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음식과 藥의 道를 말하다_15

醉月 2013. 8. 27. 01:30

허송虛鬆한 것을 먹어야 건강하고 지혜로워진다

글·사진 | 최진규 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 회장

 

보리처럼 조직의 밀도가 낮은 식품이 뇌와 몸에 이로워

 

모든 학문의 뿌리는 천문학이다. 해와 달과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이 천문학이다. 의학(醫學)을 하려면 먼저 천문과 지리를 알아야 한다.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사람의 몸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몸 역시 작은 우주이니 대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몸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이고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이 사람의 몸에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의 몸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물질들 역시 우주의 뭇 별에서 온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일러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했다.



	미국 화이트산 높은 산꼭대기에 사는 강털소나무
▲ 미국 화이트산 높은 산꼭대기에 사는 강털소나무는 속이 허송한 까닭에 5,000년을 산다.
무엇이든지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곧 ‘무유무(無有無)’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의 말대로 우주 어딘가에 있는 것을 완전히 없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있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고 있는 것을 없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말 자체가 허망(虛妄)한 것이다.

 

본래 있는 것을 없앨 수도 없고 본래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는 없되 다만 본래 있는 것을 흩어지거나 모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흩어져서 보이지 않으면 없어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있는 것을 모으거나 흩어지게 할 수 있을 뿐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고 있는 것을 없게 할 수 없다.

 

의학의 뿌리는 천문학

 

그렇다면 모든 사람한테 있는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기능(機能)과 재능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어느 사람이 지닌 어느 한 기능이 부족하면 어디에선가 그 기능을 가져와서 보충해야 기능을 얻을 수 있고 키울 수 있다. 보충하지 않은 기능이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솥에 물을 붓고 끓이면 물은 증발해 다 날아가서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수증기로 변해서 공중에 흩어진 것일 뿐이다. 물이 기화해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가 모여서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게 되니 물은 결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뿐이다.

 

모든 기능(機能), 재능(才能), 능력(能力), 힘, 효능(效能) 같은 것은 물과 같다.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으며 가게 하거나 오게 하거나 머물게 하거나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없앨 수는 없다. 이를테면 당분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탈이 났다면 몸에 있는 당분을 버려야 몸이 건강해질 수 있다. 몸 안에 쌓여 있는 당분을 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달리기나 등산 같은 운동을 많이 해서 태워서 날려 보낼 수도 있고, 몸속에서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할 수도 있으며, 쓴맛이 나는 음식을 먹어서 중화(中和)할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 바꾸어 재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능은 불량(不良)한 것을 선하게 할 수 있고 선한 것을 불량하게 할 수도 있다. 처녀를 아이 엄마로 만들 수도 있고 기생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학생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능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능을 오게 할 수도 있고 가게 할 수도 있으며 머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능은 어디서 오는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기능들 곧 시력기능, 청력기능, 생각하는 능력, 흔히 재능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어디서 오는가? 기능은 유소유방(有所有方)이라 곧 그 장소와 방향이 있는 것이다. 기능이 오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 모든 기능은 천지만유(天地萬維)에서 오는 것이다. 온갖 유(維)자, 만유(萬維)에서 그 기능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와 천체(天體)의 모든 만물(萬物)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동물, 식물 등 뭇 생명체한테 주어지는 각각의 재능, 힘, 기술, 능력 등은 모두 광대무변한 우주의 해와 달과 별들에서 오는 것이다.

 

태양은 그 크기가 대략 지구의 130만 배쯤 된다고 한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정말 하잘 것 없는 존재이고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역시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수천 억인지 수천 조인지 알 수 없는 은하단과 은하군에서 보면 태양이나 지구도 미미하여 있으나마나한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 지구를 위해 우주를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고 사람을 위해 지구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없다. 조물주가 사람을 위해 지구를 만들고 태양과 별과 달을 만들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비어 있는 것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천체(天體)라 한다. 그러나 우주에 있는 공간을 천체(天體)라 하지 않는다. 곧 천체라 하는 것은 그 몸체 곧 형상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형상이 없는 것을 체(體)라고 하지 않는다. 우주는 99.9%가 공간이다. 이 공간은 그 크기와 끝을 알 수 없다. 우주가 운행하는 것은 이 공간의 에너지로 인한 것이다. 이 공간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일정한 질서를 갖고 움직이는 것이다.

