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_06

醉月 2011. 3. 31. 08:46
<26> 덕유산에서 비상식을 먹다
예상치 못한 탈진·조난에 대비해 비상식량과 물은 꼭 챙겨야

    어느 날 산행에 나섰다가 지리산 내원골에서 산죽밭에 갇혀서 조난당할 뻔했던 일행과 필자(사진 왼쪽 첫번째) 모습.

 

가운데 반바지 차림은 내원동 촌장님이다.
산행 친구들 간에 내 별명은 공비반찬이다. 내가 싸들고 다니는 반찬이란 게 고작 젓갈과 함께 삭힌 매운 풋고추나 된장에 담근 깻잎, 간장에 삭힌 마늘과 마늘종 같은 염장 식품으로 무장공비들이 소지하여 이동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상하지도 않기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부피도 작아 장기산행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다음에 염분 섭취하기 쉬운 것들이어서 체력 유지에도 효과가 만점이다.

탄광에서 갱도 붕괴사고로 갱에 갇혔다가 15일 9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되어 당시로서는 매몰사고 최장 기록을 낸 양창선 씨가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간 무장아찌였다고 한다. 비상시는 예기치 않게 온다. 뒤처져가다 길을 잘못 드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찾아오는 신체적 이상으로 낙오되는 경우도 있고, 폭우나 폭설 등 기후 급변으로 인해 고립되는 경우도 있고, 낙석에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친구의 자일을 끊는 경우는 없다할지라도 산에서 예상할 수 있는 평화는 없다. 그래서 산을 과신하는 일은 금물이다.

당뇨를 앓는 사람이 혈당 수치가 갑자기 낮아져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특효약은 초콜릿이다. 당분을 공급해 줌으로써 일시적으로 혈당치를 높여 원상태로 몸을 회복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혈압인 사람에게 산을 오를 때 한 잔의 술은 효과가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산행에 탈진했을 때는 사탕보다는 염분을 섭취토록 해야 한다. 특히 죽염이나 아니면 짱아치를 먹이고 물을 섭취하게 한 뒤 그늘에서 쉬게 하면 이내 회복된다. 이렇듯 산은 경험이 위험을 피해갈 수 있게 한다.


산 아래 핀 꽃을 꺾었을 때
하얀 피가 흘러 내렸다
나는 깜짝 놀라 꽃을 보았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몰라주었던 이름, 오랑캐꽃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탈진했던 기억은 덕유산을 종주할 때였다. 돼지평전을 오를 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주저앉고 말았다. 아침을 시원찮게 누룽지로 먹고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비에 젖은 텐트를 짊어지고 종일 걸어서 향적봉을 오르는 데 그만 탈진하여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사탕 몇 알 뿐이었다. 반대편에서 또 기진한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곁에 앉았다. 그도 거의 탈진 상태였다. 서로 인사 나눌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미숫가루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봉지째로 내게 건넸다. 나는 답례로 사탕 몇 알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바위를 타고 흐르는 빗물에 개서 마셨다. 그때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빗속에서 탈진한 상태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산이 완료될 때까지 남겨야 하는 것은 비상식과 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산이다. 그러므로 비상식은 늘 남겨야 하며 개인적으로 지참해야 한다. 아무리 급박해도 이 둘은 집에 돌아올 그 순간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거다. 당일 산행이야 위험한 일이 발생할 이유가 별로 없지만 원거리 산행이나 큰 산을 갈 때는 철저한 준비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그저 산행을 아름다운 산보 정도로 인식해서는 곤란을 겪게 된다.

가지산을 얕보고 아침 해장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물통만 달랑 들고 올라갔다가 쌀바위를 지나 9부 능선쯤에서 허기를 만나 되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있다. 산을 다 오르지 못한 것은 실패가 아니다. 준비 없이 산을 올랐다는 것이 실패다. 이런 어리석은 일은 한 번이면 족하고 그 경험은 산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27> 금정산 고당봉이 울었다
자연의 장엄함과 등산의 뿌듯함 빼앗은 철제계단

    금정산 고당봉 철제 계단 앞에 선 필자.

 

철 구조물로 인해 금정산이 신령스러움을 잃어버렸다.
산을 다니면서 안타깝게 느낀 것이 있다. 먼저 들고 싶은 것은 임도와 양수발전을 위한 댐이다.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개설한 길은 임무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묵혀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 임도는 산사태의 주역으로 절개지가 방치되어 비만 오면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임도를 내는 것에만 우선했지 배수구나 절개지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아 폐가처럼 을씨년스럽다. 그리고 양수 댐은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 지 오래다. 돈 들여 산을 절단낸 우환덩어리에 불과하다.

