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단체&요결

선관책진[禪關策進]

醉月 2011. 4. 23. 08:54

선관책진 [禪關策進]
도(道)에 내외(內外)없으며 출입이 없는 것이어늘 선(禪)에서 어찌 관문 (關門)이 있으랴. 그러나 도를 닦음에 사람에는 미(迷)와 오(悟)가 있으므로, 이에 큰 선지식인 관문지기가 있어서 시기에 맞춰 관문을 열고 닫으며, 자물쇠를 잘 단속하며 사실을 엄히 감정함으로써 말과 복색을 달리하여 슬며시 법도를 뛰어넘어 가려는 자로 하여금, 부득이 그 간사를 부리지 못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관문을 지나기가 쉽지 아니 한 지도 이미 오래다.


내가 처음 출가하였을 때 마을에서 한질 책을 얻었었는데 이름을 선문불조강목(禪門佛祖綱目)이라 하였다. 거기에는 옛 여러 큰스님께서 처음 공부 지어가기 어려웠던 일이며 중간에 노고하신 경력이며 마침내 신오(神悟)를 얻으신 일 등이 실려있어, 내 이를 크게 아끼고 중히 여겨 깊이 배우기를 간절히 바랐더니, 이윽고 이 책은 다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어 오등(五燈) 제 어록과 여러 스님들의 전기를 열람하면서 치소(緇素)를 막론하고 다만 실지 참구하고 실답게 깨친 대문은 모두 모으고, 다시 번거로운 것은 삭제하고 요긴한 것만을 간추려서 한편을 만들어 이름을 바꾸어 선관책진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집에 있을 때는 책상머리에 두고 행각 할 때는 걸망에 넣어서 항상 지니고 다녔던 것인데, 한번 책장을 펴면 즉시에 심지(心志)가 격발하고 정신이 새로와져 불각 중 스스로 깨우치고 채찍질 되어 앞으로 내닫는 것이었다.


혹 어떤 사람은 이르기를, "이는 아직 관문을 지나지 못한 이를 위함이요 이미 관문을 지난 이는 벌써 멀리 갔거니 이를 어디에 쓰랴" 할 것이다.


그러나 관외에는 거듭 관이 있는 것이니 저 거짓 닭 소리를 빌어서 잠시 호랑이의 환을 면하며 적은 것을 얻고 족히 여기는 것은 이미 증상만인(增上 慢人)이 됨이니, 아직 물이 다 하지 아니하고 산이 다 하지 않았는데, 채찍 이 손에 있으면 빠르고 다시 멀리 달려 마침내 최후의 깊은 관문을 뚫을 것이니 그 때에 서서히 파참재(罷參齋)를 베풀어도 늦지 않느니라.


만력(萬曆) 28년 경자년 이른 봄 운서 주굉 적음


* 용어정리
[1] 선관책진(禪關策進): 참선공부를 지어가매 꼭 지나가야 할 관문으로 일깨우고 채찍질하여 나아간다는 말이니, 깨우치지 못하는 것을 일깨고 나아 가지 않는 것을 채찍함이다. 꼭 지나가야 할 관문이란 바로 조사관이다.


[2] 관문.조사관(關門.祖師關): 옛날에 국방상, 혹은 경제상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 관문인데,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데는 반드시 화두를 꼭 통과하여야 하므로 화두가 조사가 되니 관문인 것이니 그래서 공안을 조사관이라 하는 것이다. 무문개(無門開)선사가 말씀 하시기를, "참선은 반드시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반드시 마음길이 끊어져야 한다. 조사관을 뚫지 못하고 마음길 이 끊기지 않았으면 이것은 다 초목에 붙은 허깨비 종류니라."하였다.


[3] 오등(五燈): 등이 차례차례 불 붙어져 꺼지지 않는 것처럼, 법을 받고 전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전등이라 하고, 전법 수법하는 의식을 전등식이라 한다. 그래서 조사스님들의 행적과 사법의 경위와 순서를 기록한 글에"등 "자를 붙여왔으니 전등(傳燈), 속등(續燈), 광등(廣燈) 보등(普燈), 연등(聯 燈)이 그것이다.


[4] 치소(緇素): 출가인과 재가인. 승속이라는 말.


[5] 거짓 닭소리: 맹상군(孟嘗君)이 슛기어 변성명하고 밤중에 함곡관(函 谷關)에 이르렀는데 닭이 울어야 문을 열므로 못 나가고 있었더니 마침 3천 명의 맹상군 식객 중에는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그가 닭 울음소리를 내니 모든 닭이 일제히 우는지라 관문지기가 시간이 된 줄 알고 문을 열음에 맹상군은 문밖으로 달아나 위기를 피하였다.


[6] 증상만인(增上慢人): 소견소법(小見小法), 즉 소승에 만족하고 다시 다른 법 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리.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생각하여 자시하는 무리. 법견에 국집하는 무리.법화회상(法華會上)벽 두에 퇴석한 5천인이 보인다.


[7] 파참재(罷參齎): 공부를 마치고 조사의 인가(印加)를 받을 때 베푸는 재연.


[8] 만력(萬曆): 명(明) 제13대 신종(神宗)때의 역호. 28년은 우리나라 이 조 15대 선조 33년이니(서기 1600년) 임진왜란이 지난 2년 후가 된다.

 

1. 균주 황벽운선사 시중


대중들아, 너희들이 만약에 미리 칠통을 철저히 타파하여 놓지 않으면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정녕 열뇌(熱 惱)하고 황란(惶亂)할 것이 분명하니라. 어떤 외도들은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저러고 있다"하며 냉소하나 내 그대들에게 묻노니, 홀연 죽음이 닥치면 너는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느냐, 모름지기 평상시에 힘을 얻어 놓아야 급할 때에 다소 힘을 더는 것이니, 마땅히 목마르기를 기다려 샘을 파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죽음이 박도하여서는 이미 수족이 미치지 못하니 앞길이 망망하여 어지러이 갈팡질팡 할 뿐이니, 가위 딱하고 딱하도다.
평시에 다만 구두선(口頭禪)만 익혀서 선을 설하고 도를 말하며 불을 꾸짖고 조사를 욕하여 제법 모두 해 마친 듯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무 용처 없으니, 평시에 남만은 속여왔으나 어찌 이때에 당하여 자기 마저 속이랴.


형제들아, 권하노니 신체가 강건한 동안에 이 일을 분명히 판단해 두라. 대개 이 문제는 풀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목숨을 떼어 놓고 힘써 공부 하려고는 아니하고, 다만 어렵고 어렵다고만 하니 만약 진정한 대장부라면 어 찌 이와 같으랴.

 

모름지기 저 공안(公案)을 간(看)하되 "승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하되 "무"하였으니 다만 26시중에 이 "무"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저 "무"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공부가 타성일편(打 成一片)이 되면 어느듯 홀연히 마음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달마가 서쪽에서 왔다는 것도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것이오,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도 오히려 한바탕 허물이라 할 것이라, 여기 에 이르러서는 천성(千聖)도 오히려 입을 떼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염라노자(閻羅老子)를 말 할까보냐.
대중들아, 이 사이에 기특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생각하지마라. 매사에 일이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하느니라.


<<평>> 이것이 후대에 화두를 가져 공부하게 된 시초가 된다. 그러나 반드시 "무"자만으로 한할 것은 아니니 혹은 "만법귀일(萬法歸一)" 혹은 "수미산 (須彌山) 혹은 "사요소요(死了燒了) 혹은 "참구염불(參究念佛)도 좋으니 한개의 화두만을 지켜서 오직 크게 깨치기만 기약하라.

비록 의심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깨침인즉 둘이 없는 것이다.


* 용어 정리
[1] 황벽(黃檗):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 곳을 유력하였는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 그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니 말하기를"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 )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뿐이지 딴 것이 있습니까?"하니 화상이 불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하겠느냐?"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말씀이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느냐?"하기에 내가 불자를 도로 선상에 놓고 자리에 앉으려 하니 화상이 벽력같은 "할"을 하셨는데 그때 내가 사흘이나 귀가 먹고 눈이 캄캄 하더라."하는 말에 황벽이 불각중에 토설(吐舌)하고 대오하였다. 하루는 백장이 묻기를 "어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밑에 가서 버섯을 따옵니다." "범을 안만났더냐? "황벽이 "으흥!"하고 범이 물려는 형세를 지으니 백장이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는 것을 황벽이 덤벼들어 한번 쥐어박았다. 백장도 한 차례 쥐어박고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날 백장스님이 상당설법에서 말하기를 "대웅산 아래 큰 범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 내가 오늘 한번 물렸다."하였다.


그후 백장의 법을 받아 가지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형적을 숨기고 지냈다. 한번은 용흥사(龍興寺)에 와서 쓰레질이나 하면서 머물고 있었는데 홍주자사 (洪州刺史) 배휴(裵休)가 왔다. 배휴는 법당(영각인듯?) 벽 그림을 가리키며 " 저것이 무엇이요?" 안내하는 스님이 "고승의 상(像)입니다." "형상인즉 볼 만 하나 고승은 어데 있소?"스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니, 배휴"이 절에 선승(禪僧)이 없소?""근자에 한 중이 와 있는데 선승같이 보입니다." 휴는 그 중을 불러오라 하였다. 바로 황벽이다. 휴는 다시 앞서의 말로 물으니 황벽이 즉시에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휴는 엉겁결에 "네!"하니, "어느 곳 에 있는고?"하는데서 배휴가 활연 계합하였다. 휴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를 드리고 사제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였다.


그 후 배휴의 청으로 완능(宛陵)의 개원사(開元寺) 홍주 대안사(大安寺)에 있으면서 크게 교화하니, 법중이 항상 천여명이 넘었다. 법을 이은 제자가 12 인이 있는데 그중에 임제(臨濟)스님이 있다. 지금 여러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완릉록(宛陵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는 선사법어를 배휴가 기록한 것이다.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선사다.


[2] 칠통(漆桶): 어두운 중생심을 가리키는 말. 본래 밝은 이 마음이 미혹, 착각, 전도하여 이른바 무명이 덮여 어둑하기가 옷(칠)을 담은 통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통은 무명(無明)과 같은 말로 쓰인다.


[3] 납월 30일:임종시, 숨질 때


[4] 구두선: 입에 붙은 선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다이 공부하고 실다이 깨칠 따름이요,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도 당한 것이 아닌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 을 구두선이니 구두삼매니 한다.


[5] 문제: 여기서는 관렬자(關렬子)의 번역인데, 관렬자란 올개미, 함정, 혹 은 장치의 뜻을 가진 중국고어다. 여기서는 조사 공안을 말하고 있다.


[6] 공안: 화두라고도 하며 도를 판단하는 법어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 본래 관청의 "공변된 문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써 공정하여 범치 못할 법령이라 는 것이다. 대개 공부하는데 있어 올바르게 깨치는데는 불조의 바른 이치를 직절(直截) 설하신 조사의 말씀이나 몸짓이나 그밖에 모든 방법은 그것이 모두 깨치는데 있어 바른 법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이 공안을 요달하여야 한다. 고래로 조사공안은 천7백칙이 된다고 하나 어찌 조사 공안을 수로 헤아리랴!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실린 불조사의 수효가 천7백1인데 이 수효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


[7] 타성일편:화두가 순숙하여 끊일 사이가 없어져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어 언제나 화두가 현전하는 경지, 오직 화두를 들고 간절히 꾸준히 그리고 힘차게 밀고 나가면 이 경지가 된다. 참으로 공부인의 득력 시절은 이때부터다.


[8] 달마(達磨): (?~528)범어로 <보오디.다르마>. 선종의 중국 초조로 세존. 가섭. 아란으로 전하여 내려오는 불조법통의 제28대 조사가 된다. 남인도 향지국 제3왕자로 본명은 <보리다라>라 하였다. <반야다라>존자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을 섬기다가 <반야다라>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행하던 소승선관의 육종(六宗)을 굴복시켜 전인도에 그 이름을 떨치고 60여년을 교화하였다.

 

 <반야다라>가 법을 전할 때 "내가 죽은 후 67년이 되면 네가 동방으로 가서 대법을 선양하라. 부디 속히 가려고 서두르지를 마라. 남방에 는 유위공업(有爲功業)이나 좋아하고 불리(佛理)는 보지 못하니 그곳에는 머물지 마라. 동토에는 보리를 이룰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하셨는데, 사 조카 이견왕(異見王)을 교화하고는 마침내 바다길로 중국을 향하여 3년만 에 양(梁)나라 보통(普通)1년(서기520)9월 광주(廣州)에 이르러 10월에 금릉 (金陵)으로 가서 무제(武帝)와 만났다.


무제가 묻기를, "화상은 서천에서 무슨 교법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한가지의 교법도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짐이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중을 득도시켰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조그마한 공덕도 없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인천(人天)의 작은 복이니 유루(有漏)공덕이 될 뿐입니다." "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 뚜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 일(有爲之事)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가는 도리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는 이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하였다. 달마는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 숭산 (嵩山)으로 갔다.

 

사(師)가 떠난 뒤에 무제는 지공대사에게서 "그분이 바로 관음보살이라"는 말을 듣고 급히 뒤쫓아 모셔 오라고 하였으나 지공대사는 온 나라 사람이 다가도 오지 않을 거라고 말렸다. 그뒤 사는 소림사(少林寺)석굴에 9년동안 면벽하고 있었으므로 세상에서는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이락(伊洛)에 있던 신광(神光)이 도를 구하여 소림굴 밖에 이르렀다. 신광은 박학군람(博學群覽)하고 불, 유, 선의 깊은 이치를 통달한 이름난 달승(達 僧)이었다. 물론 달마는 면벽단좌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신광은 "옛 사람은 도를 구하기 위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내며, 피를 뽑아 굶주림에 먹이고, 머리를 풀 어 진흙을 덮었으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에게 먹였는데 나는 또한 무엇하는 거냐!"하고 마침내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9일밤, 무릎을 넘는 눈속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날이 밝아 해가 높이 떴을 때야 달마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달마가 신광을 돌아 보고"네가 밤새 눈 속에 서 있어 무엇을 구하는 것이냐?" 신광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말하였다. "원하옵건데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주십시요." "제불(諸佛)의 무상묘도(無上 妙道)는 광겁으로 정근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참을 수 없는 것 을 능히 참아야 하는 것인데 너는 어째서 소지소덕(小智小德)과 경만심(輕慢 心)으로 대법을 바라보고 헛고생이나 하는 것이냐!"


신광은 즉시에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허물을 통절히 뉘우쳤다. 그리고 즉시에 칼을 빼어 왼쪽 팔을 탁! 치니 팔은 동강 잘라졌다. 이 순간 홀연히 눈 속에서 파초가 솟아올라 그 팔을 바쳤다고 한다. 달마 이것을 보고 "제불의 최초구법이 모두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네가 또한 이러하니 가히 도를 구할만 하다"하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고치게 하였다. 혜가가 "제불의 법인 (法印)을 얻게하여 주십시요."하자 달마는 "제불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 이 아니다." 하였다.

 

그 당시 혜가는 과연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으나 마음 속에 차지하고 보채고 있는 인간 불안은 어떠한 지식이나 배운 것으로는 해결은 커녕 더욱 그 마음의 불안은 더하여 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지헤총명과 박학강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속 "한물 건"의 해결을 구하고자 물었다."화상이시여, 저의 마음이 아직 편안치 않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요.""좋다,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로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 보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마쳤다." 하였다.


위(魏)나라 효명(孝明)황제가 사의 이적을 듣고 크게 경앙하여 세번이나 청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예물도 세차례나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막지 못하고 마납의(摩衲衣) 가사(袈裟) 두벌, 금발우(金鉢) 은수병(銀水甁)과 비단만은 받았다.


소림사에서 9년동안 있다가 하루는 문인을 불러서 "이제는 내게 때가 왔다. 너희들은 각기 소득을 말해보라."하시니 이미 사의 세연이 다하여 온 것이다. 그때 도부(道副)가 나와서 "문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니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하고, 다음에 비구니 총지(總持)가 나와 서 "제가 본바로는 <아란>이 아촉불국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하니,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하고, 도육(道育)은 "사대(四大)는 본래 공했고 오온(五溫)도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니오니 제가 본 바로는 한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니,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하였는데, 혜가는 나와 다만 예배하고 물러가 제자리에 서니,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迦葉)존자에게 전하신 후 전전히 전하여 내려와 지금 나에게 와 있다. 이를 이제 너에게 부 치니 잘 호지하라. 그리고 가사를 너에게 전하니 법의 신(信)으로 삼고 그 뜻 을 잘 알아 두어라.


의발은 내가 죽은지 2백년 뒤에는 전하지 마라. 그때는 법이 천하에 퍼져 도에 밝은 자는 많고, 도를 행하는 자는 적으며, 이치를 말하는 자는 많고 이치를 통한 자는 적을 것이며, 비밀한 이치에 계합하고 도를 통한 자가 천만인이 넘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이 법을 천양하되 깨치지 못한 자를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그들이 한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본래로 도를 얻은 자와 같은 것이다."하고 게송으로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니, 한 꽃이 다섯잎이 피면 결과가 자연히 이뤄지리라(吾本來玄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하고 또 이르기를,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4권이 있으니 이를 너에게 부친다. 이경은 곧 여래심 지(如來心地)의 요문이니 여러 중생을 가르쳐 깨달아 들어가게 하라."하였다.


