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의 진실
우리는 현재 먹고 있는 음식을 조상도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으로서 어떤 음식이든 오랜 전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상이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음식 대부분은 근대의 산물이다.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에 집착해 음식에도 역사가 있었으면 하고 의도적이든, 잘 모르고든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통성을 따지는 정치사도 아니고 음식사 정도야 하며 넘어갈 수도 있으나, 그 왜곡의 대상이 현재도 즐겨 먹는 일상식일 때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늘 의도하지 않게 거짓말을 하며 그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음식 중 가장 맛있고 인상적인 것으로 불고기를 꼽는다. 그래서 불고기는 한국 음식의 자존심과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불고기에 대한 역사를 참 많이들 이야기한다. 고서에 나오는 너비아니니, 설하멱이니 하는 쇠고기 음식도 일반인 귀에 익숙할 정도다. 이 같은 불고기 역사 중 최절정을 이루는 것은 ‘고구려의 맥적’이다. 최남선이 1906년에 쓴 ‘고사통’에 불고기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수신기(搜神記)’를 보면 ‘태시(太始) 이래로 이민족의 음식인 강자(羌煮)와 맥적(貊炙)을 매우 귀하게 안다. 그래서 중요한 연회에는 반드시 맥적을 내놓는다. 이것은 바로 융적(戎狄)이 쳐들어올 징조다’라고 경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맥적에는 대맥(大貊)과 소맥(小貊)이 있었으며, 한대(漢代)에서 이것을 즐겨 맥적을 중심으로 차린 연회를 맥반(貊盤)이라 했다. 강(羌)은 서북쪽의 유목인을 칭하는 것이고, 맥(貊)은 동북에 있는 부여인과 고구려인을 일컫는다. 즉 강자는 몽골의 고기요리이고, 맥적은 우리나라 북쪽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개발한 고기구이이다.”
최남선이 맥적을 ‘부여인이나 고구려인이 먹었던 고기구이’라고 했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그 맥적이라는 ‘고기구이’를 불고기의 원형이라 하는 것이다.
‘수신기’는 중국 동진(東晋, 4세기경)의 역사가 간보(干寶)가 편찬한 소설집이다. 이 책은 역사서라고 할 수 없다. 온통 귀신 이야기로 가득해, 우리나라 책으로 치면 ‘고금소총’ 정도 된다. 그래서 이 책에 그리 적혀 있다 해도 살을 잘 발라서 읽어야 한다. ‘수신기’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胡床, 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 自太始以來, 中國尙之. 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 戎、翟侵中國之前兆也.””호상(胡床), 맥반(貊槃)은 적족(翟族)이라는 민족이 쓰는 용기의 이름이고 강자(羌煮), 맥자(貊炙)는 적족이 먹는 음식의 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 연간부터 중원지구에는 이런 도구와 음식이 유행했다. 귀족과 부자의 집은 모두 그런 용기를 갖춰놓고 희사 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에 내놓는다. 이것은 서융(西戎)과 북적(北翟)이 중원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수신기’,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2007년)
최남선이 봤다는 내용과 다르다. ‘수신기’에는 맥적을 적족의 음식이라 적고 있다. 적족이 어느 민족을 말하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 민족의 이름을 적족이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최남선이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수신기’를 슬쩍 왜곡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근거로 불고기의 원조로 ‘고구려의 맥적’을 들먹이는 것이다.
한국 음식이 긴 역사를 지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이런 왜곡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멋대로 와인 마시기
와인은 술이다. 술이 인간에게 주는 이점은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알코올로 인해 뇌의 일부가 마비돼 몽롱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소주도 술이다. 와인이나 소주나 인간을 기분 좋게 하는 알코올이 들어 있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라며 와인과 소주를 같은 위치에 놓고 언설을 구사했다가는 비문명인 소리 듣기 쉽다.
와인에는 알코올 외에 잡다한 스토리가 덧붙어 있다. 와인 생산지의 역사와 토양의 특성, 기후에서부터 포도의 품종, 생산연도의 작황은 물론 서리 내린 후 따는지 등의 수확 방법, 껍질을 까는지, 씨앗을 제거하는지, 어떤 발효통을 쓰는지 등이 우선 거론된다. 또 발효 방법,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병 모양의 이유, AOC 등 라벨에 붙은 정보를 읽는 법, 와인 전문가의 평가 등이 추가되는데 여기까지는 와인을 고르는 데 필요한 스토리다.
와인을 마실 때 또 대하소설 한 편 정도의 스토리를 읊어야 한다. 와인의 맛 요소와 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와인 색상에 대한 미학적 고찰도 따라야 한다. 와인과 공기를 소통하게 하는 디캔팅이며, 와인을 잔에 따르고 살살 돌려 향을 배가시키는 법, 그리고 그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택하는 것까지 스토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적어도 와인을 안다는 건, 와인의 맛이 아니라 와인에 담긴 스토리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와인은 ‘즐기는 술’이 아니라 ‘공부하는 술’로 여겨지며, 학력고사 문제처럼 쳐다보기 껄끄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와인을 겁내지 않고 마시는 법이다. 먼저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는 방법이다. 이 정도 정보는 일일이 외울 필요가 없다. 와인가게에 가면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 대한 정보를 다 알려준다. 그러니 이런 정보를 모르는 점원이 있다 싶으면 다른 가게로 가라. 일반인은 몰라도 와인가게 점원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초보자를 위한 와인 상식이다. 와인은 평생 마셔도 다 맛보지 못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와인 맛에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꼭 알아야 한다. 특히 프랑스 와인의 지리적 표시인 AOC를 두고 ‘최상급 프랑스 와인에 대한 표시’인 것으로 잘못 말하고 있다. AOC는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특정 와인에 대한 생산 통제로, 다른 지역의 와인과 ‘차별화’된 맛을 낸다는 뜻이지 최상의 맛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니 그날 사서 마시게 되는 와인에 대해서만 와인가게 점원에게 설명 듣고, 맛있으면 기억하고 맛없으면 잊으면 된다.
세 번째,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 종류에 대한 것이다. 주변에서 각종 모임이 있을 때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럴 때 나는 와인가게에 전화를 걸어 와인 종류와 가격 리스트를 e메일로 받는다. 세 군데 정도의 리스트만 받아도 가장 저렴한 가격대의 와인을 손에 쥘 수 있다. ‘질 좋은’ 와인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각자의 기호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필자는 와인을 마실 때 곧잘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민족이 아무리 와인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도 와인 맛에 대해 프랑스인처럼 민감해질 수 있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끼니마다 와인을 마신다. 그러니 와인 맛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각도 훈련하기 나름이다. 그들의 와인에 대한 미각을 우리가 가끔씩 훈련한다고 해서 쫓아갈 수 있을까. 뒤집어, 김치 맛에 대해 그들이 우리만큼 민감해질 수 있을까. 김치는 재료와 발효 정도, 저장에 따라 맛이 수천 수만, 아니 김치 담그는 사람 수만큼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양한 김치의 맛을 프랑스 사람이 훈련한다고 해서 구별해낼 수 있을까.”
