가 함정들의 제원 및 특성을 암기하는 데는 장기간이 소요됨은 말할 것도 없다.
잠수함은 공격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잠망경으로 표적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잠망경을 물 위로 노출시켜야 한다. 이때가 대잠항공기에 의해 발각되기 가장 쉬운 순간이다. 그러므로 함장의 잠망경 운용술 숙달은 공격을 할 수 있느냐, 공격을 당하느냐를 결정 짓는 핵심적인 요소다. 통상 잠망경을 물 위에 올려놓고 신속하게 표적을 탐색하는 시간은 7초 정도다. 7초 이내로 주변 표적을 관찰하고 공격결심을 해야 한다. 관측하는 도중에 대잠항공기에 위치가 노출되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는 함장이 갖고 있는 가장 어려운 고민이다.
대잠항공기에 발각될 경우 원자력잠수함은 깊은 심도로 변경해 고속으로 현장을 이탈할 수 있겠지만, 디젤 잠수함은 고속으로 현장을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지 않도록 전술적인 상황판단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또한 림팩훈련에서는 훈련 규정상 가상전투에서 3회 이상 공격을 받으면, 훈련세력에서 제외된다. 이는 함장 개인의 능력은 물론이요, 그 나라의 전투수준을 평가하는 경우가 되므로 국내에서의 충분한 교육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네 번째, 정확한 항해는 사전 해도연구부터 시작!
2년마다 열리는 림팩훈련은 봄에 진해를 출발해 여름 중반에 돌아온다. 진해를 출발할 때는 온 가족의 환송을 받고 출발하는데 신혼부부의 경우는 부두의 이별이 만만치 않다.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더운 지방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그나마 잠수함 내에서 냉방시설을 가동하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조절이 용이하고, 장비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잠수함은 물속에 들어가기 전 GPS(위성항해장비)로 최종 위치를 전달받으며, 물속에 들어가면 INS(관성항해장비)로 함정의 위치를 자동으로 추적한다. 이러한 위치데이터는 매일 스노클을 할 때 위성항해장비에 의한 위치로 최신화해야 하며, 1일 오차범위는 약 2마일 정도로 정확하다. 이런 장비의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듯이 잠수함은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잠수함은 특히 연안항해를 하든지 원양항해를 하든지 사전에 해도에 나와 있는 수심, 침선, 해저 지질, 해류 이동방향 및 속도 등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행해의 성공은 바닷속 정보를 사전에 얼마나 완벽하게 연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수년 전 미해군 잠수함이 수중에서 고속으로 항해하다가 해도에 나와 있지 않은 암초에 부딪혀 인명사고를 내고 끔찍한 재난으로 이어질 뻔했던 사고사례는 피할 수 없는 잠수함 운명의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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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과 대잠함, 항공기 간 끊임없는 경쟁
하와이로 가기 전 지난 5회차 글에서 언급한 ‘잡고 잡히는 잠수함과 대잠함, 대잠항공기 간의 경쟁’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고자 한다.
1914년 9월 독일의 잠수함 U-21은 영국 순양함 페스파인더(Pathfinder)에 대해 최초로 어뢰공격을 해 승조원 296명 중 259명을 희생시키면서 잠수함과 대잠세력의 잡고 잡히는 경쟁을 촉발했다. 이 당시 연합국은 잠수함이 다니는 주요 길목에 어망을 설치하든지 트롤어선으로 어망을 끌게 했고, 1917년에는 현대 음파탐지기(소나:Sonar)의 전신인 ASDIC(Allied Submarine Detection & Investigation Committee)를 발명해 잠수함을 잡으려 했다. 이에 대항해 잠수함은 전파 탐색기, 수중청음기(Hydrophone)를 사용해 대잠함을 원거리에서 사전에 탐지해 공격하고 회피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 중 잠수함이 영국 선박의 90% 이상을 격침했다. 당시의 전쟁을 평가하면 잠수함이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 것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초에는 연합국 측이 잠수함의 통신감청, 암호해득 기술 개발 그리고 레이더를 개발해 물 위에서 작전하는 잠수함을 찾아내 공격했다. 이에 대해 잠수함은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 선체는 물 아래에 두고 공기 흡기 통만 물 위로 내놓고 수면 아래에서 엔진을 가동해 추진하고, 전기를 충전하는 스노클 장치를 개발했다. 그럼에도 2차 대전 말기에는 성능이 우수한 레이더와 항공기의 개발로 잠수함은 더는 숨을 곳이 없게 됐으며,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드디어 1943년 5월에는 1개월간 U 보트 41척이 침몰당해 ‘검은 5월’로 불렸다. 이때 항공기에 의한 피격은 최고조에 달했다.
