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중국은 적인가, 친구인가

醉月 2016. 9. 10. 09:58

한국 기습용 미사일 600기 실전 배치

전략균형은 중국이 먼저 깼다

  • 신인균 |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언제든 핵탄두 장착…사드는 최소한의 조치

● 다수의 X밴드 레이더로 한반도 전역 밀착 감시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한국 기습용 미사일 600기 실전 배치

지난해 9월 3일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에서 공개된 DF-15 단거리 탄도미사일. [신화=뉴시스]


중국은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AN/TPY-2 레이더가 전방 배치 모드로 운용될 경우 자국 영공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레이더를 배치하는 행위 자체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깨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고 맹비난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국내 일부 전문가들 역시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로 미국이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미·중 전략균형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기 전에 전략균형은 이미 무너졌다. 균형을 먼저 깬 것은 중국이다. 균형이 왜 무너졌는지는 중국 전략지원군 산하 화전군(火箭軍), 즉 과거 제2포병부대로 불리던 전략 미사일 부대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내륙에 집중 배치한 ICBM

중국의 미사일 부대인 화전군은 소련의 전략 로켓군을 모방해 ‘인민해방군 제2포병’이라는 이름으로 1966년 창설됐다. 극비리에 창설된 이 부대는 미국과 소련 등 적국의 눈을 의식해 미사일 부대가 아닌 포병부대로 호칭됐고, 이 때문에 오랫동안 제2포병부대로 알려졌다. 

중국의 미사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운용하는 미사일 수량이 점차 증가하면서 제2포병은 육군, 해군, 공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립 군종으로 평가받게 됐으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군 개혁 조치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로 창설된 전략지원군의 모체가 됐다.

제2포병을 모체로 탄생한 전략지원군은 미사일 부대인 화전군을 주축으로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전자정보군과 우주전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우주군 등 3개 병과로 구성됐다. 전략지원군은 한국군의 대장에 해당하는 상장(上將) 계급이 사령원이며, 인민해방군 총참모부가 아닌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명령체계를 갖췄는데, 사령원은 인민해방군 내에서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웨이펑허(魏鳳和) 상장이다.

전략지원군 내 화전군은 지역별로 지휘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7개 기지(基地)와 32개 여단급 부대로 구성돼 인민해방군 내 모든 탄도미사일 전력 운용을 담당한다. 또한 제2포병에서 화전군으로 개편된 이후에는 해군의 전략 잠수함에서 운용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지휘권도 행사하는 등 중국군 내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자랑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3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사일로(지하 격납고) 발사 방식의 DF-5 시리즈와 이동식 발사차량 운용 방식의 DF-31/41 시리즈를 60여 기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실전 배치된 DF-5(CSS-4) 계열은 20여 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동식 발사차량에 탑재 불가능할 만큼 대형이라 지하 격납 시설에서 운용된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이 가운데 10여 기를 다탄두 개별목표 동시 돌입체(MIRV), 즉 다수의 핵탄두가 각기 다른 표적을 향해 유도되는 탄두를 가진 DF-5B로 개량한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에 탑재되는 핵탄두는 4~5Mt급 수준으로 어지간한 광역도시 하나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중·단거리 미사일이 주력

한국 기습용 미사일 600기 실전 배치
DF-5의 후계로 등장해 30~40여 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DF-31(CSS-10)은 1Mt급 핵탄두 1기를 탑재하고 사거리가 8000㎞인 기본형, 150Kt급 핵탄두 3기를 탑재하고 사거리가 1만1200㎞인 개량형 DF-31A, 각각의 핵탄두에 종말 기동 능력을 부여한 DF-31B 등의 변종(variation)이 존재한다. 이들 모두 중국 내륙에서 발사될 경우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이다. 

2012년 처음 식별돼 현재 초기 배치 단계인 것으로 전해진 DF-41(CSS-X-10)은 최대 사거리 1만5000㎞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으며 10개의 핵탄두를 탑재하는 다탄두 핵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10여 기 안팎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MIRV 기술은 물론 종말 단계에서의 회피 기동 능력을 크게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들 ICBM 전력은 9개 유도탄 여단(導彈旅)으로 편성돼 내륙 깊숙한 지역에 배치돼 있다(표 참조). 유사시 해안으로부터 접근하는 미국 공군 및 해군의 파상 공세로부터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들은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전력으로 한국의 안보 상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작다고 볼 수 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부터 살펴볼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의 미사일 부대에는 앞서 언급한 ICBM 부대도 있지만, 주력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부대들이다. 전략지원군 내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부대는 20여 개 여단에 달한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유일하게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나라다. 미국과 러시아는 1987년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INF) 폐기 조약에 따라 500~5500㎞ 사거리의 중거리·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모두 폐기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공중발사핵미사일을 제외하면 핵탄두 탑재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전량 도태시켰다. 하지만 중국은 1960년대 이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꾸준히 개발해왔고, 현재도 이를 대량 보유하면서 지속적인 개량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대규모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것은 대만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사시 한국과 일본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중국이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가장 많이 겨누고 있는 나라는 대만이며, 그다음이 한국, 일본 순이다.

