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순경의 음식이야기_03

醉月 2009. 10. 30. 18:14

개척정신으로 만든 이탈리아 요리?

‘아란치오’란 이탈리아어로 오렌지 또는 오렌지 빛깔을 뜻한다고 한다. 이탈리아요리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토스카나 지방은 서귀포의 귤밭 이상으로 오렌지나무가 많다고 한다. 토스카나 지방은 이탈리아의 음식맛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음식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토스카나 사람 특유의 고집스러우면서도 개척정신이 강한 기질이 음식에도 그대로 나타나 같은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독특한 맛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잡은 이탈리안레스토랑 아란치오(02-553-0093)는 이같은 토스카나의 음식맛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가게 이름을 아란치오라 정했다고 한다. 주방에는 진취성 있는 젊은 조리사들로 팀을 구성했고, 홀서빙도 밝고 큰 목소리로 고객을 맞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특성을 살려냈다. 그래서 깔끔하고 명랑한 분위기가 고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끌어준다. 연말 가족모임장소로 30∼40대 젊은 부부가 자녀들과 함께하면 좋을 그런 분위기다.

» (사진/주방장 양호철씨)
주방장 양호철(30)씨는 올해 8년차의 양식전문 조리사다. 프랑스요리의 근원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음식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과 건강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그의 요리는 토스카나 요리의 기본을 잘 살려내면서도 실속있는 요소들을 고루 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솜씨 덕택에 테이블 분위기가 프랑스 식탁처럼 섬세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음식맛은 이탈리아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내며 부담없는 음식명소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해를 보내며 또는 새해를 맞으며 그가 추천하는 요리코스를 직접 주문해보자. 우선, 어른 2인분의 아란치오 A코스 요리를 기본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파스타 1∼2인분을 세컨디파스타에 추가한다. 4가지로 이어지는 코스요리에는 닭고기 가슴살에 발사믹소스를 얹은 샐러드, 새우와 대파가 어우러지는 스파게티니, 지중해식 안심스테이크, 그리고 디저트로 티라미슈와 파나코타를 곁들인다.

코스요리 1인분 3만5천원, 추가 선택분 파스타류가 1인분 1만2천원선. 4인 기준으로 8만∼9만원선의 예산이 나온다. 여기에 하우스와인이나 음료를 곁들이고 10%의 세금을 포함하면 이래저래 10만원은 잡아야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하의 전용주차장은 주차시간에 제한이 없다.


나도 주방장/ 스파게티니 알 뽀모도로
새콤하고 고소한 정통 파스타

준비물=토마토 소스(스파게티용 토마토 소스는 시중 할인매장에서 팔고 있는 완제품들의 품질이 그런 대로 무난한 편이고 2천원 정도하는 1병이면 4인분으로 충분하다), 생토마토, 파마산 치즈, 버터, 소금, 후추, 바질(허브), 스파게티면.

토마토스파게티는 이탈리안 파스타의 가장 기본적인 메뉴다.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전형적인 파스타맛을 즐길 수 있고, 단무지나 오이피클 한 가지만 곁들여도 겨울철 어린이들의 간식이나 가족이 함께 먹는 별미식으로 즐길 만하다.

우선, 토마토 소스를 팬에 붓고 2∼3분간 은은한 불로 따끈하게 데워질 정도로 열을 가한다. 그리고 바질을 잘게 부스러뜨려 넣고 향미를 돋운다. 다음으로 간 파마산 치즈를 1인분에 2스푼 정도로 알맞게 넣어 끈적이지 않을 정도로 잠시 끓이다가 삶아진 스파게티면을 넣고 잘 저으며 면과 고루 섞어준다. 이 과정이 끝나면 버터를 약간 넣어 다시 한번 저어주면서 버터향이 고루 배어들었다 싶으면 불을 끄고 조리를 마무리한다. 생토마토는 씨를 긁어내 살만 예쁘게 썰어 장식으로 얹는다.

주의할 점은 스파게티면을 미리 삶아 놓지 않고, 소금을 약간 탄 맑은 물이 바글바글 끓을 때 면을 넣고 6∼7분 정도 삶아 면이 알맞게 익어 가라앉으면 건져내 물을 털어내고, 식지 않은 상태에서 토마토 소스에 넣는 일이다. 그래야 소스와 버터 등이 국숫발에 잘 스며든다.

구운 오리의 담백한 속살

» (사진/세계적인 요리로 알려진 베이징 카우야)
감사와 위로를 나누며 가족간 정을 쌓는 일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이런 자리에 소박하나마 내 손으로 정성껏 차린 음식 이상 좋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색다른 요리로 의미를 더해보고 싶은 가족을 위해 세계적으로 이름난 ‘베이징 카우야’를 추천하고자 한다.

진시황 때부터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즐겼고, 지금도 중국을 방문하는 세계 정상들이 빠트리지 않고 찾는 상징적인 요리다. 그 원조집 중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곳이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있는 취앤치두어(全聚德)로, 4대에 걸쳐 148년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서울 삼성동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코야(02-563-5292)는 바로 이곳의 시설과 기법을 그대로 옮겨다 똑같은 맛의 베이징오리구이를 내고 있는 집이다. 오리를 굽는 가마 콰류(掛爐)가 설치돼 있고, 굽는 데 사용하는 나무도 중국에서 수입해온 대추나무를 사용한다. 가장 중요한 오리 또한 카우야용으로 특별 사육한 텐야(塡鴨)를 공급받고 있다. 텐야는 일반오리에 비해 기형에 가까울 만큼 날개와 다리가 유난히 짧고 가슴과 뱃살이 많으며, 출하 전 1개월 정도는 탄(彈)이란 특별사료를 먹여 최대한 기름지도록 해 무게가 2.5kg을 넘어야 한다고 한다.

