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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에코도시

醉月 2010. 1. 27. 08:54

일본 기타큐슈
환경오염을 자산 삼아 세계 최고 에코도시로 발돋움하다

글·송화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 사진·기타큐슈시 제공    

기타큐슈시의 강력한 환경 정책으로 수질이 회복된 무라사키강에서 시민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시는 열도의 서쪽 끝, 규슈의 최북단에 있는 도시다. 210km에 달하는 긴 해안선, 시 면적의 40%를 차지하는 삼림 덕분에 시내에 들어서자 쾌적함이 느껴진다. 고쿠라기타(小倉北)구 중심가를 남북으로 흐르는 무라사키(紫)강이 도심에 상쾌함을 더한다.

그러나 이 강에 서려 있는 옛이야기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 사람들은 칭얼대는 아이를 꾸짖을 때 “계속 울면 무라사키강에 집어넣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시커멓고 악취를 내뿜는 이 강이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민들은 무라사키강가를 지날 때면 으레 손수건을 꺼내들고 코를 막았다.

이곳이 지금의 모습을 얻은 것은 기타큐슈시가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1년에 걸쳐 무려 2만5000㎥의 오니(汚泥)를 긁어낸 덕분. 기타큐슈시는 이처럼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극복한 ‘기적의 도시’다.

기타큐슈시청을 찾았을 때 환경국 환경정책부 가지와라 히로유키 계장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왼쪽에는 매연으로 뒤덮인 잿빛 하늘과 황갈색 바닷물이 찍힌 사진 두 장, 오른쪽에는 청명한 하늘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사진 두 장이 각각 프린트돼 있었다.

“보십시오. 왼쪽이 1960년대의 기타큐슈입니다. 오른쪽은 오늘날의 풍경이지요.”

 

일본내 최악의 공해 지역

기타큐슈시는 1970년대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다. 1901년 근대식 용광로를 갖춘 일본 최초의 제철소가 문을 열면서 ‘철강도시’가 됐고, 철로와 항만을 갖춘 편리한 물류 환경 덕에 시멘트 기계 화학 등 중화학공업도 발전했다. 환경오염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고도성장기 시절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얻은 참혹한 부산물이다.

기타큐슈시 환경국 환경감시부의 히가시다 미치코씨가 들려준 1950~60년대 대기오염 상태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1965년 제철소가 있는 야하타(八幡)구 시로야마(城山) 지구에서 측정한 결과 한 달에 1㎢당 108t씩 분진이 떨어졌다. 특히 검은 분진이 많아 ‘야하타의 참새는 검다’는 말이 다른 지역까지 퍼질 정도였다.

제철소와 맞닿아 있는 연안 도카이(洞海)만의 수질 또한 심각하게 오염된 건 마찬가지였다. 196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해수의 용존산소량은 0.6㎎/ℓ(한국 해수욕장 수질기준은 7.5㎎/ℓ이상)였다. 수은, 비소 같은 유해물질도 고농도로 포함돼 당시 언론은 ‘대장균조차 살 수 없는 물’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1950년대 도카이만에 빠진 한 선원이 무사히 구조되고도 며칠 만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사망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타큐슈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다의 유해물질이 그의 생명을 빼앗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타큐슈시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고,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한 어머니들이 가장 먼저 들고일어났다. 야하타구와 더불어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역인 도바타(戶畑)구 주부들이 1957년 ‘도바타 부인협회’를 결성하고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깨끗이 세탁해 널어놓은 빨래가 얼마 만에 더러워지는지, 청소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먼지가 내려앉는지 등을 조사해 결과를 발표했고, 시청에도 같은 데이터를 보내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야하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타큐슈시 공무원 시로야마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는 빨래를 널기 전 늘 내게 빨래봉을 걸레로 닦으라고 말씀하셨다. 수시로 닦아내도 닦을 때마다 걸레가 새까맣게 변하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경험이 시민운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활용 관련 기업이 모여 있는 기타큐슈시 에코타운 전경.

시민,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이룬 환경 혁명

기업에서 배출한 오염물질이 도시환경을 심하게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시민단체와 기업 간에 소송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기타큐슈시에서도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 신일본제철 야하타 제철소와 닛테쓰 화학, 오다노 시멘트, 야하타 화학공업 같은 기업에 공해 유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당시 기타큐슈시민 대부분이 공해배출 기업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업을 유지하면서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고 싶어했다. 이때 지방자치단체가 나섰다.

기타큐슈시 환경국 환경감시부의 히가시다 미치코씨는 “기업과 시민 사이를 중재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당국이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기타큐슈시는 중앙정부에 환경청이 설치되기 전인 1971년 공해대책국을 만들어 전담 공무원 44명을 배치했고, 같은 해 ‘기타큐슈시 공해방지 조례’를 제정해 환경 위반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시가 앞장서자 기업도 동참했다. 1972년 기타큐슈 내 47개 회사 54개 공장이 기타큐슈시와 ‘유황산화물에 관한 공해방지 협정’을 체결하며 자발적으로 공해요인 제거에 나선 것. 기업들은 환경오염 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도 분담했다. 1972년부터 91년까지 기타큐슈시에서 공해 대책에 사용한 예산은 모두 8043억엔. 이 가운데 68.6%는 행정당국이, 나머지 31.4%는 민간기업이 부담했다.

시민,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이처럼 힘을 합해 환경 개선 노력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기타큐슈시의 성공 이후 이 같은 모델은 아예 ‘기타큐슈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히가시다씨의 말이다.

“일본에는 ‘부끄러움 문화’가 있습니다. 자신이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견디지 못하지요. 야하타 제철소를 갖고 있는 신일본제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강했습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알고 난 뒤부터, 이 기업이 앞장서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시가 추진한 ‘유황산화물에 관한 공해방지 협정’에 수십 개의 기업이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신일본제철이 직접 나서서 다른 중소기업을 동참시켰기 때문입니다.”

 

해외로 수출하는 환경 기술

이런 노력 덕분에 기타큐슈시의 환경은 1980년대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는 제 빛을 되찾았고, 도카이만에는 110종이 넘는 어패류가 돌아왔다. 무라사키강 역시 마찬가지다. 강변에 건립된 물환경관에 가면 강화플라스틱 벽을 통해 강 속까지 살펴볼 수 있는데, 예전의 오염상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맑은 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1985년 발간된 OECD 환경백서에는 ‘회색에서 초록색으로 변모한 도시’라는 제목 아래 이 도시의 성공사례가 소개돼 있다.

 

기타큐슈시의 놀라운 점은 이러한 공해 극복 경험을 도시발전의 계기로 삼았다는 점이다. 1980년 환경오염 문제가 어느 정도 극복되자 지역내 500개 기업과 기타큐슈시, 후쿠오카현은 공동출자해 재단법인 기타큐슈 국제기술협력협회(KITA)를 만들었다. 환경기술을 해외로 전파해 환경오염 문제로 고통 받는 개발도상국을 돕는 게 목적이었다. KITA는 기타큐슈 시내에 환경연수관을 짓고 세계 각지에서 연수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80년부터 지난 3월말까지 이곳을 찾아온 연수생은 세계 133개국 출신 5366명. 아시아 3114명, 중동·아프리카 1042명, 중남미 933명 등 전세계에서 찾아온 공무원·학자·기업인들은 기타큐슈 시에서 공해방지 기술과 환경오염 물질 생성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절약법 등을 배워간다. KITA는 1986년부터 한발 더 나아가 일본내 전문가의 해외파견 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동안 KITA를 통해 세계로 나간 일본인 환경전문가는 25개국, 144명에 달한다.

 

“기타큐슈시의 이 같은 활동은 지원대상국으로부터 전혀 대가를 받지 않는, 원조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기타큐슈시 환경국 환경국제협력실 미토카 요스케씨의 말이다. 기타큐슈시는 이를 통해 ‘세계 으뜸의 환경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 기타큐슈시의 해외지원 모델을 ‘기타큐슈 이니셔티브’라 명명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를 것을 촉구했을 정도다.

 

‘쓰레기 무배출’ 실천하는 에코타운

기타큐슈시 와카마쓰(若松)구 히비키나다(響灘) 지구에 조성돼 있는 에코타운은 환경산업을 통해 미래로 뻗어나가는 기타큐슈시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기타큐슈시의 기간산업인 중화학공업은 서서히 위축세를 보였다. 새로운 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히비키나다 지역에 2000ha에 이르는 공업용 매립지를 확보해놓았던 시는 토지 활용 방안을 찾는 데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환경산업. 계기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에서 기타큐슈시가 일본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유엔 지방자치단체상을 받으면서 찾아왔다. 스에요시 고이치 당시 시장은 유엔이 기타큐슈시의 공해 극복 사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고 “이제 세계의 관심은 환경에 쏠려 있다. 히비키나다 지구 토지를 환경산업을 개척하는 데 쓰자”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타큐슈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재활용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히비키나다 개발 기본계획’을 세웠고, 1997년 7월 마침내 이곳에 일본 최초의 ‘에코타운’이 건립됐다.

   

기타큐슈의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는 기타큐슈 환경 뮤지엄.

기타큐슈 에코타운의 슬로건은 폐기물을 하나도 배출하지 않는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 모든 쓰레기를 재활용해, 자원이 조금의 낭비도 없이 재활용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기타큐슈시 환경국 환경산업정책실의 야마시다 교타로씨는 “이를 위해 환경 산업 관련 학술 연구를 담당하는 ‘기타큐슈 학술도시’, 연구 결과를 활용해 사업화 모델을 만드는 ‘실증연구구역’, 이를 실제로 사업에 적용하는 ‘종합환경콤비나트’ ‘히비키 리사이클 단지’ 등 세 단계의 시설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기타큐슈 학술연구도시에는 기타규슈시립대, 규슈공업대, 와세다대 환경관련 학부와 연구실 등이 들어서 있다. 실증연구구역에는 후쿠오카대의 자원순환·환경제어시스템 연구소와 신일본제철 엔지니어링(주)의 기타큐슈 환경기술센터 등이 입주했다. 에코타운 사업이 실제로 이뤄지는 종합환경콤비나트와 히비키 리사이클 단지 등에서는 페트병, 가전제품, 형광등, 자동차, 폐목재 등 온갖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공장이 활발히 가동 중이다.

