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조용헌 명당순례_04

醉月 2014. 5. 13. 01:30

그리스 델피신전

 서양의 風水와 神託, 동양과 차이 없었다 

 

신전의 위치는 좌청룡·우백호와 안산, 수기와 균형 이뤄

 

동서양의 영발(靈發)은 공통점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세계인가?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지녀온 의문이었다. 동양의 영발이 있는 장소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선 바위산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바위산 주변에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가 있어서 수화(水火)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점, 좌청룡과 우백호와 안산(案山,앞산)이 있다는 점이다. 그 터의 앞에 안산이 있어야만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를 저장해 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러한 풍수적 조건이 서양의 신전과 고대유적지, 그리고 수도원을 비롯한 영험한 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조건인가. 이런 의문을 품고 그리스의 신전 터들을 둘러보았다.

 

그리스 신전은 서양문명의 원조이다. 기독교가 유럽 종교를 통일하기 이전의 원시적 영발 상태를 보여 주는 곳이 그리스 신전이다. 동서양의 영발을 비교하기에 딱 맞는 조건이 그리스인 것이다.



	델피신전 뒤로는 그리스 올림푸스산만큼 신성한 산으로 알려진 파르나소스 암벽산이 있고, 앞쪽으로 눈 높이 만큼 높은 두 봉우리가 잘 어울려 있다. 델피신전은 절대 명당자리라고 한다.
▲ 델피신전 뒤로는 그리스 올림푸스산만큼 신성한 산으로 알려진 파르나소스 암벽산이 있고, 앞쪽으로 눈 높이 만큼 높은 두 봉우리가 잘 어울려 있다. 델피신전은 절대 명당자리라고 한다.
그리스 신전 가운데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델피신전이었다. 역사상 가장 심오한 신탁(神託)이었다고 전해지는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이 새겨진 장소가 바로 델피신전이었다. 기원전 5세기에 서양 역사의 아버지 소리를 들었던 헤로도토스. 그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신탁이었다. 델피신전에서 받은 신탁이 아테네와 페르시아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는 내용이 <역사>의 주된 메시지이다. 델피신전에서 받은 신탁대로 고대 지중해 문명권의 전쟁 승패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라미스해전이 바로 그것이다. 델피 신탁에 의하면 페르시아가 수백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왔을 때 살 수 있는 방법은 목책(木柵) 뒤로 숨는 것이었는데, 그게 목책이 바로 살라미스 바다의 함선(艦船)이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저술한 배경에는 신탁이 다 들어맞았다고 말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델피신전의 신탁이었다. 고대 지중해 문명권에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고의 영험한 장소로 숭배 받았던 성소(聖所)가 델피였다.

 

델피는 해발 2,200m 높이의 산인 파르나소스(parnassus)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파르나소스의 남쪽 자락인 해발 700m 지점이었다. 동행한 <월간 산>의 박정원 부장의 말에 의하면 700m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는 고도라고 한다. 인간이 가장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고도가 700m이다. 강원도 평창이 ‘해피 700’이라는 구호를 내걸은 이유도 평창 지역이 이 고도에 해당한다는 이치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불교의 고승들이 한 소식을 한 뒤에 머물렀던 암자들의 위치가 대략 이 고도 언저리이다. 뭔가 체험적으로 알았다는 이야기이다.

 

영험한 터의 첫째 조건은 어느 정도 암벽과 바위가 포진되어 있는가다. 델피는 입구에서부터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터였다. 그 중압감은 바위절벽이었다. 높이 200~300m 정도. 가로로 퍼진 길이는 1,000m 정도 된다고나 할까. 각도도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현지에서는 이 깎아지른 절벽만을 따로 가리켜 페드리아데스(Phaedriades)산이라고 불렀다. 설악산 울산바위보다 두세 배 큰 바위산이 신전 뒤에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이 페드리아데스라는 이름은 ‘빛나다’라는 의미다. 저녁 무렵에는 석양빛이 이 바위절벽에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험한 터가 되려면 눈높이의 안산 있어야

