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_19

醉月 2011. 1. 4. 08:54

唐代 측천무후도 인정한 정치가 중국판 셜록 홈스 이야기 적공안(狄公案)

▲ 일러스트 이철원
고대 중국에서는 추리소설을 ‘공안(公案)소설’이라고 불렀다. ‘공안’은 관리가 안건을 심리할 때 사용하던 ‘탁자’나 ‘공식 문서’, 즉 ‘쟁점이 되고 있는 문서’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었던 ‘포청천(包靑天)’ 시리즈는 중국의 대표적인 공안소설이자 공안희곡이다. ‘포청천’ 시리즈는 북송 수도인 개봉(開封)의 책임자로서 공명정대한 법 집행으로 이름을 떨쳤던 실존인물인 포증(包拯·999~1062)을 모델로 각색한 이야기이다.
   
   
   당 태종 때 실존인물, 구전으로 전해져
   
   포청천 못지않게 사건 해결에 놀라운 능력을 보인 인물로 적인걸(狄仁傑)이 있다. 그는 당 태종(太宗) 정관(貞觀) 4년(630년)에 태어나 무측천 구시(久視) 원년(700년)에 죽은 실존 인물이다. 당 초기의 뛰어난 정치가로서 측천무후(則天武后)로부터 ‘국로(國老)’의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고종(高宗) 때에 강남(江南) 순무사(巡撫使)가 되고, 또 위주자사(魏州刺史)로서 거란(契丹)의 내습을 평정(平定)하여 공을 세웠다. 측천무후에게 직간하여 그 친조카 무삼사(武三思)에게 황통의 원로(元老)로 예우를 받았으며, 예종(睿宗) 때 양국공(梁國公)에 봉해졌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구전과 여러 민간문학작품으로 전해지다가 청대에 ‘적공안(狄公案)’이란 제목의 작품이 탄생하였다. 작자는 청 말의 유명한 견책(譴責)소설 작가인 오견인(吳人·1867~1910)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1800년 전후에 쓰였다는 설도 있다. 그 후 여러 판본이 전해지다가 1890년에 상해서국의 석인본(石印本) ‘수상무측천사대기안(綉像武則天四大奇案)’과 1939년에 금장서국(錦章書局)의 ‘수상방송본무측천기안(綉像仿宋本武則天奇案)’으로 정리되었다.
   
   적공안 시리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병풍살인(四漆屛)’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어느 날 밤 당나라 운주자사(雲州刺史) 등간의 부인인 은련(銀蓮)이 피살된다. 같은 날 저녁 비단상인 가흥원(柯興元)이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강가에 있는 자신의 집 담을 넘어 강물로 투신하여 자살한다. 이 두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 해결될 기미가 없는 듯했다. 이때 팽택(彭澤) 현령으로 좌천되었던 적인걸이 다시 복양자사(濮陽刺史)에 임명되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부하인 교태(喬泰)와 함께 임지로 향하던 중 운주를 지나다가 우연히 이 사건을 접하게 된다.
   
   
   적공안 시리즈의 대표작, 병풍살인
   
   운주자사 등간은 자신의 정신 발작을 이유로 적인걸에게 이 사건을 심리해줄 것을 청한다. 가씨 가문의 약방주인인 냉건(冷虔)이 제시한 실마리를 통해 적인걸은 가흥원이 죽기 전에 그의 죽음을 예언한 점쟁이 변반선(卞半仙)이 누군가로부터 큰돈을 받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실마리를 제공한 냉건임을 밝혀낸다. 적인걸은 약방을 찾아 냉건을 추궁했고, 냉건은 자신이 변반선에게 거금을 주었다고 시인하였다. 또한 자신이 가흥원의 부인에게 줄 연꽃그림(荷花畵)을 준비 중이었다고 밝힌다. 이로써 ‘가흥원은 자살한 것이 아니다’라고 등간은 판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범인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적인걸은 부하인 교태의 무공에 힘입어 등간이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는 흑대장(黑大將)의 가게인 ‘장군집(將軍店)’으로 잠입한다. 그곳은 부랑자와 소매치기, 창기들의 소굴이었다.
   