야마시다씨는 “기업들의 에코타운 입주를 촉진하기 위해 단지 안에 공장을 지을 경우 시에서 용지비를 포함한 설비 투자액의 5%를 보조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음식물쓰레기에서 차량용 연료 추출

에코타운에서 실제로 어떤 사업이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현지를 찾았다. 기타큐슈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40분쯤 달리자 에코타운 히비키나다 동부지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와카토(若戶)대교를 건널 때는 차창 너머로 푸른 도카이만이 스쳐 가더니, 에코타운에 다다르자 맑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새하얀 풍력발전 프로펠러가 시선을 붙든다. 공장 굴뚝이 곳곳에 서 있지만, 공기는 쾌적하다. 이곳은 ㈜NS윈드파워 히비키로가 풍력발전을 하고 있는 곳. 발전능력 1500kW급 발전기 10기를 가동 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는 모두 규슈전력에 판매한다.

에코타운 입구의 페트병 재활용 공장, 자동차 재활용 공장 등을 지나 형광등 재활용사업장 ㈜J·RE-LIGHTS를 찾았다. 이곳은 기업체나 일반 가정에서 배출한 폐형광등을 수거해 수은, 유리, 금속, 형광체 등을 분리한 뒤 모두 재활용하는 곳.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재생 형광관도 제조한다. 이 회사 영업부장 지토시 오카베씨는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고객 가운에 하나는 기타큐슈시”라며 “시에서 2001년부터 공무에 쓰이는 제품을 구매할 때 재활용품 등 친환경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그린 구매’ 제도를 시작했다. 이 덕분에 우리가 생산하는 재활용 제품을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 판로가 생겼다”고 말했다.

기타큐슈 에코타운에서 생산한 바이오 에탄올을 3% 섞은 자동차 연료는 기타큐슈시 공용차 등에 사용된다(왼쪽). 폐형광등을 재활용하는 ‘J·RE-LIGHTS’공장 작업 풍경.

공장을 나서 이번에는 실증연구구역에 있는 ‘식품 폐기물 에탄올화 리사이클 시스템’ 실험사업장 ‘기타큐슈 에코에너지’를 방문했다. 신일본제철 엔지니어링과 기타큐슈 환경기술센터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 사업장이다. 이곳에서는 기타큐슈 시내 학교, 병원, 편의점 등에서 수거한 음식물쓰레기로 에탄올을 만든다. 에탄올은 휘발유의 대체재로 사용할 수 있는 연료. 일본 전체에서 쓰레기를 이용해 에탄올을 생산하는 시설은 이곳뿐이다.

신일본제철 기술본부 기술개발연구소 주간연구원인 히다카 료타 박사는 거대한 탱크 형태의 에탄올 추출기를 보여주며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기타큐슈 시내에서 하루 12t의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합니다. 그 가운데 포장재 등을 제외하면 10t쯤이 남지요. 에탄올 추출의 첫 단계는 이 쓰레기에 함유된 탄수화물을 모아 당화(糖化)하는 거예요. 보통 전체 음식물에서 탄수화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안팎입니다. 1t 정도가 에탄올의 진짜 원료가 되는 셈이지요.”

이 공장은 매일 약 400ℓ의 에탄올을 생산한다. 이 에탄올 3%와 휘발유 97%를 섞으면 자동차용 연료가 된다. 이 연료는 올 2월부터 기타큐슈시의 공용차와 신일본제철 관계기업의 공용차에 주유되고 있다.

기타큐슈시의 에탄올 혼합 비율이 낮은 이유는 아직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다카 박사는 “미국 브라질의 경우 남는 옥수수, 사탕수수 등의 곡물에서 바로 에탄올을 추출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기타큐슈시의 음식물쓰레기만을 이용하고 있다”며 “이 사업의 목적이 에탄올 대량 생산이 아니라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전역에서 연간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가 2000만t에 달하며 이 가운데 75% 가량은 소각된다. 이로 인한 자원 낭비와 대기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음식물쓰레기 에탄올화 프로젝트가 산업화되면 일본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에탄올의 가격은 1ℓ 당 100엔. 생산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사업을 하면 기타큐슈시의 쓰레기 처리비용 1t당 2만엔씩을 지원받기 때문에 채산성은 있다고 한다. 기타큐슈시 환경경제부 환경산업정책과의 가와지 히로아키씨는 “이곳에서는 에탄올 추출에 쓰이지 않는 2t 분량의 포장재와 비탄수화물 쓰레기로 화력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걸 이용해 다시 사업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많이 절감된다”고 소개했다. 기타큐슈 에코타운의 ‘제로 에미션’ 정책이 실감났다.

 

저탄소사회 여는 ‘녹색 개척자’

환경관련기술과 환경산업 면에서 이미 세계 정상의 위치에 올라있는 기타큐슈시의 다음 목표는 저탄소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녹색 개척자, ‘Green Frontier’가 되는 것이다. 기타큐슈시는 지난해 일본 정부로부터 ‘환경모델도시’로 선정됐는데, 이때 내세운 것이 저탄소 사회 구축이었다. 일본에는 기타큐슈시를 포함해 147개 지방자치단체가 모인 ‘저탄소화추진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일본 최대의 환경모임인 이 협의회 회장은 기타큐슈시장이 맡았다. ‘저탄소 사회’를 향한 기타큐슈시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타큐슈시 에코모델도시 디렉터 히쓰모토 레이지씨는 “우리 시의 미래 계획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05년의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기타큐슈시에서는 157건에 달하는 방대한 계획을 세워놓았다. 공장의 폐열을 다른 시설에서 재활용하고, 태양광 발전을 적극 도입하며, 내구 연수가 긴 주택을 건설해 오염 물질 발생을 최소화하는 등 다양한 구상이 포함돼 있다. 이 계획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기타큐슈시의 탄소 감축 기술을 아시아로 이전할 ‘아시아 저탄소화 센터’도 세울 방침. 빠르면 내년 안에 이 센터가 기타큐슈 시내에 들어선다.

히쓰모토씨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 지독한 환경오염을 딛고 기타큐슈가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술력과 열정을 모두 쏟아 저탄소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게 미래를 향한 기타큐슈의 포부, 이상, 비전”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취리히
실개천 되살리고 세계적인 친환경도시로 변신하다

한상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    

콘크리트 더미 밑으로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시절이 세계적인 친환경도시인 스위스 취리히에도 있었다. 개발과 성장의 이름 아래 환경파괴를 참고 견뎌야 했던 어두운 과거는 먼 옛날이 아닌 불과 20여 년 전까지 지속됐다. 이제 달라진 취리히에는 맑디맑은 실개천이 도심 곳곳을 흐른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개천에선 벌거벗은 아이들이 첨벙거린다. 시정부는 50년이 걸리는 에너지 절약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 중이다. 생태도시 취리히에서 자연이 가져다준 건강한 삶을 생각했다.
   

7월3일,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취리히는 무척 더웠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햇볕이 따가웠다. 다행히 습도는 높지 않아 그늘에 서 있으면 시원함이 느껴졌다. 취리히 중앙역 주변은 여느 기차역과 다를 바 없었다. 바쁘게 오가는 도심열차(트램), 버스, 자동차로 북적거렸고 사람들도 걸음을 바삐 옮겼다. 트램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선이 거미줄처럼 머리 위에 널려 있었다. “뭐가 친환경이고 생태도시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취리히 중앙역을 나와 트램이 오고가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 불리는 반호프 거리였다. 수백년은 됐을 법한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 건물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갖춘 명품가게들이 볼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 세일을 알리는 간판이 즐비했다. 서울 청담동 같기도 하고 명동 같기도 했다. 그렇게 5분가량 걸어가자 취리히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취리히호수를 보고 나서야 이 도시를 왜 친환경 생태도시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깨끗한 호숫물에 시선이 고정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코발트빛이구나’ 싶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호수 주변에선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람선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서 평균 1시간에 한 대씩 떠나는 유람선을 기다렸다.

호수 곳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많았다. 선착장 옆에도 있었고 다리 밑에도 있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쳤다. 아기가 물을 먹거나 말거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그냥 구경만 했다. 물이 깨끗해서 그런가 싶었다. 백조 몇 마리가 아기 옆을 유유히 지나갔다. 아기는 놀라지 않았다. 호수 한복판에는 큰 돛을 단 요트 몇 대가 바람을 가르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공업도시 & 생태도시

취리히는 총길이 40㎞에 달하는 취리히호수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취리히호수로 이어지는 리마트강과 칠강 연안에 만들어진 호반도시. 인구는 35만에 불과하다. 사실 취리히는 오래전부터 ‘돈’의 도시로, 환경이니 생태니 하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부터 북이탈리아·프랑스·독일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유명했고 유럽을 대표하는 견직물 생산지이자 유통지였다. 17세기에는 면공업과 염색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스위스 공업의 중심지로 등장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흐르는 실개천에서 아기와 엄마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친환경도시 취리히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지만 당시 취리히호수는 직물공업이 전파·보급되는 교통로로 사랑받았다. 대신 호숫물은 오염으로 얼룩졌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라인강의 수력발전을 이용한 중화학공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취리히는 또다시 그 중심에 섰다. 세계적인 기계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20세기 초에는 도시 전체가 중화학 공장지대로 변모했다. 금융도시로의 변신도 이때부터 시작됐지만 그렇다고 공업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런 역사를 보면 공업도시 취리히가 걸어온 과정은 세계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정리하면 이런 식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돈이 모이면서 도시가 커졌고 산과 들은 깎여나갔다. 그 자리엔 공장과 주택이 들어섰다. 사람의 손을 탄 하천과 호수는 더러워졌고 또 메워졌으며 콘크리트로 덮였다. 하천 위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섰다.

1850년경 만들어진 통계에 따르면, 당시 취리히시에는 총연장 160㎞가량의 크고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30년 후인 1980년에는 80㎞가량만 남게 됐다. 수백년간 내려온 아름다운 하천의 이름은 4차선, 8차선 도로 이름으로 둔갑했다. 콘크리트에 갇힌, 빛을 잃은 하천은 더러운 하수를 처리하는 쓰레기장일 뿐이었다. 공업화 과정에서 온 도시를 거미줄처럼 친친 감아 돌던 맑디맑은 하천은 썩어갔고 사라졌다. 환경은 염두에 없었고 오직 개발의 숨가쁨만이 도시를 감쌌다.

그렇게 썩어버린 도시가 친환경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부터다. 1985년 취리히 도심 한복판의 알투스케크라인천을 덮고 있는 복개 콘크리트 150m가 뜯겨나간 것을 시작으로 환경복원, 특히 하천을 되살리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취리히호수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취리히시 관광국 책임자인 바흐톨드씨의 설명이다.

