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정민_꽃밭 속의 생각_02

醉月 2011. 4. 10. 07:46

꽃 없는 시절의 봄빛 자랑, 동백(冬栢)


우리나라에는 네 계절 가운데 오직 겨울철에만 피는 꽃이 없다. 매화가 남녘 땅 따뜻한 지역에 있기는 해도 봄에 피는 춘매(春梅)뿐이고, 동매(冬梅)는 없다. 북쪽 지역 추운 곳에는 방 안에서 화분에 담아 기르는 분매(盆梅)가 있을 뿐이다. 겨울철은 흰 눈과 푸른 소나무 외에는 꽃을 볼 수 없는 쓸쓸한 시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남쪽 지역에는 동백꽃이 있어 겨울철에도 능히 곱고 화려한 붉은 꽃을 피워, 꽃 없는 시절에 홀로 봄빛을 자랑한다. 이 꽃이 겨울철에 피는 까닭에 동백꽃이란 이름이 생겼다. 그 중에는 봄철에 피는 것도 있어 춘백(春栢)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안평대군의 거처를 노래한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 중에도 〈눈 속의 동백(雪中冬栢)〉이 있다.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는 이렇게 노래했다.

섣달 밑 음기 엉겨 운수 이미 다했거니
한 자락 봄 뜻이 남 몰래 통했구나.
대나무와 매화가 서로 응해 양보하여
눈 속의 꽃과 잎이 푸른 속에 붉어라.
臘底凝陰數己窮 一端春意暗然通
竹友梅兄應互讓 雪中花葉翠交紅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동백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동백꽃에는 네 종류가 있다. 홑잎에 붉은 꽃은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는 것이니, 세상에서 동백이라고 일컫는다. 홑잎은 남쪽 지역 바다 섬 가운데서 잘 산다. 혹 봄에 꽃피는 것은 춘백이라고 한다.

이로 볼 때 같은 홑잎이라도 꽃피는 시절이 서로 다름에 따라, 겨울철에 피는 것은 동백이라 하고, 봄철에 피는 것은 춘백이라 함을 알 수 있다. 《양화소록》은 계속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백성들이 그 열매를 채취하여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른다. 동백기름이라고 부른다.

이로 볼 때 동백이 꽃도 좋고 기름도 좋은, 명실이 상부한 꽃나무임을 알겠다.
동백은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산다(山茶)이다. 산다라는 이름은 동백의 잎사귀가 산다와 비슷하게 생겨서 붙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춘(椿)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고도 부른다. 이백(李白) 시집의 주를 보면, “해홍화는 신라국에서 나는데 매우 곱다”고 적혀 있다. 《유서찬요(類書簒要)》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신라국의 해홍화는 바로 옅은 산다인데 조금 작다. 1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2월까지 간다. 매화와 꽃피는 시기가 같아서 다매(茶梅)라고도 한다.

유사형(劉士亨)의 시에는 해홍화를 이렇게 노래했다.

작은 정원 아직 추워 따스한 때 아닌데
해홍화는 피어서 한낮이 더디어라.
小院猶寒未暖時 海紅花發晝遲遲

이 꽃이 겨울철의 이름난 꽃이니만큼 일찍 중국 땅에 옮겨 심어져 시인과 문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역사적으로 유명한 꽃 가운데 하나임을 알아야 하겠다.


 

황금 위의 붉은 비단, 해당화(海棠花)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말며
잎 핀다고 설워 마라.
동삼(冬三) 석 달 꼭 죽었다
명년 삼월 다시 오리.

이것은 세상에 흔히 유행하는 노래다. 해당화라고 하면 벌써 명사십리를 생각게 하는 바, 명사(明沙)의 밝을 ‘명(明)’자는 울 ‘명(鳴)’자로 쓰는 것이 옳다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쓰는 것처럼 ‘명(明)’으로 쓴다.


요즘 해수욕이나 피서지로 손꼽는 황해도 장연(長淵)의 몽금포(夢金浦)는 해당화로 이름난 곳이다. 백설같이 고운 모래가 햇볕에 비칠 때는 금빛이 번쩍여서 눈이 부신다. 바람이 불면 흘러 움직여서 혹 기이한 봉우리가 되고, 혹은 그윽한 골짜기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이한 변화가 있다. 백사장 가운데 해당화가 아주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황금 위에 붉은 비단을 펼쳐놓은 것만 같다.

