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野說천하’ ② - “탯줄로 생사의 순환고리를 풀다”
신화세계 탐구 성형외과의 김영균
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영균 박사는 2008년 출간한 그의 신화연구서 <탯줄코드>를 통해 세계의 탯줄 신화와 그 상징에 나타난 삶과 죽음, 자연과 우주의 문제를 탐구했다. |
탯줄 내부에는 동맥 2개, 정맥 1개가 지나간다. 한민족의 고대 조상들은 탯줄 속에 들어 있는 이 핏줄 3개를 ‘삼신할머니’로 인격화했다. 한국의 금줄, 일본의 시메나와, 인도 요가의 쿤달리니 에너지 역시 탯줄코드의 변형이다. 탯줄을 통해 들여다본 동서양 생사관의 야릇한 상징과 이면….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인재들은 두 군데로 몰렸다. 의대와 법대이다. 해방 이후 이쪽으로 너무 과도하게 쓸 만한 인재들이 집중되었다. 내가 보기에 인문학 분야로 와야 할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었다. 특히 주변에서 의사가 된 선후배나 친구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인문학 분야에 왔으면 한국의 인문학이 훨씬 풍성해졌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그만큼 좋은 직업이란 말인가? 머리 좋고 호기심 많은 의사들 가운데는 인생 중반쯤 오다가 전문적인 취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인 취미라하면 의학이 아닌 분야에 저술을 낼 만큼의 공력을 갖추는 경우다.
국제성형외과 전문의인 김영균(金映均·58) 박사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쌍커풀 수술 전문가인 그는 2008년에 <탯줄코드>라는, 성형 수술과 전혀 관련 없는 책을 냈다. 세계의 신화(神話)에 관한 책이다. 필자는 최근에야 월출산(月出山) 트레킹 과정에서 우연히 김영균 박사를 알게 되었고, <탯줄코드>를 보게 되었다.
성형외과 의사가 신화를 건드리다니? 아마추어적인 수준이겠지? 하는 선입견을 깨는 책이었다. 나름대로 이 분야에 한가락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필자의 눈을 확 뜨게 해주는 역작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안목을 열어주었던 부분은 책 내용 가운데 나오는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占)을 받는 황홀경 상태의 무녀(巫女) 모습이 그것이다.
그리스 델피 신전 ‘다리 3개’ 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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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한 손은 바닥에 있는 옴파로스 돌에 연결된 끈을 잡고 있는데, 이 끈은 양털로 짠 실이다. 피티아가 양털로 짠 실로 옴파로스와 연결되어있는 이유는 세계의 중심이자 배꼽인 옴파로스 돌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신성한 힘과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리스의 델피 신전은 고대 서방세계에서 가장 영험한 신전이다. 영험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점(신탁)이 잘 맞았다는 말이다. 최고의 적중도를 보였던 신전이 바로 델피의 신전이었다.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의 기념비적인 저술인 <역사(歷史)>에서도 제일 첫 장에 델피 신전의 신탁 이야기가 등장한다.