“1970년대까지도 환경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자, 시민단체 회원,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죠. 하천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취리히호수, 리마트강, 칠강을 포함한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복개하거나 없앤 소하천들을 되살리는 것, 대기오염의 주범이던 중화학공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1987년 취리히 주정부는 토목기술자와 생물학자, 조경설계자로 구성된 15개 도시리모델링 그룹을 만들었다. 하천 활성화, 생태보전학적 관점과 경관을 고려한 주거환경 개선, 하천의 범람 방지를 위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628개 하천이 연구대상 하천으로 선정됐다. 하천의 총연장은 자그마치 563㎞에 달했다.

공사는 하천을 덮은 도로를 걷어내고 원래의 하천을 되살리는 작업으로 시작됐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던 하천 바닥과 경사면의 콘크리트도 모두 제거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흙과 자갈이 깔렸다. 사라졌던 동식물이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복원작업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르자 복구된 개천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수초에는 잠자리 등 곤충들이 알을 낳았고 서식처로 삼았다. 자연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살아났다.

   

취리히 호수 주변 공원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왼쪽). 취리히 중앙역 전경. 중앙역에서 취리히호수로 이어지는 2km가량의 거리가 취리히시의 중심인 반호프거리다.

1m 복원에 1000만원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취리히시에서 진행한 하천정비가 생활하수관과 개천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모든 물을 한데 모은 뒤 정화시설로 보내는 식이 아니라 생활하수는 정화시설로, 계곡물이나 빗물은 그대로 개천으로 흘려보내는 식이다.

이런 방법이 도입된 것은 우선 더러운 하수와 깨끗한 계곡물과 빗물을 한데 모아 하천으로 보내는 이전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러운 물과 만난 깨끗한 물은 곧 더러워졌다. 만성적인 하수처리장 용량 초과도 문제였다. 홍수 때는 하수처리장 물이 역류해 도심이 침수되기 일쑤였다. 수질정화 체계를 바꾸자 정화가 필요한 물의 양이 3분의 1로 줄었고 그만큼 비용도 줄었다. 하수처리시설의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는 문제도 있었다. 일단 돈이 많이 들었다. 하천 1m를 복구하는데 1000만원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나의 하천을 2개로 나눠야 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이다 보니 시간도 많이 소요됐다. 홍수대책까지 세워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공사가 늦어지면서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취리히시는 주민들을 설득해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취리히시 관광국 바흐톨드씨의 얘기다.

“하천 복개 이전에 도심의 강으로 유입되던 소하천을 관리하는 것이 하천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해 생활하수 분리부터 시작했습니다. 공사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한번 만들어진 후에는 효율적인 물관리가 가능해졌지요. 운영비용은 이전보다 훨씬 적게 들었습니다. 정화시설로 들어오는 하수의 양이 3분의 2 가량 줄어 그만큼 비용이 절약됐기 때문입니다. 하천으로 유입되는 생활하수가 분리되면서 하천이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난 게 가장 큰 소득이었죠.”

기자는 하천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취리히시 하천보호관리국 책임자인 라인하더씨의 도움을 받아 취리히시에서 추진해온 하천정비의 대표적인 지역을 몇 군데 돌아봤다. 주로 주택가와 도심지역이었다.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아기(왼쪽). 하늘에서 내려다본 알프스 빙하.

먼저 찾아간 곳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단지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홍수에 대비한 넓은 안전지대에는 청포처럼 보이는 수변식물이 치렁치렁 자라고 있었다. 라인하더씨는 “이곳은 5~6년 전만 해도 하수가 흐르던 복개천이었다. 홍수에 대비해 완충지대를 만들어놨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더 유명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의 4차선 도로 양쪽으로 골목골목에서 흘러나온 실개천이 모여 규모가 꽤 큰 하천을 이루고 있었다. 물은 깨끗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놀고 있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되살아난 개천이 아이들에게 기막힌 선물이 된 셈이다. “개천물은 모두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거나 빗물”이라고 전한 라인하더씨의 설명이다.

“이곳을 포함한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개천 복구작업에는 주민, 학생들이 직접 참여했습니다. 복원의 방향과 방식이 주민회의를 통해 결정됐어요. 사업 추진 초기에는 반대하는 시민도 많았죠. 생활이 불편해진다는 의견도 있었고 편리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집 앞이 시냇물이 흐르는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변모하자 적극적인 지지세가 일기 시작했어요. 동네마다 주민투표를 거쳐 하천정비가 결정됐고 시정부는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 천천히 사업을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복구된 개천에는 물고기들과 개구리, 도롱뇽이 헤엄을 치고, 수초에 잠자리 등 곤충들이 알을 낳아 생물의 중요한 서식처 구실을 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인 교포의 얘기다.

“여기로 이사한 지는 10년쯤 됐어요. 실개천이 생긴 것은 5년쯤 전이고요. 원래는 2차선 도로가 있던 자리입니다. 집밖에 바지를 걷어올리고 뛰어들어가 놀 수 있는 개천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개천에 풀어주고 매일 관찰하기도 합니다. 개천이 생긴 뒤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늘었지요. 복구된 개천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죠. 사실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여름에는 물이 증발하면서 근처를 시원하게 해줘서 좋아요.”

현재 취리히시에는 108㎞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44㎞가량이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데 그중 34㎞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지난 20여 년간 노력한 결과다. 환경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인하더씨는 “아직도 친환경적으로 복원되지 못한 하천이 많다. 현재 취리히 도심에는 복원이 필요한 하천이 15㎞가량 남아 있다.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을 되돌리는 것은 취리히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단순히 미관상의 이유 때문은 아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라고 말했다.

 

공장이 박물관으로

현재 취리히에서 공업도시 시절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장의 연기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도심 외곽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공장의 잔해들 대부분은 관광지가 됐다. 어떤 공장터는 공연장이 됐고 또 어떤 공장터는 술집이 됐으며 박물관이나 체육관으로 꾸며진 곳도 있다.

취리히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어떤 통계에선 3년 연속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올랐다(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 2008년). 지난 6월에는 벨기에 월간지 ‘모노클’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25곳’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도 1위를 차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수한 대중교통, 50곳이 넘는 미술관과 일급 레스토랑 등 풍부한 여가시설, 양호한 비즈니스 환경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또 친환경 정책, 공항과의 접근성, 낮은 사무실 임대료 등도 높은 점수를 받는 요인이다.

하천정비 외에도 취리히가 생태도시, 친환경도시가 된 이유는 많다. 지속가능한 도시로 변신하기 위한 시정부의 오랜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1인당 에너지 소비를 연간 2000w로 줄이기 위한 사업,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t 규모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와 관련된 정책은 모두 취리히시 건강환경보호국이 맡고 있다.

취리히시는 2008년 11월30일 전체 주민투표를 통해 연간 1인당 에너지 소비를 2000w(1년 기준)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시정책으로 통과시켰다. 6200w에 달하는 현재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것. 건강환경보호국 매니저 펜터너씨는 “스위스에서는 이런 정책 하나하나가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로 이뤄지고 있어 정책적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현재 취리히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천연가스 사용 확대, 전기를 이용한 난방, 공공교통체계 정비 등이 그것이다. 취리히시는 2050년을 목표로 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하나하나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기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단순화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정부가 소유한 건물(취리히시 전체의 약 10%)부터 에너지 효율을 점검하고 도시 전역에 150m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정류장을 만들어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특히 도심에서는 자동차의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트램의 운행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100% 전기를 사용하는 트램은 공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원자력에너지 사용은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점점 의존도를 줄여나간다는 것도 취리히시의 방침이다.

이밖에 취리히시는 EWZ라 불리는 전기절약펀드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전기소비를 확대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의 10%가량을 모아 만든 기금인 이 펀드는 태양에너지, 친환경 전기제품,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데 투자된다. 태양에너지를 일반 가정, 공장 등에서 사들여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파는 일도 한다. 현재 EWZ는 취리히시 전체 소비전력의 0.2% 정도를 담당하고 있고 2050년까지 30%로 늘린다는 게 취리히시의 야심찬 계획이다.

 

미국 시애틀
탁상토론은 그만 이제 행동하라! 

 

 커피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의 본산인 미국 시애틀. 이 도시를‘별 가루’처럼 뒤덮고 있는 건 스타벅스 매장만이 아니다. ‘시애틀 기후행동계획(Seattle Climate Action NOW)’. 시애틀시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지구온난화 방지 환경 캠페인은 이 고급스러운 도시의 새로운 가치가 되고 있다.
   

미국 시애틀 도심.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시애틀은 ‘에메랄드(Emerald) 시티’로 불린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녹색의 보석인 에메랄드처럼 도시가 엘리엇만, 워싱턴 호수, 올림픽 산맥, 캐스케이드 산맥 등 바다, 호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다. 1962년 세계박람회 때 세워진 원반 형상의 스페이스니들 타워와 도심 마천루, 그리고 만년설에 덮인 해발 4392m의 레이니어산은 한 폭의 그림으로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다.

시애틀의 인구는 56만여 명(2000년)이다. 벨뷰, 에버렛 등 주변 위성도시를 합쳐도 200여만명으로 인구밀집지역인 캘리포니아나 동부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내수 시장이 작고 고립되어 있다는 건 성장의 단점요인이다. 엘리엇만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된 도시 구조도 불리한 점이다. 출퇴근 시간 도심과 위성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에선 차량이 밀린다.

친환경이 도시 미래 결정

그럼에도 옛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딴 이 중급 규모의 도시는 세계적 도시의 명성을 얻고 있다. 고품격 문화 아이콘들로 ‘상징’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근거로 성장한 세계 최대 항공사인 ‘보잉’, 세계 최대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 그리고 인류가 인터넷 시대로 들어섰음을 알려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특색 있는 다운타운 풍광은 시애틀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드높였다.

그렉 니컬스 시장(중앙 양복 입은 사람)과 시애틀 시민들이 ‘기후행동계획’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있다.

스타벅스 1호점과 부근의 해산물 재래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찾아 기념 촬영하는 명소가 됐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취향을 팔고, 나아가 문화적 취향을 판다.”(‘한겨레21’ 2009년 1월2일 보도).

그런데 수년 전부터 전세계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로 인해 도시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친환경이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맑음, 차가움, 녹색은 도시를 멋있고 쾌적한 곳으로 만드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시애틀은 세계 주요 도시 중 가장 발빠른 결단을 내렸다.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펴며 ‘그린 시대(Geen Era)’의 주역이 되려 하고 있다.