한반도 타격 의사 있다

한국 기습용 미사일 600기 실전 배치

중국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담당하는 북부전구를 지원하는 제51기지 예하에 3개 여단, 대만 지역에 대한 화력 지원을 담당하는 제52기지 예하 1개 여단 등 총 4개 여단을 한국과 일본 담당 부대로 지정해놓았다. 이 가운데 3개 여단, 500~600기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한국을 겨누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백두산 인근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일대에 배치된 제816여단이다. 한반도와 일본을 타격 대상으로 삼은 이 부대는 사거리 600~900㎞의 DF-15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주력으로 해서 최근 DF-21A/C 미사일을 전력화하고 있다. DF-15 미사일은 500~650㎏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90kt급 전술핵탄두 1기를 탑재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이 미사일을 이용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핵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거리가 짧아 한반도까지만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DF-21 시리즈와 같은 신형 미사일로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 시스템 적용 등의 개량을 거쳐 대량으로 배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이 이 미사일 전력으로 한반도를 타격할 의사가 있음을 방증한다. 

제816여단 외에도 한반도를 타격 대상으로 삼은 부대는 더 있다. 산둥(山東)성 라이우(萊蕪)시의 제822여단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의 제810여단이 그것이다. 선양군구와 지난군구가 통합된 북부전구의 미사일 화력 지원 임무를 담당하는 이들 부대는 한반도와 일본을 타격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DF-15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DF-21 계열 중거리 탄도미사일, DF-21D 대함(對艦) 탄도미사일 등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주축으로, 최근에는 사거리 1500㎞급 지대지 순항 미사일 CJ-10 운용도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DF-21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1770~3000㎞급으로 산둥반도에서 발사할 경우 일본 혼슈 지역 대부분을 사정권에 둘 수 있다. 보통은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지만 필요할 경우 200~500kt급 핵탄두를 최대 5기까지 실을 수 있어 언제든지 중거리 핵미사일로 변신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중국은 미군의 서태평양 핵심 거점인 괌을 타격하기 위해 DF-21을 베이스로 사거리를 6000㎞까지 늘린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DF-26을 개발해 동부전구 관할구역 유도탄 여단에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습(奇襲)과 강압(降壓)

한국 기습용 미사일 600기 실전 배치

중국 전략미사일 부대가 보유한 탐지거리 수천㎞의 레이더. [중국 바이두]

중국이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을 가상 적으로 상정해 이처럼 대규모의 탄도미사일 전력을 운용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 정립된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인 군사 혁신을 꾀하면서 ‘정보화조건하국부전쟁(信息化條件下局部戰爭)’이라는 군사전략을 정립했다.  

중국은 미래 전쟁이 단기 속결전 형태가 될 것이며, 이러한 형태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개전 초기에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부어 적의 전쟁 의지와 능력을 말살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정보화조건하국부전쟁의 핵심 방법론으로 ‘기습(奇襲)과 강압(降壓)’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기습은 중국 지도부가 전쟁을 결심하면 즉각 화전군이 나서 적국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을 퍼부어 지휘통신체계를 마비시키는 개념이고, 강압은 적국에 대규모 공습을 가해 적군의 전쟁 수행 의지와 능력을 제거하는 개념이다. 즉, 중국이 한반도를 향해 대규모 탄도미사일을 겨누고 있다는 것은, 유사시 중국이 한반도를 향해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사드 레이더와 같은 고성능 X밴드 레이더의 한반도 배치가 동북아시아의 전략균형을 깨는 행위라고 비난하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자신들은 동북아시아 역내 다른 국가들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을 겨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X밴드 레이더를 운용하고 있다. 중국의 최근 행태는 한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격이다.

현재까지 식별된 중국의 장거리 레이더는 4개로 헤이룽장(黑龍江)성 솽야산(雙鴨山), 신장위구르 자치구 쿠얼러(庫爾勒), 푸젠(福建)성 후이안(惠安), 장시(江西)성 솽강(瀧岡) 등지에서 식별됐다. 중국의 장거리 조기경보 레이더는 1970년대부터 설치된 탐지거리 3000㎞급인데, 위의 4곳에서 미국의 AN/FPS-132 패이브 포스(PAVE PAWS) 레이더와 대단히 유사한 대형 S밴드 또는 X밴드 레이더가 2010년 이후부터 식별되기 시작했다.

