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 명당순례_09

醉月 2014. 11. 18. 18:31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기도발 좋은 한국 山神신앙의 메카           

한반도 산신각 중에 으뜸… 남쪽 연천봉 맥이 떨어진 곳에 잡아


나의 종교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산신령 신앙이다. 이제까지 내가 태어나서 사랑한 대상은 산이다. 어렸을 때부터 산에서 살고 싶은 염원이 있었다. 20대부터는 속세를 떠나서 산속에서 살고 싶었다.



	[조용헌 박사의 명당순례 (10) |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 계룡산 정상 장군봉에서 왼쪽으로 휘감고 내려온 능선이 신원사를 살짝 감싸더니 바로 옆에 있는 중악단에서 멈춘 모습이 그대로 들어온다. 중악단 입구에서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 참나무 껍질을 다듬은 너와지붕을 올리고, 방바닥은 넓적한 방돌을 구해서 구들장을 잘 놓은 다음, 아궁이에 장작을 때면 구들장이 뜨뜻해진다. 방안엔 소나무를 다듬은 작은 시렁을 질러 놓고 여기에다 ‘개운조사능엄경’(開雲祖師楞嚴經), ‘고문진보’(古文眞寶), ‘장자’(莊子)를 얹어 놓는다.


그런 다음 흙냄새, 장작냄새 나는 방 한쪽 구석에는 꿀 한 단지, 그리고 산에서 캔 더덕에 소주를 부어 만든 더덕주 한 병을 갖추어 놓는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안개가 끼면 안개 속을 헤매고, 저녁노을이 지면 마당 앞에 자그만 의자를 갖다 놓고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싶었다. 집 뒤로는 수백 년 된 적송이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고, 뒷산으로는 울퉁불퉁 솟은 바위절벽이 직립해 있는 광경을 꿈꾸었다.


좌청룡은 길고 힘차게 내려와 멀리 앞산까지 힘이 들어가 있고, 우백호 자락에는 작은 바위봉이 문필봉을 이루어 나를 즐겁게 해주는 터에 토굴을 짓고, 달이 뜨는 저녁에는 달빛을 맞으면서 수만 년 전부터 내려오는 이 땅의 터줏대감인 산신령(山神靈)에게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수만 년의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 태초의 우주적 흐름과 한 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산과 하나가 되어 우주의 영혼과 합치되고 싶었다. 내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고, 그러면 나도 산신령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세속의 업장이 두터워 아직도 산에서 살지 못하고 시장바닥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신발이 다 닳도록 바쁘게 산다. 무엇이 그리 신발이 다 닳도록 바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이 나라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도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 온다. 나라의 인물이 죽으면 산신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 한민족의 신앙이었다. 이 국토를 사랑했던 대감들이 죽으면 산신이 된다. 산신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공부하러 오는 후배들에게 격려해 준다. ‘너도 어서 공부를 하거라!’ 하고 말이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도 자기가 왕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땅의 여러 명산의 산신령들이 도와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산신에게 고마워했다.


신라도 그랬지만 고려 왕건이 지냈던 팔관회(八關會)는 이 땅의 산신령들에게 지내는 기도이자 제사이다.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선도(仙道)를 수련했던 이 땅의 수많은 선배 도인들도 모두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공부를 하려면 먼저 명산을 참배하며 산신 기도를 했던 것이다. 이 선배 산신들의 협조와 도움을 받아야만 공부의 본론에 진입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의 10대 명산, 또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다고 여겨지는 산에 가서 산신기도를 드렸다.


