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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교수의 한옥미학

醉月 2011. 1. 26. 08:57

 

 

 

 

한민족의 전통과 함께한 한옥


한옥은 말 그대로 ‘한국의 가옥’이다. 한옥은 보통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알고 있지만 뿌리를 따지면 이보다는 더 오래되었고 그 범위도 더 넓다.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사람들이 살면서 자연환경, 문화, 사상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공통적 주거형식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조선시대 들어서 정형화된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조선 이전의 주거 유구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긴 하나, 고려 후기에 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의 전형인 조선시대 형식에 근접하게 된다. 계급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반드시 양반들만의 가옥일 필요는 없다. 흔히 민가라고 하는 중하층의 주거에도 한옥 요소들이 일부이기는 하나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한민족의 가옥을 구성한 것이니 한옥은 이것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최근 한옥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방향이 점점 규모가 크고 형식도 어느 수준 이상이 되는 ‘고가의 부잣집’으로 잡혀가고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작은 규모의 개인 집에 전통 민가의 특징을 섞으면 그 또한 한옥을 현대화한 훌륭한 예에 해당한다. 단, 좁혀보자면 한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한정 지을 수 있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 안채가 안행랑채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으로,계급사회의 형식미를 잘 보여준다.

 

 

한옥을 낳은 배경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웅장하지는 않으나 변화무쌍한 산과 강, 사계절이 뚜렷하면서 해가 좋은 빛, 겨울에는 서북풍이 불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부는 바람 등이 자연환경 요소이다. 문화 요소로는 상대주의 국민성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그때그때 각 집마다 사정에 맞춰 개성을 충분히 살린다는 뜻이다. 사상은 고려시대 때 융성했던 노장이 제일 큰 밑바탕을 이루며 여기에 유교의 형식미가 가미되면서 완성되었다. 고려시대 주거는 외형은 조선시대의 한옥과 유사하나 많이 단순해서 변화무쌍하고 아기자기한 한옥 특유의 특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차이는 유교 형식미의 유무에 따른 결과이다. 원래 유교 형식미는 매우 엄숙하고 정형적이지만 이것이 노장사상 및 한국적 상대주의와 합해지면서 규칙적이면서도 동시에 변화무쌍한 다양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융합 또는 통섭의 좋은 예일 수 있는데, 실제로 노장사상과 유교사상의 영향권 아래 드는 한·중·일 삼국의 주거를 비교해 봐도 한옥이 제일 변화무쌍한 특징을 보인다. 더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유교와 노장은 서로 반대편에 서는 사상인데 이 둘을 하나로 합해서 규칙적 정형성과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동시에 얻어낸 예는 가히 한옥이 유일하다. 한국인 특유의 혼성 기질이 여지없이 드러난 대표적 예가 바로 한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옥의 구체적 특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가지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 세 가지를 요약했다.

 

 

창덕궁 연경당 안채 한옥에는 바람 길에 맞춘 통<通>의 구조가 있고 이것은 곧 사람 사이의 연락 길이기도 하다.

 

 

햇빛과 친하고 바람이 잘 드는 한옥


첫째, 한옥은 바람과 햇빛을 받아들여 이용하는 데 매우 뛰어난 가옥구조를 자랑한다. 집밖과 집안에 그 비밀이 있는데, 집밖에서는 자연 지세에 맞춰 집을 짓는 풍수지리가 그 비밀이다. 집안에서는 통(通)을 최대한 살린 배치구도가 그 비밀이다. 둘을 합해보면 이렇다. 바람도 자동차처럼 다니는 길이 있는데 그 길목에 집을 짓되, 그것이 거추장스럽지 않게 집을 짜면 집 안에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오간다. 햇빛도 마찬가지이다.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데, 이를테면 해바라기처럼 거기에 맞춰 집도 쫓아다니면 집 안에는 항상 따뜻한 빛이 가득 찬다. 물론 겨울에는 바람을 피하고 여름에는 햇빛을 피하는 상식쯤은 가장 잘 지키는 지혜로운 집이 또한 한옥이다. 바람은 여름에 유리하고 햇빛은 겨울에 유리하니 한옥을 친환경 주택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통을 살린 배치구도는 곧 한옥의 공간적 특징으로 발전하는데,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가 그것이다. 문을 다 열면 각목으로 짠 상자 뼈대처럼 되는데, 여기서부터 문을 하나씩 닫을 때마다 집은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한다. 뚫리고 막히는 방향과 정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쪽을 막고 저쪽을 뚫을 수도 있고 이쪽저쪽 다 막고 요쪽만 뚫을 수도 있다. 가히 가변형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그것도 힘들이지 않고 창문 여닫을 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셋째, 한옥은 마당과 함께 있어야 건물의 장점이 충분히 발현된다. 한옥의 건축적 공간적 성격은 집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 밖의 빈 마당이 있어야 완성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옥에서는 많은 방들이 앞뒷면에 모두 창이나 문을 갖는데 이것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앞뒷면에 모두 마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도 다닐 수 있고 바람도 잘 통하며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혹은 한옥은 각 채에 꺾임이 많은데 이것을 담아내는 주변의 여백이 있어야 불편해지지 않고 오히려 공간이 풍부해지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데, 중요한 것은 한옥의 특징들은 번호 붙여 나열할 성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특징들이 교합으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특징들을 추가로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추사고택 안채 이쪽 채와 저쪽 채를 하나의 큰 집의 구성요소로 묶어 주면서 상호작용을 일으키게 해주는 것은 중간에 있는 마당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통은 식구들 사이의 간접 의사소통을 늘려주면서 동시에 집안에서 환기와 통풍을 최대로 늘려준다. 사람 사이에 연락이 오가는 길과 바람이 통하는 길은 결국 같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는 남향을 면한 벽의 면적을 늘려서 겨울에 햇빛을 집안 구석구석에 들이는 데 유리하다. 한옥은 마음만 먹으면 북향 방이 하나도 안 나오게 할 수도 있는 구조를 갖는 가옥이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구조는 마당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준다.

 

안동 남촌댁 문을 다 열면 뼈대만 남아 누각이 된다.

 


사실 마당 없는 한옥은 흔히 하는 말로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이런 여러 내용들이 종합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돕는 것이 마당이다. 마당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가회동의 도심 한옥만 가도 사람들은 좋다고 난리들인데 마당을 맘껏 살린 시골에 있는 진짜 한옥은 도심 한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요즘 아파트에 싫증 난 사람들이 한옥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옥의 특징을 충분히 알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한옥에 사는 진짜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옥은 최소한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아야 진짜 한옥에 사는 것이다. 껍질만 한옥처럼 지은 다음 통유리 붙이고 에어컨 달고 사는 것은 한옥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목조-기와-개인집’에 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한옥이 절대선도 아니다. 한옥에 살아본 적이 있는 어르신들은 불편한 점에 대해서도 많이들 말씀하신다. 한옥이 안 맞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주요 개념 설명

  1. 액자는 한옥의 창과 문의 틀을 의미한다. 품격 있는 한옥을 구별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 안의 중요한 포인트에 풍경작용을 실어냈는지의 여부이다. 한옥을 짓고 살았던 조선 선비의 문화적 안목과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한데, 집 주인은 집 안 곳곳의 창과 문을 액자로 하여 수십 장의 풍경화를 장르별로 즐겼다. 창 하나에서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내니 집안 전체는 하나의 큰 미술관이 된다. 그것도 액자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 미술관이 되는 한옥만의 심미적 전략이다.
  2. 이 글에서 풍경요소는 한옥에서 창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을 구성하는 개별요소를 의미한다.
  3. 이 글에서 풍경작용은 한옥에서 창을 통해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원리 등을 의미한다.

신경이 예민하거나 프라이버시 침해가 정말 싫은 사람은 한옥을 피하는 것이 좋다. 한옥의 장점은 매우 세밀하고 섬세한 것이어서 적성에도 맞고 그것을 잘 알고 즐길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선물을 선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별무효과이고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다도(茶道)와 같다. 티백으로 된 녹차 마신다고 어디 가서 다도라고 할 수 없듯이, 한옥에도 도가 있어서 이것을 지키고 즐길 줄 알아야 한옥에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의 사랑채가 중심이 되고, 안채는 어미 품처럼 자잘한 채를 넉넉히 품는다

한옥은 먼발치서 전체 모습을 봐야 한다. 집은 주인의 얼굴이자 성품이다. 한국에서 나이 먹는 지혜 가운데 하나가 먼발치서 뒷짐 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집의 앉은 품새를 보고 그 집의 가운을 읽어내는 일이다. 집의 전경에서는 그만큼 집 주인과 가족에 대한 많은 정보가 읽힌다. 하물며 유교문명 시대 때 농촌 지역공동체의 지배계층 주거였던 한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옥의 전경은 집 주인의 인격미의 발로이다. 유교적 형식과 사회적 격식을 두루 갖추면서도 노장사상을 바닥에 깔아 아기자기한 공예미를 잊지 않았다. 엄격하면서도 소탈한 양면성이 동시에 느껴진다.

  

창덕궁 낙선재 이 집은 긴 수평선을 중심으로 지붕의 구성미와 담의 장식미가 잘 어우러진 조화가 뛰어나다. 기회의 검고
강한 수평선은 장미(壯美)를 빌려 직설적 명쾌함을 이뤘다.대상의 미적 가치가 막힘없이 구현되는 정심(情深)의 경지이다.

 

산을 등지고 논밭 한가운데 뿌리박듯 자리 잡은 한옥의 전경은 참으로 볼만한 거리이다. 안정적 수평선을 긋지만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지붕과 몸통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유교문명의 위계를 반영하지만 더 깊은 속뜻은 그 위계가 서로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어울림을 노린다는 점이다. 유교사상의 가장 밑바닥에 ‘인(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한옥의 전경에서는 어울림의 미학을 읽어내야 한다. 가문을 책임 진 가부장의 사랑채가 중심을 잡지만 안채와의 다소곳한 어울림을 잊지 않는다. 안채는 어미의 품처럼 자잘한 채들을 넉넉하게 품는다.

 

공중에서 전체 구성을 보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바깥행랑채, 사랑채, 안행랑채, 안채를 기본으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채가 분화하고 이것들을 담는 마당이 짜이며 그 사이를 담이 가르고 문이 난다. 건곤이감 의 8괘를 이리 키우고 저리 잘라 사각형 맞추기를 한 것 같다. 오묘한 우주의 구성을 인간세계로 단순화시켜 놓은 구성이니 상대성의 변화무쌍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때로는 길한 한자를 본떠 복을 빌기도 했다. 채를 나누고 마당을 가르는 데에도 목적과 법칙이 있었다는 뜻이다. 모두 땅 위에 터 잡고 사는 인간살이를 평화롭게 보듬기 위한 것이었다.

규칙성을 거부하는 한옥의 창문 구성

최근 우리 사회는 집을 끼고 양극단을 오가며 방황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주기적으로 나라를 휩쓸며 집을 망쳐놓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참살이 바람이 불고 있고 집도 이것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다소 제한적이긴 하지만 집을 둘러싼 참살이 대상에 한옥이 자주 거론된다. 부동산 광풍에 한옥 바람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옥이 조금 밀리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긍정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한옥이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한옥의 과학성은 주로 콘크리트와 유리 중심의 산업화된 근대식 집에 대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물론 이것은 맞는 말이다. 한옥은 분명히 새집 증후군과 냉난방의 문제점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다. 나무, 흙, 창호지, 기와 같은 자연재료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체의 생체 리듬과 일체가 되며 열 조절 능력도 뛰어나다. 이 때문에 실내 마감재에 자연재료를 섞은 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많이 부족하다. 이것은 반드시 한옥이 아니라도 전통재료라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들이다. 한옥은 건축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 말고 훨씬 크고 중요한 장점들이 많다. 한옥에서 나무나 흙만 떼어내 그것을 장점이라고 하는 것은 한옥을 모욕하는 일이다. 한옥은 통째로 그 속에서 살아야 참다운 장점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리얼리즘, 인상, 순환 공간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오죽현 한옥의 창문은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있는 친자의 정을 표현한다.

 

 

리얼리즘은 창문의 구성에 잘 드러난다. 한옥의 창문은 불규칙하다. 행랑채처럼 기능이 중시되는 채를 제외하고 같은 창이 반복되는 법은 드물다. 이유가 있다. 너무 빤하기 때문에 너무 위대한 이유이다. 그냥 그게 좋아서이다. 조금 따져보자. 한 집에는 각기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방에서 바라는 것들은 모두 다르다. 각 방들도 처한 상황들이 다 다르다.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르다. 식구들이 각자 방을 차지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이처럼 여러 변수를 가지고 있다. 절대 한 가지 같은 패턴으로 고정될 수 없는 이유이다. 한옥처럼 각 방의 창들이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야 하는 이유이다. 이 창문이 이 크기 이 형상으로 이쪽 구석에, 저 창문이 저 크기 저 형상으로 저쪽 위에 난 이유는 그것이 그 방속에 사는 사람한테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한옥은 가족살이를 건축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상식적인 이유가 왜 위대한가. 창문은 방 안에 사는 사람이 외부와 소통하는 숨통이다. 경치나 옆방 같은 주변 환경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햇빛, 바람, 하늘 같은 자연 환경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태도들은 방 안에 사는 사람의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성을 갖는다. 방안에 사는 사람들이 각각의 인격체로서 모두 다른 개성이 있고 그런 다름이 존중되고 지켜져야 되는 것과 똑같이 창문도 크기, 형상, 위치, 개수 등에서 자유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자유가 한옥에 나타난 리얼리즘의 첫 번째 요체이다.

 

 

 

선교장 창문이 여럿 모이면 가족살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각자 자기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편하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옥의 창문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족정서나 인간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리얼리즘의 정수이다. 한옥의 창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즈넉한 겸손이나 넉넉한 여유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가 물씬 느껴진다. 이런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 가족살이에 유추될 수 있는 인간관계이다. 한옥의 창문에는 이 가운데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자의 정이 특히 많이 표현된다. 큰 창문이 작은 창문을 데리고 나란히 나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너무나 닮은 모습으로 친자의 정을 표현한다. 어미가 새끼를 거느린 형국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모든 한국인들이 가슴 시려하며 똑같이 나누어 갖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정서이다. 작은 창문의 방이 자녀의 방이고 큰 창문의 방이 부모의 방이기 때문에 이런 은유는 더 제격이다.

 

인상은 품새에 잘 나타난다. 품새란 집의 내용과 형식 사이의 일체를 의미한다. 외관에 나타나는 집의 모습은 형식이며 이것은 그 집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의 분위기인 내용이 반영된 결과라는 의미이다. 품새란 내용으로 말미암는 형식이 얼마나 보기 좋고 품위가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혹은 형식이 표현해주는 내용이 얼마나 내실 있고 격조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인상은 이런 품새의 종합적 상태이다.

 

한옥의 전경은 인상을 드러낸다. 멀리서 눈을 지그시 감고 뒷짐을 진 채 집의 앉은 품새를 보면 그 집의 길흉과 가풍을 점칠 수 있는 우리만의 전통적인 지혜, 이것이 한옥이 갖는 인상의 기능이다. 한 마디로 집안이 경박한지 점잖은지가 가감 없이 진솔하게 집의 외관과 모습에 반영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의 얼굴 인상조차도 마음속 상태의 발로일진대 집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싸움이 잦은 집안은 서까래 하나를 올려도 티가 나는 법이다. 반대로 화목한 집안은 문짝 하나를 달아도 또 티가 나는 법이다.

  

안동 전주 류씨 무실종택(수곡종택) 반듯한 품새와 수평선의 중첩을 통해 탕탕한 기운을 집의 인상으로 보여준다.

 

정이 깊고 기가 융성하는 한옥

 

인상은 정심(情深)과 기성(氣盛)으로 발전한다. 정심이란 말 그대로 정이 깊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집에 적용시키면 건축 구성의 반듯함, 장식사용의 똑바름, 축조의 알맞은 짜임새 등과 같이 건설 단계에서 확보되는 외형적 감정이다. 집을 지은 목적, 장인의 건축 행위, 집 주인의 기대와 성품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힘이다. 가세를 솔직하게 표현하려는 것 이상의 욕심을 바라지 않는 절욕의 멋이다. 과시적 허망을 배제한 상태가 만들어내는 집의 정직한 품격이다. 기성은 정심이 발전해서 기가 전성을 누리는 상태이다. 집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풍부함, 쓰임새의 친절함, 인간을 돕고자 하는 친밀감과 우호감, 탕탕한 가풍, 호연한 풍모 등에 유추될 수 있다.

 

 

정심의 상태로 지어진 집을 오랜 기간 즐겁게 사용하다 보면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품이 쌓인 상태이다. 집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람은 집을 아끼는 상호 존중과 애호가 쌓여 집안이 화목하고 융성해진 상태이다. 혹은 이런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애(靄靄)와 풍요의 상태이다.

 

순환 공간은 전체 구성에 잘 나타난다. 한옥의 실내 구성은 막히거나 일직선이 아니라 돌고 돈다. 술래잡기를 해보면 안다. 숨을 곳도 많고 도망칠 구멍도 많다. 순환성이다. 순환은 여러 형식으로 나타난다.

 

외부에서 창과 방을 지난다고 끝이 아니라 다시 외부로 나올 수 있다. 그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며 또 다시 외부로 나갈 수 있다. 각 방들은 크기와 위치가 조금씩 어긋나지만 창을 모두 열면 꼬챙이로 꿸 수 있는 일직선 축이 형성된다. 이 축은 곧 바람이 통하는 길이다. 순환이란 ‘통(通)’이다. 통은 자연현상 가운데 음양이 협조하고 정기가 유창하여 아름다움에 이른 상태로 정의된다. 한비는 말한다. “자연에서는 음양(=정기)이 작동하고 변화하여 만물을 만들어낸다. 날고 달리기에 나아가며, 아름답기에 좋고, 자라기에 기르며, 지혜롭기에 맑은 상태이다. 물을 뚫어 썩음을 막고 병을 쫓아 악을 차단한다.”


하회마을 북촌댁 한옥의 공간은 순환한다.막힘 없이 통한다.

 

   

순환 공간은 한 마디로 집 안 내부적으로, 그리고 집 안과 집 밖 사이에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한다는 의미이다. 여름에 바람을 받아들이고 겨울에 햇빛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연관이라는 의미이다. 이 방과 저 방 사이에 단절이 아닌 소통이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되 다양한 간접 소통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자연과 통하니 육체가 건강하고 사람과 통하니 정신과 마음이 건강하다. 집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를 해준 셈이다. 집이 인간에게 병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해치는 콘크리트 아파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월성이다.

‘풍경작용’은 한옥이 주변과 어울리는 구체적 전략이다

 

집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 속에 들어있다. 집이 ‘나’라면 주변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다. 내가 이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듯 집도 주변과 ‘관계 맺기’를 해야 된다. 풍경작용은 집이 주변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직접적 통로이다. 집이 주변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살가움을 보여준다. 주변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친화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친해지는 구체적 전략이자 이를 구현하는 건축적 기법이다. 집은 풍경작용이라는 매우 우아하고 문화적이면서 예술적인 방식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고 한몸으로 작동한다. 한옥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한옥을 집만 봐서는 안 된다. 주변과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주변과 함께 봐야 하는데 풍경작용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풍경작용이란 무엇인가. 집이 창을 통해 주변을 하나의 풍경화처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창은 액자를 이루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이는 창의 본래 기능에 가장 충실한 작용이기도 하다.

 

 

 

본래 창이란 ‘안과 밖을 소통시키고 이어주기 위해 건물 벽에 뚫은 구멍’이니 풍경작용은 여기에 ‘딱’이다. 소통에는 말도 있고 얼굴 보여주기도 있고 바람 들이기도 있는데, 풍경작용도 중요한 요소이다. 집 밖의 상황을 하나의 경치로 만든 다음, 이것을 그림 그리듯 창 속에 한 폭의 풍경화로 집어넣고 감상하는 방식이니, 창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는 방식치고는 참으로 고상하기 이를 데 없다 하겠다.

 

풍경작용을 보면 한옥이 주변을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주체인 내가 객체인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친하게 어울린다는 뜻이니, 유교의 핵심적 가치인 어울림의 미학을 집에 실어낸 좋은 예이다. 유교문명의 대표적 주거형식인 한옥이 자기 시대의 가치관을 구현해낸 예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가치를 불이사상으로 더 강하게 추천한다. 세상의 분별심과 편 가름은 모두 내 아집과 탐욕에서 비롯된 부질없는 허망이니 본래 너와 나도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한옥은 ‘나쁜’ 집이 아니라 ‘좋은’ 집이다. ‘나쁘다’는 ‘나뿐이다’에서 온 말이고 ‘좋다’는 ‘조화롭다’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밀접한 한 쌍을 상징하는 관계가 많다. 음양의 조화는 우주의 이치이니 사이 좋은 남녀 관계가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부부는 그 최고봉이니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부부관계만 좋으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집과 주변도 밀접한 한 쌍이 될 수 있는, 되어야만 하는 관계이다.

 

사람이 밖과 단절된 집 안에만 살다 보면 감성은 황폐해지고 고집만 늘고 나만 알게 된다. ‘나뿐’인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집과 주변은 음양의 관계이니 둘이 화합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기가 잘 돌아가서 마음이 건강해진다. 한옥은 금술 좋은 부부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듯 끊임없이 주변에 관심을 쏟고 집중해서 집의 지평을 넓힌다. 


소쇄원 광풍각 한옥의 창에 담기는 풍경은 바람소리도 나고 풀냄새
도 나는 오감작용의 대상이다.

 

 

 

 풍경작용을 즐기는 일은 한옥이 주는 큰 은혜이다

 

권위 있는 한옥은 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그냥 심지 않는다. 반대로 방 안에서 보면 창이나 문을 낼 때 아무 곳에나 내지 않는다. 둘이 함께 어울려 풍경화 한 폭을 그릴 수 있는 위치에 나무를 심고 창을 낸다. 모든 창과 모든 나무가 이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렇게 한다. 따라서 품격 있는 한옥을 구별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 안의 중요한 포인트에 풍경작용을 실어냈는지의 여부이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갑자기 찬란한 풍경화 한 폭이 펼쳐진다면 일단 화들짝 놀라며 반가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실컷 감상할 것이며 감상료로 그 집의 품격과 권위를 찬사하면 된다. 풍경작용의 참뜻을 알고 그곳에 심고 그곳에 낸 것이니 집을 지은 장인의 안목과 그것을 지휘한 집 주인의 안목과 감성이 보통을 훌쩍 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집에 한평생 살면서 그것을 즐겼다는 말이니 그 집살이가 얼마나 신나고 감성적이고 즐겁고 고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윤증고택 한옥의 창은 그냥 낸 것이 아니다.보기좋은 풍경을
담으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한규설 대감가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창과의 대응 관계를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뿐 아니다. 한옥은 여러 채로 구성되고 꺾임이 많고 마당도 여럿이라 채와 채가 서로 대면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창이 그려내는 풍경화 속에는 내 집의 다른 부분이 들어갈 수도 있고, 마당의 넉넉함이 담길 수도 있다. 담 너머 먼 산이 여유를 부릴 수도 있고 수 십 개 장독대가 도열할 수도 있으며 굴뚝 하나가 선명하게 박힐 수도 있다. 집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건넌방 자식 놈 방문 하나로 꽉 채울 수도 있다. 모두 창이 풍경작용을 통해 주변을 담아내고 주변과 소통하고 주변을 안아주는 다양한 내용들이다.

 

집 안에 수십 장의 풍경화를 장르별로 다양하게 걸어놓은 셈이니 한옥이 왜 좋은 집인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한옥을 짓고 살았던 조선 선비의 문화적 안목과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무라도 한 그루 들어있으면 이놈이 계절 따라 잎이 나고 무성해졌다가 단풍이 지고 나목으로 벌거벗는 변신이 그대로 풍경화의 다양한 종류가 된다. 창 하나에서 이렇게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내니 집안 전체는 하나의 큰 미술관이 된다. 그것도 액자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 미술관이다. 기막힌 심미적 전략이요, 은혜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권 지배계층은 세계관을 형성하는 거시적 안목에서 하루하루 벌어지는 미시적 통치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안목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예술을 알아야 세상 이치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런 다음에야 나랏일을 경영하고 정적과 맞서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을 다스릴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난 치고 풍류를 즐기는 일이 겉으로 드러난 경우인데, 한옥의 풍경작용은 숨어있는 그런 예술적 안목의 진수이다.

 

 

풍경작용은 최고의 놀이이다

한옥은 변화무쌍하다. 한시도 같은 모습으로 있질 못한다. 한옥을 겉으로만 한 바퀴 돌며 보아 넘기면 무거운 지붕을 머리에 이고 무뚝뚝한 사내처럼 굳어져 있는 것으로 느끼기 십상이다. 정반대이다. 재기 발랄하고 방정맞고 요동치듯 수시로 변한다. 집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창을 직접 열었다 닫아보면 안다. 풍경작용은 그 핵심에 있다.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외적 형식이 집의 골격과 창의 다양성이라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풍경작용이다. 한옥에 창이 많고 위치와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과 변화무쌍함을 확실한 목표로 삼아 치밀하게 짠 정교한 유기체 같다.

 

   

김동수고택 창을 통한 다양한 풍경작용은 집을 하나의 놀이터로 만든다.

  

 

 

다양성과 변화무쌍함은 한옥을 하나의 큰 장난감으로 만든다.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터이다. 한옥을 반가의 딱딱한 권력과 동의어로 보면 한없이 근엄하고 거리감이 느껴지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실은 즐거운 놀이기능을 갖춘 요술집이다. 풍경작용은 그 핵심에 있다. 이 자체가 즐거운 놀이기능을 갖는다. 지금처럼 감각적 놀이문화가 없던 시절,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풍경작용은 분명 큰 놀이기능을 가졌을 것이다. 풍경놀이에서 느껴지는 풍성한 감성작용이 좋은 증거이다. 거꾸로, 요즘 집은 이런 놀이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밖에서 놀이를 찾고 결국 유흥 퇴폐문화로 이어진다.

 

풍경작용이 갖는 놀이기능은 집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을 늘려 둘 사이를 친하게 만든다. 한옥이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이유이다. 풍경작용은 오감 가운데 시각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름 감각과 협동 작업을 펼친다. 액자 속 풍경이 살아있는 실체라서 오감으로 교류할 수 있다. 부엌 풍경이라면 밥하는 냄새가 날 것이고 꽃 풍경이라면 향기가 날 것이다. 건넌방 자식놈 방이라면 애들 웃음소리가 피어날 것이다. 나무라면 바람소리를 방 안까지 들려줄 것이다. 바람은 계절의 냄새를 실어주고 땀을 식혀준다. 풍경화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격이다. 마당 가득 들어온 햇빛은 풍경을 찬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방 안까지 파고들어 사람의 몸과 피부와 부드럽게 교감한다. 풍경작용은 이렇게 오감과 어울리며 온몸의 감각을 희열로 곤두세운다. 마음 가득 흠뻑 흥이 잔뜩 오른다. 기막힌 놀이이다.

창이라는 액자

창의 건축적 정의는 ‘방 안과 밖을 소통하기 위해 벽에 뚫은 구멍’이다. 사람과 밥상이 드나들고 목소리가 들리며 바람이 흐른다. 햇빛도 빠질 수 없는 주요 이용객이다. 소통에는 보는 것도 있다. 경치 감상이다. 창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는 한 평생 사람의 감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만약 이것을 보다 본격적이고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집은 사람에게 매우 이로울 수 있다. 한옥이 그렇다. 한옥에서는 창을 창으로 보지 않았다.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액자로 봤다. 한옥에 유난히 창과 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한데, 선조들은 집에 앉아서 창과 문을 여닫을 때마다 수없이 다양하게 변하는 풍경을 만들어 보는 놀이를 즐겼다. 그 경치는 물감으로 그린 가짜 평면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3차원 실체이니 풍경화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사실적이었다.

 

 

정여창 고택 사랑채 대청 대청 전면에 집안 전경을 큰 풍경화로 내건 격이니,가문과 집안을 이끌어가며 책임지는 유교다운
가부장에 제격이다.

 

 

 

차경이다. 말 그래도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긴다. 소유해서 벽에 거는 그림과 달리 풍경 요소를 그대로 존재하게 한 뒤 그것을 빌려서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렸다. ‘소유 대 존재’의 화두에서 존재를 선택한 것이다. 붓 한 번 들지 않고 물감 한 번 찍지 않고 실로 다양하게 변하는 수십 장, 심지어 수백 장의 풍경화를 집안 곳곳에 걸어두었다. 하루 시간대에 따라, 일 년 시절에 따라, 또 날씨와 마음 상태에 따라, 그도 아니면 그저 눈길 가는 데 따라, 집안에는 늘 살아 숨 쉬는 다양한 풍경화를 구비해 두었다.

 

창만 있으면 풍경작용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니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넓은 창을 통해 바깥 경치 보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한옥의 풍경작용은 색다르다. “눈만 달리면 본다”는 일반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분명한 의도 아래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게 기획했다는 뜻이다. 조선 양반들은 한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풍경화 전시장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신들 계급 권력의 기반을 문(文)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이란 글과 사상이 바탕을 이루지만 풍류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감각놀이를 즐기게 해주는 풍경작용

 

즐기되, 집의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해서 쉼 없이 변하는 풍경화 수십 장, 수백 장을 집안 곳곳에 걸어놓고 즐긴 것이다. 서양의 귀족도 예술사상을 중요한 통치 기반으로 삼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부만으로는 안 되는 법, 타고난 기질과 직관적 감성, 그리고 국민성 등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민성은 자잘한 놀이를 좋아하고 다양성을 즐기는 상대주의가 강하다. 나의 바깥에 있는 객체나 자연과 동등한 입장에서 마음을 주고받고 감성을 교류하려는 인생관을 가졌다.

 

풍류에는 난초 정도는 칠 줄 알아야 무릇 양반이라 할 수 있는 예술적 감성도 들어 있었고, 자연과 하나 되어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도 들어 있었다. 이같은 여러 배경들이 합해져 집을 풍류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큰 놀이터로 파악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해 집 곳곳에 심었다. 직접적 풍류는 물론 계곡 속 정자에서 벌일 일이지만, 일상생활 자체를 하나의 풍류로 보았고 집을 그 놀이터로 삼은 것이다.

 

풍경작용을 기준으로 보면 한옥은 참으로 감각적인 집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온전히 놔두지 않고 감각적으로 즐기기에 제일 좋은 방식으로 창속에 담는다. 굴뚝 하나 건넌방 문 하나도 마찬가지이다. 담과 문, 장독과 댓돌, 기와와 문살, 기둥과 서까래, 눈과 신록, 낙엽과 단풍, 심지어 먼 산과 하늘과 햇빛까지 담을 수 있는 건 모두 담아 즐겼다. 즐기는 방식도 다양하다. 활짝 열어젖히며, 코앞에서 대면하듯, 손을 뻗쳐 애무하듯, 옆으로 삐딱하게, 숨어서 관음하듯, 낮은 목소리로 속마음을 트듯, 마주보며 호탕하게 웃듯, 어미가 자식을 품에 안듯, 반가운 친구와 악수하듯 끝이 없다. 뭉툭 그려,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관계를 그대로 풍경작용에 옮겨 놓았다. 내 몸이 생활하는 감성의 흐름과 감각의 궤적을 집에 실어서 자연스럽게 집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창덕궁 연경당 안채 5월 맑은 날 낮에 미닫이 문을 액자로 삼아
신록을 풍경으로 담았다.풍경요소와 한층 친밀해져 활기찬 하루를
즐기게 해주는 심리작용을 한다.