그러니 와인은 술일 뿐이고, 즐기라고 마시는 것일 뿐이고, 와인 공부는 심심하면 하면 될 뿐이고!
잘라야 할 수박 꼭지
최근 수박 산지 선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는데, 공무원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선별장의 사람들에게 “윗분에게 드릴 수박을 찾는데 맛있는 것으로 다섯 통만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그 자리에는 20년 수박 재배 경험의 작목반장이 있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슬쩍 발을 뺐다. “내 수박은 다 나가고 남의 수박을 골라야 하는데, 거참.” 공무원은 “반장이 추천해주면 비파괴 당도계로 검사해 고르면 될 것’이라 제안했지만, 반장은 당도계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대충은 맞지만 껍질 두께며 수분도에 따라 당도계 숫자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관능으로만 선별하는 미션이 주어진 셈.
선별장 안에는 ‘수박 도사’가 많아 보였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도사는 선별기 라인에 서서 수박을 손으로 두들겨 상했거나 덜 익었거나 속이 빈 것을 고르는 작업을 하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이 일만 해서 관절 이상이 생겼다며 손가락에 테이프를 돌돌 감고 있었다. ‘생활의 달인’에 나와야 할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분도 두 공무원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수박 고르기 정말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몇 가지 방법으로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수박 재배 농민과 상인 등을 통해 알아낸 맛있는 수박 고르는 요령이다. 아니, 실패 확률을 줄이는 방법이다.
첫째, 배꼽을 확인해야 한다. 수박 꼭지 반대편에 있는, 수박꽃의 자리가 배꼽이다. 이 배꼽이 큰 것은 심이 박혀 있을 수 있다. 배꼽이 큰 수박은 수박꽃을 수정할 시기를 놓친 것인데, 이런 작은 일이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둘째, 하얀 분이 묻은 수박이 당도가 높다. 수확과 유통 과정에서 많이 닦여 나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있다. 분이 있는 포도가 당도가 높은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셋째, 검은 줄무늬가 진한 수박을 고르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여기에 더해 그 옆의 녹색 줄무늬도 봐야 한다. 녹색의 줄이 8월 나뭇잎 색처럼 짙을수록 잘 익은 것이다. 또 검은색과 녹색의 줄무늬 간격이 일정할수록 좋은 것이다. 한쪽이 비뚤어져 자라면 줄무늬 간격이 불규칙해지고 내용물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들겨보고 고르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철저히 ‘감’으로 하는 일이라 고수가 아니면 어렵다. 맑고 탱글한 느낌의 소리가 나야 한다. 실제 두들겨보면 그 소리가 그 소리라 구별이 쉽지 않아 이 방법은 포기하는 게 좋다.
수박은 꼭지를 붙여 유통된다. 꼭지는 싱싱한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실수로라도 꼭지가 떨어지면 ‘등외’로 밀려 저가품이 된다. 그래서 농민들은 “수박이 2만 원이면 꼭지가 1만 원”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꼭지 때문에 소비자는 맛있는 수박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꼭지는 줄기다. 꼭지를 남겨놓으면 수박은 꼭지로 호흡을 하게 된다. 잎과 뿌리가 없으니 들어오는 영양분은 없고 오직 이 꼭지를 통해 수분과 영양분이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는다. 꼭지는 말라가는 제 몸을 지탱하려고 수박 몸통의 수분과 영양분을 끌어다 쓴다. 따라서 꼭지가 붙어 있으면 보관성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러니 수박 꼭지는 잘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수박은 모두 이 쓸데없는 꼭지가 ‘당당히’ 붙어 있다. 소비자가 싱싱하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꼭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일부 수박 농가가 꼭지를 제거해 판매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꼭지 없는 수박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꼭지 없는 수박을 내놓은 적이 있는 농민들을 만나보니 참 묘한 말을 했다. 농민들도 꼭지 없는 수박을 내면서 등외로 버려야 할 것을 슬쩍 끼워넣을 수 있으니, 꼭지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이 쓸데없는 꼭지로 달랑달랑 남아 있다. 일본의 수박은 꼭지 없이 유통된다.
한우고기 최고의 맛
‘한우고기도 숙성시켜서 먹어야 한다.’
10여 년 전부터 이 주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요즘 강남에서 수입 숙성육(드라이 에이징)을 파는 스테이크 집이 인기라고 한다. 그 덕에 숙성육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발 빠른 한 외식 기자재 업체에서 식당용 ‘숙성냉장고’를 출시할 정도다. 그러나 외국에서 하면 맞는 것이고 한국에서 하면 “비전문가의 소리이거니” 하는 습성은 여전하다.
쇠고기를 일정 기간 보관하면 카텝신이라는 자체 효소의 작용으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새로운 맛이 더해지는데, 이를 숙성이라 한다. 쇠고기 숙성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쇠고기를 진공포장 숙성시키는 ‘웨트 에이징’과 공기 중에 노출해 숙성시키는 ‘드라이 에이징’이다. 드라이 에이징이 더 맛있게 숙성된다고 하지만, 쇠고기의 손실이 많고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어려워 대부분 웨트 에이징을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드라이든 웨트든 숙성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다. 한국 사람은 무엇이든 ‘막 잡은 싱싱한 것’을 맛있는 것으로 친다. 이건 기분의 문제일 뿐이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기는 물론 생선도 일정한 시간 숙성시켜야 맛있다.
한우고기는 외국의 쇠고기에 비해 확실히 맛있다. 쇠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올레인산의 함량이다. 올레인산이 많으면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싱거운 맛이 난다. 지방산 중 올레인산의 비율을 보면 한우는 48%인 데 비해 미국산은 42%, 호주산은 32%, 뉴질랜드산은 31% 정도가 들어 있다.
맛은 미세한 함량 차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설탕과 소금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도 단맛과 짠맛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그 이치다. 따라서 올레인산 1~2%포인트의 차이가 맛에서는 큰 차이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맛있는 한우고기가 외국의 쇠고기에 밀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숙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급 호텔의 두툼한 스테이크가 수입 쇠고기임에도 부드럽고 깊은 육향을 내는 것은 다 숙성 덕분이다. 그러면 왜 한우고기는 숙성육으로 유통되지 않는 것일까. 가공과 유통에 드는 비용 때문이다. 숙성 과정에서 미생물에 오염되면 매우 짧은 시간만 숙성이 되고 이후부터는 부패한다. 따라서 숙성에는 도축, 발골(發骨), 포장, 유통 등 모든 단계에서의 미생물 오염 방지가 중요하다. 부패를 방지하면서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저온숙성 기술이 있어야 하며, 미생물 오염을 막고 지방의 산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진공포장 기술이 필요하다. 또 상당량의 쇠고기를 저장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우가 생고기로도 비싸게 잘 팔리니 축산사업자들이 이런 부담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숙성 한우고기가 귀한 것이다.
