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유(洪時裕)와 매화(梅花)의 사연(邪戀)
사랑을 위해 사랑을 주는 사람을 배반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하고 있는 일인가!
늙은 감사의 극진한 사랑을 마다하고 젊은 사또의 품을 찾아간 여인이 있다.
그것도 의식적으로 미친 것처럼 행동하여서까지 늙은 감사의 곁을 떠나 젊은 사또의 품을 찾아 간 사연(邪戀)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매화(梅花). 매화는 명(名)이고, 성(姓)은 알려져 있지 않은 영조조 황해도 곡산 태생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러온다. 그녀의 시조 6수가 전한다.
조선 왕조 영조 말엽, 지금부터 220여 년 전, 그 무렵 황해도 곡산에 매화라 불리는 동기(童妓)가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여섯. 타고난 용모가 절세의 미녀요, 재주가 비상한 데다가 어려서부터 기생 수업을 열심히 닦은 때문에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다. 특히 시조에 능했다.
곡산은 황해도에서도 이름난 벽지(僻地).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같은 절세의 미인을 이런 벽지에 태어나게 한 신의 회롱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곡산에서 돈이나 있고 세도나 있다는 풍류한량들이 매화의 머리를 얹어 주지 못해 안달을 하고 다녔다. 본래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그 끝이 삐어져 나오게 마련이고(囊中之錐 其末入見), 복사꽃 오얏꽃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아도 그 밑에 저절로 길이 나게 마련이라(挑李不信 下自成路)지 않았던가!
매화의 소문은 날개 돋힌 듯 퍼져서, 황해도 일원에서 수많은 한량배들이 돈보따리를 나귀에 실리고 곡산으로 모여들었다. 아직도 동기(童妓)인 매화의 집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그러나 정작 매화 자신은 등이 닳은 한량배들에게 냉담했다. 그녀는 烈女不更二夫요, 忠臣不事二君이란 철저한 정절관을 갖고 있어서, 입에 발린 일시적인 감언에 넘어가지 않았다. 누가 먼저 자기의 머리를 얹어 주느냐에 경주를 하고 있는 그들이 가소로왔다.
여자는 정절을 생명같이 여겨야 한다. 한 번 몸을 허락하면 일생을 섬기는 여인이 되어야 한다. 그만한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어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까 보냐. 돈이 제일이 아니라는 것이 매화의 생각이었다.
어느 날 돈많은 한량과 술자리에 어울렸다.
"나는 너의 머리를 얹어 주기 위해 마누라를 친가에 보내고 불원천리 달려 왔느니라. 내가 너의 머리를 얹어 주게 해다오."
"어머, 고마와라. 미천한 저를 그토록 생각해 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럼 허락한단 말이냐?"
"아니어요, 아직 그런 말씀은 드리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으냐? 이래뵈두 우리는 해주의 만석꾼이란다. 내 너를 평생 동안 호의호식하게 해 주마."
"제가 옛사람의 시조 한 수를 불러 올릴까요?"
"그래라. 네가 나를 위해 노래를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냐? 어서 불러 보려므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하고 있는 일인가!
늙은 감사의 극진한 사랑을 마다하고 젊은 사또의 품을 찾아간 여인이 있다.
그것도 의식적으로 미친 것처럼 행동하여서까지 늙은 감사의 곁을 떠나 젊은 사또의 품을 찾아 간 사연(邪戀)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매화(梅花). 매화는 명(名)이고, 성(姓)은 알려져 있지 않은 영조조 황해도 곡산 태생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러온다. 그녀의 시조 6수가 전한다.
조선 왕조 영조 말엽, 지금부터 220여 년 전, 그 무렵 황해도 곡산에 매화라 불리는 동기(童妓)가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여섯. 타고난 용모가 절세의 미녀요, 재주가 비상한 데다가 어려서부터 기생 수업을 열심히 닦은 때문에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다. 특히 시조에 능했다.