 

 

 

 

 

오감의 교류를 살리는 풍경놀이

한옥의 풍경작용은 시각작용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오감으로 가고야 만다. 어쩔 수 없는 한옥의 이치이다. 한옥 자체가 오감 작용이 뛰어난 집이려니와, 풍경작용은 이것이 잘 드러나는 통로이다. 풍경요소가 살아있는 실체라서 오감으로 교류할 수 있다. 부엌이라면 밥하는 냄새가 날 것이고 꽃이라면 향기가 날 것이다. 나무라면 바람소리를 방 안까지 불어 들려줄 것이다. 계절의 냄새를 실어주고 땀을 식혀준다. 마당 가득 찬 햇빛은 풍경을 찬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방안까지 파고들어 몸뚱이와 피부에 비벼댄다. 비타민을 선물하고 체온을 올린다. 풍경작용은 이런 것들과 함께 어울리고 온몸의 감각은 희열에 곤두선다. 방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내 손으로 직접 창을 조작해서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오감으로 흠뻑 즐겨 마음 가득 흥을 채울 수 있다.

 

 

 

윤증고택 사랑채 1월 눈 오는 날 늦은 오후에 여닫이문을
액자로 삼아 뒤뜰 장독을 풍경으로 담았다.풍경요소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침작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심리작용을 한다.

정여창 고택 사랑채 방 한 사람의 남자로 침잠하고 싶을 때
에는 방에 들어 소박한 풍경을 즐기면 된다.차라도 한 잔 하면
서 센티멘털리즘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창 열어서 풍경을 담아낸다고 끝이 아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잔 감각에 유난히 예민하고 세상을 지극히 상대적으로 보는데, 풍경작용에서는 액자 형식을 다양하게 만드는 지혜로 나타난다. 경치를 다양하게 하려다 보면 자칫 풍경요소 자체에 손을 대기 쉬우나 이는 한옥의 지혜가 아니다. 풍경요소는 그대로 놔두고 경치를 담는 액자를 다양하게 한다. 한옥의 구조 골격이 ‘항변’하고 공간이 변화무쌍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의 종류부터 그렇다. 미닫이문은 풍경의 종류를 선택하는 데 유리하다. 여닫이문은 밖의 풍경에 대해 공간 깊이를 만들기 때문에 형식화 기능에 뛰어나다. 벼락치기 문은 통 크게 경치를 한 번에 확 잡아들인다.

 

정식 문만 문이 아니다. 기둥과 기둥이 양옆에서 한정하면 이것도 액자요, 서까래와 처마는 위에서 한정하니 이 또한 액자이다. 문의 크기와 위치도 제각각이다. 방 구석에 바짝 붙은 손바닥만한 창을 열면 그 격에 맞는 작은 풀 한 그루가 처연한, 그렇지만 너무 위대한 생명을 드러낸다. 이 나무 한 그루와 24시간, 사시사철 벗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게 해주는 형식의 통로가 풍경작용이다. 이런 조건들을 조합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비밀은 창호지라는 재료에 있다. 반투명으로 가림 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쪽을 열면 소담스런 나무 한 그루가 보이다가 저쪽을 열면 집안의 전경이 드러난다.

 

다양성은 사람의 감성을 돕는다. 감성 상태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의 종류를 항상 구비해놓은 셈이다. 정여창 고택 사랑채를 보자. 대청에 앉으면 집안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내 집 전경을 대청에 풍경화로 걸어놓은 격이다. 유교문명에서 가문과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서의 책임과 권위에 합당한 풍경작용이다. 그러나 가부장이라고 늘 목에 힘만 주고 살 수는 없는 일, 때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감상적이 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방에 들어 미닫이문을 열면 소담한 나무 한 그루가 말동무가 되어준다. 풍경을 벗 삼아 내면과 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정약용은 족자에 대하여 “때때로 바꾸어 걸어야 할 것이다. 봄 여름에는 가을 겨울의 것을, 가을 겨울에는 봄 여름에 관한 것을 걸어야 하며(중략)”이라고 했다.

마당과 여닫이문이 만들어내는 풍경, 장경

장경(場景) 혹은 장경주의는 “경치를 하나의 특별한 장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장’은 멍석을 깔아놓은 구경거리나 연극을 올려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이다. 풍경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공적 형식을 강하게 가하겠다는 의도를 갖는다. 차경에서 ‘빌린다’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볼거리를 ‘제대로 폼 나게’ 꾸민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보여주자는 것은 아니다. 집안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풍경작용의 종류를 다르게 만들려는 다양화가 목적이다. 차경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생기는 법, 형식적으로 꾸며낼 필요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와 풍경 사이에 상당한 밀접함이 유지되면 차경이 되고 이 범위를 넘어서면 장경이 된다. 내가 풍경에 감정이입을 실어 풍경과 동질감을 가질 수 있고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이쪽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면 차경이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고 걸어 나가면 바로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내가 풍경과 한 공간 안에 있다는 느낌이 유지되면 차경이다. 풍경은 감상보다는 직접 경험의 대상에 더 가깝다.

 

 

윤증고택 사랑채 여닫이문을 열면 액자가 3차원 공간이 되
면서 나와 풍경요소 사이에 무대 같은 인공 형식이 꾸며진다.
나는 풍경과 한 몸으로 섞이지 않고 나만의 세게에 침잠할 수 있다.

하회마을 북촌댁 솟을대문 피지배계층이 솟을대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반가의 풍경작용 역시 계급의 위계와 공동체의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장경은 다르다. 이보다 훨씬 인공적이고 형식적이다. 나와 풍경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면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연극에서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감이 좋은 예이다. 요즘이야 관객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기도 하고 배우가 객석으로 내려오기도 한다지만, 전형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런 일은 사고가 된다. 두 영역 사이에는 지켜야 하는 형식과 예절이 있다. 관객이 무대를 자신들이 사는 세계와 분리된 다른 세계로 느낄 때 무대 위 연극세계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을 풍경에 적용하면 장경이 된다.

 

거리와 형식이 관건인데,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마당이고 형식을 갖추는 것은 여닫이문이다. 물리적 거리감은 기본 요소이다. 거리감은 곧 이격(離隔)이다.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격을 만들기 위해 액자와 풍경 요소 사이의 거리를 여백으로 비워두어야 한다. 풍경요소가 액자 속에 꽉 차 있으면 나와 같은 차원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둘 사이에 마당이나 공간 같은 틈과 여백이 생기면 풍경은 그만큼 멀게 느껴진다. 한옥에서 마당을 비워둔 데에는 바람을 이용한 환경조절 같은 과학적 이유도 있지만 장경을 즐기려는 감성적 이유도 있다.


창의 종류에서는 액자에 공간 깊이를 주는 여닫이문이 제격이다. 여닫이문을 반쯤 열면 두 장의 문짝이 일소점 투시도 작용을 일으켜 액자가 3차원 공간 깊이를 갖게 된다. 관찰자와 풍경 요소 사이에 공간 켜가 하나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이것만으로도 풍경은 무대 위에 올려진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미닫이문이 가세해서 양쪽 끝에서 여닫이문을 조금씩 먹고 들어오면 틀이 하나 더 추가되면서 액자는 완전히 무대 세트로 변한다.

 

 

여기와는 다른 세계의 풍경

장경은 나를 온전히 독립적 상태로 놔두고 싶을 때 알맞은 풍경작용이다. 주변 환경과 섞이지 않고. 나 이외의 타자를 관조의 대상으로 보겠다는 태도이다. 풍경은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고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면 판이 깨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풍경에 동화되는 직접 경험이 부담스러워 풍경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을 때 여닫이문을 열어 풍경에 무대형식을 가하면 된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채에서 디테일에 이르는 많은 구성요소들이 급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옥에서 요소들 사이에 숨통을 터주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이 같이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미닫이문만으로 풍경을 조절하면 차경이 일어나 풍경과 주관적 일체가 일어난다. 나를 잠시 잊고 풍경과 어울려 하나가 된다. 나와 주변을 포함한 더 큰 장을 정의할 수 있고 나는 그것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기 때문에 그만큼 나를 ‘죽일 수’ 있다. 반대로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혼자 있고 싶을 때에는 여닫이문을 사용해서 장경을 만들면 된다. 풍경은 가까이 오지 못하고 저만큼 멀리 떨어져 객관적 형식으로 남는다. 미술관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이원화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것이 한옥에서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을 같이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규설 대감가 사랑채 빈 마당은 나와 풍경요소 사이에 거리감을 주어 장경을 만든다.주인마님의 공간과 아랫것들의
공간 사이에 계급의 위계를 유지하게 해준다.

 

 

 

개인적 이유 이외에 사회적 목적도 있다. 건축 구성요소나 집안 구성원들 사이에 형식적 거리감이 필요할 때이다. 사랑채 대청에서 일어나는 장경작용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집주인이 집 전체를 감시하는 기능을 갖는 점에서 사회적 목적에 해당된다. 대감마님은 사랑채 대청에 앉아 집안 전체를 관조하듯 감상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늘 확인한다. 이런 작용은 쌍방향이어서 지위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문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늘 각성하게 해준다. 권위와 책임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동질감도 필요하다. 사랑채 대청과 행랑채 사이에는 사회적 형식미에 따른 위계질서가 표현되기는 하지만 서양의 경우보다 그 차이가 적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청이 행랑채에 대해 활짝 열림과 동시에 둘을 가르는 마당이 휴먼 스케일을 유지함으로써 관찰자와 풍경요소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타자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남으로 남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타자와 같아질 수는 없으나 타자와 나, 즉 객체와 주체를 하나로 묶어 ‘우리’라는 공동체로 발전시킨다.

 

 

피지배 계층과 선을 긋다

사랑채 이외에 장경 작용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솟을대문인데, 한옥이 반가의 주거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주변지역에 대해 상당히 높은 단계의 지배권을 갖는 지역의 통치자였다. 반가는 주변 농가와 대비되어 통치자의 권위와 위계를 과시할 사회미로 무장해야 했는데 솟을대문이 이 기능을 담당했다. 장경작용에 수반되는 분리와 동질화의 양면적 기능은 여기에 적합했다. 바깥 세계와 일정한 분리를 이루어 반가 자신에 독립성을 줌으로써 권위를 지킴과 동시에 주변 마을과 동질화를 이루어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화목을 도모하는 양면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충효당 사랑채 계급 위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마당거리를 좁히고 건축형식을 동질로 하면 장경이라도 손을 잡아끌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서애다운 어질음이다.

 

 

 

솟을대문에서는 사랑채나 중문간채 등의 집안 전경이 풍경요소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행랑마당이 장경작용에 필요한 거리를 확보해준다. 솟을대문은 여닫이문 가운데 제일 크기 때문에 형식성이 유난히 강한 액자이며 장경작용에 필요한 조건인 인공다움을 잘 만족시킨다. 솟을대문이라는 액자를 통해 들여다보는 양반집 풍경은 정녕코 무대 위에 잘 올려진 인공 세트, 즉 장경을 보는 것 같다. ‘아흔아홉 칸’ 양반집의 규모와 복합 구성, 그리고 몇 단계는 더 높은 위계의 건축형식 자체만으로 피지배계층에게는 계급 차이를 보여주려니와, 이것을 연극무대처럼 ‘폼 나게’ 형식화까지 했으니 복종심이 절로 우러났을 법하다.

 

사랑채에서와 마찬가지로 솟을대문에서도 장경은 위압적이지만은 않다. 장식을 절제하고 적절한 휴먼 스케일로 나눠진 겸양의 미덕은 그대로 풍경요소의 겸손함이 된다. 풍경요소에 가해진 적절한 분절처리는 전체 분위기에 분산적 여유를 주며 구성미와 율동감 등을 통해 친근감을 유발한다. 중간에 휴먼 스케일의 마당이 들어가 적절한 거리감을 주면서도 너무 멀지 않게 느껴지게 한다. 솟을대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대감댁 전경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일뿐더러 자신들의 집과 닮은 점이 있는 것을 보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대감댁은 더 이상 영원히 넘볼 수 없는 성전이 아니다. 심미화의 감상 대상이 되면서 상징기능에서 해지된다. 솟을대문 자체도 아담하려니와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는 집안 전경은 지배계층의 권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평화로운 풍경화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한옥에서는 창과 문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창문’이다. 서양에는 없는 단어이다. 사람이 다닐 만하면 문이요, 그렇지 않으면 창인데, 딱히 구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을 잔뜩 웅크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문도 많고 문지방을 높여 기어오르듯 통하는 문도 있다. 형식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내서 쓰면 그만이라는 노장사상 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반영된 개념이다.

 

 

창은 문살을 통해 주역의 궤를 장식문양으로 활용한다. 천지 운행의 원리를 인간살이에 견줘 기하학적 구성으로 단순화했지만 일정한 변화를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안정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다. 중국처럼 현란하거나 과도하지 않고 일본처럼 단조롭고 지루하지 않다. 한국다운 중용과 조화의 균형미이다.

 

한옥의 창을 살려내는 것은 한지라는 창호지이다. 반투명 재료이기 때문에 햇빛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햇빛을 사람의 온기로 바꾸기도 하고 창살에 그림자를 실어 문양에 입체감을 주기도 한다. 먼동 틀 때에는 청회색으로 시작해서 한 낮에는 어머니 젖무덤의 뽀얀 속살로 변했다가 해질녘에는 붉은 자줏빛을 발한다.

 

창은 기둥과 보와 협력해서 흰 회벽을 분할한다. 몬드리안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 했던 구성미이다. 한옥의 구성분할은 선비의 추상같은 기개를 드러내긴 하지만 몬드리안처럼 계산적이거나 차갑지는 않다. 어딘가 숨 쉴 틈 하나 남겨서 정 나눌 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살이 장면을 반영하는 기막힌 리얼리즘으로 발전할 수 있다. 행랑채를 제외하면 같은 창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제각기 크기와 형상을 가져 개별적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서로 정답게 어울린다. 어미가 자식을 데리고 방안에서 편하게 노는 모습이다.

 

한옥의 문은 크게 솟을대문과 중문으로 나눌 수 있다. 솟을대문은 집의 얼굴이다. 양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집안 전경을 바깥 세상에 살짝 보여주는 소통의 통로이다. 멀리서 보면 불쑥 솟았지만 열린 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집안 전경은 의외로 섬세하다.


장교동 한규설 대감댁 햇빛은 한옥의 또다른 주인다.한옥은 햇빛
을 가장 잘 받고 햇빛을 가장 잘 살려내는 건물이다.한옥이 햇빛을
받는 통로는 문이다.햇빛이 창호지로 들어오면 문식(文飾)을 만들
어낸다.문식은 예(禮)를 통해 얻어지는 교양 있는 미적 형식이다.

 

 

 

 

 

 

목재건축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어울리는 모습을 문틀을 통해 액자 속 풍경처럼 보여준다. 중문은 좀 더 차분하고 소박하다. 채와 채를 이어주는 속 통로이기 때문에 채와 채 사이의 예절을 중시한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사랑채 등 각 영역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구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에 앉아서 내 집의 일부를 본다는 것의 의미

한옥 속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독특한 장면이 눈에 잡힌다. 창이나 문을 통해서 보는 장면이 집의 일부인 경우이다. 창문에 잡히는 풍경요소의 종류는 자연요소, 마당, 담, 집의 일부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집의 일부를 통한 풍경작용은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현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경(自景)’이다. 말 그대로 ‘나 스스로, 즉 내 집의 일부가 풍경이 된다’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대문이 있는 집이라면 대문을 통해 집의 일부를 풍경요소로 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옥의 자경에서는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풍경요소로 삼으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풍경작용이 대문이 아니라 집 속에서 일어난다는 추가 조건이 붙는다. 집 안에서 창문을 열면 집의 일부가 풍경요소가 풍경작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두곡고택집의 일부를 풍경요소로 삼는 자경은 단순한 풍경감상을 넘어 내 집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라
는 뜻을 포함한다.

 

  

 

이것 또한 모든 집에서 일어나는 상식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아파트만 되어도 문을 열면 부엌이나 거실 등 실내 일부가 문을 통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자경은 이런 차원이 아니다. 풍경으로 보이는 장면이 집의 외관인 경우가 많다. 집 안에 앉아서 창문을 여니 집의 외관이 보인다는 뜻이다. 안과 밖이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집이 담 밖으로 길게 휘어져 나와야 가능한 얘기처럼 들리는데, 그 비밀은 한옥의 독특한 건축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건물 전체가 여러 채로 나누어 구성되고 그 채들에 꺾임이 많으며 그 사이에 여러 개의 마당이 개입한다는 특징이다. 방이 앞뒤로 모두 외기를 면한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구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다보니, 문을 열면 집안에 앉아서 내 집의 외관 일부를 풍경작용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내 집의 외관을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기 얼굴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거울에 비춰보며 ‘거울아 거울아~’를 외쳐대지만, 정작 자신이 사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한 특기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심심한 콘크리트 건물에 똑같은 창이 쭉 나고 숫자나 호수로만 구별을 하기 때문에 밖에서 볼 때에는 내 집, 네 집을 구별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빨래 색깔 정도나 구별 기능을 가질 뿐이다. 집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집밖에서 만이라도 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문제는 안 생겼는지, 집의 분위기와 앉은 품새는 잘 유지되는지 등등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물며 이것을 집 안에 앉아서 창문을 통해 풍경작용으로 감상을 겸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옥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자경이라는 독특한 풍경작용을 통해서이다. 한옥에 채 분리와 꺾임이 많고 다시 이것을 여러 겹의 마당이 에워싸는 이유이다. 집 안에 앉아서 내 집의 일부를 볼 수 있는 공간구도를 의식하고 집을 짰다는 뜻이다. 내가 내 몸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동의 의미를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집에 심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증자의 [일성록]과 나르시시즘

자경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교훈적 내용을 많이 담는다. 그래서 한옥이 유교정신을 반영한 집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내 몸을 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양에서는 증자 의 [일성록]에 나오는 “하루 세 번 내 몸을 돌이켜 살핀다”는 구절이 대표적이고 서양에서는 나르시시즘 이 대표적이다. 같은 행동을 놓고 그 내용은 두 문명이 다른 만큼 다르다. 동양에서는 이를 자기 수양의 한 과정으로 본 반면, 서양에서는 자아도취를 통한 자기 각성으로 보았다.

 

  

 

용흥궁 안채 안방에서 문을 열면 대청 건넛방의 문살이 풍경요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안채의 자경 작용 가운데 제일 전형적인
장면이다.내 방의 문살과 건넛방의 문살이 한데 어울리는데 이는 교열을 정리하는 집안 대소사를 잘 챙기고 식구들을 간수하라
는 뜻(왼쪽)김동수 고택 사랑채 사랑채도 안채와 같은 공간구조를 가지면 자경이 일어날 수 있다.(오른쪽)

 

 

 

증자의 가르침은 단순히 내 몸에 때가 안 묻었나 살피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몸을 살핌으로써 마음가짐도 살필 수 있다. 몸가짐을 반듯이 하면 마음가짐도 반듯해진다는. 유교다운 형식미의 핵심 개념이다. 한 평생 반듯하게 살아온 선비는 멀리서 걸음걸이 하나만 봐도 구별이 된다. 마음과 정신은 숨김없이 그대로 외관과 몸가짐에 드러난다. 집 안에 앉아서 내 집의 모습을 살피는 자경작용도 마찬가지여서, 창호지가 찢어지고 문짝이 휜 것을 찾아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집을 사용하는 나와 식구 구성원의 마음과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까지도 살핀다는 의미이다. 식구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 구성원이 거처하는 방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그런 상태가 반영되게 마련이라는 내심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심일체라는 가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대상에 대해 한 없는 인(仁)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심일체라는 개념 또한 유교다운 형식미의 전형이고 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유교정신의 출발점이니, 이 둘을 자경이라는 풍경작용으로 구현해낸 한옥은 가히 유교문명을 대표하는 주거형식이라 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신화 자체에 한정시키면 자기애에 빠진다는 다소 부정적 의미를 내표한다. 좀 더 분석해보면 서양문명의 중요한 세계관이 담겨있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좀 더 발전시켜 인격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데 적용했다. 단순히 자신의 육체만 보고 성적 대상으로 삼는 단계는 아직 미숙한 오토에로티시즘(autoeroticism)으로 봤고 여기에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더할 때 비로소 성숙한 나르시시즘에 이른다고 했다. 동서양 모두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가르치고 있는데, 동양은 이것을 수양의 의미로 해석해서 육체를 정신에 종속시킨 반면 서양은 인격의 완성으로 해석해서 둘 사이의 동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한옥의 자경에서는 굳이 둘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한옥의 자경작용에서 관찰되는 관음증의 느낌은 서양적 의미의 오토에로티시즘 단계로 분명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이 핍쇼(Peep Show)에 머물지 않고 집 전체에 통일된 정체성을 주고 궁극적으로 집안 구성원 사이의 화목을 돕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점에서 나르시시즘과 증자의 가르침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치마폭 같은 안채의 ‘ㅁ’자형 공간

자경은 사랑채와 안채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는데, 안채의 자경작용이 특히 독특하다. 안채를 안채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랑채가 앞에 행랑마당을 가지면서 집 전체를 상대하는데 반해 안채는 집의 깊숙한 곳에 은밀히 자리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한옥의 안채는 특히 ‘ㅁ’자형이라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갖는다. 이 형식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공간유형이지만 한옥 안채의 ‘ㅁ’자형은 그 은밀함이 특히 심하다. 행랑마당은 남자들의 대외적 작업공간이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트인 반면 안마당은 폐쇄적이고 스케일이 촘촘해서 여러 방과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관가정 안채 안채는 자경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인데,안채 특유의 공간구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풍경요소가 창문
속으로 들어온다.이는 유교문명 아래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의미를 반영한 결과이다.

 

 

 

자경이 일어나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다. 창문만 열만 집의 다른 일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안채 안방에서 문을 통해 대청 건너편을 바라보는 경우이다. 대청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이 배치되는 구조에서는 사랑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풍경작용인데 사랑채는 이런 공간구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는 안채의 전형적인 풍경작용이라 할 수 있다. 안채의 자경 작용은 반드시 대청을 낀 좌우대칭 구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채 분할이 심한 곳 또한 안채이기 때문에 집의 일부가 작게 조각나면서 창문을 통해 다양한 풍경요소로 들어온다.

 

안채의 자경 작용은 유교가 여성에 대해서 갖는 기본 인식을 반영한 결과이다. 남편과 아내를 지칭하는 ‘바깥양반’과 ‘안사람’ 혹은 ‘집사람’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여성이 집안 깊숙한 곳에서 안일을 책임지는 일을 맡던 시대, 집안이 제대로 반듯하게 유지되는지 거울을 보듯 항상 챙기라는 뜻이다. 놀이기능일 수도 있다. 바깥나들이 한번 맘 편하게 하기 힘들었던 시절, 집의 일부를 대상으로 삼아 즐기는 풍경놀이는 감옥살이 같았을 수 있는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조그만 위안거리를 줬을 수 있다.

풍경에 취해 풍경이 되어버린 창

창과 문은 액자주석1만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 풍경요소가 되기도 한다. 창이 특히 그렇다. 미닫이창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문짝이 창틀 안쪽으로 밀고 들어와 풍경을 가릴 경우 이 부분을 액자로 볼지 풍경요소로 볼지의 문제가 생긴다. 열쇠는 창호지가 쥐고 있다. 창호지가 빛을 받아 반투명 막이 되고 창살문양이 드러나면 창은 액자로만 머물지 못하고 그 자체가 풍경요소가 된다. 마치 두 장의 풍경을 겹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창 스스로 풍경이 되다’는 창이 풍경에 틀 짜기를 가하고 풍경을 재단하는 일을 하다 풍경에 취해 못 참고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창 스스로가 하나의 풍경요소, 즉 인공적 풍경요소가 된 것이다. 창살문양은 창을 풍경요소로 둔갑시키는 일차적 역할을 한다. 문양 자체가 강한 조형 형식을 띠면서 액자 이상의 기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창살문양이 풍경요소주석2가 되기 위해서는 수직-수평으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스스로 감상의 대상으로 변모해야 한다. 하나의 ‘보기 좋은 장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마음에 감흥이 일어나는 감성작용이 실려야 된다. 이것을 해주는 것이 창호지이다. 창호지는 중성적 건축형식인 창살문양을 마음의 감성작용에 대응시켜 심미 요소로 둔갑시킨다. 인공 형식미에 온기를 실어 생활 속 일상가치를 상징하게 만든다. 이런 도움 덕에 창살문양은 풍경요소가 될 수 있다.

 

창호지는 반투명이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창살문양의 조형성을 잘 드러낸다. 불투명하면 벽의 연장으로 읽힐 뿐 스스로 풍경요소로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풍경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유리처럼 투명하면 바깥 풍경요소 위에 셀로판지를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일 뿐 스스로 조형 형식을 갖추지 못한다. 풍경요소가 되지 못하고 바깥 풍경요소 위에 묻은 얼룩처럼 느껴진다. 풍경이 되기에는 과하다. 반투명인 상태에서 창살문양은 온전히 스스로 풍경이 될 수 있다. 창살문양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상태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바깥의 바깥 풍경요소 위에 겹쳐지지 않고 병렬을 이룸으로써 스스로 풍경이 될 수 있다.

 

빛의 종류와 세기 등에 따라 창과 문양의 분위기나 모습이 변하는 것도 창호지의 활약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다양성이 바로 창살문양에 감성작용을 실어 내주는 기능을 한다. 하루 시간의 흐름, 날씨, 계절 등이 기준이다. 바깥의 빛 사정에 따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하며 다양한 감성작용을 일으킨다. 진짜 풍경요소보다 나중에 더해진 인공 풍경요소가 더 심하게 변하니 그 그림은 실로 모든 종류의 인간 감성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먼동이 트는 아침의 청회색에서 시작해서 대낮에 직사광선을 받은 뽀얀 우윳빛, 그리고 해지는 석양의 붉은색에 이르기까지. 


관가정 사랑채 창호지가 빛을 받으면 창살문양은 액자에 머물지
않고'스스로 풍경이된다'.밖의 진짜 풍경요소와 병렬로 놓이면서
풍경작용의 의미를 다양하게 만들어준다.

 

 

 

 

 

창호지로 창살문양에 감성을 싣다

한 마디로 창호지의 활약 하나만으로 독립적인 풍경작용주석3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창호지, 즉 한지를 쓴 이유이다. 한지는 엄밀히 얘기하면 건축 재료가 아니다.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창과 같은 외부마감에는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쓴 것은 창에 감성작용을 실어 풍경요소로 만들려는 목적이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집 전체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만들어 집과 감성으로 교류하려던 목적이었다. 집 스스로 풍경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집에 그림을 가득 채우려는 목적이었다. 결국 한옥에 산다는 것은 큰 그림 하나를 생활 속에 이고 사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다양한 풍경화를 선사했다.

 

물론 창호지를 쓴 것은 유리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후진성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창은 건물의 여러 부분 가운데 재료 사용에 제한이 많은 곳이다. 시야와 조도 등을 위해서는 투명성을, 방음과 단열 등을 위해서는 내구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 두 조건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유리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현실성이 높은 재료임에 틀림없다. 실용적 문명인 서양은 유리를 선택했고 감성적 문명인 우리는 한지를 선택했다.

 

 

 

한규설 대감가 안채 자경중첩이다.인공적 정리기능이 극에
달하게 된다.이때,창문은 스스로가 하나의 풍경요소로 읽히지
만 여전히 액자에 머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이 경우 족자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나상열 가옥 사랑채 액자에는 창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길게
돌출한 처마선과 그 안쪽의 서까래도 훌륭한 액자가 된다.액자
형식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 역시 족자 개념을 집에 적용한 것이
다.

 

  

 

한지가 전통 필기도구인 지필묵(紙筆墨)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한지는 글씨 쓰는 필기도구인 동시에 난초 치고 소나무 대나무 그리는 그림 재료이기도 했다. 창호지에 한지를 사용해서 풍경작용을 만들어낸 것은 곧 집을 한지 위에 단풍나무 그리는 풍경화에 유추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옛날 선조들은 정말로 집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정의했음에 틀림없다. 창 조작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다양한 풍경화를 집안 가득 담아놓고 살았다. 풍류의 극치요 예술의 극치이다. 창 만드는 건축행위가 붓 놀려 난초 치는 그림 그리기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니, 진정 풍류의 극치요 예술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창 스스로 풍경이 될 경우 창살문양과 창호지는 진짜 풍경요소와 중첩되면서 더 큰 풍경을 만들어낸다. 진짜 풍경요소가 수목, 꽃, 먼 산 같은 자연물이면 차경중첩이 되고 집의 일부분이면 자경중첩이 된다. 창은 인공요소이기 때문에 자연물과 어울릴 경우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이라는 동양문명의 큰 특징에 귀속된다. 이때 창에 나타나는 문양은 자연을 정리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정리하되 정복 개념은 아니다. 집의 일부분과 어울리는 자경중첩에서는 인공성이 극대화된다. 풍경 전체에 인공질서가 가득 찬다. 사회를 향한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유교 형식미의 대표적인 예이다.

 

 

 

바깥 풍경과의 조화로운 어울림

 

 

한계마을 대산동 교리댁 처마 끝 서까래와 벼락치기 문이 합작해서 액자를 만든다.

 

 


창살문양을 풍경요소로 보지 않고 여전히 액자로 볼 수도 있다. 이때는 족자 (簇子)에 해당된다. 한국화의 족자에서는 그림 옆에 여백을 두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 별도로 문양을 넣거나 연하게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액자의 틀을 면적을 갖는 여백으로 키운 뒤 그림과 별도의 예술세계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족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대입시키면 창 이외의 건축요소가 액자가 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기둥과 보, 서까래와 도리, 회벽과 천장 등 골조를 노출시켜 액자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솟을대문도 좋은 예이다. 스스로 하나의 완결된 건축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솟을대문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면 언제라도 족자가 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대문이나 중문은 이보다 못하지만 여전히 족자가 되기에 충분한 조형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한옥의 골조는 천천히 뜯어보면 족자를 생각하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곳들이 많다.

 

왜 그랬을까.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는 뜻인데, 한 마디로 ‘바깥 풍경과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위해서이다. 집과 풍경, 사람과 자연, 안과 밖 등 흔히 이항대립으로 인식되고 있는 관계들 사이에 조화로운 어울림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에서 건물에 끊임없이 족자작용이 일어나게 했다. 한국화에서 족자는 이동과 보관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하다 보니 그림과 일정한 심미적, 예술적 어울림을 얻어내는 데까지 나간 것과 같은 이치이다. 건축부재를 이용한 족자작용은 분명 집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창 조작에 따라 분위기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창문 이외에 다양한 가능성을 추가로 갖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사용자의 마음에 부합되고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심리작용이었다.

