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란 오래된 오판
<출처 : 한겨레 21>
북한 붕괴란 오래된 오판
주관적 희망에 바탕해 북한 급변사태만 기다리는 이명박 정부… 현실성 없는 대북정책 고집해 제2의 연평도 이어질 우려 | ||||||||||||||||||||||||||||||||||||||||||||||||||||||||||||||||||||||||||||||||||||||||||||||||||||||||||||||||||||||||||||||||||||||||||||||||||||||||||||||||||||||||||||||||||||||||||||||||||||||||||||||||||||||||||||||||||||||||||||||||||||||||||||||||||||||||||||||||||||||||||||||||||||||||||||||||||||||||||||||||||||||||||||||||||||||
| ||||||||||||||||||||||||||||||||||||||||||||||||||||||||||||||||||||||||||||||||||||||||||||||||||||||||||||||||||||||||||||||||||||||||||||||||||||||||||||||||||||||||||||||||||||||||||||||||||||||||||||||||||||||||||||||||||||||||||||||||||||||||||||||||||||||||||||||||||||||||||||||||||||||||||||||||||||||||||||||||||||||||||||||||||||||
1997년 4월20일, 에어필리핀 특별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2명의 노신사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에 앞서, 한 손에 모자를 든 채 두 팔을 들어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다. 같은 해 2월 중국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한 지 67일 만이다. 역대 북한 최고위직이자 ‘주체사상의 대부’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망명’으로 여겨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서울 도착 성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북조선은…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 상태에 들어가고… 인민들은 기아에 신음하고…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됐습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석 달을 못 간다’는 주장까지 나오던 북한 붕괴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연했다.
붕괴 시나리오, 어게인 1994
1994년 10월, 북한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론까지 제기됐던 북핵 위기 뒤 북-미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2개의 경수로를 지어주는 제네바 합의에 이른다. 북한 체제가 10년 이상 걸릴 경수로 완공 전에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2010년, 북한 정권은 아직도 건재하다. 오판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북한 붕괴론이 현 정부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머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을 보면,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부 2차관이던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정일은 2015년 이후까지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할 경우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나? 개인적·공적 생각이 섞여 있다”(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전략이 이런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실마리를 보여주듯 이들의 발언은 지난 3년간의 정책기조와 퍼즐처럼 맞아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단이 드러난 대북 인식은 기존의 북한 붕괴론과 판박이다.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라는 논리 구조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1993~95년 북한 식량난이 맞물려 제기됐던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위기를 초래할 사망의 당사자가 김일성 주석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권력 장악에 실패할 지도자는 김정일에서 아들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지도부가 경제난을 견디기 어렵고 일부 엘리트의 쿠데타나 민중봉기에 의해 결국 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그대로다.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숨지면 쿠바가 무너질 것이라는 미국 내 반쿠바 세력의 쿠바 붕괴론이 연상된다.
짐작과 달랐던 체제 안정성
북한 체제를 오판하고, ‘김정일 사망=북한 붕괴’로 동일시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곧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북한을 통치해온 만큼, 그가 숨지면 북한 체제가 곧바로 무너진다는 판단 착오다.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 논의도 붕괴론의 연장선이다. 소련, 루마니아, 폴란드 등의 사례를 보면 체제 권력의 위기, 경제개혁의 실패 또는 극단적 악화, 민중봉기가 체제 전환의 변수다. 북한에도 유효할까? 북한의 치밀한 내부 시스템을 따져보면, 대답은 ‘노’(NO)에 가깝다.
이번에 일단이 드러난 대북 인식은 기존의 북한 붕괴론과 판박이다.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라는 논리 구조다.
김정은이 지난 9월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북한은 ‘3대 세습’ 공식화에 들어갔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고모인 김경희 당경공업부장이 김정은을 돕는 ‘친족 후견체제’를 드러냈다.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는 노동당 대표자회를 하루 앞두고 대장 칭호를 부여받았다. 김일성 일가는 ‘조선의 독립과 해방에 몸 바친 혁명가족’으로 떠받들어진다. 북한은 1990년 후반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봉기 없이 넘어갔다. 절대적 빈곤은 겪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적고 철저한 통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체제 붕괴로 연결되기는 무리라는 분석이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도할 지도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은 군부 원로 및 실세가 국방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군사·안보를 관장하는 체계다. 김정일 위원장을 빼면 독자적 군대 지휘가 어렵다. 또 경제난과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과거 사회주의권의 붕괴 과정을 봐도 장기간 대규모 유혈사태는 없었고, 민족적 동질성이 높은 북한에서 그 가능성은 더욱 낮다. 오랜 위기에 단련된 북한은 우라늄 농축과 연평도 공격 등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한반도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 중국은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후견국임이 연평도 포격 뒤에도 확인됐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까맣다. 문제는 붕괴론에 기초한 ‘희망적 분석’이 대북정책을 오도한다는 사실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의 권력이 198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을 능가할 정도였는데도, 1990년대 북한 붕괴론자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해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잘못 파악했다. 2004년 북한 용천 폭발사고 때도 통치시스템 붕괴 및 암살기도설이 제기됐다. 최근의 붕괴설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의도적 해석에 따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남북관계는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경계해야 하고 객관적 판단이 요구된다”며 “희망적 차원의 접근은 정책 안정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독특한 공산독재 체제에 자유민주 체제 분석의 틀로 접근하면, 북한은 권력의 정당성과 기반이 취약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라는 인식을 넘어설 수 없다. 사실 북한 체제의 붕괴 및 예기치 않은 급변사태 가능성은 과거 정부에서도 대비했다.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햇볕정책도 북한을 쓰러뜨리려는 술책이라는 북한의 반발을 샀다. 기존 정부도 북한 붕괴라는 시나리오는 더 열심히 대비했다”고 말했다.
‘플랜A’로 부적절한 붕괴론
문제는 이런 급변사태 대비와 일상적 대북정책을 어떻게 통합시키느냐다. 협상과 외교 등을 통한 일상적 전략, 곧 ‘플랜A’가 우선되고 북한 붕괴 등 비상시에 대비한 ‘플랜B’도 준비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플랜B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전직 안보 분야의 한 고위 관료는 “비상계획은 비상계획일 뿐인데, 그 자체가 정책적 판단의 기초가 되면 정상적이고 합리적 정책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급변사태 대비는 당연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일상적 정책에서 중심이 돼 강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은 대화 기피와 강경론으로 이어진다. 곧 무너질 것이므로 압박·공세 정책을 선택하게 한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뒤에는 북한 정권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떨어질 감을 따기 위해 바람도 부는데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잡고 아슬아슬하게 감을 따려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북한 붕괴론이 기승을 부리던 1990년대 중·후반 김영삼 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되풀이다. 김연철 교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 인정해야 대화를 하는데, 곧 붕괴할 테니 무시하고 제재하고 도발에 협상하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교수는 “정부가 북한은 잘못된 주장을 하다가 합의를 어기고 기분 나쁘면 도발한다는 뿌리 깊은 ‘북한 악마론’과 제재하면 북한이 결국 항복하거나 무너진다는 잘못된 인식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 교류협력 축소와 중단도 북한 붕괴론에 닿아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기아 등으로 붕괴 직전에 있었으나 남한의 지원으로 살아난 만큼, 압박과 공세로 붕괴를 유도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붕괴추진론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인권유린 등을 알려 대량 탈북을 유도하고 ‘깡패국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도 한 뿌리다. 양무진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경제적 지원 요구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것과 관련해 “붕괴론에 기반을 둔 흡수통일론과 오락가락하는 대북정책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의 진정성과 의지 부족은 물론 전략 부재를 의심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흡수통일 방관할까
김연철 교수는 “흡수통일론은 북한 붕괴론이란 동전의 뒷면이다”라고 지적했다. 체제붕괴론은 북한이 대한민국에 흡수되는 형태로 소멸할 것으로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통일세 신설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이 곧 무너져 흡수통일된다는 판단에서 그 대책으로 통일세 논의가 제기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기존에도 같은 남한 주도 통일이지만 협상에 의한 합의통일을 상정했다. 이는 자체 붕괴나 붕괴시키려는 전략을 상정하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통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화해-연합-통일’의 연착륙을 상정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통일비용 논의가 활성화된 것도 붕괴론의 연장선이다. 민주노동당은 8·15 기념사에 대해 “통일세는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극우적 발상과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비현실적인 전제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불순하다”며 “북한은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통일의 동반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고립정책은 북한 체제의 내부적 결속과 폐쇄성 및 적의를 키워놓았다.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저질러 남한 국민 등의 적대감에 불을 질렀다.
