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마음의 法則
빛의 법칙(法則)
영원불멸(永遠不滅)의 본태양(本太陽)은 인간 마음속의 본성(本性)을 말합니다.
맑고 밝은 마음의 빛은 인간의 마음에 있어서, 최고(最高) 최상(最上)의 선(善)을 실현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어두운 요소(要素)들, 그 어두움을 붙잡고 이어둠, 저 어둠 하지 마십시오.
어두움이란 부조화(不調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어두움은 그냥 둔 채 빛 만 가져오면 어두움은 힘없이 물러납니다.
빛 앞에서의 어두움이란 스스로 소멸되고야마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어두움은 적극적(積極的)이로 실재적(實在的)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두움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비실재(非實在)입니다.
있는 듯이 보이지만 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본래부터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육체가 건강(健康)하지 못한 어두움, 가정이 화목(和睦)하지 못한 어두움, 사업상의 경제적(經濟的)인 어두움, 미움이 일어나는 어두움, 자녀가 성가시게 하는 어두움, 타인(他人)의 단점(短點)이나 비리(非理), 허물이나 악(惡)이 눈에 들어오는 어두움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어두움의 요소들이 안(眼), 비(鼻), 설(舌), 신(身), 의(意)에 의지(依支)하고 있는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誘惑)합니다.
특히 이러한 어두움들을 잘못되었다고 지적(地籍)하려고 하는 마음은, 가장 큰 어둠움 중의 하나입니다.
타인(他人)을 평가(評價)하고 비판(批判)하고 심판(審判)하려는 어두움은,
그에 상응(相應)해서 심판(審判)을 받고 비판(批判)을 받을 일이 틀림없이 생깁니다.
권고(勸告)받지 않은 충고(忠告)는 하지 말라는 격언(格言)도 있다.
처음부터 비판(批判)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뜯어 고쳐서 개선(改善)시키려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뜯어 고쳐서 개선(改善) 시키려는 마음에, 꾸짖고 지적(指摘)하고 충고하려는 마음은,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밝히려 한들 결코 밝아지지도 않고 밝아질 수도 없습니다.
어두움은 그냥 그대로 두십시오.
본래부터 없는 어두움을 붙들고 씨름하지 아십시오.
그냥 빛만 가져가면 됩니다.
빛 앞에서 어두움이란 무기력(無氣力)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명상(瞑想)이나 선(禪), 관(觀), 기도(祈禱) 등 번뇌(煩惱)를 없애고, 마음을 맑게 하려는 모든 시도(試圖)는, 번뇌(煩惱)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煩惱)를 어떤 묘(妙)한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에 의해 강제적(强制的)으로 없애버려서 밝고 맑은 마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가진 인간, 육체의 인간으로 번뇌(煩惱)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또한 본래없는 번뇌(煩惱)를 아무리 없애려 한들 결코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번뇌(煩惱)는 번뇌(煩惱)대로 둔채, 오직 밝고 많은 빛만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 밝고 맑은 빛 앞의 번뇌(煩惱)란 단지 "없음", 즉 "무(無)" 그것입니다.
이 빛의 마력(魔力)을 스스로 느껴보십시오.
이신비한 빛의 마력(魔力)을 기뻐하고 감사(感謝)하기 시작하면, 이 역시 계속해서 기쁜 일과 감사(感謝)할 일이 생겨납니다.
한동안 밝았다가 다기 어두워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근본 태양(太陽)은 눈,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 구름이 끼든 간에 어제나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구름 밑의 세계는 수시로 변하고 있지만, 구름 위의 세계는 항상 밝고, 깨끗할 뿐입니다.
육체인간의 모든 여건(與件)과 환경(環境)은 때와 장소(場所)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를 하고있지만,
영적생명(靈的生命)인 본성(本性)의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밝고 맑게 빛나는 태양(太陽)일 뿐입니다.
어두움은 음(陰)입니다.
질병(疾病)을 일으키는 부조화(不調和)된 세균(細菌)이나 악귀(惡鬼), 잡귀(雜鬼) 등, 인간의 본성(本性)을 가리는 모든 것은 어두움을 먹고사는 음(陰)적인 요소들입니다.
