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의 걷고싶은 길_다산 유배길

醉月 2011. 3. 4. 08:47

 

다산 정약용 (1762~1836)을 빼놓고 실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꿰뚫어 본 위대한 학자였다. ‘개혁군주’ 정조와 함께 배다리를 만들고, 수원성을 축조하며 실학을 꽃피운, 조선 후기 실학의 정점에 섰던 사람이다. 이 위대한 학자의 뛰어난 성취는 17년간의 유배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의 실학정신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면서 얻은 ‘사리’와 같은 것이다. 다산은 신유박해에 연류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됐다. 그 후 만덕산 중턱 초당에서 머물며 실학을 꽃피웠다. 그 고통스러운 유배의 나날을 함께 해준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혜장이다. 다산은 이슥한 밤이 되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백련사 혜장을 만나러 산길을 더듬어갔다. 혜장은 언제나 차와 따뜻한 마음으로 다산을 맞았다. 두 사람은 사상과 종교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었다. 어쩌면 다산이 미치거나 혹은, 정치적 항복을 선언할 만큼 고되다는 유배에서 살아남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혜장의 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뇌하던 다산의 마음을 헤아리며 걷는 길

 

다산이 혜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만덕산 중턱에 걸쳐 있다. 작은 고개 두 개를 넘어가지만 노약자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편한 오솔길이다. 활엽수와 침엽수, 동백나무가 어울린 길은 아늑하면서 깊은 숲의 향기를 전해준다. 이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대에 고뇌하던 다산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오솔길은 다산유물전시관에서 시작된다. 다산유물전시관에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귤동마을로 이어진다. 길은 마을의 허리춤으로 진입해 곧장 다산초당으로 향한다. 길 초입은 가파른 편. 이 길은 하루 종일, 사계절 내내 어둑어둑하다. 주변이 온통 침엽수와 대나무로 뒤덮여 있기 때문. 제멋대로 휘어지고 꺾인 나무뿌리가 모습을 드러낸 길을 지나면 초당으로 이어진 마지막 계단이다. 그 전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오솔길 오른편 무덤 앞에 도열한 동자석 두 기다. 이 묘는 다산의 18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윤종진의 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묘인가가 아니다. 동자석의 표정이다. 빙긋 미소 짓는 모습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다산초당은 깊은 숲에 들어앉아 있다. 초당 마루에 걸터앉으면 푸른 숲이 벽처럼 다가온다. 이 숲은 잠시 머물다가는 이들에게는 아늑한 쉼터가 되어준다. 그러나 15년을 이 벽 속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보다 완벽한 감옥이 또 있을까. 

다산초당을 몇 걸음 남겨 두고 왼쪽에 묘가 있다. 
정약용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한사람인 윤종진의 묘다.

 

 

 

아늑한 쉼터가 되어주는 숲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가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을
막아섰다. 그 가운데는 대나무도 있다.


다산초당의 답답함은 천일각에서 일소에 해소된다.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누각이지만 강진만의 드넓은 바다와 장흥 천관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런 게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천일각은 마치 다산초당에서 세상을 향해 열린 창과 같다.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은 천일각에서 돌아나간다. 다산초당 뒤편으로 들어서면 부드러운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 오르막도 잠시다. 고개를 넘어가면서 부드러운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산비탈을 가로질러난 길이라 굴곡이 적다. 오솔길이 다시 한 번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제법 가파른 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그 길을 내려서면 백련사의 동백숲이 반긴다. 4월이면 숲 가득 호롱불을 밝혀 놓은 것처럼 환하게 빛나는 꽃이다. 질 때는 몽우리 째로 떨어져 숲이 온통 핏물 든 것처럼 만든다. 백숲을 빠져나오면 백련사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839년) 무염선사가 창건했다. 고려 명종 때 원묘국사가 중창한 후 백련결사를 주도하며 사세를 크게 떨쳤다. 백련결사는 귀족중심의 불교에서 벗어나 대중 속으로 들어가자는 불교개혁운동의 하나다. 정자 겸 강원인 만경루에 앉으면 구강포가 펼쳐진다. 참 탁월한 조망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혜장에게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세상사를 논하고, 들끓는 속을 달랬을 것이다. 동백꽃이 붉은 날이면 두 선각자는 오는 봄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만경루 앞마당에 서 있는 느티나무 고목의 가지마다 붉은 잎들이 반짝이면 한 해가 저무는 것에 대한 회한도 주고받았을 것이다.

 

 

 

  1. 정약용 [丁若鏞, 1762.6.16~1836.2.22]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등이 있다.

  2. 혜장 [惠藏, 1772~1811]

    조선 후기의 승려로 즉원(卽圓)의 법을 이어받아 대둔사의 강석(講席)을 맡았다. 저서에 [아암집(兒庵集)]이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녹음 물든 봄과 볕 따사로운 가을

주소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1시간 30분(왕복)

문의 : 강진군청 문화광광과(061-430-3223)

 

 

다산유물전시관에서 백련사를 오가는 길은 한두곳을 제외하고 오르막과 내르막이 거의 없어 산책로처럼 편안하다. 노약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갈 수 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볼 것이 많아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봄과 가을에 걷기 좋다.  

 

  

[길 역사를 따라 문화를 따라]<8>다산 유배의 길 실학사상을 집대성하다 | 동아일보 사회 2010-02-17
《1801년 10월, 경북 포항에 유배돼 있던 정약용(1762∼1836)이 체포됐다. 서울 의금부로 압송되는 내내 정약용은 불안했다. 또 누가 나를 죽이려는가. 가장 큰 걱정은 폐족(廢族)이었다. 일곱 달 전 신유교옥에 연루돼 셋째 형 정약종과 매형 이승훈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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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산환
여행과 캠핑의 달인으로 통한다.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17년간 여행레저 전문기자로 근무하면서 ‘잘 노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도서출판 ‘꿈의 지도’를 설립, 여행과 캠핑을 테마로 한 여행서를 펴내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캠핑폐인], [캠핑여행의 첫걸음 Canadian Rocky], [오토캠핑 바이블],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라틴홀릭], [나는 알래스카를 여행한다], [1박2일 주말이 즐겁다], [배낭 하나에 담아온 여행], [낯선 세상 속으로 행복한 여행 떠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