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_편작
비방을 전수받다
편작은 발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진이고 이름은 월인이었다.
편작이라는 이름은 후에 그가 유명해졌을 때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편작은 젊어서 어느 고관의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장상군이라는 손님이 그 집에 찾아왔는데, 그냥 보기에도 범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장상군은 그 뒤로도 자주 그 집을 찾아왔으며, 편작은 늘 그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장상군이 찾아 오더니 편작을 불러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의 만병을 치료하는 비방을 알고 있다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 기력이 없지.
그래서 그대에게 비방을 전수하려 하네. 다만 결코 남에게 알려서는 안되네."
편작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장상군은 품 속에서 약을 꺼내 편작에게 주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이 약과 함께 한 달간 먹어 보게, 그러면 무엇이든 볼 수 있을 것일세." 라고 말했다.
또 비방이 씌어 있는 책들을 모두 편작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편작은 그가 일러준 대로 한달간 약을 복용하였다. 그랬더니 담장너머의 사람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자들의 내장 속 종기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그저 맥을 짚어서 알 수 있노라고 말할 뿐이었다.
편작의 명성은 순식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흘 안에 깨어나리라
당시 진나라의 세도가였던 조간자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더니 5일이 되어도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대신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편작을 부르기로 했다.
이윽고 편작이 도착해 진찰을 해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걱정할 것이 없소. 옛날 목공도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었는데 일주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그때 목공이 깨어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천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매우 즐거웠소.
천제는 이웃 진나라가 머지 않아 큰 혼란에 빠져 5대에 걸쳐 어지러우나 그 뒤에 천하의 패자가 될 인물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는 빨리 죽고 그의 아들이 뒤를 이으면 풍속이 문란해진다고 말씀하셨소.'
과연 목공의 말대로 진나라는 헌공 때 나라가 어지러웠으나 문공이 나타나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양공은 한때 목공의 군대를 효산에서 격파했으나, 그 뒤 숱한 난행을 범했지요.
지금 조간자 대감의 증세도 목공과 똑같으므로 사흘 안에 반드시 깨어나실 것이요. 그리고 깨어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이틀 반 만에 조간자는 깨어났다 그리고는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제가 계신 곳에서 즐겁게 지냈소. 약사들이 쭉 늘어 앉아서 흥겨운 음악들을 연주했고 또 여러 가지 진기한 무용도 감상했소.
그런데 갑자기 곰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에게 덤비지 않겠소. 내가 급히 활을 쏘니 곰은 쓰러졌소. 그러자 더 큰 곰이 또 나타났소.
이번에도 활을 쏘니 그 곰 역시 쓰러졌다오.
그대 문득 천제 계신 쪽을 보니 내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면서 천제는,
'이 아들이 크거든 이 개를 주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책 땅의 개를 내게 주시었소.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소.
'진나라는 머지 않아 쇠약해져서 멸망하지만, 너희 조씨 가문은 점점 번성하리라. 다만 그곳을 언제까지 지킬 수는 없구나.'"
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편작이 예측한 것과 똑같아 매우 놀라워하였다.
이때 조간자는 편작이 자기가 깨어날 것을 진단했다는 얘기를 듣고 편작에게 논밭을 많이 하사하였다.
"건강한 사람을 환자 취급하다니"
그 뒤 편작이 제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환공을 만나게 되었다.
환공을 만나자 편작이 신중하게 말했다.
"지금 귀공께서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피부에 머물러 있는 정도이니, 쉽게 치료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시면 악화될 뿐입니다."
그러자 환공이 크게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처럼 건강한 사람을 병자 취급하는 거요?"
그러면서 편작이 물러나가자 신하들에게 이렇게 투덜거렸다.
"의사라는 사람이 자기 돈벌 생각만 하는군."
닷새 후에 편작은 다시 환공을 찾아왔다.
"귀공의 병환이 이제 혈맥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놔두면 곤란해집니다."