현 정부의 북한 붕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북한이 무너지면 우리가 먹는다’는 안이한 인식에 있다. 북한의 붕괴는 떨어지는 감이 아니다. 감은 위치만 잘 잡고 입만 벌리고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흡수통일은 북한이 원할 때, 그것도 중국 대신 남한을 선택할 때만 가능하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도 1990년 국민투표에서 서독에 편입되겠다는 동독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됐다. 독일은 동족상잔의 전쟁도 겪지 않아 원한과 적대감이 적었고 사실상 자유 왕래를 했다. 통일을 하려면 자석처럼, 흡인력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전직 안보 분야 고위 관료는 “중국이라는 대안이 있는데, 북한이 망하면 한국이 접수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다. 급변사태가 나서 한국이 주도하려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남한에 의존할 수 있겠다는 심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생겨야 하는데 ‘2등 국민’ 취급받을 생각에 남한을 선택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남한 주도의 통일을 용인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에 위험하지 않고 동북아에서 한-미 동맹을 끌어들여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김근식 교수는 지난해 논문 ‘북한 급변사태와 남북연합: 통일과정적 접근’에서 “붕괴 후 흡수통일로 분류되는 독일의 경험이 화해협력에 의한 점진적 통일 방식과 역사적으로 결합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에 20여 년에 걸친 교류접촉과 화해협력의 신동방정책이 있었다. 화해협력이라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지속됨으로써 비로소 붕괴 뒤 흡수통일이라는 ‘결과로서의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붕괴 기다리다 도발만 당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소원’ ‘민족의 염원’이라는 남북통일은 북한 붕괴라는 급변사태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과 막대한 통일비용, 이후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을 바꿀 때까지 대결 국면과 제2, 제3의 연평도는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연평도 사태 뒤 정부는 연평도에 과도한 무기 배치를 추진하는 등 대북 강경대응론에 휘둘리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자는 11월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추가로 도발하면 “분명히 항공기를 통해 폭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대응은 필요하지만, 하필 확전을 우려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불안하고 미덥지 않기는 연평도 도발을 저지른 북한 정권만이 아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 ||||||||||||||||||||||||||||||||||||||||||||||||||||||||||||||||||||||||||||||||||||||||||||||||||||||||||||||||||||||||||||||||||||||||||||||||||||||||||||||||||||||||||||||||||||||||||||||||||||||||||||||||||||||||||||||||||||||||||||||||||||||||||||||||||||||||||||||||||||||||||||||||||||||||||||||||||||||||||||||||||||||||||||||||||||||
전쟁나면 하루 만에 재기불능 후진국으로 전락 | ||||||||||||||||||||||||||||||||||||||||||||||||||||||||||||||||||||||||||||||||||||||||||||||||||||||||||||||||||||||||||||||||||||||||||||||||||||||||||||||||||||||||||||||||||||||||||||||||||||||||||||||||||||||||||||||||||||||||||||||||||||||||||||||||||||||||||||||||||||||||||||||||||||||||||||||||||||||||||||||||||||||||||||||||||||||
| ||||||||||||||||||||||||||||||||||||||||||||||||||||||||||||||||||||||||||||||||||||||||||||||||||||||||||||||||||||||||||||||||||||||||||||||||||||||||||||||||||||||||||||||||||||||||||||||||||||||||||||||||||||||||||||||||||||||||||||||||||||||||||||||||||||||||||||||||||||||||||||||||||||||||||||||||||||||||||||||||||||||||||||||||||||||
한·미 양국군이 오래전부터 실시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면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93~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전쟁 수행 시나리오는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북한이 전면전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미군은 주한미군 1만7000명과 일본 주둔 미 해병대 1만5000명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이럴 경우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민간인까지 약 150만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군이 개전 초기 5일 이내에 예비군 400만명을 소집해 전선에 투입하고, 미국 본토와 전 세계에 흩어진 미국 육군 등 130만명을 후속으로 한반도에 집결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화력과 막대한 병력을 집중시키면 개전 1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 100만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민간인 피해는 더 극심했다. 개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이 북한 장사정 포탄의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되면 150여 만명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었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서, 1994년 당시 화폐가치로 따져 3000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었다. 이 같은 내용의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이 나오자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미국 대사가 백악관에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중지해야 한다는 긴급 건의문을 보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특사로 급파하면서 극적으로 전쟁을 모면하고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를 상정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한 피해 산출은 2004년 우리 군이 다시 실시했다. 이때는 10년 전 피해 추정치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전쟁 피해가 예상되었다. 즉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서울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명에서 230여 만명으로 늘어났다. 또 잿더미로 변한 나라의 재산 피해도 1조 달러에 이르러 한국은 사실상 재기하기 힘든 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결론이었다. |
![]() |
[168호] 2010년 11월 29일 (월) 10:16:00 | 정희상 기자 ![]() |
![]() |
![]() |
||
ⓒ국방부 재공 11월23일 북한이 발사한 포탄을 맞아 연평도 해병대의 K-9 자주포 진지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
하지만 이런 후속 조처들이 서해 5도 주변 북방한계선(NLL) 지역에 도사린 분쟁 위험에 대한 근본적인 대비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NLL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30일 유엔사 측이 북한과 접경한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6개 도서와 북한 해안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선이다. 북한은 NLL에 맞서 서해 5도 남쪽 해상에 군사분계선을 임의로 설정한 뒤, NLL 주변 수역에서 한국군이 훈련하는 것을 자기네 영해 침해라고 우겨왔다.
작년 봄 북한의 해안포 위험 경고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해 5도 주변 수역에서 간헐적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정도였다. 현 정부 들어 이 일대가 차츰 ‘죽음의 바다’로 변모해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 기존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폐기하고, 북한에 대해 고립·압박 정책과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돌아서면서 NLL에서의 충격적 도발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포문은 2009년 1월 북한 인민군총참모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에서 먼저 열었다. 총참모부가 전면에 나서 ‘대남 전면대결 태세’를 선포하고 초강경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어 조평통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불법적인 것이며 서해 우리 측 영해에 대한 침범 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 혁명적 무력은 세상에 선포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조선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하게 될 것임을 선포한다”라고 밝혔다. 조평통은 동시에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된 기존 모든 합의를 무효화한다”라고 선언해 사실상 전쟁을 불사한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북한의 NLL 도발을 예고하는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유사시 대비책이 무엇인지를 국방부에 물었다. 2009년 봄 국방부는 청와대에 북한의 해안포가 증강되고 있다고 보고하며, 북한의 NLL 침범과 서해안 해안포에 의한 우리 함정의 피격 가능성 등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한이 도발할 경우 육·해·공 전력을 동원해 초전 제압하는 작전 등을 상세히 보고했다.
![]() |
||
ⓒ연합뉴스 |
보수 언론의 기밀 누설식 경쟁 보도는 그 뒤로도 무차별로 이어졌다. 3월10일에는 <세계일보>가 이렇게 보도했다. “북한의 NLL 도발 때 우리 군은 F-15K 전투기를 투입해 북 해안포 기지와 함정, 장사정포를 정밀 타격한다는 시나리오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군 당국이 북한 도발 시 백령도·연평도 등에 배치된 K-9 자주포, 해군 함정의 76㎜·127㎜ 함포, 공군 F-15K·KF-16 전투기 등 지·해·공 전력 가운데 F-15K를 선제 타격 전력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보도는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북한이 보유한 수호이 등 전투기 출격 횟수가 갑자기 여섯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장산곶을 비롯한 북한 내 군사기지에 장사정포와 지대함 미사일 같은 무기들이 부쩍 증가했다. 서해 5도에서 긴장은 이렇게 급격히 고조되어온 것이다.
‘군사적 우월주의에 기초한 북한 굴복시키기’라는 군부의 변화된 대응 기조는 지난해 11월 NLL에서의 군사 충돌로 비화했다. NLL을 2.2km 남하한 북한 함정에 대해 우리 쪽이 경고 사격을 가하자, 이에 북 함정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함정이 총탄 10발을 맞았다. 그러자 우리 함정은 도주하는 북한 함정을 NLL 너머까지 추격해 약 3분 동안 총포탄 4960발을 퍼부은 끝에 최소 8명을 사망케 했다.
기습 상륙작전 시나리오도
이 충돌에서 크게 당한 북한은 올해 1~3월 한시적으로 NLL 일원 다섯 곳에 ‘통항 금지구역’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해안포 사격훈련을 감행하며 보복할 기회를 노렸다. 갈수록 군사적 대치와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3월26일 밤,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단을 향해 북상하다가 원인 모를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 남한은 민·군 합동조사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됐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대치 국면 속에 NLL에서 실전 훈련을 벌이던 우리 군이 11월23일 한국전쟁 이후 최초라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당한 것이다.
과연 정부는 북한 해안포에 의한 직접 공격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군 소식통들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북한이 임의로 설정한 해상 군사분계선을 사수하기 위해 NLL 유역에서 다양한 도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냈다고 말한다. 그 양상도 변모해 과거처럼 NLL을 중심으로 남북한 함정끼리 밀어내기 식으로 반복적 도발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함정이나 서해 5도 내 군사 시설을 겨냥한 해안포 사격, 북한군 특수부대의 서해 5도 일부 섬 기습 점령 등 다양한 도발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던 것이다.
