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순경의 음식이야기_05

醉月 2009. 12. 2. 08:55

자연산 풍천장어? 꿈 깨

약에 쓰려 해도 구하기 힘든 풍천장어… 제대로 된 양식장어 파는 ‘만민정’에서 섭섭함 달래보자

» 만민정 주인은 자연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솔직하게 이 집에서 재료로 쓰는 양식장어의 특징과 품질, 맛을 자랑한다.
“자연산 풍천장어 매일 항공 직송.”

몇해 전 통일로를 따라 문산 가는 길에 벽제 부근 한 장어구이집에 걸린 플래카드 문구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풍천장어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소재한 선운사 부근 개천에서 나는 특산 뱀장어를 말한다. 그러나 그간 환경의 변화와 남획으로 자연산 풍천장어는 이제 약에 쓰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들 정도인데, 궁벽한 벽제 부근 장어집에 무슨 풍천장어란 말인가 또 매일 항공으로 직송한다니, 국민 모두가 모르는 새에 고창군에 비행장이라도 건설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강이나 큰 하천들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동쪽 지방에서는 서에서 발원해 동으로 흐르고(西出東流), 서쪽 지방에서는 동에서 발원해 서로 흐른다(東出西流). 그러나 고창군 심원면 선운산 도솔암 서쪽에서 발원해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 앞을 거쳐 서해로 빠지는 하천은 서에서 발원해 북향했다가 다시 서해로 흐르는 서출동류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동출서류의 자연현상을 거역하고 서출동류로 역류하는 하천을 풍수학에서는 ‘풍천’(風川)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운사 앞 하천만이 그러하기 때문에 풍천은 풍수학의 일반명사이면서 곧 선운사 앞 하천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굳어져버렸다.

곧 풍천은 선운산에서 발원해 선운사 입구 삼거리에서 북향했다가 서해로 빠지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선운사 입구 삼거리 부근의 북향(역류)하는 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 산 정상은 한 일(一)자로 평평하면서 길게 보이는 풍수학상의 이른바 일문성(一門城) 모양인데, 풍천과 일문성 사이에 천하의 명당이 있다 한다.

“풍천장어에 복분자(산딸기) 술을 먹으면 요강이 깨진다”는 우스개 속설이 전해질 정도로 풍천장어는 고단백 강장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풍천처럼 강물과 바닷물이 길게 어울리는 곳에서 잡히며, 산란기가 되면 서해바다를 거쳐 태평양 깊숙한 곳에까지 가 새끼를 낳는다. 이 새끼 장어들은 회귀성이 있어서 무리를 지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근래에는 자연산 풍천장어는 아주 드물고, 선운사 부근에는 그 흔한 장어양식장조차 별로 없으니, 풍천장어 운운하며 선전하는 장어구이집은 일단 신뢰성을 의심받아 마땅하다.


요즘 장어구이집에서 쓰는 장어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중국·대만·뉴질랜드 등에서 양식장어를 수입해오는데, 자연산에는 아예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국내산 양식장어에 비교해봐도 살이 푸석푸석하면서 질기고 때깔도 거무튀튀한 것이 영 그렇다. 그러므로 장어구이를 즐기는 분이라면 허구한 날 자연산을 찾는 ‘허망한 꿈’ 은 버리고 깔끔하게 국내에서 양식된 장어라도 맛볼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이 훨씬 낫다.

난개발로 인해 교통지옥의 대명사로 꼽히는 용인시 풍덕천 삼거리 부근에는 풍덕천이라는 이름이 그럴듯해서인지 제법 맛있는 장어집들이 여럿 있다. 삼거리 부근에 있는 풍덕천장어구이집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는 삼거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좁게 난 길을 고즈넉하게 3km 정도 가면 있는 참숯장어구이집 ‘만민정’(031-282-3400)을 즐겨 찾는다.

이 집 주인은 원래 전북 익산 용지수산에서 양식한 장어를 경기도 지역 장어구이집에 유통시키던 중간상인데, 간혹 전문 장어구이집인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어를 구워 팔다가 1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어구이집을 겸하여 열게 되었다. 자연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고 솔직하게 이 집에서 재료로 쓰는 양식장어의 특징과 품질, 맛을 자랑하는 주인 김순동(39)씨 부부의 순박함이 쫄깃쫄깃한 장어맛을 더욱 감칠나게 한다. 양념구이·소금구이 모두 1kg에 2만9천원인데, 1kg이면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다.

 

겨울에 무르익는 ‘토종 묵’

» 사진/ 구읍할매묵집의 도토리묵무침과 채묵백반.

충북 옥천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마치 휴게소를 들르듯 무리없이 거쳐갈 수 있는 고장이다. 고속도로가 작은 읍마을을 신읍과 구읍 사이로 가로질러가고, 톨게이트 거리가 짧아 읍내 어디든 5분 안에 닿을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볼 수 없는 담백한 토속음식들이 고루 박혀 있고, 그 내력들 또한 만만치 않다.