영원한 태양(太陽),마음의 본태양(本態陽)이 비추어지면, 일시에 소멸(消滅)되는 허상(虛像)들일 뿐입니다.
어두움을 조금도 두려워 마시고, 빛의 위대한 힘을 느껴보십시오.
태양(太陽)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힘을 보십시오.
만물(萬物)을 살리며 키웁니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새싹을 돋게 하며 결실(結實)을 가져다 줍니다.
무한(無限)의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이렇듯 위대한 태양(太陽)도 자신의 마음속 본태양(本態陽)이 외부에 나타나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마음속 본태양(本態陽)은 하늘의 태양(太陽)보다 오히려 더 위대합니다.
사람의 마음속 본태양(本態陽)은 이 우주(宇宙)가 소멸해도, 조금도 손상(損傷)됨 없이 영원히 그 찬란한 빛을 발(發)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지전능(全知全能)하고 무한(無限)한 힘을 마음껏 끌어내어 쓰십시오 .
무한의 지혜(智慧)와 무한(無限)의 권능(權能)이, 당신을 행복(幸福) 그 자체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진리(眞理)의 빛은 영원히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줍니다.
밝은 빛은 모두에게 활력(活力)과 생기(生氣)를 줍니다.
밝은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歡迎) 받으며 언제나 행복(幸福)이 따라다닙니다.
좋은 일은 다시 좋은 일을 부르며, 감사(感謝)는 감사(感謝)를,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그렇지만, 참된 자신은 항상 밝고 맑은 빛을 내고 있습니다.
변명(辨明)은 함으로써 간신히 체면(體面)이나 존엄성(尊嚴性) 등은 유지해 가는, 그런 약하고 가엾은 존재가 아닙니다.
보석(寶石)에 먼지나 흙, 오물(汚物) 등이 묻었다고 보석(寶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이나 말, 행위(行爲) 등이 어둡고 악(惡)하고 부조화(不調和)하다고 해서, 당신이 부처님, 하느님, 절대신 (絶代神)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생각이나 말, 행위(行爲)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항상 절대신(絶代神) 임을 명심하십시오.
등불은 어디에서 밝혔던 간에 그 밝아진 빛을 부엌에 가져가면 부엌이 밝아지고, 안방에 가져가면 안방이, 교실(敎室)이면 교실(敎室)이, 사무실(事務室)이면 사무실(事務室)이 밝아집니다.
자기 주변(周邊)의 어디에서 빛은 찾아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병(病), 불행(不幸) 등의 부조화(不調和)는 무시(無視)하고, 이미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무한건강(無限健康), 무한공급(無限供給) 무한능력(無限能力) 등등에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感謝)의 빛을 하나, 둘, 열, 백, 이렇게 자꾸만 밝혀보십시오.
이미 있는 것에, 가령 육체의 병(病)이라면 병(病)이 없는 육체의 다른 부분에 감사하며, 마음속의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오른손을 다치면 쓸 수 있는 왼손에 감사하라"함도 이러한 뜻입니다.
얼굴, 다리, 오장육부(五臟六腑) 등 다른 건강한 부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고통(苦痛)을 주고 있는 질병(疾病)이라는 것도, 이미 스스로가 만들어 놓았던 것의 나타남이며, 더불어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자신(自身)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연고로
자신에게 와있는 현재(現在)의 질병(疾病) 그 자체(自體)에도 감사(感謝)할 수 있을 때, 그 질병(疾病), 그 고통(苦痛), 그 불행(不幸) 등은 차라리 지대(至大)한 깨우침의 동기(動機)인 것입니다.
사랑과 감사(感謝)와 용서(容恕)의 감정(感情)은 천지창조(天地創造) 조차 수월한 일이거늘, 하물며 인간의 몸에 흔적으로 나타나있는 질병(疾病)에야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환경(環境)과 여건(與件)에도 그와 같이 이미 주어져 있는 모든 것에 감사(感謝)하는 것입니다.
넓게는 태양(太陽)에, 땅에, 공기에, 물에, 또 좁게는 자신이 직접 사용하는 모든 물건 등등에 감사(感謝)하십시오.