장거리 조기경보용으로 활용되는 이들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5500㎞로 알려졌으며, 특히 헤이룽장성에 설치된 레이더는 평시에는 러시아 극동 지역과 알래스카 방향을 감시하지만, 방향 전환이 가능해 언제든 한반도와 일본 전역을 감시할 수 있다. 최근 상업용 위성으로 촬영된 헤이룽장성의 대형 레이더는 평시 감시 방향을 변경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와 일본을 감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일방적 우위

이와 더불어 유사시 한반도를 담당하는 북부군구 예하 부대에 신형 UHF 레이더도 배치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했다. JY-26으로 명명돼 주하이 에어쇼에서 첫선을 보인 이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500㎞ 이상이며, 산둥반도 일대에 배치돼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 레이더로 F-22와 같은 스텔스 전투기도 탐지할 수 있으며, 2013년 군산 기지에 전개된 미 공군 F-22를 탐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요컨대 주변국을 공격하기 위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고성능 장거리 레이더를 각지에 배치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균형을 깨뜨린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에 배치되는 사드는 중국의 일방적 우위로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잡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하겠다.


“중국 전략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

사드 격랑이 드러낸 중국의 한국觀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의

● 한-중을 냉전시기 소련-핀란드 관계로?

● ‘천하세계론’에 따른 ‘대국-소국 관계’ 시각

● “중원에선 왕도, 오랑캐에겐 패도”

● 제1도련선 바깥으로 미국 몰아낼 의도


“중국 전략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
대국(大國)을 자처하는 중국이 한국을 드세게 겁박하고 있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8월 3일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사설은 선전포고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지도자는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 나라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드 배치는 한국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군사적 대치에 끌어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약 충돌이 발발한다면 한국은 가장 먼저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사대(事大)’ ‘조공(朝貢)’ 같은 불쾌한 낱말들이 회자됐다. 중국은 도대체 한국을 어떻게 보기에 이렇듯 안하무인 격으로 날뛰는 걸까.   

“天下에는 바깥이 없다”

‘만방래조(萬邦來朝, 각지의 국가가 조공하러 왔다).’ 2014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정상회의 때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최한 환영연회를 설명하며 런민일보가 사용한 표현이다. 조공 체계(tribute system)는 중국이 조공을 받고 이웃나라의 권력을 보장해주던 때 형성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서구학계에서도 조공 체계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 연구의 상당수는 중국 정부나 민간이 지원한 것이다. “조공 질서가 주변국에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인 예가 많다. 조공 체계가 무역 형태였으며 중국이 하사한 물품이 이웃 나라가 조공한 물품 규모보다 컸다는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의 발전을 돕겠다면서 막대한 자금을 출자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세운 것도 경제적 영향력 강화와 무관치 않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때 중국 측 협상단에 조공무역을 전공한 역사학자가 포함되기도 했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안심시킨다는 안린(安隣), 풍요롭게 해준다는 부린(富隣), 화목하게 지낸다는 목린(睦隣)의 ‘삼린 정책’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대외정책은 ‘천하세계론’에 기대어 있다. 천하세계론은 세계(世界)는 있으되 천하(天下)가 없어 대결과 충돌이 일어난다고 본다.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달리 천하에는 바깥이 없어 타자도 동반자, 참여자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듯 ‘미국의 패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 천하는 가혹하지 않으며 평화로울 것’이라는 인식 아래 신(新)중화 질서의 이념적 토대를 쌓고 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중국의 네오콘’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왕도’와 ‘패도’를 구분한다. 왕도는 이웃을 강압하지 않으나 패도는 주변을 억압한다. 미국이 서구에는 왕도, 비(非)서구에는 패도를 추구하므로 미국에 맞서려면 중국도 패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중화 질서에서 천자(天子)는 중원에선 왕도, 오랑캐에겐 패도를 추구했다.  

지역 패권 추구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부터 중국이 ‘대국-소국 관계’로 이웃나라를 내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평화굴기가 아닌 패권의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엔 하급 간부까지 대놓고 대국, 소국 운운한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7월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자 베이징은 대국의 자존심이 상한 것으로 여겼다. 황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를 해안선의 중간선으로 하자는 한국의 주장에 인구 비율대로 정하자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도 ‘대국주의’가 깔려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목표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견해의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핀란드화는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 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것이다. 특정 국가가 자주독립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정책에선 이웃한 대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옛 소련은 핀란드의 내정에도 일부 개입했다.

한란(悍然). 중국어 사전에 ‘서슴없이,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강경하게, 무지막지하게’라고 풀이된 단어다. 중국 외교부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의 첫머리에 이 표현을 썼다. 한국 언론은 북한을 질타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했으나, 다른 나라를 향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처럼 무례한 표현을 쓰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베이징의 대외정책에 반발한 적이 거의 없다.  

핀란드는 ‘핀란드화’를 통해 주권을 지켜내면서 소련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았으나 소련에 동조했다. 자국의 지도자가 소련 공산당의 정치국원 격이던 동유럽 일부 국가는 핀란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서방세계에는 악몽 같은 일이 동유럽 국가에는 꿈같은 일이었다. 

에드윈 풀러 헤리티지재단 설립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핀란드화와 관련해,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느냐다. 개인의 이익, 한국의 국익, 한국인의 미래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에 위치하거나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이 좋다고 믿는가. 아니면 한국인이 미국과 60년 넘게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여기는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오래전의 조공 관계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14억 인구의 중국에 한국은 작은 지방일 뿐이다.”