그러나 환공은, "난 별로 이상이 없소. 생사람 잡지 마시오!" 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뒤 닷새 후,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 병환이 위장까지 이르렀습니다. 손을 쓰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편작이 물러가자 환공은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또 닷새가 지났다. 이번에도 편작이 찾아왔지만 먼 곳에서 인사만 한 채 그대로 물러갔다.
그랬더니 환공은 이상하다고 느껴 신하를 시켜 그 이유를 묻게 했다.
이에 편작이 말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에는 탕약과 고약으로도 고칠 수 있소. 혈맥까지 진행되어도 침으로 고치지요.
또 위장까지 들어간다면 약을 복용해서 나을 수 있소.
그러나 병이 골수에까지 미치게 되면 생명을 다룬다는 신이 내려와도 손 쓸 수가 없는 것이오.
지금 환공의 병은 이미 골수에 비치고 있소. 그래서 치료를 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과연 닷새 만에 환공은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리고 급히 편작을 불렀으나, 편작은 이미 국외로 떠난 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공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
언젠가 편작은 괵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백성들이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태자가 금방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편작이 궁궐 앞에 가서 의관을 만났다.
"태자는 무슨 병이었습니까?"
그러자 의관이 대답했다.
"태자의 병은 피의 순환이 불순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기가 나쁜 기운을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기는 완만해지고 음기가 치솟아 죽은 것입니다."
"죽은 시간은 언제입니까?"
"날이 밝을 무렵이었지요."
"입관은 했습니까?"
"아직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입관은 하지 않았습니다."
편작이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편작이라는 사람이온데, 지금까지 태자를 뵐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자를 다시 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말에 의관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미 죽은 태자를 어떻게 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옛날 유부라는 명의는 아무런 것도 쓰지 않고 잠깐 환부를 보고 그 징후를 살피며 동쪽의 맥을 짚어 보고는 살을 가르며,
힘줄은 잇고, 뇌수를 누르며, 위장을 씻고, 마음을 다스려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와 같다면 혹시 살려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한데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삼척동자도 웃을 노릇입니다."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당신의 의술은 대나무통으로 하늘을 보고 틈 사이로 모양을 들여다 보는 것이므로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안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 병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의 바깥쪽을 듣고 속을 알며, 속을 듣고 바깥쪽을 압니다.
병의 증세는 밖으로 나타나는 거이니 천리 밖까지 가서 진찰하지 않아도 다만 증세를 듣는 것만으로 병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덮어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말을 정 믿지 못하시면 당신이 들어가서 태자를 살펴 보십시오. 귀가 울고 코가 팽팽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허벅다리는 아직도 따뜻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의관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는 궁궐로 들어가 이 사실을 괵나라 군주에게 보고했다.
군주는 즉시 편작을 불러 들였다.
"선생의 명성은 저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 오셔서 태자를 염려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정말 제 아들을 살리실 수 있으신지요?"
군주는 그러면서 흐느껴 울었다. 방울방울 흐르는 눈물이 눈썹 가득 고였으며, 급기야 얼굴이 온통 일그러졌다.
편작은 말했다.
"태자의 병은 이른바 시궐이라는 것입니다.
양기가 음기 속으로 흘러 들고 그것이 위를 움직이며 혈맥에 엉겨 붙었다가 다시 갈라져 방광까지 내려갑니다.
말하자면 음기는 위로 올라가고, 체내를 돌아 아래로 내려온 양기는 위로 오를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음양의 조화가 무너져 얼굴빛이 파리해지고 몸은 움직이지 못해 죽은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가 오장을 지탱하면 살고, 음기가 양기 속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이런 일은 대개 몸 속에서 오장의 기운이 치솟을 때 갑자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편작은 제자에게 침을 갈게 하고 태자의 몸 바깥쪽에 있는 삼양과 오회에 침을 놓았다. 그랬더니 조금 뒤에 태자가 깨어났다.
