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방사포에 南 포병·보병 희생 전투기 미사일로 도발원점 분쇄
‘북한이 철원을 공격하는 날’ 시나리오
● 동해에선 北 잠수함 어뢰로 호위함 타격
● F-4E 팝아이 미사일, 北 5군단 사령부 관통
● 확전 망설이던 평양, 고위급 회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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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1사단 지역의 목함지뢰로 시작해 28사단 지역의 포격으로 이어진 북한의 도발은 치밀하고 교활했다. 감시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우리 장병들이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에 지뢰를 묻어놓아 결정적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또한 6포병여단의 아서K 대포병레이더가 탐지하기 어려운 14.5㎜ 기관총탄 한 발을 쏴 우리 군의 반응을 떠본 다음, 산 너머의 대포병레이더에서는 보이지 않는 직사화기로 3발의 포격 도발을 감행해 또 한 번 결정적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북한의 의도와 달리 아서K 레이더가 14.5㎜ 기관총탄 한 발을 ‘경로켓’으로 판단해 궤적을 잡아냈다. 28사단 GOP(일반전초)의 TOD(열상감시장비) 감시병은 폭발 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TOD를 돌려 화염을 포착했다. 북한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같은 도발은 천안함 폭침처럼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동시에 포격에 반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해 국군 수뇌부를 궁지에 몰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일련의 작전을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반격한 후 곧바로 48시간 최후통첩을 하고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황을 선포해 위기를 고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의 이름으로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작전은 일선 지휘관의 충성경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김정은이 결재한 국가 차원의 치밀한 작전이라고 봐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군은 남남갈등이 일어나기를 바란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목함지뢰 도발을 구실 삼아 역공(심리전 방송)을 펼쳤다. 포격 도발은 국군의 10배 응징 천명 등으로 오히려 국민을 뭉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제한된 지역’ ‘제한된 수단’
국군의 반격 이후 북한은 심리전 방송 중단을 이끌어내고 추가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준전시상황을 선포하고 외형적으로 전면전 징후로 보일 단계적 조치를 취해나갔다. 전방지역의 포병전력을 2배 증강하고 포들을 주둔지가 아닌 사격진지로 이동시켰다. 공기부양정이 남하해 서해 5도를 긴장하게 하고 저공침투수단인 AN-2기와 헬기를 출격 대기시켰다.
압박은 잠수함 50여 척의 출항에서 정점을 찍었다. 국방부는 ‘전면전 징후’라는 말을 꺼내면서 상당수 국민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공기부양정, 헬기, AN-2, 일부 소형잠수함 등은 전면전 이전에 북한의 특수부대를 우리 후방에 침투시키는 이동수단이다. 개전 이전에 특수부대는 후방지역에 침투해 각종 테러를 통한 혼란 야기, 보급로 차단, 포병부대에 대한 사격좌표 전송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북한은 특수부대 이동수단을 기동시켜 ‘전면전 개시 D-’라는 사인을 주려 한 것 같다. 후방에 침투한 특수부대가 보내는 좌표에 따라 2배 증강된 포병으로 궤멸적인 공격 준비 사격에 들어가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만약 고위급회담이 결렬되고 김정은이 발끈해 준비한 공격자산을 가동해 포격전 또는 다른 방향에서 예기치 않은 제3의 도발을 감행했다면 국군의 준비 태세나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국지전 또는 그 이상으로 상황이 확대될 수 있었다. 전방의 지휘관 몇몇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래 와라! 기왕 올 거면 내게 와라!”라면서 임전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국지전은 전면 전쟁을 회피하면서 제한된 지역에서 제한된 수단으로 벌이는 전쟁을 일컫는다. 피아(彼我)간 한두 개 사단씩 맞붙는 소규모 전투뿐 아니라 휴전선의 모든 전선에 걸쳐 일제히 전투를 치르는 상황도 국지전일 수 있다. 북한의 오판으로 국지전이 일어났다면 국면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결과를 예상하려면 먼저 북한군의 전력을 살펴봐야 한다.
기갑전력은 용호상박
국군이 병력을 52만 명 규모로 줄여나갈 예정인 것과 반대로 북한은 병력을 더욱 확대한다. 증강하는 병력 대부분은 특수부대다.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군 특수부대 규모에 대해 “지정된 임무(designated mission)를 수행하는 병력이 6만 명에 달하고 나머지 14만 명은 경보병부대”라고 증언했다. 이 말을 해석하면 후방지역에 침투해 특수작전을 하는 진정한 의미의 특수부대는 6만 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경보병부대는 이라크 저항세력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산악 및 도심 지형을 이용해 소규모 병력으로 미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을 떠올리면 된다. 산악 및 도심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경보병부대가 14만 명에 달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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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접촉이 이뤄진 8월 23일 연평도 앞 기지에 해군 고속정이 정박해 있다.
북한은 2005~2012년 구형 전차 400대를 도태시키고 신형 전차 900대를 양산해 전차 보유량을 500여 대로 늘렸다. 북한이 새로 전력화한 전차는 115㎜ 활강포를 갖춘 폭풍호와 125㎜ 활강포를 갖춘 선군호 두 종류다. 이 전차들은 구소련제 T-62 전차의 개량형에 지나지 않은 천마호와 달리 포탑과 차체를 완전히 바꿨다. 파괴력이 더욱 향상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주포와 대전차 미사일, 지대공 미사일을 실었으며, 반응장갑을 장착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산악 및 도심 지형이 주를 이루는 한반도 특성상 이라크 전쟁 등에서 나타난 전차 간의 장거리 포격전보다는 500~1000m 안팎의 단거리에서 전차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북한군 전차가 국군의 K-1 전차를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 국군 전차가 달리면서 사격하는 능력이나 야간전 능력 등 여러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북한도 신형 전차를 900여 대나 생산했기에 국군의 기갑전력이 북한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전차 전력과 함께 북한 기계화 전력의 주요 축을 담당하는 것이 수륙양용장갑차다. 경전차(Light Tank)로 분류되는 PT-76/85 계열 장갑차가 그것이다. 북한은 이 장갑차 600여 대를 보유했다. 보병사단 전차대대에서 운용하는 이 경전차는 76㎜ 또는 85㎜ 주포를 탑재해 강력한 공격력을 갖췄으며, 물에 떠서 하천을 건널 수 있어 기동전을 수행하는 공격부대에 대단히 유용하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신속하게 돌파할 때 사용할 장비인 것이다. 이 경전차는 보병부대와 함께 전진하면서 화력을 지원한다. 한국군의 모든 장갑차량을 파괴할 수 있는 화력을 갖춰 남침 작전을 감행할 때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3배 면적 초토화
북한은 4500문이 넘는 자주포를 보유했다. 전체 보유 화포의 절반 이상이 자주포다. 북한은 국군의 대포병전에 대비해 전방 포병진지 대부분을 갱도진지로 구축해 기습적으로 포문을 개방하고 사격을 실시한 후 다시 갱도진지로 숨어들어가는 전술을 채택했다. 또한 공습과 대포병 사격 등에 대비해 장사정포 주요 전력을 산 북사면 갱도진지에 배치해 국군이 공격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국군이 북한군의 장사정포에 대비해 구비한 신형 자주포와 유도폭탄 등을 무력하게 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을 겨냥한 장사정포 전력은 240㎜ 방사포 200여 문, 170㎜ 자주포 140여 문이다. 이들은 임진강 하류에 위치한 평화리, 월정리 등의 갱도진지에 배치돼 있다. 최대사거리 54㎞ 수준인 170㎜ 자주포는 파괴력이 약해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방사포 전력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240㎜ 방사포는 최대사거리가 60㎞ 수준으로 가평-남양주-과천을 잇는 선까지 포격이 가능하며, 1회 일제 사격의 포탄 양이 최다 4000여 발에 달한다. 파괴 면적은 25.92㎢로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사정거리 200㎞가 넘는 300㎜ 방사포를 개발한 것은 충격적이다. 기본적으로 방사포는 명중률이 다소 낮은 대신 높은 파괴력을 가진 로켓탄을 대량으로 퍼붓는 개념의 무기 체계다. 북한이 수원, 오산, 원주, 강릉, 충주, 청주, 서산 등에 위치한 공군기지에 신형 방사포로 대량 포격을 퍼붓는다면 이들 공군기지는 상당한 시간 동안 임무 수행이 어려울 수 있다. 한국군의 방어작전 수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한국 해군은 세계 최대의 이지스 구축함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급 3척을 비롯해 12척의 구축함을 전력화했고, 기관포 무장 위주이던 소형 고속정을 함포와 미사일을 장착한 고성능 유도탄고속함으로 대체하면서 상당 수준의 질적 향상을 이뤘다는 평가를 듣는다. 북한은 보유 함정들의 심각한 노후화로 인해 적지 않은 전투함이 퇴역했지만, 2000년대 이후 76㎜ 함포 등을 장착한 신형 전투함을 속속 건조하면서 현대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북한 해군의 수상함은 한국 해군의 맞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잠수함 전력의 열세다. 북한은 최소 70여 척의 각종 잠수함을 보유했는데, 이 가운데 주력은 만재배수량 1700t인 로미오급 잠수함 19척이다. 로미오급 잠수함은 부산·울산·포항·광양 등 무역항에 기뢰를 부설할 수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U보트처럼 상선을 무자비하게 격침시킬 수도 있다. 덩치가 작은 상어급이나 연어급 잠수정은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때 주로 사용하며 때로는 기뢰전이나 어뢰를 통한 공격 임무도 수행한다.
