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말게가 '바글'... 이놈들을 죄다 빠숴서"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1] 부안 곰소에서 영광 법성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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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름이 많이 덮여 있다. 그렇지만 비가 올 날씨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날씨가 자전거 타기에는 딱 좋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태양빛에 화상을 입을 우려가 없고 땀조차 잘 흐르지 않는 날씨가 자전거 타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산뜻한 출발이다.
곰소 젓갈단지를 빠져 나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인다.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해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30번 국도이고, 하나는 해안에 가까운 비포장도로다. 지금까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가 고생을 한 적이 여러 차례라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 나타난 비포장도로는 상당 구간 바다를 볼 수 없다. 그럴 바에 차라리 국도를 선택하는 게 낫다.
그렇게 해서 줄포리 해안까지는 30번 국도를 이용하고, 줄포리에서 부안자연생태공원까지는 바닷가 제방 위를 달린다. 부안자연생태공원에 다다랐을 무렵, 느닷없이 가랑비가 내린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하늘이 어느새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다.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다 또 폭우가 쏟아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침 공원 안에 정자가 있어 잠시 몸을 피한다.
종잡기 어려운 게 요즘 날씨다. 일기예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날씨가 예보했던 것과 달리 급변하는 게 기상청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니 기상청을 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상청 일기예보만 믿고 여행을 다녀야 하는 처지에서는 참 곤란한 지경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은 다행히 가랑비에서 그칠 모양이다. 빗방울이 더 이상 굵어지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비라면, 빗방울이 옷을 적실 정도는 아니다. 몸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자전거를 타는 데서 생기는 바람 때문에 빗방울이 옷에 떨어지기 무섭게 말라 버린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부안자연생태공원은 갈대숲이 무성하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공원 내 스피커에서 40대 정서에 맞는 옛날 가요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늘은 흐리고 갈대숲은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별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음이 쓸쓸해진다. 가는 비가 내리는 날, 애잔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배추밭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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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자연생태공원을 지나면 바로 고창군이다. 고창군으로 들어선 이후로는 한동안 낮고 완만한 구릉을 쉼 없이 타고 남는다. 후포리까지는 줄곧 밭 아니면 논 사이를 지나간다. 그런데 이 밭과 논들이 구릉 위로 넓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의외로 아름답다. 요즘 한창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배추밭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길가의 밭들이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구릉 위로 밭고랑들이 물결을 치듯이 흘러간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닌데도, 다분히 예술적이다. 더 이상 인위적인 장식을 더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예술성 역시 자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감출 수 없다. 한동안 아름다운 풍경이 줄줄이 이어진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대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화폭을 감상하는 데 적잖이 시간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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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는 첩첩산중이다. 그곳의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변산반도는 산과 산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땅이다. 바다 건너 첩첩이 쌓인 산들이 거리에 따라 조금씩 농담을 달리 하고 있다. 거리가 멀수록 더 옅은 빛깔을 띠고 있어 입체감이 살아난다. 수묵화가 따로 없다.
고창군은 바닷가 해안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비록 시멘트로 만든 1차선 도로이기는 하지만 평소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중간 중간 길이 끊어지기도 하고, 일부 구간 자갈을 깐 거친 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해안도로 주변으로 양식장이 수도 없이 많다. 대부분 장어 양식장이다. '풍천장어'가 바로 이곳 고창의 양식장에서 생산된다. '풍천'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민물을 뜻한다. 그러니까 풍천장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잡히는 장어를 말하는, 이 지방 고유의 용어라고 보면 된다.
자연산 풍천장어는 한때 선운사 부근을 지나는 하천에서 잡혔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 이후론 양식장어가 풍천장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장어 요리집 또한 양식장만큼이나 많다. 손님이 직접 구워 먹는 방식의 '셀프' 집이 자주 눈에 띈다.
갯벌과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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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해안도로는 갯벌과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길이다. 갯벌 가까운 곳에서 왜가리나 백로들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갯벌에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게들이 바글바글하다. '농말게'란다. 그놈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가까이 다가갈라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모두 개구멍 아닌 게구멍을 하나씩 갖고 있어 그곳으로 재빨리 몸을 숨긴다.
갯벌 풀숲에 들어가 농말게를 잡고 있던 아주머니 말이 놈들을 '빠숴서' 젓갈을 담가 먹으면 엄청 맛있단다. 그런데 잡기가 쉽지 않다. 먹을거리가 눈앞에서 바글거리는데 잡을 수가 없다니 조금 안타까운 심정이다. 아주머니는 주로 풀섶에 숨어 있는 걸 잡는다고 한다. 그게 좀더 손쉽다. 전문가들은 게구멍을 직접 파헤친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자루에 농말게가 그득하다. 바지는 온통 펄 투성이다. 게를 잡으려고 고생깨나 한 흔적이 역력하다. 농말게를 '빠숴서' 젓갈을 담그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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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해안도로를 잇는 길을 찾지 못하고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그 길에 하전어촌체험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 표지석에 국내 최고의 바지락생산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갯벌에 바지락이 얼마나 많이 있기에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궁금해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마침 밀물 때라, 눈에 보이는 게 그저 찰랑거리는 바닷물뿐이다. 그 바다 위로 생뚱맞게 축구 골대가 솟아 있다. 갯벌에서 조개만 캐는 것이 아니고, 축구도 함께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갯벌에서 차는 축구공, 색다른 맛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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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전리에서 조금 더 가면, 만돌리 바닷가가 나온다. 바닷가 언덕 위에,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 송림 사이로 길게 산책로가 놓여 있다. 그 앞에 '서해안 바람공원'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서 있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소죽도와 대죽도 같은 작은 섬이 보이고, 푸른 바다 너머로는 여전히 미련을 떨쳐 버릴 수 없는 듯 변산반도가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바다와 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송림 사이를 천천히 걸어본다. 서해안 바람공원은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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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에 두 군데 해수욕장이 있다. 하나는 동호해수욕장이고, 또 하나는 구시포해수욕장이다. 모두 해수욕장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고창군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아마도 '명사십리'가 아닐까 싶다. 직선에 가까운 해변이 광승리에서 장호리까지 6km, '십리'가 넘게 펼쳐져 있다. 끝에서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널찍하고 긴 해변에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해변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해변 모래사장이 발자국조차 잘 찍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 엄청난 크기에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해변이다. 이곳은 대부분 군사 지역으로 묶여 있다. 작년까지 해변에 철조망을 설치했다가, 올해 초 철거한 상태다. 해가 떨어진 뒤에는 해변에 들어갈 수 없다.
명사십리 끝에 구시포항이 있고, 항구 너머에 구시포해수욕장이 있다. 평범하지만, 근처에 명사십리가 있어서 그런지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구시포해수욕장을 벗어나서 얼마 안가, 전라북도 경계선을 넘는다. 고창군을 지나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충청남도를 벗어나는 데 10일이 걸린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전라북도는 그만큼 해안선이 단조롭다는 걸 뜻한다. 그 단조로움에 새만금방조제가 한 몫을 했다.
또 하나의 경계선 넘어 전남 입성... 다시 바다와 마주치다
전라남도 영광군에 들어서서는 홍농읍 칠곡리까지 줄곧 내륙을 달린다. 별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길이라 있는 힘껏 속도를 낸다. 그러다 칠곡리 끝에서 다시 바다와 마주친다. 그 막다른 길에서 우회전을 하면 계마항과 가마미해수욕장이 나오고, 좌회전을 하면 영광 법성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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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로 가기 전에 가마미해수욕장을 먼저 찾는다. 그곳에서 영광 원전이 빼꼼히 들여다 보이는 백사장이 있다. 가마미해수욕장까지는 해안가 산허리를 타고 넘어야 한다. 당연히 도로의 굴곡이 심하고 언덕이 높은 탓에 고생을 좀 해야 한다. 바닷가 쪽은 절벽이기 때문에, 특히 굴곡이 심한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마미해수욕장은 한때 호남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름이 오면 피서객들로 흥겨운 몸살을 앓던 곳이다. 그랬던 곳이 원전이 들어서면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이 원전이 들어서 있는 해수욕장을 꺼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마미해수욕장은 규모는 작지만 모래가 곱고, 바닷가 풍경이 어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수욕장 뒤로 산그늘 깊은 금장산이 둘러쳐져 있어 꽤 아늑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호남 제일의 명성을 얻을 만하다.
그 해변에서 바다 쪽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원형 지붕을 덮은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원전이다. 무엇이 부끄러운지 계곡 안쪽에 살짝 몸을 숨기고 있다. 원전이 가마미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름 한 철 휴가를 나온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원전이 들어선 후로도 가마미해수욕장은 여전히 호남 3대 해수욕장 중에 하나로 꼽힌다. 원전이 결정적인 흠이 되고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원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깊은 매력이 있는 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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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마항을 잠시 들른 후 바로 법성포로 향한다. 해가 질 때가 다가오고 있다. 가능하면 밤길은 달리고 싶지 않다. 다행히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법성포로 들어서는 높은 언덕을 넘는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법성포에서 맨 먼저 마주친 물건이 상점 앞에 내걸린 '굴비'들이다. 법성포로 들어서는 길 초입에서부터 굴비를 보기 시작해 숙소를 찾아가는 길 내내 굴비가 눈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도시가 온통 '굴비' 투성이다. 상점 간판에도 모두 굴비 엮듯이 줄줄이 굴비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법성포는 굴비 없이는 못 사는 그런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숙소를 정하고 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식당의 주 메뉴 역시 굴비다. 굴비정식 말고 식사로 먹을 만한 게 달리 눈에 띄질 않는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할 일이 없어 좋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혼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혼자서 가면 상을 잘 차려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니 온몸에 피곤이 몰려온다.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거리를 달렸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가 107km, 총 누적거리는 1450km다.