톨게이트를 나서며 오른쪽인 신읍쪽으로 불과 100m 거리에 순수한 한우고기로 끓이는 따로국밥집 ‘따로집’(043-733-4323)이 있는데, 이 집의 육개장과 갈비탕 또한 일품이다. 거기서 2∼3분 거리에는 20년 내력을 자랑하는 올갱이국밥집 미락올갱이집(043-733-4845)이 올갱이국밥과 올갱이해장국을 기막히게 끓여낸다. 또 톨게이트를 나서며 왼쪽으로 들어가는 구읍에는 말 그대로 옥천 구읍을 대표하는 구읍할매묵집(043-732-1853)이 평생 한 솜씨로 가꿔낸 묵맛을 선보이고 있다. 구읍할매묵집은 주인 김양순(75) 할머니가 25살 되던 해 어려운 살림을 보태기 위해 주변 산에서 나는 상수리를 모아다 묵을 쑤면서 시작했다. “여태껏 손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농사 한톨 짓지 않고 5남매를 모두 길러냈어”라며 신고한 지난날을 일러준다.

» 사진/ 반평생을 묵과 함께해운 김양순 할머니.
묵은 메밀묵과 도토리묵 두 가지를 내고 있다. 가을에서 초여름까지는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지만 가을에 거둬들인 메밀이 대개는 초여름이면 떨어져 1년 중 3∼4개월은 도토리묵만 내게 된다고 한다. 특히 겨울 한철은 어느 것이나 그 맛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동치미나 김치국에 말아내는 채묵은 가을에 담근 김치국물이 한참 제맛이 나고, 찬으로 곁들이는 풋고추지까지 무르익어 가히 계절의 진미로 극찬할 만하다. 이 맛을 한번 확인한 고객들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며 옥천톨게이트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입소문이 이어져서 서울과 부산, 대구를 비롯해 멀리 강원도 차량까지 찾아든다.

묵을 쑤는 방법도 남다르다. 순수한 토종메밀과 도토리를 갈아 앉힌 전분을 큼직한 무쇠솥에 장작을 때며 쑤어내 옛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젓가락 솜씨가 다소 서툴러도 묵이 툭툭 끓어지는 법 없이 찰지고 담백하다.

적당한 크기로 송송 썰어 그릇에 담고 참기름과 김가루를 얹은 뒤, 동치미국물을 부어내면 채묵이고 여기에 밥을 한 그릇 곁들이면 채묵백반이 된다. 1인분 4천원으로 가격도 부담이 없다. 김양순 할머니가 이미 칠순을 넘어섰지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며느리와 함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나하나 챙겨내는 묵맛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고유한 우리 묵맛이다.


나도 주방장|풋고추지
상큼한 맛에 피로가 말끔

» 사진/ 상큼한 맛과 함께 피로까지 씻어주는 풋고추지.
눈맛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나는 풋고추지는 우리 음식 어디에나 잘 어우러지는 기막힌 밑반찬이다. 구읍할매묵집 할머니는 매해 가을철 끝물에 풋고추를 10가마 정도 사들인다고 한다. 우선 고추잎새와 줄기를 깨끗이 다듬어낸 고추를 큼직한 항아리에 담고 맑은 샘물을 중간쯤 채운다. 여기에 식초를 알맞게 풀어 풋고추가 푹 잠기게 눌러놓는다. 새파란 고추빛깔이 약간 미색을 띨 정도로 결이 삭았다 싶을 때, 고추를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털어내고 다시 빈 독에 담는다. 알맞게 숙성된 풋고추가 푹 잠기도록 팔팔 끓인 간장을 부은 뒤 꼭꼭 눌러놓으면 완성된다.

이렇게 담근 고추지에 며칠 간격으로 간장만 따라낸 뒤 다시 팔팔 끓여 붓기를 2∼3차례 더 반복해주면 오래 두고 먹어도 고추가 상하는 법이 없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이듬해 여름까지도 거뜬하다고 한다. 매콤하면서 상큼한 맛이 뛰어나서 씹는 순간부터 온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먹고 나면 고속도로를 달리며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씻겨진다.