그 당시 광통율사(光統律師), 보리류지(菩提流支) 3장등 집상(執相) 학자들은 사를 시기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번째는 법은 이미 전했고 때는 왔다 생각하고 그 대로 두어 마침내 앉으신채 입적하니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위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永安)원년 10월 5일이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총령(蔥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로 신 한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기고 전신 탈거하였더라고 한다. 사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혈맥론(血脈論), 파상론(破相論), 사행론(四行論), 오성론(五性論), 심경송(心 經誦), 안심법문(安心法門)등이 있어 지금의 종문교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달마전에는 이설이 있다.


[9] 세존이 꽃을 들다(拈花微笑): 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한번은 대법천 왕이 꽃비를 분분히 내려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은 그중 금색파리와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는데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가섭에게 전한다." 하였다. 이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써 이밖에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설법 하실적에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은 것과, 열반에 드신 뒤 <가섭>에게 곽밖으로 두발을 내어 보인것을 합하여 종문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10] 염라노자 : 이른바 <염라대왕>이다. 범어로<야마라야지>이니 박(縛). 차지(遮止).정식(靜息). 가포외(可怖畏)라 번역된다. 귀신세계의 수령으로 사후에 유명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범부가 죽어서 보(報)를 받아갈 때 염라왕이 이를 판단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지어가는 사람은 설사 깨치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은 스스로 광명을 발하는 사람이라 이런 어두운 문이 상관없는 것이다.


[11] 일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세상사 어려울 것 없으니 오직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12] 만법귀일(萬法歸一)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조주의 기연이다.


[13] 수미산 :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허물이 있습니까?"하는데 "수미산!"하였다.


[14] 사요소요(死了燒了) : "죽어서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니 너의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는가?"하는 말인데 <철산경이 항상 이 말로 찾아오는 납자를 다루었다.


[15] 참구염불(參究念佛) : 염불하면서 "이 염불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의심을 지어가는 공부법이다. 자세한 것이 뒤의 "지철선사 정토현문"중에 보인다.

 

2. 조주심 선사 시중

 

너희가 다만 이 도리를 궁구하되 혹 20년 30년을 참구하여도 만약 계합하지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끊어 가라.
노승은 40년을 잡된 마음을 쓰지 않았느니라. 다만 하루 두 때의 죽반 (粥飯)시는 제하니 이때는 잡용심을 하는 때니라.


* 용어해설
[1] 조주(趙州): (778-897) 남악하 4세.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다. 법명을 종심(從心), 속성은 확(확)씨, 산동성조주부에서 출생.

어려서 출가하여 계는 받지 않고 있다가 한번은 남전스님에게 갔는데 묻기를, "너 는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네가 스승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네! 스님이 계십니다"하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남전에게 절하면서, "엄동설한에 화상 존체 만복하십니까?"하고 문안하니 남 전이 기특히 여겨 입실을 허락하였다. 하루는 묻기를 "어떠한 것이 도입니까?" 남전"평상심이 도니라" "그러면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 도라는 것은 알고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이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기(無記)니 참도는 허공과도 같아서 탕연히 비고 통한 것 이다."하는데서 곧 깨치고 숭악(嵩嶽) 유리단(瑠璃壇)에 가서 계를 받고 이내 남전 회상에 돌아와 지내다가 그후 제방을 유력하고 80세에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이곳에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의 이름이 천하에 떨쳤는데 지금의 조주무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者), 청주포삼(靑州布衫) 등 허다한 공안 이 법기에서 나왔다.


한번은 설법하기를, "손에 잡은 밝은 구슬과 같아야 호인이 비치고 한 인이 오면 장육금신을 가져 한 풀잎을 삼아 쓰기도 한다. 불(佛)은 번뇌요 번뇌는 곧 불이라."하니, 한 중이 나와 말하기를, "불은, 이것이 누구의 번뇌입니까?" "일체인의 번뇌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벗어나서 무엇하려느냐!"하고 마당을 쓸었다.


한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 안에 안계시더냐?" "법당의 부처님은 흙으로 뭉쳐 깎아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안에 계시지!" "학인은 미욱해서 모르겠아오니 알도록 가르쳐 주십시요." "네가 아침 죽을 먹었느냐?" "네! 먹었습니다." "가서 바루를 씻어라!"이에 그 중이 홀연히 깨쳤다.


한 중이 와서 문안한다. "여기 온 적이 있던가?" "아니, 처음 입니다." "차 한잔들게!" 또 한 중이 왔다. "여기 와 본적이 있던가?" "네! 벌써부터 자주 옵니다.""차 한잔 들게!"하였다. 원주가 와서 묻기를, "화상께서 는 어째서 처음 온 사람에게도 일향 차 한잔 들라 하시고 자주 오는 사람에게도 차 한잔 들라 하십니까?"하니 "원주!"하고 불렀다. 원주가 "네!"하니, "차 한잔 들게!"하였다. 이것이 조주 끽다거(喫茶去)기연이다.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4년, 1백20세로 입적, 시호는 진제대사(眞際大師).


3. 현사비 선사 시중


대개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큰 근기를 갖추고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근기가 옅고 둔하거든 모름지기 힘써 괴로움을 참으며 밤낮으로 피로를 잊고 정진하기를 흡사 친상(親喪)을 당한 듯이만 하라. 이와같이 급하고 간절히 지으며 다시 선지식의 도움을 받아 뼈저리게 실다히 궁구하면 비록 둔근 일지라도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용어정리
[1] 현사(玄沙): (835-908) 호는 종일(宗一), 법명은 사비(師備)다. 청 원하(靑原下) 7세가 된다.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 은 사(謝)씨. 어려서부터 낚시질을 좋아하여 복주(福州) 남대강(南臺江) 에 배를 띄우고 지냈다. 나이 30세가 되어 문득 세속 생활에 싫증이 나서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선사에게 가서 축발하고 개원사(開元寺) 도현(道玄) 율사에게서 계를 받았다. 처음부터 의식(衣食)을 극히 절제하고 극단으로 고행하며 진종일 정진하였다. 설봉스님은 사를 비두타(備頭 陀)라고 부르고 지도하였다. 설봉스님을 따라 상골산(象骨山)에 가서 밤낮을 이어가며 입실 결택(決擇)하더니, 하루는 능엄경을 보다가 크게 깨치고 이로부터 응기(應機)민첩하고 모든 경에도 또한 확통하여 제방 현 학(玄學)이 답지하였다.


설봉선사를 도와 지내다가 매계장(梅谿場) 보응원(普應院)에 출세하고 얼마 있다가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기어 여기서 종신하였다.
시중일단(示衆一段)-"이제 너희들은 이일(一大事)을 마쳤느냐? 안심입명(安心立命)도리를 얻었느냐? 이 도리를 판단하지 못하였다면 너희들이 보고 듣는 산하 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광로화상(狂勞華相)인 것이다. 무릇 출가인은 마음을 밝혀 근본을 요달하는 것이 사문인데 너희들은 이제 머리 깎고 가사를 입어 겉모양만 사문모양을 하고 자리리타 (自利利他)의 분을 하는 것처럼 차렸으니 이제 알고보니 모두가 캄캄하기가 그야말로 먹통이로구나. 제 치닥거리도 못하는 위인들이 무슨 남을 돕는다 하느냐? 인자(仁者)야! 너희들은 이 일이 참으로 큰 것임을 알아 야 한다. 아예 한가하게 모여 앉아 어지러히 잡된 이야기나 희롱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마라. 참으로 세월은 빠르고 시간은 귀한 것이다. 아깝다. 대장부들아! 어찌하여 스스로 살피고 이 일을 밝혀내려 하지 않는가! 하루 아침에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덮치면 그런 구물구물 졸던 살림으로는 터럭 끝만큼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업식이 망망하여 아무 것도 빙거할 것이 없으니, 나귀배나 소배에 쑥 들어가기도 하고 쟁기를 끌거나 길마다 안장을 지기도 하고 지옥멧돌에 들어가거나 화탕노탕에 굽고 져지기도 하리니 어찌하여 사문이 이꼴이 된단 말이냐?"
후량(後梁)태조 개평(開平) 2년 74세로 시적(示寂)하였다.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인이 있는데 그중에 나한원(羅漢院) 계침(谿琛)선사가 있다. 저술로는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다.


[2] 반야(般若): 중생이 중생된 연유가 오직 미혹으로 인한 착각으로 말미암아 지견이 전도하여 본래의 자기 즉, 부처와 더불어 지혜와 덕상과 위력이 자족한 자기를 한정 상태로 결박지워진 까닭이니-실은 한정 결박된 것이 아닌 것을 그렇게 착각하고 망견을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결박 부자유에서 해탈하는 길은 그 첫째가 어떠한 역량이나 복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바른 지견 즉 이 바른 종사를 만나는 것을 첫째가는 큰 복으로 치는 소이가 있다. 공부인은 밝은 지혜 에 의하여 비로소 정지견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종문을 반야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부인의 지혜를 반야라고도 한다.
반야는 범어의 "푸라쥬냐"인데 반야는 파리어를 음대로 적은 것이다. 일체 사물의 도리를 밝게 사무쳐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3] 선지식(善知識): 또는 도사(道師)라고도 한다. 사람에게 능히 생사 가 없는 도리를 설하고 학인을 이끈다.


4.아호대의 선사 수계


공부를 짓되, 다만 몸을 잊고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 능사를 삼지 말아야 하니 이 것이 공부인의 고치기 어려운 병통 중의 가장 큰 것이다.
단연 날카로운 칼날을 빼어든듯, 맹리한 정신으로 기어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뜻"을 밝혀 내도록 하여야 하니, 두눈을 똑바로 뜨고 반복하여 공안을 드리지 않고서야 어느 때에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랴!


*용어정리
[1] 아호대의: (735-818) 남악하 3세. 마조의 법을 이었다. 형주(衡州)수 강(須江)에서 출생. 속성은 서(徐)씨다.
당나라 현종 친림하 제법사와의 문답일단. 법사 묻기를, "어떠한 것이 선(禪)입니까?" 사(師)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치니, 법사 알아듣지 못하니, 현종"법사는 그 허구 많은 경을 강하면 서 다만 이 일점도 모르시오?" 사 이어 현종에게 말하기를 "순종(順宗)이 시리선사에게 묻기를 "대지중생이 어떻게 견성성불 하겠읍니까?"하니 시리 선사는 "불성은 물 속에 있는 달그림자와 같아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 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불성은 봄이 없는 마음으로 가히 보는 것입니다."현종 "어떠한 것이 불성입니까?"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를 여의지 않았습니다."하였다. 현종 원화(元和) 3년 시적. 향수 74세. 시호는 혜각(慧覺)선사.


[2] 병통: 공부를 잘못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대주해(大珠海)선사 는 <무자화두>를 지어가는데 열가지 병통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 자만에 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로 볼 수 있는 보조지눌 선사도 대혜종고 선사가 공부인에게 다음 열가지를 경계한 것을 거울삼아 공부하여 대오하였다. 오직 의정을 지어 나갈 줄만 알면 되는 것인데 다들 꾀를 내고 치구심(馳求心)을 버리지 못하여 온갓 병통에 마구 떨어지는 것이 다.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이근하복탁(耳根下卜度)-꾀를 내어 생각하여 알아 마치려는 것.
2. 양미순목처타근(楊眉瞬目處楕根)-눈섭을 오르내리고 눈을 껌벅거리는 곳 에 들어 앉았는 것.
3. 어로상작활계(語路上作活計)-말길에서 알아 마침을 삼는 것.
4. 문자중인증(文字中引證)-글에서 끌어다가 인증을 삼으며 알려하는 것.
5. 거기처승당(擧起處承當)-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 마치려는 것.
6. 양재무사갑리(양在無事甲裡)-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일 없는 곳에 들어 앉았는 것.
7. 작유무회(作有無會)-있는 것이라거나 없는 것으로 아는 것.
8. 작진무회(作眞無會)-참으로 없는 것으로 아는 것.
9. 작도리회(作道理會)-도리가 그렇거니 하고 알음알이를 짓는 것.
10. 장미대오(將迷待悟)-깨치기를 기다리는 것.


[3]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한다. 이 말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오시어 처음으로 동토에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법을 전하시니 그 문하에 많은 도인이 나왔고 그때 사람들이 많이 이 선법을 배웠는데, 여기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도리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 大意)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조사서래의를 밝히려는데서 수 많은 조사 공안이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 한 예를 들어본다. 한 중이 <조주>에게 묻기를,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하니,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者>"하였다. 중이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말씀하지 마십시요." "내가 경계를 가져 말하지 않았느니라."중이 다시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대답하였다.이 일단의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한 것을 참구하는 것을 정전백수자 화두라고 한다.


[4] 마음이 공하여: 방거사(龐居士-마조의 법을 얻다)의 게송에서 취한 말이다. "시방의 모든 납자 함께 모여서, 모두가 함이 없는 도를 배우니, 이 곳은 부처 뽑는 과거장이라, 마음이 공하니 급제하더라(十方同聚會 個個學 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5. 영명수 선사 수계


도를 배움에는 기특한 것이 따로 없다. 다만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내려 오면서 익히고 쌓인 업식(業識)종자를 씻어 없애는 것이 요긴하다. 너희들이 능히 일체 망상을 털어 버리고 망년된 인연을 끊어 없애어, 세간의 모든 오욕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게만 되면 비록 너희 가 아직 도안(道眼)이 밝지 못하더라도 자연히 청정신을 성취할 것이다.


만약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거든 모름지기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친 근하라. 설사 참구하여도 깨치지 못하여 배워도 원만히는 못 이루더라도 묘법은 이근(耳根)에 남아 있어, 길이 무상도리의 종자가 되어 세세생생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몸을 잃지 않을 것이니, 한번 사람몸을 받아 태어나게되면 그때는 하나를 듣고 천을 깨칠 것이다.


# 용어정리
[1] 영명(永明): (904-875) 항주 혜일 영명연수지각(抗州 永明延壽智覺) 선사다. 청원하(靑原下) 11세가 된다. 천태덕소(天台德韶)선사의 법을 이었다. 법안종(法眼宗)에서는 제3조가 되고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제6조로 잡는 다. 속성은 왕(王)씨, 절강성 항주부 여항에서 출생. 소년시절 부터 불법 에 뜻이 컸고 특히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여 들에서 암송하면 양떼가 감응하여 엎드려 들었다고 한다. 벼슬을 하여 28세때는 화정진장(華亭鎭將)이 되었더니 그때의 오월(吳越) 문목왕(文穆王)이 그의 도심(道心)이 큰 것을 알고 그의 뜻대로 출가하게 하였다. 처음 취암영명(翠巖永明)을 섬기어 온갖 대중시공을 갖추 받들었고, 그후 천태산 천주봉에 가서 석달 동안을 지냈는데 날짐승이 머리를 앉고 옷 소매에 둥지를 쳤다고 전한다.


천태산 덕소(德韶) 국사를 뵈오니 곧 큰 그릇임을 알아보고 법을 전하면서 이르기를 "너와 왕과는 인연이 있으니 앞으로 크게 불사를 지을 것이다."하였는데 후에 과연 그와 같았다. 처음에 명주(明州) 영명사(永明 寺)에 있었는데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되었다. 영명사에 15년 있는 동안에 제자 천7백인을 제도하였고 천태산에 들어 가서는 1만명에게 계를 주었으며, 저녁에는 귀신에게 시식하고 아침에는 방생하기를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이하였다. 매일 백여덟가지 일과 조록을 정하고 지켰는데, 그 중에는 염불만도 10만번이다. 생전에 법화경을 1만3천번을 외웠고, 종경록(宗鏡 錄) 백권,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6권, 유심결(唯心訣) 1권등 60여부외에도 수백권의 큰 저술을 남겼다. 고려 광종(廣宗)과는 서신 거래가 많았는데 고려스님이다.
송 태조 개보(開寶) 8권, 대중에게 설법하고 가부좌 한채 입적하셨다. 향수72세.


[2] 업식(業識):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지이는 첫 모양을 업식이라 한다. 이 업식과 전식(轉識), 현식(現識),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을 오식이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생심이 근본무명으 로 인하여 망념이 일어나고 거기서 대상이 생기고 다시 그것을 인정하고 집착심을 내며, 그 집착에서 다시 가지가지로 분별교량하는 총체적 상태를 말하고 있다.


[3] 오욕(五慾): 중생의 욕망 다섯가지니 물욕(財慾), 색욕(色慾), 식욕 (食慾), 명예욕, 수면욕이다. 본래 한물건없는 가운데에서 무단히 상(相 )을 보며, 다시 생명을 보며 분별하고 호오를 보며 취사 집착하여, 본래 걸림없이 자유스럽고 스스로 원만한 자기의 본 곳을 등지고 항상 바깥으로 달리어 얻기에 허덕이는 것이 중생인 것이다. 이 밖으로 얻고져 구하고 치달리는 중생의 마음 취향이 곧 욕심인데 이 욕심을 크게 다섯가지로 나누어 오욕이라 한다. 이 오욕의 근본은 곧 탐(貪)이며 탐의 근본은 애(愛) 며, 애의 근본은 우리 본성(本性)의 활성(活性)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이 오욕자체의 근본은 정추(淨醜)를 떠난 것이라 하겠다. 범부는 전 도된 지견으로 애와 탐을 착각된 방식으로 작용시키므로, 우리의 본성이 가지는 전성적(全性的)인 활성(活性)의 역능(力能)은 그 기능이 감소되고 제약되고 비뚤어지므로 여기에서 분별취사의 중생심은 더욱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여 다시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어야 한다. 만약 이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지 못하였다면 이 오욕은 인간의 무한 자재 원만성을 좀먹는 도적으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억지 마음을 지어서라도 오욕을 억제하고 없이 하여야 하니 그러면 자연 심신이 청정하여지며 오복이 따르게 된다. 계를 가져 천생에 나고, 선행 을 닦아 복을 받는 도리가 여기에 있다.