헉! 해당화 열매 따면 7년 이하 징역?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2] 영광 법성포에서 함평 돌머리해수욕장까지
10월 6일(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날 아침,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풍경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여행의 백미는 백수 해안도로다. 산허리를 이리 저리 감아 도는 해안도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더 멋진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백수 해안도로에 서 있는 이정표
법성리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얼마 안 가 굴비 상점이 늘어서 있는 도로 끝에 백수 해안도로 이정표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정표가 어찌나 큰지 이정표 때문에 허구헌 날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백수 해안도로는 도로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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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벗어나 조금 더 가다 보면, 또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좁고 거친 시멘트 도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도로가 차로라기보다는 농로에 가깝다. 처음엔 좀 의아했다. 그 유명한 백수 해안도로가 이런 시멘트 소로였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정표가 분명히 이 길이 맞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딴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
한동안 그 시멘트 길을 오르내린다. 계속해서 언덕이 나타나는 걸 보면, 해안도로가 맞기는 맞다. 얼마간 그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아스팔트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백수해안도로까지는 1.5km를 더 가야 한다고 표시되어 있다. 주인공 얼굴 한 번 보기 쉽지 않다.
백수해안도로를 가는 길에 바다 너머로 법성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제 막 조업을 마치고 돌아온 고깃배들이 좁은 만을 지나 법성포로 돌아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에서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의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면대불상을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다 볼 수도 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풍경이다.
백수해안도로는 영광군의 구수리에서 시작해 백암리까지 이어지는 17km 길이의 도로를 말한다. 해안 절벽 위를 위태롭게 지나간다. 이 도로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서해안을 대표하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당연히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느니,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열매를 채취하면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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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에 해당화가 피어 있다. 지금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분홍색 꽃보다 꽃이 열렸던 자리에 붉게 맺힌 열매가 더 탐스러워 보인다.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연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열매를 심하게 탐했던 모양이다. 해당화 꽃밭 안에 아주 센 경고문이 붙어 있다. '열매를 채취하면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단다. 심하다. 손대기조차 두렵다.
백수해안도로에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뒷짐을 진 한쪽 손에 비닐 포대와 집게가 들려 있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사흘에 한 번씩 이렇게 도로에 나와 쓰레기를 줍는단다.
도로가 깨끗해 보인다 싶더니, 누군가 쓰레기를 따로 줍는 사람이 있었던 거다. 그래도 요즘은 피서철이 지나서 그나마 쓰레기가 덜하지만, 차들이 한창 많이 지나다닐 때는 진짜 '겁나게' 버린다. 사정이 어떤지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자전거여행을 하다 보면 못 볼 걸 보게 될 때가 많다.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달아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길가 눈에 빤히 보이는 데 버리고 가는 사람은 양반에 속한다. 더러는 수풀 속에 던져 넣거나, 절벽 아래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지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전국의 도로를 더럽히고 있다. 도로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당연히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다.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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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해안도로에 들어선 이후로 길은 끝없이 굽어 돈다. 올라가는가 하면 내려가고, 내려가나 하면 다시 올라간다. 곧은 길, 평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엄한 해안절벽과 한없이 푸르고 넓은 바다와 하늘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독히 고되고 힘든 길이 됐을 뻔하다. 힘들만 하면, 한 번씩 자전거를 멈춰 세우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 나타난다. 너무 자주 쉬어 가는 바람에 나중엔 이러다 언제 백수해안도로를 벗어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된다.
잔잔한 바다, 그 바다 위에서는 그물을 걷는 어부들조차 그저 세월을 걷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마치 느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 모습에서 고된 노동으로 찌든 삶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부라서 바다를 닮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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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간 바위들이 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가 보이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새끼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 새끼 거북이가 엉뚱한 데 가서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자리를 얼마나 오래 맴돌았는지 그만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서서,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과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전설과 드라마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곳, 백수해안도로다.
백수해안도로를 내려 와서는 77번 국도를 타고 대전리까지 직행한다. 중간에 해안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길이 뚜렷하지 않고, 자칫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닐 가능성이 높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선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태해지는 건지 영악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6000원짜리 푸짐한 밥상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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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덕에 운 좋게도 대전리의 한 식당에서 전라도식 밥상을 마주한다. 백반인데, 어제 법성포에서 대한 굴비정식과는 다른 맛, 또 다른 분위기다. 1만원짜리 굴비정식과 비교해 맛과 정성에서 뭐 하나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넘치는 인심까지. 배가 불러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까지 부르다. 밥값 6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밥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다.
백바위 해수욕장에서 길을 잃다
대전리에서는 다시 해안 길로 들어선다. '백바위'라는 독특한 이름의 해수욕장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규모가 작아 보이는 해변이다. 해변에 맷돌을 지그재그로 겹쳐 올린 형태의 계단을 쌓았다. 해변 오른쪽에 하얀 소금산을 쌓은 것 같은 바위가 있다. 멀리서 보기엔 금방 무너져버릴 것 같아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차돌같이 단단하다. 그 바위가 바다 쪽으로 길에 뻗어나가 있고 그 끝에 정자를 올려 세웠다.
백바위해수욕장을 나와서는 한동안 제방 길을 달린다. 그러다 그 길이 다시 농로로 접어들면서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미로에 갇힌 기분이다. 참 오래 헤맸다. 할 수 없이 길을 물어 겨우 77번 국도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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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 국도가 지나가는 길에 설도항이 있다. 작은 어시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부둣가를 어슬렁거리며 가을 햇살에 바짝 말라가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다 이제 곧 해가 질 때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급해진다. 요즘 밤길을 달리는 일이 잦은데,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밤새 해야 할 일은 또 좀 많은가?
서둘러 설도항을 떠난다. 오늘 저녁 가능하면, 영광군을 벗어나 함평군의 돌머리해수욕장까지 가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 향화도항에 잠시 들른 후, 중간에 838번 지방도로를 타고 안악해변까지 간다. 안악해변에 섬마을선생 노래비가 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노래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할 형편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다.
갈등이 생긴다. 이곳에 머물지, 아니면 계속 밤길을 달려 돌머리해수욕장까지 갈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요행히 하늘이 맑아 별빛이 반짝인다. 별빛에 비친 도로가 희미하기는 하지만, 차선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안악해변으로 길게 산책로가 있다. 하지만 밤길에 해안선 가까이 붙어 있는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할 수 없이 해변을 떠나 811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속도를 늦춘다. 도로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건너편 차선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들이 비추는 전조등에 눈이 부실 때가 많다. 가까이 다가왔을 땐 몇 초간 눈을 뜨지 못한다. 차가 지나갈 때까지 멈춰 섰다 다시 가기를 반복한다. 자동차들 중엔 밤길을 가는 자전거가 위험해 보였던지 더 느리게 지나가는 차들도 있다. 그냥 빨리 지나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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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해변에서 돌머리해수욕장까지 생각 외로 긴 거리다. 초행길인 데다 밤길이라 더 길게 느껴지는 게 분명하다. 가도 가도 해수욕장이 나오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길을 묻는다. 그렇게 더딘 밤길을 달려 돌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 30분, 해가 진 뒤로도 무려 2시간 가까이 달렸다.
돌머리해수욕장 가까이 민박을 들고 나서 짐을 푸는 데 온몸이 뻐근하다. 백수해안도로를 넘으면서 지치기 시작한 몸이, 초긴장 상태로 밤길을 더듬어 달리느라 녹초가 되어 버렸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90km, 총 누적거리는 1540km이다.
돌머리? 이름과 행동이 완전 딴판이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3] 함평군 돌머리해수욕장에서 신안군 지도까지
10월 7일(목)
지난 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다. 돌머리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어려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놀림깨나 받았을 성싶다. 웬만하면 이름을 바꿨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걸 보면 이곳 주민들, 나름 자존심이 강해 보인다.
돌머리. 마을 서쪽에 바위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어감이야 어찌 됐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다. 나같은 돌머리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안 잊어 버릴 것 같다. 이름에 '머리'라는 단어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 역시 육지에서 튀어나온 지형을 하고 있다. 끝이 뭉툭한 게 꼭 자루가 긴 망치같이 생겼다. 이 해수욕장은 이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풀장, 아이디어 괜찮다!
바닷가로 내려서면 풀장인지 해수욕장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다. 얼핏 봐서는 바다 같기도 한데, 바닷물은 이미 저 멀리 썩 물러나 있는 상태다. 알고 보니, 인공 해수풀장이다. 이곳의 바다는 썰물 때 바닷물이 해안에서 너무 멀리 쓸려 내려간다. 그래서 썰물 때도 계속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풀장을 만들게 되었다는 얘기다. 아이디어가 괜찮다.
서해안의 해수욕장이 대체로 썰물 때 바닷물이 너무 멀리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성가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자연적인 한계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해수욕장을 만든 데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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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그 소나무 숲 속에, 초가지붕을 씌운 정자를 들여앉힌 것도 이색적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해 해수욕장을 멋지게 꾸미려 노력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돌머리라는 이름과 다르게, 실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완전히 딴판이다. 돌머리라는 이름에서 오히려 한 번 결심한 일은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뚝심을 읽는다.
돌머리해수욕장을 돌아 나오면서, 마치 가슴에 바윗돌이라도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바로 코앞에 남쪽 나라 전라남도의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반도와 연륙교와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들이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해안선은 앞서 거쳐 온 태안반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얼마나 해매고 돌아다녀야 할지, 또 얼마나 많은 언덕을 오르내려야 할지 알 수 없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긴장이 되는 걸 억지로 무시할 수도 없다.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함평군을 지나 무안군에 들어서는 지점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한다. 마을 안길을 한참 달리다가 눈앞에 갑자기 서해안 고속도로가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내가 가야 할 길에서 1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진땀이 흐른다. 마을 안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지방도로로 올라탄다. 그 길로 무안군의 해제면으로 들어서는 길목까지 줄달음친다.