 

벌써 봄나물이 향긋하네

» 사진/ 갖가지 푸성귀가 가득 오른 중앙식당의 산채백반.
충남 수덕사 앞 음식촌에서 원조집을 자처하는 중앙식당(041-337-6677)은 그 내력이 무려 50년을 헤아린다. 올해 81살인 최영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전쟁 직후 절 살림이나 마을의 형편이 똑같이 어렵던 때, 쌀을 한되씩 싸들고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 밥을 해주고 잠자리를 제공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이후 형편이 풀리면서 가장 손쉬웠던 덕숭산 일대 산채와 들나물을 중심으로 찬을 갖춰낸 것이 산채백반집이 됐고, 지금까지 상차림은 크게 바뀐 게 없다. 최영분 할머니의 음식솜씨와 넉넉한 마음씨는 30년 넘게 시어머니와 함께해온 정금순(55)씨로 이어져, 수십년씩 대를 이어 찾아오는 고객들이 고향집처럼 편안하게 옛 맛을 즐기고 간다. 나물을 캐오던 마을 아주머니들이 이제는 허리가 굽어 손을 놓아야 하지만 대를 이어 나물을 캐러 나서는 젊은이들이 없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 사진/ 시어머니의 음식솜씨를 대물림해 30여년을 이어온 정금순씨.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산채백반 한 가지다. 소박하면서 푸짐하고 토속적인 맛이 듬뿍 담긴 상차림이 호남의 한정식과도 차별되고, 수저를 들면 몇 가지 찬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비우는 데 무리가 없다. 제철에 말려놓았던 고사리와 혼잎, 취나물 등 산채나물이 주를 이루고, 푸성귀로는 파란 시금치와 갓, 양지바른 들밭에서 캐오는 달래와 냉이가 향긋한 봄내음을 한껏 돋운다. 또 더덕구이와 우렁을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 밖에도 안면도에서 아침에 보내온다는 싱싱한 생굴이 찬으로 오르고, 여기에 젓갈류와 장아찌 등 밑반찬이 어우러져 가짓수가 25가지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그래서 인근 홍성이나 예산, 광천에서도 음식대접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가장 손쉬운 곳으로 수덕사 음식촌을 찾게 된다.

음식가격도 주고객이 지역주민들인 만큼 4∼5년 전에 정한 1인분 8천원을 그대로 받고 있고, 찬을 몇 가지 더 손보아 1인분 1만원인 산채한정식을 따로 준비해놓는다. 그러나 기본은 역시 산채백반이고, 가격 때문에 내용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정씨 부부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고객들도 산채백반 이상의 것을 찾는 이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래저래 중앙식당 산채백반 하면 가장 친숙한 지역별미로 알려지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 경인지역에서도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 아침 일찍 떠나면 가까운 천수만의 겨울 철새를 보고 덕산온천의 온천욕까지 곁들일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을 나서 10분을 달리면 천수만에 닿는다. 홍성에서 수덕사까지는 9km, 수덕사에서 덕산온천은 5.5km. 세곳을 다 거쳐도 서울과 경인지역은 물론이고 군산과 전주, 정읍 등 호남에서도 하룻길로 무리가 없다.

나도 주방장/ 냉이와 달래

그윽하고 매콤새콤하고…

냉이와 달래는 마치 다정한 자매마냥 한국인들의 정서에 친근하다. 얼어붙은 땅을 헤치고 걷어낸 냉이는 유별나게 하얀 뿌리와 빨갛게 약이 오른 잎새가 내뿜는 그윽한 향기 때문에 봄나물의 여왕으로 꼽힐 만하다.냉이는 본래 열이 많아 겨우내 언 땅을 녹이며 뿌리를 내리고, 자양분을 축적했다가 이른 봄 일찌감치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나면 여름이 오기 전에 사그라져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이같은 성질은 인삼을 능가할 정도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독특한 향과 함께 나른해지기 쉬운 봄에 몸을 추스려주는 뛰어난 효능까지 있다고 한다.


달래 또한 여름에는 땅속에 묻혀 여름잠을 자야할 정도로 열이 많은 나물로, 비타민과 단백질,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하면서 파와 마늘처럼 날로 먹을 수 있어 영양소와 향을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알칼리성 나물이다. 들밭에서 캐온 그대로 깨끗이 씻어 고추장과 과일식초를 넣고 매콤새콤하게 무쳐 깨소금을 살짝 뿌려낸 냉이와 달래는 예로부터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고유한 먹을거리다.


이것이 설렁탕과 다른 곰탕

» 사진/ 60년 전통의 고유한 하동관 곰탕.

설렁탕과 곰탕의 구별이 애매해지고 있다. 옥호는 분명 설렁탕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소머리국밥을 내는 집이 있고, 곰탕을 주문했는데 설렁탕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객들도 전혀 의문스럽게 여기지 않고 주인도 태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곰탕의 본고장으로 손꼽는 전남 나주을 찾으면, 지금도 30∼40년 맥을 이어오는 곰탕집들의 조리법은 설렁탕과 뚜렷이 구별되고 있다. 또 서울의 곰탕집으로 내력이 가장 오래다는 하동관(02-776-5656) 역시 설렁탕과는 완연하게 다르다.

