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_04

醉月 2011. 3. 18. 08:38
<16> 왕산에서 시간을 놓다
바위를 쪼아 이름을 남기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구형왕릉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는 뜻에서 전(傳) 구형왕릉이라고 이름 붙여진, 산청 화계마을 왕산 자락 돌무덤 앞에 선 필자.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북쪽으로 뻗어간 줄기가 웅석봉으로 달려가는 중에 밤머리재 못 미쳐서 떨어져나가 솟은 산이 왕산이다.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지리산 한 봉우리에 속한다. 왕산은 왕의 산이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산 아래에 피라미드 형태로 쌓은 돌무덤이 있고 그 무덤이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양왕)의 능이라 전해져오기에 그렇게 부른다. 그저 탑이라고 하는 설이 있지만 어떻든 간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고 그것을 만든 이들은 지금 여기를 떠나고 없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온 당당한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시간이다. 나는 그 돌무덤 앞에 서서 까마득하게 달려 온 시간의 의미를 만난다.

산을 가다보면 흔히 아무렇게 쌓은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길 가는 사람이 채어 넘어지는 걸 우려해서 돌멩이를 한곳에 모으다보니 그것들이 높이 쌓이게 되고 또 염원을 담은 돌들이 하나 둘 보태져 탑이 되었다. 이런 돌탑은 지리산 노고단이나 치악산 소백산 오대산 태백산 등 명산의 정상에 표식으로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혹은 길가에서 이정표 역할을 한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의 흔적은 그 뿐이 아니다. 해인사 골짜기 바위에는 이름들이 숱하게 새겨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거창 수승대나 언양 작천정, 그 외 사찰 주변 등 명승지일수록 새긴 이름들이 많다. 그들 중에는 역사에서 들었던 유명인의 이름도 보인다. 석공을 데리고 며칠씩 묵어가면서 이름을 새긴 것 같다. 깊이 각인된 것은 또렷이 남아 있고 옅게 파놓은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해 희미해졌다. 그 중에는 혹 시구도 새겨 넣어서 정취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바위에 새긴 염원이나 글귀는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많은 이의 마음을 담아주고 있어 아름답지만 무엇을 남겼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바위에 새긴 이름들은 그가 누구였는지 아무런 의미도 전해져 오지 않는다. 단순히 바위를 쪼아댄 사람의 이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지만 그런 식으로 남기는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시간은 돌로 눌러 앉았더라
검은 이끼를 누가
흔적이라 남기고 갔는가 수천 년
비와 바람으로 닦아 내었어도
깊게 내린 소멸의 뿌리는
장막을 치고 돌 속에 침잠하느니

미하엘 엔데는 모모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회색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며 예전의 따스한 정을 잊고 점차 차갑고 삭막한 사람들로 바뀌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간의 굴레 속에서는 속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시간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기려 드는 것은 아닌가.

산에 들어 남기는 것은 발자국이요, 가져갈 것은 추억뿐이라 했던가. 산행에서 만나는 돌탑이나 바위, 거기에 새겨진 흔적의 의미를 찾고 과거의 시간들 속으로 걸어 가보면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을 만난다. 인간은 시간을 뛰어넘기 위해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그들이 남기고 싶은 것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 새만금 방파제나 경부대운하와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이 자신을 남기고 싶어 바위에 새긴 이름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길가에 쌓아놓은 돌탑처럼 때로는 돌에 스민 인간의 흔적이 아름다운 것들도 있다. 석가탑이나 다보탑, 경주남산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나 탑신들 그리고 연곡사의 부도탑과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보면 볼수록 시간을 뛰어 넘는 의미가 전해오기 때문에 한량없이 끌려들게 만든다. 시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 또한 유의태 약수터에 올라 속이 빈 돌덩이 한 개를 얹어 내 시간을 놓아본다.

 

 

