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거짓 예언자

醉月 2013. 10. 12. 01:30
거짓 예언자 : 하나냐(False Prophets: Hananiah)
예레미야 23:9-40

 

23장 9-40절은 시와 산문으로 된 원래는 독립적이었던 말들을 복합체로서 주제가 공통된다는 이유로 결합되어 배치된 본문이다.
J. 브라이트, 「예레미야」 국제성서주석 22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0), 285.

 

유다의 전 계층 가운데에서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예언자'로 불리웠던 사람들보다 예레미야와 화해할 수 없게 사이가 틀어졌던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여러 가지 명백한 암시들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예레미야서 안에서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뒤따라 나오는 본문들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예언자들과 정면 충돌하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9-12절의 시는 심판을 고지하는 신탁에 뒤따라 나오며, 도처에 만연한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한 충격을 표현하는 예레미야의 간략한 독백을 통해 이 시가 거짓 예언자들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3-32절의 본문은 직접 예언자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으로 매우 주목할 만 하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부분인 13-15절은 신탁의 문체로 되어 있는 시이다. 이 구절들은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 그들의 방종한 행동과 거짓말로 범국가적으로 도덕성의 상실을 촉진시켰다는 것과 이로써 그들은 멸망한 북왕국에서 배교자로서 공공연하게 활동했던 예언자들보다 더욱 사악하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점을 진술하고 있다.

 

역시 시로되어 있는 그 다음 단편인 16-22절은 신탁의 문체로 시작하여 신탁으로 마치는데 그 사이에 예레미야의 독백(18-20절)이 들어있다. 이 부분의 요점은 평화의 약속들로써 그 백성을 속이는 이 예언자들을 거짓 예언자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 순간을 위한 야웨의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라는 것과 만일 이 패거리들이 정말로 하늘의 회의에 참석하여 그 토의들을 들었다면 그들은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며 이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위로의 말들만 설교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결코 야웨가 파견한 자가 아님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산문으로 되어 있으나 시의 단편들도 들어있는 마지막 단편인 23-32절은 교화적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예언자들이 자신의 말들을 야웨의 말씀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듣고 마치 그것이 야웨로부터 직접 계시로 내려온 것인 양 가장하는 것과, 그들 자신의 메시지를 거짓 예언자들이 꾸밀 때에도 그것을 예언자의 연설 형태로 취급함으로써 실제로 야웨로부터 임한 신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과, 마지막으로 꿈들과 그들 자신의 공허한 사변들을 야웨의 말씀인 양 퍼뜨리고 다님으로써 백성을 죄로 인도하는 것을 책망한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갈등
예레미야는 다윗 왕조 뿐만 아니라 다른 예언자들과도 대립관계에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하나냐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목에 멍에를 메고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을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였다.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7:11). 그러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말을 뒤집어 엎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으므로 2년 안에 포로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공언하게 된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렘 28:2)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예레미야와 하나냐가 정반대에 서 있으면서도 모두 야웨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윌슨은 하나냐는 예루살렘 중심부 예언자로서 다윗 왕조신학을 토대로 체제옹호 발언을 한 셈이고, 예레미야는 변두리 예언자로서 체제붕괴의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본다. 신학적 전승으로 볼 때 하나냐는 예루살렘 정통 왕조신학과 시온전승을 이어받고, 예레미야는 출애굽-시내전승을 주축으로 하는 에브라임 신학전승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은 이념논쟁이라기보다는 사회계층간의 대립 양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Robert R. Wilson, Prophecy and Society in Ancient Israel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0), 248-250.
윌슨은 또한 예레미야와 하나냐는 사회 내의 다른 이익집단의 대표자인데, 하나냐는 예루살렘 궁중 지배계층을 대표하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사회체제의 붕괴와 전통 야웨신앙의 기강을 뒤흔드는 위험분자로 간주하게 되었고, 예레미야는 하나냐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아니라고 그의 권위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피차 상대방의 권위와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 하에서 상대방을 비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Robert R. Wilson, Sociological Approaches to the Old Testament. Guide to Biblical Scholarship. Old Testament Serie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79.
버크 롱은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을 윌슨과는 다른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예레미야와 그를 박해한 예루살렘 방백들과는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그를 반대한 동료 예언자들과는 그 같은 계층간의 차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와 하나냐가 도무 동일한 용어와 문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똑같이 왕 앞에 나아가 신탁을 선포하기도 했고, 아나돗 출신 예레미야와 기브온 출신 하나냐는 모두 지방 출신이라 가족이나 기타 신분상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가 모두 동일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Burke Long, "Social Dimensions of Prophetic Conflict," Semeia 21 (1981), 43.
버크 롱은 또 현재의 성서 본문이 신명기 사가에 의해 편집되었고 여기에는 이미 예레미야가 참예언자라는 전제하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냐의 진정한 입장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Burke Long, "Social Dimensions of Prophetic Conflict," Semeia 21 (1981), 55. 캐롤도 야웨전승 면에서는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구분을 할 수 없지만 신명기 사가의 입장에서 볼 때, 2년 안에 포로지에서 돌아오리라는 하나냐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거짓 예언자가 되고 재난을 선포한 예레미야는 참예언자가 된 것이라고 본다. R. P. Carroll, When Prophecy Failed. Cognitive Dissonance in the Prophetic Traditions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79), 195.(장일선, 「히브리 예언서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104.에서 재인용)

