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무탄피 소총 HK G11

醉月 2012. 12. 1. 10:16

시대를 앞선 무탄피 소총 HK G11

총은 탄생 이후 지금까지 화약을 폭발시켜 얻은 에너지로 탄환을 발사하는 상당히 단순한 구조를 유지하여 왔다. 그것은 아무리 디자인이 바뀌고 성능이 추가되었더라도 숟가락이 그 고유의 모양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좋은 평가를 얻은 총들이 태어난 지 수 십 년이 되었어도 일선에서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만큼 생각보다 발전이 더딘 무기이기도 하다.

 

HK G11 브로셔 <출처: Heckler &Koch>

혁신적인 무탄피 소총, HK G11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총이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이나 목적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는 하늘에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은 전투기 없이 전쟁을 벌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총은 당시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한 목적에 사용된다. 물론 세부적인 기능은 많이 향상되었지만 다른 무기와 비교한다면 그 발전 정도는 더디다고 볼 수 있다.

레이저 총처럼 지금과 전혀 다른 획기적인 총은 SF영화에서나 묘사된다. 언젠가 그런 상상 속의 총이 등장은 하겠지만 수십 년 전에 개발 된 총들이 일선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수적인 총의 세계에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혁신적인 소총이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래의 총 같았던 주인공은 헤클러 앤 코흐 G11(Heckler & Koch G11, HK G11) 돌격소총이다.


 

G11의 내부 구조도 <출처: Heckler & Koc(상), (cc) Bojoe at Wikimedia.org (하)>

레이저 광선이 나올 듯한 획기적인 겉모양


HK G11은 일단 모양부터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가 막연하게 머릿속에 총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이라면 적어도 이러이러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오래 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기 때문이다. 교전 중에 HK G11를 들고 적을 제압하려 한다면 이를 총이라 생각하여 순순히 손을 들고 항복할 적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치 영화 속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총과 유사해 보이는 획기적인 겉모습을 가졌다.


지금 보아도 신선한 모습이지만 사실 HK G11은 1960년대 말부터 개념 연구가 이루어졌고 1980년대까지 개발이 진행되었던, 생각보다 오래된 돌격소총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HK G11이 낯선 이유는 정식으로 제식화되지 못하여 양산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습과 달리 기능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정식 채택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특이한 모습처럼 HK G11은 당대의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상당히 미래 지향적인 총이었다. 물론 레이저를 발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탄피를 없앤 혁신적인 무탄피 소총이었다. 정확히 말해 무탄피를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볼 수는 없지만 HK G11은 최초의 무탄피 소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총기 역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새로운 개념의 소총이라는 의미다.


 

(좌)원래 머스켓처럼 초기의 총은 탄피가 없던 탄환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무탄피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출처 : (cc) Michal Maňas> (우)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금속제 탄피들 <출처 : (cc) Commander Zulu at en.wikipedia>

 

탄피로 인하여 바뀐 전쟁


사실 총이 탄생하였을 당시에는 탄피라는 개념이 없었다. 화약을 약실에 밀어 넣고 탄자를 그 앞에 위치시킨 후 화약을 터뜨려 발사하였는데, 머스켓(Musket)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발사가 까다로웠고 시간도 많이 걸려 효율적이지 못하였다. 그러한 단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탄피가 등장하였다. 화약을 담은 탄피로 탄자를 감싸자 총탄의 보유와 휴대가 편리하였고 총에 삽탄하는 시간도 단축되었다.


화약과 탄자가 일원화 되면서 기계적으로 뇌관을 충격하여 쉽고 빠르게 화약에 불을 붙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때 총의 상징이던 심지나 부싯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방아쇠가 차지하게 되었다. 당연히 사격의 준비와 발사에 걸리는 시간과 절차가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한마디로 탄피는 총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원동력이었고 현재 대부분의 탄환은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탄피가 사용되면서 예전보다 많은 자재가 필요하게 되었고 탄피의 무게만큼 총과 관련한 부속물의 무게도 증가되었다. 어쩌면 이점은 비단 총뿐만 아니라 무기 전반에 걸친 문제라 할 수도 있다. 많은 기술이 접목되며 무기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마디로 이제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부담 없이 군비를 갖출 수도, 전쟁도 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HK G11의 프로토타입<출처 (cc) : Bojoe at Wikimedia.org>