北 탄도미사일 압도적 우세
북한 공군 전투기는 820대 정도로 알려졌는데, 질적으로는 한국 공군에 절대 열세다. 우리 공군은 한반도 전역을 감시하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737 4대를 운용하며 4세대 전투기 F-15K 60대와 F-16 계열 전투기 170여 대를 보유했다. 국군의 4세대 전투기에 대항할 북한 전투기는 20대가 채 안 되는 MIG-29뿐이어서 개전 후 휴전선 아래로 내려와 폭격할 능력을 갖춘 전투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국군 전투기는 미군의 도움 없이는 북한 영공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북한은 6 · 25전쟁 때 미 공군의 공세에 당한 악몽과도 같은 기억 때문에 방공 전력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서해안 지역인 황해도 일대와 동해안의 강원도 일대에 사거리 250㎞에 달하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SA-5를 배치했으며, 20개 안팎의 주요 거점에 사거리 40㎞의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SA-2 기지를 건설했다.
이에 더해 사거리 18㎞ 수준의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도 대량으로 실전배치했다. 북한의 반(反)항공군과 육군은 1만 기 넘는 보병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운용하며 비슷한 숫자의 대공포 전력도 갖춰 세계 최대 밀도의 복합 방공망을 자랑한다. 한국 공군은 대단히 조밀한 북한의 방공망을 제압하는 데 필요한 전자전기나 SEAD(Suppression of Enemy Air Defenses · 적 방공망 제압) 전용기가 없기 때문에 미군의 적극적 지원 없이는 북한 상공에서 자유롭게 작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탄도미사일 전력은 전통적으로 북한이 강세다. 미국 국방부는 2013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KN-02 단거리 미사일 및 스커드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100여 대, 노동 미사일과 무수단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각각 50여 대를 보유했다고 발표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4개의 미사일 제조 공장과 12개의 고정 발사기지를 운용하며 800여 발의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한다.
북한의 미사일은 발사차량 수가 많고 각지에 분산된 데다 기습적으로 운용되기에 탐지하고 대응하기가 어렵다. 북한은 보유한 미사일의 명중률이 형편없이 낮아 보완책으로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하거나 1개의 표적에 여러 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는 전술을 채택했다.
요약하자면 북한은 육군 전력에서 소폭 우세, 탄도미사일 전력에서 압도적 우세다. 반면 한국군은 공군과 해군 전력에서 우세다. 다만 공군의 경우 미군 도움 없이 북한 상공으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고, 해군은 잠수함 전력에서 다소 불리하다.
왜 철원인가
북한이 제한적 국지전을 감행한다면 경기도와 인접한 강원도 철원 지역을 겨냥할 소지가 크다. 북한은 서부전선 북쪽에 2군단, 중부전선 북쪽에 5군단, 동부전선 북쪽에 1군단을 배치해놓았다. 국군도 가장 강력한 전력은 경기도 북쪽에 집중돼 있고, 두 번째가 철원지역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경기도 북쪽에서 북한군 2군단이 국지전을 감행한다면 상당수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북한이 두려워하는 전면전으로 상황이 비화할 공산이 작지 않다. 반면 강원도 지역은 북한군의 포병전력이 크게 강하지 않은 데다 험준한 산악지형의 산봉우리에 걸려 포탄을 원하는 곳에 착탄하기 어렵다. 6 · 25전쟁 때 서울을 향한 북한의 중요 진격축선에 있는 철원을 겨냥한 공격은 서울시민에게 공포감을 주면서도 적당히 떨어져 있기에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철원 일대의 국군 전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북한군과 마찬가지로 한국 육군도 5군단이 철원 지역을 담당한다. 5군단에는 철책사단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3보병사단 백골부대, 제6보병사단 청성부대가 있고, 예비사단으로 제8기계화보병사단이 후방에 버티고 있다. 또한 기동부대로 제1기갑여단이 있고 육군 최대 포병부대인 제5포병여단이 대화력전을 준비한다.
국지전은 주로 포격전으로 전개될 소지가 큰데, 포병전력만 본다면 3사단과 6사단은 취약하다. 사단 별로 최대 사정거리가 11㎞에 불과한 M-101105㎜ 견인포 3개 대대가 있는데, 각 대대가 연대 하나씩을 지원하고 155㎜ 자주포 1개 대대가 사단 전체를 지원한다. 3사단과 6사단의 포병 화력은 이 정도에 그치지만, 후방에는 8사단의 K-9자주포 대대와 5포병여단의 K-9자주포에 더해 세계 최강의 다련장 로켓인 M-270 MLRS 20여 문이 버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28사단이 반격한 29발의 포탄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군이 철원 오성산 지역 후방으로부터 6사단이 방어하는 백마고지 근처의 아군 GP(전방감시초소)를 향해 240㎜ 방사포를 동원해 무차별적 포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관광객이 많아 포격 소리와 화염 등으로 공포감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군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공격에 즉시 응징을 결정하고 제3야전군사령부 지휘 아래 5군단이 반격에 나설 것이다. 아군 GP의 피해 상황을 확인한 5군단은 30분 후 5포병여단의 K-9자주포 3개 대대 54문을 동원해 북한이 공격한 양의 10배에 해당하는 포탄을 발사해 오성산 지역 북한군 GP 1곳과 포격 원점인 240㎜ 방사포 진지를 초토화한다.
전의 꺾인 北 5군단장
북한군은 5군단의 122㎜ 방사포, 240㎜ 방사포, 152㎜ 자주포 등을 동원해 국군 3사단과 6사단의 포병진지를 무차별 타격하기 시작한다. 3사단과 6사단의 포병진지 중 콘크리트로 지붕을 덮은 유개호 진지는 상대적으로 무사하지만 노천의 무개호 진지에서 사격을 준비하던 105㎜ 포병 병사들이 희생을 당한다. 콘크리트 지붕이 없는 진지에서 방탄복도 제대로 못 갖춘 병사들이 북한군 포탄 파편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이다.
북한의 포격에 대응해 국군 3사단과 6사단이 1개 대대씩 보유한 155㎜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최고 발사속도로 포격을 실시한다. 동시에 5포병여단의 대포병레이더들은 쉴 새 없이 우리 측에 떨어진 북한 포탄들의 포격 원점을 파악해 지휘소에 전송한다. 5군단 지휘소는 5포병여단 예하의 자주포 대대들과 8사단 예하 4개의 155㎜ 자주포 대대에 표적을 제공해 대대적 반격에 나선다.
합참은 확전에 대비해 주한미군에 괌에 대기 중인 3대의 B-2A 스텔스 폭격기의 출격을 요청한다. 또한 미군 7공군과 주일 미 공군의 작전대기 준비를 요구한다. 더욱 강력한 응징을 위해 대구기지에서 출격한 F-15K 전투기 4대와 청주기지에서 출격한 F-4E 팬텀 전투기 2대에는 지휘세력과 지원세력에 대한 타격을 지시한다. 4대의 F-15K 전투기 중 2대는 사정거리 270㎞의 SLAM-ER미사일을 2발씩 장착했으며, 나머지 2대는 2000파운드 JDAM 정밀유도폭탄 2발씩 실었다.
또한 F-4E 팬텀 전투기들은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각각 1발씩 장착하고 이륙한다. 먼저 2대의 F-15K 전투기가 휴전선 근처 20㎞까지 접근한 뒤 각각 2발씩의 JDAM 폭탄을 북한군 GP들을 향해 날려 보낸다. F-15K는 최대 7발까지 JDAM을 동시에 다른 표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데, 2발씩만 유도했기에 아주 정확하게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 엄청난 위력의 충격파를 낸다. 이 공격으로 적 GP 4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공격에 덧붙여 선회하던 F-15K 2대가 오성산 뒤쪽의 북한군 포병사격지휘소 4곳을 향해 SLAM-ER 미사일을 발사한다. SLAM-ER 미사일은 시속 900㎞의 속도로 날아가 오성산을 돌아 뒤쪽에 숨어 있는 북한군 지휘소를 향해 돌진한다. 미사일은 목표물 수㎞ 전방에서부터 카메라를 통해 표적을 F-15K에 전송하고 조종사는 카메라 영상을 보며 정확하게 미사일을 유도해 북한군 지휘소 4곳을 폭파시킨다.
마지막으로 F-4E 전투기들이 양평 부근의 상공에서 북쪽을 향해 각 1발의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발사한다. 관통탄두를 장착한 사정거리 100㎞의 팝아이 미사일은 정확하게 북한군 5군단과 3사단 사령부의 벽을 관통한다. 이 공격으로 북한군 5군단장 장정남은 전의가 크게 꺾이고 만다. 지하벙커에 있어 목숨은 건졌지만 폐쇄회로를 통해 본 미사일의 위력과 연이어 올라오는 피격 보고에 어쩔 줄을 모른다.