» (사진/오리구이전문 주방장 호치강)
굽는 과정도 중국에서 초빙된 전문조리사가 맡고 있다. 카우야를 담당하고 있는 주방장 호치강(胡治剛·31)은 9년간 가마를 지켜왔다고 한다. 오리 뱃속에 한약재가 든 물을 가득 채워 섭시 200∼250도를 오르내리는 가마 속에 매달아 4∼5시간을 굽는다. 굽는 동안 장대로 이리저리 옮겨주며 물엿이 가미된 소스를 몇 차례 발라주어 특히 껍질의 맛을 돋우기도 하는데, 빛깔과 무게 등을 육감으로 감지해 가장 알맞은 상태를 가려내는 것이 노하우라고 한다.

오랜 시간 구워도 타서는 안 되고, 찜을 하듯 부드럽게 구운 속살은 담백하게 입에 감쳐야 제맛이다. 금방 구운 카우야를 웨건에 밀고 나와 즉석에서 익숙한 칼질로 껍질과 살코기를 얇게 져며내 접시에 옮겨주는데, 따라내는 밀쌈에 파채와 춘장을 얹고 한쌈씩 싸는 맛이 가히 신비의 경지다.

금방 구워내 따끈한 밀쌈과 기본찬들을 곁들여 1마리에 5만원. 4인분으로 알맞은 양이다. 총지배인 이용수(45)씨는 부모를 모신 부부와 어린이 2명을 포함해 6명분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듬해물과 야채를 주재료로 만든 전가복이나 잡채류를 한 가지 더 추가로 주문하고, 식사로 자장면과 기스면, 해물탕면 등을 몇 그릇 곁들이면 고량주 1병쯤 추가해도 1인분 1만5천원선이므로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넓은 지하주차장은 주차시간 제한이 없고, 미리 예약하면 방 사용이 가능하다.

나도 주방장/ 새우살토스트튀김
참을 수 없는 새우살의 매력

준비물 큰새우(또는 중새우 생것), 식빵, 계란(흰자),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

새우살토스트튀김은 중국요릿집에서 간혹 후식감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아래위로 포갠 식빵 사이에 새우를 양념해 다져넣은 샌드위치를 튀김해 놓은 것이다. 파삭거리는 질감과 부드럽게 감치는 새우살이 어우러져 술안주는 물론 영양가로도 손색이 없는 별미 디저트다.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큰새우나 중새우 중 구입이 손쉬운 것을 골라 생새우살을 곱게 다진다. 다진 새우살에 계란 흰자를 풀어넣고 참기름, 후추 등으로 양념해 고루 비벼 알맞게 빚는다. 간은 소금을 극소량으로 써서 짜지 않도록 한다. 먹기 좋게 썰어놓은 식빵 사이에 새우 다진 것을 넣고 적당히 눌러준 뒤, 기름에 튀긴다. 기름이 끓지 않는 상태에서 노릇노릇 튀겨야 더 제맛이 난다.

 

구수한 전라도의 손맛

» 사진/홍어찜과 함께하는 가정식백반.
전국에 수많은 음식거리들이 있지만 아직 서울의 인사동만큼 우리 음식문화의 고유한 정서가 그대로 이어져오는 곳이 별로 없다. 추녀끝이 서로 닿아 있는 납작한 서울 기와집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나 있는 골목마다 나름의 향토색 짙은 한정식 메뉴들이 8도의 별미를 차려내고, 10∼20년씩 명성을 이어오는 집들만도 10여곳을 헤아린다. 주인들도 대부분 60∼70대의 명인들이고, 주방의 찬모들 역시 40∼50대 이상, 수십년간 찬을 매만져온 여인들이 주축을 이루어 어느 곳이든 진한 고향의 맛과 분위기에 젖어들게 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길 건너 안국동과 계동까지 이어진다. 한옥을 그대로 손질하고, 대청과 안방, 건넌방 등을 터놓은 온돌방이 따끈한 훈기로 마음을 감싸준다. 교자상에 받쳐들고 들여오는 한상 가득한 낯익은 음식들 또한 고향집처럼 편안하게 입맛을 이끌어간다.

목포집(02-722-0976)은 종로경찰서 건너편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전라도 향토음식집이다. 60년대 목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던 ‘옥천식당’을 서울 운니동(비원 앞)으로 옮겨와 ‘목포집’이란 옥호를 내걸고 20년 가깝게 명성을 쌓아오다가 9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앉았다.

» 사진/주인 김한순씨.
옛 옥천식당의 주인이었던 김한순(71) 할머니와 딸이 여전히 음식을 맡고 있다. 목포에서부터 명성을 이어왔다는 떡갈비백반(1인분 1만5천원)과 가정식백반(1인분 5천원)을 비롯해 전라도의 명물인 홍어찜과 홍어회, 홍어무침을 물론 홍탁과 3합까지 있고, 안줏감으로 낙지볶음, 연포탕, 갈낙탕, 산낙지회 등이 있다. 이에 곁들여 얼큰한 쇠고기전골과 김치전골을 시켜도 별미다.

음식은 주인의 정성이 담긴 손맛이 깃들어야 한다는 김씨의 주장대로, 어느 것이든 간이 흠뻑 밴 깊은 맛이 있다. 토하젓과 황석어젓, 굴젓 등 젓갈류와 구수하게 무쳐내는 나물들, 칼칼한 된장뚝배기를 곁들인 밑반찬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음식모임을 문의해오면 김씨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떡갈비백반에 안주나 몇 가지 올리면 되지 뭔 특별한 음식이 있겠느냐”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음식보다는 앉을 자리부터 걱정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호남 출신의 국회의원들과 후원단체들의 음식모임을 비롯해 공공기관의 기관장들, 금융계와 법조계 저명인사들과 젊은 직장인들의 회식과 동창모임이 줄을 잇는다.