다양한 풍경작용을 통해 마음과 감성의 변화에 합당한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조형 환경이 자신의 마음과 감성 상태와 합치될 때 행복을 느끼며 집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동북아 건축에서 지붕은 주역의 대장괘를 옮긴 것이다. “상고 시대 사람들은 혈거로 생활을 하며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 성인들이 그것을 가옥으로 바꾸어 지붕마루를 위에 만들고 서까래를 아래로 깔아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하였으니 이는 대개 대장괘에서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붕이 대자연의 장미(壯美)의 상태인 대장괘를 본떠 만들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대장괘가 드러내는 구체적 심미성이 장미이다. 한옥에서 장미는 인간 중심적인 특징을 갖는다. 인간의 역량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전제로 인간의 감정을 앙양, 분투케 함으로써 자연에 대해 공포, 재난, 비극 등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유교다운 인본주의의 핵심이다.

 

 

수애당 전경 대장괘가 주는 대표적 미학이 장미(壯美)이다. 인간의 인내와 의지를 굳건히 드러내 강건함을 표현하는데, 이는 선비의 기개를 드러내는 집의 인상과 같은 말이다. 집의 전경을 보면 주인의 성품과 가문의 가풍을 알 수 있으니 이를 인상이라 한다.

 

 

 

한옥의 지붕은 멀리서 보면 집의 인상을 결정한다. 담과 행랑채, 다시 그 뒤로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이 중첩되면서 유교 가문의 기풍과 선비의 품격을 드러낸다. 이는 사람에게 요구되던 최고의 덕목이었으니 집과 사람은 인상을 공유하며 동의어가 된다. 지붕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서양의 신사도도 대략 이와 유사하니 지붕은 인공적 형식미를 대표한다.

 

한옥 지붕의 조형미는 단연 매끄러운 곡선이다. 한국다운 곡선미의 대표적인 예로, 한 획을 휙 그은 서예의 부드러운 힘 같기도 하고 북소리에 맞춰 돌아가는 가락 같기도 하다. 곡선으로 휘었지만 정면에서 보면 갓을 눌러쓴 선비의 절제된 몸가짐을 보여준다. 추녀 밑으로 다가가 올려다보면 흥에 겨워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몸짓이다. 한옥의 처마 곡선은 단연 최고이다.

 

한옥의 지붕은 채 사이의 위계와 관계를 반영한다. 집안을 대표하는 책임을 지는 사랑채는 지붕도 그러해서 행랑채나 안채의 지붕을 품고 이끈다. 반가에 요구되는 엄격한 계급구조를 지키되 그것을 넉넉한 품으로 품어내려 애쓰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계급 위계가 없는 동기간의 관계일 때에는 누구보다도 흥겹게 어울린다.

 

 

 

고성 어명기가옥 한옥 지붕의 처마 선을 일반화시키면 한국다운 곡선의 미학이 된다. 옷소매와 가락, 고름과 치마폭, 초가와 뒷동산이 모두 그렇다. 한옥 지붕은 화들짝 하늘을 향하지만 동시에 땅도 굽어보는 중용의 균형에서 아름다운 곡선이 나온다.

 

창이 두 겹 겹치는 ‘중첩’

한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창문 속에 또 창문이 있고 그 밖에 풍경이 보이는 경우이다. 이른바 ‘액자 속 액자’이다. 액자가 두 개 이상이라는 뜻이다. 풍경요소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고 이것을 여러 개의 액자가 앞뒤로 거리 차이를 가지며 겹쳐서 담아낸다. ‘풍경 속 풍경’이라고도 한다. 첫 번째 창문 속 큰 장면이 첫 번째 풍경이고 다시 그 속에 두 번째 창문이 들어가면서 두 번째 풍경을 담는다. 웬만큼 큰 한옥이면 집 전체에서 이런 장면이 몇 개는 만들어진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의도된 느낌이 강하다. 마주보거나 앞뒤로 늘어서는 등 창문들 사이의 관계나 풍경요소의 위치 등이 ‘액자 속 액자’를 염두에 두고 짠 것 같다.

 

 

이런 특이한 장면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중첩’이라는 한옥의 공간 구조에 있다. 한옥은 공간 켜가 많다. 어려운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방의 앞뒤로 마당이 있고 마당 건너 다른 방이 있으며 다시 문과 담 너머 다른 채가 있는 한옥의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한 마디로 복잡하다는 것이고 이는 곧 집이 여러 겹 겹친다는 뜻인데, 이를 지칭하는 공간미학 개념이 중첩이라는 것이다. 그냥 겹치게 하긴 쉬운데 그러다간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뿐, 이것이 일정한 공간형식을 갖춰서 심미성을 갖도록 정리한 개념이 ‘중첩’이다. 공간형식을 기준으로 하면 채 분리와 꺾임이 많고 그 사이에 마당을 끼워 넣은 구성에서 기인한다.

 

중첩은 한옥만의 특징은 아니고 한국다운 국민성 전반에 깔린 특징이다. 사물을 단정적으로 둘로 가르지 않고 중간적 태도를 취하는 상대주의 국민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첩은 의복, 음식, 대화법, 사람 사이의 관계 등 여러 곳에 나타난다. 중첩은 풍경작용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쪽 문에서 반대편 문을 통해 건너편 장면을 보는 경우이다. 내 앞에 액자가 하나 있고 그 속에 방의 공간 켜를 지나 반대편에 액자가 하나 더 들어있다. 다시 그 속에 마지막으로 풍경이 담긴다. 공간 중첩이 풍경 중첩으로 형식화되는 순간이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창문과 건너편 풍경 모습이 짜 맞춘 듯 일직선 축 위에 놓이면서 잘 들어맞는다. 마치 누군가 액자 속에 그림을 정성 들여 담아 걸어놓은 것 같은 장면이다. 중첩을 괜히 중첩시킨 것이 아니라 ‘풍경 속 풍경’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오죽헌 이쪽 문 속에 있고 그 속에 방이 있으며 맞은편이 문이 하나 더 있고 마지막으로 그 속에 풍경이 담긴다.

 

 

 

 

한옥의 백미 ‘액자 속 액자’

대청 뒷마당에서 대청 뒷문을 열고 안마당을 바라보는 경우도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난다. 내가 서 있는 쪽에 대청 뒷면의 창이 하나 나고 그 속에 대청이라는 공간 켜가 하나 있으며 반대편에 대청 앞 기둥과 지붕이 한정하는 액자가 하나 더 있다. 이 두 번째 액자 속에 들어오는 요소가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안 행랑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에 중문이 들어서면 중첩이 한 번 더 계속된다. 중문 자체가 또 하나의 액자가 되면서 모두 세 겹의 액자가 겹치게 된다. 한옥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한국 현대 건축가들이 현대적으로 재생해내고 싶어 했던 공간 구조이다.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나는 또 다른 장소로 안채의 부엌과 광을 들 수 있다. 위치로 보면 안채에서 뻗어 나온 팔의 양쪽 끄트머리 부분이다. 안채는 전체 형태가 ‘ㄷ’자 형이나 ‘ㅁ’형이 대부분이라서 대청에서 양 옆으로 뻗어 나온 두 팔이 만들어진다. 이곳에는 자녀들의 방과 함께 부엌과 광이 들어간다. 부엌과 광은 대청 쪽에 가깝게 붙기도 하지만 대청에서 먼 팔의 끄트머리에 들어가기도 한다. 집이 큰 경우 끄트머리 두 부분이 모두 광이나 부엌으로 사용된다. 부엌과 광은 기능은 다르지만 공간구조는 비슷한데, 앞뒤로 벽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하는 큰 나무 문이 나는 형식이다. 흔히 ‘광 문’이라고 부르는 문인데, 부엌에도 같은 문을 단다.

 

 

 

충효당 사랑채 대청 뒤에서 창문을 통해 앞을 보면 ‘액자 속 액자’가 일어난다. 뒷마당은 못 쓰는 물건이나 재어 놓는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풍경작용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김동수 고택 광 뒷마당에서 네 개의 문을 모두 열고 건너편
광 쪽을 바라보면 액자가 네 개 겹치는 풍경 중첩이 일어난다.

 

 

 

양쪽 팔 끄트머리에 이런 공간이 하나씩 들어있을 경우 참으로 풍부한 ‘액자 속 액자’의 풍경놀이를 즐길 수 있다. 모두 네 개의 문이 일렬로 늘어서는 형식이 된다. 네 개의 문을 다 연 다음 부엌이나 광 뒤쪽 마당에서 안을 통해 건너편 부엌이나 광 쪽을 바라다보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액자가 네 개나 겹치게 된다. 꼬챙이에 산적을 꿴 형국이다. 너무 과하다 싶으면 안으로 들어가서 건너다보면 액자가 세 개 겹친다. 발걸음을 좀 더 옮겨 안마당으로 나와 광 문 앞에 서서 부엌이나 광을 바라보면 액자가 두 개가 된다. 연차적으로 ‘줌 인(zoom in)'이 일어나는 영화기법이 일어나는 곳이다. 한옥의 또 다른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여담이지만, 한옥의 백미에는 사랑채의 활짝 편 지붕처럼 노골적이고 과시적인 것도 있지만, 앞에 얘기한 대청 뒷면이나 이곳 부엌처럼 공간의 중첩이 극대화되는 은근한 곳도 있다.

 

 

 

 

한옥만의 독특한 공간 구조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현상

풍경 중첩 혹은 ‘액자 속 액자’는 한옥만의 독특한 공간 구조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현상이다. 방의 앞뒤 양면에 창을 내는 구조이다. 방의 한쪽은 복도로 막히면서 문이 나는 것이 전 세계 주택의 공통적 구성인데, 한옥의 방만 유독 두 면, 심지어 세 면이 외기와 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방안에서 어느 문을 열어도 바로 바깥이다. 이 문제는 확장하면 한옥의 장단점과 연관이 깊다. 가장 큰 단점은 외풍이 세고 겨울에 춥다는 점이다. 열효율 면에서는 분명 불리하다. 아파트에서 가장 따뜻한 방은 집 한 가운데 들어있어서 창이 하나도 없는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비바람에 노출되기 때문에 마모가 많이 일어나 유지관리와 보수에 잔손이 많이 간다는 점도 불리할 수 있다. 흔히 한옥이 불편하다고 하는 내용들이다.

 

 

 

장점도 있다. 겨울에 추운 것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것은 불이사상 때문이다. 공간의 안팎을 다른 것으로 분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외기와의 단절을 최소화해서 바깥을 항상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방 하나가 가급적 외기를 많이 면하게 하고 창문을 여러 곳에 낸다. 한 면에 창문이 두 개 이상 나기도 한다. 채의 끄트머리에 있는 방은 세 면이 외기를 면하면서 그 세 면에 모두 창문이 난다. 심한 경우 방 하나에 문이 다섯 개, 여섯 개씩 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이 모두 열리면서 바로 바깥과 통한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대표주자가 된 전면유리를 훨씬 능가한다. 전면유리는 시각적으로는 모두 열려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하나만 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특징이 또 다른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방은 아늑하고 실내다워야지 한(寒) 데에 텐트 하나 친 정도여서야 어디 그게 방이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이 시골 진짜 한옥에서 자게 되면 첫날밤은 대부분 신경이 곤두서서 뜬눈으로 보내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바깥과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서 항상 바깥과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는 뜻이 된다. 소극적 의미의 ‘친 자연’이다. 방안 어느 곳에서든지 다섯 걸음 이내에 바깥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한옥만의 이런 특징이 공간에서는 중첩으로, 풍경작용에서는 ‘액자 속 액자’라는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이사상이라는 당시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한 것일진대, 그렇게 집을 짓다 보니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조형작용과 심미작용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신적 가치에 따라 집을 지었을 때 나타나는 좋은 점이며, 전통건축이 우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능과 효율과 돈 논리에 따라서 집을 짓는 요즘은 접할 수 없는 문화적 깊이이다. 바깥 대상과 안쪽 나 사이의 관계를 편 가름하지 않고 소통 통로를 다원화하려는 철학이 집에 녹아 든 결과이다.


운현궁 이노당 앞뒤 창문과 건너편 집 모습이 일직선에 놓이며 ‘액자 속 액자’를 만드는 모습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외풍이 센 단점을 감수하고서 풍경작용을 선택한 이유이다.

거울로 비춰 본 듯, 거울작용

한옥을 다니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주로 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볼 때인데, 비슷한 장면이 앞뒤로 반복되는 경우이다. 거울에 비춰본 것처럼 닮았다. 액자의 모양새와 풍경요소의 모양새가 닮은 경우로 ‘거울작용’이라 부를 수 있다. 넓게 보면 중첩 현상의 하나이다. 중첩에는 공간에 의한 액자중첩 이외에 요소중첩도 있게 되는데, 이때 액자와 풍경요소 사이에 닮은꼴이 어느 선 이상을 넘어서면 거울작용이 된다. 주로 문을 통한 풍경작용에서 많이 일어난다.

 

 

솟을대문이나 중문 등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면 종종 문과 닮은 모습이 액자 속에서 반복되는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다. 닮은 요소는 지붕인 경우가 제일 많다. 문에 달린 지붕이 풍경요소에서 반복되는 식이다. 한옥에서는 기와 얹은 지붕이 ‘약방의 감초’처럼 온갖 곳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문과 담 위에까지 약식으로 소품화한 기와지붕을 얹는데, 이것이 액자형식을 이루면서 풍경요소의 진짜 지붕과 겹쳐질 경우 거울작용이 일어난다. 기와의 역할이 중요하다. 들쭉날쭉 시각적 자극이 강한 부재이면서 작은 크기가 가지런히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반복해도 닮은꼴이 강조되기 쉽다.

 

문에서 본 지붕이 문 속 풍경요소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액자를 이루는 문의 지붕이 마치 액자 속에서 증식해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 증식과 반복을 유발하는 매체를 거울의 반사작용으로 설정한 개념이 거울작용이다. 실제 모습을 보더라도 거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문을 거울로 비춰서 문 속에 하나 더 넣어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문이 담을 끼고 있고 문 속 풍경작용이 같은 건축형식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또 다른 거울작용의 좋은 예이다. 집이 커서 행랑채가 두 겹으로 반복될 때, 솟을대문 양옆에 늘어선 바깥쪽 행랑채와 안으로 한 번 들어온 곳에 있는 두 번째 행랑채가 문을 매개로 앞뒤로 반복되면서 중첩되는 경우이다. 이때에도 액자와 풍경요소가 빼다 박은 듯 닮기가 쉽다. 기와지붕 단독으로 일어나는 경우보다 시각적 자극은 약하지만 좀 더 갖춰진 건축형식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적이고 좀 더 건축답다. ‘담-벽-지붕’으로 이어지는 수평 요소들의 높낮이가 앞뒤로 비슷하게 맞을 경우 마치 하나의 장면이 중간에 조금 어긋난 정도로만 보이면서 거울작용은 감쪽같다. 문에 달린 지붕의 서까래와 풍경요소 속 기와지붕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부재 종류는 다르지만 시각적으로 유사성을 가지면서 거울작용을 돕는다.


충효당 지붕을 얹은 액자 속 풍경요소 역시 지붕을 얹고 있다. 완전 대칭은 아니지만 액자를 거울에 비춰본 것 같은 유사성을 갖는다.

 

 

 

 

거울작용의 의미

거울작용은 공간 켜를 여러 겹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거울로 처리하는 트릭 기법에서 많이 나타난다. 서양건축에서도 복합공간이 새롭게 등장하던 1960~70년대에 벽에 거울을 바르는 다소 유치한 기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부 설치미술 작가들은 거울을 이용해서 공간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그것도 거울 같은 직접적 소품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건축 구성만으로 은유적으로 거울작용을 만들어 즐겼다. 게다가 트릭이 아닌 실제 현실이었다.

 

 

 

창덕궁 연경당 담과 지붕과 창의 위치가 수평이 어긋나기는 하지만 몽타주 기법으로 생각하면 둘은 거울을 보듯 닮은 장면이 된다.

 

 

 

거울작용은 ‘창과 풍경의 하나됨’이 더 적극적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궁극적 목적은 어울림의 미학이다. 액자는 나, 즉 주체이고 풍경은 너, 즉 객체이자 대상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나에서 너로 향하는 일방통행식 관계가 생기는 것이 통상적이다. 나는 나의 주관과 가치관에 의해 객체와 대상, 즉 주변을 정리하고 정의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런데 거꾸로 너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는 내가 객체요 대상이 된다. 너와 내가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하면 반드시 다툼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서양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나의 능력과 의지에 의해 주변을 정리하고 다스리려는 입장을 갖는다. 반면 한옥의 거울작용에서는 나를 너와 닮게 만들어서 다툼과 대립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각자의 존재를 충분히 지키면서 서로 닮는 쌍방향 교류가 요점이다. 생활 속 상식으로 환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쯤에 해당된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니 우열도 없다. 본디 우열이란 분별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에서 발생한다. 내가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은 백이면 백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심으로 결론난다. 거울작용에는 이런 것이 없다. 서로 상대방을 열심히 닮아 무심하게 어울리려는 평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이런 관계에는 사실 친소를 따지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둘이 친해야 가능한 일이다.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

거울작용의 또 다른 좋은 예로 ‘문양 종합’ 혹은 ‘부재 종합’이란 것이 있다. 소극적 거울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액자 속 풍경요소가 집이면서 몸통만 보이고 지붕은 살짝 암시만 하는 경우이다. 지붕이 빠진 불완전한 모습이다. 지붕은 액자에 해당되는 대문이 제공한다. 대문은 지붕만 덩그러니 얹어서 역시 불완전한 모습이다. 이 둘, 액자의 지붕과 풍경요소의 몸통을 합하면 한옥 한 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거리 차이가 있어서 모서리가 그냥 집 한 채를 보는 것만큼 완벽하게 맞진 않지만 상상으로 바느질을 해서 둘을 이어 붙이면 한 채의 한옥이 훌륭하게 완성이 된다. 약한 의미의 몽타주 기법이기도 하다. 각자는 불완전한데, 서로 합하니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이른다.

 

 

 

 

수애당 거울작용의 요체는 서로 닮자는 것이다. 분별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과 대립을 피해 어울림을 추구한다.

귀봉종택 액자의 기와와 담이 풍경요소의 벽과 문과 퇴와 댓
돌과 합해지면 비로소 한옥의 기본구성이 완성된다.

 

 

 

이런 느슨한 조합은 이분법에 의한 명확한 편 가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은 짝 요소로 이루어지고, 이것들은 대립적 관계를 갖기가 쉽다. 흔히 인문학에서 ‘이항대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도 좋은 예이다. 형식은 액자이고 내용은 풍경요소인데, 둘은 자칫 ‘제로섬 관계’에 놓이기 쉽다. 액자를 강조하면 풍경이 죽고, 풍경을 강조하면 액자가 죽는다. 둘이 양보를 안 하고 자기 존재만 고집하면 다툼이 일어나고 한쪽이 죽는다. 이긴 쪽도 승자가 아니다. 풍경 없는 액자는 결국 창고에 처박혀서 손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액자 없는 풍경은 공중에 붕 뜬 허상이 된다. 어울려야 둘 다 살 수 있다. 사람살이의 일반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울작용에서는 액자가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림으로써 제로섬 관계를 극복한다.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서로 부족함을 메워 비로소 완성된 상태를 만든다. 흔히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극히 작은 것일 뿐이라는 교훈을 깨우쳐준다. 액자를 이루는 서까래와 풍경요소를 이루는 처마 선이 사이 좋은 유사성을 가지면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구별을 없앤다.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키워준다. 둘은 같이 작동하고 협력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장면은 솟을대문을 통해 동네에 내 집의 모습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기능을 갖는다. 집 전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모습을 샘플로 삼아 집밖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자니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있고, 너무 조금만 보여주면 깍쟁이 같다. 둘 사이의 절묘한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것이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이다. 바깥에 대한 의사소통과 주변과 어울리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친절과 환영의 의미이다. 농촌사회의 지배세력이 주변의 피지배계급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이다. 한옥이 유교문명 시대 때 반가의 주거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충효당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생가로 보물 제 414호이다. 조선 중기에 총 52칸의 규모로 지어졌다.

  1. 창덕궁 연경당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에 있는 목조건물. 1828년(순조 28)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워졌다. 창덕궁에 있는 다른 건물이 단청을 한 데에 비해 연경당은 하지 않았다. 매우 단촐하고 아담하여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 형태를 잘 보여준다.

  2. 수애당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수애 류진걸(柳震杰)이 지은 사가(私家)로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춘양목(春陽木)을 목재로 1939년에 지어졌으며 조선 말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3. 귀봉종택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천전리(川前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귀봉 김수일의 종택으로 조선 현종 원년(1660)에 건립된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양식의 건물이다,

  4.  

병풍, 조각 난 풍경을 다시 합하기

한옥에는 창이 많지만 전면유리는 아니다. 막힘과 뚫림이 적절하게 교대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액자가 되는 곳은 뚫린 부분이니, 이는 액자가 여러 개 늘어서게 된다는 뜻이 된다. 뚫린 부분은 위치, 간격, 크기, 형태 등이 규칙적이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기도 하다. 어쨌든 풍경작용은 여럿으로 조각난다. 대청 뒷면은 보통 두 장의 큰 창으로 이루어진다. 앞면의 기둥 열도 얼개로 짜인 개방 창으로 볼 경우 역시 창을 만든다. 기둥이 세 개면 창이 두 개, 네 개면 창이 세 개인 식이다. 방의 한쪽 면이 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은 보통 두 개가 나지만 세 개 이상 나는 수도 있다. 창이 여럿인 장소 앞에 서서 조각난 작은 풍경들을 한 화면 안에 넣어서 볼 경우, 이것들은 다시 합해져 하나의 큰 풍경을 이룬다. 연작, 즉 병풍 개념이다.

 

회화에서의 병풍이라는 형식을 건축으로 구현한 한옥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창의 개수는 곧 병풍의 폭의 개수가 된다. 두 개면 두 폭 병풍, 세 개면 세 폭 병풍이다. 병풍은 좌우로 작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뒤로 이어지는 중첩과는 또 다른 공간구도이다. 합해 보면, 종횡의 양 방향으로 연작이 일어나는 것이 된다. 그만큼 한옥의 공간구도가 풍부하고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맹사성 고택 액자가 다르기 때문에 두 장의 풍경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풍경요소의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병풍을 이룬다.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옥에서 병풍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분산성과 규칙성이다. 상반되는 조건인 두 기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병풍 작용은 풍경요소가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분산성을 기본적 특징으로 갖는다. 너무 분산적이 되면 병풍으로 남기 어렵다. 분산성은 풍경요소들이 작은 장면들로 나누어지는 선까지 허용된다. 한 번 나눠진 다음에는 반대로 일정한 규칙성을 가져야 서로 어울려 하나의 큰 연작을 만들 수 있다. 규칙성의 조건은 연속성과 유사성이다. 너무 많이 떨어져도 안 되고 너무 달라도 안 된다.

 

 

맹사성 고택주석1 대청 뒷면을 보면 창 두 장이 위치는 동일한데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오른쪽 큰 창은 문짝이 반쯤 열려있다. 분산성도 느껴지나 전체 장면은 아직 병풍에 머문다. 좌우가 다른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창의 개수도 중요하다. 두 개면 병풍으로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고 세 개면 안정적이다. 네 개면 확실하지만 한옥에서 한 번에 창이 네 개 연달아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 개인 경우는 많진 않지만 제법 있는 편이고 두 개가 제일 많다. 대청 앞면 기둥 열이 만드는 액자도 마찬가지다. 두 칸이 제일 많고 세 칸인 경우도 있다. 대청 양 옆 방 앞에 퇴가 나고 기둥이 세워지면 대청 위에 장소를 잘 잡을 경우 창이 네 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몽타주, 조각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다

어쨌든 두 개 이상의 조각 난 작은 풍경이 합해져 전체 풍경을 만들게 된다. 작은 풍경들 사이의 유사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다. 많이 다르면 시각적으로는 합해질지 모르나 내용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채 단순 병렬에 머문다. 관가정 행랑채를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병렬되어 있다. 왼쪽은 집의 일부분인 자경이고 오른쪽은 자연물인 차경이다. 두 장면은 이질성이 커서 둘을 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창의 액자형식에 분산성이 없기 때문에 콜라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단순 병렬로서 병풍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연요소와 인공요소 사이의 병렬을 통한 종합화 작용이다.

 

  

관가정 액자는 같지만 풍경요소가 다르다. 풍경작용의 형식은 단순병렬인데, 이것을 대립으로 볼지 어울림으로 볼지는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

 

 

유사성을 가지면 이어 붙여 큰 스토리를 꾸밀 수 있다. 몽타주이다. 조각 난 풍경요소를 하나씩만 보면 집의 일부분만 보인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집의 일부분인 점에서 유사성도 크다. 이런 요소들이 조각 난 상태로 병렬되어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조각 난 부분의 나머지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복원하게 된다. 완성된 큰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몽타주는 반드시 창이 여럿으로 조각 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액자가 하나이더라도 그 속에 담기는 풍경요소가 조각 나 있고, 이것이 관찰자의 머릿속에 전체 모습에 대한 상상작용을 유발하면 몽타주가 된다. 오죽헌을 보면, 왼쪽 조각은 지붕, 회벽, 기둥과 보 등을, 오른쪽 조각은 가지런한 서까래를 각각 조형 요소로 내놓는다. 왼쪽 조각에서는 지붕 끄트머리를 보고 나머지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지나가며 분할하는 회벽을 보고 벽체 나머지 부분에 난 창 등 역시 몸통의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오른쪽 조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모두 모아 이어 붙이면 집의 전모를 추측에 의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몽타주 작용이다.

 

 몽타주, 집과 친해지기 위해 기교를 부리다

그렇다면 왜 한옥은 몽타주 작용이 일어나도록 지었을까. 병풍 작용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회화에서 병풍은 기본적으로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 때문에 만든 것이다. 큰 그림을 접어서 보관하기 편하고 누각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 들고 가서 뒤 배경으로 펼쳐놓기에 편하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다양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조형의식과 국민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정여창 고택 두 장의 풍경이 끊긴 뒤 이어진다. 중간에 가려진 부분에 대해 상상작용을 유발하면서 몽타주 작용이 일어난다.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눈 뒤 그것들 사이의 합종연횡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계를 즐기는 국민성이다. 이것이 자칫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성을 담보한 것이 한옥에서의 병풍 작용이다. 한국 특유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현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용이라는 동양의 미덕을 바탕에 갖는다.

 

  

중용의 균형감각은 집과 사람 사이에 더 적극적으로 적용된다. 집과 친해지기 위해 몽타주라는 기교적 조형형식을 가했다는 것이 해답이다. 집이 단독으로 통째로 존재하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형식적이 된다. 주체로서의 사람과 객체로서의 주변 환경으로 양분되면서 이항대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집과 친해지거나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겨루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객체화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집이건 상관없이 겨루어 이기고 싶어 한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으로서의 경쟁심이나 우월본능이다.

 

사람과 집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일상생활이 피곤해진다. 사람은 집에 욕심을 싣는다. 집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결국 집을 사람에게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객체와 싸워 이겨 굴복시키는 목적은 하나,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지배욕, 물욕, 권력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집도 이런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제문명 시대에는 집이 사람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버는 수단이 된다. 집은 온전한 개체가 되지 못하고 끝까지 수단과 도구로만 남는다.

 

집과 사람은 대등한 영향관계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작용도 고스란히 받게 되어 있다. 집을 잘 대해주면 집으로부터 복을 되돌려 받지만 잘못 대하면 그 대가를 치러 저주를 받아 불행해진다. 너무 쉽고 당연한, 그렇기에 지엄한 세상의 기초 이치이다. 집에 정성을 쏟고 집과 친해져서 한 몸 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면 집은 사람에게 더할 수 없이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만들어준다. 몽타주는 집에 다양한 놀이기능을 부여해서 집과 친해지고 하나가 되기 위한 고도의 주거 전략인 것이다.


 

오죽헌 액자는 하나인데 풍경요소가 둘로 나눠져 몽타주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좌우 양쪽 옆의 나머지 모습을 상상으로 복원시켜 이어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싶어진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맹사성(孟思誠)이 살던 가옥. 고려 말의 무신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자사위인 맹사성의 부친이 물려받아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ㄷ자 형태의 가옥으로 마당에는 맹사성이 심은 600여 년 이상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다.

 

한옥의 공간은 무상하다. ‘상’이란 ‘항상 그렇단’ 뜻이니 무상은 ‘항상 그런 상태가 없다’는, 즉 ‘한 가지로 고정된 상수의 상태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한옥의 공간은 ‘항변’한다. 한옥이 유교문명의 지배계층을 위한 반가이지만, 항변하는 공간의 특징에는 노장과 불교의 사상이 베어들어 있다. 무상이라는 개념이 이미 노장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을 공간에 적용시키면 ‘비움’의 가치가 된다. 무언가 꽉 차 있으면 변하기 힘들고 한 가지로 고정되어 버린다. 무상 공간을 낳은 불교 사상은 ‘불이(不二)’이다. 둘로 나누는 통상적 편 가름을 거부한다. 공간에 적용시키면 안과 밖, 방과 마당, 이쪽과 저쪽이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서로 같은 하나라는 뜻이 된다.

 

 

서울 민형기가옥 중문과 내외문이 담을 끼고 퇴와 합했다. 몸체의 덩어리를 면과 선이 가르는 형국이다. 건축형식이 다양하니 기하학적 조합이 뛰어나다.

 

 

 

비움과 불이는 벽의 가변성으로 얻어진다. 한옥은 나무기둥이 구조역할을 담당한다. 벽은 고정되지 않고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벽마저 딱딱한 고형 상태로 굳히는 서양건축과 달리 한옥에서 벽은 자유롭게 변할 수 있다. 문이 그 비밀이다. 문의 면적을 가급적 늘린다. 벼락치기 문이라는 기발한 형식도 있다. 이 문을 달 경우 뼈대만 앙상하게 남기고 벽을 다 털어버릴 수도 있다. 기둥마저 나무라는 자연재료이기 때문에 이런 투명한 느낌을 돕는다.

 

문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통(通)’의 길을 낸다. 바람 길을 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결과적으로 막힘없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쪽에 문을 내면 저쪽에서 구멍이 마주 보며 대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들여서 막다른 길로 모는 실례를 범하지 않는다. 들어오면 뒤돌지 않고 나갈 수 있다. ‘통’은 길이니 ‘모’로도 난다. 긴 꼬치 하나에 이것저것 꿴 것처럼 방과 문, 문과 벽, 급기야는 공간과 공간을 일직선에 달고 사선으로 뻗어나가는 축이 있게 마련이다.