한우 숙성육을 내는 믿을 만한 식당 두 곳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현한우’(031-763-5762~3)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우 숙성육을 낸 곳이다. 식당을 하면서 한우 목장도 운영한다. 여러 사람에게 이 집을 소개했는데, 특히 서양인들이 “최고의 쇠고기를 맛봤다”며 칭찬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같은 숙성이라도 그건 한우야’라면서.
전북 정읍의 ‘행복하누’(1577-8531)는 한우 1000여 마리를 키우면서 식당도 운영한다. 총체보리를 먹이며 무항생제로 친환경 축산을 실현하고 있는 목장이다. 숙성육을 낸 지는 3년 정도 됐다. 다루는 고기 양이 많다 보니 숙성 노하우가 상당 수준에 있다. 총체보리를 먹인 소는 육향이 진한 편인데, 숙성이 그 맛을 깊게 한다.
두 곳 다 20일 정도 숙성된 한우고기를 낸다. 숙성시키면 등심만 맛있는 것이 아니다. 부위별로 맛이 확연히 다르면서도 맛있다. 모둠으로 맛보기를 권한다.
토종닭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이다. 이렇게 음식 이름을 바로잡아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포인트가 보인다. 주재료인 닭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미각의 제국’ 중에서)
필자는 근래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계삼탕 부분이 이곳저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어느 교열기자는 “삼계탕도 맞는 말이다”라며 ‘엉뚱한 딴죽’을 걸기도 하고 어느 음식전문기자는 이 글을 앞세워 계삼탕을 집중 취재했다. 어느 것이든 나로서는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미각의 제국’은 내용을 너무 간결하게 하느라 많은 이야기가 빠졌다. 계삼탕은 토종닭으로 끓여야 맛있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토종닭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에 살을 붙인다.
토종닭이란 우리 땅에서 예전부터 길러오던 고유한 품종의 닭을 말한다. 우리나라 식용 닭의 종자 중 90%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닭은 외래종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토종닭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 데다 달걀도 많이 낳지 못한다고 판단, 서양종과 일본종으로 품종 개량을 한 것이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토종닭 ‘퇴출’은 더 가속화됐는데 미국이 원조품으로 40만 마리에 달하는 외래종 닭을 들여온 탓이다.
외래종 닭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는 데 30여 일밖에 걸리지 않고 달걀도 많이 낳으니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있다. 그러나 외래종은 이를 육종한 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개량돼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외래종 닭이 시장을 석권했음에도 줄기차게 토종닭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살이 부드럽고 기름진 외래종에 비해 토종닭은 약간 질기다 싶을 만큼 살이 차지고 감칠맛이 더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고기 씹는 맛’을 중시하는데 외래종은 이 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사라져가던 토종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 입맛에 맞는 닭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맛있고 경제적인’ 토종닭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외래종의 오염이 없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오지의 토종닭을 구하기도 하고 중국 옌볜에 가서 토종닭을 구해오기도 했다. 이런 종자를 원종으로 우리 입맛에 맞는 토종닭이 ‘개발’됐다. 현재 농가에서 키우는 토종닭으로는 ‘청리닭’ ‘고려닭’ ‘원협3호’ ‘우리맛닭’ 등이 있다. 특히 ‘우리맛닭’은 국립종축원이던 축산기술연구소에서 15년간 연구해 품종을 안정화한 토종닭으로 최근에 농가에 대량 보급되고 있다.
고기로 먹는 닭을 육계라 한다. 외래종 육계의 경우 32~35일 사육해 음식점에 나온다. 외래종 산란계 수컷도 고기용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50여 일 키워 ‘웅추’라는 이름으로 판다. 웅추는 외래종 육계보다 몸집도 크고 씹는 맛도 좋아 이를 삼계탕으로 내는 식당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시중의 토종닭 중 가장 흔한 품종은 ‘원협3호’로 사육기간은 70~80일이다. 이 밖에 ‘사이비 토종닭’도 있다. 농가에서 ‘백세미’라 부르는데 외래종 산란계 암탉에 육계 종계의 정액을 주입해 얻는다. 그러니까 ‘백세미’는 등록돼 있지 않은 품종으로 토종닭 사육 농가 입장에서는 시장을 흐리는 닭이라 할 수 있다.
토종닭은 외래종 닭에 비해 살이 단단하다. 이 단단한 살을 쫄깃하게 하려면 그냥 솥에 삶아서는 부족함이 있다. 닭백숙 전문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압력솥을 쓴다. 토종닭은 외래종에 비해 감칠맛이 깊다. 올레인산이 풍부한 까닭이다. 그래서 백숙을 하면 고기보다 국물 맛이 더 있다. 토종닭을 요리할 때 ‘보양’을 위해 너무 많은 한약재를 넣는 것은 좋지 않다. 토종닭 고유의 감칠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풋옥수수
여름이면 국도변 곳곳에 풋옥수수 좌판이 열린다. 나는 이 풋옥수수 좌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맛있기 때문이다. 풋옥수수는 알갱이에 당을 듬뿍 지니고 있다. 옥수수는 딴 후 시간이 지나면서 당이 전분으로 급격히 변한다. 즉, 단맛이 사라지고 단단해지며 향도 죽어간다. 동네 마트에서 풋옥수수 사다가 찌면 그 맛이 안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옥수수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밭에서 따자마자 찌는 것이다. 그래서 국도변 옥수수가 맛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옥수수라고 하지만 쪄서 먹는 옥수수는 풋옥수수라고 하는 게 맞다. 아직 덜 익은 옥수수란 뜻이다. 다 익은 옥수수는 알맹이가 단단해져 푹 쪄도 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 가루를 내 가공용으로 쓴다.
풋옥수수로 먹는 옥수수는 크게 단옥수수와 찰옥수수로 나뉜다. 명칭에서 예상할 수 있듯 단옥수수는 당도가 높고, 찰옥수수는 찰기가 있다. 단옥수수를 개량해 당도를 더 높인 것을 초당옥수수라 부른다. 경상북도에서는 단옥수수와 초당옥수수를, 강원도에서는 찰옥수수를 주로 심는다. 그 중간 지역인 충청도에서는 이 두 옥수수를 반반 정도 재배한다. 설탕을 친 듯 달콤하고 씹을 때 알갱이가 쉬 뭉개지는 것이 단옥수수와 초당옥수수이고, 알갱이가 단단해 씹을 때 자루에서 알갱이 모양 그대로 쏙쏙 빠지는 것이 찰옥수수다.