나도 주방장/ 목포집 떡갈비

빚어 먹는 소갈비와 등심

준비물 쇠고기 갈비살과 등심(5 대 3 정도가 적당하다), 양념류(마늘, 생강, 배, 양파, 물엿, 참기름, 들기름, 소금, 후추)

쇠갈비살과 등심을 곱게 다진다. 기계에 가는 것보다는 칼로 직접 다지는 것이 더 제맛이 난다. 또 취향에 따라 다소 씹히는 질감이 나도록 크게 다져도 상관없다.

다진 쇠고기와 양념을 비비는 일이 중요하다. 마늘과 생강은 물론 배와 양파도 곱게 다져 참기름과 들기름, 물엿을 섞어가며 골고루 비벼주고 간은 간장보다 소금으로 짜지 않게 약간만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떡갈비를 비벼 즉석에서 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념이 된 떡갈비는 알맞은 그릇에 꼭꼭 눌러 담아 냉장고에 넣어 최소한 2∼3일에서 3∼4일간 숙성과정을 거친 뒤, 구울 때 알맞은 크기로 빚어 굽는다. 구울 때도 전자레인지나 프라이팬에 구우면 군물이 돌아 안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석쇠에 호일을 깔고 굽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서울 갈비맛의 모든 것

» 사진/조선옥 한우갈비.
서울 을지로3가역 네거리에 자리잡은 ‘조선옥’(02-2266-0333)은 그 역사가 줄잡아 70∼80년을 헤아리는 토박이 한우갈빗집이다. 해방 전부터 명성을 얻어온 곳으로 6·25전쟁이 나던 해, 지금의 주인 김정학(62)씨의 모친(작고)이 인수해 잠시 문을 닫았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문을 열어 김씨 집안에서만 3대에 걸쳐 50년 훨씬 넘게 이어온다.

이같은 내력을 말해주듯 23살 때 첫발을 들여놓아 52년을 근속하고 99년 여름 75살로 은퇴한 김계환 할머니를 비롯해, 19살 때 들어와 42년째 한우갈비를 굽고 있는 주방장 박중규(61)씨 등 ‘백전노장’들이 즐비하다. 조선옥 갈비맛은 곧 주방장 박씨의 손맛이고, 조선옥이 자랑하는 대구탕은 50년 넘도록 한결같이 국솥을 지켜온 김씨 할머니와 후계자로 지명받은 엄명옥(67) 할머니의 한결같은 정성으로 독특한 맛을 이어간다.

» 사진/주방장 박중규씨와 엄명옥씨.
이곳 갈비맛은 재료구입에서부터 시작된다. 개업 이후 한우갈비 이외의 것은 들여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 한우갈비를 대주고 있는 정승일(49)씨도 16살 때 처음 이곳에 갈비를 들고와 인연을 맺은 뒤 30이 넘게 갈비를 대주고 있다. 그래서 이곳 갈비맛은 50여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고, 굳이 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외곬으로 서울식 양념갈비만을 그대로 고집해오고 있다.

본래 살이 두텁지 않은 것이 특징인 한우갈비는 한 방향으로 길게 펼 수가 없어 있는 그대로 다듬어 날개처럼 뼈의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붙여놓고, 그래도 먹을 만큼 살이 모자란다 싶으면 덧살을 몇점 양념에 함께 잰다. 그래도 옛날 한우갈비보다 갈빗살 자체가 너무 연해져 들고 뜯는 맛이 예전같지 않아 오랜 단골손님들은 가끔씩 석연치 않은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진간장을 사골국물에 풀어 간을 맞춘 뒤 양파, 마늘, 흑설탕, 후추, 참기름, 통깨, 배즙 등을 넣은 양념장에 갈비를 푹 재어놓고 하루나 이틀쯤 지나 손님상에 내는데, 짭짤한 양념장맛과 담백하게 감치는 고유한 갈비맛이 서울갈비의 참맛을 실감케 해준다. 굽는 방법도 50년 전 그대로 주방에서 불조절을 해가며 알맞게 구워 접시에 담아낸다. 여러 사람분의 갈비는 몇 차례로 나누어 들여오는데, 진한 양념맛 탓인지 다소 식더라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객들의 이야기다. 지금의 조선옥 건물은 6·25전쟁 뒤 길이 넓어지면서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여다 새로 지은 것으로 역시 50년 넘은 고옥이다. 양념갈비 1인분 1만3500원, 육개장 1그릇 5천원.

‘음식이야기’는 앞으로 ‘자격있는’ 원조집을 찾아, 그 깊은 맛의 내력을 소개해 드립니다.


나도주방장/ 조선옥 육개장
입 안에서 고깃살이 녹는다?

조선옥의 또다른 맛은 뻘건 고추기름이 가득 덮인 육개장(대구탕)에도 있다. 고춧가루를 푹 고아놓은 듯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매울 것 같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감치는 깊은 맛이 난다. 살코기는 물론 정육점에서도 걷어내 버리는 간막이 힘살까지 푹 삶아 우거지처럼 입 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선배인 김씨 할머니의 솜씨를 10년 넘게 지켜보며 대물림을 했다는 엄명옥 할머니는 가정집에서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훌륭한 맛을 내, 집안 대소사에 요긴한 먹을거리로 내놓을 수 있다며 그 방법을 일러준다.

준비해야할 고기는 양지머리나 허벅지살 등을 기본으로, 갈비나 정육을 다듬고 남은 살과 간막이 힘살 등, 잡부위를 알맞게 섞으면 더욱 좋다(정육점에서 구입 가능).

되도록 큼직한 솥에 미리 뽑아놓았던 잡뼈를 곤 국물에 국거리를 안치고 한소끔 푹 끓여 처음 떠오른 기름을 한 차례 걷어낸다. 대파, 양파, 생강을 알맞게 넣고 굵게 간 태양초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솥뚜껑은 열어놓은 채 1시간 이상 푹 끓인다. 이때도 처음 떠오르는 탁한 고추기름은 알맞게 걷어내면 맛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

2시간쯤 끓이면 양파는 형체도 없이 흩어지고 힘살까지 흐물흐물 녹아 죽처럼 부드러워진다. 빨간 고추기름도 선명하게 밝은 빛깔을 띠며 매운기운이 누그러져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내게 된다. 다 끓인 뒤 소금간을 하고, 끓는 상태에서 떠먹어야 제맛이 난다.