나주의 유명 곰탕집이나 하동관의 공통된 점은 탕국물을 내는 주체가 쇠고기 양지살과 사태살 등 지방이 적은 살코기를 사용하고, 설혹 뼈를 넣을 경우라도 사골이나 잡뼈를 넣을 뿐 소머리나 잡부위를 일체 넣지 않는다. 국물을 우려내는 과정도 설렁탕처럼 24시간 뼈가 가루가 되도록 고는 경우는 없다. 계속 기름을 걷어내며 알맞게 우러나면 뼈를 건져내고, 양지살과 사태살도 알맞게 삶아졌을 때 건져놓았다가 다시 국에 얹는 고기로 쓴다. 따라서 설렁탕국물이 진하고 깊은 맛이라면, 곰탕국물은 맑고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앞선다. 그래서 술꾼들의 경우 파를 듬뿍 얹고 깍두기국물을 알맞게 풀면 해장국을 대신할 수 있고, 식사손님들도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즐긴다. 담아내는 그릇도 설렁탕은 대부분 뚝배기를 사용하지만 곰탕의 경우 갈비탕이나 국밥처럼 놋그릇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동관은 이런 점에서 곰탕의 고유한 맛과 격식을 흐트리지 않고 이어오는 고유한 곰탕집이라 할 만하다.

» 사진/ 40년 가깝게 하동관 곰탕맛을 이끌어온 장석천씨와 부인 임정옥씨.
내력 또한 만만치 않다. 1940년대 후반 문을 열어, 1964년 주인이 한번 바뀌었을 뿐 음식맛은 물론 주방식구들과 해묵은 테이블까지 개업 때와 비교해 크게 변한 데가 없다. 올해로 하동관을 인수한 지 38년째를 맞고 있다는 주인 장석천(63)씨의 곰탕에 대한 자부심 또한 한결같아 60여년 내력의 하동관 곰탕맛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특히 주방장격인 권혁녀(64)씨는 40년, 지배인 강복형(62)씨는 47년간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어, 음식맛과 분위기가 바뀔래야 바뀔 수가 없다는 것이 주인의 이야기다.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양지살과 사골을 알맞게 삶아 기름을 한번 더 걷어낸 맑은 국물에 밥을 말고 양지살과 함께 맛돋움으로 양(소의 위)을 몇 조각 얹어 두툼한 놋그릇에 담아낸다. 찬도 탕맛을 해치지 않도록 잘 익은 깍두기 한 가지만 낸다. 큼직한 그릇에 담아낸 싱싱한 파를 한 수저 떠넣고,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개운하게 입안에 감도는 맛이 바로 곰탕의 참맛이다.

신선한 탕맛을 내기 위해 새벽에 끓인 탕국이 일찍 떨어지는 날은 오후 2∼3시에도 문을 닫는 것이 60여년간 지켜온 전통이다. 하루가 지난 묵은 국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100% 한우고기와 신선한 사골뼈로 금방 끓여낸 것이 아니면 깔끔하고 개운한 곰탕 고유의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대부분이 이같은 맛이 입에 밴 오랜 단골들이고,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와 대물림해주며 2∼3대로 이어지는 손님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곰탕 6천원, 특곰탕 7천원, 수육(350g) 2만원.


나도 주방장|진품 깍두기

깍두기, 더 무엇이 필요하랴

쇠고기 탕국에 깍두기는 천하 일품의 궁합인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탕에 곁들이는 깍두기 역시 옛맛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담그는 방법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음식점들이 저녁에 무를 썰어 소금물에 절여놓았다가 아침에 양념에 비벼 즉석에서 내는데, 제대로 양념을 비벼넣고 알맞게 익힌 깍두기맛이 아니다.

하동관의 경우, 하루에 내는 탕이 일정해 이에 알맞게 깍두기도 하루 간격으로 담가 제대로 익혀낼 수 있다. 양념과 간이 제대로 배고 알맞게 익은 깍두기맛이 제대로 난다. 맑고 담백한 탕국물에 상큼하게 익힌 싱싱한 깍두기가 어우러지는 맛은, 실제로 다른 찬이 더 필요할 이유가 없다. 곰탕에 꼭 맞게 안성맞춤격인 깍두기 한 가지만을 곁들였던 옛 어른들의 안목이 가히 수준급이 아니었나 싶다. 깍두기국물을 주전자에 따로 담아놓았다가 국물을 더 청하는 고객들에게는 원하는 만큼씩 듬뿍 따라주는 것도 옛스런 장면이다.


한우 비켜라 제주돼지 납신다

» 사진/ 감칠맛나는 제주도통갈비.

