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열선소전[列仙小傳]_ 청루의 여인, 조문희[曹文姬]
醉月
2009. 12. 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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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색을 겸비한 기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조광윤이 평정하고 개봉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가 北宋북송(960∼1126)이다. 북송시절 개봉의 홍등가는 번창했다.
이때 어느 靑樓청루에 몸을 맡긴 曹文姬조문희라는 妓女기녀가 있었다. 조문희는 4∼5세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글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들고 다니면서 옹알옹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읽기만 하면 아무리 어렵고 뜻이 깊은 문장이라도 어린 조문희는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주위사람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또 한 번 읽은 문장은 십중팔구 암송할 수 있었다.
10살쯤 되었을 때, 조문희는 서예에 푹 빠졌는데, 여백이 남아있는 종이나 비단 휘장, 창문 장막 등에 그녀의 필적을 남겼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거의 천자정도를 쓰기도 하였다. 그녀의 필법은 뛰어나 그 당시의 周越주월, 馬端마단 등 벼슬아치나 문인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조문희에게 書仙서선이라는 雅號아호를 지어주었다. 기방의 기생어미가 조문희에게 악기 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 조문희는 그런 것은 천한 일이라고 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조문희의 이런 처신을 알게 된 벼슬아치나 뛰어난 선비들은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으며, 또 그녀의 명성도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조문희는 비록 妓女기녀로 轉落전락하였으나 도리어 진흙탕 속에서도 물들지 않았다. 청루의 기생어미가 조문희를 이름난 기생으로 키우려고 하였으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조문희가 어느덧 십오륙 세가 되자, 그녀를 찾는 남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 좋은 옷을 입고 값비싼 마차를 탄 권문세가의 귀공자들이 앞 다투어 혼인의 연분을 맺고 싶어 했다. 젊은 귀공자들 중에는 조문희를 妓籍기적에서 빼내기 위해 그녀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겠다면서 황금을 내놓으려고 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시를 짓게 하여 남자를 선택하다
그러나 조문희는 자신을 요구하는 수많은 남성들에게 공개적으로 특별한 요구조건 하나를 내세웠다. 자신을 추종하는 사내들에게 자신에게 시를 한수 지어 바치라고 했는데, 제출한 시중에서 그녀의 뜻에 맞으면 그때 고려해보겠다고 선포했다.
이 말이 알려지자 그녀의 청루에는 장편 시나 단편의 글, 아름다운 글귀나 유려한 문장 등이 매일 수북이 쌓여갔다. 귀공자들이 보내온 많은 求愛구애의 글 중에서 사천 岷江민강 출신인 任임씨성의 서생이 최종 행운을 얻었다. 이때 임서생이 쓴 시는 다음과 같았다.
玉皇殿上掌書仙 옥황전상장서선
一染塵心謫九天 일염진심적구천
莫怪濃香薰骨膩 막괴농향훈골니
霞衣曾惹御爐烟 하의증야어로연
(그대는) 옥황상제가 계시는 전각에서 문서를 장악하던 신선이었는데
속세에 한번 물들어 하늘에서 인간 세상에 귀양 왔다.
(기생이 되어)짙은 향기와 분 냄새가 뼈 속까지 스몄다고 탓하지 마라
신선의 옷을 입고 일찍이 상제 곁에서 화로의 연기를 쬐었다.
(즉 옥황상제를 가까이서 모셨던 사람이다)
임서생의 시를 읽어본 조문희는 "그 사람은 나의 지난 경력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이야말로 바로 緣分연분이라는 것이다"한다.
조문희는 바로 자신을 임서생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청루의 기생어미도 그녀의 뜻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문희는 몸값을 지불하고 妓籍기적에서 벗어나 임서생과 혼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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