<역사>의 첫 장은 ‘신탁’에서 시작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근동 사회에서 전쟁을 앞두거나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이 델피 신전에 가서 점괘를 뽑아보았던 것이다. 델피 신전의 아폴론 신탁은 기원전 8세기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기원 후 393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의 명령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절대적 권위를 자랑하던 ‘점발(占發)’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 델피 신전에서 다양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점쳤다. 전쟁, 식민지, 헌법개정, 전염병, 정권교체, 각종 천재지변, 대형사건·사고 등이었다. 그런데 이 델피의 신탁은 1년 365일 아무 때나 발생하는 점이 아니었다고 한다. 1년에 점치는 날은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탁의 자문이 있는 날에 무녀인 피티아는 신전에서 가까운 카스탈리아 샘에서 목욕을 하고 신전 안의 점치는 방에 들어갔다. 이 방 밑에는 갈라진 바위 틈새에 걸쳐져 있는 커다란 다리 3개 솥이 있었고, 피티아는 이 솥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 갈라진 바위 틈새에서는 ‘신적 증기’를 내뿜었고, 피티아는 이 솥 안에 앉아 이 증기를 들이마시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신탁을 구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폴론 신은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연중 9개월만 델피신전에 머무른다고 믿어졌다. 따라서 9개월 동안만 신탁을 했다. 또 한 달에 하루만 신탁을 했으므로 한 해에 겨우 9일만 신탁점을 봐주었다. 피티아는 보통 1명이었으나 전성기에는 3명까지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델피신전의 신탁을 받을 권리는 특권에 속하였다. 서로 신탁을 받으려고 하였으므로 번호표를 발부하였다. 델피폴리스의 시민이 1순위였고, 델피 시민과 친한 사람들이 2순위였다. 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2순위였다. 적어도 535개, 많으면 615개의 신탁문답 사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고, 그중 절반은 역사적 중대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입증되었다.”(황태연 <공자와 세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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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있을 때만 듣는 ‘신탁’
<탯줄코드>의 그림을 보면 다리가 3개 달린 의자가 나오는데, 위의 인용기록을 보면 다리가 3개 달린 솥으로 나온다. 의자나 솥의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공통적으로 다리가 3개 달렸다는 점이다.
김영균은 3이라는 숫자를 중시한다. 이 3은 ‘삼신(三神)할머니’, 삼‘ 승(三繩)할망’의 삼(三)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다리 3개 달린 의자나 솥은 한국에서 말하는 ‘삼신할머니’로 해석할 수 있다.
왜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머니는 3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는가? 김영균에 의하면 바로 탯줄 내부를 흐르는 핏줄이 3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탯줄 내에는 동맥 2개, 정맥 1개가 지나간다. 단면도를 보면 구멍이 3개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달려 있는 탯줄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냥 범상하게 보아 넘겼을 리가 없다. 생명이 이 세상에 나올 때 달고 나오는 줄인데 어찌 범상하게 보아 넘기겠는가. 탯줄을 잘라서 자세히 보았을 것이다.
자세하게 탯줄의 단면도를 뜯어보니 그 안에 핏줄이 3개 들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김 박사는 탯줄 속에 들어 있는 이 핏줄 3개를 한민족의 고대 조상들은 ‘삼신할머니’로 인격화했다고 본다. 탯줄 속에 동맥과 정맥이 합쳐서 3개가 들어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은 김 박사이다. 그래서 3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삼신할머니를 줄로 표현한 것이 새끼줄이라고 주장한다. 새끼줄은 탯줄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새끼줄이 동물로 표현될 때는 뱀이 되었다. 탯줄, 새끼줄, 뱀은 형태적으로도 유사하다.
그리스 아폴론 신전의 피티아 무녀가 신탁을 받는 그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이 그림은 신탁을 받을 때 피티아가 옴파로스와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옴파로스와 연결되어있는 양털로 만든 줄은 탯줄을 의미한다. 지구의 배꼽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신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연결코드가 탯줄코드인 셈이다. 양털로 만든 줄은 탯줄을 의미한다. 옴파로스(배꼽)는 우주의 중심을 상징한다. 이 배꼽도 역시 탯줄이다. 따라서 델피신탁의 핵심은 탯줄인 셈이다. 신탁은 탯줄을 타고 피티아에게 전해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인 것이다.”