제주도통갈비집은 신촌명물거리의 손꼽히는 음식명소다. 제주도에서 키워낸 돼지갈비만을 전문으로 15년 내력을 갖고 있다. 육질이 독특한 제주산 돼지갈비를 처음으로 서울에 선보인 제주도 돼지갈비의 원조집이다. 수질이 뛰어나고 풍부한 자연사료를 적절히 섞어 먹인 제주도 돼지고기는 지방이 적고 씹히는 질감이 뛰어나 한우 암소갈비를 능가한다고 할 만큼 감칠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양념에 잴 때도 고유한 돼지갈비맛을 살려내기 위해 맛간장에 야채와 과일즙만 약간 가미할 뿐 양념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덧살을 붙이지 않고 갈비뼈에 붙은 살만을 얇게 저며 소갈비처럼 편 돼지갈비는 모양새는 물론 냄새가 전혀 없어 소갈비인지 돼지갈비인지 구별이 잘 안 간다. 손님상에 낼 때도 간결한 찬에 고수나물을 한 접시 곁들여 내는데, 한번 맛을 보면 대부분 단골로 이어져 즐겨 찾게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일본에까지 알려져 일본 관광객들이 내국인 못지않게 찾아온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명물거리에서 몇 발짝 골목안으로 들어앉기는 했지만, 4층의 단독건물은 1층에 주차공간과 갈비저장고가 있고, 2층 홀을 제외한 3∼4층이 모두 크고 작은 예약실로 꾸며져 150∼200석을 헤아린다. 따라서 신촌을 비롯한 홍대와 서강대쪽 학원가에서 예약을 하고 오는 단체고객들이 80∼90%를 차지한다.

» 사진/ 15년을 한결같이 지내온 제주도통갈비집 4자매. 왼쪽부터 이재남, 재순, 재선, 재실씨.
제주도통갈비집의 또 한 가지 자랑거리는 독특한 경영방법이다. 대표인 이재남(69)씨를 비롯한 4자매가 공동으로 운영하며 직접 음식을 차리고 손님을 맞고 있다. 첫째인 이씨와 함께 둘째인 재순(66)씨와 셋째인 재선(63)씨, 막내인 재실(42)씨 모두가 친자매들로 15년간 손맛을 같이해오고 있다. 대부분 60을 넘어선 지긋한 나이에 남다르게 착한 성품들을 지녀 고객들을 늘 만나는 가족처럼 언제나 편안하고 부담없이 대한다고 한다. 4자매의 한결같은 마음씨는 상차림에도 그대로 옮겨져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하기 이를 데 없고, 음식맛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인기있는 통돼지갈비는 장국이 자박자박하게 잠기도록 담아내는데,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촉촉하게 구워내 고수나물을 한잎 얹어 쌈에 싸거나 고수잎새만 한두잎씩 얹어 입안에 넣으면 신기하리만큼 감칠맛을 내준다.

가격도 돼지갈비 280g을 1인분으로 6500원. 시중에서 뼈없는 갈비로 불리는 목등심은 200g을 기준해 6500원, 갈매기살은 170g으로 역시 6500원 한다. 그 밖에 간단한 식사로 냉면이 4500원, 양반국밥 3500원, 감자탕 3500원 등도 맛이 깔끔해 점심시간 신촌일대 대학생들이 부담없이 찾는다.


나도 주방장|고수나물

고기와 천생배필인 향료

고수나물은 고려 때 중국을 거쳐 들어온 향초로 알려져 있다. 향이 강하고 독특해 일반 가정에서 ‘빈대풀’이라고 부르며 먹기를 꺼렸다. 절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양지바른 샘가에 심어놓고, 겨울에는 화분에 옮겨 창가에 키우며 음시에 얹어 냄새를 제거하는 데 썼다고 한다. 절 살림이 지금처럼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마을에 내려와 공양을 해다가 살림을 꾸려가던 때 이런저런 냄새를 없애는 데는 더없이 좋은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육류나 어패류의 냄새를 없애는 데는 그만이고, 처음 먹을 때는 빈대냄새 못지않게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냄새가 한번 입에 배고 나면 금세 인이 박여 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난다. 아무리 비린 음식이라도 고수잎새를 한잎 씹고나면 입 안이 개운해진다는 것이다. 중국음식에 고수나물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 이런 이유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5년간을 한결같이 곁들여내는 고수나물은 제주통돼지갈비집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로 인정받고 있고, 육류소비가 많아진 요즘은 시중 야채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민물고기에 고춧가루가 필요해?

» 사진/ 경북집 메기백숙.

