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상주불멸(常住不滅)의 세계_순간에서 영원으로

醉月 2011. 10. 13. 08:53
I. 개요

1. 절대불멸의 상주세계
    * 마음의 일상적 근저가 다 깨진 세계
    * 초의식 세계
    * 1) 깊은 명상-참선 2) 실생활에서 나쁜 습성 없애기 바른 마음 실천하기
    * David Hopkins, 의식혁명: +- 5에 머물 것인가?
    * 학문의 핵심은 집중; 집중은 고도의 명상을 통해서 체득된다.
    * Business도 마찬가지 Focus가 핵심: 집중을 통해 깨인 의식은 유지된다.

    * 일체 자기가 다 죽어야 된다.
    * 절대부정은 절대긍정을 낳는다.
    * E=MC2; M=λf
    * 물질과 마귀 생각에서 버리고 버리고, 순수의식으로 순수의식으로 순수 에너지로 순수 에너지로 거슬러 올라 가다보면 "일체가 끊어진 자리"
 
    * 개체의식 → 우주의식
    * 일체가 다 죽어 없어지고 나면 → 일체가 끊어진 자리에 들어간다 → 일체의 망상 망념이 끊어진 자리

☞ 일상적인 마음의 자리 너머 신의 자리
☞ 일체 끊어진 가운데 묘한 의식의 자리
☞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자리

2. 마음과 의식개발
   1) 마음의 정의: 무엇을 닦을 것인가? "산 삶의 기억된 일체"
   2) 마음에는 본래마음과 사람마음이 있다
   3) 사람마음의 에고를 다 비우고 나면 하늘 마음만 존재한다
   4) 자기 의식의 채널을 하늘마음에 고정하고 사는 사람은? (의식이 각성된 우주의식으로 늘 깨어 있는 사람은) 지혜롭게 산다
   5) 참 사랑이 넘친다. 자기를 극복했으니 사랑이 넘쳐흐를 수밖에(Spill Over할 수밖에)
   6) 핵심은 에고가 죽는 것!
     * 살아서 죽는 자 만이 천국에 간다; (불교) 생전 예수제를 지내라!
     * 나를 본 자는 죽는다(예수님)
     * 나는 비록 복음을 얻었으나 매일 죽는다(사도 바울)
     * 일체 다 죽어 없어지고 나면 일체가 끊어진 자리.
     * 생각이 비워지고 일체가 없어지면 절대공의 세계.
     * 그곳은 참 자아-순수의식의 세계.
   7) 끊어진 자리와 지혜의 샘
   8) 늘 깨어 있는 사람은 본연적 무상삼매 늘 각성된 우주의식에 주파수가 고정

3. 의식 업그레이드
    * 수평적 삶 vs. 수직적 삶
    *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 vs.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
    * 기쁘게 친절한 마음으로 일을 잘 하는 사람 vs. 어둡고 짜증내며 일도 못하는 사람
    * 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는 사람 vs. 화를 내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
    * 고주파 에너지 (사랑 창조 친절 기쁨 용기 이해 관용 용서 자비)vs. 저주파 에너지 (분노 짜증 우울 옹졸 질투 오만 우쭐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
 )
    * 성공을 해도 성공이 될 수 없는 자의 슬픔
    * 일등을 향해 앞장 서 달리다가 뒤로 돌아서면 꼴찌
    * 우리는 누구를 더 평가하게 될까요?
    *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 아닌 <인생의 승리자>!

4. 미래를 위해 지금 투자하라! 의식을 개발하는 CEO가 되라!

 

II. 내용

1. 들어가면서


햇살이 눈부시게 맑고 푸른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곳에는 우리를 온통 짓눌렀던 부담과 부대낌이 없으니, 대 자연이 주는 끝없는 혜택에 온 몸을 맡겨 보십시오. 자연이 주는 햇살,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를 속박했던 온갖 관계, 허섭쓰레기로 부터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보십시오. 그대는 아름다운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매미 소리가 주는 아름다운 리듬과 묘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니... 이름 없는 들꽃들이 건내는 인사에 미소지으며, 연두색 나뭇잎들을 스쳐 그대에게로 다가가는 부드 러운 바람결에 온통 그대의 감각을 내던져 보십시오.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은 두둥실 허공을 떠다닐지니... 그대가 자신이라고 그토록 굳게 믿어 왔던 그대의 몸과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때, 그리하여 그대가 큰 자연의 호흡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때, 그대는 온전한 <신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고요와 침묵! 그것은 그대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상상력imagination과 직관intuition, 영감inspiration과 통찰력insight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2. 명상
명상을 배운다는 것은 삶을 꾸려 가는 동안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직 명상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본성의 고요함을 온전하게 맛보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 명상 수행의 체험을 일상의 삶에서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음식물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듯 명상 수행에 임해야 합니다.