왜 다리가 3개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인가? 다리 3개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미의 고대 마야문명에서는 음식을 끓일 때 쓰는 솥 밑에다 돌을 3개 받쳐놓고 썼다. 세 다리 역할을 하는 돌이었다. 그런데 이 돌 3개는 하늘의 오리온 별자리에서 온 것이라고 여겼다. 오리온 자리의 별 3개가 지상으로 내려와 음식을 끓이는 솥의 3개 다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유방식이 중국에서도 나타난다. 고대 중국에서 황제의 권력은 다리가 3개 달린 솥으로 상징되었다. ‘정’(鼎)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게 그리스 신화에서는 다리가 3개 달린 의자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솥단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스도 중국과 비슷하다. 서로 영향을 받아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동시발생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륙을 뛰어 넘어 문명권에서 비슷한 양태가 나타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리 3개 달린 의자를 삼신할머니로 해석해도 되겠는가? 김 박사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중국의 정(鼎)도 삼신할머니로 볼 수 있다.
“3이라는 숫자의 기원은 탯줄 내의 3개 동맥과 정맥에서 왔다고 본다. 이 전제를 따른다면 삼발이 솥도 탯줄과 관련이 있고, 인격화하면 삼신할멈이고 제의(祭儀)의 도구로 만들면 솥이 될 수 있다.”
김 박사의 해석은 결국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 있는 상태가 우주창조의 상태라는 말이다. 우주창조의 상태인 뱃속에 있을 때야만 신으로부터 오는 신탁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신화에서는 이 뱃속에 있는 상태를 대단히 중시하였다는 말이 된다. 이 상황을 여러 가지 상징과 그림, 그리고 이야기들을 동원하여 후세에 전달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류문명의 모든 시작인 알파요, 이 알파는 결국 오메가가 되는 셈이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다.
솥보다도 더 중요한 상징이 뱀이다. 김 박사는 신화에서 탯줄을 뱀으로 나타냈다고 주장한다. 세계 각 지역의 신화에서 뱀이 등장한다. 뱀을 신으로 숭배하는 원시부족도 있다. 징그럽게 생긴 이 뱀이 신화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왜 탯줄이 뱀으로 나타나는가? 뱀은 도대체 무엇인가?
“뱀은 생긴 모습이 탯줄과 비슷하다. 탯줄도 줄이다. 뱀은 줄과 닮았다. 지상의 동물 중에서 탯줄과 가장 유사하게 생긴 모습의 동물이 뱀이다. 뱀은 또한 생과 사를 관장한다. 뱀의 독은 치명적이다. 독사에게 물리면 사망한다. 뱀의 독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 수 있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는 혐오스러운 동물이 바로 뱀이다. 생긴 것도 징그럽다. 아마도 가장 피하고 싶었던 동물이 뱀이 아니었던가 싶다.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이 죽음이라고 본다면, 뱀은 이 용도에 딱맞는 동물이다. 뱀은 땅속에서 산다. 땅 밑의 굴 속에서 대부분 서식한다. 지하세계에 있다가 굴 밖의 지상세계로 나온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굴 속’ 이라고 하는 어둠의 세계에서 있다가, 태양이 비치는 지상의 밝은 세계를 왕래하는 동물이 바로 뱀이다.
어둠의 세계는 죽음의 세계이고, 밝음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를 상징한다. 뱀은 죽음에서 탄생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이어진다. 뱀은 생과 사를 연결하는 동물인 것이다.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뱃속이라는 어둠의 세계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오는 상황이다. 그 연결 끈이 탯줄이다. 탯줄을 뱀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어주는 끈이자, 동시에 죽음으로 이끄는 끈이 바로 뱀인 것이다. 세계의 신화에서 가장 핵심은 여기에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상황이 탄생과 생명의 순간이고, 고대인들은 천지창조를 여기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설명하는 단초도 이 장면에 있었다고 본다.”