잠수함을 어이할꼬
서해의 공기부양정 움직임과 북한 공군의 내습에 대비해 서산기지에서 KF-16 전투기 20대가 이륙해 서해 상공을 선회한다. 공군의 폭격으로 철원의 포격전이 잦아들 무렵 서해가 아닌 동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초계 중이던 해군 1함대 소속 2000t급 호위함을 향한 어뢰 공격 경보가 울린다. 북한군이 8월 22일부터 순차적으로 50여 척의 잠수함을 기동했는데, 그중 1척이 한국 해군 호위함 근처 5㎞까지 접근해 어뢰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호위함은 가스터빈 엔진을 가동해 최고속도인 30노트로 가속해 어뢰를 떨쳐버리려 노력한다. 어뢰기만장치인 닉시(Nixie)를 가동해 따돌리려고도 하지만 어뢰는 결국 함의 스크루 부분에 와서 폭발한다. 천안함 때처럼 함의 중앙 아랫부분에서 정확하게 폭발하지 않았기에 버블제트에 의한 침몰은 면했으나 기관실에 근무하던 장병들이 목숨을 잃고 기관이 정지돼 표류하기 시작한다. 1함대 사령관은 잠수함의 2차 공격을 방지하고자 P-3C 대잠초계기를 급파해 엄호를 지시했으며 1함대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을 신속히 현장으로 보내 호위함을 예인한다.
어뢰 공격에 분노한 합참은 F-15K 전투기 4대를 동원해 북한 최대의 잠수함 기지인 마양도 폭격을 명령한다. 대구에서 F-15K 4대가 각각 2발씩의 SLAM-ER미사일을 장착하고 이륙한다. 동시에 충주기지에서는 KF-16 4대가 F-15K를 엄호하고자 공대공 무장을 장착하고 이륙해 합류한다. 이들 KF-16 중 1대는 ALQ-200K 전자전포드를 장착하고 원산에 위치한 북한군 SA-5미사일의 레이더를 교란한다. 전자전포드의 교란과 저공비행을 통해 SA-5미사일의 공격을 받지 않으면서 마양도 150㎞까지 접근한 F-15K와 KF-16 공격편대는 SLAM-ER미사일 8발을 일제히 발사한다. 미사일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북한군의 요격을 어렵게 만들며 마양도로 쇄도한다. 이로써 마양도 기지의 모든 건물과 수리 중이던 잠수함들이 사라졌다.
전면전 발발을 억제하기 위해 괌에서 이륙한 B-2A 스텔스폭격기 3대는 오키나와 근처까지 접근했다. 일본 미자와 기지에서 이륙한 주일 미 공군의 F-15C전투기 16대는 독도 근처에서 시위 기동 중이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이륙한 미 해병대의 F/A-18 전투기 16대는 제주도 근처에서 시위 기동을 한다. 북한군 지휘부는 전면전에 나설 경우 미 공군 전력에 의해 일시에 대공미사일 기지들이 격파될 것을 잘 안다. 평양은 더 이상의 확전을 결심하지 못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전통문을 보내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다.
아군 보병 피해 클 듯
여기까지 서술한 것은 필자가 구상한 시나리오다. 상당 부분을 국군에 유리하게 전개했는데도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전방 무개호 진지 포병 병사들의 대규모 희생과 북한 잠수함에 의한 군함 피격이 대표적이다. 시나리오에서는 북한군이 우리 포병을 향해서만 공격했다고 썼지만, GOP 등 보병부대를 향해 포격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번 북한의 포격 도발에서 비롯한 고위급 접촉에서 평화적 결말을 도출한 것은 지극히 잘한 결정이다. 국지전이 벌어졌더라도 승자는 국군이 됐을 확률이 높지만, 우리 장병의 희생을 피할 수는 없다.
북한이 8월을 도발 시기로 선택한 까닭에는 미군 전력의 공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태평양을 관할하던 미 7함대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이 장기 수리를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로 돌아갔다. 로널드레이건 항공모함이 7함대로 와 임무를 교대해야 하는데,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던 날 이 항공모함은 샌디에이고에서 임무 교대식을 했다. 로널드레이건은 9월 말이 돼서야 일본에 도착한다.
또한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탑재하는 미 해병대의 4만t급 강습상륙함 본험리처드는 사이판의 태풍 피해 구호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한반도 주변 서태평양에 미군 항공모함이 단 한 척도 없었던 것이다. 일본 가데나 기지에 전개된 F-22전투기도 미국으로 귀환한 상황이라 미군의 전략적 자산이 일시적으로 공동화한 때였다.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일신해야 한다. 미군 항공모함 등이 동북아시아를 비울 때는 대체 전력을 반드시 확보할 것과 합참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안이한 부대 운용이 한반도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군에게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 억제는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의 의무다. 그 의무를 이행하기 싫어하거나 미진하게 행동하면 그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
국군은 추후의 도발에도 단호하고 강력한 응징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결코 쉬운 문제를 출제하지 않을 것이다. 천안함처럼, 목함지뢰처럼, 대포병레이더에 안 잡히는 평사포처럼 교활한 작전을 통해 국군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낼 것이다. 소형 무인기를 통한 생화학무기 살포, 사이버 공격, 은밀한 특수작전을 통한 전방지역 GP 공격, 전방 지휘관 암살 등 주체와 원점이 실시간으로 파악되지 않는 도발을 할 공산이 크다.
도발 억제가 교류·협력 명분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반드시 보복해야 한다. 천안함 때처럼 보복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몇 달이 지났더라도 반드시 몇 배의 보복을 해야 한다. 그런 실행의지를 가져야만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북한의 포격 도발에서 비롯된 군사적 충돌 위기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었다. 국론 통일과 국민의 안보 의식, 국군의 강력한 임전 태세와 실행 의지가 도발을 멈추게 한 것이다. 필승의 확신이 있던 터라 국론이 통일된 점도 있다.
국군은 전력 증강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부족한 점은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국지전이 발생하면 대량 피해가 예상되는 포병 진지의 유개화 작업을 실시하고, 잠수함 50척 기동에 모골이 송연하던 기억을 잊지 말고 대(對)잠수함 전력 확충에 예산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만 남북 간 교류, 협력이 지속될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통일은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 DMZ 미스코리아 경연…北 병사 ‘헤벌쭉’
● 軍 당국이 ‘뻥튀기’한 확성기 효과
● 정보기관의 한류 드라마·영화 투입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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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심리전은 독재 정권의 골간을 송곳으로 후비는 공작이다. 심리전은 사상적 방화벽에 구멍을 뚫는 비대칭 무기다. 정전(停戰) 이후 남북은 말과 논리로 전투했다. 전쟁 후 남북 대립의 실체는 매체 간 전쟁이다.
군사학은 심리전을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 자극과 압력을 줘 정치, 외교, 군사 면에서 아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남북은 심리전 현장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영국에서 일하다 망명한 북한 노동당 출신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1992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남조선’ 사람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주체사상을 선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체제에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이후엔 말을 섞지 말라더군요. 고꾸라진 것을 인민이 아는 게 싫은 거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1980년대 대학가는 붉게 물들었다. ‘구국의 소리’는 군사독재 치하 대학생들의 가슴을 후볐다. 서울 말투로 방송이 진행됐다. 방송 내용이 합리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한국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뉴스를 전했다. 국가권력을 비판하면서 행동 노선을 전파했다.
북한 당국은 심리전의 핵심 수단으로 라디오를 사용했다. 통일전선부는 산하에 평양방송, 평양FM방송, 구국의 소리, 개성TV방송을 두고 대남 심리전을 지휘했다. KAL기 폭파 사건 때 “미국 CIA와 안기부의 음모다. 문제를 제기하라”고 행동 지침을 하달한 게 대표적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한 하태경 국회의원의 기억이다.
“구국의 소리 주장대로라면 라디오 방송의 주체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라는 한국 내 전위조직이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말로 방송을 끝냈기에 한국에서 운영되는 지하방송이라고 잘못 안 이도 많았죠. 납북자, 월북자를 동원해 서울말로 방송했거든요. ‘직선제로 개헌해야 한다’ ‘민주정부 수립하자’ 같은 슬로건은 정세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키즈(kids)’들은 북한 방송에 환호했고요.
구국의 소리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침투와 시장개방 압력을 비판하거나 지배계층의 비리, 부정축재를 고발했습니다. 농어민,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고요. 주체사상이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의 정신세계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죠. 대남방송을 청취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던 이들이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습니다.”
‘북한군 관람용’ DMZ 수영장
비무장지대(DMZ) 육군 ○○사단 ○○중대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영장이 있다. ‘하늘 수영장’이라고 칭한다. 북한의 심리전 공세가 끄트머리로 치닫던 1992년 북한군 관람용으로 건설한 것이다. 개장 첫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콘테스트를 이 수영장에서 진행했다. 배우 이승연(47) 씨가 미(美)로 입상한 경연이다. 북한 군인들은 남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육안과 망원경으로 뚫어져라 지켜봤다.
전방부대의 한 GOP(일반전초) 대대장은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당시 북측 병사들이 ‘헤벌쭉’ 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DMZ에서 복무하다 탈북한 한 인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기예보예요. 남쪽에서 ‘인민군 장병 여러분, 오후에 비가 내리니 빨래를 걷으세요’라고 방송하면 정말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남한 방송 내용을 신뢰하게 된 데는 일기예보가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한국에 실제로 와서 보니 방송 내용이 모두 사실은 아니더군요. 천국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겨요.”
1970~1980년대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닌 이들은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생이 파출소에 삐라를 가져가면 연필 같은 것을 상으로 줬다. 북한은 더는 삐라를 보내지 못한다. ‘진실의 전장’에서 패배한 탓이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뤄냈으나 북한은 곤두박질쳤으며 동유럽 사회주의권은 붕괴했다.