<17> 오룡산에서 묘령을 찾다
숲 향, 숲 소리, 말간 빛… 내 안에 출렁거리는 묘령들

    오룡산에서 묘령을 찾아 산자락을 오르고 있는 필자 일행. 호기심은 사람을 젊게 만드는 약효를 지녔다. 배내골 도태정골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룡산을 오를 때 한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갔다. 오룡산 임도 위 정상 바로 아래쪽 아무도 다니지 않은 숲속에 묘령의 여인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난번 산행 때 임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지겨운 후배 몇이 길이 없는 산을 치고 올라 가다가 점심 먹은 물가에서 15분 쯤 올랐을 때 희미한 길이 나있고 움막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하얀 소복을 한 묘령의 여인이 나타나 반갑게 맞이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그 여인은 남편을 잃고 세상이 싫어 이 산에 들어와 산 지 2년쯤 되었으며 갑갑하면 부산 친구들한테 며칠씩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사과가 있느냐고 묻더란다. 마침 비상식으로 남겨 둔 사과가 있어 건네주었더니 이 세상에서 사과를 가장 좋아한다며 다음에 올 기회가 있다면 사과나 몇 알 갖다 주라고 부탁하고, 차를 한잔 대접해 주더라는 것이다. 차 맛은 구름 속의 신선이 마시는 것인지 형언할 수 없었고 하산 시간이 늦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고 했다. 그 여인은 시간이 나면 꼭 다시 가볼 정도로 미인이었다고 함께 갔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오늘 산행이 그때 갔던 길이기에 묘령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지금 있는지는 모르나 여인이 좋아하는 사과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함께 간 여성분이 '남자들이란 묘령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우리가 그런 남자를 찾아간다고 하면 온갖 이유로 말릴 것 아닌가'라며 남자들을 힐난했다. 그러나 그런 꿈을 간직하고 오르는 산은 지치질 않는다.

또 있다. 산 너머에 도력이 높은 분이 있었는데 통수골에다 애인을 숨겨두고 밤만 되면 산을 넘어와 만나고 새벽이면 돌아갔다는게 장선리 민박집 주인의 이야기다. 혹시 이 묘령이 그 여인? 그럴 리가 없겠지만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진다.


산길을 가다가 길을 잃었다
길은 숲을 버리고
숲을 헤쳐가다 망개나무 가지를 부러뜨렸다
가지에서 피가 흘렀다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무가 보내는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몇 잔의 반주까지 곁들여 점심을 먹고 발동한 호기심은 길도 없는 숲에 발을 넣었다.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 묘령이 살고 있다는 움막을 찾았다. 가시덤불을 헤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성들의 불평과 불만이 고조되었다. 고사리를 꺾어간 흔적이 있어 묘령에 대한 확신은 더 굳어져갔다. 30여 분을 숲속에서 헤맸지만 성과가 없자 마음이 허탈해지면서 오룡산 능선에 퍼질러 앉았다.

호기심은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물가에서 15분 정도 오른 곳에 있다 했는데…. 너무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아 더 남쪽 면으로 가보자고 설득했다. 여기서 통수골로 하산하려면 2시간 반이 걸리고, 왔던 길로 내려가면 1시간 반이면 충분해. 어디로 가지? 이왕 이렇게 된 것 묘령의 뿌리를 한번 뽑아보자고. 틀림없이 정상을 지나 오른쪽 비탈길로 빠져나간 길을 찾으면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거야. 그런 길이 한 군데 있었다. 가 보았지만 길은 이내 사라졌다. 은둔은 길 없는 숲에 있다며 임도와 마주칠 때까지 숲을 헤쳤다.

원점에 돌아 왔다. 두 시간 여 숲을 헤매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 숲 향과 숲 소리, 투명한 빛을 내는 나무들, 싱그러운 풀, 사랑스러운 가시덤불들. 나뭇가지 사이로 떠돌며 춤추던 말간 빛들, 한순간 가슴을 설레게 했던 묘령이 내 안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숲이 제일 아름다울 때다. 묘령을 껴안고 황홀에 빠져 본다.

 

<18> 소백산에서 이슬을 마시다
생명의 원천인 물 없다면 아무리 준수해도 명산 될 수 없어
샘터 위치파악은 장기산행에 있어 중요한 준비사항
이 신성한 물로 물대포라니…

    양산 천성산 원효봉 아래 흥룡폭포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왼쪽)와 동료.

 

산행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물을 준비하는 일이다. 산에 물이 흔할 것 같지만 실은 많지 않다. 아니 물은 많아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물은 늘 준비를 해서 가야한다. 물론 가는 산 어디에 물이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장기간의 산행에는 샘터 위치와 그 물 양을 아는 것이 필수요건이다. 샘터는 또한 계절에 따라 수량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여름철 수량을 믿고 가을이나 겨울철에 그냥 갔다가 물이 말라버린 샘을 보고는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샘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 강조하지 않아도 물은 생명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물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여름 소백산에 올랐을 때 지도상에는 천문대 옆에 샘이 있는 걸로 되어있었다. 부근에 텐트를 치고 샘을 찾았지만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몸은 지쳐 있는데 밥 지을 물이 없었다. 출입문 옆에 있는 빨간 플라스틱 통을 들여다보니 물이 있었다. 반갑게 물을 떠와서 밥을 지어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다시 물을 뜨러 가서 놀랐다. 바닥에는 지렁이 서너 마리가 죽어 허옇게 퉁퉁 불어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하는 수 없이 그 물을 떠와서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물통에는 도저히 채워 넣을 마음이 서지 않았다. 비로봉에 가면 샘터가 있기에 그것만 믿고 출발을 했다. 해가 오르자 능선 위 더위는 쉽게 갈증을 불러 왔다. 목이 말라 산죽 잎에 맺혀있는 물방울과 강아지풀 솜털에 맺혀있는 이슬을 받아먹으며 갈증을 풀었지만 타는 목에는 기별도 가지 않았다.