시애틀 인근의 한인(韓人)밀집지역인 페더럴웨이(Federal Way)에서 만난 재미교포 성유영(50)씨는 “시애틀은 여름철에 선선한데 지난 여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다”며 “환경문제는 이 도시가 당면한 최대 위기 중 하나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위기는 생존의 필수품인 ‘물’에서부터 찾아왔다. 시애틀의 발전은 물 문제와 직결돼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물 사용 효율을 높여 인구를 25% 늘렸다. 강에서 식수를 얻는 우리나라의 관점에서는 신기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인근 카사드산의 스노 팩(snow pack·들판을 덮고 있는 눈 덩어리)이 시애틀의 식수원이다. 또한 이 산의 눈은 수력발전으로 이 도시에 막대한 양의 전기를 공급해왔다. 덕분에 시애틀 의회는 1970년대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막았다.

 

눈 녹아 식수원 고갈 위기

그런데 수년 전 “카사드산의 스노 팩이 줄어들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됐다. “5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고 2050년에는 사라진다”고 했다. 물과 전기 공급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였다. 카사드산의 설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재앙은 지구 온난화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B. 필드 연구진의 보고서 내용이다.

“1955년부터 2005년까지 북아메리카의 연간 평균 대기온도는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온난화 징후는 온실가스, 황산염 및 자연적 외력이 결합해 발생한 것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서부 산맥에 위치한 기상관측소의 74%에서 눈보다는 비 형태로 강하하는 강수량의 비율이 증가했다. 온난화로 인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캐나다 서부와 대초원 지역의 총 강설량이 감소했다. 미국 서부지역도 봄·여름철 눈 덮개(snow cover)가 줄었다.”

또한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시애틀은 급속하게 숲을 잃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애틀시 자료에 따르면 1972년 이 도시 전체 면적의 40%를 나무가 덮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녹지 점유율은 18%까지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도시 팽창 및 생태계 이상현상이 원인이었다. 시는 “기존 나무들은 나이를 먹어 죽어가는데 해로운 생물이 번성하여 다음 세대 나무들의 숨통을 끊어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자료에서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러한 상실은 단순한 경관미의 상실 이상이다. 나무는 시애틀의 도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폭풍이 불거나 호우가 왔을 때 물을 흡수해 홍수를 막는다. 대기를 정화시키고 물을 맑게 한다. 나무는 우리의 자산 가치를 높였다. 나무는 삶의 질을 구성하는 직물과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장

시애틀에서 지구온난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렉 니컬스 시애틀 시장은 취임 초에는 기후변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물의 고갈을 의미하는 스노 팩 감소 보고서를 접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세계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열정적인 시장이 됐다.

2005년 2월16일 교토의정서가 발효됐다. 38개 국가는 2008~2012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해야 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전세계의 28%)이지만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2001년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니컬스 시장은 연방정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는 교토의정서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미국 시장들의 연대를 주도했다. 미국 132개 도시의 시장이 참여했다.

시장들의 연대는 미국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니컬스 시장은 2006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위(연방정부)에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밑에서 하겠다”며 자력해결의 의지를 피력했다.

시애틀은 연방정부와는 별도로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7%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자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연간 68만6600t을 줄여야 한다. 시는 이를 위해 2006년부터 공공기관, 기업,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전방위적 온실가스 감축 캠페인인 ‘시애틀 기후행동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논쟁은 끝났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자’는 취지였다.

이 캠페인을 비롯한 지구온난화 방지 정책은 시애틀시의 지속가능 환경부(OSE·Office of Sustainability & Environment)에서 주로 맡고 있다. 최고 책임자 마이클 만 본부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카사드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시장을 움직였다. 시애틀시는 가장 소중한 자산인 자연을 복원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시애틀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은 나무심기 녹화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오른쪽). ‘녹색지붕’이 설치된 시애틀 공공청사.

▼ 기후행동계획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니컬스 시장은 기후의 도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이 도시의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걸맞은 고안물들로 채워진 것이 기후행동계획이다.”

▼ 실행에 옮기면서 가장 먼저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시민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어 시가 전력을 다해 온난화 방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그 다음으로 시민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환경정책은 시민이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태클 걸었다”

▼ 결과는 어떠했나.

“시민들은 ‘지금 당장의, 실제의 도전’이라는 점을 잘 알게 됐다. 그 다음 질문은 ‘우리가 온난화를 막아낼 수 있을까’였다. 우리는 ‘그렇다. 막아낼 수 있다’고 답했다. 시민들은 ‘기후행동계획에 참여하는 것은 위대한 첫발(Joining SCAN is a great first step)’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 기후행동계획의 구체적인 콘텐츠는 무엇인가.

“공공기관, 기업, 주택, 개인이 참여하는 13개의 실행계획과 6개의 정책적 지원계획으로 구성돼 있다. 계획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설정하고 도구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실행과정을 모니터한다. 이어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식이다.”

환경 문제는 도시 문제다. 지구적 가치에 대한 도시 차원의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돼야 한다. 시애틀이 전환점을 만든 셈이다. 마이클 만 본부장은 “우리는 기후변화에 태클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기후행동계획은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 축소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및 바이오연료의 사용 △가정 및 직장의 온실가스 저감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2012년까지 세 부분 각각 17만t, 20만600t, 31만6000t씩 총 68만6600t의 온실가스를 감축해 니컬스 시장이 천명한 ‘1990년 수준 대비 7% 감축’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도시 녹화도 함께 추진된다.

온실가스 발생에 자동차 운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 축소’를 위한 세부안으로 시애틀시는 △대중교통수단의 확충 △자전거 및 보행 인프라 증설 △도로요금 징수체계 개선 △도심 주차요금 인상 △교외의 자족기능 향상 △친환경 자동차 개발 및 보급 추진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무료 탑승구역을 두고 있고 저가의 일일승차권을 발행하고 있다. 시 동남부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등 자전거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도심 중앙의 워터프런트에도 보행과 자전거 통행을 위한 오솔길을 확충하는 한편 해안 접근로도 만들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시 외곽 교외지역에서 주거, 상업, 엔터테인먼트, 교육, 일자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도심과 외곽을 오가는 승용차는 줄어드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는 증가한다”고 했다.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출병한 곳이기도 한 시애틀은 미국 제2의 항구다. 디젤 차량, 디젤 선박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편이었다. 디젤 기관은 휘발유 기관 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시 소유 디젤차는 전량 하이브리드차와 바이오디젤차로 교체했다. 시내버스도 하이브리드차로 바꾸고, 선박은 바이오디젤 선박으로 전환하고 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시 통계에 따르면 시애틀 선단(船團)에서 바이오디젤 연료의 사용은 2003년 대비 4.5배 증가한 반면 시애틀 항구의 화석연료 사용은 1999년 대비 12% 줄었다.

시애틀시는 기업, 시민단체 등과 함께 파트너십을 구성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동시에 신성장동력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오연료 시장 규모는 2016년 809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시애틀시와 그 주변에는 500여 개의 친환경 테크놀로지 기업이 들어섰다. 이들 기업은 2만5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 중 임페리움 리뉴어블스사는 미국 최대의 바이오디젤 생산회사로 연간 1억 갤런의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성 바이오디젤은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데 론 퍼닉의 저서 ‘친환경 기술혁명’에서 8가지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시애틀에 있는 유명 전기자동차 회사인 ZAP는 50분 충전으로 500㎞ 이상 달릴 수 있는 전기SUV를 개발 중이다.

시애틀은 그린 주택, 그린 빌딩 분야에서도 선도적 지위에 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2월4일 시애틀 소재 매킨스트리사를 방문해 “이 회사가 하는 일이 꿈의 직업이며 미국 경제의 미래”라고 연설했다. 이 회사는 일반 빌딩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빌딩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한다. ‘녹색 지붕(Green roof)’은 건축물 지붕에 다단계 방수, 배수설비를 갖추고 흙을 덮어 풀과 나무가 자라도록 하는 사업이다. 실내 냉·난방 에너지 절감, 대기오염 감소, 소음공해 저감, 건물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 이러한 녹색 지붕을 가진 그린 주택, 그린 빌딩 건축이 시애틀에서 성행하고 있다. 시애틀 발라드 도서관의 녹색지붕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설치된 것으로 유명하다.

   

시애틀 도심에서 바라본 만년설에 덮인 레이니어산. 시애틀시의 하이브리드 관용차.

주택과 빌딩에도 ‘그린 붐’

주택과 빌딩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온실가스 감축에 큰 도움이 된다. 니컬스 시장은 “시애틀을 미국 그린 빌딩의 수도로 만들겠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이 20% 향상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시는 최근 7건의 그린빌딩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또 건물 내부 대기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축허가 기준을 높였다. 그린빌딩 확산을 보다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린빌딩 태스크 포스’도 구성했다. 공무원뿐 아니라 민간의 부동산업자, 빌딩건축가, 그린빌딩 전문가, 주택 공급업자, 법률가, 에너지 전문가, 재정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시애틀시는 훼손된 녹지를 회복하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75에이커 토지를 녹화했고 6개의 마을 정원을 설치했다. 또 시내 주요 도로 주변에 4000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에서의 살충제 사용을 80% 줄였다. 2025년까지 시내에 2500에이커의 녹지를 새로 확보한다는 게 시의 목표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동참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7500명의 시민 자원봉사자가 녹지의 보존과 확산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음은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 전체 토지의 4분의 1정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사유지에 보다 많은 나무가 심겨지기를 원한다. 토지 소유주에게 녹지 확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한편 토지개발허가를 내줄 때 녹지 확충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센티브정책과 규제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시애틀시는 음식물 퇴비화를 포함해 자원-쓰레기 재활용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마이클 만 본부장은 “우리의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17일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가 미국 655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애틀은 공기청정도, 친환경 건물, 녹지 공간, 에너지 재생, 에너지 절약, 쓰레기 재활용, 교통, 수질 분야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얻어 ‘미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로 선정됐다.

 

한국 vs 시애틀

한국은 2000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억3400만t으로 세계 9위다. 세계 전체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 1990년 이후 배출량 증가는 85.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온실가스 저감 의무를 져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은 앞으로 가중될 게 틀림없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요 국가시책으로 추진 중이다. 친환경 자동차, 대체에너지 등 몇몇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봤을 때 아직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부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열정을 쏟는 ‘4대 강 사업’은 ‘온실가스 감축’과 일부 접점은 있겠지만 정책목표는 다른 사업이다.