한반도 핀란드화는 ‘필요조건’

“중국 전략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

천영우 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동아일보’ 8월 11일자 ‘사드가 싫다면 북핵 포기시키라’ 제하 칼럼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위세와 겁박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로 남을 것이냐, 대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우리의 주권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고 중국의 사실상 속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냐의 선택이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해왔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3각 구도에서 한국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아직은 미국의 군사력과 격차가 상당하기에 비대칭 전력(핵무기, 탄도미사일 등) 확충에 힘써왔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중국이 2020년까지 제1도련선(그림 참조) 안에서 미국 항공모함과 전투기의 작전을 억제하는 군사적 수단을 확보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1도련선 바깥으로 미국을 몰아내는 게 베이징의 1차 목표라는 것이다. 이른바 1도련선은 한반도-일본 서부-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잇는 선이다. 한국의 서해, 남해, 동해가 제1도련선 안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Anti-Access and Area Denial)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한국은 베이징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미군기지가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의 결정적 장애물이다. 말라카 및 대만해협 제해권을 미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대만과의 통일 전쟁 수행 시에도 미군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 중국의 패권 전략에서 한반도의 핀란드화나 중립화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공식 견해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핵 억지력에 타격을 준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탐지거리 2000㎞의 AN/TPY-2(엑스밴드) 레이더가 중국이 발사한 미사일을 전방 배치 모드로 탐지·식별·추적한 후 알래스카 등에 배치된 사드 기지에 정보를 줘 종말 단계에 요격하는 게 수월해진다. 

한반도라는 ‘특별한’ 위치 덕분에 탄두의 뒷부분을 관찰하는 것도 중국 미사일 요격에 도움이 된다. 탄두가 원추형인 터라 뒤쪽에서 포착하면 더 넓은 단면이 레이더에 나타난다. 또한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가 이지스함 발사 요격미사일, PAC-3 등과 연동되면 미군기지와 미군 항공모함 전단에 대한 중국 미사일의 억지력도 훼손된다.  

지정학적 딜레마

한국이 가진 딜레마는,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북핵 문제 해결 및 통일과 관련해 베이징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이 밀착할 수 있으며,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일일 수 있다.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야기될 피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에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가 요동친 시기’로 기록될 격변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고립주의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반미친중(反美親中) 성향의 정치 세력이 한국에서 집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한국과 북한이 엮여 발언권을 키우기도 어렵다. 사드 파동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충돌의 신호탄 격이다. 새로 난 길을 걷게 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단일 패권국가의 등장을 막는 것이다. 아시아의 단일 패권국가는 세계 패권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이 자존과 번영을 지키려면 역내에서 단일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 단일 패권국가가 등장했을 때 한반도는 속국이거나 변방이었다. 아시아에서 한미의 전략적 이해가 동일한 것이다.”(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 통일이 이뤄질 조건이 갖춰져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어려울 것이다. 두 나라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제가끔 의심해서다.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간에 벌어지는 세계 정치 차원의 전략 게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게 중요하다. 양자택일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중국까지 품에 안아야 한다.”(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한미동맹은 사활 걸린 문제”라고 中에 선 그어야

윤영관 前 외교장관의 ‘對中 외교’ 조언


● ‘小國이어서 길들이는 것이냐’고 따져라

● 美엔 ‘中 포위에 韓 끌어들이지 말라’ 요구해야

● 미-중 양자택일? 해법은 ‘중첩외교’

● ‘中 보복’ 불안 부추긴 언론, 정치인 낯뜨겁다

● 러시아, 동남아, 인도 등 ‘종축’ 외교 공간 넓혀야


“한미동맹은 사활 걸린 문제”라고 中에 선 그어야

  • [지호영 기자] 

    중국은 글로벌 차원에서는 아닐지라도 지역 차원에서, 즉 자국이 위치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중국은 특히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기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금융위기 이후 베이징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공세 외교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불러왔다.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은 거대한 장기판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의 권력 게임이다. 그런 장기판에서 졸(卒) 노릇만 할 수는 없다. 8월 6일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을 만나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들었다.

  • “1차대전 前 유럽과 비슷”

    ▼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지정학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우리는 어떤 국제 질서 속에서 살게 될까.  

    “지정학 변수가 대단히 중요해졌다. 2008년을 주목해야 한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만큼 의미 있는 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중국이 어떻게 해석했느냐가 특히 중요한데, 베이징은 ‘미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결정적 징후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설 때’라고 생각한 듯하다. 2009년 말부터 중국이 공세적 대외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 중국이 기존 체제의 참여자가 아닌 도전자의 길을 걷는다?

    “동아시아에서만큼은 그렇게 보인다. 상승 대국(현재는 중국)은 역사적으로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성취한 것에 걸맞게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확대하려 했다. 기존 대국(현재는 미국)이 상승 대국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면 기존 대국의 영향력이 약화하므로 권력 게임에서 기존 대국은 상승 대국을 견제하게 마련이다. 중국의 영향력 확장 욕구와 그것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맞닥뜨리는 게 현재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대결이다.”