그 뒤 편작은 5푼의 고약을 만들고 팔푼의 약을 섞어서 달인 다음, 이것을 양겨드랑이 밑에 발라 따뜻하게 찜질을 했다.
그러자 태자가 일어나 앉았다.
다시 음양의 기를 조절하고 20일 동안 탕약을 먹이니 태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편작은, "내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낸 것이 아니라, 다만 당연히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일으켰을 뿐이다."고 말했다.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은 불길함의 징조이다
편작의 이름은 갈수록 드높아졌다.
그래도 편작은 천하를 돌아다니며 손수 치료에 나서고 있었다. 조나라에서는 주로 부인병 치료를 하게 되었고,
주나라에 가서는 노인병 치료에 주력했다. 또 진나라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을 치료하였다.
이렇듯 편작은 가는 곳마다 그곳 사정에 따라 치료를 했던 것이다.
편작은 의술을 발전시키고 집대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점쟁이나 주술에 의한 병의 치료에 강력히 반대했다.
"의약을 믿지 않고 점쟁이나 주술만 따른다면 나을 병이 없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무당이나 주술사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으며, 재능없는 의관들도 그의 높은 의술을 질투하였다.
그가 진나라에 있을 때 그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왕이 치료를 부탁했다.
이때 진나라의 시종의로 있었던 이혜는 편작을 크게 질투하여 그를 없애려고 하였다.
드디어 이혜는 자객을 보내 편작을 죽였다.
그렇게 편작은 죽었지만 그의 의학 이론과 기술은 중국 의학계의 귀중한 보고가 되었다.
그의 의학 이론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난경"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으며,
사람들은 편작을 추모하여 약왕이라 부르고 중국 의학의 시조로 받들고 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얼굴이 곱든 밉든 궁중에 있으면 질투를 받게 되고, 선비는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조정에 있으면 의심을 받는다.
편작은 그 신기 때문에 결국 화를 입어야만 했다.
노자는 '너무 아름답고 좋은 것은 불길함의 징조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편작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던가!"
자연에 상응해야 병이 없다_창공
창공은 태창 지방의 장관으로 원래 이름은 순우의였다.
젊었을 때부터 의술을 좋아했으며, 스승인 양경공이 알고 있던 모든 의술을 파기토록 하고 자기의 비방을 전수해 주었으며,
황제와 편작이 남긴 맥서도 전했다.
그리하여 창공은 얼굴에 나타나는 오장의 상태를 진단하여 환자의 병을 알아내고,
의심스러운 질병을 판단하여 그 치료법을 결정하는 방법에 통달했다.
또한 약물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그 후 천하를 돌아다니며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의 원인을 구명하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집안일은 돌볼 수도 없었으며 또 그를 부르는 환자가 너무 많아 못가보는 환자들에게 원망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한나라 문제 4년에, 그는 고발되어 처형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창공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창곡을 붙들고 울었다.
이때 창공이 크게 탄식했다.
"내가 자식을 낳았으되 아들을 낳지 못했더니 이런 일이 생겨도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러자 막내 딸 제영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소녀의 아버님은 청렴하고 공평하다고 평판이 높았는데, 이제 법에 위반되어 처벌받게 되셨습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소녀를 관의 노비가 되게 해서 소녀의 아버님이 스스로 허물을 벗으시도록 해주옵소서."
이 글을 읽은 황제는 딸을 불쌍히 여기고 창공을 풀어주도록 했다.
정확한 진맥이 치료의 근본이다
그 후 창공은 풀려나 지비에서 휴식하며 의술을 연구하였다.
그 뒤 그의 명성을 듣게 된 황제가 하루는 그에게 이제까지 치료하고 다닌 경험을 글로 써올리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창공은 보고서를 올렸다.
방사로 인한 병
제나라의 관리였던 성이 저에게 두통을 호소했을 때 저는 진맥을 하고 "당신의 병은 이미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악성입니다."