   한편 ‘수재(秀才)’를 자처하는 초량(肖亮)이 기녀들을 관리하는 염향(艶香)에게 은귀걸이를 선물하였는데 그것은 여성의 시체에서 훔친 것이었다. 냉철하게 가게 안을 살피던 적인걸은 그 은귀걸이에 연꽃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은련의 것임을 직감한다. 적인걸이 밤에 관아로 돌아오자 은련의 남편인 운주자사 등간이 놀라운 말을 하였다. 즉 등간 자신이 정신 발작이 일어났을 때 실수로 아내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내용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적인걸은 등간의 말을 의심한다. 우연한 기회에 곤산(坤山)이라는 애꾸눈 술꾼이 약방주인 냉건과 여자의 관계를 이용하여 실마리를 풀어갈 것을 충고한다. 적인걸은 그 여자가 비단상인 가흥원의 부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유인작전을 펼치자 과연 냉건이 작전에 말려들었지만 살인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였다. 적인걸은 가흥원의 집을 뒤져 마침내 가흥원의 침대 밑에서 가흥원의 시체를 찾아낸다.
   
   
   놀라운 추리력으로 사건 해결
   
   그렇다면 가흥원으로 꾸미고 강물로 뛰어든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정답은 수재를 자처하던 초량이다. 다시 장군집을 찾은 적인걸은 은련이 죽기 전에 취화(翠花)여관에서 한 청년과 두 차례에 걸쳐 몰래 만난 사실을 알아낸다. 적인걸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마침내 은련의 살인범이 애꾸눈 술꾼 곤산임을 밝혀내고, 초량과 정을 통하고 남편 살해를 주도한 가흥원의 아내와 초량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다른 혐의자들을 풀어준다. 곤산은 은괴를 훔치러 등간의 저택에 잠입했다가 은련을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적인걸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등간이 스스로 아내의 살인죄를 자청했던 숨겨진 이유까지 밝힘으로써 그의 추악한 면모를 간파하였다. 등간은 은련이 자신보다 글재주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그녀의 시집 출간을 막고 은연중에 자신의 작품에 그녀의 글귀를 도용하기도 하였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밀회하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미행하여 현장에서 고발할 수도 있었지만 ‘보기 드물게 금실 좋은 부부’라는 평판을 깨는 것이 두려워 이를 묵인하였고 이후로는 아내의 밀회 장면을 몰래 훔쳐보기까지 하였다. 아내가 죽자 오히려 이 사건을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적인걸은 이런 내막을 공개하지 않고 운주를 떠나고 등간은 끝까지 자신의 체면을 위해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
   
   
   한국서도 ‘황금살인자’ 등으로 출판
   
▲ 유럽의 TV잡지 표지를 장식한 적인걸.
적공안 시리즈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었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명판관 디공 시리즈’라고 하여 ‘황금살인자’ ‘호수살인자’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 4권을 번역·출판한 것. 디공(公)은 적공안의 중국 현지음 ‘디런지에’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적공(狄公)인 셈이다. 영문판을 번역하여 등장인물의 중국식 이름 표기가 약간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훌릭의 노력을 우리말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중화권에서는 TV 미니시리즈와 영화를 통해 적인걸의 활약상을 무수히 재현하였다. 최근에는 ‘칠검(七劍)’ 이후 5년 만에 홍콩의 유명 감독 쉬커(徐克)가 메가폰을 잡고 홍진바오(洪金寶)가 무술지도를 하였으며, 류더화(劉德華), 리빙빙, 량쟈후이(梁家輝), 류쟈링(劉嘉玲)이 주연을 맡은 영화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狄仁杰之通天帝國·Deteective D)’이 올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적인걸(류더화 분)은 지략이 뛰어난 명탐정을 넘어 문무를 겸비한 쿵푸의 고수로 그려진다. 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적인걸은 조정에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자 무측천의 명으로 사건 해결에 투입되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패기가 넘치면서도 통제력을 겸비하였고 낭만적이면서도 고독한 비중 있는 배역인 무측천 역에는 류쟈링이 열연하였다. 제작자와 감독 모두 린칭샤(林靑霞) 이후 완벽한 적임자로 선택되었다는 후문이다. 또 무측천 곁을 지키는 여성관리인 상관정아(上官靜兒) 역은 리빙빙이 맡았다. 그녀의 역사 원형은 상관완아(上官婉兒)인데 역사적 인물과 구별하기 위해 ‘상관정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담을 뛰어넘고 7종의 무기를 사용하는 무술의 고수로서 제2의 무측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무측천, 적인걸과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적인걸의 조수로 나오는 배동래(裵東來) 역에는 덩차오(鄧超)가 열연하였다. 그는 알비노증을 앓아 백발에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넘치는 정의감과 민첩함으로 위기 때마다 적인걸을 충실히 보좌한다. 이 영화를 통해 ‘중국의 셜록 홈스’ 적인걸의 활약상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리라 예상된다.
   