[4]마음이 목석과 같이: 백장해(百丈海)선사에게 한 중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일체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목석과 같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일체제법이 본래로 그 스스로가 공이라 하지 않으며 또한 옳으니 그르니 청정하니 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마음이 있어 사람을 결박하는 것도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분별, 계교, 사량, 집착하고 알음알이를 내며, 가지가지 지견을 일으키며 애착도 하며 또한 두려운 생각도 내는 것이다. 오직 제법이 본래로 남이 없는(不生)것임을 알며, 자기의 한 생각 망상전도로 인하여 상(相)을 취함에서 있게 되는 것을 요달하면 마음이나 경계라는 것이 도무지 실다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어 즉시에 해탈할 것이다" 하였다.


[5] 선지식(善知識): 앞서 선지식은 생사가 없는 도리를 설한다고 하였 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선지식을 의지하여야 한다. 고인은 모두가 한 표주박, 한벌 누더기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선지식을 구하고 신명 을 버려 친근공양 하였다. 경의 말씀에 "말세중생이 선지식을 만나면 도를 이룰 수 있다."하였고, 또한 말세 선지식의 요건으로 "오직 지견이 바른사람(正知見人)"을 말씀하고 있다.


[6] 악취(惡趣): 중생이 지은 업의 경향을 대충 여섯으로 나누어, 육취 (六趣)라고 하는데 이 육취에 의하여 육도에 나는 것이다. 육취란 천취, 인취, 수라취, 아귀취, 축생취, 지옥취(천취, 인취, 수라취, 아귀취, 축생취, 지옥취)를 말하는데 이중 삼악도에 나는 지옥취, 아귀취, 축생취를 악취라고 한다. 지혜가 없이 악한 업을 많이 지어, 극단으로 고통스럽고 어리석고 복이 없는 보나 따르게 된다.


6. 황룡사 심신 선사 소참


제상좌들이어,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불법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이 몸을 금생에 제도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대중들이어, 참선을 하고저 하거든 모름지기 모든 것을 놓아 버려라. 무엇을 놓아 버릴고 하면 이 사대오온의 심신을 놓아 버리며, 무량겁으로 익혀온 허 다한 업식을 놓아 버리라는 것이니, 그리하여 자기의 발밑을 향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일고?"하고 추궁하고 추궁하면 홀연 마음 빛이 활짝 밝아 시방세계 를 비추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가이 마음에 맞고 손에도 어울려 능히 대지(大 地)를 변하여 황금을 만들고, 큰 내를 저어서 소락(소酪)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니 이 어찌 평생이 유쾌하고 시원하지 않으랴.


부디 책자상으로 글귀를 더듬어 선을 찾고 도를 구하는 것을 삼가라. 선은 결코 책자상에 있는 것이 아니니, 설사 일대장교(一大藏敎)와 제자백가(諸子 百家)를 다 외운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한가로운 말뿐이라 죽음에 임하여는 아무런 응처도 없는 것이다.


<<평>> 이러한 말을 듣고 교법을 훼방하지 마라. 이것은 말이나 문자에만 국집하고 실지 수행을 힘쓰지 않는 것을 경계한 것이요 글 한자도 모르는 자를 위하여 붉은 깃대를 세운 것은 아니다.


#용어정리
[1] 황룡사심오신(黃龍死心悟新): (1044-1115) 남악하 4세, 황룡조심(黃龍祖 心)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인종때 소주(韶州) 곡강(曲江)에서 났다. 속성은 왕씨. 28세에 출가하여 제방을 행각 하다가 황룡보각(黃龍寶覺) 선사에게 갔더니 사의 변론이 장한 것을 보고 "이 재주대로 둔다면 마치 말로 음식을 말하는 거와 같으니 어찌 배가 부르겠느냐?"하였는데, 사, 과연 공부에 진취가 없으므로 하루는 보각스님에게 나아가서 "오신은 이제 활도 부러지고 화살도 다 했습니다. 원컨데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안락처를 가르쳐 주십시요"하였다. 보각은 "먼지 하나가 하늘을 덮고 띠끌 하나가 땅을 덮는다. 안락처는 상좌의 그 허다한 골동 살림살이를 가장 꺼리는 것이니 당장 무량 겁래의 온갖 마음을 죽여 없애 버려라.

 

그러면 가히 안락처를 얻을 것이다."하였다. 이후 사의 공부가 한층 더 간절하여 주야로 정진하였는데 하루는 선실에서 좌선 중 에 마당을 지나가는 사람의 지팡이 소리를 듣고 크게 깨치고, 신 벗는 것도 잊고 방장실에 뛰어들어가 보각에게 자랑하기를 "천하사람들은 모두가 배워 얻었지만 이 오신은 깨쳐 얻었습니다."하니 보각은 "부처를 고르는데 장원으로 뽑히니 어찌 무슨 말이 당하랴!"칭찬하니 이후로는 자호를 사심수(死心 수-마음이 죽은 사람)라 하고 방에 패를 붙이기를 사심실(死心室)이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말후구(末後句)입니까?" 물으니 게송으로 답하기를 "말후인구는 마음길 끊어야지, 육근문 공했으니 만법이 생멸 없네, 근원을 사무쳤거니 해탈 구해 무엇하리, 평생을 욕질하기 즐겨하니, 이것이 단지 길이 쾌락함인저(末後一句子 直須心路絶 六根門旣空 萬法無生滅 於此微其源 不須求 解脫 生平愛罵人 只爲長快活)하였다. 송 휘종(徽宗) 정화(政和) 5년 평상시대로 병 없이 앉아서 입적 향수 72세.


[2] 소참(小參): 총림에서 새벽상당을 조참(早參)이라하고, 저녁 해거름의 염송을 만참(晩參)이라 하고 그밖의 설법을 소참이라 한다.


[3] 놓아 버려라: 방하착(放下着). 이 "놓아 버려라."는 말은 종문 중에서 많이 쓰인다. 마음에 있는 소득심(所得心) 번뇌망상 일체를 쉬라는 깊은 의미를 가진 것인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번은 흑씨범지(黑氏梵志)가 신력으로 좋은 오동나무 꽃을 나무채 뽑아서 좌우 손에 한 그루씩 들고 와서 세존께 공양하니 세존이 "선인아 놓아라."하시었다. 범지는 왼 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다시 "놓아라."하시니 이번에는 바른 손의 꽃을 땅에 놓았다. 세존은 또 "놓아라."하시니 범지가 말씀 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내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사온데 다시 무엇을 놓아라 하시나이까?" "선인아, 내 너에게 그 꽃을 놓아라 함이 아니니라. 너 마땅히 밖으로 육진(六塵)과 안으로 육근(六 根)과 중간의 육식(六識)을 일시에 놓아버려 다시 더 가이 버릴 것이 없게되면 이곳이 곧 네가 생사에서 벗어나는 곳이니라."하셨는데 범지는 언하에 대오하였다.


[4] 사대오온(四大五溫), 사대환신(四大幻身):사대는 이 몸과 자연계의 기본 구성요소 4종이니,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오온은 오음(五陰)이라고 도 하니 다섯가지의 모아 쌓인 것이라는 뜻으로 색, 수, 상, 행, 식(色.受.想. 行.識)이다.


색은 물질이니 우리의 육신과 환경의 전체를 말함이요. 수란 우리의 환경을 받는 감각이요. 상은 접촉할 대상을 분별한 생각이니 곧 표상(表象)이다. 행 은 대상에서 얻은 감각에서 좋으니, 나쁘니, 기쁘거나, 성내거나, 하는 등 단순한 감각에서 취사분별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니 모든 정식(情識)작용을 의미하고 특히 의지나 의욕도 이 속에 든다.


식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음의 주체니 순수관념(純粹觀念)이다. 이것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사대오온이 이 육체와 정신과 세계의 전체다. 그러나 이들 사대오온 이라는 것은 중생의 망견으로 인하여 실다운 것으로 착각할 뿐이지 실상인즉 인연따라 일어나는 환(幻)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 몸을 4대환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이 몸도 세계도 생각도 중생도 모두가 환일 바엔 그 무엇이 환이 아닌 것일까?


[5] 발밑(脚 ): 온건 착실한 입각처를 말한다.


[6] 붉은 깃대: 특별히 표한 것이라는 뜻. 한나라 한신(韓信)이 조(趙)를 칠 때, 날쎈 기병 2천명을 뽑아서 각각 붉은 깃대를 갖게하고 이르기를,"내가 싸우다가 달아나면 적은 성을 비우고 나를 슛을 것이니 그때 성을 들이쳐 조나 라 기를 뽑고 이 붉은 기를 꽂아라"하였다. 붉은 깃대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7. 동산연선사 제자의 행각에 부침


반드시 "생사" 두 자를 이마 위에 붙여두고 이 일을 분명히 판단하도록 하라. 만약 무리들을 따라 떼를 지어 헛된 이야기로 날을 보낸다면, 후일 에 염라노자가 밥값을 추심할 것이니, 그때를 당하여 내가 너에게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만약 공부를 하고저 할진대 항상 간단없이 지어가되 어떤 곳이 힘을 얻는 곳이고 어떤 곳이 힘을 얻지 못하는 곳이며 어떤 곳이 잘못된 곳이고 어떤 곳이 잘못되지 아니한 곳인가를 때때로 점검하라.


혹 어떤 자는 포단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어지러히 망상만 하며, 포단에서 내려오면 곧 잡된 이야기만 치중하는 것을 보니 이와 같이 공부하여서는 비록 미륵하생(彌勒下生)에 이르더라도 마침내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용맹히 정신을 차려 화두를 들되, 밤이나 낮이나 오직 힘써 밀어 나갈 것이요, 일없는 집(無事甲)에 들어 앉았거나, 포단 위에 정신없이 주저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 혹 잡념이 일어 힘써 버려도 더욱 일어나거 든 모두를 활활 놓아 버리고 조용히 땅에 내려와 한바퀴 거닐은 다음, 다시 포단에 앉아 두눈을 똑 바로 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척양골(脊粱骨)을 바르게 세워 다시 전과같이 화두를 들면 문득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 흡사 끓는 물에 한 국자 냉수를 부은 것과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하면 결정 코 집에 돌아갈 시절이 있을 것이다.


*용어정리
[1] 동산연(東山演):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선사다. 남악하 14세. 백운수단(白雲守端)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면주(綿州)에서 출생. 속성은 등(鄧)씨,35세에 출가하여 성도에 가서 유식(唯識) 백법론(百法論) 을 연구하다가 한번은 "물을 마셔봐야 차고 더운 것을 안다"는 구절에 이르러 생각하기를 "차고 더운 것을 알기는 하나 이 스스로 아는 물건은 무엇인가 하고 의심이 나서 강사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보아도 아무 말이 없으므로 마침내 말하기를, "스스로 아는 이치를 모르면서 어떻게 강의를 하십니까?"하니 강사 한참만에 하는 말이 남방으로 불심종(佛心宗)을 찾아 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여러 선지식을 찾아 뵈온 끝에 원조본(圓照本 )에게 참예하여 의심을 파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미진한 바가 있어 부산원 (浮山遠)에 참예하였다가 다시 원의 권유로 백운단(白雲端)에게로 갔다.

 

백운을 뵈워서 조주(南泉?)의 "마니주(摩尼珠) 화두"를 물으니 백운이 되게 꾸짖는데서 곧 깨치고 게송을 지어 바쳤는데 "산밑의 한뙈기 밭, 몇 번 팔고 다시 산, 그 이유를 노인에게 은근히 물었더니, 송죽(松竹)을 이웃하여 밝은 바람 분다고(山前一片閑田地 又手町영問祖翁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하였다.


백운은 "옳다"하시고 방앗간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얼마후 백운이 "여러 선객이 노산(盧山)에서 왔는데 다 깨친 바가 있어 저에게 말하라 하면 제자가 내유를 말하고 인연을 들어 말하라면 또 한 밝게 말하고 또한 할말 일러라 하면 또한 이르나 그러나 아직 멀었더라."하는 말을 듣고, 크게 의심이 나서 혼자 생각하기를, "이미 깨쳐서 말 할 것도 잘하고 밝을 것도 또한 밝은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아직 멀었다 하실까?"하고 마침내 참구하기를 여러 날만에 깨치고 종전에 보배같이 아 끼고 간직하던 것들을 일시에 다 놓아 버리고 백운에게 달려가 뵈오니 백 운이 춤을 추었다 한다. 한번은 백운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고인이 말씀하기를 "거울로 모양을 만들 때에 모양이 다된 후에는 거울이 어느 곳에 있느냐?"하였으니 대중은 일러라."하시는데 대중은 아무도 계합하지 못하는데 사에게 물으니 사는 백운에게 나아가 인사하고 "너무도 많지 않겠습니까?"하였다. 백운은 웃으면서 "도자(道者)만이 아는구나!"하고 이후부터 백운과 같이 죽비를 들고 대중을 지도하였다.


한 사람이 묻기를,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어떻게 더 나아 갑니까?" 하니 "빨리 달려야 된다"하였다. 사는 임제종(臨濟宗)의 대종장으로 사면산 (四面山) 백운산 (白雲山) 태평산(太平山), 오조산(五祖山) 동선사(東禪 寺)등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 제자가 나왔다.


사의 법을 이은 이가 이른바 오조문하 삼불(五祖門下 三佛)이라고 일컫는 불과(佛果圓悟) 불감(佛鑑慧勤) 불안(佛眼淸遠)등을 위시한 22인이 있다. 송 휘종(徽宗), 숭녕(崇寧)3년, 법문을 마치고 산내 토목 역사를 돌 보고는 "너희들 잘들 힘써라. 나는 다시 오지 않는다"하고 돌아와 삭발 목욕후 앉아서 갔다.


[2] 미륵하생(彌勒下生): 당래에 이 사바세계에서 성불할 부처님이 미륵불인데 미륵하생이란 오는 세상에 미륵 보살이 도솔천에서 강탄하시어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한 뒤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경의 말씀에서 나온 말, "미륵하생 까지"라 하면 흔히 "멀고 먼 미래, 미래가 다한 미래"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도 그 뜻이다.

경에 이르기를 미륵불은 정명(定命) 8만4천세시에 출현하신다하였고, 석가세존이 열반에 드신 후 8백만 9천2백년에 탄생하신다는 설도 있다.


[3] 일 없는 집:무사집(無事甲)을 옮긴 말인데 화두를 알뜰히 궁구하지는 않고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고 도무지 아무 할일 없다 하고 멀건히 지내면서 "본래 일 없는 것이다"라는 알음알이를 짓고 지내 가는 것을 "무사갑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무사갑은 당후(堂後)의 소실(小室)인데 무용처 (無用處)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화두 십종병의 하나.


[4] 집에 돌아간다: 중생은 제 본 곳을 모르고 무지(無知)와 불안속에서 허둥지둥 눈물과 웃음과 기대와 탄식의 범벅을 먹고 사는 것이니, 이것이 착각(錯覺)의 구름다리를 서성대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선(人生 線)을 어지러히 방황하는 중생살이의 전부이다. 말하자면 본집은 잊어 버 리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것이니 그 원인은 다름아니고 망견으로 인한 착 각이 원인일 뿐이다. 그 망견만 버리면 즉시에 대안은지(大安은地)인 자기 본집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이 도리를 궁구하는 공부가 생사윤회고해삼계(生死輪廻古海三界)인 객지살이에서 사덕(四德)원만 한 대해탈지인 본집에 돌아가는 가장 지름길임을 확신하여야 한다. 공안 이야말로 중생을 본집으로 이끄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고 안전한 큰 수레 인 것이다.

 

8. 불적 이암진 선사 보설


믿음이 십분이면 의정이 십분이요, 의정이 십분이면 깨침이 십분이니라. 평생에 본 것 들은 것이나 그릇된 알음알이나 기특하고 묘한 말귀며 선 도(禪道)니 불법이니와 자기를 높여 아만을 부리는 마음씨 등을 철저히 털어 버려라.


오직 요달하지 못한 공안을 향하여 가부좌를 결하고 척량골을 바로 세우고 밤이나 낮이나 동서남북을 분별하지말고 궁구하여, 흡사 숨이 남은 사람같이 되면, 이때에 마음이 경계를 따라 전하여 혹 경계에 부딪치면 지각은 있으나 안으로 자연히 분별하는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길이 끊어져서 문득 칠통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이 사이 소식은 원래 딴데서 오는 것이 아니니, 어찌 어느 때이고 평생이 기쁘고 쾌활하지 않으랴.


*용어정리
[1] 이암진(이庵眞): 남악하 27세. 법을 소암전(素庵田)대사에 이었다.

 

9. 경산 대혜고 선사 답함.


근일에 자기 안목도 밝지 못하면서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맥없이 "쉬어 가라"하며, 또한 이르기를 "인연을 따라 마음을 잡으며 생각을 잊고 잠잠히 비추라"하며, 또한 "모든 것을 상관하지 마라"하니 이와 같은 병든 소견으로는 설사 힘써 공부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 일은 마칠 날이 없게 된다. 단지 마음을 한곳으로만 지으면 아무도 얻지 못할 자가 없는 것이니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저절로 축착합착하야 분연히 깨칠 것이다.