강원도 국도변에서 주로 보는 것은 찰옥수수다. 쪄서 먹는 풋옥수수로는 최고의 맛을 낸다. 강원도 찰옥수수는 대부분 홍천에 있는 강원도농업기술원 옥수수시험장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옥수수는 전분이 주성분이다. 이 전분의 구조에 따라 찰옥수수와 메옥수수로 나뉜다. 전분이 아밀로펙틴 100%이면 찰옥수수이고 70% 선이면 메옥수수다. 옥수수시험장에서 육성해 농가에 보급한 찰옥수수 품종은 여럿 된다. 근래까지 재배된 것은 2000년대 초에 보급한 하얀색의 ‘미백찰’과 흰색과 검은색의 알갱이가 섞인 ‘흑점찰’이다. 강원도 찰옥수수의 명성을 가져온 품종이다. 3년 전부터는 흰색의 ‘미백2호’와 검은색(자주색에 가깝다)의 ‘미흑찰’을 밀고 있다. 이런 품종의 변화가 수확량과 재배의 용이성 때문만은 아니다. 맛의 차이도 따른다. 다 같이 아밀로펙틴 100%이고 당도도 비슷하지만 알갱이의 껍질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옥수수 알갱이 껍질은 씹을 때 이물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껍질이 얇을수록 옥수수는 부드럽게 씹히고 이빨 사이에 끼는 것이 없으며 목 넘김도 좋다. 그 껍질 두께의 개선이란 게 수치로는 겨우 몇 마이크로미터(㎛)다. 그러나 식감에서의 효과는 대단하다. ‘미백찰’과 ‘미백2호’를 같은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예민한 사람은 쌀밥과 보리밥의 차이로 느껴질 듯했다. 올해는 ‘미백2호’가 주로 재배됐다. 강원도 여행길에 옥수수 살 일이 있을 때 ‘미백2호’인지 물으며 아는 체하면 판매 농민에게서도 대우를 받을 것이다.
강원도 국도변 옥수수판매장 운영자는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일 확률이 높다. 대체로 해가 뜨거워지기 전 아침 일찍 밭에서 찰옥수수를 수확, 그 자리에서 쪄서 판매한다. 7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해 늦게는 10월 중순까지 밭에서 수확한 찰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 만약 풋옥수수 생것을 사면 빨리 냉장 보관하고, 되도록 24시간을 넘기지 말고 찌는 게 좋다. 이미 찐 것은 랩에 돌돌 말아 공기가 안 통하게 한 뒤 냉동시켰다가 데우면 갓 찐 옥수수와 맛이 똑같다.
맛있는 사과의 조건
사과가 시장에 깔리기 시작했다. 사과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아오리’로 일본에서 만든 품종이다. 원래 이름은 ‘쓰가루’인데 어쩌다 한국 땅에서 아오리라는 엉뚱한 이름을 갖게 됐다. 이 사과에 관한 엉뚱함은 이름에만 있지 않다. 쓰가루는 풋사과로만 팔려 붉게 익은 것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흔히 풋사과로 먹는 품종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실 쓰가루 풋사과는 정말 맛이 없다. 단맛이 없고 향이 없으며 식감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쓰가루 풋사과가 팔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추석 대목에 맞춰 익지도 않은 쓰가루를 시장에 내면서 이 품종은 풋사과로 먹는 것으로 굳어진 듯하다.
과일의 맛은 산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품종에 따른 맛 차이가 크다. 과일은 품종별로 익는 시기가 다른데, 그 시기에 맞춰 그 품종을 먹는 것이 가장 과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사과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과는 ‘후지’가 가장 맛있다고들 하지만, 9월에 나오는 ‘후지’는 맛없다. 아직 숙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일찍 내기 위해 때깔만 올리는 경우도 있어 겉만 번지르르한 사과를 살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사과 품종과 그 숙기, 맛의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이 정도는 알아둬야 미식 생활 좀 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입맛 까다로운 어른들은 한결같이 “요즘 사과는 싱겁다”고 말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사과 맛이 예전 같지 않다. 재배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배 방법 중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봉지 씌우기’다. 사과에 두 겹 또는 세 겹의 봉지를 씌우고,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봉지를 벗긴다. 이렇게 봉지를 씌우는 이유는 병해충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때깔을 내기 위해서다. 요즘 사과들은 꼭지에서 밑까지 빨간색이 골고루 들어 있는데 이 봉지 씌우기 덕이라 할 수 있다. 또 붉은색도 연해 자연의 색이라기보다 고운 물감을 칠해놓은 듯하다. 그래야 상품으로 취급을 하니 농민들은 번거롭고 맛이 없어도 그렇게 재배하는 것이다.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사과의 색깔이 짙어지고, 그 색깔도 한결같지 않아 얼룩이 지기도 한다. 그러나 맛은 봉지 씌운 사과와 격이 다르다. 때깔만 좇다가 진짜 맛을 잃고 있는 것이다.
감자의 배신
감자 하면 우리는 바로 강원도를 떠올린다. 강원도에서 감자를 많이 심기도 하지만 강원도 감자가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 감자가 요즘 우리의 입맛을 ‘배반’한다. 예전의 그 분 많은 감자를 만나기 어렵다. 솥에 찌면 겉이 쫙쫙 갈라지고, 입에 넣으면 보슬보슬 풀어지는 바로 그 감자! 왜 이 맛있는 감자가 요즘 귀한 것일까.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감자가 전 세계로 퍼진 것은 1500년대 스페인의 탐험가 피사로가 안데스에서 캐낸 감자를 유럽에 소개하면서부터다. 애초 유럽에서는 감자를 ‘악마의 식물’이라 하여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밀보다 수확량이 월등한 감자를 마다할 수 없었다. 산업혁명 시기에 감자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는 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이 됐다.
감자가 우리 땅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순조 갑신과 을유 양년(1824~1825) 사이 명천(明川)의 김씨가 북쪽에서 종자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했다. 감자가 우리 땅에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1890년대 이후로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등 산간에서 주로 재배됐다. 품종은 아직 개량되지 않은 자주감자 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감자 재배면적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일제가 우리 땅에서 쌀을 공출하면서 대체 식량작물로 감자를 보급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일제는 ‘남작’이라는 품종을 우리 땅에 들여왔다. ‘남작’은 삶으면 분이 많은 분질감자로, 현재 많은 사람이 ‘강원도 토종감자’라고 생각하는 그 감자다. 남작은 1876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이다. 이 품종을 영국에서 가져온 일본인이 가와다 남작이어서 ‘남작’이라 부르게 됐다.
감자는 우리 땅에서 식량작물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식량작물을 키우기 어려웠던 강원 산간지역에서 매우 중요했다. 생산성이 높고, 수확 후 가공 없이 삶기만 하면 끼니가 될 수 있어 농민에게는 더없이 경제적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감자 가공산업이 발달하면서 감자 품종에 변화가 왔다. 남작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지역 적응성이 뛰어나며 수확량도 많은 ‘수미’가 선택됐다. 수미는 1961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으로 1978년 우리 땅의 보급종으로 자리 잡았다.
