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戰 ‘한반도 훈련장’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매년 새로운 도발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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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미 해군 7함대 상륙지휘함인 블루 리지함(1만8000t급)이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에 참가하려고 부산 해군작전 사령부 기지에 입항했다. 뒤로 보이는 것은 미군 핵추진 잠수함 콜럼버스호(7000t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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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월 이어지는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의 핵심은 전시증원이다. 주요 항구를 통해 미군 전력을 신속히 수용, 통합하는 과정을 맞춰보는 훈련이 키리졸브고, 이들을 지상을 통해 전선에 투입하는 과정이 독수리연습이다. 눈여겨볼 것은 전신인 팀스피리트나 RSOI(전시증원연습)가 한반도 상황에 특화됐던 것에 비해, 이들 훈련의 내용과 성격은 미군 병력이 투입되는 경우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도록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미국으로서도 이 정도 규모의 병력전개와 상륙훈련을 실제로 돌려볼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3월 초 한 전직 군 당국 관계자가 남긴 말이다. 미국의 군사전략 차원에서 한미연합훈련이 갖는 의미는 대북(對北) 억제 목적을 넘어선다는 것. 지구촌 어디에나 대규모 지상전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글로벌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워싱턴의 진짜 속내라는 뜻이다.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미군에게 인건비를 제외한 훈련비 상당 부분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키리졸브는 고맙기 짝이 없는 기회다. 남북관계 훈풍 같은 ‘작은 변화’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에만 특화해 군사전략을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유사시 한반도 전장에 적용될 미군 작전교리는 전체 미군 교리 변화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된다. 거꾸로 보자면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재빨리 간파해 대응하는 작전개념이나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작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2014년 봄 진행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평양이 내놓은 ‘답안지’가 바로 2월 21일부터 3월 16일까지 다섯 차례 진행한 동해상 단거리 미사일 발사였다.
동해상 단거리 미사일 발사
국방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들 미사일 발사는 사거리 55~500km에 고르게 나뉘어 진행됐다. 눈여겨볼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발사가 기존 스커드 미사일을, 다섯 번째 발사가 노후한 프로그 미사일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처음과 네 번째 발사에는 ‘KN-09’로 불려온 300mm 신형 방사포 시험이 포함됐다는 점. 2월 21일 100km를 날아갔던 이 방사포는 3월 4일에는 150km를 날아가 한미 양국의 정보분석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휴전선부터 따지면 충남 천안을 가뿐히 넘어서는 거리다.
군과 정보당국이 북한의 신형 무기체계를 확인하는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북한군 부대 사이 교신이나 훈련 내용을 파악하는 감청과 신호정보 확인이 첫 번째다. 이를 통해 신형 무기체계 개발이 의심되면 군 당국은 이내 영상정보 수집을 요청한다. 한국군 자체 정찰수단은 물론 미국 측 군사정보위성이나 정찰기를 통해 해당 무기체계가 노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집중 촬영하는 작업이 반복된다. 이렇게 확인한 신형 무기체계는 식별부호를 발급한 뒤 한미연합군이 함께 작성하는 한반도정보평가(Peninsula Intelligence Estimate) 보고서 등에 공식 취합된다.