![]() |
||
ⓒ연합뉴스 1999년 6월15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끼리 무력 충돌한 제1차 연평해전. |
지난봄 김열수 교수(국방대)는‘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심리전인가 실체인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공격 도발 또는 기습 상륙작전을 예고하고 대비책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주민과 해병대 1개 소대만 주둔하고 있는 작은 섬 소청도가 북한 특수작전 부대의 기습 점령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지목된다고 분석했다.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북한군 특수부대가 악천후나 야음을 틈타 소청도에 기습 상륙해 주민들을 인질로 삼고 버틸 경우, 포격이나 강경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도발도 예상된다는 시나리오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 이후 잇달아 대북 강경 대책을 내놓았지만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지도 못했고, 그나마 대부분 엄포성 구호로 그쳤다(29쪽 딸린 기사 참조). 특히 이번 연평도 포격전의 경우 군 당국이 사건 당일 구체적으로 다가온 북의 도발 징후와 경고음조차 외면하고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은 포격 당일 오전, 우리 군에 훈련 중단을 요구하며 강행할 경우 보복 공격하겠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또 이날 오전과 오후 연평도에서 15.5㎞ 떨어진 북한 개머리 해안포 기지 주변에 방사포 18대가 추가 배치되는 이상 징후 또한 군 당국에 포착되었다. 하지만 군은 ‘전에도 있던 일’이라며 아무런 대응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방심하고 훈련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군은 바로 이 장사정포를 이용해 11월23일 오후 연평도 포대를 조준 공격해 2대를 고장나게 만든 것이다.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는 서해에서 강도 높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고 해서 NLL 유역의 군사적 ‘비대칭 위협’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섬과 해역에서 군사작전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은밀성과 복잡성이 높은 상태에서 연합 해군의 핵 항공모함이 시위를 한다고 이 지역 안보가 궁극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루만에 240만명 사상
![]() |
[142호] 2010년 05월 31일 (월) 10:36:13 | 정희상 기자 ![]() |
![]() |
한반도에 전쟁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북 강경 조처 발표를 기점으로 해서다. 대통령 담화 이후 남북한이 시소게임을 벌이듯 쏟아내는 군사적 긴장 확대 조처는 브레이크 없는 두 기관차가 선로 위에서 마주 보며 돌진하는 형국이다. 남측은 남북 해운합의서 즉각 파기와 제주해협 북한 상선 통행 차단, 북한 지역에 전단 대량 살포, 휴전선 전역에서 대형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 한·미 연합 대규모 훈련 실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해상차단훈련 실시 등을 공언했다.
이에 맞서 북한은 현 사태를 ‘엄중한 전쟁 국면’으로 받아들인다고 엄포를 놓고 결정적인 반격 태세를 갖추라고 전군에 지시했다. 아울러 전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하고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에는 모든 대남 관계를 단절하며 통신도 끊고, 개성공단 사무소 폐쇄, 적십자 사업 중단, 남측의 해상 침범에 대한 군사적 조처, 심리전용 확성기에 대한 조준 격파 등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다. 더 나아가 ‘그 어떤 응징과 보복,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즉시 전면전쟁을 포함한 여러 강경 조처로 맞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우리 군은 대북 감시 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 또 국방부는 개성공단 내 남한 노동자 억류 사태 시 구출작전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 |
||
ⓒ청와대 제공 지난 3월30일 천안함 사고 현장을 방문하기 전 백령도 해병대 6여단 상황실에서 천안함 관련 보고를 받는 이명박 대통령(왼쪽). |
이런 한반도 상황 전개 속에 뉴욕타임스·로이터·CNN 등 세계 주요 언론은 남북한 긴장 고조 사실을 크게 다루면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을 일제히 분석기사로 내놓고 있다.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은 ‘한국이 자제력을 보이는 한’ 전면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남북한 양측이 현재처럼 초강수로만 치닫는다면 휴전선에서 우발적 충돌이 생길 경우 얼마든지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천안함 사태 대응책으로 전면전도 각오하고 대북 응징에 나서자는 ‘전쟁 불사론’은 이 대통령 담화가 나오기 전부터 극우 보수 진영에 팽배해 있었다. 여기에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를 전후로 연일 전쟁 불사론에 불을 지폈다. 특히 5월20일자 중앙일보는 김진 논설위원이 쓴 칼럼을 통해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폈다. 그는 “오산·수원의 지휘관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 합동으로 3일 내에 북한 장사정포의 최소 70%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 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26쪽 인터뷰 기사 참조).
호전론에 기댄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연일 계속되는 보수 세력의 전쟁 불사론 총공세에 자극받았는지 천안함 사태 대응책으로 지난 20여 년간 힘겹게 쌓아올린 남북한 사이의 전쟁 방지용 안전핀을 사실상 뽑아버리는 길을 택했다. 담화 발표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전쟁을 감수하고 강력 대응하라’고 주문하는 이른바 보수 원로들에게 둘러싸여 강경 일변도로 나갈 것임을 과시했다. 대통령이 일부 보수 극우 세력의 호전론(24~26쪽 딸린 기사 참조)에만 기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과연 전면전을 각오하고 모든 남북 관계를 단절한 채 군사 충돌로 치달으면 천안함 사태가 남긴 숙제는 해결될까. 북한과의 전쟁을 각오하고 강경하게 밀어붙이라고 대통령을 압박하고, 국민을 선동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상황이 전개되면 나라와 국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남북한 사이에 전면전쟁이 발생할 경우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양국 군의 막강한 화력과 전쟁 수행능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어 결국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민족의 공멸’에 가까운 가공할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미 양국 군이 오래전부터 실시한 ‘워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전쟁 수행 시나리오에 따르면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북한은 전면전으로 대응한다.
시뮬레이션 결과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50만명이 사상할 것이라고 나왔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한국은 예비군 400만명을 소집해 개전 5일 안에 전선에 투입하고 미국 본토와 전 세계에 흩어진 미 육군 130만명도 한반도에 집결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는 세계 최고의 화력과 엄청난 병력이 집중되면서 개전 1주일 이내에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한 1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됐다.
남한 측 민간인 피해는 더욱 심해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됐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서 1000억 달러의 손실과 3000억 달러의 피해 복구 비용이 예상된다고 나왔다. 그것도 1994년 당시의 경제 규모를 기준으로 한 미군 측의 피해 예측치였다. 당시 이런 내용의 전쟁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자 주한 미군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가 백악관에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중지해야 한다는 긴급 건의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미국 클린턴 정부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특사로 급파하면서 극적으로 전쟁을 모면한 뒤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 |
||
ⓒXinhua 지난해 북한정권 수립 60돌을 기념해 열린 노농적위대 열병식. |
남북한이 전쟁을 벌일 경우를 상정한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한 피해는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도 다시 산출됐다. 이때는 10년 전 피해 추정치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전쟁 피해가 예상됐다. 즉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명에서 230여 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나왔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연합군이 전쟁 초기에 이처럼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고 스스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서울과 수도권이 바로 전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북한은 개전 초기 1만2000여 문의 포로 시간당 포탄 50만 발을 쏟아 붓는다. 그중 장사정포 1000여 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낡고 사정거리가 짧은 박격포라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군 당국은 평가한다. 가장 위협적인 대상은 장사정포로, 북한군은 170mm 자주포 6개 대대(550여 문)와 240mm 방사포 11개 대대(440여 문)를 운영한다. 각각 사정거리 70km와 50km인 두 장사정포는 대부분 남한 수도권과 가까운 휴전선 10km 이내에 집중 배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은 물론 수원까지 타격이 가능한 장사정포는 전쟁 초기에 시간당 2만4000여 발을 서울에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이 주한 미군의 평가다.
장사정포 사격에 의한 대규모 인명 및 시설 피해는 포탄 폭발에 의한 직접 피해보다 서울과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각종 가스관과 유류 저장시설, 전기·통신시설 등이 파괴되면서 초래할 2차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도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이다. 더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북한은 한국의 예비군 동원을 저지하기 위해 고폭탄과 화학탄 등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이 경우 수도권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끔찍한 인명피해가 나올 수 있다. 우리 군 당국은 생물화학탄 한 발이 도시에 떨어지면 7000~1만명의 인명 살상력을 갖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 |
||
ⓒXinhua 올해 4월 군부대 종합훈련을 참관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
전쟁불사론은 선제공격론의 변형
하지만 한국 군부 내 강경파와 일부 호전적 보수 세력은 한·미 연합군이 막강한 화력과 첨단무기로 북한군의 장사정포 위력을 전쟁 초반에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다고 호언한다. 특히 북한과의 전면전을 가정해 오래전부터 수립해온 전쟁 수행 계획들이 잘 운용되고 있어서 선제 공격을 통해 초전에 북한 수뇌부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고 피해를 최소화한 상태로 북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이런 선제 공격론은 부시 행정부 시절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미국 내 대북 강경파인 네오콘에서 구상한 전쟁계획이 모태다. 당시 네오콘은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막강한 첨단 화력으로 북한 핵시설과 평양 김정일 위원장의 거처를 기습 선제공격해 궤멸시키면 북한군은 패닉에 빠져 반격 의지를 상실할 것이라 보고 한국에 적극 참여를 요구했지만 전면전을 우려한 참여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미 양국은 북한을 상대로 5개 전쟁계획을 수립해 운용 중이다. 정밀 공습계획인 작계 5026, 전면전 작전계획인 5027, 개념계획인 작계 5028, 북한 붕괴계획인 작계 5029, 전쟁 예비단계 북한 후방지역 동요계획인 작계 5030 등이다(한반도 전쟁 관련 작전계획은 모두 앞에 50이 붙는데 이는 한반도를 관할하는 태평양사령부에 부여된 숫자다). 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남북한 전면전쟁을 가정한 작전계획이 5027이다. 1974년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휴전선 이북으로 밀어낸 뒤 반격해 올라간다는 내용을 담은 작계 5027은 2~3년마다 수정 보완을 거듭했다. 1994년에는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한 내용이 추가됐고, 1998년에는 북한의 확실한 도발 징후 포착 시 선제공격, 2002년에는 도발 징후 포착 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포함한 수뇌부 제거 및 선제공격 개념이 반영됐다. 2004년에는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비책이 추가됐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국 증원군 69만명,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000여 대가 추가 파병되도록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북한 붕괴 계획인 작계 5029와 연계된 작계 5026이 주목된다. 북한이 ‘미제의 북침전쟁 계획’이라며 가장 크게 반발하는 작계이기도 한 5026은 공세적 선제 공격을 위한 ‘북한 수뇌부 족집게식 제거’를 핵심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유사시 전방 지역의 북한 장사정포를 정밀 공격해 수도권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북한 정권 수뇌부에 족집게 공격을 가해 전쟁 지휘능력을 조기에 무력화하며 △핵 및 생물화학무기와 미사일기지·공군기지 지휘소의 통신시설 등을 정밀 타격해 전쟁 수행능력을 조기에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B-2 스텔스 폭격기와 F-117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전면전 없이 핵심 전략 목표를 정밀 타격하는 계획이다. 또 핵항공모함 칼빈슨함과 LA급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등이 북한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F-15 전투기 등에서 발사되는 제이담(JDAM) 위성 유도 공대지 미사일이 개전 약 2시간 이내에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포함한 850여 개의 전략 목표를 무력화시킨 후 북진한다는 전쟁 수행계획이다.