 

60년 전 불고기맛은 이렇다!

» 사진/한일관 불고기.
서울토박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종로 ‘한일관’은 1939년 창업한 한식집이다. 불고기와 갈비탕의 명문집으로 3대에 걸쳐 62년째를 맞고 있다.

조흥은행 본점 앞(지금의 광교사거리)에서 자리잡으며 최고의 명성을 날렸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종각사거리 제일은행 본점 옆으로 새집을 짓고 옮겨앉은 지 30년 가깝다. 종로 한복판에서 주차걱정 없이 예약이 가능할 정도로 시설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 서울의 상징적인 한식집으로의 옛 면모는 여전하다.

한식메뉴에 생고기와 생갈비 같은 새로운 이름이 오르기 시작한 90년대 이전만 해도 한식점의 최고 메뉴는 불고기와 양념갈비만한 것이 없었고, 맑은 장국에 갈비가 1∼2대 들어가고 보들보들한 당면을 넣어주던 갈비탕은 곰탕이나 설렁탕을 능가했다. 가운데가 둥굴게 솟아오른 불고기판에 양념이 푹 밴 불고깃감을 수북하게 얹어놓고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쌈을 싸고, 불판에서 흘러내리는 달콤한 육수를 떠내 밥을 비비거나 당면과 냉면사리를 넣어먹는 즐거움은 40∼50대 중년층한테는 향수처럼 남아 있다. 또 그 시절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불고기와 김치는 한국의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별미였다. 60∼70년대까지도 한우는 대부분 농사일을 거들던 소여서, 지금처럼 비육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분이 적은 근육질의 한우쇠고기는 양념에 재 불고기로 내거나 탕을 끓이지 않으면 제맛나게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고기와 갈비맛에 고기를 재는 양념장맛이 크게 작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사진/주방장 박성순씨와 지배인 김동월씨, 육류담당부장 조명수씨(왼쪽부터).
한일관은 그 시절의 불고기와 갈비탕맛을 한결같이 지켜오며 정상의 자리를 잃지 않고 있다. 단골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찾아오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의 각료들과 이름난 기업의 총수들도 많고, 학교 동문 모임이나 친목회 등을 수십년씩 이어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객을 맞이하는 주인이나 직원들 역시 늘 낯익은 얼굴들이다. 지배인 김동월(55)씨는 26년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주방장 박성순(51)씨는 21년, 육류담당부장인 조명수(43)씨는 20년, 대부분의 찬모들도 10∼20년을 헤아린다.

쇠고기도 특별한 상차림이 아니면 지금도 충남 홍성지역에서 올라오는 한우고기로 양념갈비를 떠내고 불고깃감은 앞다리와 뒷다리살을 다듬어 쓴다. 야채와 과일즙을 혼합한 양념장을 다려 불고깃감을 비빈 뒤 하룻밤을 쟀다 낸다는데, 알맞게 씹히는 맛이 있고 달콤한 게 감치는 불고기맛이 옛맛 그대로다. 집에서 담그듯 2∼3일 익혀서 내는 빨간 깍두기와 김치맛도 기막혀 외국인들에게도 찬사를 듣고 있다.


나도주방장/ 한일관 갈비탕
더이상 담백할 수 없는 갈비탕

한일관의 명성은 담백한 갈비탕맛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갈비와 사태살을 넣고 푹 삶아 건져놓았다가 사골국과 갈빗국을 알맞게 섞은 탕국에 말아 진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한소끔 더 끓인 뒤, 열판에 얹어내는 갈비탕은 다 먹도록 따끈하게 식지 않고 담백하게 감치는 맛이 일품이다.

주방장 박씨에 따르면 갈비탕은 집에서도 제맛나게 끓일 수가 있다. 갈비의 기름을 알맞게 다듬어 사태살과 함께 2시간쯤 푹 끓여 건진다. 국물에 뜬 기름을 한 차레 더 걷어낸 뒤, 통마늘 몇알과 통무와 대파를 큼직큼직하게 툭툭 저며넣고 끓이며 진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렇게 탕국물이 완성되면 삶아놓았던 갈비와 사태살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 뒤 파와 후춧가루, 다진양념을 곁들여 맛을 돋우고, 찬은 깍두기나 김치면 족하지만 짭짤한 젓갈무침도 잘 어울린다.

갈비탕을 만드는 데에는 냄새가 없는 싱싱한 갈비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갈비의 질에 의심이 가면 처음 20∼30분 삶은 국물은 버리고, 다시 우려내면 한결 깔끔한 국물을 만들 수 있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삼을 넣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갈비탕의 제맛을 버릴 위험이 있다.

 

정직한 설렁탕은 뭔가 다르다

» 사진/마포옥 설렁탕.
마포옥(02-716-6661)은 서울 마포대교 입구에서 용강동쪽으로 200여m쯤 들어앉은 대로변에 있다. 1949년 창업해 햇수로 53년째를 맞고 있는 오래된 설렁탕집이다.

한우 사골국물에 양지살을 삶아내 맛을 돋운 맑은 탕국에 밥을 말고 양지살을 몇점 얹어내는 설렁탕맛이 시원하고 담백하기로 소문나, 수십년씩 이어오는 단골고객들로 자리가 가득 메워진다. 마포옥 설렁탕맛이 워낙 알려져 도처에서 유사한 마포설렁탕과 마포옥의 옥호를 내걸고 있지만 진짜 ‘마포옥’은 용강동 마포옥 한곳뿐이라는 것이 주인의 이야기다. 마포옥을 처음 창업한 이는 서운봉씨로 90년대 초 작고했고, 지금은 박봉순(66)씨가 서씨의 생존시 가게를 물려받아, 박씨대에서만 35년째를 맞고 있다. 탕맛은 물론 옥호와 분위기까지 옛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소명처럼 여기고 있다고 한다.