북측의 시험발사는 그간 한미 양국이 파악해둔 정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먼저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이지스 구축함, 지난해 전방에 배치한 슈퍼그린파인 레이더를 풀가동해 날아가는 미사일이나 포탄의 사거리와 궤적을 추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발사체와 통제소 사이 오가는 원격정보(telemetry)를 가로채 성능을 파악하는 신호정보 수집이다. 통제소에서 미사일에 보내는 궤도·추력 변경 명령이나 미사일에서 속도와 고도 등을 취합해 보내는 데이터 통신을 확인하는 일종의 감청작업. 레이더를 이용한 궤도 추적은 한국군 자산만으로도 상당 부분 가능하지만, 원격정보 감청은 미군 측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험발사에서 300mm 방사포의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 수순으로 진행됐다. 북한의 방사포란 한국군의 다연장 로켓포(MLRS)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관 여러 개를 이동발사차량 한 대에 탑재한 무기체계다. 이름은 ‘포(artillery)’로 붙여졌지만, 사실상 포탄과 미사일 중간에 해당한다는 게 군사전문가들 설명이다. 포신 안에서 장약이 터지는 힘만으로 날아가는 포탄은 사거리에 한계가 있으므로 포탄 안에 추진제(propellant)를 넣어 일종의 로켓으로 만든 것이다. 기존 북한 방사포 가운데 최대 사거리를 자랑하던 240mm 방사포가 55km 내외를 날아가는 것에 비해 300mm는 150km 이상을 비행한다는 사실이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눈여겨볼 것은 이렇듯 추진제를 사용하는 방사포 로켓과 단거리 미사일을 레이더만으로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 재래식 포탄과 미사일은 아예 날아가는 궤도가 다르지만, 추진제를 사용하는 로켓은 미사일과 거의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지난해 5월 북한이 발사한 100km 내외의 비행체가 단거리 미사일 KN-02인지 300mm 방사포 로켓인지를 두고 군 당국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시험발사에서 300mm 방사포 로켓이라고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더 궤도추적에 더해 그간 한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신호정보를 활용한 덕분이라는 뜻이다.
방사포 로켓은 단거리 미사일과 달리 한꺼번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00mm 방사포의 경우 신관 4개를 차량 한 대에 탑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전에 발사 징후를 감지하기도 어렵다. 가장 큰 특징은 미사일에 비해 방사포 로켓이 수십 배 저렴하다는 사실. 단거리 미사일에 탄두 하나가 장착되는 데 비해, 방사포 로켓의 경우 대개 자탄 수백 개를 탑재해 타격 직전 목표물 주변에 흩뿌리는 방식을 택한다. 각각의 자탄이 쏟아져 축구장 크기만한 면적을 초토화하는 이른바 ‘철우(steel rain)’다.
동·서해 항공모함 투입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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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mm 방사포 발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다수 언론은 평택·오산 주한미군 기지나 계룡대 지역까지 장사정포 사거리에 포함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무기체계 전문가들의 우려는 각도가 다르다. 각 자탄이 수류탄 정도의 폭발력을 갖는 방사포 로켓은 벙커화된 군사시설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어렵기 때문. 기존 240mm 장사정포가 서울 민간지역을 주된 타깃으로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300mm 방사포 역시 민간지역을 노려 공포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쓰일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문제는 기존 장사정포가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발사해야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는 데 비해, 300mm 방사포는 평양-원산선 이남 어디서든 서울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광범위한 지역을 누비는 발사대 차량을 추격하는 일은 휴전선 인접지역만 감시하면 충분했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난한 작업이다. 더욱이 북한 장사정포를 파괴하는 한국군 주 전력 K-9 자주포(사거리 40km)로는 아예 근처에도 닿을 수 없다. 2020년까지 개발 예정인 차기 다연장 로켓(사거리 70~80km)도 미치지 못한다. 오로지 값비싼 공군 전력이나 미사일만이 이들 차량을 격파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층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유사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동해와 서해에 미군 항공모함 전단이 투입되는 경우다. 막강한 항공전력과 함대지 미사일로 무장한 항공모함이 평양을 향해 공습을 개시하는 일은 그야말로 한반도 전쟁의 최대 변곡점이다. 평양의 눈으로 볼 때 최대 난제는 그간 북한군에 이들 항공모함 전단을 공격할 수단이 전무했다는 사실. 오차가 최소 수백m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은 수십 기를 쏟아 부어도 명중을 자신할 수 없고, 항공기는 강력한 함대공 요격 미사일망에 막혀 근처에 닿기도 전 피격당할 게 빤하다.