 

대체적으로 바위절벽의 크기와 영발은 비례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암자나 절터도 영험한 곳은 대웅전이나 산신각 뒤편에 바위산이 포진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설악산 봉정암을 봐도 그렇고, 가야산 해인사, 대둔산 태고사, 계룡산 신원사, 월출산 도갑사, 서울 북한산 승가사, 남해 보리암, 대구 비슬산 대견사 등이 그렇다. 암벽이 높고 클수록 거기서 나오는 파장이 강하고 범위가 넓기 마련이다. 그 절벽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 파장 속에 들어가게 된다. 엄청난 기(氣)의 세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강력한 기장(氣場)의 영역 안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 어떤 압박감을 느낀다. 사람을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그것이다.

 

마음이 섬세한 사람은 압도되는 기분을 갖게 되고, 심약한 사람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이러한 바위산 밑에는 살지 않는 게 좋다. 너무 강한 기운은 일상생활에 맞지 않는다. 사람을 친다. 그 대신에 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운으로 작용한다. 두뇌를 혹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바위산이 맞는 것이다. 도 닦는 수행자, 예술가, 아니면 글을 써야 하는 문필가, 또는 프로바둑 기사와 같은 직업군에는 바위산이 단백질을 제공한다.

 

간절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에너지 파장이 감싸 도는 볼텍스(Vortex) 지역이 맞다. 터가 센 곳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기도인들에게 맞는 지역이다. 정신적인 집중도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4월 초까지 정상 부근에 눈이 남아 있는 그리스의 파르나소스산은 온통 암벽이 노출된 골산이었다. 그리고 그 골기가 가장 강하게 흘러 내려온 남쪽 자락의 단절된 지점에 델피신전이 있었다.


	조용헌 박사와 함께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 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델피신전을 둘러보고 있다.
▲ 조용헌 박사와 함께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 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델피신전을 둘러보고 있다.
영험한 터가 되려면 앞에 안산이 있어야 한다. 안산은 그 터로 보아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한다. 눈높이 정도보다 약간 높으면 좋다. 너무 높으면 답답한 감을 준다. 안산이 머리를 쳐들어야 보일 정도로 높으면 감옥 같은 압박을 한다. 안산이 너무 높으면 인물이 못 나온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힘이 없다. 낮다는 기준은 배꼽 아래의 높이다.

 

델피의 안산은 눈 높이였다. 높이 1,000m가량 될까? 모양이 말안장처럼 생긴 마체(馬體)의 형태였다. 안산이 마체 모양이면 그 터에서 귀인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귀인이어야만 말을 탈 수 있다고 여긴 것이 동양의 풍습이었다. 우리나라 대구의 서쪽인 화원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의 동네 앞산이 이러한 마체다.

 

그리스의 현지 가이드에게 이 산을 물어보니까 9명의 뮤즈(Msue)가 사는 신성한 산이라고 한다. 뮤즈는 학문과 예술의 신이다. 9는 3×3이 되어서 9라고 한다. 그리스에서 3은 마법의 숫자였다.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한다. 동양의 천·지·인 삼재(三才)와 신기하게도 똑 같았다. 도덕경에 보면 ‘삼생만물(三生萬物)’이다. 3에서 만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3은 우주의 총체이다.

 

이 3이 다시 세 번을 반복해서 9가 된다. 가장 큰 수가 9이다. 그리스에서 델피의 앞산인 헬리콘(Helicon)산에 9명의 뮤즈가 산다는 것은 무수한 뮤즈가 산다는 말과 같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신전의 앞산인 이 산에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붙여 놓았다. 앞산에서 오는 신비한 영향력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터는 앞산이 없으면 기운이 빠져 버리기 마련이다. 도선국사가 가장 강조하는 풍수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앞산(안산)의 존재이다. 앞산 있는 곳이 명당이라는 것 아닌가.