곡산은 황해도에서도 이름난 벽지(僻地).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같은 절세의 미인을 이런 벽지에 태어나게 한 신의 회롱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곡산에서 돈이나 있고 세도나 있다는 풍류한량들이 매화의 머리를 얹어 주지 못해 안달을 하고 다녔다. 본래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그 끝이 삐어져 나오게 마련이고(囊中之錐 其末入見), 복사꽃 오얏꽃은 사람들을 부르지 않아도 그 밑에 저절로 길이 나게 마련이라(挑李不信 下自成路)지 않았던가!
매화의 소문은 날개 돋힌 듯 퍼져서, 황해도 일원에서 수많은 한량배들이 돈보따리를 나귀에 실리고 곡산으로 모여들었다. 아직도 동기(童妓)인 매화의 집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그러나 정작 매화 자신은 등이 닳은 한량배들에게 냉담했다. 그녀는 烈女不更二夫요, 忠臣不事二君이란 철저한 정절관을 갖고 있어서, 입에 발린 일시적인 감언에 넘어가지 않았다. 누가 먼저 자기의 머리를 얹어 주느냐에 경주를 하고 있는 그들이 가소로왔다.
여자는 정절을 생명같이 여겨야 한다. 한 번 몸을 허락하면 일생을 섬기는 여인이 되어야 한다. 그만한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어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까 보냐. 돈이 제일이 아니라는 것이 매화의 생각이었다.
어느 날 돈많은 한량과 술자리에 어울렸다.
"나는 너의 머리를 얹어 주기 위해 마누라를 친가에 보내고 불원천리 달려 왔느니라. 내가 너의 머리를 얹어 주게 해다오."
"어머, 고마와라. 미천한 저를 그토록 생각해 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럼 허락한단 말이냐?"
"아니어요, 아직 그런 말씀은 드리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으냐? 이래뵈두 우리는 해주의 만석꾼이란다. 내 너를 평생 동안 호의호식하게 해 주마."
"제가 옛사람의 시조 한 수를 불러 올릴까요?"
"그래라. 네가 나를 위해 노래를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냐? 어서 불러 보려므나."
세상에 부귀한 사람들이여
가난한 선비를 비웃지 마시오.
석숭(石崇)은 누거만재(累巨萬財, 많은 보물)로도
일개 필부에 그치고,
안자(顔子)는 가난하여 표주박의 물을 마시면서도,
성현의 자리에 이르렀으니,
내 몸이 비록 가난하여도,
내가 갈 길을 닦으면
남의 부귀가 부러울 리 없다오.
세상(世上) 부귀인(富貴人)들어
빈한사(貧寒士)를 웃지 마라.
석숭만재(石崇萬財)로 필부에 그치고
안빈일표(顔貧一瓢)로도 성현에 니르시니,
내 몸이 빈한(貧寒)하야마는
내 길을 닥그면 남의 부귀 부르랴.
"음, 돈만 가지고는 안된단 말이렷다...."
"예, 옛 어른들께서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저를 위해 하신 말씀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옵니다. 그 말씀대로 지금 계신 부인을 집으로 보내셨다면, 장차 다른 여인을 위해 저를 집으로 보내실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오니이까?"
좌중이 박장대소한다. 한량은 무안해서 얼굴을 붏힌 채, 아쉬운 마음으로 곡산을 떠났다. 매화의 말에서 그녀의 정절을 도저히 꺾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예, 옛 어른들께서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불하당(不下堂)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저를 위해 하신 말씀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옵니다. 그 말씀대로 지금 계신 부인을 집으로 보내셨다면, 장차 다른 여인을 위해 저를 집으로 보내실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오니이까?"
좌중이 박장대소한다. 한량은 무안해서 얼굴을 붏힌 채, 아쉬운 마음으로 곡산을 떠났다. 매화의 말에서 그녀의 정절을 도저히 꺾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 갔다.
