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우주의료원에서의 적응 훈련… 중력테스트 도중 블랙아웃 되고 마침내 기절
⊙ FA-50 전력화한 16전투비행단, 한반도 유사시 美 해병 항공단 전방작전기지 역할
⊙ FA-50 전력화한 16전투비행단, 한반도 유사시 美 해병 항공단 전방작전기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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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대원과 함께한 高空 체험
4월 28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내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이하 항의원). 공군 최고 책임자의 ‘특별 승인’이 있어도 전투기를 타려는 민간인은 신체검사와 비행 적응 훈련(일명 항공생리 훈련)을 통과해야 했다. 1년 이내에 실시한 종합검진 결과 등을 미리 전달했다. 항의원은 공중근무자의 항공의무관리·항공의학적 치료 및 진료, 비행환경 적응 훈련, 항공우주의학 연구 등을 수행하는 공군 특별기관이다.
처음엔 쉽게 여겼는데 전투기 탑승 전(全) 과정을 함께한 조진수 교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문덕 항의원장(대령)은 “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하는 적응 훈련은 공중근무자가 3차원 공간에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신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군 측은 몸에 꼭 맞는 비행복과 군화를 제공했다.
신체검사를 올해 만 60세인 조 교수와 함께 통과했다. 김귀량 훈련2과장으로부터 적응 훈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가속도 내성강화 훈련, SD(공간정위 상실) 체험, 고공저압환경 훈련, 고압산소 치료, 야간시각 훈련, 비상탈출 훈련 등이었다. 먼저 저압실로 이동했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특수공간이었다.
박스 안의 공기를 빼 고고도(高高度·지상으로부터 7~12km의 높이) 상태처럼 만든 곳이다. 수킬로미터 상공(上空)으로 올라갔을 때 생기는 저산소증, 변압증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육·해군 헬기 조종사, 특수부대 요원들도 다 이곳을 거쳐간다.
저압실에 들어갔을 때 때마침 고공낙하를 하는 육군 특전사 대원과 해군 조종 장교 등 3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교관의 설명이 끝나자 저압실 문이 닫혔다. 혈중 질소를 없애기 위해 헬멧과 산소마스크를 쓴 상태로 30분간 대기했다. 100% 산소를 흡입함으로써 혈중 질소를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질소는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갈 때 여러 통증을 유발한다.
저압실의 공기는 빠지고 고도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풍선’을 통해 고도와 실내 기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5000피트(약 1.5km·1피트는 약 30.5cm), 1만 피트(약 3km), 1만5000피트…. 마침내 고도가 3만5000피트(약 10km)에 다다랐다. 에베레스트 정상(8848m)보다 더 높은 높이다.
심장 통증·찢어질 듯한 고막·발살바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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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산소증, 변압증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저압실. 육군 특전사 대원과 해군 조종 장교 등 30여 명과 함께 훈련했다. |
매달려 있던 풍선이 ‘빵’ 터질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기자의 아랫배가 아파왔다. 소장, 대장 등 공기가 들어 있는 장기(臟器)가 낮은 기압으로 몸속에서 부풀어 올라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 고고도 상황 체험이 끝나자 교관은 저압실의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2만5000피트 고도에 도달했을 때였다. 산소마스크를 제거하라는 교관 지시가 떨어졌다. 저산소 상태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1분이 지났을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2분이 지나자 얼굴이 부어올랐고 심장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졸음증상이 나타나며 눈이 저절로 감겼고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머릿속은 하얘져 갔다. 3분이 넘어가자 저압실에 있던 현장 교관이 산소마스크를 기자의 입에 다시 채웠다.
더 이상 진행하다간 위험상황에 빠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옆에 있던 조진수 교수는 기자보다 30초를 더 버텼다. 다른 군인들은 4~5분을 견뎠다. 평소 특수훈련을 받는 군인들도 저기압, 저산소 상황에서는 일반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산소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저압실 고도가 1만8000피트에 다다랐을 때 저압실이 소등됐다. 산소가 부족한 상황, 야간비행을 하거나 깜깜한 새벽 고고도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시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산소가 없으면 더 큰 시력 착각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고고도 상태에서의 적응 훈련이 끝나자 교관은 “이제 하강한다. 고도를 낮추겠다”고 했다. 첫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고 생각한 순간 고막이 찢어지는 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여객기를 탈 때와 차원이 달랐다.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갔다 내려온 것이다. 현장 교관이 발살바 호흡(Valsalva maneuver·코와 입을 막고 숨을 세게 불어 공기가 귀 쪽으로 역류하게 해 오므라든 고막을 정상으로 돌리는 조치)을 하라고 했다. 몇 차례 실시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통증이 이어졌다. 고막이 찢어지듯 아팠다. 저압실 고도를 지상으로 낮추는 수 분 동안 고통은 점점 더해갔다.
