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향일암
거북이 등에 올라탄 向日庵
근심·걱정 없애는 최적지… 기도발 잘 받는 곳으로 알려져
바닷가에 있는 불교 사찰은 어떤 장점이 있는가? 산 속에 있는 사찰과는 무엇이 다른가? 차이는 물(水)이다. 수행처 주위에 물이 있고 없고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다르다. 물이 있으면 수기(水氣)가 보충된다. 수기가 있어야만 불(火) 기운을 조절할 수 있다. 불은 상승 작용을 하고, 물은 하강 작용을 한다. 불이 많고 물이 적으면 상승만 있고 하강은 없다. 하강이 없는 상승은 무리가 따른다. 피곤하다는 말이다.
불이 많으면 생기는 병이 화병(火病)이다. 공황장애가 대표적이다. 요즘 공황장애 환자가 엄청 많아졌다. 머리로 불이 치솟아서 생기는 병으로는 심장병도 있고, 뇌출혈도 있다. 정신과의 대부분이 불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동양사상에서는 진단한다. 불이 많으면 성격도 적극적이라 밀고 나가는 힘이 좋다. 또한 다변가(多辯家)가 많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지껄여대는 사람의 옆에 있는 것도 피곤하다. 신기(神氣)가 강한 사람도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접신된 신(神)이 계속 말을 시키기 때문에 영매는 자기 의지로 멈추기 어렵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대는 사람은 접신된 상태일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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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이 등에 올라탄 형국의 여수 향일암은 한국의 4대 관음도량으로 기도발 잘 받기로 유명하다. 오른편 기와 건물이 향일암이고, 쭉 뻗어나간 지형이 영락없는 거북이 모양이다. / 사진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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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이 잘 받는 사람도 불이 많은 사람이다. 확 타오르는 기질이 있어야 점화(點火)가 된다. 기도도 점화에 해당한다. 이러한 불의 기운을 내려 주는 역할은 물이 한다. 갈마음수(渴馬飮水 : 갈증 난 말이 물을 먹는 형국)라는 명당자리도 있듯이 물이 있어야만 열을 내릴 수 있고, 갈증을 해결한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요, 수화기제(水火旣濟)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소극적·내성적인 사람은 암산이 좋아
물이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정신노동자에게는 물이 좋지만, 내성적이고 너무 소극적인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소극적인 사람은 바위가 많은 암산(巖山)에 있는 것이 좋다. 적극적인 사람에게 물 가까이 있는 터가 맞는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터라는 것은 자기의 약점을 보완해 주고, 지나치게 강한 점을 눌러 주는 곳이다. 이게 비보(裨補) 아니겠는가?
터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살아 보면 안다. 3년 이내에 판가름 난다. 그 안에 건강에 이상이 없고, 하는 일이 무난하면 맞는 터라고 본다. 아니면 건강에 이상이 온다. 기준은 건강 유무이다. 3년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길다고 여겨지면 꿈을 체크하는 방법이 있다. 자기하고 맞는 인연 터는 꿈에 나타난다. 여러 가지 상징으로 꿈이 온다. 길몽인가, 흉몽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그 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또는 거기서 잠을 자 보았을 때 인연터는 꿈에 나타난다. 영대(靈臺:마음)가 밝은 사람은 단박에 꿈을 꾸고 둔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 꾼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빠르다.
물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바닷물, 강물, 호수, 연못으로 구별된다. 바닷물도 남해처럼 잔잔한 바닷물과 동해처럼 파도치는 바닷물의 성격이 약간 다르다. 극심한 번뇌에 휩싸여 있을 때에는 거친 파도가 있는 바다가 좋다. 파도를 쳐야만 번뇌를 씻어낸다. 어느 정도 씻어내면 잔잔한 바다로 옮기는 수순이다.