두 번째는 자연휴양림이다. 이용은 되고 있다지만 절승지를 엄청나게 훼손해 가면서 개발을 해 놓았기에 안타깝다. 복원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어서 볼수록 더욱 마음이 아프다.

세 번째가 산에 설치한 계단들이다. 지리산 노고단, 지리산 주능, 월악산 영봉, 설악산, 영암 월출산, 진해 군자봉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산에 경쟁적으로 설치한 편의 시설들, 그저 관광객이 조금만 몰려도 편의를 제공한다고 무작정 투자하여 산을 훼손시키는 기막힌 일을 해 놓았다.

그런 명물이 부산에도 있다. 낯 뜨겁고 후안무치한 일은 금정산 상봉인 고당봉을 꽁꽁 묶어서 가둬 놓았다. 남쪽에서 오르는 길에는 철제 기둥에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놓았고 북쪽에는 계단에 이어 나선형 철제 계단을 설치했다. 고당봉을 오르면서 이렇게 편안하게 올라본 적이 없었다. 고당봉을 오르는 데는 어렵고 힘들었다는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오른 정상일수록 외경심을 갖게 되는데 수월하게 오르다보니 고당봉의 위엄도 사라져 버렸고, 고당할매도 산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망대에 써 붙여 놓은 글귀가 '고함지르지 마세요, 새들이 놀래요'였다. 자연을 위한다면서 산에 계단이라니. 탁 트인 고당봉에 전망할 곳이 없어서 억지 전망대를 설치했을까? 실소와 동시에 울화통이 터졌다.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다. 금정구에 있다고 해서 금정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산이다. 금정산은 전국의 산악인들도 자주 찾는 명산이며 등반대회도 자주 열린다. 시민들의 공청회를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거금을 들여서 만든 계단들은 고당봉의 정기를 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신령스러운 고당봉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 편안한 잠이 왔을까?


산 끝에 섰을 때 산이 울었다 깊이
언제부터 내 안에 살고 있었는지
광대뼈 불거진 키 큰 얼굴
꿈에서도 수만 번 올랐던 상봉이
어깨 들썩이며 깊이 울었다

한 때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북한산이나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 혈자리에 박혀있는 쇠말뚝을 제거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전국 명산의 상봉에 철제 계단이나 나무계단으로 온통 도배를 해놓고서 어찌 금수강산이라 자랑할 수 있겠는가.

산을 편안하게 오르고자하는 산악인은 없다. 이렇게 계단을 만든 사람들은 지리산 천왕봉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자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한 발 한 발 힘들게, 두 발로 아니면 네 발로 기어서 정상에 올라섰을 때 그때 비로소 등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0분 여를 사투 끝에 오르던 고당봉을 1분 만에 수월하게 오른다면 차라리 23층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는 것이 더 기쁨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인위적인 보조물을 딛고 오르는 산은 등산이라고 할 수 없다. 흙을 밟고 손으로 바위를 움켜쥐며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서 오른 산이어야 진정한 등산이다. 잘 살고 있는 산에다 돈을 들여서 산을 죽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동안 늘 지리산 주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젠 금정산 고당봉마저 빼앗겼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금정산 고당봉이 아파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쯤 그 고통이 사라질까 기다려 본다.

 

 

<28> 필봉산에 집을 짓다
공간의 고마움 깨닫게 해주는 텐트 속 하룻밤

    필봉 정상 좁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필자 일행들.

 

공간은 사용하기 나름 아닐까.
요즘은 장비의 발달로 아무 곳에서나 비박도 수월하게 하지만 예전엔 텐트를 짊어지고 산행을 할 때 날은 저물고 마땅한 거주 터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울 때가 많았다. 그때는 몸만 누일 평지만 있어도 감지덕지하였고, 땅을 골라 자리를 깔아도 등이 닿는 부위에 튀어나온 돌멩이는 불편했지만 그런 곳도 고마워했다.

그렇게 돌아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너무 넓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산행하다가 산골짜기 옛 토담집에서 민박을 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집과 딸린 방은 작았고, 작기 때문에 따뜻하였고 그래서 엄마 품속에서 잠드는 것처럼 숙면을 할 수 있었다.

옛집들은 방이 모두 작다. 거기에다 천장도 낮다. 온기와 생기를 밖으로 빼앗기지 않으려는 배려일까 출입문도 작다. 방은 말 그대로 우리 몸에 맞춰서 만들어졌다.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의 미덕으로 삼았던 집은 건축학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들이 있겠지만 상식적인 나의 생각으로 방은 거주공간이기보다는 일 하고 돌아와 자는 침실 기능이 주였으며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의 잠은 편안하고 행복감을 충분히 주었을 것이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건물은 높이 솟고 방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사람들의 요구가 있으니까 건설업자들도 자꾸만 큰 평형의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또 큰 평수가 나오니 경쟁적으로 집을 넓히려 한다. 집이 크다고 행복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집을 가꾸고 간직하는 것에 지혜를 최대한 발휘하는 이웃나라도 있다하지 않는가. 집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고 집을 지배하며 살지 않던가.