![]() |
||
ⓒ뉴시스 F-15 전투기에 장착해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정밀 타격하기 위해 도입한 제이담(JDAM) 미사일. |
스마트 폭탄이라 불리는 제이담은 F-15 전투기에 장착한 뒤 위성 항법장치에 따라 미리 입력된 북한 장사정포 지하 갱도를 파괴하는 공대지 고성능 폭탄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응해 위장한 장사정포 갱도를 적잖이 만들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연합군은 북한 장사정포 진지 위치를 100% 확보하고 있지도 못하며, 북한이 불시에 갱도에서 밖으로 포를 이동할 경우 스마트 폭탄은 빈 갱도만 파괴할 수도 있다.
또 북한은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핵전쟁을 상정해 군사시설만이 아니라 산업시설도 지하에 마련해 요새화해왔다. 이들 지하 군사기지는 융단폭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산을 100m 가까이 파고 만들었다. 여기에는 식량·물·탄약 등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으며 작전 지휘소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걸프전 당시처럼 미군이 토마호크 순양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폭기로 북한의 레이더 기지를 폭격한다 해도 북한 전역에 구축해놓은 지하 요새를 모두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전방의 북한 장사정포 진지 위치 확보율이 70%라는 뜻으로 3일만 참으면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은 큰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부시 정부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하는 네오콘 세력이 적극 주창한 전쟁계획으로, 그들은 이렇게 북한을 일거에 공격하고 나면 북한이 공황 상태에 빠져 반격 의지를 상실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런 선제 전쟁 수행 전략은 당시 한국 정부의 반대와 미국 내 군사 전문가들의 비판에 밀려 수행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미국의 이런 공세적 전쟁 수행이 전면전을 불러 남북한에 공통의 파멸을 몰고 올 것이라며 일축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일본과 독자적으로 북한 영변 핵시설을 타격하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지만 미국 내 군사 전문가들의 염려와 반대에 부딪혀 시행하지는 못했다. 당시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영변 원자로와 핵 재처리 시설은 고정 목표라 타격이 가능하지만 이미 확보했으리라 추정되는 핵폭탄과 플루토늄 저장시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 이미 제조된 핵폭탄과 플루토늄 저장시설 위치를 파악했다 한들 미군이 보유한 벙커버스터 폭탄에 대비했을 텐데 타격이 가능하겠느냐는 점, 정밀 타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한다 해도 광범위한 방사능 낙진이 발생해 중국·러시아는 물론이고 일본까지 방사능에 오염되는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므로 비현실적 망상이라고 반박했던 것이다.
![]() |
||
ⓒ시사IN |
아울러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직접 타격을 시도할 경우, 북한 지도부를 광적으로 자극해 북한은 남한과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를 미사일로 타격할 것이고, 화학무기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 및 소형 포탄이 서울로 날아들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기습 선제공격 전략은 미국 네오콘의 무책임한 전쟁 도발 시나리오라고 배척당했다. 현재 북한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는 전쟁 불사론은 바로 이런 네오콘식 선제 정밀 타격과 전쟁 수행을 통해 무력으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주장의 판박이다.
일부 국내 호전론자들은 만일 미군이 결심만 하면 북한 수복은 물론이고 만주까지 치고 올라가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펼친다. 그들은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쟁도 거리낌없이 주장하는 비이성적 전쟁 광기에 빠져 있는 셈이다.
전쟁 터지면 중국군 40여 만명 참전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중국이 자동으로 북한을 도와 개입하리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우리 군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중국은 1961년 북한과 체결한 ‘조·중 상호 원조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에 따라 북한 영토가 침략을 받았을 때 북한에 군사 지원하기로 돼 있다. 합참에서는 유사시 중화인민군 18개 사단 40여 만명과 항공기 800여 대, 함정 150여 척이 북한군을 도와 참전할 것으로 분석한 뒤 이를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쟁은 최종 승자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곧 남북한 모두 엄청난 인명과 재산 손실을 초래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경우 무기체계의 발달로 한국전쟁보다 17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남북한의 정규군은 175만명으로 한국전쟁 당시보다 6배 이상 늘었고, 각종 첨단무기의 파괴력은 80배 이상 증가한 상황이다. 한국전쟁 당시 3년간의 전쟁으로 인명피해가 500만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는 당시 전 가옥의 60%인 293만 호, 건물 5만3000동, 철도·교량 630㎞ 파괴 등이었다. 여기에 17배를 곱하면 호전적 극우세력이 말하는 전면전쟁을 각오하고 북한을 공격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고스란히 산출된다.
![]() |
||
ⓒReuter=Newsis 지난해 3월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을 위해 부산항에 들어온 미국 핵항공모함 존스테니스호. |
불안한 대피소 저리로 피하라고?
![]() |
[169호] 2010년 12월 04일 (토) 00:26:33 | 변진경 기자 ![]() |
![]() |
평소 무심히 드나들던 지하철역이나 지하보도를 보면서 ‘전쟁이 터지면 저기로 뛰어들어야겠구나’라고 무서운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비상등도, 급수 시설도, 화장실도 없는 지하보도 따위가 과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2010년 대한민국의 겨울이 유난히 으슬으슬하다.

<출처 : weekly경향>
누가 서해 5도를 ‘화약고’로 만들었나
[장면1] 1968년 1월 북한 124부대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수도권으로 잠입해 경찰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자행했다. 이에 정부는 같은 수(31명)로 구성된 684부대를 창설해 서해안 외딴섬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들의 임무는 평양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 주석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장면2] 북한 공작원들이 1983년 10월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이 순직했다. 당시 육사 12기를 주축으로 한 장교들은 ‘벌초계획’이라는 작전명 하에 김일성 주석궁을 폭파하는 모의훈련을 진행했다.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이후 60여년 동안 남북은 도발과 응징의 역사를 써왔다. 동서 냉전체제가 무너진 지 20년이 지났건만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의 삭풍’이 몰아치고 있다.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결국 피해자는 남북한 주민들이다. 남북한 주민들은 오늘도 분단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연평도 곳곳에 다연장로켓포(MLRS)가 배치돼 있다. |김영민 기자
북한도 자국 영토 턱밑에 있는 서해 5도로 인해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서해 5도 인근의 북측 섬들과 황해도 일대에 군사와 무기를 집중배치하고 있다. 사곶과 해주, 옹진반도, 개머리, 무도 등 서해 주변에 주요기지가 있다. 이들 기지는 해안포(사거리 12~27㎞)와 방사포(사거리 27㎞), 곡사포(사거리 54㎞)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서해함대 사령부와 예하부대 소속이다.
참여정부 5년 서해상 군사충돌 없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력을 집중배치함에 따라 서해5도는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됐다. 특히 양측이 불과 10여㎞를 사이에 두고 전력을 집중배치하고 있어, 자칫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미 서해에 남북한의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남측 무기의 대대적인 전력증강은 북한의 반작용을 야기해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며 “또한 면적이 좁은 연평도에 전력을 집중시킬 경우 유사시 북한의 핵심적인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때는 양측이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통신채널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 지역에서 양측의 소통채널이 막혀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에 서해에서 양측의 군사적 충돌은 없었다.
서해 5도와 NLL지역은 남북간에 분쟁이 발발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때 북한,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은 육상의 군사분계선(휴전선)만 확정하고 해상경계선은 합의하지 못했다. 현재의 NLL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임의로 설정했다. 당시 유엔군이 점령한 서해의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서해 5도의 북단과 북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에 중간선을 그은 것.
북측은 20여년 동안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며 1973년부터 서해 5도 주변수역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북한 해군은 NLL을 수없이 넘나들었으며, 우리 군도 예의주시하며 때로는 물리적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 같은 양측의 물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햇볕정책을 만든 김대중 정부 때도 NLL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1차 연평해전(1999년 6월)에서 양측은 서로 경비정을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기를 하던 중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경비정이 침몰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북한의 보복공격 성격이 짙은 2차 연평해전의 무대 역시 NLL이었다.
이번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구실도 NLL문제였다. 북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연평도 포격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괴뢰들이 연평도 일대의 우리측 영해에 수십발의 포격을 가하는 군사도발을 감행했다”며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서해협력지대’합의
햇볕정책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서해지역에서 분쟁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2000년 12월에 개최된 제4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통해 남북어업협력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이후 남북수산협력실무협의회(2005년 7월) 등 다양한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지역이 북한 최고의 군사요충지라는 점 때문에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외교전략비서관은 “북한이 NLL 때문에 자유롭게 서해를 드나들 수 없어 숨이 막힌다고 했다”며 “참여정부 때도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이상한 행동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해주경제특구와 관련, 이 특구가 설치됐다면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해주경제특구는 해주 외곽과 인근의 황해도 강령군 일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실무 총책임을 맡았던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남북한이 해주 외곽과 강령군 일대에 경제특구를 설치하기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주경제특구가 황해도 강령반도 일대에 들어서고, 물류 이동통로로 해주항을 활용하는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해주항은 북한 서해에서 남포 다음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이번 연평도에 포탄을 쏜 개머리진지가 강령군에 있다. 강령군은 북한 서해함대 사령부 예하 8전대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사곶과 인접해 있다. 이에 따라 북한도 남측의 해주경제특구 제안에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해주특구를 제안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관계자를 불러 해주를 열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동안 해주는 북한의 입장에서 무역항보다는 군항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중국 또는 남한에서 해주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령도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북은 해주경제특구 합의로 경제적 실리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얻어냈다.