항상 세간 육진(六塵) 망상경계로 딸려 가는 자기 심식을 잡아서 반야 위에 돌이켜 놓으면 비록 금생에 마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는 결코 악 업에 끌리지 않을 것이니 오는 생에는 반드시 반야 중에서 분명히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정된 사실이라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느니라.


다만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하니 설사 망념이 오더라도 생각으로 막고 제 하려고 하지말고 오직 힘써 간절하게 화두만을 들어라. 가나오나 서나 앉으나 항상 화두를 들어, 화두로 오고 화두로 가면 아무 재미도 없게 될 것이니 이때가 참으로 좋은 시절이라 부디 놓아 지내지 말라. 일조에 홀연 마음 빛이 활짝 밝아 시방세계를 비추면 능히 한 터럭 끝에 불국토를 나투며, 가는 먼지 속에 앉아서 대법륜을 굴릴 것이다.


<<평>> 사께서 "타인은 정(定)을 앞에 하고 혜(慧)를 후로 한다 하나 나는 혜를 먼저 하고 정을 후로 하겠다"하신다. 그러나 화두만 타파하면 이른바 "쉬어가고 쉬어 가라"하는 것은 하려하지 않아도 그대로 되는 것이다.


[1] 대혜고(大慧고): (1089-1163) 임제종의 대종장이다. 남악하 16세, 원오근(圓悟勤)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철종(哲宗) 원우(元佑) 4년에 선 주의 영국(寧國, 지금의 安微省寅城)에서 출생. 속성은 해(奚)씨, 12세에 향고에 글을 배웠는데 장난하다가 벼루를 던진 것이 선생의 모자에 맞아 돈으로 변상하고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대장부가 세간의 글을 배우느니 출세간의 도를 배움만 같지 않다."하고 출가하여 동산(東山) 혜운사(慧雲 寺)에 가서 혜제(慧濟)스님을 섬기다가 축발하고 종문 제어록을 널리 보았다.

 

그중 운문(雲門), 목주(睦州) 어록을 가장 좋아 하였다 한다. 부모 의 권유로 제방에 유학하여 조동종 여러 종사를 섬겨 그 종지를 남김없이 요달하여서 깨친 바가 있었으나 만족하지 아니하고, 여러 종장에 참예하고 담당준(湛堂準) 회상에 시자가 되어 깨친 바가 있었다. 하루는 준이 말하기를 "너는 이치를 일일이 다 알아 듣느냐?" "예 다 압니다." "네가 말로 할 것은 다 하고 지으라 하는 것은 다 짓고 고금 선지식의 모든 법문은 다 안다마는 다만 한가지만이 덜 됐다. 내가 이것을 아느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다만 왁! 한 소리(도地一聲) 하나만이 모자란다. 그 까닭에 말할 때는 있고, 말하지 않을 때는 없으며 방장 안에서는 있고 방장 밖에서는 없고, 깨었을 때는 있으나, 잠들었을 때는 없으니, 이래고서야 어찌 생사를 당적 하겠느냐!"한다. 사 말씀이 "고(고)가 의심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 입니다.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면 되겠습니까?" "극근(克勤)이 하나 있다. 내 그를 만나 보지는 못했으나 네가 찾아가 보아라. 마땅히 너의 일을 판단하여 줄 것이다. 만약에 네가 거기서 판단 짓지 못하거든 저 부처님의 일대장교를 보며 수행하라. 내생에는 결코 참 선하여서 이 일을 결정내고 훌륭한 선지식이 될 것이다."하고 얼마 안가서 준이 열반에 드니 원오극근(圓悟克勤)을 찾아 갔다.


이곳에서 조석으로 참정하는데 한번은 극근이 말하기를, "한 중이 운문에게 묻되"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하니, 운문 답하기를, "동 산이 물위로 간다."하였으니 너 한마디 일러봐라."하는데 계합하지 못하여 1년을 참구하면서 49회나 대답하였으나, 다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한 거사 집에서 극근이 설법하는데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입니까?"하는데 운문은 "동산이 물위로 간다. "하였지만 천녕(天寧)은 그렇지 아니하여 누가 와서 어떤 곳이 제불이 나온 곳이냐?"하면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집안이 시원해진다."할 것이다.

 

함을 듣고 활연히 깨쳤다. 깨친 바를 극근에게 말하니 가지가지로 시험하여 보고는 "아직 멀었다. 네가 비록 얻은 바는 없지 않으나 아직 대법은 밝지 못했다."하고 하루는 "너의 그 경지에 이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다만 죽기만 하고 능히 살아나지 못했으니, 언구를 의심치 않는 것이 큰 병통이다.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고 뛴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승 당할 수 있으나,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은 남을 속이지 못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모름지기 이런 도리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였다.


사 말이 "고(고)는 지금의 얻은 것으로 이미 쾌활하니 다시 더 알아 얻을 것이 있겠습니까?"하였으나 근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는 매일 서 너번씩 입실하는데 근은 매양 저 "있으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 쿨과 같다(有句無句如藤기樹)"는 공안을 가지고 힐난하면서 입실하여 입만 열기만 하면 "틀렸어! 틀렸어!"하여 이러기를 반년이 넘도록 인가를 받지 못하고 생각 생각에 잊지 않고 지내는데 하루는 관객들과 식사를 하다 가사가 손에 수저를 들은 것도 잊고 멍멍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근이 웃으면서 "저 놈이 황양목선(黃楊木禪-진취가 없는 공부)을 하여 도리혀 쭈그러지는구나"하는데 사 비유를 들어 말씀 들이기를 "화상이시여, 이 도 리는 흡사 개가 뜨거운 기름가마를 본 것과 같아서 핥을려야 핥을수도 없 고 버리고 갈려야 버리고도 못가는 것과 같습니다."하였더니 근이 "그 비유가 극히 좋다.

 

단지 그것이 금강석으로 된 밤송이다."하였다. 또 하루 는 근에게 묻기를,"화상께서 오조에 계실 때 오조화상께서 이 공안을 들으셨다 하온데, 그때 오조화상에게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하니 근이 묵묵히 응하지 않으니 사 "그때 대중 앞에서 말씀하셨을 터인 데 이제 다시 말씀 하셔서 안될 것이 있겠습니까!"하니, 근이 드디어 "내 가 그때 묻기를 "있느니 없느니가 나무에 의지한 등넝쿨 같은 때는 어떠합니까?"하니 오조말씀이 "말로 형용할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수도 없느니라"하시기에 또 묻기를 "문득 나무도 쓰러지고 등(藤)도 말라 죽었을 때 어떠합니까?"하니 "서로 따라 오느니라."하시더라."하는데, 사 곧 깨치고 근에게 "제가 이제 알았습니까."하니 근은 "아직 네가 저 공안을 뚫지 못하였을까 걱정이다."하고 여러가지 까다로운 공안을 들어 대어도 조 금도 걸림이 없으니 이에 근은 손벽을 치며 기뻐하였다.

 

이후로는 병의 물을 거꾸로 세운 것 같고 둥근 바위를 천길 언덕에서 내 굴리는 것과 같아 서 아무도 그 기봉을 당하는 사람이 없으니 혹 근에게 누가 와서 참문하면 "나의 저 선자(禪者)가 마치 큰 바닷물과 같으니 너희들은 저 큰 바닷물에 가서 물어 가라."하였다. 이때부터 극근과 분좌설법하고 낙자를 제접하니 그 이름이 총림에 떨쳤다.


극근이 운거사(雲居寺)에 옮기자 거기서 제일좌(第一座)가 되고, 극근 이 성도(成都)로 떠난 뒤는 여러곳을 거쳐 경산(俓山-절강성 여항현)에 있었는데 낙자 도속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넘어 종 풍을 크게 떨치니, 세상 사람들은 임제(臨濟)의 재흥이라 하였다.

 

소흥 (紹興) 11년(서기 1141년 송 고종때)진회(秦檜)의 모함으로 장구성(張九 成)당으로 정사를 비방하였다는 구실로 의첩(衣牒)을 빼앗기고 형주(衡 州)로 귀양갔다. 여기서 10년 있는 동안, 고인의 기연(機緣)을 모으고 염 제(拈提)를 가하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썼고, 다시 매주(梅州)로 옮겼다. 이곳은 기후가 불순하고 악병이 돌고 약이라고는 아주 없는 곳이었으나 여기서도 한여름에 13명의 큰 법 그릇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였다. 이 곳에서의 신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 사가 귀양갈 때 사를 따라갔던 제자가 백 여명이었는데 이 지방의 풍토병에 걸려 반수 이상이 죽었다.

 

가히 고인의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을 엿보게 한다. 여기서 5년만에 소흥 26년 효종(孝宗)의 특사를 받고 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68세였다. 사방에서 청하여도 가지 않더니 칙명으로 명주(明州) 아육왕산(阿育王山) 광리 선사(廣利禪寺)에 갔다가 곧 다시 칙명으로 경산에 돌아왔다. 효종은 보 안군왕(普安君王)때부터 사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었으므로 사를 극진히 공경하였다. 만년에 묘희암(妙喜庵) 명월당(明月堂)에 퇴거, 여기서 입적하였다. 효종 융흥(隆興) 원년이다. 향수 75세. 사의 저술로는 앞서 말한 정법안장(正法安藏) 6권, 대혜어록(大慧語錄) 30권, 법어(法語) 3권, 종 문무고(宗門武庫) 1권, 서장(書狀) 2권, 대혜선사보설(大慧禪師普說) 5권이 있고, 법을 이는 제자가 94인이 된다. 가이 가풍의 성한 것이 짐작된다.

 

사가 교화한 가운데 특히 힘써 주장한 것은 천동정각(天童正覺)이 주장한 묵조선(默照禪)을 타파하고 활구선(活句禪)을 강조한 것이다. 임종에 당하여 시자가 유게(遺揭)를 청하니, "송 없이 갈 수 없다."하고 붓을 들어 큰 글자로 "생(生)도 다만 이러하고 사(死)도 다만 이러한데, 게송 이 있던 없던 이것이 무슨 큰 일이냐?"쓰고는 붓을 던지고 갔다.


[2] 축착합착: 속이 그대로 "척척"들어 맞는다는 뜻.


[3] 터럭 끝에 불국토: 능엄경에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며, 적은 것으로 크게 나투고 큰 것으로 적게 나투며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하고, 한 몸 속에 시방 무진 허공을 머그머며 한터 럭 끝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투고 가는 먼지 속에 앉아서 대법을 굴린다.


10. 몽산이 선사 시중


내 나이 20에 이 일을 있음을 알고, 32세에 이르도록 십칠팔의 장로에게 참예하여 법문을 듣고 정진하였으나 도무지 적실한 뜻을 알지 못하였었다.


후에 완산(脘山)장로께 참예하니 "무"자를 참구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 를, "12시중에 반드시 생생한 정신으로 지어가되, 마치 저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끊임이 없이 하라. 만약 투철히 깨치지 하거든 취가 나무 궤를 썰듯이 결코 화두를 바꾸지 말고 꾸준히 지어 가라.


이와 같이 지어가면 결정코 발명할 시절이 있을 것이다."하시더라. 그로 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궁구하였더니 18일이 지나서 한번은 차를 마시다가 문득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심에 <가섭>이 미소한 도리"를 깨치고 환희를 이기지 못하여 34장로를 찾아 결택을 구하였으나 아무도 한 말씀 없으시더라. 어떤 스님이 이르시기를, "다만 해인삼매 일인으로 인정하고 다른 것은 모두 상관하지 마라."하시기에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두 해를 지내갔다.


경정(景定) 5년 6월에 사천의 중경(重慶)에서 이질병에 걸려 밤낮 백번 위극이 극심하여 곧 죽을 지경에 빠졌으나 아무 병거할 힘도 없으며 해인 삼매도 아무 용맹 없고, 종전에 좀 알았다는 것도 또한 아무 쓸데가 없어, 입도 달삭 할 수 없고 몸도 꼼짝 할 수 없으니 남은 길은 오직 죽음 뿐이라, 업연 경계가 일시에 나타나 두렵고 떨려 갈팡질팡 할뿐 어찌할 도리 없고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핍박하여 오더라.

 

그때에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가족에게 후사를 분부하고, 향로를 차려놓고 좌복을 높이 고이고, 서서히 일어나 좌정하고 삼보와 용천에게 묵도하기를, "이제까지의 모든 불선업 (不善業)을 지심회과 하옵나니 원하옵건데 이몸이 이제 수명이 다 하였거든 반야의 힘을 입어 정녕대로 태어나서 일찌기 출가하여 지오며, 혹 병 이 낫게 되거든 곧 출가하여 중이 되어 속히 크게 깨쳐서 널리 후학을 제도하게 되어지이다."이와 같이하고 저 "무"자를 들어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고 있으니 얼마 아니하여 장부(贓腑)가 서너번 동하는것을 그대로 버려 두었더니 또 얼마 있다가는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으며, 다시 얼마 있다가는 몸이 없는 듯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화두만이 끊이지 아니하더라.


밤 늦게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병이 반은 물러갔기에 다시 앉아 3경 4 경에 이르니 모든 병이 씻은 듯이 없어지고 심신이 편안하고 아주 가볍게 되었다.


그리하여 8월에 강릉에 가서 삭발하고 일년 동안 있은 후 행각을 나섰더니 도중에 밥을 짓다가 생각하기를, 공부는 모름지기 단숨에 해 마칠 것이 요, 단속(斷續)이 있으면 아니 될 것이라 깨닫고, 황룡에 이르러 당으로 돌아 갔었다. 첫 번째 수마(睡摩)가 닥쳐 왔을 때는 자리에 앉은채 정신을 바 짝 차려서 힘 안들이고 물리쳤고 다음에도 역시 이와 같이 하여 물리쳤으며 , 세 번째에 수마가 심하게 닥쳐왔을 때는 자리에서 내려와 불전에 예배하여 슛아버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규식이 이미 정한지라 그때 그때 방편을 써서 수마를 물리치며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목침을 베고 잠깐 잤고 뒤에는 팔을 베었고 나중에는 아주 눕지를 아니하였다. 이러히 하여 23일이 지나니 밤이고 낮이고 홀연 눈앞의 검은 구름이 활짝 열리는 듯하고 몸이 흡사 금방 목욕에서라도 나온 듯 심신이 청쾌하며 마음에는 의단(疑團)이 더욱 더욱 성하여 힘 들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현전하며 일체 바깥 경계의 소리나 빛깔이나 오욕 팔풍(八風)이 모두 들어 오지 못 하여 청정하기가 마치 은 쟁반에 흰눈을 담뿍 담은 듯 하고 청명한 가을 공기와도 같았다.


그때 돌이켜 생각하니 공부경계는 비록 좋으나 가히 결택할 길이 없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승천(承天)의 고섬(孤蟾)화상 회상에 이르러 당에 돌아와 스스로 맹세하기를, "확연히 깨치지 못하면 내 결코 단(單)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하고 배겨냈더니 월여에 다시 공부가 복구되었다.


그 당시 온몸에 부스럼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떼어놓고 공부를 지어 자연히 득력하여 병중 공부를 지어 얻었으며, 재에 참여하려고 절에서 나와 화두를 들고 가다가 재가(齋家)를 지나치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하니 이러히하여 다시 동중공부(動中工夫)를 지어 얻으니 이때의 경계는 마치 물에 비친 달과도 같아야 급한 여울이나 거센 물결 속에서 부딛쳐도 흩어지지 아니하며 탕연히 놓아 지내도 또한 잊혀지지 아니하여 가히 활발한 경 지였느니라. 3월 초6일 좌선 중에 바로 "무"자를 들고 있는데 수좌가 당에 들어와 향을 사르다가 향합을 건드려 소리가 나는데 "왁!"한 소리치니 이윽고 자기 면목을 요달하여 조주를 착파하였던 것이다.


그때 게송을 짓기를
"어느듯 갈 길 다 하였네
밟아 뒤집으니 물결이 바로 물이로다.
천하를 뛰어 넘은 노조주(老趙州)
네 면목 다못 이뿐이런가"하였다.


그해 가을 임안(臨安)에서 설암(雪巖) 퇴경(退耕) 석범(石帆) 허주(虛 舟)등 여러 장로를 뵈었더니 주장로는 완상장로께 참청하기를 권하시기에 이윽고 산장로를 뵈오니 묻기를, "광명이 고요히 비춰 온 법계에 두루했네 "의 게송은 이것이 어찌 장졸수재(張拙秀才)가 지은 것이 아니냐?"하시는 데 내가 대답하려하자 벽력같은 "활"로 슛아 내셨다. 이로부터 서나 앉으나 음식을 먹으나 아무 생각이 없더니,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다음해 봄, 하루는 성을 나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층계를 올라 가다가 홀연 가슴속 에 뭉쳤던 의심덩어리가 눈 녹듯하니, 이 몸이 길을 걷고 있는 줄도 알지 못 할러라.


곧 산장로를 찾으니 또 먼저번 말을 하시는 것을 언하에 선상을 들어 엎었고 다시 종전부터 극히 까다로운 수칙의 공안을 들어대시는 것을 거침없이 확연히 요달하였느니라.