명상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당신의 참된 본성을 발견할 수 있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죽는 데 필요한 안정감과 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마음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집착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풀어주어 쉬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넉넉하게 확장하고 마음속의 긴장을 푸는 것입니다. 당신의 참된 본성 안에서 마음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호흡의 흐름을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감정이 개입될 때 당신의 호흡은 방해를 받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당신의 호흡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호흡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부조화를 의미합니다. 호흡이 원활하게 순환되고 그리하여 당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열려 있게 된다면, 당신은 숨쉬는 것,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니 당신의 자연스러운 호흡에 감정이 끼여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맑은 기억과 사고 작용에 감정의 기름 떼가 묻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이미 묻어서 베어 버린 뒤라면 모두 닦아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은, 마치 유리창처럼, 깨끗하게 닦으면 닦여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투명한 유리창처럼 맑아질 때까지 닦아내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수정처럼 맑아지고 다시 빛날 때까지 기도와 명상을 계속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맑아지고 그리하여 당신의 호흡이 다시 온전하게 자연의 흐름을 따를 때까지 침묵과 명상이 필요합니다.

 

명상을 할 때는 가능한 한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드넓어져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근심에 휩싸이는 자아의 올가미로부터 조용히 빠져 나오십시오.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서 당신의 참된 본성 안에서 쉬도록 하십시오.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정신적인 허섭쓰레기들 즉, 온갖 정보들, 온갖 개념들, 온갖 생각들, 그리고 온갖 편견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십시오. 명상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해져 왔던 것과 완전히 절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명상이란, 전면적으로 죽는 습관이며, 죽음 그 자체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윤회의 세계에 살면서 여러 생에 걸쳐 부정적인 성향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에고ego>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감각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게 하고, 에고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속여왔으며, 그리하여 에고와 에고에 대한 집착에 끝없이 매달리게 해 왔습니다. 냉철하게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뿌리입니다.

 

<에고ego>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정한 앎의 결핍이자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근저를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해온 온갖 정보들, 온갖 생각들, 그리고 온갖 관념의 틀이 우리의 자아ego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지無知가 꾸며낸 이 같은 <허구의 정체성>이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mind의 본성과 실재reality의 본성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강하게 응축되어 굳어버린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 명상의 본질입니다.

 

3. 마음
모든 것의 본성은 저 하늘처럼 열려 있고 텅 비어 있고 숨김없이 드러난다. 밝게 빛나는 텅 비어 있는 공空, 한곳에 쏠리거나 밖으로 퍼짐 없이 <순수한 리그파rigpa>가 있는 그대로 떠오른다.
◈ 소걀 린포체, 《티베트의 지혜》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하는 밝은 빛, 그것은 결코 태초에 태어난 것이 아니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밝은 빛은 <리그파>의 소산으로 어떤 부모도 없이 그 자체일 뿐이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으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뚜렷하게 볼 수 있건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하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윤회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지만, 어떤 것도 그것을 해치지 못하는구나!
자신으로부터 유래되는 이 지혜는 그 누구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존재하건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불성을 본다해도, 사람들은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아닌 다른 과실을 얻고자 애쓰니―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은 본래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도, 오늘도 그대는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매는구나!
◈ 티베트의 붓다 파드마삼바바

마음은 양파껍질처럼 여러 수백, 수천 겹 이상의 관념과 관습으로 쌓여 있습니다. 마치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듯이, 또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 공전하고 있듯이, 인간도 마음을 중심으로 몸 전체의 의식이 회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흡사 유연한 둥근 공과 같은 느낌이며, 감정, 이성, 본능, 지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러한 인간의 <일상적인 마음>을 넘어선 자리에 순수의식인 <큰 생명>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중심 그리고 사람 마음의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초월의식이자 우주의 생명의식입니다.

