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팔선열전[八仙列傳]_장과로[張果老]

醉月 2009. 6. 8. 08:53

[八仙列傳] 제 2화 장과로(張果老)

 

 
ⓒ 삽화 박영철
장생불로술을 터득하다

팔선도에서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장과로(張果老)의 원래 이름은 장과(張果)이다. 존칭으로 노(老)자를 뒤에 붙여 장과로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일찍이 오랫동안 항주(恒州)의 중조산(中條山)에서 은거하였다. 주로 지금의 산서(山西)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그곳에 살던 노인들은 모두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 장과로를 자주 보았다고들 하였으며 노인이 된 후에도 장과로를 종종 보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장과로가 장생불로의 비술을 몸에 지니고 있다고 여겼으며, 장과로 자신도 ‘이미 수백 살을 살았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태종ㆍ고종ㆍ측천무후의 부름을 거절하다

당태종ㆍ고종이 황제로 있을 때 조정에서도 이미 장과로가 장생불로의 비술을 터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차례 황제의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장과로는 사양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측천무후가 황제에 즉위한 후 반드시 장과로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황제의 사자들이 역참의 말을 갈아타고 서둘러 항주에 도착하니 장과로는 사자들이 도착하기 하루 전날 중조산의 투녀묘(妬女廟) 앞에서 죽었다. 죽었을 때가 마침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황제의 사자들이 확인하니 장과로의 시체는 이미 부패하여 냄새가 코를 찔렀고 시체가 진물러 구더기가 시체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자들이 장안으로 돌아와 측천무후에게 전말을 보고하자 장과로가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기고 그를 더는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은 항주의 숲 속에서 장과로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장과로가 거짓 죽음으로 황제의 부름을 피했다는 것을 알았다.

도술로 종이를 나귀로 만들어 타다

장과로는 늘 한 마리 하얀색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하루에 만리를 갔다고 한다. 나귀를 타지 않을 때는 곧 나귀를 접어서 보관했는데 그 건장한 나귀가 순식간에 얇은 비단 종이로 변했다고 한다. 나귀로 변한 비단종이는 접으면 조그마한 종이 한 꾸러미가 되었으며,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나귀가 필요할 때 종이뭉치를 꺼내어 입에 맑은 물 한입을 물고 그 위에 뿜으면 곧 한 마리 키가 크고 건장한 하얀 나귀로 변하였다고 한다. 나귀를 타고 하루에 만리, 중국천하를 주유하고 다녔다 한다.

당 현종의 부름으로 조정에 나오다

당 현종 개원23년(735년) 통신사인 배오를 항주에 파견해서 장과로를 낙양으로 모셔오게 하였다. 장과로와 배오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장과로가 기절해서 죽었다. 배오는 측천무후 때 장과로가 죽음을 가장해서 조정의 부름을 피했다는 옛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과로의 시체 앞에서 향을 사르고 기도하면서 황제의 정성스럽게 갈구하는 구도의 마음을 설명했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장과로는 점차 깨어나더니 다시 살아났다. 살아나서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오는 감히 다시 낙양으로 가자고 권할 수 없어서 역마를 타고 낙양으로 되돌아 와 그간의 사정을 현종에게 아뢰었다.
현종은 상세한 전후 사정을 듣고, 잠시 깊이 생각하다가 다시 중서사인 서교에게 명령했다. 황제의 옥쇄가 찍힌 정식 조서를 가지고 항주에 가서 장과로를 모셔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까지 하자 장과로는 마침내 황제의 성의에 감동받아 사자인 서교를 따라 낙양으로 왔다. 이때가 현종이 ‘개원의 캄(개원23년, 735년)를 펴던 시절로 바야흐로 태평성세였다.

 
ⓒ 삽화 박영철
당 현종과 마주하다
그 당시 현종은 동쪽 수도인 낙양에 머무르고 있었다. 장과로가 낙양에 도착한 후, 그는 현종 때 만든 집현전(集賢殿) 서원으로 모셔졌다. 연후에 가마를 타고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하였다. 얼굴을 마주하자 당 현종은 장과로에게 공경스럽게 예를 표했다.