본래 오르지 못하는 나무는 더욱 높아 보인다던가. 매화가 도도하게 굴수록 한량들은 애가 탔다.
이제는 곡산뿐 아니라 도처에서 내노라하는 한량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여자를 다루는 일에는 백전노장. 기생 하나쯤 다루지 못하겠냐는 자신을 가지고 매화에게 접근해 보았으나 모두가 판정패.
돈으로 어르고 갖은 말로 꾀어도 보고, 인정으로 달래도 보고 눈물로 하소연해 보았으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매화(梅花)였다.
그렇게 도도한 매화가 함락된 것은 그녀가 17세 되던 해 봄. 황해도 관찰사 어윤겸이 관내 순시차 곡산에 들렀을 때였다.
곡산 사또가 마련한 주연에 나온 매화를 보고 관찰사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도도한 매화가 함락된 것은 그녀가 17세 되던 해 봄. 황해도 관찰사 어윤겸이 관내 순시차 곡산에 들렀을 때였다.
곡산 사또가 마련한 주연에 나온 매화를 보고 관찰사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두메 고을에 저런 절색이 있다니. 젊었을 때부터 호걸스런 풍류객이었던 노 관찰사 어윤겸은 매화에게 반해 버렸다.
사또는 매화에게 감사의 시중을 들게 했다.
객사로 돌아온 어감사는 자리에 앉아서 시중드는 매화를 찬찬히 살펴본다. 나무랄 데 없는 미녀였다.
그녀가 금침을 깔아 놓고 나가려 할 때 "올해 네 나이 몇이냐?"
"예, 열 일곱이옵니다."
"그래 좋은 나이다. 앉아서 얘기나 좀 하다 가렴."
매화는 속으로 관찰사의 의중을 짐작하고, 마음을 도사려 먹으며 살포시 곁에 앉는다.
"너는 머리를 보니 동기(童妓)가 분명한데,
"예, 열 일곱이옵니다."
"그래 좋은 나이다. 앉아서 얘기나 좀 하다 가렴."
매화는 속으로 관찰사의 의중을 짐작하고, 마음을 도사려 먹으며 살포시 곁에 앉는다.
"너는 머리를 보니 동기(童妓)가 분명한데,
여지껏 머리를 얹어 주겠다는 사람이 없더냐?"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있기는 있사오나 소녀가 거절하였습니다."
"아아니, 거절을 하다니?"
"황공하옵니다마는 아무리 미천한 천기일지라도, 한 번 몸을 허락하면 한 평생 그 분을 위해 수절해야 하옵는 것으로 아옵는데,
"아아니, 거절을 하다니?"
"황공하옵니다마는 아무리 미천한 천기일지라도, 한 번 몸을 허락하면 한 평생 그 분을 위해 수절해야 하옵는 것으로 아옵는데,
아직껏 그런 분을 만나지 못했사옵니다."
"음, 갸륵한 생각이구나,
"음, 갸륵한 생각이구나,
여자는 정절이 생명이어야지...."
어윤겸은 속으로 신음한다.
어윤겸은 속으로 신음한다.
(내 나이가 10년만 젊었던들....)
"매화야,
"매화야,
사또가 왜 너를 이 방에 들여 보냈는지 아느냐?"
"그런데 수청을 들라고 들여 보낸 줄 알면서
"그런데 수청을 들라고 들여 보낸 줄 알면서
그냥 나가려 했단 말이냐?"
"황공하오나,
"황공하오나,
소녀는 말씀 드린 대로 절개를 소중히 여기옵기에 그러하였습니다."
"음 그러면 내가 널 희롱만 하고 갈 것으로 알았단 말이지?" "........"
"말이 없는 걸 보니 수긍하는 게로구나.
"음 그러면 내가 널 희롱만 하고 갈 것으로 알았단 말이지?" "........"
"말이 없는 걸 보니 수긍하는 게로구나.
너를 수청들게 하면 내 조강지처를 내보내고 너를 들여 앉혀야 한단 말이지?" "......."