비록 잠수함이 상선을 격침, 전쟁 물자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영국을 항복 직전으로 몰고 가긴 했지만 대잠함, 항공기와의 전투에서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양측의 경쟁은 소강상태를 맞았고, 1954년에 이르러 미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면서 잠수함의 최대 강점인 은밀성·생존성을 회복했고, 수중 고속기동으로 과거의 약점을 개선했지만, 디젤 잠수함만 갖고 있는 국가들은 여전히 항공기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항공기에 발각돼 어뢰 한번 쏘지 못하고 당한 잠수함 함장은 천추에 한을 남긴 것이다. 어뢰 한발 못 쏘고 격침된 잠수함은 고철에 불과하다. 지금 잠수함 전투를 가장 많이 하고 항공기에 의해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아본 국가에서 잠수함 발사 대공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은 이 정도 하고 하와이 정벌을 계속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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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식단. 1식3찬이 기본이고 1식5찬이면 만찬이다. |
▶림팩훈련 참가를 위한 해저 5만리 대장정
2002년 4월, 나대용함과 승조원들은 잠수함 부대원과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모항인 진해를 출항했다. 한국과 하와이를 왕복하며 태평양에서의 일전(一戰)을 치르기 위해 해저 5만리(약 2만㎞)의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출항과 동시에 전투는 시작됐다. 하와이로 항해하는 긴 항해 동안 장교들은 훈련을 위한 함상학교와 전술토의, 부사관들은 장비관리에 전념했다. 한편으로 장기간의 항해를 위해서는 승조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내가 10년 가까이 잠수함에 근무하면서 익힌 갖가지 유용한 프로그램들을 활용했다.
함장으로서 나의 최우선 과제는 장거리 열대해역 항해에서 작동하는 장비와 계통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승조원들의 생동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특히 20일 이상이 소요되는 괌~하와이 구간의 중간(대략 1주일 정도 시점) 구간은 승조원들의 정신건강 지수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게 되므로 이 1주일 동안에 각종 오락과 경연대회를 집중적으로 실시해 승조원들에게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고 승조원들의 생동감이 장비에 전달되도록 했다.
▶잠수함에서 1식3찬은 기본, 1식5찬은 만찬?
함장으로서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식단이었다. 1식3찬이 기본이지만 1식5찬을 하면 승조원의 사기가 올라간다. 물속에서 장기간 항해하다 보면 유일한 낙은 먹는 것. 조리장이 식단에 변화를 주고 한 가지 반찬이라도 더 하는 날이면 모든 승조원의 엔도르핀이 솟구친다. 그래서 함장은 조리장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잠수함에서 조리장은 함장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동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선물이 비타민 C다. 잠수함 내에서는 햇빛을 볼 수 없어서 가끔 피부 가려움증이 생긴다. 물론 잘 씻지 못하는 것과 겹치는 면도 있지만 햇빛을 장기간 보지 않으면 비타민 결핍증이 유발한다고 한다. 몇몇 대원이 피부병을 앓았으나 다행히 심하게 피부가 손상되지는 않았다.
물론 비타민 섭취를 위해 잠수함에 야채를 적재하기는 하지만 적재한 것도 1주일 정도면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고갈되고 만다. 그 때문에 승조원들은 어쩔 수 없이 비타민을 많이 복용하고, 필자도 함상 생활을 하지 않는 지금까지 비타민을 계속 복용하고 있다. 이것은 어렵게 얻은 좋은 습관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잠수함 내 일과는 지루하지 않게 계획해야
승조원에게 장기간의 항해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과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숨은그림찾기’는 지루함을 달래주고 즐거움을 더해 줬다. 장비들이 설치된 좁고 구석진 곳의 특정장비 일부를 사진 찍어 사진만 보고 어느 부분인지 정확히 알아내는 승조원에게 포상함으로써 장비를 구석구석 돌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해 줬다.