 

이제는 이슬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나를 기다리는 네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떨어지는 이슬 속으로 걸어갔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늙어 갔고
네가 부른 춤과 노래를 잊었다

물 있는 산이 명산이다. 산이 아무리 준수하고 아름다워도 물이 없다면 명산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악산이라고 부르는 산에는 물이 없다. 경남의 3대 악산으로 불리는 토곡산 대운산 고헌산은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산 위에 샘터가 없다. 그리고 계곡도 건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 이름에 '악'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산도 물이 별로 없다고 보면 된다. 설악산 모악산 황악산 화악산 감악산 등이 그렇다.

물은 아름답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음이온이 다량 발생하여 피로에 찌든 심신을 일거에 회복시켜 준다. 물이 부서지며 포말을 내는 계곡에서는 음이온이 배가 된다고 한다. 특히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폭포는 그 절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물이 부서졌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음이온이 발생하기에 도심에다 분수를 만들어 시민들의 피로를 달래기도 한다. 분수대 옆에 가면 심신이 편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도시에는 분수가 너무 없다. 도심 내 공원도 없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하천도 없다. 하천은 복개해 버렸거나 악취가 흐르는 개울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이다.

물이란 말에 대포를 갖다 붙인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소방 호스를 끌어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을 겨냥해서 그것을 쏘았단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이 실명의 위기에 놓였다고 하니 물이 무기가 된 것이다. 좋은 물을 왜 나쁘게 쓰는지 모르겠다. 연약한 촛불을 어린애들까지 두 고사리 손으로 감싸 쥐었다.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그 의미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물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켜는 아름다운 촛불을 삼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거리를 밝히는 촛불을 보며 소백산에서 느꼈던 갈증이 타오르는 걸 느꼈다. 아침이슬이라도 받아 마시며 아름다운 거리를 다시 걷고 싶다.

 

 

<19> 시살등에서 지명방어전을 하다
남은 길 가는데 부담되더라도 남은 음식은 처치해야 하는 법

    시살등에서 일행과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었다.

 

'지명방어전'을 치러야 했지만 그조차 행복했다.
산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식사시간이다. 둘러 모여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런 산행은 퇴출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홀로 산행을 해 보았지만 가장 쓸쓸할 때가 밥 먹을 때였다. 먼 산 한번 보고 밥 한술 뜨고 누가 지나가지나 않는지 길 쪽으로 자주 눈을 보냈던 시간들.

그러나 여럿이서 함께 먹는 시간이라고 다 행복하지는 않다.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것은 공복을 채우고 난 뒤 펼치는 지명방어전 때문이다. 지명방어전은 프로권투에서 의무적으로 치르는 경기를 말한다. 그것이 산행에서 이루어진다?

산행 때는 나눠먹기 위해 음식을 더 많이 가져 온다. 문제는 식사를 한 후 남는 음식이다. 되가져 가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땅에 파묻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랬을 때 식사하기 편한 장소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음식을 남기지 않고 처치하는 일이다. 함께한 사람들이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게 하는 일을 일컬어 지명 방어전이라고 부른다. 결국 수행자의 발우처럼 한 톨 밥알이 남지 않을 때까지 나누고 또 나누어 먹게 한다. 배부른 이에게는 고통이고 미련스러운 일이 된다. 이런 일은 장기 산행 때는 체력 보완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지만 당일 산행 때는 남은 길을 가야하는 부담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음식고문이라고 아우성을 쳐도 할 수 없다. 산을 사랑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 지명 방어전은 충분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


바람 속에서 하늘거리는 산목련 꽃에
상큼한 눈빛을 얹는 너를 대할 때마다
나는 산목련이 되고 싶었다 어찌
너와 만나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한없는 눈의 온기에 젖어
네가 내 곁에 없는 이유를 만들지 못한다

뷔페식 식당에서 세 분과 자리를 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맛있게 먹었다. 한 분이 미리 숭늉을 떠왔다. 고맙게도. 그런데 나는 "식후에 요구르트를 먹어야 되는데…" 하며 난색을 표했다. 성의를 무시한 발언이라고 다른 분이 핀잔을 준다.