 

그 다음에는 물이다. 아무리 바위 기운이 센 터라도 주변에 물이 없으면 조열(燥熱)해서 그 터가 오래가지 못한다. 물이 없으면 유장함이 부족하다. 배산(背山) 다음에는 임수(臨水)인 것이다. 델피에서 물은 어디에 있는가? 신전의 서쪽 수구(水口) 너머로 바닷물이 살짝 보인다. 이 바닷물은 고린도만(灣)이다. 성경의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고린도(코린트)가 델피에서 멀지 않았다. 고린도를 끼고 있는 바닷물이 이곳 델피의 외곽지역에까지 이어져 있다. 수기(水氣)는 이 고린도만의 바닷물로 보충 받고 있었다.


	델피신전 위에 있는 원형극장의 모습.
▲ 델피신전 위에 있는 원형극장의 모습.
신전 위에 원형극장과 스타디움 눈길

 

델피신전에서 주목을 끌었던 요소는 풍수적인 조건도 있었지만, 신전 위에 극장과 스타디움이 있었다는 점이다. 극장은 수십 개의 계단이 반원형으로 갖추어진 그리스 특유의 석조 극장 시설이다. 여기에서 음악회도 하고 연극도 이루어지고 중요한 대중 모임도 이루어졌다. 극장은 델피신전의 본당 건물인 아폴론신전의 바로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웅전 위에 극장이 자리 잡은 셈이다. 어떻게 극장이 신전 내에, 그것도 본당 건물보다 더 위계가 높은 지점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이 점이 신기했다. 극장이 신전 본당보다 더 비중이 있다는 말 아닌가. 성스러운 신전과 극장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볼 때는 극장도 신전의 한 영역이었다. 음악회를 하고 연극을 하고 많은 사람이 계단에 앉아 토론을 하는 것도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했다는 증거다. 이는 정신치유 효과가 있다는 암시다. 극장은 단순한 오락장소가 아니다. 음악과 연극을 통해서 인간의 억눌렸던 콤플렉스와 우울증, 또는 불안증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치유야말로 신전의 본래 기능이 아니겠는가. 신전은 힐링해 주는 성소이다. 인간을 치유해 주어야 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를 예시해 주는 점만 칠 것이 아니라, 정신치료도 같이 병행해 주어야 한다고 그리스인들은 생각했다.

 

이 점이 위대하다. 동양과 다른 점이 이 부분이다. 사찰 내에 극장을 설치했던 셈이다. 오늘날의 오페라 홀과 극장은 원래 신전에 속해 있었던 성스러운 예배당이었다. 여기에 한 술 더 뜬 것이 스타디움이다. 스타디움은 극장 위의 언덕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델피의 가장 높은 상층부에 스타디움이 설치되어 있었다. 스타디움은 운동장이다. 달리고 뛰고 창을 던지는 각종 운동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육체적 단련도 신성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운동이 곧 예배요 예불(禮佛)이었다.

 

나체는 신성함과 평등함의 상징

 

고대 올림픽이 처음 발생되었던 올림피아도 제우스를 모셔 놓은 신전이었다. 신을 찬미하기 위해서 원래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왜냐하면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이었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은 그 자체로 신성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신성이란 건강함에 있었다는 말도 된다. 신성함이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뛰고 달려서 땀을 흘리는 것도 신에게 다가가는 신성한 종교행위에 해당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오늘날 수만 명이 들어가는 종합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하거나 야구경기를 하는 것은 신성한 종교행위인 것이다. 세속도시에서 예배 보는 것이 경기장에서 축구스타인 호날두나 메시의 드리블과 슛을 보는 것이다. 세속도시의 사제가 스포츠 스타라는 말인가. 현대인의 대표적인 오락인 극장과 운동장이 델피신전 안에 모두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전에 모셔져 있는 신상들은 모두 나체라는 점도 굉장히 의미가 깊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모두 나체로 조각했다. 올림피아의 운동선수들도 나체였다. 나체는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왜 나체인가? 신이 인간의 나체 모습으로 조성된 것은 어떤 사고방식인가?

