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해변으로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송림을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파도소리가 그 바람에 실려 왔다. 해운대 해변으로 다가서면서 나는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있었다.
해운대.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과 깎아지른 절벽.
해운대라는 지명에서 연상되는 풍경이다.
‘해운대는 동래의 동쪽 18리에 있고 산이 바다 속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다.’ 1740년에 기록된 동래부지(東來府誌)는 해운대의 소재를 이렇게 말한다. 그 누에머리처럼 생긴 곳이 바로 해운대 해변의 오른쪽에 있는 동백섬이다. 춘천천 등에서 밀려 내려온 모래가 그 섬과 육지 사이를 메워버렸지만, 아직도 이곳을 동백섬이라고 부른다. 해운대는 동백섬 안에 고운(孤雲) 최치원이 쌓았다는 대(臺)를 가리킨다. 그의 호(號) 해운(海雲)을 따서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내가 해운대를 찾은 것은 피어올랐다가는 사라지는 바다 위의 구름처럼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황대(荒臺)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 금모래가 꿈결처럼 펼쳐져 있는 사빈(砂濱)을 보기 위해서다.
나는 동백섬 초입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섰다. 해송 아래를 지나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시계가 한꺼번에 열렸다. 흰 구름이 파란 색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이 떠 있고 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날고 있었다.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면서 해변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뭍으로 다가오면서 파도는 일어섰다가는 이내 풀썩 쓰러진다. 모래바닥을 거머쥐듯이 잠시 멈칫하다가 미끄러져 나간다. 뒤따라온 파도가 아까보다 좀 더 깊은 해변 위로 밀려든다.
오랜만에 찾는 해변이다. 와우산이 해변의 왼쪽을 감싸고 있다. 장산 자락이 지금이라도 물속으로 덤벙 뛰어들 듯이 바다로 내달리다가 물가에 와서는 멈칫거리듯 서 있는 것이 와우산이다. 1930년대 경성방송국에서 선정한 대한팔경의 하나로 꼽는 ‘해운대 저녁달’은 바로 저 와우산을 넘는 달맞이고개에서 보는 달을 일컫는다.
나는 달구경보다 그곳에서 보는 해운대 해변이 더 좋다. 송정(松亭)에서 시내로 돌아올 때 와우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지 않고 열다섯 번이나 굽이치는 길을 지나 달맞이고개를 넘는 것은 그 고갯마루에서 벚나무 가로수 너머로 환영(幻影)처럼 조망되는 해운대 해변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따뜻한 남쪽이지만 겨울 바다는 바람이 차다. 소금물을 잔뜩 머금은 찬바람을 심호흡으로 들이켰다. 오후의 겨울햇살은 멀리 수평선에서 이쪽 해안까지 눈이 부시도록 은빛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수평선 근처에 아스라이 떠 있는 오륙도가 은빛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피어 있었다.
장정곡포(長汀曲浦)의 풍경
나는 해운대 백사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해운대의 사빈(砂濱)은 1965년에 해수욕장으로 개장되었다. 동백섬과 와우산 기슭의 미포(尾浦) 사이의 길이 1.6km, 폭 35~50m, 면적 60,100㎡로, 흔히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물가에는 넓은 모래가 햇빛에 반사되어 밝게 반짝이고 있다. 모래 언덕 위에는 해송 군식이 마치 강한 바닷바람을 막기라도 하듯이 버티고 열을 지어 서 있다. 수평적인 백사장과 수직적인 푸른 소나무는 ‘수평과 수직의 분극’이라는 지상 경관의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풍경을 두고 옛사람들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이름했다.
해운대가 한때는 넓게 펼쳐져 있는 흰모래를 전경으로 하고 그 뒤로 푸른 소나무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해운대구지'(1994)에는 그 송림의 대부분은 한국전쟁 때 수륙양용선(水陸兩用船)의 출입을 위하여 베어 버려 없어졌다고 한다.
해안풍경을 구성하는 것으로 갯바위, 파도, 섬, 곶, 해안식생, 단애, 그리고 갈매기 등 바닷새와 같은 자연경관과 등대, 어선, 전망대, 어촌마을 등과 같은 인공경관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고 그래서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 사질(沙質) 해안이다.