여러 인자들이어, 참선은 모름지기 자세히 하여야 한다. 산승이 만약 중경에서 병들지 않았던들 거의 평생을 헛되이 마쳤으리라. 참선에 요긴한 일을 말한다면 첫째 정지견인(正知見人)을 만나는데 있다 하겠다. 이 까닭 에 고인은 조석으로 참청하여 심신을 결택하고 쉬임 없이 다시 간절히 이 일을 구명하였던 것이다.


<<평>> 타인은 병으로 인하여 퇴타하나, 이 장로는 도리어 병을 가지고 더욱 정진하여 마침내 큰 그릇을 이뤘으니 어찌 이를 덤덤히 보아 지내랴. 참 선인을 병이 있거든 마땅히 이를 거울삼아 간절히 힘써야 한다.


#용어정리
[1] 몽산: 남악하 21세. 완산정응(脘山正凝) 선사의 법을 이었다. 이름은 덕이(德異)인데, 때로는 고균비구(古鈞比丘) 또는 전산화상(殿山和尙), 휴휴암주(休休庵主)라고도 한다.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時陽) 에서 출생. 사가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나라 고려 충렬왕 때로 우리나라 고승들과 문필거래가 많았고 특히 사의 저서 법어략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때에 와서 우리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법어일단-마땅히 조주의 면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니, 저 "무"자의 뜻 이 무엇인가를 일러 내어야 한다.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모두가 불성이 있거늘 조주는 어째서 "없다"하였는가? 필경에 저 "무"자는 그 의미가 어느 곳에 있는 것일까? 본래로 밝은 이 도리를 아직 밝혀내지 못하였으면 모든 것 하나 하나가 의심감일 것이니 참으로 큰 의정 하에서 큰 깨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또한 생각에 깨치기를 구하지 말며, 있는 것이니 없는 것으로 알지 말며, 텅 비어 아주 없는 것으로 알지 말며 쇠 빗자루로 쓸듯이 짖지 말며, 나귀를 매는 말뚝 같이 의정없이 화두에 매어있지 말고 저 의단(疑團)을 26시중 사위의(四威 儀)내에 더욱더욱 성성하게 하여 다만 "무"자만을 들어서 빈틈없이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 가나 오나 서나 앉으나 의정으로 오고 의정으로 가 면 온갖 재미가 없게 되리니 그때에 조금이라도 재미를 내면 이때에 도리 어 번뇌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으면 화두에 의정이 커져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자연히 현전하게 될 것이니 이때를 당하면 환희한 마음을 내 지 말고 좋고 나쁘고 괘의치 말고 마치 늙은 쥐가 나무를 썰듯이 한결같이 "무"자를 들고 나아가야 한다.


좌선 중에 묘하게 정력(定力)을 얻으면 공부에 도움이 되나 이런 때는 부디 정(定)의 묘한 것에 힘을 두지 말아야 하니, 만약 정력에 힘을 쓰면 오히려 정의 경계가 흩어지는 것이다. 혹 능히 마음을 잘 지어 정(定)에 들었다 하더라도, 정을 탐하여 화두를 잊으면 아니되니 만약 화두를 잊으면 공(空)에 떨어지고 묘오(妙悟)는 얻지 못한다.

 

정에서 일어날 때 또한 반드시 정력을 잘 간직하여 동정(動靜)중에 항상 한결같이 하여 혼침이나 산란심을 아주 끊어야하며 또한 환희한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니, 이중에 홀 연 "왁!"한소리(방地一聲)쳐, 조주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 낱낱 공안에 모 두 밝고 조사기붕에 일일이 다 계합하여 조주를 감파하고 생각으로 이룰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모든 법에 뚜렷이 통하여 가지 가지 차별인연에 모두 밝으며, 깨다른 후 일용 생애가 또한 그러하지 않으면 어찌 법그릇을 이루었다 하랴. 마땅히 먼저 지나가신 성인들의 표준 될 격도를 잘 살려서 부디 소홀하게 알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2] 결택(決擇): 의심을 결단하여 이치를 분별하는 것인데, 이것이 종문에서는 극히 중요시 된다. 그것은 공부인의 안목을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공부를 지어 깨치는 정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지식 이라야 그 정부(正否)와 심천(深淺)을 가려보고 판단하여 삐뚤어 졌으면 올바르게 잡아주고 얕게 깨쳤으면 깊게 인도한다.
스승 없이 혼자 깨친 것은 혹 없지는 아니하나 이때에도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는 것이다.


[3] 해인삼매(海印三昧): 해인정(海印定)이라고도 한다. 일체번뇌가 끊어져 맑은 마음이 현전하여 진여법이 명랑히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기신론(起信論)에는 "무량공덕을 갖춘 법성 진여의 바다라 소이로 해인삼매라 한다"고 하고 있다.


[4] 경정(景定): 송나라 제13대 이종(理宗)때의 년호, 5년은 서기 1264년.


[5] 출가(出家): 수도를 위하여 가정을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중 되 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출가(身出家)에는 반드시 정신적으로 번뇌망 상 사견(邪見) 삼독(貪心,성냄, 어리석음)의 불집에서 뛰어 나오는 이른 바 심출가(心出家)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출가를 진출가라 할 것이 지만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부용개(芙蓉槪)선사 시중에 "무릇 출가라 하는 것은 진로 망상을 멀리하고 생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음을 쉬고 생각을 식혀 모든 반연을 끊기 때문에 출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한가한 것에 재미를 삼아 매몰할까 보냐"하고 있다.


[6] 마음에 돌이켜: 불법은 밖에서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의 모든 공부 방식은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니 이것을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여 공부의 기본 방식이 된다. 앞서의 경산 대혜선사의 법어에도 "항상 세간 육진망상 경계로 달려가는 자기의 심식을 잡아서 반야위로 돌이켜 놓아라"하심을 본 다. 이때의 반야는 정념(正念)을 말한다.


[7] 팔풍(八風): "여덟가지 바람이란 말이니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서 어지럽게 동하게 하는 여덟가지다.
1.이(利)-나에게 이익 되는 것,
2.쇠(衰)-세력이 줄어드는 것.
3.훼(毁)-나를 비난하는 것.
4.예(譽)-이름이 좋게 드러나는 것.
5.칭(稱)-마음에 맞는 것.
6.기(기)-비웃는 것.
7.고(苦)-고생되는 것.
8.락(樂)-즐거운 것 등이다.


[8] 왁! 한소리(방 地一聲): 의정이 타파되는 형용인데 칠통이 탁! 터질 때를 형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얼결에 오!하는 소리에 서 취해온 것.


[9] 광명이 고요히: 장졸수재(張拙秀才)의 게송이다.
"광명이 고요히 온 법계를 두루 비춰 성현 범부 중생으로 한집을 이루었네 한 생각 잠잠하면 온 몸이 드러나나 한 생각 움직이자 구름속에 파묻히네 번뇌망상 끊을 지면 더욱 더욱 어긋나며 참 이치를 찾는다면 삿된 길에 빠짐이라 세상인연 수순하여 가나오나 걸림없고 성불이나 지옥고나 한가지 헛것일세"


[10] 장졸수재(張拙秀才): 성은 "장", "졸"은 이름이다. 수재는 당시 선 비를 뽑는데 효렴(孝廉) 수재(秀才)의 두칭이 있었는데, 졸은 이 수재에 뽑힌 것이다. 청원(靑原行思)하 6세로 석상경제(石霜慶諸)선사의 법을 이었다. 처음 석상에게 참예하니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성은 장이 고 이름은 졸입니다." "공교한 것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졸이 어디서 왔느냐?"하는데서 홀연히 깨치고 위의 게송을 지어 바쳤다.


[11] 할(喝): 종문에서 법을 문답하는데 쓰는 한 법어인데 큰소리로"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짓는 것. "할"을 처음 쓴 것은 마조인데, 임제가 많이 써서 지금에 "임제할"이라는 말이 전한다.


11.양주 소암전 대사 시중


근래에 돈독히 뜻을 세워 참선하는 자가 드물고, 설혹 참선한다 하여도 혼산이마(昏散二魔)에 얽히고 결박되어 정히 혼산과 의정이 서로 상대가 되어 대치되는 줄을 아지 못하는구나!
신심이 큰즉 의정이 반드시 크고 의정이 큰즉 혼산은 스스로 없어진다.


#용어정리
[1] 소암전(素庵田): 남악하 26세. 법을 하안거사(何庵居士)에게 이었다.


[2] 혼산이마: 마음을 어지럽히고 어둡게하여 공부를 방해하고 공덕을 좀 먹는 것이 "마"이니, 공부에는 혼침과 산란심이 두가지 큰 마다.


12.처주 백운무량창 선사 보설


시중에 화두로 가고 화두로 머물며 화두로 앉으며 화두로 눕되, 마음 속이 흡사 밤송이를 삼킨것 같기만 하면, 일체의 시비분별과 무명과 오욕 삼독(三毒)등에 휩쓸리지 않아 행주좌와(行住座臥)가 온통 한개의 의단 (疑團)이 되리니, 의단으로 오고 의단으로 가서 종일 숙맥같이 어리석게 지내가면, 어느듯 경계를 당하여 "왁!" 한소리 칠 것이 분명하다.


#용어정리
[1] 무량창(無量滄): 남악하 28세. 법을 이암진(이庵眞)선사에게 이었다.


[2] 무명(無明): "어둑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뜻한다. 중생이 미하여 지혜의 밝음이 없어져 사물과 도리를 바로 이해 못하는 정신상태이니 중생 윤회는 무명이 근원이 된다. 공안을 요달할 때 무명은 타파된다. 곧 자재(自在)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신론(起信論)에는 무명을 나누어, 참 이치 에 어둡게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고 있다.


[3] 삼독(三毒): "세가지 독"이니 원만청정한 마음을 흐리고 어둡게 하여 그 공능을 감색하는 것이 "독"인데, 우리에게 있어 탐냄(貪)과 성냄과(瞋) 어리석음(痴)이 근본이 되어 8만4천 번뇌와 정욕과 온갖 죄악이 생기게 된 다. 이 삼독이 6근(根)에 나타나면 6적(적)이 되고, 6적은 즉시 6식(識)이 라 이 6식이 제근(諸根)에 출입하여 온갖 경계를 탐착하므로 악업(惡業)을 이루어 진여체(眞如體)를 장애하는 것이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능히 삼독을 굴려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만들고, 6적을 굴려서 6바라밀을 만들면 자연히 일체 모든 고에서 벗어날 것이다." "삼계(三界"라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이 욕계(欲界)가 되고, 성냄이 색계(色界)가 되고, 어리석음이 무색계(無色界)가 되나니 이 삼독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악한 것을 결 집하여 업보가 성취되고 육취(六聚)로 윤회하는 것이 삼계업보는 오직 마음에서 난 바이나 만약 능히 마음을 요달하면 즉시에 삼계 중에 있으면서도 삼계에서 해탈한다."


13. 사명 용강연선사 선인에게 답함


공부를 지음에는 첫째 큰 의심을 발하여야 한다. 비록 너의 공부가 아직 한 달이나 반 달 동안도 한 뭉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만약 진의(眞疑)만 현전하면 설사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여 자연 혹란(惑亂)중에서도 한결 같으리니 이런 때를 당하여 오직 용맹히 분심을 내어 한결같이 밀고 나가면 마치 종일 숙맥같이 되리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공안 타파는 저 옹기 속 에 잡아놓은 자라 이리라.


#용어정리
[1] 사명 용간연(四明用剛軟): 남악하 28세. 법을 화암충(和庵忠)선사에 게 이었다.


[2] 옹기속 자라: "옹기 속에 잡아 놓은 자라가 다름질 쳐도 걱정할것 없다"는 말인데, 옹기 속의 자라는 손만 넣으면 곧 잡히니 이와같이 일념상 응(一念相應)이 확실하다는 비유다. 종문무고(宗門武庫)에 이 말이 보이는데, 하루는 서사천(徐師川)이 원오극근(圓悟克勤) 스님의 정상(頂上)을 보고 "이 노장 아직도 발밑이 땅에 닿지 않는군!" 원오 "옹기속 자라를 어찌 놓치랴." "이 노장 발밑이 땅에 닿는 것이 기쁘다." "남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하고 있다.


14.원주 설암흠선사 보설


때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눈을 돌리면 곧 내생인데, 어찌하여 신력이 강건한 동안에 철저히 깨치지 못하며 명백하게 밝혀내지 않느냐!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이 명산대택(名山大澤) 신룡세계(神龍世界)조 사법굴(祖師法窟)에 승당이 명정(明淨)하고 죽반이 정결하며 탕화(湯火)가 온편하니...


만약 이곳에서도 철저히 타파하지 못하고 명백히 밝혀 내지 못한다면 이 것은 너희들의 자포자기라, 스스로 퇴타를 달게여겨 우치한 자가 되는 것 뿐이다. 만약 아직도 아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널리 선지식을 찾아 묻지 않느냐! 대중은 대개 오참(五參)마다 곡록상(曲菉床)위의 노장이 가지 가지로 간곡히 일름을 만날 터인데 어찌하여 귀뿌리에 깊이 간직하여 두고 반복하여 "필경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하고 생각하지 않느냐!


산승이 5세에 출가하여 상인(上人)시하에 있을 때, 하루는 화상이 손과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듣고 문득 이 일 있음을 믿게 되어 곧 좌선을 시작하였다. 16세에 중이 되고 18세에 행각하여, 쌍림원(雙林遠)화상 회하에 있으면서 백사를 제쳐 놓고 정진하는데 온종일 뜰 밖을 나서지 않았으며 설사 중료 (衆寮)에 들어가 후가(後架)에 이르더라도 차수하고 좌우도 돌보지 아니 하였으며 눈앞에 보이는바가 3척에 지나지 않았었다. 처음에 "무"자를 간(看)하는데, 문득 한 생각 일어나는 곳을 뒤쳐 살피니 저 한 생각은 즉시 얼음과 같이 냉냉하며 밝고 고요하여 전혀 동요가 없었으 니 이때는 하루를 지내기가 눈 깜짝할 사이 같았으며 종일토록 종이나 북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냈었다.


19세에 영은(靈隱)에서 지내는데 처주(處州)화상의 하서에 이르시기를, 흠선(欽禪)아, 너의 공부는 죽은 불이라 아무 일도 해 내지 못하느니라. 동정이상(動靜異相)으로 항상 두 조각을 내는구나! 참선은 모름지기 의정을 내어야 하니 적은 의정에 적은 깨침이 있고 큰 의정에 큰 깨침이 있는 것이니라"하셨기에 화상의 말씀을 듣고 곧 화두를 간시궐(乾屎獗)로 바꾸고 한 결같이 이리도 의심하고 저리도 의심하여 이리도 들어보고 저리도 들어 보았으나 도리어 혼산에 시달려서 잠시도 공부가 순일하지 못하므로 자리를 정자(淨慈)로 옮겨 지냈는데, 거기서는 7인의 도반과 짝을 맺고 좌선하는데 와구(臥具)는 아주 치워 놓고 아예 눕지를 않았다. 그때에 따로 수상좌(修 上佐)가 있었는데, 매일 포단 위에 앉아있는 것이 마치 철장대(鐵杖子)와 같고, 걸어 다닐 때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팔을 축 늘어 뜨려서, 역시 그 모양 이 철장대 같으며, 친근하여 이야기를 하고저 하여도 할 수 없더라.


두 해 동안을 눕지 않고 지냈더니, 피곤하고 지쳐서 드디어 한번 누음에 마침내 내쳐 모두를 다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 달이 지난 후 종전 을 정돈하고 다시 마음을 거두니 비로소 정신이 새로웠으니, 원래 이일을 발명하는 데는 잠도 아니 잘 수는 없더라. 그래서 밤중에 이르러 한숨 깊이 자 고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러고 지내는 중 하루는 수상좌를 만나 친근할 수 있었기에 묻기를, "거 년에는 상좌와 말하고저 하여도 항상 나를 피하니 웬일이었습니까?" 하니 "진정한 공부인은 손톱 깎을 겨를도 없다는 것인데 어찌 너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으랴?한다. 내가 다시 묻기를 "내 지금도 혼산(昏散)을 쳐 없애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네가 아직도 정신이 맹렬하지 못한 때문이다.

