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동학의 본체론

醉月 2012. 2. 10. 08:19
 
동학은 '신'의 계시로부터 출발하는 종교적 가르침이었다. 전통적으로 '신'은 우주의 궁극적 근원이며 우주를 주재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의 전통에서 존재의 근원은 '천'이라는 용어로 나타나고, 존재근원에 대한 동학의 이해도 역시 '천'에 대한 규정으로 드러난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이해는 곧장 인간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므로, '신'의 가르침에서 시작하는 동학의 가르침은 결국 인간존재의 근원을 탐구하여, 인간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동학에서 '천'은 '천신','천도','천기'의 관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 용어들은 동학 이전의 사상들에서 이미 충분히 언급된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동학의 전파 당시부터 동학을 기존사상의 종합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수운과 해월은 그들의 가르침만이('천'에 대한 이해만이) 존재의 근원에 대해 전면적이고 올바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추측해보면 기존의 가르침들이 '천'에 대한 이해에서 '천신'으로부터 '천도','천기'로 발전해가는 과정 중에 '신'이라는 관념을 버리고, '도','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설명하게 된 데 있지 않나 한다. 동학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생명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관념은 '도'와 '기'관념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인 '천'에 대한 동학의 이해에서 '기'는 실체적인 측면에서 존재에 접근하는 것이고, '도'는 그 작용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며, '신'은 양쪽에 걸쳐 있는 개념이다. 이와 같이 이해해야만 존재의 근원 및 존재 일반에 대해 전면적으로 말한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동학 본체론의 요점이라 할 수 있다.
※ 주요어 : 동학(東學), 천(天), 신(神), 도(道), 기(氣)

 

1. 서론
동학을 시작한 수운에게는 일종의 접신현상을 통한 계시가 있었고, 그는 신의 명령을 받아 신의 뜻을 지상에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동학은 기본적으로 종교사상이다. 종교사상으로서의 동학은 한국사상사에서 세련된 종교 혹은 철학으로서의 불교와 유교가 사회적 지도사상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을 때 등장하였다. 그 발생에 있어서 불교나 유교사상이 신을 대상으로 하던 그 이전의 종교적 사상들을 극복하고 등장한 것이었다면, 동학의 발생은 과연 한국사상사에 있어 한걸음 후퇴한 것인가, 아니면 기존 사상들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동학의 본체론 곧 '천'관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학사상은 '천인합일'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천'관념을 이해하는 것은 곧 동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된다. 동학사상의 자료는 수운과 해월의 글들을 중심으로 하고, 그들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천'관념의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중국철학사에서 관련 관념들에 대한 기본적이고 중요한 견해들을 아울러 참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과연 동학에서의 본체론이 어떤 점에서 그 이전의 사상들을 계승하고 있고 또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점에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2. 천(天)에 대한 이해
동학은 기본적으로 종교사상이므로, 그 사상체계에서 최고범주는 당연히 '신'이며 그것은 전통적 어법으로 말하자면 '천'이 된다. 동학 창도(創道)의 계기가 되는 '계시'가 수운의 의식을 초월해 있는 어떤 존재로부터 주어졌거나 아니면 그의 의식 속에 내재해 있던 일정한 관념이 외화되었거나간에 동학의 가르침은 '천'(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천'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사상사에서 '천'개념은 인격적 속성을 가진 '천신'(天神), 자연계의 보편적 법칙이자 도덕의 근원인 '천도'(天道 혹은 天理), 만물의 존재기초인 '천기'(天氣) 등으로 이해되었다. 동학에서의 '천'관념은 기존의 이러한 의미들을 다 포괄하고 있는 바, 이제 순서대로 그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神)
먼저 '천'의 일차적 의미는 '천신'이다. 동학에서 그 직접적인 표현은 '한울님'(鐸〈,하날님), '상제'(上帝), '천주'(天主), '귀신'(鬼神) 등이다. 이들 용어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그 존재가 인격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인데,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용법들 가운데 몇몇은 다음과 같다.

 

'상제'라고 쓴 경우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부르거늘 너는 상제도 모르느냐.({동경대전.포덕문}. 이하 {동경대전}은 {대전}, {용담유사}는 {유사}로 약칭)
공중에서 외는소리 물구물공 하였어라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어찌 알까보냐.({유사.안심가})

 

'천주'라고 쓴 경우
천주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하다.---성실하고 성실하여 지극히 천주를 위하는 사람은 모두 다 들어맞고, 도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한결같이 효험이 없더라.({대전.포덕문})
마침내 천주를 위하는 단서가 없고,---공부에는 천주의 가르침이 없으니,---배움은 천주가 아니니,---지극히 천주를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한다.---해가 있고 덕이 있고는 천주에 달린 것이지 나에게 있지 않다.({대전.논학문})

 

'한울님'이라 쓴 경우
나도또한 한울님께 명복받아 출세하니---한울님 하신말씀 지각없는 인생들아---나도또한 한울님께 분부받아 그린부를---나도또한 한울님께 옥새보전 봉명하네---개같은 왜적놈을 한울님께 조화받아---한울님이 내몸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유사.안심가})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희집안 운수로다({유사.용담가})

 

'귀신'이라 쓴 경우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느냐?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알지 못하니 귀신이 나이다.({대전.논학문})
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유사.도덕가})

 

'한울님'(鐸〈,하날님)은 '천신'에 대한 우리식의 표현이고, '상제'는 전통적인 중국식의 명칭이며, '천주'는 서학(西學)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귀신'이라 하는 것은 그 인격적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운은 '상제','천주','한울님'을 의미구분 없이 사용하며, 한문으로 쓸 때는 '상제','천주'라 쓰고, 한글로 쓸 때는 '한울님'이라 쓰고 있다.
이제부터는 편의상 '상제'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렇다면 '상제'의 구체적인 모습,역할은 무엇인가?
'상제'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의 경우 은대(殷代)에 최고신의 명칭이었다가 주대(周代)가 되면 점차 '천'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원래 '상제'는 은왕조의 시조신으로서 은왕조의 후원자라는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왕조교체의 결과 주왕조에서는 보편성의 확보를 위하여 '천'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게 되었다. 비록 주왕조에서도 '천'과 함께 '상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은대의 '상제'와는 의미상의 차이가 있었다. 즉 주대 이후 '상제'는 특정 집단과만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띠게 되고, 동시에 합리성과 도덕성을 가지게 되었다.