수미는 점질감자다. 삶으면 찐득한 느낌이 든다. 남작에 비해 단맛은 더 있지만 식감은 많이 떨어진다. 남작은 강원 산간에서 잘 자라고 봄에 심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수미는 제주에서 강원까지 사철 재배가 가능하다. 지역 적응성과 수확량에서 월등한 수미가 득세하면서 현재 한반도 감자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수미의 장점을 취한 때문이지만 그 부슬부슬한 식감과 독특한 향의 남작을 이제 강원도에서 쉽게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많이 심는 것은 아니지만, 감자는 남작과 수미 외에도 여러 품종이 있다. 이 품종은 크게 분질과 점질로 나뉜다. 분질감자는 그냥 쪄서 먹거나 으깨어 샐러드에 넣고, 점질감자는 길쭉하게 썰어 볶음으로 먹거나 감자칩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소비자들은 감자의 품종을 잘 알지 못한다. 시장에서 이를 구별해 파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감자를 고른다는 것은 ‘1박2일’의 복불복 게임과 유사하다. 소비자가 미식생활을 하려고 해도 환경이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은 감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산물을 팔 때 품종명과 그 품종의 특징 정도는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고구마 품종 실종
요즘 시장에 가면 참 다양한 고구마를 보게 된다. 속노랑고구마, 자색고구마, 호박고구마 등. 생산량도 늘고 있다. 쌀이 남아돌면서 논에 벼 대신 고구마를 심는 농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만 따라준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고구마는 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예전에는 전남과 경남 지방에서 주로 재배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1960년대만 해도 고구마가 식량작물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강원도 감자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또 주정용으로 소주회사에서 고구마를 구입한 덕에 농가의 큰 소득원이 됐다. 그러던 것이 통일벼 덕분에 세 끼 쌀밥을 먹게 되고, 소주회사에서 주정용 전분으로 타피오카를 수입하면서 고구마 재배는 크게 줄었다. 그나마 최근에 고구마가 건강식이라고 소문이 나 생산량이 늘고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 고구마를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색깔에만 집중할 뿐 맛의 특징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 않는다. 컬러 마케팅도 좋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그 고구마가 어떤 맛이 나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몸에 좋다고 자색고구마 한 상자를 샀는데 입맛에 맞지 않는 물고구마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고구마는 크게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로 나눈다. 삶았을 때 물기가 적고 퍽퍽한 느낌이 나는 것을 밤고구마라 하고, 물기가 많고 물컹한 것을 물고구마라 부른다. 최근엔 속이 노란 호박고구마, 보라색의 자색고구마 등이 인기가 많은데 이들은 대체로 물고구마다. 이런 색깔 있는 물고구마를 유색 고구마로 분류하기도 한다.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는 함유된 전분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 전분 함유량이 23~25%이면 밤고구마, 18~19%이면 물고구마다. 전문 용어로 밤고구마 계열을 ‘분질’ 고구마라 하고 물고구마 계열을 ‘점질’ 고구마라 한다. 전분 함유량이 그 중간인 20% 정도면 ‘중간질’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구마의 품질은 의외로 다양하다. 국내에서 심는 것만 100여 종에 이른다. 고구마 주산지의 한 농업기술센터에서 한 해 동안 농가에 보급한 품종이 40종에 이르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농민들은 자신이 재배하는 고구마의 품종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또 밭 하나에 여러 종류를 심어 수확할 때 뒤섞이는 일이 허다하다. 생산자가 이러니 상인은 더하다. 오직 고구마를 분류하는 기준은 속의 색깔이 자주인지, 노랑인지 하는 것 정도다.
고구마 품종을 따지는 것은 이것이 고구마를 맛있게 먹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밤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물고구마를 사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군고구마는 물고구마로, 고구마밥은 밤고구마로 해야 맛있는데, 시장에서 이를 구별하지 못하면 맛있는 군고구마, 고구마밥을 어찌 기대하겠는가.
최근에 분질의 유색 고구마를 아주 드물게 맛보았다. 유색 고구마는 대체로 점질이거나 중간질인데 분질을 만난 것이다. 새로운 품종일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 고구마 맛에 반해 계속 먹고 싶었다. 하지만 품종을 확인할 수 없었으며 설사 품종을 알았다 해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국내의 모든 고구마는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고구마 품종이 다양해 농가에서 이를 일일이 표기하기 곤란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그 품종을 다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고구마의 전분 함유량을 표기하면 된다. 과일에 당도를 표기하듯 말이다. 그리고 전분 함유량 아래에 점질, 분질, 중간질을 구분해주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각 고구마의 특성에 맞는 요리와 요리법까지 알려준다면 금상첨화. 이제 농산물도 이 정도의 정보를 담아서 팔아야 한다.
포도
포도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땅은 포도의 한 종류인 머루의 자생지다. 그러나 원예작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규모 있는 재배단지를 조성한 것은 1906년부터다. 이해 뚝섬에 원예모범장, 1908년 수원에 권업모범장을 설립해 외국에서 도입한 포도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외국 포도 품종을 도입한 것은 그 몇 해 전인 1901년인데 남프랑스 캄블라제 출신의 앙투안 공베르 신부가 안성에 교회를 지으면서 미사용 포도주를 만들고자 머스캣(Muscat) 품종을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도는 크게 생식용과 포도주용으로 나눈다. 국내 포도 중 포도주용으로 재배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포도주는 주로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포도주용으로 재배하는 머스캣도 국내에서는 거의가 생식용으로 판매한다.
국내 생식용 포도 생산량의 대부분은 캠벨이 차지한다. 캠벨 뒤에 ‘얼리(Early)’가 붙기도 하는데, 조생종이란 뜻이다. 전체 포도 생산량의 70%가 넘는다. 캠벨은 미국 품종으로 국내 재배 역사는 100년이나 된다. 특유의 달콤하면서 시큼한 향이 있다. 이 향을 영어권 국가에서는 ‘foxy’라고 표현한다. 국내에서는 여우향, 호취향이라 하는데, 올바른 번역이 아니다. 적절한 비유를 들면 ‘맥주 상한 냄새’와 비슷하다. 청소를 잘 안 하는 생맥줏집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캠벨 품종의 ‘foxy’한 냄새다. 캠벨은 당도가 높지 않고 껍질도 두꺼워 맛있는 품종에 들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캠벨이 우리 땅에 크게 번진 것은 유럽종과 달리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혹서를 잘 견디며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많기 때문이다.