무안군은 좁은 땅에 매우 복잡한 해안선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바다 위에 사방이 별 모양으로 뿔이 돋아나 있는 땅덩어리가 두 개나 튀어나와 있다. 하나는 무안군 해제면과 현경면 일부이고, 또 하나는 운남면이다. 두 지역 모두 특이하게 육지와 가느다란 끈 같은 땅줄기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 땅줄기가 아니었으면 둘 다 섬이 되었을 운명이다. 이 두 지역 모두 반도인 셈이다. 그래서 때로는 해제반도와 운남반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해안선 뿔 몇 개를 과감하게 쳐냈다
사실 반도만 돌고 나오면 그나마 조금 수월하겠다. 해제면에는 연도교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이 무려 3개나 된다(사실은 4개다. 나중에 '증도'가 하나 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도, 송도(솔섬), 사옥도라는 이름의 섬으로 비록 무안군과 연결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행정상 주소지는 신안군에 속한다. 지형만 그런 게 아니라 족보까지 복잡한 셈이다. 나중에는 그 섬들에 다시 주변 섬들을 더 연결할 계획이라고 하니, 현재 이 정도에서 그친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거 뭘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곳의 해안선을 곧이곧대로 다 돌아보고 나오는 데 며칠이나 걸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결국 지도를 면밀히 들여다본 끝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이는 뿔 몇 개를 과감하게 쳐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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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고 먼저 찾아간 곳이 현경면 용정리다. 북쪽으로 가느다랗게 툭 튀어나온 이 땅은 그 끝에 이름이 월두, 즉 '달머리'로 풀이되는 마을을 달고 있다. 달머리라는 이름에서 무언가 시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땅이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별세계'에 와 있는 듯 조금 독특한 분위기다.
달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붙인 내력을 살펴봤다. '달'은 마을 안에 있는 계수나무와 곰솔당산나무를 상징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위의 섬과 바위들은 달 주변에 떠 있는 별과 같다. 달머리라는 이름에 이 세상 달과 별 같이 오래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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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머리를 나와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도리포다. 이곳 역시 달머리와 마찬가지로 뿔이 난 지형 끝에 올라서 있다. 도리포가 있는 지역은 그 자체 반도 속의 반도라고 할 만한 땅이다.
30분 자고 일었났더니 개운하군
도리포로 들어가기 전에 무안생태갯벌센터 옆에 조성한 공원으로 들어가 바닷가 정자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알레르기성 비염 약을 복용하고 있는 탓인지 요즘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는데도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햇볕 따듯한 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파도가 해변을 적시듯이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정자 그늘 아래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난다. 꽤 오래 잠들었던 것 같은데 깨어 보니 딱 30분이다. 숙면을 취했는지 전보다 상당히 개운해진 느낌이다.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난다. 도리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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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포가 있는 지역 역시 '달머리'가 있는 곳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두세 배 더 길고 또 그 이상으로 넓은 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지도상에 도리포유원지라고 표기가 되어 있어 꽤 번잡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매우 조용한 분위기다.
도리포 끝에 도로를 닦다 만 흔적이 있다. 그 도로 끝이 어제 지나온 영광군의 향화도항을 가리키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리포와 향화도항 사이에 다리를 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도리포 가는 길이 남과 북 양쪽으로 다 열리는 셈이다. 유동인구가 많아질 것은 불문지사, 그때는 지금처럼 한가하고 조용한 일상과도 작별이다.
도리포를 나와 신안군 '지도'를 향해 달린다. 어떻게 된 셈인지 지도 위에 나와 있는 섬, 지도는 해제면과 거의 붙어 있다. 섬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어정쩡하다. 두 지역 사이에 바다가 지나가고 있기는 한데 마치 작은 강줄기가 하나 지나가고 있는 듯한 형국을 하고 있다.
그 섬의 북쪽과 남쪽에, 섬을 오가는 길이 열려 있다. 다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낮고 짧은 길이다. 보통 육지와 섬 사이를 잇는 '대교' 같은 게 이곳에는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는 새 연륙교를 넘어 지도로 들어갔고, 처음에는 그 연륙교가 북쪽에 있는 건지 남쪽에 있는 건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지도읍까지 가서야 겨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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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그만 길을 잘못 들었다. 북쪽으로 진입해 들어간다는 게 그만 남쪽의 연륙교를 넘은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방향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바람에 여행 코스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할 수 없다. 이런 곳, 이런 상황에서 어찌 보면 혼선을 일으키는 게 정상이다. 내친 김에 남쪽 해안을 따라 지도 읍내를 지난 다음, 바로 송도까지 들어간다. 지도의 북쪽 해안은 다른 섬들을 마저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둘러볼 생각이다.
송도는 지도에 붙어 있는 첫 번째 섬이다. 지도와 사옥도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끼여 있다. 땅이 너무 작아 다이어리 뒷장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작은 지도에는 점으로도 찍혀 있지 않은 섬이다. 그런데 이 섬에 제법 큰 규모의 수산시장이 있다. 섬 크기에 비해 항구도 비교적 큰 편이다. 섬은 작지만, 섬으로서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작은 섬에서 하루가 아닌 이틀 밤을 쉬어 간다. 요 며칠 새 몸이 상당히 지쳐 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사옥도와 지도는 내일모레, 차분히 돌아볼 예정이다. 무안군 현경면에서 해제면까지 가는 24번 국도에는 트럭이나 버스 같이 덩치 큰 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갓길이 좁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데 꽤 조심해야 한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5km, 총 누적거리는 1615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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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했던 근육이 물렁물렁하고 축 늘어졌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4] 신안군 지도에서 증도 거쳐 무안군 현경면까지
10월 08일(금)
송도(솔섬)에서 늦은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않고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을 예정이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온몸에 피로가 누적돼 있다. 무릎이나 엄지손가락 같이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관절에서 약하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무릎 통증은 처음 통증이 생겼던 때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페달을 밟는 발바닥 볼이 나도 모르는 새 자꾸 앞으로 나가 있었던 게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더 이상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오른쪽 엄지손가락 관절이다. 엄지손가락은 기어 변속 레버를 누를 때마다 반복해서 힘을 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높은 기어비에서 낮은 기어비로, 다시 낮은 기어비에서 높은 기어비로, 엄지손가락으로 수도 없이 변속 레버를 눌러 기어비를 바꾸어야 한다.
평지를 달릴 때라고 놀고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속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변속 레버를 눌러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그러니 엄지손가락을 반복해서, 집중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 엄지손가락을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단단했던 근육이 물렁물렁하고 축 늘어졌다
예전에 엄지손가락 통증 때문에 한 차례 여행을 포기한 적이 있다. 어이가 없었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단지 엄지손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지손가락 통증이 거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자전거를 타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 근육과 엉덩이 근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탄력을 잃은 상태다. 팽팽하고 단단했던 느낌이 지금은 물렁물렁하고 축 늘어진 느낌이다. 근육이 피로를 회복하는 속도가 엄청 느려졌다. 제 힘을 다 발휘하기가 힘들다.
기껏 하루 쉬고 일어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다. 하여튼 잘 먹고 잘 쉬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송도는 숙박 시설은 있어도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없다. 횟집이 있기는 한데 혼자서 식사를 할 만한 메뉴는 없다. 식사를 하려면 지도까지 나갔다 돌아와야 한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나마 먼 거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10월 09일(토)
하루 잘 쉬고 일어난다. 오늘은 사옥도를 돌고 나와 다시 지도를 마저 다 돌아본 다음 해제반도를 빠져나갈 계획이다. 송도에서 사옥도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사옥도는 비록 송도보다 큰 섬이기는 하지만, 지도와 비교하면 내세우기 힘들 정도로 작은 섬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휙 돌면 된다. 그러면 오늘은 해제반도를 벗어나 운남반도의 조금나루해수욕장까지 가거나, 잘 하면 신월선창까지도 갈 수 있다.
느긋한 아침이다. 그렇게 송도를 떠날 때만 해도, 오늘 일정에 다른 변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지도대교를 넘어 사옥도의 북쪽 해안을 슬쩍 돌아다보고 내려올 때다. 앞에 커다란 녹색 교통 표지판에 '증도대교'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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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대교? 내 머리 속에 없던 다리 이름이다. 지도는 물론이고, 내 머리 속에도 증도를 연결하는 다리는 여전히 공사 중인 걸로 그려져 있다. 언젠가는 사옥도와 다리로 연결이 될 섬, 그러니까 지금은 여전히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으로 남아 있다.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는 여행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증도대교라는 표지판이 내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이유는 뭐지? 대교가 건설됐다면 오늘 일정은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고 생각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고, 그때까지만 해도 증도대교 완공을 얼마 앞두고 미리 만들어 놓은 표지판일 수도 있으니까 앞서 혼란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증도야, 나중에 다시 오면 안 될까?
증도대교 표지판을 지나친 지 얼마 안 돼,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 펑크가 났다. 징조가 나쁘다. 아주 작고 예리한 유리 파편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갈색 빛깔이 도는 유리다. 아마도 누군가 강장제나 비타민류가 들어 있는 음료수를 마신 뒤, 그 힘으로 빈 병을 도로 위로 내던진 게 아닌가 싶다. 그 힘을 좀 더 인간적인 일에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전거여행을 할 때마다 겪는 일이다. 자전거로 유리 파편을 밟고 넘어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도로 위의 유리 파편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있다. 도로에 유리가 얼마나 많은지, 유리가 없는 깨끗한 도로를 찾아보기 힘들다. 길바닥에 마치 지뢰를 깔아논 격이다. 그렇게 펑크로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다음에 갑자기 증도대교와 마주쳤다.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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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는 자전거 타기 좋은 섬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언젠가 꼭 한 번 그 섬에 들러보고 싶었다. 그런데 전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상조차 못하고 있는 사이에 느닷없이 증도를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증도대교는 올해 3월에 완공됐다. 마음 같아선 모른 척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다리를 앞에 두고서는 나 몰라라 돌아설 수는 없다. 예정에 없는 일이라고, 나중에 약속하고 다시 올게 손을 흔들 수는 없는 일이다.
증도대교는 사옥대교와 마차가지로 배불뚝이 다리다. 배가 볼록 위로 솟아서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높이는 또 왜 그렇게 높은지 가운데 정상 부근에 서 있으면 몸이 흔들릴 정도로 어지럽다. 증도대교는 특히 난간이 낮아 더 불안해 보인다.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짱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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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는 슬로시티다. 지난 2007년 청산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슬로시티와 자전거는 환상적인 궁합이다. 증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내 생각엔 섬 전체가 자전거 여행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해안을 따라서 도로가 나 있다. 관광지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인데도 생각보다 차량이 많지 않다. 여유 있게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 중엔 산을 넘어가는 임도도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큰 어려움 없이 도전해 볼 수도 있는 코스다. 물론 길이 거친 건 미리 각오해야 한다.