 

모름지기 높이 포단을 돋구고 척량골을 똑바로 세우고 있는 힘을 다 합쳐 온 몸둥이채로 높이 한 개의 화두를 만들면, 다시 어디메에 혼산을 찾아 볼 수 있으랴!"한다. 그래서 수상좌가 이른대로 지으니 과연 불각 중에 신심을 모두 잊고 청정하기 3주야-그동안 잠시간도 눈을 부치지 않았는데, 제3일째 되는 오후, 삼문 아래에서 화두인 체로 가다가 문득 수상좌를 만났다. 수가 묻기를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냐?" "도를 판단하오.""너는 무엇을 가지고 도라 하는거냐?"하는데, 내 마침내 대답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하여 곧 선실에 돌아가 좌선하고저 하는데 또 수좌를 만났다. 말하기를 "너 다만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만 하라."이 한마디를 듣고 곧 자리에 돌아와 겨우 포단에 앉았는데 홀연 눈앞이 활짝 열리니 마치 땅이 툭! 꺼진거와 같은데, 이 경지는 남에게 들어 보일 수도 없고 세간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도 없었으니, 곧 단(單)에서 내려와 수상좌를 찾았더니 수 내 말을 듣고 "좋다 좋다"하고 손을 잡고 문 밖에 있는 버드나무가 심긴 뚝 위를 한바퀴 돌며 천지간을 우러러보니, 삼라만상-눈에 보이 는 것이며 귀에 들리는 것이며 기왕에 싫어하고 버리던 것이며 무명 번뇌 등 이 온통 원래 자기의 묘하고 밝은 참성품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계가 반달이 넘도록 동하는 상이 없었는데 아까울새라! 이 때에 명안(明眼) 종사(宗師)를 만나지 못하여 애석하게도 저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견처(見處)를 벗지 못하면 정지견을 장애 한다고 하는 것이니, 매 양 잠들 때는 두 조각이 되었고 공안에 의로(義路)가 있는 것은 곧 알수 있으나 의로가 끊어져서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것은 아주 알 수 없었다. 비록 무준(無準)선사 회하에서 다년 입실 청법 하였으나, 한마디도 이 심중의 의심을 건드리고 집어내는 말씀이 없었고, 경교나 어록을 찾아도 또한 이 병을 풀 한마디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여 가슴속에 뭉텅이를 넣어 둔채 10년이 지났는데, 천목(天目)에서 지낼 때 하루는 법당에 올라 가다가 눈을 들어 한 큰 잣나무를 쳐다보자 번득 성발(省發)하니 기왕에 얻었던 경계도 가슴 속에 걸렸던 뭉텅이도 산산이 흩어져서 마치 어두운 방에 있다가 햇빛으로 나온 것만 같았다.


이로부터 생(生)도 의심하지 않으며 사(死)도 의심하지 않으며, 불도 의 심하지 않으며 조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에 경산(徑山)노인의 입직처를 보니 족히 30방을 주기 알맞더라.


#용어정리
[1] 설암법흠(雪巖法欽): 남악하 21세. 경산(徑山) 사범무준(師範無準)선사의 법을 이었다.


[2] 오참(五參): 옛 총림에서는 초5일, 10일, 25일의 설법을 5참이라 했다.


[3] 상인(上人): 안으로 지혜와 덕을 갖추고, 밖으로 수승한 행을 겸하여 사람의 위에 가기 때문에 상인이라 하는데 대덕 대화상의 존칭으로 쓴다.


[4] 후가(後架): 총림에서 선당(禪堂)뒤에 있는 대중이 세수하는 곳을 후가라고 하는데 동사(東司-변소)에도 있다.


[5] 간시궐(乾屎獗): "마른 똥 막대기"라는 말인데 조사공안의 하나다. 운문선사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삼신(三身) 중 어떤 몸이 법을 설합니까?"  운문


[6] 삼문(三門): 절에 들어가는데는 세문을 지나 간다. 이것은 삼해탈문 (三解脫門)을 의미하는 것이니 공문(空門), 무상문(無上門), 무작문(無作門)을 상징한다. 본래 절은 계를 가지고 도를 닦아 열반에 이르기를 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또한 대웅세존 <부처님>을 모신 대궁전이기도 하므 로 삼해탈문을 문으로 삼는다.


[7] 단(單): 선실의 각자의 자리.


[8] 은산철벽: 공부의 한 경계인데, 의단이 치성하여 온통 의정뿐이어서 의정이 극(克)하여 마침내 다시 더 생각을 어찌할 수 없는-마치 길을 가다가 코끝과 등뒤에 하늘에 치닿은 듯이 철벽을 당한 것과 같은 경지를 말하는데, 이 경지는 무슨 말로 형용하는 것이 모두가 거짓이니 친히 맛 보아야 한다. 백운단(白雲端)선사 시중에 이르기를 "고인은 일언반구를 받아 듣고 혹 알아듣지 못할 때는 철벽(鐵壁)에 맛닿은 것과 같았다. 하루 아침 홀연히 이를 뚫고 나면 비로소 자기가 즉시 철벽임을 아는 것이다. 자! 일러라 이제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이어 말씀하되 "철벽 철벽"하였다.


[9] 무준(無準): 경산(徑山) 무준사범(無準師範). 바로 설암흠선사의 법사 다. 와룡조선(臥龍祖先)선사의 법을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독서하는데, 눈이 한번 지나가면 다 외웠다고 하는데, 얼마 후에 성도(成都) 정법사(正法寺) 익요(益堯) 스님에게 참선을 배웠다. 스님이 묻기를 "선이 무엇이며 앉는 것이 무엇이냐?"하는데 대답 못하고 주야로 체구하여 한번은 변소에서 똥누면서 화두를 들어 마침내 깨쳤다.

 

그후 영은(靈隱)으로 파암(破庵)스님을 찾아갔는데 한 납자가 파암에게 묻기를 "잔나비가 마구 붙잡으려고 허대니 어떡합니까?" 파암이 "붙잡아서 무엇하느냐! 바람이 물위에 불면 자연히 무늬(紋)가 일어나느니라"하였는데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언하에 대오하였다. 뒤에 경산에 있으면서 절 40리 밖 길가에 큰 집을 지어 만년정속이라 하고, 방을 백 개나 갖춰 놓고 오고 가는 운수(雲水)를 쉬게 하였다.


말년에 대중을 모아 놓고 "나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대중들과 이말 저말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내가 특히 힘을 내어 여기 나온 것은, 이제까지 말하지 못한 것을 남김없이 다 털어 놓고저 하는 것이다."하고는 몸을 일으켜 옷을 활활 털더니 "이것이 얼마나 되느냐?"하고 방장에 돌아와서 얼마 후에 시적하였다. 남송의 영종(寧宗)과 이종(理宗)의 두터운 귀의를 받았는데 사호는 불감(佛鑑)선사다.


[10] 입실(入室): 방장(方丈) 화상 앞에 나아가 문답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가(師家-스승)는 학자를 시험하고 다뤄 보아 아직 공부가 미진한 것을 채찍하고, 허황하여 실이 없는 것은 부수고, 치우친 것은 바로 잡는다. 이 입실 감변(勘辯)이야말로 종사를 만들어 내는 풀무요 대장간이니 고래로 종사의 묘하고 치밀한 방망이질 밑에서 공부인의 푸른 눈알은 이뤄진다.

 

15. 천목 고봉묘선사 시중


이 일은 오직 당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만하면 곧 진의(眞疑)가 날 것이니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며 슛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여 항상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분명히 편전하게 되리니 이때가 공부에는 득력하는 시절이라. 이러한 때에 정념을 확고히 잡고, 부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 중에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 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부를 잊지 아니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을 내어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 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어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저 경계를 여겨 주거나(認正) 착심(著心)을 내면, 곧 저의 올 개미에 얽힘이 되어서, 저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으로 마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사(魔事)를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 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선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에게 참예하니 "날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화상을 뵈오니, "무"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한 이르시기를 " 사람이 길을 갈 때 하루의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 매일 올라와 한마디 일러라"하시더니, 그후 차서 있음을 보시고는 짓는 곳은 묻지 아니 하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느냐?"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슛아내셨다.


후에 경산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 밤 꿈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실 에서 보았던"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이 돈발하여 동서로 남북으로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6일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풍경(諷經)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을 보니, 끝 두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6천, 온갖 조화 부린 것이, 원래가 단지 바로 이놈이니라."하였음을 보고 홀연 일전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을 타파하고, 즉시혼담이 날아가 버린듯 기절 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백20근 짐을 벗어 버린 것에 비하랴! 그때는 정히 24세요 3년 한이 다 차던 해였다.


그후 화상께서 물으시기를,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다시 물으시기를 "잠 이 깊이 들어 꿈도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을때 너의 주 인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하시는데, 이에는 가이 대답할 말도 없고 내 어 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 하시기를 "너 이제 부터는 불도 법도 배울것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 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던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일각(一覺)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하라 하시었 다. 그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 세코 이 도리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하고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 서 깨어 정히 이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동숙하던 도우가 잠결에 목침을 밀 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 렸다가 풀려 나온듯 하고 불조의 심난한 공안과 고금의 차별 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평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생각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 하였느니라.


<<평>> 앞에 보이신 공부를 지어가는 대문이 지극히 친절하고 요긴하니, 공부인은 마땅히 깊이 명심해 두라. 또 사의 경우를 말씀하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라"함은 이것은 발명 이후의 일이니 그릇 알지 않도록 하라.


#용어정리
[1]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남악하 22세. 설암흠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서(徐)씨. 소주(蘇州) 오강현(吳江縣)에서 출생. 용공(用功)득법 경위는 본문에 상세 하거니와 그후(1279)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峯)에 들 어가서 저 유명한 사관(死關)을 짓고 들어 앉았다. 사는 이곳에서 16년 동 안을 문턱을 넘지않고 마침내 이곳에서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학도를 가르 치기 빈날이 없었으며, 승속간에 계를 받은 사람이 기만명이 넘었다. 원나 라 원종(元宗) 원년, 대중에게 설법하고 그 자리에서 시적하였다. 향수 57 세. 지금 제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선요(禪要)가 바로 사의 어록이다.


[2]선악경계: 공부중에 나타나는 온갖 선악경계가 공부인을 망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을 경계하신 불조의 말씀은 실로 간곡하다. 본래 한 물 건 없는 이 가운데 무슨 경계나 형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견 망각이다. 대개 경계가 벌어지는 것은 그 원인이 공부가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정밀 하지 못한데 있으니, 터럭끝 만큼이라도 밖으로 구하는 생각이 있거나(馳 求心) 의정이 불분명(혼침,산란,망념)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화두만 간 절히 성성히 들면 있던 경계도 즉시 사라지는데 무슨 경계가 있을리 없다.


혹 생각이 바깥경계로 흩어지고 잡념이 있거든 곧 화두를 잡아 긴절(緊 切)히 들라. 이 화두는 불꽃과도 같아서 일체망념 경계나 혼침산란의 불나 비가 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벌어지거든 환관(幻 觀)으로 대치하고 그래도 경계가 멸하지 않거든 이것은 선근으로 인한 좋 은 경계이니 걱정하지 마라"하는것을 보나 공부인을 어떠한 경계이든-혼침, 산란등 일체병통과 선악경계중에 오직 화두로 당적함이 요긴하다. 공부를 하고저 하거든 반드시 경계를 대치할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이 서 있 어야 한다.


[3]진찬(眞讚): 덕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지은 글인데, 여기 오조진찬 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을 가져 상 취하니 모두가 환몽 되고 진을 가져 진 구하니 더욱 더 멀어지네 공안이 현전하니 무슨 일이 안될손가 백년이라 삼만육천 온갖 조화 부린것이 원래가 다못 바로 이놈 일러라"
(以相取相 都成幻夢 以眞求眞 轉見不親 見成公案 事無不辨 百年三萬六千 日 反履元來是這漢)


[4]주인공(主人公): 주인공이란 자신과 만유의 근원적 한물건을 의미하 는 것인데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본질 이전의 진심(眞心)을 가리킨 말이 다. 종문에서는 이밖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 혹 자기 (自己), 무저발(無底鉢), 몰현금(沒絃琴), 이우(泥牛), 목마(木馬), 심인 (心印), 심월(心月), 심주(心珠)등 가지가지로 부르기도 한다. 종문에서는 필경 이 주인공을 바로 아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주인공 다운 지 혜와 덕성과 역량을 자재 구사하여 주인공의 국토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 을 구경으로 삼는 것이다. 대주(臺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스님은 단구(丹 丘)의 서암에 있을때 반석위에 나와서 종일토록 우두커니 앉아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네!"하고 대답하고 "정신차려라. 너 뒤에 남에게 속지마 라!"하였다.


[5]이도리 한소식: 이말은 일착자(一著子)를 옮긴 말인데, 일착자는 바 둑 들때의 "한수"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산원(浮山遠)선사가 마침 문충공(文忠公)이 손과 바둑 두는 데 에 이르렀다. 사가 곁에 가니 공이 곧 바둑을 거두고 사에게 바둑을 인하 여 설법하여 줄것을 청하니 사 곧 북을 치게하고 법상에 올라 말씀 하시기 를 "만약 이 일을 논할진댄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상사 하라. 어찌 한 까닭이랴. 적수와 지음(知音)이 서로 기틀을 당하여 사양치 않으니... 中略...일러라 일러! 흑백(黑白)이 나뉘기 전에 한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

 

16.철산경선사 보설


산승이 13세에 불법 있음을 알고, 18세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먼저, 석상(石霜)에 갔는데 상암주(詳庵主)가 항상 코끝의 흰 것을 관 하라 하기에, 이 법을 익혔더니 얼마 아니하여 청정한 경계를 얻었었다. 그 후 한 사람이 설암(雪巖)화상 회상에서 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설암 화상의 좌선잠(坐禪箴)을 베끼어두고 보니 나의 공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알고 드디어 설암화상에게 참예하여 가르침을 따라 공 부 하였는데 오직 "무"자를 참구하였다.


4일째 되는 밤에 온 몸에 땀이 흐르고 나니 십분 상쾌하기에 이어 선실 에 돌아와 사람들과 말도 끊고 오로지 좌선만 힘썼다. 후에 묘고봉(妙高 峰)화상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12시중에 끊일 사이를 두지 말지니 사경 (四更)에 일어 나거든 곧 화두를들어 눈앞에 분명하게 잡아 두라. 혹 졸 음이 오거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되,땅으로 내려올 때도 화두를 들고 걸 어갈 때도 화두를 들고 자리에 앉을 때도 발우를 들때도 수저를 놓을 때 도 또한 대중일에 참예할 때도 항상 화두를 여의지 말며 밤이고 낮이고 이와 같이 지어가면 자연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 면 아무도 발명하지 못할자가 없느니라."하시기에, 이어 화상의 가르침을 따라 지어가니 과연 타성일편이 되었다.


3월 20일, 암화상 상당에 이르시기를 "형제들아, 포단 위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는구나! 모름지기 땅으로 내려와 한 바퀴 거닐고 냉수로 관수 하고 두눈을 씻고 다시 포단위에 앉아 착량골을 바로 세우고 만길 되는 절벽 위에 앉은듯이 생각하고 다만 화두만 들어라. 이와 같이 공을 드리 면 결정코 7일이면 깨치리라. 이것은 바로 산승이 40년전에 이미 시험한 방법이다."하셨는데, 내 그때 그 말씀대로 지으니 곧 공부가 심상치 않음 을 알겠더라. 제2일에는 두 눈을 감고저 하여도 감아지지 않았으며, 제3일에는 몸이 마치 허공을 가는듯 하였고, 제4일째는 일찌기 세간이 있는지를 알지 못 하였고, 그날밤 난간에 의지하여 잠시 서 있으니 마치 잠든듯이 아주 아 는것이 없으매 화두를 점검하니 또한 분명 한지라 몸을 돌려 포단에 앉으 니 문득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흡사 두골(頭骨)을 쪼개는것과 같으며, 또 한 만 길 되는 샘 밑에서 치켜 올려져 공중에 떠 있는듯도 하여 그때의 환희를 가히 말할 수 없었다.

 

암화상에게 이 일을 사뢰니 "아직 멀었다. 더 지어 가라"하셨는데, 내가 법어를 청하니 법어 끝에 이르시기를 "불조 의 향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하 셨다. 이 법어를 받아가지고 내 스스로 생각 하기를"어찌하여 한 방망이 가 아직도 모자란다 하실까?"하기도 하고 또한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하여 도 또한 의심이 있는듯하여 마침내 결단을 짓지 못하고 매일 포단위에 주 저앉아 좌선하기를 반년이 되더니, 하루는 두통이 나서 약을 달이다가 각 적비(覺赤鼻)를 만났더니 "나타태자(那咤太子)가 뼈를 발라서 아버지에 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머니에게 돌린" 말을 꺼냈는데, 전날에 오지객 (悟知客)이 이 말을 물을 때에 대답하지 못하였던것을 생각하고, 홀연 저 의단을 타파 하였던 것이다.


그 뒤에 몽산(蒙山)화상을 뵈오니 물으시기를 "참선은 어느 곳에 이르 러서 공(功)을 마치는 곳이냐?"하시는데, 마침내 말문이 막히니 그때에 화상은 나에게 다시 정력(定力)공부를 지어 망상 습기를 씻어 없애라고 하시고 매양 입실 할때마다 다만 "아직 멀었다."고만 하셨다. 하루는 해 거름에서 5경이 다할때 까지 정력으로 밀어대니 곧 지극히 그윽한 경지 에 이르렀는데 정에서 나와 화상에게 이경계를 말하니 화상 물으시기를, "어떠한것이 너의 본래면목이냐?"하시는데, 내가 대답 하려하자 갑짜기 문을 닫아 버리시니 이로부터 공부가 날로 묘처(妙處)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대개 너무 일찌기 설암화상 회하를 떠난 까닭에 일찌기 세밑공부를 짓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다행히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 마 침내 여기에 이른것이다. 원래 공부는 긴절(緊切)하게 지으며 시시로 깨 침이 있고 거름마다 진취가있는 것이라, 하루는 벽에 붙여 놓은 삼조(三 祖) 신심명(信心銘)을 보다가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을 것이요. 비 춤에 따라가면 종(宗)을 잊는다."하였음을 보고 다시 한층 껍질(欠)을 벗 어 났었다.