기관부에 소속된 승조원이 아니면 기관실에 들어가 보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숨은그림찾기를 기회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러 장비를 둘러보게 함으로써 함정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이고, 이를 통해 장비의 이상 유무도 확인하게 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서 함내방송을 통해 들려주는 간단한 가족 소식, 그것은 긴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들이었다. 수중에서는 TV를 볼 수 없어서 세상소식에 감감하다. 한국을 떠난 지 불과 수일이 지났을 때는 국내소식이 궁금하지만 수십 일이 지나면 관심이 더 적어짐을 느낀다. 내가 관심이 있다고 해도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듯하다. 이런 것을 보면 물속 생활은 일종의 수도(修道)생활과 비슷하다.
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 U-보트 신화, 막강 대잠기술에 막내리다
‘디젤’ 한계 극복 못하고 종전 훗날 ‘원자력’ 탄생의 계기로
“필승, 신고합니다! 해군대령 문근식은 2012년 12월 31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독자들께 신고 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비록 35년 해군생활을 마치고 전역 신고를 하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독자들과 같이 군(軍)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드리며 계속 독일 U-보트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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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항해 중 항공기의 공격을 받는 U-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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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말 최고 성능 잠수함 Type21.전투에 투입 |
▶U-보트 신화 연합국의 앞선 대잠기술, 막대한 전투력에 무릎 꿇다.
●레이더, 항공기를 피하기 위한 스노클의 개발
1943년 5월 한 달에만 U-보트 41척을 잃게 되자 독일 잠수함부대 지휘부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U-보트 작전을 계속하자니 U-보트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 잠수함 승조원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격이 되고, U-보트 작전을 중단하자니 그동안 잠수함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연합국의 수많은 구축함·호위함·항공기들이 다른 전투에 참가하게 돼 독일의 패전은 훨씬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U-보트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작전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우선 U-보트에 레이더파 탐색 수신기를 장착해 연합국 항공기를 사전에 회피하는 것이었는데 항공기의 수가 너무 많아 효과가 미미했다. 다음으로 잠수함이 먼저 수상함 또는 항공기를 접촉하고 먼저 피할 수 있도록 U-보트에 레이더를 장착해 달라고 건의했으나 새 잠수함 건조에 우선순위가 밀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수많은 연합국 항공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대공포를 장착했지만 이것도 위협만 줄 뿐 항공기를 격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급기야 U-보트 작전 시 자기들을 적 항공기로부터 보호해줄 항공기를 배치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오히려 육상 전투기 수요가 더 많아야 한다는 육·공군의 논리에 밀렸다.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은 물속에서 오래 견디도록 U-보트의 성능을 개량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사실 1937년도부터 연구를 해 온 것이나 잠수함 척수를 늘리는 게 더 급하다는 주장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었다. U-보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다시금 수중에서 장시간 체류할 수 있는 장비의 개발이 강력하게 추진됐다.
이 상황에서 개발된 장비가 스노클(독어로는 Schnorchel, 영어로는 Snorkel 혹은 Snort)인데, 이는 잠망경 심도에서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공기 파이프를 의미했다. 즉 선체는 물속에 숨김으로써 적 수상함과 항공기에 들키지 않으면서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여 물속에서 축전지를 충전함으로써 수중 체류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스노클이 개발되면서 항공기에 덜 탐지되고 기동성이 좋아지자, 잠수함 지휘부는 마침내 1945년까지 모든 U-보트에 스노클을 장착하라고 지시했다.
●디젤잠수함 한계 극복 위해 발터 잠수함 개발 시도했으나 실패
스노클을 장착함으로써 수중 체류시간을 다소 늘렸지만, 근본적으로 수상 전투함과 항공기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중에서 25노트 이상의 고속을 내며 오래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이 필요했다.
