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신동아특집_11·23 연평도 도발 그 후

醉月 2011. 1. 29. 10:09

북한은 왜 연평도를 공격했을까.
정부와 군의 대응은 어떠했으며 드러난 문제점은 무엇인가.
과연 한국군은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나.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 “교전규칙 얽매인 건 형식주의와 기회주의에 빠진 탓”

● 미·중 대립구도 이용해 베이징 압박하는 ‘전쟁 비즈니스’

●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 연평도 피폭 데이터로 분석한 북한 장사정포 서울 공격 시뮬레이션

● 팥소 없는 찐빵 닮은 국군 사이버사령부

 

 

 

 

 

[심층분석] 미·중 대립구도 이용해 베이징 압박하는 ‘전쟁 비즈니스’

연평도 포격에 담긴 북한의 ‘숨은 뜻’

조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homin55@hanmail.net  

 

북한은 왜 연평도를 공격했을까. 이로써 북한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한반도를 벗어나 ‘미국과 중국의 신(新) 냉전구도 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들여다보면 해답은 더욱 명확해진다. 한반도 서해를 도화선 삼아 이러한 대립구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을 압박하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며 소련의 지원을 얻어낸 바 있는 평양이 이번에는 중국의 보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월29일 서해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 승조원들이 함재기의 이착륙을 돕고 있다.

 

11월23일 연평도 포격에 담겨 있는 북한의 전략적 목적은 다층적이다. 세습 후계자의 군권 장악이나 리더십 과시를 위한 도발이라는 분석은 이미 상식이 됐다. 대미(對美) 협상용이라거나 대남(對南) 압박 카드라는 설명, 즉 북방한계선(NLL)의 분쟁수역화와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통해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도이거나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강요하는 협박이라는 지적도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하기에 또 하나의 노림수는 시선이 쉽게 닿지 못하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중국이다. 평양은 이제 한국과 미국을 넘어 중국을 전략적 타깃으로 삼아 치밀하게 계산된 ‘전쟁 비즈니스(war business)’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남북관계 변수로만 접근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반도 문제는 21세기 세계사적 변화와 함께 동북아 지역의 국제정세 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지금 우리 시대 최대의 드라마는 다름 아닌 중국의 부상(浮上)이며, 앞으로 세계사는 중국의 행보를 둘러싼 패권국가 간의 각축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역학 구도도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대한 체스판

오바마 정부의 세계 전략이 중동 전략에서 대중(對中)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을 막지 못하면 앞으로 자신들의 전 지구적 헤게모니 구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의 최대 고민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공세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뜻 연평도 도발과 무슨 관계가 있으랴 싶지만, 잠시 동아시아 전체 지도를 머릿속에 떠올려놓고 이 거대한 체스게임을 따라가보자.

말라카 해협은 길이 800㎞, 최소 폭 2.8㎞로 세계 해상 물동량의 4분의 1, 세계 원유 수송량의 절반 이상, 동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공급량의 90% 이상이 통과하는 지리적 요충이다. 미국은 한반도,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잇는 해상루트를 장악하면서 중국의 해상진출을 억제하는 이른바 ‘헤징(hedging·울타리 치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중국은 경제적·전략적 교두보 확보를 위해 서쪽으로는 미얀마, 동쪽으로는 북한의 나진항과 청진항을 통한 해상루트 확보를 추진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미·중 간의 정치적·경제적 갈등, 중·일 영토분쟁, 중·러 밀착 흐름 등이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역학구도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도다.

미국은 남중국해 길목을 지키고 서서 중국의 남진(南進), 즉 해상진출을 막고 있다. 남중국해는 동북아와 인도양을 잇는 해역으로 가장 중요한 통상 루트이자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300만㎢에 달하는 방대한 해역에서 나오는 천연가스와 석유,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중국이 서진 및 남진 정책에 주력하는 것은 단순히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목적만이 아니다. 미국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서태평양 지역과 남중국해 지역이 봉쇄당하면 유사시 에너지와 원료 공급 루트가 차단당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에너지 자원의 80%가 미국의 제해권 아래 놓인 말라카 해협과 서태평양 통로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이 해역이 봉쇄되면 매우 심각한 안보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남중국해 시사군도(西沙群島·파라셀) 및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를 둘러싸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대만, 티베트와 더불어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규정하는 중국의 입장과 공해인 남중국해를 독점하려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은 이 지역에서 중국과 분쟁 중인 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바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의 봉쇄를 뚫고 해상루트를 확보해 중동의 산유국에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중국은 파키스탄과 이란을 지원하면서 인도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를 모색하는 한편 이란 가스전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해양봉쇄를 우회해 육로로 중동 산유국에 접근하는 서진(西進)전략 위에서 이란-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증국 신장으로 이어지는 철도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이란에 최대 경제협력국가로 떠오르며 손을 잡자 미국은 이란의 안보위협을 문제 삼으며 경제제재를 결의하고 나선다.

   

 

최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강도 높은 대(對)이란 경제제재 조치는 핵개발 문제뿐 아니라 중국과 이란의 제휴와 결속에 따른 전략적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옳다.

9월에는 동중국해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국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일본이 중국의 경제적 압박 카드에 굴복함으로써 일단락된 이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중국은 분쟁의 핵심 원인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전략을 지목하고 나섰다. 이후 중국은 다시 미·일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댜오위다오 문제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정치 파도가 한층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균형추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형성되면서 한반도에서도 지각변동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중 간 세력균형이 형성돼 남북 간의 ‘균형’이 회복된다면 한반도 분단구조는 새로운 형태로 주조(鑄造)될 수 있다. 즉 군사적·경제적 측면에서 한·미 동맹에 대응하는 북·중 혈맹이 강화되어 분단구조가 새로 강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는 바로 이러한 구도 아래에서 벌어졌다. 이를 통해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대북 압박수위를 높여가자 중국의 대미(對美) 긴장 역시 순식간에 급상승했다.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밀착을 과시했다. 장기간의 대북압박과 제재 국면에서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 중국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었고, 중국은 완충지역의 존속과 동해로의 출구 확보를 위해 (내심 탐탁지 않았다 해도) ‘말썽꾸러기’ 북한을 떠안아야 했다.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한층 강화된 상황이다 보니 밀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혈맹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한이 얻은 것은 별로 없다. 김 위원장은 5월 베이징 회담 당시 대북원조 ‘청구서’를 내밀었지만 중국 측의 미지근한 반응에 발길을 돌린 바 있다. 8월 창춘에서 열린 회담 후에도 지금까지 중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군사·경제적 원조를 받아내지 못했다. 9월말 이래 후계체제 확립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의 어려운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중국은 ‘화끈한’ 지원 모션을 취하지 않았다.

사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사회주의 대국 구(舊) 소련도 믿지 않았고, 과거의 중국이나 지금의 중국도 믿지 않는다. 중국 또한 아무리 정상회담을 연거푸 두 번이나 했다 하더라도 북한을 무조건 지원할 생각은 없는 듯한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을 대폭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욱 현명한 전략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서해에 미군 항모가 들어오면

북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지형을 크게 흔들어대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 혹은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을 억제해야 할까. 일단 한국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개최로 최소 21조원 이상의 직간접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쏘나타 자동차 100만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65척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라는 추산이었다. 그런데 잠깐 동안 벌어진 북한의 포 사격으로 이러한 ‘코리아 프리미엄’은 순식간에 날아갔고,‘코리아 디스카운트’만이 부각됐다. 한국의 경제가 얼마나 안보위기에 취약한 구조인지 다시 한 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피해가 북측에 당장 직접적인 이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포격으로 인해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고, 스스로 그러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향후 협상국면이 회복되는 시점까지 고려하거나, 남한을 계속 흔들어가며 2년 후 출범하는 다음 정부와 다시 시작하겠다는 입장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불투명한 미래의 일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천안함 사건 이후 진행상황에서 확인됐듯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반드시 미국의 개입을 불러오고 일본의 군비확장을 부추긴다. 더욱이 서방언론이 북한의 도발을 중국의 지나친 관용 탓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도 베이징의 정책결정자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몰입하기를 원하는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고, 위기의 발생 자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연평도 포격에 얽힌 북한의 대외전략 포커스는 바로 이 부분에 맞춰져 있다. 동북아에서 긴장과 위기를 불러일으킬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그래서 미국의 항공모함이 중국의 코앞까지 진출하는 상황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지렛대를 갖고 있음을 중국에 주지시킨 것이다. 베이징이 이러한 북한의 메시지를 간파했다면 후 주석은 북·중 간 당 고위층 인사의 상호방문을 통해 대외적으로 ‘6자 긴급협의 개최’를 제의하면서 김정일의 ‘청구서’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푸에블로호의 선례

 

평양의 근로자들이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이 나포한 미국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구경하고 있다.

 

평양의 의도를 과도하게 해석한 것일까. 그러나 북한은 과거 냉전시기에도 이와 유사한 긴장 혹은 위기조성으로 한몫을 크게 챙기는 ‘전쟁 장사(war mongering)’의 경험을 갖고 있다. 미 해군 푸에블로호 나포로 한반도 긴장을 바짝 고조시킨 가운데 대소(對蘇) 협상을 통해 소련의 대대적인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끌어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집권한 후 북·소관계가 회복되자 1965년부터 1968년 사이 소련의 대북지원은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6년 북한은 소련에 발전소, 금속가공공장, 알루미늄 공장, 암모늄 공장 건설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는 원유저장시설도 없는 형편에 석유정제공장까지 요청했다. 모스크바 근처에 공산품 공장을 세워 대외선전용 제품을 만들어 소련에 팔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의도 있었다. 중·소 분쟁이 한창이던 상황이다 보니 소련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떨어뜨려놓기 위해 일정 수준의 경제적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지만,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1968년 1월23일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 함정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터진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미국은 엔터프라이즈호 등 3척의 항공모함을 출동시켰고 오키나와에 있던 공군기들도 남한으로 전진 배치됐다. 한반도에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미국은 북한의 행동 뒤에 소련의 방조가 있다고 여겼지만, 그러나 정작 북한의 모험적인 도발에 격노한 측은 극동지역에서조차 미국과 대립하기를 원치 않았던 브레즈네프 서기장 측이었다.

브레즈네프는 즉각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소련은 이번 사태와 전혀 무관하며 평화적 해결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침 자국 내 반전 열풍 속에서 베트남 구정공세(Tet)의 충격에 휩싸여 있던 존슨 행정부는 브레즈네프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엔터프라이즈 항모가 동해상에서 철수하자 판문점에서는 곧 북·미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이렇듯 김일성 당시 수상은 푸에블로호 나포를 통해 1961년 체결된 조·소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과 1965년의 조·소 군사협정을 시험대에 올렸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김 수상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였지만 그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대신 부수상 김창봉을 보냈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그와의 장시간 면담을 통해 북한의 긴장완화와 대미협상을 촉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핵무기를 제외한 최신 무기체계의 무상원조는 물론 경제지원에 대한 북한 측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결정을 내린다. 비록 북한의 행동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사회주의 진영의 리더로서 국제주의적 책무를 다한다는 명분을 과시하는 동시에 북한을 달래기 위해 평양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해 북한은 소련의 원조에 힘입어 시설용량 200만㎾의 북창화력발전소 건설 첫 삽을 떴고, 몇 단계의 확장공사를 거쳐 오늘날 북한 최대의 발전소를 완공했다. 같은 시기 북창 알루미늄 공장을 건설했는가 하면, 1980년대 중반까지 최신형 전투기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받아 국방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후 푸에블로호 승조원 82명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고 한반도를 바짝 긴장시켰던 위기사태는 일단락됐다. 발생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안 줄 수 없도록 만들어라

지난 5월 후진타오 주석은 천안함 사태로 곤경에 처한 김정일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국제사회가 요구한 ‘북한 책임 인정’을 거부하고 북한을 끌어안는 한편, 이를 계기로 북한의 대중 의존을 확고히 할 심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 측이 강조한 “전략적 소통 강화, 내정(內政) 문제의 의사소통”이라는 어젠다 가운데 ‘내정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쏟아진 바 있다. 사실 내정 문제에 대한 협의는, 그 상대가 아무리 혈맹과 우의를 강조해온 중국이라 해도, ‘자주’와 ‘주체’를 내세우는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2010년의 북한이 안보, 경제, 후계문제, 대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김정일 위원장은 4년 만의 방중에서 북한 사정을 뻔히 아는 중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군사·경제적 원조를 얻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고, 이를 위해 후진타오 주석과 담판 짓기를 원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수십대 규모의 최신예 전투기와 300억달러 상당의 경제협력 지원, 매년 원유 100만t과 쌀 100만t 긴급지원 등의 ‘청구서’를 내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이 제안한 협력사안들은 원조나 지원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이 알맹이가 사라진 말뿐이었고, 특히 경제무역 분야에서는 상호주의적 접근방식마저 드러냈다. “13억 중국 인민도 굶지 않는데 2000만을 못 먹여 살리느냐”고 힐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개혁·개방에 대해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제의하면서도 결국 김 위원장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5월의 만남이 이렇듯 해프닝으로 끝난 데다, 8월의 정상회담에서조차 후진타오 주석은 후계자 구축을 위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갈 길이 바쁜 김정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결국 평양의 눈으로 보자면, 이제 아무리 졸라대도 보따리를 풀지 않는 중국을 향해 다른 시그널을 울릴 타이밍이 된 셈이었다. 순순히 지원하지 않는다면 지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간 ‘사회주의 형제국’이라는 립서비스는 무성했지만 중국은 북한을 ‘통 크게’ 지원한 적이 없다. 1950년대 말 중국이 대약진운동에서 실패한 뒤 만주지역의 주민 수만 명이 강을 넘어 북한 땅에 진입했을 때 평양은 성의껏 도왔지만, 중국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3년 동안 북한을 외면했다.