나는 모래 위를 걸어 물가로 다가갔다. 파도가 밀려왔다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른 파도가 밀려왔다가는 마찬가지로 되돌아갔다. 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물가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매번 다른 파도가 떠밀려오고 있었다.
이런 사빈도 좋지만, 내가 해운대 해변 풍경을 절경으로 꼽는 것은 장대하고 미려한 해안선의 선형(線形)이다. 넓은 폭의 백사장과 긴 해안, 그리고 멀어질수록 급하게 휘어지는 해안선, 이 셋이 절묘하게 조합된 풍경의 명품이다. 장정곡포(長汀曲浦)라는 풍경 명칭은 바로 이 해운대 해변에 붙여져야 할 이름이다.
물론 이와 같이 멀어질수록 급하게 휘는 해안선의 투시상은 시선과 해안선과의 절묘한 조합에 의하여 탄생되는 것이다. 해운대 해변이 소묘하는 해안선의 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정확하게는 동백섬의 초입을 막고 서 있는 조선비치호텔이다. 나는 이곳에서 보는 해운대 해변처럼 선형이 명료한 해안선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조선비치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바다에 면한 1층 로비의 유리창에 해운대 해안이 가득 차 있었다. 해안선은 그 곡율이 심하게 왜곡되어 마치 활시위를 한껏 당긴 듯이 휘어 있었다. 와우산 산자락은 마치 팔을 크게 벌려 바닷물과 모래를 안고 있는 듯하다. 지도 위에서 보면 완만하게 원호(圓弧)를 그리는 해안선이 실제로 대지 위에 서서 해안선의 방향과 평행하는 시선으로 보면 그것이 멀어지면서 급하게 꺾어져 보인다. 이것이 바로 지상 위에서 체험하는 투시상의 특질로 꼽는 것으로, 풍경학에서는 ‘형의 투시적 압축’이라고 한다.
하늘 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대지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의 시선 방향에 따라 지상의 투시상도 변화한다. 지상경관이 고공에서 보는 단조로운 풍경에 비하여 그 표정이 풍부한 것은 바로 ‘형의 투시적 압축’에 기인한 천변만화하는 투시상에 그 이유가 있다.
철길이 멀어질수록 좁아져 보이는 것처럼 형의 투시적 압축은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어질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해안선으로 치면 짧은 해안선보다 긴 해안선이 더 심하게 휘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해운대 해변보다 더 길고 풍부한 사빈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운대 해변이 인상 깊은 풍경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긴 물가의 휘어지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시점(조망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비치호텔이 서 있는 부분이나 맞은 편 미포(尾浦) 등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조망점이 해운대를 해변의 명풍경으로 만든다.
풍경과 실재감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나는 와우산 기슭 미포(尾浦)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해가 지는 해변을 볼 것이다. 해변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은,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이 '토포필리아'(1974)에서 말했듯이 그곳은 안전을 의미하면서 한편으로는 수평선이 모험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해변이 우리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시선의 이동에 따라 화답이라도 하듯이 해안선이 리드미컬하게 변화한다는 점을 들고 싶다. 대지와 시선의 교향(交響)으로 발생하는, 멀리 굽어지는 금모래 바닷가 풍경은 내가 대지 위에 살고 있다고 하는 실재감을 준다. 풍경의 미적 체험이란 바로 이런 대지의 실상(實相)을 목격하는 나의 실존적 자각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될 것이다.
해가 동백섬이 있는 서쪽으로 넘어가자 해변을 둘러싸듯이 서 있는 리조트 시설에서 일제히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낮과는 다른 해변의 모습이 태어나고 있었다. 활기와 설렘과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비릿한 젊음이 낮의 해변이었다면 밤의 해변은 일렁이는 물위에 드리우는 불빛처럼 관능적이다.
