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전투기의 새 지평을 열다
MiG-31 폭스하운드(Foxhound)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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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6일, 소련 방공군 소속의 벨렌코(Viktor Belenko) 중위가 전투기를 몰고 망명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소련을 탈출해 일본의 하코다테 공항에 도착한 후, 미국행을 요구한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보안 당국이 직접 나섰을 만큼 커다란 소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사건이 크게 이슈화된 것은 벨렌코가 대단한 거물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타고 온 MiG-25 때문이었다.
1970년 초부터 일선에 배치된 MiG-25는 요격이 불가능한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최고의 전투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서방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소련의 최신 전투기를 분석할 기회를 갖게 된 미국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즉시 돌려달라는 소련의 요구는 무시되었고 본토에서 달려온 미국의 기술진들이 두 달 동안 MiG-25를 뜯어보며 철저히 조사한 후에 반환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정부에 보고한 결론은 “단지 몰라서 두려워했을 뿐 결코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분석대로 MiG-25는 오로지 고고도로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능력을 보유한 요격기일 뿐, 여타 성능은 기대 이하였다. 실제로 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국지전에서 정찰 임무에 투입된 시리아군 소속의 MiG-25들은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이스라엘군의 F-15에 격추당하곤 했다.
그런데 MiG-25의 이런 약점은 당연히 직접 운용 중인 소련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서방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정도 성능으로는 공대공 전투에 어려움이 많다는 자체 평가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결국 벨렌코의 망명으로 베일이 벗겨지긴 했지만 이미 소련은 이 사건이 벌어지기 오래전부터 새로운 후계 요격기의 개발에 들어가 1년 전인 1975년 초도 비행에 성공한 상태였다. 바로 MiG-31 폭스하운드(Foxhoun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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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가 넓어서 중시된 성능
MiG-31은 한마디로 소련의 영공 방위에 최적화된 요격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ICBM 등의 등장으로 역할이 많이 감소되었지만 미국의 전략 폭격기 전력은 소련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고 당연히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연구되었다. 지금은 상당 부분을 지대공 미사일이 담당하지만 전통적으로 폭격기 요격 임무는 전투기들의 몫이었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폭격기도 전투기에게는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샐 틈 없이 전투기를 배치하기에 소련의 국토는 너무 넓었다. 그래서 소련군은 주요 거점에 전투기를 분산 배치해 놓고 있다가 관할 지역으로 미국 폭격기의 내습이 확인되면 순식간에 치고 올라 목표물까지 고속으로 날아가 요격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실 요격은 전투기의 일반적인 임무지만 소련은 본토 방어를 위해 여타 기능이 생략되더라도 철저하게 이 임무에 특화된 별도의 기체를 오래전부터 운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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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장할 당시 서방에서 제공전투기(공중전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기)로 생각했던 MiG-25도 그러한 요격기 중 하나였다. 문제는 미국의 폭격기를 잡기 위해 고속비행과 상승 능력을 위주로 개발하다 보니 그 외의 기능은 무시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초 공격에 실패하면 기체를 급속 선회하기 어려워 다음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였다. 또한 적 전투기와 공대공 전투를 벌여야 할 경우 고속으로 도망가는 것 외에는 마땅한 작전이 없다는 자조까지 나왔다.
분명히 소련은 MiG-25의 이러한 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MiG-25가 정식으로 배치되기 이전인 1968년부터 YE-155MP로 명명된 개념 연구를 시작으로 후속기 개발을 개시한 상태였다. 그리고 초도 비행 성공 직후인 1975년부터 MiG-31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양산이 시작되어 1981년부터 일선에 본격 배치되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MiG-25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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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전투기의 역사를 바꾸다
이러한 개발 과정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외형으로 말미암아 MiG-31을 MiG-25의 단순 개량형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본토 방공이라는 임무에 특화되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급이 다른 새로운 전투기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소련 최초의 4세대 전투기라는 정의만으로 모든 설명이 된다. 한마디로 소련 전투기의 위상을 완전히 바꾼 기념작이었다.