 

동학에서 '상제'가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뚜렷한 언급은 없지만, 최소한 인간을 지상에 나게 하는 것은 '상제'가 하는 일이다. '상제'는 인간의 복록과 수명을 결정하고, 또한 인간의 일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며 인간에 대하여 반응도 하지만, 무소불능하게 직접적으로 사태를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 그의 대리인을 필요로 한다. 수운이 처음 계시를 받을 때, '상제'와의 대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왜 자신에게 이렇게 강림했는지) 그 까닭을 묻자 (상제) 이르기를 : '나도 또한 공이 없었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대전.포덕문})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희집안 운수로다.({유사.용담가})
여기서 "공이 없다","노이무공 하다가서"라는 말이 바로 상제가 줄곧 인간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중국에서 전통적인 '천명'(天命)사상에 의하면 '천'(천신)은 만민의 부모와 같아서 항상 백성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지만, 직접적으로 인간의 일을 다스리지 않고, 그 대리인으로서 '천자'(天子)를 내세운다. '천자'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도덕적이면서 백성들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는 '경덕보민'(敬德保民)에 있었다.
상제는 수운에게 "내 마음이 곧 네 마음"({대전.논학문})이라 하였는데,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우리나라는 악질이 세상에 가득 차서 백성들이 언제나 편안할 때가 없으니 이 또한 상해의 운수요,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멸망하면 또한 순망지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대전.포덕문})
물론 수운이 개인적으로는 일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를 닦게 되었다 할 수도 있으나, 그는 폭넓은 사회경험을 통하여 당시의 어지러운 정세나 힘든 백성들의 삶에 대하여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창생을 구원하겠다는 기원을 세웠다면 그 마음이 상제의 마음과 통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이 천신이 인간사에 관심을 가지고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중국의 경우 은대(殷代)의 상제숭배, 주대(周代)의 '천명'사상 그리고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사상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천신'은 직접 인간의 일을 다스리지 않고, 그의 대리인을 지상에 내세울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항상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이 점을 친 것이나, 천체의 운행이나 자연현상을 관찰한 것 등이 간접적으로 '천신'의 의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천신'의 의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맹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하여 수운의 '상제'는 비록 누구에게나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그 의지를 전달하고 또한 대화가 가능하다.
어떤 선어(仙語)가 있어 홀연히 귀에 들어왔다.({대전.포덕문})
매우 춥고 떨리면서, 밖으로는 접령(接靈)의 기운이 있고, 안으로는 강화(降話)의 가르침이 있었으니,({대전.논학문})
하지만 '상제'는 형상을 가지지 않아서 그 모습을 눈으로 볼 수는 없고, 그 소리도 보통의 청각의 대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대전.논학문})고 하였다.

 

이처럼 신과 인간이 직접 만나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일종의 현상인데(천인합일의 원형인 신인합일), 그렇다고 수운의 접신현상이 (소위 무속에서의) 일반적인 접신현상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동학의 '상제'는 그를 대하는 특정 인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동시에 도덕성이 강조되는 것도 그 신격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점이다. '보국안민'이라는 구절만 가지고 본다면 전체 인류를 보편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최초에 수운의 개인적 의식의 국한성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동학에서의 '천'은 우선 인간들과 정신적 감응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실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달리 이야기하면 사실 동학사상은 수운 개인에게서도 그러하고, 해월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사상적 발달과정을 가지는데, 그 초기 단계에는 '천'을 인격신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상제, 한울님, 천주, 귀신 등의 용어 외에 신(神), 영(靈), 천령(天靈)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밖으로는 접령(接靈)의 기운이 있고,---한편으로 강령(降靈)의 법을 지으며---지금 천령(天靈)이 선생님께 강림하였다 하니---몸에는 기화지신(氣化之神)이 없고---'모신다'[侍]는 것은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대전.논학문})

 

한편 수운의 '상제'는 '신령스런 부적'[靈符]과 '주문'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신령스런 부적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고, 그 형체는 태극이고, 또한 궁궁(弓弓)이다. 나의 이 부적을 받아서 사람들의 질병을 구제하고, 나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들이 나를 위하게 가르치면 너 또한 장생하고 덕을 천하에 펴게 될 것이다.({대전.포덕문})
사실 이 부분이 동학에서 '상제'의 본질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영부'는 질병을 치료하는 특징을 가지며, 그 형상은 태극,궁궁이라 하였는데, 다음 절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주문'과 관련하여 '나를 위한다'고 하였는데, 그 때 나는 '상제' 자신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영부'를 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본 결과 "정성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다"({대전.포덕문})고 하였으므로, '나를 위하게 하라'는 것이 기실 계시의 주된 내용이 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제'를 위하고 섬김이 결코 맹목적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지극히 '상제'를 위하는 것과 도덕을 지키는 것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상제'는 합리적이고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도'라는 관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 도(道)
우여곡절 끝에 수운이 용담에서 수행에 들어간 것은 '도'를 깨닫기 위한 것이고, 따라서 상제와의 만남에서 상제와 수운이 주고 받은 것은 구체적으로는 '영부'와 '주문'이지만,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면 곧 '도'이다.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를 전해줄터이니(及汝無窮無窮之道)({대전.논학문})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득도'로다("유사.용담가})
그렇다면 어떤 '도'라고 이름합니까? '천도'이니라.({대전.논학문})
그렇다면 수운의 '도' 곧 '천도'의 특징,내용은 무엇인가?
중국의 경우 전통적인 '천명'사상에서의 '천명'관념은 점차 '천도'관념으로 대체되거나, 동일한 내용을 가진 것으로 발전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서의 '천'이 처음에는 '천신'으로 이해되다가('천신'의 의지가 '천명'이다), 사람들이 점차 천체의 운행을 포함한 자연계의 법칙성 및 인간사회의 규칙들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천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천도'관념이 '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되는데, '천도'는 일차적으로 천체의 운행규율 및 자연현상들의 규칙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그러던 것이 {노자}에 이르러 '도'관념이 우주의 근본원리 혹은 실체로 개괄되었다.

