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甲寺] 금닭이 알을 품은 산태극 수태극 형세
바위에 '金鷄嵒(금계암)' 새긴 자리가 알에 해당… 일제 때 유학자 윤덕영이 새겨
나는 계룡산파(鷄龍山派)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계룡산에서 공부한 역대 스승들의 지도를 받았고, 계룡산의 정신적 전통을 훈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근세에는 ‘정역’(正易)을 완성한 김일부(金一夫) 선생이 계룡산 국사봉 밑에서 공부하면서 수많은 학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계룡산은 어떤 산인가?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수많은 수도자들이 인생의 번뇌와 세상의 고민을 털어버리려고 공부했던 산이다. 세상을 박차고 나와 기도를 하고, 고행을 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세계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노력했던 선배들의 영혼이 지금도 산골짜기마다 살아 있다. 계룡산은 한반도의 거의 중심부에 있다.
중심부에 있다는 것은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서남북 사방의 정보와 여론을 수렴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말하자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지리적 위치인 것이다. 중앙 토(土) 기운이 강한 산이다. 거기에다가 산 주변에 논산, 강경 같은 평야지대가 전개되어 있어서 식량조달도 용이한 편이었다.
- ▲ 대웅전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 3개가 바로 계룡산의 삼불봉이다. 부처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의 높이도 700~800m 정도라서 인간이 올라 다니기에 딱 좋다. 산이 너무 높아도 위압감을 주지만 계룡산은 적당히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높이인 데다가 산 전체가 통 바위로 되어 있어서 그 땅 기운은 뒤지지 않는다. 바위도 통 바위로 되어 있으면 기운이 강하다.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는 바위산보다 커다란 암괴로 산이 이루어져 있으면 기운이 묵직하고 강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거기에다가 산 전체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세다. 덕유산 쪽에서 역룡(逆龍)해 올라가는 산맥과 금강의 강물이 북으로 역류(逆流)해 올라가면서 산맥과 강물이 서로 감싸 안는 지점에 계룡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옛날 도인들은 이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을 매우 상서로운 배합으로 보았다. 도 닦기에 좋다는 이야기이다. 산과 물이 남과 여처럼 서로 껴안는 형국에서는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어 그 터에 영기(靈氣)가 어리는 법이다. 인걸은 이 영기를 먹어야 인걸이 된다. 쓰레기 매립한 터에서 어찌 인물이 나오겠는가!
계룡산은 이름도 참 흥미롭다. 닭과 용이 조합된 이름 아닌가. 닭은 어떤 동물인가. 때가 되면 소리를 내어 우는 동물이다. 때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용은 조화를 부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영물이다. 계룡(鷄龍)이란 뜻을 풀이하면 ‘때가 되면 작동하는 힘을 지닌 산’이다. 계룡산의 모양도 앞부분인 연천봉(連天峰) 쪽의 바위 형국은 닭 벼슬처럼 생겼고, 그 뒷부분은 용의 허리처럼 생겼다. 그래서 계룡산에는 세상의 변혁을 꿈꾸었던 변혁지사(變革之士)들이 모여 들었고, 정감록의 메카가 되었다. 요즘 식으로 풀이하면 좌파의 산이었던 것이다. 좌(左)는 손에 공구(工具)를 집어 들고 있는 형태이다. 세상을 건설하고 공부(工夫)한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싶다. 우(右)는 입 구(口)자가 붙어 있으니 호구지책에 골몰한다는 뜻이다.
- ▲ 금닭이 알을 품을 자리라는 표시로 바위에 ‘금계암’이란 글씨를 새겨놓았다.
갑사는 예로부터 힘 센 장사 많이 배출
그렇다면 계룡산의 갑사(甲寺)는 어떤 절인가? 갑은 으뜸이요 제일이라는 뜻이다. 갑과 을의 갑(甲)이다. 우리나라에는 ‘甲’자 들어가는 절이 몇 개 있다. 전남 영광 불갑산의 불갑사(佛甲寺)가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들어와 처음으로 지은 절이 불갑사라고 한다. 불갑사 단청에 보면 코브라가 그려져 있는데, 남방에서 사는 동물인 코브라가 그려져 있는 것은 인도에서 들어온 마라난타의 영향이라고 본다.
영암 월출산에는 도갑사(道甲寺)가 있다. 그리고 계룡산의 갑사이다. 이 3개의 갑자 들어가는 절을 가리켜 ‘쓰리 갑’이라고 부른다. 백제의 고찰들이다. 갑사도 백제시대 5세기 무렵에 세워졌으니 비교적 일찍 세워진 절이다. 계룡산에서 가장 기운이 강한 터에 세워졌다고 보인다.