하며 바로 물러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동생에게,
"이 병은 옹으로서 앞으로 8일 후 고름을 토하며 죽을 것입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과연 성은 예측한 대로 8일 후에 죽었는데, 그 병은 음주와 방사를 지나치게 한 결과 생긴 것입니다.
제나라 사공의 부인인 출어가 아팠을 때,
인근의 의원들은 모두 풍기가 내부에 들어갔고 주로 폐가 병들어 있다고 판단해 그녀의 다리의 소양맥에 침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맥을 짚어보니 그 병은 오줌을 참고 방사를 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곧 발의 궐음맥 좌우 한 군데씩 뜸을 떴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오줌 색깔이 맑아졌으며 아랫배의 아픔도 그쳤습니다.
다시 화제탕을 만들어 먹이니 사흘 만에 완쾌되었습니다.
두통
치천왕이 아파서 제가 불려가 맥을 짚어보고, "이 병은 궐상으로 중병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나며 환자를 괴롭게 만듭니다."라고 말하고 바로 머리에 냉수를 끼얹으며 어루만진 다음,
발의 양명맥의 좌우에 각각 세 군데씩 침을 놓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았습니다.
그 병은 머리를 감고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잠을 잔 것이 원인입니다.
출산 장애
또 치천왕의 첩이 임신하여 만삭이 되었건만 아기를 낳지 못하자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낭탕약 한 숟갈을 술에 타서 먹게 했더니 잠시 뒤에 출산을 했습니다.
다시 맥을 짚어보니 맥이 시끄러웠는데, 이는 아직 남은 다른 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 초석을 먹였더니 피가 나왔습니다. 그 피는 콩 같은 것으로서 대여섯 개나 되었습니다.
남자를 못만나 생긴 병
제북왕을 모시고 있던 한녀라는 비첩이 허리와 등이 아프고 열이 나며 오한을 느꼈습니다.
의원들은 모두 한열병이라고 진단했지만, 제가 맥을 짚어보고,
"몸이 냉하여 월경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다음 좌약을 넣으니 곧 월경이 나오고 병이 나았습니다.
그 병은 그녀가 남자를 원하면서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요통
제나라 왕의 형인 황장경의 집에 좋은 술이 있어 손님을 불렀을 때, 저도 가 보았습니다.
아직 음식을 먹기 전에 와 있던 한 사람을 보니 병색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병이 있습니다. 4__5일 전에 허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소변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신장까지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원래 허리와 등이 좀 아팠었는데,
4~5일 전에 비가 올 때 몇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올리며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녁 때가 되어 허리와 등쪽이 아프기 시작하여 소변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이 낫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병은 무거운 것을 들다가 생긴 병입니다. 즉시 유탕을 만들어 복용하게 하니 18일 만에 병이 나았습니다.
충치
제나라의 중대부는 충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서 그의 왼쪽 대양명맥에 뜸을 뜨고 즉시 고삼탕으로 하루에 석 되씩 양치질을 하게 했더니 5~6일이
지나자 병이 나았습니다.
이 병은 풍이 들고 잠자리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자며, 식후에 양치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발광하다 죽을 병
제나라에 사는 조산부라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제가 맥을 진찰 한 다음 '이것은 폐의 소단이며,
그 위에 한열병이 발병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안 사람에게는 '불치병으로 곧 죽을 것입니다.' 하며 일러 주었습니다.
의서에 의하면 "앞으로 3일이 지나 발광할 것이다. 함부로 일어나 달리려 하지만 5일이 지나면 곧 죽는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의 병은 화를 크게 낸 후 곧바로 방사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제가 이 병을 안 것은 그의 맥을 짚었을 때 폐의 기운이 몹시 뜨거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법에 이르기를 "맥박이 정상이 아니고 약해서 막히게 되면 몸이 여위고 쇠약해진다"고 했습니다.
정상이 아니면 피는 있어야 할 곳에 없고, 막히게 되면 상하좌우에서 뒤엉켜 뛰며 별안간 시끄러워졌다가 커졌다 합니다.