300mm 방사포는 이 ‘오래된 고민’에 그 나름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일부 군사 전문가는 말한다. 점이 아닌 면을 타깃으로 하는 방사포 특성상 정밀성이 떨어져도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탄의 폭발력이 제한적이므로 함정을 관통해 격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투기 이착함이나 레이더 가동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2000만~3000만 원 상당의 방사포탄으로 척당 5조 원을 넘나드는 항공모함의 손발을 잠시나마 묶어둘 수 있다면 놀랍도록 경제적인 성과다.
A2AD(anti-access, area denial). 우리말로는 흔히 ‘반접근-지역거부’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21세기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전략 개념을 요약한 말이다. 적국 항공모함이 연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해안으로부터 일정 범위 이내에 진입하는 해상전력은 철저히 무력화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중국군이 2013년 10월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항공모함 킬러’ DF21-D 지대함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3000km에 달해 이 전략을 구현하는 대표 무기체계로 손꼽힌다. 3000km 안으로는 항공모함을 투입할 생각조차 말라는 무언의 경고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미 국방부는 유사시 항공모함을 괌 바깥으로 빼내고 스텔스 전투기와 잠수함을 초기 전쟁 수행 핵심수단으로 삼는 공해전(Air-Sea Battle) 개념을 정립해 서태평양 전력 재배치를 서두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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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공간에서 매년 전쟁
이에 비춰보면 300mm 방사포는 북한군이 작은 규모로나마 중국의 A2AD 개념을 ‘흉내 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이 북한 해안으로부터 최대 200km에 이르는 범위 안으로는 대형 함정 투입을 결심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서해에 미군 해군전력이 진입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동해 역시 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기동해야 하는 난점이 생긴다. 이러한 걸림돌은 전쟁 판도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경우에도 똑같이 발생한다.
‘상대 전력이 피해갈 수 없도록 화력을 사거리별로 구성한 배치체계’를 흔히 화망(火網)이라 부른다. 2월 하순부터 진행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에 대한 공격 능력 과시 못지않게 유사시 전개해올 미군 측 해상전력을 향해 촘촘한 화망을 구축해놓았다는 경고사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근 해역에 들어오는 함정은 모두 무력화할 ‘지역거부’ 능력을 과시하려고 다양한 사거리와 종류의 무기체계를 대규모로 발사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A2AD 전략으로 미군 항공모함을 먼바다까지 밀어내는 데 성공한 중국의 ‘개가’를 벤치마케팅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한 군 당국 고위관계자는 “한미연합훈련의 전력 이동 상황을 지켜보며 북한군도 그에 맞춰 대규모 병력 이동 훈련을 진행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한미 지상전력이 동부 축선에 집중되면 북한군 화력도 이 지역에 모이고, 남측 훈련이 상륙작전에 초점을 맞추면 북한군 역시 상륙 저지 연습에 돌입하는 식이라는 것. 1970년대 이래 한미연합군과 북한군은 매년 2~4월 연례훈련을 통해 이러한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았다. 양측 전력이 실제로 맞붙지 않을 뿐 가상 공간에서 서로 수를 겨루는 도상(圖上) 전쟁이 매년 봄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지는 셈이다. 한 전직 정보당국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훈풍과 미사일 연쇄발사가 연이어 진행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미를 따져 물었던 대다수 언론의 접근방식은 실제로 벌어진 일과는 거리가 멀다. 군사훈련 동향은 군사적 맥락으로 읽을 때 한층 쉽게 본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 이맘때면 한국과 미국은 다시 연합훈련을 진행할 테고, 북측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그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를 글로벌 전장의 일부로 인식하는 워싱턴과 변화하는 미국 측 군사전략을 따라잡으려 애쓰는 평양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다.”
B-52 출격…미사일 시험발사…어떻게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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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발사가 한국에서 주요 뉴스가 되는 것처럼 북한 역시 한미 양국 군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2월 6일 북한 관영언론은 국방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논의되는 와중에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 편대가 서해 직도 상공에서 핵 타격연습을 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2월 14일 미국 ABC 뉴스는 ‘북한이 B-52 출격에 화가 나 장기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를 다시 노동교화소로 돌려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종의 몽니였던 셈이다.