화상 말씀이 "이일은 흡사 구슬을 가는 것과 같아서 갈면 갈수록 더욱 빛이나고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맑아 지나니 한껍질 벗기고 또 벗기는것이 저 몇생 공부하느니보다 낫느니라."하시고, 다만 번번히"아직 흠이 있다" 고만 하시었다.
하루는 정중에게 홀연 "흠(欠)자를 깨치니 신심이 활연하여 골수에 사무 쳐, 마치 적설이 순시에 녹아 없어짐과 같았으니, 준일(俊逸)을 참을 수 없어 땅에 뛰어 내려와 화상의 멱살을 잡고, "내게 무엇이 모자라오!"하니 화상이 뺨을 세번 치시는데, 내가 삼매(三昧)하니 화상 말씀이 "철산아!이 소식이 몇년만이냐 이제야 마쳤구나!"하셨다.


잠시라도 하두를 잊으면 죽은 사람과 같은 것이니 온갖 경계가 핍박하여 오더라도다만 화두를 가져 이에 저당하며, 시시로 화두를 점검하여 동중 (動中)이나 정중에득력(得力)과 부득력을 살펴라.


정중에 있을 때 화두를 망각하지 말아야 하니, 화두를 망각하면 곧 사정 (邪定)이되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문자상에서 알아 얻어려고 하지말며, 사소한 견처를 가지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을 마라. 다 만 어리석은듯 숙맥인듯이 하여 불법(佛法)도 세법(世法)도 통털어 한 뭉 치를 만들면 평상의 행동거지가 다못 심상할뿐 오직 옛 행리처만을 고칠 뿐이니라.
고인도 이르시기를


"대도는 본래로 말에 속한 것이 아니니 현묘(玄妙)를 말 하련즉 천지로 현격하리 반드시 능소(能所)를 뛰어 나야사 배고프면 밥 먹고 곧 하면 쉬리." 하였던 것이다.


#용어정리
[1]철산경(鐵山璟): 남악하 22세. 법을 몽산이(蒙山異)선사에 이었다.


[2]코끝의 흰것: 관법의 하나인데 생각을 지어 마음을 어느 한곳에 모아 서 마음이흩어지거나 혼침에 떨어지는것을 막고,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의 경계를 지키고 닦아가는 공부법인데 이 관법은 옛부터 여러 가지가 있다. 세존당시의 성문 제자들은 대개 이런 법을 공부하였다. 능엄경에는 <손다 라난타>가 "내가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따라 도에 들어와 비록 계율은 갖 추었으나 삼매를 닦는데 항상 마음이 흩어지고 흔들리므로 무루(無漏)를 얻기를 구하였더니, 세존께서는 나와 <구제라>에게 코 끝의 흰 것을 관하 도록 하셨다."하고 있음을 본다.


[3]여기의 법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허공을 한손 아래 가루를 만들으니
무쇠나무 꽃은 피어 구슬가지에 흩어지네
불조의 항상사를 높이 이어 떨치려면
뒤통수에 한방망이 아직도 모자라오"
(虛空一수粉졸時 花開鐵樹散璟枝 紹降佛祖向上事 腦後以前欠一槌)


[4]각적비. 오지객: 둘 다 사람이름인데, 절에서는 흔히 이름 윗자를 부 르지 않고아래 자에다 무슨 칭호를 붙여서 부른다. 적비는 코가 남달리 붉 어 얻은 이름인듯,지객은 소임명.


[5]나타태자: 나타태자는 뼈를 발라서 어버지에게 돌리고 살을 베어서 어 머니에게돌리고 나서, 다시 신변을 이르켜 연화좌위에 본신을 나타내어 부 모를 위하여 설법하였다.


[6]능소(能所): 주(主)와 빈(貧) 또는 주관과 객관과 같은 말로 표시되는 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 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같 은 말로 표시되는능히 동작하는 주체와 객체, 대상을 말하는 것인데 공부에 있어서 이와같은 대대(待對)가 있게 되면 절대인 참도리에는 들어가지 못한 다. 그러므로 이 능소를 뛰어넘는것이 공부의 중요한 마루턱이다.

 

17.천목 단애의 선사 시중


만약 범부를 뛰어 넘어 성위(聖位)에 올라 영영 진로(塵勞)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가죽을 베끼고 뼈를 바꾸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찬재(寒 炭)속에서 불꽃이 튀며 마른 나무에서 새싹이 나는듯 하여야 하니, 어찌 용 이한 생각을 내랴. 내가 선사(先師) 회하에 다년간 있으면서 늘 큰 방망이 를 맞았으나 한 생각도 싫은 생각이 없었으니 금일에 이르러 전날에 맞은 곳을 건드리니 불각중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 어찌 너희들이 약간 쓴 맛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는 돌보지도 않음에 비하랴.


#용어정리
[1]단애요의(斷崖了義): 남악하 23세, 고봉묘(高峰妙)선사의 법을 이었다. 고봉에 참예하여 "만법귀일"공안을 참구하여 깨치고 게송을 짓기를
"대지여 산하여 한조각 눈이로다.
햇빛 한번 비치니 자취조차 볼 수 없네
이로조차 제불조에 의심이 끊어지고
동서고 남북이고 모두가 없어졌네
(大地山下一片雪 太陽以照便無踪 自此不疑諸佛祖 更無南北與東西)하니 고 봉스님이 인가 하면서 "세가 후에 공봉절정에서 크게 소리칠 것이다."하였다. 이때에 이름을 요의(了義)라 고쳤다. 시호는 불혜원명정각보도(佛慧圓明正覺 普度)대사다.

 

18.천목 중봉본 선사 시중


선사(先師) 고봉화상은 항상 학인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본참공안을 가 슴속 깊이간직하고 다닐때도 이러히 참구하고 앉을때도 이러히 참구하라. 궁구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생각이 머무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문득 타파하여 벗어나면 바야흐로 성불한지 이미 오래임을 알것이다.
이 한 도리는 이것이 기왕의 모든 불조가 생을 요달하고 죽음에서 벗어 남에 이미 시험하신 묘방이다. 오직 귀한것은 믿고 의심하지 않는것 뿐이 니 오래 오래 퇴전 하지만 않으면 상응(相應)을 얻지 못할자 없느니라."하셨다.


화두를 들고 공부 지어감에 첫째 입각처가 온당하여야 깨침도 친절하니 라. 설사 이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다만 신심만 퇴전하지 않으면 한생 두생을 넘지 않고 누구나 깨침을 얻을 것이다.


혹 20년 30년을 공부하여 깨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다른 방편을 구하지 마라.다만 마음이 다른 인연에 끄달리지 않으며, 또한 모든 망념을 끊고 힘써 화두를 향하여 가부좌를 결하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기로 작정하고 정진하면 누가 3생이나, 5생, 10생, 내지 백생이라도 괘의하랴. 만약 철저 히 깨치지 못하거든 결코 쉬지 말지니 이러한 정인(正因)만 있으면 대사 (大事)를 마치지 못할 것을 걱정할 것 없느니라.


병중 공부에는 용맹정진도 필요없으며 눈을 부릅뜨고 억지 힘을 쓸 것 도 없으니 단지 너의 마음을 목석과 같게하고 뜻을 찬재(寒炭)와 같이하여 이 사대환신(四大幻身)을 타방세계 밖으로 던져 버리고, 병들어도 그만 살 아도 그만 사람이 와서 돌보아 주어도 그만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도 그 만 향기로워도 그만 추한 냄새가 나도 그만 병을 고쳐 건강히 되어 백20 세를 살아도 그만 혹 죽어서 숙업에 끌려 화탕 노탕 속에 들어가도 그만 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경계중에 도무지 동요함이 없이 다뭇 긴절하게 저 아무 맛도 없는 화두를 가지고 병석에 누운채 묵묵히 궁구하고 놓아 지 내지 말아야 한다.


<<평>> 이 노인의 천만 마디 말이 단지 화두를 들고 진실하게 공부를 지 어 바른깨침을 이루기를 기약하니, 그 말씀이 간절하고 투철하여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치귀를 잡고 눈 앞에서 이르심과 같구나! 자세한 것은 전서(全書)에 있으니 생각대로두루 보라.


#용어정리
[1]중봉명본(中峰明本): (1263-1321) 남악하 23세. 법을 고봉 묘선사에 이었다. 사관(死關)에서 고봉화상을 뫼시고 각고정진하여 마침내 대오하였 는데 사관에서 의정진담 일단이, 뒤의 제조고공절약 제21에 보인다. 고봉 화상 진찬에 "내 모양은 부사의라, 불조도 짐작 못하나, 오직 못난 우리 아이가, 나의 코 반쪽은 본다"

(我相不思議 佛祖莫能視 獨許不肖兒 見得半邊鼻)하고 있으니 가히 사의 기 봉을 짐작하게 한다.
원 인종(仁宗)이 청하여도 가지 않으니, 인종은 금문(金紋)가사를 보내고 불자원조광혜(佛慈圓照廣惠)선사라 사호하였다.

 

19.사자봉 천여칙선사 시중


나(生)되 온곳을 아지 못하니 생태(生胎)라 하는 것이요, 죽어가되 가는 곳을 아지못하니 사대(死大)라 하는 것이라 공(功)이 없이 납월 30일이 닥 치면 오직 손발 을 버둥거릴 뿐이며 더우기 앞길이 망망하여 업을 따라 보 를 받게 되니 참으로 요긴한일은 이 생사의 과보를 받는데 있느니라.


생사업의 근본을 말한다면, 지금의 한 생각중에서 소리를 따르고 빛을 쫓아 허둥지둥하는 이것이다. 이 까닭에 불조가 대자비를 운용하시어 혹은 참선을 하라 하시고 혹은 염불하라 하심은,너로 하여금 망념을 소제(消除) 하고 본래 면목을 알게 하여 말끔하고 헌출한 대해탈인을 만들고저 하심인 데, 그럼에도 아직 영험을 얻지 못한 자는 세가지 병통이 있는 까닭이다.


첫째는 진정한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통절히 생사대사를생각에 두지 아니하고, 그럭 저럭 지내어서 어느듯 일없는 집에 들어 앉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셋째는 세간의 명예나 이권이란 온전 히 헛된 것임을 밝게 알지 못하여, 아주 털어 버리지 못하고, 망연과 악습 에 주저 앉아 이것을 끊지도 못하여, 경계에 부닥치면 불각중에 휩쓸려 송 두리째 업해(業海)속에 빠져들어, 동으로 서로 떠 돌아 다님을 깨닫지 못 함에 있나니, 진정한 도류(道流)일진대 어찌 이와 같으랴!
마땅히 믿을지라, 조사 이르심을
"분분히 이는 잡념, 어찌하여 소탕할까
하나의 화두는 쇠(鐵)뭉치 빗자루니
쓸으면 쓸을수록 더욱 일으나
더욱 일거던 더욱 쓸어라
쓸어도 안 쓸리면 목숨을 걸고
죽을 힘 다하여서 쓸어 내어라
홀연히 허공마져 쓸어 낼지면
천만가지 갈래길 한길로 통하리" 하신 것이다.


제 선덕아, 노력하라. 모름지기 금생에 분명히 요달하여 영원히 재앙을 받지 않도록하라. 또한 염불과 참선이 같지않다고 의심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참선은 단지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함이요, 염불은 자기 성품이 미 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淨土)임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불을 생각하고 염불하면 현세나 당래에 반드시 불을 뵈오리라."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불을 볼진대 어찌 참선하여 도를 깨치는 것과 다름이 있으랴!


어떤 사람의 물음에 답함-단지 "아미타불"넉자를 가지고 화두를 삼아 26 시중에 분명히 들어 한 생각도 나지 않은 곳에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불위(佛位)에 뛰어오르리라.


#용어정리
[1]천여우칙(天如惟則): 남악하 24세, 법을 중봉본(中峰本)선사에 이었다.


[2]차서: 대개 범부가 성불하는 데는 간혜지(乾慧地)에서 성불까지에 55 절차의 차례가 있다. 그러나 종문에서는 "마음을 잡아가는 한법이 모든 행 을 다 갖춘다"고 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대번에 부처를 이룬 다"하여 하등의 차서를 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안을 요달하면, 단번에 부처땅(佛地)에 들어가는 것이다.


20.지철 선사 정토현문


염불을 한번 혹은 3,5,7편하고, 묵묵히 반문하라. "저 염불 소리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가?" 또 생각하기를,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 하여 의심이 있거든 다만 한결같이 의심해가며 만약 묻는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 고 의정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시 거듭 "필경에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 가?"하라. 또한 앞의 일문에 의심이 간절하지 않거든 다만 "저 염불하는 것이 누구인가?"하여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지어가라.


<<평>> 전문은 그만두고 곧 "염불하는 것이 이 누구인가?"하고 참구하여 도 좋으니라.

 

21.여주 향산 무문총선사 보설


산승이 처음 독옹(獨翁) 화상을 뵈었더니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님"을 참구하라고 이르셨는데, 후에 운봉(雲峰) 월산(月山)등 6인의 도반과 더불어 서원을 세우고 서로 탁마하다가, 회서(淮西)의 교 무능(敎無能) 화상을 뵈우니 "무"자를 들라 하시므로, 장로(長瀘)에 이 르러 도반과 서로 짝을 맺고 연마하였다. 후에회상(淮上)의 경형(敬兄) 을 만났더니 묻기를 "너 지난 6,7년 동안에 견지가 어떠하냐?" 내가 대 답하기를 "매일 단지 이 심중에 한물건도 없읍니다."경이 "너 그 한소견 이 어디서 나왔느냐?"하시는데, 내 생각에 알듯말듯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니, 경이 나의 공부가 성발이 없음을 알고 "너 정중(靜中)공부는 그 만하나 동중(動中)공부가 아직 멀었구나!"하신다.


내 이 말을 듣고 놀래어 "필경 이 대사를 밝히려면 어찌하면 되겠읍니 까?"하니 말씀이"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천로자(川老子)가 이르기를 "적 실한 뜻을 알고져 하거든 북두(北斗)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하셨느니 라." 이 말씀을 마치고 곧 가버리셨는데, 이 말을 듣고는 곧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고서, 5,7일간을 "무"자는 들 지 아니하고 혹 넘어지면서라도 다만 "적실한 뜻을 알고져 할진대 북두 를 남쪽으로 향하고 보라"를 참구하였다.


하루는 마침 정두료(淨頭寮)에서 대중과 같이 한 나무에 걸터 앉아 있 는데, 오직 의정이 풀리지 아니 하더니 한참 동안 있다가 갑자기 심중이 탕연히 비고 가볍고 맑아지며 모든 정상(情想)이 찢어져 없어지는 것이 흡사 가죽을 벗기는 거와 같았다. 그때는 눈 앞의 사람도 일체 보이지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았다.반 시 가량 있다가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더라. 이윽고 "북두를 남면하 고 보라"를 깨치고, 경형을 찾아서 문답하고 송을 짓는데 조금도 걸림이 없었다. 그러나 향상일로(向上一路)에 있어서는 아직 헌출 하지를 못하 여 후에 향암산(香庵山)에 들어가 여름을 지내는데 모기가 심하여 두손 을 가만히 둘수 없기에, 생각하기를 "고인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었는데 나는 어찌 모기를 겁내는가!"하고, 모든 생각을 놓아 버리고 어금니를 꽉 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만 "무"자를 들고 참고 또 참았더니 불각중 에 심신이 고요하여지며 마치 한채집 사방벽이 툭! 무너진듯 하고 몸이 허공과 같아서 한 물건도 생각에 걸림이 없더라.


진시(辰時)에 앉아 미시(未時)에 정(定)에서 나오니 이에 불법이 사 람을 속임이 아니고 자기의 공부가 미치지 못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견해는 명백하나, 아직 미세하고 은밀한 망상이 다하지 아니하므로,광주산(光州山)에 들어가 6년동안 정을 익히고, 다시 육안산 (陸安山)에 머물기를 6년, 광주산에 또다시 3년을 머물고 바야흐로 빼어 남을 얻은 것이다.


<<평>> 고인은 이와같이 부지런히 힘들었으며 이와 같이 오래 오래 닦 고서야 바야흐로 상응함을 얻었는데 지금 사람은 총명과 생각으로 헤아 려 찰나(刹那)에 알아듣고 그리고는 오히려 스스로 돈오(頓悟)에 부치려 하니 어찌 그릇치지 아니하랴!


#용어정리
[1]무문총(無聞聰): 남악하 23세, 법을 철산경(鐵山境)선사에 이었다. 사의 선자송을 소개한다.
"잡아 들으니 심히 분명하고 묘하구나,
청풍은 솔솔 불어 가슴 속에 사무치네,
이 사이 소식이 별것이 없으니
스스로 온통 환희가 넘치는다."


[2]마음도 아니고(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한 중이 남전(南泉) 스님 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모든 성인이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 설하지 않은 법이 있읍니 까?" "있지!" "어떠한 법이 아직 설하지 않은 법입니까?"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


[3]천노자: 야부실제도천(治父實際道川) 선사다. 남악하 16세. 법을 정 인성(淨因成)선사에 이었다. 곤산(崑山)에서 출생. 속성은 적(狄)씨. 처 음 현(縣)의 궁급(弓級)을 하고 있었을 때 동제겸(東齊謙)이 도속을 위한 법회에 참예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좌선을 힘쓰다가 하루는 직무상의 과오로 곤장을 맞다가 홀연 대오 하였다. 드디어 직무를 사퇴하고 겸스님에 의지하여 출가 하였는데, 겸은 사의 이름을고치면서 말하기를 "이제부터 네 이름 적삼(狄三)을 도 천(道川)으로 고친다. 천(川)은 즉 삼(三)이라 네가 능히 굳게 척량골을 세워, 이일을 판단하면 도가 내의 물과같이 불어 흐를것이고, 그러지 않 고 마음을 놓고 누어 지내면 도로 옛 삼(三)이 된다."하였다.
사 명심하고 더욱 정신에 힘쓰고 뒤에 천봉(天封)에 이르러 만암(만庵) 선사를 만나서로 기봉이 삼투하여 인가를 받았고, 다시 돌아와 동재(東 齋)에서 교화하고, 곧 이어 회서(淮西)에 가서 개당(開堂)하였다. 지금 제방에 크게 성행하고 있는 천로금강경(川老 金剛經)-금강경야부송)은 사 가 동재에 있을때 학인에게 가리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4]적실한 뜻: 금강경 야보송의 한구절이다. "촉천의 고운 비단, 꽃 수 (繡) 놓아 더욱 곱네, 적실한 뜻 알고져 할진댄, 북두를 남면하고 보라. (蜀川十樣錦 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南看)"하는 것이다.