남북 심리전은 1962년 북한이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낙원으로 오라”고 확성기 방송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한국이 맞불 방송으로 응전하면서 대남·대북방송이 말과 논리의 전투를 벌였다.
“사회주의 낙원으로 오라”
북한이 대남방송을 중단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체제경쟁에서 열세를 확인하면서 자신감을 잃었거나 국군에게 “입북하라”고 해봐야 의미 없는 울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대북방송은 더 공세적으로 변모했다. 북한은 군인과 주민이 대북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제압방송’에 전념했다. 제압방송으로 방해한 탓에 대북방송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제압방송도 한계에 부닥친다. 경제난을 겪으면서 방송장비 노후화와 전력난 때문에 제압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이후 남북은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했다. 2004년 장성급 군사회담 6·4합의(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DMZ에서 확성기가 꺼졌다.
2010년 이명박(MB)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철거한 확성기를 천안함 폭침에 대한 보복으로 다시 설치했다. 북한은 확성기를 조준 타격하겠다고 위협했다. MB 참모들은 “확성기를 틀기에는 위험하다”면서 심리전 방송 재개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심리전은 독재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비수(匕首)지만 남북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날려 보내는 삐라에도 민감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DMZ 확성기 심리전 방송이 전가의 보도인 양 주장하는 말과 글이 난무하는데, 이 중엔 과장했거나 잘못된 내용도 적지 않다. ‘뻥튀기’ 수준의 주장도 나온다.
“웅~웅 소리만 들렸다”
남측 전방지역에서 확성기 출력을 높이면 낮에는 10㎞, 밤에는 24㎞ 떨어진 지역에서도 방송이 들린다는 게 심리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개성에서 북측 DMZ까지 8㎞, 군사분계선(MDL)까지는 10㎞이므로 그렇다면 개성 시내에서도 확성기 방송 내용이 들려야 한다.
개성 출신 탈북민은 “웅~웅~ 소리만 들렸을 뿐 내용은 알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DMZ에 인접한 개성시 판문군까지는 내려와야 아나운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요 프로그램인지, 대담 프로그램인지 알 수 있었으나 그마저 방송 내용을 알아듣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최장 24㎞ 내 북한군과 주민이 확성기 방송을 듣는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확성기 방송의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DMZ 인접 지역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은 주민은 물론이고 군인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확성기 방송은 대략 4~6km 범위까지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대북방송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다. 첫 번째는 MDL 북쪽 2km를 담당하는 북한군 민경(민사행정경찰) 대원, 두 번째는 한국의 GOP 부대에 해당하는 ‘1제대’ 군인이다. 1제대는 DMZ 바깥쪽 2km 안팎을 담당한다. 세 번째는 1제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다. 이들은 거주지역 이외 곳으로의 이동이 차단된 채 DMZ 인근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한국의 민통선 이북 지역과 비슷하다.
‘당원 아들’만 DMZ 근무
민경 대원들은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좋은 이들로 구성된다. 입대 전부터 특수 병과에 선발돼 사상과 토대를 검증받는다. 또한 부모가 노동당원이어야 한다. 자식을 민경 대원으로 입대시키면 승진할 때 유리하다. 민경 대원은 북한군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제대 후 노동당 간부의 길을 걷는다.
‘1제대’ 소속 군인들도 계급적 토대가 좋은 집안의 자식들로만 선발한다. 민경 대원과 마찬가지로 경비와 수색을 담당하지만 ‘끗발’은 떨어진다. 민경 대원과는 대우에서도 차별이 있다.
민경 대원이든, 1제대에 속하든 심리전에는 똑같이 노출된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비무장지대에 배치되면 첫 두 달은 총은 지급하되, 실탄은 지급하지 않는다. 과거 확성기 방송을 난생처음 들은 신병이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확성기에 대고 총탄을 날려 지휘관을 당황스럽게 한 적도 있다. 13년의 군 복무 기간 내내 확성기를 비롯한 심리전에 노출된 고참 병사들은 대북방송에 무신경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확성기 방송을 통해 경기가 생중계됐고 한국 선수가 골을 넣으면 북한 군인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는 얘기가 나도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낭설일 뿐이다. 대북방송을 듣고 함성을 지른다? 총살감이다. 심리전에 노출된 지역의 군인과 주민을 상대로 사상교육과 통제도 이뤄졌다. ‘심리전의 검은 내막’ ‘전초선’ 같은 영상물을 이용해 동요를 차단했다.
1950년 6·25전쟁 이래 65년간 벌어진 심리전은 남북이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방어한 역사다. 전방지역에서 대북 심리전은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전광판과 입간판을 이용한 선전이 주를 이뤘다. 북한의 전술도 같았다. 대남방송과 전단, 입간판을 통해 월북을 유도하면서 체제 우월을 선전했다.
대북방송을 듣고 수많은 북한 군인이 귀순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2004년 확성기 방송이 중단되기 전 10년 동안 휴전선을 통해 귀순한 군인이 대북방송 중단 후 10년간 귀순한 군인보다 숫자가 적다. 그렇더라도 확성기 심리전의 영향력이 미미한 것만은 아니다. DMZ에서 근무한 한 탈북 군인은 이렇게 말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뿜어내는 유행가를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거나 화장실에서 노래 가사를 노트에 옮겨 적다가 적발된 군인들이 비무장지대 근무에서 제외되는 것을 봤습니다.”
“전단 만지면 손 썩는다”
새벽에 방송된 종교 프로그램 시간에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 DMZ 인근 지역 주민이 보위부에 적발돼 공개 총살되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적지물자(남쪽에서 보낸 전단과 물품)’를 통해 한국이 북한보다 잘산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도 있고, “전단을 만지면 손이 썩는다” “물품에 독이 발라져 있다”는 당국의 선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지물자를 사용하는 군인들도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랩 가사나 정서에 맞지 않는 최신 가요를 들으면서 무심코 “썩어빠진 놈들…”이라고 중얼거렸다가 북한 처지에서 보면 ‘옳은 말’을 한 것이기에 무탈하기도 했다. 일부 한국 인사들은 대형 전광판을 설치해 걸그룹 동영상만 틀어놔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북한 군인들은 한국의 청년과는 전혀 다른 성장기를 보냈다.
“국방부가 대응책으로 건의했고, 결심권자에 의해 확정됐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9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국군은 8월 4일 1사단 지역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11년 만에 확성기를 다시 틀었다. 북한은 DMZ 남측 지역에 포사격을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48시간의 최후통첩을 내놓고는 준전시상태에 돌입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됐으나 북측이 지뢰 폭발에 유감을 표명하고 남측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북한의 유감 표명을 이끌어낸 확성기 방송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앞서 설명했듯 위력과 영향력이 과장된 면이 있다. 도발→위기→대화로 이어진 국면은 확성기 방송만이 아니라 복합적 요인이 결합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북측은 남측의 고출력 방송을 막을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 제압방송에 동원된 북한의 확성기는 조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해외에서 고성능 방송장비를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난이 해소되는 상황에서 전력만 보장된다면 남측의 확성기 방송을 맞불 방송으로 제압할 수 있다.
북한이 실제로 민감하게 생각한 것은 확성기 방송을 신호탄으로 삼은 다양한 심리전 수단의 전방위적 동시다발 재개다. 2013년 2월까지 고위 안보 당국자로 일한 A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에겐 핵 못지않은 비대칭 무기가 있습니다. 북한 체제의 취약점은 ‘진실’입니다. 북한 정권은 세계로부터 주민을 격리해 체제를 지켜왔어요. 외부 세계의 진실, 내부의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핵으로 막지 못합니다.
북한이 최후통첩을 한 8월 22일, 대피소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 관련 뉴스를 지켜보는 연평도 주민.
北 체제 취약점은 ‘진실’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북한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전을 많이 구사했습니다. 현재 신의주 라인(신의주~함흥·북위 40도)까지 북한 주민이 한국 TV 방송을 시청하는 게 가능합니다. 수신이 잘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북한 주민이 공중파로 우리 방송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라디오의 경우 과거엔 주파수가 고정돼 있었지만, 요즘엔 장마당에서 중국산 라디오가 팔립니다. 한국 콘텐츠가 담긴 USB, DVD도 활발하게 유통되고요.”
북측은 “남측의 ‘최고존엄’을 욕하지 않을 테니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리지 말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북측은 심리전 중단을 요구한 회담이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북측의 요구에 대해 ‘민간단체에서 하는 일은 막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대응했어요. 남측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구차하게 그렇게 나온 겁니다.”
북한이 느끼기에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은 남측이 흡수통일에 본격적으로 나섰음을 뜻한다. 확성기 방송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 TV 방송, 이동식 방송, 전단, 전광판, 입간판, 각종 선전물이 심리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전개되면 남측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단이나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선전·선동의 나라다. 무차별적 선전·선동의 효과를 잘 안다. 하태경 의원은 이렇게 주장한다.
경제교류도 유용한 심리전
“한국에서 잘 듣지 않는 AM 주파수 일부를 대북방송으로 돌려야 해요. 라디오 뉴스도 방송해야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국경지방을 통해 한국 영화, 드라마나 외부 소식이 담긴 USB, DVD, CD를 북한에 대량으로 공급해야 하고요. 북한 내부에서 한류나 외부 소식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우선 TV 방송 등 북한 언론매체를 한국에서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를 선제적으로 개방해버린 후 우리도 북한을 향해 더 강한 TV, 라디오 전파를 쏘는 겁니다.”