음식명가를 찾아나서 1천여집을 헤아릴 때까지는 소문이나 고객들이 몰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3천집을 넘어선 지금은 그 기준이 확실하게 바뀐 것을 스스로 느끼며 이제서야 눈이 열리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음식보다는 먼저 주인을 보게 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고 있다. 주인을 보고 담아낸 음식을 대충 훑어보면 음식 맛과 내용이 거의 정확하게 짚인다. 청주시 주성동 경북집 조향남(75)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경북집(043-211-9200)은 청주시는 물론 충청북도가 자랑하는 음식명소다. 충북은 바다와 접한 데가 없는 대신 괴산과 단양,충주호와 대청호 등 수많은 하천과 저수지에서 나는 민물고기가 비교적 풍성하다. 조씨 할머니는 특산물과도 같은 신선한 민물고기로 전국에 하나뿐인 민물고기백숙을 주메뉴로 낸다. 규모도 민물고기 전문점으로는 이만한 곳이 별로 없다.

부드럽고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민물고기백숙은 아무리 민감한 식성을 가진 고객들이라도 꺼리지 않을 만큼 전혀 냄새가 없이 고소하다. 그 깊고 순한 맛이 신기할 지경이다. 맵고 짜고 얼큰한 맛 일색인 매운탕집의 통속적인 개념을 넘어선 셈이다. 쏘가리매운탕과 새뱅이탕, 조림과 찜 등 매운 것은 매운 대로 손색이 없으면서, 쏘가리와 장어, 메기 등을 백숙으로 한 요리는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쾌감을 안겨준다.

» 사진/ 좋은 음식으로 고객들의 건강까지 보살필 수 있게 된 것이 언제나 감사하고 보람있다는 조남향 할머니.
1970년 내덕동 천주교회 앞에서 문을 열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앉기까지 32년째를 맞고 있는 조씨 할머니는 매운탕이 좀 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고객들의 간청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10여년을 고심한 끝에 진미인 민물고기백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온 할아버지들은 80평생 메기백숙이란 말은 물론, 이처럼 부드럽고 구수한 민물고기 맛은 처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간병식으로 주문이 이어지고, 점심시간이면 젊은 직장 여성들이 단체로 찾아와 회식을 즐기고 간다.

맑은 물에 담아놓은 싱싱하게 살아 있는 쏘가리와 장어, 메기 등으로 즉석에서 회를 뜨듯 내장과 뼈를 거둬낸 뒤, 인삼과 밤, 대추, 잣, 마늘과 감자 등 10여 가지의 약재와 양념을 넣고 푹 끓여내 두툼한 솥에 담아낸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걸죽하면서도 비리거나 텁텁하지 않고, 담백하게 입에 붙는 맛이 난다. 함께 넣은 약재 때문인지 온몸이 훈훈하게 더워지면서 시원한 쾌감이 매운탕 못지않다. 짭짤하면서 깔끔한 밑반찬을 곁들이면서도 가격은 7년 전 그대로여서 크게 부담이 없어 보인다. 쏘가리와 장어백숙이 중(3인분) 6만5천원, 메기백숙은 중 4만원, 소(2인분) 3만원, 대(4인가족분) 5만원.


나도 주방장|빙어조림(도리뱅뱅이)

빙어는 이렇게 먹읍시다

민물고기는 평소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한 대부분 가정에서 생소한 음식이다. 하지만 겨울철 근교 나들이길에서 빙어나 이와 흡사한 떡매자 등 잔고기들을 어항에 담아놓고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겨울철이라 쉽게 상하지도 않고 잘지만 살이 단단한 때여서 조림을 해놓으면 별미 안주 겸 간식거리로 나무랄 데가 없다.

경북집 할머니의 설명을 들어보면 조리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겨울철에 가장 손쉬운 빙어는 속을 훑어내지 않아도 된다. 프라이팬에 동그라미를 그리듯 차례로 둘러놓고, 들기름이나 식용유를 약간 끼얹어 잠깐 튀겨낸다. 물고기 자체에서 나온 기름이 엉켜붙으면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아, 차례로 튀겨내 접시에 차곡차곡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놓으면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튀김이 끝나면 소금을 살짝 뿌려 그대로 사용해도 되고, 간장에 고추장을 약간 풀어 간을 하고 실파와 풋고추, 마늘 등을 잘게 썰어 얹어 다시 한번 조림하듯 바싹 익혀 프라이팬에 얹어 내놓아도 좋다. 접시에 옮겨담아도 형체가 흩어지지 않아 무난하다. 금강 유역에서는 돌려놓은 모습 그대로 도리뱅뱅이라고 부른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맥주나 소주를 한잔 곁들이면 더욱 좋다.


한과 속에 숨쉬는 전통

» 사진/ 한끼 식사로 알맞은 가야의 호박죽과 팥죽.

음식의 참맛은 담백함에 있다. 우리 음식의 고유한 특성은 바로 담백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동양권이지만 중국 음식처럼 기름지거나 향신료를 얹어 맛을 치장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먹는 상차림에서 잔칫상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면서 기품있고, 가짓수가 수십 가지 올라 상다리가 휘어지는 듯하지만 어느 하나 튀는 것이 없고, 각각 제맛을 지니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신비스러울 만큼 짜임새 있다. 소박하면서도 어느 나라 음식에 비견할 수 없으리만큼 손색이 없다.