 

수운은 자신의 '도'를 '무극대도' 혹은 '무궁무궁한 도'라 하였다. '무극대도'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위가 없는 가장 궁극적인 진리라는 뜻이 될 터인데, 구태여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극'(無極)이라는 용어는 중국사상사에서 도가(道家) 내지는 도교적인 전통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며, 한대(漢代) 이후 우주의 궁극적 근원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에 대해 유가에서는 {주역.계사전} 이후로 우주의 근원을 이야기할 때 주로 '태극'(太極)을 이야기하였다. 주돈이(周敦 )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대한 해석에서 주희(朱熹)는 비록 '무극'이 곧 '태극'이라 하였지만, 도교의 우주론과 수련법에서는 '태극'을 혼원일기(混元一氣)로 보고 '무극'을 '태극'의 전 단계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 기원은 {노자}의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는다"(42장)는 구절에서 '하나'를 '일기'(一氣)로 이해하고, "유(有)가 무(無)에서 생긴다"(40장)는 구절의 '무'와 함께 연관시키면 '무'인 '도'가 '기'를 낳는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다음 구절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계승한 것이다.

 

그 시초를 따져보니까 본래 생명[生]이 없었고, 단지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形]도 없었고, 단지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 없었다. 혼돈의 상태에 뒤섞여 있다가[雜乎芒 之間], 변하여 '기'가 있게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있게 되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는데,---({莊子.至樂})
이와 같이 '무극대도'에서 '무극'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주의 궁극적 근원을 가리킬 수 있으며, 수운의 용법에서는 단지 최고의, 궁극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한편 그냥 '도'라 하지 않고, '대도'라고 부르는 것도 {노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인가 혼돈의 상태로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고요하다. 홀로 있어 변하지 않고, 널리 작용해도 다하지 않아서, 천하의 어미라 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몰라서 자를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하여 '대'(큰 것)라 한다. 크므로 멀리 가고---
여기서 '크다'는 것은 그 작용이 보편적이어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작용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어미'라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무궁무궁하다'는 것도 '도'의 작용이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 말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의미도 가지는데, 이 역시 {노자}에서 이야기하는 '변하지 않는 도'[常道]([1장])라는 의미와 통한다.
일단 수운이 상제로부터 받은 '무극대도'를 우주의 가장 근원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원리 혹은 진리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구체적으로 그 '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순환의 이치'이다. 자신을 찾아온 선비들과의 문답에서 수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천령'(天靈)이 선생에게 강림하였다고 하는데, 왜 그러합니까? '모든 것이 가면 돌아오는 이치'[無往不復之理]를 받았다.({대전.논학문}) '모든 것이 가면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자}에서는 '도'의 작용을 이야기하면서 반복,순환,복귀 등을 말하였다.
크므로 잘 가고, 잘 가므로 멀리 가고, 멀리 가서는 돌아온다[遠曰反].(25장) 반복순환하는 것이 '도'의 운동방식이다[反者, 道之動].(40장)

 

만물이 아울러 생기지만 나는 돌아감[復]을 본다. 만물이 번성하지만 각각 그 뿌리로 돌아간다[復歸]. 뿌리로 돌아가는 것[歸根]을 고요함[靜]이라 하니, 이것을 생명회복[復命]이라 하고, 생명회복을 영원함[常]이라 한다.(16장)
화는 복이 의존하는 것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것이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정해진 바가 없다. 바른 것이 다시 바르지 못한 것이 되고, 좋은 것이 다시 좋지 못한 것이 된다.(58장)

 

모든 것은 그 시작되는 근본이 있으며 결국 다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낮과 밤, 사계절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지구를 포함한 천체가 순환하기 때문이고, 천지 사이에서 생겨난 만물은 생멸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반복순환은 우주의 근본원리가 된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음양관념이 도입된다. 이 우주(현상계)에는 기본적으로 음양의 기운 혹은 음양의 원리가 있어서, 그 작용에 의하여 모든 운동변화(생성소멸)가 발생한다. 음양의 원리는 곧 상생상극의 원리이다. 음양을 가지고 우주의 기본원리를 정형화하여 {주역.계사전}에서는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도이다"[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였다. 동학에서도 당연히 음양의 원리를 강조하였다.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듯이 말을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닐런가---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유사.도덕가})
우리 수운대선생님은 천지.'음양'.일월.귀신.기운.조화의 근본을 처음으로 밝히셨나니({법설.천도와 유불선})
하늘은 '음양'오행으로써 만민을 화생하고 오곡을 장양한즉({법설.도결})
'음양의 근본'을 아는가 모르는가?({법설.심령지령})
'천지의 도'를 밝히고 '음양의 이치'에 통달하여 억조창생이 각자 그 할 일을 얻게 하면 어찌 도덕문명의 세계가 아니겠는가?({법설.성인지덕화})
위의 인용문들을 볼 때 동학에서 '음양의 이치'를 우주의 근본원리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양의 원리로부터 파생되는 '순환의 이치'는 자연계와 인간세상에 동시에 적용된다.
대개 상고 이래로 봄가을의 교대와 사계절의 성쇠가 바뀌지 아니하니[不遷不易]({대전.포덕문})
사계절의 성쇠와 풍로상설(風露霜雪)이 그 때를 잃지 않고 그 차례가 바뀌지 않으니({대전.논학문})
성한 것이 오래면 쇠하고 쇠한 것이 오래면 성하고, 밝은 것이 오래면 어둡고 어두운 것이 오래면 밝나니, 성쇠명암은 천도(天道)의 운(運)이요, 흥한 뒤에는 망하고 망한 뒤에는 흥하고, 길한 뒤에는 흉하고 흉한 뒤에는 길하나니 흥망길흉은 인도(人道)의 운(運)이니라.({법설.개벽운수})
부하고 귀한사람 이전시절 빈천이오 빈하고 천한사람 오는시절 부귀로세 천운이 순환하사 '무왕불복' 하시나니---우리집안 여경인가 '순환지리' 회복인가---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 윤회같이 돌린운수([{유사.교훈가})
우리라 무슨팔자 고진감래 없을소냐 흥진비래 무섭더라 한탄말고 지내보세---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요순성세 다시와서 국태민안 되지마는({유사.안심가})