북측 성명이 공개된 이후 한미 정보당국은 사전 누설 여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의심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더욱이 이러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라는 것. B-52는 날개 너비만 56m에 달하는 데다 황해도에서 군산까지 직선거리가 150km 내외에 불과하므로 북측 레이더에 탐지될 개연성이 있지만, 동체가 작아 탐지가 쉽지 않은 한국군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북측이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경로는 공개정보다. 한국국방과학연구소(ADD) 등 무기체계 개발기관이 태안에서 운용하는 해상 발사실험장의 존재는 기밀이 아니다. 특히 민간선박의 안전을 위해 국립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 사이트를 통해 훈련 예정 사실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뭔가 훈련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북측에서도 사전에 파악이 가능한 셈이다. 북측이 이 정보를 예의주시한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된 바 있다고 당국자들은 전한다. 북측이 실제로는 진행되지 않은 남측의 사격훈련을 비난하고 나서는 바람에 우리 측을 당혹케 한 일이 있었다는 것. 예정된 훈련은 취소됐으나 항행경보 사이트에 올린 사전경고를 내리지 않아 생긴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거꾸로 우리로서는 장소와 무기체계 종류에 따라 북측이 훈련 실행을 직접 확인할 능력이 제한돼 있음을 확인한 계기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북한 관영언론이 북한군 레이더만으로는 탐지가 어려운 세부사항을 언급하며 비난에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우리 측 미사일 개발이나 미군 전폭기의 서해 진입은 중국이나 러시아로서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북측에 흘려 자기들 대신 문제를 제기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대북제재 동참을 공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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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2함대에 전시 중인 천안함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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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리처드 클라크라는 대테러 전문가가 있었다. 2001년 1월 그는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보좌관에게 “알카에다가 미국에 엄청난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라이스는 이를 무시했다. 그래도 주장을 굽히지 않자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당신은 빈라덴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클라크를 핀잔하며 “여러 사람 시간낭비하게 만들지 마라”고 경고했다. 하찮은 테러리스트 한 명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걸 믿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클라크의 경고가 있고 몇 달 뒤 9·11테러가 터졌다. 역사는 누가 옳았는지 증명해줬지만, 정작 테러 이후 해고된 사람은 클라크였다. 그의 경고를 무시한 네오콘이 계속 승승장구하자, 야인이 된 클라크는 미국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 나와 이 사실을 폭로했다. 이처럼 ‘조직에서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안전요원’을 가리켜 흔히 알라미스트(alarmist)라고 한다. 이를테면 ‘경고하는 인물’인 셈이다.
모두가 ‘알라미스트’ 주장
4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강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은 분명 우리 직관과 상식으로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예측 혹은 경고한 사람, 즉 알라미스트가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인 2009년 11월 우리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막강한 화력을 쏟아부어 북한 승무원 8명이 사상한 ‘대청해전’이 발생했고, 2010년 1월에는 김격식 북한군 총참모장이 해주를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부임했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4군단 관할인 서해 합동화력시범에 참석해 결전 의지를 독려하는가 하면, 2010년 1월 26일에는 NLL 부근에 대규모로 포를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3월 말까지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NLL 일원에서 ‘통항금지구역’을 선포하고 해안포를 앞세워 본격적으로 남을 압박했다. 북한군 서해사령부에 잠수정 약 8척이 배치된 것도 우리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었다.