 

<자아ego>에 해당하는 <사람 마음>을 모두 다 벗겨 내었을 때, 우리의 <본래 마음>이요 <하늘 마음>인 우리의 청정무구한 자성自性이 홀연히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음의 본성 자리에는 순수한 빛이요 근원적인 광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끝없는 자비와 순수한 사랑, 그리고 근원적인 지혜의 광명만이 비추고 있습니다.

 

마음의 가장 깊은 심오한 자리에 우리의 참된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선하고, 한 터럭만큼의 개념도 찾아볼 수 없고, 빛나고, 있는 그대로의 의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리그파>의 찬란한 빛입니다. <리그파의 지혜>를 직접 깨달을 때 얻는 확신, 만족감, 드넓은 고요함, 힘, 심오한 재치, 확실성은 가장 커다란 삶의 보물이자 궁극적인 행복으로, 일단 얻기만 하면 죽음조차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3. 육체
육체는 정신의 단말기입니다. 컴퓨터 단말기가 인터넷 공간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받아서 천연색의 영상을 재현하듯이, 우리의 육체도 우주에 저장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 하드웨어가 좋아야 동화상 정보의 화질이 선명하듯이, 우리의 육체와 감각기관이 잘 다듬어져 있어야 직관력이 높은 우주정보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육체와 감각기관이 잘 통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깊은 명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육체와 감각기관은 우리의 의식이 참 자아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있어 유일한 친구이자 적입니다.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과 에고의식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감각기관이 그의 친구이지만, 자신의 욕망과 감각기관에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감각기관이 자신을 괴롭히는 적입니다.
마음에 잘 길들여진 육체와 감각기관은 의식을 한 차원 더 높이는데 훌륭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만, 마음의 <붓디buddhi, 지각력>에 통제되지 않은 감각기관은, 미쳐 날뛰는 말과 같아서, 자신의 마음을 감각 대상과의 접촉을 통한 즐거움으로 끊임없이 유혹해, 마침내 그들의 노예로 종속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어쨌든 우리 내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참 자아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마음과 의식 에너지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육체와 감각기관의 신경계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더 높은 차원의 의식 세계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육체 속에서 의식 에너지가 지나가는 신경중추를 <챠크라>라고 합니다. 챠크라는 뇌와 척추의 비밀스러운 중심으로서 영적 센터의 역할을 합니다.

 

4. 죽음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각해 본 사람도 누구나 다 겪게되는 어쩔 수 없는 현상 정도로 치부하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더 잘 살아보기 위한 <생존>의 기능에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에게만은 <죽음의 신>이 한참 동안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살아 남기 위해 경쟁하고 더 잘 살아 보기 위해 투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어쩔 수 없이 죽어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충분하게 <죽음에 대한 예행 연습>이 없었다면, 우리는 실제로 죽음 앞에서 심각할 정도의 공포와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집착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혜롭게 죽음에 대비하는 법을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영적인 에너지인 <죽음의 손>이 이끄는 대로 무기력하게 따라가면서, 우리는 또 다시 <낭패>와 <고통>에 직면할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참 의미로서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드디어 죽음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었다면 그 다음이 문제가 됩니다. 이제 정말 <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식이 감각기관을 떠나면서 죽음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의식이 감각기관을 떠나면 육체의 감각기관으로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냄새 맡을 수 없게 됩니다.

 

의식은 또렷하게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의식이 11개의 문―입,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생식기, 항문, 배꼽, 정수리―를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깊은 영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은 의식이 자신의 정수리 숨구멍을 통해 빠져나가게 되며, 명징明澄하게 깨어 있는 자신의 의식으로 죽음의 과정을 처음부터 통제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의식이 깨어있는 것>―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마음속에는 온갖 에고와 욕망과 허섭 쓰레기들이 모두 쌓여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비우는 과정을 거쳐 나가다 보면, 신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으로 깨어있는 순간이 옵니다.

 

우리 육신의 주인은 영靈이며, 그것도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깨어 있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영靈입니다. 그 신령스러운 의식은 지성과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입니다. 아니 거기 말고는 지성과 인식 능력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우주 만상 만물의 모든 지성과 인식 능력은 모두 그 신령스러운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순수한 생명 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룩한 광휘로 빛나고 있습니다. 밝고도 밝은 신령스러운 근본 자리―소소영영昭昭靈靈한 우리 마음의 절대적 본성 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와 전지全知로 천지사방을 비추고 있습니다.