 

공간 얼개가 자유롭다. 문이 유난히 많다. 밖을 면한 외벽은 물론이고, 대청이나 안마당을 면한 안쪽도 마찬가지다. 벽을 털어버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 전에 공간 얼개를 가능하면 다양한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 먼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조합에 따라 경우의 수는 다양하게 증가한다. 마당까지 합세하면 머리로 헤아릴 범위를 넘어선다. 채를 중심으로 여러 켜의 공간이 앞뒤로 중첩되다가, 다시 마당을 기준으로 이런 채가 중첩된다. 방이 안이고 마당이 밖임을 굳이 구별할 이유가 사라진다. 통하고 돌고 도니 불이이다.

 

 

한옥의 몽타주·콜라주·바로크

한옥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다양성’을 들 수 있다. 99칸이라지만 건축면적은 이보다 작은데 넓지 않은 면적 속에 무한대로 다양한 건축형식과 조형작용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서양의 대저택에도 여러 개의 방문이 일렬로 늘어서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한옥에서와 같은 ‘중첩’ 개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3차원 공간 깊이가 결여된 2차원 평면 위에 원근법에 따라 여러 개의 문을 앞뒤로 겹쳐 그린 느낌이 더 강하다. 위치를 옮겨 시선각도를 바꿔 봐도 큰 차이가 없다. 같은 조형 영역 안에 머물게 느껴진다. 한옥은 그렇지 않다. 도대체가 시선 각도를 10도만 틀어도, 앞으로 1미터만 나가도 다른 조형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는 동양문명의 특징이기도 하다. 절대성을 지향하는 서양문명과 달리 동양은 천지만물의 다양성을 인정한 위에 이것에 적절히 대응하는 다양한 전략을 세워 구사했다. 가장 거시적 차원에서 ‘서양=절대주의 대 동양=상대주의’의 이분법이 성립되는 대목이다. 불교나 노장 같은 대표적 사상도 상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좀 더 현실적 전략으로 주역의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주제와 변주’의 방법론을 통해 다양성을 규칙화해서 세상 이치를 조금이라도 파악해보려는 시도이다.

  

청풍 후산리 고가 창문을 사선 방향에서 바라볼 경우 액자 윤곽에 왜곡이 일어나고 긴장감이 뒤 따르면서 풍경요소를 조각 내 콜라주를 만든다.

 

 

 

한옥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즐기되 최소한의 규칙성을 지켜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관찰된다. 분산적 풍경작용이 대표적인 예인데, ‘몽타주-콜라주-바로크’의 세 가지가 핵심을 이룬다. 몽타주와 콜라주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은데, 굳이 구별하자면 요소들 사이의 닮은꼴이 어느 정도 있으면 몽타주이고 차이가 심하면 콜라주가 된다. 풍경작용에 적용시켜 보면, 액자의 크기, 위치, 형태 등이 서로 많이 다르거나 개수가 많아지면 콜라주가 된다. 병풍 작용을 기준으로 하면 ‘변형 병풍’에 해당된다.

 

우표 세트를 생각하면 쉽다. 대부분은 세트를 이루는 여러 장이 모두 같은 크기와 형태이지만 가끔 완전히 다른 크기와 형태로 세트를 짜는 경우가 있다. 풍경작용을 이루는 액자가 이럴 경우 몽타주의 한계를 넘어 콜라주의 단계로 진입한다. 분산성이 더 심해서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면 바로크가 된다. 콜라주는 규칙성과 분산성의 중간 경계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콜라주 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한옥도 제법 되지만 많은 수는 적어도 한두 장면 정도는 콜라주 작용을 담고 있다. 유교문명의 법도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집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즐기려는 놀이본능을 반영한 집이 바로 한옥이며, 그 바깥쪽 경계가 콜라주가 된다.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풍경작용의 조건들

한옥의 풍경작용에서 몽타주와 콜라주의 경계를 명확히 짓기란 불가능하다. 대략으로 정해보면, 액자의 개수가 3개 이상이면서 서로 닮지 않았을 때 콜라주가 일어난다. 김동수 고택 을 보면, 대청에 두 개의 액자가 나 있고 그 옆방 창이 액자 하나를 더 만들고 있다. 총 세 개의 액자이다. 대청 액자 두 개는 크기가 서로 다르고 액자 속 풍경도 다르면서 분산성을 만든다. 옆방 창에 만들어진 액자는 방문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형국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대청 액자와 좌표 위치가 어긋나 보인다. 이것 역시 분산성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이상의 상황들이 합해지면서 콜라주를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었다.

 

  

김동수 고택 액자가 세 개이면서 액자와 풍경요소 모두에 일정한 분산성과 다양성이 확보되면 콜라주가 일어난다.

 

 

 

액자가 두 개라고 해서 콜라주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단, 조건이 필요하다. 액자가 얌전히 있질 못하고 창살 같은 일정한 조형요소를 스스로 가질 것, 액자 속 풍경요소가 가급적 집의 일부분이면서 액자의 조형요소와 어울려 문양종합을 이룰 것, 이때 종합화의 양상이 너무 규칙적이지 않고 일정한 분산성을 가질 것 등이다. 많은 한옥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추어서 두 개의 액자만으로 콜라주를 일으킨다. 용흥궁도 좋은 예이다. 창이 두 개인데 창 사이 여백이 적절하다. 왼쪽 창은 절반 정도가, 오른쪽 창은 삼분의 이 정도가 각각 닫혀 있는데 창살문양의 종류가 서로 다르면서 분산성을 배가시킨다. 오른쪽 창 속에 있는 건너편 방은 또 다른 종류의 창살문양을 더한다. 왼쪽 창 속에는 담과 지붕과 벽이 마지막으로 가세하면서 문양종합의 단계를 넘어섰다. 이상이 합해지면서 심하게 흐트러지지는 않았지만 콜라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흥궁 액자가 두 개이더라도 풍경작용을 일으키는 요소가 많으면 콜라주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요소를 모아 하나의 큰 스토리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액자가 분산성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경우는 긴 벽면에 창이 여러 개 나 있는 방 안 한쪽 구석에서 옆으로 창을 바라볼 때이다. 이 경우 분산성을 만드는 요인은 사선에 의한 형태 왜곡과 긴장감이다. 창이 마름모꼴이 되고 시선은 일소점 투시도 형식으로 모아지면서 액자가 변형되는 형태 왜곡이 일어난다. 액자의 왜곡은 그 속에 담기는 풍경장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액자 윤곽에 일어나는 점증과 점감의 정도가 급해지면서 작은 풍경들 사이의 연속성은 끊기고 각 풍경은 개별 요소로 인식된다. 전체 풍경은 이런 개별 요소들을 다시 모아 짜 맞추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창문을 여닫은 정도도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준이다. 창호지가 반투명이기 때문에 문짝이 닫히는 정도는 시각작용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문짝이 가리는 부분은 일단 안 보이게 되기 때문에 풍경요소를 조절하게 된다. 햇빛이 비치면 문짝의 창살 자체가 풍경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이 여러 개라면 문짝을 여닫는 것만으로도 풍경작용을 조절하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해진다. 창이 하나라도 반쯤 닫혀서 창이 두 개인 것과 같은 조건이 되면 콜라주의 초기 상태가 나타난다. 창이 반쯤 닫힌 상태에서 닫힌 쪽 구석에 치우쳐서 창을 바라보면 풍경요소가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창이 여럿으로 늘어나면서 문짝이 불규칙하게 열려 있으면 풍경요소가 심하게 분산되면서 콜라주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이다. 윤증 고택 사랑채는 콜라주의 백미이다. 액자는 세 개인데 모양과 위치가 각각 다르다. 같은 벽면에 난 창들이 아니라 육면체의 세 면에 하나씩 난 창들이기 때문이다. 세 액자 모두 절반쯤 닫혀 있는데 닫힌 문의 상태가 제각각이다. 바깥 풍경요소도 다르다. 액자가 육면체의 세 면에 나 있어서 면하는 외부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면 전체를 이루는 건물 골조는 족자로 읽힌다. 이상을 종합하면 ‘세 개의 액자, 네 장의 창문, 세 개의 바깥 풍경요소-대청 골조가 만드는 족자’가 합해져 콜라주를 이룬다.

 

  

윤증 고택 사랑채 콜라주의 백미이자, 한국의 한옥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집과 창은 반듯한데 문짝을 열고 닫는 정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콜라주가 일어난다.

 

 

 

콜라주, ‘비빔밥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형식화하다

그렇다면 한옥에서는 왜 콜라주 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부분들의 조합으로 전체를 구성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적 국민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병풍이 좋은 예인데, 음식에서는 구절판을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부터 병풍 개념에 해당되는 ‘여러 요소의 연속 배치’를 공유한다. 먹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쌈 싸먹기도 유사한 경우이다. 이런 식의 음식문화는 재료의 종류가 다양한 농경문화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멕시코의 파히타나 베트남의 월남 쌈이 대표적 예이다.

 

병풍과 구절판보다 분산성이 더 강화된 예가 한복의 겹쳐 입기와 비빔밥이다. 큰 하나보다 몇 가지 부분요소의 혼성으로 총합을 구성하고 싶어 하는 한국 특유의 민족 정서이다. 왜 이런 문화가 발달했을까. 그 해답은 최종 결과를 대상에게 맡겨놓으려는 한국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적 어울림’의 개념이다. 더 확장하면 한국적 상대주의의 전형적 예이기도 하다. 사람이 계산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외의 눈에 안 보이는 힘의 작용을 끌어들여 의탁하려는 세계관의 산물이다. 한복에서 여러 층이 겹치다 보면 자기들끼리의 어울림 작용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실은 비빔밥에서 더 잘 확인된다. 다양한 재료가 섞이다 보면 재료들끼리 맛, 향, 색, 영양성분 등 여러 측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만들어진다. 모든 것을 사람이 계산하고 정하고 예측한 대로 나타나게 하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재료를 100% 사람이 원하는 대로 조리하지 않고 재료 스스로의 작용에도 일정한 역할을 맡기겠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사람의 손아귀에 묶어두지 않겠다는 인생관이다. 100명이 모여서 비빔밥을 만들면 100가지의 다른 맛이 만들어진다. 레서피라는 것이 무색해지는 한국 특유의 음식문화인데, 한국인의 조형의식 전반에 깔린 바탕이기도 하며 이것을 건축적으로 형식화한 것이 한옥에서 콜라주 작용인 것이다.

 

  

 김동수 고택

  1.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고가(古家).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으로,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정조 8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이 나오고 중문을 거쳐 바깥 행랑채가 있으며,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거치면 사랑채가 나온다. 다시 안행랑채의 안대문을 들어서면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치된 방들이 있다. 그 안쪽으로 안채가 있고, 안채의 서남쪽에 안사랑채가 있다.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마당의 크기와 위치, 대문간에서 안채에 이르는 동선의 관계가 뛰어나 조선시대 양반의 생활양식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2. 용흥궁

    조선 후기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 정상 정통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임금에 오른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집을 잠저라 하며,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원래는 초가였던 용흥궁도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당시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3. 윤증 고택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이 살던 고택. 윤증 말년인 18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전면에 사랑채를 두고 후면에 안채, 후면 동쪽에 사당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口 자형 양반 주택이다. 크게 사랑채•안채•문간채•사당•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 주변에는 담을 두지 않아 가옥 전체가 개방된 분위기다. 사랑채는 좌우 대칭적인 팔작지붕으로 만들어 균제된 입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정면의 칸수는 짝수인 4칸으로 계획하여 정면 길이와 높이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조정하여 아름다운 비례를 꾀하였다. 충청도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으로서 여유 있는 배치구조와 넓은 안마당, 사랑채와 안채의 높이 차이를 적게 만드는 등의 지역적 특징이 주택의 배치와 구성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성리학자의 생각이 주택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분산적 풍경작용의 종점, 바로크

서양의 예술 형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형식을 대표하는 표현이 ‘르네상스답다’는 것이다. ‘x-y-z'축의 3차원 질서가 반듯하게 지켜지고 개체의 모습도 본래 생긴 꼴을 잘 유지한다. 동일한 요소가 반복되면서 균형과 안정을 지킨다. 이것의 반대가 ’바로크‘이다.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이며 파격이나 변화를 추구한다. 형태가 왜곡되고 좌표 질서도 깨진다.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조형적 미덕이 된다. 한옥은 법도를 바탕으로 한 유교시대 지배계층의 주거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르네상스다워야 맞다. 언뜻 보면 르네상스다워 보이기도 한다.

 

내막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둘 중 고르라면 바로크에 가깝다. 그래서 유교문명은 잘 맞지 않았다. 조선의 유교문명이 한국인에게 행복한 시대였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논제이므로 여기서 감히 꺼낼 얘기는 아니다. 한옥이라는 건축형식만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규범과 법도의 질서 속에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숨겨 놓은 것만은 확실하다. 목적은 놀이기능이다. 딱딱하고 엄격한 유교의 법도 속에서 숨 쉴 돌파구를 마련해놓은 것으로 보고 싶다. 한국인의 국민성으로 보았을 때, 대감님이나 안방마님이라고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평생을 늘 반듯한 몸가짐만으로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은 집에 있었다. 다양한 놀이기능을 숨은 질서로 슬쩍 집어넣어 겉에서는 들키지 않으면서 집 안에서 즐기며 놀 수 있게 했다. 겉으로 규범을 잘 좇으면서 속으로 키메라처럼 다양하게 변하는 내재적 질서를 숨긴 집은 세계에서 한옥밖에 없다.

  

창덕궁 연경당 액자와 풍경요소는 심하게 조각 나 소품이 되었다. 이것들을 모아서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이런 놀이기능의 정점에 바로크가 있다. ‘몽타주-콜라주-바로크’의 세 경우가 분산적 풍경작용을 이루는 핵심인데, 몽타주는 좀 더 규칙성에 치중한 경우이고 콜라주는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한 경우이며 바로크는 분산성 쪽으로 넘어간 경우이다. 콜라주와 바로크는 외견 형식만 보면 유사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콜라주가 개별요소의 총합을 완성된 상태로 굳혀서 보려는 데 반해 바로크는 계속 변화 중에 있다. 동양미학으로는 변화무쌍과 기운생동이 서양식 바로크 개념에 해당한다. 창덕궁 연경당을 보면, 액자는 개수를 세기가 힘들 정도로 분산되었다. 분산이 일어난 방향도 축 질서를 딱히 정하기 힘들다.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유기체의 생명작용을 보는 것 같다. 조각 난 풍경요소를 모아서 전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냥 조각 난 상태 그대로 즐겨야 할 것 같다.

 

 

바로크의 조건들 : 소품화, 축 질서 깨기, 낯설게 하기

창덕궁 연경당이 만들어낸 장면은 ‘소품화’로 정의할 수 있다. 바로크가 일어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개별요소가 전체 장면을 독점하는 비율이 작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풍경요소만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은 그만큼 안정적이 되어서 분산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별요소에 대한 전체 질서, 즉 조형규범이 약해져야 한다. 반복, 통일성, 비례 등 조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조형규범인데, 이런 질서에서는 바로크가 나올 수 없다. 바로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전체 질서가 개별요소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요소가 하나씩 떨어져 따로 놀아야 된다. 이를 ‘소품화’로 정의할 수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갈가리 찢어지고 조각 나야 된다는 뜻이다. 단순히 개수만 많아서는 안 된다. 조각을 모아 바느질을 하고 짜 맞추어도 원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액자와 풍경요소의 개수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간 구도도 중요하다. 십자 축 질서가 깨진 경우도 바로크가 일어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집이 삐딱하게 기우는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한옥에서 이런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럴 경우 유교적 법도를 대놓고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허용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 대신 다른 기법을 숨겨서 쓴다. ‘十’을 이루는 네 팔에 창을 불규칙하게 뚫을 뿐 아니라 그 창 속에 보이는 장면도 제각각으로 만든 다음 하나로 합하는 방식이다. 향단 을 보면, 네 팔 가운데 세 곳에 문을 냈는데 위치, 크기, 형태, 개수 등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각 창 속에 보이는 풍경장면들도 서로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서로들 바로 옆에 있지만 협심할 의지는 약해 보인다. 집 전체의 구도가 급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액자를 뚫고 봐도 조화롭고 통일된 질서가 잡히지를 않는다.

 

  

향단 십자 축 질서의 골격은 유지되지만 축을 이루는 각 팔들에서 일어나는 풍경작용은 제각각이다. 이것들을 모아 놓으면 바로크가 된다.

 

 

 

또 다른 독특한 바로크 작용으로 ‘낯설게 하기’를 들 수 있다. 수애당 사랑채를 보면, 화면은 양분되어 있는데 둘은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다른 집의 장면을 가져와 이어놓은 것 같다. 왼쪽에서는 창호지가 햇빛을 받으면서 ‘창 스스로 풍경이 되기’가 일어난다. 오른쪽은 족자와 자경이 일어나고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장경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크다울 수 있는 이유는 이 둘이 ‘뜬금없이’ 병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립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으나 ‘이질요소의 병렬을 통한 낯설게 하기’로 정의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립성도 느껴진다. 왼쪽은 실내장면을 대표하면서 오른쪽의 실외장면과 대립된다. 실내장면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데 실외요소는 오히려 빛이 인색하면서 우울해 보인다. 실내외 사이의 이런 전도는 초현실성으로 읽힌다. 실외는 밝은 빛으로 가득차고 실내는 차분하다는 현실의 상식을 뒤엎는 점에서 그러하다.

 

  

 

수애당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성은 상식을 깨는 의외성을 일으킨다. ‘낯설게 하기’를 통한 바로크 기법이다.

 

 

 

한국적 상대주의를 건축적으로 형식화하다

왜 집에서 이런 바로크 작용이 일어나게 했을까. 한 마디로 한국적 국민성을 대표하는 상대주의를 건축적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다. 한국적 민족성 가운데 개별성과 임의성에 기초한 상대주의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인들은 세상사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개별 요소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 과정에서 세상만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구성형식은 여러 갈래로 분화된다. 처음부터 하나로 주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갈림길이 대표적 구도이며 이것을 합리화하는 정서적 개념이 여정이다. 인생을 나그네길, 즉 여정에 비유한 개념이 좋은 예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 힘의 무기력함과 이것이 모여서 형성되는 사람살이의 무상함을 인정한다. 이것에 대항해서 극복하기보다 순응해서 살기를 좋아한다.

 

  

김동수 고택 세 겹 중첩에 의한 바로크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질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다. 서양식 실용주의는 일직선으로 잘 정리된 질서를 추구하지만 한국적 국민성은 이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우르르 몰려서 대강대강 되는대로 비벼대다 보면 그런대로 일은 돌아가게 되어 있다’라는 것이 한국인의 질서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이런 차이는 수형도로 환산해보면 다시 명확하게 드러난다. 서양식 줄서기를 수형도로 그리면 큰 줄기 하나에서 작은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형국이다. 큰 줄기는 사람이 세운 질서이다. 이것은 규칙의 개념으로 사회에서 중심에 위치한다. 반면 한국식 줄서기를 수형도로 그리면 큰 줄기가 없이 작은 가지만 여러 개 얽힌다. 선험적 규칙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함으로써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서양식 절대주의나 근대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무질서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근대화가 덜 된 재래적 잔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식 질서 개념이 인간 본성에 더 가까운 것 또한 사실이다. 생명의 활력에 의해 항상 살아서 움직이는 활성이 인간의 본성에 제일 가까운 상태인데 이것을 인공질서로 제약하려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활성은 ‘개체의 자유’의 밑바탕을 이루는 원초적 조건이다. 이런 세계관이 한옥에서 건축적 형식으로 구체화된 것이 바로크라는 풍경작용인 것이다.

 

 향단

조선 중기의 가옥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위치.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경상감사로 부임한 1540년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원래는 99칸이었으나 화재로 불타고 51칸이 남아 있다. 전면의 한층 낮은 곳에 동서로 길게 9칸의 행랑채가 있고 그 후면에 행랑채와 병행시켜 같은 규모의 본채가 있다. 그 중앙과 좌우 양단을 각각 이어서 방으로 연결하여, 전체 건물이 마치 ‘日’자를 옆으로 한 것 같은 평면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격식과 품격을 갖추면서, 주거문화의 합리화를 꾀한 공간구성이 돋보인다.

 

동양 미학에는 유독 기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를 손재주나 기계기술로 보지 않고 예술로 본다는 뜻이다. 우선 재료 각자의 질료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야 된다. 자연스러움의 한 가지로, 재료를 손재주의 수단이나 물욕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감정이입을 시켜, 나와 하나로 느끼라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일체감이니, 재료의 입장에서 기획하고 다듬고 손질하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부재의 쓰임새에 맞게 만들라고 했다. 기능미인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예미와 갈라져 반대편에 섰지만, 원래 전통적인 동양미학에서 기능미와 공예미는 한몸이었다.

 

 

쓰임새에 충실하게 만들면 따로 힘들여 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심미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공예미의 핵심이다. 재료의 자연스러움과 쓰임새의 자연스러움이 합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기예에 이르게 된다.

 

기예는 ‘진정한 기교’이자 진정한 공교로움이다. 겉멋에 머무는 헛수고는 안 하느니만 못한 괜한 공교로움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은 안정감이 한이 없고 기품이 끝이 없는 상태이다. 천 번의 유행과 만 번의 변덕을 뛰어넘어 내심으로 풍요로우니 편안하기 그지없는 상태이다. 잔 계산에 울고 웃는 거침을 초월한 상태이다. 그 실현이 바로 심미와 예술의 최고 경지이니 이것에 이른 상태를 자연천성(自然天成) 혹은 교탈천공(巧奪天工)이라 했다. 완벽한 자기다움에 이르러 기교를 탈피한 경계로 하늘이 만든 상태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어진 경계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의 반대편에 부질없는 공교로움이 있다. 외관의 반짝거림에 취해 겉멋이 들어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리는 수준으로 대교약졸이라 했다. ‘큰 기교는 서툰 것과 같다’는 뜻이니 진실성이 빠진 상태이다. 기예를 ‘욕심을 일으켜 감각의 탐욕을 키우는 잔재주’로 파악하는 수준이다.

 

만든 물건에서 진실성이 느껴지면 곧 정심의 경계이니,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된 경지로서의 물아일체의 상태이다. 장인은 뒤로 빠지고 재료와 부재가 각자의 본성과 쓰임새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지라고 놔뒀을 때 나타날 법한 상태를 구현해낸 경지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재료와 부재를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것들에 나를 온전히 실어 완벽한 감정이입의 상태에 들어야 한다.

 

굳이 공교롭게 잔재주를 부릴 필요 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니, 곧 ‘물아일체(物我一體)’이다. 건축에서 기예가 발현되는 통로는 공예, 소품, 문양 셋이다. 소품은 생활의 미학이며 일상성, 살림살이, 농기구, 돌의 해학성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수 고택너무 휘어서 버려야 할 나무를 아치로 썼다. 재료의 형상에 내재된 쓰임새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힘이니, 진정한 공예의 출발점이다. 손재주가 아닌 손맛이어야 하는데, 재료의 제격을 파악해내는 힘이다.

 

기계론적 효율로 보면 불편하고 재래적인 한옥

 

한옥은 비과학적일까. 한옥은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재래’, 말 그대로 있던 것이 계속 있다는 뜻이다. 재래다운 것은 전부 비과학적이고 따라서 폐기되어야만 할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한다. 제일 좋은 비교대상은 ‘지금, 이 시점’이다.

 

 

 

현재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기계론에 의존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이 100% 완벽해야 하며 무엇보다 낭비 없는 효율의 절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의 육안을 뛰어넘는 우주나 나노 같은 극대, 극소 스케일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계밖에 없다는 믿음을 공고하게 바탕에 깔고 있다. 압축하면 효율과 기계론, 즉 기계론적 효율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정말 비과학적이다. 이런 기준만이 사람에게 복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옥은 민속촌 밖으로 한 걸음도 나와서는 안 된다. 겨울에 춥고 삐걱거리며 집은 짓다 만 것 같아서 여기도 기우뚱 저기도 기우뚱 거린다. 창호지는 왜 그렇게 옆방 목소리를 생생하게 생중계하는지 귀가, 아니 숫제 온 신경이 곤두선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온 집이 부르르 떠는 것 같아서 그 속에 들어있는 사람까지 당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닥을 봐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잔 변화는 왜 또 그렇게 심한지 마당에서 방에 오르려면 약식 등산이라도 하는 것 같다. 맨몸으로 해도 힘든 이런 성가심을 무거운 밥상을 들고 평생을 해대야 하니 한옥은 정말로 ‘여자를 죽이는 집’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 의미로 ‘재래’를 말할 때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근대기계문명, 그리고 우리도 해방 이후 반세기 이상 이루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했던 그 근대기계문명이란 것도 사실 좁게 보면 이런 재래다운 불편함을 없애고 좀 더 편리하고 위생적인 살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근대화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 국민의 70%가 아주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은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적어도 집과 관련해서 비바람에 집이 날아갈지, 겨울에 추울지, 여름에 더울지, 내가 방에서 전화로 속삭이는 얘기를 엄마가 들을지, 내 무릎 연골이 닳지는 않을지 등등을 고민할 필요는 정말 없어졌다.


 

관가정 사랑채 대개, 바람 길에는 해도 잘 들게 마련이다. 해가 드나들고 바람이 다니는 길은 풍경도 좋은 법이다.

 

 

 

 

  

 

경험적이고 정성적(定性的)인 과학다움에서 뛰어난 한옥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난리다. 이렇게 훌륭한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 열매도 분명히 손에 넣었는데 새로운 불만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사회현상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계에서 유래 없이 빠른 1등 근대화를 이루었더니 별의별 희귀한 사회적 정신적 불안 증세에서도 여지없이 1등을 차지하고 있다. 다 아는 얘기이고 입에 올리기 민망하니 구체적 언급은 피하자. 다만 한 가지, 온 국민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온갖 종류의 중독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직시해야 한다.

 

왜 그럴까. ‘과학적’이라는 것의 기준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에는 기계론적 효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과 감성, 정서와 체화, 마음과 심리 등과 같은 경험적 정성적(定性的) 요소가 절반은 차지한다. 정량적 요소 반에 정성적 요소가 반을 이루어 균형이 잡힐 때 비로소 진정한 과학다움이 실현되는 것이다.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가 빠진 기계론적 효울 중심의 정량적 과학다움은 손에 물질은 많이 쥐어줄지 모르지만 그 반대급부도 반드시 묻게 되어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 그 증거이다.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가 없을 경우, 물질적 과학다움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건강한 과학다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렇게 찬란한 업적을 이룬 현대과학문명도 한 가지를 손에 넣으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케케묵은 만고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의성김씨 종가 무심한 나무 한 토막과 덤덤한 돌 한 덩어리는 집안에 재래다운 포근함을 더해준다.

 

 

 

우리가 재래적이라고 부르며 극복하고 없애고 싶어 했던 한옥의 비과학다움이 이런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의 좋은 예이다. 이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본 것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물질적 기준에서 보면 비과학적이지만 경험과 정성의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숨어 있다. 한옥을 건강한 주거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앞에 늘어놓은 한옥의 불편함이 거꾸로 과학다움과 건강함으로 뒤바뀐다. 예를 들어보자. 한옥의 참맛은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맞아 즐길 수 있을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낯선 전문용어로 설명하는 대청 지붕의 구조나 어려운 동양철학에 견주어 설명하는 공간의 원리 등을 알지 못해도 한옥은 경험만으로도 그 가치와 이로움을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한옥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다

햇빛 한 줄기와 바람 한 줌을 고마워할 줄 아는 정신자세와 그것을 살갗과 땀구멍과 신경과 핏줄을 이용해서, 온몸으로 체화해서 즐길 수 있는 몸만 있으면 족하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런 생리작용을 마음과 정신으로 연결해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 필수적이다. 무지막지하게 효율적인 기계문명의 도움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한옥이 주는 경험적 건강함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일 것이다. 소소하고 나약한 자연요소에 크게 감동받고 고마워할 줄 아는 섬세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옥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한옥의 참 의미는 한겨울 따뜻한 햇빛을 만끽하며 삭풍이 두렵지 않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또한 한여름 폭염을 저 멀리 하늘에 붙들어두고 허파까지 시원하게 흩어내는 통(統) 바람과 통(通) 바람을 즐길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은 결국 같이 작동하는 것일진대, 한옥이란 겨울에는 햇빛을, 여름에는 바람을 붙잡아 끌어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하고 있다. 햇빛을 알뜰살뜰 주어 옷 속 깊숙이 담고 피부 구석구석 바를 수 있을 때, 그리해서 햇빛을 말초신경 끝마디까지 짜릿하게 느끼고 모세혈관 끝 가닥까지 가득 채울 수 있을 때, 따라서 햇빛을 통해 나의 존재를 여실히 깨달을 때, 그러할 때 한옥의 참맛을 비로소 알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한여름 죽부인 끼고 대청에 속옷 바람으로 뒹굴 거리며 수박 까먹으며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 한옥의 참맛의 나머지 반을 알 수 있다.

 

 

 

김동수 고택 안채 안채의 광은 바람과 햇빛이 함께 다니기
에 좋은 구조를 갖춘다. 통하고 소독하는 재래다운 위생이다.

창덕궁 연경당 오르내림이 많은 한옥의 기단 구조는 몸을 많이
쓰게 만들어 준다. 이것을 불편하지 않게 느낄 수 있으면 기계가
줄 수 없는 건강한 과학다움을 체험하게 된다.

  

 

 

정리해보자. 재래적 불편함이 과학다운 건강함이 될 수 있는 경로는 세 가지이다. 첫째, 한옥의 불편함은 자잘한 생리적 자극을 유발한다. 몸을 많이 쓰게 만들기 때문에 일정한 운동량을 담보해준다. 둘째, 이것이 감각과 감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자잘한 일상생활을 즐기면서 갖는 운동효과는 일부러 헬스클럽에 가서 하는 운동처럼 오로지 육체에만 집중된 운동에서는 얻지 못하는 묘한 쾌감이 있다. 장수노인이나 고승들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방을 손수 청소하고 자신이 입었던 옷을 손빨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좋은 예이다. 셋째, 생리적 우회 없이 처음부터 마음과 정서를 도닥여준다. 한옥은 매우 감각적인 집이다. 사람의 오감을 섬세하게 쓰다듬고 부드럽게 자극한다. 이것을 오로지 감각 자체에 집착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끌어들여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의 도움으로 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모두 현대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그 대안을 다른 곳에서 찾는 대체의학이 주목하는 내용들이다.

 

한옥이 과학적일 수 있는 이유는 이상의 세 가지 특징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셋 가운데 한 가지만 만들어내기는 쉽다. 그러나 집 하나에 셋 모두를 담아서 더욱이 그것들이 상호 연관을 가지며 종합적으로 작용하게 만들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과학적 우수성이다.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들을 기계 하나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과학이기보다는 폭력이다. 최소한의 존재근거를 주자면, 물질의 축적이 시급했던 성기 산업자본주의 때의 미덕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일반인은 일반인대로,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장사꾼은 또 장사꾼대로, 인문학자나 예술가들도 역시 그들대로,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다양한 조건들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서는 한옥처럼 경험과 정성을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집이 과학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의외로 따뜻한 한옥

한옥은 햇빛이 잘 드는 집이다. 한옥의 불편함을 얘기할 때 1순위가 겨울에 춥다는 것인데, 맞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오해도 있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제일 많이 얘기되는 사항이 외풍과 창호지의 낮은 단열효과이다. 잘 지은 전통한옥은 의외로 외풍이 없다. 문이 두 겹인 경우가 보통인데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을 섞기 때문에 둘을 꽁꽁 닫으면 창틀 사이에 꺾임과 막힘이 일어나서 외풍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다.