캠벨 다음으로 흔한 것이 거봉이다. 1940년대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이다. 무척 달며 탐스럽게 보여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향이 약해 가을 과일이 주는 풍부한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거봉과 함께 최근 10여 년 사이 큰 인기를 얻은 품종이 델라웨어다. 약간 흐린 색을 띠며 알이 작은데 당도가 18브릭스에 이를 정도로 달다. 또 과육이 부드럽고 껍질이 얇아 한 입에 몇 알씩 털어 넣기 편하다. 그러나 이 역시 향이 약하다. 나무가 추위에 강해 자연재해를 덜 입는다는 점이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난 이유 중 하나다.
최근 생식용 포도 시장에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 외국의 생식용 포도가 수입되면서 캠벨과 거봉, 델라웨어 중심의 몇몇 품종만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맛과 향이 독특하고 다양한 유럽종이 도입되고, 국내 기술로 육종한 품종도 농가에 보급되고 있다. 이런 포도 재배 품종의 다양화는 엉뚱하게도 한반도 온난화의 ‘도움’을 받고 있는 바가 크다. 특히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냉해에 약한 유럽종이 좋은 작황을 보이기도 한다.
유럽계 포도 중 특히 관심을 둘 만한 것은 머스캣이다. 머스캣은 한 송이에 달린 포도 알이 크거나 작아서 예전에는 ‘거지포도’라 불렀다. 그래도 그 향은 묘한 매력이 있다. 머스캣 향은 서양 요리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프랑스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무스카 향의 어쩌고’ 하는 요리 설명이 있으면 이 머스캣 포도의 향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머스캣 향을 굳이 설명하자면, 약간 고구마 썩는 냄새가 난다.
머스캣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재배가 까다롭고 수확량도 많지 않으므로 농가에서 재배를 기피해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경기 안성에는 오래된 머스캣 포도나무를 가진 농장이 제법 있다. 또 최근 충북 영동에서 포도주용으로 머스캣 재배면적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반가운 일이다.
어느새 가을이니, 추어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추어탕은 지역마다 끓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추어탕집은 제각각 서울식, 전라도식, 경상도식, 강원도식으로 낸다고 하지만 손님 입장에선 그 맛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없다. 전라도식이라 하면서 초피 대신 산초를 내놓는 집이 있고, 경상도식이라면서 방아를 알지 못하는 집이 있다. 대한민국이 좁다 보니 추어탕 조리법이 서로 뒤섞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또 식당 주인이나 주방 인력이 간판에 적힌 지명의 사람들이라 생각한다면, 참 순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표 추어탕’을 앞에 두고 애향심이 발동, 설전이 벌어지는 것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처음엔 대체로 자신의 고향에서는 어떤 식으로 추어탕을 끓이느냐로 시작한다. 된장을 넣네 고추장을 넣네 하다가, 초피가 맞네 산초가 맞네 제피가 맞네 한바탕 소란이 인다(맵고 얼얼한 맛이 나는 것은 초피다. 산초는 매운맛 없이 약간의 향기만 있다). 여기까지는 일행 중에 상식 넓은 이가 적당히 승부를 가려줘 별 탈이 없을 수 있다. 그 다음 단계, 추어탕의 주재료인 민물고기로 넘어가면 혼돈은 극에 달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미꾸리라 했고 그게 표준어다. 사전에도 그리 돼 있다”라고 말할 즈음 스마트폰이 동원될 것이다. “검색하니까 미꾸라지가 사전에 올라 있다. 미꾸리가 사투리인 모양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란 게 ‘이설’을 워낙 많이 담고 있어 정답을 딱 찍어 말해주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먹은 민물고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설전은 막을 내린다.
정답은 이렇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사투리와 표준말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민물고기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둘 다 잉어목 기름종개과로 분류된다. 일반인이 이 둘을 육안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종이다.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생태적으로 비슷하다. 입가에 조그만 수염이 달려 있고 비늘 없이 미끌미끌하며, 물 위로 입을 내밀어 내장호흡을 하고 가물거나 겨울이면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모양에서 조금 다른데, 몸통이 약간 둥근 것이 미꾸리고 세로로 납작한 것이 미꾸라지다. 그래서 미꾸리는 별칭으로 둥글이, 미꾸라지는 납작이 또는 넙죽이라 부른다.
우리 땅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함께 살았다. 한 개울에서 잡아도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섞여 나왔다. 그러나 잡히는 개체수는 달랐다. 미꾸리가 더 많았다. 미꾸리는 미꾸라지보다 생명력이 강해 생태적 우종으로 번성했다. 맛에서도 미꾸리가 우위에 있었다. 미꾸라지보다 구수한 맛이 더 있어 어른들은 예부터 미꾸리를 토종 대접했다.
그런데 요즘 추어탕집에서 쓰는 것은 미꾸라지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미꾸라지가 미꾸리보다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미꾸리든 미꾸라지든 추어탕감으로 쓰려면 15cm 정도는 돼야 하는데, 치어를 받아와 이 크기에 이르기까지 기르려면 미꾸라지는 1년, 미꾸리는 2년을 넘겨야 한다. 그러니 양식업체는 미꾸라지를 선호하게 되고, 추어탕집에서는 이 미꾸라지로 탕을 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추어탕 맛이 예전과 다르다고 불평하는 까닭은 바로 이 재료의 변화에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사진까지 올렸으니, 이제 추어탕집이면 으레 있는 수족관에서 이 민물고기를 관찰해볼 차례다. 구별이 가능할까.
국내의 많은 추어탕용 민물고기가 중국에서 치어로 수입돼 양식된다. 요즘 수족관에서 만나는 이 추어탕용 민물고기의 때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무지개색이 나는 것도 있고 어린아이 팔뚝만 한 것도 있다. 그러고 보면 미꾸리, 미꾸라지 논쟁은 하릴없는 일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면서 서해안에 대하가 붙었다. 대하는 보리새웃과의 새우다. 크다 해서 대하라 한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이름 자체가 대하다.
대하는 1년을 산다. 4~5월에 알에서 깬 대하는 연안에서 왕성한 먹이활동으로 급속도로 살을 찌운다. 9월이 되면 10cm 정도로 자라는데 이쯤 되면 사람들이 먹기 시작한다. 암수의 맛 구별은 거의 없다. 이후에도 대하는 계속 자라서 10월이 되면 수컷은 12~13cm, 암컷은 16~18cm까지 이른다. 이때부터 암컷은 알을 품기 위한 난소를 발달시킨다. 크기나 겉모양으로는 암컷이 더 맛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암컷은 살이 퍽퍽해져 맛이 떨어지고 수컷은 살이 여물어져 씹는 맛이 좋아진다. 이런 맛의 차이는 자연산에서 특히 크게 나타난다. 10월 말, 대하는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지고 힘도 강해진다. 덕분에 자연산 대하의 참맛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다. 보통 대하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서 죽는데, 이즈음 대하는 워낙 힘이 좋아 그물에서 떼어내도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11월에 들어서면 대하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봄, 제 부모가 그랬듯이 수심 얕은 앞바다로 올라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양식 대하는 양식장에서 겨울을 날 수 없으므로 그즈음에 모두 거두어들여 냉동한다. 9월에 대하축제를 시작하지만 실제로 맛있는 철은 바로 지금 10월인 것이다.