 

의식이 맑아지면서 진동장의 생명 에너지가 증가합니다. 맑고 고요한 가운데 기도와 명상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의식의 진동수가 증가합니다. 의식의 거친 파동 폭은 줄어들고, 맑고 잔잔한 의식의 진동수는 증가합니다. 개체의식을 버리고 우주의식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이러한 의식의 진동수는 증가합니다. 맑고 고요한 의식의 진동수가 커지면 생명 에너지가 증가합니다. E=MC2; M=λf 이기 때문입니다.

 

진동수가 높아서 에너지가 커진 생명체에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통 죽음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직면했을 때 육체를 빠져나간 고차원의 생명체는 애당초 그 육체에 생명이 들어갈 당시의 형태로 다시 순식간에 결합합니다. 고차원의 생명체는 강하게 진동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강하게 진동하는 에너지 장은 고차원의 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하게 활동하는 지성의 의식은 새로운 몸을 즉각적으로 형성해 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부활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부활을 통해 완전한 존재가 됩니다.

 

고차원의 생명체는 의식이 육체를 빠져나간 뒤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체―즉 아스트랄체(정서체)나 멘탈체(정신체)나 인과체(직관체)―로 부활을 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육체가 용해되는 동안에 정신은 혼미昏迷 속을 헤매게 됩니다. 보통 49일 간이라고 불리는 이 죽음의 과정에서, 만약 사고나 기억과 자기 동일화를 시키고 있다든지, 아직도 개체로서의 자신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정도의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마지막 정신체 마저도 무無로 돌아간다는 불안에 휩쌓이기 때문에, 일종의 의사적疑似的인 거짓 안도감安堵感을 느끼게 만드는 시스템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생명 에너지가 약한 경우에는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성의 진동이 낮다든지 아주 약하다면 생명의 방사 에너지는 육체를 빠져나간 이후에 중심 사이클을 잃고 완전히 근원으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죽음입니다.

 

기도와 명상을 강조하고 영적인 수행과 고행의 길을 자꾸만 권하는 이유는, 우리가 삶과 죽음의 길에서 보통은 멀리 돌아가는 체험의 길을, 최대한 직선 코스로 줄여보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와 명상은 진정한 <침묵>과 <고요> 속에서 우리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사랑>과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기도>와 깊은 <명상> 속에서 진정한 <의식 이동>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생에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지혜롭게 줄여 줍니다. 기도와 명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속적으로 <무엇부터 해치워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줌으로써,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짐 속에 허덕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 줍니다.
우리가 모든 현상을 모두 직접 겪어보고 지나가려면 많은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눈이 열려 있고> <귀가 밝아> 바로 보고 바로 들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굳이 어려운 길을 가라고 하지 않고 쉽고 빠른 길로 가라고 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차피 체험의 학습장이라면, 두려움과 회의와 의심하는 자세로 거친 진흙탕 길속에서 헤맬게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지혜로운 마음으로 똑바른 학습의 길을 바로 질러가라는 의미입니다.

 

5. 참 자아, 순수 에너지의 세계
우리의 육체는 고 배율의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관찰하면 하나의 <에너지 장> 밖에 남지 않습니다. 육체는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신경세포들은 다시 분자로, 분자들은 다시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공간 속에서 활동하는 미립자들은 의식-파동 그 자체입니다.
<에테르ether>라고 불리는 정신질료mind-stuff들인 이 의식입자들은 대단히 빠르게 반복하여 일어났다 사라지는 작용을 계속 합니다. 빛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적어도 1초에 1022회가 넘는 속도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작용을 반복하면서, 원자핵 주위를 순회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자들의 본성은 <리듬>이요, <파동>이요, <회전>입니다.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물질적인 육체는 죽음이 있어도, 세포 속에서 활성화된 에너지로 존재하는 의식 미립자들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죽음이라고 불리는 상태에 직면했을 때, 이들은 곧바로 육체 세포들을 빠져나가 다시 육체 모양을 닮은 자신의 영체靈體를 재생시킵니다.