 

첫째는 신도 인간과 같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신과 인간은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평등사상을 읽을 수 있다. 서양이 독재자를 싫어하고 민주정치라는 독특한 체제를 고안해 낸 것도 나체 사상과 관련 있다. 신을 숭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인간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왕에게도 대입했다. 왕이 평민과는 다르지만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정치 체제가 맞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거짓의 옷을 벗는다는 의미다. 정직함, 즉 어니스트(honest)한 것을 존중하는 전통이 나체 사상에서 생겼다. 옷은 계급장이다. 권위의 상징이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계급장 떼고 만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목욕탕이 성스러운 공간이다. 옷 벗으면 너나 나나 똑 같다. 고대 서양에서 나체를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생각했던 배경에는 인공 조미료를 치지 않는다는 유기농의 사상이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육체의 관능적인 욕구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인간은 욕망이 있다. 나체로 조각한다는 것은 이 관능적인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나체의 핵심이 성기(性器) 아닌가. 이 성기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이 성기의 기능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인정했을 때 거짓이 없다. 성욕은 억누른다고 눌러지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도는 허용하자. 너무 감추면 병 된다. 틀 것은 트자. 그게 건강하다. 아마 이런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고대 동양에서는 나체 조각상이 없다. 이 점이 고대 동서양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동양의 그림을 보면 덕지덕지 치장한 옷을 입고 있다. 이거 불편하다. 거짓과 위선이 많다. 예(禮)가 지나치면 위선(僞善)이 된다. 신전에 있는 나체의 조각상들을 보고 필자가 느낀 점이다. 그리스 신전에 가서 많은 공부를 했다.
 

조용헌 박사와 답사… 고대 사회는 동서양 문명이 별 차이 없는 듯

역사는 햇빛을 받아 더욱 명료해지고, 신화와 전설은 달빛을 받아 구전된다는 말로 지난 호를 마무리했다. 역사는 양(陽)이고, 신화와 전설은 음(陰)이라는 말이다. 양과 음은 상호보완적이고 호혜적이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는 세상의 이치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델피신전은 그리스신화에 올림푸스산만큼 자주 등장하는 파르나소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앞산과 뒷산의 위치가 한국의 풍수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곳이다.
그리스는 신화의 땅이자 전설의 땅으로 통한다. 수많은 역사가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신화를 밝혀 내면 낼수록, 햇빛을 받을수록 더욱 명료해져 역사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그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의 핵심 유적지인 올림픽 성화 채화지 올림피아(Olympia),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델피(Delphi),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메테오라(Meteora), 세계문화유산 지정 1호인 아테네(Athens)신전 등을 조용헌 박사의 동양학적인 설명을 곁들여 소개한다.

 

올림픽 개최지는 산과 두 강이 만나는 조용한 곳
에피다우로스에 이어 올림픽 성화 채화지인 올림피아로 향했다. 길 주변엔 편백나무같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유난히 많다. 가는 곳마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편백나무가 아니고 ‘사이프러스’라 불리는 측백나무다. 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주로 묘지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1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 신상이 있었던 신전.
그리스인들은 예로부터 부활을 믿으며 사후세계를 따로 두지 않았다. 현세와 전생이 공존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공동묘지는 항상 마을 바로 옆에 있다. 공동묘지를 친숙한 놀이터로 여겼다. 공동묘지가 음이고 죽은 자가 음이라면 역시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공동묘지에 매장된 시신은 3년 뒤에 다시 뼈를 수습해서 화장하고 난 뒤 납골당에 영원히 봉안한다고 한다. ‘사이프러스’는 공동묘지에 묻힌 시신이 하늘의 신비스런 영령을 받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그래서 삼각형으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자라는 측백나무를 통해 영령을 받아 시신이 부활한다고 믿는다. 그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측백나무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2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스타디움 입구에 아치형 성벽이 있다. 3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
최고의 신 제우스(Zeus)를 모셨던 성역 올림피아에 다다랐다. 올림피아는 올림픽 성화 채화지이며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조용한 동네다.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안정되게 한다. 여기서 고대 올림픽을 개최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도시국가다. 수많은 도시국가가 서로의 영토보존과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치렀다.