"내 너의 정절관에 감탄했느니라.
"내 너의 정절관에 감탄했느니라.
너는 네가 바라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까지 소중하게 정절을 지켜라. 나가 보아라."
놀란 것은 매화였다.
놀란 것은 매화였다.
관찰사의 위력으로 강제로 수청을 들라해도 거절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어감사는 그런 눈치가 없다.
머뭇거리는 매화를 보고 재촉한다.
"내 비록 몸은 늙었으나
"내 비록 몸은 늙었으나
너 같은 미인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건 아니다만,
네 뜻을 가상히 여겨 보내는 게다.
어서 돌아가거라."
매화는 생각해 본다.
매화는 생각해 본다.
이런 분이라면 마음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구많은 한량들에게 시달리는 데도 이제는 지쳤다.
차라리 인격 높은 이 분에게 피곤한 마음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화는 한동안 착잡하던 마음을 가다듬고는 "소녀는 오늘밤 이 방에 머물어 감사님을 뫼실까 하옵니다."
어리둥절한 것은 어감사.
"아니 가겠다더니 웬일이냐?"
"말씀을 듣고보니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어감사는 속으로 크게 기뻤다.
어리둥절한 것은 어감사.
"아니 가겠다더니 웬일이냐?"
"말씀을 듣고보니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어감사는 속으로 크게 기뻤다.
알 수 없는 것은 여자의 마음이구나.
사실 어윤겸은 제가 싫다면 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내 나이 벌써 칠십에 이르지 않았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끝내 매화를 그냥 놓쳐 버리기는 아까운 마음이었다.
어감사는
'인생은 뜻을 얻었을 때에 모름지기 환락을 다할 것이니/
황금의 술단지를 달빛 아래 헛되이 버려 두지 말라'
인생득의수진환(人生得意須盡歡)
막사금준공대월(莫使金樽空對月)던
이백의 시를 생각하며 매화의 손을 끌어 잡는다.
도학자적 윤리심을 발휘하려던 어윤겸도 매화의 미색에 빠지고 말았다.
도학자적 윤리심을 발휘하려던 어윤겸도 매화의 미색에 빠지고 말았다.
대저 남자가 미색을 거부한 일이 있었던가.
당의 현종도 양귀비의 일색일소에 현혹하여 안녹산의 난을 맞아 행촉(幸蜀)까지 하였고,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 항우도 우미인에게서 헤어나지 못했음을 후세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한 번 웃으면 백 가지 교태가 생기는 것이 양귀비의 청초하고 고운 모습이라.
당 명황도 이렇기 때문에 만리까지 떨어진 촉나라로 피난까지 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마외역에서 불쌍하게 죽은 양귀비의 넋을 못내 설워하노라
일소백미생(一笑百媚生)이 태진(太眞)의 여질(麗質)이라.
명황(明皇)도 이러무로 만리행촉(萬里幸蜀) 하시도다.
지금(至今)에 마외방혼(馬嵬芳魂)을 못내 슬허 하노라.
항우와 같은 훌륭한 장사라도 우미인을 이별하고 울면서 수천리를 헤매었고,
당 명황 같은 세상을 다스리던 뛰어난 임금도 양귀비와 헤어져서는 울었으니,
하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항우(項羽)이 자컨 천하 장사(天下壯士)랴마는 우미인(虞美人) 이별읍수행하(泣數行下)하고
당 명황(明皇)이 자컨제세영주(濟世英主)이 랴마는 양귀비 이별에 우럿나니
하물며 녀나믄 장부(丈夫)이 야 닐러 무슴 하리오.
매화는 조촐한 주안상을 들여온다. 깊어 가는 밤의 정적은 두 사람의 숨소리만 크게 들리게 한다. 촛불이 펄럭 꺼졌다. 칠십 노령의 어윤겸과 열 일곱의 매화와의 접합이.....