재계에서는 “전면적으로 저탄소 정책을 시행할 경우 경제 마비를 불러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현존하는 환경적-경제적 위협 앞에서 한국은 어떠한 속도로,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지 결정은 못하고 논란은 커지는 형국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온실가스 감축 관련 홍보, 정책집행에서는 잘 정리된 느낌, 국제적 책임감, 지역사회 위기의식, 통찰력,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여론을 움직이는 메시지나 행동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시애틀의 선제적, 총체적 대응은 국내 현실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영국 브리스톨
산업·무역도시에서 최고의 지속가능 도시로 거듭나다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    

 2008년 영국 최고의 에코도시로 선정된 브리스톨은 환경과 비즈니스가 같이 살아나는 도시다. 인구 40만명의 무역도시, 산업도시에서 지속가능한 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시의회의 친환경 행정이 손꼽힌다. 친환경시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 브리스톨이 던지는 함의를 살펴보았다.
   

스티브 매리엇씨는 영국 브리스톨 시의회(한국의 지방정부에 해당)의 지속가능성 파트 매니저다. 8월25일 브리스톨을 방문했을 때 그는 기자를 데리고 지속가능성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을 보여주며 왜 이 도시가 영국의 최고 환경도시가 됐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미래세대가 누릴 환경자산을 손상시키지 않고 성장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제가 시의회에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담당 공무원인 스티브의 헌신적인 자세 또한 본받을 만했다.

그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브리스톨에 본부를 둔 영국 환경청의 새 건물이었다. 2010년 말 입주를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인 이 건물은, 바로 맞은편 중세 귀족의 성처럼 생긴 반원형의 클래식한 시의회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건물이 완공되면 영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심 건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빗물을 모아서 그 물을 사용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햇빛을 활용한 인텔리전트 조명, 자연통풍, 지열을 이용한 온수작동 등 여러 가지 친환경적 기능도 갖추게 되지요. 공사 재료들도 재활용 자재들이 주로 사용됩니다.”

환경청 건물에서 걸어서 10여 분 이동하자 이번에는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이 들어선 현대식 연주회장 콜스턴홀(Colston Hall)이 나타났다. 이곳도 자연조명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통유리창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고, 공기정화 역시 자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중앙통제장치에 의해 유리창 개폐가 조절되며, 인공조명 역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전등을 활용한다. 외부 온도가 많이 떨어지면 내부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는 단열 기능도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같은 규모의 다른 건물들보다 아주 낮다. 심지어 현재의 에너지 사용 현황은 외부인도 볼 수 있도록 로비 한쪽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 자세히 나타난다.(사진 참조)

 

‘아우어 바이크 허브’

연주회장에서 나와 부두 쪽으로 5분가량 걸어가자 큰길가에 튼튼한 자전거 거치대와 자동사용 등록기가 설치돼 있었다. ‘아우어 바이크 허브(Hour Bike Hub)’라고 불리는 자전거 자동대여 시스템 시설물이다. 평소 집에서 직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스티브도 가끔 이 장치를 활용한다고 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항구 쪽으로 이어지는 큰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분수대가 설치된 아늑한 광장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나 재킷포테이토(치즈 등을 얹은 통감자구이) 등 가벼운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이가 많았다. 이 광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에 시티센터 공원인 퀸스퀘어(Queen Square)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한때 교통 혼잡이 극심한 중심가 광장 도로였던 이곳은 시의회의 계획에 따라 1990년대부터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1736년 세워진 윌리엄2세 동상을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인도를 만들고 가운데는 잔디를 심어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바꾼 것. 이제 이곳에선 다양한 콘서트와 행사가 열려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퀸스퀘어를 벗어나 부두 쪽으로 걸어가자 넓은 골목 초입에는 대부분 차량통행을 막기 위한 철제기둥들이 설치돼 있었다. 중심가에선 차량보다는 자전거와 도보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려는 장치였다.

골목 하나를 건너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앳브리스톨’(@Bristol)이라고 불리는 건물이었다. 그 안에 자리 잡은 사이언스 디스커버리 센터는 많은 학교가 과학과 환경과목의 현장학습용으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이곳 옥상에는 기후변화 적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정원이 설치됐다.

앳브리스톨은 ‘BBC 자연사 유닛’ 제작부서와 공동으로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생태학에 관한 온라인 백과사전 ‘아카이브’(www.arkive.com)도 운영하는데,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이 아카이브에는 전세계 야생 동식물의 사진, 동영상, 소리 등을 자료 형태로 구축해두었다. 이 아카이브가 흔히 21세기형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는 이유다.

 

‘영국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까닭

“앳브리스톨이 들어서 있는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심하게 당해 폐허로 변했던 곳입니다. 전후에는 산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었고 밤이 되면 범죄가 횡행하던 곳이었죠. 그러나 브리스톨시가 최근 이곳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고 즐길 수 있는 ‘지속가능센터’로 바꿔 지금에 이르게 됐지요.”

앳브리스톨 인근은 바로 항구다. 바닷물이 좁은 수로를 타고 도시 중심부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브리스톨은 다른 항구도시들에 비해 도심으로 화물을 나르는 운송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 항구가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 강 같은 분위기의 이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물류창고는 몇 년 전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바뀌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그 가운데 레스토랑 ‘보르도키(Bordeaux Quay)’는 지속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모범적인 사례다. 자연채광과 고효율 전구 사용, 단열기능 강화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였고, 인근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현대식 연주회장 콜스턴홀은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돼 있고, 자연조명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친환경 빌딩이다. 작은 사진은 콜스턴홀의 에너지 사용현황 디스플레이 패널.

스티브의 안내로 1시간30분 남짓 시내 중심가를 돌아보았을 뿐이지만 브리스톨시의 친환경 정책 의지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브리스톨은 런던에서 서쪽방향으로 169㎞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다. 중심부에 4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교외까지 합치면 100만명의 생활권역을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역항으로 이름을 날렸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롤스로이스 에어버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등 하이테크 산업 도시로 변모했다. 당연히 산업쓰레기 등 많은 문제를 겪어야 했다.

그런 도시가 2008년 11월 영국 내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1위에 올랐다. 이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NGO ‘미래 포럼’이 영국 내 25개 주요도시를 대상으로 환경지표를 분석해 나온 결과다. 2007년 3위였던 브리스톨이 선두로 올라선 것은 그만큼 시의회의 친환경 행정이 높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브리스톨은 또 올해 2월 독일 프라이부르크 등 유럽의 7개 도시와 함께 유럽위원회가 선정한 첫 유럽 환경수도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최종 경선에서 2010년, 2011년 환경수도로 스톡홀름, 함부르크가 각각 지정돼 브리스톨은 비록 그 영광을 놓쳤지만, 이 도시는 2012년 환경수도 지정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정책들을 꾸준히 펴나가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브리스톨의 친환경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게리 홉킨스 의원을 만났다.

▼ 브리스톨이 지난해 영국에서 ‘지속가능한 도시’ 1위에 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과 대기의 질, 시민들의 삶의 질, 시의회의 행정, 산업에서 환경적 측면 등 여러 영역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 친환경적 요소를 비교할 때 브리스톨은 영국의 다른 도시들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다행스럽게도 브리스톨은 전통적으로 많은 녹지공간을 물려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공간을 잘 관리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공원을 운영해온 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부터 도심의 주요 공원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이 원하는 녹지공간이 어떤 것인지 면밀히 관찰하고 있고요. 모든 시민이 녹지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쓰레기 처리 문제는 브리스톨이 특별히 큰 성과를 거둔 부문입니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측면에선 영ㅁ 도시 대부분이 한국 도시들보다 뒤져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플라스틱 건초 등을 제외하고는 음식물과 기타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고 한군데에 버려진다. 따라서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쓰레기 매립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브리스톨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우리 도시는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매립은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아니지요. 또 우리는 주 단위의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및 분리수거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 쓰레기를 낭비해왔는지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식품 구매 패턴에 변화가 생길 정도로요. 낭비를 덜하게 된 거지요. 이런 변화를 거치면서 2007년의 경우 1인당 쓰레기량이 2003년에 비해 18%나 줄었습니다. 이는 유럽의 환경수도 경쟁국이었던 함부르크나 스톡홀름에 비해서도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활기

이밖에도 브리스톨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에너지원, 즉 태양광 풍력 등을 통한 소규모 전력생산 방식을 지원하고 있다. 용량이 크지는 않지만 조력발전 설비도 갖추고 있다.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2005~06년에 스톡홀름과 함부르크보다 낮았다. 함부르크가 2.04t, 스톡홀름이 1.1t이었지만, 브리스톨은 0.84t이었다. 브리스톨은 또 1996년 이래 개별 가정의 에너지 효율을 평균 23%나 개선했다. 이는 모두 시민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으로 가능했다는 게 시의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친환경 시책을 효과적으로 펴기 위해 시의회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시책을 실천하고 있다. 예컨대 브리스톨 시의회의 건강, 경찰, 소방 담당 등의 분야가 특히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8월 중순 건강담당부서에서는 2010년까지 온실가스 방출량을 10% 줄이자는 ‘텐·텐(10·10) 캠페인’을 시작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풍력발전기 2대를 돌려 시의회 건물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 브리스톨 시민들의 환경의식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시민들의 환경의식 수준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보다 높은 편입니다. 시민들에 대한 꾸준한 환경교육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브리스톨은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경제적 이득을 낼 수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브리스톨의 환경 컨설턴트회사인 ELS의 앨런 베일리 국장의 말이다.

“현재 영국은 대부분 세계적인 금융위기 탓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 관련 비즈니스가 살아나고 있는 브리스톨은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덜 겪는 편입니다. 많은 이가 브리스톨에 와서 살고 싶어 하거나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이는 이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이점이 되고 있습니다. 브리스톨은 주요 산업센터, 파이낸셜센터, 상업센터 등을 갖고 있고 그만큼 비즈니스의 기회가 많아 런던 이외에는 가장 소득이 높은 지역 가운데 한 곳입니다. 생산력이 높은데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기업 운영이 가능한 지역입니다.”

에코도시가 단순히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비즈니스 현장으로 연결되는 모델 프로젝트들이 바로 브리스톨이 자랑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3년 전 출범한 BETS(Bristol Environment Techno-logies and Services)는 주로 브리스톨의 경제권이 미치는 영역 안에서 외부의 투자자를 유치하고 친환경 기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파트너십 조직이다. 이 틀 안에서 브리스톨대 등 3개 대학과 프로젝트 회사, 환경농장, 컨설턴트업, 풍력발전 개발회사, 해양회사 관계자 등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BETS는 첫 트레이드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쳤고 올해 말엔 지속가능성에 대한 세계회의를 개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앨런 베일리 국장의 말이다.