마포옥의 가장 큰 자랑은 역시 특이한 탕맛이다. 유난히 따끈한 국물은 첫 입맛부터 시원하다. 전혀 누린내가 없이 담백하면서 달착지근하게 감치는 맛은 아무도 쉽게 흉내낼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거부감 없이 탕 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울 수 있고, 그 느낌이 오래도록 남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박씨가 설명하는 ‘비결’은 매우 단순하다. 모든 재료를 정직하게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첫째 탕의 기본인 국물은 수입뼈가 아닌 싱싱한 국내산 사골을 매일 아침 들여와 핏물을 충분히 우려내고 첫번 삶은 국물은 부어버린다. 또 너무 센불에 뼈가 부서지도록 지나치게 고지 않고 3∼4차례로 나누어 알맞은 불에 여러 차례 삶아 국물을 한데 섞고 적절히 우러났다 싶을 때 뼈를 건져낸다. 그리고 탕에 넣는 쇠고기도 양지를 기본으로 차돌박이와 사태살을 국내산 생고기로 들여와 기름을 말끔하게 다듬어낸 뒤, 탕국물에 삶아 국맛을 돋우고 수육으로도 낸다.

» 사진/마포옥 주인 박봉순씨.
하지만 정직한 조리과정말고도 마포옥만의 고유한 노하우는 곳곳에 배어 있다. 밥은 따로 내지 않고 약간 꼬득하게 지어 양지수육과 함께 뚝배기에 안치고 국물로 3∼4차레 헹궈 국물과 같은 온도를 맞춰내기 때문에 국맛이 더 시원하고, 다 먹도록 밥알이 풀어지는 법이 없이 쫀득하다.

따라내는 찬과 양념도 그렇다. 다진양념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새까맣게 자줏빛을 띤 굵은 고춧가루를 넣는다. 가끔 불량 고춧가루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홍고추를 철망에 넣어 검은 자줏빛이 되도록 불에 구운 뒤 씨를 제거하고 굵게 가루를 낸 것이다. 그래야만 국에 풀었을 때 맵지 않고 시원하면서 담백하고, 뒷맛이 고소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익혀내는 깍두기와 배추김치말고도 하루 2∼3차례 무쳐내는 배추겉절이와 쪽파겉절이는 마포옥만의 고유한 노하우를 담고 있다. 톡 쏘듯 상큼한 쪽파와 싱싱한 배추속잎이 신선한 양념맛과 어우러져 입 안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설렁탕 1그릇 6천원, 수육 1만7천∼2만원.


나도주방장/ 쪽파겉절이
탕맛을 돋우는 상큼함

마포옥의 탕맛과 함께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이 쪽파겉절이다. 겉절잇감으로 알맞은 쪽파를 시세에 상관없이 매일 20∼30단씩 들여와 깨끗하게 다듬어 소금에 살짝 절인 뒤, 고추양념에 버무려 놓았다가 낸다. 톡 쏘듯 자극적이면서 상큼한 맛이 텁텁하게 기름기가 감도는 입 안을 말끔하게 씻어주며 탕맛을 한결같이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고기를 굽거나 탕국을 끓일 때 곁들이면 좋다. 주의할 점은 파를 절일 때, 소금을 약간만 뿌려 파란 잎이 순만 죽을 정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금을 2∼3회 나누어 파의 상태를 보아가며 간을 한다. 또 고추는 말리지 않은 고추와 풋고추를 마늘 1∼2쪽과 함께 갈아 찹쌀죽에 풀어 비비는데, 이때 싱싱한 새우젓을 알맞게 넣으면 더욱 신선한 맛을 내준다. 만들어놓고 2∼3시간이 지나면 김치처럼 익어 상큼한 제맛을 잃게 된다.

 

60년대를 주름잡은 수원왕갈비

» 사진/양념갈비가 제격인 수원왕갈비.
수원은 조선왕조 22대 임금인 정조(1776∼1800)가 재위20(1796)년에 완공한 아름다운 성곽도시로, 군사적으로는 물론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왕조의 위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여세가 정조 이후에도 이어져 서울 이남의 주요한 요새로 자리잡으면서 음식문화도 개성 못지않은 내력을 지녀왔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는 크게 붐을 이룬 수원왕갈비의 위세가 이어져, 지금도 수원하면 갈비맛을 떠올리게 한다.

1인분 1대면 족할 정도로 푸짐한 것이 특징인 ‘수원왕갈비’는 그 지명도를 꾸준히 이어오며 웬만큼 알려진 한식점들은 대부분 수원왕갈비를 주메뉴로 내세우고 있고, 손꼽을 만한 갈빗집만도 100여곳이 넘는다고 한다.

수원왕갈비의 진면모를 가장 뚜렸하게 들어낸 원조집으로 60∼70년대를 수원에서 살아온 중장년층들은 남문 앞, 팔달시장 입구에 있던 ‘화춘옥’을 꼽는다. 60년대에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장터골목이었지만 화춘옥 앞은 언제나 갈비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서울과 경인지역에서 줄지어 찾아오는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다.