이는 2010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북한을 중국은 계속 외면했다. 조약이나 혈맹 회복이라는 말의 성찬에 실망한 북한에 남은 카드는 단 하나였다. 남한을 때려 위기국면을 조성함으로써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누가 초조해 하겠는가. 바로 신(新)냉전의 먹구름이 너무 빨리 몰려와 자신들의 경제성장 전략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중국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을 달래야 하는 것 역시 중국이 된다.

 

27세의 후계자

1968년 당시 27세의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가 극한의 위기를 조성해 미국과 소련이라는 세계 대국을 다루면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얻어내는 솜씨를 옆에서 지켜본 바 있다. 이제 그는 27세의 세습 후계자에게 한국과 미국, 중국을 다루는 솜씨를 전수하는 중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한반도 동해에서 소련을 상대로 벌인 ‘전쟁 장사’였다면, 연평도 포격은 서해에서 중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 비즈니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대미(對美)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중국이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대량원조로 김정일을 달래는 것 외에 과연 다른 카드가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연평도 포격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숨은 타깃이다.

 

조민
1955년 경남 의령 출생
고려대 노문과 졸업, 고려대 정치학 석·박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부원장
저서 및 논문 : ‘평화통일의 이상과 현실’ ‘한반도 평화체제와 통일’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핵문제’ ‘북핵 일괄타결 방안 : 의의 및 추진방향’ 외

 

 

 

[집중취재]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北 비대칭 군사전략 vs 南 국방개혁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유지해온 비대칭 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광복 이전 만주에서 벌였던 유격대 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대칭 전술의 DNA’가
기존의 전면전 대비태세를 넘어 군사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음을 의미하기 때문. 그러나 이에 맞서는 한국군의 대비태세는 여전히 전면전 중심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최근의 국방개혁 논의는 오히려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는 기류마저 감지된다. 한국군은 과연 각군 이기주의와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황에 적합한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12월7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전군지휘관회의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산화한 병사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우수한 공군과 해군과 포화들을 소유한 적들과 싸우는 특수한 조건에서 전투를 수행할 줄 몰랐습니다…적 후방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는 것은 적의 참모부와 후방을 습격하여 적 후방에서 제2전선을 조직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절단하여 적에게 공포와 당황을 초래케 하는 것입니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전쟁이 유엔군의 강한 반격에 밀려 실패의 기세가 완연하던 1950년 12월21일, 중국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북한 수뇌부는 산간오지인 자강도 별오리의 한 시골집에서 조선노동당 2기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적군이 지척에까지 와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열린 회의가 패인 분석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자연스러운 일. 훗날 ‘별오리 회의’로 기록된 이날의 논의를 주재한 김일성 수상은 위에서와같이 그간 얻은 전략적 교훈을 정리했다.

북한이 ‘총량적으로 세력 격차가 확연한 상대에 맞서기 위해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한방을 추구하는’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 전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사실상 김일성이 1930년대 중공군 휘하의 유격대 활동기간 익혔던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보천보 전투와 1940년 마에다 토벌대 격파에서 기습과 매복을 무기 삼아 막강한 화력의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김일성은 비정규전의 위력을 뼛속 깊이 각인했고, 이는 두고두고 인민군 군사전략 사상의 한 축으로 작동한다.

특히 대규모 전차부대를 앞세워 신속하게 종심(縱深)을 돌파하는 소련식 물량 위주 정규전 전략이 실패한 뒤, 북한은 기존의 전력구조에 이러한 비정규전 요소를 강화하는 이른바 ‘배합전략’을 완성한다. 여기에 1980년대부터 남북 간에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원조가 중단되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축적이 불가능해지자 비정규 전력 혹은 비대칭 전력에 대한 강조는 유일한 선택으로 떠오른다. 수도권을 노리는 장사정포는 물론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장거리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등은 모두 이 시기에 개발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증폭됐다. 최근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북한 특수전 병력 12만에서 20만으로 증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사시 후방에 침투해 전략적 타격을 노리며 유격전을 벌일 이들 비정규전 병력은, 8만이라는 병사를 새로 수급한 것이 아니라 전선을 감당해야 할 기존의 정규전 지상군 편제를 수정해 구성한 것이었다. 2009년 2월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은 15개 지상군 군단급 부대 가운데 2개 기계화군단을 2개 기계화사단으로, 1개 전차군단을 기갑사단으로, 1개 포병군단을 포병사단으로 각각 경량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북한 군사전략과 전력구조의 무게중심이 전면전 대비태세에 구멍이 뚫리는 한이 있더라도 비정규전 전력을 강화한다는 방향으로 완전히 옮겨왔음을 의미한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은 또 하나의 사례다. 당시 포격에 동원된 북한군 122㎜ 방사포는 당초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서부전선에 배치된 것이었다. 한국군이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는 휴전선 대신 지형적으로 자신들의 전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서해 도서를 택해 국지도발을 감행한 것은 이러한 비대칭 전략의 노골화를 보여준다. 전면전을 위해 준비한 전력배치를 흔들어가면서라도 국지도발을 감행하겠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상황변화는 먼저 미국 측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09년 9월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전통적 의미의 전면전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전이나 비대칭 위협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2월8일 열린 한미 양국군 합참의장협의회는 “북한이 전면전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지만 비대칭 전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모색할 것”이라고 결론내리기도 했다. 쉽게 말해 대규모 병력이 전선에 늘어서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6·25식 전쟁은 사실상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변화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10년 12월9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연평도 피격 이후) 서해 5개 도서지역에 배치된 전력을 더욱 보강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잠수함으로 천안함을 공격하고 빠지는 북의 게릴라 공격을 경험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재래식 대칭 전력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의 칼럼은 “지금이 그러한 개혁을 위한 가장 좋은 시점”이라며 끝을 맺는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폭 당시 한국군의 전면전 대비 지상전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지만, 상황변화에 반응해야 할 한국군의 움직임은 둔하기 짝이 없다. 역대 정부에서 계속해온 국방개혁 논의가 뚜렷한 결과물 없이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군 고위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그 의미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육군 1·3군 사령부의 분리 편제가 통합방안이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국방개혁에 관한 논의는 계속돼왔다. ‘군의 경영적 효율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초기부터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고, 이어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설치돼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과감한 민간분야 아웃소싱과 혁신적인 전력구조 재편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속속 흘러나왔다.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탄력적인 비대칭전 대응능력을 갖춘 ‘선진정예강군’을 만들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방향설정은 오히려 무뎌지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논의 주제 자체가 효율화 방안에서 대비태세 점검으로 옮겨간 데다 안보 강화가 지상명제가 되면서 ‘군을 흔드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졌다는 것. 개혁 작업의 전면에 서 있는 한 당국자의 말이다.

“근본적인 한계는 천안함 사건 직후 만들어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예비역 출신 인사들과 대통령의 후보 시절 참모 출신 학계 인사들을 안배하는 형태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들 참여인사들이 각자 자신이 제시한 어젠다를 최종과제에 반영하느라 애쓰면서 통일성 있는 콘셉트를 가진 개혁과제 구성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미래 한국군을 위한 일관된 철학 대신 갖가지 아이디어의 집합체에 가까운 모양새가 됐다.”

점검회의는 9월3일 30개 개혁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추진위는 이러한 총론을 바탕으로 각론에 해당하는 71개 과제를 설정해 12월6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를 다시 국방부가 검토해 실행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당초의 전체적인 윤곽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씩 추가된 복잡한 논의단계를 거치면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토론만 거듭하는 사이 이명박 정부는 벌써 출범 3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이들 개혁과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탄력성 있는 자원배분보다는 기존의 전력구조에 최근 부각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는 조직과 무기체계를 덧붙이는 형식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점검회의에서 제시한 이른바 ‘능동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개념에 입각해 정밀유도무기 전력을 강화하고 특수전 전력을 증강하는가 하면 서해북부합동사령부를 창설하는 방안만 봐도 그렇다는 것. 특히 군 복무기간을 조정해 현재의 지상군 병력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은 강도 높은 효율화·합리화를 강조하던 초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이런 식으로는 국방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담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물론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도 있다. 육해공군의 합동성 강화를 위해 합동군사령부를 창설하자는 방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는다. 작전권과 인사권을 함께 부여함으로써 ‘작전권은 합참의장, 인사권은 각군 참모총장’으로 나뉜 현재의 이원화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겠다는 것. 합동군사령관(대장)은 육해공군이 돌아가면서 맡도록 돼 있다. 이를 통해 각군 이기주의와 지상군에 편중되기 쉬운 자원배분에서 탈피해 탄력적인 전력운용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2010년 12월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한민구 합참의장(오른쪽)과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 결과에 대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년까지 현행 430여 명의 장성 수를 10% 줄이고 무기획득사업에 있어 소요검증위원회를 신설하자는 국방효율화 과제도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부대를 감축하거나 편제를 바꾸는 작업이 불가피하고 장교 정원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공개된 방안들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당초 밝혔던 군 구조 효율화·합리화 개념에 부합하는 몇 안 되는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방부와 군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이미 연평도 사건 이전부터 군 핵심 관계자들의 기본입장은 “위원회는 자문조직일 뿐이고 개혁의 실행주체는 국방부이므로 제기된 과제의 실행 여부는 군이 판단할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바구니에 뭘 담을지는 자신들이 결정하겠다는 것. 소요기간이 긴 몇몇 과제에 대해 추진위 측이 대통령 보고 이전에라도 실행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하자, 국방부 측은 “전체 윤곽이 확인된 뒤에 한꺼번에 검토하겠다”며 꺼렸다는 후문이다. 한 추진위 관계자는 “그나마 쉬운 과제라고 생각한 3군 사관학교 통합문제 논의가 육사와 3사관학교를 먼저 통합하는 방향으로 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초 청와대와 참모조직 일각에서 김태영 당시 장관에 대한 경질설이 공공연히 떠돌았던 것은 이러한 흐름과 관계가 깊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현역을 바로 장관에 임명하니 개혁 수행에 지장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전역 후 몇 년 지난 예비역이나 민간 출신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10월19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안보특보와 협의해 국방개혁을 시간 끌지 말고 추진하라”고 말했다는 소식이나 이희원 안보특보가 국방부 개혁실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이렇다할 결과물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이와 같은 청와대의 분위기는 정점을 찍었다. 한마디로 “천안함 직후의 혼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군 수뇌부를 대대적으로 문책해야 한다는 의견이 “군심(軍心)을 다독여야 한다”는 예비역 인사들의 반론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던 7개월 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11월23일 당일의 이른바 ‘확전 자제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 김병기 당시 국방비서관을 포함한 군 출신 인사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대통령 본인이 이에 진노하면서 흐름은 강공으로 굳어졌다. 김태영 장관의 사의 수리와 “내가 직접 국방개혁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강도 높은 드라이브에 대해 군 주변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불문가지. 군 당국 인사들이 ‘면제자 출신 안보참모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표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도발 징후를 8월에 미리 알았다”는 국회 증언으로 군 책임론을 증폭시킨 당사자가 지난 5월까지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일했던 김남수 3차장이라는 점을 들어 ‘청와대 음모론’이 운위되는가 하면, 장관 경질을 계기로 주요 지휘관을 물갈이하는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12월14일 물러난 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의 부적절한 재테크 문제가 불거진 과정도 청와대와 관계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명확한 근거 없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불과 6개월 전 임명 당시에도 알려져 있던 재산 문제가 갑자기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고 청와대가 이내 사표를 수리한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육참총장 경질이 주요 지휘관 연쇄인사의 시작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 관계 당국자는 “대통령의 참모들이 처음 개혁을 압박하던 당시만 해도 대통령 본인의 뜻인지 주변 인사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인지 의심하는 기류가 강했고, 역대 정권이 그랬듯 지나가는 바람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도 많았다”고 말한다. 6·25식 대량 기습남침 상황만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나 작전개념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다른 형태의 위기’가 주류가 됐다는 인식 전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 특히 그러한 재정립 과정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겹치면서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2009년 7월6일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요코스카 항에서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하루사메 호와 승조원들.

