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죽은후의 명성이냐, 눈앞의 한잔술이냐´
醉月
2010. 8. 11. 09:04
"가을바람 불면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네"
고영이 그의 손을 잡고 슬퍼하며, “나 역시 그대와 남산의 고사리를 뜯고 삼강의 물을 마시기를 원할 뿐이라네.”라고 하였다.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자 오중(吳中)의 줄풀나물․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했다. “인생살이 마음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이 귀중한데, 어찌 관직에 얽매여 수천 리 길을 다니면서 높은 관직을 바라겠는가?”라고 하고서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추풍가(秋風歌): 일명 思吳江歌라고 함)>를 지었다.
秋風起兮佳景時(추풍기혜가경시), 가을바람이 일어 뛰어난 경치가 펼쳐질 때,
吳江水兮鱸正肥(오강수혜로정비). 오강의 물엔 농어가 살이 오르네.
三千里兮家未歸(삼천리혜가미귀), 삼천리 길을 다니며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恨難得兮仰天悲(한난득혜앙천비). 얻기 어려운 것이 한스러워 하늘을 올려보니 슬퍼지네.
장한의 고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진(晉)대 팔왕(八王)의 난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장한은 팔왕의 난이 진행되는 와중에 제왕(齊王) 사마경이 잠시 정권을 잡아 낙양(洛陽)에 있을 때 높은 관직을 지냈었다. 사람의 욕심이 과하면 이욕에 눈이 멀어 앞뒤좌우를 돌아보지 않게 되기가 쉬운데, 그는 ‘순갱로회’라는 핑계로써 과감히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화를 피하게 된 것이다.
당시 사마경은 사마애(乂)․사마영(穎)․사마옹(顒)과 합심하여 독단적인 조왕(趙王) 사마륜(倫)을 몰아내었지만, 그 또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독단으로 행하였기에 사마애, 사마영, 사마옹이 연합하여 그를 죽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세설신어․식감(識鑒)≫에, “이윽고, 제왕이 패하자, 당시 사람이 모두 그가 조짐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俄而齊王敗, 時人皆謂爲見機.)”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고향의 ‘순갱로회’로 인해 화를 면하게 되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견지명을 가졌다기보다는 ‘이욕(利慾)’에 눈멀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돌볼 수 있었던 경우라고 여겨진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당랑포선(螳螂捕蟬·사마귀가 매미를 먹이로 삼아 노리고 있는 뒤에는 그 사마귀를 잡아먹으려는 참새가 있고, 그 참새 뒤에는 참새를 겨누어 활을 쏘려는 사람이 있음을 모름)’의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동보병’이라고 한 점에 관해서는, ≪세설신어․임탄(任誕)≫의 기록을 소개한다.
장계응은 마음대로 본성에 따라 행하여 예법에 구속을 받지 않았기에 당시 사람은 ‘강동보병’이라 하였다. 어떤 이가 “당신은 한때 마음대로 행하니 죽은 뒤의 명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오?”라고 하니, 대답하여 말했다. “나에게 죽은 뒤의 명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 즉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오!(使我有身後名, 不如卽時一杯酒!)"
‘가을전어’하면 이젠 가을철 명물이 된 듯 전국이 떠들썩하다. 전어가 왜 이토록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을에 접어들 무렵 바다의 수면을 온통 은빛으로 퍼덕이던 그 흔한 전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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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이에 못지 않은 ‘순채국과 농어회(蒓羹鱸膾)’가 유명한데, 이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뜻으로 쓰여서, ‘순로지사(蒓鱸之思)’,‘추풍사로(秋風思鱸)’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이 고사의 당사자는 장한(張翰)인데, 그는 이 고사 하나로 천고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진서(晉書),장한전≫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을 살펴보자.
그는 자가 계응(季鷹),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시문에 뛰어나고 함부로 행동하며 조그만 예법에 구속되지 않아서, 당시 사람이 그를 강동보병(江東步兵)이라 하였다……제왕 사마경(司馬冏)의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이 되었다.
제왕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장한이 고향 사람 고영(顧榮)에게 “세상이 시끄러운데, 재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네. 천하에 명성이 있는 자가 물러나기를 원한다해도 정말로 어렵다네. 나는 본래 산림속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다네. 그런데 자네는 미리 대비하기를 잘하고, 고민한 뒤에 지혜를 발휘하기에 뛰어나다네.”
이 고사의 당사자는 장한(張翰)인데, 그는 이 고사 하나로 천고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진서(晉書),장한전≫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을 살펴보자.
그는 자가 계응(季鷹), 오군(吳郡) 사람으로서, 시문에 뛰어나고 함부로 행동하며 조그만 예법에 구속되지 않아서, 당시 사람이 그를 강동보병(江東步兵)이라 하였다……제왕 사마경(司馬冏)의 대사마동조연(大司馬東曹掾)이 되었다.