"정해진 양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면 속이 거북해집니다." "그럼 음식을 남기면 되잖아요?"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어린이가 생각이 나서 남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도 하네요." 옆에 분이 갑자기 참견했다. "걔들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 분이 사랑을 내세우는 믿음을 가진 분만 아니었더라도 속상함이 덜했을 텐데 황당하여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북한 어린이가 배가 고파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밥알을 주워 먹는다는 보도가 있었지 않은가. '그 북한 어린이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람' 한다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음식은 적당량만 섭취해야 다른 사람이 먹을 수가 있다. 쓸데없이 식탐해 가져 온 뒤에 남기고 버린다면 그만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한 분은 결국 가져온 음식을 남기고 그 음식을 잔반통에 쓸어 넣고는 총총 가버렸다.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집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뒤에 먹을 수도 있겠지만 식당에서 먹다 남긴 음식은 버리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살생은 동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먹기 위해서 뽑고 따고 한 식물이나 채소를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남겨서 버린다면 그것도 일종의 살생이다.

산행을 그런 마음으로 한다. 그러기에 지명방어전은 차후 적당량 음식을 위해 필요한 처방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살등에서 갖는 지명 방어전은 상납이 부족했지만 충분히 행복했다.

 

 

<20> 천태산에서 가면을 벗다

햇볕이 강렬해지는 여름철 산행에는 선크림을 이용해 자외선을 차단한다. 그 화장이 너무 두꺼워 뿌옇게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햇빛 차단을 위해 아예 가면을 쓰는 사람도 있다. 안면가리개라 하여 여성분들이 대부분 착용하지만 마주하는 상대에게 묘한 기분을 갖게 하는 가면이 아닐 수 없다.

가면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때 착용한다. 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자 할 때 얼굴을 가린다. 얼굴을 가리고 하는 행동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에 위선적일 수 있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예비군복을 입혀놓았을 때 행동을 아무렇게나하는 경향이 있다. 제복이 자신의 신분을 가려 주기에 아무 곳에나 주저앉기도 하고, 내뱉는 말도 점잖지 않다. 옷만 바꿔 입어도 사람이 돌변하게 되는데 가면은 상대에게 나의 정체를 숨길 수 있어 행동에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가면은 본색을 잃어버리게 하는 마술이 된다. 유몽인의 '어우야담' 배우조에는 가면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다.

'배우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얼굴에 귀신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의 처와 함께 한강에서 걸식을 하며 생계를 꾸려 갔다. 봄이 와서 얼음이 풀려가는 한강에 그의 처가 얼음 밑으로 빠졌다. 그는 공연을 위해 탈을 벗지 않았다. 그는 탈을 벗지 못하고 멈춰 서서 얼음 위에서 슬피 곡을 했다. 그가 비록 슬피 울어 곡을 하였으나 구경꾼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가면 표정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나의 표정이 된다. 안면가리개는 다른 것이지만 그러나 산길에서 만난 얼굴 없는 얼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눈이 나빠 잘 못 본 것인가 하여 유심히 살펴도 있어야할 자리에 코와 입이 없다. 표정 없는 가면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날씨가 추울 때 복면을 쓰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름에 쓰는 복면을 상상이나 했을까. 요즘은 그게 보편화되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안면가리개가 처음 나와 산길에서 마주쳤을 때 느꼈던 찝찝한 느낌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견고한 지하에 짐승들이 모여 삽니다
두더쥐, 박쥐, 스컹크, 늑대, 여우, 청설모, 고슴도치…
서로들 잡아먹으며 쉽게 삽니다
겉으로는 순한 앞이마를 올리고
고른 숨 뿜어대며 웃음을 보입니다
송곳니를 반짝이며 어느 날
당당한 걸음은 지상을 향합니다


가면은 산에서만 쓰고 다니겠는가. 아는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게이샤가 너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젊은 분이나 나이 드신 분이나 여자들이 화장을 너무 짙게 하여 기생처럼 보인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우리 세태에 생얼을 들먹이는 이유가 화장이 짙어 분장을 넘어서 거의 변장 수준까지 이른다는 말일 게다.

변장은 곧 가면이 되는 전 단계이지만 그렇게 볼 때 배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슬픈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거나 기쁜 일이 있어도 숨기며 산다. 그 사람이 싫어도 그 앞에서는 좋은 체하며 미워도 안 미운 척 행동한다. 감정을 숨기는 일이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가면이다. 위선이 최선인 사회가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내 삶을 속이려 들까? 그대 가면 밑에는 어떤 얼굴이 숨겨져 있는가. 혹 우리는 서로를 속이며 가면으로 살고 있지는 아니한가? 선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악이 가면을 쓰고, 악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선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세상이 가면을 요구하더라도 산에서는 가면을 벗고 솔직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