뇌간은 뇌의 중앙 밑부분에 위치한다. 그림에서 밝은 회색부분이 뇌간의 부위인데 쿤달리니 뱀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여기에 코브라 머리부분이 합성된 것이다. 뇌간은 인간 생명에 직결되는 기관으로, 그 기능의 상실 여부는 의학적 뇌사 판정의 잣대가 된다. |
쿤달리니 에너지와 뱀 상징
어둠에서 밝음으로 오는 것이 사(死)에서 생(生)으로 오는 것이다. 이걸 안다면 반대로 생(生)에서 사(死)로 가는 것도 알 수 있다. 오는 길을 알면 가는 길을 아는 것이다. 탄생을 알면 죽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광경이다. 죽고 난 뒤에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장면을 근거삼아 보이지 않는 장면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왜 죽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은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후세계가 있는 것인가? 죽음은 피할 수 없는가? 죽음과 삶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연결이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 등의 문제는 인간이 품어온 가장 커다란 의문이자 근원적인 물음이다. 죽음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모든 신화는 뱀을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 박사는 인 도 요 가에서 말 하는 ‘쿤달리니(kundalini)’ 에너지도 이런 각도에서 설명한다. 요가에서 말하는 쿤달리니 에너지는 인체의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 에너지가 각성(覺醒)되면서 인체의 7개 챠크라(경락)를 뚫고 머리 쪽으로 솟아올라가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이 신이 된 상태다.
보통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에너지를 각성시키지 못하고 죽는다. 쿤달리니의 각성이야 말로 모든 요가 자세의 목적이다. 어떻게 쿤달리니를 각성시킬 것인가?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요가경전에서 이 쿤달리니 에너지가 인체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이 뱀과 같다고 설파한다. 뱀이 하단전에서 똬리를 틀고 잠자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뱀이 3바퀴 반이 꼬여 있는 상태라고 한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 이 잠자는 뱀의 머리를 톡톡 자극하면 뱀이 깨어난다. 에너지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잠자고 있다 깨어나서 척추를 타고 올라갈 때 내는 소리가 ‘슈-슈’ 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요가에서는 우리 몸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경락을 ‘슈숨나’라고 부른다. 뱀이 올라갈 때 내는 소리인 ‘슈-슈’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슈숨나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하나씩의 경락이 붙어 있는데, 그게 ‘이다’와 ‘핑갈라’이다. 음과 양의 기능을 하는 경락이다. 이렇게 해서 핵심 경락이 3개다. 슈숨나의 좌우에는 이를 보좌하는 ‘이다’와 ‘핑갈라’가 자리 잡고 있다. 양쪽 콧구멍이 ‘이다’와 ‘핑갈라’와 연결되어 있다. 인체는 번갈아 숨을 쉰다. 번갈아 숨쉰다는 것은 이 음양의 경락을 활용해서 숨을 쉰다는 뜻이다. 한 번은 음으로, 한 번은 양으로 쉰다.
뱀이 각성되어 머리끝까지 올라가면 마치 파라솔이나 우산처럼 깨달은 성인의 머리 뒤에서 받치고 있다. 뱀의 머리가 우산처럼 요가 수행자의 머리 위에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인도 신화나 불교 관계 신화들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커다란 한 마리의 뱀이 우산 역할을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여러 마리가 우산 역할을 하는 장면도 보인다. 왜 이런 기괴한 장면이 등장하는가? 다 쿤달리니 때문이다. 그런데 김 박사의 설명을 듣고 필자는 의문이 하나 풀렸다.
“‘인체의 뇌간(腦幹, brain stem)이 뱀 머리의 형상과 비슷하고, 척수(脊髓, spinal cord)와 이어지는 전체적인 신경계를 완전한 뱀의 형태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뇌간이란 뇌의 중앙 밑부분에 위치한다. 연수·교·중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뇌간은 지각·의식·운동·혈압·호흡 등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생명의 잣대이므로 의학적으로는 뇌사 판정의 기준이 된다.