최대속도는 마하 2.83으로 MiG-25보다 조금 느리지만 MiG-25는 더 이상 전투용이 아닌 정찰용으로 사용되므로 MiG-31이 현재 가장 빠른 전투기다. 물론 과거와 달리 속도가 전투기 성능을 판가름하는 제1지표는 아니지만 마하 3에 근접한 이 최고속도는 MiG-31이 유사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속도는 조금 줄었지만 항속거리를 비롯한 여타 비행 성능은 MiG-25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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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F6 터보팬 엔진으로 가동 효율을 높인데다가 외부에 2개의 보조 연료 탱크까지 장착하면 최대 5,400k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이는 MiG-25의 약 두 배에 해당되는 거리로 그만큼 다양한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LERX(Leading-Edge Root Extensions)를 장착해 양력이 증대되었고 주익 앞전에 플랩을 추가해 기동력도 향상되어 경우에 따라 근접 공중전도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기체가 커서 선회력 등이 좋지 않고 고속 비행에서는 기동력이 저하되지만 근접 공중전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MiG-25와는 확연히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뒤에 설명할 것처럼 각종 항전 장비 덕분에 그동안 소련 전투기의 약점이었던 BVR(Beyond Visual Range) 같은 원거리 공대공 전투능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사실 현대 공중전에서 근접전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벌어지므로 멀리서 상대를 발견하고 먼저 공격하는 것이 절대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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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장착된 신기술
MiG-31의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가장 대표적인 기술이 세계 최초로 전투기에 탑재한 위상배열 레이더다. 무게가 1톤에 이르는 자슬론(Zaslon)-M 레이더는 지금 기준으로는 구형이라 할 수 있는 수동위상배열 방식이지만 탐지거리 200km, 추적거리가 120km에 이르는데다 룩다운 기능이 있다. 지상 관제소와 편대를 이룬 4기의 MiG-31이 데이터를 링크하면 간이 조기경보기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대단하다.
또한 기수 하단에 수납식으로 장착된 IRST(적외선 수색추적장치)를 이용하여 레이더로 불가능한 영역의 탐색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진공관까지 일부 사용했던 아날로그 방식의 MiG-25와 비교하면 전장 분야에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이처럼 성능이 향상된 레이더와 디지털화된 사격통제장치가 연동되어 단거리용 A-11 외에 R-77M, K-100 같은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운용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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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후기형은 기능이 향상된 ECM, EW 장비를 장착하여 일부 대전자전(ECCM, Electronic Counter-Countermeasures) 임무와 SEAD(방공망 제압)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지상의 관제에 의존했던 이전의 소련제 전투기들과 달리 능동적으로 공중전을 벌이는 게 가능해졌다. 이는 경우에 따라 지상 관제소의 통제 영역 밖까지 멀리 날아가 적의 폭격기를 막아내야 하는 장거리 요격기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었다.
이처럼 MiG-31은 서방의 최신 전투기와 비교해도 결코 꿀리지 않을 만큼 성능을 향상시켰지만, 구조적으로 뒤처진 소련의 전자산업 때문에 장착한 각종 장치의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체 재질 중 강철의 비중을 줄인 대신 티타늄과 알루미늄 비율을 대폭 늘렸으나 최대이륙중량이 전투기로는 사상 최대인 46톤에 이르렀다. 13톤 정도 폭장이 가능한 F-111의 최대이륙중량이 45톤이니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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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될 자부심
1981년부터 본격 배치되기 시작한 MiG-31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Su-27, MiG-29와 함께, 그동안 성능이 뒤처진 것으로 평가되어온 소련 전투기의 위상을 대폭 올려 놓았다. 한국전쟁에 등장한 MiG-15가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이들 전투기의 등장 이전까지 소련제 전투기는 일반적으로 기체가 작아 빠르고 날렵하지만 한정된 임무에만 투입할 수 있었다. MiG-31은 바로 그러했던 소련 전투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선구적 기종이었다.
그런데 이후 해외에 대량 공급되어 인기작이 된 Su-27, MiG-29와 달리, 500여 기가 생산된 MiG-31은 소련만 사용했고 현재는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카자흐스탄의 30여 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러시아가 운용 중이다. 러시아는 Su-27과 절반씩 나누어 영공을 지키고 있다고 할 정도로 MiG-31을 귀중한 자산으로 취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 공군이 운용 중인 최고의 전투기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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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작이라 할 수 있는 MiG-25가 여러 나라에서 운용되었고 냉전 종식 후 무기 판매에 적극적이었던 러시아의 행보를 고려한다면 특별히 MiG-31의 대외 수출에 제한을 두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최신 개량형은 지상 공격도 가능할 만큼 성능이 향상되었지만 기본적으로 MiG-31은 영공 방위에 특화된 요격기여서 소련(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과한 기종인데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과거의 전투기가 되었다.
사실 동시대에 등장한 여타 4세대 전투기들과 비교할 때 실전 기록이 없는 MiG-31이 알려진 것만큼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주기적인 개량을 거쳐 2030년까지 약 200여 기를 운용할 계획을 세울 만큼 상당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물론 냉전 시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어지간한 성능으로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음을 감안할 때 MiG-31에 대한 러시아의 자부심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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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
전장 22.69m / 전폭 13.46m / 전고 6.15m / 최대이륙중량 46,200kg / 최대속도 마하 2.83 / 항속거리 3,000km / 작전고도 20,600m / 무장 GSh-6-23 23mm 기관포 1문, R-33, R-37, R-40, R-73, R-77 4기 장착 가능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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