롱은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립은 이념적인 대립이라기보다는 사회집단의 정치-사회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본다.
한편 갓월드는 버크 롱이 윌슨의 이론을 부당하다고 배격한 것을 잘못이라고 본다. 오히려 자주권파(하나냐)는 지배게층이 국가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들이 망하면 국가가 망한다고 보았으나, 공존파(예레미야)는 지배계층은 국민의 이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몰락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면 백성들에게는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본다.
Gottwald, "Problems and Promises in the Comparative Analysis of Reilgious Phenomena," 108.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임태수, "누가 참이며, 누가 거짓 선지자인가," 「목회와 신학」 1997. 5, 54-61.
예언자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왕상 17:14-24, 왕하 5:8-14). 거짓 선지자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성서는 여러 곳에서 경고하고 있다. 신명기 13:1-3

1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3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이나 마태복음 7:22-23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등이 그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사단, 마귀, 귀신의 능력을 힘입어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다.

참 선지자들은 꿈, 환상, 게시를 받아 예언하였다(사 6:1-13, 겔 1:1, 암 1:1). 거짓 선지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용하여 "꿈에 계시를 받았다", "환상을 보았다", "계시받았다"라고 말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거짓 선지자일수록 이러한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신 13:1-3, 겔 13:6-9).

구약이 말하는 거짓 선지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렘 28:9)에서와 같이 예레미야가 가장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참 선지자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평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있다고 호도하고 민중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냐가 거짓 예언을 한 이유는 당시의 권력을 잡고 있는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짓 평화에 대한 비판은 아모스(6:3, 9:10), 미가(3:5, 11), 에스겔(13:10) 등도 하였다.

예수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옳은 일을 해서 받는 칭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떠난 사람들, 악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하고 그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하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예언하지 않앗던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의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라고 사람들을 속인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방법을 이렇게 폭로하였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렘 14;14)

참 선지자들은 야웨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바알 등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기도 하였다(렘 2:8, 23:13). 이스라엘에는 바알과 야웨를 동시에 섬기는 종교혼합주의가 일찍부터 상존해 있었기 때문에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것이 곧 야웨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되는 현상이 있었다(왕상 18:20-24).

참 선지자들과 달리 거짓 영이 시키는대로 거짓 예언을 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아람으로부터 빼앗기 위하여 전쟁의 계획할 때 선지자들에게 자문을 구하자 400여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영을 받아서 아합에게 그 성을 주께서 주실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한 바 있다.

참 선지자는 자기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면 되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처럼 자신을 가장을 해야만 했다. 자기의 모습이 탄로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슥 13:4)

참 선지자들은 정의를 외치고 정의의 길을 걸으면서 불의와 불법, 악행을 꾸짖고 고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반해 거짓 선지자들은 정의의 길을 걷기는 고사하고 스스로 불법과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이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이 성전 안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고발하였고(렘 23:11), 예수는 거짓 선지자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고발한다(마 7:22-23).

참 선지자들은 물질에 대해 초연한 반면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 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속이기도 하고 위협도 하면서 재물을 갈취한다. 뇌물을 받고 예언한 경우를 느헤미야의 고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가는 뇌물을 받고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행태를 고발하였다(미 3:5, 11).
참 예언자의 예언은 분명히 성취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참 예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문서 선지자들의 예언이 좋은 에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한 평화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서는 거짓 선지자의 가장 큰 특징으로 예언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든다(신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