   
美 시카고 필독서로 선정된 ‘적공안’
   
   네덜란드 외교관 훌릭이 영문 번역… 세계적 유명세, 영화로도 만들어져
   
   적공안 시리즈가 본격적인 추리소설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외국인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바로 네덜란드인인 로베르토 반 훌릭(Robert Hans van Gulik·1910~1967)으로 중국명은 고라패(高羅佩)였다. 그는 군의관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창시절부터 언어적 재능을 키웠다. 1934년 훌릭은 동아시아학 분야로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라이덴대학에 입학하여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편, 인도의 고전 희곡 작품을 네덜란드어로 번역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외무부에 들어가 도쿄를 시작으로 중국과 인도, 말레이시아, 레바논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였다. 그는 1943년 충칭(重慶)의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비서로 있던 수이스팡(水世芳)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외할아버지인 장즈동(張之洞)은 청 말의 명신이었고 아버지 수이쥔사오(水鈞韶)는 소련 레닌그라드 주재 총영사관에 근무했으며 후에 톈진(天津)시장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1965년에는 주일(駐日) 네덜란드 대사의 신분으로 도쿄에서 생활하였고 1967년에 폐암 진단을 받고 57세로 사망하였다.
   
   훌릭은 중국의 문화와 문학에 대한 전문적 연구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방면에 걸쳐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그런 관심은 종종 훌륭한 결과물로 탄생됐다. 중국화에 대한 관심은 600쪽에 달하는 ‘중국회화감상(Chinese Pictorial Art as Viewed by the Connoisseur)’(1958)이란 수작을 낳았다. 또한 각 시대의 춘화도를 모아 책으로 엮고, 그것들을 연구하여 네덜란드에서 ‘고대 중국의 성생활(Sexial Life in Ancient China)’(1961)이란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중국의 방중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첫 번째 저술로 손꼽힌다. 이밖에도 거문고와 서예 등에 조예가 깊었으며 각종 골동품과 장서를 수집하였다. 그래서 그의 모교인 라이덴대학의 중국학연구원에는 그의 이름을 딴 전문서고가 있어 중국문화 연구의 요람이 되고 있다.
   
   ‘적공안’과 관련하여 훌릭은 충칭에 있을 때 청 초의 공안소설인 ‘무측천사대기안’을 읽고 주인공인 적인걸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가 느끼기에 적인걸의 사건 처리능력은 서양의 어느 추리소설 주인공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당시 중국인들은 수준이 낮은 서양의 추리소설을 읽고 있었고 번역도 형편없었다. 훌릭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공안소설이 서양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940년대 말에 ‘무측천사대기안’의 영문 번역에 착수하였다. 그는 이 책의 후반부는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전반부 30회만 번역하였다. 이와 함께 훌릭은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하는 ‘쇠종살인(銅鐘案)’을 창작하였다. 그는 원래 이 작품을 중국에서 중국어로 출판하려 했지만 당시 중국 출판계에서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영어로 출판하였다. ‘쇠종살인’은 출판과 함께 큰 인기를 누렸다. 훌릭은 이 성공에 힘입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미궁안(迷宮案)’ ‘황금살인(黃金案)’ ‘쇠못살인(鐵釘案)’ ‘병풍살인(四漆屛)’ ‘호수살인(湖中案)’ 등 10여편의 중단편 소설을 창작하였다. 위에서 줄거리를 다루었던 ‘병풍살인’은 훌릭이 아내인 수이스팡과 그리스를 여행하던 중 차를 기다리다 무료하자 도쿄에서 명대 병풍을 샀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줄거리를 구상했다가 숙소로 돌아와 단번에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훌릭의 작품들은 ‘적공단안대관(狄公斷案大觀·Celebrated Cases of Judge Dee)’이라는 전집으로 엮어졌다. 여기에는 15개의 중장편과 8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훌릭의 영문판에 앞서 1950년과 1951년에 일문판 ‘적공안’이 있었지만 영문판 이후 ‘적공안’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1960년대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심지어 스웨덴어, 핀란드어, 크로아티아어 등으로도 번역 출판되었고, 적인걸(Judge Dee)은 여러 차례 영화화되면서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캐릭터가 되었다. 이후 ‘적공안’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선정한 필독서에 뽑히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훌릭의 작업은 여러 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즉 중국의 공안소설을 서양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추리력과 단편적인 줄거리, 뻔한 결말 등 공안소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여러 사건의 동시 진행, 중국문화에 대한 세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디테일한 묘사, 추리력과 논리력의 강화 등의 강점을 더함으로써 명판관 적인걸의 이미지를 한층 부각시켰다. 그리고 주인공은 당대(唐代)의 적인걸이지만 ‘적공안’이 청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작품에는 당대와 명청대의 사회상이 섞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