대하와 관련해 혼란스러운 정보가 떠돈다. 특히 보리새우와 흰다리새우에 관한 혼란이 심하다. 둘 다 보리새웃과지만 조금씩 다르다. 보리새우는 몸통에 줄이 나 있고 대하는 없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맛이나 가격으로 치자면 보리새우가 대하보다 한두 수 위다. 살의 탄력도와 단맛 등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둘을 비교했을 때의 말이고, 대하를 단독으로 놓고 보면 이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구웠을 때의 풍성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은 오히려 대하가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흰다리새우와의 혼동은 지난해 이맘때 인터넷에서 크게 논란이 됐다. 우리가 먹는 대하의 대부분이 흰다리새우라며 이를 증명하는 사진들이 떠돌았다. 그러면서 대하 판매업자들이 마치 사기를 치는 것처럼 내몰았다. 이는 관련 기관이 낸 보도자료 때문에 번진 사태인데, 자료에는 왜 흰다리새우가 대하로 오인돼 팔리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해 오해를 불러올 법했다.
흰다리새우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잡히는 대하와는 분명 다른 새우로 원산지는 중남미다. 그런데 수족관에 살아 있는 대하를 보면 거의가 이 흰다리새우다. 중남미에서 살려서 수입해올까. 아니다. 국내에서 양식을 한다. 흰다리새우가 대하에 비해 면역력이 강해 이를 양식하는 어민이 크게 늘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어민들이 흰다리새우를 흰다리새우라 하지 않고 그냥 대하라 부르면서 이 둘이 섞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양식 대하는 흰다리새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이 양식 흰다리새우가 양식 대하보다 맛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흡사한 모양새처럼 맛에서도 구별되지 않는다. 물론 자연산 대하와는 맛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굽거나 찌면 자연산이 더 맛있겠지만 양식 대하(또는 흰다리새우)가 나은 점도 있다. 생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산은 잡히자마자 죽으므로 생으로 먹기가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 생대하의 맛은 여리고 달콤하다. 이 맛에 길들여지면 소금구이 맛이 너무 ‘터프’해 대하 맛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하소금구이를 할 때 너무 강하게 구워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대하 살의 수분이 달아나면 질기고 단맛도 덜하기 때문이다. 대하가 발그스름해질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고 찌듯이 익히는 게 좋다. 적어도 대하의 껍데기가 쪼글쪼글해지지는 않게 해야 한다. 대하를 몸통의 살만 먹고 머리와 꼬리를 버리는 일이 흔한데, 머리에서 나오는 씁쓰레하고 떫은 맛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대하 맛의 절반만 본 것이다. 소금구이로 몸통의 살을 먹으면서 머리와 꼬리는 따로 뒀다가 강한 불에 덖거나, 버터나 기름을 두르고 볶으면 바싹하고 고소한 것이 별미다.
1980년대 초 우리 가족은 경남 마산(최근에 창원으로 통합)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로 옮기고 나서 가을이면 연중행사처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전어를 구입해 회로 먹고 구워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전어를 잘 먹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해 수족관에 살려놓은 전어도 없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전어는 먼 길에 냉장도 하지 않고 운송돼 그리 싱싱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노량진 시장의 죽은 전어 중 회로 먹을 만한 것을 골라야 했는데, 아가미 부분을 누르고 다니다 상인들에게 언짢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죽은 전어라도 아가미를 눌렀을 때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회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싱싱한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전어는 전국의 음식이 됐다. 가을이면 전어로 난리가 난다. 남해와 서해의 온갖 포구에서 전어 축제를 열고, 심지어 경기도 구리시에서도 축제를 한다. 그러면서 어느 틈엔가 우리 가족은 가을임에도 전어를 잘 먹지 않게 됐다. 우리 가족이 마산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을 전어를 통해 확인했는데 온 국민이 가을 전어를 먹는 바람에 그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을이 와도 전어 쳐다보기를 꽁치처럼 한다. 지금의 가을 전어 붐이 우리 가족 처지에서는 참 불행한 일인 것이다.
전어는 난류성 바닷물고기다. 겨울에는 남쪽 바다로 내려갔다 4월 즈음에 연안에 붙기 시작, 7월까지 산란을 한다. 이때 전어는 맛이 없다. 살이 푸석이고 비린내도 심하며 고소함도 적다. 산란을 마친 후 근해에서 먹이 활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는데, 8월 중순을 넘어서야 기름이 지고 살에 탄력이 붙는다. 고소함이 최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추석을 전후한 보름간이라는 게 일반적인 ‘설’이나, 해마다 날씨에 따른 변수가 커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가을 찬바람이 불어오면 전어는 남쪽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러기 바로 직전의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맛이 최절정에 이르는 그 짧은 순간 전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올해 날씨로 보자면 10월 중하순이 가장 맛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닷물 온도가 낮아 전어가 연안에 잘 붙지 않았고 찬바람이 일기도 전에 먼 바다로 빠져나가 어획량이 극히 적다. 올해는 육지 것이든 바다의 것이든 다 비싸다.
가을 전어가 ‘전국구 음식’으로 바뀌면서 전어 양식업이 생겼다. 2000년대 초 양식에 성공해 내륙의 축재식 양식장과 연안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전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시장과 식당 등에서는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광어와 우럭, 대하 등 양식이 되는 것은 이를 구별해 판매하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는데, 전어는 그렇지 않다. 항구와 포구의 어민은 전어가 안 잡혀 힘들다고 하는데 전어 축제장에는 전어가 넘친다. 축제장에는 양식 전어도 많을 것이다.
일부 미식가는 ‘양식 전어는 운동량이 적어 몸의 폭이 넓고 살의 찰기가 부족하며 고소한 맛이 덜하다’고 하지만 내 미각으로는 이를 구별해낼 재간이 없다. 자연산임에도 살이 푸석이고 고소하지 않은 전어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전어는 지역과 잡는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맛이 비슷하면 크게 따질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잘 키운 양식 물고기가 자연산보다 맛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소비자가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연산 전어임에도 맛이 없으면 “아직 가을이 익지 않았나 보다” “올해 바다가 이상하다고 하더니” 하며 자연의 숨결을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단지 입 안의 감각만을 좇는 일은 아니다.