갑사에는 예로부터 장사가 많이 배출된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 승병을 이끌었던 의승군 대장 영규(靈圭·?-1592) 대사도 차력술(借力術)을 지니고 있던 장사 스님이었다고 전해진다. 차력(借力)에도 소차(小借)와 대차(大借)가 있는데, 대차의 힘은 커다란 황소가 지닌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에 반체제 승려들의 비밀결사였던 당취(黨聚) 승려들의 주요한 우두머리 스님들이 이 갑사에 많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당취들은 철저하게 그 조직이 비밀에 싸인 반체제 승려들 모임이었다. 이성계가 을해(乙亥)년에 태어난 돼지띠였기 때문에 당취들은 돼지고기를 씹을 때마다 ‘성계육’(成桂肉)을 씹는다고 여겼다. 불교를 탄압한 조선왕조의 개창조인 이성계를 저주했다. 구한말에 갑사에 있었던 당취 대장은 70대의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양손에 커다란 물 양동이를 들고 물을 길러 다닐 정도의 장사였다고 들었다.
왜 이렇게 갑사는 장사가 많았는가? 우선 갑사의 터가 기운이 좋다고 한다. 지맥에서 강력하면서도 거친 기운이 흐른다고 한다. 이는 기천문(氣天門)의 2대 문주인 박사규 선생이 10년 전쯤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그 무렵에 박사규 문주는 갑사 입구에서 수련하고 있을 때이다. 갑사의 승려들이 힘이 센 또 하나의 이유는 물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물이 좋다는 말이다.
물에 각종 영양가 높은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어서, 이런 물을 오래 먹다 보면 건강이 좋아지고 힘이 세진다고 본다. 더군다나 갑사의 물은 북간수(北間水)에 해당한다. 그 터의 북쪽에서 흘러내려오거나 샘솟는 물을 북간수라고 한다. 갑사의 우물은 대웅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북은 오행에서 수(水)의 방향이다. 제대로 된 방향에서 흘러오는 물이야 말로 진짜 물이라고 여기는 것이 오행적 세계관이다. 물도 어느 방향에서 흘러오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다고 본다.
바위에 '金鷄嵒(금계암)' 새긴 자리가 알에 해당… 일제 때 유학자 윤덕영이 새겨갑사에 들어가면 입구에 파란색으로 ‘鷄龍甲寺’라고 써진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오른쪽 밑으로 ‘甲生三角法門開’라는 주련 글씨가 주목을 끈다. 수수께끼 같은 문구이다. 보통 사찰의 주련에 써진 글씨들은 불교 경전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경전의 내용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어떤 깨달음의 경지를 피력한 내용이다. ‘삼각에서 갑이 나오니 법문이 시작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거 풀기가 쉽지 않다. 절 이름이 갑사(甲寺)니까 ‘갑’에서 시작된 것 같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돌계단을 올라 갑사의 대웅전 마당에 들어선다. 대웅전을 마주보고 오른쪽 편의 산세를 보니 봉우리 3개가 눈에 들어온다. 계룡산의 삼불봉(三佛峰)이다. 바위 봉우리 3개가 옆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국인데, 부처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각’은 이 삼불봉을 지칭하는 것처럼 짐작된다.- ▲ 계룡산 삼불봉과 마주보고 있는 갑사 대웅전 모습.
지남침을 가지고 삼불봉의 방향을 재어 보니 간방(艮方)으로 나온다. 풍수의 24방 가운데 하나인 간방은 남서(南西) 방향을 가리킨다. 정남(正南)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진 방향이다. 이 간방에 세 분의 부처님이 서 계시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갑이 삼각에서 나온다’는 것은 약간 짐작이 된다.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름달이 동쪽에서 떠서 약간 시간이 지나면 이 삼불봉 위에 걸려 있게 된다. ‘갑생삼각’(甲生三角)은 이 보름달이 삼불봉 위에 걸려 있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서 달은 하늘의 달도 해당되지만, 깨달음의 달을 가리킨다. 이중적 의미가 있는 달이다. 하늘의 달이 삼불봉 위로 떠오르는 그 시간에 우주적인 깨달음도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가 깨달아 보지 못해서 확언은 못 하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추론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깨달음을 상징하는 마음속의 심월(心月)이 삼불봉 위로 떠올랐을 때 법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불가에서 심월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5번째 차크라인 아즈나 차크라가 열리면 자기 내면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심월을 본다는 것은 아즈나 차크라가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적전 자리는 삼산양수지지(三山兩水之地)
그 다음 주련의 내용이 ‘艮佛蓮花君子處’이다. 마지막 글자가 ‘처’(處)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초서로 써 놔서 해독하기가 어렵다. 만약 ‘처’라고 읽는다면 ‘간방에 있는 부처님이 연화대에 있으니 군자의 처소로다’고 해석된다. 이걸 종합하면 조선시대에 어떤 도인 스님이 삼불봉 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 한 소식을 하고 읊은 게송인 것이다.