지상에 도달하자마자 저압실을 뛰쳐나왔다. 교관은 “한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잠시 쉰 뒤 다음 과정인 ‘비상탈출 훈련실’로 이동했다. 비행 중 조종 불능의 전투기에서 비상탈출하는 방법과 자세를 배웠다. 올 3월 30일 공군 소속 F-16 전투기가 비행 도중 경북 청송 지역에서 추락했다. 이때 전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2명이 사출(Ejection) 방식으로 비상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비상 상황, 탈출”이라는 교관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조종석 양다리 사이에 있는 탈출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몸이 4m 상공으로 튕겨나갔다.
지옥 같은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다음은 공간정위 상실 훈련(Spatial Disorientation Training). 일반인들은 공중에서 방향감각을 쉽게 잃는다. 고등훈련을 받은 전투기 조종사들도 구름이 많이 끼거나 기상상태가 나쁠 때 공간감각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순간의 착각은 곧바로 추락으로 이어진다.
조종석처럼 생긴 특수장치실로 들어갔다. 공중에 매달려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장비였다. 캐노피(Canopy·조종석 덮개)가 닫히자 전방 스크린에 실제 비행하는 듯한 화면이 떴다. 이윽고 각종 착각 화면이 떴다. 전투기가 상승하는데 하강하는 듯한 상황, 구름의 끝이 실제 지평선처럼 보이는 현상, 정(正) 자세로 비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45도 기운 상태로 날아가는 상황…. 10여 분이 지나자 기자는 방향과 공간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고 얼마 후 속이 매스꺼워지며 멀미가 났다. 공중에 떠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땅을 밟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됐다.
몇 가지 과정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을 받았다. 제일 힘든 과정임을 훈련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전투기가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상승-하강-앞뒤나 좌우로 선회할 때 조종사는 중력의 몇 배에 해당하는 압력을 받게 되는데 이때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단숨에 의식을 잃는다.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장비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해 보였다. 곤돌라처럼 생긴 것이 360도로 빙빙 돈다. 항의원은 2012년 미국의 항공우주 전문업체로부터 이 장비를 도입했다. 초당 가속률이 9G(중력의 9배)로, 2초 만에 15배(15G)의 중력을 신체에 가할 수 있다. 이는 80kg의 성인 남성이 승용차 1대를 드는 것과 같다.
훈련에 앞서 교관은 전투기 조종사 호흡법(L-1호흡)을 가르쳐줬다. 9G에 달하는 심한 중력을 받는 상황에서도 머리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호흡법인데, 피가 아래로 쏠리지 않도록 배에 힘을 ‘꽉’ 주고 3초간 성문(聲門·기관지의 양쪽 성대 사이에 있는 좁은 틈)을 닫았다가 1초 사이에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법이다. 짧은 시간에 체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조종사들은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장비를 ‘곤돌라’라고 불렀다.
블랙아웃 그리고 G-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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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마비되는 블랙아웃(Blackout)에 빠졌다가(왼쪽) 의식을 완전히 상실했다(중간). 휴식을 취한 후 호흡법을 다시 익히고 시도, 겨우 통과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교관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
“……….”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이런 꿈을 꿨다.
〈어, 내 몸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거야? 어디까지 추락하는 거지. 어어…. 분명 어디론가 떨어지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어, 저기 땅이 수직으로 서 있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아~~~~~~!〉
비명과 함께 ‘나’는 사라졌다. 시력이 마비되는 블랙아웃(Blackout)에 빠졌다가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지락(G-LOC·중력에 의한 의식상실·G-force induced Loss Of Consciousness)’ 상태에 빠졌다.
비행 중 급격히 기동(機動)하면 원심가속도가 발생한다. 이때 뇌 속의 피가 다리 쪽으로 일시에 몰려 조종사는 순식간에 실신한다. 지락에 걸리면 통상 15초 동안 의식을 완전히 상실(절대의식 상실)하고, 다시 15초가량 상대의식 상실에 빠진다. 회복되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공중에서의 지락은 곧 사망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항의원 관계자 모두가 웃고 있었다. “기절하는 게 당연하니 너무 염려 말라”고 했지만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교관은 “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아 머리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화면을 보니 3G도 되지 않아 실신했다. 뒤이어 훈련에 임한 조진수 교수는 6G 상태에서 20초를 버텼다. 박웅 공군본부 전력차장은 “가속도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참모총장이 허락해도 전투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박 차장은 ‘6G에서 20초간 지속’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휴식을 취한 후 호흡법을 다시 배워 시도했다. 2G 그리고 3G. 가해지는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윽~~~~하, 윽~~~~하.”