 

 

심한 경우 문이 세 겹인 집도 있다. 천장 높이도 중요하다. 전통한옥은 천장이 낮아 외풍막이에 도움을 준다. 한옥의 외풍이 세다는 인식은 20세기 도시형 한옥으로 오면서 천장이 높아진 데에도 원인이 있다. 혹은 도시형 한옥 다음 단계인 그냥 개인주택의 기억을 한옥에 오버랩 시킨 측면도 많다.


창호지의 단열성도 생각보다는 좋다. 물론 콘크리트나 돌보다는 못하지만 요즘 쓰는 복사지나 노트 같은 일반종이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이것을 겹창이나 세 겹창으로 하면 그 효과는 더 올라간다. 문과 문 사이에 공기층이 만들어져서 단열효과를 돕는다. 요즘 아파트에서 베란다가 단열작용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약하게 적용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방 천장은 낮은데 그 위로 지붕과의 사이에 역시 큰 공기층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붕 쪽에서의 단열효과는 오히려 현대주택보다 더 뛰어나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복사열을 이용하는 난방을 더하면 한옥의 겨울나기는 걱정하는 것보다는 견딜만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대인이 한옥의 겨울나기를 비판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를 하나 빠뜨리고 있다. 인내심이다. 물론 인내심이라 하면 일차적으로는 추위를 견디는 적응력이나 독한 마음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전부가 아니다. 우리 조상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무식하지만은 않았다. 한옥의 겨울나기에서 인내심을 얘기할 때에는 반드시 햇빛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한옥의 인내심은 단순히 이 악물고 정신력 하나로 삭풍을 견뎌내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소모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햇빛을 이용하고 즐기는 적극적인 대처능력을 의미한다.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에 의탁해서 인간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인간살이를 이롭게 하려는 공격적 생존행위이다. 한옥이 친환경적이라거나 자연적이라고 얘기할 때 핵심을 차지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규설 대감댁 대청 가득 몰려와 오후 내내 머물던 해가 물러가기 시작했다. 3월에 대청 볕이 이 정도로 짧아지면 저녁밥을 준비할 때다.

 

 

 

   

 

여름 햇빛은 막고 겨울 햇빛은 들이고

이것 역시 단순히 해님만 바라보는 일광욕 의미의 해바라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옥은 초보적인 과학지식을 활용해서 햇빛을 집안 깊숙이 끌어들여 즐기고 그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졌다. 그 비밀은 처마 길이에 있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해는 여름에 높이 뜨고 겨울에 낮게 뜬다.

    

용흥궁 사랑채 한겨울 한낮의 햇빛 각도이다. 처마 그림자는 상인방을 겨우 붙들지만 해는 방 안 깊숙이 든다.

 

 

 

이를 땅 위에 서 있는 집을 기준으로 바꿔 얘기하면, 여름에는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내려 꽂히고 겨울에는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춘다. 이 두 각도 사이에 창을 내면 여름에 귀찮은 햇빛을 물리칠 수 있고 겨울에 고마운 햇빛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렇게 창을 내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붕 처마를 두 각도 사이에 위치하게 돌출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여름 햇빛을 막아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통과시켜 들어오게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창 자체의 위치와 방의 깊이이다. 겨울 햇빛이 처마를 통과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방 안에 들어오는 햇빛의 정도를 조절해야 되는데 이것을 해주는 것이 창의 위치와 방의 깊이다.

 

한옥의 방들은 대부분 깊이가 깊지 않아서 햇빛이 방 끝까지 기분 좋게 들어온다. 이는 온도와 소독 모두에서 유리하다. 대청도 마찬가지이다. 겨울, 햇빛은 아침 10시쯤 대청의 마당 쪽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기어들어오기 시작해서 오후 4시쯤이면 대청 안쪽 끝에 정확히 닿는다. 햇빛이 귀한 한 겨울에 햇빛은 무려 6시간 동안이나 대청 속을 골고루 비추며 가득 머물다 돌아간다. 햇빛이라는 덧없는 자연요소를 오래 머물도록 붙잡아두는 지혜이다.

 

한옥에서 햇빛은 단순히 겨울에 추위를 덜 느끼게 해주는 물리적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감성과 감각, 마음과 심리, 경험과 정성(定性)으로 느껴야 하는 체험적 요소이다. 피부와 신경, 핏줄과 세포조직 깊숙이 받아들여 그 온기와 명암의 조형효과를 낱낱이 즐길 수 있을 때 한옥이 햇빛에 대해서 갖는 기본 태도와 한옥에서 햇빛이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햇빛은 바람과 함께 한옥의 존재의미와 구성 원리를 결정짓는 첫 번째 자연 조건이다. 채 배치와 지붕의 형상, 향과 창의 위치, 누마루와 기단 등 한옥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은 유교왕조 시대 가부장적 문화를 구현하는 사회적 형식미를 표현하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햇빛과 바람을 집의 구성요소로 끌어들이기 위한 치밀한 디자인 전략이기도 하다.


 

용흥궁 사랑채 위의 사진에서 문을 열면 이렇게 된다. 볕이 절실한 한겨울에 해는 방 안 깊숙이 차고 넘친다.

 

 

 

  

 

방의 농담(濃淡)을 조절하는 햇빛

한옥에서 햇빛은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는 것 이외에 방 안의 명암 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한옥 공간은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도 매우 다양한 명암의 켜를 만들어낸다. 미술책에 보면 명암 10단계라는 것이 나오는데 한옥의 방은 이 10단계가 골고루 퍼져 살아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비밀은 세 가지이다. 첫째, 개구부의 크기, 형상, 위치 등이 자유로워서 이것을 이용해서 직접적으로 햇빛을 조절하는 기능이 뛰어나다. 창과 문을 구별하지 않아서 서양에는 없는 ‘창문’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아무 곳에 필요한 만큼 뚫으면 창이 되고 문이 되며 창문이 된다.

 

둘째, 간접 반사광의 종류가 많다는 점이다. 한옥은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꺾임과 변화가 많은데 이런 구조는 여러 곳에서 햇빛을 간접 반사시켜 방 안으로 넣어준다. 수평적으로는 채 꺾임이 많고 수직적으로는 ‘기단-댓돌-마루-문지방’ 등의 변화가 심하다. 재료와 색깔도 다양한데. 이것은 반사율을 다양하게 만들어준다. 퇴나 대청은 짙은 색 나무이기 때문에 반사율이 낮은 반면 밝은 색 돌 재료인 기단과 댓돌은 반사율이 높다. 나무 문 하나가 칸 전체를 차지하면 벽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약해지는 반면 흰 회벽 옆에 있는 방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간접 반사광을 받는다.

 

  

운강 고택 안채 창호지에 해가 들면 방 안의 농담은 명암 10단계를 차고 넘쳐 먹물을 덧칠한 것 같다.

 

 

 

셋째, 창호지의 조절기능이다. 유리에는 없는 반투명이라는 중간 톤을 가지며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의 두 가지 형식을 겹치기 때문에 명암의 농도조절에 매우 유리하다. 이상이 합해지면서 한옥 공간은 활짝 밝게 만들 수도 있고 은근하고 포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겹창을 이루는 네 짝의 문을 열고 닫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방 안의 명암 농도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명암 단계가 그만큼 촘촘해서 선택권의 폭이 넓다. 서양이 유화와 대별되는 수묵화의 농담이라는 기법이 공간에 적용된 것이다. 한옥 공간은 마치 먹물을 여러 겹 덧칠한 것 같은 느낌이다. 유화나 서양의 공간에는 없는 참으로 절묘한 특징이다.

 

물론 한옥에서 햇빛 즐기기는 제한적이고 선택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시사철 구별 없이, 밤낮없이 살벌한 긴장감 속에서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지구의 운명을 지키기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앞에서 한 얘기는 너무 비현실적일 것이다. 기계를 최대한 돌려서 한겨울에도 오로지 일에만 열중할 수 있게 만들어줘도 부족할 판에 웬 햇빛타령이냐고 할 것이다. 한옥에서 햇빛 즐기기는 극한에 몰려 느림의 미학 같은 극단적 역설에 마지막 의탁을 하는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비현실적이고 후퇴적인 행위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나 직종에 상관없이, 오히려 큰일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느림의 미학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빡빡하고 빈틈없는 도시생활 속에서 짬짬이 겨울 햇빛을 즐길 수 있게 된 사람은 슬그머니 그 다음 단계의 햇빛 즐기기를 모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옥으로 가라. 한옥은 햇빛과 친해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집이며 햇빛과 친하게 놀 수 있어야 잘 살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통(通)의 비밀을 집에 적용

창문이 안 열리는 초고층 주상복합의 불편함이 화제이다. 자연환기가 봉쇄된 것인데, 사람에 비유하자면 일 년 내내 두꺼운 옷을 잔뜩 끼어 입고 여름에는 그 속에 에어컨을 집어넣은 격이다. 옷을 벗으면 될 것을 말이다. 여름에는 얇은 반팔 옷 하나만 입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 여러 개를 입는 것이 상식이고 이치이다. 집도 이래야 된다.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방에서 바람을 시원하게 받으면서 열을 식힐 수 있어야 하고. 겨울에는 햇볕을 알뜰살뜰 모으고 사면을 잘 걸어 잠가 안으로 열을 지켜야 한다.

 

바람을 알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국민상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는 여름에는 남동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분다. 한옥은 이런 작은 상식 하나만 가지고 여러 가지 과학적 방식을 창출해 집안 가득 바람을 들인다. 한옥에서는 바람이 절실히 필요한 여름에 이 방위에 맞춰 길을 냈다.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 길’이다. 통(通)의 비밀을 집에 적용한 것이다. 바람 길은 시원하고 통 크게 나 있다. 인색함도 머뭇거림도 없다. 집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 바람 보고 돌아가라거나, 쉬어가라거나, 꺾어가라거나 하는 실례를 범하는 법이 없다.


바람 길은 하나가 아니다. 이쪽에도 바람 길, 저쪽에도 바람 길이다. x축과 y축의 십자 구도를 기본으로 여러 개의 사선 축이 교차한다. 원융무애와 중첩이라는 한옥 공간의 비밀이 만들어내는 효과이다. 공간과 환경조절기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몸으로 작동한다. 여름에 바람의 고마움을 실컷 활용하기 위해 집을 짓다 보니 공간이 원융무애해지고 중첩되게 나타났다. 거꾸로 불교의 '공(空)'과 노장의 '무위'의 가르침이 한 곳에서 만나는 개념이 원융무애이고 이것을 건축공간으로 구현한 것이 중첩인데, 이렇게 만들다보니 반은 우연으로 또 나머지 반은 필연으로 바람 길이 시원하게 이곳 저곳에 뚫렸다.

 

풍경작용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바람 길을 내다보니 집안 이곳 저곳에 당연히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고, 이것을 통해 다양한 풍경작용이 우연히 일어난 것일 수 있다. 또한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풍경작용을 즐기려는 치밀한 전략에 따라 창과 문을 내다보니 그것이 자연스럽게 바람 길도 겸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옥의 특징 가운데 최고수는 이렇게 서로 달라 보이는 여러 요소와 특징들이 영향과 관계를 주고받으면서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바람 길을 중심으로 공간과 풍경작용의 세 가지 사항 사이에 벌어지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건축 작용이 벌어진다.

 

 

 

창덕궁 연경당 방이 네 개나 겹쳐도 창은 어긋나지 않고,
바람 길은 어김없이 난다.

관가정 사랑채 창은 사선으로도 어긋나거나 막히는 법이
없다. 바람 길은 사선으로도 난다.

 

 

 

막힘없는 바람 길과 시원한 대청, 바람을 들이는 창과 문의 활약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창과 문이다. 한옥의 창문은 아무렇게나 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비밀은 간단하다. 막히지 않게 뚫어주는 ‘통’이 답이다. 한옥에서는 중간에 방들이 복잡하게 교차하지만 창끼리의 위치는 자세히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조금씩 어긋날 수는 있지만 꼬챙이로 끼우면 산적처럼 한 줄로 늘어선다. 창의 위치가 일직선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x축, y축, 사선 축 어느 곳이든 그렇다. 한옥의 창이 햇볕에 대해서 참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그 온기와 명암 농도를 최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뚫린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고민을 바람에 대해서도 했다. 바람 길을 가로막지 않고 고맙게 씽씽 통과할 수 있게끔 뚫렸다. 한옥에서 창은 햇빛과 바람과 어울리는 통로이다. 대개, 바람이 다니는 길에는 햇빛도 잘 들게 마련이다. 바람과 햇빛을 함께 고민해서 둘이 어울려 작동하게 했으니 여름과 겨울이라는 양 극단의 혹독한 기후조건에 대해서 모두 능통하게 대처했음이다.

 

한옥의 환경조절기능, 즉 친환경성은 분명 여름에 제일 뛰어나다. 아무리 햇볕을 잘 받아들여 보존하고 크나큰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해도 한옥의 겨울을 난방 없이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충분히 보낼 수 있다. 한옥의 장점은 여러 가지인데, 한여름에 대청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일은 분명 으뜸을 다툴 만하다. 추가로 필요한 것이라곤, 다리 사이에 낄 죽부인과 속옷 바람으로 누워 뒹굴 거릴 능청스러움, 그리고 찬 수박 두 쪽 정도이다.

 

  

 

마당을 비워 바람을 돕다

대청에는 한여름에도 신기한 바람이 솔솔 분다. 우연이 아니다. 초보적 과학상식을 집에 잘 활용한 결과이다. 비밀은 마당을 비운 데 있다.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은 노장사상의 핵심적 가르침인데 비움의 미학도 그 중 하나이다. 한옥에서는 마당을 비우는 데 이 지혜를 빌렸다. 마당을 가득 채우는 것은 인공적이고 의도적으로 쓸모 있음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로 마당을 비우는 것은 쓸모 없음의 지혜를 좇는 것에 각각 해당된다.

 

 

 

관가정 안채 뒷산 송림의 시원한 여름바람을 대청으로 받아 마당으로 넘겨 중문으로 나가게 하는 대기 순환의 교과서이다.

 

 

 

한옥에서 마당을 비웠더니 의외의 쓸모있음이 발생하게 된 것인데, 채와 채 사이에서 중첩되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과 바람 길이 난 것 두 가지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 둘은 미학주제로는 별도의 것이지만 실제 한옥에서는 함께 작동한다. 마당을 비운 것과 바람 길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한옥에서는 왜 마당을 그렇게 심심하게, 심지어 삭막하다고 느낄 정도로 철저하게 비워뒀을까. 답은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해서이다. 여름에 햇볕을 받아 달궈진 공기는 더워져서 위로 올라간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대청 뒤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게 되는데, 이것이 대청에서 느끼는 여름의 시원한 남동풍이다. 마당을 비운 것은 복사열을 이용한 대기의 순환작용, 즉 ‘통’의 작용이 잘 일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청의 향과 건축구조도 이것을 돕는 쪽으로 만들어졌다. 한옥의 각 채는 ‘ㄴ’자형, ‘ㄷ’자형, ‘ㅁ’자형 등 꺾임이 많으며 심지어 ‘ㄹ’자형 까지도 있다. 이 때문에 방의 향은 의외로 남향이 아닌 경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대청만은 반드시 남향을 지켰다. 여름의 바람 향인 남동풍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대청의 뒷벽에는 큰 문 두 짝을 냈고 앞은 기둥을 세워 완전히 개방했는데 이것 역시 바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것이다. 뒷문은 창호지를 쓰지 않은 나무문이라서 꽁꽁 닫으면 뒷벽은 완전히 막히게 되는데 이것은 겨울의 북서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문의 크기가 벽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활짝 열면 벽을 거의 다 털어낸 것이 된다. 여름에 뒷산 송림에서 부는 시원한 나무바람을 잘 통과하게 해준다.

 

대청 앞의 기둥 구조는 겨울과 여름 모두에 유리하다. 겨울에는 햇볕이 막힘없이 잘 들게 해주고 여름에는 바람이 역시 막힘없이 잘 흐르게 해준다. 중문의 위치도 같은 이유로 정해진다. 대개 대청 전면에 맞춰 중심축을 공유한다. ‘대청 뒷문-대청 앞 기둥-중문’의 큰 구멍 셋이 일직선 축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풍경작용에서는 중첩과 ‘액자 속 액자’를 만들어내는, 한옥에서 제일 아름다운 지점 가운데 하나가 되는데, 환경조절작용의 관점에서 보면 여름에 시원한 바람 길을 낸 것이 된다.

 

풍수지리의 ABC인 남향과 배산임수도 여름의 환경조절기능과 관계가 깊다. 남향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겨울에 햇볕을 가장 잘 받게 해주는 방위이지만, 적어도 여름에 남동풍이 부는 한반도에서는 바람을 집안 깊숙이 들게 하는 방위이기도 하다. 배산임수도 마찬가지이다.  


 

아산맹씨 행단 이렇게 큰 문과 저렇게 작은 문도 구멍의 중심을 한 줄에 맞췄다. 문 셋이 꼬챙이에 꿰듯 바람 길을 만든다.

 

 

 

  

 

거시적으로 보면 배산임수의 자리는 혈 자리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산세와 강세를 이용해서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생명의 기운을 살리려는 목적을 갖는다. 미시적으로 보면, ‘배산’은 시원한 나무바람을 뿜어대는 자연 에어컨인 것이고, ‘임수’는 강바람에 올라 타 대기의 순환작용을 가일층 돕는 자연 모터인 것이다.

대청 천장은 높고 방의 천장은 낮다

한옥에서 대청의 천장은 높고 방의 천장은 낮다. 당연하다. 대청은 넓고 방은 좁기 때문이다. 건축에서 얘기하는 스케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척도인데, 단순히 잰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 비율’이라는 의미이다. ‘x-y-z'축의 세 방향 크기가 정비례를 기본 법칙으로 상식적 범위 내에서 적절한 비율로 어울리는 범위, 혹은 그렇게 정해지는 상대적 치수라는 뜻이다. 넓은 광장 앞에 들어서는 건물은 따라서 커야 하며 키 큰 사람이 신발도 큰 걸 신는 것 등이 모두 스케일의 개념이다. 한옥에서는 이를 잘 알고 지킨다. 대청 천장을 굳이 안 막고 구조를 다 드러낸 이유는 여름에 바람을 시원하게 들이려는 환경적 목적이나 구조미학이라는 조형적 목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케일에 맞춰 천장을 높게 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방과 대청 사이의 천장 높이 차이는 기능적인 면도 있다. 좌식생활에 맞게 방의 천장은 낮다.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천장이 높을 필요가 없다. 이놈의 좌식생활 때문에 조선이 호연지기를 잃고 앉은뱅이처럼 찌그러들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낮은 천장이 주는 아늑하고 포근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창호지 문이라도 닫고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면 어머니 품 안에 안긴 것 같다. 좌식생활이 불편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식생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공간적 특징이다. 한 공간에서 바닥 면적과 천장 높이 사이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 한마디로 방이 작으면 천장이 낮아야 사람은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대청은 좌식생활과 입식생활이 함께 일어나는 곳이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전이공간이라는 곳인데, 좌식의 실내생활과 입식의 실외생활이 교차하는 중간지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장 높이를 입식생활에 맞게 높게 냈다. 대청은 한옥을 완전한 앉은뱅이 공간만으로 놔두지 않는 역할도 한다.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꺾임이 많은 한옥에서 분명히 제일 장쾌한 공간이다. 방과의 스케일 대비가 심하기 때문에 그 효과는 그만큼 커진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주인마님의 체통을 제일 잘 살려서 영을 세워주는 장면은 사모관대를 쓴 양반이 대청에 서서 호령하는 장면일 것이다. 어머니 품 같이 아늑한 방과 양반의 체통을 살려주는 장쾌한 대청은 스케일의 미학을 대표하는 좋은 예이다. 이 둘을 한 채 안에 나란히 둬서 대비의 미학을 살려낸 것은 스케일의 미학을 제대로 구사해서 응용할 줄 아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한옥 구조의 휴먼 스케일

한옥은 오르내림이 많고 꺾임도 많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불편하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인간을 돕는 이로움의 과학이다. 곰곰이 따져보자. 평평하고 밋밋한 집에서 살면 정녕 편리한가. 요즘 유행하는 텔레비전의 건강 프로그램, 심지어 9시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문구 하나, “스트레칭 세 번만 해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이다. 사무직 종사자, 운전자, 가정주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 몸은 자주 움직여야 건강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평평하고 밋밋한 집에서 개구리 겨울잠 자듯 살다보니 결국 온몸이 찌뿌드드해지고 헬스클럽과 요가원을 찾게 된다.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집에서 살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신체 이동의 템포를 조금 천천히 잡아야 한다. 급한 마음에 쫓기는 것 같은 템포로 사는 사람에게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구조는 단지 불편할 뿐이다.

 

 

김동수 고택 사랑채 꽤 높은 문지방을 덩그러니 댓돌 하나
로 오른다. 정강이 한 마디의 휴먼 스케일을 두 번 연달아 썼다. 무릎을 많이 구부리는 몸동작이 일어난다.

운현궁 노락당 마당에서 퇴에 오르는 길은 무릎을 크게 두 번
구부린 뒤 한 번 작게 구부렸다 다시 한 번 크게 구부리는 몸동
작으로 이루어진다.

 

 

 

작은 몸동작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도 따라줘야 된다. 등산을 하자거나 마라톤을 뛰자는 것은 아니다. 사람 몸은 따로 시간 내서 하는 이런 큰 운동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작은 몸동작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부지런하다는 것에는 이런 작은 몸동작을 쉴 새 없이 해대면서 그 작은 효과를 틀림없이 잡아내 몸에 얹어내는 섬세한 반응능력도 포함된다.

 

한옥은 구성 부재 수가 많은 건축물이다. 이런 부재들은 보기 좋으라고 둔 것이 아니다. 분명, 걸려서 넘어지는 일도 잦았을 테고 밥상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불편을 몰랐을까. 아는데도 굳이 집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 몸 관절 마디의 섬세한 치수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한옥에서 오르내림과 꺾임은 관절마디를 많이 쓰게 만든다. 그러나 절대 연골이 닳을 정도로 과하지는 않다. 마당에서 대청에 오르는 수직이동은 대개 다섯 걸음 이내라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이다. 관절마디를 많이 쓰면 뇌에 적절한 자극을 준다. 사람의 뇌는 가끔씩 경험하는 웅변과 카타르시스의 큰 감동도 필요하지만 평생 이어지는 일상에서 느끼는 자잘한 자극도 필수적이다. 이것이 결여될 때 사람들은 다른 데서 그것을 찾게 되고 자칫 알코올, 도박, 담배, 게임, 인터넷, 섹스 같은 각종 중독증에 빠지게 된다.

 

마당에서 기단으로 오르고 다시 댓돌을 밟고 마루로 오른다. 기단을 쌓고 다시 그 위에 마루를 띄워 깐 것은 집을 지열과 습기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에서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사람의 관절마디를 많이 쓰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한옥에서는 이처럼 여러 목적과 기능이 종합적으로 일어난다. 기단과 댓돌의 높이도 다양하다. 어떤 집에서는 무릎을 크게 굽혀 한 걸음에 오르고 또 어떤 집에서는 잔 오름 두 번으로 나눈다. 한 집에서도 사랑채와 안채가 다르다.

 

 

다양한 몸동작을 유발하는 한옥 구조

문 크기도 마찬가지이다. 문 크기를 다양하게 한 것은 기후에 적절히 대응하고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며 풍경작용을 즐기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을 드나들 때마다 몸동작을 다양하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다. 휴먼 스케일을 다양하게 구사했다는 뜻이다. 댓돌을 올라 대청으로 옮겨가고, 퇴에 걸터앉았다 문지방을 넘어 방을 드나들고, 몸을 움츠려 작은 문 큰 문을 넘나들다 보면 ’머리-어깨-무릎-팔-다리‘를 적절히 굽혔다 펴게 된다. 이런 행위들은 일차적으로 스트레칭 효과와 혈액순환 등 물리적으로 건강을 돕는다. 더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인식하게 만든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다양한 몸동작에서 찾는 것이다. 낮은 문을 통과하면서 머리를 수그리는 동작 하나가 갖는 겸손의 미학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한옥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교장 안채 주옥 퇴 세 장이 30센티미터 안팎의 차이를 가지며 겹쳐 있다. 이런 집에 살면 자신의 몸에 맞춰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한개마을 한수헌 누가 퇴보다 정강이 한 마디 정도 더 높다. 누와
퇴 사이의 위계 차이를 휴먼 스케일로 활용했다.

 

 

 

후기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한국사회에도 대형공간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코엑스몰을 필두로 영등포의 타임 스퀘어와 동남권 유통단지의 가든 파이브 등 대형 상업공간이 속속 들어섰다. 구청 정도만 되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짓겠다고 부산하다. 높이 경쟁에 이어 면적 경쟁도 치열하다. 해운대 센텀시티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 들어섰고 이 백화점의 광고 문구는 말 그대로 “세계 최대의 백화점”이다. 아파트도 40~50층은 되어야 “집 좀 지었네” 한다. 강남에서 한 블록을 걸어가려면 허허벌판 사막 한 가운데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이런 대형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존재감을 잃고 소외감을 느낀다. 내 몸뚱이는 보잘것없는 미물로 느껴진다. 이런 대형공간 속에서는 대부분 돈을 써야만 사람대접을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소비의 노예가 되어간다. 공간을 보면 휴먼 스케일은 사라지고 모두가 대형 구조뿐이다. 내 몸을 견주어 비교할 거리는 화장실 세면대의 수도꼭지 정도일 뿐, 공간 전체가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세계에 온 것 같다. 나는 난장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큰 드럼통 속에 든 개미처럼 되어간다. 이런 대형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슬프게 느껴질 때, 한옥으로 가라. 그곳에는 자잘한 휴먼 스케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빛은 늘 있는 존재이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한옥은 빛을 매우 잘 활용하는 집이다. 집안 구석구석, 대청 깊은 곳까지 빛을 끌어들여 겨울 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인지 모를 자연의 절대적 힘이 나를 보살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바로 한겨울에 햇빛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줄 때이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는 햇빛과 햇볕을 구별했다. 서양에는 없는 말이다. 햇빛을 햇볕으로 살려서 온 집안에서 함께 뒹굴기에 좋은 집이 바로 한옥이다. 지붕과 벽과 기둥이 없으면 안 되듯이 한옥에서는 햇볕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창호지를 창호지답게 살려내는 것도 햇빛이다. 창호지는 먼동 틀 때 청회색으로 시작해서 한낮에 밝은 미색으로 빛나며 석양 따라 붉게 물든다. 창호지를 하늘색과 똑같이 만들어주는 것이 햇빛이다. 종이재료인 창호지에 온기를 실어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햇빛이다. 반투명이고 약해서 불리한 점이 많았을 창호지를 감히 창문을 막는 재료로 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햇빛을 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았을 것이고, 그래서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그 좋은 점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남촌댁 한낮에 햇빛을 제일 많이 받을 때 창호지는 어머니 젖무덤의 뽀얀 속살 색을 띤다. 창문재료를 의인화시킬 수 있는 비밀은 햇빛에 있다. 자연의 단순한 물리적 조건인 햇빛은 의인화를 통해 햇볕이라는 감성체로 발전한다.

 

  

 

빛은 늘 있는 존재이다. 그림자도 그렇다. 빛은 고마운 존재이다. 그림자는 어떨까. 어둡고 음침해서 피하고 싶은 부정적 상태의 대명사이기만 할까. 영구음영을 만들어 곰팡이와 이끼를 쓸게 만드는 비위생적 상태이기만 할까.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림자는 빛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이 문제는 결국 인생사의 비밀인 쌍 개념으로 확대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판도라의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과 악으로 쌍 개념을 대표했고 동양에서는 자연의 이치를 빌려 음과 양으로 대표했다. 음은 그림자이고 양은 빛인 것이다. 비유의 확대는 계속된다. 빛을 삶과 희망과 흰색에, 그림자는 죽음과 절망과 검은색에 비유한다. 심지어 하늘과 지옥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림자가 없이는 빛은 절대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옥은 그림자를 잘 살려내는 집이다. 빛을 잘 살리면서 그림자도 함께 잘 살리는 것이 지혜이다. 빛을 잘 살리고 그림자를 경원한다면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그림자는 빛을 정의하기 위한 짝으로서만 존재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 스스로도, 그림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존재가치와 조형력을 갖는다. 일찍이 이것을 알아채고 활용한 것이 한옥이었다. 한옥에서 그림자는 흰 회벽에 문양을 넣는다.

 

 

 

김동수 고택 안채 그림자가 없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심심했을까. 처마선과 서까래와 막새의 합작품이다. 흰 회벽은 그림자라는 부정적 상태가 긍정적 조형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바탕 면이다. 햇빛을 그림자로 둔갑시키고 햇빛이 장식을 그려대는 바탕 면이다.

 

 

 

거꾸로, 한옥의 벽을 흰 회칠만 하고 끝낸 이유이기도 하다. 법으로 금하기도 했고 선비의 검소함 때문에라도 한옥의 벽은 어쩔 수 희게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붕 그림자를 벽에 지게 해서 각종 문양을 넣어 즐겼다. 비밀은 처마길이, 서까래, 막새인데, 흰 회벽에 지는 지붕 그림자는 단청과 공포가 금지되었던 한옥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중요한 장식요소였다. 사람 손으로 일부러 그린 것도 아니고 해가 그려주는 것일진대, 유교의 법도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움의 조건, ‘한옥의 투명한 방’ 

한옥의 공간을 얘기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할 특징이 ‘비움’이다. 비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히 그릇을 비우는 것처럼 가구 같은 방 안의 살림살이를 뺀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비움이란 살림살이 없이 빈 방에서 산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하층민의 실내생활을 비교했을 때 서양의 오두막보다 우리의 초가가 더 간단하고 소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배계층으로 가면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성철 스님이 기거하던 방도 아닐진대, 양반들의 실내 살림살이는 나름대로 방을 제법 채웠다.

 

단순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비움이 아니다. 물건을 채울지 말지 그 이상의 개념이다. 스케일에 따라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작은 스케일에서는 방의 투명한 골격과 관계가 깊다. 큰 스케일에서는 이런 방을 앞뒤로 마당이 감싸면서 그 마당을 텅 비워두어야 한다. 한옥에서 비움의 미학은 이 두 상태의 합작품이다. 빈 마당을 사이에 두고 투명한 방이 마주보거나 혹은 투명한 방을 앞뒤에서 빈 마당이 감싸는 경우 등이다.