 

천운이 둘렸으니 근심말고 도라가서 윤회시운 구경하소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태평성세 다시정해 국태민안 할것이니---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세상에 날것이니({유사.몽중노소문답가})
시운을 의논해도 일성일쇠 아닐는가 쇠운이 지극하면 성운이 오지마는({유사.권학가})

 

'순환지리'로 표현되는 음양의 이치가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이라는 것은 수운과 상제의 만남에서 극적이고 상징적인 형식으로 드러난다.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그러면 서도(西道)로써 사람들을 가르치리이까.'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신령스런 부적][靈符]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弓弓)이니라.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대전.포덕문}

 

여기서 '영부'는 곧 수운의 상제가 가지는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 가르침의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영부'는 그 형태가 '태극'과 같고 '궁궁'과 같다고 하였는데, '태극','궁궁'은 바로 모든 것이 돌고 도는 '순환의 이치'를 형상화한 것이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기록된 바로는 {장자}와 {역전}(易傳)에 처음 등장한다.
'도'는---스스로 바탕이 되고 스스로 뿌리가 되어, 천지가 있기 전에도 예로부터 원래 존재한다; 귀신과 상제를 신령스럽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는다; '태극'보다 먼저 있어도 높지 않고, 육극(六極)보다 아래 있어도 깊지 않으며, 천지보다 앞에 생겨나도 오래되지 않고, 상고(上古)보다 장구하지만 노후하지 않다.({莊子.大宗師})
역(易)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으며, '팔괘'가 길흉을 정하고, 길흉이 대업(大業)을 낳는다.({周易.繫辭上傳})
{장자}에서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태극'을 이야기하고 있는 바, 우주의 본원으로서의 '도'가 '태극'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역전}에서는 원래 점치는 법[筮法]의 원리에 따라 팔괘가 도출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나, 한대(漢代)에서는 이를 가지고 우주생성과정을 설명하였다. 이 때 '태극'은 원시미분의 혼돈의 '기' 혹은 '원기'(元氣)를 가리키고, '양의'는 음양을, '사상'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가리킨다.

 

송명(宋明)유학에서는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무극'과 '태극'을 이야기하고 '태극'의 동정에 의해 음양이 생겨난다 한 후, 정주학(程朱學)에서는 '태극'을 '도'로 해석하였다. 정.주의 말을 들어 보자.
'태극'이라는 것은 '도'이고, '양의'라는 것은 음양이다. 음양은 하나의 '도'이다. '태극'은 '무극'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음을 등지고 양을 안고 있어서, '태극'이 없는 것이 없다.
"일음일양을 '도'라 한다"고 하였는데, '태극'이다. / 음양은 단지 음양이고, '도'가 '태극'이다. / '태극'은 곧 음양과 상대되는데, 이것이 "형이상의 것을 '도'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도체(道體)의 지극함을 말하면 '태극'이라 하고, 도체의 유행함을 말하면 '도'라 한다.

 

이와 같이 '태극'은 곧 형이상의 '도'이며, 그것이 음양의 운동변화를 결정한다. 이에 대해 정이(程 )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음일양을 '도'라 한다", '도'는 음양이 아니다. 일음일양이 되는 근거[所以]가 '도'이다.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는 것을 변화[變]라 한다"는 것과 같다. / 음양이 되는 근거가 '도'이다. 이미 기(氣)라 하면 곧 둘이 있다. 열리고 닫힌다 하면 이미 반응이 있으니, 이미 둘이면 곧 반응이 있다. 열리고 닫히게 하는 근거가 '도'이고, 열리고 닫히는 것은 바로 음양이다. / 음양을 떠나서는 '도'가 없다. 음양이 되게 하는 근거가 '도'이다. 음양은 '기'(氣)이다. '기'는 형이하의 것이고, '도'는 형이상의 것이다. 형이상의 것은 은밀하다.
동학의 '영부'는 곧 '태극'과 같고, '태극'도형은 우주의 근본원리인 음양의 이치 곧 '순환지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궁궁'도 그 형상적 의미는 亞의 모습이 되어 마찬가지로 순환의 원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영부'는 조화의 근거로서 만사만물의 생성변화법칙을 나타내고, '상제'가 '영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제'가 만물의 근거라는 전통적 의미의 합리적 내용이 된다. '궁궁'은 또한 '궁을'(弓乙)이라고도 하는데, 해월은 '태극'과 '궁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궁을'의 그 모양은 곧 마음 '심' 자이니라. 마음이 화(和)하고 기운이 화하면 한울과 같이 더불어 화하리라, 궁은 '천궁'이요 을은 '천을'이니 '궁을'은 우리 도의 부도(符圖)요 천지의 형체이니라. 그러므로 성인이 받아 천도를 행하시고 창생을 건지시니라. '태극'은 현묘한 이치이니 환하게 깨치면 이것이 만병통치의 영약이 되는 것이니라.({법설.영부주문})
이상 '천도'의 내용이 음양을 기본으로 하는 순환의 이치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천도'는 이 우주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운동변화의 법칙을 가리키는데, {노자}에서는 그러한 '도'의 특징을 '무위','자연'이라 하였다. '무위','자연'은 우주본체의 작용이 그 법칙에 따라 저절로 혹은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나타낸다.