꼭 돌아봐야 할 곳으로는 짱둥어다리와 태평염전을 꼽을 수 있다. 짱둥어다리가 특히 인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다리 위에 서서 다리 아래 갯벌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갯벌에 짱뚱어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지는 처음 알았다. 짱뚱어들이 탐방객들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는데 바쁘다. 생긴 건 또 왜 그렇게 귀여운지 보면 볼수록 정이 간다. 짱뚱어는 '말뚝망둥어'를 부르는 이 지역 사투리다. 꽤 정겨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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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에서는 염생식물원에 가볼 만하다. 갯벌을 캔버스 삼아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천일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부하고 나서 직접 소금을 채취하는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바다와 갯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인지를 두 눈과 한 마음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증도는 스치듯 자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다. 증도대교가 완공된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 지역에서의 전체 일정을 증도에 맞춰 변경할 수도 있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찾아올 여지를 남기고 증도를 떠난다.
민박집서 얻어 먹는 공짜밥에, 가슴이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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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를 나와서는 사옥도의 남쪽 해안을 마저 돌아 다시 지도로 들어간다. 지도로 들어서서는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지난 7일, 지도로 들어서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이 북쪽이기 때문이다. 지도 역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부어, 정말이지 정신없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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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는 주민들이 도로에 나와 올해 수확한 조를 터느라 부산하다. 조 껍질이 도로를 뒤덮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에서 조 껍질이 날아든다. 한쪽에서는 조 껍질을 털어내고, 또 한쪽에서는 털어낸 조 껍질을 한데 쓸어 모아 태우느라 부산하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지도를 나와서는 무안군의 해제면을 지나 현경면의 홀통유원지까지 달려간다. 낮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이제 6시 30분이면 해가 진다. 홀통유원지에 도착했을 땐 더 이상 달리기 힘든 지경이 되고 만다. 한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로 위를 자동차들이 대낮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그 사람들 눈에 자전거가 보이기는 했을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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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통유원지 입구에 있는 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횟집을 겸하고 있는 집이어서 혹시 혼자서 먹을 만한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없단다. 그러면서 그냥 집에서 먹는 대로 상을 차려주겠다고 한다. 메뉴에 없는 식사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 때는 증도에서 서너 군데 식당에 들렀다가 그냥 되돌아 나온 뒤였다.
한 군데는 물을 닫았고, 한 군데는 혼자서 식사를 할 만한 메뉴가 없다고 했고, 또 다른 한 군데에서는 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식사 손님을 가늠하기 어려워 밥이 떨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조금 야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바람에 오늘,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른 상태였다.
홀통유원지에 도착했을 때는 허리가 끊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집에서 먹는 밥이라도 상을 차려주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끼를 거른 뒤라 그 밥을 참 달게 먹었다. 밥값을 충분히 지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밥값을 받지 않겠단다. 살다 살다 민박집에서 공짜로 밥을 먹어보는 것도 처음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고맙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오늘 달린 거리는 98km, 총 누적 거리는 1713km이다. 하루 종일 오렌지주스 같은 음료수로 버티면서 꽤 긴 거리를 달렸다.
5분에 한 번꼴로 낙지 낚는 곳, '깜놀'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5] 무안군 홀통유원지에서 목포시까지
10월 10일(일)
안개가 짙게 깔린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 안개로 국내 항공편 무더기 결항 사태를 빚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홀통유원지 앞 바다에 떠 있는 섬들 역시 뽀얀 안개에 덮여 있다. 윤곽이 흐릿하다. 섬과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일체의 경계가 사라져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안개가 깔린 홀통유원지의 바닷가 갯벌은 온통 삽과 호미를 든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날이 좁고 뾰족한 삽으로 갯벌을 파헤치는 사람이 보인다. 낙지를 잡고 있다. 갯벌을 어슬렁거리며 낙지가 숨어 있는 구멍을 찾는다. 해안에서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낙지를 잡을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거의 5분에 한 번꼴로 낙지를 잡아 올린다. 신기하다. 낙지가 이처럼 가까운 해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잡기 힘들다'는 낙지를 삽으로 파헤칠 때마다 어김없이 한 마리씩 잡아 올리는 사람의 솜씨 또한 신기에 가깝다.
갯벌이 가진 생명력과 생산력에 감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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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면서 먼 바다의 갯벌까지 점점 더 선명한 빛을 드러낸다. 그러는 사이 갯벌 여기저기에 숨어 게와 '운저리'를 잡던 사람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투망으로 운저리를 잡기 시작한 지, 채 3시간이 되지 않아 50여 마리를 잡은 사람도 있다. 운저리처럼 서민적인 물고기도 없다.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다. 갯벌이 가진 생명력과 생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저리는 문절망둥어를 가리키는 말로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망둥어는 전세계적으로 6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한국에만 50여 종이 살고 있고, 그 중 '짱뚱어'라고 부르는 말뚝망둥어와 '운저리'라고 부르는 문절망둥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망둥어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이들 2개종을 부르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갯벌을 삽으로 파헤치거나 호미로 긁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육지의 농부들 같다.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 갯벌을 소유주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갯벌을 '가치가 없는 땅'으로 인식해 다른 용도로 전용하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갯벌은 결코 쓸모없는 땅이 아니다. 갯벌은 엄연한 '밭'이다. 그것도 결코 육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땅'이다. 씨를 부리듯 종패도 뿌린다. 그리고 소중히 가꾸고 기른다. 밭이나 다름없다. 그런 갯벌을 흙으로 덮어 논이나 산업단지로 만들어서 그 땅이 가진 가치가 갯벌의 가치를 능가했을까? 그래서 그 가치가 애초 갯벌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몫이 됐을까?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
고기 잡는 것만큼 힘들어 보이는, 미끼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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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통유원지를 나와서는 바로 해제반도를 벗어난다. 해제반도에 들어선 지, 3일만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찾아가는 땅 역시 반도다. 팔자 한번 기구하다. 그 반도는 무안군 운남면으로, 통상 운남반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지역 역시 해제반도와 마찬가지로 무안군과 가느다란 땅줄기 하나로 간신히 연결이 되어 있다.
먼저 운남면으로 들어서기 전에 망운면 목서마을을 지나간다. 그곳의 바닷가에서 한 아저씨를 만난다. 목에 조그만 플라스틱통을 걸고, 손에는 삽을 들고 있다. 플라스틱통이 꼭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곤충 채집 상자 같다. 막 바다에서 나오는 길인데, 무엇을 잡아가지고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플라스틱통 안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 펄과 모래로 뒤범벅이 된 갯지렁이가 잔뜩 들어 있다. 숭어 미끼로 쓰려고 잡았단다. 갯지렁이는 펄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어 잡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갯벌을 깊게 파헤쳐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상에 미끼 잡는 일이 이렇게 힘든데, 숭어는 또 어떻게 잡을까?
조금나루유원지 가는 길에 잠깐 거쳐 가는 외덕마을 앞바다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다 깊숙이 300여m 떨어진 작은 섬까지 바닷길이 열려 있다. 물이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멘트길이 바닷물로 축축하다.
물에 젖어 검은 빛이 감도는 길이 표면은 햇빛을 받아 희끗희끗 하얗게 번득인다. 어딘가 모르게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길이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데다 해초까지 덮여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몇 발자국 옮겨 딛지 못해 다시 되돌아 나온다.
쓰러진 세발낙지 동상,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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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나루 유원지는 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시 운저리를 잡고 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 운저리처럼 친근한 물고기도 없을 것이다. 운저리가 없었다면, 낚시 인구가 지금처럼 많아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안은 세발낙지로 유명한 곳이다. 곳곳에 세발낙지 동상이 서 있다. 조금나루 유원지 입구에도 세발낙지 동상이 있다. 그런데 어찌된 탓인지 동상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넘어뜨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며칠 전에 무안군 어민들이 낙지 문제로 서울시를 항의 방문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낙지가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에겐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동상이 어서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조금나루유원지를 나오면 바로 운남면이다. 운남면은 하나의 거대한 고구마처럼 보인다. 해제면에 비해 해안선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해안선이 단조롭다기보다는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 단조롭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해안도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섬 외곽을 돌아가는 길이 해안선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길이 복잡하지 않은 대신 단조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해안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 다채로운 풍경을 접하기 힘들다. 그런 까닭에 눈에 들어오는 게 대부분 밭, 아니면 논이다.
운남면에서는 유난히 콩밭이 눈에 많이 띈다. 기계를 동원해 콩을 수확하는 장면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길가에도 콩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해제면에서는 조를 수확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이 무렵 지역마다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작물이 모두 다르다는 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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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달려, 톱머리해수욕장에 '도착'
운남반도를 벗어나서는 무안공항을 지나 톱머리해수욕장까지 신나게 달려 내려간다. 무안공항을 지나가는 길이 평지에 직선이다. 이런 길을 달려본 게 얼마만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속도를 낸다. 마침 바람마저 뒤에서 불어온다. 한번 맘껏 속도를 내보라고 등을 떠미는 격이다. 페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볍다. 톱머리해수욕장까지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린다.