혼신의 힘을 다해 다리와 배에 힘을 주고 ‘L-1호흡’을 했다. 얼굴이 ‘찌그러지는’ 걸 느꼈다. 4G를 넘어설 무렵 다시 시야가 흐려지면서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때 교관이 큰소리로 “정신 차려! 호흡. 따라해. 윽~~~하, 윽~~~하”라고 소리쳤다.
6G 상태에서 10초, 15초, 마침내 20초가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곤돌라는 멈췄지만 훈련 조종석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교관의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공군의 모든 조종사는 3년마다 이곳에서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도 9G 상황에서 일정 시간 이상 견뎌야 조종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전투기는 그냥 타는 게 아니었다. 전투기에 오른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전장(戰場)에 나가는 일이었다. 항의원에서 만난 이건완 공군사관학교 교장(중장)은 “사람이 공중에 뜨면 판단력 등 모든 능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며 “대한민국 조종사는 이런 악조건을 모두 극복하면서 ‘영공 수호’의 임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비행 적응 훈련을 마치고 며칠 뒤 경북 예천 소재, 류영관 단장(준장)이 지휘하는 제16전투비행단(이하 16전비)에 ‘투입’됐다. 16전비는 2015년 보라매 사격대회 중고도 사격 분야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무장(武裝) 사격에서 뛰어난 작전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FA-50의 전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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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적응 훈련을 마친 취재진과 박문덕(왼쪽 다섯 번째) 항공우주의료원장을 포함한 관계자들. |
FA-50은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전투기다. 최대 마하 1.5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며 공대공·공대지 미사일과 일반폭탄, 기관포 등의 기본 무기는 물론 합동정밀직격탄(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과 지능형확산탄(SFW·Smart Fragment Weapon) 등 정밀유도무기를 최대 4.5t까지 탑재할 수 있다.
지상부대와 실시간 전장 정보공유가 가능한 고속 전술데이터링크로 긴밀한 합동작전 수행도 가능하다. 최첨단 전투기에 적용되는 레이더경보수신기(RWR·Radar Warning Receiver)와 디스펜서(CMDS·Counter Measures Dispenser System) 등이 탑재돼 있어 뛰어난 생존 능력을 갖췄다. 야간 공격임무 수행도 가능하다.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등에 수출됐다.
16전비는 2014년 FA-50 전략화를 위해 202전투비행대대(이하 202대대)를 재정비한 후 작년 12월부터 정상작전을 개시했다. 손태수 202대대장(중령)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FA-50은 영공 수호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손색이 없다”며 “202대대는 실전과 같은 훈련을 통해 전·평시 방공 및 공격 비상대기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16전비는 한반도 유사시 미 해병 항공단의 전방작전기지(FOB·Forward Operations Base) 역할을 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 4월, 미국 해병 1항공단 제12비행전대와 연합비행 훈련을 실시했다. 16전비에서 이륙한 FA-50 1기와 FA-18C 1기가 공중에서 적기(敵機)를 격추시키는 공대공(空對空) 요격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훈련을 주관한 신호재 16전비 항공작전전대장(대령)은 “유사시 함께 출격해야 하는 동맹군으로서 한미 양군의 우호증진에 기여하는 좋은 훈련이었다”고 했다.
16전비는 전투비행단이면서 조종사 교육도 맡고 있다. 통상 조종사는 임관 후 입문·기본·고등·LIFT(Lead-In Fighter Training) 과정 등을 거치면서 진정한 파일럿으로 거듭난다. 16전비는 조종사의 마지막 과정인 LIFT 과정을 맡는 교육대대를 두고 있다. 한 명의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는 오랜 기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순수 조종사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만 수십억 원에 달한다. 훈련용 비행기 가격까지 포함하면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6G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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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전술기동 훈련을 앞두고 류영관 제16전투비행단장(앞줄 왼쪽 네 번째) 등 비행단 핵심참모들과 함께 의기투합했다. |
12시30분 드디어 전투기에 올랐다. 엔진 점화 후 전투기 상태를 일일이 점검한 주재훈 대위는 관제센터와 각종 정보를 주고받았다. 북한 상공의 전투기 현황도 체크하는 듯했다. 13시 정각.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전투기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내달렸다. 민항기를 타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하 이상의 속도를 내는 FA-50은 단숨에 지상을 박차 올랐다.