가야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지하에 있는 조촐한 한과점이다. 하지만 한식맛의 기본을 제대로 갖춰 내며 20년 가까운 내력을 쌓고 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여주인의 깐깐한 성깔이 이같은 맛을 뒷받침한다. 한차와 한과 전통죽과 떡을 전통음료와 함께 갖춰 내는데, 어느 것이나 간이 맞고, 향이 짙거나 지나치게 달지 않다. 담는 그릇이나 색깔도 소박하고 정갈할 뿐 이런저런 장식이 없다. 하나하나가 담백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내준다는 것이 주인의 자랑이다.

메뉴 구성이 간결하지만, 단순한 입가심을 넘어 약효를 지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손이 많이 가고 들어가는 재료와 정성이 만만치가 않다. 시중 찻집들에서 내는 인스턴트 식품의 개념이 아니고, 기본 재료들을 하나하나 신선한 것을 선별해 달이거나 푹 우려내 바탕에서 배어나는 순수한 맛을 살려낸다. 그래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옛맛을 되새길 수 있고, 보약을 먹는 것처럼 진하고 개운한 뒷맛이 편안한 기분을 안겨준다.

» 사진/ 가야주인 박선희씨.
대추차, 쌍화차, 오미자차, 솔잎차, 식혜와 수정과, 여름철에 내는 매실차 등이 그렇고, 식사를 겸해 내는 호박죽, 잣죽, 흑임자죽, 호도죽을 즉석에서 갈아 끓여 내 담백하면서 신선한 맛을 낸다. 특히 늙은 호박을 그날그날 삶아 찹쌀가루를 풀어 쑤는 호박죽이나 팥을 직접 삶아 끓이는 팥죽은 인절미 몇개와 백김치, 구운 김을 곁들이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부담없는 아침식사로 안성맞춤이다.

아침 6시30분이면 재료를 손보기 시작해 빌딩의 출근시간이 시작될 무렵인 8시부터는 죽과 그날 끓인 차가 준비된다. 가깝게 사무실을 둔 회사들은 아침 일찍 모이는 모임에서 호박죽을 주문해 식사를 대신하며 회의를 진행하기도 해, 아침시간에 죽이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한다. 점심과 오후시간 차와 함께 내는 한과와 떡, 약과는 개업 때부터 가회동 떡집 한곳을 정해놓고, 인절미와 송편, 꿀떡, 계피떡 등, 먹음직스럽고 먹기 편한 것들을 그날그날 골라오는데 간식감으로 인기있다. 그 밖에 사무실의 고사떡이나 행사떡을 주문받아 마련해주기도 해 도심 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맛을 부담없이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일반차 3천원, 쌍화차 4천원, 죽 4천∼5천원선이다.

나도주방장|식혜와 다식

한식 음료, 영양가 만점!

» 사진/ 가야의 대표적인 음료로 꼽히는 식혜와 쌍화탕.
식혜는 수정과와 함께 가장 대표적 한식 음료다. 한식집에서는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식혜를 만드는 방법을 주인 박선희(55)씨는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멥쌀을 충분히 불려 솥에 안치고 밥물을 조금 적다 싶을 정도로 잡아 뜸을 푹 들이면 알맞은 고두밥이 된다. 밥이 뜨거울 때(식기 전에), 엿기름을 조리에 걸러 찌꺼기가 가라앉아 맑게 우러난 물을 보온솥에 붓고 밥을 말듯 고두밥을 넣어 4∼5시간쯤 덮어둔다. 밥알이 3∼4알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밥알이 삭고 있다는 표시인데, 이때 솥이나 냄비에 옮겨 붓고 약 30분쯤 팔팔 끓여 다린다. 따끈할 때 먹으면 ‘감주’고 식혀서 냉장고에 넣고 시원하게 먹으면 ‘식혜’다. 그러나 감주는 식혜를 달이는 부엌 앞에서 서서 마시는 것이고, 식혜는 차게 식혀 소반에 받쳐 격식을 차려 먹는 것이어서 식혜를 더 양반스럽게 여기는 것이 전래의 관습이라고 한다. 겨울철은 1주일쯤 두고 먹어도 되지만 담근 뒤 2∼3일 지날 때가 가장 제맛이 난다.


9첩반상에 담긴 한국의 맛

» 사진/ 7첩~9첩반상 규모의 겸상차림.