여태까지는 웬만한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그야말로 무감각(無感覺)적으로 지나쳐 왔습니다.
적잖이 많은 사람들이 "의례 그렇구나"하고 지나오고 있습니다만, 감사해야 할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은 무진장(無盡藏) 많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 등의 가족(家族)에 감사하고, 이웃에, 친척, 친구에, 직장동료에 감사하십시오.
더불어 천지만물(天地萬物)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악(惡), 미움 등의 모든 부조화(不調和)는 무시하고, 감사의 등불을 계속 밝혀나가다,
이러한 자신의 마음속 등불과 같은 밤중인 줄 느낄 때조차,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이 깨우침으로 인해 육체의 오관(五官)에 이해서 일어나는 미혹(迷惑)과 탐욕(貪慾)의 세계를 완전히 정복(征服)하고, 앉은자리가 극락(極樂)이며, 가진 모 그대로가 부처요, 현재의 주변환경이 있는 그래도 신(神)의 영광과, 자신의 존재가치(存在價値)를 실현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때 현상(現象)의 세계는 완전한 대조화(大調化)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본성(本性)의 빛은 끝없이 빛나고 있는데, 어디에 어두움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부조화(不調和)나 어두움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관(五官)에 의해 있는 듯, 보일 뿐이므로, 본성(本性)의 빛을 접(接)하기만 하면 그 즉시 흔적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당신 속의 본마음의 빛을 찾아내고, 그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만물(萬物)에 비추기만 하면, 행복의 천국(天國)은 바로 그 자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하루된 어두움, 열흘 된 어두움, 10년, 100년 된 어두움 등, 백 천 만겁(劫)이 지나도록 암흑(暗黑)이었던 어두움도 빛만 가면 그대로 즉시에 밝아집니다.
빛의 말, 빛의 마음, 빛의 행동으로 어두움을 몰아내십시오.
백 천 만겁(劫)을 이어온 모든 업장(業障)의 어두움이 일시에 소멸되고, 바로 그 자리에 지상천국(地上天國)이 펼쳐 질 것입니다.
자기의 자랑을 많이 하십시오.
남의 자랑도 즐겁게 들어 주십시오.
침체(沈滯)되고, 부조화(不調和)된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은, 자랑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장점(長點)을 자랑하는 것은 밝은 빛을 발산(發散)시킵니다.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고, 자신에게 생기(生氣)와 활기(活氣)가 넘치게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자랑을 합니까?
조그마한 자랑거리가 있어도 즐거워하며 부모에게 또 주위에 열심히 자랑합니다.
어린 아이는 사회생활에 대한 규범(規範)이나 규율(規律)에 익숙하지 못한 관계로, 오히려 본연(本然)에 더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자랑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생기발랄(生起潑剌)한 밝은 생명(生命)의 표현(表現)입니다.
왕성한 신진대사(新陳代謝)속의 밝고 명랑한 본연(本然)에 가까운 마음이 움직이는 빛의 모습입니다.
가족, 친척, 이웃, 동료 등 주위의 좋은 점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칭찬(稱讚)해 주십시오.
장점(長點)에 대한 칭찬(稱讚)이나 격려(激勵), 또 노력(努力)에 대한 인정(認定)과 긍정(肯定)은 성인(成人)이나 아이들이나 간에 훌륭한 활력소(活力素)중의 하나입니다.
주변을 빛으로 밝히는 방법이며, 대(對)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지름길입니다.
자랑하는 말과 칭찬(稱讚)하는 말이, 자꾸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줍니다.
말의 힘, 빛의 법칙을 생활 속에 적용시켜 즐거운 삶을 만드십시오,
자신의 삶은 당연히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의 법칙(法則)
인간에서 육체의 힘 외에 "마음" 혹은 "정신(精神)" 이라 부르는 또 다른 힘이 없다면, 이 우주 속의 가장 미약(微弱)한 존재중의 하나가 바로 육체(肉體)의 인간(人間)일 것입니다.