 

 그 아름다움의 극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오직 경탄케 할 뿐, 말로는 형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조화의 장난도 이만하면 어지간한 것이다.
해당화로 이름난 곳은 관동에도 있다. 강원도 간성(杆城) 죽도(竹島)의 명사(明沙)와 울진(蔚珍) 망양정(望洋亭)의 십리명사(十里明沙)는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해당화가 만발할 때는 비단으로 수를 놓았다 할는지 한 폭의 그림이라 할는지, 아무튼 관동의 승경(勝景)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한다. 이 명사해당(明沙海棠)에 대해서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묻노니 저 선사야 관동 풍경 어떻더니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어 있고
원포(遠浦)에 양양백구(兩兩白鷗)는 비소우(飛踈雨)하더라

이것은 백제 성충(成忠)의 시조라고들 하지만 실은 후세 사람이 이름을 빌려 지은 것임은 나의 벗인 손진태 씨가 이미 고증한 바 있다. 이 시조는 고려의 승려 선탄(禪坦)이 지은 〈영동을 유람하고[遊嶺東]〉란 시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명사십리에 해당화 붉게 피고
흰 갈매기 짝을 지어 보슬비에 나누나.
明沙十里海棠紅 白鷗兩兩飛踈雨

선탄은 이 시로 인해 크게 이름이 나서 시 속의 표현을 따서 소우선사(踈雨禪師)라 불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해당화에 대해 서유구(徐有榘)는 그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일명 해홍(海紅)으로, 조선의 해당은 중국 것과는 다르니 홍장미(紅薔薇)의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강원도와 황해도 지역에 나는 금사해당(金沙海棠)은 뿌리도 없고 잎도 없이 바닷가 백사장에 흩어져 있는 짙은 붉은 색의 꽃이다. 바라보면 진 꽃잎이 땅위에 점을 찍은 것 같아서 아주 화려하지만, 이것은 해당의 별종이다.

하지만 해당은 중국 보다 우리나라가 더 유명하다.


 

요염하고 가녀린 미인, 살구꽃


우리나라 노래인 〈화편(花編)〉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이로다.
연화(蓮花)는 군자요
행화(杏花)는 소인이라.

연꽃을 군자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살구꽃을 소인이라 함을 수긍하기 어렵다. 보는 바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 나왔어도 제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 해서 군자에 견준다면, 적어도 살구꽃은 요염하니 미인에 견주어야 할 것이다.
하기야 아름답기로 말하면 복사꽃도 있고 해당화도 있고, 장미도 있다. 살구꽃이 비록 곱고 어여쁜 것은 복사꽃만 못하고, 밝고 화려하기로는 해당화에 못 미치며, 아름다운 것은 은 장미에 미치지 못하나, 요염한 것은 도화 해당 장미가 또한 행화에 한 걸음 양보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구꽃은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지(杜牧之)가 한 번 노래한 이래 술과 깊은 관계를 가진 꽃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행화를 위해 한층 더 운치를 돋우었다.
우리나라에는 어느 곳 살구꽃이 없는 것이 없다. 서울에서 살구꽃이 유명한 곳을 꼽는다면 필운대(弼雲臺)였다. 옛날은 필운대의 살구꽃과 성북동의 살구꽃이 천연정(天然亭)의 연꽃과 동대문밖 수양버들과 나란히 일컬어져 서울에서 꽃과 버들을 구경하는 나들이가 성행하였다. 살구꽃에 얽힌 로맨스로는 고려 때 정포(鄭誧)의 〈별정인(別情人)〉이란 시만한 것이 없다. 그는 당시 불우했던 사람이다. 어느 으슥한 곳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 거기로 가끔 가서 놀았다. 때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밤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새벽에 사랑하는 여인과 작별하고 돌아오려 할 때, 그 순간의 광경을 그려낸 것이 바로 이 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오경의 등불은 남은 화장 비추고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어진다.
반 뜰 지는 달에 문 밀고 나서자니
살구꽃 성근 그림자 옷 위로 가득해라.
五更燈燭照殘粧 欲話別離先斷腸
落月半庭推戶出 杏花疎影滿衣裳

이것은 정포가 새벽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 방문을 열고 뜰로 내려서는 광경이다. 달은 아직 채 떨이지지 않았고, 살구꽃 그림자는 옷 위로 가득히 비친다. 이 때 이 장면의 깊은 정회는 그가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살구꽃은 복사꽃과 마찬가지로 간혹 단독으로 회고시의 자료가 된 경우도 있다. 장일(張鎰)의 〈신라회고(新羅懷古)〉시가 바로 그것이다.