성긴 흰 머리털을 다 뽑고, 까만 머리털을 다시 나게하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현종은 장과로의 하얀 머리털과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보면서 “선생은 득도한 고인이라고들 합니다. 어찌하여 머리털과 이빨이 이리도 노쇠했습니까?” 물었다. 장과로는 문득 현종의 이 질문이 장과로 자신을 의심한다는 뜻이 있음을 알아채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산에 사는 신은 이미 쇠로의 나이에 들었고, 몸에는 의지할 만한 도술이 없습니다. 머리털이 하얗고 이빨이 흔들리는 것이 폐하를 혐오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이 이빨과 머리털은 없애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말을 마치고 현종의 면전에서 손을 들어 얼마 남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깨끗이 뽑아버리고, 또 입안에 남아있는 치아를 전부 뽑아 버리자 입안이 피로 가득하였다.

현종은 설마 장과로가 면전에서 이러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선생은 어찌 이렇게 잔악하십니까? 우선 좀 쉬다가 잠시 후 다시 봅시다.” 하고는 자리를 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현종은 장과로를 다시 청했다. 다시 보았을 때는 거의 몰라보게 되었다.

즉 장과로의 머리에는 새까만 머리가 이미 길게 자라있었고, 입안에는 새하얀 이빨이 새로 나 있었다. 나이가 40대 정도로 젊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현종은 장과로가 보통 사람과 확실히 다르다고 인정하면서 이로부터 더욱 존경하였고, 시간만 나면 장과로를 입궁케 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종, 옥진 공주를 장과로에게 시집보내려 하다
어느 하루, 태상시 소화, 비서감 왕형질이 함께 장과로를 방문하였다. 장과로와 이들이 한담하고 있는데 돌연 장과로가 크게 웃으면서 뚱딴지같이 한마디 던진다. “공주를 처로 둔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두려운 일이야!” 소화ㆍ왕형질 두 사람은 서로 놀라면서 장과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때 태감이 찾아왔다. 장과로에게 “현종황제께서 옥진(玉眞) 공주가 어려서부터 도교를 독실하게 믿으니 옥진 공주를 선생님께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선생님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과로는 큰소리로 웃고는 “나는 이미 나이가 대단히 많은 고령자이고,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부할 수 없으며, 공주의 청춘을 그르칠 수 없다.”면서 사양하였다.

심부름 온 태감은 궁으로 돌아가 현종에게 그대로 아뢸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현종은 공주를 장과로에게 시집보내기로 혼자 마음먹었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소화ㆍ왕형질은 이때서야 비로소 장과로의 “공주를 처로 둔다면 가히 두렵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늙은이야말로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귀신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과로 , “나는 요(堯) 임금 때 (B.C. 2300년경) 출생한 사람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알려지자 조정의 공경백관들은 장과로가 신기막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장과로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장과로의 출생ㆍ경력 등을 알고 싶어 했고, 도술수련의 요결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했다.

도술에 대해서 장과로는 일률적으로 얼버무리는 등 사람들이 그 오묘함을 모르도록 하였다. 또한 자기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곧 “나는 상고 삼황오제시절 요(堯)임금 때 병자(丙子)년에 태어나서 요임금과 함께 정사를 보면서 시중의 벼슬을 지냈다.”고 하였다. (장과로의 나이는 약 3,000세 정도였다고 추정)

 
ⓒ 삽화 박영철
장과로, 무엇을 하며 무얼 먹고 사는가?

장과로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어떤 때는 위엄을 갖추고 어떤 때는 해학적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진짜인지 혹은 웃기려고 하는 말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장과로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기해서 장과로 신변의 시종들에게 장과로가 평소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을 몰래 물어보았다. 시종들이 “장과로는 늘 氣를 막고 삼키는(閉氣呑咽) 태식(胎息)의 술법을 연마하여 며칠씩 음식을 먹지 않으며, 설사 음식을 먹을 때에도 불과 미주(美酒) 한 잔과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황색 환약 3알을 복용한다.”고 하였다.