왜 한국은 산신기도인가? 여러 가지 기도가 있지만 산신기도가 가장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다. 왜 그런가? 전 국토의 7할이 산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7할이 산으로 된 나라는 한국이다. 물론 네팔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들도 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산이 많지는 않다. 해발 1,000m 내외 높이의 산이 인간 살기에 좋다. 해발 2,500m가 넘어가면 인간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한국은 1,000m급의 산들이 주종을 이룬다. 게다가 사계절이 있어서 약초도 많고 야채와 나물도 많다. 인간이 산에서 살 수 있는 산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한국의 산들은 대부분 화강암이 돌출되어 있다. 화강암이 돌출되어 있어야 기도발이 잘 받는다. 화강암 속에는 철분과 광물질이 있어서 지자기(地磁氣)가 강력하게 흐른다. 이 지자기를 기도드리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받는다. 토산보다는 바위로 이루어진 암산에서 기도발이 잘 받는다.


한국은 산신기도 드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지형을 가진 나라다. 산신기도를 드리면 비몽사몽간에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호랑이는 산신의 심부름꾼이다.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호랑이가 산신 또는 심부름꾼으로 박혀 있다. 수만 년간 호랑이를 산의 왕으로 인식한 탓이다. 산신은 때로 흰 수염이 난 할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도를 열심히 드리면 약초를 건네주기도 하고, 그 사람의 막힌 경락을 뚫어 주기도 하고, 자기 일신상의 애로사항을 풀어 주기도 하고, 공부의 차원을 한 단계 점프시켜 주기도 한다. 이건 기도를 해보면 안다.


이집트의 왕자로 살다가 대책 없이 광야로 나간 모세가 들어간 산이 시내산이다. 그가 시내산에서 받은 메시지가 십계(十戒) 아닌가. 이 십계가 이스라엘 민족의 헌법이 되었지만, 그 십계는 시내산의 산신령이 준 것으로 해석된다. 유대교의 가장 밑바탕에는 시내산의 산신령이 있다. 한국만 산신령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단 그 산신령의 호칭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른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용헌 박사의 명당순례 (10) |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 1 조선시대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중악단.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조선시대 상악·중악·하악 3단 중 한 곳
조선시대에는 세 군데의 산신숭배단(壇)이 있었다. 국가에서 설치한 산신령 제단이다. 상악단(上嶽壇), 중악단(中嶽壇), 하악단(下嶽壇)이 그것이다. 상악단은 묘향산에 있었다고 한다. 중악단은 계룡산, 그리고 하악단은 지리산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계룡산의 중악단뿐이다. 묘향산의 상악단은 어디에 있었을까? 가보지 못해서 알 수 없다.


구전에 의하면 경허선사의 제자인 수월(水月) 스님이 만주로 가기 전에 묘향산에서 1,000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경허선사가 불가로 출가해서 깨닫고 보니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뿌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제자인 수월에게 단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왜 묘향산에서 기도했는가 하면 묘향산에 단군굴(檀君窟)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의 유적일 것이다. 단군굴에서 1,000일 기도를 마치고 수월 스님은 만주에 가서 오가는 행인들에게 짚신을 삼아 주기도 했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수월이 단군굴에서 천일기도를 드릴 때 보현사(普賢寺)에 나이 어린 사미승을 한 명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장기간 기도를 하려면 옆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는 동자승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수월 옆에서 시봉을 해주던 사미승이 동인 스님이라는 분이다. 이 동인이 광복 이후에는 남쪽으로 내려와 밀양 표충사가 있는 재약산(載藥山)에서 토굴을 짓고 살았는데, 1970년대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동인 스님으로부터 전해진 단군의 맥이 지금까지도 그 제자에 의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상악단은 아마도 이 단군굴이 있는 주변 어딘가에 있었지 않았을까? 지리산 하악단은 어디에 있었을까? 노고단 자락 밑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화엄사 근처에 있었지 않았을까.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 기도처는 쌍계사 뒷길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나타나는 불일암(佛日庵)이다. 불일암 좌우로는 청학봉과 백학봉이 감싸고 있어서 기도처로 좋다. 영신대(靈神臺)도 산신기도처로서 이름난 곳이다. 그런가하면 1,5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 잡은 지리산 최고 높은 위치의 고찰인 법계사도 좋다. 법계사는 겨울에 남극노인성(老人星)을 관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에 위치했다.