 

한옥의 방이 투명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순수한 물리적 의미로 보면 한옥의 방은 투명하지 않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보면 투명하다. 투명의 기준에는 온통 유리만으로 만든 어항 같은 시각적 투명이 있다. 시각적으로 투명한 것이 반드시 심리적으로도 투명한 것은 아니다. 어항처럼 유리로 된 방속에 들어 있으면 바깥 경치는 한눈에 잘 들어오지만 이상하게 바깥으로 나가기는 싫어지는 묘한 양면성이 있다. 노골적 투명에 따른 역작용이다. 내가 너무 심하게 노출되어 있고 반대로 대상을 너무 투명하게 다 볼 수 있으면 오히려 한 발 물러나려는 방어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돌이나 콘크리트처럼 불투명한 고형 재료로 지은 집은 당연히 투명하지 않게 된다.

 

 

창덕궁 연경당 투명한 방과 빈 마당이 어울려 비움의 미학을 완성한다. 비움의 미학은 채와 채 사이에 다양한 관계 맺기를 유발한다.

 

 

 

한옥의 방은 이 중간 상태이다. 나무와 흙이라는 자연재료로 벽을 세워서 방의 윤곽이 어딘가 모르게 가볍게 느껴지며, 창문은 창호지라는 반투명 재료로 막아서 빛을 잘 들이면서 바깥에 대한 심리적 호기심을 높여준다. 간접 반사에 의한 방 안의 조도도 중요한 요소이다. 천장이 낮고 그에 비해 창 면적이 넓은 편이며 불규칙적으로 나 있기 때문에 방 안에는 다양한 간접 반사광이 교차하게 된다. 벽 재료가 무거운 돌이 아니라 가벼운 흙과 나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가볍고 무르기 때문에 반사되는 빛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우며 은은하다. 창문을 다 닫으면 바깥 장면은 하나도 볼 수 없지만 방 안은 신기하게도 투명한 상자처럼 느껴진다. 유리상자의 투명과는 다른 한옥 특유의 투명이다. 물리적 투명도는 높지 않으나 감각적, 감성적으로 투명하게 느끼는 묘한 공간이다.

 

 

비움의 조건, ‘빈 마당’

큰 스케일에서는 마당이 비움의 주인이다. 일단 마당을 말 그대로 비워야 하는데 한옥의 마당이 정말 이렇다. 한옥의 마당은 텅 비어 있다. 잘해야 돌확이나 몇 점 놓는 정도이며 안채 뒷마당에 장독을 두는 정도가 마당을 꽉 채우는 경우이다. 큰 잔치가 벌어지면 안채 안마당이 작업장이 되면서 여자 식구들과 잡동사니로 제법 차겠지만 나머지 경우는 비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부러 조경을 하지 않은 이상 마당을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청풍 도화리 고가 ‘이쪽 마당-광-건너편 마당-건너편 광-그 너머 마당’의 다섯 겹 공간은 빈 마당의 작품이다.

수애당 솟을대문과 중문이 겹치는 이중 틀은 동선여정에 특별
한 경험을 주는데, 이는 중간에 빈 마당이 있기에 가능하다.

 

 

 

마당을 비운 것은 방을 비우는 것과 달리 한옥에서 ‘비움의 미학’의 핵심을 이룬다. 일단 이 자체가 한국화의 ‘여백의 미학’처럼 하나의 독립적 미학적 가치를 갖는다. 마당을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는 경우보다 반드시 나으란 법은 없지만 못할 것도 없다. 여백이 미학적일 수 있는 것은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쉼의 가치 때문이다.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볼 때 가져야 하는 심리적 부담과 시각적 피로 같은 것에서 해방시켜 주는 쉼의 미학이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노장사상의 가르침인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다. 도자기의 비유라고도 하는데, 도자기의 쓸모 있음은 딱딱한 껍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따라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 가운데의 빈 공간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딱딱한 껍질은 오히려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방해하기 때문에 진정한 쓸모 있음을 못 만들어낸다. 내 마음에 물욕이 가득 차 있으면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고 혼자서 그 욕심을 부여매고 끙끙대다가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일반론은 한옥의 마당에 대한 건축적 해석과 대체로 일치한다. 다소 심심하고 무성의해보이며 심지어 삭막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당을 비워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간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길래 마당을 비운 것이며, 마당을 비웠더니 공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선 마당에서 복사열을 이용한 대기 순환에 유리하다. 마당을 가득 채우면 여름 남동풍의 바람 길을 막기 때문이다. 빈 마당은 지붕 처마 선이 내려놓는 그림자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기에 더 없이 유용하다. 계절과 하루 중의 시간대, 그리고 날씨 등에 따라 수시로 길어졌다 짧아지며 진해졌다 흐려지는 항변의 조형요소를 집에 끌어들여 즐길 수 있게 된다. 빈 마당은 햇빛을 집에 들여 함께 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앞의 바람과 합하면 햇빛과 바람이라는 대표적인 자연요소와 함께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비움의 쓸모 있음

 

마당을 비워서 얻는 쓸모 있음의 최고 경지는 방과 방 사이의 관계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마당이 방을 앞뒤로 감싸는 구성 및 그 속에서 채의 꺾임이 많다는 점이 그 비밀이다. 투명한 방과 빈 마당은 따로 놀지 않고 함께 작동한다. 방 자체가 투명하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본격적인 비움과 거리가 있다. 마당이 더해져야 한다. 그것도 빈 마당이 앞뒤에서 겹으로 싸야 한다. 방도 마찬가지이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앞뒤에서 호위해야 한다. 종합하면 방과 빈 마당이 각자 두 겹 이상 서로를 교대로 에워싸야 한다. 실제 많은 한옥이 이런 구성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순수 공간의 관점에서 보자. 이쪽 방에서 보면 밖에 마당이 있고 그 건너편에 다시 다른 채와 방이 있게 된다. 건너편 채와 방 너머에 다시 마당이 한 겹 더 있으며 그 바깥쪽으로 채와 방이 또 나오기도 한다. 한옥 특유의 공간적 특징이다. 마당을 비웠기 때문에 이런 겹 구성의 공간적 특징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그 효과가 살아날 수 있다. 공간 토폴로지의 관점에서 보면 나를 중심으로 다른 채와 방들 사이에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가 만들어진다, 건축 공간론에서는 이런 구조를 최고의 상태로 친다.

 

이런 물리적 공간구조는 사람들 사이의 화학적 관계를 유발시키는 다음 단계로 작동한다. 이런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식구들과 다양한 관계 맺기를 만들어 활용하고 즐길 수 있다. 마당의 적당한 거리에 의해 건너편 방에 대해 소통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대가족제도에 꼭 필요한 공간구조이다. 이때 앞에 얘기한 한옥 방 특유의 투명성이 중요한 활약을 하게 된다. 시각적으로 적절히 닫으면서 바깥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마당이 만들어주는 소통과 교류의 가능성을 강화해준다. 이상의 여러 특징과 이로움은 모두 마당을 비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당을 다른 것으로 채우게 되면 사람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 다른 채나 방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소홀해지게 된다.


추사고택 안채 마당을 비웠기에 문밖과 안쪽 채가 공간 관계를 형성한다.

 

 

 

눈앞의 시각요소에 관심이 쏠리게 되기 때문이다. 한옥의 빈 마당은 이것을 경계했다. 그 결과 시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대신 식구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대가족제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비웠더니 쓸모 있게 된 것이다.

공간의 안팎을 딱 자르지 않은 한옥

대청을 보자. 실내일까 실외일까. 비슷한 질문이 또 있다. 누각은 건축일까 조경일까. 두 질문은 대청이나 누각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근본을 캐다보면 공간의 안팎에 관한 질문이 된다. 공간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이며, 그런 경계는 과연 존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더 근본적으로 실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실내의 속성은 무엇이며 실외의 속성은 또 무엇인지.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공간생활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등 매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이다.

 

한옥에서는 공간의 안팎을 구별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럽다. 물론 집이라는 것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편히 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팎 구별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정도인데, 한옥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급적 안팎을 갈라놓으려 하지 않는다. 한옥의 공간 얼개가 어딘가 모르게 느슨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창이라도 여기저기 열어놓으면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벽에 구멍을 숭숭 뚫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튼튼한 석재로 실내를 완전히 독립적 공간으로 갈라놓는 서양건축과 대비되는 특징이다.

 

 

김동수 고택 사랑채 한옥의 불이 공간은 이를테면 망망한 우주에 칸막이 몇 개 친 것으로 정의된다. 도대체 실내인지 실외인지 분별하는 일이 무의미하다.

 

 

 

안팎을 집의 근원과 더불어 생각하게 되면 자연에 대한 기본 태도의 문제가 된다. 집은 물론 피난처(shelter)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동서양이 공통이다. 기계문명이 없던 아득한 옛날, 인류는 자연을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비바람과 태풍은 무자비했고 야생동물의 습격도 피해야 했다. 인류 문명의 발전사도 어떤 면에서는 이런 자연의 위협에 대한 대응의 역사였다. 그러나 자연이 과연 무자비하고 위협적인 것이기만 한 것일까. 여기에서 동서양이 갈라진다. 자연을 인간에게 불리한 것으로만 볼 경우 집은 피난처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가급적 밖에 대해서 꽁꽁 걸어 잠가야 한다. 서양다운 자연 개념이고 서양다운 집의 개념이다. 그래서 돌을 주재료로 사용했고 공간의 안팎은 이분법으로 단절되었다.

 

동양은 달랐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봐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더 근본적으로 자연은 반드시 무자비하고 위협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즐거운 것이기도 하고 고마운 것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함께 어울리면 생활 속에서 재밋거리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무와 흙을 주재료로 사용했고 공간의 안팎을 둘로 딱 자르는 것을 경계했다. 생존을 보장해줄 최소한의 가름만 얻어지면 가급적 밖과 소통하고 함께하려 했다.

 

 

자연과 어울리는 누각 공간

한옥에서 안팎의 구별이 약하다는 것은 결국 집안에 자연을 끌어들였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자연은 반드시 원생림 같은 산과 강과 나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확장하면 인간을 둘러싼 광활한 공간 전체에 대한 대응의 문제가 된다. 외기와 바람과 햇빛 같은 환경요소도 자연이다. 한옥에서는 이런 것들을 집에 끌어들여 함께하는 즐거움과 이로움이 집을 밖과 이분법으로 단절시켜서 얻는 이로움보다 크다고 판단했다.

 

 

 

하회마을 남촌댁 한옥의 누각구조는 공간의 안팎 분별을
없앤 불이 사상을 잘 보여준다.

양동 심수정 한옥에 누각구조를 들인 이유는 자연과 적극적
으로 어울리기 위해서다.

 

 

 

한옥은 산과 강과 나무 같은 원생림으로 정의되는 좁은 의미의 자연과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어울린다. 이를 위해 만든 것이 누각이라는 독특한 건축형식 혹은 구조형식이다. 누각 은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 벽을 다 털어내고 기둥만 남긴 건물이다. 누각 가운데 최고는 물론 숲속이나 나무 아래 혹은 강가 바위 위에 위치하는 경우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지어지던 정자라는 것이다. 정자에서는 글도 읽고 문장도 지으며 술과 예술과 더불어 풍류도 즐긴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하나였다. 적어도 자연 아래에서, 정자 속에서라면 말이다.

 

다음으로 좋은 경우가 한옥의 후원 같은 곳에 단독으로 짓는 누각이다. 그리 흔하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집에서 자연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자연과 하나 되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마지막 경우가 한옥의 집안에 누각구조를 들여 방과 함께 짓는 경우인데 누마루와 대청이 그것이다. 누각 구조를 군더더기 없이 만들기 위한 한옥만의 장치가 있는데, ‘벼락치기 문’이라는 것이다.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문이다. 여닫이와 미닫이만으로는 누각 구조를 만드는 데 부족하다. 창문을 아무리 활짝 열어도 벽의 일부가 남기 때문이다. 골조만 남기고 벽을 다 털어야 진정한 누각구조가 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창문 형식은 벼락치기 문밖에 없다.

 

‘단독 누각-누마루-대청’으로 이어지는 벌거벗은 구조는 분명 한옥, 혹은 동북아 특유의 공간형식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어울리며 자연을 즐기는 일을 피크닉 가듯 마음먹고 하는 이벤트로 보지 않고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항시적이고 당연한 일로 만들려는 건축 장치이다. 선비문화에 견주어 생각하면 풍류를 즐기기 위한 공간구조이다. 풍류란 단순히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는 세계관의 한 형식이다.

 

 

불이(不二)와 탈물(脫物)

자연과 하나 되려는 공간 개념은 불교와 도교 사상의 가르침과 연관이 깊다. 불교에서는 불이 사상이 대표적이다. 불이 사상이란 세상만물을 가르는 이분법의 분별이 사실은 사물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지은 인위적인 헛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본디 하나이듯 내-외부 공간도 하나이지 서로간에 나머지 반쪽처럼 대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간을 안팎으로 굳이 분별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해서 남을 누르고 물질을 더 많이 거머쥐기 위한 공리적 목적일 것이다.

 

 

 

청풍 후산리 고가 불이 공간은 벽의 물질이나 벽이 한정하는 면적에 대한 욕심을 경계한다.

 

  

 

도교에서도 비슷하게 가르치는데, 물질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물질에 집착하면 그 덫에 걸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 마음을 괴롭혀 갉아먹으며 결국 몸마저 망가지게 된다는 경고이다. 이를 한옥의 불이 공간에 적용해보면, 벽의 물질다움에 집착하면 방의 면적이나 벽의 치장 같은 각종 물욕에 사로잡히게 되며 이를 위해 자신의 능력 밖의 재화를 탐하게 된다. 그 다음 어떤 악순환의 고리가 전개될지는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내 마음이 짓는 부질없는 헛것에 매달려 몸과 마음을 망친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공간은 중요하다. 공간에 대한 인식은 결국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미세 통로이다. 물질 욕심이 많은 사람은 공간에서 벽에 집착해서 면적을 늘려 재산을 늘리려 한다. 벽을 화려하게 치장해서 그 자체에 탐닉도 하려니와 이를 통해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집은 바깥에 대해서 꽁꽁 걸어 잠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일생은 늘 무언가에 쫓기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행복하지 않다. 반면 안팎의 경계를 가급적 허물어 외기와 어울리며 사는 사람은 집이 넓을 필요도, 화려하게 장식할 필요도 없다. 넓고 화려할수록 오히려 외기와 어울리는 데 불리하다. ‘아흔아홉 칸’ 대감댁이라지만 한옥의 방들이 정작 기대보다 넓지 않은 이유이다. 물욕의 순환 고리에 빠지지 않게 되니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갉아먹으며 살 일도 없어진다. 바람 한 줄기, 햇빛 한 가닥에 만족하며 안팎의 분별심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이로움이며 자신의 건강을 지켜 정말로 큰 것을 얻은 것이 된다.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한다

한옥 공간은 순환한다. 막히지 않는다. 한국인의 민족 정서인 갈림길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은 좁은 복도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갈래이다. 형식도 여러 가지이다. 방끼리도 통하고 마당과 대청마루를 건너기도 한다. 사방으로 적당히 뚫려있고 적당히 막혀있다. 막으면 방이 되지만 그 막음이란 것이 콘크리트 벽처럼 앙 다문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틀 수 있다. 트면 길이 난다. 방과 방 사이에 문이 난 경우도 제법 된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은 하나의 작은 여로이다. 인생이 여행길이고 여행길은 갈림길이듯 집은 인생을 닮아 수많은 갈림길을 가득 담고 발걸음을 흐트러트린다.

 

한옥 공간이 순환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이 없고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다. 원통이다. 원은 완전도형이라 해서 동서양 모두에서 최고의 상태로 쳤다. 하늘을 닮은 이미지로 받아들여 신성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분 형상을 모방해서 둥근 천장을 짓는 선에서 그쳤다. 한옥은 이것을 공간에 적용해서 막힘없이 둥글둥글 도는 동선구조로 만들어냈다. ‘원’에 ‘통’을 결합해서 ‘원통’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경우는 한옥밖에 없다. ‘원’한 공간은 자연히 ‘통’하게 되어 있으니 한옥은 ‘원’이라는 것에서 기하학적 형상을 읽은 것이 아니라 ‘통’하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김동수 고택 안채 ‘田’자 공간 속에서 빙빙 도는 구조가 방 하나에서 일어난 경우이다. 단순히 도는 것이 아니고 방 하나에서 사방팔방으로 동선이 닿는다는 뜻이니 집 전체로 보면 딱히 막힘이 없이 원융무애한 공간의 씨앗을 이룬다.

 

 

 

원통이라는 개념을 쉽게 풀어 쓰면 180도 유턴하는 일 없이 직각으로만 꺾으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솟을대문에서 시작한 동선은 제일 먼저 행랑마당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채를 맞이한다. 사랑채에서는 방의 앞문으로 들어간 뒤 다시 뒷문으로 나와 뒷마당에서 직각으로 꺾어 집을 돌아 처음 위치로 돌아올 수 있다. 대청으로 오르면 방으로 들어간 뒤 옆방으로 잇거나 방 밖으로 빠져 나오는 식으로 다시 대청 앞 댓돌로 돌아올 수 있다. 대청 뒤창도 완전한 문은 아니지만 사람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어서 뒷마당에서 직각으로 꺾은 뒤 집을 돌아 되돌아올 수 있다. 누마루도 마찬가지이다. 삼면에 문을 냈으며 퇴를 발코니 겸 통로처럼 달아서 누마루 한 곳에서만도 빙글빙글 돌 수 있게 했다.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면 비슷한 방식으로 유턴하지 않고 온 집안을 빙글빙글 둥글둥글 돌아다닐 수 있다. 원통에 대입시켜 보면, 마치 원형 공간 이곳저곳에 적당히 칸막이를 쳐서 막힘없이 두루두루 도는 동선을 확보한 뒤 원형 윤곽을 누르고 다듬어서 육면체로 만든 것 같다. 물론 한옥의 형성과정을 보면 이런 내파 분할과 반대인 외파 증식이긴 하지만, 공간 개념과 형식을 유형화하면 이런 직설적 원통에 비유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원통’하다. 여기저기 문을 열어놓은 한옥을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해면체를 보는 것 같다. 한옥을 하나의 큰 상자라고 생각하고 물을 부으면 그 흘러나가는 경로는 너무 분산적이고 불규칙해서 뭐라 형식화해내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일정한 축과 방향을 따라 몇 줄기로 물이 모아지는 서양식, 현대식 주택개념과는 분명 반대편에 있다.

 

 

 

향단 집이 ‘원통’해서 순환한다는 말을 단순히 생각해보면 집에 온통 구멍이 숭숭 뚫려 물을 부으면 사방팔방으로 줄줄 샌다는 뜻이다. 물이 새는 길은 곧 동선이다.

 

 

 

기가 통해 건강한 한옥의 순환공간

왜 이렇게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먼저 실용적 목적이 있다. 원통은 바람 길 같은 환경요소에 유리하다. 물을 뚫어 썩음을 막고 병을 쫓아 악을 차단하는 상태가 통이다. 나무가 막히면 좀벌레가 생기며 풀이 막히면 거름이 되는데 이것을 막아주는 것이 통이다. 창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과 ‘통’할 때에만 방안에 사는 사람의 정신과 몸과 마음 모두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집에 숨통을 터주니 그 숨통은 곧 사람에게 숨통이 되어 돌아온다. 집과 사람은 닮게 되어 있다. 본래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집이 사람을 닮으니 식구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 및 그 형식을 늘려준다. 의사소통방식을 다원화한다는 뜻이다. 집의 중심을 벽을 이루는 물질로 보지 않고 벽 사이의 공간을 오가는 발길로 본 것이다. 집의 요체를 벽이 한정하는 면적으로 보지 않고 발길에 따라다니는 식구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로 본 것이다. 벽으로 막아 각자 면적을 깔고 앉아 안으로 꽁꽁 걸어 잠그는 집은 물심양면 모두 건강할 수 없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끼리 단절되어서 기가 막힌 상태이다. 소통과 교류가 끊기니 그 집안의 분위기와 가풍은 말 그대로 ‘기가 막히게’ 된다. 한옥은 이것을 경계했다.

 
대가족제도 때 집이라서 더 그랬다. 가부장제 집이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는 필요했지만 이와 동시에 식구 수가 많은 대가족 집이었기 때문에 위계만 고집하다간 자칫 ‘기가 막힌’ 집이 되기 쉬웠고 이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통하고 저렇게도 통하게 만들었다. 삼대 십 수 명이 한 집에 살다보면 식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과 교류는 경우의 수로 셀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얼마나 많은 만남과 모임이 일어날 것이며,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모의가 필요할 것인가. 드러내고 싶은 소통도 있었을 것이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적절하게 복합적이고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공간구조가 필요한데, ‘원통’한 공간이 최고였다.

 

순환하는 한옥 공간에서는 동선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이 자체가 일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동에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이동의 목적과 성격, 이동하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상태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각각에 맞는 동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기 때문이다. 한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우주이다. 수많은 길이 나고 이동과정이 다양하다.


 

관가정 집이 ‘원통’해서 순환하기 위해서는 복잡만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주축이 되는 중첩공간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돌아가기와 질러가기

일부러 돌아갈 수도 있고 질러갈 수도 있다. 사람이 집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돌아가야만 하는 사정과 여유가 생기게 마련이며 반대로 질러가야 할 급한 형편도 벌어진다. 둘을 구별해서 할 수 있게 해주면 그 공간은 최고이다. ‘아흔아홉 칸’의 대저택에 이동 동선이 일직선 복도밖에 없다면 이는 오히려 기능적이지도 못하게 되며 더더욱 정성적(定性的)인 집은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 상대주의 국민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한국인은 한 방향으로만 굵고 곧게 난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로와 샛길, 갈림길과 곧은길이 적절히 섞인 ‘재미있는’길을 좋아하며 이런 길을 즐긴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흔히 한국인의 파벌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지만 잘 따져보면 산하가 이루어지는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다른 것이 모이니 이합이요 모였다 흩어지니 집산이다. 종으로 합하니 합종이요, 횡으로 이으니 연횡이다. 본디 산줄기와 강줄기가 이렇지 않던가.

 

 

 

윤증고택 사랑채 원통과 순환을 좁은 의미로 보면 ‘田’자 공간 속에서 빙빙 돈다는 뜻도 된다. 이런 구조는 채 하나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방 하나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한옥의 원통 공간에 나타난 갈림길과 선택권은 이런 자연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일 수 있다. 한옥에 동선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매우 과학적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동선이 여러 개라는 사실은 이동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의 종류가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혜의 선물이다. 시간 따라, 형편 따라, 기분 따라, 계절 따라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이동 중간에 보는 장면이 각각이고 맡는 냄새와 듣는 소리 또한 제각각이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즐기면 된다. 집 안에서의 이동이 즐김과 감상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생활살이에서 정말로 큰 축복이다.

 

흔히 한옥이 복잡하고 불편한 것으로 알지만, 한옥에는 지름길이 있다. 한옥에서는 급할 때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 효율의 가치를 절대 무시하거나 모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다만 효율의 존재를 다른 다원주의 요소 속에 묻어 꼭 필요할 때에만 꺼내 쓰게 했을 뿐이다. 효율 하나에 목매달아 너무 소중한 많은 것들을 생매장시키는 우를 피해가는 지혜이다. 효율을 살리는 것이 기능이라고 했을 때 한옥은 이처럼 분명 기능적이기도 한 것이다.

항시 변하는 집

전통적인 동양사상에서는 만물의 본질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보았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무상(無常)’이라는 개념이다. ‘상’이란 상수, 즉 고정된 상태란 뜻이니 무상이란 곧 고정된 것은 없다는 뜻이다. 동양권 중에서도 한민족이 유독 무상이라는 개념을 좋아했고 만물의 진리로 받아들여 문화와 생활 곳곳에 반영하며 살아왔다. 만물에는 한 가지 지고지선의 상태가 있다고 보고 이데아라고 이름까지 붙이며 그것을 찾아 헤맨 서양의 절대주의 세계관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무상은 자연이치와 세상만물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려던 효율적 전략이지만 자칫 허무로 흐를 소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무상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형식화해서 현실세계로 내보였는데 한옥이 그것이다. 한옥의 여러 이로움을 통해 무상이란 것이 부정적이거나 허무한 것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으로 구체적 이로움을 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상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집에 실어낼 수 있었을까. 무상은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에 집 같은 물리체로 직접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 조금 돌아가면 되는데 다양성이 그 해답이다. 집을 다양하게 만들어 그 다양성을 수시로 구현하다 보면 집은 항시 변하는 상태에 있게 된다. 항시 변한다는 것은 항변인데, 항변은 무상과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의미를 가질 수는 있다. 사상이나 개념이 건물 같은 물리적 구조체에 반영되는 과정에는 일정한 응용과 변형이 따르게 되는데, 항변과 무상의 동의어적 관계도 이 범위 내에 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동수 고택 사랑채 ‘원통’한 공간은 곧 ‘항변’하는 공간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서 동선이 원활하고 그 구멍을 막고 닫는 데 따라 집은 수시로 변한다.

 

  

 

중요한 것은 한옥 공간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정말로 다양하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한옥의 공간적 특징인 비움, 불이, 중첩, 관입, 원통 등이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서로 얽히며 작동한 결과이다. 이것을 공간의 구조형식을 이루는 건축 요소로 나누어 몇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일차적으로 창이 변화무쌍하다. 창 스스로가 크기, 위치, 모양, 방향, 열리는 방식 등이 다양하다. 행랑채를 빼고 사랑채와 안채만을 기준으로 할 때 한옥 한 채에는 보통 30~50개 정도의 창이 나는데 같은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동일성을 철저하게 배격한 것인데, 이런 창들이 여기저기에서 각자 상황에 따라 열리다 보면 집의 골격과 모양은 자연스럽게 다양해진다.

 

둘째, 건물의 골격이 창의 다양성을 돕는다. 창은 혼자 존재할 수는 없다. 창을 창답게 해주는 것이 건물의 골격이다. 집 전체로 보면 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진 골조 위에 벽을 듬성듬성 두른 구조이다. 공간의 얼개가 느슨하다는 뜻이다. 골조는 누각구조를 지향하며 벽도 가급적 폐쇄도를 낮추려 한다. 벽의 재료가 돌이 아니고 나무와 흙을 섞었기 때문에 스스로 내력 역할은 못하지만 위치는 그만큼 자유롭다. 위아래로 창을 거느리면서 공중에 매달리듯 붙기도 한다.

 

 

주역과 경우의 수

셋째, 건물 전체의 구성이 증식과 분화로 이루어진다. ‘방-동-채-영역-건물 전체’의 단계 별로 복합 구성을 이룬다. 방이 씨앗이 되어 점차 증식되어 가는 구성이며 이 과정에서 ‘x-y'축 양 방향으로 자유롭게 분화해 나간다. 전형적인 외파 구성이다. 건물 전체로 보면 각 채가 꺾임이 많고 채와 채 사이가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 또 적당히 맞물린다.

 

넷째, 마당이 이런 여러 조건을 잘 발휘하게 해준다. 마당은 여러 채로 분화하는 한옥의 전체구성에 여유를 주는 숨통 같은 것이며, 건물이 마음껏 활개 치며 자신의 특징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여백이자 배경 공간이다. 넉넉하면서도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다. 비움, 불이, 중첩, 관입, 원통 같은 한옥 특유의 공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도 모두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창덕궁 연경당 집이 한 시도 같은 모습으로 있질 못하기 위해서 벽의 가변성은 필수이다. 벽체를 줄이고 창문을 늘일 것이며 그 창문은 열고 닫기가 용이할뿐더러 열고 닫는 방식도 다양해야 할 것이다.

 

 

 

증식과 분화로 이루어지는 한옥의 구성은 주역에 비유할 수 있다. 한옥에서 각 방 혹은 방으로 이루어지는 동은 매우 단순하다. 방은 단 겹이다. 그야말로 덩그러니 방 하나만 있다. 그 흔한 복도도 없으며 문을 열면 앞뒤 모두 바로 외기이다. 채 까지도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회첨골 정도에서만 복 겹 공간이 나타난다. 건물 윤곽을 큰 상자로 잡고 속으로 잘라 들어가 호도 속 같은 공간을 짜는 서양과 반대이다. 그 대신 한옥에서는 이렇게 단순한 방이 증식하면서 복합 공간으로 발전한다. 채가 꺾이고 마당이 들어가며 채와 채가 어울리면서 공간은 복합적이 된다.

 

이런 구성은 주역다운 세계관이다. 주역 역시 긴 막대기 하나와 짧은 막대기 하나만으로 복잡하기 그지없는 자연과 세상만물의 작동원리를 규칙화 해낸다. ‘0’과 ‘1’을 끊임없이 증식해가며 그 조합의 경우의 수에 따라 작동하는 컴퓨터도 같은 이치이다. 주역에서는 막대기 두 개를 복합 증식해서 건곤감리를 만들어내고 사주와 팔자도 만들어낸다. 다시 이것들의 조합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와 나아가 사람의 운명도 유형화해 낸다. 쉽게 얘기해서 2의 제곱을 반복하면서 경우의 수를 늘려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정성적(定性的) 내용을 실어서 사람 운명의 다양한 결에 대응시키는 것이다. 한옥의 공간 구성과 너무 닮았다.

 

 

 

관가정 행랑채 집이 항시 변하니 집에서 보는 풍경도 다양하다. 한 집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풍경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놀이터와 뫼비우스의 띠

한옥 공간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집을 하나의 큰 놀이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옥의 복합공간은 숨바꼭질 놀이에 더 없이 적합하다. 숨바꼭질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놀이라지만 어른에게도 다른 형식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관음이다. 성도착증만은 아니다. 몸을 숨기고 드러내는 정도를 적당히 조절한다는 뜻이다. 어머니 자궁 속 같은 아늑함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자연과 소통하고 화해하는 양면성이 적절하다는 뜻이다.

 

  

 

충효당 집 구성이 다양하다는 것은 다양한 공간형식을 섞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은 방과 문으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대청과 퇴와 누마루를 섞으면 공간은 더 없이 다양해진다.

 

 

 

한옥에서는 한 가지 동선에 대해 질러가기와 돌아가기가 동시에 가능하다. 지름길과 갈림길이 적절히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일단 효율적이며 기능적이다. 심리적 기능도 있다. 동선에 선택권을 가질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 대안 동선 가운데 그때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골라서 선택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놀이 기능이 중요하다. 대안 동선이 많다는 것은 집안 이곳저곳을 오가는 이동을 하나의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심심하다 싶을 때 동선 종류를 바꿔가며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흥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 특유의 오밀조밀한 심성과 장난기를 집 구조에 옮겨 놓은 셈이다.

 

순수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한옥의 다양성은 뫼비우스의 띠를 구현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건물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뫼비우스의 띠와 똑같아질 수 없다. 물리적 골격이야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공간에 승부를 거는 많은 건축가들은 건물로 뫼비우스의 띠를 구현해보려고 노력해왔다. 문제는 비유이다. 한옥 공간은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될 만하다. 안팎의 구별이 없어지고 채와 마당이 서로를 교차해서 감싸는 공간 속에서 나의 위치는 앞뒤상하좌우를 토막 낸 확정적 지점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늘 흐르는 과정의 한 중간에 있다. 여기저기 난 구멍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공간의 여정을 거쳐 처음 자리로 되돌아온다. 토폴로지를 동선 이동과 공간 경험이라는 건축적 구성으로 치환해서 보면 한옥은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될 수 있다. 많은 건축가들이 구현하고 싶어 했던 그 해답이 이미 한옥에 들어있는 것이다.