    윤 전 장관은 “영국(기존 대국), 독일(상승 대국)을 중심으로 한 권력 정치가 거세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과 오늘날의 동아시아가 유사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08년 금융위기 후 8년 만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사태가 터졌다. ‘트럼프 현상’도 나타났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상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글로벌 경제성장’이 한계에 도달해 세계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단계로 전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념 아래 세계경제가 성장하면서 FTA(자유무역협정) 등 통합 지향적 사고가 정치적 갈등을 완화했는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념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민족주의적, 반(反)세계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로 좁혀 보면 중국은 최소한 이 지역에서만큼은 대표 주자로 등장하려는 강한 열망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그것에 대응해 기존의 동맹 시스템을 강화하려고 한다. 상승 대국과 기존 대국의 엇갈린 목표가 부딪치는 상황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결정되면서 2008년 이후 강화된 지정학적 대결 추세가 증폭됐다.”

    사드 배치의 손익

    ▼ 사드 배치가 통일을 포함한 한국의 외교 목표 달성에 어떠한 손익(損益)을 가져올 것으로 보나. 

    “단기 안보 차원에서는 이득이 있다.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축적하고 있다. 핵실험도 4차례나 했다. 따라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어 시스템을 중층으로 구축하는 것은 안보적으로 이득이다. 또한 한국 처지에서 한미동맹은 안보를 지켜주는 도구다. 동맹국인 미국이 주한 미군기지 보호라든지, 어떠한 필요성을 느껴 자기들 돈으로 사드를 도입하겠다니 거절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중장기 외교 목표와 관련해서는 손익을 구분해 따져봐야 한다. 한국 외교의 중장기 목표는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 아닌가. 중장기 전략을 통해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을 꾸준히 추진한다고 가정할 때 사드 배치가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국제적 협력, 특히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부작용을 일으키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는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국이 그간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북한은 중국의 그러한 태도를 활용했다.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게 하는 쪽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활용하는 게 좋았다는 생각이지만,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만큼 이제는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만 배치한다는 식으로 조건을 붙이는 게 바람직하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2월 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없다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 중국은 사드 배치가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한국이 조응한 것으로 해석한 듯하다. 사드 배치가 미국에 주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가. 

    “미국의 세계 전략은 냉전 때나 냉전 이후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냉전 시기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를 통해 소련이라는 대륙 세력의 지정학적 확장을 억제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통해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았다. 워싱턴은 냉전 이후에도 이 같은 전략을 유지해왔고, 현재도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도요토미의 征明假道

    ▼ 일본은 미국의 그런 전략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아니 25년이 다 돼간다. 그 기간,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 혹은 일종의 두려움이 증폭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안보를 확보할지와 관련해 미국과의 밀착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정부 출범 후 3년간 워싱턴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론이 회자됐다. 대통령이 중국 전승기념일에 톈안먼 망루에도 올랐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와 정반대다. 한국의 대외 정책이 즉흥적이면서 중장기 전략이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요한 질문이다. 외교 전략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장기적 외교 목표는 있는지 묻는 것 아닌가. 외교 전략에 따라 현안에 대응하는지, 아니면 아무런 전략도 없이 그때그때 대응하고 그치는지를 물은 것인데, 외교 목표 달성에 어떠한 손익이 있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바깥에서 보기에 ‘아, 뭔가 일관성이 있구나’ ‘장기 목표를 갖고 한 반향으로 적절하게 대응하는구나’ 싶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 나름대로 자율적 외교 공간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장기적 외교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장기 목표의 핵심은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 아닌가. 그런데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것도 그렇고, 핵 개발에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고 전략 없이 움직이는 듯하다. 야당이 이 같은 전략 부재나 미흡한 정책 결정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붙들고 늘어져야 하는데, 제대로 부각하지 못하고 있다.  

    첫 질문이 지정학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외교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깊이 인식한 바탕 위에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가 반도(半島)인 터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장소가 되거나 해양세력이 대륙을 침범할 때 쓰는 길이 되는 측면이 있다.”

    ▼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인 159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요구할 때가 떠오른다.    

    “바로 그 얘기를 하는 거다. 왜가 조선에 정명가도를 요구한 것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도 똑같다. 1945년 분단되는 상황, 1950년 전쟁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결정적 사건이 모두 지정학과 관련됐다. 마오쩌둥이 6·25 때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명분으로 개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돌고래처럼 명민하게

    “한미동맹은 사활 걸린 문제”라고 中에 선 그어야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이 북한 주민의 농사를 돕고 있다. 중국에 6·25는 해양세력을 막는 ‘예방 전쟁’이었다. [동아일보] 

    중국은 6·25전쟁을 ‘조선전쟁’이라고 칭하는데, 때로는 2단계로 나눠 1950년 10월 중국군이 참전하기 전까지를 ‘조선전쟁’, 그 이후를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6·25전쟁은 중국 처지에서 해양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일종의 ‘예방 전쟁’이었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반도가 통일돼 미군이 압록강, 두만강까지 올라와 자국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절대로 피해야겠다는 게 마오의 생각이었고, 현재 중국의 핵심 지도자들 생각도 그와 같다는 얘기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반발도 비슷한 맥락이다.