강을 넘어 먼데서 돌아 온 어미 새들이
집에 들어 깃으로 새끼들을 감싸고
날개 짓이 서툰 어린 새들은
가느다란 울음을 토해 젖 투정을 부렸다, 아
어쩌면 뒤돌아 볼 자리 없는 혼자인 새들은
누워서도 잠들지 못하고 더 깊어질 어둠
그 위에 피를 토해 새끼들을 먹였다

들은 이야기지만 집의 기운에 눌리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하고자하는 사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이유 없이 아픈 사람도 보았고, 음식점이 잘 된다고 확장하여 손님이 뚝 끊어진 우려 아닌 실제를 많이 보았다. 허름하고 비좁아서 사람들이 대기하던 때보다 자리가 늘고 깨끗해졌는데 도리어 손님은 없게 된 것은 커지고 깨끗해진 공간이 부담이 된 것이다.

산을 가다보면 거기에 있는 바위도 나무도 계곡도 산에 부합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우리에게는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적합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몰랐는데 크고 나니 집이 좁다는 것을 느꼈다.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졸라대는 아내를 달래고 아이들을 설득하여 아직도 어찌어찌 살고는 있지만 무더위가 찌는 여름에는 에어콘 하나 장만해 주지 못한 공간이 너무 비좁아 미안함이 솟는다.

그러나 4인 가족이 살기에는 적당한 넓이라는 생각을 갖는데 상대적으로 결핍을 느끼는 데야 어쩔 수가 없다. 집을 넓히기 보다는 마음을 넓히면 행복을 지속 시킬 수가 있다는 마음으로 말뚝처럼 한 곳에 늘어붙어 산다.

산에서 텐트를 치고 그 좁은 공간이라도 감지덕지하는 마음이라면 어떤 공간인들 넉넉해 보이지 않겠는가. 산에 들어 천막을 치고 자면 산은 거대한 나의 집이고 텐트는 나만의 방이 된다. 온 산이 나의 것이다. '우주는 공간으로 나를 포용하지만 나는 마음으로 우주를 포용한다'는 파스칼의 말처럼 나는 산을 마음에 들여 놓고 작은 방 안에서 하룻밤 숙면에 든다.

 

 

<29> 가지산에서 전쟁을 하다
기억에 남는 고생, 그리고 기억하기 싫은 고통의 경계

    지리산 소은암에서 일행과 포즈를 취한 필자(오른쪽).

 

고생을 많이 했던 산행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악천후 속을 가거나, 길을 잃고 숲속을 헤매거나 물이 떨어진 채 걸어야 했던 오랜 목마름의 시간들, 텐트 속에서 추위에 떨며 온통 밤을 지새우던 일, 솟아 오른 돌부리에 등뼈가 결리던 일…. 고생했기에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런 기억들은 향기를 지니고 돌아와 행복한 삶에 풍부한 자양분을 가져다주고 삶에 활력을 주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가지산에 들어 아늑하고 편안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데 파리떼가 덤벼든다. 한 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찍어 오는데 한 손으로는 연신 반찬 위를 왕래하는 파리를 쫓는다. 이렇게 높은 산에까지 파리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그리고 무얼 먹고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는 일에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먹을 것 없는 산에서 파리는 더욱 그렇다. 파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기떼도 극성이다. 파리는 죽기 살기로 음식물 위로 달려들고 일행은 이들을 손으로 쫓아내기에 혈안이다. 음식물을 사이에 두고 각축을 벌인다. 모기는 눈을 피해 몸 뒤쪽으로 저공비행으로 달려든다. 몰래 살갗에 빨대를 꽂고 피를 뽑아 간다. 산을 사랑한다면 이들 파리, 모기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행은 뿌리는 모기약과 모기향을 태우고 난리를 피운다. 이 산의 주인은 그들인데 손님이 와서 더 극성을 떠는 꼴이다. 마치 모기, 파리와 벌이는 전쟁 같다.

내가 너무 쉽게 전쟁이란 말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은 않다. 평소에도 우리는 전쟁이란 말을 숱하게 들어왔고 그것을 쉽게 사용한다. 전쟁은 이미 낯익은 단어가 되었고 일상에서도 스스럼없이 쓰고 있다. 교통 전쟁, 교육 전쟁, 과외와의 전쟁, 물가와의 전쟁, 촛불과의 전쟁, 살과의 전쟁… 등 숱하다.