이걸 보면 스님의 처소는 삼불봉을 마주 보는 남서향의 위치였을 것이다. 남서향의 건물은 갑사 경내의 진해당(振海堂)이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갑사 위로 30~40분 올라가면 있는 신흥암이 해당될 수 있다. 신흥암은 삼불봉을 마주 보고 있다. 역대로 갑사의 도인스님들이 신흥암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유교는 바위산을 살기(殺氣)가 뻗친다고 해서 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불가는 되도록 바위 봉우리를 향해 건물의 방향을 잡는다. 바위봉우리에서 나오는 기운이 깨달음과 기도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슷한 높이의 3개의 바위 봉우리가 연속해서 서 있는 삼불봉은 불교 승려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봉우리이다.
삼불봉과 수정봉이 양쪽으로 겹겹이 쌓아
임진왜란 때에 갑사는 의승군 대장 영규대사의 사찰이었으므로 왜군에 의해 전부 불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현재의 갑사 자리는 임란 이후에 옮겨서 지은 자리이다. 원래 자리는 오른쪽 작은 계곡의 다리를 건너가면 나타나는 대적전(大寂殿) 자리다. 대적전 자리에 서보니 양쪽 계곡물이 흘러와 합수(合水) 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터이다. 계곡물이 합수 되는 지점은 영지(靈地)이다.
원래 불가에서는 삼산양수지지(三山兩水之地)를 좋은 절터로 생각한다. 뒤쪽에서 봉우리 3개가 연달아 내려오다가 그 앞에 계곡물이 만나는 지점이 ‘삼산양수’이다. 대적전 자리는 전통적으로 불가에서 선호하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양쪽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수기(水氣)를 보충해 주면서 그 터의 기운을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보존해 주는 작용을 한다. 대적전 자리는 뒤쪽의 삼불봉에서 내려오는 맥이니 ‘삼산양수지지’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철당간(鐵幢竿)이 대적전 앞에 조금 내려간 지점에 서 있다. 당간은 법회를 볼 때 깃발을 걸어 놓는 용도이다. 이 철당간의 위치도 풍수적으로는 합수 지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서 터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한 비보적(裨補的)인 고려를 한 것이다.- ▲ 스님의 생활공간인 요사체는 출입금지다.
갑사의 철당간은 유명하다. 원래 28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고종 때 벼락을 맞아서 4칸이 소실되고 현재는 24칸이 남아 있다. 28은 하늘의 별자리인 28수(宿)와 일치하는 숫자이다. 전설에 의하면 영규대사가 이 철당간을 뛰어서 올라가는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갑사의 터는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삼불봉과 수정봉이 양쪽으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어서 그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형국이다. 금닭이 알을 품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금닭의 알이 어디 있는가? 갑사에서 대적전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에 바위가 하나 있고, 이 바위에 금계암(金鷄嵒)이라고 새겨져 있다. 금계의 알이다.
이 글씨를 새긴 인물이 왜정 때에 유학자이자 불교를 좋아하는 처사였던 윤덕영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사람이 싫어서 계룡산에 들어와 살았다. 그리고 갑사 계곡에 갑사구곡(甲寺九曲)을 정했다. 조선시대 기호학파들은 구곡 정하는 것을 좋아하는 전통이 있었다. 구곡(九曲)에서는 항상 오곡(五曲)이 중심지이다. 담양 소쇄원도 구곡 가운데 제5곡에 자리 잡고 있다.
윤덕영은 계곡물 소리가 24시간 들리는 이 오곡 지점에 자신의 거처인 간성장(艮成莊)을 지어놓고 암울한 식민지의 한 세월을 보냈다. 재산도 있었고, 자존심도 강하고, 학문도 있고, 수도에 대한 열망도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지금도 이 간성장 건물은 잘 보존되어 있다. 갑사에 외부 손님들이 많이 올 때는 이 간성장을 숙소로 사용한다고 한다. 계곡 물소리가 잘 들리는 이 지점은 삶의 번뇌가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면 좋은 위치라고 생각된다. 잠을 자다가 꿈결 속에서도 물소리를 들으면 근심 걱정이 씻겨 내려간다.
계룡산은 수많은 수도인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민족의 성지이다. 정신세계의 젖줄이라고나 할까. 그 계룡산의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 갑사이고, 갑사의 기운은 아직도 쇠락하지 않고 여전히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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