공동어로구역 설치도 남북 어민 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구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NLL지역은 한반도 최대의 꽃게어장이다. 이 지역에서 양측의 크고 작은 충돌도 꽃게 때문이었다. 남북의 어부들이 더 많은 꽃게를 찾아 NLL을 넘다보니 군함이 뒤따라가고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뿐만 아니라 중국 어선들도 이 지역을 호시탐탐 노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동어로구역 설치는 남북 어부들에게 꽃게를 마음놓고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와 관련, 남측은 공동어로 수역을 NLL 기준으로 각각 남과 북의 동일수역을 제시했다. 우리 정부가 북측에 제시한 공동어로구역은 ▲백령도 북쪽 ▲대청도 동쪽 ▲소청도와 기린도 사이 ▲기린도와 등산곶 사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서해 5도 어민들은 공동어로구역을 어디에다 설치하더라도 무조건 찬성했다”며 “이는 공동어로구역이 기존의 NLL 아래 지역에 있는 어로한계선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꽃게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해협력지대에서 중요한 지역은 또 있다. 개성에 인접해 있는 예성강과 서울을 바다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한강하구다. 남측은 우선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특히 토사가 퇴적된 한강 하구는 모래 채취를 위해 남측 기업들이 탐을 냈던 곳이다. 이밖에 남북은 서해협력지대에 해양평화공원을 만드는 안에도 합의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백령도 일대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서식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물곰이 있는 등 희귀 해양생물이 많다”며 “당시 남북이 해양환경적 측면에서 생태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어민 위한 공동어로구역 설치도 구상
10·4선언 이후 남북 당국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2개월여 동안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접촉했다. 남북 총리회담이 11월 27~29일 개최됐으며, 이어 국방장관 회담(11월 27~29일)과 남북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12월 4~6일)’가 개최됐다. 특히 남측에서는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2007년 남북정상선언 이행종합기획단’을 구성해 구체적 추진방안 강구와 이행상황을 점검했다. 그 결과 문산~봉동 간 남북 화물열차의 정례운행이 시작됐으며, 12월 12~14일 개최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는 개성공단의 통행·통신·통관 등 3통 문제에 관한 군사적 보장 장치가 마련되기도 했다.

특히 총리회담에서 NLL지역과 관련, 남북은 서해협력지대추진위원회를 둔다는 데 합의했다. 서해협력지대위 산하에는 ▲해주경제특구 협력분과위 ▲해주항개발협력분과위 ▲공동어로협력분과위 ▲한강하구협력분과위 등 4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해협력지대 논의는 이것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남북이 정상회담 합의사안을 추동력 있게 밀고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구상은 이명박 정부 들어 10·4선언 자체가 흐지부지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서해협력지대 구상은 민감한 NLL 문제를 넘어 평화수역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수층의 지지가 필요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NLL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수에만 집중했다.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은 NLL을 영토주권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NLL 문제를 후속 실무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거세게 반대했다.
만약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2006년에만 성사됐더라도 서해협력지대 구상안은 실행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평도의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손자병법을 보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싸움의 기본이다. 군사력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군사력만 갖고 서해를 긴장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만들 수는 없다.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단기적으로 군사적인 긴장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지만 이 같은 군사적 대치상태가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면 남북관계에서 또 다른 불상사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ㆍ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대북지원으로 남북대결 완화 효과 강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weekly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관련해 “햇볕정책이 지속됐으면 이렇게 남북이 극단적인 대결상황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하루 아침에 종식시킬 수는 없지만, 햇볕정책이 북한의 호전성을 고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 5년 동안 북한에 1조4000억원 규모의 현물을 지원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퍼주기’라고 비판한다”며 “그 지원은 북한의 호전성을 줄이고 남북간 대결을 완화하는 데 많은 효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햇볕정책을 침몰시킨 이명박 정부가 이제 와서 남북관계가 잘못되면 햇볕정책 탓이라고 하면 안 된다”며 이명박 정부에 분통을 터뜨렸다.
북한 전문가인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다.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체제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포격을 볼 때 한반도 냉전의 끝자락이 너무나 길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두 가지 요인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지난 3년 동안 이명박 정부 하에서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파국적 결과가 이번 사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다. NLL 지역은 남북한 분쟁의 화약고 같은 곳이다. 세계 수준에서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에 남북의 충돌은 NLL 수역에 집중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역은 단호하되 치밀하고 조심스럽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 것이 이번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공격한 것 같다. 북한의 공격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추정을 하자면 가장 큰 목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의 리더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다 아는 것처럼 후계자 김정은의 정통성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김정은이 강력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북한이 결행한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도 후계체제 과정에서 김정은의 강성 리더십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때 대충 김정은의 ‘강성결단’에 대한 내부 선전을 통한 대내적인 리더십 강화작업은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았는데, 예측을 벗어나 이것이 남북관계에도 (연평도 포격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기회 편승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더, 오어(Either, Or) 전략’이다. 즉 이것이 아니면 저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전략이다. 때문에 북한의 도발과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 제스처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복합적으로 함께 나오고 있다.”
햇볕정책 기조가 유지됐다면 이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햇볕정책의 승계를 거부했으며, 그 반대인 비핵개방3000정책을 천명했다. 당시 햇볕정책 전문가들도 통일부 자문단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나는 참여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만약 이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면, (그리고) 이번 상황에 대해 나보고 책임지라면 질 용의가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3년 전에 햇볕정책 계승을 거부하고 그 반대의 정책을 썼기 때문에 우리가 책임질 일이 없다. 햇볕정책을 침몰시킨 정부가 이제 와서 남북관계가 잘못되니 햇볕정책 탓이라고 하면 안 된다. 햇볕정책이 지속됐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냐는 질문은 가상 상황을 전제로 한 질문이기에 대답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나는 햇볕정책이 지속됐으면 이렇게 남북이 극단적인 대결상황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돈으로 평화를 샀다, 햇볕정책이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물론 햇볕정책 자체가 만능은 아니다. 햇볕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호전성을 감소시키고, 남북이 화해·협력으로 나감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하루 아침에 종식시킬 수는 없지만, 햇볕정책이 북한의 호전성을 고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북한에 1조4000억원 규모의 현물을 지원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퍼주기’라고 비판한다. 그 지원은 북한의 호전성을 줄이고 남북간 대결을 완화하는 데 많은 효과가 있었다. 그것을 돈으로 평화를 샀다는 것으로 표현한다면,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왜 못 사겠는가. 그동안 박왕자씨 피살 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공격 사건 등이 벌어졌는데 직접적인 피해 말고도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이런 큰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러면 돈으로 평화를 사지 않아서 그랬나. 단순히 돈으로 평화를 살 수는 없다. 합리적인 정책, 전략적인 대북정책이 그것을 뒷받침해야 한다.”
연평도 공격과 관련해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합의한 10·4선언 중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안’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10·4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이행하기 위해 남북이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간에 관련 협상 틀이 가동되면 그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일각에서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하는데 사실은 6자회담이 가동되는 동안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6자회담이 가동을 멈추어 기능부전 상태에 빠질 때 북한은 핵실험에 나섰다. 북한이 핵실험한 지난 2006년 10월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자금 동결문제로 6자회담이 가동중단 상태에 있었으며, 지난해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을 때도 6자회담은 휴업상태였다. 즉 6자회담이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상황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해5도에 최첨단 무기를 배치하는 등 전력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서해 5도 지역에 평화가 다시 찾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5도는 전략적으로 우리가 방어하기 힘든 지역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턱 밑에 우리의 영토가 있기에 큰 위협이라고 여길 것이다. 북한은 황해도 일대에 대한 광범위한 군사배치를 통해 서해 5도를 다양하게 공격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제한되어 있다. 북측은 육지에서 광범위하게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지만 우리는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특성상 전략적으로 그게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방어 중심의 작전계획을 짤 수밖에 없다. 서해 5도에서 발생하는 충돌에서 우리가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비전시상황에서 서해 5도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충돌이 발생했을 때는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어태세를 철저히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여권 일각에서는 연평도 포격도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참여정부 때 우리가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북한의 농축우라늄과 관련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거의 대부분 미국에 의존했다. 그러니 우리가 은폐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다만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을 이유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의 무효를 주장하고 우리가 10억 달러 이상을 이미 지출한 경수로 건설을 중단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한반도 안보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중대한 사안이니 보다 신빙성 있는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적은 있다. 지난 2002년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가 방북한 이후에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확증적 자료는 제시된 적이 없었다. 우리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존재를 알고도 이를 은폐하거나 북한을 편들 이유가 없다. 지난 3년간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 상황을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작년부터 영변에 건설했다는 농축시설도 까맣게 몰랐던 자신들의 책임은 돌아보지 않고, 그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두려우니까 과거 정권 탓으로 자꾸 돌리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중국이 6자 수석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한·미·일은 사실상 거부했다. 지금 상황에서 6자회담이 유용하다고 보나.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하는 것을 막을 때 우리에게 어떤 실익이 있나. 실제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만약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는 것을 막으면 지금껏 그랬듯이 북한은 핵능력을 끊임없이 강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연평도 문제를 잘 관리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카드가 없다. 만약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 진행을 막을 수 있는 동시에 연평도 문제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앞으로 시간이 좀 경과하면 관련국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6자회담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북한의 호전적 행동을 제어할 정도로 강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국의 영향력은 북한의 경제를 돕고 북핵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쪽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북핵문제의 책임론을 북한의 일방론에서 북한과 미국의 동시 책임론으로 인식을 바꾸면서 대북정책을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강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이번에 농축우라늄과 관련해서도 중국은 서방과 달리 미온적이다. 이처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북한을 직접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앞으로는 이러한 영향력도 커지겠지만). 현 상황은 북한의 체제 존립에 버팀목 역할을 하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완화시켜주는 쪽으로 커지고 있다. ”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무기가 늘수록 평화는 사라진다
ㆍ서해 5도 병력·군비 증강으로 긴장고조 ‘화약고’ 우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정부는 ‘서해5도의 전력보강’으로 대응했다. 정부의 대응에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첨단무기를 증강 배치하고, 병력을 확대하면서 서해 5도가 항시적인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해가 제2의 대만해협처럼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관련, 11월 29일 서해에서 있은 한·미 연합훈련 도중 연합훈련 도중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에서 슈퍼호닛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경향신문
1958년 8월 23일 중국은 대만해협의 진먼도(金門島, 대·소진먼도 등 12개 섬을 함께 진먼도로 부른다)를 포격했다. 2시간 만에 포탄 4만발이 쏟아졌다.