"만들어 진 것에의 으뜸"이라는 것은, 육체(肉體)만의 인간(人間)이라는 규정(規定) 속에서는 황당한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가 무의식(無意識)중이거나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 육신(肉身)의 모든 기능(機能)은 변함 없이 대자유(大自由)의 대조화(大調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 어떠한 요구(要求)나 강요(强要)도 없는 속에 스스로 생장(生長)해 나가는 그 사실 자체를, 생명(生命) 혹은 목숨 또는 인간이라 칭(稱)한다면, 인간(人間)이란 영묘(靈妙)한 에너지의 파동(波動)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일뿐, 쉬임 없이 흘러가는 육체(肉體)만으로는 참다운 인간이라 하기에도, 또 참으로 존재하는 실재(實在)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적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人間)의 육체(肉體)란, 영적인 파장(波長)으로 존재(存在)하는 "마음"이라는 것의 씀씀이에 따라, 시시각각(時時刻刻) 변(變)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그림자 인 것입니다.
마음은 육체의 주인(主人)입니다. 마음은 죽지 않고, 썩지 않고, 멸(滅)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크기는 우주(宇宙)를 다 감싸고도 남습니다. 한편 마음을 위축(萎縮)시키면 너무 작아서 보일 수도, 느낄 수도, 감각(感覺)할 수조차 없습니다. 사람 됨 됨의 크고 작음도 바로 마음 씀씀이의 크고 작음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인간의 육체란, 주인(主人)이며 명령권자(命令權者)인 "마음"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공장(工場)인 셈입니다. 주인인 "마음"이 화를 내면 육체라는 공장은 병(病), 불행(不幸) 등의 부조화(不調和)를 자신의 몸과 환경에 즉시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주인인 "마음"이 용서(容恕)하고 감사(感謝)하며, 웃고, 즐거워하면, 육체라는 공증은 바로 그 명령에 순응하여 밝고 건강한 육체로 가동(稼動)시켜, 자유로운 행복의 제품을 자신의 몸과 주변의 환경에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마음"은 일체만물(一切萬物) 의 주인이면 참으로 실재(實在)하는 것이고. 육체나 물질(物質)의 현상세계(現像世界)는 "마음"의 그림자 일뿐이며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두고 "육체(肉體)는 없다" "물질(物質)은 없다" "현상세계(現象世界)는 본래부터 없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그림자이다"라고 성인(聖人)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육체적인 모든 감각(感覺)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느낌조차도 "마음"의 그림자이며, 당사자의 집(執)과 상(相)으로 뭉쳐진 염(念)의 그림자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인간은 그림자의 인간, 허(虛)의 인간, 본래 비실재(非實在) 의 인간이므로, 실재(實在)가 아닌 허(虛)의 힘, 실재(實在)의 공덕(功德)은 나오지 않습니다.
진리(眞理)의 말씀에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며, 마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셨습니다. 즉 "모든 것은 대(對)하는 이의 마음먹기에 달렸다"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오직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만이 자기의 육체(肉體)나 주변(周邊), 환경(環境) 등에 나타난다"함을 일컬어 "삼계(三界)는 유심소현(唯心所現)"이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현실(現實)의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다" 라고 생각하는 바고. 단지 내 마음이 스스로 꾸며낸 느낌으로 인하여. 내 몸과 내 마음을 괴롭히는데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의 실체(實體)에 개한 참된 정의(定議)는 육체(肉體)가 아니고 "마음"입니다. 눈, 귀, 코, 입을 비롯해 단지 감각(感覺)에 의한 육체(肉體)의 인간을 도외시(度外視)하고. 참 모습인 본마음의 세계를 보면 그 반영(反影)으로서 모든 일들이 현상계(現象界)에 꼭 알맞은 스스로의 질서(秩序)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본마음의 세계는 전지전능(全智全能)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신(神)입니다. 무한(無限)의생명(生命), 무한(無限)의 지혜(智慧), 무한(無限)의 사랑, 무한(無限)의 환희(歡喜), 무한(無限)의 공급(供給), 무한(無限)의 건강(健康) 등을 주는 대본체(大本體)입니다.