장과로, 제자를 불러 현종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

하루는 현종이 장과로를 내전으로 불러 술을 하사하였다. 장과로는 술을 조금 마신 후 사양하면서 “산에 사는 신은 주량이 적어 불과 2되입니다. 지금 이미 주량을 넘었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제자 하나가 있는데 술 한 말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제자를 불러서 폐하를 모시고 함께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현종이 기뻐하면서 장과로에게 제자를 불러오게 하였다. 장과로가 웃으면서 “멀리에 있지 않고 그는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말을 끝내고 전각 밖을 향해 손을 들자 과연 한 명의 어린 도사가 전각 처마에서 몸을 날려 내려왔다.

얼굴을 보니 나이는 16~17세 눈썹이 짙고 눈이 청수하고 우아하면서도 외관과 내실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어린 도사는 전각으로 들어와 현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데, 그 말씨가 유창하고 행동거지와 예절이 주도면밀하여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을 만하였다.

현종이 옆에 앉도록 하자 장과로가 제지하면서 “그는 나의 제자이오니, 응당 곁에 서서 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그에게 앉도록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현종이 다시 눈을 들어 그 어린 도사를 자세히 살펴보는데 보면 볼수록 즐거워졌다. 현종은 그 어린 제자에게 술을 내렸다. 그 어린 도사는 술을 주면 즉시 받아 마셨다. 조금도 사양함이 없었다.

어린 제자 술에 취한 후 집현전의 술그릇으로 변하다

현종은 장과로의 어린 제자가 술을 흔쾌히 마시는 것을 보자, 술 한 되, 한 되 부단히 그에게 마시기를 권하였다. 부지불식간에 술 한말을 다 마셨다. 현종이 계속해서 어린 제자에게 술을 마시게 하자, 장과로는 그만할 것을 권고하면서 “내 제자의 주량은 오직 술 한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더는 그에게 술을 마시게 할 수 없습니다. 술을 더 마시면 추태를 부리니 결국 꼴불견을 보게 됩니다.” 라고 했다.

현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어린 제자에게 다시 술 한 되를 더 마시게 하였다. 어린 제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권하는 그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나자 어린 제자 머리 위로 술이 솟구쳐 오르고 머리 위의 도관(道冠: 도사들이 쓰는 모자) 또한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도관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술그릇으로 변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 제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어린 제자가 서 있던 곳에는 쇠로 만든 술그릇이 하나 놓여있었다.

현종과 좌우에 있던 비빈들 모두 깜짝 놀랐다. 시종더러 쇠로 만든 술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니 술그릇 안에는 조금 전에 하사한 술이 가득 차 있었고, 술그릇의 용량은 정확히 한 말이었다. 술 그릇 위에는 ‘집현전(集賢殿)’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원래 집현전 서원의 술그릇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장과로가 법술을 부려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놀랍고 신기하였다. 장과로가 이렇게 현종 앞에서 펼쳐보이던 각종 선법도술이 많아서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 삽화 박영철
당 현종, 장과로의 출생을 캐보려 하다

장과로의 도술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수록 그의 내력은 더욱 수수께끼였다. 현종은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 당시 장안에는 ‘야광안(夜光眼)’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 요괴 등 온갖 것을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종은 장과로가 곁에 있을 때 그 야광안을 불러 장과로의 내력을 보게 하였다.

그 야광안이 정전 안으로 들어와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망연한 듯 현종에게 물었다. “황상폐하! 제가 보고자 하는 장과로는 어디 있습니까?” 실제로 장과로는 현종 옆에 줄곧 앉아 있었고 한 번도 몸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 야광안은 근본적으로 장과로를 볼 수 없었고 하물며 장과로의 내력을 알아낸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였다.
또 그 당시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맞추는 점술에 달통한 형화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형화박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볼 때 그 사람의 성명, 본적도 필요 없이 단지 점치는 산가지 몇 개를 벌려 놓기만 하면 곧 그 사람의 성명, 내력, 선악, 수요, 화복, 길흉 등을 분명하게 추산하였다.