대만도 포격으로 대응했고, 미국은 대만해협에 함대를 파견했다. 치열한 포격전에 더해 중국과 대만의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포격전은 그 해 10월 5일까지 이어졌다. 진먼도에는 이 기간에 총 475만발의 포탄이 떨어졌다고 기록됐다. 이후에도 연례행사처럼 중국은 매년 진먼도를 포격했고, 대만도 대응 포격을 했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 공격은 1979년 미국과 중국이 국교수립을 하면서 비로소 중단됐다.
대만해협 긴장감 점차 완화 추세
진먼도는 중국 해안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 대만의 섬이지만, 중국에 오히려 더 가깝다. 대만 입장에서 진먼도는 중국의 위협을 막을 수 있는 최전선 기지인 셈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진먼도가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군비증강 경쟁이 벌어진 배경이다. 대만은 대만해협에 있는 마쭈도(馬祖島)에 크루즈 미사일 중대를 배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진먼도에는 최신예 미사일과 장거리포를 대량 배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중국은 대만해협과 가까운 난징, 광저우 등지에 탄도미사일 등을 배치한 상태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국은 첨단무기를 배치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의 섬인 진먼도와 마쭈도는 오히려 중국에 더 가깝다. |구굴어스 정보
미국의 존재도 긴장을 높이는 구실을 했다. 1996년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사일도 발사했다. 미국은 이곳에 항공모함을 파견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은 미국의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미국은 대만해협의 분쟁 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벌어진 것과 대만해협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항공모함을 보낸 것이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해협에서 벌어졌던 일이 서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만해협과 서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감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서해 5도를 둘러싼 긴장감은 오히려 배가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군사적 공격을 중단한 뒤 긴장을 줄이는 대화와 협상을 이어왔다. 중국이 대만과 우편·항공·통상을 서로 개방하는 ‘3통’을 제의하고, 대만은 중국과 ‘접촉·담판·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3불정책’을 허무는 것으로 화답했다. 지난 6월 중국과 대만이 경제를 단일시장으로 통합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것은 긴장완화를 위한 타협과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기본협정 체결은 중국·대만·홍콩을 잇는 거대한 중화경제권의 출범을 알리는 것이다.
서해의 분위기는 대만해협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없던 1950년대 대만해협 분위기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단호한 행동’을 거듭 천명하고, 북한이 ‘경기도 공격’을 시사하는 것이 좋은 예다. 한·미의 서해 훈련에 북한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렇다. 문제는 더 있다. 중국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기자에게 “서해상에서 전개된 한·미 연합훈련이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서해를 제2의 대만해협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58년 8월 23일 중국이 대만 진먼도를 포격, 진먼도 26개 촌락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경향신문
중국은 미국이 서해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대립 사이에서 미국과의 동맹 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이라는 대립이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훈련 장소였던 서해로 진입하지 못하고 동해로 옮겨갔다. 중국이 거세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로 진입했다. 중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한·미 연합훈련 소식이 알려진 후 양제츠 외교부장의 방한을 취소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어느 일방의 허락 없이 어떠한 군사적 행위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미국의 서해 진입 민감한 반응
서해 5도에 병력 증강을 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대 「D&D Focus」 편집장은 “서해 5도에 전력을 증강하고, 최신 무기로 요새를 만드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적인 비판이다. 만일 북한이 도발했을 때 민간인이 피해를 입으면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서해가 군사기지화가 된다면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구실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 내년도 국방예산으로 당초의 31조2000여억원보다 2.3% 늘어난 31조9000여억원을 제출했다. 자주포, 대포병레이더,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에 필요한 예산이다. 서해를 두고 남북의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상황인데, 이런 전력 증강이 과연 효율적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면적이 좁은 연평도에 전력을 집중 배치했을 때 오히려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군비확장 경쟁을 벌인 중국과 대만처럼 서해를 두고 한국과 북한이 군비증강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상황도 예견된다.
국회 국방위 민주당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이번에 K9 자주포, 탄약보급차, 지대지 미사일 등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 기밀상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외국산 미사일도 포함됐다”면서 “사정거리가 긴 것을 왜 섬에 갖다 놓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북한만 자극하고 긴장감만 고조될 수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를 요새화한다고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안보지수는 ‘민감' 경제지표는 ‘둔감’
ㆍ남북 무력충돌 일어나면 한반도 평화지수 급변, 금융시장은 비교적 차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남북의 긴장관계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북한의 도발이 종전의 사태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거론된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직후 벌어진 점, 휴전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거주지역을 포격한 점, 거기다가 추가도발을 공언하고 있는 점 등이 그렇다. 한국 정부가 퇴로 없는 강공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 한·미·일과 북·중 간 대결구도로 이어지고 있는 점 등도 불안요인이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11월 25일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경제점검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의 공격 열흘이 지난 지금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외부의 충격을 원만하게 흡수하는 기초체력을 갖추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과거 ‘북한 리스크’에 대한 학습효과가 금융시장의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우리 경제지표에 이미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도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하는 요인이라는 게 경제전문가의 시각이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사태가 장기적인 군사적 공격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금융시장의 요동을 막은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정부가 연평도 포격 다음날인 11월 24일 연·기금을 풀어 4000억원 넘게 주식을 사들인 것도 금융시장 안정에 다소 기여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계량화한 ‘안보(평화)지수’와 ‘코리아 디스카운트’(특수한 한반도의 안보상황에서 비롯된 경제손실)는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을까. 방태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안보지수가 1대 1의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 연구원은 그러면서도 “경제학자들이 경제지표 분석과 경제예측을 할 때 ‘안보지수’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안보지수와 경제지표 사이에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지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보상황의 변화가 심하면 안보와 경제의 연관성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거기다가 한국의 안보상황을 계량화한 ‘안보지수’와 그 지수를 뒷받침하는 각종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증권시장 ‘북한 리스크’ 학습효과
안보지수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부터 분기별로 발표하는 ‘한국안보지수’와 2009년 3·4분기부터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집계한 ‘한반도평화지수’가 있다.

11월 26일 동해상에서 열린 한·미 연합훈련에서 미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상공으로 미 전투기와 수송기 등이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안보지수’는 한·미·중·일·러 등 5개국의 한반도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다. 기준지수는 50점이며 50점보다 높으면 긍정적, 50점 미만이면 부정적이다. ‘한반도평화지수’는 전문가 대상의 설문조사(50점)와 안보와 연관된 사건(50점)을 계량화해 매긴다. 한반도평화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남북 대립과 위기상황을, 100에 가까울수록 화해·협력 상태를 나타낸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1992년 이래 지금까지 21회 도발했다. 그 중에서 무력충돌은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등 6차례가 있었다. 이 중에서도 ‘진돗개’ 이상 발령이나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사건’은 세 차례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와 관련한 리스크로 이슈화된 것도 우라늄 고농축시설 공개까지 합치면 세 차례다. 하지만 북한 리스크는 종전에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예컨대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2002년 6월 29일은 토요일이어서 증권시장이 열리지 않았으나 다음 월요일엔 0.24%가 떨어진 채 장을 시작했다. 이것이 이날 최저가였고 결국은 0.47% 상승한 채 장을 마감했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때도 주가가 3.58% 떨어졌으나 이후 하락폭은 줄어 2.41%
(1319.40)가 빠지는 데 그쳤다. 다음날인 10일에는 9%포인트 반등한 이후 주식시장이 기력을 되찾는 등 안정됐다.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태 때 시초가에서는 0.91%까지 떨어졌지만 종가는 0.34%(종가 : 1691.99) 하락에 그쳤다. 한 달 뒤 종합주가는 1750선까지 상승했다. 강현기 솔로몬증권투자 애널리스트는 “북한의 도발, 심지어 화력을 동원한 도발의 경우에도 주가지수의 하락폭은 7%를 넘지 않았고, 조정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였다”면서 “이번은 민간 포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긴장고조 상태’
반면 ‘안보지수’는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최저값을 보인 한국안보지수는 40.64점이었다.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2006년 10월 9일 무렵이다. 지난해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뒤 발표된 2009년 3분기 ‘한국안보지수’는 45.59였다.