고추는 ‘캐시컴 아늄(Capsicum annuum)’이라 부르는 식물로 중남미가 원산지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의 손에 의해 전 세계에 번졌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고추는 이식지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맛을 내는 식물로 변형됐다. 그 열매가 손톱만 한 것과 호박만 한 것,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과 매운맛이 전혀 없는 것도 있다. 고추 품종은 실로 다양해 헤아릴 수가 없다. 자연발생적인 품종의 분화도 있었겠지만 각 지역의 원예 연구자들이 그 지역민의 입맛에 맞는 품종을 개발해 보급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고추는 크게 풋고추용 고추, 고춧가루(홍고추)용 고추, 단고추(파프리카와 피망), 꽈리고추로 나뉜다. 고추 맛을 결정하는 데는 재배지의 환경 외에 품종이 크게 작용한다. 고추 품종마다 매운맛과 단맛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품종이 워낙 다양해 각각의 특징을 일일이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내에서 재배하는 품종은 1000종이 넘는다. 종묘회사들은 매년 새로운 품종을 시장에 내놓는다. 산지에 가보면 한 마을에서도 집집이 다 다른 품종을 심는다. 심지어 같은 밭에서 여러 품종을 재배하기도 한다. 품종이 많다 보니 나이가 든 농민은 자신이 심은 고추가 어떤 품종인지도 모른다. 또 고춧가루 가공공장에서도 품종 구별 없이 수매하므로 소비자는 어떤 품종을 먹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고추 품종이 이처럼 난립하게 된 이유는 1990년대 들어 국내 종묘회사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에 병합되면서 퇴사한 육종 전문가가 너도나도 육종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고추의 육종이 다양하게 시도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재배되는 품종이 이렇게 많아서는 농가나 소비자나 혼란스럽다. 지금의 사정으로는 내 입에 맞는 고추를 하나 찾았다 하더라도 그 고추를 시장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이 다양한 고추의 품종 중 딱 하나, 농가도 알고 소비자도 아는 품종이 있다. 바로 청양고추다. 청양고추는 풋고추로 온갖 음식에 들어가며 고춧가루로도 많이 쓰인다. 강렬한 매운맛에 이어 나는 약간의 단맛이 입맛을 돋우어 매운맛을 즐기는 한국인에게 더없이 훌륭한 식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 청양고추가 청양군에서 유래한 품종이며 청양군에서 유독 많이 재배하는 고추인 것으로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한편에서는 청양이라는 명칭이 또 다른 지명인 ‘청송’과 ‘영양’에서 한 자씩 따와 만들어진 조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해 혼란이 있다.
청양군이나 청양고추 재배 농민들로선 청양고추가 청양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면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청양의 일부 고추 재배 농민은 “청양고추의 유명성이 여타 품종의 청양 고추에 전이돼 청양의 모든 고추가 맵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수 있어 그다지 반길 일은 아니다”라 말한다.
청양고추는 고추 육종가 유일웅 씨가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해 얻은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청양고추 최대 생산지는 경남 밀양이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달라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정도로 알면 될 것이다. 하여간 정작 청양에 청양고추가 그렇게 많이 재배되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시장에 고춧가루용 건고추가 깔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산지와 품종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 맛이 어떤지 온갖 감각을 동원해 판별한다. 복불복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맛의 근원이라는 고추가 이래서 될 일인가 싶다.
배춧값 폭등 사태가 지나갔다. 이제는 폭락을 걱정한다는 말이 나온다. 배추 한 포기에 1만5000원이던 기간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배춧값이 뛰어 난리가 난 기간은 한 달도 안 될 것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내 식탁엔 양배추김치 내라”고 했다는 뉴스를 듣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배추김치든 양배추김치든 김치를 꼭 먹어야 하나?’ 서울시에서 배추를 ‘조금’ 싸게 풀었을 때, 한정 판매인 그 배추를 들고 환호하는 소비자를 보면서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김치 안 먹으면 죽나?’
그 당시에 이런 말을 했으면 몰매를 맞았겠지만, 이제 사태가 진정됐으니 욕을 좀 덜 먹겠다 싶어 속내를 말한 것이다.
배추 파동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국민이 김치가 맛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김치에 다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며, 김치를 먹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았다. 물론 예전에도 배추 파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온 국민이 배추 뉴스로 아침을 열고, 김치 걱정을 하는 심야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을 청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까짓 김치, 김장철도 아닌데 잠시 안 먹으면 어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치는 밥을 먹을 때 필요한 반찬일 뿐이고 그 대체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왜 굳이 김치를 먹겠다고 그 난리를 치는가 싶었다. 그러면서 올 초 개봉한 영화 ‘식객2-김치전쟁’이 떠올랐다.
영화 내용은 일본에서 인정받은 한국 요리사와 한국의 ‘토종’ 요리사가 김치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이 영화 제작자는 개봉에 맞춰 일본 산케이신문에 ‘KIM-CHI’란 광고를 냈는데, “김치는 한국 음식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당연한 내용의 광고를 왜 일본 신문에 돈을 주면서까지 게재했는지에 대해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김치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다. 해외에서 김치의 존재를 물었더니 아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김치를 부정하고, 자국의 기무치를 내세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김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일본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됐다.”
광고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일본인에게 알렸다”는 격려가 쏟아졌고, “일본인의 기무치에 한 방 날렸다”며 후련해했다.
김치는 우리 민족에게 반찬용 채소절임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담보하는 음식이며,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웰빙 음식으로 평가한다. 반찬으로 가장 좋은(저렴하고 맛있는) 음식, 즉 우리 민족의 기호를 넘어 세계인의 기호도 충족시킬 수 있는, 아니 충족시켜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김치가 우리 밥상에서 잠시나마 사라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바로 배추 사태의 본질이다. 가격 폭등만으로 생긴 난리가 아닌 것이다.
배춧값도 떨어지고 있으니 이제 좀 냉정해보자. 우리는 왜 김치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일까. 외국의 어느 식품학자가 세계 3대 발효음식이라고 해서인가, 아니면 일본인이 기무치라며 맛있게 먹어서인가. 서양인들이 “핫! 핫!” 하면서도 이를 즐기는 표정이 귀여워서인가, 김치시장이 넓어져 외화 획득에 도움이 될 듯해서인가. 아니면 외국인들이 “맛있다, 건강에 좋다”며 인정해주니 뿌듯해서인가.
한국인의 밥상에 김치는 꼭 올라온다. 그러나 이 김치를 반드시 맛있게 먹는 것도 아니다. 집 안에서는 물리고 물린 김치가 냉장고에 처박히기 일쑤고, 식당의 김치는 손도 안 대고 잔반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사다. 있는 듯 없는 듯, 먹은 듯 안 먹은 듯한 것이 김치다. 늘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김치에 따라붙는 세계적인 웰빙 음식, 한민족의 우수성과 자존심 같은 수식어, 그러니까 우리가 김치에 집착하게 하는 여러 의미는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국민의 집착을 필요로 하는 몇몇 사람의 상업적, 정치적 이득 때문에 우리가 이 채소절임을 두고 난리치는 것은 아닌가. 김치에 양념이 많으면 과숙성해서 맛을 버리듯,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일은 한국 음식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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