형화박이 수천 명의 운명을 점쳤는데 정확하고 빠짐이 없었으며 영험하기가 신과 같았다. 현종은 진작부터 형화박의 신기한 점술을 알고, 그를 불러 장과로의 운명을 점쳐보게 하였다. 불려온 형화박은 탁자 위에 점치는 산가지를 벌려놓았다. 한동안 점을 쳐보았으나 점을 치면 칠수록 기가 꺾였다. 형화박은 장과로의 나이조차도 점쳐내지 못하였는데 기타 장과로의 다른 것에 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를 먹여 시험하다

위 두 가지 일로 현종은 장과로가 더욱 고심막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따르는 태감 고역사를 바라보면서 탄식하였다. “수련해서 이미 신선이 된 사람은 추위와 더위가 그 신체를 침범하지 못하고, 바깥 물건이 그 몸을 범할 수 없다고 들었다. 지금 장과로, 이 사람은 점술가도 그 나이를 알 수 없고, 귀신 보는 사람도 그 진상을 볼 수 없으니 진짜 신선이란 말인가?” 이렇게 말한 후 또 “신선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혹시 가짜가 아닌가? 내가 듣기에는 술에 짐새 독을 넣고 고기를 오랑캐꽃에 삶아서 보통 사람이 먹으면 즉사한다는데, 신선만이 그것을 먹어도 죽지 않고 무사하다고 한다.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에 삶은 고기를 먹게 하여 죽는지 사는지 시험해 보아 신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고역사는 “영명하십니다. 황제폐하. 그 방법이 또한 극히 묘합니다.”라고 연거푸 찬양하였다. 이때 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고, 날씨는 매우 추웠다. 현종은 혹독한 추위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장과로에게 짐새 독주와 오랑캐꽃으로 삶은 고기를 내렸다.

장과로는 술과 고기를 받자 그 자리에서 먹었다. 독 술을 단번에 석 잔을 마시자 온몸이 훈훈하고 얼굴에는 취기가 올랐다.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술은 그 맛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곧 침상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장과로는 홀연 몸을 벌떡 일으켜 거울을 가져오게 하여 자기의 이를 보니 하얗던 치아가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새까맣게 변했다. 장과로는 곧 시종에게 쇠로 된 집게를 가져오게 하여 이를 하나하나 두드린 후 천천히 그 이들을 전부 빼버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빛나고 투명한 붉은빛 가루약을 꺼내 바른 후 장과로는 다시 침상 위에 누워서 오랫동안 잠을 잤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나서 장과로가 거울을 보니 치아가 다시 자라서 입안 가득하였다. 새로 자라난 그 이는 이전의 이보다 더욱 하얗게 빛났다.

장과로를 신선으로 인정하다

현종은 장과로가 짐새 독주와 고기를 먹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기쁨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장과로 선생은 신선임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항주에 사는 장과로 선생은 방외 지사이다. 행위는 고상하고, 지식은 깊고도 현묘하다. 세상을 피해 은거한 지 오래인데 조정에서 불러 장안에 왔다. 그 나이를 아는 사람이 없고, 단지 오랜 세월을 누렸음을 추측할 뿐이다. 황제가 道를 물으면 그 지극한 이치까지 대답하였다. 장과로 선생에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관직과 아울러 통현(通玄)선생이라는 호를 내린다.”고 하였다.