   

브리스톨 중심의 퀸스퀘어. 과거에는 교통량이 많은 중심가였지만 현재는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시민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유럽 환경수도 이니셔티브

“에코도시 브리스톨은 기업의 시각에서도 성공적인 모델입니다. 성숙한 환경의식을 갖고 있는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친환경 행정,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기업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톨은 환경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춘 도시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브리스톨 환경수도(Bristol Green Capital)’라는 자발적인 프로그램까지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환경적인 노력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소기업이나 동물원, 건축회사 등도 브리스톨을 환경수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5년 동안 지속가능 경영의 선두에 섰던 콰트로 디자인 건축(Quattro Design Architects) 회사는 이러한 노력의 대표주자에 해당한다. 이 기업은 집에 관한 환경정보를 고객들에게 충분히 알려주어 상생구조를 만들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DNA 안에 ‘그린 어젠다’가 들어있다고 말하는, 콰트로 디자인 건축의 휴 네틀필드 환경경영 시스템 디렉터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접근 방법은 고객들이 건물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듣고, 대신 우리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난방과 냉방을 고려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전체적인 문제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컨대 햇볕을 잘 활용할 경우 냉방이나 난방 장치를 별도로 갖추지 않아도 되도록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죠.”

친환경·과학 교육이 이뤄지는 앳브리스톨 건물 전경.

콰트로는 본사의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해마다 5%씩 줄이고, 사원들의 친환경 여행을 장려하며, 물 사용량을 줄이고, 발생한 쓰레기 가운데 75%를 재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개별 기업의 성공적인 환경경영 사례가 모여 에코도시 브리스톨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에코도시의 ‘심장’ 시의회가 브리스톨을 유럽의 환경수도로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07년이다. 이때 민간, 공공, 자원봉사 기관들이 협력해서 환경수도 이니셔티브(Green Capital Initiative)를 출범했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 부분 대표들로 구성된 ‘추동그룹(Momentum Group)’도 만들어졌다. 교통단체인 ‘서스트랜스(Sustrans)’, 유기농 식품·농장 연합체인 ‘토양연합(Soil Associa-tion)’ 등 해당 부문 영국 최고의 NGO들도 힘을 보탰다.

도심 교통문제는 미해결

그 결과 올해 초엔 영국에서 최초로 ‘자전거 도시’로 선정되면서 정부로부터 1140만파운드(228억원)의 보조금도 지원받았다. 또 녹지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공원과 녹지 전략’ 시책에 따라 환경이 개선된 블레이즈성(城), 퀸스퀘어, 트루퍼스힐 호수 등의 사례가 영국의 대표적인 환경상인 ‘그린플래그어워드(Green Flag Award)’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에코도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는 브리스톨의 고민은 도심의 대중교통 수단 문제다.

“도시에서 이동수단의 70%가 자동차입니다. 이건 상당히 높은 수치지요. 그래서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브리스톨을 자전거 도시로 만들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자전거로 도심을 통행하는 비율을 두 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자전거 사용 권장은 최근 한국에서도 큰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비판론자들은 서울 등 한국의 도시들에 대개 언덕이 많아 자전거 사용을 권장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책이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브리스톨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LS 앨런 베일리 국장의 말이다.

“제 생각에 브리스톨의 자전거 도시 정책도 큰 성과를 보고 있다고 봅니다. 이웃 유럽 도시들이 평탄한 길이 많은 것에 비해 브리스톨은 언덕길이 굉장히 많아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는 시설을 갖추자 그런 우려는 말끔히 사라졌고, 자전거 이용자는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브리스톨은 지방자치단체의 헌신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이 선행될 경우 환경적인 차원에서, 또 비즈니스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중세의 거리 누비는 ‘온실가스 제로’대중교통의 마법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진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이 도시는, 옛 건물을 보존하되 그 안에서 현대적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개선하는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옛것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앞 광장의 오후.

어쩌면 라인 강을 타고 사흘 밤낮을 달려온 스위스의 나그네 상인이었을 것이다. 소속 길드의 품질 높은 흑색화약을 인근 선창가에 부려두고, 흐뭇한 마음으로 알자스 와인에 취해 세바스토폴 거리의 매끈한 포석 위를 흔들리듯 걷고 있는 중일 게다. 아니면 구텐베르크 인쇄공장의 솜씨 좋은 식자공이었을지도 모르지. 경건한 마음으로 마태복음 조판을 마치고 샤토 광장을 가로질러 늦은 귀갓길을 서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늦은 밤, 달빛에 강물이 반짝이는 스트라스부르의 옛 중심가 그랑딜르(Grande ille)가 뿜어내는 교교한 아우라는 지구 반 바퀴를 홀로 날아온 여행자를 갖가지 상념에 빠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솟아오른 성당의 첨탑과 중세 거리를 잇는 고풍스러운 다리,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수백 년 된 건물밖에 없는 낯선 분위기. 기억하지 못하는 14세기쯤의 어느 전생으로 되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아찔한 상상이 머릿속 가득히 피어오른다.

그런데 저건…. 머릿속을 유영하던 상념을 단숨에 제압하는 물체가 눈앞에 나타난다. 날렵한 유선형으로 잘 빠진 금속과 유리의 탄탄한 조합체가 매끄럽게 석조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단연 비현실적이다. 중세의 거리에 등장한 SF 영화 속 물건이라니.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지금은 21세기이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스트라스부르가 자랑하는 도심형 대중교통수단 트램(tram)이다.

중세 프랑스의 모습이 간직돼 있는 프티프랑스.

혹시 알자스-로렌 지방을 기억하시는지.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영토 싸움의 희생양이 됐던 고장이자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름이다. 바로 이 알자스의 중심도시인 스트라스부르는 현재도 독일과의 국경선으로부터 불과 3km 떨어져 있다. 라인 강과 론 강, 마른 강을 잇는 운하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이미 로마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해 7~8세기 무렵에는 중부 유럽을 대표하는 교통 중심지로 떠올랐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연상케 하는 대성당이 하늘 높이 첨탑을 세운 것이 이 시기였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갈고 닦은 곳이 이 도시였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강변의 프티프랑스(Petite France)는 1988년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세기 후반 유럽연합 의회(European Parliament)가 자리하면서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 도시에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바로 ‘프랑스 제일의 환경도시’다.

온실가스가 없는 대중교통

스트라스부르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트램.

중세에는 양조와 제분, 산업혁명기에는 철강과 화학, 기계공업이 발달했던 이 도시는 빠른 산업화와 분지 지형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지역이었다. 여기에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키는 등 환경문제를 일찍부터 고민해온 독일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까운 특성 덕분에, 공격적인 환경정책을 내걸었던 사회당 후보가 1989년 시장에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진다. 당시의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바로 트램 노선 구축이었다.

소음이나 진동이 거의 없고, 매연도 배출하지 않으며, 생김새마저 깔끔한 이 지상 전기열차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내 중심부와 주택가·공장지대로 이뤄진 외곽지역을 연결하는 5개 노선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레일 위에 잔디를 심어놓은 것 역시 트램의 친환경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트라스부르 시청의 홍보담당자 베로니크 프티프레즈씨는 말한다.

“트램에 사용되는 전기는 주변지역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양이 8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는 인근 강의 수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고요. 한마디로 트램 때문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거의 없는 셈이지요. 우리가 트램을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의 전형’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트램 운영을 담당하는 기업 CTS (Compagnie des Transports Stras-bourgeois)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공공자본과 민간자본이 공동으로 참여하되 항상 공공지분의 의결권이 앞서도록 유지하는 형식. 기업 자체는 시에 소속된 형태지만 민간기업의 경영노하우를 접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시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운영비용 역시 요금에서 충당되는 부분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공공영역의 보조금으로 부담한다.

흥미로운 것은 운영비용을 보조하는 주체 가운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포함돼 있다는 것. 친환경 대중교통 수단의 확산을 고민하고 있는 유럽연합 측은 스트라스부르와 계약을 맺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트램의 선구자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 각 도시에 트램의 설치나 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제공하는 형태다. 트램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1990년대 중반에는 매주 3~4팀의 방문단이 이 도시를 찾았을 정도라고 한다. 몽펠리에나 리용, 보르도 등 프랑스 도시들은 물론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나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도 스트라스부르의 도움을 받아 트램을 도입했다.

   

500km, 13만명

일요일 아침, 자전거를 빌려 타고 유럽의회를 향해 나선 길은 상쾌하다. 트램에 자전거를 싣고 오란제리 공원으로 가서 시내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좋다는 추천의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가을 바람결 사이로 멀리 유럽의회의 멋들어진 남색 유리 의사당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이어지는 강변의 자전거도로는 고색창연한 도시의 가을풍경을 마음껏 선보인다. 물 위를 떠가는 유람선, 이어지는 성당의 첨탑들, 강가에 늘어선 카페의 노천좌석에서 볕을 즐기는 노부부까지.

어느새 다시 번화가로 접어들었나 싶은 자전거도로의 끝에 거대한 거품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베를린, 서쪽으로는 파리를 향하는 TGV가 멈춰 서는 스트라스부르 기차역이다. 1883년 완공된 건물을 창조적으로 재활용한 건축미학. 역사 앞 옛 광장 부분을 덮어씌운 유리와 철골의 타원형 돔이 마치 거대한 거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왕복 차선의 가운데 만들어진 시내 자전거도로의 끝은 바로 이 건물의 지하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나선형 경사로를 타고 내려가면 만나는 곳은 트램 정거장과 대형 환승 주차장, 그리고 한꺼번에 500대의 자전거를 세울 수 있다는 자전거 보관소다.

바로 옆 자전거 대여소의 점원 줄리 도이치만씨는 “시 외곽에서 트램이나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이들이 시내에서 이용하는 자전거로, 오늘 같은 주말에는 가득 차 있지만 평일 낮에는 거의 텅 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보았던 트램 종점의 자전거 보관소에는 자전거가 거의 없었던 게 기억난다. 아마 금요일 저녁 트램에서 내린 이들이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갔으리라.