 

서양 유물론에서는 공(空), 곧 비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물질을 탐구하는 것이 서양 학문이다. 그러나 이 비어 있는 것, 곧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형체 있는 것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흔히 살이 찐 사람을 두고 속이 좁다고 한다. 대개 뚱뚱한 사람은 소견이 좁다. 이미 속이 꽉 차 있어서 다른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에 생각이 좁은 것이다. 속이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비어 있는 곳에 참되고 올바른 것이 들어갈 수 있다. 뚱뚱한 사람보다는 마른 사람이 속이 넓은 것은 비어 있는 곳이 많아서 에너지를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도라지를 예로 들면 산도라지는 나이가 많아도 크기가 작고 가볍고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거름과 비료를 많이 주면서 키운 집도라지는 나이가 작아도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며 속이 치밀하고 엿처럼 노랗게 황장(黃藏)이 들어 있다. 거름기가 많은 땅에서 영양분을 많이 먹고 자란 도라지는 과식을 해서 영양물질이 몸속에 가득 쌓여서 속이 꽉 차 있고 그 때문에 수명이 짧고 벌레가 잘 먹고 병에 잘 걸린다. 거름기 성분, 곧 영양성분은 몸통을 빨리 키우는 대신 몸통을 빨리 썩게 만든다. 그래서 면역력이 약하여 병에 잘 걸리고 잘 썩고 벌레도 잘 먹는다.


	산도라지
▲ 산도라지는 허송하여 열다섯 근을 말려야 한 근이 되고, 집도라지는 밀하여 세 근을 말리면 한 근이 된다.
높은 산에서 자란 산도라지는 수백 년을 살 수 있다. 심지어 천 년을 넘은 것도 있다. 산도라지는 뿌리를 벌레가 파먹어도 썩지 않는다. 면역력이 강해 병이 들지도 않는다. 아무리 추워도 얼어 죽는 일도 없다. 그러나 비료와 거름을 주고 키운 집도라지는 3~5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 사람이 밭에서 재배한 도라지 뿌리는 세 근을 말리면 한 근이 되지만 높은 산꼭대기서 자란 산도라지는 열다섯 근을 말려야 한 근이 나온다. 그런데 도라지의 약초로서의 효능은 집도라지 천 근이 산도라지 한 뿌리의 약효를 당할 수 없다. 인삼 천 근의 효능이 산삼 한 뿌리의 효능을 당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꼭 같은 종자에서 나온 것인데 어째서 이와 같은 차이가 나는가? 산도라지의 약효와 기능이 집도라지보다 뛰어난 것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속이 허송(虛鬆)하기 때문에 생명력, 곧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에너지인 생명력을 한껏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밭에 키우는 도라지보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야생 도라지가 오래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으로 치면 하루 세 끼 먹을 것을 한 끼만 먹기 때문이다. 곧 영양분이 별로 없는 척박(瘠薄)한 땅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사람이 재배하는 도라지는 영양분을 몇 배나 더 많이 먹으므로 영양과잉으로 인해서 그 영양분이 독이 되어 뿌리가 썩어 죽는 것이다.

 

산에서 자란 야생 잔대는 속이 허송하다. 조직이 치밀하지 못하고 속이 퍼석퍼석하여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야생 산잔대 날 것을 캐서 말려 보면 열다섯 근을 말려야 한 근이 나온다. 그러나 밭에서 키운 잔대는 세 근을 말리면 한 근이 된다. 야생 잔대는 수명이 몹시 길어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예사로 산다. 속이 비어 있어서 곧 허송하기 때문에 수명이 긴 것이다. 허송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병이 없으며 오래 산다.