 

고대 올림픽은 각 도시국가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서 대회 기간 앞뒤 3개월 동안은 전쟁을 중지했다. 즉 고대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평화 행사였던 셈이다. 올림픽 때는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달리기를 중심으로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 승마, 복싱, 전차경기 등의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뿐만 아니라 시와 음악 콘테스트까지 열었던 일종의 종합문화행사였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4 델피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최고의 신 제우스의 모습을 한 외국방문객이 바라보고 있다.
출전 선수들은 전부 나체였다. 서양의 나체숭상문화의 발원지가 바로 그리스이고, 올림픽이었던 것이다. 신(神)도 나체로 형상화돼 있다. 나체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자만이 보여 줄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은 어쩌면 뽐내고 싶은 인간 욕구를 발현하는 장이었는지 모른다. 조용헌 박사는 “나체는 신과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솔직한 게 여과 없이 드러나거나 지나치면 음탕한 것이 되지만….

 

조 박사가 주변을 한껏 둘러보더니 말을 꺼낸다.

 

“이곳은 전쟁을 하라고 해도 못 할 동네입니다. 분위기가 사람을 안정되게 합니다.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지형을 가만 보니 하나의 산을 중심으로 두 강이 만납니다. 물과 불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그 정중앙에 제우스 신전이 있습니다. 지형과 건물구조를 볼 때 핵심이 제우스신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우스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건축물들은 부속건물입니다. 아마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지형을 감안해서 올림픽 개최지를 이곳으로 정하고, 전쟁을 중단하면서 경기를 치른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올림픽은 일종의 평화조약이었던 것이죠.”

 

두 강은 클라데오스(Kladeos)와 알페이오스(Alpheios)며, 한 개의 산은 크로니온(Kronion)이다. 올림피아의 중심지, 즉 제우스 신상(神像)은 산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끝닿는 지점과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의 중간쯤에 있다. 대충 눈가늠으로도 짐작이 가는 거리였다. 절묘한 위치에 제우스 신상과 올림픽 성화 채화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신의 균형뿐만 아니라 자연의 음양의 균형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동양의 풍수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조 박사가 말을 이었다.

 

“한국의 두물머리를 생각하면 됩니다. 한강의 두물머리가 얼마나 경치가 아름답고 명당입니까. 그런 장소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웰링턴 국립묘지도 물이 감아 도는 곳입니다. 대개 합수지역이 중요하고 명당입니다. 고대로부터 물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이런 지역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사람을 안정되게 합니다. 거친 분위기나 살기(殺氣)가 전혀 없습니다. 이곳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택된 이유를 알 법합니다.”

 

동양에서 용과 호랑이라면 서양은 사자
신전이나 건축물 곳곳에 사자조형물이 있다. 동양식으로 하자면 용이나 호랑이 정도 되겠다. 동양에서 용과 호랑이라면 그에 대비되는 서양 동물은 바로 사자다. 사자가 있는 곳은 대개 권력이 있고, 물이 있다. 물은 황제의 권능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동서양 막론하고 같은 이치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왕의 자리를 용상(龍床), 왕의 옷을 용포(龍袍),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등 용으로 상징되고 신의 자리엔 호랑이 형상이 있듯이, 서양에서는 신이나 황제 근처엔 항상 사자가 위엄 있는 형상으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제우스신상 바로 뒤에 헤라신전과 제단(Hera's Altar)이 있다. 이 헤라제단에서 최초의 올림픽 성화를 채화했다. 제우스신상이 있는 제우스신전, 헤라신전과 제단이 앞뒤로 나란히 있는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채화한 성화는 평화의 빛으로 올림픽 기간 내내 밝힌다. 조 박사는 “하늘의 빛을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불로 만드는 장소가 바로 헤라제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헤라는 불의 여신으로, 자궁을 가지고 생명을 잉태해서 자손을 번식시키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헤라신전 앞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이유를 부연했다. 여기에 “또 고대 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이용해서 사는 모습이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인간과 신이 둘이 아닌 모습이 동서양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올림픽 개최지인 올림피아에서 동행자들에게 지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겐 월계수관을 수여했다. 월계수는 나무다. 현재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엄청난 금액과 명예가 주어지지만 당시엔 명예뿐이었다. 이는 올림픽 자체가 고상한 정신적 세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금전적 혜택이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월계수관을 수여하는 게 전부였다.