이는 폐 사이의 두 낙맥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죽게 되고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3일이 지나 발광한다는 이유는 본래 간의 한 맥락이 젖 아래 양명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맥락이 끊어지면 양명의 맥이 열리고,
양명의 맥이 손상되면 곧 열이 올라 옷을 벗고 달리려는 것 때문입니다.
심할 열이 있는 병
한편 제나라 왕의 시종의인 수가 병이 나서 스스로 오석약을 달여 먹었습니다.
제가 그를 찾아가니 그가 말했습니다.
"제게 병이 있습니다. 한번 진찰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를 진찰해 보고,
"당신의 병은 중열입니다. 의서에는 중열에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오석을 복용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얼굴빛을 보니 곧 종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편작이 말씀하시길 음석은 양성의 병을 낫게 하며 양석은 음성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열이면 음석의 약제를 만들어 치료하고, 중한이면 양석의 약제를 만들어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편작 선생께서 비록 그와 같이 말씀하셨지만, 반드시 자세히 진찰해야 합니다.
먼저 규격을 정하고 맥의 상태를 살피며 안색과 맥을 아울러 생각해 병을 판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맥의 음양과 기의 소장과 색맥 순역의 이치를 생각하여 병자의 상태 및 호흡의 상호 작용을 참작한 뒤에 비로소 치료 여부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서에 '양성의 병이 안에 들어 내열이 있으며, 음성의 병이 밖으로 나와 한기를 느끼는 경우에는 강한 약과 침을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강한 약을 복용하게 되면 사기는 물리칠 수 있지만 음울한 기운은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진찰법에는 '한기가 안에서 밖으로 나타나고, 열이 밖에서 들어가 안에서 섞이는 경우에는 강한 약을 써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강한 약이 들어가면 양의 기운을 움직여 그 때문에 음의 병이 약해질수록 양의 병은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고,
사기는 밖으로 돌아 경맥의 수혈에서 더욱 커지고 화가 폭발하듯이 나타나 종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제 말을 듣지 않고 자기의 방법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백 일이 지나지 않아 과연 젖 위에 종기가 생기고 이것이 젖의 윗쪽에 있는 뼈까지 들어가 죽고 말았습니다.
의술의 이론이란 큰 틀을 제시하는 요지에 불과한 것으로, 이것이 실제로 쓰이려면 반드시 자세한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서툰 의원은 미숙한 점이 적지 않아 이론의 의미를 잘 해석하지 못하며, 또한 실제의 병 치료에 있어서 과실이 있는 것입니다.
심한 설사
제나라의 순우 씨가 아플 때 제가 그 맥을 짚어보고,
"화풍을 앓고 있습니다. 이 증상은 음식물이 목구멍을 넘어 가기만 하면 바로 설사해 버리는 것입니다.
원인은 포식한 다음 심하게 뛰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순우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난 어느 잔치집에서 배불리 먹고 나서 술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도망을 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수십 번이나 설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화제탕에 쌀즙을 타서 드십시오. 7__8일이면 나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또 한 명의 의관이 있었는데, 그는 제가 떠난 후에, "저 사람의 말은 잘못입니다.
이 병은 의서에 의하면 9일 안에 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9일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시 가서 화제 탕에 쌀즙을 타서 복용케 했더니, 과연 7~8일이 지나자 병이 나았습니다.
풍
어느 날 저는 안양 사람인 성개방을 진맥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병이 없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당신은 풍을 앓고 있습니다. 3년 후 사지를 쓸 수 없게 되고 말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되면 곧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그가 사지를 못쓴다는 말을 들었으며, 또 벙어리가 되었는데 아직 죽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병은 과음한 후 바람을 쐬었기 때문에 얻어진 것입니다.
신경성 소화불량
언젠가는 어떤 유모가 병이 들어서 제가 가 봤습니다.
진맥을 하고 나서, "기가 가슴에 모여 앓는 병입니다."고 했습니다.
