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각축 예고하는 무한한 개발의 땅
» 해가 어슴푸레하게 질 무렵 목동이 양들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황금의 초원길’ 을 가로질러 잠불(옛 탈라스)로 가는 내내 만날 수 있는 양떼들은 중앙아시아 특유의 장관이다. |
오늘날은 석유와 천연가스, 각종 광물들을 쉼없이 운송하는
또다른 ‘황금의 초원길’ 이 됐다
이제 우리의 실크로드 답사길은 초원로 관문인 우루무치를 떠나 두 번째 구간인 중앙아시아 땅으로 접어들었다. 동서양 한가운데 낀 중앙아시아는 역사·문화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곳이다. 오늘날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 개발도상 지역이란 특수성 때문에 주목 받는다. 강대국들은 앞다퉈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21세기 이곳이 ‘저주 받은 각축장’이 될 것이란 전망도 무리가 아닌 성싶다.
중앙아시아의 자연환경은 높은 산맥과 고원, 초원과 사막, 비옥한 오아시스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지역 역사와 문화, 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산준령은 습기 머금은 공기의 이동을 가로막아 건조한 날씨를 만들고, 때로는 구름과 눈을 불러와 초원과 분지에 비를 내리게한다. 만년설의 녹은 물은 하천이나 복류(伏流)가 되어 저지대 오아시스를 기름지게 한다. 특히 카스피해 동쪽에서 몽골 고원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지대는 북방 유목민족들의 생존과 활동의 무대로서, 그들이 인류역사나 문명교류 전개에 남긴 발자취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사과의 아버지’ 와 일곱개의 물길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그만큼 흥미진진한 세계인 중앙아시아 답사는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로부터 시작된다. 우루무치에서 비행기를 탄지 두 시간만인 밤 8시 40분에 도착한 곳이다. 아직 어둡지 않아 시내 참관에 나섰다. 부쉬낀 거리를 지나 중앙공원에 이르러 몇 곳을 구경했다. 인상에 남는 건 횃불로 상징화한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탑이다. 주변의 정교회 성당이며, 군인회관을 개조한 악기박물관 등은 어스름 속에서도 고색창연하다.
카자흐말로 알마티는 ‘사과의 아버지’란 뜻이다. 아마도 사과 산지로 유명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150만이 사는 알마티는 텐산 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한 전원 도시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7개의 강이 모여드는 ‘세미레치에’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세미레치에’는 러시아말이고, 카자흐말로는 ‘제투수’라고 하는데, ‘일곱 개의 물길’이란 뜻이다. 옛 중국 문헌에는 ‘7하지대’(七河地帶)라고 해서 유목문화가 꽃핀 곳으로 전하고 있다. 원래 이 도시는 18세기 중엽의 제정 러시아 때, 동쪽 준가르 족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베르니 요새’였다가, 점차 도시로 발전해 1921년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카자흐 자치공화국(1929)과 소련방 카자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그리고 1991년 옛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수도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수도가 아스타나로 옮겨졌으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수도’구실을 하고 있다.
알마티를 구심점으로 살아온 카자흐족 역사는 대략 15세기 중엽부터 알려져 있다. 이 무렵 우즈벡계에서 분리된 한 무리가 세미레치에 지역에 몰려와 자신들을 투르크어로 ‘분리하다’, ‘자르다’의 뜻을 지닌 ‘카자흐'라고 부르면서 카심 칸의 지휘 아래 첫 국가를 세웠다. 그들은 그 뜻을 ’자유인‘으로 승화시켜 지금까지도 자유애호를 민족적 긍지로 여긴다.
황금인간 유물과 닮은 신라 금관
한글간판 달리는 국산차 행렬
알마티 중심가를 지나는데, 네거리의 일각에 ‘Silk Way'('비단의 길’)란 큼직한 간판을 단, 새하얀 고층건물이 앞을 막아선다. 현지안내원은 초원로를 통해 들어온 여러 나라 상품을 파는 ’국제상점‘이라고 소개한다. 꽤 붐비는 거리를 겨우 빠져나와 약 두 시간쯤 달리니, 길가에 ’실크로드 카페‘란 영문 간판이 눈에 띈다. 호기심도 있고 해서 찾아갔더니, 커피숍을 겸한 자그마한 식당이다. 양다리국과 고기만두를 청했는데, 무슨 향료를 쳤는지 냄사나 느끼한 맛은 없이 그런대로 입에 잘 맞았다. 중앙아시아 음식은 유목문화의 영향이 짙어 대체로 육식 위주에 소략한 편이다.