 

고대 올림픽은 서기 400년 정도까지 계속됐지만 이후 중단됐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대규모 지진 때문에 중단됐다는 주장이 중론이다. 이후 1896년 쿠베르탱에 의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부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림픽의 중심지가 올림피아에서 아테네로 옮겨간 것이다.

 

제우스신상은 고대사회 세계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중의 하나다. 제우스상은 높이 약 12m의 목조로 건축된 것으로 전한다. 신전은 426년쯤 기독교의 신전 파괴령으로 부서졌으며, 6세기에 지진과 홍수로 땅속에 완전히 매몰됐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초에 발굴이 시작됐고, 1950년 무렵에는 피디아스의 작업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인 피디아스(Phidias)는 BC 445년 제우스신상을 조각했다. 조각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신들의 상 제작자’라는 칭송받았다. 그는 제우스신상뿐만 아니라 ‘아테나 알레아’, ‘아테나 파르테노스’ 등 유명한 신상은 전부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이 단순·명료하면서도 개개의 감정을 초월한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참고로 고대사회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 왕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大巨像),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등대 등이다.

 

올림픽에 대한 진한 여운을 뒤로한 채 또 다른 유적지 ‘세계의 중심’으로 불리는 델피(Delphi)로 간다. 델피에 있는 파르나소스(Parnassos·2,200m)산은 고대 그리스에서 신들의 산 올림푸스만큼이나 중요한 산이다. 올림푸스산이 신들의 놀이터였다면, 델피는 신들을 통해 하늘의 계시를 받는 자리였다. 즉 신탁(神託)의 산이고, 종교적이자 영적인 산이다. 신탁은 델피의 아폴론신전에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맡겨 놓은 뜻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신이 맡겨 놓은 뜻이라고 해서 신탁 또는 탁선이라고 한다. 맡겨 놓은 그 자리가 아폴론신전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델피는 좌청룡·우백호 조건 완벽 구비
델피는 또한 ‘세계의 배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어느 날 델피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 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런데 두 마리가 델피에서 만났다. 그래서 제우스가 델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고, 두 독수리가 만난 지점을 돌멩이로 표시했다. 그리스인들은 그 돌을 ‘옴파로스(Ompharos·그리스어로 배꼽)’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아테네 도심에 우뚝 솟아오른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요새가 마치 한국의 산성을 연상케 한다. 고대 아테네는 도시국가로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높이 쌓았다.
실제로 델포이 성역 내 옴파로스라는 돌이 있었고, 1913년 발굴됐다. 하지만 이후 도난당해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다. 현재 그 자리엔 모조품이 놓여 있다. 모조품인데도 방문객들은 다들 한 번 만져보고 지나간다. 세계의 중심에 섰다는 자부심으로.

 

신탁의 신전과 뒷산인 파르나소스에서 조 박사는 감탄부터 한다.

 

“델피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땅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갖췄군요.”

 

땅에서 솟아나는 가스를 말한다. 고대 신탁사제, 즉 무녀(巫女)들은 이 가스냄새를 맡고 몽롱한 상태에서 접신을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가스가 나오진 않지만 그 흔적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

 