이 무한(無限)의 힘을 끌어내는 방법(方法)이 바로 "마음의 법칙"을 정확(正確)히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마음은 자타(自他)가 일체(一體)이며, 우주(宇宙)의 대생명(大生命)과 하나입니다. 인간은 본래 자유자재(自由自在)로운 신(神)이요 부처입니다. 육체인간인 허(虛)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계획(計劃)하고, 또 성취(成就)하려고 집착(執着)하지 마십시오, 어깨위의 무서운 짐을 본래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神)이신 본마음, 즉 본성(本性)에 내려놓고 믿음으로 맡기십시오.
처음부터 자유자재(自由自在)로운 신(神)의 배를 타고 있으면, 굳이 자신의 어깨 위에 짐을 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무엇에도 고통(苦痛)받지 않고, 침해(侵害)되지 않으며, 상처(傷處)받지 않고, 구속(拘束)당하지 않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무한(無限)한 능력(能力)과 대자유(大自由)를 가지고 있는,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이며 실재적(實在的)인 생명(生命)입니다.
자신의 주변(周邊)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환경(環境), 어떠한 여건(與件)들도 모두가 자기 마음의 그림자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먹기" 하나로 이 지상(地上)에, 또 현재의 생활(生活)에, 지옥(地獄)도 천국(天國)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場所)에서, 제각기 다른 여건(與件)과 환경(環境) 등으로,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스러졌다 하는 듯 보이지만, 삼계(三界)는 다만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다.
자신이 감사(感謝)하면 감사(感謝)할 일이 찾아오고, 미워하면 틀림없이 미워할 일이 옵니다. 미워할 일, 성낼 일이 있다고 , 미워하며 화를 내고 있으면 과연 그 일이 해결됩니까?
오히려 미움과 성냄이 더해갈 뿐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미움이든 성냄이든, 부정적(否定的)이고 부조화(不調和)적인 마음의 상태가 되려고 할 때 "아! 이것은 가짜 모습, 허상(虛像)이야"하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그 말의 힘이 부정(否定)과 부조화(不調和)적인 심리상태(心理狀態)를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날려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체(實體)인 영혼(靈魂)읜 진보(進步)와 진화(進化)를 위해서 저런 역할을 담당하느라 수고가 많구나"고 생각하십시오."자신의 마음을 키워주는 스승이니깐 고맙습니다."하는 마음으로, 감사(感謝)의 말과 감사(感謝)의 염(念)을 가지십시오.
"현재 자신의 몸에 나타나 있는 병(病)에 조차 감사(感謝)하라"함도 이런 의미(意味)에서 다시 새겨 보십시오. 본연(本然)의 마음과 밝고 맑은 말의 힘으로, 미움과 화나도록 만든 모든 일과, 조화롭지 못한 모든 일들을, 감사(感謝)와 고마움으로 승화(昇華)시켜 보십시오.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마음의 법칙에 의해,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가지며 가질수록, 어두운 괴로움은 빨리 사라지고 감사해야 할 기쁜 일이 달려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罪)와 악(惡)이란 본래부터 없는 것입니다. 있는 듯이 보여도 본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없는 육체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가 있는 듯 보이면서. 육체인 허(虛)의 인간, 물질(物質)인 가짜의 인간이 만드는 일시적인 그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부터 신(神)이자 부처이며 완전(完全)한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원한(怨恨), 미움, 노여움, 죄악(罪惡) 등, 어둡고 부조화(不調和)된 모습은 처음부터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죄(罪)나 악(惡)이 없으면 유(類)를 부르는 마음의 법칙에 의해, 죄(罪)나 악(惡)이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없으니, 자신의 환경(環境)이나 주변(周邊)에 나타나지도 않게 됩니다.
본래부터 완전한 신(神)이며, 죄(罪)나 악(惡) 따위가 침범(侵犯)할 수 없는 인간의 참 모습을 인정(認定)했을 때, 그는 저절로 어떠한 죄악(罪惡)도 범(犯)할 수 없게 됩니다. 타인(他人)이 "당신은 죄(罪)없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순수함 마음으로 대해주면, 범죄행위(犯罪行爲)인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저절로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삼계(三界)는 오로지 마음의 나타남"이라고 했습니다.