    앞서 말했듯 동아시아에서 특정 국가가 지배적 패권을 갖는 것을 막겠다는 미국의 전략과, 최소한 동아시아에서만큼은 영향력을 갖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충돌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분명하게 각인하고 양쪽을 다뤄야만 우리의 자율적 외교 공간이 생겨난다.

    북한 문제를 풀고 통일을 이뤄내려면 첫째, 대국 간의 세력 게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문제를 세력 경쟁으로부터 분리해내야 한다. 둘째, 양쪽 모두에 선을 딱 긋고 얘기해야 한다. 중국에는 ‘한미동맹을 약화하려 하지 말라, 북한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미국에는 ‘중국 포위 전략의 연합 전선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중국 국가주석이나 미국 대통령 등 핵심 지도자에게 우리의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한 테두리 안에서 우리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

    ▼ 고래 싸움터에서 ‘새우 의식’을 버리고 ‘돌고래처럼 명민하게’ 움직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중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이 한반도와 일본, 대만을 겨냥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의 레이더가 한반도 상공을 손금 보듯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반발 강도는 지나친 것 같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사드 배치’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그렇게 생각할 리 없다. 베이징은 한국이 자연스럽게 미국, 일본이 함께 하는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또한 중간지대에 남아 있길 바라던 한국이 해양세력 쪽에 동참하면서 전략적 균형이 중국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본다. 중국은 한반도가 해양세력의 다리가 되는 것은 물론 연합 세력이 중국을 포위하는 고리가 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 현재의 미국-중국 관계가 120~140년 전 영국-독일의 전례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19세기 말 빌헬름 2세의 독일처럼 기존 체제의 참여자가 아니라 기존 체제를 깨뜨리려는 도전자가 되려는 듯 보인다. 미국 또한 중국을 기존 체제의 파트너가 아닌,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향후 미중 관계를 어떻게 내다보나. 중국과 미국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 


    미-중 고위급 채널 90개

    “거의 모든 국제정치학자의 관심사지만 답변이 서로 엇갈리고 정답은 없는, 열려 있는 질문이다. 변수가 여럿이라고 본다. 세계경제가 호황으로 가는지, 불황으로 가는지, 계속 침체되는지, 다시 활성화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경제가 좋아질 경우엔 세계화 현상이 심화하고 협력적 분위기가 강화되는 쪽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반대로 경제가 지금처럼 나쁘면 내셔널리즘, 고립주의가 강화될 소지가 크다. 중국이나 미국의 국내 정치 변수, 예를 들어 미국에서 어떤 인물이 리더로 등장하는지도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 내 정치 세력의 역학구도는 또 다른 변수다. 역외 변수로는 테러리즘, 난민 문제 등이 있다.  

    미·중이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긍정적 시나리오다. 미·중 관계는 협력과 경쟁의 측면을 함께 가졌다. 지속적 협력은 협력·경쟁의 측면 중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세계경제가 좋아지면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현재 미·중 간 고위급 소통 채널이 90개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보 영역에서는 경쟁하지만 다른 이슈로는 협력해왔고, 그러한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양국 모두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낙관론자들은 상호 의존도 심화에 따라 미중 관계에서 협력이 강화되리라고 보는데,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부정적 시나리오는,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독일이라는 상승 대국과 기존의 제국인 영국, 두 세력을 중심으로 유럽 질서가 양 진영으로 나뉘고, 갈등과 대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세계대전으로 폭발한 것처럼 미·중이 충돌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중국 경제가 경착륙해 성장이 과거처럼 이뤄지지 않고 정치적 자유마저 지금처럼 제한받는 상황이라면 중국 국민의 불만을 돌리는 수단으로 공세적 대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19세기 패권국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쇠퇴한 반면 독일은 1871년 통일 이후 국력이 확대됐다. 패권 전반기에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의 신기술 등을 바탕으로 산업의 우위를 활용한 국제무역을 통해 국부를 창출했으나, 패권 후반기에 이르러 자본을 해외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는 경제로 변모했다. 산업 경제에서 투자 경제로 이행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패권국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다.

    3차례 영토 분할된 폴란드

    ▼ 사드 배치와 그에 대한 중국의 거센 반발은 향후 동아시아에서 협력보다는 갈등, 다시 말해 미·중의 양극화가 촉진될 기미로 읽힌다.    

    “2008년 이후로는 뭐라고 할까, 미·중 관계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우는 추세가 나타나는 듯하다. 미·중 관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인사로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밀어내려고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두 나라가 군사적으로 충돌할 것이라고 본다. 

    학자로서 중국에 가서 얘기할 때,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빌헬름 2세가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해 역설적으로 독일을 포위하는 연합 전선을 만들게 한 경험을 중국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중국이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또는 절대 안보의 차원에서만 현안에 접근하면 주변국이 두려워할 것이며 종국엔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친다는 얘기를 해준 것이다.”  