그 병은 속을 답답하게 하며 먹은 것이 내려가지 못하게 되어 때로 거품을 토하기도 합니다.
병의 원인은 자주 근심하고 신경 쓰면서 음식을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즉시 하기탕을 지어 마시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만에 기가 내려가고 이틀이 지나자 먹을 수 있었으며,
사흘이 지나자 완치되었습니다.
원래 제가 맥을 짚어 보니 심기가 혼탁하고 초조해 경맥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맥법에 이르기를,
"맥의 움직임이 매우 불규칙한 것은 대개 마음에 병이 있기 때문이다. 전신에 열이 나고 맥이 마구 뛰는 것을 중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심장을 자극한다.
그러므로 번민하며 음식이 통하지 않으면 낙맥에 고장이 일어난 것이며, 낙맥에 고장이 생기면 피가 치솟고, 피가 치솟으면 죽게 된다.
이것은 마음의 우환 끝에 생기는 병이다."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병은 걱정이 많아 생긴 병인 것입니다.
신 순우의는 아룁니다.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은 진찰과 치료를 통해 병을 고친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고, 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감히 아뢸 수 없어 이만 줄이옵니다.
완전을 기할 수는 없다
그 후 황제가 친히 창공을 불렀다.
"병을 알아내 예측했는데도 맞지 않을 수 있소?"
"병명은 실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의술을 완전히 체득한 자는 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혼동합니다. 저는 스승으로부터 다행히도 비방을 전수받고 맥법을 습득해 어느 정도 완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병의 예측이 맞지 않는 것은 환자가 음식이라든가 감정 조절에 절도를 잃고, 또 약을 먹지 않아야 하는 데도 먹으며,
침뜸을 놓지 말아야 하는 데도 놓은 까닭입니다."
"그럼 왜 제후들이 그대를 불렀을 때 가지 않았던 것이오?"
"네. 조왕과 교서왕, 제남왕, 그리고 오왕 등이 저를 불렀지만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저의 집안은 가난했기 때문에 병을 치료해 주고 약간씩의 사례를 받으려 했지만, 관리들이 저를 관직에 묶어둘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호적을 여러 곳으로 옮기고 가업을 돌보지 않으면서 천하를 돌아다니며 의술에 능한 스승에게 공부하며 치료도 했습니다.
특히 양경 어른을 스승으로 모신 후 몇 년 동안 수업을 했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나라 문왕이 병에 걸려 다시 일어나지 못한 이유를 아는가?"
그러자 창공이 대답했다.
"문왕의 병세는 진찰하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 하면 너무 살이 비둔해져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며,
살과 뼈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기침을 하는 것이므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맥법에 사람은 20세에는 맥의 기세가 강하니 마구 달리는 것이 좋으며,
30세에는 빨리 걷는 것이 좋고, 40세가 되면 편히 쉬는 것이 좋으며, 50세가 되면 편히 눕는 것이 좋고,
60세 이상이 되면 기력을 많이 저축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왕은 20세도 못되어 잘 걷지 못할 정도였으므로 자연의 이치에 상응치 못한 것입니다.
제가 그 후에 들으니 의원이 뜸 치료를 했다던데 그 때문에 빨리 죽은 것입니다.
이른바 기라는 것은 음식 조절을 잘 해야 하며, 날씨 좋은 날에 적당히 걸어서 마음을 넓게 하고,
근육, 골격, 혈맥을 쾌적하게 해서 기를 시원스럽게 발산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20세를 심기일전, 혈기교환의 나이라 하는 것이며,
침뜸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사용하면 맥이 분주해져서 제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병의 진단이나 생사의 예측에 실패한 적은 없었소?"
이에 창공이 대답했다.
"저는 치료할 때 반드시 진맥을 하고 나서 시행했습니다. 맥이 좋지 못할 경우에는 치료하지 못하고,
순조로울 경우에는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침착성이 없고 맥을 짚을 때 정확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완전을 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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