 

이러한 인식은 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정치구조가 과연 ‘비정규전 대비로의 주력 전환’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 대통령의 안보분야 참모로 불리는 한 전문가는 “북한이 전면전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치권이나 여론은 재래식 전쟁을 위한 전력구조를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피격 직후 서해 5도의 포병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서부전선의 MLRS(다연장로켓포) 등을 차출해 배치한 것을 두고 ‘서울 방어가 흔들린다’고 비판한 언론만 해도 그렇다는 것.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해 기존 전력구조를 탄력적으로 변경하는 문제는 자칫 ‘안보 불안 정권’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어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물리적인 시간도 걸림돌이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군 구조를 바꾸려면 상당부분 법제화가 불가피하다. 합동군사령부 등 현재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과제조차 국회를 통과하고 필요한 시행령 등을 만들어 실행계획을 준비하는 행정절차를 처리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 2012년은 사실상 대통령선거 국면임을 감안하면 강도 높은 개혁추진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011년 하반기의 몇 개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개편이나 지휘체계 혁신은 사라지고 대형 무기도입 예산 증액만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 동안 실질적인 개혁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10배 차이의 균형?

소련의 붕괴에 관한 미국 보수진영의 설명 중 하나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촉발한 강도 높은 군비 경쟁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이론이 있다. 워싱턴이 이른바 ‘별들의 전쟁’ 구상으로 불린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로 압박하자 모스크바는 이를 따라잡으려 무리하게 시도했고, 결국 취약한 경제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동유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내부질서 유지에 실패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확히 그 반대에 해당한다. 11월말 국회 국방위원회가 의결한 2011년도 국방예산에는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긴급 편성된 ‘서북도서긴급전력보강소요’ 3105억원이 반영됐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F-15K의 2차 사업을 위한 예산 2000억원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예산 767억원,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예산 303억원 등도 추가됐다. 북한은 한 발당 수백만원을 넘기 힘들 것으로 추정되는 122㎜ 방사포 170발로 한국군이 6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지출하도록 만든 셈이다.

물론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북한과의 군비경쟁에서 구(舊)소련처럼 쇠락할 리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구도가 북측의 도발에 남측이 끌려가는 형국이라는 것. 군 개혁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한 군 관계자는 “북한이 이러한 비대칭 레버리지를 이용해 군사력 균형을 맞추는 구도에서는 한국의 체제 우월성이나 압도적인 전력 규모, 10배가 넘는 국방비가 사실상 무의미하다. 새로운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기존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면 북한의 추가 국지도발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병사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은 방위전략의 기조를 담는 ‘방위대강(大綱)’을 준비하면서 지난 40여 년간 유지돼오던 전력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성하기로 한 바 있다. 적국의 일본 공격을 상정해 본토 곳곳을 고루 방위하고자 하는 이른바 ‘기반적 방위’에서 위협이 있는 곳에 전력을 집중 배치하는 ‘동(動)적 방위’로 전환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위해 일본은 육상자위대 전차를 600량에서 390량까지 줄이고, 화포 역시 600문에서 400문 수준으로 감축하며, 지상병력도 줄일 예정이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잠수함 확충과 차기 주력전투기(FX), 미사일요격시스템 등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일본의 기민한 변화로부터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국방부는 추진위의 개혁과제를 검토해 새해 업무보고에서 최종적인 개혁방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행상황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점검체계를 외교안보수석실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군 개혁처럼 민감한 이슈를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지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독재국가보다 의사결정에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는 ‘민주주의의 역설’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과 병사들이 죽어간 현실이 너무 엄혹하다.

 

 

[직격비판] “자위권 적용하면 교전 규칙 상관없다?

말도 안되는 난센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대응에서 드러난 10대 문제점

김시습│안보전문가  

 

2010년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이래저래 뒷맛이 씁쓸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3월26일 천안함 침몰과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다양한 대책과 개선 방안, 책임 추궁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과연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은 것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글의 성격과 필자의 여건상 필명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연평도 피폭 이후 정부는 앞으로 북한이 또 한 번의 도발을 감행할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한 바 있다. 김관진 신임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해서는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고강도 국방개혁을 통해 군의 전투력을 높이는 한편 연평도를 요새화하겠다는 구상도 발표됐다.

다 좋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듯 당연한 조치에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발표된 내용들은 날짜를 바꿔보면 8개월 전의 것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단호히’‘국방개혁을 통해’‘국가 위기관리체제를 재편하고’ 등등의 단어는 천안함 침몰 직후에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그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우리는 과연 두 차례의 뼈아픈 사건에서 올바른 인식과 제대로 된 접근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특정인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자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폭 이후 언론을 통해 발표된 정부의 조치들은 모두 대증적(對症的)인 시각에 경도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뼈아픈 자성과 자기혁신이 없다면 국가안보는 언제든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인식 속에 정설인 양 각인된 몇 가지 신화를 되짚어 보는 것은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안함 이후와 마찬가지로 연평도의 교훈도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군의 관료화가 도발 허용했다?

연평도 피폭 당시 군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체질이 나약해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간 이어져온 관료화로 지휘관들의 과단성이 희박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군이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면서 본연의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적당한 희생양을 찾는다는 측면에서는 속 시원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적절한 분석은 아니다.

군 지휘관들이 정치에 민감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2008년 이후 다시 불거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쟁에서 3명의 전·현직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 가운데 과거의 소신을 유지한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후일 다시 여건이 바뀌면 이들의 최종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게 있다. 누가 군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민주화 이후 이른바 ‘문민통제’의 구호 속에서 우리는 군을 진정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존재 대신 정치적 결정에 굴종하는 존재로 만들어왔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이들이 전문직업인으로서 갖춘 자질과 식견에 자부심을 갖는 데서 비롯된다. 국민의 지지로 당선된 민간 지도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국가방위에 대해서는 소신을 당당히 펴는 군인이야말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군인이다. 1960~80년대 군부통치의 전형으로 불렸던 남아메리카의 군 지도자들이 항상 뻣뻣한 자세로 일관했다고 알고 있다면 이는 착각이다. 그들은 민간정부의 권위와 정통성이 확실할 때에는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 계기가 만들어지면 돌변하곤 했다. 정치의 눈치를 살피는 군인은 결코 정치적 중립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군 내부의 파벌이 해체되기 시작했다지만, 외형적인 파벌이 해체된 뒤에는 또 다른 ‘클럽 정치’가 난무해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몇몇 인사가 정권 실세와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지휘관들을 모두 사실상 강제 전역시키는 분위기에서는 결코 강한 지휘관이 탄생할 수 없다.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의 민·군관계사를 들여다보면, 개성 강한 지휘관들을 징계하고 좌천시키면서도 현역에서 은퇴시키지는 않았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괴짜 장군이자 전쟁영웅인 조지 패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운영의 묘를 찾기란 기대난망에 가깝다.

연평도 피폭에 대해 군은 분명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군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야말로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당사자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확실한 국가안보태세 확립과 위기관리체제 재정비를 요구했다. 과연 그들은 올해의 국정감사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했나. 언론을 통해 탄생한 수많은 국감 스타 가운데 북한의 도발 위험성을 제대로 지적한 이가 과연 있는가.

     

  

2 제도를 바꾸면 안보가 강화된다?  

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11월23일 저녁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찾아 현황보고를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 이후 정부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발족시켰고 청와대의 국가위기상황센터를 국가위기관리센터로 개칭하는 등 일련의 제도적 개혁을 추진했다. 국방개혁에 대한 포괄적 재검토 작업 역시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제도와 계획만으로 안보가 보장될 수 없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는, 이미 존재하는 제도마저 중요한 위기국면에서 제대로 활용 못하는 부실한 운영능력은 외관만 리모델링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봐야 할 점은 그간 안보문제나 위기관리를 귀찮은 사고처리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다. 정치적 입맛과 상관없이 최적의 인물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열린 사고와 유연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계획을 만든다 한들 본연의 취지를 모르면 소용이 없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국방개혁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계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국방개혁의 요체는 군의 체질을 중장기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눈앞의 시급한 소요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개혁 계획 자체를 재검토한다는 발상으로는 당장의 안보도 미래의 ‘선진정예강군’도 기대하기 어렵다.

 

3 외교·경제만 잘되면 만사형통?

언제부턴가 정부는 ‘선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만이 외교안보의 지상과제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은 이들은 천안함 사건이 정리단계에 들어선 7월 이후 정부 차원의 홍보·공보작업에서 1순위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지위가 국가안보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제도나 계획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를 의전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하부요소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안보 그 자체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는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1차적인 존재의의가 있다. 이것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어떤 미래비전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4 한국의 국제사회 레버리지?

천안함 사건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문제는, 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국제사회에서의 의전이나 외교적 수사를 우리의 능력과 동일시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맺어둔 관계나 말에 근거해 우리가 외치기만 하면 주요국들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고 이를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표출하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장 천안함 외교에서 중국의 행태는 이러한 신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번에 드러냈다. 주변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동의해줄 것이라는 정부의 자신은 헛된 것이었다.

가장 큰 지지세력이라고 믿은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관계는 끊임없는 거래와 이에 입각한 변환을 요구한다. 2008년 이후 한미가 전례 없이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지만, 그 위에 미래를 위한 새로운 거래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국가의 역량을 사안별로 카드화하는 노력 없이 주변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늘려간다는 발상은 대책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5 북한은 조만간 붕괴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과연 북한에 대해 군사적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혹은 조만간 국방예산 같은 ‘소모성 투자’가 필요 없는 상황이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2008년 이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북한 급변사태 전망을 보면, 또한 북한 체제의 갑작스러운 불안정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은 분명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태에 대비하는 것과 그에 집착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그런 상황이 현실이 되지 않을 때 중대한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분야 요직에 있었던 한 정치인이 2010년대 중반경에는 남북 간에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될 것인 만큼 국방비를 줄여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국방개혁 논의가 막 출발하던 시기였다. 어쩌면 당시의 정책결정자들은 어차피 나중에 대폭 삭감할 수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국방예산 증가율을 용인해줘도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다. 정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현재도 비슷한 미망이 꿈틀댄다. 당장은 북한이 도발을 이어가지만 그 생명력은 이제 2~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려되더라도 잠시만 참으면 된다고 말이다.

     

   

6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가 문제다?

 

지난 11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깔린 듯 국무위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다.

 

많은 이가 북한의 도발 이면에 민주화 이후 해이해진 국민의 안보의식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관련 여론조사 결과도 거들고 나선다. 이런 발상은 말 그대로 희극에 가깝다.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이하다는 걸 과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평범한 시민이 안보에 무관심한 것은 정말 문제일까. 오히려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의 능력을 신뢰하고 국력에 자신감을 갖는다면 왜 일부의 믿음처럼 내일 모레 망할 북한에 신경을 써야 하겠는가.

미국의 경우를 보자.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이 테러 재발 우려에 전전긍긍해 일상생활을 포기했나. 안보 강박관념에 휩싸여 애국주의만을 부르짖었나. 진정으로 강한 나라는 국민이 평온하게 일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다. 비상한 사명의식을 갖고 안보문제를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런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다. 스스로 각성돼 있지 못하면서 위기가 오면 국민의 안보의식을 탓하는 그런 의식구조야말로 위기에 가장 취약한 태도다.

 

7 MB정부의 대북정책이 도발 불렀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피폭과 관련해 실소를 자아내는 또 하나의 신화는 이명박 정부의 완고한 대북정책과 대화의 단절이 북한의 도발을 불러왔다는 주장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리적 오류를 갖고 있다. 첫째,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타협적이라기보다는 확실한 방향성이나 일관성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는 기조로 북한에 성의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 한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대외적인 설명이었지만, 과연 실제로 그랬던가. 그 이면에서는 끊임없이 정상회담 추진설이 흘러나왔고, 천안함 사건의 대응으로 발표된 5·24 조치의 대북지원 단절은 불과 3개월 만에 아무런 정책변경 없이 대북 수해지원 논의 제기로 형해화됐다. 이러고도 과연 완고한 대북정책이었을까.