 

이 정신입자들은 육체가 태어나면서 생겨난 육체 세포의 파생물派生物들이 아니라, 원래부터 육체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오히려 육체를 나타나게 만든 근본모태인―정신적 실체들입니다. 물질적 실체로부터 비물질적 실체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정신적 실체로부터 물질적 실체가 형상화된 것입니다. 이 정신적 실체들은 <정신입자>의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신입자>의 구성과 배열에 따라 개체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 정신입자들―우리가 흔히 <의식>이라고 불리는 이 입자들은―그 성격상 어딘가에 <갇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신령스러운 의식은 우리의 육체 세포 곳곳에 한치의 빈틈도 없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육체 세포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있으며―물질계 내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객관적인 시간-공간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따라서 그 활동 범위를 규정짓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육체 둘레에 모여 있지만―그것이 이 생에서 자신의 개체와 관련된 에너지 장이 가장 강력하게 형성된 곳이기에―하지만 육체와는 엄연히 독립된 실체인 것입니다.

 

생명입자의 최소단위인 미립자들은 그 자체로 특정 성분을 띠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배열되고 구성되느냐에 따라 비로소 세포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육체세포의 구성인 원자핵과 그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미립자들의 세계는 하나의 <에너지 장energy field>이며, 하나의 <기운氣運의 흐름>입니다. 이들은 육체세포를 <둘러싸고> <스며들어> 있기에 <훈습薰習>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정신입자들이 이루는 <에너지 장organizing field>과 <구도map>가 육체세포를 이루는 <바탕>이요 <모태>입니다. 육체는 정신입자들의 깨쳐진 <영각성靈覺性>에 비춰진 <반영>이지, 육체세포가 정신입자들을 <잉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엄밀한 주종 관계를 따지자면, 비물질적 실체인 영체靈體가 우리의 주인이고, 육체肉體는 영체靈體의 반영입니다. 고도로 조직화된 신령스러운 정보의 다발로서 <에너지의 장organizing field>을 형성하고 있는 영체靈體의 표현으로 육체肉體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참 주인은 존재의 가장 지고한 본질이며, 생명인 순수의식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주관적 관찰 의식으로 확장되고, 또 확장된 그 의식의 수준이 점점 더 높이 올라가다 보면, 우리의 <참 주인>과 만나게 되는 절대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 수준이 진정으로 우리의 신령스러운 <참 주인>과 합일하게 되면, 거기에는, 일체의 개체 의식과 개체 정보가 사라진, 참 생명으로서의 <순수의식>만이 존재합니다. 바로 그 본질적인 모습이 우리의 <참 자아>요,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절대세계가 순수의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순수의식이 가장 높은 차원의 세계에만 존재한다는 이원론에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순수의식은 지금 현상계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계속 물결치고 있습니다. 다만 고 주파수의 파동으로 물결치고 있는 것뿐입니다.

 

좋은 비유로 바닷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다 속 깊은 곳에 순수의식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고, 바다 표면위로 올라올수록 그 파동은 거칠어지지만, 순수의식이라는 지극히 조화롭고 평화로운 파동의 미립자가 바다 표면의 거친 물결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파동이 거친 것뿐입니다. 바다의 물결이 잔잔해 지면, 순수의식으로서의 그 미립자는 다시 자기 본래의 모습, 이른바 그 찬란한 <진여자성眞如自性의 광휘光輝>를 여실히 드러내게 됩니다.

 

각자 명상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의식의 진화 정도에 따라서, 보다 더 상위의 세계로, 점차 더 확연하게, 의식의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이 전체가 하나의 나선형 구조처럼 상위-하위로 서로 밀접하게 연계된 <의식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6. 상주불멸의 세계
고차원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마음 자리>를 넘어선 곳에 존재하지만, 결국은 우리 <내면의 문>을 통해야만 넘어갈 수 있는 세계입니다. 깊은 명상을 통하든, 마음 수련이나 자아 탐구를 통하든, 혹은 절대적인 신의 은총에 헌신하는 방법을 통하든, 진지한 신념으로 일관된 수행을 한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인간 마음>은 점점 더 비워지게 됩니다.
비워진 마음에는 신령스러운 의식이 깃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의식은 점점 더 고요하고 낮은 파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의 의식은 점점 더 조화로운 공명상태가 됩니다.

 

조화로운 공명 상태가 확대되면서, 우리의 의식은 또 다시 보다 더 깊고 더 고요하고 더 미세한 파동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신비로운 숨결이 순수하고 신성한 생명과 빛의 파동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은 너무나도 순수한 그 느낌에 침묵마저도 정지된 세계입니다.