 

'도'는 항상 함이 없지만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37장])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25장])
'도'와 덕은 존귀한데, 명령하지 않아도 항상 저절로 그러하다(夫莫之命而常自然).:([51장])
마지막 구절에서 '명'과 '자연'이 상대되는데, '천도'와 '천명'의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도가에서는 '천신'과 '천명'이 아니라 '천도'를 이야기하여, 천지 사이에서 만물이 생성소멸하는 것은 어떤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칙에 따른다고 하였다. 동학의 '도'도 음양의 원리 혹은 순환의 이치라는 법칙성을 가지므로 당연히 '무위''자연'의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법칙에 따른 작용을 '조화'라 부른다.
나도 또한 거의 일년 동안 닦고 헤아려본 즉 또한 자연스런 이치(自然之理)가 없지 아니하더라.---우리 '도'는 함이 없이 화한다[無爲而化].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며, 그 성을 따르고 그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가 나온다[化出於自然之中].---'조화'라는 것은 '무위이화'하는 것이다.({대전.논학문})

 

닦고 단련하니 '자연' 아님이 없더라.({대전.수덕문})
조화는 현묘하여 함이 없는 것[玄妙無爲]이니({법설.천지리기})
천황씨(天皇氏) 무위화기(無爲化氣)의 근본을 누가 능히 알 수 있겠는가?({법설.개벽운수})
'무위이화'는 사람과 만물이 도와 이치에 순응하는[順道順理] 진리라.---만사가 '무위' 가운데서 화하나니, '무위'는 곧 '순리순도'를 이름이니라.({법설.기타})
이상 살펴본 것처럼 수운이 상제에게서 받은 '천도'는 이 우주의 궁극적 이치라는 의미에서 '무극대도'라 하고, 그 작용이 무한하다는 의미에서 '무궁무궁한 도'라 하였는데, 그 내용은 곧 '순환의 이치'이며, '무위이화'로 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조화의 원리였다. 그러므로 상제를 위한다거나 모신다는 것이 결국 이치에 따른다[順理順道]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도'에서부터 파생되는 이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운동변화하는 것인데, 그 운동의 실체는 곧 '기'이다.

 

(3) 기(氣)
해월은 '천도'를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천지우주의 '절대원기'(絶對元氣)와 '절대성령'(絶對性靈)을 체응(體應)하여 만가지 일과 만가지 이치의 근본을 밝히시니, 이것이 곧 '천도'이며, '천도'는 유불선의 본원(本原)이니라.({법설.기타})
여기서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천'은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이라는 두 측면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경우에 대응시키면, '절대원기'는 몸적인 요소가 되고 '절대성령'은 정신적 요소가 된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 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이치가 이로부터 비롯되며, 모든 가르침들도 이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다.

 

먼저 중국철학에서 '기'관념이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기'라는 단어는 '천'과 마찬가지로 주대(周代)가 되어서야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정한 시기부터 '기'가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되자, 그것이 이미 존재의 근원으로 여겨지던 '천'과 결합되어 만물의 기초로서의 '천기'라는 관념으로 확정되었다 할 수 있다.
그 글자가 처음에 구름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관념은 처음 부터 '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초기에 '기'관념은 기상현상이나 인체의 건강을 설명하기 위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며, 마침내는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사물과 현상의 발생과 운동변화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기'관념이 중요시된 것은 그것이 사람의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그 정기[精]을 내고, 땅이 그 형체[形]를 내어, 이들이 합하여 사람이 된다.({管子.內業})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기'가 모인 것이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천하를 통틀어서 하나의 기운[一氣]이다.({莊子.知北游})
수화(水火)는 '기'가 있지만 생명[生]이 없고, 초목은 생명이 있지만 지각[知]이 없고, 짐승은 지각이 있지만 도덕이 없고, 사람은 '기'가 있고 생명이 있고 지각이 있고 또한 도덕[義]이 있다.({荀子.王制})

 

사람들이 관찰한 결과 이 세계에는 대립,모순적인 현상들이 존재하는 바, 그 이유는 세계의 기초인 '기'가 기본적으로 '음양'으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음양은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로 대표되고, 천기와 지기가 합하여 만물이 생긴다. 따라서 '기'를 이야기할 때는 조화[和氣]가 중시된다. 한대(漢代) 이후 '기'는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범주가 되었으니, 곧 우주생성론을 중심으로 하는 원기(元氣)론이 그 결과이다. '원기'는 이 세계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 통일적인[混沌未分] '기'를 가리킨다. 송대(宋代) 이후 '기'를 우주의 본체로 간주하는 기본체론(氣本體論)이 확립되었으니, 장재(張載),왕부지(王夫之)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에 대해 정주학(程朱學)에서는 '기'를 '리'(理)에 종속시키고, 육왕학(陸王學)에서는 '심'(心)에 종속시켰다.