정보당국은 민간단체 등을 앞세워 한국 영화, 드라마를 북·중 접경을 통해 북한에 대량으로 집어넣는 공작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 전문가는 “북한이 박근혜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본다. 통일 논의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어떤 수사(修辭)를 갖다 붙인다 해도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시도로 인식한다.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실제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서라기보다 체제 존립에 대한 심각한 불안과 체제경쟁 이후 생겨난 열등감의 발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휴전선 인근 지역을 ‘전선지역’으로 규정해 주민의 통행과 이동을 엄격하게 통제해왔다. 전선규율에 따라 전방지역 군인이 주둔지 밖에서 이동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과거에 확성기 방송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엔 ‘관리가 가능한’ 군인과 일부 주민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경제난 이후 주민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이 ‘장마당 세대’는 계급성보다 물질과 실리를 중요시 한다. 향후 간부로 등용될 때 기성세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일 공산이 크다.
심리전은 드러내놓고 확성기를 트는 방식이 아니라 은밀하고도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북·중 국경을 통해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한편으로는 휴전선을 통해 외부 정보가 전파돼 교집합을 이루면 북한 정권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남북 간의 경제교류 및 협력 또한 유용한 심리전 수단이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중단하고, 나빠지면 재개하기를 반복하는 심리전은 효과도 빈약할뿐더러 애꿎은 국민만 전쟁 위협에 시달리게 할 수 있다.
은밀하되 광범위하게
또한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은 ‘진실’만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 체제에 대한 진정한 동경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일부 탈북 인사의 ‘호구지책’이라는 비판까지 듣는 대북 삐라처럼 조악하거나 허위 사실, 악의적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찾아 한국에 온 탈북민의 행복이 대북 심리전에 담겼다면 한국 사회가 실제로 탈북민이 대접받고 살 만한 곳이어야 한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으로도 평양의 지인과 실시간으로 통화가 가능한 세상이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심리전의 위력은 ‘진실’에서 나온다. 독재집단에 대한 위협과 협박의 수단이 아니라 북한 동포를 끌어안는 도구로서 정교하고 은밀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수행해야 한다.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 자극과 압력을 준다”는 심리전의 교과서적 정의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모바일 이용해 남남갈등 부추겨
101연락소 산하 5국 중 1국은 신문, 2국은 잡지, 3국은 인터넷, 4국은 음악, 5국은 문학을 담당한다. 3국은 네이버, 카카오(다음) 등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등의 방식으로 대남 심리전을 벌인다. 한국 정부 정책을 비방하고 대북 우호 여론을 확산하는 게 주목적. 5국은 한국 작가 명의로 내부 선전용 체제 선전물을 만든다.
813연락소는 대남선전물을 출판한다. 제작된 출판물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 등에 배포한다. 310연락소는 한국 내 친북단체인 것처럼 위장해 활동한다. 백두한라, 나라사랑실천연대 등의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한다. 26연락소는 구국의 소리 방송 등 라디오를 통해 대남 심리전을 펼치던 곳으로 현재는 ‘인터넷 연락소’로 개편됐다.
북한은 평상시에는 선군정치의 우월성, 김정은의 위대함 등 체제 선전 글을 주로 유포한다. 세월호 사건, 천안함 폭침 등 현안이 불거졌을 때는 국내 사이트에 한국인 명의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댓글을 집중 게재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일하다 탈북한 인사는 “100만 명분이 넘는 한국인 주민등록번호를 북한 공작기관에서 확보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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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저녁 중국 선양군구 소속 탱크 대열이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 옌지(延吉) 시가지를 통과해 두만강 하류 투먼-훈춘(圖們-琿春)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튿날 오후 3시경엔 탱크와 자주포 수십 대가 옌지 시가지를 거쳐 허룽(和龍) 방향으로 이동했다. 허룽 맞은편에 동아시아 최대 철광석 산지인 북한의 무산(茂山)이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중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북한이 도발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해 남북이 포격을 교환한 후 북한이 준전시 사태를 선언해 전면전 가능성마저 거론될 때 일이다.
“경거망동 말라”
인민해방군이 북중 접경으로 이동한 것과 비슷한 시각 훈춘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삼은 중·러 해상 합동훈련(8월 20~28일)이 실시됐다.
다롄(大連)의 재중동포 사회에서는 병력 이동을 포함한 중국의 압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북한이 8월 27일~9월 3일 평양-옌지 간 전세기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2010년 11월 말에도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평양은 국군의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서남방 포사격 연습을 빌미 삼아 11월 23일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연평도 주둔 해병대는 즉각 자주포를 동원해 맞은편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다. 공군은 포격 직후 KF-16 2대, 추가로 KF-16 2대와 F-15K 4대를 출격시켰으나 전투기들에는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이 장착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결돼 북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컸다. 국민 다수가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보복을 요구했으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베이징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황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게 아닌지 우려한 것이다. 11월 27일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을 한국에 급파했다. 다이빙궈는 비자도 없이 한국행 특별기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에 내린 후 도착비자를 받았다. 부총리급 인사가 황급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인은 외교관이더라도 한국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했는데, 국무위원이 비자도 없이 날아온 것이다.
다이빙궈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김성환 당시 외교부 장관을 차례로 면담하면서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혀달라고 서울에 요구했다. 평양을 향해서도 “더는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전개된 것에 중국은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한미 양국이 2010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서 항모 조지 워싱턴함을 동원한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하자 중국은 베이징군구와 선양군구 병력을 동원해 대항 훈련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의 항모전단(航母戰團)이 두 나라 간 암묵적 합의를 무시하고 북위 36도 34분의 격렬비열도(충남 태안) 선(線)을 넘어 북진하는 게 아닌지 극도로 긴장했다. 인민해방군은 산둥반도의 지난군구와 북해함대 등에 비상을 걸었다.
美 항모가 격렬비열도를 넘으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의 일환이었다. 김정일은 NLL에 인접한 연평도를 포격하면 한국이 제한적 반격에 나설 것이며, 그 결과 남북한 간 긴장이 고조돼 한반도 안정을 희구하는 중국의 반응을 이끌어낼 것으로 계산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성동격서 전술에 한국과 미국, 중국 세 나라가 놀아났다.
순환기 계통 질병으로 인해 사망을 눈앞에 둔 김정일은 연평도 포격을 통해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인 한반도 문제를 건드려 북한이 중국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베이징에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북한의 계산된 도발은 연평도 포격 이듬해인 2011년 5월과 8월 김정일의 제7차, 제8차 중국 방문과 중국의 대(對)북한 원조 증대로 이어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자 베이징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의 9월 2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에 긴장을 야기하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확대해 해석하면 한국의 확성기 심리전도 포함되는 것이다.
‘목구멍’이 불안하다
흉노(匈奴) 갈족(갈族)이 세운 후조(後趙)를 필두로 해 선비족(鮮卑族)의 수(隋), 한족의 송(宋)과 명(明)을 거쳐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만주의 불안정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끝에 멸망한 중원 정권이 10개가 넘는다.
16세기 말 명은 왜군의 침략(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원하고자 대군을 보냈다. 19세기 말 청나라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허덕이면서도 임오군란과 동학혁명이 조선에서 일어나자 무리해가면서 대군을 파병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1년도 채 되지 않은 1950년 발발한 6·25전쟁 때 연 100만 명 이상의 대병력을 파병해 핵무장을 한 미국에 도전했다.
중국은 현재도 목구멍(咽喉)에 위치한 한반도의 불안정이 만주를 거쳐 수도 베이징으로 파급돼 전국이 혼란에 처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중국은 ①선양군구 ②베이징군구 ③지난군구 ④란저우군구 ⑤청두군구 ⑥난징군구 ⑦광저우군구를 뒀는데, 각 군구에는 육군, 공군, 전략미사일부대(제2포병) 등이 소속돼 있다. 또한 ①북해함대(산둥성 칭다오) ②동해함대(저장성 닝보) ③남해함대(광둥성 잔장) 3개의 함대를 보유했다.
중국은 베이징 외곽의 환보하이만(環渤海灣) 권역에 총 군사력의 40%에 달하는 3개 군관구와 1개 함대를 배치했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선양군구와 지난군구 병력이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중국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때 북한의 불안정 사태를 우려해 선양군구 병력 중 30만여 명을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전진 배치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함께 시진핑 주석이 주관한 전승절 열병식을 참관했다.
중국은 열병식에서 다종다양한 첨단 전략무기를 선보였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세계 유일 지대함(地對艦) 탄도미사일(ASBM) DF 21-D와 잉지(鷹擊)-12, 잉지-62, 잉지-83 미사일이다.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알려진 DF-31B와 DF-41은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의 ICBM은 태평양 건너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둔다. DF 21-D는 사거리 900~1500㎞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미국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다. DF 21-D의 파생형인 DF 26은 ‘괌 킬러’로 불리는데, 사거리가 3000~4000㎞에 달해 서태평양의 미군기지 괌을 공격할 수 있다.
항공기나 함정에 탑재해 공대함(空對艦), 함대함(艦對艦)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잉지 미사일은 서방의 대함미사일 하푼(Harpoon)과 유사한 무기다. 잉지-12의 사거리는 120㎞가량인 하푼의 3배가 넘는 400㎞에 달한다. 초음속 비행이 가능해 미국의 이지스 전투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잉지-62와 잉지-83은 더 뛰어난 미사일로 판단된다.