한옥의 주인은 집이 아니라 마당이다

마당 없는 한옥은 생각할 수 없다. 마당 없는 한옥은 한옥이 아니라 그냥 각 나라마다 한 종류 이상씩은 다 있는 ‘나무집’일 뿐이다. 면적으로 보아도 ‘아흔아홉 칸’ 대감댁이라지만 집이 차지하는 건평은 그 절반을 넘지 못한다. 공간 골격은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어서 ‘초가 삼 칸’을 씨앗으로 삼아 증식,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공간이 서로 어울려 더없이 풍부하고 복합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해주는 바탕이다. 때로는 넉넉하게 다 품어주고, 때로는 오밀조밀하게 나눠주면서 집 전체에 숨통을 터주기도 하고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 마당은 공간의 안팎을 굳이 구별하지 않으려던 불이 사상이 구현되는 통로이다. 마당이 있기에 대청이 살고 퇴가 산다. 대청, 퇴, 누 같은 전이공간을 만들어낸다.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안채 안채의 서쪽 동이 제 앞까지만 치마폭처럼 그림자를 내리는 것도 빈 마당을 통해서이다. 건너편 땅은 내 것이 아니니 내 땅까지만 영역을 짓는다. 그것도 석양이 도와 그림자를 통해서 하니 내일 아침이면 부질없는 땅 나누기도 지워진다.

 

 

 

한옥의 마당에서는 스케일의 미학을 느껴야 한다. 도시형 한옥의 마당은 대개 5~15미터, 시골의 정통 한옥은 7~25미터 정도이다. 이 수치는 채와 채가 같은 영역 안에 있다는 울타리 의식을 느끼게 하는 데 적합한 스케일이다.

 

 

 

채가 이러니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간접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건물 높이와의 비율은 대부분 1~2.5 사이에 들어온다. 조금 타이트하게 느끼는 범위에서 편안한 에워쌈을 느끼게 해주는 범위 사이에 든다. 사랑채 앞마당은 트이면서도 일정한 에워쌈을 느끼고 안채 안마당은 다소 조이는 느낌이 든다.

 

한옥의 마당은 비어있다. 비워야 진정한 쓸모가 생긴다는 노장 사상의 가르침을 좇았다. 채가 꺾이고 분화하면서 여러 겹으로 나누어지는 공간의 켜 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빈 마당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당은 비어있는 것 같지만 채울 때도 있다. 물질로 채우지 않고 무형으로 채운다. 지붕 추녀를 하늘로 활짝 들어 울리는 것도 마당이 비었기 때문이다. 곡선의 리듬감으로 채운다. 거꾸로 이것을 그림자로 만들어 땅 위에 내려놓는 것도 빈 마당이 할 일이다.

 

댓돌은 빈 마당과 잘 어울린다. 형상부터 그렇다. 마당의 형상이 짜임새 있는 것 같으면서 어딘가 헐거워 편안한 느낌을 주듯이 댓돌도 그렇다. 반듯한 육면체를 유지하면서 돌의 안정감을 빼앗지 않지만 다듬다 만 듯 어딘가 엉성하다. 댓돌은 한국다운 떡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잔 계단 여럿으로 나눌 법한데 큰 덩어리 하나만 덩그러니 놓았다. 딱딱한 고형체인 돌을 해학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다운 조형의식의 좋은 예이다.

 

은진미륵이 그러하며 절 앞의 돌탑이 그러하다. 돌에 감성을 싣고 친근한 요소로 만든다. 돌은 물성이 너무 강해서 물욕과 인공성을 실을 경우 폭력적이 되기 십상인데, 일상 생활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태준 고택 댓돌은 한국 특유의 떡의 미학, 떡의 정서를 그대로 닮은 것이려니와,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은 한국다운 정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떡 덩어리 하나 들고 떼어 나눠먹는 모습과 동의어이다.

유교의 ‘예별이’

멀리서 한옥의 전경을 보면 지붕을 통해 집의 전모를 가늠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법칙이 있다. 수평지붕이 두 장이나 세 장 위아래로 겹치며 그 사이로 이것보다 하나 적거나 동수인 삼각 박공이 솟아오른다. 이런 구성은 이유가 있다. 가부장적 계급사회였던 유교시대 때 신분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위계는 건축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지붕의 형식과 크기도 중요한 요소이다. 지붕이 더 크고 높으면 위계가 높아지는 것은 상식이려니와 형식에서는 팔작지붕맞배지붕보다 위계가 높다.

 

이것은 그대로 한옥을 구성하는 세 계급인 하인, 여자 주인, 남자 주인에 대응시킬 수 있다. 하인의 공간인 행랑채는 높이가 제일 낮은 맞배지붕을, 여자 주인의 공간인 안채는 중간 높이의 팔작지붕을, 남자 주인의 공간인 사랑채는 높이가 제일 높은 팔작지붕을 각각 갖는다. 안채와 사랑채의 팔작지붕은 높이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박공의 크기에서도 차이가 나서 보통 사랑채 것이 더 크다. 한옥을 멀리서 보면 지붕 여러 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계급질서를 충실히 반영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며 찬찬히 뜯어보면 집의 구성을 읽어낼 수 있다.

 

 

선교장 전경 행랑채, 안채, 사랑채가 각각의 계급에 합당한 건축적 위계를 가지며 예별이를 표현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가족다운 어울림을 동시에 보여준다.

 

 

 

건축을 이용해서 계급질서를 반영하는 구성을 미학에서는 사회미 혹은 사회적 형식미라고 부른다. 동서양이 공통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고전 오더가 이런 역할을 한다. 독립원형기둥이 반원 벽기둥보다, 반원 벽기둥이 사각 벽기둥보다 각각 위계가 더 높으며, 같은 사각 벽기둥 사이에서도 절반 돌출이 사분의 일 돌출보다 위계가 더 높은 식이다. 사회미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 질서, 도덕률, 법도 등의 문명 가치를 건축으로 표현해서 공고히 해주는 미학을 통칭하는데 동서양 모두 주로 계급 사회 때 강하게 나타난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지배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봉사의 성격을 띠기 쉽다.

 

한옥에 나타난 지붕의 위계 차이를 동양미학으로 환원하면 ‘예별이(禮別異)’의 유교 가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별이’란 말 그대로 ‘예절은 차이를 구별하는 기능을 갖는다’라는 뜻인데, 계급질서를 바탕에 깐 유교가치의 대표적 예이다. 복장, 의복, 음식 등 일상생활의 모든 점이 계급에 따라 다른데 집도 그 중 중요한 요소였다. 집을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홍보하는 통로로 활용한 경우이다. 하인 계층은 집의 구성에 나타난 차이를 보면서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깊이 깨달아 말썽 안 부리고 지배계급에 더욱 순종했을 것이며 같은 논리가 여성과 남성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사회적 안녕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어울림의 미학

사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얘기이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더 많은 사람이 더 크고 더 화려한 집에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다듬어내느냐에 있다. 한옥은 계급 차이를 강압으로 공고히 굳히는 것을 경계했다. 그 대신 ‘어울림’이라는 균형 잡힌 조형처리로 잘 풀어냈다. 구성원들 사이를 구획 짓거나 가르지 않고 서로 잘 어울리게 했다. 높은 위계의 공간이 낮은 쪽을 억누르거나 진압하지 않고 한 울타리 내에서 같이 어울리게 했다. 상하 구별이 분명하고 남녀가 유별했던 실제 생활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집을 기준으로 보면 이런 계급 구도를 중화시켜 최소화하고 싶어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국민성이나 조형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으며 그 바탕에는 유교의 또 다른 가르침인 ‘인(仁’)’의 정신과 이것을 ‘정’의 문화로 발전시킨 우리의 정서가 깔려있다.

 

 

 

안동 귀봉종택 위계에 따른 건물 크기의 차이는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어서 지형과 집안 분위기에 따라 안채가 중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어울림’은 한국인 특유의 사회적 형식미이자 조형의식이다. 큰 것 하나로 뭉치는 것보다 작은 것 여럿으로 나눈 뒤 그것들을 이리 짜고 저리 모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조형의식이다. 통합보다는 조합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한국 전통건축에 거대구조나 거석구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을 산업기술력이 열악하거나 배짱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 시각도 있으나 조형적 선호에 기인한 점이 크다. 한옥이 대표적인 예이며 사찰도 산지에 위치한 탓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긴 길이에 걸쳐 여러 전각으로 나누어 구성한 분산적 특징이 강하다. 왕궁도 서양과 비교해보면 여러 영역과 수많은 전각으로 나눈 뒤 이것들을 재조합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한옥을 예로 보면, 공간 구성과 동선에 나타난 다양성을 3차원 덩어리로 환산한 것으로 보면 된다. 통합이 아닌 조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정한 나눔을 전제로 해야 되기 때문에 자칫 파벌이나 분열로 빠질 위험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합은 통합뿐 아니라 분열과도 엄연히 다른 또 하나의 독립적 조직 원리이며 이것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면 어울림의 미학이 된다.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보통 한국인의 파벌의식이나 분열다움을 부정적 의미로 일컫는 말이나 원래 뜻은 조합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 이치를 일컫는 중립적인 말이다. 이 두 말을 잘 보면 ‘합’, ‘연’, ‘합’, ‘집’ 등 모인다는 뜻의 말이 주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만 모이는 방식에서 중앙 통제에 의해 큰 한 덩어리로 통합되느냐 아니면 구성원 각각이 일정한 힘을 가지면서 힘겨루기와 타협을 통해 조합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추사고택 안채가 안 행랑채와 중문을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예별이에 따른 계급 차이를 반영하지만 다정한 어울림의 미학도 잊지 않는다.

 

 

 

인과 정

한국다운 어울림을 조형적으로 환산하면 절묘한 균형감이 된다. 한옥의 전경을 보면 크고 작은 여러 덩어리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어울리고 있다. 큰 것은 너무 크지 않게, 그러나 작은 것도 너무 작지 않게 적절한 범위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구별하지만 궁극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어울려 흥겨운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흥겨우면서도 안정적이라는 상반되는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양면성이 한국의 조형적 균형감의 요체이다.

 

언뜻 보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각자의 조형다운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면서 제 몫을 잊지 않고 챙겨서 서로간의 경계를 잘 짓고 있다. 크고 작은 모든 요소들이 개별다움과 존재이유를 잃지 않고 잘 유지하면서 각자의 조형적 가치를 발휘해서 서로 어울려 큰 하나로 조합해내고 있다. ‘필부라도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개별성의 철학이 잘 살아있는 예이다. 심지어 뒷간조차도 담 밖에서 보면 집의 전체 구성 속에 자신의 지붕 한 장을 슬쩍 밀어 넣어 조형요소의 독립성을 당당히 확보한다. 우리말에는 오밀조밀, 아기자기, 오순도순, 옹기종기 등 개별성을 바탕으로 한 어울림의 모습을 지칭하는 부사가 발달한 것이 좋은 증거이다. 이런 말들의 뜻을 보면 모두 ‘다양한 요소가 귀엽고 정답고 예쁜 모습으로 보기 좋게 어울리며 얘기하고 논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갖는다.

 

 

 

향단 한국인의 조형의식은 거석구조보다는 큰 덩어리를 여럿으로 나눠 오밀조밀하게 조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배계층의 주거가 이렇게 자잘한 구성요소들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옥의 어울림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유교의 ‘인’의 가르침이다. ‘인’은 중국과 우리가 사회적으로 조금 다르게 형식화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정의 문화’로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가족주의이다. 가족주의는 씨족문화와 문중문화를 이루는 씨앗이며 이것이 모여 집권층을 이루고 왕권을 지탱하는 신권(臣權)이 되었다. 한국의 정의 문화는 유교의 계급질서가 너무 삭막한 착취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한 중화작용 혹은 견제장치 역할을 했다. 전제 왕권 시대였기 때문에 피지배계층의 권익을 나라의 법으로 확보해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구현하고 싶었을 터인데, 결국 사람들 사이의 정이라는 비공식적 마음 나누기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옥의 전경에서는 유교의 계급질서와 이것을 한국인 특유의 국민성에 맞게 적용해낸 두 가지 사회미를 읽어낼 수 있다.

엄격하지만 친근한 한옥의 입면

한옥의 입면은 엄격하면서도 친근하다. 벽을 흰색 회반죽으로 마감한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적어도 백색의 순결주의와도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니 일단 컬러 코드에서 엄격한 편이다. 그 사이를 외장 마감을 별도로 하지 않은 나무 기둥과 보가 가르고 지나가면서 구성 분할을 해대는데, 가름의 정도가 꼭 필요한 것 이상의 쓸데없는 욕심은 없어 보이니 흰 회벽에 더해 보면 이 또한 엄격한 몸가짐의 선비 행색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단정 지어 끝내버리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틀림없이 한옥 입면의 인상이긴 하지만 이것 말고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파르르한 추상미라고 부르기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느껴진다. 말하자면 한옥의 입면과 비슷하게 생긴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에서 보는 것 같은 옴짝달싹 못할 이상미는 아니라는 뜻이다. 가장 완벽한 비례의 한 가지 상태를 포착해 얼음처럼 굳혀 놔서 도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추상같은’ 추상미와는 다른 종류이다. 자의적 해석을 허락해주는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집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기둥 하나쯤 한두 자 옆으로 슬쩍 옮겨도 야단맞을 것 같지는 않다. 짐짓 눈이나 한 번 흘기고 다시 제자리로 되 옮기면 전부일 것 같다. 그나마 그 위치도 정확히 처음의 그 자리가 아니어도 개의치 아니할 것 같다.

 

 

창녕궁위재사 한옥의 입면은 흰 벽을 바탕으로 가름이 명확하기 때문에 언뜻 꼿꼿한 선비를 보는 것 같은 엄격함이 있다.

 

 

 

왜 이럴까. 흰 회벽을 갈색 나뭇결의 기둥과 보가 가르고 그 사이에 창이 들어가는 장면은 한옥이 만들어내는 2차원 평면 장면 가운데 백미일 수 있다. 이것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깨끗해지는 것 같다. 참으로 간결하고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추상미의 정수이다. 커지면 또 커질 수밖에 없는 지배계층의 탐욕을 제어하는 역할을 분명히 했을 것 같다. 세도가로 흘러갈지라도 처음 출발은 글 읽는 선비였을 그 검소함의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격하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 차를 달려 대문을 박차고 중문을 뛰어 이놈의 한옥 입면 앞에 서면 불같던 분노나 욕망은 스르르 잦아들곤 한다. 그만큼 엄격하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을 찾아내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서늘한 아방가르드 추상과는 다른 온기랄까, 소탈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친근하다. 한옥 입면은 엄격하면서도 친근하다.

 

 

한국다운 리얼리즘의 장면

왜 이럴까. 형성과정부터 그렇다. 추상의 영어 어원을 따져보면 “추출해서 없앤다”이다. 구상의 지칭 가능한 개별성을 찾아내 없애고 또 없애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무 것이나 갖다 붙여도 생떼만 쓰면 말이 되는 보편성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보통 추상이라 부른다. 한옥의 입면은 다르다. 그 지향점이 개별성을 지워 없애려는 추상과 오히려 반대이다. 개별성을 존중해서 개별 요소의 가치를 드러내도록 해준다. 개별의 가치가 전체에 눌려 소멸되지 않게 해서 개별 요소가 조형적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양진당 행랑채 한옥의 벽 분할과 창 구성은 엄격하지만은 않아서 엉성한 인간미에 유추할 수 있는 의인화 성격을 함께 갖는다.

  

 

 

왜 그럴까. 한옥 입면의 분할에서 기둥과 보, 그리고 창의 위치는 철저하게 방 안 사용자의 형편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황금비나 모듈, 표준화나 대칭 같은 선험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항상 최고의 심미성을 잃지 않는 이상적 비례가 있으니 이것을 지상에 구현해야 한다거나, 산업을 일으켜 더 빨리 더 많이 지어 더 많이 가져야겠다며 모든 방을 동일한 규준(規準)으로 자르고 좋아한다거나, 이 둘을 합해서 다 가지려 데칼코마니처럼 집을 상하·전후·좌우로 동일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방 안에 사는 사람의 살이와 어긋나지 않는 것이 없을진대, 이런 선험적 가치를 우선하다 보면 사람들은 매번 자신이 원하는 형편과 살이를 포기하고 전체 가치에 맞춰야 한다.

 

한옥에는 이런 것이 없다. 그 반대이다. 방은 필요한 크기로 자르면 되고 그 위치가 한정하는 기둥과 보는 그대로 입면에 구성 분할을 그린다. 리얼리즘이다. 선험적 이상주의에 반대되는 귀납적 리얼리즘이다. 안방은 안방대로 건넌방은 건넌방대로. 문을 열면 마주하는 공간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활짝 대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 있을 터, 창문을 그에 맞게 내면 그만이었다. 반쯤 가려서 선택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을 통해 오가는 발걸음의 방향을 이쪽에 두는 것이 좋은 식구도 있을 것이고 저쪽에 두기를 원하는 식구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능한 한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 결과 한옥에서 창문은 이렇게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지키도록 났던 것이다.

 

 

 

안동권씨 능동 재사 한옥 입면의 분할은 르네상스 팔라초나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이상비례에 묶이지 않고 헐거운 도포자락 같은 넉넉한 구성미로 발전한다.

 

 

 

그래서 틈을 내주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장식과 화려한 마감을 절제해서 선비의 근검을 지켰지만 이것이 인정을 잃고 파르르한 결기가 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온기를 품을 틈을 내준 것이다. 식구 구성원 각자, 즉 사람의 요구가 집의 전체 질서보다 우선시된다. 유교의 인의 정신에 기초한 한국다운 인본주의와 리얼리즘의 장면이다. 창문이란 방 안 사람이 방 밖에 대해서 필요로 하는 형편을 맞춰주기 위해 벽에 뚫는 구멍이다. 한국 사람들은 선험적 가치가 이런 현장의 필요성에 우선해서 사용자의 손해를 강요하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옥의 창은 그렇게 자유롭고 친근하게 난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주제와 변주에 의한 구성미

그래서 한옥의 입면은 한국다운 어울림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적인 장면이다. 전경이 3차원 덩어리들이 모여 어울린 결과라면 입면은 회벽, 기둥과 보, 창문 등 2차원 요소가 모여 어울림의 미학을 만들어낸다. 한옥 입면의 어울림은 추상미보다는 구성미에 가깝다. 구성미에도 종류가 있는데, 한옥에서는 창문의 위치와 크기를 자유롭게 낼 수 있게 되면서 주제와 변주에 의한 구성미가 나타난다. 큰 분위기는 공유하면서(=주제), 개별 요소들 사이에 세부적으로 차이를 줘서(=변주) 어울림의 효과를 구성미로 끌고 간다. 같은 창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르지는 않아서 전체적으로 공통적 분위기가 유지된다. 통일성과 다양성,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추구한다.

 

 

 

청풍 도화리 고가 창의 개수가 많아지면 주제와 변주에 의한 예술적 통일성으로 발전한다. 개체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전체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이런 조형 기법을 예술적 통일성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산업적 동일성을 거부하지만 예술적으로는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공통 모티브를 건물의 이곳저곳의 형편에 맞춰 적절하게 변형, 적용시키다 보면 전체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은 지켜주는 종합적 어울림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도 동북아의 전통미학을 접한 다음에 등장했던 미술공예운동에서 아르누보에 이르는 예술운동까지 예술적 통일성을 핵심 강령으로 추구했다. 이는 물론 당시 산업혁명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거두기 시작하며 괴물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산업주의의 폐해가 사람 사는 집안 방구석에까지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숭고한 예술정신의 전형으로 추구되었다.

 

한옥 입면에서 예술적 통일성은 동일면과 꺾임 면 두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큰 차이는 없다. 동일면에서는 2차원 평면다움이 좀 더 두드러지고 마주보는 꺾임 면에서는 입체감이 좀 더 든다는 점이 차이이다. 중요한 점은 한옥에서는 외관을 빙 돌아가며 예술적 통일성의 장면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이런 장면은 한국 특유의 가족적 어울림에까지 의인화시킬 수 있다. 뭉쳤다 떨어지고 듬성듬성 모여 있는 창의 구성 장면은 큰 방 안에 식구들이 자유롭게 모여 살아가는 한국다운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엉성해 보이는 한옥

한옥은 엉성해 보인다. 요즘 기준으로 하면 짓다 만 것 같기도 하며 잘 봐줘야 애는 썼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 보인다.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대충대충 한 것 같다. 한옥의 재래다움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일단 재료부터 잘 다듬지를 않는다. 너무 흉해 보이지만 않고 안전성에 결정적인 문제만 없으면 인공적 손질을 최소화한다. 좋은 말로 하면 자연재료를 그대로 쓴 것이다. 재료의 자연적 성질을 그대로 살렸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오래된 한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이며 한옥만의 특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부정적 인상이 주를 이루었다. 아마 모든 부재의 정합이 딱 들어맞고 디테일도 잔털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내는 산업화된 건축방식에 길들여져서 그럴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분명히 엉성하기 짝이 없는 집이다. 미장이나 목수 같은 전문 일꾼들에게서 한옥에서 보이는 이런 습성이 남아 있다면 일을 잘 못하는 것이 된다. 근대화라는 것에는 한옥의 이런 습성을 떨쳐버리고 정말로 물샐틈없이 정밀하게 시공해내는 일도 들어간다. 우리는 이런 것이 기술이고 실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김동수 고택 자연재료는 가급적 다듬지 않고 제 생긴 대로 놔두면 자기들끼리 어울려 볼 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집은 방음도 잘 되고 문짝도 덜렁거리지 않게 되었으며 벽과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는 날카롭게 직각을 잘 유지한다. 그런데 집이 이렇게 산업화되어 갈수록 왜 정신적 안정감을 측정하는 각종 수치는 계속 나빠지기만 하고 듣도 보도 못하던 중독 증세는 늘기만 할까. 사회학 용어로 하면 소외감(alienation)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와 산업화의 혜택을 적당히 누리면서 이전보다는 더 살 만해졌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본다. 나이 든 어른들 얘기를 들어봐도 전문적 분석이 맞는 것 같다.

산업화가 사람의 본질과 안 맞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길어야 200여 년,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은 잘해야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직 산업화에 적응을 덜 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몇 백 년이 더 지나서 사람의 뇌와 신경 구조가 완전히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2010년 한국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산업화된 조형 환경은 우리의 본성하고 너무 큰 거리를 갖는다. 어느 점에서 그럴까. 한옥의 엉성함을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건축 재료도 하나의 객체로 보아서 그 고유 형상을 존중했다

한옥의 엉성함의 미학은 우선 재료에서 드러난다.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재료를 가급적 가공하지 않고 본래 상태대로 사용한다. 물론 나무야 1년 이상 잘 말려야 하지만 형상을 다듬는 데에는 신중하다. 기둥은 집의 전체 인상을 결정하니 곧은 것이 좋은데 이 경우에도 휜 놈을 다듬기보다는 처음부토 곧은 놈을 골라 썼다. 반면 대청 천장에 들어가는 대들보나 2차 보, 그리고 서까래 등에는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썼다. 한때는 이런 휜 부재들을 두고 말도 많았지만 어느새 우리 기억에도 한옥의 전형적 장면 가운데 하나가 대청 천장에 드러난 여러 목재들이 자연스럽게 휜 모습이라는 점이 자리 잡았다. 이런 부재들이 일직선으로 다듬어져 있으면 마치 된장찌개에 된장의 구수한 맛이 빠진 것처럼 진짜 한옥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노락당 돌과 나무와 잡 철물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공예미는 한옥에서 빠질 수 없는 백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재료 수급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에는 휜 나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런 자연환경을 고려해서 집의 모든 부재에 곧은 나무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휜 나무를 사용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의 비율에 맞춰 부재를 사용한 것이다. 굳이 일직선으로 다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산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으나 객체를 존중하는 철학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집에 들어가는 건축 재료도 하나의 객체로서 주체인 나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무나 돌 같은 건축 재료가 예뻐서 그랬을 리는 없다. 이보다는 집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투영시키고 대응시키기에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을 집에도 적용시킴으로써 그런 철학을 훈련하고 항시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는 장으로 활용했다는 뜻이다. 건축 재료를 생명체가 없는 단순한 물질로 보지 않았다. 그 가치와 존재를 존중해야 할 객체로 보았다.

 

 

 

이승업 가옥 한국 전통건축에서 자연재료를 대하는 기술의 태도는 재료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 가는 자연스러움에 가급적 가깝게 이끄는 가이드 개념에 가깝다.

 

 

 

객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은 나와 너, 즉 주체와 객체 사이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의 민족정서에는 주체와 객체를 동등하게 보는 사상이 발달해 있다. 나를 주체로서 세상의 중심에 두고 나의 주변 객체를 나에 맞춰 재편하라고 가르친 데카르트식의 서양 사상과 다른 점이다. 서양에서는 나의 능력으로 주변을 제압해서 나에게 맞추게 만드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만 우리의 민족정서는 많이 달랐다. 물론 우리도 집권층에서는 목숨을 건 치열한 주체 싸움이 있었지만 이는 지배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개입된 일그러진 모습일 뿐, 적어도 일상생활 속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에서는 분명 객체를 존중해서 같이 맞추고 타협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는 한국 문화, 좁게는 한옥 전체에 드러나는 개별성 중시 경향에서 잘 알 수 있다.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오른 상태야말로 진정한 기교’


객체에 대한 태도를 기술의 개념에 적용시키면 한국 특유의 공예미학이 탄생한다. 우리의 전통 장인은 기술을 인간의 솜씨나 재주를 뽐내는 경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각 재료의 고유한 성질이 잘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통로로 생각했다. 재료를 다듬어 인간에게 필요한 공구를 만드는 일 역시 보기 좋게 매끄럽게 잘 다듬어 내서 ‘내 솜씨 봐라’ 하며 ‘짠’ 하고 세상에 내보이는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만약 재료 스스로 사람의 손길 없이 자기 혼자서 공구를 만들게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을법한 상태에 가급적 가깝게 놔두려 했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 장인이 생각했던 기술의 의미이다. 각 재료의 고유한 성질을 파악해내고 이것이 잘 발현되어서 공구로 만들어지도록 이끌어주는 능력을 기술의 요체로 본 것이다, 공구 속에 원래 재료의 자연적 성질과 장점이 가급적 많이 남아 있도록 보존해내는 능력을 기술로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자연재료의 개성을 잡아낼 줄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손재주가 튀어나와 이것을 갈아 없애지 않도록 참는 인내심이 절실했다. 이런 큰 인내심까지도 능력으로 보았고 기술로 보았다. 그래서 기술을 재주나 솜씨나 산업으로 보지 않고 예술로 보아 ‘기예’라 불렀으며 이런 경계에 오른 상태를 진정한 기교로 보았다. ‘기, 예, 교’이다.

 

모든 재료는 각자의 몫이 있는 법이다. 곧은 나무는 잘려 나가고 휜 나무가 남아서 산을 지킨다지만, 휜 나무조차도 건축부재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활용했다. 이는 매우 과학적이기도 해서 건축부재의 내력 기능은 재료 자체의 강도와 단면적에 좌우되지 형상과는 큰 상관이 없다. 목질만 단단하고 단면적만 충분히 확보되면 건축부재로서 역학 기능을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남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뿐이다.


 

윤증고택 재래다움에는 손맛이 빠질 수 없다. 투박할 수는 있어도 최소한 소박하다. 기계 공예에서 느낄 수 없는 수공예의 손맛이다.

 

 

 

 

 

휜 나무기둥은 구조적으로 불안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사실 알고 보면 곧은 형상을 선호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일 수 있다. 괜히 우리의 호불호에 따라 대상을 편견하고 처음부터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리지 말자는 것이다. 보기 좋고 예쁜 것을 좋은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은 우리의 시각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상에 대해 공정치 못한 핍박을 가하는 것일 뿐이다.

 

집단 무의식 형태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든 건축


건축 사조에는 한 시대와 문명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든다. 건물은 물리적 제한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자칫 이것에 가려 사상과 철학이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건축가나 설계자가 작품성, 조형성, 미학 등의 기치 아래 의도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여러 다양한 경로를 통해 건물에는 사상과 철학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반영된다. 거꾸로 건물을 통해 그 건물을 지은 시대의 사상과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 건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숨은 사상과 철학을 캐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옥에는 물론 서양식 예술가 개념의 건축가는 없었다. 한옥은 장인과 집주인의 합작품이었다. 장인은 집을 짓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건축가의 역할을 상당부분 겸했다. 그러나 집주인과 계급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집주인의 의견이 강하면 그에 따르는 수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의 생각과 철학이 많이 반영되었다. 이언적 선생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장인이 지을 경우에는 미학 용어로 집단 무의식 형태로 동시대의 사상과 철학이 집에 영향을 끼쳤다. 사상과 철학은 잘 정리된 학문이나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사회, 시대 단위로 다수의 구성원들 사이에 집단적 무의식 형태로도 존재한다. 건축은 정치, 경제, 사회, 산업기술 등 예술 외적인 요인에서 받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다른 예술 장르보다 이런 집단 무의식 형태의 사상과 철학이 많이 스며든다. 한옥은 기능유형에 따른 주거형식의 이름이지 양식이나 사조 명칭은 아니다. 한국 전통건축이 서양건축과 다른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양식과 사조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옥은 양식이나 사조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집단성과 대표성을 갖는다.


창녕궁위재사 집이 지어지는 축조성만으로 문양효과를 내서 장식을 대신하는 한옥의 특징은 유교의 절제미와 도교의 승물 개념이 한 곳에서 만나는 장이다.

 

 

 

 

 

이 정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상과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옛날 한옥이 있었기에 지금은 한옥 짓는 일이 쉬워 보인다. 한옥 짓기가 어렵다지만 그것은 대부분 시공, 공사비, 재료 등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집의 구성을 짜고 디자인하는 것은 모방 모델이 있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한옥을 지으라고 한다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옥처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려니와 배경이 된 사상과 철학도 여러 겹이다.

 

  

이승업가옥 공간의 안팎과 구획을 최소화하며 늘 변하는 상태에 있는 한옥 공간은 불교의 공간개념에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남아 있는 옛날 한옥은 거의 조선시대 것들이라 그 이전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추측은 가능하다. 고려시대 때 상류 지배층의 주거에서 기초적인 형식은 갖춰졌을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 한옥에 비하면 조금은 단순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한 번 완성된 구성 형식을 조선시대에 와서 좀 더 세밀하게 분화시키고 다듬어서 최종적으로 완성시켰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상과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반도 사상 체계의 종합체인 한옥

이런 사회적 역사적 고찰과 달리 순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한옥은 ‘초가삼간’을 씨앗으로 삼아 증식, 분화,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역시 사상과 철학이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했다. 씨앗이 자라나고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이유가 있어야 된다. 대가족제도, 가부장제도, 상류층의 지배 이데올로기 등 사회적, 기능적 이유가 있을 테고 이와 똑같이 중요한 것이 사상적, 철학적 배경이다.