남북관계 개선이 되지 않은 채 북한의 화폐개혁에 따른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군사적 긴장이 점차 고조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같은 기간에 발표된 ‘한반도평화지수’는 40.2였다.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뒤 발표된 지수는 46.54였다. 이는 천안함 사태 발생 이전 분기에 발표됐던 50.07보다 3.53포인트나 추락한 것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천안함 사태 이후 당분간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없고 북한의 핵 보유 집착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낙폭을 크게 했다”고 분석했다.
천안함 사태를 반영했던 한반도평화지수는 22.6으로 ‘긴장 고조 상태(20~40)’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천안함 사태 발생 이전 분기보다 7.3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평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안보지수와 경제지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정치·경제·사회·국방·외교까지 포괄하는 개념인 안보지수와 경제지표의 격차가 벌어지면 그만큼 잠재적 불안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남북 대치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육군 중심 개혁, 하늘과 바다는 후순위
ㆍ이명박 정부의 국방계획, 육·해·공군 균형 통합완성형 추구해야
이명박 정부의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내정자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방정책의 핵심인사라는 점이다. 이상희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내면서 군 구조개혁안을 처음 설계했다. 김관진 내정자는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과 2012년 전작권 회수에 공동 서명한 인사다. 참여정부 시절 핵심인사가 이명박 정부에서도 중용된 사례는 국방·외교통상 분야를 제외하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전 정부의 인사를 중용하면서도 전 정부의 정책은 이어받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안을 수정했다.
참여정부 기조는 ‘협력적 자주국방’

2008년 10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이 건군 60주년 국군의 날에 열린 기념식에서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열병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2월 2일 청와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12월 둘째 주에 청와대에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열고 국방개혁에 대한 최종 보고를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밝힌 국방개혁은 2009년 6월 ‘국방개혁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국방장관이 교체될 정도로 큰 파장을 몰고 온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이번주에 발표될 국방개혁안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과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졌던 ‘국방개혁 2020’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국방개혁 2020은 2005년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2006년 12월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로 제정됐다.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은 참여정부 국방개혁의 특징을 ‘형식상 법으로 택한 것’ ‘국회와 국민이 한국군의 현대화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고 그 진행 과정을 주시하게 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여정부의 국방정책과 국방개혁’이라는 글을 통해서다. 윤 전 장관은 이 글에서 “참여정부의 국방정책은 주권국가로서 자주국방을 추구하면서 한·미 동맹관계도 활용하는 소위 ‘협력적 자주국방’을 근간으로 했다”고 소개했다.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현대전 체계에 맞는 군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 무기를 도입해 병력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05년 현재 68만 명이던 군인 숫자를 2020년엔 50만 명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었다. 지휘 단계 및 부대수 축소도 포함됐다. 육군의 군사령부, 군단, 사단 감축도 국방개혁의 일환이었다.
반면 지난해 6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진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선 전력화 후 부대개편’을 원칙으로 한다. 먼저 전력을 증강한 후 이어 인력과 부대 개편을 한다는 것. 이로 인해 육군의 인력감축이 계획보다 축소됐다. 국방개혁 수정안에서는 육군의 사업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만, 해군과 공군의 사업은 줄줄이 순연됐다. 군 전문가들은 “수정안이 육군에 치중됐다”고 비판했다.
육군 전력증강 신규 사업 눈길
국방개혁 기본계획과 원안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해군의 전력은 뒤로 밀리거나 축소된 경우가 많았다. 해군 전력증강을 위해 계획됐던 KSS III(장보고급) 잠수함은 3척 확보에서 1척으로 축소됐다. 해군의 주요 함정인 호위함, 초계함, 고속정 등도 노후해 교체가 시급한데, 교체는 2011년 이후로 지연됐다. 소해함 추가 사업도 2013~2015년에서 2015~2017년으로 늦춰졌다. 소해헬기도 2012년 도입 예정에서 2014년으로 밀렸다. 이 외에도 해상작전 헬기, 차기상륙함, 상륙공격헬기 등의 전력화 시기가 순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의 전력화 시점도 뒤로 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실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의뢰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전력화가 계획됐던 글로벌호크는 2015~2016년으로 순연됐고, 2013년 전력화를 계획했던 공중급유기 도입도 1년 후로 연기됐다.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좌), 김관진 국방부 장관 내정자(우)는 참여정부 국방정책의 핵심인사가 이명박 정부에 중용된 사례로 남았지만 참여정부의 국방정책은 이어지지 않았다. |경향신문
그러나 육군의 전력증강 사업은 삭감된 것도 있지만, 새로 착수되는 사업도 있어 눈길을 끈다. 구룡 다연장로켓포를 대체하는 차기 다연장로켓 시스템, 차기 자주포 사업 등은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새롭게 들어간 사업으로 알려졌다. 김종대 「D&D Focus」 편집장은 “재래식 지상전 능력 강화”라고 평가했다. 김 편집장은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지상전 능력을 강화한 것뿐”이라며 “우리가 주도적으로 미래를 관리하려는 것이 부족하다.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신학용 민주당 의원도 “미래를 대비하려면 공군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문제는 돈”이라며 “국방예산의 부족으로 육군의 전력 강화에 중점을 뒀는데, 우리 현실에 맞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무기체계 도입 지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1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을 통해 “국방개혁에 따라 전력구조와 함께 지휘구조, 부대구조, 병력구조가 동시에 변화하게 된다”면서 “지휘구조, 부대구조, 병력구조의 개편은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전력구조 개편만 지연될 경우 군 구조 상호간 불균형이 발생해 전력 공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것.
군 지휘부 개편도 육군 자리 늘리기?
육군의 전력 증강이 “방산업체 로비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주포, 다연장포, 전차, 공격용헬기 등의 전력증강 계획이 밀리지 않고 참여정부 계획대로 추진되는 것은 방산업체의 목소리 때문이라는 것.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연평도에 전력을 증강한다면서 나온 무기들을 보면 국내 방산업체 무기가 많다”면서 “국방개혁 기본계획에서 해군과 공군의 전력은 순연됐지만 육군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국내 방산업체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인력 감축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군 규모를 50만 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51만7000명으로 바뀌었다. 육군 병력은 오히려 1만7000명이 최초의 원안보다 증가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해외파병부대다. 2005년에는 1160명으로 계획됐던 파병부대 규모가 2009년 6월에 3000명으로 늘어났다. 국방개혁의 핵심 목표가 군의 감축인데, 파병부대 규모는 오히려 확대된 것.
군 지휘부 개편안도 말이 많다. 지난해 합참 1차장 자리가 신설됐고, 합참 1차장은 합동작전본부를 관할하게 됐다. 문제는 합참 1차장과 합동작전본부는 육군필수직위로 구상한다는 점. 즉 작전 부분을 육군필수직위화하면 육군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합참 1차장의 신설도 전형적인 육군 자리 늘리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예비역 장성은 “육·해·공 전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전략전술적인 면에서 중요하다”면서 “다만 한정된 예산에서 전략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육군 전력의 증강이 중심이 된 것 같다. 국방개혁의 기본 방향은 육·해·공군의 전술적인 균형을 맞추는 통합완성형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예비역 소장도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은 미래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은 당장 현실적인 방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원양 해군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연안 해군을 키우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안보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문제”

“국방개혁 2020에 맞는 예산지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 국방개혁을 발표할 때 매년 9%의 국방예산 증가, 7%의 한국 경제성장을 전제로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금융위기 여파로 국방예산 증가가 어려웠다. 일명 부자감세로 세수가 5년 동안 60조원이나 줄어들었고, 4대강 예산을 확보하려다 보니 국방예산이 턱없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까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방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다. 국방개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정부는 미국의 도움만 믿고 개혁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방정책에 대한 비판이 높다.
“안보를 정치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국방정책은 군의 사기를 우선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정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측면이 많다. 군의 사기를 올려줘야 하는 것이 뭔지 생각하지 않고, 정치를 먼저 생각하는 게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재래식 지상전 능력만 강화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육·해·공군의 전력증강을 적절히 배분하지 않았다. 북한이 만일 도발하면 공군이 먼저 나선 후 육군이 공격을 하게 된다. 공군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군의 전력은 미국에 계속 의존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긴다. 육군 위주의 국방개혁은 빨리 바꿔야 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전작권을 회수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국민의 생각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 모든 것이 한미연합사령부에 예속되어 있다. 우리 군의 의도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평시 작전권을 우리가 가져왔지만, 데프콘 3만 되어도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로 간다. 물론 미국의 도움 없이는 공군 전력을 유지할 수 없다. 전작권 환수의 베이스는 한미 동맹이다. 2015년 전작권 회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예상하나.