 

해월이 말하는 '절대원기', 곧 존재의 궁극적 기초를 수운은 '지기'(至氣)라 하였다. 그냥 '기'라 하지 않고, '지기', '절대원기'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냥 '도'라 하지 않고 '무극대도'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기'라는 의미가 된다. '지기'에 대한 수운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지'라는 것은 궁극적이라는 것이다. '기'라는 것은 허령창창(虛靈蒼蒼)한 것으로, 관여하지 않는 일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나 모습이 있는 것 같지만 설명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 같지만 보기 어려우니 또한 혼원한 한 기운[渾元之一氣]이다.({대전.논학문})
'지기'는 바로 가장 근원적인 '기'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만물의 존재근거를 추적해 들어갈 때 마지막에(혹은 최초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그 무엇이다. '지기'라는 말에서 우리는 '기'에 발전단계 혹은 다양한 층차가 있음을 알 수 있고, '혼원일기'(渾元一氣)라는 말은 전통적 어법으로 '음양'으로 나눠지지 않은 통일적인 '기'라는 뜻이다.

 

'허령창창'하다는 것은 그러한 '기'의 상태를 나타낸다. '허령'하다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정신적 속성을 가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바, '허'는 형체를 가지지 않음을, '령'은 그 정신적 작용을 의미한다. '창창'(蒼蒼)하다는 말은 보통의 경우 눈에 보이는 푸른 하늘을 형용하기 위해 쓰이지만, '기'의 맑고 탁함[淸濁]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기'의 맑고 순수한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아무런 구체적 형질도 가지지 않는 '기'의 원초적 상태이다. 이러한 '기'는 만물의 본래상태로서, 그것의 모이고 흩어짐에 의해 '유'와 '무'의 현상이 나타난다. '기'가 모인 것은 실(實)한 상태이고, 흩어진 것은 허(虛)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관건이 되는 용어는 '허'가 된다.

 

잇달아서 그것이 모든 일에 간섭하고 명령한다고 하였는데, 그 말은 모든 존재하는 것은 '지기'에 의해(로부터) 존재하게 되고, 그것에 의해 그 존재방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간섭하고 명령한다고 표현한 것은 '기'가 단순히 만물의 물질적 기초가 된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한 표현을 은유적인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직설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기'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운동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그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보았듯이 이 세계에는 일정한 운동변화의 법칙이 있지만, 단순히 법칙으로서의 '도'만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 결과 동학에서는 우주의 근원을 이야기할 때는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을, 인간을 이야기할 때는 '기'와 '심'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바, '기'와 '신'(귀신)의 관계는 어떠한가? 먼저 '기'본체론을 확립한 장재의 말들을 살펴보자.
흩어져 차별적이고 형상할 수 있는 것은 '기'이고, 맑아서 통하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신'이다.---태허는 맑은데, 맑으면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신'이다; 맑음이 다시 탁하게 되고, 탁하면 걸림이 있고, 걸림이 있으면 '형'(形)이 된다.---무릇 '기'는 맑으면 통하고, 흐리면 막힌다. 맑음이 지극하면 '신'이다.---'귀신이라는 것은 음양2기의 양능이다.---'신'은 태허가 묘하게 작용하는 내용이다. 무릇 천지법상은 모두 신화(神化)의 찌꺼기이다. 천도가 무궁한 것은 한서이고, 모든 운동변화가 무궁한 것은 굴신이다. 귀신의 실상은 음양을 넘지 않는다.---만물형색은 '신'의 찌거기이다. / '천'의 예측할 수 없음을 '신'이라 하고, '신'이지만 규칙이 있는 것을 '천'이라 한다. / '신'은 천덕(天德)이고, '화'(化)는 천도(天道)이다. 덕은 그 체이고 도는 그 용이다. '기'에 의해 통일될 따름이다.---모든 운동변화는 '신'이 고동시키는 것이다.---'기'에는 음양이 있으니, 밀고 나아가 조금씩 바뀌는 것이 '화'이고, 하나로 합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신'이다.---어찌할 수 없으므로 '천'이고, 예측할 수 없으므로 '신'이다.---사람이 능히 '변화의 도'를 알 수 있으면, 반드시 '신'이 하는 것을 안다.

 

이상 인용한 구절들에서 장재가 이야기하는 '신'은 전혀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으며, '신'이란 특정한 상태(맑고 순수한 상태)에서 '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속성 혹은 작용을 가리키며, 운동변화의 원리를 포괄한다. 그 규칙성을 가지고 말하면 '천'이라 하고, 그 알 수 없음을 가지고 말하면 '신'이라 한다. 이것은 "음양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을 '신'이라 한다"(陰陽不測之謂神)는 {역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동학에서도 세계를 '기'로 설명할 때 이와 유사한 내용을 가진다. '기'는 세계의 공통적 기초이며, 모든 것은 다 '기'로 환원될 수 있다.
우주에 충만한 것은 모두 혼원한 한 기운[渾元之一氣也]이다.({법설.성경신})

 

천지는 한 기운 덩어리[一氣塊]이다.---그 근본을 추구하면, 귀신.성심(性心).조화가 모두 한 기운이 시키는 것이다.({법설.천지인귀신음양})
'기'란 것은 천지.귀신.조화.현묘를 총칭한 이름이니 모두 한 기운이다.---합해서 말하면, 귀신.기운.조화가 모두 한 기운이다. 나눠서 말하면, 귀신은 난형난측한 것이요, 기운은 강건불식한 것이요, 조화는 현묘무위한 것이니, 그 근본을 궁구하면 한 기운일 따름이다.({법설.천지리기})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 가진 것만이 다 '기'일 뿐 아니라, 모든 작용과 현상도 다 '기'로부터 생겨난다. 소위 '귀신'이라는 존재 혹은 현상도 전적으로 '기'에 의해 설명된다. 당시에 민중들 사이에는 '귀신'숭배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동학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숭배하는 '귀신'을 잡신이라 하고, 그러한 풍습은 중국에서 한(漢)나라 때 발생한 것으로서 어리석고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 수운이 처음 '도'를 받을 때 '상제'는 스스로를 '귀신'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이 나이다.({대전.논학문})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아는것이 무엇이며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시다고 보는듯이 말을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닐런가 한나라 무고사가 아동방 전해와서 집집이 위한것이 명색마다 귀신일세 이런지각 구경하소 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 이같이 몰랐으니---({유사.도덕가})