둘째, 이러한 주장은 사실 안보를 구걸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정부 기간에는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 덕에 북한의 주요 도발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2002년 2차 연평해전이나 2006년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핵실험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설령 크고 작은 도발이 줄어들었다 한들 막대한 대북지원을 통해 얻어낸 평화가 과연 성에 차는 것이었는지도 묻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측의 의제는 전혀 반영된 바 없었고 검증 역시 불가능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상황을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8 정보 확산에는 직보(直報)가 특효다?

이제부터는 세부 각론으로 눈을 돌려보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각종 위기대응 평가작업에서 언제나 정보의 직보, 즉 최고책임자에 대한 직접보고 강화가 이를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거론돼왔다. 직보체제가 확립될수록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주장이다. 이 역시 그간 벌어진 위기의 교훈을 잘못 해석한 착각일 뿐이다. 정보는 수직 확산과 수평 확산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수직 확산이 지휘계선상의 상급자에 대한 보고라면 수평 확산은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대응조치를 수행할 주체들 간에 이뤄지는 공유다. 수직 확산만 강조되면 정보를 보고받는 시간은 빨라지겠지만 전반적인 대응시간은 오히려 지연되기 일쑤다.

위기가 발생해 대통령이 장관들을 소집했다고 하자.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참모들을 제외하면 장관들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돼도 대응방향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장관들이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청와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라도 나름의 구상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장관을 보좌해 실질적인 세부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이나 천안함 사건은 모두 정보의 수직 확산보다는 수평 확산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다. 수평 확산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보 전파의 각 단계에서 누군가가 해당정보를 관련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 관리해야 한다. 그러한 절차가 빠진 직보는 정보의 ‘배달’이지 전파가 아니다.

     

   

9 교전규칙과 자위권으로 추가도발 막는다?

 

지난 12월6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집무실로 향하다 경비병의 경례를 받고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김 장관은 북한군의 도발에 대해 교전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위권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연평도 피폭 이후 교전규칙을 수정하고 자위권 개념을 적용하면 유사시 단호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우선 자위권 자체가 교전규칙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양자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또한 어떤 식으로 교전규칙을 수정하고 자위권 개념을 적용한다 해도 ‘전쟁으로의 비화 방지’나 ‘비례성(proportionality)의 원칙’을 깨기란 힘들다. 그 자위권이 상대방의 추가공격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의 공격위험만을 강조해 가동되는 ‘예방적 자위권(anticipatory self-defense)’이라면 더욱 그렇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한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지상무기를 동원해 국지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이에 대해 전면적인 항공폭격을 가할 수 있는 포괄적인 면장(免狀)은 필자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해 자위권 개념을 적용하겠다는 한국 측 입장에 미국 측도 동의했다는 설명이 나오자, 워싱턴 인사들이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모든 교전규칙과 집단적 자위권은 상황에 따라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교전규칙과 자위권 적용은 모두 위기대응(crisis response)에 중점을 둔 조치다. 남한과 북한은 상이한 체제를 갖고 있다. 우리는 헌법 규정상으로나 국제적 도덕률상으로나 선제공격을 할 수 없지만 북한은 이야기가 다르다. 더욱이 무기의 파괴력이 비할 수 없이 강해진 현대전의 특성을 감안하면, 위기대응 단계에서 어떤 단호한 대응을 취하든 우리 측 역시 상당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남북한 군사구조의 현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중요한 것은 위기대응보다는 예방(prevention)이며, 이는 각 부처의 정보를 통합·조정해가며 문제의식을 갖고 북한 정보를 끊임없이 분석하는 시스템을 정립하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 이후 정부가 북한의 잠수함 공격을 상정한 정보분석과 대응훈련을 했다면,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해안포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준비했다면, 도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도발이 있었다 해도 말이 아닌 실제의 ‘단호한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10 북한의 도발만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북한의 도발만을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보는 발상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경계해야 할 많은 요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군사적 전면대결’을 선언한 2009년 1월 이래 군인들은 끊임없는 긴장 상태에서 대비를 지속해왔다. 군 수뇌부는 이들에게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강조하면서도 적절한 휴식은 전혀 보장하지 않았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피로도가 더욱 증가한다. 이러한 상태의 지속이야말로 사건·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천안함 침몰 이전에 발생한 F-5기 및 500-MD 헬기 추락, 천안함 수색 과정에서 벌어진 LYNX 헬기 손실, 이후 남해에서의 고속정 침몰사건은 알게 모르게 그간 누적된 피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군내의 대형사고 방지를 위해서도, 혹은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마음대로 조정하며 또 다른 도발 기회를 노리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서도 무책임한 긴장상태 강조는 버려야 마땅한 태도다. 긴장할 부대는 긴장하되 쉴 부대는 쉬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것이다.

 

강한 자는 말이 없다

두 차례의 뼈아픈 사건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본말이 전도된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헛된 구호와 수사의 남발보다는 한국 사회 내에 깊이 뿌리박힌 미망과 신화에서 깨어나가는 성찰이 필요하다. 강한 자는 결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에 절치부심하며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이와 끊임없는 다짐을 양산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허점을 노출하는 이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운 상대겠는가. 한 해 두 번의 교훈이면 이젠 충분하다.

 

 

[정밀탐구] 연평도 피폭 데이터로 분석한 북한 장사정포 서울 공격 시뮬레이션

사망 2만3000 명 재산피해 최대 224조원 서울시민 300명 중 1 명 부상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방사포, 일제사격, 민간피해, 지형… 연평도와 서울의 공통점
● 2006년 합참의 피해규모 예측 ‘325만명 사상’의 한계
● 수도권 겨눈 240㎜ 방사포 1발 위력은 122㎜의 최대 4배
● 서울 종로구 인명 피해규모는 연평도의 최대 5760배
● 위력 작은 170㎜ 자주포, 그러나 콘크리트 벽 뚫리면…
● 주유소, 가스관 즐비한 서울… 화학탄 탑재 가능성은?
● 개머리 포대 반격이 장사정포 대화력전에 남긴 교훈
●‘3일만 참으면’ vs ‘무책임한 전쟁도발론’의 역설

11월23일 오후 북한의 122㎜ 방사포 공격을 받은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극단으로 치달은 2월의 어느 밤, 개성직할시 판문군 일대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 갱도진지가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갱도진지 개폐로 전쟁 위협 수위를 높이며 남측을 압박하던 그간의 행동패턴 때문에 군 당국은 이를 ‘매우 특별한 징후’로 해석하는 데 실패한다. 쇠처럼 무거운 구름과 안개가 잔뜩 낀 날씨는 전방 초소와 항공정찰자산의 특이동향 감시를 어렵게 만들고, 수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진행된 북한측 전방 포병부대 통신망의 광케이블 유선화 작업 때문에 정보당국의 감청을 통한 이상징후 감지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리고 새벽 3시. 240㎜ 방사포와 170㎜ 자주포가 서울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다. 변변한 조기경보 없이 떨어져 내리는 포탄에 놀라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시민들은 지하철역과 아파트 주차장으로 뛰어들지만, 곳곳에서 치솟는 불길과 연기로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뒤였다. 전방의 K-9 자주포와 대구에서 출격한 F-15K가 이내 격파사격에 돌입하지만, 이미 인명이 살상되고 시설물이 부서진 것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상은 한미 양국군이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의 사전징후 감지에 실패한 경우를 상정한,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1994년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이래, 광화문에서 직선거리 40㎞ 내외에 불과한 휴전선 북측 지역의 장사정포는 서울을 불안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군사위협으로 자리매김했다. 총 1100문으로 추산되는 서부전선의 북한 장사정포 가운데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는 것은 170㎜ 자주포 100문과 240㎜ 방사포 250문. 이들 장사정포는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서부전선의 한미연합군 전력은 물론 서울의 주요 국가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측 지도부나 국민에게 끼칠 공포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그간 서울이 장사정포 공격을 받을 경우 피해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지 추산하는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8월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이성구 의원실에 제출한 데이터. 개전 초기 한 시간 동안 이들 장사정포가 쏟아내는 포탄으로 인한 피해면적이 191.2㎢에 달하므로 총 325만여 명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2004년 합참이 실시한 워게임 시뮬레이션에서는 전쟁 발발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한국군, 주한미군 사상자가 총 230만명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장사정포 피해예측은 대부분 시간당 쏟아질 수 있는 최대 포탄 수에 해당 포탄의 최대 살상반경을 곱해 총 피해면적을 가늠한 다음, 여기에 서울의 인구밀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이 같은 추산이 여러모로 한계를 안고 있다는 사실. 개활지에서 측정된 포탄 1발의 피해면적을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수도권에서 그대로 적용한데다, 떨어지는 포탄의 피해범위가 중첩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접근방식이 없다보니 불가피하게 선택된 방식이다. ‘신동아’ 역시 2004년 12월호를 통해 같은 방식으로 피해규모를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벌인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연평도 사건이 새로운 피해예측을 가능케 하는 매우 유용한 데이터를 남겼다는 것. 더욱이 연평도에서의 상황과 그간 거론돼온 장사정포의 서울 공격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우선 민간시설과 군사시설이 한꺼번에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 그렇고, 북서방향에 산지가 자리한 지리적 특성도 비슷하다. 쉽게 말해 북측 포 전력의 위력과 이로 인해 남측이 볼 피해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샘플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북한의 122㎜ 방사포(왼쪽)와 240㎜ 방사포.

 

사건 당일 북한은 122㎜ 방사포 3개 중대 18문을 동원해 연평도를 향해 170발의 포탄을 날렸고 그 가운데 80발이 연평도 안에 떨어졌다. 이 가운데 피해가 집중된 지역은 대략 2.5㎢ 범위.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2000여 명이 머무르고 있던 연평도에서는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절반 이상의 경상자를 포함해 60여 명이 부상했다. 인천시는 연평도 포격으로 118채의 가옥이 손상을 입어 총 50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한 바 있다.

이번 포격은 오차가 적지 않은 포탄의 특성상 정밀타격이 아닌 일제사격 형태로 ‘쏟아 부은’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서울에 대한 장사정포 위협 역시 유효 사거리를 넘어서는 ‘눈먼 포격’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특성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 여러 개를 묶어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만든 방사포는 내부의 자탄이 퍼져서 폭발하는 형태로, 타격력보다는 피해범위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둔 무기체계다. 서울을 겨눈 장사정포 위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40㎜ 방사포도 같은 형식이다. 비슷한 사격방식과 무기체계 종류가 사용된 까닭에 연평도에서의 데이터는 유사시 서울 장사정포 피해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특징을 갖게 된 셈이다.

그간의 추산방식으로 122㎜ 방사포탄의 위력과 피해범위를 연평도 인구밀도에 적용해 계산하면 수백 명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해야 맞지만, 실제로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전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렇듯 실제상황에서 나타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규모가 큰 교전에서의 피해를 예측하는 일은 군사 분야 시뮬레이션에서 상식적으로 활용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신동아’는 관련 전문연구기관에서 장사정포 등 무기체계 분야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연평도 상황을 통해 유사시 서울 장사정포 피해규모를 추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 전문가는 “실제로 군 당국에서도 이 같은 분석을 이미 하고 있을 것으로 안다. 단순해 보이지만 선입관에 따른 자연 왜곡이 어려워 실제에 더욱 근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소개할 시뮬레이션 디자인은 이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원칙적으로 최대치를 적용해가며 완성된 것이다. 지루한 승수 방정식과 숫자싸움이 이어지는 작업이지만,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기로 하자.

 

몇 가지 전제

연평도에서의 피해를 바탕으로 서울의 장사정포 피격 피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초기조건을 변경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우선 공격에 동원되는 북한 측 무기체계의 위력이 다르고, 이들이 쏟아내는 포탄의 개수도 다르다. 더욱이 연평도와 서울은 인구밀도나 재산가치에서도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포탄이 떨어진다 해도 서울의 피해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리로 지은 빌딩이 많은 서울 중심부의 건축특성이나 주유소, 가스관 등 2차 화재의 피해를 강화할 만한 요소들에서도 차이가 있다.