생각보다 오래 걸린 개발


HK G11은 너무 많은 장점들로 말미암아 그 동안 잊고 있던 탄피의 단점을 파고들면서 개발이 이루어졌다. 독일의 총기 명가인 ‘헤클러 앤 코흐’의 엔지니어들은 무거운 탄피를 없애면 탄환의 무게는 물론 크기도 줄일 수 있어 더 많은 탄환을 보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약실에서의 탄피 추출 및 축출 과정이 생략되므로 총의 무게도 줄일 수 있고 반면 빠른 연사가 가능하리라 판단하였다.


하지만 탄피를 사용하였을 때 누리는 장점은 그대로 살려야 했다. 적어도 현재까지 사용하는 총의 성능보다 뒤 떨어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탄피는 사격시 발생하는 고열을 일차적으로 방출하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한다. 따라서 탄피가 없다면 총의 온도는 급속히 올라가 화약이 그대로 열에 노출되어 방아쇠를 누르지 않았는데도 총탄이 발사되는 쿡오프(Cook-Off) 현상을 가져 올 수도 있다.


더불어 약실에서 타버린 화약재를 비롯한 찌꺼기들도 골치 거리였다. 탄피가 있어도 각종 이물질로 인하여 총구가 막히는 경우가 흔할 정도인데 무탄피라면 이로 인한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 불을 보듯 뻔하였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새로운 소총을 만들 수 없었고 때문에 개발 기간이 장장 20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총의 메커니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였지만 결론은 탄약이었다.


 

G11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4.73x33mm DM11 무탄피탄 <출처: Heckler & Koc(좌), (cc) Drake00 at en.wikipedia (우)>

 

무탄피 탄환 DM11 개발


헤클러 앤 코흐는 ‘다이나밋 노벨(Dynamit Nobel)’사와 합작으로 무탄피 탄약인 DM11을 개발하였다. 서방 표준인 5.56×45mm NATO탄 보다 작은 4.73x33mm였는데, 한마디로 탄피를 제거한 만큼 크기가 축소된 형태였다. DM11은 탄피 대신 화약으로 탄두를 감싸고 뒤에 뇌관을 장착된 형태였다. 처음에는 빈번히 쿡오프 현상이 발생하여 애를 먹였는데 충격에는 민감하지만 열에는 강한 새로운 장약을 개발하면서 난제를 해결하였다.


DM11 덕분에 개별 병사가 휴대할 수 있는 탄약량이 1.5배 정도 늘어나고 45~50발 탄창을 사용하여 효율이 배가 되었다. 더불어 불펍(Bullpup)식 디자인을 채용하여 현대 돌격소총 중 가장 빠른 수준인 분당 2,200발(3점 사 기준)을 발사할 수 있었다. 개발국인 서독은 진지하게 제식화를 고려하였고 M16A2의 대체 돌격소총을 원하던 미국도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HK G11은 최신식이라는 타이틀을 부여 받을 자격이 있을 만큼 성능이 뛰어났다.


미완의 대기

하지만 결국 그 정도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소총이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DM11의 가격이 기존 탄환의 30배 이르는 엄청난 수준이어서 보병용 제식화기로 쉽게 유지하기에 곤란하였다. 대량 생산한다 하여도 오로지 HK G11용으로만 사용될 수밖에 없어 가격을 낮추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더불어 1990년대 냉전의 종식은 국방비의 감축을 불러와 새로운 소총의 도입을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더불어 소총으로 생각하기 힘들만큼 너무 앞선 디자인이 군부가 거부감을 들도록 만들었다는 후문도 있다. 하다못해 백병전에 부적합하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군부는 최신의 무기를 원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전통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특징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마디로 HK G11은 총기의 역사를 선도할만한 뛰어난 걸작이었음에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서 미완으로 생을 마친 총기라 할 수 있다.


제원
탄약 4.73×33mm 무탄피 DM11 / 작동방식 가스 작동식 / 전장 750mm / 중량 3.6kg / 발사속도 분당 470발(자동) 분당 2000발(3점사) / 유효사거리 400m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