 

세상사람들은 천령의 신령함은 알지 못하며, 또한 심령의 신령함도 알지 못하고, 단지 잡신들의 신령함만 아니, 어찌 병이 아니겠는가? 지금 시속에서 소위 성황이니, 제석이니, 성주니, 산왕이니, 산신이니, 수신이니, 석신이니, 목신이니 하는 등 음사(淫祀)는 이루 다 나열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한무제(漢武帝) 때 미신의 여풍인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마음을 물들여 고질이 되었다.({법설.심령지령})

모든 것을 '기'로 설명하는 것은 곧 모든 작용을 '음양'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귀신'은 '음양'의 다른 표현이며 따라서 모든 현상은 또한 '귀신'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귀신'을 숭배한다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은 아니다. 혼원한 한 기운이 구체적으로 작용할 때는 '음양'으로 나타나고, '음양'이 집약된 것을 '천지'라 하며, '음양'의 구체적 운동방식을 '귀신'이라 하고, 그 작용 자체를 '조화'라 한다.
사람의 수족동정 이는역시 '귀신'이오 선악간 마음용사 이는역시 '기운'이오 말하고 웃는것은 이는역시 '조화'로세({유사.도덕가})
사람이 창궁을 우러러 하늘을 이에 숭배하나니, 이것은 하늘의 높음만 듣고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모르는 것이다. 나의 굴신동정이 '귀신'이며, '조화'며 이기(理氣)이다.({법설.기타})

 

가고 멈추며, 앉고 누우며, 말하고 침묵하며, 움직이고 멈추는 것이 천지.귀신.조화의 자취가 아니고 무엇인가?({법설.도결})
사람이 움직이고 고요한 것이 마음인가 '기'인가? '기'는 주가 되고, 마음은 체가 되며, '귀신'이 용사한다. '조화'라는 것은 '귀신'의 양능이다. '귀신'은 무엇인가? 음양으로써 논하면 음은 '귀'이고 양은 '신'이다. 성(性)과 심(心)으로써 논하면 성은 '귀'이고 심은 '신'이다. 굽히고 펴짐으로써 논하면 굽힘은 '귀'이고 펴짐은 '신'이다. 동정으로써 논하면 정은 '귀'이고 동은 '신'이다. --- 움직이는 것은 '기'이고, 움직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다. 능히 굽히고 능히 펴지며, 능히 변하고 능히 화하는 것은 '귀신'이다. '귀신'이라는 것은 '천지의 음양'이고, 이기(理氣)의 변동이고, 한열의 정기(精氣)이다. --- 그 근본을 추구하면 귀신.성심.조화가 모두 한 기운이 시키는 것이다.({법설.천지인귀신음양})
이와 같이 천지, 귀신을 '기', '음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과거의 유학자들도 그렇게 이해하였던 바, 전형적인 기본론(氣本論) 혹은 기일원론(氣一元論) 사상이다. 그 결과 인간의 모든 마음의 작용과 굴신동정도 당연히 '기'의 표현형식들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월이 말한 우주의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을 이해하면, 절대원기와 절대성령의 관계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서, 절대성령은 절대원기의 정신적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해월은 인간에게서 '기'와 '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기운이 마음을 부리는가, 마음이 기운을 부리는가? 기운이 마음에서 나오는가, 마음이 기운에서 나오는가? 화생하는 것은 기운이요, 작용하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이 화(和)하지 못하면 기운이 그 도수를 잃고, 기운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이 그 궤도를 이탈하나니, 기운을 바르게 하여 마음을 편안히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기운을 바르게 하라. 기운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이 편안치 못하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기운이 바르지 못하나니, 그 실인즉 마음도 또한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라.({법설.천지인귀신음양})

'조화'라는 것은 '상제' 혹은 천지가 만물을 창생하는 작용을 가리키는데, '조화'도 결국 '음양' 혹은 '기'의 작용이라면, 그것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운은 그 가르침을 '천도'라 불렀다. 전통적으로 이미 세계를 '도'에 의해 설명하였던 바, '기'와 '도'의 관계는 어떠한가? 노.장과 장재의 말을 살펴보자.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안고 있으며, 충기( 氣)로써 조화를 이룬다.({老子}42장)
그 시초를 따져보니까 본래 생명이 없었고, 단지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단지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도 없었다.({莊子.至樂})
천지의 '기'는 비록 다양하게 모이고 흩어지며 공격하고 취하지만 그것은 일정한 이치에 따른 것이지 무질서하지 않다(天地之氣, 雖聚散攻取百塗, 然其爲理也順而不妄). --- '태허'로부터 '천'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기화'(氣化)로부터 '도'라는 이름이 생긴다.({正蒙.太和})

노.장의 경우에는 마치 '기'가 존재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존재하게 되며, 그 근원이 '도'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학자들은 노.장사상을 이렇게 이해하여, 곧 도가에서 '허능생기'(虛能生氣)를 주장한다 하여 비판하였다. 하지만 {노자}와 {장자}의 전체 문맥상에서 노.장의 '도'는 일차적으로는 우주의 근본법칙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기'에 의한 세계의 통일을 이야기하므로, 결국 '도'는 '기'의 운동원리를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장재에 의하면 '도'란 다름이 아니라 '기'의 운동변화[氣化]의 법칙이다.