어감사를 모신 매화는 행복했다. 하루 아침의 하향천기(遐鄕賤妓)가 일약 감사의 '작은댁 마님'이 된 기분은 그녀를 행복스럽게 했다. 감사의 극진한 애무가 그녀를 기쁘게 하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나이 차가 너무 많다는 것뿐. 그러나 그것도 팔자소관이려니 하며 마음의 자세를 바로 잡는 매화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매화의 몸은 점점 무르익어 갔고, 감사의 몸은 점점 늙어만 갔다. 매화의 뙽습?자꾸 무성해 갔고, 어감사의 젊음은 자꾸 노쇠해 갔다.
그런 어느 날, 곡산에 계신 노모의 편지가 인편에 왔다. 사연인즉 병이 깊어 열흘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죽기 전에 너를 보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편지를 본 감사는 크게 걱정하면서 부담마(負擔馬)와 로수(路需)를 후히 주며 다녀오라고 했다. 다음날 일찍이 매화는 곡산을 향해 떠났다.
곡산(谷山) - 어려서 자라던 고향이었다. 누가 고향을 그리워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 길을 넘나드는 다람쥐, 무성한 숲 속의 이름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모두가 그립고 정다운 것들뿐이었다
어감사를 모신 매화는 행복했다. 하루 아침의 하향천기(遐鄕賤妓)가 일약 감사의 '작은댁 마님'이 된 기분은 그녀를 행복스럽게 했다. 감사의 극진한 애무가 그녀를 기쁘게 하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나이 차가 너무 많다는 것뿐. 그러나 그것도 팔자소관이려니 하며 마음의 자세를 바로 잡는 매화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매화의 몸은 점점 무르익어 갔고, 감사의 몸은 점점 늙어만 갔다. 매화의 뙽습?자꾸 무성해 갔고, 어감사의 젊음은 자꾸 노쇠해 갔다.
그런 어느 날, 곡산에 계신 노모의 편지가 인편에 왔다. 사연인즉 병이 깊어 열흘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죽기 전에 너를 보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편지를 본 감사는 크게 걱정하면서 부담마(負擔馬)와 로수(路需)를 후히 주며 다녀오라고 했다. 다음날 일찍이 매화는 곡산을 향해 떠났다.
곡산(谷山) - 어려서 자라던 고향이었다. 누가 고향을 그리워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 길을 넘나드는 다람쥐, 무성한 숲 속의 이름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모두가 그립고 정다운 것들뿐이었다
문득 두보의 [청명절(淸明節)]이 떠오른다.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 청명절에 촉촉히 내린 봄비가
노상행인욕단혼(路上行人欲斷魂) 길가는 나그네의 애를 끊누나.
차문주가하처유(借問酒家何處有) 아희야 묻노니 행화촌의 어디메냐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목동은 손을 들어 술집을 가리키네.
노상행인욕단혼(路上行人欲斷魂) 길가는 나그네의 애를 끊누나.
차문주가하처유(借問酒家何處有) 아희야 묻노니 행화촌의 어디메냐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목동은 손을 들어 술집을 가리키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사립문을 열고 매화를 맞는 것은 늙은 어머니였다. 병이 위독하여 누웠다던 어머니가 매화를 맞는 것이다.
"어머니 어쩐 일이어요?"
"글쎄 나중에 얘기할 테니 어서 들어오너라."
매화가 해주 감영에 올라 간 후, 신임 사또 홍시유(洪時裕)가 부임했는데, 홍사또는 부임하자마자 소문으로 듣던 매화를 찾았으나 이미 감영으로 떠난 후였다. 사또는 한 발 늦었음을 통탄해 하면서도 기회를 엿보기 위해, 매화의 노모를 음으로 양으로 친절히 보살펴 주고 도와 주었다. 그리고 끝내 노모를 설득시켜 매화에게 거짓 편지를 보내어 곡산으로 내려오게 한 것이다.