톱머리해수욕장에 해변 모래사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모래사장이 있어서 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지 알 수 없다. 멀리 모래톱 비슷한 게 보이긴 한다. 그래도 뭔가 많이 부족하다. 알고 보니, 이곳의 모래 해변은 밀물 땐 거의 바닷물에 덮였다가, 썰물 때 드러난다고 한다. 그것도 평범한 해수욕장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넓은 모래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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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아간 톱머리해수욕장은 마침 밀물 때라, 바닷가 여기 저기 낚시꾼들만 보인다.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고, 해수욕장 옆 부두와 제방 아래에도 온통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해변에 그물을 쳤다가 거둬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낚시꾼 한 분이 자신이 잡은 물고기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팔뚝만한 숭어 한 마리와 손바닥 만한 돔이 여러 마리다. 그걸 보려고 주변의 낚시꾼들이 아저씨 곁으로 모여든다. '어이쿠 미처 몰라 뵀다'는 투다. 겉모습은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데, 실력은 고수다. 오늘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새 그걸 다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오늘은 아주 적게 잡은 편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썰물 때는 해수욕을, 밀물 때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 톱머리해수욕장이다. 모래사장 위로 바닷물이 출렁이는 이색적인 광경도 볼 수 있으니, 생각하기에 따라 참 재미있는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해수욕장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자전거를 타고선 압해도 다리를 건널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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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머리해수욕장에서 목포시까지 가는데 수없이 많은 언덕을 오르내린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주지 않았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 825번 지방도로를 타고 내려가 길을 헷갈릴 염려가 없어서 좋았다. 해가 지기 전에 목포시에 도착한다. 거기서 바로 압해도까지 들어갈지, 아니면 목포시에서 하루를 머물지 결단이 서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 앞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목포에서 압해도를 들어가는 길이 상당히 복잡하다. 목포시 경계선을 넘자마자 도로로 올라탄다는 게 그만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러고도 다시 길을 잘못 들어 대박산이라는 산 정상을 넘어가는 도로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 힘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박산을 내려와서 신호위반 차량을 단속하고 있는 일단의 교통경찰관들과 마주쳤다. 도로 위에서는 교통경찰관들처럼 친절하고 자상한 길 안내자도 없다. 반가운 마음에 씩씩한 목소리로 묻는다. '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로 올라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그 질문에 다들 의아한 표정이다. 압해도를 어떻게 가지? 그런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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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로 넘어가는 다리는 자동차 전용이다. 미처 그걸 알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갈 생각이고, 경찰관들은 자전거가 아닌 다른 탈것을 이용해서 다리를 건널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면서 약간의 혼선이 생긴다.
설왕설래 끝에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오고, 그 다음에 다리를 어떻게 건널지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자동차 전용이라고 해도 모른 척 무식한 척 자전거를 밀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공개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꼴이 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압해도를 포기한다. 막상 압해도를 포기하고 나니,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증도와 압해도를 서로 맞바꾼 셈이 됐다. 오늘 달린 거리는 102km, 총 누적거리는 1815km다.
인어공주 아가씨는 왜 바다를 등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6] 목포시에서 해남군 문내면까지
10월 11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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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를 포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목포 여행에 나선다. 목포 앞바다에 안개가 끼여 있다. 어제만큼 심한 건 아니지만, 바다 위로 멀리 내다보이는 풍경이 흐릿한 건 마찬가지다. 각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안개가 깔린 날,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광활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카메라 모니터에 비치는 영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질 않는다.
목포해양대학교 앞에서 바라보는 목표대교 건설 공사 현장이 장관이다. 주탑 2개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엄청난 위용이다'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 위용이 사진에서는 그 느낌의 절반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왜소하다. 내가 보고 있는 걸 그대로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인어공주 아가씨는 왜 바다를 등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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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양대학교를 지나 다도해해상관광선착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닷가에 조각상이 하나 있다. 가슴을 두 손으로 가린 인어소녀다. 검은 바위 위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여기에 왜 인어상이 앉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어상이 바다가 아닌 육지를 바라보고 앉은 것도 조금 의아하다. 그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건 순전히 내 느낌인가?
인어상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다 위에 자동차 타이어가 하나 빠져 있다. 재미있는 건 물결이 치는 대로 쉼 없이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는 검은 타이어 위에 앉아 있는 하얀 갈매기다. 마치 타이어를 타고 노는 것 같이 자연스럽다.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작은 조각상 같다.
목포는 아름다운 도시다. 바닷가를 따라 예술적이며 인간적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사방에 널려 있다. 뽀얀 안개가 아니었더라면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한결 더 생생하게 살아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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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어시장에서 막 경매를 끝낸 수산물을 운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기와 갈치 상자들이 어시장 바닥을 덮고 있다. 물고기들이 담긴 나무상자를 포장하는 손놀림이 몹시 빠르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 시간이 늘 촉박하다. 포장을 끝낸 상자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난다. 물고기상자들이 시장 바닥을 덮고 있고, 그 사이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목포남항에서는 그물을 손질하느라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곳의 항구에서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짠내와 비린내가 풍긴다. 항구가 들어선 이래로 단 하루도 그쳐본 적이 없는, 유래 깊은 냄새다. 가히 역사의 향기라고 부를 만하다. 결코 사소하게 보아 넘길 냄새가 아니다. 그 모습, 그 냄새에서 오랫동안 삭힌 젓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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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손질에 바쁜 어부들 곁에 묘한 경고문 하나가 항구 풍경을 가로막고 서 있다. 이곳에까지 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경고문을 보아온 터라, 이곳에서는 또 무엇을 금지하고 있나 유심히 들여다본다. 경고문인지 안내문인지 알 수 없는 문구다. 행사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목포를 방문하는데 그 사이 3일간 부두에서의 그물 손질을 중단하고, 어구도 치워놓으라는 목포시장의 부탁 아닌 지시다.
목포를 그냥 슬쩍 지나가는 나그네 처지에서 그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문구에서 예전 장학사나 사단장이 방문한다고 해서 교실 바닥이나 연변장 청소에 부산을 떨어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냄새나는 역사도 엄연한 역사다.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역사도 우리가 연면히 유지해온 역사다. 그 모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다. 고결하지는 않지만 숭고한 역사다. 결코 가리고 숨길 일이 아니다. 관공서에서 시행하는 행정이 국민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것이라면, 불가피한 일이 아니고선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게 스스로 '머슴'을 자처한 자들이 할 일이다.
삼학도에 추억 하나 없는 사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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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바닷가를 따라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가는 길에, 육지가 되었다가 최근 다시 섬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삼학도'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학도는 목포 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다. 60년대 이전에 태어난 목포 사람치고, 삼학도에 얽힌 추억 하나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향수를 자극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삼학도는 60년대에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간척사업으로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삼학도가 나이 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전설의 섬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지난 10여 년간 다시 섬으로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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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3개 섬 사이에 수로를 내 삼학도의 예전 형태를 분명히 하고, 산봉우리가 깎여나간 자리에는 다시 산을 쌓았다. 100% 완전한 복원은 아니다. 하지만 뭍이 된 섬을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뭍에서 분리하는 데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민 일반의 삶과 정서를 무시한 행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준다.
아직 사업이 완결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삼학도 주위를 빙 둘러가며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 삼학도 안에 들어서 있는 공장들이 마저 자리를 옮기고 나면, 더욱 더 섬다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학도에서 조금 더 가면 목포해양특구가 나온다. 목포해양특구는 자연과 역사와 문학을 배우기 좋은 곳이다. 목포의 문화 시설이 대부분 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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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양특구에서 가까운 곳에 특이한 이름의 관광명소가 나온다. 목포 갓바위다. 해안에 있는 바위 표면이 파도와 바람에 침식돼 보기 드물게 기묘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갓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갓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갓바위를 감상하기 좋게 갓바위를 돌아가며 바다에 해상 보행로를 설치했다.
목포를 하루도 아닌 반나절만에 돌아보고 떠나는 건 확실히 무리다. 아무리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여행이라고 해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밥심으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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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영산강하구언을 넘으면 거기에서부터는 영암군이다. 영산강하구언 제방 위에 산책로를 깔았다. 그리고는 그 위에 자전거와 인라인 통행금지 문구를 찍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문구다. 산책로나 보행로 위에서의 사고는 모두 자전거 책임이다. 제방 위에 있는 길을 보행로로 못 박은 이상, 그 점 분명히 인식하고 지나가는 게 좋다. 사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도로로 내려가 갓길을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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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하구언을 넘은 다음에는 영암방조제와 금호방조제를 지나 해남군으로 진입한다. 금호방조제를 넘으면 바로 화원반도(해남군 화원면)다. 해남군 서쪽 해안에서 북쪽으로 불쑥 솟아오른 형태를 하고 있다. 바닷가 여행을 하는데 결코 만만한 지형이 아니다. 그렇지만 앞서 지나온 반도들과는 달리 해안선이 그다지 복잡한 편은 아니다.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는 일만 없다면, 오늘 안으로 일주가 가능할 듯싶다.
이곳의 지형 역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평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 체력 손실이 심하다. 이럴 때 열량을 보충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속을 든든하게 채운 까닭인지, 어제처럼 몸이 처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덤으로 왕복 4km 가까이 되는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가뿐한 몸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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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반도 서쪽으로 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얼핏 봐서는 어디가 육지고 어디가 섬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바다는 왜 또 그렇게 잔잔한지, 바다라기보다는 호수에 더 가깝다. 하지만 문내면 예락리와 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임화도에 들어서면서, 이곳이 엄연히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는 현실을 깨닫는다.
임화도에 지난 여름 태풍이 덮치고 지나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양식장과 반파가 된 상태로 바닷가에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는 바지선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그 스산한 광경이 마치 이것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섬사람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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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에 없던 비, 이젠 그러려니
오늘 하루는 해남군 문내면에서 마감한다. 여행을 마칠 무렵, 오후 내내 꾸물꾸물 하던 하늘이 드디어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이 역시 예보에 없던 비다. 짜증이 날만도 한데, 이젠 그저 그러려니 무덤덤하게 넘어간다.