중국은 최신예 전략폭격기인 훙(轟)-6K도 공개했는데, 이 폭격기는 작전반경 3000㎞, 최장 비행거리 9000㎞를 자랑한다. 괌과 하와이 공습이 가능하다. 항공모함용 함재기(艦載機) 젠-15도 공개했다. 젠-15는 미국 해군의 주력 함재기인 FA-18E/F 슈퍼호넷(Super Hornet)에 필적한다.
‘괌 킬러’ 탄도미사일 DF 26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한국, 미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각인하려 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거부하겠다는 반(反)접근/접근거부(Anti- Access/Area-Denial) 전략을 뒷받침할 군사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과시한 것이다. 둘째, 장래에 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포함한 서태평양에서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시 미국이 개입하면 DF-31A, DF-41 등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바탕으로 동귀어진(同歸於盡·파멸의 길로 함께 들어감, 공멸)을 위협하면서 DF 21-D, DF 26, 잉지, 훙-6K 전략폭격기로는 괌과 하와이, 서태평양의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에 7함대 소속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과 이지스 순양함 챈설러스빌(CG-62)호를 새로 배치했다. 핵잠수함 8척과 B-2를 포함한 스텔스 전폭기 60여 대도 태평양 지역에 준비해놓았다. 미국은 해군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태평양을 반분하자는 중국의 신형 대국관계 설정 요구를 거부해왔다.
서태평양의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 한반도는 반드시 안고 가야 할 지역이다. 중국은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영향력도 키우려 한다. 중국이 몽골과 비슷한 형태로 한반도의 몽골화를 바란다는 관측도 있다. 내몽골은 중국령이 돼버렸으며 외몽골(몽골공화국)만 독립국 형태를 유지한다.
한반도는 만주와 보하이만(渤海灣)을 넘어 베이징을 직접 겨냥하는 요충지다. 서해안에 미사일을 배치하면 경제 중심지 장강 델타 지역은 물론 북해함대와 동해함대를 묶어놓을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경남 진해나 전남 거문도를 얻으면 대한해협을 통제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가 지척이다. 제주도를 확보하면 서해 입구를 틀어막을 수 있다.
한반도의 안정이 흔들리면 미국과 일본 등 제3국이 간섭할 공간이 넓어진다. 세계 최강인 미군 3만여 명이 한국에 주둔해 있기도 하다. 중국은 아직 미일 동맹군을 상대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다. 베이징이 9월 3일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학수고대한 것은 한·미·일 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놓아 대중국 군사동맹을 약화하려는 포석에 따른 것이다.
광대뼈-잇몸 관계
중국은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2010년 연평도 포격과 같은 모험적 행태가 한국의 반격과 확전, 미일의 개입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가 혼란에 처하면 수백만 명의 난민이 육상과 해상으로 중국에 밀려들 수 있다. 한반도로부터의 난민 유입은 재중동포(조선족) 150만여 명이 사는 북·중 접경지대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한반도에서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은 난민의 중국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양군구 병력을 출병해 청천강 이북과 두만강 대안(對岸)의 청진과 나선을 점령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중국 처지에서 볼 때 북한이 붕괴할 경우 미군의 북진, 일본군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한반도 전쟁 시 선양군구 및 신속대응군인 지난군구 병력과 북해함대를 동원할 것이다. 미국에 덧붙여 일본이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면 중국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중국은 미일 동맹에 맞설 국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한반도의 안정을 절대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한반도(특히 북한)는 광대뼈-잇몸과 같은 보거상의(輔車相依) 관계지만, 베이징은 평양이 핵무장을 추구해 한반도와 인근의 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시진핑은 2014년 2월 베이징을 방문한 한국 국회 방문단 접견 때 “성문에 불이 나면 해자(垓字)의 물고기까지 화를 입는다”는 지어지앙(池魚之殃)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북핵불용(北核不容)’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은 평양이 일으키는 긴장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이 가진 지전략적(地戰略的) 자산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시진핑은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가 장래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를 해석하면 ‘중국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에 미일 등이 개입하지 않고,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한이 합의해 통일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당장은 한국 주도 통일을 지지할 생각은 결코 없다’는 게 중국의 본심인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현상 유지(status quo)를 바란다.
● 北 미사일 공격에 대응한 ‘참수작전’의 비밀
● 북한의 ‘뻥쇼’, 1년치 연료 다 써버린 잠수함부대
● 무사만루 기회를 1득점으로 끝낸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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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어간 전쟁이 날 뻔했다. 김정은이 사상 최초로 최후통첩과 준전시, 전시상태를 한꺼번에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매체들이 준전시라 주장하고, 황병서와 김양건이 사태를 가라앉힘으로써 전쟁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는 북한과 김정은의 ‘내공’을 짐작게 하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으쓱’해진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 사건을 겪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까지 다녀온 박 대통령은 ‘통일외교’를 외쳤다.
그는 통일 단초를 잡아놓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말로 하는 ‘통일대박’ ‘통일외교’ 말고, 통일에 실질적으로 다가가는 행동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겪은 일도 ‘복기(復棋)’를 해보면 새로운 면이 발견된다. 8·25 합의에 이르기 전 남북은 어디까지 달려갔고, 어디에서 회군했는가. 그리고 이 사건에서 죽다 살아난 쪽은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의 때리고 어르기 전술
전쟁의 기운은 남북이 포격을 주고받은 직후인 8월 20일 오후 5시쯤 인민군 총참모부가 서해의 군(軍) 통신선으로 전통문을 보내오면서 감돌기 시작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8월 20일 17시부터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 방송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할 것,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5시 10분쯤, 이를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소집을 지시했다. 6시부터 열린 이 회의에서 최윤희 합참의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의 도발 개요와 우리 군의 대응 태세 등을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만전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주민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이 이를 따라 했다. 그날 밤(북한 발표에 따르면 11시 전으로 추정됨)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 이에 대해 조선중앙방송은 “(다음 날인) 21일 17시부터 조선인민군 전선 대련합부대들이 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 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김정은을 가리킴) 명령을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인민군의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
전선지대에는 바로 준전시임을 선포하고, 전선 대련합부대는 다음 날 오후 5시부로 전시 상태로 이전하라는 ‘이원적’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전선 대련합부대’이다.
우리는 전선 대련합부대를 군단으로 이해하는데, 군단보다는 큰 부대다. 우리 군은 인민군 육군이 ‘대량군(大量軍)주의적 기동군 전술’을 구사한다고 본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육군이 선보인 전격전(電擊戰)에서 비롯됐다.
1차 대전 때까지의 지상전은 보병이 전선을 따라 길게 참호를 파고 그 위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싸우는 것이었다. 기관총이 불을 뿜는 한 진지는 돌파하기 어려웠다. 그때 영국 육군이 무한궤도 위에 기관총탄을 견뎌내는 강판을 두르고 역시 기관총을 쏘며 전진할 수 있는 ‘원시 전차’를 개발했다.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열강은 전차 개발에 매진했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3호 전차를 앞세운 독일 육군은 프랑스가 국경선을 따라 구축해놓은 강력한 진지인 마지노선을 우회 돌파했다. 그리고 돌파구를 확대해 전 전선에서 공격해 들어가고, 기갑부대를 계속 돌격시켜 단시간에 전략거점(Center of Gravity)을 점령했다. 개전 35일 만에 파리를 점령한 것. 그후 전격전은 보편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여기에 항공력을 추가해 ‘공지(空地)기동전’ ‘입체고속기동전’을 만들어냈다. 항공기와 미사일로 적을 격멸한 후 전차와 보병을 태운 장갑차를 돌격시키는 것이다.
소련군은 항공력이 부족해 공지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병력이 월등히 많아 기갑(전차)은 물론이고 보병부대까지 대량으로 반복 돌격시켜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기동부대를 진격시킨다는 개념을 세웠다. 1파, 2파, 3파의 반복된 공격으로 구멍을 내는 것을 ‘제파식(諸波式) 공격’, 뚫은 통로로 기동부대를 투입해 승기를 잡는 것을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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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만루의 기회를 1득점으로 끝내버린 8·25 합의. 김관진 안보실장(오른쪽)이 황병서 총정치국장과의 합의를 서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을 모두 끌고 나가는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이를 북한 육군이 도입했다. 인민군 육군은 군사분계선 서쪽에서부터 4-2-5-1군단(전연군단)을 놓고, 그 뒤에 기갑·기동군단(기동부대)인 815-820-620-806부대를 배치했다. 유사시 전연군단은 예하 사단을 재편성해 1, 2, 3, 4파를 정하고 한 곳을 선택해 반복 가격한다. 그리하여 구멍이 뚫리면 후방에 대기하던 기동부대를 우겨넣어 돌파구를 확대하고, 전략거점인 서울로 돌진한다.
국군은 밀집방어로 대응한다. 여덟 개 군단 가운데 7군단만 ‘예비’로 남겨놓고, 수도-1-5-6-2-3-8의 일곱 개 군단을 GOP선에 촘촘하게 세워놓은 것이다.