“북한의 추가 도발은 있을 것으로 본다. 남북이 평화를 유지하든, 대결국면으로 가든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 추가 도발을 할 것이다. 이제는 확전의 위험성도 커졌는데,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전체제에서 만든 교전수칙은 확전의 방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교전수칙을 바꾸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북한의 군사용어를 정리한 논문은 찾을 수 있지만, 경계나 준전시태세를 가리키는 북한의 용어는 찾기 힘들었다. 다만 탈북자 단체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가장 높은 수위의 단어는 ‘전시태세’다. ‘전시태세 1’은 ‘선전포고를 하거나 직접적 군사행동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관계 또는 전쟁관계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전시태세 2’는 ‘전쟁이 일어난 것과 관련하여 국가가 대내외 분야에서 일련의 긴급조치와 비상대책을 세운 상태’를 말한다. 그다음으로 높은 수위가 ‘준전시태세’로 ‘전시나 다름없이 정세가 조성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다음 수위는 ‘폭풍’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일반적으로 부대에서 비상소집을 할 때 사용한다. 폭풍은 1, 2, 3단계가 있는데 각 단계에 맞게 군인이 대응해야 할 행동지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에서 사용하는 진돗개는 ‘비상경계명령’을 뜻한다. 국지도발에 대비해 특정 지역에서만 국한되어 사용한다. 진돗개는 평소 3등급을 유지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규전에 대비한 전투준비태세를 나타내는 용어는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다. 데프콘은 모두 5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데프콘 5’가 평상시다. ‘데프콘 4’는 대비 상태로 한국과 북한은 정전 상태이므로 항상 데프콘 4를 유지한다. ‘데프콘 3’은 중대한 긴장 상태나 군사개입 가능성이 있을 때 발령하고, 이때부터 작전권은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간다. 데프콘 2 상황에서는 전군에 탄약이 지급되고, 데프콘 1은 동원령이 선포된다.
워치콘(Watch Condition)은 북한의 군사 활동을 추적하는 정보감시태세로 4단계로 구분돼 있다. 워치콘의 격상은 한국과 미국 정보당국 간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포탄①이 ‘천안함 북한 소행’ 확증?
ㆍ연평도 포격 포탄에서 숫자 발견되자 국방부 ‘천안함 1번’과 연계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의 122㎜ 방사포 로켓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천안함 1번 논란의 재연이다. 논란은 11월 26일, KBS 9시 뉴스가 연평도에서 수거한 방사포 로켓탄 추진체를 방영하면서 비롯됐다. 로켓의 날개가 달린 노즐 부분에 수기(手記)로 보이는 ①번 표기가 발견된 것이다.

숫자 ① 표기는 연평도에 북한이 쏜 방사포 로켓 추진체의 노즐 부분(오른쪽 추진체를 잡고 있는 군인의 왼손 부분에 해당)에서 발견되었다. 11월 28일, 연평도 마을에 떨어진 포탄의 추진체를 해병대 폭발물 처리반이 수거, 운반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인터넷 일각에서 농담처럼 나온 ‘1번 논란이 재연될 것’이라는 예상은 이튿날 국방부의 발표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11월 27일 국방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122㎜ 방사포탄 노즐 부분에서 손으로 쓴 ‘①’이라는 숫자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무기에는 기계로만 글씨를 새기며 설혹 글씨가 있더라도 고열에 녹아서 없어져야 하므로 어뢰는 조작되었다’는 그동안의 북측 주장이 허위임이 명백해졌다”며 “결론적으로 이번에 발견된 숫자 표기에서 보듯 천안함을 피격한 CHT-2D 어뢰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한 것이 명확하고,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에 피격되어 침몰하였다는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이 국방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조선·동아 등은 “①번 표기의 발견으로 천안함 사건의 책임소재가 뚜렷해졌다”며 천안함 사건 재검증을 주장해온 측을 비난했다.
①이 수기면 북 소행 증명 완료?
천안함 어뢰에 적힌 1번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란은 서재정·이승헌 교수가 6월 1일 경향신문에 공동 게재한 “‘1번’에 대한 과학적 의혹을 제기한다”는 글로부터 촉발되었다. 공동게재 글에서 이들은 “(부식된 어뢰의) 외부 페인트가 탔다면 ‘1번’도 탔어야 하고, ‘1번’이 남아있다면 외부 페인트도 남아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불일치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천안함을 둘러싼 과학적 검증 문제는 어뢰와 천안함 프로펠러 등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흡착물의 성분과 흡착 경위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결정적인 증거로 ‘1번’ 표기를 강조한 쪽은 국방부였다. 하지만 9월 13일 공개된 국방부의 최종 보고서에서는 전체 보고서 분량(205쪽)의 100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약 2.5쪽) 잉크의 성분 분석 결과는 “대부분 국가에서 유사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별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북한이 발사한 추진체 날개 부분에 수기 이외에도 스탬프로 찍힌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숫자가 적혀 있다. |김기남 기자
이와는 별도로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북한산 알루미늄 스크루에 직접 유성매직으로 글씨를 쓰고 토치로 가열하는 실험을 했다. 글자는 쉽게 타버렸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마찬가지였다.
연평도에서 나온 숫자 ①번 표기는 천안함 수기 1번 표기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는 물리적 증거일까. 일단 연평도에 떨어진 122㎜ 방사포 로켓추진체가 북한제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손 글씨는? “수기 여부는 논란의 핵심이 아니었다.” 노종면 언론 3단체(기자협회, PD연합회, 언론노조) 천안함 조사 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 책임연구위원은 “이미 2003년 수거된 북한의 훈련용 경어뢰에서 ‘4호’라는 손 글씨가 적혀 있었던 것이 지난 5월 공개됐었다”며 “논란이 됐던 것은 1번이라는 글씨가 만약 폭발 전에 적혀 있었다면 타느냐 안 타느냐의 문제였고, 부식된 어뢰 외부의 페인트가 탔다면 1번이라는 글씨도 타야 한다는 것이 논점”이라고 밝혔다. 언론검증위는 지난 11월 29일 낸 성명에서 “연평도 포탄에서 폭발 전에 쓰인 숫자 ①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으로 할 수 있는 판단의 최대치는 ‘북한이 무기에 손으로 숫자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라며 “반론이 나와도 전혀 취재를 하지 않거나 ‘정부 조작’이라는 일부의 과격한 주장에 하나로 묶어버린 언론들이 숫자 ①로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고의적 왜곡이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1월 29일자 사설에서 ‘버지니아대학의 한인 교수’를 거론해 사실상 이승헌 교수를 지목하며 “알량한 물리학자의 사이비 과학을 개탄한다”고 했다.
이승헌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본지는 이승헌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음날 새벽 이 교수는 ‘연평도와 천안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글에서 이 교수는 합조단의 모의 폭발실험 결과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수식을 제시했다.
R(폭약이 터졌을 때 생기는 고온의 버블 반경)=(폭약질량/15g) ⅓×0.25m
정부 주장처럼 천안함 사건 때의 ‘1번 어뢰’가 TNT 350㎏의 폭약을 지녔다면 나올 수 있는 버블의 반경은 7.1m다. 이 교수에 따르면 ‘1번’ 표기는 탄두부에서 5.8m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고온가스에 휩싸여 타버렸어야 한다. 하지만 ‘1번’ 주변 페인트는 탔지만 글씨는 남았다.
北 방사포제원 바탕 계산 ‘①’글씨 탄다

북이 쏜 방사포 로켓에 남겨진 숫자
① 표기는 11월 26일 KBS 9시 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튿날 국방부는 “이로써 천안함 1번 표기 논란은 종식되었다”고 발표했다. |KBS 캡쳐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은 어떨까. 이 교수는 세계 여러 나라 군대에서 쓰이는 122㎜ 포탄의 제원에 기초해 추정한 결과를 제시했다. 122㎜ 포탄의 길이는 통상적으로 2.8m이고, 폭약의 질량은 포인 경우는 2~3㎏, 로켓의 경우는 5~6㎏이다. 따라서 위의 공식에 따르면 폭발 후 생기는 고온버블의 반경은 1.5~1.8m 사이다. 이 교수의 결론은 “따라서 포탄의 탄두부에서 ① 글씨까지의 거리가 최소 2m는 넘기 때문에 고온버블이 번호를 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설령 국방부 주장대로 포탄의 위력이 TNT 10㎏에 달한다고 하면 고온버블의 반경이 2.2m에 달하기 때문에 번호가 탈 조건이 되는데, 그럴 경우 포탄 위쪽 페인트가 타지 않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① 글씨가 발견된 방사포 추진체는 로켓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북한 방사포 로켓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알려진 제원은 이 교수의 추정치와 다르다. 구 소련의 ‘다련장로켓’ ‘BM-21’을 개량한 것이다. 길이는 약 3m이며 사정리는 약 20㎞다. 탄두중량은 27㎏. 탄두중량 27㎏을 TNT (북측 용어로 뜨로찔)로 간주했을 때 위의 도식에 집어넣으면 약 2.97m가 나온다. 길이가 3m라고 했을 때 ① 글씨가 적혀 있는 부분은 고온버블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타게 된다. 이럴 경우 이교수가 밝힌 후자의 모순이 생긴다. 사실 이 경우 또 다른 실험을 해야 한다. 연평도 포격 당시 환경조건이 천안함 때와 달랐고, 결정적으로 물 속과 일반 대기 중 노출되었을 때라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종인 대표는 “근본적으로 폭발환경이 다른데 이걸(연평도 포탄에서 발견된 ① 글씨)로 논란이 종식되었다고 하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지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종면 천안함 언론검증위원은 “국방부가 연평도 포탄의 ①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가진다면 최소한 연평도 폭발환경은 어땠는지, 동그라미 1번 글씨는 무엇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연평도 사건과 관련된 책임문제 등을 수습한 뒤 정치적 오해가 없는 시기에 발표했다면 ‘천안함 논란 물타기’라는 비판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교수 등의 글에 대한 국방부 입장이 궁금했다. 국방부에는 연평도 사건과 관련한 조사본부가 마련되어 있다. 조사본부는 대변인실을 통해 “(이승헌 교수 등의 주장에 대해) 계속 답변을 해도 그때마다 다른 의혹을 들고 나와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