화원반도로 들어서는 길목에 차량이 꽤 많은 편이다. 갓길도 없는 길을 위태롭게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일단 내륙으로 들어서 해안길로 접어들면, 도로를 나 혼자 점유한 것 같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도 있다. 마치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한가한 기분도 잠시, 사람도 없고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산 속 높은 언덕을 나 홀로 오를 때는 문득 외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일은 진도대교를 넘어, 진도를 한 바퀴 도는 섬 일주 여행을 할 계획이다. 오늘 달린 거리는 90km, 총 누적거리는 1905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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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한눈팔고 있을 때 도망왔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7] 해남군 문내면에서 진도군 임회면까지
10월 12일(화)
문내면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삼각뿔 모양의 주탑이 우뚝 서 있는 진도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기에도 꽤 웅장한 모습이다. 진도대교는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그 아래를 지나가는 좁은 해협인 울돌목 때문에 더 유명하다,
진도대교 위에 서 본 사람이라면, 그 아래를 지나가는 조류의 급한 물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바닷가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빠르고 거칠게 흘러가는 물살은 본 적이 없다. 정상이 아니다 싶을 정도다. 흰 거품을 물고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물살이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울돌목에서 오히려 잔잔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물살을 보게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떠올리다
정유재란 당시 이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퇴함으로써 다 쓰러져가는 전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원균의 지휘하에 있던 조선군은 거듭되는 패배로 지리멸렬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후에 역사가들이 이 전투를 명량대첩이라 명명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단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을 몰고 온 왜군의 대함대를 무찔렀다.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였다. 물론 울돌목이라는 지형지물을 지혜롭게 이용한 결과다. 이곳에서 매년 10월, 명량대첩을 재현하고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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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을 내려다보며 진도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울돌목을 위엄 있게 내려다보고 있는 충무공 승정공원이 나온다. 이 공원에서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간명하게 정리해 놓은 글을 읽는다. 온갖 차별과 모함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꿋꿋이 걸어간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 놓았다.
참 모질고 험한 길을 가셨다. 그런데도 전혀 굴함이 없었다. 그처럼 강한 의지와 정신이 있었기에 불멸의 역사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 울돌목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남다르다. 나도 내가 가야 할 길을 꿋꿋이 가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정말 쉽지 않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끝없이 흔들린다. 한없이 회의한다. 두 길을 놓고 어느 길이 좀 더 편하고 짧은 길인지를 견주느라 한참 머리를 굴린다. 우스운 일이다. 나름 옳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해 놓고도, 나중에는 버려진 다른 길을 가지 않은 걸 후회하기 일쑤니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을 내려다보고 있기 망정이지, 만약에 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감히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한눈팔고 있을 때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승정공원을 나오자마자 바로 오른쪽 해안 길로 접어든다. 처음부터 너무 겁먹게 만들지 않으려는 심산인지 해안길이 비교적 부드럽게 넘어간다. 해안길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메밀꽃축제 현장이 나타난다. 축제 기간은 지났지만, 메밀꽃은 여전히 만개한 상태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들판을 하얗게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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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비포장 길인 줄만 알았는데, 자갈길에 바닷가 산허리를 타고 넘는 산길이다. 신월리의 연대산을 바닷가 쪽으로 돌아가는 절벽길이다. 처음에는 경사가 낮아 조금만 참고 올라가면 바로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산허리를 하나 돌아 넘어갈 때마다 또 다른 산줄기 중턱으로 살짝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는 길이 보인다.
나중에는 약이 바짝 오른다. 자전거 아래에서는 타이어에 밟힌 자갈이 탕탕 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다 타이어가 찢어지는 건 아닌지 또 걱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비 타이어라도 가져올 걸 후회하지만 소용이 없다. 극히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가려니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길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얼마나 더 가야 정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계속 자갈이 튀는 길을 가는 게 너무 불안하다.
자전거로 산을 타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그 정도면 '양반'이라고 너털웃음을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산에 올라가 본 적도 없고, 산에 올라갈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로선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든 길이다. 증도에서도 이와 똑같은 길을 올라갔다 내려온 적이 있다. 그때도 산을 내려올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길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이 모두 내가 처음부터 해안선 여행을 너무 만만하게 본 탓이다. 이순신 장군이 갔던 '모진 길'에 비하면 이건 진짜 '점잖은 길'이다. '양반'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 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발 아래에 깔린 자갈에 신경을 쓰느라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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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를 일주하려면 미리 그 점을 각오하는 게 좋다. 참고로 <우리나라 해안여행>을 저술한 사람들은 이 길의 난이도를 '하'라고 평가했다. 어떤 기준에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평가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덧붙인다.
기이한 섬들이 여기 다 몰려 있네
가는 길이 힘들다고 다 피해 갈 수는 없다. 진도에서 꼭 들러 가야 할 길 중에 하나가 '세방낙조로'이다. 진도 서쪽의 세방마을을 지나가는 길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이 된 바 있다. 앞서 지나온 영광군의 백수해안도로처럼 이 길 역시 산허리 절벽 위를 타고 넘는다. 이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위의 섬들이 진풍경이다.
섬 한가운데 터널이라도 뚫어 놓은 것 같은 혈도, 섬 정상에 비석이라도 꽂아 놓은 것 같은 주지도, 섬 위로 곧추선 바위들이 발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발가락섬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양덕도, 사자 한 마리가 바다 위에 엎드리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광대도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섬들이 진도 서쪽 바다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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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바다 위에 안개가 덮여 섬들의 윤곽이 그냥 희미해 보일 뿐이다. 아쉽다. 맑은 날이었으면, 보기 드문 장관을 드러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와중에도 주지도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신기함을 넘어서 신비한 느낌을 주는 섬이다. 무언가 웅장한 전설을 간직했을 법하다. 없으면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 그 섬들 너머로 지는 해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세방낙조로에서 내려오는 길에 급치산해양경관공원 푯말을 보게 된다. 그 앞에서 또 갈등한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해안선 여행에서 해양경관공원을 그냥 지나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싶어 모진 마음을 먹고 언덕을 오른다.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올라간다.
그냥 걸어 오르는 데도 땀이 흐른다. 해발 221미터, 결코 높은 산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산길을 자전거를 끌고 900m가량 올라가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데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다. 얼마나 호젓한 길인지 도로 위에서 까치들이 떼로 앉아 장난질을 치고 있다. 전망대에는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전망대 끝까지 올라간다. 전망대 안에 뭘 하던 물건들인지 알 수 없는 초등학생용 책상과 나무 평상이 널려 있다.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물건들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이곳까지 와야 하는지 회의가 들게 만든다.
전망대 위로 바람이 몹시 세게 분다. 바람에 날아갈까 난간에 기대서서는 급하게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온다. 그 고생 끝에 촬영을 마쳤는데 제대로 찍힌 사진이 하나도 없다. 급치산해양경관공원, 사람들에게 잊혀 가는 관광지가 보여주는 쓸쓸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게 해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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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치산을 내려와 해가 질 무렵, 남도석성에 도착한다. 남도석성은 삼별초가 쌓은 성으로 몽골군과 전쟁을 치른 곳이다. 이곳에서 삼별초를 이끌던 배중손이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이 되어 있어 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재밌는 게 성 안에 일반 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거다. 사람들이 그렇게 한데 몰려 살게 되면, 언젠가 성을 허물고 나오기 마련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곳 사람들이 그동안 삼별초를 잊힌 과거로 덮어두지 않고 오랜 세월 경외심을 품고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진도에 삼별초와 관련한 유적지가 여러 군데 있다. 모두 진도 사람들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오늘 일정은 이곳에서 마무리한다. 오늘 달린 거리는 79km, 총 누적거리는 1984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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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할머니, 진도 바닷가에서 기적을 행하시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8] 진도군 임회면에서 다시 해남군 문내면까지
10월 13일(수)
날이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 해가 뜨기 전과 후의 기온에 큰 차이가 있다. 겨울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겨울이 오기 전에 이 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점점 더 강해진다. 내일이면 여행을 떠난 지 꼬박 한 달이 된다. 그런데 여전히 '땅끝'을 밟지 못했다. 이런 추세로 동해안 고성군까지 가는 데 얼마나 더 많은 날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아침 기온이 꽤 쌀쌀하다. 바람막이 점퍼 안으로 찬 기운이 스며든다. 이 상태에서 날이 더 추워지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회면을 나와 금갑해수욕장을 찾아가는 길에 산그늘이 짙다. 여귀산 산자락을 지나가는 길이라 공기는 더없이 시원하고 맑은데,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 많아 몸이 으슬으슬하다.
진도군에선 특이하게 이렇다 할 해수욕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도와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라는데, 이름이 나 있는 해수욕장 하나 갖춰져 있지 않은 게 조금 의아하다. 어제 저녁에 서망해수욕장을 지나쳤다. 도로표지판에 서망해수욕장 가는 길이 표시가 되어 있어 열심히 달려갔는데,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은 해수욕장이었다.
서망해수욕장은 크기가 초미니다. 해수욕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작다. 심하게 말해 손바닥보다도 더 작다. 그렇게 작은 해수욕장마저,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서망해수욕장은 근처 팽목항 확장공사로 폐장했다고 한다. 공사 현장에서 흘러드는 부유물질로 수질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찾아가는 금갑해수욕장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별로 내세울 게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역시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규모도 작고 시설도 보잘것없다. 그래도 아기자기한 멋은 있다. 해변을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마저 든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다면 조용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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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용하고 아늑한 해변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열심히 갯벌을 더듬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바지락을 캐는 것하고 또 다르다. 끝이 날카로운 조새 등으로 갯바닥을 여기저기 탕탕탕 두들긴다. 그러다가는 어느 지점에서 갯벌을 파헤친다. 아주머니 곁에 밥솥만한 냄비가 딸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맛조개가 반쯤 차 있다. 뜻밖이다. 그 귀하기 짝이 없는 맛조개가 이렇게 작은 해수욕장 갯바닥에서 잡히고 있다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아주머니 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뭐라고 소리를 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시 물었다. 펄을 밟지 말란다. 펄을 밟으면 맛조개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이런,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그 다음엔 어디로 발을 옮겨 디뎌야 할지 알 수 없다. 갯바닥이 펄과 모래가 적당히 뒤섞여 있어 상당히 단단하다. 그런데 그런 갯바닥을 밟지 말라니, 맛조개란 놈 상당히 예민한 게 분명하다.
조새 등으로 땅을 두들기는 것은 맛조개가 숨어 있는 델 찾기 위해서다. 잘 들으면 소리가 다르다는데 나는 도무지 그 차이를 모르겠다. 갯바닥을 두들기다 소리가 다르다 싶은 곳을 조새 끝으로 파헤치고는 그 안에 소금물을 조금 뿌린다. 그러면 맛조개가 쏙하고 얼굴을 내민다. 그때 그놈을 손가락으로 쑥 잡아 뽑는다.