"사또님이 너를 저렇게 보자고 하니, 한 번 만나 보아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매화는 흠칠 놀랐다. 누구보다도 정절관이 강한 매화였다. 이제 어감사를 모시는 몸으로 홍사또를 나나야 할지 매화는 망설였다. 그러나 늙은 어감사의 얼굴에 겹쳐서 홍사또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며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였다.
다음날 매화는 홍시유를 만났다.
술자리에 마주 앉은 사또는 좋아서 안절부절이었다.
"매화야, 내가 너를 위해 [매화타령(梅花打令)]을 부르마."
홍사또는 혼자서 신이 나서 야단이다. 그런 사또의 건강한 모습에 취해, 매화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어머니 어쩐 일이어요?"
"글쎄 나중에 얘기할 테니 어서 들어오너라."
매화가 해주 감영에 올라 간 후, 신임 사또 홍시유(洪時裕)가 부임했는데, 홍사또는 부임하자마자 소문으로 듣던 매화를 찾았으나 이미 감영으로 떠난 후였다. 사또는 한 발 늦었음을 통탄해 하면서도 기회를 엿보기 위해, 매화의 노모를 음으로 양으로 친절히 보살펴 주고 도와 주었다. 그리고 끝내 노모를 설득시켜 매화에게 거짓 편지를 보내어 곡산으로 내려오게 한 것이다.
"사또님이 너를 저렇게 보자고 하니, 한 번 만나 보아라."
어머니의 말을 들은 매화는 흠칠 놀랐다. 누구보다도 정절관이 강한 매화였다. 이제 어감사를 모시는 몸으로 홍사또를 나나야 할지 매화는 망설였다. 그러나 늙은 어감사의 얼굴에 겹쳐서 홍사또의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며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였다.
다음날 매화는 홍시유를 만났다.
술자리에 마주 앉은 사또는 좋아서 안절부절이었다.
"매화야, 내가 너를 위해 [매화타령(梅花打令)]을 부르마."
홍사또는 혼자서 신이 나서 야단이다. 그런 사또의 건강한 모습에 취해, 매화는 속으로 한숨을 쉰다.
매화 녯 등걸에
봄의 계절이 도라온다.
녯 퓌든 가지마다
퓌염즉도 하다마는,
춘설(椿雪)이 하 분분(紛紛)하니
퓔지 말지 하노매라.
북경(北京) 가는 져 역관(驛官)들아,
당사(唐絲)실을 부붓침하세.
그믈 매세 그믈 매세
오색당사(五色唐絲)로 그믈 매세.
치세 치세 그믈 치세
부벽누하(浮碧樓下)에 그믈을 치세.
걸리소서 걸리소서
정(情)든 사람만 걸리소서.
물 아래 그림자 젓다,
다리 우희 즁놈이 간다.
즁아 즁아 거긔 석간(晳間) 섯거라,
너 가는 인편에 말물어보자.
그 즁놈이 백운(白雲)을 가라치며
돈담무심(頓談無心)만 하는고나.
성천(成川)이라 통의주(通義州)를
이리로 접첨 저리로 접첨 개여 놓고,
한 손에는 청수(淸水) 드립더 덥석 떠서,
이리로 솰솰 져리로 솰솰,
출넝축처 압 남산(南山)애,
밧 남산애 개암을 심거,
못 다 먹는 져 다람아.
매화는 [매화타령]에 맞춰 춤을 춘다. 어감사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눈앞의 젊고 건장한 홍사또에게 자꾸만 빠져들어 그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날밤 매화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로서의 기쁨을 만끽하고는 기진하였다. 환락의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지금까지 전연 알지 못하고 살아 오던 새로운 신비의 세계를 발견한 매화였다.