성북동 한옥 골목에 있는 미진(02-745-0046)은 서울의 반가 상차림이 그대로 이어져오는 전통한식집이다. 궁중 진찬과 양반집 연회상에 오르는 것으로 7첩 또는 9첩반상 규모의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상차림을 차려내 고유한 한식의 진면모를 제대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같은 상차림은 그 내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미진을 창업한 이문옥(작고) 할머니는 처녀 시절 궁중 나인이던 고모로부터 궁중한식과 상 괴는 법을 익혀 젊었을 때부터 서울의 이름난 큰 상차림을 도맡아 차리러 다녔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와 이화장은 물론 역대 대통령의 가사모임의 상차림을 맡는 등, 90년대 초까지도 국빈을 접대하거나 서울 명문집들의 큰 상차림에 이씨의 손맛이 닿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80년 봄부터 시어머니의 말년을 그림자처럼 뒷바라지했던 며느리 이영주(43)씨와 장남 신영균(48)씨가 대물림해 가업으로 잇고 있다. 이씨가 괴던 명가의 상차림들을 그대로 이어오는 것은 물론 포철 영빈관과 대한항공 영빈관의 귀빈 접대와 현대 영빈관에 초대되는 월드컵 임원들의 상차림도 맡고 있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차려내는 상차림의 특징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스요리 형식의 한정식이 아니고, 5첩, 7첩, 9첩반상에 해당하는 식사 중심의 연회상을 한번에 차려 한식 고유의 격식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는 것이다. 재료의 선택과 조리과정도 옛 방식대로 화학조미료나 향신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간과 양념을 우리 장과 천연소재로 직접 만들어 사용해 담백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살림집과는 별채로 오랜 한옥에 쪽간판이 하나 걸려 있을 뿐 가정집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식당은 대청을 비롯해 크고 작은 방이 6개, 4∼5인 기준 25만∼30만원인 겸상차림이 주고, 점심에는 임금님 수라상에서 유래했다는 돌솥밥을 청송 신천약수를 길어다 지어 교자상차림으로 1인분 1만원에 낸다.

큰상차림에는 예약시 선택이 가능한 호박죽, 흑임자죽, 은행죽 등, 죽을 시작으로 쇠고기 구이와 찜, 너비아니, 떡갈비, 편육이 있고, 생선류는 도미와 민어, 조기 등을 계절에 맞춰 구이와 찜으로 올린다. 또 삼색나물과 철따라 나는 각종 산채와 야채류를 숙채나 생채로 무쳐 내고, 김치도 물김치, 배추김치, 깍두기를 기본으로 3∼4가지, 밑반찬으로 젓갈과 장아찌, 조림과 초, 포, 자반, 부각, 튀각, 무침, 장류 등이 짜임새 있게 갖춰져 있다. 여기에 신선로와 구절판, 냉채류와 전복구이, 산적, 모듬전 등 일품요리가 상 가운데를 장식해 그윽한 상 분위기가 볼 만하다. 식후 소반에 받쳐 내는 다과상도 찹쌀 경단이나 송편을 식혜와 과일을 곁들여 내는데 이 역시 인상적이다.

가까운 대학가의 교수들과 시내에서 예약하고 오는 단골고객들이 주를 이루고, 전철 한성대 입구인 삼선교에 내려 4∼5분쯤 걸어 오르는 한적한 골목길도 옛 모습 그대로다. 연말연시에 조용한 식사모임 자리로 한번쯤 문을 두드려볼 만하다.

나도 주방장|찹쌀경단과 식혜
쫄깃한 경단, 식혜로 마무리


최근 시내 한정식집들에서 내는 코스요리 형식의 한정식이 웬만하면 1인 10만원대를 넘어서고 있고, 심지어 두당 36만원대의 한정식까지 등장해 화제를 모은다. 이런 곳일수록 한식은 물론 양식, 중식, 일식 등 지구촌 산해진미와 퓨전요리까지 차례로 올라 세계화로 가는 한국의 위상을 보는 듯하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미진의 상차림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보기에도 그렇고 맛도 그러하다. 하지만 담백하면서 나무랄 데 없는 기품과 크게 꾸민 데가 없으면서도 짜임새 있고 자연스럽다. 특히 식사가 끝날 무렵 소반에 차려 나오는 다과상의 모습은 말 그대로 반가 여인의 자상하고 깔끔한 여심을 그대로 닮고 있다.

이같은 다과상은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 가정에서도 옮겨볼 만하다. 곱게 빻아 온 찹쌀가루와 콩고물을 냉동실에 저장해놓고, 필요한 만큼씩 꺼내 약간 된 듯하게 반죽해 동글동글 빚는다. 이를 팔팔 끓는 물에 삶아내 즉석에서 콩고물을 발라 식기 전에 접시에 담고 식혜와 과일을 곁들여 내면 어떤 상차림에도 손색이 없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인절미와 또다른 맛이 있다. 고소하고 쫀득한 경단이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식혜맛과 어우러지며 기분 좋게 식사를 마무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