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때묻지 않는 풍경_양구
醉月
2011. 8. 25. 06:53
![]() |
한때 양구는 강원 춘천에서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천천히 달려도 40분 정도면 넉넉히 가닿을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소양호가 생겨나면서 춘천과 양구를 잇는 길이 죄다 수몰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양구는 춘천에서 꼬박 2시간30분이 걸리는 먼 곳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한때 궁벽한 오지였던 곳도 세상이 바뀌며 길이 나고 터널이 뚫려 대처로 나앉는 게 보통이지만, 어찌된 게 양구만큼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물러앉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것이 근래 들어 소양댐을 끼고 구불구불 이어지던 옛 46번 국도가 수인터널과 웅진터널로 직선화하면서 이제 춘천과 양구는 1시간 남짓 거리로 가까워졌습니다. 여기다가 춘천의 북쪽 산자락을 아찔하게 넘어가는 배후령 고갯길에 전장 8.8㎞짜리 터널이 한창 공사 중입니다. 이 터널이 내년 하반기에 완공되면 춘천과 양구는 불과 20분 거리로 짧아지게 됩니다. 춘천까지야 진작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가 놓였으니 수도권에서 한결 가까워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듯 ‘시간의 거리(距離)’가 짧아진다 해도, 양구는 아직은 여전히 먼 땅입니다. 비무장지대(DMZ)에 인접한 양구 땅에는 디딜 수 없는 땅, 건널 수 없는 물길, 오를 수 없는 산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미확인 지뢰지대가 있고 출입을 통제하는 군작전 구역이 있고, 이따금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들리는 군부대 사격장이 있습니다. 접적지역이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다 보면 어느 순간 내비게이션의 도로가 삽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지도조차 희미해져 길을 찾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헤매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댐과 호수로, 또 전쟁과 반목으로 고립되고 통제된 땅. 그러나 고립과 통제 속에서 자연만큼은 저 스스로 깊어지고, 울창해졌습니다. 그 깊은 자연 속에서 인간들의 살육과 증오, 반목과 갈등 따위는 알 리 없는 멸종위기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산짐승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갑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을 넘어 지난 2006년부터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두타연을 들르고, 지금은 몇 겹의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지만, 곧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대암산 용늪을 찾아가 봤습니다. 몇 겹의 차단점을 통과해서 당도한 평화의 댐 상류의 풍경은 감히 ‘비경’이라 이름 붙여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굳이 민통선을 들어갈 일도 없이 DMZ의 가칠봉에서 발원한 수입천의 물길만 따라간대도 청정지역의 달디단 공기와 함께 수십년을 물러나 앉아 저 홀로 울창해지고 고즈넉해진 자연의 정취를 물씬 맛보고 올 수 있을 겁니다. 전국의 모든 여행지가 온통 인파들로 북적대는 여름 휴가 때라면 고즈넉한 땅, 양구는 더 매혹적이랍니다. 여기다가 춘천 소양댐 아래서 양구선착장까지 굽이굽이 뱃길을 따라가는 여객선 ‘비룡2호’가 중단된 지 5년 만에 운항을 다시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더불어 전합니다.