 

정주학에서는 '천'을 '리'(理)로 이해하여 '천리'를 우주의 근원으로 간주하면서, '리'와 '기'를 가지고 인간을 포함한 세계를 설명하였다. 인간의 경우 '기'는 몸의 근원이 되고, '리'는 '성'(性)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유학에서는 '리기'(理氣)의 선후문제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는데, 해월은 이에 대하여 '리'와 '기'를 통일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천지, 음양, 일월, 천만물이 화생한 이치가 한 리기(理氣)의 조화 아님이 없다.---화생하는 것은 '천리'이고, 운동하는 것은 '천기'이다. '리'로써 화생하고, '기'로써 움직이고 멈추니, 그렇다면 '리'가 먼저이고 '기'가 나중이라 해도 당연하다. 밝게 분변하면 처음 '기'를 펴는 것은 '리'이고, 형체를 이룬 후 운동하는 것은 '기'이다. '기'가 곧 '리'이니, 나눠서 둘로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기'는 조화의 원바탕근본(造化之元體根本)이고, '리'는 조화의 현묘(造化之玄妙)이다. '기'가 '리'를 낳고, '리'가 '기'를 낳아서, 천지의 수를 이루고, 만물의 이치를 화하여, 이로써 천지대정수(天地大定數)를 세운다.({법설.천지리기})

 

천지는 한 기운 덩어리이다. 천.지.인은 모두 한 리기(理氣)일 따름이다.---귀신은 천지의 음양이고, 리기(理氣)의 변동이고, 한열(寒熱)의 정기(精氣)이다. 나누면 하나의 리(理)가 만가지로 달라지고, 합하면 하나의 '기'일 따름이다. 그 근본을 추구하면, 귀신,성심(性心),조화가 모두 한 기운[一氣]이 시키는 것이다.({법설;천지인귀신음양})
결국 모든 존재,운동변화는 '리'와 '기'가 있기 때문인데, 해월의 설명에 의하면 '리'는 화생하는 것, '기'를 펴는 것, 조화의 현묘이고, '기'는 운동하는 것, 조화의 원바탕근본이다. 이와 같다면 '리'와 '기'의 관계는 인간의 마음과 몸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동학사상에 의하면 '기'는 세계의 존재근원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은 '기'로 이루어지고, 모든 작용은 '기'의 움직임이다. 곧 '기'는 '조화'의 근원이다. 그런 가운데 '기'에는 다양한 층차가 있어서, 존재의 궁극적 근원을 '지기' 혹은 '절대원기'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 작용이 정신적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면 '상제'라 하고, 그 작용의 법칙성을 가지고 말하면 '천도'라 한다.

3. 결론
이상 동학의 본체범주인 '천'관념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동학에서는 '천신', '천도'(천리), '천기' 등 '천'에 대한 전통적 이해들을 대체로 다 포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에서는 그들의 가르침이 전혀 색다른 것이라고 하였으니, 과연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단지 그들이 '도'를 체득하고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천'관념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될 것이다.

 

동학의 '천'에 대한 이해의 특징은 그것이 정신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물질적 기초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었다. 동학의 '천'관념을 다시 정리해보면, 먼저 '천'은 '천신'이다. '천신'은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강화(降話)라는 형식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전에 등장하는 강화의 내용만을 가지고 볼 때, 동학의 '상제'는 수운이나 한민족의 조상신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측면도 있으나, '상제'가 도덕적 속성을 가지거나 모든 존재의 공통적 기초인 '지기'와 관계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전체 인류의 보편적 근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그 가르침은 편협하거나 특수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를 위한 것이다.

 

동학을 종교로 이해할 때 그 기초는 '신을 위하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인격적 존재로서의 신을 위하는 방식은 길흉화복을 전제로 신에 제사지내거나 점술 등에 의해 그 의지를 확인하고 따르려는 등이었으나, 점차 인간들이 자각적으로 '천신의 의지' 곧 '천명'의 내용을 규정하게 되면 그러한 행위들은 이제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곧 '천'을 '천도'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을 위하고 신을 섬기는 것은 인간들이 자연과 인간사회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따른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은 그 가르침을 '천도'라고 불렀다.
'천도'의 기본적인 내용은 '무왕불복지리'(無往不復之理)곧 순환의 이치[循環之理]였으며, 그것을 달리 말하면 음양의 이치이다. 천신이 수운에게 준 '영부'는 곧 이러한 이치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자연계의 순환과 인간사의 흥망성쇠가 포함된다. 이와 같이 우주만물, 만사는 운동변화 과정 중에 있으며, 그 운동변화의 바탕이 '기'이다.

 

기존의 가르침 특히 유교나 불교의 경우 그 결과만 가지고 볼 때, 관념적 성격이 강할 경우 이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취약점을 드러내었다. 존재의 근원 혹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단지 '절대성령'으로서의 '상제'를 이야기하거나, 단지 우주적 법칙으로서의 '도'를 이야기하는 경우에 비해 동학에서는 이들 관념과 아울러 그 존재의 기초인 '기'를 강조함으로써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일 수 있었다.
한편 '기'를 이야기하면 결국 그 운동법칙으로서의 '도'를 이야기하게 되므로, 동학의 사상들은 상당한 부분 과거의 사상과 겹쳐진다. 그러나 단순히 '기'의 필연적이고 기계적인 운동을 이야기하는 것과 '기' 자체를 생명 가진 것으로 취급하여 '상제'를 이야기하는 경우 그 결과는 아주 다르다.

 

이와 같이 동학에서는 '도' 혹은 '기'를 이야기한 것이 단순히 '천신'을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고, 동시에 '천신'을 이야기함으로써 단순히 '기'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학이 모든 사상의 근원(천도)을 체득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들이 체험한 존재근거로서의 '천'에 대한 이해의 결론은 다음의 구절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아는 것이 무엇이며({유사.도덕가}) 동학 본체론의 특징과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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