파르나소스산(정상 봉우리는 키르피스·Kirfis) 앞 델피는 좌청룡 우백호에 앞산까지 갖춘 지형적으로 완벽한 곳이다. 파르나소스 남쪽 산허리는 파이드리아데스(Phaidriades)라고 부르는 암벽이 반짝이고 있다. 일명 ‘빛나는 바위’라는 뜻이다. 남쪽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이 절벽에 반사되어 성소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암벽 산을 배경으로 프레이스토스계곡을 거쳐 멀리 고린도만(灣)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을 이룬다. 왼쪽 봉우리는 에토스, 오른쪽은 킨토스, 앞산(안산)은 헬리콘이다. 그리고 헬리콘 맞은편 고린도만 방향으로 지오나(Giona)산이 둘러싸고 있다. 조 박사는 헬리콘산을 지리산의 앞산인 사성암이 있는 오산에 비유했다. 델피신전은 완벽한 요새와 같다. 가만있을 조 박사가 아니다.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암벽 덩어리의 산이 사방으로 에워싼 형국에 있는 신전은 절터로서는 기막힌 자리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설악산의 봉정암을 연상케 하는군요. 봉정암은 우리나라 산신의 메카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는 특히 앞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헬리콘이 앞에 턱하니 받쳐 주어 키르피스에서 나온 기운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 줍니다. 신탁하는 자리로서는 최고의 명당입니다. 또 아폴론신전을 기준으로 우백호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보통 우백호가 발달한 지형은 여자들의 기운이 센 터입니다. 신탁을 하는 사제가 여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녀라고 하죠.

 

한마디로 영발(靈發)로 여자들이 돈 버는 터입니다. 그 영기(靈氣)는 아직까지 보존된 듯합니다. 그대로 느껴집니다. 저 옆에는 ‘카스탈랴’라는 성수(聖水)가 있습니다. 무녀가 신탁하기 전 목욕재계했던 곳입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습니다. 종교의 원형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종교의 원형, 즉 영발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영발의 메카 같은 곳입니다.”

 

하늘의 기둥이라 불리는 메테오라수도원
조 박사는 감탄의 연속이다. 마치 우주의 기운이 뭉친 엑기스 덩어리라고까지 표현했다.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2) | 그리스(下)]
▲ 1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신전은 지금 한창 복구 중이고, 그 앞에 세계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2 델피신전에 있는 세계의 배꼽 자리인 옴파로스. 방문객들은 그 돌을 만지며 세계의 중심을 확인한다.
마침 고도기가 있어 고도를 확인했다. 해발 655m가 나왔다. 아니, 이럴 수가! 우연일까, 아니면 알고 했을까? 인간이 살기 가장 적합한 고도가 700m 전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 기압의 변화가 가장 적어 사람이 항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높이다. 가장 안정된 고도에,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로 에워싸인 최적의 지형에 아폴론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거기다 접신에 용이한 몽롱한 가스까지 분출되고, 성수까지 옆에 있는 이런 장소가 어디 있다 말인가. 정말 델피신전은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접신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아폴론신전 위에는 그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원형극장이 있다. 그리스에서 신전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원형극장이다. 신전과 극장, 무슨 상관이 있을까? 조 박사는 그 고리를 정신세계와 연결시켰다

 

“신전은 신과 통하는 자리고, 극장은 연극이나 노래 등 예술을 통해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아마 고도의 정신작업으로 기력이 쇄진해지면 극장에서 요즘 말로 스트레스를 풀며 재충전하지 않았나 보입니다.”

 

그럴 듯한 해석이다. 더욱이 헬리콘산에는 예술의 여신 9자매가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델피 고고학박물관에도 뮤즈관이 있다. 뮤즈는 예술의 여신이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 불렀다. 이는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매 여신들이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무사이(Musai)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술의 신과 내통하는 무녀들이 함께 있는 델피신전. 과연 조 박사 말대로 아마추어가 봐도 명불허전이다. 물론 세계복합(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어서 고대 유적지가 아닌 중세 수도원이 있는 메테오라로 향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란 뜻이다.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 위에 세워져 있어 ‘하늘의 기둥’으로도 불리며, 14세기에 세워진 절벽 꼭대기의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조 박사는 메테오라에 대해 “여기서는 영적인 기도발을 받는 장소라기보다는 속세를 떠나 고통을 감내해 가며 수도하는 장소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기기묘묘하게 우뚝 솟은 암벽 봉우리 위에 수도원을 지어 아슬아슬하게 수도하는 장소다. 정말 어떻게 그런 곳에 집을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전형적인 중세 건축양식으로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힌다.