곁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맛조개 잡기 참 쉽다. 물론 아주머니한테 해당되는 말이다. 나중에 혹시 어디 가서 써먹을 일이 있을지 몰라, 아주머니가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그만 소리를 구분하는 일에서 포기한다.
아주머니하고 얘기를 나누는 동안 완도 사투리가 전라도하고도 또 다르다는 걸 발견한다.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서울말'로 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안 된다. 조심스럽게 걸어서 해변을 빠져나온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도 아주머니는 계속 갯바닥을 두들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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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갑해수욕장에서 고군면 '신비의 바닷길'까지 가는 길이 매우 복잡하다. 할 수 없이 지도상에 그려져 있는 길을 포기하고, 도로가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에 집중한다. 그 길이 어떻게 해서든 나를 신비의 바닷길로 이끌 것이다. 이럴 땐 지도보다, 도로 표지판이 더 유용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신비의 바닷길에 도착하기 전에 삐에르랑디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삐에르랑디, 진도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삐에르랑디는 신비의 바닷길을 세계에 알린 프랑스인이다. 그는 진도에 잠시 들렀다 진도 앞바다가 쩍 갈라지는 걸 광경에 너무 놀라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는 내용의 글을 프랑스 신문에 게재했다.
그로 인해 신비의 바닷길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이 공원은 그의 그런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내가 보잘것없다고 소홀히 해온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엔 무척 귀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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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바닷길이 유명해진 뒤로, 이 지역에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바닷길이 열리는 지점을 공원화하는 한편으로 관련 전설을 되살리고 상징화하는 작업이 계속돼 왔다. 그 과정에서 '뽕할머니'가 되살아났다. 뽕할머니는 진도 고군면의 앞바다가 열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전설이다.
바닷길이 어느 날 갑자기 열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뽕할머니가 행한 기도의 결과라는 거다. 섬에 홀로 남아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뽕할머니가 바닷가에서 '용왕님'께 기도를 올린다.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용왕의 마음을 움직여 바다가 열린다. 모세가 행한 기적이 뽕할머니에게도 똑같이 일어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신비의 바닷길 앞에, 뽕할머니가 일으킨 기적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찾아온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바다를 향해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 뽕할머니 조각상 앞에서 한창 굿이 벌어지고 있다. 뽕할머니는 지극히 평범하고 수더분한 인상이다. 그런데도 그 앞에서 신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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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기적의 땅을 떠난다. 신비의 바닷길 이후로 전개되는 고군면의 바닷가길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신비의 바닷길이 아니더라도, 고군면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법한 길이다. 해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서쪽 해안을 지나가는 세방낙조로만큼이나 아름답다. 길은 넓고 쾌적하다. 차량마저 드물어 자전거타기 좋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진도를 빠져나가기 직전에 '삼별초 궁녀 둠벙'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안내판이 눈에 띈다. 안내판이 탈색이 심하고 훼손이 많이 돼 있는 걸로 봐서 그리 관리가 잘되고 있는 곳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지나쳐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명칭이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첫 번째 이정표를 그냥 지나쳤다가 두 번째에서 결국 핸들을 꺾는다.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물웅덩이이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느 물웅덩이보다 깊은 사연을 품고 있다. 진도에서 삼별초가 몽골군에 쫓길 때의 이야기다. 삼별초가 왕으로 내세운 '온'을 모시던 궁녀들이 있었다. 그 궁녀들이 몽골군에 쫓기다 적에게 욕을 보이지 않기 위해 함께 이곳 둠벙에 몸을 던졌다는 설명이다. 백제 멸망 당시 궁녀들이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것과 흡사하다.
백제에 이어 고려시대에까지 여자들이 한꺼번에 물로 뛰어들어야 하는 안타까운 역사가 계속됐다. 삼별초 궁녀 둠벙은 그냥 간과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곳이다. 둠벙 주변을 '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공원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실상은 작은 동산에 불과하다. 둠벙 물가에 동백나무를 심은 건 땅에 떨어져서도 싱싱한 기운을 잃지 않는 그 붉은 꽃이 궁녀들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뽕할머니의 기적이 이들 궁녀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진도에 와서, 명량대첩에서 보여준 진도 사람들의 충정도 그렇고 삼별초를 대하는 진도 사람들의 진지한 열정도 그렇고, 진도 사람들만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진한 사람들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달린 거리는 80km, 총 누적거리는 2064km다. 금갑해수욕장을 벗어나 얼마 안 간 지점에서 2000km를 돌파했다. 그새 5000리를 넘어섰다. 아무래도 이 여행이 1만리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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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한 생명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9] 해남군 문내면에서 해남군 땅끝까지
10월 14일(목)
문내면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중간에 77번 국도로 갈아타서는 화산면 월호리까지 이동한다. 확실히 국도가 빠르긴 빠르다. 굽어 도는 길도 거의 없고, 도로도 매우 평탄해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길을 버리고 해안선을 따라가야 한다면 이보다 2배 이상 길어질 수도 있다.
경사도 역시 상당히 완만해 보인다. 해안도로나 지방도로에 비해 도로의 경사가 낮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덕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넘는다. 게다가 도로 안내 표지판이 길 안내를 확실하게 해주고 있어 헷갈리거나 머뭇거릴 일도 없다.
다만, 국도에서는 차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게 흠이다. 차량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새로 개설이 되거나 개선이 된 국도는 도로도 넓고 갓길도 충분해 큰 위협을 받지 않지만, 77번 국도 같이 오래된 도로는 2차선 도로에 갓길이 없는 구간도 자주 나타난다. 국도라고 해서 다 같은 국도가 아니니까,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월호리에서 다시 해안가 길로 들어선다. 다시 고생길로 접어든다. 해안도로와 농로를 번갈아가며 달린다. 농로에서는 여전히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다. 지도를 들여다봐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농로라 할지라도 어딘가로 반드시 길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는 할 수 없이 감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들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이다. 다행히 해안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길을 찾아간다. 오늘따라 왠지 일이, 아니 길이 술술 잘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착각에 불과하다.
오늘은 길이 술술~~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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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해수욕장을 찾아간다는 게 길을 잘못 들어 송평항 부근에서 헤맨다. 송평항 부근의 해안에도 꽤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 뒤로는 해송숲이 높이 솟아 있다. 거기에서 한동안 그곳이 송평해수욕장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무언가 이상하다.
아무리 여름이 지나 해수욕장으로서 용도가 사라졌다고 해도 백사장에 김을 양식하는 도구들이 가득 차 있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지나쳐 온 게 아닌가 싶어 길을 되짚어 나간다. 어디에서 어떻게 길이 어긋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송평해수욕장은 송평항으로 들어서기 이전의 도로변에 있었다. 농로를 헤매다 보면, 이렇게 가끔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가 있다.
송평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매우 넓고 깨끗한 해수욕장이다. 바닷가 경치도 아름답고 물빛도 남해답게 맑고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다른 해수욕장들에 비해 부대시설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부대시설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너무 없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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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해수욕장을 나와 다시 송평항을 지나쳐 간다. 한동안 계속 바닷가 길을 달리다가 마을 안쪽 길로 들어선다. 두모리라는 마을이다.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를 것이 없다. 별 생각 없이 마을 안쪽 골목길을 지나가다 마을 공터에서 특이하게 생긴 비각을 하나 발견한다.
비각은 열녀각이고, 그 안에 작은 비석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이 비석을 세우게 된 연유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다. 어떤 사연을 가진 비석이기에 안내문까지 내걸었는지 궁금해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여기에 옮겨 적는다.
현산면 효열부 나주임씨정려
(孝烈婦 羅州林氏 旌閭)
해남군 향토유적 제13호
소재지 :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739-3
두모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효열부나주임씨정려는 효와 열을 겸비한 나주임씨의 덕성을 기리기 위해 어사 성수묵의 특명으로 고종 3년인 1866년 중건된 건물이다. 효열부나주임씨는 1895년(고종 32)에 편찬된 <해남상감록>효행열행편에 효열부나주임씨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집안에서 펴낸 '효열임씨여각실기'에는 고종 3년인 1866년 중건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나주 임씨는 15세에 시집왔으나 남편이 일찍 병사하자 맹인 시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친정에서 부지가 위급하다고 하여 가 보았으나 개가(改嫁)시키려고 거짓 연락을 한 것임을 알고 맹인 시아버지를 봉양하러 다시 돌아오려 하였다. 이에 친정에서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잡아가려 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했다. 이때 개가 나타나 임씨 부인을 업고 바다를 건네주어 시가에 도착한 임씨는 맹인시아버지를 모시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진도 고군면 원포가 친정인 김철산의 처 나주 임씨의 정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성수묵이 장계를 올려 정려를 세우도록 하고 삼강록(三綱錄)에 올렸다고 한다.
나주 임씨, 극적인 열녀의 삶을 남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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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을 늘어놓는 게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냥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 중에 하나로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사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열녀비를 이곳에서만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기는 해도, 이처럼 극적인 서사 구조를 갖춘 설명문은 처음 보았다.