 

1. 122㎜와 240㎜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연평도를 공격한 122㎜ 방사포와 서울을 겨누고 있는 240㎜ 방사포의 차이다. 기본적으로 유사한 무기체계인 까닭에 적재되는 폭약의 양에 따라 위력과 피해범위가 늘어나는 것 외에는 대동소이하다. 연평도 현장에 떨어진 포탄 가운데는 불발탄도 적지 않았고, 폭발한 포탄 역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이는 북한의 방사포탄이 콘크리트를 관통할 만한 위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연평도에서 크게 훼손된 가옥들은 조립식 패널이나 함석지붕, 벽돌로 지은 오래된 건물이나 컨테이너 정도다.

이러한 폭탄의 피해 특성 자체는 240㎜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봐야 옳다. 그렇다면 문제는 폭약의 양이다. 122㎜와 240㎜ 방사포는 구경이 다른 만큼 포탄의 크기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물론 이러한 차이가 고스란히 폭약의 양으로 직결되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늘어난 크기가 대부분 사거리를 늘이기 위해 장약이나 추진제를 추가하는 데 사용됐다면 폭약의 양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11월25일 국회에서 공개된 122㎜ 방사포탄.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122㎜와 240㎜에 실리는 폭약탄두의 직경이 구경만큼 2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전제해보자. 부피는 그 세제곱인 8배로 늘어나므로, 240㎜에 탑재되는 폭약의 양도 122㎜의 8배까지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피해면적도 8배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무기체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탄두의 폭발력 파장은 3차원 입체 형태로 퍼져나가지만, 실제로 피해를 당하는 것은 2차원 평면 위에서다. 따라서 폭약이 8배로 늘어날 때 확대되는 피해범위는 8배가 아니라 그 3분의 2승(3차원 분의 2차원)인 4배 정도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두 방사포탄의 화약량이 4배 차이에 그친다면 피해범위는 2.5배 증가한다. 화약량이 2배 차이라면 범위는 1.6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 단순화된 계산법이기는 하지만 이는 폭약의 양에 따른 피해범위를 산출하는 데 실제로 쓰이는 방식이다. 미 국방부가 운용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피해 시뮬레이션용 컴퓨터 프로그램 HPAC(Hazard Prediction and Assessment Capability) 등은 모두 냉전기간 축적된 핵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은 접근법과 공식에 따라 피해규모를 산정하고 있다.

 

2. 포탄은 몇 발이나 떨어질까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서울에 떨어질 포탄의 숫자다. 170㎜ 자주포의 경우 뒤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은 피해의 주원인이 되는 240㎜ 방사포를 중심으로 들여다보자.

육군 교육사령부 교범에 따르면 240㎜ 방사포는 10발을 쏘고 다시 갱도진지로 복귀하는 데 평균 19분이 걸린다. 다시 말해 시간당 32발을 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을 겨누고 있는 240㎜ 방사포의 양이 200문이라는 국방부의 평가를 대입하면 개전 초 한 시간에 총 6400발이 서울을 향해 날아올 수 있다. 이보다 보수적인 데이터도 있다. 앞서 설명한 2006년 합참 자료에서는 240㎜ 방사포가 시간당 1만2068발을 발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80발이 떨어진 연평도에 비해 80~150배에 달하는 포탄이 떨어지는 셈이다. 엄청난 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고스란히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연평도에서 포탄이 떨어진 탄착군의 넓이는 대략 2.5㎢ 정도에 불과하지만, 서울 중심부의 경우는 종로구만 해도 23㎢를 넘는다. 연평도에 1㎢당 32발(80/2.5)의 포탄이 떨어졌다면 모든 장사정포 포탄이 종로구에만 떨어진다고 해도 1㎢당 525(12086/23)발이 떨어지는 데 그친다. 한미연합사령부와 국방부, 합참 등이 위치한 용산구나 역시 서울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구를 제외하고도 단위면적당 떨어지는 포탄의 집중도는 16배 내외에 불과한 셈이다.

 

3. 인구와 지형의 차이

피해규모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포탄 뿐 아니라 해당지역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인구밀도다. 연평도의 경우 포탄이 떨어진 2.5㎢ 범위 내에 2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1㎢ 기준 인구밀도로는 800명이 된다. 서울의 평균 인구밀도는 1만7000명이 조금 넘고 종로구의 경우 8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시내 중심부의 낮 시간 유동인구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감안해 평균 인구밀도에 4배를 곱한 7만명을 적용해보기로 하자. 이 경우 연평도와 서울 중심부의 인구밀도는 대략 90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물론 이 역시 최대치로 밤 시간에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평도와 서울의 지형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야산이나 공지가 많은 연평도와 서울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서울 중심부에도 인왕산이나 북악산, 안산 등 적잖은 면적의 산지가 포함돼 있고 이들은 북서방향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막아내는 천연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다. 더욱이 240㎜ 방사포든 170㎜ 자주포든 서울 중심부는 정밀한 조준사격이 가능한 유효사격거리에 포함되지 않고 대신 최대사거리에만 포함될 뿐이다. 산지를 피해가며 번화가에만 포탄을 떨어뜨리는 일은 불가능하고, 일정한 범위를 설정해 일제사격으로 쏟아 부은 포탄의 상당량은 북쪽과 서쪽의 산봉우리를 맞히고 말 공산이 크다.

정리하자면 포탄 1발의 피해범위에서 120㎜와 240㎜는 최대 4배의 차이가 있고, 떨어지는 포탄의 개수는 서울이 최대 150배 많지만 면적 차이에 따른 집중도를 감안하면 종로구에 모든 포탄이 떨어져도 16배까지 줄어든다. 인구밀도의 경우 유동인구를 포함해도 90배 정도가 최대치다. 이를 종합하면 서울이 당할 피해는 연평도의 5760배에 달할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연평도 피해의 5760배

이제 마지막 단계다. 군은 연평도 포격으로 사망자 2명, 중상자 5명, 경상자 10명 등 총 17명이 피해를 당했다고 발표했다. 민간인의 경우 사망자 2명이 확인됐고, 인천시가 집계한 부상자 숫자는 43명(이 가운데 20명이 사건 발생 후 2주 이상 입원치료를 받았음)이다. 여기에 앞서 도출된 공식을 곱하면, 서울 중심부에 장사정포 공격이 집중될 경우 사망자는 2만3040명, 중상자 14만4000명, 경상자 19만80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총 인명피해 규모는 26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2006년 합참 자료의 325만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장사정포 공격이 중구와 용산구 등으로 넓어질 경우 피해범위 내에 있게 될 시민의 숫자가 늘어나므로 인명피해도 늘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포탄이 분산되면 집중도도 떨어지게 되므로 발생하는 인명피해 규모의 총량은 종로구로 한정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결과는 연평도 포격 데이터로는 추적할 수 없는 170㎜ 자주포의 위력을 더해도 대동소이하다. 합참 자료에 따르면 170㎜ 자주포는 시간당 발사 포탄수가 240㎜ 방사포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1발당 피해면적은 5분의 1이 조금 안 된다. 다시 말해 240㎜ 피해면적의 20분의 1에 불과한 것. 다만 방사포탄의 자탄과 달리 170㎜ 자주포는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으므로 대형 건물 내부의 인명피해가 일부 증가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건물이 무너지는 수준의 파괴력은 아니다.

재산피해의 규모도 개략적으로나마 유추가 가능하다. 앞서 계산한 포탄의 위력(4배)과 집중도(16배) 차이를 종합하면 연평도와 서울에 대한 포 공격 사이에는 64배의 위력 차이가 있다. 2010년 국토해양부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연평도 면사무소 인근의 중심가 공시지가는 대략 4만~5만원 선이고, 서울 중심가인 세종로 주변 고층빌딩 지역의 공시지가는 1300만~3500만원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 차이가 300~700배 된다. 이러한 차이가 그대로 연평도와 서울의 재산규모 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계산을 위한 비례용 척도로는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인천시는 연평도 포격으로 118채의 가옥이 손상을 입어 5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포탄의 위력과 집중도 차이에 대입해보면 서울의 재산피해는 96조~224조원에 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략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30~60%, 1년 국내총생산(GDP)의 10~2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인천시의 집계는 민간주택 피해만 집계한 것으로 공공시설물이나 군부대 시설, 전기·통신 등의 피해는 합산하지 않은 것이었다. 따라서 서울에서 예상되는 피해금액 역시 이러한 부분은 제외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주유소,가스관, 화학탄

물론 이러한 단순계산에는 반영되지 않은 변수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결과에 영향을 얼마나 미칠지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외벽 대부분이 유리로 된 서울 중심부의 초현대식 건물들이 그렇다. 방사포 자탄이 콘크리트 관통력이 없다지만 유리로 지은 건물은 훨씬 약한데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 파편이 거리로 쏟아져내리면 인명피해를 증가시킬 공산이 크다. 주유소와 도시가스 배관시설이 직접타격을 받을 경우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불바다’를 유발하는 추가요소다. 종로구에는 주유소가 10개에 불과하지만, 중구에는 15개, 용산구에는 21개나 자리하고 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과 군 당국이 우려하는 가장 심각한 추가변수는 북한이 장사정포에 화학탄을 탑재하는 경우다. 2004년 미국 랜드(RAND)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240㎜ 방사포 로켓 1발에는 8㎏의 사린가스를 적재할 수 있다”며 대규모 화학탄 공격이 발발할 경우 사상자가 수백만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이러한 화학탄 공격은 바람이나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까닭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서울 중심부의 경우 수천 명 수준의 경미한 피해만 주고 날아가버릴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같은 200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1t짜리 화학탄두라도 치명적 살상반경은 500m 내외에 불과하다”며 화학탄 위협이 과장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실제 피해가 산술적 계산보다 오히려 적어질 것이라고 판단케 하는 변수도 많다. 우선 조기경보의 문제다. 연평도의 경우 군과 민간인 모두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징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지만, 수도권에 대한 대규모 장사정포 공격이 이렇듯 완벽한 기습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해 5도에 대한 포 사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형태지만 장사정포 공격에 대해서는 그간 한미 양국군이 무인항공기와 군사위성 등 다양한 정보수집·감시 체계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육군 교육사령부 교범에 따르면 170㎜ 자주포의 운용인원은 12명, 240㎜ 방사포의 경우 6명으로, 서울을 사거리에 둔 장사정포의 운용인원만 도합 3000명에 달한다. 불과 18문이 동원된 연평도 상황과 달리 이 같은 규모의 병력이 전면적인 공격을 준비할 경우 우리 측 감시체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혹은 앞서의 추산에서 상정한 ‘완벽한 기습 성공’은 말 그대로 최악의 최악을 거듭한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북한의 포 전력을 격파하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평도의 경우 북측의 사격 원점을 파악해 대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문제점이 확인됐지만,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는 장사정포의 경우 이미 대부분의 갱도진지 위치가 우리 측 정찰자산에 의해 확인되어 각각의 대응 무기체계에 표적으로 할당돼 있는 상태다. 여기에는 K-9 자주포나 MLRS(다연장로켓포) 등 지상군뿐 아니라 F-15K와 KF-16 등 항공자산도 포함된다.

특히 서울에 대한 포격은 전면전 상황이므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전투기·폭격기 역시 조기에 출격해 갱도진지 무력화에 나서게 된다. 장사정포 위협이 확인된 이래 한미연합군이 준비해온 이른바‘대화력전(對火力戰)’이 그것이다(상자기사 참조). 장사정포 공격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대부분 ‘개전 초 한 시간’을 전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반격에 의해 장사정포 상당부분이 초기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었다.

분명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는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단 한 발만 서울에 떨어져도 그 심리적·정치적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망자가 2만명이든 20만명이든 남측의 전쟁수행 의지에 미치는 영향은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것. 북측이 수도권 민간지역을 타격할 수 있도록 장사정포를 전진배치한 것이나 화학탄 탑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은 모두 그러한 ‘공포효과’를 최대화해 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있다.

 

뒤바뀐 입장

그러나 그간 장사정포의 서울 공격에 대해서는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론으로 수백만이라는 숫자를 쉽게 거론하는 측과 거꾸로 뚜렷한 근거 없이 이를 축소하려는 측이 맞서 정치적 논쟁을 거듭해왔다. 2004년 10월 국회에서 여야 간에 벌어진 장사정포 위협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전쟁 발발시 시간당 2만5000여 발이 쏟아져 1시간 만에 서울의 3분의 1이 파괴된다”고 주장하자,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턱없는 과대평가”라고 반박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이는 이러한 구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6년의 시간이 흐른 뒤 상황은 뒤바뀌었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2010년 5월24일자 칼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 합동으로 3일 내에 북한 장사정포의 최소 70%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만약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군 관계자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칼럼이 발표되자 진보진영의 주요 인사들과 매체들은 “전쟁의 참화와 북한의 군사위협을 턱없이 과소평가하는 광적인 ‘전쟁불사론’”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장사정포 위협의 객관적인 실체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이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사망자 2만3000명, 재산피해 224조원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3일만 참으면 되는 숫자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혹한 규모인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정보의 부족, 객관적인 평가의 부재가 토론을 말싸움이나 정치 논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을 논거로 삼아 극단적인 위협 과장이나 낙관론을 펼치는 것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안을 내놓는 작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전인수 격 주장을 넘어 시뮬레이션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는 위협 평가에 접근하는 일이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각이 아니라 진실이다.