 

빈 병이라야 물을 담을 수 있다. 사람의 몸도 그렇고 뇌도 그렇다. 뇌가 허송해야 지식과 지혜를 담을 수 있다. 비어 있는 컴퓨터 디스켓이라야 정보를 담을 수 있다. 많이 비어 있을수록 많이 담을 수 있다. 허송할수록 많이 들어갈 수 있다. 빈 그릇이라야 물을 담을 수 있다. 뱃속을 비워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부에 비어 있는 곳이 많아야 생명의 입자(粒子)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머릿속이 비어 있어야 뇌세포들이 사고(思考)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많이 쓴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가득 차고 몸집이 매우 큰 사람은 힘을 많이 쓰는 씨름 선수는 될 수 있지만 머리를 주로 쓰는 참모(參謀)는 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영양과잉으로 인해서 영양물질이 독으로 작용해 병이 나서 일찍 죽기 쉽다. 배가 부를 때 음식을 더 먹으면 처리해야 할 찌꺼기가 그만큼 더 많이 생긴다.

 

기능은 어디서 오는가? 물이 필요하면 물가로 가야 한다. 물은 강이나 바다 냇물, 연못, 샘에서 얻을 수 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물을 만들 수는 없다. 물을 얻으려면 샘이나 강에 가서 길어 와야 한다. 없는 기능을 있게 할 수는 없으므로 어디선가 있는 곳에서 갖고 와야 한다.

 

옛 글에 사람은 천지의 전성(全性)을 지니고 있으며 식물은 천지의 편성(偏性)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는 사람은 하늘과 땅이 지닌 모든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식물에는 하늘과 땅이 지닌 성질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몸에서 어떤 기능이 부족하면 먼저 음식에서 그 기능을 찾아야 한다. 음식에서 찾지 못하면 약에서 찾아야 한다. 부족한 기능을 메워 줄 수 있는 것이 음식이며 약이고 운동이다. 어느 한 기능이 부족해서 병이 생겼다면 그 부족한 기능을 메워 주면 병이 낫지 않을 수 없다. 의술이란 부족한 기능을 메워 주는 것이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가 소금을 만나면 새로운 생명을 얻듯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어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의술(醫術)이다.


	보리
▲ 보리는 쌀보다 허송하기 때문에 보리밥을 즐겨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지혜로워진다.
보리밥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

 

그렇다면 허송한 것은 무엇이고 밀(密)한 것은 무엇인가? 밀자는 빽빽할 밀(密)자다. 꿀 밀(蜜)자는 빽빽할 밀(密)자에서 나왔다. 꿀은 조직이 치밀해 공기나 물 같은 다른 물질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밀도가 높고 조직이 꽉 차 있어서 물도 공기도 스며들지 못한다. 조직의 구조가 풀처럼 끈적끈적해 조직 속으로 아무것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설탕 역시 조직과 맛이 밀하다. 단맛이 너무 진해 다른 맛이나 다른 기능이 들어갈 틈이 없다. 무엇이든지 농도가 진한 것은 다 밀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찹쌀은 멥쌀보다 점성(黏性)이 훨씬 많으므로 밀(密)한 식품이다. 그래서 찹쌀밥이나 찹쌀떡을 많이 먹으면 뇌가 밀해져서 머리가 나빠지기 쉽다. 그러나 보리밥은 점성이 거의 없으므로 허송한 식품이다.

 

보리밥을 먹으면 뇌가 빈다. 뇌가 비면 뇌세포가 활동할 공간이 많아진다. 뇌가 비면 마음도 비어서 마음이 넓어진다. 허송해진 뇌가 활동을 많이 하게 되므로 머리가 좋아진다. 보리밥을 오래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지혜가 생긴다.

 

쌀밥은 보리밥보다 점성이 많으므로 쌀은 보리보다 밀한 식품이다. 그러므로 흰쌀밥을 많이 먹으면 뇌가 밀해져서 곧 뇌가 점성으로 가득 차서 제대로 활동을 못 하게 되어 머리가 나빠진다. 보리밥에 시래깃국 같은 허송한 음식을 주로 먹으면 뇌가 허송해져서 머리가 맑아지고, 꿀이나 찹쌀밥이나 흰쌀밥을 주로 먹으면 뇌가 가득 차서 밀해져서 머리가 나빠지고 마음이 혼탁해진다.