중악단은 조선왕실의 신앙적 의지처
계룡산 중악단은 신원사 옆에 있다. 계룡산의 연천봉(連天峰) 맥이 한 자락 끝으로 떨어진 곳이다. 계룡산은 동서남북에 모두 기도처가 있다. 그중에서도 남쪽으로 바위맥이 강하게 내려온다. 계룡산은 남쪽 측면이 가장 기가 강하게 온다. 중악단은 이 남쪽 사이드이다. 중악단의 산신령은 그 상호가 특이하다. 보통 산신령의 모습이 아니다.



	[조용헌 박사의 명당순례 (10) |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 2 한 여성이 중악단 산신에게 간절히 기도 올리고 있다. 3 계룡산 중악단 바로 옆에 신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임금님 옷을 입고 있다. 군왕의 모습이다. 구한말에 명성황후가 여기에 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산신령 모습이 임금님처럼 생겼다. 한반도에 있는 수많은 산신각 중에서 단연 으뜸이 중악단의 산신령이다. 왕실에서 모셨기 때문이다.


구전에 의하면 민비가 중악단에서 기도하다가 태몽을 꾸었는데, 그 태몽을 꾸고 임신한 인물이 순종이라고 한다. 나라가 혼란하고 강대국들이 나라를 집어 먹으려고 하던 어수선한 시대에, 여자인 명성황후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기도처는 중악단이다. 특히 계룡산은 요주의 산이기도 했다. 이씨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롭게 들어서는 정씨 왕조, 즉 정도령이 이 계룡산에서 나온다는 풍수도참이 전해져 온 탓이다. 정감록의 중심지역이 계룡산이다. 따라서 조선왕실에서는 이 계룡산을 요시찰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악단은 조선왕실의 신앙적 의지처이기도 했던 것이다. 왕건도 명산의 산신령한테 빌었고, 조선왕조도 마지막이 되니까 계룡산 산신령에게 빌었다. 중악단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운명을 쥐고 있었던 산신령이기도 하다.


불교 사찰에서 산신각은 대웅전보다 높은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새로 절을 세울 때도 제일 먼저 산신각을 세운다. 산신을 우대한다는 의미에서다. 산신을 먼저 모셔놓아야만 불사가 순조롭다. 산신을 무시하면 불사가 잘 안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부처님 모신 대웅전보다 먼저 산신각을 짓는 것이다. 기도할 때도 산신각에서 하면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고 한다. 산신각 터는 통상 바위맥이 세게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 잡으므로 기도발이 잘 받을 수밖에 없다. 대신 산신각에서 효과를 본 사람은 반드시 산신에 보답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아쉬울 때는 죽을 둥 살 둥 기도하다가 볼 일 본 다음에 모른 체하면 산신의 보복이 있다는 것이다. 산신기도를 해서 효험 본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산신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산왕대신(山王大神)’을 연속해서 부르면 된다. 하루에 약 3차례 1시간가량 정해 놓고 산신각에 들어가 ‘산왕대신’을 소리 내어 부르면 응답이 있다. 산신도 여자 산신이 있고, 남자 산신이 있다. 지리산 노고단 같은 경우에는 여자 할머니 산신이다.


그런가하면 대전 근처의 서대산 산신은 우암 송시열이라고 한다. 우암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산의 산세가 강하고 험하면 남자 산신이 있고, 부드러운 토산으로 되어 있으면 여자 산신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산신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 설악산의 봉정암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특별한 원이 없는 사람은 접근하기에 어려웠던 곳이다. 중악단은 거의 평지에 있어서 접근하기 쉽다.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산신도량은 남한산성에 있는 ‘장군바위’라고 들었다. 대관령의 산신각도 성황사와 함께 유명하다. 신라의 범일선사가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계룡산 중악단은 수만 년 내려오는 우리나라 산신신앙의 메카이다. 한국의 가장 뿌리 깊은 신앙이 산신신앙이고, 지금까지 오만 가지 천대를 받으면서도 그 명맥이 이어져 오는 곳이 중악단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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