    ‘미·중 충돌 불가피론자’인 미어샤이머 교수는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두 나라로 한국과 폴란드를 꼽는다. 폴란드는 3차례 영토가 분할돼 떨어져 나갔으며 123년 동안 주권을 잃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국이 ‘안보의 미국’과 ‘경제의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지 결정할 시기가 다가온다고 본다.   

    ▼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고립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껏 얘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릴 것 같다.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길 것 같다. 미국 학자들의 얘기대로라면 그는 국제정치나 외교 분야에 안목이 없는 사람이다. 단기적 계산, 다시 말해 이득이 얼마고, 손해가 얼마인지 따져 계산하는 방식으로 모든 일을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시도다. 고립주의를 내걸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빠져나가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약화하면 한국과 일본은 핵 옵션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한층 불확실하고 불안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다뤄야 하는 한국 처지에선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방위비 분담을 어떻게 할지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큰 맥락에서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너희도 들여다보지 않나”

    “한미동맹은 사활 걸린 문제”라고 中에 선 그어야

    지난해 9월 3일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동아일보]

    ▼ 중국 일각에서 “한국은 반드시 보복당한다”는 둥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인다. 중국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도 아니다. 종국엔 한미동맹의 강화, 심화 외엔 해법이 없는 것 아닌가.  



    “정부, 정치 엘리트, 언론, 지식인이 중국에 당당해야 한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졌어도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옳지 않나. 그간 중국의 정책 우선순위가 한반도 비핵화에 있지 않았다. 그동안 뭘 했느냐고 중국에 따져야 한다.  

    일본에도 X-밴드 레이더 2기가 있고 인공위성, 함정 등을 통해 중국 내부는 이미 샅샅이 모니터링이 돼왔다. 한국에 하나 더 배치한다고 중국의 안보가 과연 그처럼 치명적 타격을 입는지 물어야 한다. 덧붙여 ‘너희들도 레이더로 한반도를 들여다보지 않느냐’고 따져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압박한다면 우리를 소국이라 여기고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다, 다른 대국과는 다르다고 해놓고 왜 똑같은 행태를 보이느냐’고 따져야 한다.”

    ▼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베팅할 것이냐’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서 한미동맹밖에 답이 없는 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 표현이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라면 아직은 양자택일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미동맹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기반 위에서 중국까지 품에 안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강조하는 ‘중첩 외교’다. 그래야만 통일이 가능하다. 양자택일? 아직은 그럴 필요 없다.”  

    ▼ 센카쿠 열도에서 중일이 충돌하고 미국이 미일동맹에 따라 개입해 미·중 간 충돌이 벌어지면 양자택일을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우발적 사건이 벌어진 후 소통이 안 돼 통제 불능이 벌어지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소통을 강화하고 의심을 해소할 다자 안보 틀이 필요한 까닭이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 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표현이다. 특정 국가가 자주 독립을 유지하면서 대외 정책에서 이웃한 대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옛 소련은 핀란드의 내정에도 일부 개입했다. 냉전 시기 미국의 대외 정책 전문가들은 일본과 서유럽 일부 국가가 핀란드화해 반(反)소련 정책을 취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 중국은 한반도와 영토를 맞대고 있다. 이른바 중국의 제1도련선 내에 서해와 남해는 물론 동해도 위치한다. 한국의 바다가 중국의 내해 격이 되는 것이다. 일부에선 한반도의 핀란드화를 우려한다.  

    “반대도 안에서 해야지…”

    “한미동맹은 사활 걸린 문제”라고 中에 선 그어야

    “동맹을 기반으로 한 중첩 외교가 핀란드화를 방지할 외교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강조했듯 중국에는 한미동맹을 약화하려 하지 말라, 미국에는 한국을 중국 포위를 위한 축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고 분명히 밝히고 그때그때 외교 현안에 당당하게 대응하면 핀란드화를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미국과 중국에 선을 그어주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니 핀란드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그가 제언한 ‘동맹에 기초한 중첩 외교 전략’은 한미동맹의 유지와 발전, 그것을 통한 일본과의 협력 확보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심화해나가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바람직한 대미·대중외교 방안으로서 그가 설명한 내용이 ‘동맹에 기초한 중첩 외교 전략’의 각론이다. 

    ▼ 한국의 일부 정치인, 언론 등이 ‘중국이 보복할 것이다’ ‘보복하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불안을 부추긴다.  

    “낯뜨거운 측면이 있다. 의연해야 한다. 어떤 기사를 보면 중국이 이러이러한 보복을 할 것이라면서 아주 상세하고 친절하게 보도하던데, 중국에 ‘당신네들이 선택할 옵션이 이런저런 게 있으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일러주는 느낌이 든다. 신중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실제로는 보복할 생각이 없다가도 한국의 반응을 보고 한번 해볼까 할 수도 있는 문제다. 중국은 우리를 다 들여다보고 분석한다.”  