멀리 동백섬이 검은 실루엣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섬과의 구도적 조화와는 무관한 사각형의 리조트 건물의 객실에서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일제히 불을 켰다. 그 가로등 불빛이 멀어지면서 휘어지는 해안과 일렁이는 물결을 몽환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해운대 달맞이고개
고개에 오르니 수평선 너머로 휘영청 보름달이
열다섯 구비 길 양편으로 벚나무 가로수가 제법 노목의 풍모로 서 있다. 제일 아래 가지는 차창을 건드릴 듯 낮게 드리워져 있다. 봄이면 벚꽃으로 지천이 되는 길이다. 오후의 사양(斜陽)이 나뭇가지 그림자를 길바닥 위에 길게 끌어다 제멋대로 무늬를 그린다.
뱀 꼬리처럼 이리저리 굽이치는 언덕길이 기어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해운대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달맞이고갯길의 광경이다. 나는 고갯마루에서 벚나무 가로수 위로 넘쳐 오르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광안대교와 황령산이 그 뒤에 겹쳐졌다.
달맞이 고개는 이름 그대로 달 풍경을 보는 명소다. 동백섬이나 해운대 해변에서 보는 달 풍경도 놓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곳 달맞이고개에서 보는 달 풍경을 제일로 꼽는다. 나는 여기서 동해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을 기다렸다.
달 구경의 명소 해운대
제법 사위가 어두워졌다. 어느 새 달맞이 언덕배기를 차지한 음식점과 카페에서 하나둘 저녁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나는 고갯마루에 서 있는 해월정(海月亭)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이 9월13일이니 달은 오후 8시10분쯤 떠오를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설레었다. 실로 오랜만의 달구경이다.
하늘을 우러러보면 별이 제법 보였던 그 시절에는 밤 골목을 밝히고 있는 달을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래도 인상적인 달은 정월 대보름의 그것이다. 초등학교 때 어른들과 함께 해운대 온천을 갔을 때였다. 목욕을 마치고 해변으로 걸어나가자 그 때 마침 수평선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골목을 뛰어다니던 나를 뒤쫓던 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둥근 달이었다. 와, 하고 탄성을 질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밝은 달빛으로 덩달아 환한 얼굴이 된 우리들은 무엇인가에 이끌린 듯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손을 모았다. 그 때는 누구든지 정월 대보름 달에게 무엇인가를 빌었다. 달빛이 하얗게 깔린 모래펄 위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고, 나도 달에게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를 소원했던 것 같다.
나는 그 해운대가 달 풍경의 명소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1930년대에 경성라디오에서 전국의 청취자 의견을 모아 선정한 대한팔경 중 하나로 해운대 달구경이 선정된 것도, 소설가 이광수가 이 곳 달 풍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간혹 도시의 빌딩 사이나 도시를 감싸는 산언덕 너머로 넘어온 달을 볼 때면 그 때 해운대에서 본 달을 떠올렸다. 그러나 올해 추석은 짙은 먹장구름 탓에 중추명월을 볼 수 없었다. 거기에다 태풍까지 겹쳤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고난 하늘은 다행스럽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한가위 보름이 이틀이나 지났지만 그래도 달구경에는 절호의 날씨다.
달이 아름다울 때
와우산이 바다로 밀려 내려와 그 산자락이 물에 다다르자 놀란 듯 움칫하고 솟구친 곶의 절벽 끄트머리에 해월정은 서 있다. 사방으로 바다 풍경이 거침없이 누마루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청사포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황령산 뒤로 넘어가는 해가 서쪽 하늘에서 황금색으로 바스러지고 있었다. 와우산에서 보는 석양은 해운대 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일출과 일몰, 그리고 월출을 함께 볼 수 있는 명소인 해월정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자꾸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이제는 어두워져 등대불만 깜박이는 청사포쪽 바다를 응시했다. 일출과는 달리 월출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러니 달이 떠오르는 방향에서 눈길을 떼면 안 된다.