서북 해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처럼 최고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북한의 수중 도발을 경고하지 않았을까. 4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이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명확한 교훈을 얻으려면 먼저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천안함 사건 두 달 후인 5월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2009년 말 이상의 합참의장과 작전본부장이 해군에 서해에서의 대잠수함작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대비하도록 지침을 주었으나 예하부대는 이를 무시했다’는 보도였다. 사실상 경계 실패 책임을 해군에 전가하는 내용이었다. 이 주장대로라면 알라미스트는 바로 합동참모본부(합참) 자신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의 한 장교는 정반대로 “주한미군 측은 2009년 말부터 수차례에 걸쳐 합참에 서해상에서 북한의 비대칭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며 “그러나 합참의 대비는 형식적 차원에 머물렀고 주한미군은 이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필자에게 설명한다. 합참으로부터 ‘명령불이행’으로 화를 자초했다고 낙인찍힌 해군은 어떤가. “비대칭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대형 함정을 NLL 부근에 전진 배치해 표적이 되는 비합리적 전술을 지시한 당사자는 합참”이며 “해군은 당시 이런 기동을 반대했다”는 게 해군 측 주장의 골자다.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필자에게 이러한 논리를 분명히 강조한 바 있다.
A장군 수뇌부 비판 책 무산
정리하면 이렇다. 모두가 자신이야말로 북한의 잠수정 공격을 예상한 알라미스트고, 그럼에도 천안함이 경계에 실패한 이유는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임 전가 논리만 난무할 뿐 명확한 사실관계나 책임 소재마저 여전히 분명치 않은 것이 천안함 4주기를 맞은 한국군의 현실이다. 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러한 난맥상이 한층 강해졌음을 입증할 뿐, 본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해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수중어뢰에 의해 폭침당했다는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감사원은 대규모 특별감사를 통해 군사대비태세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그러나 감사는 행정적 문제, 즉 절차와 규정 준수 여부만 따졌을 뿐 군사대비태세에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징계처분을 받은 장교 대부분이 구제된 점도 감사 적절성에 의문을 갖게 한 요인이 됐다.
정작 이 문제에 접근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에 근무하던 A장군은 이후 한미연합사령부로 발령받아 이동했다. 이 무렵 그는 2011년 말까지 대략 A4 용지 3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집필한다. 이 자료에서 A장군은 천안함 사건을 ‘대청해전으로부터 시작된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도발’이라 규정하고 이를 ‘대청해전 나비효과’라고 불렀다. 군이 이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수뇌부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비전문성에서 비롯됐다는 일종의 대국민 고발장이었다.
A장군은 이를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2011년 12월 군 검찰 수사관들이 그의 사무실과 숙소에 들어와 그간 집필한 원고와 자료,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하고 약 2주간 A장군을 조사했다. 그 결과 A장군의 출판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렇듯 사건 발생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와서 되짚어볼 때 천안함 사건의 가장 불행한 단면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정작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대부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군의 어떤 정치적 동기, 어떤 지휘체계, 어떤 무기체계, 어떤 전술이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그 흔한 논문이나 세미나조차 없었다. 앞으로 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해도 과연 군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러울 정도다.
의심은 과학을 낳고 믿음은 종교를 낳는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믿음 문제로 취급되는 순간, 이 사건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통찰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정치적 편 가르기였다. 그 결과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 국민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분열적 양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군은 천안함 사건과 그해 11월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며 지휘체계와 작전의 전문성, 조직 간 협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여러 숙제를 떠안았다. 우리 군은 북한의 국지도발에 맞서 미군의 지원 없이 어느 선까지 응징하고 보복할 수 있는가, 무력행사에서 그 한계점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극심한 혼선을 겪었기 때문이다.