    ▼ 한국의 국내 정치 이슈로 전도된 듯한 느낌도 든다.    

    “이렇듯 지리멸렬한 모습을 외국 사람들이 보는 게 싫더라. 정치 지도자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잘 좀 했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은 주변의 모든 나라가 우리를 손바닥 위에 놓고 들여다본다는 점을 의식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는데, 아닌 것 같다.”

    ▼ 한국 인사들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에 사드 배치 반대 기고를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더라.  

    “많이 아쉽다. 반대하더라도 내부에서 해야지. 중국은 심리전에 아주 능한데, 순진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 중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 노력해왔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7월 서울대 강연에서 정유재란 때 이순신-진린 연합군이 왜군을 무찌른 일화를 소개했는데,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차원을 넘어서는 얘기로 들렸다.


    “미국 쇠퇴, 필연 아니다”

    “국가 간 관계는 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적 협력과 갈등이 오락가락한다. 정치적 갈등과 협력은 상부구조다. 상부구조 아래에는 사회, 문화, 경제 등에서의 교류가 있다. 정치, 군사 부문에서도 협력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게끔 하부구조를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중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데, 말뿐이지 북한 문제 등을 놓고 전략적으로 협력한 게 거의 없다. 단기적으로 뭘 하기보다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단계까지 이르도록 사회, 경제, 문화 협력을 다지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순신의 노량해전을 중국에서는 진린이 왜군을 무찌른 전쟁으로 규정한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명(明)군이 출병한 것도 예방 전쟁의 성격을 띤다.

    ▼ 동아시아의 권력 구도를 ‘명말청초(明末淸初)’에 빗대면서 병자호란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 주장에 썩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의견은 일견 일리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국가의 권력은 경제력이 떠받쳐줘야 한다. 경제력의 기반에 과학, 기술, 산업, 교육 등이 있는데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의 경쟁력을 따라잡을 것인가.  

    아직은 미국이 대단하다고 본다. 개개인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자유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이 미국의 강점이다. 미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등의 가치는 아직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 과학기술 발전, 신(新)산업 창출의 기반인 대학 및 고등교육도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탁월하다. 경제력 차원에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상승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있다. 중국 경제의 상승이 무조건 보장된 게 아니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상승이 필연적 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 편승론, 중국 편승론은 공히 합리적 외교 전략이 아니다. 한국처럼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득을 보는 나라가 세계에 널렸다. 동남아시아가 그렇고, 유럽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가장 먼저 밝힌 나라가 미국의 맹방 영국 아닌가.

    왜 한국만 미국, 중국 중 하나를 빨리 못 골라 아우성인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자 안보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 한미동맹과 상호보완적으로 다자 안보 틀을 꾸려나갈 수 있다.”  

    “종축 외교 강화해야”

    ▼ 2010년 9월 동중국해 영유권 갈등 때 중국은 일본과의 각료급 교류를 중단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대일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경제 제재도 활용했다. 일본은 이 사건 이후 공장을 아세안, 인도 지역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등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시도했으며 희토류 대체 기술도 개발했다. 일각에선 한국도 동남아, 인도 등으로 리밸런싱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3위인데도 외교는 미국, 중국, 일본, 북한에만 매몰돼 있다. 지도를 놓고 보면 횡축만이 외교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가 지났다. 공간을 넓혀야 한다. 러시아, 동남아, 인도 등의 종축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환경, 금융, 인권, 자원 등 글로벌 외교와 관련해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횡축, 종축, 글로벌 외교의 ‘3축 외교’, 특히 종축 외교를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뿐 아니라 특정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 통일은 요원한 일이….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 통일이 이뤄질 조건이 갖춰져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어려울 것이다. 두 나라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제가끔 의심해서다. 앞서 말했듯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간에 벌어지는 세계 정치 차원의 전략 게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게 필요하고 미·중 간의 갈등을 완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어떻게 완충을 시켜요?’라는 반문이 있을 것이다. 그 얘기도 일견 일리는 있는데, 우리의 역할이 없는 게 아니다. 동아시아 국제정치가 미·중 중심으로 양극화하는 것은 결코 한국에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을 막는 데 활용할 한 가지 방편이 한·중·일 3국 협력 메커니즘이다. 1999년 아세안+3(한중일) 회의에서 비롯됐는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 사실상 중단됐다.”

    “구상은 하는데 실천 안 해”

    ▼ 한·중·일 협력 메커니즘이 중단된 것은 역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 탓이라고도 하겠다.

    “역사 및 강제위안부 문제로 어려웠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일리는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한국 처지에는 어떻게든 중국과 일본을 테이블로 끌어내 한·중·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통일과 관련해 국제 협력을 가져올 수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갈등과 경쟁을 약화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핵심이 한·중·일 협력이라고 생각하는데, 현 정부 사람들이 구상은 하는데 실천을 안 한다. 아쉬운 일이다.”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사정이 비슷하다. 물론 크림반도 병합 등으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뤄진 탓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만 돌리면 책임질 일은 없겠으나, 그렇게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