숯불화덕에서 직접 구어 접시에 담아내는 갈비는 뼈길이가 한뼘씩이나 되고 살이 두툼하게 붙어 누구나 ‘왕갈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옛 고객들은 물수건이나 냅킨이 없던 시절에 엽서 크기로 썰어놓은 마분지로 입 언저리와 손을 닦아가며 열심히 뜯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수원왕갈비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화춘옥 갈비탕이다. 갈비를 다듬고 난 갈비마구리뼈와 갈비 주변살을 모두 한솥에 넣고 푹 삶아낸 진국에, 고기 반 국물 반으로 말아내던 푸짐한 갈비탕은 다진양념을 풀어 시원하게 떠먹는 맛이 가히 별미였다. 한때는 탕국을 즐겨했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찾아와 갈비탕 맛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전국에서 몰려드는 고객들로 한참씩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

» 사진/수원삼부자 주인 김수경씨 부부.
그러나 80년대 초 이곳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그 유명한 화춘옥은 문을 닫게 된다. 화춘옥의 주방을 물려받아 갈비맛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삼부자갈비집’(031-211-8959)이다.

수원삼부자갈비집 주인 김수경(63)씨는 3∼4곳 갈비집들이 경합을 벌이던 69년부터 영동시장에서 ‘갈비센터’를 경영하다가 화춘옥을 인수해, 두곳 주방의 노하우를 합쳐 독특한 맛을 내며 지금까지 32년째를 맞고 있다. 수원왕갈비의 붐이 일던 60년대부터 꾸준히 명맥을 지켜오며, 아들 재홍(36), 재욱(33)씨 삼부자의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수입갈비에 익숙해진 고객들의 불평을 덜기 위해, 가격을 차별해 따로 수입갈비를 마련해놓고 있는 것이다. 살이 얇고 볼품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래도 담백한 맛은 역시 한우갈비가 앞선다는 것이 김씨의 이야기다.

갈비탕 1그릇 5천원, 한우갈비 1인분(300g)2만원, 수입갈비(400∼500g) 1만8천원.

나도 주방장/ 삼부자 갈비탕
건더기만 봐도 흐뭇하네

삼부자 갈비탕은 옛 화춘옥 갈비탕의 맛을 이은 것이다. 매일 수십짝씩 들여오는 갈비를 다듬고 난 갈비마구리뼈와 곁살들을 한솥에 넣고 푹 삶아낸 갈비탕은 건더기만도 다 건져먹기 어려울 정도로 푸짐하다. 맑고 진한 국물이 시원하면서 담백하게 감치는 맛이 있고, 다른 곳에서 2∼3그릇 몫은 되는 양을 한 그릇에 담는 것이 특징이다.

집에서 갈비탕을 끓일 때에는 우선 차고 맑은 물에 갈비를 푹 담가 하루쯤 핏물을 충분히 우려낸다. 그래도 미심쩍으면 센불에 얹어 한바탕 끓어오를 무렵 처음 우러나는 국물을 한번 부어버려도 상관없다고 한다.

새물을 부어 푹 끓여 갈빗살이 알맞게 익었을 때 갈비와 덧살을 건져내고, 국물은 기름을 말끔하게 걷어낸 뒤 차게 식혀 간을 하면 그대로 냉면국물로 쓸 정도로 담백하고 감칠맛이 살아난다. 함께 넣었던 곁살은 먹기좋게 썰어 양념에 주물러놓았다가, 국을 낼 때 얹으면 국맛을 더욱 살려낼 수 있다. 파와 마늘 다진 것을 알맞게 풀고 후춧가루를 약간 얹으면 갈비탕 고유의 제맛이 난다.

한강 민물고기의 깊은 맛

» 사진/밑반찬을 고르게 차려낸 쏘가리매운탕.
팔당대교와 새 팔당터널로 이어진 고가차도에 가려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팔당유원지는 ‘조개울’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평창과 영월 등지에서 내려오는 뗏목들이 머물던 곳이다. 이같은 모습은 70년대 초 팔당댐이 착공되기 직전까지 이어져 왔다. 오성회관(031-576-0816)은 이곳 토박이 고 김순덕씨가 뱃사람들을 상대로 백반과 막걸리에 매운탕을 곁들여 내던 주막의 맛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곳이다.

본격적인 매운탕집으로 자리잡은 것은 1972년 댐공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 무렵 김순덕씨의 며느리 허길순(71)씨가 대를 물려받았고, 지금은 손자며느리 서혜경(44)씨가 운영을 맡아 3대로 이어진다. 줄잡아 60년을 헤아린다는 팔당매운탕촌의 원조집이다. 긴 내력만큼이나 팔당매운탕 특유의 토속적이고 순수한 맛이 특색있다.

팔당매운탕은 예로부터 광나루나 뚝섬매운탕뿐만 아니라, 여주나 이포나루 매운탕과도 차별되는 독특한 맛으로 손꼽혔다. 지금도 팔당댐에서 미사리로 이어지는 한강은 암석과 모래 자갈이 깔린 물살이 빠른 여울로, 쏘가리와 빠가사리는 물론 잉어와 각종 어족들이 수없이 잡히고, 그 생선들 모두 씨알이 굵고 맛이 뛰어나 왕실에까지 올려졌다고 한다. 오성회관의 ‘명물’ 또한 쏘가리회와 쏘가리매운탕을 첫손 꼽아왔고, 빠가사리와 잡어매운탕에 이어 90년대 초에 등장한 붕어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팔당매운탕맛을 가늠한다는 오성회관의 매운탕맛은 싱싱한 민물고기와 고추장맛,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서 펑펑 솟는 물맛에서 비롯된다.

» 사진/서혜경씨와 남편 오병노씨.
맑은 생수가 철철 넘치는 수족관에서 건져낸 싱싱한 쏘가리를 툭툭 토막내 냄비에 안친 뒤, 시원한 냉수를 한 바가지 붓고 고추장을 알맞게 풀어 무와 생강을 썰어넣고 한바탕 끓인다. 어느 정도 국물이 우러나면 수제비를 뜯어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추가루와 마늘을 얹어 마무리한다. 이렇게 완성된 매운탕을 손님상에서 은은한 불에 뜸을 들여가며 떠먹는다.