     

   

연평도 포격 대응으로 본 한국군 대화력전의 문제점
첫 발 얼마나 빗나갔나 확인할 무인정찰기 중요성


연평도 사건은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에 대응하는 한미연합군의 대화력전에 관해서도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1993년 이래 주한미군 2사단이 중심이 되어 운영했던 대화력전은 2005년 한국군에 인계되어 현재는 3군 사령부가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연평도 부대 K-9 자주포의 개머리 진지 대응사격에서 그간 지적돼왔던 대비태세의 미비점이 고스란히 재확인됐다는 사실이다.
피격 초기 원점파악에 실패해 포탄이 날아온 개머리 대신 무도 진지에 먼저 사격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후 AN/TPQ 대포병 레이더와 K-9 자주포가 자동화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지 않아 ‘통신으로 좌표를 부르고 손으로 입력하는’ 방식이었다는 부분은 특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의 경우 무인항공기 등으로 공격에 나선 북측 장사정포 위치를 탐지해 MLRS 등 공격무기에 좌표를 부여하는 일까지 실시간 자동화되어 있었지만, 한국군은 대화력전 임무 인수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러한 시스템이 완성되지 못한 상태다. 2010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와 관련해 청와대 일각에서 전환 준비 부족의 대표적인 사안으로 거론했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머리 지역에 대한 연평도 부대의 K-9 자주포 응사가 실제로 공격에 동원된 122㎜ 방사포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구(舊)소련 무기체계에 대한 영국의 군사정보회사 제인스(Jane’s)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122㎜ 방사포는 낮 시간을 기준으로 공격 후 10분이면 위치를 옮길 수 있다. 대응공격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탐지-타격자산(Sensor-to-Shooter) 간 자동화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K-9 자주포의 개머리 반격이 122㎜ 방사포의 애초 위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위성사진 판독결과는 대화력전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정한 탄착군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대응공격 자체는 유효했다지만,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 레이더로는 알 수 없는 변수에 따라 K-9 자주포의 최초 대응공격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는 표적 위치를 사전에 설정해두었는지 여부와는 무관한 문제인데다, 충분한 수준의 C4I를 구축한다 해도 넘기 쉽지 않은 벽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1차 공격의 한계는 감시정찰자산을 통해 실시간으로 그 결과를 확인해 조준을 수정하는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목표물에서 벗어난 거리만큼 조정해 2차 공격을 가할 경우의 정확도는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 관건은 이렇듯 1차 공격의 결과와 오차 크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다시 포병부대까지 전달할 무인항공기 등 정찰자산이 충분히 확보돼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단순히 타격자산만을 늘리는 것은 연평도에서의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될 뿐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 전면전 상황에서는 C4I체계 역시 북측의 공격에 의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타격자산의 확보가 더욱 확실한 방법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장의 불안정성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현장 지휘관 입장에서는 C4I체계보다는 K-9 자주포나 MLRS, ATACMS(에이태킴스) 지대지 미사일 구매에 손이 먼저 갈 수밖에 없다는 것. 한국군이 2000년대 이후 대화력전과 관련해 투입한 10조원 내외의 예산 대부분이 C4I체계나 감시정찰자산 대신 타격자산을 늘리는 데 집중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평도 상황은 이 같은 기존의 흐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K-9 자주포가 2배 이상 배치돼 있었다 한들 대포병 레이더의 문제나 연동체계가 미비한 상황에서는 122㎜ 방사포가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격파하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 더욱이 122㎜ 방사포 공격으로 파괴된 우리 측 K-9 자주포는 한 대도 없었다는 사실은 타격자산의 증대는 급선무가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감시·정찰자산을 활용한 2차 공격의 정밀성 확보가 훨씬 효과적인 전술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밀분석] 팥소 없는 찐빵 닮은 국군 사이버사령부 I-war 억지력이 불안하다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빈손으로 테러 잡겠다는 꼴”
● 정보보안 취약한 ‘스마트 정부’를 어이할꼬
● 北 I-war 전력 실체는…
● “주무비서관? 없다”

 

상상해보자. 여성 종업원이 옆에 앉는 카페에서 3시간 넘게 떠들었다. 격 낮은 대화를 나누면서 신나게 놀았다. 아내가 집에서 대화를 모조리 엿들었다. 끔찍한 일이다. 불가능하다고?

2010년 4월5일 최경환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장관 스마트폰으로 e메일이 전송됐다. 평범한 문서처럼 보였다. e메일을 열어본 순간 해킹·도청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최 장관이 회의실에서 전화통화를 하자 대화내용이 노트북에 녹음됐다. 통화를 마친 후에도 엿듣기가 계속됐다. 스마트폰이 회의실 대화를 밖으로 전하는 스피커 구실을 한 것이다.

지경부 회의실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실제 상황은 아니다. 최 장관이 보안전문가를 불러 스마트폰 보안을 실험한 것이다. 청와대는 2010년 상반기 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하려고 했으나 보안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을 유보했다. 지경부 실험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 일화를 전해준 안보당국 고위인사는 “안보문제를 다룬 청와대 회의를 북한이 엿들었다 치자. 끔찍한 일 아닌가”라고 했다. 지급이 보류된 후 자비로 스마트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청와대 보좌진이 적지 않다. 보안이 염려된다고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GPS 수신 장애

사이버전(cyber warfare) 시대가 열렸다. △화력 우위→정보 우위 △플랫폼 중심→네트워크 중심으로 전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 컴퓨터 기술 발달로 군사 전력이 정보 시스템에 의존한다. 국방정보 체계가 공격받으면 지휘통제, 임무수행이 타격받는다. 민간 상대 사이버 테러는 공격받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첨단무기는 위성유도시스템(GPS)을 기반으로 적을 타격한다. GPS에 결함을 일으키거나 체계를 파괴하면 첨단무기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연평도 도발 때 북한이 GPS를 교란하는 전자전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국방부는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북한이 네트워크, GPS를 공격하는 전력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이 무기를 팔고자 베네수엘라 정부에 제시한 리스트에 GPS 교란 장치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신동아’ 2010년 6월호 “정보당국의 ‘북한 어뢰 능력 추적’ 총력전” 제하 기사 참조). 국방부는 2010년 8월 서해에서 발생한 GPS 수신 장애를 북한 소행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I-war를 수행해 사회 운영 시스템, 무기체계가 첨단화한 한국을 타격할 수 있다. 반면 북한에는 한국이 공격할 곳이 별로 없다. 사이버 인프라가 열악해서다. 전자전은 북한이 확보한 비대칭전력인 것이다. I-war는 비용 대비 효과가 높으면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공격하는 최적 수단으로 평가된다.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박영욱 교수는 미래전(未來戰)의 특징으로 △육·해·공·우주·사이버 5차원전 △네트워크전 △정보전 및 사이버전 △장사정 정밀 타격전 △비대칭전 등을 꼽았다. 이어지는 박 교수 설명.

“수신전파를 방해·교란하는 재밍(jamming)은 큰돈, 기술을 들이지 않고 확보가 가능하다. 24w급 재머를 공중에서 송출하면 남한 대부분 지역의 GPS 수신이 제한될 것이다. 국군 C4I(지휘통제통신전산정보체계)를 원거리에서 타격하는 전자기펄스(ENP)나 발생장치기술은 북한이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신(新)기술이 등장하면 국가안보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I-war, 전자전 준비를 잘해왔을까.

      

 

“한심한 수준”

G20 서울 정상회의(2010년 11월11~12일) 직전 보안을 다루는 국정원 관계기관이 밥 때 요릿집처럼 분주했다. 월, 화, 수, 목, 금, 금, 금 일하는 이 기관엔 20~30대 박사가 즐비하다고 한다. 안보당국은 북한의 I-war 테러를 우려했다. 인천국제공항 관제센터·물류시스템을 공격할 수 있다고 봤다.

북한이 사이버전으로 전력망을 공격하면 어떻게 될까. 전력망이 첨단화할수록 공격에 취약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한국은 배전망을 컴퓨터로 제어해 낭비를 줄이는 스마트그리드를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배전망의 보안이 뚫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안보당국 관계자 설명이다.

“회복불능 정전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의 생명은 보안인데, 실무자들은 자동계량기쯤으로 여겼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보안이 완벽해야 한다. 그래야만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배전시스템 컴퓨터 조작을 통해 발전기를 파괴할 수 있는지 실험한 적이 있다(2007년). 배전망을 공격하자 과부하가 걸린 발전기가 가동을 멈췄다. 미국은 테러리스트로부터 전기를 지키고자 보안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유비쿼터스 환경도 적의 비대칭 공격 대상이다.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어보자. 유비쿼터스 환경을 표방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가스·전기·수도·방범을 집 밖에서 휴대전화 등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 보안은? 안보당국 관계자는 “한심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테러리스트가 유비쿼터스 환경을 뚫으면 요인도 암살할 수 있다. 가스를 누출하거나 전기를 조작하는 것이다.

 

비대칭전력

주변국은 경쟁적으로 사이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러시아·이스라엘은 실전(實戰)에서 사이버 전력을 가동했다.

미군은 이라크전쟁을 수행하면서 적군 정보시스템을 해킹해 들여다봤다. 암호화 시스템이 파괴당한 이라크는 감청이 용이한 통신채널을 이용해야 했다. 미군은 전자전 공격으로 이라크군 C4I체계와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미국의 사이버전 역량은 세계 최강으로 평가된다. 전 지구적 도·감청망을 구축했으며, 해킹 능력도 최고다. 미군은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모토 아래 2010년 5월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기술지원은 국방정보체계국이 맡고 있다. 사이버사령부는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동맹국 활동을 보장하고 적 활동을 무력화하고자 광범위한 작전을 펼치는 것을 임무로 삼았다. US-CERT가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고, NIPC는 국가기간 인프라를 노린 공격을 방어한다. 국토안보부 중심으로 2006년부터 ‘사이버 스톰’이라는 I-war 억지 훈련도 벌여왔다.

러시아는 2007년 4월 I-war 전력을 활용해 에스토니아를 공격했다. 에스토니아 국간기간 통신망·이동통신망·방송·은행이 마비됐다. 러시아는 사이버 공격 사실을 부인했지만 3주 동안 100만대에 달하는 컴퓨터로 도발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8년 8월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도 사이버전을 병행했다. 그루지야군 정보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으며 은행·언론·정부 인터넷 시스템이 무용지물로 변했다. 러시아는 논리폭탄, 전자기펄스(EMP)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이렇듯 전쟁 패러다임이 물리적 타격과 사이버전을 병행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전 전략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비대칭을 키워드로 한다. 중국보다 네트워크 의존도가 높은 미국이 사이버 공격으로 당할 피해가 더 크므로 I-war를 통해 전력 열세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사이버 공격이 원자탄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사이버 공격과 정보교란을 임무로 삼은 넷 포스(Net Force)와 전자전부대를 각각 2000년, 2003년 창설했다.

 

110호 연구소

북한의 실력은 어떨까? 안보당국 관계자 진단이다.

“프로그래밍 능력은 우리보다 크게 떨어진다. 우수한 개발자를 보유했으나 프로그램을 사용할 곳이 적다보니 능력개발에 한계가 있다. 프로그램을 시중에 유통한 후 버그를 수정하면서 기술이 축적된다. 해킹기술, 사이버전 수행능력도 우리가 월등하다. 문제는 우리는 공격할 곳이 별로 없고, 북한은 공격할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관제센터를 마비시킬 정도의 능력은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사이버전은 부드럽지만 치명적이다. 네트워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이버 공격은 장사정포보다 더 파괴적이다.”

북한이 I-war 전력으로 공격하면 어떻게 보복해야 할까. 공격자가 북한이란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까.

국정원은 2010년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만 9200여 건의 정부기관에 대한 사이버공격이 있었고, 2004년 1월부터 현재까지 4만8000여 건의 사이버 공격사례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2007년부터 2010년 6월까지 해킹을 통해 유출된 군사기밀이 1763건에 달한다(군사2급비밀 123건, 군사3급비밀 78건, 군사대외비 95건, 훈련비밀 1467건)”고 밝힌다.