4백년 전 그 옛날 재상의 집안에서
누대 곁에 다퉈 피니 몇 영웅이 뽐냈던가.
다만 이제 번화함을 뉘더러 물어보리
살구꽃 복사꽃이 이슬 맞아 울고 있네.
四百年前將相家 兢開臺榭幾雄誇
只今繁麗憑誰問 野杏桃花泣露華

또 조선 초기 변중량(卞仲良)이 지은 〈송도회고(松都懷古)〉시도 있다.

송악산 에둘러서 강물이 감도나니
그 많던 붉은 대문 푸른 이끼 덮였구나.
봄바람 비를 불어 한 차례 지나가자
성에는 남북 없이 살구꽃 온통 폈네.
松山繚繞水縈回 多少朱門盡綠苔
唯有東風吹雨過 城南城北杏花開

이로 보면 경주와 개성에 옛날부터 살구꽃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보충]

행화에 대해서도 수많은 명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선택하여 적지 못했다. 옛날 서울에는 살구꽃이 아주 흔했다. 집집마다 거의 살구나무 한두 그루 없는 집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곳이 필운대(弼雲臺)의 살구꽃이었다 한다.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대저 한양성 십만호가
봄 오면 온통 모두 행화촌이라네.
大抵王城十萬戶 春來都是杏花村

이로 볼 때 당시 한양에 얼마나 살구꽃이 번성했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앞서 행화를 말하면서 이 사실과 이 시구를 빼먹었고, 더욱이 박지원의 〈필운대간행화(弼雲臺看杏花)〉시를 적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유감이다.


 

선이 가는 동양적 미인, 복사꽃


도화(桃花)는 무슨 일로 홍장(紅粧)을 지어내서
동풍 세우(細雨)에 눈물을 머금었나.
삼춘(三春)이 쉬 지나가니 그를 설어 하노라

이것은 안민영(安玟英)이 지은 유명한 〈도화가(桃花歌)〉다. 복사꽃은 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이름난 꽃으로 살구꽃과 마찬가지로 여성적인 꽃이다. 다만 살구꽃의 아름다움이 요부형(妖婦型)이라고 한다면, 복사꽃의 아름다움은 염부형(艶婦型)이라 할만하다. 복사꽃은 어디까지나 선이 가는 동양적 미인이다.
이 선이 가는 동양적 미인이 붉은 단장을 하고 봄바람 보슬비 속에 우는 것은 봄날이 덧없음을 서러워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노래인가.
위 시와 담긴 뜻은 자못 다르나 정조(情調)가 같은 것은 이행원(李行遠)의 〈영도(咏桃)〉시다.

묻노라 복사꽃아
보슬비에 왜 우느냐?
주인님 병 오랜지라
봄바람도 반갑잖네.
爲問桃花泣 如何細雨中
主人多病久 無意笑春風

복사꽃이 보슬비를 맞으며 우는 것을 요염의 극치로 본 것이 조선 시인의 공통점이다. 하나하나 굳이 예를 들 것도 없이 대개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복사꽃은 한갓 몇몇 시인이 노래의 대상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일반 백성의 관상용으로도 옛날부터 역사 상에 이름이 드러난 꽃이다. 《삼국사기》에 ‘도리화(桃李華)’ 또는 ‘도리재화(桃李再華)’라 하고, 계절과 맞지 않는 것을 들 때 흔히 겨울철의 복사꽃을 들곤 했으니, 이것이 수천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복사꽃이 많았던 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복사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여자의 이름에 쓴 것은 신라 때 선도성모(仙桃聖母)와 도화낭(桃花娘)이 있고, 오늘날도 기생의 이름에 변함없이 도화가 흔함을 볼 수 있다. 꽃 좋고 열매 좋아 명실이 상부한 복사꽃은 우리나라 사람과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기에 구한말에 일찍 황성신문에서 복사꽃으로 나라꽃을 삼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던 것이다.
중국 땅에서는 아득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전설로 해서 도리어 복사꽃의 진면목이 가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복사꽃을 노래한 염시(艶詩)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나라 때 시인 최호(崔灝)의 다음 시가 가장 유명하다.