탕에 쓸 고추장을 따로 담가 묵혀가며 쓰는 것 이외에 별다른 비법이 없다지만 담백하면서 시원하게 감치는 깔끔한 탕맛은 한번 맛을 보면 쉽게 지워지지 않아 수십년씩 발길을 잇게 된다고 한다. 3대를 이은 서혜경씨는 이같은 고객들이 서울과 경인지역에만도 수없이 이어져 탕맛은 물론 반찬 한 가지도 옛맛을 흐트릴 수 없다고 말한다.

쏘가리매운탕 2인분 1냄비 4만5천원. 1kg에 9만원 하는 쏘가리회는 회를 뜨고 남은 머리와 뼈로 탕을 끓여주어 3인분이 넉넉하다. 쏘가리는 클 수록 맛이 뛰어나 2kg 정도 되는 것을 미리 예약하고 4∼5인이 합세하면 민물고기로는 최상의 진미를 만나볼 수 있다. 빠가사리와 잡어매운탕(2∼3인분) 3만5천원, 붕어찜(2인분) 3만원.


나도 주방장/ 원조집 풋고추장아찌
풋고추, 깔끔하게 먹어보라

원조집 매운탕맛은 깔끔한 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내는 장아찌류와 콩자반, 시원한 물김치와 파김치 등 탕맛에 꼭 맞게 짜임새 있다. 그중 사계절 인기있는 것이 잘 익은 풋고추장아찌다. 1년에 2번 초여름과 가을로 나눠 담근다는 풋고추장아찌는 매운 기운이 살아 있으면서도 상큼하게 입맛을 살려내는 개운한 맛이 단연 으뜸간다.

풋고추는 되도록 잘 익고 매운맛이 오른 싱싱한 것일수록 제맛이 난다고 한다. 담그는 방법은 간단하다. 굵은 바늘로 고추를 쿡쿡 찔러 간이 스며들 구멍을 2∼3개 내준 뒤, 항아리에 안치고 간장을 부어 담근 지 2개월쯤 지나면 먹기에 알맞게 익는다.

비결은 간장에 있다. 진간장에 식초와 설탕을 알맞게 풀어 바글바글 끓여 따끈한 상태에서 고추에 붓는다. 간장을 부은 뒤에도 1개월 주기로 3∼4차례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여 부어야 5∼6개월 두고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더욱 제맛이 난다. 통고추를 그대로 담아내도 싱싱한 맛이 있고, 잘게 다져 간장과 함께 담아내면 양념장으로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추어탕이 아니라 추탕이랍니다

» 사진/16가지의 진미가 녹아든 곰보추탕.
추탕(鰍蕩)은 추어탕의 서울말이다. 예로부터 서울사람들은 추어탕을 추탕이라 부르며 독자적인 맛의 맥락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곰보추탕(02-928-5435)은 서울시 대광고등학교 뒤편을 흐르는 용두천변에 자리잡고 있다. 1930년대 초 문을 열어 개업 70년을 맞고 있는 서울추탕의 원조집이다.

이제는 대부분 타계했거나 노령에 접어든 토박이 서울사람들이 종로에서 청량리행 전차를 타고 신설동이나 용두동역에 내려 5∼10분씩 걸어가 얼큰한 추탕맛을 즐기고 오던 곳이다. 지금은 하수천이 되었지만 용두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8년 옛집을 개조해 새집처럼 단장하고 내부도 납작한 한옥을 밝고 반듯하게 손질해 놓아 한결 깔끔해졌다. 하지만 주인과 음식맛은 옛 그대로여서 전혀 낯설지 않다.

» 사진/곰보추탕집 주인 조명숙씨.
글자 한자 차이지만 추탕은 추어탕에 비해 맛과 끓이는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남도풍의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채에 걸러 걸죽한 국물에 된장을 풀거나 소금 간을 한 뒤, 무시레기나 배추우거지를 넣고 끓여 슴슴할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맛이 특색을 이룬다. 취향에 따라 다진양념을 풀거나 산추가루를 얹어 먹는다.

추탕은 미꾸라지의 선택부터 다르다. 남도에서는 숙회용으로 쓰는 자잘한 미꾸라지를 골라 깨끗이 씻어 통째로 넣고 끓인다. 국물도 양지 삶은 육수나 사골국에 곱창 삶은 것을 섞어넣기도 한다. 간도 된장 대신 고추장과 소금으로 하고 고추가루를 풀어 뻘겋게 고추기름이 떠오르도록 끓여 마치 육개장을 연상케 한다. 얼큰하면서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국물맛이 특징이다. 매운맛이 유행했던 70년대에는 추탕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될 정도로 얼큰하고 시원해야 제맛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곰보추탕에는 양지 삶은 국물에 양지살을 뜯어넣고, 늙은호박, 대파, 마늘, 생강, 버섯, 토란줄기, 두부와 유부, 계란 등 16가지가 들어간다. 은은한 불에 하루종일 올려놓고 푹 뜸을 들여가며 뚝배기에 떠주는 걸죽한 진국은 미꾸라지 비린내가 전혀 없다. 육개장처럼 얼큰하면서 진한 국물과 함께 떠먹는 미꾸라지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그 진수라 할 수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양지살은 넣을 때 기름을 말끔하게 다듬어 국물에 뻘겋게 기름이 덮이거나 하지 않고, 지나치게 맵지 않게 끓인다는 것이다.


창업주인 정부봉(작고)씨의 얼굴 때문에 상호가 따로 없이 곰보집으로 불려오던 것이 그대로 옥호가 됐고, 며느리 조명숙(61)씨가 대물림하여 올해로 35년째를 맞고 있다.

나도 주방장/ 무짠지
얼음 송송, 무 둥둥

‘곰보추탕’의 무짠지는 70년을 한결같이 상에 오른 상징적인 찬이다. 얼음을 몇알 띄운 개운한 무짠지맛에 서울토박이들은 누구든 향수에 젖어든다.