뇌간은 진화의 역사에서 일찍 출현한 구조로서 물고기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흥미롭게도 뇌간의 형상은 뱀의 형상과 유사한 것이다. 고대인들이 뇌간과 전신 신경계를 담당하는 척수의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뱀은 단순한 파충류로서의 형태가 아니라 생명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높다.”(김영균 <탯줄코드>, 47쪽)
고대 이집트신화에서 태양신 ‘라’는 태양선을 타고 어둠의 세계를 지나 아침이 되면 동쪽 지평선에서 떠오른다. 이때 ‘라’를 수행하는 야생고양이가 태양선의 운행을 방해하는 아포피스뱀의 목을 절단하여 죽여야 한다 |
인간의 탄생, 성장과정 설명하는 우주목
필자는 의사가 아니라서 의학을 깊이 몰랐다. 신화를 인체의 생리구조와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는 말이다. 같은 뱀을 보더라도 인문학자와 의사는 보는 각도가 다르다. 필자가 경탄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뱀을 인체의 뇌간으로 본다는 것, 쿤달리니를 척수와 뇌간으로 보면 미스터리가 풀린다. 필자는 20년 넘게 쿤달리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에너지가 폭발한 몇몇 정신계의 고단자를 인터뷰하면서 이 근원적인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추적해왔다.
그런데 이게 뇌간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김 박사를 통해서 처음 들었다. 무엇인가 결정적인 열쇠 같다. 뇌간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머리 위로 뱀이 우산처럼 펼쳐지는 신화 속의 장면들이 모두 이해가 간다.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고대인들도 이 쿤달리니 현상을 표현하려고 고민하다가 뱀에 귀결된 것이리라. 이쯤 되면 뱀이 흉측한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자주 신화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지 납득이 된다.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 가운데 하나가 우주목(宇宙木, cosmic tree)이라는 것이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거대한 나무다.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이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인도의 보리수인 무화과나무, 바빌론신화의 검은 키스카누나무, 단군 신화의 박달나무 등이다. 왜 세계 각지에 공통된 신화가 생겨났을까? 시원(始原)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산다.
고대인들은 수천 년을 사는 나무가 인간의 아득히 먼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이 모르는 과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인간의 태초를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숭배심이 생긴다. 나무는 인류의 시원을 알고 있다. 그 신화적 순간을 알고 있는 나무를 숭배하다 보면 그게 바로 우주목이 되는 셈이다.
한자의 ‘공(工)’자를 보면 우주목의 단서가 들어 있다. 땅(一)과 하늘(一)을 일직선으로 연결(I)하는 뜻을 지닌 글자가 공(工)이다. 따라서 공업(工業), 공학(工學) 등의 의미는 우주목에서 파생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이 우주목이 탯줄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탯줄의 기반이 되는 태반(胎盤)이 바로 우주목의 뿌리가 된다.
태반이 나무의 뿌리에 해당한다. 인간은 이 태반에서 자라난 탯줄의 끝에 달려 있으니까 우주목의 열매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한다. 뿌리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여 줄기가 되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떨어져서 썩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출생에서 사망까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우주목 신화에서 결정적인 부분이 ‘거꾸로 선 나무’다. 나무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고 땅을 향해 아래로 가지를 뻗는 형상이다. 인도신화에 나온다. ‘아스바타’라고 불리는 무화과 나무이다. 뿌리는 위에 있고, 가지는 아래에 있고, ‘베다’의 찬가는 그 잎사귀인 불멸의 아스바타에 있다고 한다.
김 박사는 이 ‘거꾸로 선 나무’는 태아가 뱃속에서 거꾸로 서 있는 장면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태아는 임신 기간 내내 모태에서 거꾸로 선 자세로 영양분을 흡수하며 자란다. 임신 10개월의 기간은 태아가 거꾸로 앉아 있는 모양이다. 거꾸로 있어야만 출산할 때 산도(産道)를 통해 태아의 머리가 밖으로 나온다.