일출의 순간은 확실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웠던 동쪽 하늘이 성냥불을 그은 것처럼 확, 하고 밝아지면 드디어 해가 떠오른다는 신호다. 바닷물이 그 강한 열기 때문인지 갑자기 일렁이며 부글부글 끓는 듯이 동요한다. 옅은 물안개가 자욱히 일어나는가 싶더니 강한 백색의 덩어리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일출 광경이다. 그러니 누구나 해가 떠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출은 지평선 위에 밝은 해가 머리를 내미는 순간이 절정이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다가 둥근 해가 온전히 드러날 때까지가 그 절정이 유지된다. 그러다가 해가 떠오르는 순간 잡아당겼던 줄이 끊기듯이 풍경의 재미는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나 달은 아무런 조짐도 없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깜깜한 밤하늘에 문득 둥근 모양의 천체가 두둥실 떠오른다. 반가운 손님처럼 산등성 위로, 아파트 옥상 너머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잡을 곳이 없어 허공을 맴돌던 눈길에 순간 붉은 점이 잡혔다. 달이다. 청사포 마을을 지나 송정 먼바다쯤 되는 곳의 수평선 위로 원호(圓弧) 달이 보였다. 역시 하늘에는 아무런 조짐도 징조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달이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보름이 이틀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둥근 모습은 여전했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8시11분. 천문대가 예보한 바로 그 월출 시간이다.
나는 한참이나 떠오르는 달을 보았다. 달이 수평선을 빠져나와 온전한 원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제법 빠르게 달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생명의 탄생 장면을 볼 때 느끼는 경건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성스러운 그 무엇인가의 현현(顯現)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나도향은 보름달을 모든 영화와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라고 했다.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이라고 하는 과학적 지식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마주한 사람에게는 무의미하다.
달이 떠오르자 사람들이 정자 속으로 몰려들었다. 정자의 동쪽 난간으로 다가서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기대하지도 않았던 달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수평선을 차고 올라 제법 고도를 높인 달빛이 바다 위를 조용히 비추었다.
일출은 떠오르는 그 한 순간이 풍경으로 다가올 뿐이지만, 달은 하늘 높이 떠오르면서 그 풍경적 진가가 발휘된다. 흔히 공산추야월(空山秋夜月)라고 부르는 가을 풍경의 집단표상도 중천에 떠올라서 비로소 생성되는 풍경이다. 화투의 팔광(八光)에 그려진 대로 억새가 바람에 아무렇게나 물결치는 평원 위의 가을달도 그렇다.
밤바다를 물들이는 달빛
달이 제법 둥근 모습으로 떠올랐다. 달 속까지 보일 정도로 가깝게 보였다. 월광이 어두운 정자 속을 환하게 비추었다. 태풍이 지나간 잔잔한 바다물결 위에 달빛이 일렁거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이 떠오르자 바닷물 위에 황금 물결 띠가 길게 드리워졌다.
산 위에 떠있는 달도 아름답지만 물위에 비친 달도 아름답다. 달 풍경의 백미는 달 그 자체의 형태나 달과 지상의 경물과의 절묘한 구도보다는 달빛이 이 지상의 경물과 어우러지는 모습일 것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하는, 들판을 하얗게 비추는 교교한 달빛이 바로 그것이다.
술 단지를 싣고 강심(江心)으로 나아가 강물에 떠 있는 달을 길어 올린다는 완월(玩月)의 풍류로 꼽는 급월(及月)도 물 위에 비친 달을 즐기는 것이다. 중국의 시인 이백도 급월로 무엇엔가 홀린 듯이 이 세상을 하직했다. 달빛은 무어라고 말하기 힘든 마력이 있는 듯하다.
달맞이고개에서 보는 달 풍경을 절경으로 꼽는 것은 아마도 수평선에서 떠오른 달이 중천에 이르도록 오랫동안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황금색 비단을 깔아놓은 듯이 밤바다 위에 요염하게 비치는 월광을 더 친다. 이런 신비로운 달 풍경을 눈앞에 두면 저절로 두 손을 마주하고 무엇인가를 소원하고 싶어진다.
급월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풍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달빛을 가득 담은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은 있어도 좋으리라. 해월정을 나와 달맞이고개의 작은 카페를 찾았을 때는 달은 이미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ㆍ기고자: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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