전쟁에서는 공자(攻者)가 주도권을 행사하므로 방자(防者)는 종속변수가 된다. 북한 군단은 공격 지점을 선택해 부대를 집중할 수 있으니 공격 지점에서는 인민군 세력이 우세해진다. 기만전술도 추가한다. 소수 전력을 엉뚱한 곳으로 침투시켜 방자가 주력이 투입되는 곳으로 부대를 보내 두텁게 막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제파식 공격을 퍼부으니 국군의 GOP(일반전초) 방어선은 뚫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통로가 열리면 인민군은 20만 명에 달한다는 특작부대(게릴라부대)도 동원한다. 이들을 AN-2기나 직승기(헬기)에 싣고 가서, 기동부대가 가려는 길 좌우로 뿌려 기동로를 확보해주는 것이다. 기동부대는 이들을 장갑차에 태워 전력거점까지 돌격해 풀어놓는다. 서울로 스며든 이들은 큰 건물을 장악하고 그곳의 시민을 인질로 잡는다. 인질 때문에 마지막 방어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는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다.
‘6일전쟁’과 거부작전
이 지경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연합군은 작전계획 5027에 공군과 육군 포병이 중심이 된 ‘거부작전’을 마련해놓았다. GOP선 뒤에 알파-브라보-찰리-델타라는 가상선을 정해놓고, 그중 한 선에서 GOP선을 돌파한 인민군을 멈춰 세우는 것이다.
우리 군은 GOP선에서 민간인 통제선 사이를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전투지역전단)지역’으로 부르며 ‘비워’뒀다. 그곳이 강력한 화력을 퍼부어 GOP선을 돌파한 인민군을 격멸하는 거부작전의 무대다.
1967년 이스라엘군이 거부작전의 ‘절정’을 보여줬다. 병력이 월등히 많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양쪽에서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을 펼치려고 대부대를 집결시키자, 이스라엘은 공군기를 기습적으로 출격시켜 그 지점을 타격했다. 이 폭격으로 두 나라 군대가 궤멸하면서 우왕좌왕하자, 이스라엘은 거꾸로 기갑부대를 돌격시켜 6일 만에 승리를 거머쥐었다(6일전쟁).
한미연합군도 이러한 거부작전을 하고 싶기에 ‘정찰’에 총력을 기울인다. 북한군이 기동할 조짐을 보이면 워치콘(대북정보감시태세)을 상향해 정찰전력을 배가하는 것이다. 평시엔 워치콘 4를 유지하는데, 그때는 한국의 금강 정찰기와 미국의 U-2기를 하루씩 번갈아 띄워 북한 지역을 정찰한다. 목함지뢰 사건 후 워치콘은 3으로 격상됐다. 그렇게 되면 오전엔 금강, 오후엔 U-2식으로 정찰비행을 크게 늘린다.
한미연합군이 강력한 ‘역격(逆擊)’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민군에겐 스트레스다. 이 부담을 뚫고 서울까지 진격하려면 전연군단과 후방의 기동부대 간에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전연군단이 큰 희생을 치르며 통로를 개척했는데, 한미연합군의 강력한 역격을 겁내 기동부대가 돌격하지 않으면, 기진맥진한 전연군단은 궤멸된다. 이 때문에 인민군이 작전회의를 열면, 기동부대의 돌격 문제를 놓고 전연군단장과 기동부대장이 싸움을 벌인다고 한다.
이 문제를 죽기 직전의 김정일이 정리했다. 김정일은 전연군단장들의 주장이 옳다고 보고, 평시 두 부대는 독립적으로 작전하지만, 유사시가 되면 전연군단장이 기동부대를 작전통제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온 말이 ‘전선 대련합부대’다. 전선 대련합부대는 평시에는 한 개 군단이지만, 유사시에는 2개 군단이 된다.
26사단 포병이 사격한 이유
8월 20일 이후 북한이 이러한 공격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됐기에, 우리군은 역격이 포함된 대응책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북한의 행태가 ‘때리고 어르기’라는 데 주목했다. 북한은 8월 20일 오후 4시 전후 28사단 지역으로 14.5㎜ 고사총 1 발과 76.2㎜ 평사포 2발을 발사하고, 4시 50분쯤 김양건 명의로 김관진 안보실장 앞으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그리고 오후 5시쯤, 서해 군 통신선으로 앞에서 밝힌 최후통첩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묵살 전략으로 나가기로 했다. 5시 15분 26사단 포병대대로 하여금 K-55 자주포 29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응답한 것이다. 북한은 28사단 지역으로 포탄을 쐈는데, 26사단 포병대대로 하여금 대응사격을 하게 한 것은, 그 지역에서는 26사단 포병대대가 최고의 사격술을 가졌기 때문이다.
28사단이 관할하는 무적태풍전망대 앞 비무장지대에는 유명한 격전지 ‘베티 고지’가 있다. 26사단 포병대대는 그 고지 앞 북한 쪽 비무장지대 200×400m 지역에 29발을 모두 떨어뜨리는 ‘놀라운‘ 사격술을 펼쳤다.
그리고 6시쯤 박 대통령이 NSC를 열어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북한도 강공으로 나왔다. 그날 밤 노동당 중앙군사위를 열어 준전시를 선포하고, 21일 오후 5시부로 전선 대련합부대의 전시 전환을 지시한 것이다.
다음 날(21일) 박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육군 3군사령부를 방문해 “북한 도발을 용납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우리도 ‘때리고 어르는 전술’로 나갔다. 합참과 통일부가 북한에 대화하자는 통지문을 보낸 것이다.
북한은 김이 빠졌는지 더 이상 때리는 전술을 펴지 않았다. 전선 대련합부대가 전시로 전환하기 1시간 전인 오후 4시, 김양건이 ‘23일 판문점에서 김관진 실장과 1대 1 접촉을 하자’는 응답을 보내온 것이다. 오후 6시, 한국은 ‘회담을 하려면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나오라’고 대꾸했다.
다음 날(22일) 오전 9시 35분, 북한은 ‘황병서가 김양건과 나갈 터이니 김실장은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나오라’고 했다. 한국은 대답을 주지 않고 오전 11시쯤 휴전선 남쪽에서 발사해 평양의 핵심 시설도 격파할 수 있는 슬램-ER 탑재형 F-15K 전투기를 미 공군기(F-16)와 함께 출격시켜 시위비행을 하게 했다 그리고 25분 뒤 ‘좋다’는 답을 보내자, 12시 45분 북한도 OK를 보내왔다.
‘때리고 어르는 전술’은 우리 것이 통한 것으로 판단됐다. 그때까지 북한군이 일부 포병부대를 ‘방열(사격준비)’시킨 것은 확인됐지만,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을 구사하려 기동에 들어간 기미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가진 청와대는 북한이 말한 최후통첩 시한을 2시간 남긴 오후 3시, 판문점 접촉을 발표했다.
오후 6시 30분 판문점 회담이 열리자, 황병서와 김양건은 대북확성기 철거만 집요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목함지뢰 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기에, 회담은 평행선을 달렸다.
CCTV로 이를 지켜본 우리 관계자들은 황과 김이 김정은에게 받은 지시가 대북확성기 철거 하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양측은 1시간쯤 자기주장을 펼치다 목이 아팠는지, 입을 다물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 ‘침묵의 지겨움’은 23일 오전 4시 15분, 정회를 함으로써 겨우 마무리됐다.
우리 군은 ‘북한은 말로만 싸운다’ 고 판단하고 자신감을 가졌다. 2차 회의는 23일 오후 3시30분 시작됐다. 그때 동·서해의 북한 잠수함 기지에 계류해 있던 잠수함정 50여 척이 사라진 것이 발견됐다. 우리 군은 인민군이 전시상태로 전환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긴장했다.
북한 해군의 수상함 전력은 우리에 비해 현저히 약하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해군이 펼칠 수 있는 작전을 두 가지로 추정해왔다.
첫째, 수적으로 많은 잠수함정을 풀어 무제한 잠수함전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 항구를 봉쇄하고 우리 수상함을 공격해 우리 함정들이 작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성공했다고 판단되면, 두 번째로 공기부양정을 비롯한 모든 수상함에 특작부대인 해상저격여단원을 태워 초고속으로 인천이나 경기의 서해안으로 돌진시킨다.
北 잠수함정 기동의 한계
해안에 상륙한 해상저격여단원들은 해안가에 있는 건물을 장악하고 시민을 인질로 잡아 출동한 한국군과 대치한다. 옆구리가 찔린 한국군이 움찔할 때 군사분계선에 대기하던 인민군 전연군단이 제파식 공격으로 돌파구를 뚫고 그 틈에 특작부대를 대동한 기동부대가 서울로 돌격해 ‘역시’ 인질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북한 잠수함정들은 기지를 이탈했는데 전방지대에선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을 위한 인민군의 기동 움직임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 군은 북한이 열세를 보인 회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쇼’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만큼 인민군이 전시 상태로 전환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북한 해군은 84척의 잠수함정을 가졌는데, 가동할 수 있는 것은 70척 이하로 판단된다. 그중 수리해야 하는 배가 있으니 실제로는 50척 정도가 움직일 수 있다.
평소 북한 해군은 1주일에 한두 척의 잠수함정을 출동시켜왔다. 바다가 어는 겨울 3개월 동안엔 기동하지 못하니(52주 중 12주) 연간 잠수함정 출동횟수는 40~80회, 어림잡아 50~60회가 된다. 잠수함정이 많은데도 이 정도밖에 잠수함을 출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연료 부족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갑자기 50척을 풀었다면, 잠수함 부대에 배정된 1년치 연료를 다 쓰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을 한 전문가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50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목했다. 한미연합군은 워치콘을 2로 올려 더 많은 정찰 자산을 가동했다.