제왕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장한이 고향 사람 고영(顧榮)에게 “세상이 시끄러운데, 재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네. 천하에 명성이 있는 자가 물러나기를 원한다해도 정말로 어렵다네. 나는 본래 산림속의 사람으로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다네. 그런데 자네는 미리 대비하기를 잘하고, 고민한 뒤에 지혜를 발휘하기에 뛰어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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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이 그의 손을 잡고 슬퍼하며, “나 역시 그대와 남산의 고사리를 뜯고 삼강의 물을 마시기를 원할 뿐이라네.”라고 하였다.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자 오중(吳中)의 줄풀나물․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했다. “인생살이 마음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이 귀중한데, 어찌 관직에 얽매여 수천 리 길을 다니면서 높은 관직을 바라겠는가?”라고 하고서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추풍가(秋風歌): 일명 思吳江歌라고 함)>를 지었다.
秋風起兮佳景時(추풍기혜가경시), 가을바람이 일어 뛰어난 경치가 펼쳐질 때,
吳江水兮鱸正肥(오강수혜로정비). 오강의 물엔 농어가 살이 오르네.
三千里兮家未歸(삼천리혜가미귀), 삼천리 길을 다니며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恨難得兮仰天悲(한난득혜앙천비). 얻기 어려운 것이 한스러워 하늘을 올려보니 슬퍼지네.
장한의 고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진(晉)대 팔왕(八王)의 난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장한은 팔왕의 난이 진행되는 와중에 제왕(齊王) 사마경이 잠시 정권을 잡아 낙양(洛陽)에 있을 때 높은 관직을 지냈었다. 사람의 욕심이 과하면 이욕에 눈이 멀어 앞뒤좌우를 돌아보지 않게 되기가 쉬운데, 그는 ‘순갱로회’라는 핑계로써 과감히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화를 피하게 된 것이다.
당시 사마경은 사마애(乂)․사마영(穎)․사마옹(顒)과 합심하여 독단적인 조왕(趙王) 사마륜(倫)을 몰아내었지만, 그 또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독단으로 행하였기에 사마애, 사마영, 사마옹이 연합하여 그를 죽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세설신어․식감(識鑒)≫에, “이윽고, 제왕이 패하자, 당시 사람이 모두 그가 조짐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俄而齊王敗, 時人皆謂爲見機.)”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고향의 ‘순갱로회’로 인해 화를 면하게 되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견지명을 가졌다기보다는 ‘이욕(利慾)’에 눈멀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돌볼 수 있었던 경우라고 여겨진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당랑포선(螳螂捕蟬·사마귀가 매미를 먹이로 삼아 노리고 있는 뒤에는 그 사마귀를 잡아먹으려는 참새가 있고, 그 참새 뒤에는 참새를 겨누어 활을 쏘려는 사람이 있음을 모름)’의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동보병’이라고 한 점에 관해서는, ≪세설신어․임탄(任誕)≫의 기록을 소개한다.
장계응은 마음대로 본성에 따라 행하여 예법에 구속을 받지 않았기에 당시 사람은 ‘강동보병’이라 하였다. 어떤 이가 “당신은 한때 마음대로 행하니 죽은 뒤의 명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오?”라고 하니, 대답하여 말했다. “나에게 죽은 뒤의 명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 즉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오!(使我有身後名, 不如卽時一杯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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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채국 |
장한의 ‘순갱로회’는 곧 ≪세설신어≫의 이 고사와 호응하여 세상의 이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의 방달한 성격이 부각되어 큰 영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강동보병’은 곧 위진시기 주당의 하나인 완적(阮籍)이 보병의 주방에 술 300근이 있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보병교위(步兵校尉)’를 자청하게 된 것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나에게 죽은 뒤의 명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 즉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오!”라는 풍격은 이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백은 <행로난(行路難)> 제3수에서,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또한 “나에게 죽은 뒤의 명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 즉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오!”라는 풍격은 이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백은 <행로난(行路難)> 제3수에서,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오중의 장한이 달생을 말했는데,
가을바람에 갑자기 생각나서 강동으로 돌아갔네.
또한 생전에 술 한잔을 즐겨야지, 죽은 뒤 오랜 명성이 무슨 필요가 있나?
君不見, 吳中張翰稱達生, 秋風忽憶江東行(군불견, 오중장한칭달생, 추풍홀억강동행).
且樂生前一杯酒, 何須身後千載名(차락생전일배주, 하수신후천재명).
라고 하였는데, 이리하여 장한의 고사는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시의 소제로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죽은 뒤의 명성이 중요할까? 눈앞의 한잔 술이 중요할까?
또한 생전에 술 한잔을 즐겨야지, 죽은 뒤 오랜 명성이 무슨 필요가 있나?
君不見, 吳中張翰稱達生, 秋風忽憶江東行(군불견, 오중장한칭달생, 추풍홀억강동행).
且樂生前一杯酒, 何須身後千載名(차락생전일배주, 하수신후천재명).
라고 하였는데, 이리하여 장한의 고사는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시의 소제로 활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죽은 뒤의 명성이 중요할까? 눈앞의 한잔 술이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