존 타식 헤리티지재단 전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내 전문가는 소수지만, 국제 대회 수상 경력이 있을 만큼 잠재력을 갖췄다. 북한의 사이버전 전담부대가 자체기술로 양성된다기보다 중국 지원을 받고 있을 소지가 크다. 중국의 기술적 지원을 받는다면 위협적이다.”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에 사이버전쟁 전담부대와 110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전 전문요원은 김일 전 부주석 이름을 딴 김일군사대학에서 양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5년제인 이 대학에서 해마다 100명 넘는 특수요원이 배출된다고 한다. 인민학교 학생 중 영재를 선발해 집중교육한 후 김일군사대학에서 사이버 전사로 육성한다고 한다. “엘리트 학생들이 만 10세 때부터 6년간 매년 500시간이 넘는 집중교육을 받는다”고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전한다. 1000명 가까운 해커가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은 자국과 중국에 수개의 해킹기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전선부, 총참모부 적공국도 사이버전 역량을 갖췄다.<그림 참조>

 

 

팥소 없는 찐빵

한국 I-war 억지력은 어떨까.

국군은 2010년 1월 사이버전 대응 조직인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준장을 사령관으로 한 이 조직은 해킹 예방, 보안관제, 복구를 총괄·지휘하며 유사시 군사작전을 수행한다.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국가·공공분야를 맡고 있으며, 국군 정보사령부도 사이버전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육·해·공군 사이버침해대응체계(CERT)가 군 인트라넷을 보호한다.

       

사이버사령부 창설을 두고 뒷말이 적지 않다. 이진삼 의원(자유선진당)은 2010년 국정감사 때 “기무사 통합관리센터에서 사이버 방호체계를 통합 관리했는데, 사이버사령부와 업무가 중복되는 것 아니냐? 예산, 인력 낭비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사령부를 기무사 예하로 둘 것이냐를 놓고도 논란이 있었다. 기무사, 정보사, 국정원이 주도권, 기득권을 놓고 다툰다는 얘기도 들린다.

안보 관련 국가기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는데, 기술지원센터가 없다. 사령관은 있는데 두뇌조직은 없는 것이다. 빈손으로 테러 잡겠다는 꼴이다.”

사이버사령부가 팥소 없는 찐빵을 닮았다는 것이다.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도 인원이 20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조직은 국가·공공 분야 사이버안전을 총괄·관리하는 곳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이버전 준비태세 문제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컨트롤타워가 없는데다, 각 기관이 헤게모니 다툼을 한다. 사이버전 개념이 정착돼 있지 않다. 군 간부의 사이버전 관련 인식과 지식이 낮다. 사이버전 조직과 수행체계가 미약한 수준이다. 사이버 전력으로 적을 공격하는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 기술개발 인력과 조직이 부족하다.”

익명을 요구한 보안전문가 지적이다.

“주무비서관? 없다. 사이버전, 사이버보안을 담당하는 비서관이 청와대에 없다. 군 출신 안보특보는 장관급이지만 권한이 적은데다 사이버 안보를 잘 모른다. IT특보는 국방을 모른다. 사이버 안보를 책임지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이다. 백악관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이버안보조정관을 두고 적 공격을 막는다.”

백악관 사이버안보조정관은 하워드 A 슈미트로 2009년 12월 임명됐다. 사이버안보조정관은 군과 민간의 사이버전 대응을 총괄한다. 그는 조지 W 부시 정부 때인 2001년부터 2년간 백악관 자문역을 맡아 사이버전 관련 국가전략을 수립했다. 1967년부터 15년간 공군에 근무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e베이에서 일했다.

 

두 번으로 족하다

‘신동아’가 23개 국가기관의 해킹방어 능력을 점검한 적이 있다.(‘신동아’ 2010년 3월호 ‘정부 대외비 문건에 나타난 공공기관 웹 취약점 실태’ 제하 기사 참조) 경찰청 e메일, 외교부 출장정보도 뚫려 있었다. 국세청 보건복지부가 ‘우수’했고, 행정안전부 대검찰청 경찰청 등 8개 기관은 ‘심각’했으며, 외교통상부 통일부 등 10개 기관은 ‘나쁨’으로 분류됐다.한국판 위키리크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행안부는 2010년 12월14일부터 스마트 정부 구축 첫 단계로 ‘정부 모바일 오피스’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간단한 업무상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모바일 메모보고’가 시범운영 대상이다. 인터넷 전자정부는 한국의 효자 수출 상품이다. 2010년 수출액이 1억4876만달러에 달한다. 스마트 정부도 IT 효자 상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정부 구축을 놓고 국정원과 행안부가 충돌했다고 한다. 행안부는 업무 효율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보안 문제가 심각하다. 가이드라인이 잡히면 하자”는 쪽이었다고 한다. 보안이 우려된다고 스마트 정부 구축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날로그 시대엔 존재하지 않던 위협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북한은 I-war 역량을 비대칭전력으로 키우고 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폭을 두고 기습공격을 당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들린다. 정보전 전력은 기습공격 징후를 파악하라고 국민이 세금으로 사준 것이다. 실수는 두 번으로 족하다.

 

 

[밀착추적]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물려받은 사악(邪惡) 산업

美 위조달러 찍어내는 北 평성인쇄공장 100달러 지폐 55만장분 스위스産 종이·잉크 확보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taekyungh@dauml.net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김정은 1호로 불리는 고품위(高品位) 히로뽕
● 마약산업 총괄하는 39호실
● 가짜담배 제조창으로 전락한 BAT(영국 담배회사) 북한공장
● 효능 좋은 북한産 비아그라
김정일(오른쪽), 김정은이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일→김정은 권력승계를 가파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9월28일 열린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이 공식 등장했다. 10월10일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 행사 때는 주석단에 김정은이 나타났다. 김정일이 38세 되던 해인 1980년 처음 주석단에 얼굴을 드러낸 것과 비교하면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는 졸속이다 싶을 만큼 빠르다.

 

권력승계와 통치자금

김정은이 이번에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름으로써 군권 승계 절차는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에도 올랐으므로 당 권력 승계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려면 통치자금이 필요하다. 북한 내 소식통으로부터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통치자금을 이양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 통치자금 관리인이던 전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 이철이 통치자금을 김정은에게 이양하는 작업을 하고자 2010년 3월 평양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북한 통치자금 상당 부분이 마약·위조지폐·가짜담배를 비롯한 불법 활동을 통해서 나온다. 북한은 지도자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고자 이와 같은 더러운 일을 서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일 통치자금을 김정은에게 이동하면서 자금의 원천인 불법 활동도 승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권부에선 불법 경제 활동을 김정은 시대에도 지속할 것인지 검토했고 결국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불법 활동을 중단하면 합법 활동으로 통치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통치자금을 확보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혁·개방은 김정은 권력을 위태롭게 하거나 붕괴시킬 우려가 적지 않다. 북한 처지에선 개혁·개방을 통해 권력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범죄 국가라는 오명을 쓰는 것이 오히려 낫다.

북한-중국 국경지역에서 히로뽕을 유통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은어 중 ‘김정일 1호’라는 게 있다. 질이 가장 우수한 히로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등장 이후 ‘김정은 1호’라는 제품이 생겨났다고 한다. 김정은 1호라는 은어는 북한이 김정은 시대에도 불법 경제행위를 계속하리라는 걸 나타내는 상징적 단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2009년 전후로도 불법 외화벌이 활동이 끊이지 않았다. 외화벌이 활동을 수행하는 돌격대 중 하나가 국가안전보위부다. 북한 내 소식통은 “김정은이 2009년 9월부터 보위부로부터 직보(直報)받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보위부 안에 전용 사무실을 두고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김정은이 외화벌이 활동에 개입했을 소지가 농후한 것이다.

 

김정은 1호 마약

2009년 2월27일 미국 국무부는 ‘2009년 국제 마약통제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6년간 북한 당국이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약거래 사례는 없지만 현재로선 당국이 후원하는 마약거래가 확실히 중단됐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UNDOC(유엔 마약·범죄 퇴치 사무소)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 역시 같은 해 2월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최근 수 년 동안 북한이 마약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는 관행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수의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해마다 4000만달러 규모에 달하는 2t가량의 고품위(高品位) 히로뽕(순도 98% 이상)을 중국을 통해 전세계로 불법 유통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고품위 히로뽕은 브로커들 사이에서 김정일 1호라는 은어로 불린다. 김정일 1호라고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이 히로뽕이 최상급 순도를 가진 덕분이고, 다른 하나는 히로뽕 판매 자금을 통치자금으로 사용해서다.

북한 내 소식통은 “국가기관(보위부가 중심)이 김정일 1호를 매년 평균 2t 넘게 거래하고 있으며, 압록강 하구인 평안북도 신의주, 용천 인근 서해에서 암거래 형식으로 중국 브로커들에게 밀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1호 가격은 2009년 초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1g당 20달러가량이었는데, 최근에는 2배 넘게 값이 올라 40~45달러에 유통된다고 한다. 북한이 1년 동안 거래하는 히로뽕의 시장가격은 적게 잡아도 4000만달러가 넘는다. 이 같은 추산은 개인이 제작해 해외(주로 중국)로 밀수하는 히로뽕은 제외한 것이다.

소식통은 “중국으로 밀반출된 김정일 1호는 각국 브로커들에 의해 가격이 곱절로 뛰어 거래된다”고 전했다. 랴오닝성 단둥에서 1㎏당 4만달러에 거래되는 김정일 1호, 김정은 1호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선 6만5000~7만달러, 홍콩에선 20만달러에 유통된다는 것이다.(도매가 기준)

미국 국무부 보고서와 다르게 북한 정권의 주도하에 마약 수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봉수호(호주에 헤로인 150㎏을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나포된 북한 화물선) 사건 이후 북한은 유엔(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 압력으로 양귀비 생산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1100억원 넘는 마약을 실은 봉수호가 감시망에 걸려든 데는 미국 정보기관 도움이 컸다고 한다.

 

마약산업 총괄하는 39호실

봉수호는 2006년 3월23일 호주 근해에서 격침됐다. F-111 전폭기가 발사한 유도폭탄이 배를 가라앉혔다. 호주 공군 훈련용 목표물로 생을 마감한 것. 알렉산더 다우너 당시 호주 외무장관은 “봉수호 격침은 마약 유통과 관련해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2007년 3월 유엔마약협약에 가입하면서 마약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혔으나 지금도 당국의 방조, 묵인 아래 마약을 생산한다. 북한산 마약은 북한 내 생산지에서 국경으로 이동→전진기지 격인 중국에 보관→제3국으로 밀수출하는 3단계 경로를 거쳐 유통된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경제 위기는 물론 체제 위협에 직면했다. 국가 주도 마약 생산은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하고자 시작한 것이다.

북한은 양귀비를 원료로 하는 헤로인 계통과 북한에서 빙두라고 부르는 히로뽕을 주로 제조한다. 마약 비즈니스는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이 총괄한다. 양귀비는 함경도, 양강도 산간지역에서 재배된다.

내각의 보건성 산하기관 및 무역회사가 중국에서 히로뽕 원료물질(에페드린, 무수초산)과 헤로인 원료물질(무수초산, 아세톤)을 수입해 함경도, 평안도에 터 잡은 제약공장이나 연구소에서 마약을 제조한다.

 

   

부산항-나진항을 오가던 중국 선적 화물선 추싱호. 마약, 위조담배 밀수출에 이용됐다.

 

제약공장, 연구소에서 마약 제조 기법을 습득한 기술자들이 개인 돈벌이를 목적으로 단속기관과 결탁해 마약을 생산해 암시장에 유통하기도 한다.

최근엔 보위부와 결탁한 대(對)중국 무역업자들이 중국 내 화학공장에서 원료물질과 제작기구를 구입해 북한 내 마약 제조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기술자들은 화학공장이 밀집한 함경도·평안남도 지역 내 아파트 형태의 자가에서 마약을 제조하고 있으며 보위부 인사들은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무역업자들로부터 이익금의 절반가량을 뇌물로 받는다.

마약 밀반출엔 당국자·무역업자·선원이 관여한다. 중국에 체류하는 공관원이나 외화벌이 무역회사 직원도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자금을 마련하거나 재산을 축적하고자 마약밀매에 가담한다.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일꾼은 자력갱생한다. 급여를 주고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돈을 벌어 살고 정해진 돈을 국가에 입금해야 하는 곳, 그래야 훈장 받고 영웅 되는 곳이 북한이다. 마약 거래도 자력갱생 수단인 것이다.