이같이 판단한 잠수함 지휘부는 과학자들을 총동원해 획기적인 추진방식을 연구했다. 사실 1937년부터 과산화수소 터빈으로 추진되는 발터 잠수함(오늘날의 AIP 잠수함과 유사한 추진체계로 연료는 과산화 수소를 사용했으나 폭발 위험이 많아 시제함 개발까지만 하고 중단됨)을 연구해 왔으나 1943년도 당시까지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다. 이러한 과도기적인 시기에 채택된 잠수함이 축전지 용량을 늘리고, 스노클을 할 수 있는 당시 최고 성능의 1600톤급 Type 21 잠수함이었다. 그러나 이 유형의 잠수함과 발터 잠수함만 있으면 연합국 대잠세력에게 탐지되지 않고 U-보트 전성시대를 재현할 수 있다는 그들의 꿈은 종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잠수함 강국 몰락의 길 피하지 못하다
●기세등등했던 U-보트, 연합국의 대규모 대잠세력에 전전긍긍
제1차 세계대전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독일의 U-보트들은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상선을 격침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고 영국을 패전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2차 대전에서는 미국의 참전, 연합국의 방대한 전쟁물자, 대잠무기의 비약적 발전에 견디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43년 당시 연합국이 동원한 대잠세력은 각종 대잠함 5500척, 소형함정 2만여 척, 항공기 2000대 그리고 병력 70만 명 등 실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이 정도의 전력은 당시 작전을 수행 중인 독일 잠수함 1척에 대해 연합군 수상전투함 25척, 대잠항공기 100대가 대항한 것과 같다. 이와 비교해 독일 잠수함 부대는 부대 경비병과 정비사를 전부 합해도 2~3만 명 수준이었고, 최대로 출항시킬 수 있는 잠수함 수도 200척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강인한 U-보트 정신, 앞선 기술,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서 빛을 잃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독일 잠수함 부대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군함 148척을 격침하고 45척을 대파했으며 상선 2759척을 격침해 총 1411만9413톤에 달하는 손실과 약 20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혔다는 것은 잠수함 강국 독일이 아니고는 이룩할 수 없는 전과임이 틀림없다.
그 근간에는 U-보트 승조원들의 강인한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사 연구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연합국의 막대한 대잠세력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연합국은 독일 잠수함 부대에 비해 20배 가까운 세력을 투입했으니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필요시만 물 위로 올라오는 진짜 잠수함 개발을 꿈꾸며 종전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현재 디젤 잠수함이 적용하고 있는 스노클이라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잠수함은 필요시 잠항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시 부상하는 잠수함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기술을 개발하고도 전투에 유리하게 사용하지 못한 채 항복해야 했다. 또한 마지막으로 시도한 발터 잠수함의 개발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것은 오늘날 AIP 잠수함의 전신이 됐고, 궁극적으로는 수중에서 원하는 속력으로 원하는 시간 동안 체류하고 필요시만 부상하는 원자력 잠수함 개발을 꿈꾸게 한 동기가 됐다.
영욕의 순간들, 獨 5대 기록은 살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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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러시아(1100척), 3위:미국(670여 척), 일본은 260여 척으로 5위
독일은 제1, 2차 세계대전 동안 약 1540척의 잠수함을 건조함으로써 냉전 이후에 건조한 166척(HDW 사 제공자료) 정도를 제외하더라도 수적인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척수의 잠수함을 건조했다.
독일 최초의 잠수함 U-1의 건조 연도인 1906년부터 1934년까지 총 380여 척의 잠수함을 건조했으며 2차 대전 시 1160여 척 그리고 전후 수출 잠수함까지 포함해 1706척을 건조했다. 척수는 기준 연도에 따라 다소 상이하지만 아무튼 러시아가 1100여 척, 미국이 670여 척, 영국이 600여 척, 일본이 260여 척 등을 건조했으니 단연 최다 건조 척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②월간 최다 건조 척수 : 20척
1939년 9월 28일 히틀러가 빌 헬름스하펜에 있는 U-보트 부대를 방문했을 때 독일 잠수함의 잠수함사령관 되니츠 제독은 U-보트 척수를 증가시켜 줄 것을 건의했다. 가용 척수 최소 300척을 보장해 주면 전승을 보장할 수 있다고 건의했고, 해군총사령관인 라에더 원수에 의해 내려진 명령은 월 29척 건조계획이었다. 그러나 육·공군의 반대에다 잠수함 건조에 소요되는 철강량을 증대시켜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건조에 필요한 산업시설을 할당해 주지 않아 당장은 건조 척수를 증대시킬 수 없었다. 2년 후인 1941년 후반기에야 비로소 월 20척을 해군에 인도할 수 있었다.