북한 잠수함정(연어급과 상어급)은 소형이라 하루에 2~3번 부상해 공기를 주입해야 계속 잠항할 수 있다. 수면으로 부상한 잠수함정은 정찰위성이나 초계기 등으로 찾아낼 수 있다. ‘예상 대로’ 북한 잠수함기지 앞바다에서 공기 주입을 위해 부상하는 잠수함정이 자주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태풍 ‘고니’가 북상하는 것에도 기대를 걸었다. 태풍이 불어와 파고가 높아지면, 공기 주입을 위해 수면으로 부상한 잠수함정은 파도에 휩쓸려 쓰러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잠수함정 하부에 있던 황산 등 배터리 용액이 흘러나와 승조원들이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잠수함정은, ‘황천(荒天)’이 예보되면 ‘황천(黃泉)’으로 가지 않기 위해 전부 기지로 돌아온다. 전문가들은 고니가 접근하면 자동으로 ‘북한의 잠수함 쇼’가 중단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로미오급 등 큰 잠수함 몇 척은 공격을 위한 침투를 할 수도 있으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지 주변에 숨은 북 잠수함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만난 4인은 같은 얘기를 주고받다 다시 길고 긴 침묵에 들어갔다. 날이 바뀌어 24일 오전 10시가 되자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날 박 대통령은 “우리 대표단을 그만 철수시키라”는 지시를 두 번이나 내렸으나 실무진이 반대해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의 직후 우리 군은 미군의 B-52폭격기와 공격 원자력잠수함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과 협의한다고 발표했다. 잠수함정을 푼 북한에 슬쩍 겁을 줘본 것이다.
회담이 삐걱대며 이어지던 24일 오후 3시 30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60㎞ 북쪽의 고암포에 북한의 공기부양정 20여 척이 출동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잠수함정 출동에 이어 북한은 2단계 해상작전을 준비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쇼를 강화한 것인가. 그때 군사분계선 북쪽 일부 전선에서는 침투를 주임무로 하는 인민군 특작부대들이 DMZ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발견됐다.
우리 군은 북한 쪽에선 볼 수 없는 곳에 확성기를 설치했기에 북한은 절대로 확성기를 격파할 수 없다. 따라서 특작부대를 우리 쪽으로 침투시켜 확성기를 부수려는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쇼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마비전의 핵심 ‘작계 5015’
전쟁은 고전적인 방법(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 등)으로만 하지 않는다. 금세기 들어 주요 국가들은 미사일과 항공력을 무한정 투사해 적군 지휘부와 공군 및 미사일 기지 등을 파괴하고 육군을 투입하는 ‘마비전’을 발전시켰다. 미사일과 항공력을 투입하는 동안 전선의 적군은 살아 있지만, 지휘부와 전략시설은 다 깨졌기에 꼼짝을 하지 못한다. 마비된 상태로 있는 것이다. 그 후 이들은 육군 기동부대를 투입해 섬멸한다. 2003년 미국이 펼친 ‘이라크 자유작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도 600여 기로 판단되는 스커드-B와 노동미사일을 갖고 있으니 이를 일제히 발사할 수 있다. 핵탄두가 완성됐다면 그것을 단 대포동도 쏠 수 있다. 이것이 초전에 승부를 결정짓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이용한 북한판 마비전이다.
지난 2년간 북한은 무더기 미사일 발사 훈련을 반복해왔으므로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과 마비전을 동시에 펼칠 수도 있다. 그 신호가 잠수함정과 공기부양정, 특작부대를 가동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한 것이 작전계획 5015다. 이 작전은 북한이 미사일을 대량으로 기립(起立)시켰는지를 확인하고 단행한다. 이를 위해 미 공군 우주사령부는 KH-12 등 정찰위성을 북한 상공으로 띄워 깊이 내려가게 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촬영케 한다. 한국도 아리랑위성 등을 총 가동해 같은 작전을 펼친다. 그리하여 북한이 미사일을 대량 기립시킨 것이 발견되면, 우리 군의 현무-1, 2, 3과 ATACMS, 미 8군의 ATACMS, 미 해군의 토마호크 미사일 등을 일제히 발사해 북한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한다.
이 작전은 신속성이 생명이므로 데프콘이나 워치콘의 상향 같은 예비조치 없이 곧바로 단행된다. 이는 바로 김정은을 노리는 것이라, 일명 ‘참수(斬首, 목을 베 죽이는 것)작전’으로도 불린다. 이것이 김정은에게는 공포이기에, 북한은 나름대로 훈련을 예고한 뒤에 미사일을 쏘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그때는 북한이 전시로 전환한다고 선포한 시간이 지난 다음이라 육군 미사일사령부와 공군 작전사령부는 비상 대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을 집단으로 기립하지 않았다.
준전시를 선포하면 북한은 교도대와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같은 예비군을 동원해야 한다. 이들의 수는 700만으로 추정되는데, 동원 이후 이들의 ‘입’은 120만의 인민군이 채워줘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식량이 부족한 인민군이 동원한 예비군에게 얼마나 식량을 줄 수 있을까는 큰 궁금증이었다. 북한은 전선지대의 예비군을 ‘끝내’ 동원하지 못했다.
북한의 속셈을 짐작한 이들은 북한의 허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로 인해 북한의 내부 모순이 격화되도록 2+2 회담을 서두르지 말고 계속 끌라는 주문을 했다. 합의가 늦어져 긴장이 계속되면, 박 대통령을 전승절 행사에 참가시켜야 하는 중국이 몸이 달아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는 계산도 했다. 이는 북한과 중국의 틈을 벌어지게 하는 묘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여름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한반도 긴장을 이유로 박 대통령이 방중(訪中)을 취소하면 미국과 일본은 쾌재를 부르고, 중국은 북한을 더욱 미워할 수 있다. 합의 지연이나 실패는 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에 대해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됐다. 태풍 고니도 우리 편이었다. 물론 타협이 늦어지면 북한은 더 큰 위협으로 긴장감을 높였을지 모른다. 이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전략적 인내’를 해야 한다.
이병기 “타결 서둘러라”
북한을 오래 다뤄온 국가정보원 쪽은 이렇게 판단했으나 청와대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병호 국정원장이 박 대통령과 가깝지 못한 것이 한 이유로 지적된다. 전임 국정원장인 이병기 비서실장은 국정원 판단과 반대로 경기 침체와 대통령의 방중을 위해 우리 대표단에게 조속히 타결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 대표단은 이 실장의 의중을 따랐다. 전문가들의 판단보다는 대통령을 위한 ‘정무적 판단’을 우선시한 것이다. 허망하게도 24일 밤, 우리는 유감 표명을 받는 선에서 타협하고, 다음 날 오전 2시 이를 발표했다.
중국은 전승절에 참여한 박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로 인해 30%도 안 되던 박 대통령 지지율이 50% 이상으로 치솟았다. ‘공간’을 얻은 박 대통령은 시진핑 등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식 방침은 ‘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이다. 우리의 발언이 이 범위 안에 있는 한 그들은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다. 반대를 표시해 전승절 행사에 어렵게 모신 ‘서방 인사’를 노엽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8·25 합의 후 북한 중앙방송에 출연한 황병서는 “남조선은 심각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관진 실장이 합의해주지 않고 회담을 끌었다면, 그리하여 박 대통령이 방중을 하지 못했다면, 중국은 북한에 크게 화를 냈을 것이고, 김정은은 그 화를 황병서에게 퍼부었을 것이다. 황병서는 제2의 장성택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8·22 위기로 가장 큰 위험에 빠졌던 이는 황병서다. 죽다 살아난 그가 흰소리를 했다.
아쉬운 박근혜의 회군
북한 급변사태는 김정은이 장성택, 현영철에 이어 황병서 등 실세들을 불신해 처형하고, 그로 인해 김정은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 불안해진 2인자급들이 ‘거꾸로’ 김정은을 제거하는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전승절 참석 이후 박 대통령은 어깨가 으쓱해져 ‘통일외교’를 외쳤다. 하지만 그는 통일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순간에 측근들에게 휘둘려 ‘결정적인 회군’을 해버렸다. 그 좋은 기회를 지지율을 높이는 데 다 쓰고 말았다.
비유해 말하면 8·22 위기는 다득점을 할 수 있는 ‘무사만루’의 기회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압박 수비를 했는데, 그 분위기에 휩쓸려 1점만 내고 공격을 마무리했다. 합의를 하지 않고 끌었더라면 연속 득점으로 북한, 미국, 중국, 일본을 우리 페이스로 끌고 가는 연속득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아주 잘했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통일대박’이 박 대통령의 비전이라면 그는 관료와 국민에게 ‘전략적 인내’를 주문해야 한다.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 북한은 로켓 발사를 시도할 수 있다. 그 직전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고 그 직후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 한반도에서는 또 한 번 큰 판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은 끈기가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다시 기회가 왔을 때 국민과 함께 ‘전략적 인내’를 발휘한다면 통일대박은 현실화할 수 있다.
통일대박을 준비한다면 박 대통령은 병력을 줄이는 국방개혁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적은 병력으로는 북한 급변사태 때 안정화 작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고대한다면 박 대통령은 우리 군을 정예화하고 북한 전문집단인 국정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인방을 중심으로 한 측근의 정무적 판단에 경도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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