비행 적응 훈련 받을 때 경험했던 여러 가지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우선 산소마스크와 좁은 조종석으로 인해 온몸이 갑갑했고 너무 빠른 속도에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기체(機體)의 민첩한 움직임에 속이 거북해 곧바로 구토할 것 같았다. 물론 참아야 했다. 통신장비로 주재훈 대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속도 좀 줄여주세요.”
“많이 안 좋습니까. 상황을 감안하겠지만 전술기동 훈련은 정상적으로 끝내야 합니다.”
“지금 어디로 날아가는 겁니까.”
“보안사항입니다. 대략 동해안 쪽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얼핏 지상을 내려다봤다. 포항 영일만처럼 생긴 해안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동해안 쪽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부터 전술 훈련을 시작합니다. 적기 역할을 해야 해서 상하, 좌우로 기동할 것입니다. G가 걸리니 배운 대로 호흡 제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주 대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투기는 왼쪽으로 급히 선회했다. 엄청난 압력이 온몸에 가해졌다. 양쪽 다리 쪽에 착용한 지-슈트(G-suit·비행 중 급선회나 급상승, 급하강 등 갑작스러운 중력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옷)에 공기가 급속히 채워졌다. 조종석 양쪽 손잡이 중 미처 잡지 못했던 오른손을 우측 손잡이에 갖다 놓으려 했지만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른손에 가해지는 엄청난 무게의 압력이란….
전투기는 다시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 얼굴에 열이 나는 듯했고 숨이 가빠졌다. 전투기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할 때마다 G가 걸렸다. 주재훈 대위는 “6G밖에 안 된다”며 “교수님이 탄 1호기는 7~8G까지 걸리고 있다”고 했다.
급성중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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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후 무사히 기지로 돌아온 취재진과 전투기 조종사들. 왼쪽부터 주재훈 대위, 기자, 조진수 한양대 교수, 이호형 소령, 권오건 대위. |
주 대위는 기자에게 “조종간을 넘겨줄 테니 전투기를 움직여 보라”고 했다. 왼쪽으로 살짝 당기자 기체가 그대로 반응했다. 아주 예민했다. 기지로 복귀하는 중에도 G가 걸렸다. 주 대위는 “경북 안동 상공을 지나 곧 예천 기지에 착륙한다”고 했다. 14시10분경, 무사히 기지에 착륙했다. 주 대위는 착륙 이후에도 조종석에서 각종 보고를 했다.
기자는 전투기 조종사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고생하지 않는 군인이 어디 있겠는가만 3차원 공간에서는 여러 적과 싸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우선 무서운 중력과 낮은 기압과 저산소와의 싸움이다. 둘째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적(敵)이다. 북한 김정은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쏴도 우리의 영공은 대한민국 공군이 있어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비행이 끝나고 밤늦게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 병원을 찾았다. 급성중이염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호전됐지만 이명(耳鳴)현상은 한동안 지속됐다.⊙
조진수 한양대 교수의 체험 정확히 30년 전인 1986년, 당시 서울 대방동 ‘항공의학연구원’은 공군사관학교와 함께 충북 청주로 이전했다. 현재 공사 캠퍼스 안에 있는 항공우주의료원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항공의학 연구 및 훈련기관으로 재탄생했다. 힘이 들었지만 항공 생리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 마침내 5월 2일 오전 11시경, FA-50·TA-50 혼용비행단인 제16전투비행단에 도착했다. 류영관 단장(준장)의 16비행단 소개를 들은 후 곧바로 전투비행복(G-슈트)을 착용했다. 우리가 비행할 FA-50이 주기(駐機)해 있는 격납고로 가는 동안 나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 듯했다. 비행은 예상대로 훌륭했다. ‘국산전투기 비행’의 꿈이 아름다운 강산 위에서 이루어졌다. 주조종사 이호형 소령이 “5G, 6G를 넘어 7G를 걸어도 괜찮습니까”라고 했을 때 오히려 흥이 났다. 문학적 소질이라곤 전혀 없지만 이렇게 외치고 싶다. “꿈은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 나는 공군의 꿈을 / 공군은 나의 꿈을 / 우리가 만든 전투기로 / 우리 강산을 지키는 / 우리의 꿈은 /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FA-50 비행체험을 허락해 준 공군참모총장과 착륙 시까지 안전하게 도와준 모든 공군 관계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