강물은 바다와는 또 다른 물이다. 바다가 망망대해라면 강물은 강 건너편에 풍경이 있다. 이 풍경이 있다는 점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강물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는 흘러간다는 점이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 흘러간다는 점이 사람에게 시간의 흐름을 연상하게 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모든 것이 지나간다. 번뇌, 걱정거리도 시간이 지나면 떠내려간다는 이치를 깨우쳐 준다. 강물처럼 세상사 모두가 흘러간다. 그래서 인도의 명상가들은 갠지스 강가에 앉아서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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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은 바위들이 온통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 / 사진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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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는 바다와 강물에 비해서 잔잔하다. 잔잔하다는 것은 내면세계에 대한 집중력을 더 키워 준다는 뜻이다. 호수는 또한 달이 비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도리가 여기에 있다. 하늘의 달은 하나인데, 지상의 호수마다 비치는 달은 천 개이다. 화엄(華嚴)사상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이치를 호수에 비친 달은 눈으로 보여 준다. 눈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 확실한 방법이다. 개념적으로는 이해하지만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장면이 눈에 보여야 하는데, 호수는 이러한 이치를 보여 주는 장점이 있다.
연못은 호수보다 작은 크기이다. 연못 역시 호수처럼 내면세계로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연못은 작기 때문에 사람이 인공으로 조성할 수 있는 물이다. 풍수적으로 비보(裨補)의 의미를 지닌다. 그 터가 지닌 허결(虛缺)한 부분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연못을 인공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의 기운이 분산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이거나, 주변이 너무 강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을 경우에 화기를 상쇄시키기 위한 역할이 그것이다.
여수 향일암(向日庵)은 남해를 보고 있다. 이 남해는 파도치는 동해와는 느낌이 다르다. 잔잔하다. 마치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은 고운 바다이다. 향일암 앞에 펼쳐진 바다는 푸르고 잔잔하다. 이 푸르고 잔잔한 바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생각이 들게 할까? 무심(無心)이 아닐까 싶다. 무심이란 근심, 걱정이 없는 마음을 가리킨다. 우리들 근심 걱정은 머릿속에 너무 많은 분별(分別)이 탱자나무 울타리처럼 가지를 뻗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한 목표, 자기가 생각해 놓은 어떤 기준, 자기가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관계 등의 기준이 있다. 사실은 이 기준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망상이요, 분별이라고 선사(禪師)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 마음속에 얼기설기 쳐놓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쉽게 걷어낼 수 없다. 이 울타리만 걷어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질 것 같은데 말이다. 걷어내고 싶어도 걷어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게 어려움이다. 이때 향일암에 올라가 그 앞에 푸르게 펼쳐진 남해를 보면 그 울타리를 치기 이전의 평온한 상태가 연상된다. 그게 무심이다. ‘아 내가 원래 저런 마음이었지 않은가. 살면서 이것저것 온갖 가시나무 줄기를 스스로 마음속에 쳐 놓은 것이다’는 이치를 바다는 보여 준다. 향일암은 이러한 본래 무심한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환경을 지니고 있다.
바닷가 관음사찰 해조음이 마음 진정시켜
특히 바닷가는 해조음(海潮音)이 들려온다. 1단계는 파도소리이고, 2단계는 바다에서 들려오는 알파파가 있다. 불교의 법화경(法華經)과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소리에 집중하는 관음(觀音)수행법을 제시하는데, 그 관음이란 4가지 소리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범음(梵音), 묘음(妙音), 관음(觀音), 해조음이 그것이다. 바닷가에 있는 절은 이 가운데서 해조음을 항상 들을 수 있는 위치이다. 낮에는 물론이거니와 꿈속에서도 해조음(파도소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24시간 항상 해조음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 ‘이 소리는 무엇인가’,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주체는 무엇인가?’하는 자각이 온다고 경전에 씌어 있다. 그 자각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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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일암의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해서 원통보전이라 했다고 전한다. / 사진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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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음사찰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이 해조음을 듣기 위해서이다.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紅蓮庵),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에는 금산의 보리암(菩提庵)과 여수 돌산의 향일암이 4대 관음도량이다. 모두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바닷가 관음도량에서 참선을 해본 경험자들에 의하면 바닷가에서는 파도소리 외 ’우~웅‘하는 독특한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 소리는 의식이 어느 정도 정화되었을 때 들린다.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고, 내면세계에 집중이 이루어진 수행자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과학자들은 바닷가에서 알파파가 나와서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켜 주는 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심한 정신적 고통이나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닷가를 걸어다니면 어느 정도 진정되는 효과를 느낀다.