무짠지 담그는 법은 의외로 손쉽다. 둥근 가을 무를 사람이 들어앉을 만큼 큼직한 독에 가득 채워넣고 소금을 한 푸대쯤 넉넉히 퍼부은 뒤, 무가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붓고 홍고추를 몇개 띄워 선선한 곳에 놓아두면 된다.

초겨울에 함께 담근 일반 동치미는 양력 설에 제맛나게 먹을 수 있지만, 짠지는 봄이 지나야 독을 연다고 할 정도로 익는 과정이 더디다. 그래서 가을에 새 짠지를 담글 때까지 두고두고 먹는다.

익은 무짠지는 채치듯 썰어 고추가루에 버무리면 장아찌처럼 상큼하게 상에 올릴 수 있고, 알맞게 썰어 찬물에 헹궈, 시원한 냉수를 붓고 얼음을 한두알 띄우면 개운하고 시원한 무짠지가 된다. 실파나 풋고추를 송송 썰어 얹고 고운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면 더 제맛이 난다. 특히 얼큰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입 안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데는 그만이다.

 

장어에 한방의 지혜가…

» 사진/일미정 장어정식.
자유로와 행주대교를 오가며 대부분 무심코 스쳐지나가던 행주산성은 영종도 신공항으로 나가는 방화대교가 완공되면서 좀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임진왜란 때 유명한 행주대첩의 사적지인 산성은 포장길로 올라 한강 하류의 강풍경을 감상하는 전망대처럼 단장됐고, 눈아래 펼쳐지는 경치는 한강 유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빼어나다.

행주산성은 이곳에 본을 둔 성(姓)씨만도 행주 기(箕)씨와 행주 은(殷)씨 행주 김씨와 행주 이씨 등 4∼5개 성씨에 이른다. 지금도 행주내동은 주민 80% 이상이 덕수장씨고 외동은 이씨들 집성촌으로 대부분 5∼6대를 이어오고 있어 경기도 사투리와 풍습이 여전하다.

강가로 나앉은 행주외동에 몰려 있는 민물장어집들은 대충 꼽아도 50여곳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한강유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규모의 장어촌이 드물다. 일미정(031-974-3636) 장어구이집은 이 마을의 실질적인 원조집으로 꼽힌다.

이 집은 1965년 간판을 내걸어 올해로 37년째를 맞고 있다. 내력이 오래됐을 뿐 아니라 시설과 상차림이 가장 뛰어난 집으로도 유명하다. 1983년 인척간에 대물림을 해 주인이 한번 바뀌면서 시설과 상차림을 개선해 원조집의 명성을 한 차원 높여놓았다.

» 사진/이병완씨와 백순미씨 부부.
주인 이병완(57)씨 부부는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어둑한 한옥을 밝고 산뜻한 별장처럼 단장했고 큼직한 통유리로 바깥 경관을 살려내 세련된 레스토랑처럼 가꿔놓았다. 음식을 먹기 전 으레 한판 벌이던 고스톱 판도 과감하게 걷어내고, 현대적인 감각의 전문음식점으로 20년 가깝게 터를 닦아 이제는 서울과 경인지역의 손꼽히는 장어구이집으로 튼튼히 자리잡게 됐다. 메뉴도 그냥 장어구이가 아닌 ‘장어구이정식’으로 바꿔, 찬을 골고루 곁들인 고급 접대상차림이 명성을 얻었다. 공항에 도착하는 바이어들과 외빈을 모신 차량들이 곧바로 이곳으로 찾아든다고 한다.

이씨는 한방에도 밝아 자신이 직접 처방한 한방 장어소스를 발라 장어구이를 구워낸다. 주방에서 10년이 넘게 구이를 맡고 있는 주방장이 정확한 솜씨로 구운 뒤, 따끈하게 달궈진 철판에 1인분씩 얹어내는 장어구이는 덜 익거나 타는 법이 없고 그 맛 또한 확실하다.

진간장은 색깔을 낼 때 조금 사용할 뿐이고, 당귀와 황기, 천초, 전궁, 백작약, 목향, 곽향, 감초, 숙지황, 계피육 등 9가지의 약재와 4∼5가지의 양념류를 넣고 만든 장어소스가 스며든 구이맛은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은은한 여운을 안겨준다. 식사 전후에 내놓는 한방장어죽도 맛이 부드럽고 영양가가 뛰어나 환자들의 회복식으로 유명하다.


고객 중에는 수십년씩 이어오는 70∼80대 단골손님들을 비롯해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많고, 최근에는 젊은 연인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새로운 고객층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장어정식 2인분(3마리 기준) 5만원이다.

나도 주방장/ 장어죽
죽먹고 힘냅시다!

» 사진/장어죽.
부드럽고 은은한 맛의 장어죽은 식사 전 수프처럼 먹어도 좋고, 식사 뒤 후식으로도 좋다. 특히 병후 쇠진한 몸을 추스르는 데 효과가 뛰어난 영양식으로 손꼽힌다.

일미정 한방장어죽은 일반 장어집들에서 끓여내는 맛과는 조금 다르다. 같은 한방제이지만 기운을 돋우거나 소화력을 촉진하는 것들을 알맞게 가려넣었고 그렇다고 한약냄새로 맛을 해치지도 않으면서 담백하고 고소하다.

약간의 천초와 백작약, 소화와 정장 작용을 하는 목향과 곽향, 황기 등과 함께 마늘, 생강 등을 적절하게 조제해 넣고 장어(또는 장어머리와 뼈)를 푹 삶아 장어육수를 만든다. 뽀얀 국물은 전혀 비리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나며, 여기에 찹쌀을 불려 빻은 가루를 넣고 미움을 쑤듯 손으로 저어가며 익혀낸다. 기호에 따라 들깨가루를 약간 갈아넣거나 당근과 시금치 등 야채를 잘게 썰어 넣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