트램 건설이 결정되던 1989년 당시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의 자가용 의존도는 72.5%에 달했고, 대중교통 이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트램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만큼, 건설되는 노선의 종점이나 주요 역에는 환승 주차장과 자전거 보관소가 함께 지어졌다. 외곽에 거주하며 시내로 출근하는 시민들을 위한 장치였다. 덕분에 1호선이 완성된 뒤 그랑딜르 지역에 진입하는 자가용의 수는 28% 이상 줄었다는 게 시 당국의 통계다.

트램을 타고 도시를 살펴보는 동안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자전거 보관소는 모두 50여 개에 달한다. 지하화한 곳도 있고, 건물 형태로 만들어진 곳도 있으며, 좁은 공간에 많이 보관할 수 있도록 세워놓는 형태도 있다. 시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건설된 자전거도로는 총 500km. 규칙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만 13만명에 달한다는 숫자는 단연 프랑스 최고다.

국경을 넘어선 환경 협력

스트라스부르 기차역의 유리돔 내부.

공격적인 친환경 교통정책으로 명성을 떨친 이후, 스트라스부르는 환경정책의 범위를 더욱 다양화했다. 시에서 관리하는 잔디밭과 숲, 가로수에 살충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대신 벌레 등 천적을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면 어디나 트램 레일 위를 덮고 있는 잔디도 마찬가지. 그 때문에 자로 잰 듯 깔끔하게 관리되진 않지만,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은 적당한 자연스러움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다”고 프티프레즈씨는 말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의 주요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바꿔나가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2025년까지 주요 건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로, 이미 모든 다중이용시설을 에너지 저소비 건물로 단장했다. 각급 학교의 에너지 소비에 관한 모니터링 체계 구축, 에너지 절약 캠페인, 대중교통과 관용차를 천연가스 자동차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외곽에 위치한 옛 공장지대들도 친환경적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네 군데에서 진행하고 있다. 도시의 주요산업이 제조업에서 의학과 연구개발, 금융업 등 3차 산업으로 빠르게 이동함에 따라 골칫거리로 전락한 낡은 공장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비즈니스·주거·레저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다. 재활용 건축자재를 주로 사용하고 대안적 에너지 생산설비를 구축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 자동차 출입이 아예 금지되어 대중교통으로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내년부터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스트라스부르의 환경 정책 운용에서 눈여겨볼 또 한 가지 특징은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다. 시의회와는 별도로 운영되는 자문기구 형태의 지역평의회가 대표적. 구역별로 15개가 있는 이들 평의회는 자원자와 추첨으로 뽑힌 이들로 구성된다. 자전거도로 건설이나 공원 개보수, 학교 증축 같은 지역의 주요 사안은 모두 이들 평의회 월례회의의 검토를 거친다. 시의 환경정책과 문화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전문가 워크숍, 외국인 거주자들과 청소년들이 시의 현안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회의체도 구성돼 있다.

공기와 물을 공유하는 주변 도시와 환경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시스템도 구체적이다. 심지어는 국경 너머 독일 지역 지자체들과도 2005년부터 협의체를 구성해 공공 인프라 투자나 환경설비 구축 등 다양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독일이냐 프랑스냐를 가리지 않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앰뷸런스 제도나 초등학교 공동 교육프로그램 구성 같은 구체적인 제도는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국경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는, 우리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200년 뒤를 생각하며

내 못된 성격 탓일까. 도시를 보면 볼수록, 부럽다는 생각 못지않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유럽 산업화의 초기 원형에 해당하는 이 도시의 사람들은 우리가 보릿고개와 전쟁에 허덕이던 수백년 전부터 이렇듯 탄탄한 다리와 하늘 높은 건물,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놓고 살았던 것이다. 그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도로와 거리가 지금 쓰기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게 가장 샘나는 사실이었다.

1809년 한양에 살던 김 첨지가 우연히 외계인의 타임머신을 얻어 타고 2009년의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당도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과연 서소문 밖에 있던 자신의 옛집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1809년 스트라스부르에 살고 있던 식자공이 2009년으로 온다면? 그는 십중팔구 낯익은 골목을 걸어 익숙한 다리를 지나 자신의 집을 찾아올 것이다. 운 좋게도 그가 강 어귀 프티프랑스에 살고 있었다면, 아마도 고스란히 보존된 자신의 집 문고리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는 말은 진부한 용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해 1000년이나 전에 오늘날의 모습을 대체적으로 완성했다는 이 도시는, 옛 건물을 보존하되 그 안에서 현대적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개선하는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유서 깊은 거리를 관통하는 트램처럼, 200여 년 전에 지어진 호텔 안에 설치된 유리 엘리베이터처럼, 고색창연한 시가지 곳곳에 깔아놓은 무선인터넷 포트처럼,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모든 곳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보존과 개선의 조화는 수백년 된 건물이 오늘도 불안감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튼실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보존 대신 싹쓸이 개발을 택하며 도시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온 우리에게 스트라스부르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그것이 아닐까. 지금 만드는 우리의 건물과 거리, 도시는 200년 뒤의 후손들을 생각하며 지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우리도 그럴 때가 되었다고 말이다.

 

인터뷰
임마누엘 후드 스트라스부르시 총괄국장
“가장 훌륭한 도시정책은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에서 나온다”


스트라스부르의 환경정책은 지난 십수년간 시민들 사이에서 이어져온 다양한 토론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게 시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특유의 역사적·문화적 풍토에 지방선거 등을 통한 합의가 환경친화적 특성을 만들어낸 밑바탕이었다는 것. 스트라스부르의 환경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임마누엘 후드 총괄국장에게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시 당국이 중점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바를 물었다.

-스트라스부르가 프랑스 제일의 환경도시가 될 수 있었던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있다면….
“스트라스부르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로서 역사가 오래된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라인 강과 풍요로운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무역과 산업을 발전시켜온 도시들이 이곳 알자스 지방에 모여 있다. 그렇다보니 환경에 대한 고민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자연환경을 잘 활용해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이 컸고, 또 도시화의 여러 문제점도 상대적으로 일찍 겪었다. 그런 경험이 시민들에게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켜서 트램 같은 대안적인 수단을 채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본다.”

-트램을 처음 설치할 당시에는 정치적 논란이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다.
“1989년 시장선거의 최대 이슈였다. 트램과 지하철 가운데 무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지하철은 비싸지만 편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자동차 중심의 지상교통 패턴을 바꿀 필요도 없다. 반면 트램은 건설비용이 지하철의 50~60%에 불과하지만 시내의 자동차 진입 상당부분을 제한하는 등 그간 시민들이 누려왔던 교통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사업이었다. 결국 당시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트램을 내걸었던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오늘날 스트라스부르가 운용하는 많은 환경정책의 뿌리가 형성됐다. 오늘도 시내 곳곳을 누비는 트램을 보면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스트라스부르가 가진 환경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긴다고 본다. 이제 더 이상 트램이나 환경문제는 선거 이슈가 되지 못한다. 모든 후보가 친환경을 표방하니까.” (웃음)

-어느 도시정책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환경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논란을 야기하기 십상이다. 이를 극복해온 스트라스부르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다른 답은 없다. 더 많은 의사소통을 할 뿐이다. 투표로 선출되는 시 의회와는 별도로 지역의 각종 사안을 토의하는 평의회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이 강제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개개의 시민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느냐 여부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자체가 개선될 수도 있을뿐더러 지역사회의 갈등이나 이기주의도 최소화할 수 있다. 꼼꼼한 의사소통이야말로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밑바탕이라는 믿음이 스트라스부르 지역정치의 가장 소중한 전통이다.”

‘동양의 베니스’ 중국 쑤저우(蘇州)
환경을 무기로 글로벌 첨단도시로 변신한 비결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쑤저우는 크고 대단한 도시다. 6000개의 다리가 있으며, 머리 좋은 상인과 각종 기술과 지혜를 가진 영리한 사람들이 많다. 비단 생산량이 엄청난 규모여서, 모든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있을 정도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중에서)
   

‘신동아’가 ‘세계의 에코도시’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고민 중 하나는 선진국 도시 위주로 소개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환경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관심을 갖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 중국에서 에코도시 후보를 찾아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선진국 사례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 환경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중국의 에코도시를? 기자는 지금도 1997년 2월 베이징의 겨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이 사망했을 때였다. 그때는 대기오염이 너무 심해서 호텔 바깥에만 나가면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취재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 세수를 하면 검댕이 씻겨져 나왔다. 베이징은 당시만 해도 난방연료로 대부분 석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겨울철 대기오염은 최악의 수준이었다.

올림픽이 열렸을 때 베이징의 맑은 하늘이 증명했듯이 이제 베이징도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환경문제에 대한 중국의 첫인상은 그렇게 각인됐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더구나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높게 솟은 공장 굴뚝이 아닌 에코도시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코트라 상하이 KBC(코리아비즈니스센터)에 “중국에서 에코도시로 취재할 만한 곳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그런 도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쑤저우 공업원구(蘇州 工業園區)였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쑤저우 공업단지’이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에선 신도시 개념이다. 공단뿐만 아니라 학교, 아파트 단지, 공원, 자체 법원과 검찰, 대형 쇼핑시설 등 도시의 모든 자족기능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취재일정 섭외를 도와준 코트라 상하이 KBC의 김윤희 과장은 “쑤저우 공업원구가 2008년 3월 국가생태시범단지로 지정되면서 생태 및 친환경사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2009년에 설립 15주년을 맞이하면서 향후 15년은 생태, 친환경 쪽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중국에 있는 공단이 ‘에코 신도시’를 만들었다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로 하고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9년 10월 상하이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쑤저우로 향했다. 쑤저우 공업원구가 속한 쑤저우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쑤저우는 한국에선 ‘소주’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도시다.

 

‘동양의 베니스’, 쑤저우

쑤저우 공업원구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촬영 중인 커플.

양쯔강변에 있는 쑤저우는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중국 수 왕조 때 대운하가 완공되면서 주요 무역 도시로 부상했고, 상인과 장인들로 붐비는 해상운송업과 곡물저장고로 번성했다. 14세기에 쑤저우는 중국의 비단생산지로 자리매김하면서 부가 급격히 팽창했다. 부자들이 쑤저우에 대저택과 정원 휴양지를 대거 지으면서 쑤저우는 16세기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당시의 부(富)는 후대에 경쟁력이 있는 관광상품을 유산으로 남겼다.