그날부터 보름 동안을 매화는 홍사또의 품 속에서, 태워도 태워도 끝이 없는 정염(情炎)을 한없이 한없이 태웠다. 그러나 보름간의 말미는 이 두 사람에게는 너무도 짧았다. 정말로 짧았다. 그러나 매화는 어감사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매화를 보내는 홍사또는 이극감(李克堪, 세조때 형조판서)의 [남포(南浦)]란 시를 적어 매화에게 주었다.
그날밤 매화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로서의 기쁨을 만끽하고는 기진하였다. 환락의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지금까지 전연 알지 못하고 살아 오던 새로운 신비의 세계를 발견한 매화였다.
그날부터 보름 동안을 매화는 홍사또의 품 속에서, 태워도 태워도 끝이 없는 정염(情炎)을 한없이 한없이 태웠다. 그러나 보름간의 말미는 이 두 사람에게는 너무도 짧았다. 정말로 짧았다. 그러나 매화는 어감사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매화를 보내는 홍사또는 이극감(李克堪, 세조때 형조판서)의 [남포(南浦)]란 시를 적어 매화에게 주었다.
강상설소강수다(江上雪消江水多) 강 위에 눈 녹으니 강물이 불었는데
야래문창죽지가(夜來聞唱竹枝歌) 밤이 되니 강 위엔 [죽지가(竹枝歌)]의 슬픈 곡조.
여군일별사하진(與君一別思何盡) 당신을 보내고 나면 그리움을 어찌하오.
천리춘심송벽파(千里春心送碧波) 천리라도 그리운 맘을 물결 위에 보내리.
야래문창죽지가(夜來聞唱竹枝歌) 밤이 되니 강 위엔 [죽지가(竹枝歌)]의 슬픈 곡조.
여군일별사하진(與君一別思何盡) 당신을 보내고 나면 그리움을 어찌하오.
천리춘심송벽파(千里春心送碧波) 천리라도 그리운 맘을 물결 위에 보내리.
홍시유가 주는 시를 받아 든 매화는 이런 시조 한 수를 써서 떠나는 아픔을 알렸다.
살뜰히도 그리운 내 마음과
알뜰히도 정겨운 임의 정을,
한 번 만나는 일이 이렇게 그리워도,
창자를 끊어 내는 그리움은
참기 정말 어렵구려.
하물며 몇몇 날을
이런 그리움으로 지내란 말입니까.
살들헌 내 마음과
알돌헌 님의 졍을
일시상봉(一時相逢) 글리워도
단장심회(斷腸心懷) 어렵거든
하물며 몃몃 날을 이대도록
이렇게 그리움을 안고 떠난 매화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홍사또에게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떠난 매화였다. 감영에 돌아온 매화는 어감사의 사랑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감사의 애무를 받으면서도 홍시유의 뜨거운 정열을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을 이렇게 불렀다.
내 맘 속의 무한한 그리움을
자세히 옴겨다가,
달 밝은 비단장막의
임 계신 곳에 전하고 싶구나.
그러면 임께서도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가를
짐작이라도 하시겠지.
심중(心中)에 무한사(無限事)를
세세(細細)히 옴겨다가
월사창(月紗窓) 금수장(錦繡帳)에
님계신 곳 전하고져
그제애 알들이
그리는 쥴을 짐작이나.
밤 깊은 새벽까지 잠 못 들어
이리저리 뒤척일 제,
궂은 빗속 방울소리 들려,
그리움으로 창자가 끊어지네.
뉘라서 임을 그리는 내 모습
그려다가 임의 앞에 전할까
야심(夜深) 오경(五更)토록
잠 못 일워 전전(轉輾)헐 제
구즌 비 문령성(聞鈴聲)이
상사(相思)로 단장(斷腸)이라.