출산을 한 이후에 탯줄을 자르면 그 다음부터는 반대의 자세를 취한다. 발을 땅에 딛고 서는 자세가 그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는 거꾸로 있지만, 나와서는 직립을 하게 된다. 한국의 ‘정역파(正易派)’에서는 뱃속은 선천(先天)이요, 직립을 하는 것은 후천(後天)이라고 주장한다. 거꾸로 선 나무의 상태는 선천이요, 곧 바로 선 나무의 상태는 후천에 해당한다. 김 박사는 태아가 거꾸로 선 자세가 조각되어 있는 형상이 스코틀랜드 로즐린 예배당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에딘버러 근처의 로즐린 예배당까지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확인한 사진을 보여준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면 제단이 있는 정면 중앙벽에 타락천사로 불리는 셈야자가 새끼줄에 결박당한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탯줄은 혈관 덩어리다. 태반에 부착되는 혈관은 나무 밑둥의 뿌리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내리는 형상을 보인다. 선천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역삼각형의 모습이다. 뱃속에서 나온 후천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그냥 삼각형이다.
역삼각형과 삼각형을 서로 겹치면 뿔이 6개인 별 모양의 도상(헥사그램)이 나온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되어 있는 오각형 말이다. 두 개의 삼각형을 서로 겹쳐서 만든 헥사그램은 선, 후천의 교역(交易)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걸 이스라엘 쪽에서 가져다 썼다. 우주목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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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역병이나 재액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기도를 하거나 주문을 외웠다. 이때 입구에 설치는 것이 시메나와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금줄’이다. 금줄이나 시메나와나 똑같다. 금줄은 아이를 낳았을 때 집 앞에 걸어 놓던 새끼줄이다.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다가 고추를 달아 놓았고, 딸을 낳으면 숯을 달아 놓았다. 금줄을 걸어 놓는 이유는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다만 우리는 1970년대 이후로 산업화가 되면서 금줄이 사라져버렸지만, 일본은 아직까지 이것을 지키고 있는 점이 다르다.
김 박사는 이 시메나와가 탯줄이요, 뱀이라는 두 가지 상징과 통한다고 본다. 일본 사람들은 숲 속의 오래된 나무인 신목(神木)에도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시메나와를 감는다. 이는 조상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숲은 태반이고 나무는 탯줄이다. ‘뱀 시메나와’는 탯줄의 형상이면서 탯줄 혈관의 기능을 묘사하고 있다. 큐수의 사가현 이마리 시에서는 매년 10월에 ‘시메나와 자르기’ 마츠리(축제)가 열린다. 새끼줄을 자르는 축제이다. 말하자면 신성한 탯줄을 자르는 행사다. 탯줄을 잘라야만 탄생이 된다. 출산할 때 태아의 탯줄을 절단하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축제다.
김 박사는 성형외과를 하면서 틈만 나면 세계 각지를 답사했다. 탯줄코드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리스·터키·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유럽각지는 물론이고, 아프리카·남미까지 쫓아다녔다. 보통사람은 돈이 없어서도 하기 어려운 답사다. 그가 의사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호기심과 탐구욕이 없어서 여행을 못한다. 돈이 있고 탐구욕이 결부돼야만 그게 가능하다. 요즘은 ‘사자’와 ‘해태’에 꽂혀 있다. 이걸 연구하려고 병원 문을 잠시 닫았다. 한 2년 정도 휴업을 예정하고 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30년 넘게 의사생활을 했으니 이제 좀 쉴 때도 되었다. 인생은 간이역에서 잠깐 쉬어가야 한다. 간이역에서 쉬지 않고 직행만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간이역에서 쉬는 것이 낭비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새로운 양분을 충전할 기회다. 근 탯줄을 풀면서 생과 사의 순환고리를 풀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환고리를 생각하면 인생을 헉헉대면서 너무 몰아붙이면서 살 일도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을까?
어떻게 이런 분야를 이렇게 깊이 연구하게 되었는가? 이거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체이탈 하는 체험을 자주 했다. 육체 밖에 세계가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이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병원 개업을 해서 돈이 생기니까 세계 각지의 전문가가 써놓은 책과 자료를 맘껏 구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현장을 답사하는 데 진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사자를 찾아서 인도와 중국, 중동을 쏘다니고 있다. 신화와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내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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