 

 

 

운조루 사랑채 처마를 뽑아 흰 회벽 바탕에 그림자를 실어 문양으로 활용하는 한옥의 특징은 유불도 삼대사상이 한 곳에서 만나는 장이다.

 

 

 

한옥의 배경 사상은 크게 한반도 고유의 것과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요즘 새롭게 밝혀지기 시작하는 고고학적 사실들을 대입시켜 보면, 동북아의 고대문명은 크게 ‘요하-요동-한반도’로 이어지는 요하문명과 중국 중원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으로 나눌 수 있다. 삼국시대까지 한반도는 전자가 주도했고 후자가 부분적으로 수용되어 혼합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을 이끈 요하문명과 한반도 고유의 토종사상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한옥의 씨앗이 될 한반도 고대문명의 초창기 주거형식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를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못하다.

 

이후 삼국이 통일되고 요하문명권 대부분의 땅을 상실하면서 한반도에서 황하문명의 영향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한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전환기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종속 정도가 최고조에 이른다. 전통건축, 좁게는 한옥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금 추적이 가능한 배경 사상과 철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황하문명권의 것들이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전통 사상과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대표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선진(先秦) 시대 때 것들로 유불도의 삼대사상이 주축을 이룬다. 이후 황하문명 내부에서도 유불도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쳤으며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에는 지역까지 옮겨왔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한옥과 유불도 삼대사상

요약하면, 한옥에는 한반도 고유의 토종 사상과 중국에서 들어온 선진 사상이 섞여서 철학적 배경을 이루었을 텐데 전자에 대해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후자는 가능한 상태에 있다. 유불도는 현재 동북아를 대표하는 전통사상이 되어 있고 한옥도 그 영향 아래 크게 묶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까지 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도교와 불교였을 것이고 유교가 국시가 된 조선시대에 유교의 영향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한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까지 완성되어 있던 것을 이어받아 한 번 더 정밀하게 다듬은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국시가 유교로 바뀌었다고 해도 한옥에 남아있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은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창덕궁 연경당 사방으로 통하는 한옥공간은 불교의 공간개념인 원융무애를 유교의 반가에 적용한 것이다.

 

 

 

유불도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도 많이 존재. 혹은 서로 상반되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이 셋은 한반도에서 천 년 이상 공존하여 이어져왔다. 이론과 종교와 철학으로서 나타나는 대별과 차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오면 섞이고 어울릴 수 있게 되는데 한반도의 조선시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생활이 이렇다면 건축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 건축은 생활을 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세 사상의 미세한 공통점을 찾아내 반영하고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갈등으로 놔두지 않고 하나로 합해내는 균형감이 사상적 관점에서 한옥을 읽는 중요한 길잡이이다.

 

유불도 사이의 관계는 굳이 형식화하자면 불교와 도교가 상대적으로 더 가깝고 유교는 두 사상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이런 공식이 굳어져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옥을 기준으로 보면 유교와 두 사상 사이의 대비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세 사상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 잘 합해낸 통합과 균형감이 돋보인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유교를 대표 체제로 내걸었지만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불교와 도교의 뿌리를 하루아침에 잘라내지는 못했다. 이미 조선 초기 왕 중에서도 태조, 세종, 세조 등 대표적인 왕들이 개인적으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경복궁 안에 궁사를 별도로 둘 정도였다.

 

왕실이 이럴진대 신료 계층과 평민으로 내려가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집을 짓는 장인 같은 중인이나 평민 계층으로 내려가면 민족정서나 국민성 같은 다소 막연한 집단적 특질의 형태로 도교와 불교가 기저에 계속 남아 있었다. 유교로 무장한 문반인 집주인이 유교 사상을 강하게 강요하지 않고 장인에게 집 공사를 맡길 경우 이것이 한국인 특유의 조형의식으로 치환되어 한옥에 흘러 들어가 영향을 끼쳤다. 집주인이라고 모두 유교사상만 고집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한옥에는 유불도 삼대사상이 사상적 배경을 이루게 되었다.

한옥의 노장사상, 비움과 3무사상

 

노장사상은 좁게는 유교의 사회참여에 반대해서 생긴 사상이며 크게는 인간의 물욕을 경계하는 가르침을 주요 내용으로 갖는다. 물질, 명예, 경쟁, 승리 같은 성공 일변도로 편성된 사회적 상식의 허점을 찾아내 이런 것들이 얼마나 인간을 힘들게 만들고 피폐화시키는 부질없는 것인지를 지적하면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친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으면서 얻어내는 물질과 성공의 이득보다 많은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얻는 마음의 평화가 훨씬 남는 장사라는 가르침이다. 존재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만 갖추면 그 경계선을 넘지 않아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런 교훈의 스승으로 자연을 꼽아서 자연의 도의 원리를 닮고 따르도록 했다. 달리 보면 인간의 물욕의 주요 대상 역시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을 정복대상이 아닌 스승으로 삼는 태도는 물욕을 경계하는 주요 전략이기도 했다.

 

노장사상이 한옥에 끼친 영향은 공간, 재료, 기예의 세 방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간에서는 비움의 미학이 대표적 예인데, 이것을 낳은 노장사상으로 무위, 무형, 무용의 3무사상을 들 수 있다. 무위란 ‘무위이무불위(無爲以無不爲)’의 약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내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뜻이다. 무위에 이르는 구체적 전략으로 외관의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무형과 쓰임새 같은 이기적 목적에 집착하지 말라는 무용을 들었다. 무형과 무용을 ‘무위이무불위’에 적용시키면 ‘형태를 버려야 진정한 형태에 도달할 수 있으며’, ‘쓰임새를 버려야 진정한 쓰임새를 얻을 수 있다’가 된다. 무엇인가를 잘해야 하고 형태를 잘 만들어내야 하며 확실한 쓰임새를 제시해야만 성공한 사람이고 좋은 집이라는 사회적 상식을 뒤집는 개념이다. 이것을 한옥에 적용시키면 집과 공간의 본질을 벽이 짓는 형상에 두지 않고 벽과 벽 사이의 진공상태에 둔 것이 된다. 한옥의 공간 특징을 얘기할 때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비움의 미학에 해당된다.


소쇄원 제월당 돌덩어리 하나와 나무토막 하나를 오르는 즐거움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노장사상의 탈물과 승물을 몸에 익힌 것이 된다.

 

 

 

   

탈물과 승물


무위, 무형, 무용을 재료에 적용시키면 탈물, 나아가 승물의 개념이 된다. 말 그대로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며 이것만이 물질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가르침이다. 사람이 물질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관계는 친하게 잘 어울리는 것과 취해서 얻으려는 것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물질과 끝없는 경쟁관계에 빠지게 된다. 물질은 얻으면 얻을수록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고 싶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물질과 경쟁관계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고 말고만 기준으로 삼는다면 가질수록 끊임없이 더 원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동수 고택  휜 나무가 부족해 보이지 않고 흥겨워 보인다면 이형과 거지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다분히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인데 물질을 취하는 것이 물질과 다퉈 이기려는 경쟁관계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욕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경쟁관계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그 유일한 길은 물욕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이것을 재료에 적용시키면 자연재료를 가급적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가르침이 된다. 왜 그럴까. 자연재료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물질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 자체가 돈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을 이용해서 각종 산업을 일으키고 집을 짓게 되는데 이런 행위들은 모두 경제행위에 해당된다. 자연재료에 손을 댄다는 것은 돈벌이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고 따라서 손을 대면 댈수록 더 손을 대고 싶어진다. 자연재료를 물욕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부터 자연재료는 단순히 엉덩이 한 구석에 붙이고 맘 편하게 쉴 보금자리를 지어주는 건축부재의 범위를 넘어서서 투기와 경쟁의 대상으로 변질된다.

 

우리 조상은 이런 위험성을 경계했다. 물론 조선시대 양반들의 축재와 착취는 도를 넘어 과도한 경우도 많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집을 통한 이런 가르침이라도 있었기에 그 정도에서 멈춘 것일지 모른다. 승물은 물론 도교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유교냐 도교냐 구별하는 것보다 이런 경계의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은 도교와 유교가 공통점을 공유할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도교의 비움의 미학과 승물의 개념을 합하면 한옥의 정수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유교에서도 유사하게 정의하고 있다. 맹자의 ‘신(神)’ 개념이다. 맹자는 개인 인격, 나아가 사물의 존재 상태에 대한 평가를 선, 신(信), 미, 대, 성, 신(神)의 여섯 가지로 구별했는데 신(神)은 이 가운데 제일 마지막 단계이다. 비인위성과 변화무궁함을 그 특징으로 가지며 명확히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아서 가히 좇을 만한 규율이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물아일체, 이형, 거지

승물을 기술 개념에 적용하면 물아일체가 된다. 건축에서 기술을 사람에게 편리한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 재료를 다루는 행위로 본다면 여기에도 물질을 바라보는 태도가 기본으로 깔리게 된다. 기술은 어쩔 수 없이 대상으로서의 물질을 나의 입장에서 나의 이익을 위해 다루는 것이 되지만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된다. 노장의 가르침에 따르면 재료는 나의 솜씨와 재주를 뽐내는 장으로 여기는 것과 재료를 물욕의 대상으로 삼아 집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것은 같은 것이 된다.

 

 

 

둘 모두 물질을 오로지 나의 욕심만을 위한 것으로만 보는 점에서 같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을 재료를 완전히 나의 손아귀에 넣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물질과 나, 즉 물아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승물과 반대로 가는 것이 된다.

 

승물의 지혜를 구현하는 길은 재료와 나를 일치시키는 물아일체가 해답이다. 재료를 온전히 내 마음대로 다루려고 하면 재료와 경쟁관계에 빠진다. 아무리 잘 다듬고 치장을 해도 항상 결핍을 느껴서 또 손질을 가하게 된다. 재료를 재화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보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술을 이상미와 여기에 이르는 직능 개념으로 정의한 서양식 기준에서는 이런 결핍이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노장사상에서는 반대로 본 것이다. 잘 살자고 집을 지어놓고도 물욕의 악순환에 걸려들어 몸과 마음을 망치는 일이 허다한데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아일체를 실행하라고 가르친다.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긴 하다. 노장 사상은 어느 정도 허무주의를 바탕에 까는 것이 사실이다. 문명 전반에 전면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긴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물욕이 주류가 아닌 시대는 없었다. 산업화 시대인 최근의 100~200년은 더 그렇다. 이렇게 볼 때 노장사상은 문명의 주류로 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원시주의로 돌아가자는 극단적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반면 부분적 적용과 치유에는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물론 노장사상에서 제시하는 경계의 경계선과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에 옮기는 한계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물질과 관계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결정을 할 때마다 물아일체의 가르침을 떠올리면 지나친 물욕에 빠져 허우적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태준 고택 공교로운 손재주를 멀리하고 재료의 본성에 충실해서 깎은 수공예 디테일은 노장의 물아일체를 실현한다.

 

 

 

 

 

다시 한옥의 기술 개념으로 돌아와서, 승물과 물아일체를 구현해낸 상태를 노장에서는 이형(離形)과 거지(去知)의 지경이라 불렀다. 이형이란 형태를 떠났다는 뜻이고 거지란 지식을 멈추었다는 뜻이다. 건물의 의미와 가치를 외부 형태나 이를 이루는 물질에 두지 말 것이며 건물을 사용하고 감상할 때 지식으로 판단하고 생각으로 판정하지 말고 마음과 감각으로 하나 되라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은 되돌아 비움의 미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공간을 비움으로 정의하면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바가 없게 되어 사용자와 공간 사이의 체험적 일체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안동권씨 능동재사 제 필요한 곳에 낸 문만으로 구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노장의 ‘무위이무불위’의 교훈을 깨친 것이 된다.

 

비움과 불이사상

한옥과 불교는 연관성이 가장 적어 보인다. 유교시대 반가인 한옥은 국시를 충실히 좇았다면 불교를 배척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옥에는 불교 사상의 영향을 추적할만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안팎 사이에 구별이 약한 한옥 공간의 특징으로 이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바탕에 갖는다. 비움의 미학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이는 도교와 불교 사이의 연관성의 하나로 보면 된다. 불이사상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한옥 공간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한옥의 누각구조는 유마경의 불이사상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불이사상은 유마경 제9 입불이법문품에서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공간의 분별을 경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부분적으로 발췌하면 “비움과 모습 없음과 지음 없음이 둘이라 하나 비움이 곧 모습 없음이요 모습 없음이 곧 지음 없음이라”라거나, “몸(=다함)과 몸 사그라짐(다함없음)이 둘이라 하나 몸이 곧 몸 사그라짐인지라 몸이 실다운 모습을 보는 자는 몸을 보는 것과 사그라지는 몸 보는 것을 일으키지 않으니 몸은 사그라진 몸으로 더불어서 둘이 없고 판가름이 없음일 새”라고 했으며 “것의 성질이 본래 비움이라”라고도 했다.

 

물질적 벽이 있는 상태와 이것이 없는 상태가 서로 다른 것이라 하나 실은 모두 비움이라는 한 가지 같은 상태라는 가르침이다. 열림과 닫힘, 투명과 불투명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구별은 모두 벽이라는 껍질 및 여기에서 파생되는 에워쌈과 육면체의 고형적 물성을 공간형성의 기본 매개로 본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허깨비, 가짜, 거짓으로 실은 없는 것에 불과하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며 진실한 것은 비어있는 상태이다.

 

비움에 대해 해석해보면, 비움은 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본래부터 빈 상태이다. 비움을 벽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벽에 대한 부정의 상태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벽이 있고 난 다음에 있는 상태, 항상 벽에 기대서만 정의되는 상태, 벽에 의해서만 한정되는 상태이며 벽을 1차 출발점으로 삼아 형성되는 2차 상태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움은 이것 자체가 처음부터 비움으로, 하나의 독립적 완결된 상태로 존재한다. 1차 존재 상태이다. 벽이 오히려 비움에서 파생되는 2차 상태이다. 비워있는 상태에 칸막이를 친 것이 벽이기 때문이다. 비움이 정의되어야 그 속에서 물질이 존재를 확보할 수 있다.

 

 

대방광(大方廣)

이 문제는 결국 공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되며 진공상태와 칸막이 중 누가 우선이냐는 문제가 된다. 불교에서는 공간의 본질을 우주 전체로 본다. 시작과 끝이 없고 따라서 경계도 없는 무한대의 진공 상태로 본다. 대방광(大方廣)이라는 개념이다. 건물은 이 속에 임시로 칸막이를 친 것에 불과하다. 안팎을 구별하는 것은 부질없는 분별일 뿐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공간을 벽과 벽이 한정하는 면적과 에워쌈의 상태로 본다. 비바람을 막아주어야 하며 넓을수록 좋고 그래서 그 속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산동교리댁 문은 불교의 대방광에 최소한의 구획만을
가한 칸막이일 뿐이다.

귀촌종택 빈 공간에 엉성하게 짠 칸막이만으로도 집은 훌륭
하게 기능하는데 이는 불교의 불이사상과 대방광 개념을 합
한 예이다.

 

 

 

불교의 대방광 개념에 의하면 이런 공간 개념은 헛것이거나 잘해야 부질없는 욕심이 된다. 이 문제는 벽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간에게 공간은 물론 최소한의 공리성을 가져야 한다. 육체와 생활을 담아내서 최소한의 물리적 존재 조건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물질적 벽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정도인데, 불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공간은 대방광의 상태를 닮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해도 사람이 왔고 사람을 낳은 근원적 공간 상태인 대방광을 닮아야 한다. 비움에서 불이로 이어지는 한옥의 공간은 대방광을 닮은 좋은 예이다.

 

대방광은 반드시 큰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고의 대방광은 물론 우주 전체이지만 모든 완결된 존재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때 완결된 존재 상태를 구성하는 개체와 개체, 그리고 개체들이 모여서 이루는 전체 사이에 불이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대방광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지극히 큰 것(=전체)과 지극히 작은 것(=개체) 사이에 분별과 차별이 없이 하나로 통하는 상태 역시 대방광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로서의 대방광은 이 둘이 아예 하나로 같아져 있는 상태이다.

 

한옥의 방은 좋은 예이다. 벽을 고정시키기보다 가변형으로 해서 방과 방 사이를 가능한 한 많이 열고 소통하려 한다. 창문도 면적은 전면 유리보다 작지만 방의 앞뒷면에 나는 경우가 많아서 외부와 통하는 경로가 여럿이다. 벽과 창의 재료도 흙과 창호지를 써서 외부와의 단절성을 최소화했다. 개체와 개체는 원활히 통하며 이것들이 모여 집의 전체 구성을 이룬다. 도형적 윤곽과 그것이 한정하는 면적의 합으로 집의 전체를 구성하는 현대식 개념과 다른 한옥만의 공간 개념이다.

 

한옥의 전체 구성은 면적의 합보다는 경로의 합에 더 가깝다. 개체의 합보다는 개체 사이의 관계와 연결의 합에 가깝다. 전통 한옥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집의 평수는 보통 거론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식 개념으로 정확한 평수를 찾아내는 일부터 쉽지 않다. 30평이면 한옥으로는 작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한옥에서는 공간 이용이 벽이 한정하는 면적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과 소통하며 주변까지 사용 영역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현대식 30평집보다 훨씬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원융무애

대방광의 개념이 적용된 한옥 공간은 원융무애(圓融無礙)한 상태로 발전된다. 원융무애란 막힘과 분별과 대립이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상태로 흔히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 상태로 여긴다. 한옥 공간은 건축에서 원융무애가 구현된 예로 볼 수 있다. 직접적 연관성을 증명할 문헌 자료 같은 것은 물론 없지만 불이 공간과 대방광을 매개로 유추 해석하면 큰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불교의 원융무애 사상이 노장의 무위 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것까지 연결 고리로 삼으면 연관성은 더 커진다.

 

관건은 역시 벽과 공간 사이의 관계이며 공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모아진다. 이쪽 벽도 저쪽 벽도 공간이 생겨나기 위한 방편일 뿐, 벽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벽 자체가 공간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간은 이것들을 관통하고 싸고돌며 순환하고 원통하는 흐름의 상태이다. 벽과 벽 사이를 융통하며 이쪽 비움과 저쪽 비움을 서로 포함하는 흐름의 상태가 공간인데 이것이 곧 원융무애의 상태이다.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사방으로 통하는 한옥의 순환 공간은 불교의 원융무애에 유추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형상이나 언어를 넘어선 한 가지의 지혜로 모이니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했다. 불이와 대방광과 원통의 공간도 그 중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면적과 장식 등은 인연 따라 생겼다 없어지는 것일 뿐, 공간은 이런 부질없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인간의 인식으로 정의하고 벽을 세워 가두며 눈으로 보려는 것은 허망한 아집일 뿐이다. 공간은 정형으로 잡히지 않으며 규범으로 구체화되지도 않는다. 항상(恒常)의 상태로 화석화되지도 않으며 고정적 실체를 거부한다. 늘 변화하는 중에 있으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무형으로 흘러 다닐 뿐이다. 이곳이 뚫리면 그것을 인연 삼아 흘러나갔다가 다시 저쪽에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노장의 무위 개념과 다르지 않다. 그대로 한옥 공간의 특징이다.

 

한옥 공간의 순환성과 원통성, 여기에서 나타나는 가변성과 무형성은 원융무애를 닮았다. 한옥의 원통한 공간에서는 구별과 차별이 무의미하다. 앞뒤, 위아래의 차별이 없으며 겉과 속의 구별도 없다. 계급에 따른 위계와 별도로 순수한 물리적 구조로 보면 항상 똑같이 찰랑찰랑 차 있는 상태에 일순간 가름만이 잠시 나타났다 곧 다른 가름을 만들며 사라져 갈 뿐이다. 우주에 꽉 차있는 한 덩어리의 평등한 상태이다. 공간은 근원적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벽의 가름에 의해 현실 세계에서 한 순간 고형적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공간은 무량무수(無量無數)한 방편과 가지가지의 인연과 비유의 언사에 의해 인간의 현실사를 담아내는 포괄체로 기능한다.

 

인격미와 전범

한옥은 유교시대 반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교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한옥에 반영된 유교사상은 사회미의 좋은 예이다. 사회미는 예술(=악樂)이 사회적 교화기능을 갖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예술을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인정은 했으나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절제되어야 하며, 즐김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가치를 함양하고 정화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맹자도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아름다움을 향한 즐거움을 들었는데, 이것이 인간의 본성임에는 틀림없으나 여기에 머물면 미가 될 수 없으며 도덕률로 구현되어야 비로소 미가 된다고 했다. 

 

 

노안당 유교미학에서는 각 집이 각자의 위계와 본성에 합당한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왕실 한옥답게 장대석 기단 위에 타고 앉아 마당을 둘로 가르며 권위를 드러낸다.

 

 

 

유교미학은 주로 시, 악, 화에 집중되어서 건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적은 편이나 유추 작용을 통해 건축도 유교의 사회미를 발휘하는 장르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본고장 중국보다도 더 강한 원리주의 유교가 꽃피웠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주거인 한옥은 좋은 예이다.

 

유교미학의 출발점은 인격미이다. 유교에서는 미를 단순히 화려한 화장이나 시각을 자극하는 외관의 꾸밈이 아니라 개인의 다듬어진 속마음으로서의 인격이 외적 형식으로 드러나는 통로, 혹은 그렇게 드러난 결과라고 본다. 인격미를 집단화하면 전범(典範)으로 발전한다. 전범은 사회가 추구하는 집단적 가치를 하나의 전형적 모범으로 굳힌 상태이다. 이때부터 사회미가 구체적 예술형식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다. 건축에서는 기능유형이 좋은 예이다. 각자의 계급과 속성과 기능과 형편 등에 합당한 공통적 건축형식이 있다는 뜻이다. 왕궁은 왕궁답게, 관아는 관아답게, 서원향교는 그것답게, 한옥은 한옥답게 보여야 하고 그렇게 작동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관아가 기생집 같아서는 안 되며 왕궁이 한옥과 같을 수는 없다. 건축은 사회적 법도와 기강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외적 형식이다.

 

 

 

안동 숭실재 유교를 지탱하던 중요한 축인 제사를 담당하던 건물인 ‘재사’는 숭고미를 드러내서 그 본성과 일치한다.

 

 

 

이 가운데 한옥은 전경에서 유교사상을 잘 드러낸다. 유교의 사회미는 아무래도 외적 형식에 치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겉치레나 잘난 체 같은 치졸한 외적 형식은 아니었다. 유교에서는 외적 형식이 반드시 내적 깊이와의 일체를 전제로 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가정한다. 마음의 깊이에 의해 자연스럽게 드러난 외적 형식만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거꾸로 이런 외적 형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전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양과 도덕이 경지에 오른 곧은 선비는 젓가락질 하나만 봐도 다른 법이며 몸가짐 걸음걸이 말투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교육효과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생색(生色)

똑같은 내용이 집에도 적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옥의 전경이다. 한옥의 전경은 어딘가 모르게 반듯한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 곧은 수평선이 여러 겹 겹치면서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가벼운 감정에 휩쓸려 촐랑대고 출렁거려서는 안 되며 하늘을 향한 허황된 과욕을 엄하게 경계한다. 한눈 팔지 않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인간의 본성에 치중해서 인격을 갈고 닦으라는 유교의 인본주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하루에도 십수 번을 들락거리며 바라보고 그 속에 직접 들어가서 매일을 생활하는 곳이 집이기 때문에 집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사람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현대의 환경심리학을 통해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려니와, 한옥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집의 교화기능을 알아채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안동 의성김씨 종택 집의 전경은 집안의 가풍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람의 인상에 해당된다. 유교미학에서는 이것을 생색이라고 부른다.

 

 

 

이런 내용을 미학 용어로 환산하면 ‘생색(生色)’이 된다. 생색은 흔히 ‘생색낸다’처럼 잘난 체 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본뜻은 그렇지 않다. 국어사전을 보면 ‘낯이 나도록 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낯’이란 체면인데, 유교에서는 이것을 개인적 명예에 한정하지 않고 집안, 문중, 나아가 국가사회의 집단적 가치를 모자라거나 비뚤어지지 않게 발현하는 단계로까지 확장한다. 생색을 유교미학의 관점에서 정의하면 일체성의 한 형식으로 일체성에 진정성이 더해진 상태이다. 이런 경지로서의 생색에 이르면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그 기품이 혁혁히 빛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굳이 드러내는 것을 보고 ‘생색낸다’며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어쨌든 생색은 인격미에서 출발해서 전범에 이르는 유교의 이상적 사회미가 잘 구현된 상태이다. 잘 구현되었다는 것은 유교의 도덕률을 내적으로 충분히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내적 일체를 필수조건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것을 적절한 외적 구성으로 형식화 했다는 뜻이다. ‘신언판서’라는 말도 있듯이 유교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도 잘 갖추어야 비로소 미와 도덕과 법도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단, 반드시 내적 깊이에서 우러나온 외적 형식이어야 했다.

 

한옥에 적용시켜 보면 전경은 ‘집안의 가풍이 가감 없이 밖으로 드러난 상태’라는 뜻이 된다. 평생을 학문과 절제로 수양한 선비는 옷고름을 매도 다르며 멀리서 걸음걸이만 봐도 다른 법, 하물며 십수 명의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서 불화가 잦은 집은 서까래 하나를 내도 다른 법이며 집 주인이 욕심으로 가득 찬 탐관오리라면 그 집도 야비한 욕망으로 번들거리게 되어 있다. 반대로 가풍이 화목하고 집안이 안정되어 있으며 집 주인이 절제를 훈련하고 인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 집은 딱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다. 낯을 들고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의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우리 식구의 심성과 가족 살이의 분위기를 낱낱이 알아차린다.

 

 

 

호연지기, 배의여도, 집의소생

 

유교에서는 개개 인격의 굳건함과 위대함이 사회 기강과 국가 법도의 기틀이 된다고 믿는다. 인격미가 전범으로 집단화되어 사회미로 발전하는 단계론적 세계관의 좋은 예이다. 선과 미는 단계론을 이어주는 주요 고리이다. 유교의 사회미에서는 미를 선으로 정의한다. 도덕적 본능과 심미적 본능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매개, 혹은 이 둘이 하나로 일치한 상태를 선이라 했으며 이것이 예술 형식을 통해 구현된 상태가 미인 것이다. 미란 보기 좋은 장식이나 유려한 곡선 형태나 화려한 색채배합 같은 것이 아니라 도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서 강조하는 형식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의 강령을 드러낸 한옥의 전경은 미의 좋은 예이다. 선비의 덕목인 호연지기가 출발점이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강한 기를 곧게 키워 손상시키지 않음으로써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 상태라는 것이다. 허망한 과욕으로 날뛰라는 뜻이 아니다. 한없이 뻗어나가고 싶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도덕 윤리와 교융(交融)하도록 다듬어 사회적 질서 내에서 발휘하도록 하라는 뜻이다. 호연지기는 의가 모여 훈련을 거쳐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한옥의 전경에 드러난 이상적 생색으로서의 반듯한 몸가짐과 안정된 구성은 이것의 좋은 예이다.

 

호연지기는 배의여도로 발전한다. 배의여도란 의를 따르고 도에 의존한다는 뜻으로 호연지기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얻어지는 도덕 윤리의 상태이다. 배의여도는 다시 집의소생으로 발전한다. 집의소생이란 의를 모아 생명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도덕 윤리에 종속된 정도가 더 심한 상태이다. 기는 의와 도덕과 떨어지면 곧 시들어버린다. 건축에 적용시키면 개별 한옥에 나타난 탕탕한 기풍이 집단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개마을 유교에서는 개별 집의 기풍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모여서 이루는 마을 전체의 분위기도 유교의 덕목에 합당해야 한다.

 

 

 

 

 

공시 공소(共所)로 집단화되면 문중 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된다. 하회마을, 한개(한계)마을, 양동마을, 개평마을, 인흥마을, 남사마을 등이 아직 남아있는 예들이며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고 다스리던 문중이 모여 사는 마을들이 많았다. 통시적으로 집단화하면 기능유형에 요구되는 건축적 기풍에 해당된다. 행랑채가 주인 채를 압도해서는 안 되며 사랑채가 안채처럼 포근한 것을 굳이 탓할 바는 아니나 사랑채라면 최소한 유교적 가부장제의 가장에 합당한 권위와 기개를 폭압이 아닌 모범적 성품과 곧은 기개로 드러내 보여야 하는 식이다. 이는 집 주인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유교시대 반가라면 반드시 지켜야 했던 사회적 동의사항이었던 것이다.

담과 기단은 목재 구조인 한옥에서 돌이 주인인 드문 영역이다. 목재가 선형 부재인 기둥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돌은 면이나 입체로 쌓이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태도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담과 기단에 드러난 돌의 미학은 자연재료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것이다. 도시형 한옥이나 왕실 한옥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한옥의 담과 기단은 막쌓기로 쌓는다. 다듬어지는 돌도 힘들고 다듬는 사람은 더 힘든데, 도대체 돌을 똑같은 크기와 모습으로 다듬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없다.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 안정적이다. 자중에 의한 마찰력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비벼대고 조이고 끼어서 아주 튼튼한 담을 만든다. 돌이 크기와 형태가 같아지면 오히려 홀로 서지 못해서 접착제가 필요해진다. 접착제가 튼튼하지 않으면 가지런히 쌓은 담이 오히려 먼저 무너진다. 세계에서 돌쌓기에 마찰력을 이용하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노장사상의 탈물과 승물의 교훈을 제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쇄원 한옥의 담은 보통 막쌓기로 쌓는데 돌 사용이 드문 한옥에서 한국인의 돌의 미학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자연재료를 가급적 본래 개성에 맞게 활용하는 지혜이니 노장이 가르친 탈물과 승물이 구현되는 곳이다.

 

 

 

역학적으로 이럴진대 모양도 마찬가지이다. 가지런히 쌓은 돌은 한국인 특유의 장난기나 상대주의 국민성에 견주면 심심하고 단조로울 뿐이다. 지루하고 싫증나서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다. 들쑥날쑥, 울퉁불퉁 거려야 “담 좀 쌓았네” 싶다. 이런 버릇은 고스란히 남아서 심지어 왕실 한옥에서조차 담은 한 종류로 놔두지를 않는다. 땅과 닿는 맨 아래는 그런 곳이니까 큰 돌로 든든하게 방어를 친다. 그 바로 위는 억센 주먹 하나쯤 되는 정사각형을 쌓고 다시 그 위에 옆으로 긴 벽돌을 쌓는다. 벽돌조차 한 가지로 놔두지 못하고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전체를 보면 구성미와 어울림이 뛰어나다.

 

기단은 원래 땅의 덥고 찬 기운과 습기에서 집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쌓은 것이지만, 조형적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기회임을 놓치지 않는다. 왕실 한옥의 기단은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지만 나머지는 정승 댁일지라도 막쌓기가 보통이다. 그래서 재료에 대한 태도는 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담에는 없는 추가 기능도 있다. 건물 전체를 높은 무대 위에 올려놓는 인위적 과시 기능, 댓돌, 문, 퇴 등과 어울려 휴먼 스케일의 자잘한 척도 변화를 일으키는 기능, 심심할 뻔했던 넓은 마당에 영역을 가르는 기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