알마티 시내 중앙공원의 세계대전 전승기념관 주변에서 시미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
식사 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택시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추월한다. 순간 흠칫했다. 한글로 ○○회사 ‘개인택시’라고 쓴 우리나라 표시판이 그대로 달려있지 않는가.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중고 택시차량이 다량 수입돼 영업에 투입되고 있었다. 호객 효과를 노려 한글간판을 그대로 달고 다닌다는 게 역시 한국산 차를 운전하는 현지 기사의 설명이었다. 사실 중앙아시아는 물론, 멀리 터키 오지까지 우리네 국산차가 지천에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인 오후 7시 20분 마르키란 푯말이 세워진 곳에 차를 멈췄다. 텐산 산맥의 지맥으로 카자흐스탄의 남방경계를 이루고 있는 우중충한 알라타운 산맥의 북쪽 기숡이다. 수백호의 허름한 농가가 흩어져 있는 이곳이 1377년 전 현장 스님이 인도 구법 여행을 가면서 들렸다고 기록한 ‘천천(千泉)’이다. 샘이 천개나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녹음방초가 우거진 서돌궐왕의 피서지로 도 알려져있다. 잠깐 들러서 흔적이라도 찾고 싶었으나 바쁜 갈길이 허락치 않았다.
다시 3시간 넘게 달리니 밤늦게 최종 목적지 잠부르(옛 탈라스)에 도착했다. 알마티부터 약 500km나 되는 길을 장장 10시간 넘게 달려왔다. ‘실크로드’란 의욕에만 부풀어 있지, 아직 길 군데군데는 파헤쳐진대로 남아있다. 이정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가로등도 변변찮아 운전기사도 몇번이고 길을 못찾고 헷갈려한다. 다행히 웬 젊은이가 자기 차를 몰고 우리 차를 이끌어주면서 숙소인 잠브르 호텔로 안내했다. 정말 고마웠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우리는 이 고장 명물인 적포도주 한잔씩을 나누며 하루의 노독을 풀었다. 황금의 대초원을 누린 보람이 자못 컸다.
11∼12세기 트르크족 초원 대이동…몽골인과 섞여 ‘방랑자’ 카자흐인 탄생
카자흐스탄의 민족사
카자흐 인의 뿌리는 11~12세기 본격화한 투르크 족 대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투르크 족들은 6~7세기 중국 서북방에 돌궐제국(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은 나라다)을 세웠다가 당에 의해 중국 신장성과 카자흐 초원으로 쫓겨와 다시 유목국가를 세우게 된다. 이 지역은 뒤이어 13~15세기 강력한 몽골 제국과 차가타이 한국, 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몽골인과 투르크인들이 서로 혼혈되어 카자흐인의 선조들이 나타난다. 카자흐 사람들이 투르크 계통 언어를 쓰면서도 용모나 신체가 몽골 사람과 비슷한 특징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 사람들도 투르크 계통 언어를 쓰고 있어 이들 민족의 조상은 한뿌리라고 할 정도로 가깝다.
카자흐인들은 북방 우즈벡 인들과 함께 티무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16세기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를 형성한다. 이 나라가 카자흐 칸국으로 15세기 이후 중국 등과의 말·비단 무역으로 쇠잔해진 초원길 교역의 명맥을 잇게 된다. 그러나 16~18세기 동쪽 신장성 중가르 지역의 몽골 부족인 오이라트의 침공으로 다시 국토의 상당부분을 잠식당하게 된다. 카자흐 칸국은 동방에 진출한 러시아에 기대어 몽골의 침입을 막아보려했으나 거꾸로 19세기 중엽 러시아 제국의 일부분으로 흡수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뒤에는 옛 소련의 카자흐 자치 공화국이 되었으나, 러시아인들이 다수 들어와 독립한 지금도 인구의 30%이상은 러시아계 슬라브인이 차지하고 있다. 또 혁명 당시 다수의 카자흐 인들이 중국 신장, 몽골 지역으로 피신하면서 현재 중국과 몽골쪽에도 90만명이 넘는 카자흐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930년대에는 연해주 조선인들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카자흐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영욕으로 얼룩진 카자흐 초원의 민족 변천사는 실크로드 교류가 낳은 이산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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