뉘라셔 이 행색(行色)
글려다가 님의 압에
다음날부터 매화는 칭병(稱病)하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감사가 놀라서 명의를 불러다 진맥을 시키고, 일변 명약을 먹이고 하나 나을 리 없는 병이었다. 며칠을 누웠던 매화는 미친 척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속옷바람으로 거리를 쏘다녔다. 정녕 미친 짓을 했다. 어감사는 백방으로 매화의 병을 고치고자 노력하나 그럴수록 매화는 더욱 심해 갔다. 어감사는 마음이 아팠으나 도저히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할 수 없이 매화를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그리고 특별히 홍사또에게 매화를 잘 보살펴 주라는 부탁까지 하였다. 호랑이 입에 고기를 주는 격이 된 줄은 어감사는 알 리가.....
이런 두 사람의 패륜(悖倫)을 하늘은 놓칠 리가 없었다. 하늘의 그물은 코가 아무리 성겨도 악인을 그냥 노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가.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래 갈 리가 없었다. 그런 생활이 두어 달 지난 후, 어감사로부터 감영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홍시유에게 날아왔다. 두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병신옥사(丙申獄事). 집권파에 속해 있던 홍시유도 이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홍시유가 참형을 당하자, 그의 정실부인 이씨도 남편을 따라 목을 매어 순사(殉死)했다. 매화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의 실예를 이씨에게서 보았다.
매화는 끝까지 남아서 홍시유 내외를 선영에 안장했다. 며칠을 허탈한 마음으로 지냈다. 그 허탈과 애타는 마음을 매화는 이렇게 불렀다.
매화는 곡산에 오는 길로 그리웠던 홍사또의 품에 안겼다. 이제는 걱정없이 둘만의 정염(情炎)을 마음껏 태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보다도 철저한 정절관을 가졌던 매화였다.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염원했던 매화였다. 그러나 매화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얼까?
이런 두 사람의 패륜(悖倫)을 하늘은 놓칠 리가 없었다. 하늘의 그물은 코가 아무리 성겨도 악인을 그냥 노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가.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래 갈 리가 없었다. 그런 생활이 두어 달 지난 후, 어감사로부터 감영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홍시유에게 날아왔다. 두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병신옥사(丙申獄事). 집권파에 속해 있던 홍시유도 이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홍시유가 참형을 당하자, 그의 정실부인 이씨도 남편을 따라 목을 매어 순사(殉死)했다. 매화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의 실예를 이씨에게서 보았다.
매화는 끝까지 남아서 홍시유 내외를 선영에 안장했다. 며칠을 허탈한 마음으로 지냈다. 그 허탈과 애타는 마음을 매화는 이렇게 불렀다.
매화 나무 옛 등걸에도
봄이 다시 돌아오니,
옛날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그 가지에,
다시 아름다운 꽃이 필만도 하다 만은,
봄눈이 어지럽게 내리니 필지 말지 하구나.
매화(梅花) 녯 등걸에
춘절(春節)이 도라오니
녜 픠던 매지(梅枝)에
픠염 즉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똥말똥 하여라
이것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매화가 남긴 뛰어난 시조다. 인생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던 매화의 한탄으로 절장(絶章)이다.
다음날 매화의 시체가 홍시유의 무덤 곁에서 발견되었다. 그토록 아껴 주던 어윤겸을 배반하고 홍사또에게 달려 온 것을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뒤늦게나마 그를 위해 순절한 것을 두고 세인들은 매화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렀다.
[병와가곡집]에는 이 노래의 저작동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유춘색(柳春色)
재리유백시(再리酉伯時)
친압춘설(親狎春雪)
고작차가(故作此歌)
다음날 매화의 시체가 홍시유의 무덤 곁에서 발견되었다. 그토록 아껴 주던 어윤겸을 배반하고 홍사또에게 달려 온 것을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뒤늦게나마 그를 위해 순절한 것을 두고 세인들은 매화를 '재가열녀(再嫁烈女)라고 불렀다.
[병와가곡집]에는 이 노래의 저작동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유춘색(柳春色)
재리유백시(再리酉伯時)
친압춘설(親狎春雪)
고작차가(故作此歌)
또 신위(申緯)의 [소악부(小樂府)]에는 '매화사(梅花詞)'란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이 한역되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