 
ⓒ 삽화 박영철

현종이 사로잡은 사슴을 보고 , 한무제가 놓아준 사슴이라고 하다

어느 날 현종이 함양으로 사냥을 나가서 보통 사슴보다 훨씬 큰 사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궁궐로 돌아와 그 사슴을 잡아서 요리하려고 하는데 마침 장과로가 그것을 보았다. 장과로가 그 사슴을 가리키면서 현종에게 말하였다. “이 사슴은 선록(仙鹿)이고, 그 수명이 이미 천년이 넘었습니다. 한(漢)나라 원수 5년(기원전 118년)에 제가 한무제와 함께 상림원에서 사냥하던 중, 산 채로 잡았다가 놓아주었던 바로 그 사슴입니다.”라고 장과로가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현종은 반신반의하면서 장과로에게 물었다. “산과 들에는 사슴이 많다. 한무제와 그대가 놓아준 그 사슴이라면 한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천년인데 아마 다른 사냥꾼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 이 사슴이 한무제가 잡은 사슴임을 아는가?”

이 말에 장과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한무제는 이 사슴을 놓아줄 때 왼쪽 뿔 밑에 동으로 만든 패찰 하나를 붙여놓았습니다. 그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현종이 확인해 보니 과연 사슴의 왼쪽 뿔 밑 부분에 패찰 하나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자는 오랜 세월이 흘러 녹이 슬었고 분명하지 않았다. 현종이 장과로에게 묻기를 “이 사슴을 생포했을 때가 간지(干支)로 어느 해이고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흘렀는가?”

장과로가 바로 대답했다. “바로 계해(癸亥)년, 한무제가 곤명지(昆明池)를 열었던 그 해입니다. 지금은 갑술(甲戌)년이니까, 이미 825년이 지났습니다.” 현종은 역사를 관장하는 태사(太史)에 명해 역서를 대조해 보게 하였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 때서야 현종은 장과로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현종, 도사 엽법선에게 물어 장과로의 내력을 알다

현종 때 장과로 이외에 정통한 법술을 갖춘 엽법선(葉法善)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현종은 시종 장과로의 내력이 불분명하고 궁금하여 엽법선을 청하여 물었다. “그대는 장과로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고 있는가?”. 엽법선은 “신이 알기는 아오나 만약 장과로의 내력을 말한다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곧 죽게 됩니다. 그래서 감히 입을 열 수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제가 죽은 후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에게 가서 살려달라고 하신다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현종은 그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엽법선은 그때서야 말하기 시작했다. “장과로는 천지가 처음 나누어질 때 태어난 흰 박쥐의 정령입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과연 엽법선은 일곱 군데에서 피를 흘리며, 땅에 고꾸라져 죽었다. 현종은 곧바로 황제의 모자를 벗고 맨발로 장과로의 처소로 찾아가서 사죄하면서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니 엽법선을 살려달라고 하였다.

장과로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이 어린아이는 뽐내면서 천기를 누설하였습니다. 만약 엄하게 벌하지 않으면 큰 일을 망칠까 두렵습니다.” 현종이 여러차례 간곡하게 청하자 장과로가 맑은 물을 한 입 물고 엽법선의 얼굴에 뿜자, 그때서야 엽법선은 정신을 차리고 살아났다.

장과로가 죽었다는 자리에 ‘도관 서하관’을 세우다

궁궐에 머물던 장과로는 스스로 나이가 많고 병을 핑계대면서 여러 차례 항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였다. 현종이 말려도 어쩔 수 없자 현종은 비단 백 필을 하사하고 가마와 시종 두 명을 딸려 보냈다. 항주에 도착한 후 시종 한 명은 장안으로 가고 나머지 한 명은 장과로를 따라 입산했다. 천보(天寶) 초(742년) 현종이 다시 사자를 보내 장과로를 조정에 나오게 하였으나 장과로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제자가 장과로의 장례를 중조산에서 치르고, 현종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현종은 믿을 수 없어서 사람을 시켜 장과로의 무덤을 파게 했는데, 관은 비어있었다. 현종은 장과로 무덤자리에 ‘서하관’(棲霞觀)이란 도관을 세우고 장과로에게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장과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그림 위에 다음과 같이 詩를 썼다.

擧出多少人 거출다소인     많은 사람을 들어보아도
無如這老漢 무여저노한     이 늙은이 같은 이 없네.
不是倒騎驢 불시도기려     나귀를 거꾸로 탄 게 아니라
萬事回頭看 만사회두간     모든 일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