 

의식의 파동이 점점 더 줄어들어 영零에 가깝게 접근할수록―다시 말해, 의식이 점점 더 깊어지고 한없이 조화로운 형태의 파동 세계에 접근할수록―우리의 의식은 <절대 공空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미세한 과정을 통해 정말 우리의 의식 파장이 정확하게 영零으로 멈추는 <절대 공空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 그 세계는 바로 무소부재無所不在! 전지全知! 절대무한絶對無限의 세계로 연결됩니다.
파장이 무無로 돌아가는 <절대 공空의 세계>는 순수의식과 생명에너지가 무한대로 농축되어 있는 절대적 무한세계입니다. 절대적 무한세계는 절대자인 무한 존재가 작용하는 차원의 세계입니다. 불교식으로 표현한다면, 마음의 절대적 본성인 리그파의 <근원적인 빛>이 존재하는 상주 불멸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현상계에서 느끼는 객관적 시간-공간의 개념이 끊어진 근원적 세계입니다.

 

파장이 무無로 돌아가면 시간이 무無로 돌아갑니다. 시간이 무로 돌아간다는 것은 시간이 무한히 길게 뻗쳐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일반적인 개념과 인과관계가 끊어진 세계! 무한정의 시간과 무한대의 공간이 모두 최고 존재의 주관적 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세계! 모든 공간은 모두 최고 존재의 의식 속에 들어와 있고, 최고 존재의 의식은 다시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세계―이름하여, 무소부재無所不在와 전지全知! 그곳이 무한 존재인 창조주가 작용하는 차원의 상주불멸常住不滅의 세계입니다.

 

7. 지금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우리의 선택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색안경을 끼고 삽니다. 그것은 자기만의 <총천연색 렌즈>입니다. 그 렌즈를 끼면 세상이 자기만의 프리즘으로 해석됩니다. 나는 그것이 <입체적 평면체Plane>와도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행기처럼 생긴 입체적 구조물인데 자기의 모습을 배수倍數 형태로 좀 더 확장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비물질적 실체>이지만, 자기 삶을 이끌어 가는 실질적 존재entity입니다.

 

그 입체적 구조물 속에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동안 축적해온 자기만의 정보가 존재합니다. 자기의 정보와 생각들을 토대로 자기의 삶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삽니다. 유사한 형태의 성향과 유사한 형태의 정보와 유사한 형태의 직종에 의해 사람들은 어울려서 유사한 형태의 비전을 그리면서 살아갑니다.
<입체적 평면체>에는 입체적으로 표현된 자기만의 <의식의 좌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한 파동 수를 가진 자기만의 <진동장振動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현상계 내에는 그렇게 형성된 사람들의 <에너지의 장>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 파장들은 수많은 형태의 수평적 그물과 수직적 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우주는 모두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파장들은 정밀하게 꽉 짜여진 <생명의 그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도 강한 집념을 보여왔던 우리의 일과 소유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집착을 놓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기대와 집착을 진정으로 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당신은 에고와 욕망이라는 집착의 뿌리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절제된 이성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욕망과 집착을 제어하고, <욕망과 집착의 문> 그 너머에 존재하는 내면의 세계로 나아가, 우리의 주인인 참 자아를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생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지고한 사명mission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간절한 신심과 수행을 통해 어떤 경우에나 감각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절제된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절대자를 향한 열망을 한시도 놓치지 않는 것이 신심이요, 그 하나의 님을 향한 마음으로 절제된 마음을 길러 나가는 과정이 수행입니다. 절제된 마음이 길러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각기관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모든 에고와 욕망의 근원입니다. 온 힘을 다하여 모든 의지를 총동원하여 감각기관을 통제하고, 욕망의 근원을 끊어내야 합니다. 온 정성을 다하여 전심전력을 다하여 기도와 수행을 하고, 절제된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절제된 마음의 힘은 어떤 유혹에서도 에고와 욕망을 끊어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감각기관의 에고와 욕망에 정복당하여 그들의 노예로 비참한 삶을 꾸려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정복하여 다스리는 진정한 주인공이 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자! 이제 저는 그 선택을 여러분께 남기고서, 제 말씀은 여기까지로 그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