두모마을을 지나서는 다시 해안에서 벗어난 길을 달린다. 한동안 추수가 끝나가는 들판이 계속 이어진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심하게 바람이 불고 있다. 좀처럼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앞서 18번 국도에서 번 시간과 속도를 다 까먹고 있다. 그러면서도 땅끝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엄남삼거리에서 '경치좋은길'이 시작된다.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는 길이다. 도로가 경사가 심한 편이라 힘들긴 하지만, 절벽 아래 경치가 좋고, 또 이 지점만 지나가면 가까운 거리에 땅끝이 있어 그 고통을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처음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경치좋은길'이 끝나도, 땅끝에 도달하려면 그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고비를 더 넘겨야 한다. 여기에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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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페달을 밟다가 한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길가 풀숲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가 모로 누워 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을 약간 벌리고 혀를 빼문 채 죽어 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멀쩡히 뜨고 있는 두 눈이다. 그 눈이 죽기 직전의 고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눈에 공포가 가득 차 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소름이 쫙 끼친다.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수없이 많은 로드킬을 봤지만, 이보다 더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은 처음이다. 머리가 깨지고, 내장이 터져 나온 동물들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그 사체들에서도 이처럼 강렬한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 개를 햇볕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묻어주지 못하고 온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죽은 채 먼지가 돼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버리고 죽이고, 죽여서는 계속 짓이기고, 짓이겨서 먼지가 되어 바람에 실려 날아갈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고는 누구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런 인간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땅끝에 들어서는 내 마음이 몹시 무겁다. 그 개를 본 이후로 '경치좋은길'에서 경치 같은 게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름끼치는 로드킬, 경치가 눈에 안 들어왔다
땅끝에 가 닿으려면 마지막으로 높은 언덕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마지막 고비이자, 시험이다. 그 언덕 정상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선다. 생각 같아선 쏜살같이 내려가 땅끝에 발을 딛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무언가 여운이 부족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과 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길고 멀다. 앞으로 가야 할 길 또한 결코 그에 못지않다. 조급해 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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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도로 주변 시멘트벽에 낙서가 가득하다. 그동안 이 고개를 넘어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기록이다. 그중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 도중에 이곳을 지나갔음을 자랑스럽게 기록한 낙서도 보인다. 그 낙서들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갔는지 알 수 있다.
부산에서 온 사람도 있고, 대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젊은이들이 경향 각지에서 땅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다. 그 낙서들에서 땅끝을 코앞에 둔 감동이 묻어난다. 갖은 고생과 힘에 부치는 고통 끝에 드디어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열광을 느낄 수 있다.
감동은 오늘도 계속된다. 땅끝마을을 산책하다 자전거를 타고 이제 막 땅끝에 도착한 세 청년을 만난다. 아주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들이다. 이제 막 땅끝에 도착한 듯 얼굴이 상기돼 있다. 이제 막 언덕에서 내려와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못하고 있기에 길을 가르쳐줬다.
그들은 서울을 출발해 여기까지 꼬박 6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무려 6일이나 걸린 걸 겸연쩍어 한다. 그래서 내가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 30일이 걸렸다고 하니까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6일도 길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30일은 너무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보면서 그들이 가진 체력과 젊음이 부러웠다. 그들이 타고 온 자전거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소위 '철티비'로 불리는, 강철로 만든 유사산악자전거다. 산악자전거를 흉내 낸 생활용 자전거로, 장거리여행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단점이 지나치게 많은 자전거라고 할 수 있다. 차체가 너무 무겁다. 특히 언덕을 오르는 데 취약한 조건을 갖췄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500km 이상을 달려 땅끝까지 달려온 건데, 보통 체력과 인내력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6일이 아니라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다음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내가 서울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땅끝에 왔으나 땅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가 달린 거리는 83km, 총 누적거리는 2147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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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에 꼭 드는 모텔 주인을 만났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0] 해남군 땅끝에서 완도항까지
10월 15일(금)
땅끝마을에서 쉬어갈 생각이었다. 30일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 무리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제까지 하루 평균 80km 이상을 달리고 있다. 90km를 넘은 적도 여러 날이다. 기계도 고장이 날 판인데 인간의 몸이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땅끝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쉬어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침 내 맘에 꼭 드는 모텔 주인을 만났다. 자전거를 방 안 현관에 들여놓는 걸 허락해 줬고, 방값을 2만 원밖에 받지 않았다. 최소 1만 원 이상을 깎아준 거다. 자전거여행자가 처한 현실을 100% 이해하는 주인이었다. 방은 호텔 부럽지 않게 깨끗하고 따뜻했다.
지금까지 30일을 밖에서 먹고 자면서 이렇게 화려한 조건을 갖춘 집은 없었다. 헛간이나 다름이 없는 여관이 2만5천 원이었다. 당연히 여기서 어느 정도 피곤이 가실 때까지 쉬고 싶었다. 내 집처럼 편안했다.
그런데 어젯밤, 방 안에 앉아 기사를 작성한 다음, 마지막으로 송고를 하려고 무선인터넷을 연결하는데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는 게 아닌가. 이건 아니야, 수긍하기 어려운 현실이라 계속 접속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메시지는 똑같았다. 결국 오늘 아침, 눈물을 머금고 짐을 싸야만 했다.
할 수 없이 땅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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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을 떠나 완도 가는 길, 남성리라는 마을을 지나가는 절벽 위 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마을 앞에 포구가 있고, 포구 앞 바다에 소나무를 이고 선 작은 바위섬이 홀로 떠 있다. 당연히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아, 카메라에 메모리 카드가 가득 찼다는 메시지가 뜬다. 아뿔사, 그 사이 이틀이나 메모리 카드를 비워 놓는 걸 잊었다. 하루 2기가 정도의 사진을 찍으니까, 4기가 용량밖에 안 되는 메모리 카드를 어제는 비워 놓았어야 했다.
할 수 없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컴퓨터를 켜고는 메모리 카드에 있는 사진을 옮겨 담는다. 이 작업은 다행히 도로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넓은 공간이 있어 가능했다. 사진 옮겨 담는 작업을 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풍을 맞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뭐하냐', '어디서 왔냐' 등으로 시작해 '힘들지 않느냐', '이제 어디로 갈 거냐'는 말로 이어진다. 한동안 참으로 느리면서도 긴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러는 사이 마을 할머니 두 분이 더 나타나더니 그때부터는 중구난방 맥락이 없는 이야기판이 벌어진다.
그 할머니들 덕에 앞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이 '감투섬(지도에는 감토도라고 표기되어 있다)'이고, 바다를 온통 뒤덮다시피한 부표가 전복양식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복양식을 얼마나 크게 하는지, 지금은 마을 젊은이들이 모두 전복 양식에 매달리고 있고 그 바람에 마을 앞바다에서 아직도 고기가 많이 잡히는데도 고기를 잡으러 나갈 새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헤어질 때가 돼서는 할머니들한테서 조심해서 가라는 말과 함께 힘들 텐데 잘 먹고 다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분들의 음성과 표정이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마치 고향마을을 떠나는 것 같은 서운한 감정에 젖는다. 이럴 때는 내 나라 내 땅에서 여행을 한다는 게 결국엔 오래전에 잊힌 내 고향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 마을이 어릴 적 내가 살았던 고향마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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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리 언덕을 내려오면 절벽 길도 끝이 나고 더불어 '경치좋은길'도 끝난다. 그러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역풍이 불기 시작한다. 매우 강한 바람이다.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데도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페달을 밟아야 한다. 힘이 두 배로 든다. 이 상태로 완도까지 가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나중에는 걸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완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달도를 지나야 한다. 달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2개다. 모두 남창교다. 하나는 헌 다리, 하나는 새 다리다. 헌 다리로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나는 당연히 헌 다리로 지나간다. 그리고 달도로 들어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완도교와 함께 그 옆에 한창 공사를 서두르고 있는 완도대교가 나온다.
그리고 그 중간에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오래되고 낡은 다리가 보인다. 다리만 무려 3개다. 그 다리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다리의 변천사라도 보고 있는 것 같다. 가운데 있는 다리가 1세대, 현재 통행이 가능한 완도교가 2세대, 아직도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완도대교가 3세대다. 3세대가 나타날 때까지 1세대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왠지 짠하다.
완도교는 육지와 섬을 잇는, 혹은 섬과 섬을 잇는 다른 다리들과는 달리 길이가 매우 짧은 편에 속한다.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라, 마치 육지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다. 그래서 그런지 완도교를 넘고 나서도 드디어 완도라는 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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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것도 힘이 들다니...
완도로 들어서서는 바로 바닷가 쪽으로 뱡향을 튼다. 하지만 일몰공원 부근까지는 내륙을 지나가는 77번 국도여서 바다를 볼 수는 없다. 완도에서는 추수가 거의 끝나간다. 해남을 지나올 때까지만 해도 추수를 하지 않은 논이 더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날씨도 더 따뜻한 느낌이다. 육지에서는 더 이상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완도로 들어서면서 바람막이 점퍼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간만에 이마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몰공원을 지나면서 산허리를 감아 도는 절벽 길이 시작된다. 절벽 위를 지나가는 이 도로는 드라마 <해신> 세트장이 있는 곳까지 이어진다. 절벽을 오르내리는 길이기는 하지만, 이전의 길들과는 달리 높낮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신> 세트장은 정문 사진 하나만 찍고 그냥 지나친다. 경치가 남다른 데가 있기는 하지만, 바닷가 세트장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제는 걸어 다니는 것마저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이곳의 입장료는 성인이 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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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로 들어선 이후로 마땅히 쉬어갈 만한 곳이 없다. 중간에 일몰공원이나 미소공원 같은 절벽 위 공원이 2군데 있기는 하지만,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침 햇빛이 역광인 데다 경치도 단조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정도리의 구계등에서 한참을 쉬어 간다. 해변에 동글동글한 돌밭이 1km 가까이 펼쳐져 있다. 해변 위로 돌밭이 9개의 계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서 구계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제 자갈이 크기별로 여러 개의 층을 형성하고 있다. 바닷가의 모난 돌이 오랜 세월 파도에 쓸리면서 서로 부딪혀 모가 깎여 오늘날의 구계등을 만들게 됐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세월이면, 모난 돌이 아니라 모난 정도 둥근 정이 되었을 법하다. 세월이 지나면 세상 모든 게 다 둥글둥글해지기 마련이다. 마음도 둥글, 몸도 둥글. 구계등 둥글둥글한 해변 위로 숲 속 산책로가 놓여 있다. 마치 동굴을 뚫어놓은 것 같이 깊고 어두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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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계등을 나와 완도항까지 내처 달린다. 가능하면 해가 지기 전에 완도타워에 올라가야 한다. 완도타워에서 서쪽 하늘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워 정상까지 나 있는 가파른 언덕길을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는 동안에 그만 등 뒤로 해가 지고 만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완도타워에서 해가 진 완도 시내와 항구를 내려다본다. 도시가 꽤 크고 화려하다. 섬이라고 느끼기 힘든 풍경이다. 완도에 와서는 정작 완도가 섬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오늘 달린 거리는 60km, 총 누적거리는 2207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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