③잠수함 한 척당 최단 건조 및 인도 기간 : 80일
1944년 말 전쟁 말기에 들어 잠수함 지휘부는 1600톤급에 스노클을 장착한 Type 21 잠수함 300척 건조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잠수함은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8개의 블록으로 나뉘어 30개가 넘는 공장에서 부분별로 생산·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선체의 주요 부위는 그 무게로 인해 육상으로 이동이 불가했기 때문에 수로를 이용했다. 수로를 따라 위치한 무기공장에서는 배관·케이블·보기 등을 설치했으며, 최종적으로 함부르크, 브레멘 그리고 단치히 등 7~8개의 조선소에서 종합적으로 조립돼 완공됐다. 모든 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돼 1944년 여름에는 착공에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80일이 소요됐다. 소요 기간을 세부적으로 보면 건조와 장비 설치에 50일이 소요됐고 완성된 선체를 진수하기 전 각 블록을 용접, 조립하는 데 4일이 소요됐으며 부두에서의 최종 설비작업에 6일 그리고 조선소 및 운용자 시운전에 약 20일이 소요됐다.
④U-보트 월 최다 척수 침몰 : 41척
영국의 막스 홀턴 제독은 선박 호송선단 제도를 강화해 U-보트를 사지(死地)로 몰고 갔다. 미국은 호송선단에 항공모함을 추가 배치하면서 U-보트를 보는 족족 침몰시키면서 U-보트 킬러로 명성을 굳혀 갔다.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반 만에 호송선단과의 교전에서 U-보트의 희생은 늘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5월에는 한 달 동안에 41척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연합국은 다양한 종류의 항공모함을 비롯해 1100대 이상의 항공기를 그들의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정확도가 향상된 유도어뢰·대잠로켓·자기장을 이용한 위치탐지장비·탐지 정확도가 높은 레이더, 그리고 통신감청장비 등을 갖고 있어서 U-보트는 호송선단에 거의 접근하지도 못했다. 그중에서도 항공기는 최고의 위협이었으며 항공기에 의해 침몰된 U-보트가 총 침몰 척수의 56%에 달했다. 수중지속 시간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오늘날의 디젤 잠수함에도 항공기 위협은 여전히 최고의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독일이 잠대공 유도탄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결코 틀리지 않다.
⑤한 전쟁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 침몰 : 2차 대전 시 U-보트 753척 침몰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U-보트는 영국을 항복 직전으로 몰고 가는 괴력을 발휘했다. 미국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패전을 면할 수 없었지만, 독일은 1차 대전 후 잠수함 건조기술을 비밀리에 계속 유지해 왔고 그 덕분에 2차 대전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한 단계 앞선 연합국 측의 레이더·항공기·대잠무기의 발달은 U-보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결국 기간 중 753척의 U-보트가 침몰당했고(해상에서 적의 공격 및 기타 원인으로 630척, 항구 내에서 기뢰 및 기타 원인으로 123척) 이와는 별도로 전쟁 끝 무렵 해외기지 철수 시 그들 승조원에 의해 자침 또는 폭파 215척, 그리고 종전 시 영국 또는 연합군 측에 빼앗긴 U-보트도 무려 153척에 달했다.
이러한 기록 또한 앞으로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잠수함 강국 독일! 이 위대한 기록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까? 다음 회에는 이러한 기록들을 만들어 낸 독일 잠수함 함장과 승조원들의 강인한 정신을 유발한 시대상황과 특성을 짚어 보고 무엇이 이들을 장렬한 죽음의 길로 몰고 갔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