향일암은 현재 돌산대교가 놓여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육지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돌산도(突山島)라는 섬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었다. 보통 사람이 큰 맘 먹어야 갈 수 있는 성지였던 것이다. 아래에서 보면 향일암은 바닷가 끝의 바위절벽 사이에 자리 잡았다. 마치 독수리 집 같은 험난한 지점에 암자를 잡은 것이다. ‘금색 거북이’라는 뜻의 금오산(金鰲山) 지맥이 흘러 내려오다가 바다를 만나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북동쪽 방향을 보고 바위가 뭉쳐진 지점에 향일암이 있다.
북동쪽 방향으로 자리 잡은 향일암은 아침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 이는 신령스런 거북이가 해를 맞이하는 형국이다. 옛날에는 금오암(金鰲庵), 영구암(靈龜庵)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두 거북이와 관련 있다. 이 금오산이 거북이 형세이다. 향일암에서 바닷가 쪽을 내려다보면 주차장 쪽의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거북이 머리와 흡사하다. 왼발은 물 밖에 있고, 오른 발은 물속에 담구고 있는 형세이다. 그래서 근래의 대선사인 경봉 선사는 이 절을 영구암이라고 불렀다.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절 곳곳에 바위는 거북이 등껍질과 비슷한 무늬들이 있다. 지질학에서 말하는 ‘주상절리’ 현상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향일암은 거북이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터는 순하지 않다. 터가 센 절이다.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이 절에서 6개월 이상 기도하기 어렵다고 한다. 터가 세면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주변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이 고비를 넘고 나면 기도발은 대단하다. 기도발도 아무나 오는 게 아니다. 고비를 넘어야 온다. 그 효과가 올 때는 확실하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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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자리로 알려진 관음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석벽 틈을 바라보고 있다. 2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자리로 알려진 관음전. / 사진 C영상미디어·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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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은 원효대사 수도터로 알려져
향일암에서 가장 기도발 잘 받는 곳은 관음전(觀音殿)이다.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바위 절벽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걸어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나고, 여기에 관음전이 있다. 관음전 뒤로는 모든 기도터가 그렇듯이 바위절벽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다.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야 기가 세다. 그리고 관음전 앞으로는 수채화 속에 나오는 푸른 바다가 고요히 펼쳐져 있다. 포근하면서 고요하고 평화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이 관음전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터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가 관음전에서 느낀 소감은 겨울에도 바람이 잔잔하다는 점이다. 대개 산 정상 부근의 절벽에 있는 암자들은 바람이 강해서 춥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이 관음전은 아주 포근하고 바람이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하고 살펴보니 서북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병풍 탓이었다. 관음전의 서북쪽으로 높은 바위절벽이 막아 주고 있다. 겨울에는 서북쪽에서 칼바람이 몰아쳐 오는데, 이 관음전은 천연적으로 조성된 바위병풍이 그 칼바람을 막아 주는 명당이었다. 서북은 바위절벽이 막아 주고 동남은 트여 있는 형국이었다.
세파에 시달려서 근심 덩어리가 천근의 무게로 짓눌러 오는 사람은 이 관음전에서 몇 시간 기도해 볼 것을 권한다. 죽기 살기로 기도하고 매달리면 그 어떤 가피가 있다고 믿는다. 박복한 중생은 매달릴 줄도 모른다.
1970년대 중반쯤 대구에 사는 어떤 택시기사가 이 관음전에 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머슴살이를 하다가 겨우 운전을 배워 개인택시를 갖게 되었다. 먹고 살 만해지니까 돈 놀이를 하던 부인이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 이 택시기사는 관음전에 와서 자식들 키워줄 새 여자를 좀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통행금지가 다가올 무렵 운전을 하는데, 웬 젊은 여자가 달성공원으로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시간에 왜 공원을? 그 여자 손님은 “거기 가서 죽으려고 한다. 남자에게 실연당했다. 처음 남자를 만났던 장소가 달성공원이니까 거기 가서 죽어야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이 여자 손님을 설득했다. “죽지 마라.”, “그러면 당신이 내 인생 책임 질 거냐?”까지 대화가 오갔다.
“책임지겠다.”
압축하면 이렇게 해서 택시기사와 재혼한 그 젊은 여자가 자식들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젊은 여자는 대구에서 밥 먹고 사는 집의 딸이라 돈도 있었다. 이 소문이 대구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퍼졌다. “향일암 기도발이 대단하다더라!”고. 지금도 대구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전라도의 향일암이 회자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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