 

한국으로도 밀반출

북한에선 마약을 얼음, 현대약이라고 부른다. 콩알처럼 생긴 것은 총석, 납작하게 만든 것은 판사, 손가락을 닮은 것은 막돌이라고 한다.

중국 베이징(北京), 선양(瀋陽)에서 수시로 보위부 인사(중국에 나와 있는 경제 일꾼 상당수가 보위부 소속이다)를 만나는 한 대북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마약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져 판로가 줄어들면서 북한에서 유통되는 마약이 늘었다고 한다. 마약 제조업자가 밀집한 곳은 함흥이라고 한다.”

8월9일 북한 당국은 ‘마약단속통제를 강화할 데 대한’이라는 제목이 붙은 포고문을 발표했다. 마약 복용자를 총살에 처한다는 게 요지다.

북한 거주 소식통은 “함흥에서 얼음, 빙두를 주로 생산하는데 최근에는 어른뿐만 아니라 중학생까지 공공연히 마약을 하고 있다. 당국이 단속에 나선 것은 얼음, 빙두로 대마초는 북한에서 마약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국경경비대가 중국 내 조선족·탈북자와 결탁해 마약을 중국으로 밀반출하는 일도 잦다. 이렇게 유통된 마약이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을 통해 한국, 일본으로도 건너온다. 최근 한국에선 인터넷을 통해 마약이 거래된다. 그중 일부가 북한산이다.

2009년 4월 한국인 정모씨가 부산 지역 폭력배와 일본 야쿠자에게 공급할 계획으로 조선족 김모씨로부터 북한산 히로뽕 500g을 구입해 밀반입하다 적발된 일이 있다. 그는 중국인 보따리상을 통해 다롄(大連)-인천 여객선을 이용해 히로뽕을 들여오다 꼬리가 잡혔다. 2010년 1월엔 중국에서 북한산 마약을 아기 기저귀에 숨겨 밀반입한 후 국내에 유통한 탈북자 부부와 한국인 2명이 적발됐다.

      

 

‘2009년 국제 마약통제 전략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은 마약 남용 문제가 없다는 명성 때문에 마약 거래업자들이 마약을 옮겨 싣는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최대 항구 중 하나인 부산은 한국을 불법 마약을 선적하는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다.”

북한산 마약은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1회 투입 분량 히로뽕이 8만~10만원에 거래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한국 마약 조직은 거의 모두 중국으로 옮겨갔다. 이들이 다루는 물건엔 북한산도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똬리 튼 한국 마약 조직은 중간 판매책을 활용한 일대일 방식에서 인터넷을 통한 박리다매 방식으로 밀매 수법을 바꿨다. 중국에서 수집한 마약을 특수 포장해 국제우편을 이용해 한국으로 배달한다. 마약 조직엔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조선족 혹은 탈북자가 파트너로 참여한다.

대북사업가 K씨는 “탈북자와 조선족이 중국조직과 결탁해 북한산 마약을 한국으로 유통한다는 걸 북한 관료들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 찍어내는 926호 공장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010년 8월2일 “북한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달러 위조 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슈퍼노트라고 불리는 100달러 위조지폐 제조·유통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다.

북한은 1980년대 외화벌이 차원에서 위조 달러 생산을 본격화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초정밀 위조달러, 즉 슈퍼노트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했다.

평남 평성시 소재 평성상표인쇄공장에서 시변색 잉크(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잉크) 요판(凹版)인쇄 방식을 확보해 육안으로는 진위 구별이 불가능한 슈퍼노트를 연간 1500만~1700만달러가량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성상표인쇄공장은 평성시 삼화동 산골짜기에 위치하는데 1970년대 말부터 화폐생산을 해왔다. 이 공장은 내각 재정성 조선중앙은행 산하에 있지만, 인민보안성 통제도 함께 받는 특수기관이다. 926호 공장으로도 불린다. 생산기술 노동자 120여 명과, 보안성·보위부 인사들이 함께 일한다. 이 공장을 관할하는 특수부대는 중대 규모로 알려진다.

북한 고위급 소식통은 926호 공장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모 기업소가 2010년 2월 중국 옌지(延吉) 주재 회사를 통해 스위스에서 달러 위조용 잉크와 종이를 수입했다.”

중국 회사를 통해 스위스에서 수입한 잉크, 종이가 두만강 주변 북한-중국 국경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잉크, 종이 총액이 220만달러가 넘는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미국 국무부 전 북한실무팀장 데이비드 애셔가 2005년 11월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슈퍼노트를 1장 제작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40센트 이하”라고 추정한 것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이 종이, 잉크로 100달러권 위조지폐 55만장을 제작할 수 있다.

 

   

 

북한은 해외체류 공관원, 상사 주재원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한 위조지폐를 유통시킨다. 각종 대금이나 출장 경비에 위조달러를 끼워 넣기도 한다. 각국의 중간도매상에게도 넘긴다. 북한산 슈퍼노트는 100달러권 1매당 30~40달러에 판매된다. 유통과정에서 직·간접으로 국제 범죄조직이 연계된다.

 

스위스産 잉크, 종이 수입

슈퍼노트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처음 발견됐다. 1994년에는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북한 무역회사 간부들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슈퍼노트 25만달러를 입금하려다 체포됐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탈북자 진술을 토대로 슈퍼노트 출처를 북한으로 지목하고, 북한 외교관·상사 주재원의 위조달러 유통을 추적했으며 관계부처 합동조사팀인 불법행위방지구상(IAI)을 2003년 조직해 정밀 조사에 나섰다.

미국이 북한 위조지폐 제작 관련 증거를 외부에 공개하며 유관 국가와 정보공유·공조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은 2006년 1월 이후다.

2008년 4월 미국 재무부는 상원 재무위 보고에서 “2005년 BDA 제재 이후에도 위조지폐용 인쇄용품을 구매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면서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위조달러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북한산 위조달러가 두 차례 적발됐다.

2004년 6월 검찰이 위조지폐 유통조직 일당을 검거해 위조미화 7만달러를 압수한 적이 있다. 이 돈은 베이징 주재 북한 공관원이 조선족 차모씨에게 활동비로 지급한 10만달러 중 일부로 드러났다. 검찰은 북한이 단둥 고려호텔 내 무역사무소를 위조지폐 유통 거점으로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2008년 11월 부산에서 일어난 북한산 슈퍼노트 유통사건은 유명하다. 한국인 위조지폐 밀매 조직이 다롄에서 밀반입한 100달러 위조지폐 1만장을 환전업자에게 판매하려다 수사망에 걸린 사건이다. 수사당국이 적발한 슈퍼노트는 잉크·지질을 대폭 개선해 은행 위조지폐 감별기를 무사통과했으며, 전문가들도 진위를 판별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해외 공관원, 상사원을 통해 유통하려다 압수된 과거의 북한 위조지폐들과 동일한 원판에서 제조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아시아 소재 가짜담배 제조업체를 유치했다. 이들 업체와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가짜담배 생산에 나섰다. 2000년대 초반 가짜담배 생산이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감시를 강화하면서 2005년부터 가짜담배 생산은 과거보다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표>의 추정치는 익명을 요구한 항만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것이다. <표>에 명시한 예상 수익금은 한국에 반입을 시도하거나 한국을 경유하려다 적발된 것을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북한에서 실제로 생산한 가짜담배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북한産 ‘MILD SEVEN’

필립모리스, BAT 등이 공동으로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는 북한이 10~12개 공장에서 연간 가짜담배 410억 개비를 생산해 5억~7억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이 정교한 가짜담배를 제작할 능력을 가진 데는 다국적 담배회사 BAT 역할이 컸다. BAT는 2001년 북한에 공장을 세워 담배를 생산했다. BAT가 60%, 조선서경천연물무역회사가 40%를 출자했다. 합영회사 이름은 대성BAT. 배종렬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05년 미국이 BDA 제재에 나섰을 때 BAT가 대동신용은행에 예치한 자금 400만달러가 동결됐다. BAT는 설비를 남겨둔 채 북한에서 철수했다(철수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BAT는 지금도 북한 투자 내용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BAT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 설비를 바탕으로 이 공장에서 A급 가짜담배를 생산한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신발업체는 세계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한다.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북한이 짝퉁 운동화를 만들어 돈을 벌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에서 생산한 가짜담배는 주로 중국, 동남아시아, 러시아로 밀수출돼 유통되고 있다. 북한은 그중 일부를 남(부산)-북(나진)운항 화물선인 추싱호를 활용해 밀수출했다. 한국 정부는 2003~08년 추싱호를 통해 부산항에 들어온 팔말, 마일드세븐을 비롯한 가짜담배 678만 갑을 적발했다. 추싱호는 현재 운항을 중단했다.

중국 선적 화물선 추싱호에 실은 가짜담배는 유아용품, 의류, 완구 품목으로 위장해 부산항에서 환적 처리한 후 동남아시아, 미주 지역으로 수출됐다. 부산을 환적지로 이용한 것은 한국으로 선적지를 세탁함으로써 수입국 세관 검색·단속을 피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세계 컨테이너 운항 체계에 포함돼 있지 않다. 북한 컨테이너는 한국 러시아 중국 홍콩에서 환적한 뒤 제3국으로 보내진다.

북한은 유럽 소재 위조담배 조직과 연계해 유럽산 담배원료를 반입한 후 가짜담배를 제조·가공해 유럽지역으로 다시 밀수출하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유럽지역 범죄조직이 북한을 가짜담배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북한 당국이 이를 묵인하고, 협조하면서 외화를 버는 것이다.<그림 참조>

북한 당국은 가짜담배 유통을 통한 외화자금 획득에도 개입하고 있다. 해외 주재 북한 공관원이 위조담배를 밀수하다 적발된 일도 있다. 2009년 11월 스웨덴 세관은 위조담배 1만1500갑을 스웨덴으로 밀반입하려고 한 북한 외교관 2명을 체포했다.

   

 

효능 좋은 북한産 비아그라

중국 항구는 북한산 가짜담배가 중국산으로 세탁돼 수출되는 루트다. 중국은 가짜담배 천국. 정교하게 위조한 말버러, 마일드세븐, 던힐, 블랙데블이 1갑에 5~11위안(850~1900원)에 팔린다. 중국산, 북한산 가짜담배가 뒤섞여 유통된다.

“가짜담배는 아동복, 농산물 등으로 수입 품목을 허위 신고한 뒤 커튼치기 방식으로 들어온다”고 인천세관 관계자는 말했다. 알박기라고도 하는 커튼치기는 세관에 신고한 상품을 컨테이너 양쪽과 윗부분에 싣고 중앙에 가짜담배를 숨기는 것을 말한다. 세관은 컨테이너 100개당 2~3개밖에 뜯어볼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류가 마비된다고 한다.

한국과의 무역이 활발한 산둥(山東)성 옌타이(煙台)와 웨이하이(威海) 암시장에선 가짜담배뿐 아니라 북한산 발기부전치료제도 팔린다. 정교하게 위조한(치료효과가 실제로 있다) 비아그라나 씨알리스 한 상자가 소매가격으로 200위안에 거래된다. 비아그라를 비롯한 위조약품도 북한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다.

재래시장 골목이나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팔리는 비아그라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들여온 가짜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가짜 비아그라는 중국산, 북한산이 뒤섞여 있다. 정교하게 위조한 북한산 비아그라는 정품의 3분의 1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북한산 가짜 비아그라는 보따리상을 통해서도 한국으로 밀반입된다. 술병에 비아그라를 담아오는 수법도 활용된다고 한다. 보따리상 한 명이 운반하는 비아그라는 소량이지만, 수거책이 거둬들이는 양은 상당하다.

가짜 의약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상 국가’에서 위조 의약품을 보기 어려운 건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특허 제도 탓에 안 만들어서다.

 

지금이, 버릇 고칠 때

일각에선 김정은이 집권하면 김정일 시대와는 다르리라는 기대 섞인 관측을 내놓는다. 나이가 젊은데다 외국 문물에 밝다는 걸 근거로 제기한다. 이 같은 전망은 환상일 소지가 적지 않다. 국제사회가 북한이 저지르는 불법 활동을 제재하지 않으면 사악(邪惡) 산업이 김정일→김정은으로 대를 이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 정권의 통치 자금줄을 추적, 압박하는 지갑 정책(Pocketbook Policing)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일이 김정은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지금이 북한의 버릇을 고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