죄(罪)가 있다고 인정(認定)하면 죄(罪)가 나타나고, 화가 있다고 인정(認定)하면 화가 나타나고, 미움이 있다고 인정(認定)하면 미움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죄(罪)는 없다, 화나는 것도 없다, 미워하는 것도 없다, 단지 허상(虛像)일 뿐이다라고 느끼고 인식(認識)하면,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모든 것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칙에 의해 그러한 죄(罪), 화, 미움 등이 저절로 나타나지 않고,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것도 당연히 사라집니다.
죄(罪), 성냄, 미움 등 부조화(不調和)의 씨앗이 없으면 열매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도둑질이나 강도(强盜) 등 죄악을 범(犯)하는 것은, 인간이란 그런 죄악(罪惡)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 즉 본래부터 죄(罪)의 성질(性質)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의 파동(波動)으로 그러한 죄악(罪惡)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죄(罪)없는 인간의 참 모습을 알기만 하면, 죄(罪)나 악(惡)은 자연히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원래 없는 죄악(罪惡)일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도 죄악(罪惡)에 대한 개념(槪念)이 없으므로 저절로 느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심기화평(心氣和平)이면 사리통달(事理通達)이라." 마음이 화평하고 걸림이 없으면 몸도, 가정도, 주위의 환경(環境)과 여건(與件)에도, 병(病)적인 부조화(不調和)나 죄악(罪惡)등이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 부조화(不調和)가 존재할 수 없도록 하십시오. 그 한 방법으로 항상 유쾌한 기분으로 웃으면서 생활을 하십시오. 또한 아무리 사소(些少)하다 할지라도, 하루중의 한순간 만이라고, 남을 위한 일과 남을 위한 생각을 가져보십시오. 아무런 이해타산(利害打算)없이 또 어떠한 목적의식(目的意識)없이 베품을 행(行) 할 때, 인간은 누구나 가슴이 뿌듯한 것입니다.
이 흐뭇한 마음의 여유는 스스로를 한결 조화(調和)롭게 유도할 것입니다. "자신이 마주 대하는 이는, 바로 자기마음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조그마한 나의 불신(不信)이 그 반향(反響)으로서, 나에 대한 상대의 경계(警戒)와 반항(反抗)등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자유와 평화가 옵니다. 감사하면 감사(感謝)할 일이 틀림없이 옵니다. 사랑을 베풀면 사랑이 오고, 친절을 뿌리면 반드시 친절(親切)이 거두어 집니다.
자신이 먼저 인정(認定)하고 긍정(肯定)하면, 반드시 자신이 인정(認定)받고 긍정(肯定)을 받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연습해 보십시오. 실로 절묘(絶妙)한 마음의 힘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밝은 생각, 기쁜 마음, 생기 넘치는 모습을 표출(表出)하도록 노력(努力)하십시오. 그러한 마음의 자세(姿勢)와 노력(努力)이, 인간의 삶을 한층 더 밝고, 기쁘고, 활력 있게 만듭니다.
맹목(盲目)적이고 자기비하(自己卑下)적인 어설픈 겸손(謙遜)과, 위장(僞裝)된 권위의식(權威意識)은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합니다. 상대에게서 자유(自由)와 평화(平和)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어설픈 겸손(謙遜)과 내세우는 권위(權威)로, 자신의 활기(活氣)를 스스로 억누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마십시오.
권위(權威)를 내세우고 지키려는 마음은, 자신의 육체를 무겁게 만들어 어두운 병(病)적인 요소가 자리를 잡게 만듭니다. 인간의 참 모습은 사랑의 바탕 위에 자유(自由)와 평화(平和) 바로 그 자체입니다. 자기 마음의 파장(波長)을 자유와 평화에 맞추십시오. 그 마음에 상응(相應)된 자유롭고 행복한 환경이 틀림없이 전개됩니다.
자유평화(自由平和) 대조화(大調和)
안심안신(安心安身) 대조화(大調和)
자타일체(自他一體) 대조화(大調和)
위의 경문(經文)을 늘 암송(暗誦)하십시오. 자기 암시(暗示)가 되어 대조화(大調和)의 나날이 될 것입니다. 유(類)는 유(類)를 부르는 마음의 법칙을 결코 잊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