현장 군사력뿐 아니라 항공기를 동원해 북한의 도발원점과 그 배후까지 타격하는 절차 및 내용은 2012년 한미연합 국지도발대비계획을 통해 확정됐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계획을 가동하는 과정에서도 한반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미국과 독자적으로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한국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발생할 수 있고, 여전히 많은 부분을 한미 정부 간 정치적 절충에 맡겨놓았다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최근 출간한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부 장관의 회고록은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국지도발 신속 대응에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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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어려운 문제는 육·해·공군 간 원활한 협조를 통해 합동 전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 군은 평소 소리 높여 합동성 강화를 외치다가도 정작 안보 위기가 닥치면 감정적 앙금을 드러내며 반목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흡사 보통 때는 사이가 좋지만 유산 상속 문제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는 형제 같은 모양새다. 천안함 사건에서는 합참과 해군 작전사령부, 2함대 사이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에는 합참과 공군 사이에서 불거진 협조 미비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한계야말로 북한 국지도발에 신속히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적시에 제대로 자위권을 행사하지 못한 군대가 피할 수 없는 뼈아픈 굴욕이었다. 이 때문에 합동성 문제는 2011년 군 지휘체계 상부구조 개혁을 둘러싼 극심한 논쟁으로 비화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실상 좌초된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각 군 조직의 이익을 추종하는 논리를 초월해 3군 합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우리 군 개혁의 가장 큰 숙제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3월 6일 박근혜 정부는 국방개혁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해 이번 계획의 핵심은 지상군 전력인 육군 개혁을 뒤로 미루면서 현행 군 구조와 부대 편성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것에 가깝다. 한마디로 천안함과 연평도의 교훈이 반영됐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지도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은 지상군이 아니라 해군과 공군력이므로 지상군의 더 많은 양보는 사실상 불가피하지만, 이번 계획은 육군 구조개편을 사실상 다음 정부로 이월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표방한 이른바 ‘능동적 억제전략’이라는 군사교리 역시 그 실효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척도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높은 결의와 군을 재창조하는 실천적 노력이다. 이런 흐름이 군 전반의 자기 혁신으로 연결되는 것이야말로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 돼야 옳을 것이다. 과연 우리 군은 지난 4년간 이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갈 길은 멀고 불신은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설적 상황이야말로 천안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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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4주기가 돌아왔다. 천안함 사건은 흔히 ‘경계의 실패’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이해된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북한 조선인민군(인민군)과 대결을 가장 많이 하는 NLL(북방한계선)에 작전을 나간 배가 적 잠수정이 다가와 어뢰를 쏘는 것도 모르고 당했으니 용서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하지만 많은 장병이 희생됐기에 넘어갔다.
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이들만 처벌했다. 2함대 지휘관 등에게 정직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 논리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이해를 돕기 위해 육군 경우로 바꿔 설명해보자.
‘작전에 실패’한 이들만 처벌
DMZ(비무장지대)에서 GP(경계초소)를 지키는 수색소대는 적이 몰래 접근해오지 않는지 경계근무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계로 막을 수 없는 공격이 있다. 적이 후방 30여km에서 미사일을 쏜 경우다. 그 공격으로 GP가 붕괴했다면 경계에 실패했다고 수색소대장을 처벌할 것인가.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사단은 더 많은 정보와 장비를 갖고 있으니 미사일 공격에 대비했어야 한다”며 사단장을 처벌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단도 30여km 후방은 탐지하기 어렵다. 이는 정보사와 777부대(통신감청부대), 미군 정보부대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현재 우리 군은 금강 정찰기, 미군은 U-2 정찰기로 휴전선 이북을 감시한다. 금강과 U-2 정찰기가 번갈아가면서 촬영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더욱 큰 한계가 있다. 비행기는 한곳에 오랫동안 떠 있을 수 없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 착륙해야 한다. 그런데 찍어야 할 곳은 많으니, ‘동에서 서’ 아니면 ‘서에서 동’으로 비행하며 찍는다. 중간에 찍을 필요가 없는 산악지대가 있으면 카메라를 돌려 중요한 곳을 계속 찍는다. 그런데 비행기는 계속 날아가니 같은 곳을 10분 이상 찍는 것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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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4주기(3월 26일)를 앞두고 3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열린 ‘천안함 피격 사건 4주기 사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추모의 벽에 고인들을 기리는 태극기를 놓고 있다.
인민군도 레이더를 이용해 금강과 U-2 정찰기가 뜬 것을 감지해낸다. 그렇다면 정찰기가 올 때 인민군도 딴 짓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23시간 50분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공백을 777부대가 메운다. 777부대는 인민군이 주고받는 무선을 포착해 해독함으로써 인민군이 무엇을 하려는지 추적한다.