여자들이 치마 뒤집어쓰기를 좋아한다
짧아지는 스커트가 한 발자국씩 곁에 다가선다
남자들이 죽고 더 많은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
전장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갔다 여인들이
붉은 입술 속으로 치마를 둘러쓰고 총칼을 맨다
오, 신의 암호여 남자를 우뚝 서게 할 수 없는가
여자들이 전쟁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면 쉽게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극단적인 언어는 다시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말을 불러 온다.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말하다가 실제로 전쟁을 벌여 무고한 민간인들만 희생되지 않았던가. 순한 언어는 폭력적인 언어에 의해 퇴출당하고 만다.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 8할이 욕으로 채워져 있다면 이해가 될까. 애들도 친구를 부르거나 혼자 말을 지껄일 때 욕설이 태반이다. 그것이 욕인 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교육의 잘못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다. 문화를 숭상하고 우선하는 정책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준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곳에서는 문화는 뒷전이고 양념정도로 생각하는 푸대접 속에서는 예술정신이 싹 틀 수가 없다. 예술이 도시를 만들고 생활을 만들 때, 그 사회는 바로 선진국이 될 것이다. 시낭송을 통해 언어교육을 하고, 음악이나 춤이 생활화 되어 있고, 수준 높은 문학이 사람을 감동 시킬 때 삶의 보람과 행복 지수는 높아지게 된다. 전쟁이라는 살벌한 말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예술이 아닐까. 누군가가 또 예술과의 전쟁을 벌일까봐 겁이 난다.

 

 

<30>영취산에서 느낌을 만나다
아무런 감흥 없는 산행은 무효다

    영취산 능선에 선 필자.

 

함께 영취산을 오르는 동료가 좋은 경치를 보았으니 시 한 편 지어 보라는 부탁은 물론 농담이겠지만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시를 짓는 기계라면 모를까 어찌 시도 때도 없이 줄줄 풀려 나온단 말인가.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산에 드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시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는 짧은 감탄사 한마디 '아~'가 나올 뿐이다. 아름다운 곳에서는 그저 감탄사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아~'라고 할 수 있으면 산에서는 누구나 다 시인이 된다.

그러나 시는 전달이 되어야 한다. 주왕산 절골에서 웅장한 벼랑을 보고 '아~!'하고 와서 이웃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을 때 이웃은 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느낀 절골의 풍경이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란 내가 느낀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같거나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시가 된다. 시는 작은 오랑캐꽃처럼 수풀 속에 숨어 있다. 시는 그것을 찾아내는 자의 몫이다. 파블로 네루다도 '시가 내게로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인의 가슴은 빈 술잔이다
넘치도록 감로주를 담아 두었다가
가을에 떠나는 이름들 위에 뿌리기 위해
풀잎이나 나뭇잎, 강물 같은 것
그냥 하릴없이 떠나는 이별 곁에 앉아서
풀잎처럼 흔들리다 가는 바람 속에다
불을 일으키던 가슴을 비워 둘 뿐이다

등산 인구가 많아지면서 의미있는 산행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체력 단련은 기본이고 심신 수련을 하기 위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들고 산에 든다. 한적한 곳에 앉아 명상을 하거나 풀과 나무들 이름을 알기 위해 다니기도 한다. 그 다양한 산행활동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진촬영을 들 수 있겠다.

디지털카메라가 발달되고 많이 보급되어 쉽게 촬영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운무나 일출, 야생화를 촬영하면서 산행의 묘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사진에 빠져 산행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사진 장비를 크고 좋은 것으로 바꾸면서 배낭 무게가 무거워지자 산에 가기를 포기하고 지상에서 촬영 놀음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떠랴. 살면서 자신에게 맞는 건강 유지법과 취미생활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행복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풀이나 야생화를 촬영하면서 그 꽃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수십 년 산을 다니는 나도 산에 사는 새 소리를 잘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꿩 두견새 멧비둘기 까마귀 까치 딱따구리 휘파람새 정도여서 이 방면에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름다운 것은 이런 새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는 분도 있다. 새소리뿐이 아니다. 산행기를 쓰기 위해 산을 다니는 분도 있다. 그에게는 산행 메모를 꼼꼼히 하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모두 자기만족이겠지만 행복하게 사는 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성미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에 이루려고 한다. 해외 원정 산행도 그렇고 모든 것을 짧은 기간 내에 이루려다보니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산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천천히 과정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산행이 될 것이다. 후다닥 정상에 올랐다가 급히 내려오고서는 그 산을 다 뗐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산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하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추억이 없는 산행,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산행,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한 산행은 무효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산을 느끼고 나를 느끼는 산행,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산에 들어 어떤 느낌을 받고 돌아오는 산행이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