# 긴장과 자연의 냄새를 동시에 맡을 수 있는 곳…두타연 강원 양구 땅에 들어서면 두 가지 냄새를 동시에 맡게 된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긴장의 냄새’다. 양구 땅을 달리다 보면 저속의 군용트럭과 지프들이 도로를 자주 막아서고, 위장크림을 바르고 완전군장을 한 병사들과도 마주친다. 산자락 길옆 철조망에 ‘지뢰’라 써붙인 삼각형 붉은 팻말도 긴장을 더해준다. 도솔산, 대우산, 백선산, 가칠봉…. 양구를 둘러친 산자락이라면 어디든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다. 양구에서 느끼는 또 다른 냄새라면 바로 손대지 않은 숲이 뿜어내는 ‘자연의 냄새’다. 양구 땅에는 어디든 반세기 넘도록 인간이 간섭하지 않은 울울창창한 자연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 겹겹이 차단돼 인적이 끊긴 숲은 저 홀로 깊어지고 짙어졌다. 때묻지 않은 자연 중에서 특히 감회를 더해주는 것이 계곡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오는 ‘물’이다. 금단의 땅 저 위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어느 숲과 어느 골짜기를 돌아왔을까. 어디서 첫물이 만들어졌으며 누구의 손을 적시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일까. 통제도, 경계도 없이 흘러내리는 물길은 남과 북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양구에서 그 두 가지 냄새를 함께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너머 두타연이다. ‘두타’란 이름은 1000년 전쯤 인근에 번성했던 절집 ‘두타사’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두타란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일체의 욕망과 집착을 버린 수행’을 뜻한다. 두타연은 6·25전쟁 휴전 이후 50여년 만인 지난 2003년부터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다. ‘제한적 개방’이라고는 했지만, ‘개방’보다는 ‘제한적’이라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방됐다. 사흘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개별적인 출입도 여전히 통제되지만, 누구든 기한 내 예약만 하면 문화해설사와 동행해 단체로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곳에서 깨진 것은 더위일까 욕망일까…파서탕 DMZ 내의 가칠봉(1242)에서 발원한 수입천은 두타연을 지나서 송현리, 장평리, 금악리를 거쳐 오미리 쪽으로 흘러 파로호로 담긴다. 수입천은 파로호에 담기기 전에 오미리쯤에서 제법 큰 소(沼)를 만드는데 이름하여 ‘파서탕(破暑湯)’이다. 이곳은 그 이름만으로도 피서객들을 불러모은다. 승용차로 가기에는 버거운, 제법 거친 비포장 흙길을 3㎞쯤 우당탕거리며 들어가야 당도하는 곳이지만, ‘깨트릴 파(破)’에 ‘더위 서(暑)’란 이름에 이끌려 피서객들이 알음알음 찾아드는 곳이다. 파서탕의 본래 이름은 ‘파승탕(破僧湯)’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수입천의 골짜기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홀로 수도하며 정진하던 스님이 물가에 나왔다가 소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몸을 섞는 바람에 파계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수입천 상류에 있는 두타연이 치열한 구도의 공간이었다면, 그 하류의 파승탕은 ‘욕망과 파계의 공간’인 셈이다. ‘파서탕’이란 이름도 나무랄 데 없지만, 어쩐지 스님의 계율을 한순간에 깨뜨려버린 아찔한 욕망이 떠올려지는 ‘파승탕’이란 이름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파서탕, 혹은 파승탕으로 드는 거친 비포장도로 길 끝은 민가가 막아선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동기생으로 5·16쿠데타에 가담했던 예비역 육군대령인 빈철현(1999년 작고)씨가 1970년대 초반부터 들어와 살던 집이다. 5·16 직후 혁명정부 시절 교통부 장관 격인 연락관 자리까지 올랐던 그가 어쩌다 이렇게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곳에서 반 평생을 칩거했다. 빈씨가 생전에 어찌나 그곳을 좋아했던지 가족들은 빈씨가 작고하자 그의 묘를, 시름시름 앓다 따라 죽은 개의 무덤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썼을 정도다. 지금 그 집은 30년 전쯤 우연히 빈씨의 집으로 찾아들었다가 빈씨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상열(59)씨가 지키고 있다. 파서탕이든, 파승탕이든 빈씨의 집 앞 소(沼)는 그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물굽이가 순해지면서 이뤄진 제법 깊은 소는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물놀이를 하기에도, 고기잡이를 하는 데도 이만한 데가 없다. 그러나 좁은 비포장길은 차량 두세 대만으로도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입구의 오미리 마을쯤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 들어가는 편이 낫다. 수입천을 끼고 있는 울창한 숲길을 걷는 맛도 더없이 좋거니와 꼭 파서탕까지 닿지 않더라도 숲길 곳곳의 수입천변에 한적하게 물놀이를 즐길 곳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 금기의 공간…용늪, 그리고 양의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