	쌀
▲ 쌀은 보리보다 밀한 식품이므로 쌀밥을 많이 먹으면 질병에 걸리고 머리가 나빠지기 쉽다.
꿀 한 가마니와 시래기 한 가마니를 비교하면 부피는 같지만 꿀은 무겁고 속이 꽉 차 있어서 공기도 물도 그 속에 들어갈 틈이 없다. 반대로 시래기는 속이 비어서 가볍고 물이거나 공기가 스며들어갈 수 있는 틈이 아주 많다. 꿀은 몹시 밀한 식품이고 시래기는 몹시 허송한 식품이다. 벽이나 바닥의 갈라진 틈을 밀랍으로 막으면 천 년이 가도 물도 바람도 새지 않는다. 그러므로 밀한 꿀을 먹으면 몸이 밀해지고 허송한 시래기를 먹으면 몸이 허송해진다.

 

뇌세포가 활동하고 움직이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마당이 넓어야 아이들이 제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건강해진다. 꿀처럼 밀한 음식을 먹으면 뇌세포가 운동을 하지 못해서 퇴화하여 바보가 되고 단명하며, 시래기처럼 허송한 것을 먹으면 뇌세포가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으므로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해지며 병이 나지 않고 장수한다.

 

허송한 것이 좋은 것이다. 허송(虛鬆)은 빌 허(虛) 자에 머리 헝클어질 송(鬆)이다. 머리가 까치집처럼 된 것을 말한다. 까치집처럼 헝클어져서 속에 공간이 많은 것을 허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칡을 예로 들면 뿌리가 굵고 통통한 암칡은 조직이 치밀하고 빽빽하므로 밀한 것이 되고, 수칡은 조직이 성글므로 허송한 것이 되는 것이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의 교훈

 

우리 옛날이야기 중에 호랑이와 곶감에 관한 것이 있다. 어느 산에 호랑이가 살았다. 그런데 가뭄이 들어 온 산에 고라니나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100일 동안을 굶었다. 먹을 것은 사람 사는 동네에 내려와야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주변에 와서 얼쩡거리는데 어느 집 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앙앙 우니까 엄마가 아이를 달래려고 계속 울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고 해도 아이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귀신이 잡아간다고 해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무서운 것을 말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곶감을 주겠다고 하니 울음을 뚝 그쳤다. 그 얘기를 호랑이가 밖에서 듣고 있다가 ‘곶감이란 놈이 나보다 훨씬 무서운 놈인가 보다. 이놈이 오기 전에 먼저 피해야겠다’ 하고 멀리 도망을 갔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대로 과연 호랑이가 더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곶감이 더 무서운 것인가? 만약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인지, 맛있는 곶감을 먹을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을 택할 것이다.

 

곶감을 먹으면 머리가 꽉 차서 곧 뇌가 밀해져서 살아도 사람 노릇 제대로 못하고 죽어서 귀신이 되어도 귀신 노릇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호랑이한테 물려 죽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이 동화의 본뜻은 아이들한테 곶감이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벌의 독은 어디서 오는가? 꿀에서 오는 것이다. 꿀처럼 달콤한 것을 많이 먹어서 뇌가 꽉 차 있으면 뇌세포가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꿀을 많이 먹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꿀, 곶감, 설탕, 찰떡같이 밀한 음식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아이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가난한 집안의 선비가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해서 과거시험을 보면 장원급제(壯元及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엿, 꿀, 떡 그리고 온갖 맛난 음식과 기름진 고기 같은 것을 잔뜩 먹으면서 공부한 부잣집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자식들은 죽어라 공부해 봐야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마음껏 먹으면서 공부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다면 그것은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뒷배를 봐줘서 된 것이거나 커닝을 잘 해서 된 것일 뿐이고 제 실력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뱃속과 머릿속을 비워 두어야만 몸이 튼튼해지고 지혜로 머릿속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