쑤저우 최고 정원이자 중국 4대 정원으로 꼽히는 줘정위안(拙政園)이 대표적인 사례다. 1509년에 조성된 이 정원은 소설 ‘홍루몽’의 무대가 된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쑤저우에 도착하자마자 주요 관광코스인 운하로 향했다. 수나라 때 이런 규모의 운하가 건설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쑤저우는 도시를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운하가 많아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실제로 1276년 쑤저우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모든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6000개의 다리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현재 쑤저우에 남아있는 다리는 200여 개라고 한다. ‘동방견문록’을 관통하고 있는 과장이 쑤저우 묘사에도 적용된 셈이다.

   

쑤저우를 관통하는 운하.

직접 본 쑤저우 운하의 규모는 베니스에 못지않았다. 그렇게 오래전에 이런 규모의 운하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수나라는 운하 공사를 무리하게 하다가 재정이 파탄 나서 망했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수나라는 중국의 북과 남을 연결하는 2000㎞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했다.

하지만 운하 양옆의 건물이나 집은 여전히 ‘개발도상국 중국’이었다. 운하에서 물을 떠다가 설거지를 하는 주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상수도 시설이 미비하고 위생 개념도 부족한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운하를 따라가다가 도중에 배에서 잠깐 내려 쑤저우 재래시장을 구경했는데 왁자지껄하고, 활력이 넘치고, 그렇지만 지저분한, 전형적인 중국의 오래된 도시 분위기였다.

과연 쑤저우를 에코도시로 소개할 수 있을까? 코트라 상하이 KBC로부터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불안감이 몰려왔다.

중국 속의 유럽?

운하에서 빠져나와 자동차를 타고 쑤저우 동쪽에 있는 쑤저우 공업원구로 향했다. 공업원구 입구인 셴다이(現代)대로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8차선 간선도로 양옆에는 폭 10m의 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시내 도로 양옆에도 화단이 설치돼 있었다. 자동차로 5분쯤 더 달리자 거대한 호수공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잘 정비된 호수공원 주변으로는 고층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미국 시카고에 바로 붙어있는 미시간 호수가 떠올랐다. 미시간호와 시카고 마천루가 빚어내는 광경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볼거리다.

때마침 호수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 석양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렉서스 RS350을 타고 온 새신랑은 “상하이에서 2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왔다. 쑤저우 공업원구 호수는 워낙 경치가 좋고 아름다워서 상하이 젊은층에게 웨딩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호수 주변을 따라 산책로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곳곳에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어 호수 안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중국에 와 있는지, 유럽에 와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쑤저우 동부 신형도시’로도 불리는 쑤저우 공업원구의 면적은 288㎢(8500만평). 서울시 면적(605㎢)의 절반에 육박하는 면적이다. 차를 몰고 가다보면 공원과 호수가 번갈아 계속 나온다. 경제발전에 주력하면서 흔히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을 받는 중국 안에서 쑤저우 공업원구가 어떻게 해서 ‘에코도시’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쑤저우 공업원구의 출범부터 살펴봐야 한다. 1994년 중국은 싱가포르와 합자해서 쑤저우에 새로운 개념의 공단신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출범 당시 지분은 싱가포르 65%, 중국 35%였다. 그런데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중국 측의 추가 투자로 현재는 지분 비율이 중국 65%, 싱가포르 35%다.

당시 자국 기업의 중국 진출 거점 확보를 원했던 싱가포르와 외국인 투자유치 과정에서 싱가포르의 노하우 확보가 필요했던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공업원구는 출발했다.

쑤저우 공업원구 전경.

15년 동안 쑤저우 공업원구는 무서운 기세로 발전했다. 2008년 기준으로 △수출입 총액은 625억달러로 국가급 개발구 2위 △2036개 외국 기업으로부터 216억달러 투자 유치 △총 생산액 1001억위안이다. 한국 기업도 삼성전자를 포함해 70개가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조6000억원을 투입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쑤저우 공업원구가 특별한 것은 시작부터 환경요소를 중요시했다는 점에서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쉬샤오제 환경보호국 부국장은 “싱가포르는 공업원구가 출범하고 중요한 전략을 수립할 때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는 특히 생태 환경 분야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으며, 자국의 경험을 전수해줬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싱가포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쑤저우 공업원구에서는 공장 굴뚝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고압전선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금붕어가 사는 오·폐수 처리장

쑤저우 공업원구에 조성된 녹지.

오·폐수처리 시설도 쑤저우 공업원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환경시설. 공업원구는 별도의 오·폐수 처리공장을 갖춰 빗물은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도록 하는 대신 이 지역 안에서 배출되는 모든 오·폐수는 반드시 처리공장을 거쳐서 흘러가도록 했다.

이후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최첨단 오·폐수 처리 공정을 거친 물에서 금붕어가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상주인구는 30만명. 여기에 유동인구 35만명까지 포함하면 70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배출하는 모든 오염물이 깨끗하게 정화돼서 처리되는 것이다. 오·폐수 처리공장에서 키우는 금붕어는 환경문제에 대한 쑤저우 공업원구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에너지도 환경친화적 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쉬 부국장은 “태양열 및 풍력발전시설은 현재 연간 8만k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공업원구 안에 있는 국제학교에 공급하고 있다. 가정에서 쓰는 온수도 태양열을 많이 활용하도록 해 공업원구에 있는 고층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은 대부분 태양열을 에너지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쑤저우 공업원구에 있는 학교의 85%에 달하는 39개 학교가 ‘그린스쿨’ 자격을 획득하기도 했다. 쑤저우 공업원구는 전체 면적의 45%가 녹지다. 쑤저우 공업원구 공보실에서 근무하는 산샤오후이씨는 “중국에서 녹지가 전체 면적의 45%를 초과하는 공업원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녹지규모가 크기 때문에 겨울에는 철새가 중국 북쪽의 추위를 피해 많이 날아온다. 따뜻한 ‘강남’으로 오는 것이다. 보통 철새는 여름이 오면 다시 북쪽으로 떠나는데, 일부 백로는 쑤저우 공업원구가 좋은지 아예 둥지를 틀고 살고 있을 정도다.

부지가 워낙 넓기 때문에 쑤저우 공업원구에서는 공단 조성, 아파트 등 신규 주거단지개발 등 개발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높은 수익이 예상돼도 녹지비율을 일정부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도 그 액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환경친화적인 분야가 아니면 받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워놓고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 수억달러에 달하는 투자가 제시됐지만 쑤저우 공업원구의 엄격한 환경조건을 통제하지 못해 거부된 프로젝트가 많다.

그렇다면 쑤저우 공업원구가 아직도 개발도상국인 중국 안에서 이렇게 고집스럽게 ‘에코시티’를 지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첫째는 중국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중국 정부는 미래에는 환경친화적인 공업단지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2008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가 생태 시범단지’를 선정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국 국가환경보호국과 과학기술부는 생태와 환경지표를 조사한 뒤 쑤저우 공업원구를 포함해 3개 단지를 시범단지로 결정했다. 쑤저우 공업원구는 출범할 때부터 생태와 환경 등에서 싱가포르 수준에 맞춰왔기 때문에 유리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쑤저우 공업원구에 대해 환경보호에 중점을 둔 개발을 주문하는 동시에 인력과 재원 등에서 막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현재 쑤저우 공업원구는 환경 및 생태지표에서 싱가포르 수준에 근접했으며, 15년 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중앙정부도 환경시설 등에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테면 오·폐수 처리비용에서도 공업원구 내 개별 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이 낮다. 대부분은 중국 정부가 지원한 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가능한 이유는 매년 쑤저우 공업원구가 내는 세금이 100억위안을 넘을 정도로 재정에 대한 기여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금 액수는 중국의 웬만한 한 개 성이 걷는 세금 총액수에 해당한다.

   

에코도시가 가능한 이유

둘째는 환경을 강조한 도시개발이 첨단산업과 고부가가치 해외투자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쉬 부국장의 설명이다.

“글로벌 구미기업은 투자를 결정할 때 중국 내수시장과 함께 환경을 중요시하는데 쑤저우 공업원구의 생태 수준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이 점이 투자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정밀기계업종의 경우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쑤저우 공업원구에 들어와 있는 기업의 42%가 미국과 유럽회사다. 쑤저우 공업원구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1만여 명. 이처럼 외국인 거주인구가 많기 때문에 장쑤(江蘇)성 최대 규모의 외국인학교도 이곳에 있다. 사실 중국의 전형적인 도시는 외국인이 살기에 썩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그런데 쑤저우 공업원구처럼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탈바꿈해 외국인이 살아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하면 외국인 투자에 한결 좋은 조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주력산업도 달라지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쑤저우 공업원구 관계자의 설명이다. 쑤저우에 ‘중국판 실리콘 밸리’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원대한 계획이다.

환경과 생태분야에서 쑤저우 공업원구의 선구자적인 노력은 중국 전체에 일종의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점은 사실 중국 중앙정부가 노린 효과이기도 했다.

중국 각지에서 쑤저우 공업원구의 환경 및 생태사업을 보기 위한 방문 요청이 쇄도하자 쑤저우 공업원구는 아예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방문객 안내를 전담케 할 정도다.

 

‘제2의 에코도시’

규모는 작지만 ‘제2의 쑤저우 공업원구’ 개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선 쑤저우 북부에 있는 쑤첸에 10㎢ 규모의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초기부터 쑤저우 공업원구 간부 10여 명을 파견했다. 이에 따라 쑤첸은 이미 쑤저우 공업원구 기준에 합격했다. 쑤첸이 위치한 장쑤성 북부지역은 남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어, 쑤첸 개발은 지역 균형발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또 난퉁에는 쑤저우의 하이테크 공업발전 방식을 그대로 가져가는 50㎢ 규모의 도시를 개발 중이다. 두 도시의 개발로 15만~20만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추가효과도 있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공업원구 자체가 주위 관광지와 함께 묶여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쑤저우의 구 시가지에서는 역사유물을 관광하고, 털이 많이 나 있는 털게로 유명한 양천호에서 털게를 먹고, 쑤저우 공업원구를 견학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쑤저우 공업원구 내 기업도 적극적이다. 글로벌 회사들은 자사 홍보 차원에서 생산설비 등을 견학프로그램으로 공개하고 있다. 쑤저우 공업원구는 2010년 5월 상하이와 난징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상하이에서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더 많은 관광객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보통 중국 하면 연기를 내뿜는 공장, 오염된 강을 떠올린다. 그런데 쑤저우 공업원구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깬 도시였다. 환경친화적인 도시환경을 해외기업 투자의 핵심경쟁력으로 내세운 발상도 신선했다. 미래의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넘어서, 또 다른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포석을 깔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