 

11세기 초부터 수도사들이 은둔하기 시작했으며, 14세기 초 성 아타나시우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16세기에는 20여 개에 달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한 곳인 트리니티수도원에서 영화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s eyes only)’를 촬영했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은 세계문화유산 1호
지질의 생긴 모양은 우리나라 진안 마이산과 비슷하다. 약 6,000만 년 전 지진활동으로 생겨난 거대한 잔괴라고 한다.

 

다시 고대 유적지이며, 세계문화유산 지정 1호인 아테네 파르테논(Parthenon)신전으로 간다. 유네스코 로고가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그만큼 인류문화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네의 정중앙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솟아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아테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네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BC 447~432년 15년간에 걸쳐 지었다. 파르테논은 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그리스적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상징이자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상징이기도 한 곳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광장엔 평일에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한국인도 쉽게 마주친다.

 

조 박사가 주변 형세를 살펴보더니 말을 꺼낸다.

 

“저 멀리 산(이미투, imitou)에서 내려온 혈이 아테네에서 한 번 뭉치고 다시 마지막으로 아레오파고스에서 뭉쳐 아크로폴리스에서 솟았습니다. 평지에서는 돌혈(突穴)이 명당입니다. 터는 반드시 물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바로 저 앞에 에게해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 땅도 좋습니다. 델피가 한국의 해인사라면, 파르테논은 조계사에 가깝습니다. 해인사는 조금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데가 있는 반면, 서울에 있는 조계사는 도심 한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기도발은 델피가 좋을 듯하네요. 바위가 치솟으면 화기가 강하지만 이곳은 수기가 섞여 있어 기운을 다스려 줍니다. 화기는 반드시 물을 만나야 합니다. 이곳은 마치 한국의 해수관음처 같습니다. 명당은 명당입니다.”

 

아크로폴리스 주변은 한국의 성벽과 같은 요새(fort, 要塞)다. 마치 철옹성 같다. 조 박사는 이 모습을 보더니 “신전이 이런 요새 위에 있다는 것은 종교적, 신성적 목적 외에 군사적 목적도 함께 띠고 있다. 외부 침입을 차단하면서 중앙에 우뚝 솟아 주변에 권력과 위력을 과시할 목적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이드는 “파르테논신전과 주변 신전을 에워싼 요새는 군사적 목적도 함께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긴 요새란 의미가 군사적 개념이니….

 

아크로폴리스는 해발 156m에 돌출된 지형에 있으며, 삼면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고, 서쪽 한 면만 올라갈 수 있도록 돼 있다. 한마디로 천연 요새 그 자체였다. 그리스의 요새와 한국의 산성이 비슷한 측면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였기 때문에 수시로 전쟁을 했다. 각 도시국가들은 침입해 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상시 방어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요새였다. 한국도 고대 사회에서는 부족국가로 유지됐기 때문에 각 부족국가마다 산을 중심으로 방어진지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 그리스의 요새와 한국의 산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위에 있는 신전들은 무너진 상태로 몇 세기를 보냈다. 현재 파르테논신전은 한창 복구공사 중이다. 아테네의 운명과 같이하는 듯했다. 4세기 후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자, 많은 그리스·로마의 신전들은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6세기에 파르테논은 기독교 교회당으로, 아테네 여신상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바뀌기도 했다. 중세를 거치면서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는 신전들이 파괴되고 방치된 채로 근대를 맞았다. 19세기를 지나면 본격 발굴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온전하게 남은 건축물은 없지만 해마다 전 세계 방문객들이 몰려와서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확인하며 엄청난 돈을 뿌리고 간다. 선조들의 덕택에 후손들이 먹고 살고 있는 셈이다.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무척 부럽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는 적어도 고대사회에서만큼은 동양의 문명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동양학이 그대로 정통하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친숙한 그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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