이러한 정보를 합동참모본부(합참)가 정리해 작전부대에 전파한다. 그때 판단 의견을 덧붙이는 게 바로 ‘전략 경계’라고 할 수 있는 정보작전이다. 이들이 판단한 정보가 틀리면 작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틀린 정보를 입력했는데 바른 결론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합참이 적이 미사일을 쏠 것을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데 GP가 적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무너졌다면 책임은 사단장이 져야 하는가, 합참이 져야 하는가. 그래서 경계의 실패 이상으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 바로 ‘정보의 실패’다. 그동안 천안함 사건을 분석할 때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
천안함 사건에서 최대 의문은 사건 한 달 전인 2월 18일 합참이 모든 경계 강화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 4개월여 전인 2009년 11월 10일 해군 2함대는 대청해전에서 승리했다. 그러자 북한이 보복성전을 외치며 NLL 너머로 사격하는 등 큰 위협을 가해왔기에 우리 군은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그런데 합참이 천안함 사건 한 달 전 이를 모두 해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시기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대청해전 한 달 전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대청해전 후 이 회담은 결렬됐다. 그러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나서서 다시 잡아당겼다. 인민군이 NLL 너머로 사격하는 등 긴장을 고조할 때 이 전 대통령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내라도 김정일을 만날 수 있다”고 운을 띄웠다.
해군은 ‘해상·대잠(對潛)’ 경계를 하는데 가장 센 것이 A형, 가장 약한 것이 C형이다. 합참 지시에 따라 2월 19일 새벽부터 천안함 사건을 당할 때까지 2함대는 C형 경계를 했다. 그때 북한 잠수함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겨울 북한 해안은 얼어붙기에 기지에 들어간 북한 잠수함정은 나오지 못하다가 2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북한 해군이 운용하는 공격 잠수함은 상어급이다. 좀 더 큰 로미오급도 있지만 거의 기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어급이 기지에서 사라지면 경계태세를 강화할 수 있다. 3월 중순 합참은 북한 ○○기지에서 상어급 잠수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계속 C형을 유지하게 했다.
이러한 경계경보와 별도로 징후경보라는 것이 있다. 징후경보는 북한 공작원이나 간첩선 등이 넘어올 것으로 보이면 A, 그럴 개연성이 매우 낮으면 G를 발령한다. 상어급 잠수함이 기지에서 사라졌을 때 합참은 일시적으로 징후경보 A를 내렸다가 기지로 돌아온 것이 확인되자 3월 23일 G를 내렸다. ‘아주 편히 쉬어’ 명령을 내린 것.
3월 23일 북한 △△ 기지에 있던 연어급이 사라진 사실도 확인했다. 2시간 후 우리 군은 황해남도 □□해상에서 연어급을 발견했다. 그러나 저녁에는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상어급은 돌아왔지만 연어급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징후경보를 A나 B로 올릴 법한데, 합참은 계속 G를 유지했다. 그렇게 C-G 상태로 있다 26일 당한 것이 천안함 격침 사건이다.
진상 알려면 청문회 열어야
그렇다면 그날 ‘전략 경계’와 정보에 실패한 쪽은 합참이다. 그러나 합참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정보부대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작전의 실패에 대한 책임만 물어 2함대 사령관에게 정직처분을 내렸다. 이에 2함대 사령관이 불복해 소송하면서 길고 긴 법정 싸움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당일 합참 지시로 가장 태평한 C-G가 발령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보의 실패는 있었지만 작전도 실패한 것이니 2함대 사령관 정직처분은 맞다는 것이 재판부 판결이었다.
천안함 사건 뒤에는 이처럼 심각한 정보의 실패가 숨어 있다. 그때 왜 합참은 안일한 정보 판단을 한 것일까. 많은 이가 ‘3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게 하려고 그랬다’고 추측한다. 이들은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알려면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 천안함 사건과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한 이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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