지난 해 바로 오늘 이 집 문 가운데서
그대 얼굴 복사꽃이 서로 비쳐 붉었지.
그대 얼굴 어디 갔나 알 길이 없는데
복사꽃 예전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보충]

내 집에 한 마리 흰 개 있는데
손님 와도 짖을 줄 아예 모르네.
복사꽃 아래서 잠을 자는데
진 꽃이 개 수염에 묻어 있구나.
吾家一白犬 見客不知吠
紅桃花下宿 花落犬鬚在

이것은 헌종 때 시인 녹차(綠此) 황오(黃五)가 지은 〈유흥(幽興)〉시다. 직접 복사꽃을 읊은 것은 아니지만, 앞서 도화(桃花)를 이야기할 때 그 시를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만 깜빡 잊어버린 것이 애석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앞의 글에서 도화를 정부(貞婦)에 견준 것이다. 그때 비록 행화를 요부(妖婦)와 대칭하기 위해 정부라고는 하였으나, 예로부터 도화를 풍류랑(風流郞)에 견준 노래를 보던지, 《시경》에서 “복사꽃 어여뻐라, 그 꽃이 활짝 폈네.(桃之夭夭 灼灼其花)”라고 한 것을 보던지, 그밖에 전설에 보이는 것을 종합해 본다면 도화 또한 요부(妖婦)라고 할 수는 있어도 정부(貞婦)라고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화려한 꽃의 여왕, 장미


여러 꽃의 등급을 매길 적에 모란을 으뜸으로 삼고 작약을 그 다음으로 친다. 그런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란은 화왕(花王) 즉 꽃나라 왕이오 작약은 화상(花相), 곧 꽃나라 재상이라 한다. 그렇다면 장미는 무엇이라 할까. 화비(花妃), 즉 꽃나라 왕비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옛날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에 장미가 가인(佳人)이라 하여 이미 화왕(花王)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로 보면 장미는 화왕의 비빈(妃嬪), 즉 왕비라 해도 역사적 근거가 없는 망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장미가 서양에서는 3천년 전에 벌써 화훼의 여왕으로 찬미를 받지 않았던가.
장미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아리안 사람들의 문자에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이 꽃으로 환락과 연애와 지혜를 한데 합친 것으로 여긴다. 영국에서는 중세의 장미전쟁이 있은 이후, 이 꽃으로 나라꽃을 삼았다.


영국의 정원에는 반드시 장미를 즐겨 길러 아름다운 화단을 만드는 것이 그네들의 자랑이라 한다. 서양 사람은 남녀 사이의 애정 표시를 향기로운 꽃을 통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미는 그보다 한층 더 금발 처녀의 찬미를 받아 장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생명의 환희에 뛰놀며, 붉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서양에서 장미라고 하면 그 종류가 너무나 많고 범위가 넓어, 동양에서 말하는 장미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줄기는 덩굴지는 성질과 타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꽃잎은 다섯 개가 보통이나 더 많은 것도 있다. 장미의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와 짙은 향기는 도저히 보통 꽃이 따라 올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군방보(群芳譜)》에서는 장미를 이렇게 평했다.

줄기가 푸르고 가시가 많다. 꽃은 홑잎이면서 흰 것이 더욱 향기롭다.

몇 가지 다른 품종들을 열거한 가운데 붉은 장미보다 황색 장미를 상품으로 삼았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황색 장미는 색깔이 짙고 꽃이 크며, 운치와 교태가 있다. 자줏빛 줄기에 가지가 촘촘해서 번화함을 아낄만 하다고 했다.
고금의 시인 가운데 장미를 읊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중에서도 고려 이규보(李奎報)의 〈장미〉시가 유명하고, 보한재(保閒齋) 신숙주(申叔舟)의 〈장미〉시도 유명하다. 그러나 직접 장미를 노래한 것은 아니지만 당나라 사람의 시에 보이는 다음 구절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곤 한다.

미풍이 건듯 불자 수정 주렴 움직이고
한 시렁 장미꽃에 집안 온통 향기롭네.
水晶簾動微風起 一架薔薇滿院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