 

[5]정두료(淨頭寮): 총림의 변소 소제하는 소임이 있는 곳.


[6]송을 짓다: 경(敬)이 부채를 들어 보이면서 "자! 일러라. 빨리 일러 라"하니 송을 짓기를 "아! 뚜렷 함이여. 뉘라 이를 알려는고, 직하에 시 방을 끊고, 찬 빛 사무쳐야지(圓圓一片 要見人人 坐斷十方 寒光수電)"하 였다.


[7]상응(相應): "어떠한 것이 일념상응입니까?" 물음에 대하여 남양충 (南陽忠)국사는 "생각(憶)도 지혜(智)도 모두 잊으면 즉시 상응이라"하고 있다.


[8]돈오(頓悟): 공부를 하여 깨치는 데도 당인의 근기를 따라 심천이 있으니 차츰차츰 차서를 밟아 닦아가서 대각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대번 에 크게 깨치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점수(漸修) 후자를 돈오(頓悟)라고 들 한다. 대개 이치로 말하면 깨치면 곧 원만자족한 본래의 자기를 아는 것이니 다시 닦아 증할 법도 털어없앨 습기도없는 것이다. 만약 오후에 다시 증할 법이 있거나 털어 없앨 습기가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깨침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니 모름지기 용진하여 대철 대오를 기 약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대개 말하기를 돈오면 곧 불이라 견해는 명 백하나 이치 그대로 사사여일(事事如一)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니, 현실에 처해서 자재하게 되려면 다시 더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치인즉 몰록 깨 닫는지라 깨달음을 따라 다 안다 하거니와, 사(事)는 몰록 제해지는 것 이 아니니 차제를 인연하여 없어진다."하고, "얼음은 못(池)이 온전히 물 인줄은 아나 햇빛을 빌어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불인것을 깨쳤 더라도 법력을 가자하여 닦아야 한다"한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 이 닦는 것을 오후진수(悟後進修)또는 목우행(牧牛行- 소를 먹인다)이라 하는데 돈오점수에 대하여는 많은 논의가 있다.

 

22.독봉화상 시중


도를 배우는 자 무엇이 손잡이가 되는가, 저 화두를 드는것 이것이 손 잡 이가 되느니라.


23.반야화상 시중


형제들, 3년 5년을 공부하다가 입처(入處)가 없으면 종전의 화두를 내버 리니 이것은 길을 가다가 중도에 폐하는 것과 같은 것을 아지 못함이라,전 래로 지어 온 허다한 공부가 가이 아깝구나!


뜻이 있는자면 이 회중에 나무 좋고 물 좋고 승당이 명정한데, 맹세코 3 년만 문을 나서지 마라. 결정코 수용할 날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무리는 공부하다가 겨우 심지(心地)가 좀 맑아져 약간의 경계가 현 전하면 문득 게송을 읊으며 스스로 큰 일 다 마친 사람이라 자처하고 혀뿌 리나 즐겨 놀리다가 일생을 그르치고 마니, 세치 혀뿌리의 기운이 다하면 장차 무엇을 가져 보임(保任)하려는 거냐!


불자야, 생사를 벗어나고저 하거든 공부는 모름지기 참되어야 하고 깨침 또한 실다워야 하느니라. 혹, 화두가 면밀하여 간단이 없어 몸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면, 이것은 "인(人)은 없어졌으나 법(法)이 아직 없어지지 않음"이라 하는 것이니, 여 기에 이르러 몸을 잊고 있다가 문득 다시 몸을 생각하게 되면, 마치 꿈속 에 만길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에 다만 살려고만 발버둥 치다가는, 마침내 실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 경지에 이르거든 오직 화두만 단단 히 들고 가라. 홀연 화두를 따라서 일체를 잊어 버리면, "인(人) 법(法)이 모두 없어짐"이라 하는 것이니, 이때에 활탁 찬재에서 콩이 튀어야 비로서 장서방이 마시고 이서방이 취하는 도리를 알게 될 것이니, 바로 이러한 때 에 반야문하에 와서 방망이를 맞도록 하라.


어찌한 까닭이랴, 다시 제 조사의 중관(重關)을 타파하여야 하는 까닭이 니, 그리하여 널리 선지식에 참예하여 일체 얕고 깊음을 다 알고, 다시 물 가(邊)나 숲 아래에서 성태(聖胎)를 보양하다가 용천(龍天)이 밀어냄을 기 다려서, 세상에 뛰어나와 종교를 붙들어 드날리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야 하느니라.


#용어정리
[1]반야(般若) : 남악하 24세. 법을 영운지정(靈雲持定)선사에 이었다.


[2]실참실오(實參實悟): 신정인(神鼎인)선사 이르기를 "길가는 사람이 노상에서 재미를 붙여 놀면, 그 사람은 마침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다. 견해가 미세하다고 하여 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공부는 실참(實參)이어야 하고 깨달음 또한 실오(實悟)여야 한다. 염라왕 은 말 많은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라고.


[3]인은 없어지고: 이 구절은 "인망(人忘) 법미망(法未忘)" "인법쌍망 (人法雙忘)"을 가려 말하고 있다. 증도가(永嘉禪師證道歌)에도 다음과 같 은 구절이 보인다. "마음은 이것이 근(根)이요. 법(法-一切施爲와 萬象)은 이것이 진(塵)이라, 둘이 모두가 거울위의 흠이니 흠이 다할때 광(光)은 비로소 나타난다. 심과 법을 모두 잊어야 성품이 곧 참도니라."


[4]성태를 보양(保養聖胎): 옛 도를 얻은자는 산속 깊숙히 살며 다만 단 지에 밥이나 익혀 먹으면 족할뿐, 20년 30년을 이름이나 이해를 아예 생 각밖에 두고 인생을 아주 크게 잊고, 다만 그 도만 지켰으니 이것을 옛 사 람은 "성태를 보양한다"고 하였다.

 

24.설정화상 시중


12시중에 씻은듯이 가난한 마음으로 "부모가 낳기전 어떠한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를 참구하되, 득력하든 득력하지 못하든 혼산(昏散)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말고 다만 한결같이 지어 나가기만 하라.


#용어정리
[1]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 속에 일체의 알음알이 나 소득심(所得心)이나 아만심을 툭! 털어버린 말끔한 마음이라는 뜻이 니, 마음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어 있으면 불조의 말씀이 바로 들어가 지 않고 공부가 올바르게 나가지를 못하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25.앙산 고매우 선사 시중


반드시 용맹심을 발하고 결단한 뜻을 세워, 평생에 깨친 것과 배운 것과 일체 불법과 세속학식이나 말재주를 단번에 저 큰 바다 속에 쓸어 버리고 다시는 생각 하지말며, 저 8만4천 미세한 잡념을 한번 앉음에서 단번에 모 두 끊어버리고, 본참화두를 가져 한결 같이 들고 들어서 의정으로 가고 의 정으로 오며, 밀어 오고 밀고 가며 심신을 굳게 정하여 오직 이 도리를 분명히 밝혀 내도록만 하되, 다만 깨침으로 법칙을 삼아야 하느니라. 부 디 공안을 가져 생각으로 헤아려 알아 마치려고 하거나, 경서상에서 찾아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니, 반드시 탁! 끊어지고 툭! 터져야사, 비로서 집 에 돌아온 것이니라.


혹 화두를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거든, 연거퍼 세번 들면 즉시 힘을 얻 을 것이요, 혹 심신이 피로하고 지쳐 마음이 불안 하거든, 조용히 땅으로 내려와 한동안 거닐다가 다시 포단에 앉아 본참화두를 가지고 전과 같이 밀고 나가도록 하라. 만약 포단 위에서는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망상만 일 으키고, 몸을 돌려 땅으로 내려와서는 두 셋이 짝을 지어 모여앉아 한 뱃 속 가득한 어록이나 경서를 들먹이면서 크고 작은 말로 마구 말 주변이나 부린다면 이러한 공부는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아무 쓸데도 없는 것이다. #용어정리 [1]고매정우(古梅正友): 남악하 25세. 법을 반야세성(般若世誠)선사에 이었다.

 

26.구주 걸봉우선사 오대의 선강주에게 이름


가사 문수(文殊)가 금색광명을 놓으면서 너의 이마를 만지며, 사자가 너를 태우러 오며 관음(觀音)이 천수천안을 나투며 앵가(鸚歌)가 네손 에 잡히더라도, 이것은 다 빛을 쫓고 소리를 따름이니 너의 본분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다.


진실 자기대사를 밝혀서 생사의 굳은 관문을 뚫어내고져 하거든 먼저 일체의 성(聖)이니 범(凡)이니 하는 허망한 견해를 모두 끊어 버리고, 12시중에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되, 다만 "마음도 아니고 물건 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것이 이 무엇인가?"하고 지어가라. 부디 밖을 향 하여 구하지 말지니 설사 자그마한 소견이 열리거나 신통성해(神通聖 解)가 있어 저 대지(大地)를 잡아 좁쌀알 만하게 만든다 하드라도 이런 것은 모두가 자기를 속이며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힘써 참 구하여 일체에서 헌출히 벗어나 의지한바가 없어 한 터럭이라도 설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눈을 얻으면 문득 "청주포삼(靑州布衫)"과 "진주라복 (鎭州蘿蔔)"이 다 내집에서 쓰고 있는 물건임을 알것이니 다시 따로 신통성해를 구할 것이 없느니라.


#용어정리
[1]걸봉세우(傑峰世愚):(1301-1370) 남악하 23세. 법을 지암성(止巖 成)선사에 이었다.서안(西安)에서 출생. 속성은 여(余)씨, 사의 모(母) 모(毛)씨가 꿈에 관음보살이 청의동자를 보내온 것을 보고 사를 낳았다 하는데, 사는 어려서부터 불탑에 예배하기를 좋아하더니, 20세에 고악 (孤嶽)스님에게 나아가 축발하고 피를 뽑아 금강경을 사서 공양하였다. 사의 고공정진한 이야기는 뒤의 제조고공절요 19에 보이거니와, 처음 고애순(古崖純)등 제사에게 참예하여 법요를 듣고, 마치 마른 나무둥치 처럼 앉아 배겨 참구하더니 계합하지 못하고, 이어 포납(布衲), 단 애(斷崖), 중봉(中峰)제사를 찾고 이윽고 대자산(大慈山) 지암성 선사 에 이르러 역구(力究)하여,마침내 대오하였다.

 

지암스님의 인가를 받고 3년을 섬기다가 서안(西安) 복혜사(福慧寺)를 중창하고, 다시 석계(石 溪)의 용흥사(龍興寺)로 옮기면서부터 법석이 크게 성화하였다.그후 여 러 곳의 개산 제1세가 되고 명 태조 3년 군수 황씨의 수륙재에서 돌아 와 대중에게 "힘써 정진하여 입도하라"이르고 붓을 들어 "남(生)이라 본래로 남이 없으며, 죽음(死)이라 본래로 죽음 없는데, 두손 털고 빈 손으로 훨훨 떠나니 중천엔 밝은 달이 꽉 찼구나!(生本無生 滅本無滅 撤手便行 一天明月("하고 붓을 던지고 갔다. 향수 70세. 시호는 불지홍 변(佛智弘辯)선사.


[2]앵가: 앵무새의 작은 것을 앵가라고 한다는데 흔히 말하는 관음조 를 가르키는 듯.


{3]청주포삼: 조사공안이다. 한 중이 조주에서 묻기를 "만법이 하나 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데로 갑니까?"하니 "내가 청주에 있을때 장삼을 한벌 만들었더니 무게가 일곱근 이더라"하였다.


[4]진주라복: 한 중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듣잡건데 화상께서 친 히 남전화상을 뵈었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하니 "진주에 큰 무가 나 느니라"하였다.

 

27. 영은할당 선사 제에 답함


송 효종(孝宗)황제 묻되 "어찌하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읍니까?" 답 "대승도(大乘道)를 깨치지 못하면 마침내 생사는 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깨칠 수 있읍니까?" "본래로 가지고 있는 성품을 세월을 가져 연마하여 나아가면 깨치지 못할자가 없읍니다."


#용어정리
[1]영은할당(靈隱할堂): (1103-1167) 임안부(臨安府) 영은할당 혜원 (慧遠)선사다. 남악하 16세. 원오근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 휘종때 미산(眉山) 금유진(金留鎭)에서 출생. 속성은 팽(彭)씨. 13세에 약사 원(藥師院) 종변(宗辯)스님에게 출가하고 성도(成都)에 가서 경론을 배우고 운암사(雲巖寺)에 돌아와 휘(微) 선사에게 참예하여 묻기를"문 수보살은 7불의 스승이라 하옵는데 문수보살의 스승은 누구 입니까?" 하니 "금사 시내가(金沙溪)의 마가집 며느리(馬家婦)다."라고 일러 주 었으나, 2년동안 참구 하여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더니, 하루는 혼 자 정좌하고 있는데 어떤 중이 지나가면서 혼자 말로 "사대(四大)를 빌어서 몸둥이로 삼고, 육진(六塵)을 인연하여 마음이 나니, 육진이 없을때 무엇을 가져 마음을 삼을건가"하는 말을 듣고 문득 깨치고,수 좌에게 가서 소견을 말하니 "옳다"하고 방장에 가서 휘화상에게 말씀 드려도 또한 "됐다"하셨으나, 어딘가 석연치 못한 곳이 있어 다음날 동료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떠났다. 곧 원오극근선사에게 갔는데 하 루는 근화상 보설(普說)에 말씀하기를 "방거사가 마조(馬祖)에 묻기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하니 마조가 "네가 서강(西 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는 것을 보아 일러 주마."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대중은 놀래면서 풍기(風氣)가 동했다고 다들 당황하 여 부축하여 일으키니, 사 말이 "내가 꿈을 깼다"하였다. 그날밤 소 참에 극근 화상에게 나아가 묻기를 "발가 벗은듯 한 물건도 없고, 적 골이 드러날듯 가난하여 돈 한푼 없아오며, 집은 허물어지고 집안은 망하였아오니 화상께서는 도와주옵소서"하니 말씀이 "칠진팔보(七珍八 寶)를 일시에 잡으렴!"하시는데 사 "어찌 도적이 문에 들어 오지 않겠 읍니까?" 근화상은 "기틀은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독바다(毒海)에 떨 어져 있느니라"하는 것을, 사 그 말씀을 이어 "할"을 하니 화상이 주 장자로 선상(禪床)을 치면서 "방망이 맛을 보앗느냐?"하시는 것을, 싸 도한 "할"하니, 화상도 연거퍼 두번 "할"하셨다. 사는 즉시 예배하니 극근이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을 지어주고 인가하였다.


이로부터 아무도 사의 기봉(機鋒)을 당적하는 사람이 없게되니 대 중들은 사를 가리켜 철설원(鐵舌遠)이라 불렀다. 그후 얼마 아니하여 극근이 열반에 드니 회남(淮南)으로 내려와 제방에서 연마하여 대자 재삼매(大自在三昧)를 이루고 크게 도풍을 떨쳤다. 마침 그때는 대혜 종고(大慧宗고)선사가 매주(梅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인데 왕래하는 사람에게서 대혜스님의 게송을 전해 듣고 놀라며 극구 칭찬하고 "노사 께서 말년에 이런 법자가 있었던가?" 하여 글과 원오근이 전한 법의 (法衣)를 보냈다. 그때에 천하에 종풍을 드날리니, 칙명으로 고정산 숭선사(高亭山 崇先寺)에 있다가 얼마 아니하여 다시 칙명으로 영은 (靈隱)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효종(孝宗)의 귀의가 두터워 자주 왕중 에 참례하였는데 여기 본문에 보이는 문답은 건도(乾道) 7년(서기1171 년) 1월30일, 찬덕전(찬덕전)에서 문답한 일절인데, 이날 처음 효종황 제를 만나서 여러 문답이 있었다. 다음에 본문에 계속하는 일단을 더 소개한다.


사가 본유지성(本有之性)을 닦아 대승도를 깨쳐야 생사를 면한다 하 니, 황제 "깨치면 어떠합니까?" 사 "깨치고 나야 비로소 알 일이오나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나 신이 대답하는 것이 다 옳지 않읍니다." 일체 처(一切處)가 옳지 않을때 어떠합니까?" "체(體)를 벗어난 것이 현전 하면 터럭끝 만큼도 가히 찾아 볼 상(相)이라고는 없읍니다. 고덕이 말하기를 "옳은 바가 없는 것이 이것이 보리(菩提)라" 하였읍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어떠합니까?" "눈 앞에 한법도 없아온데 폐하 께서 무엇을 가져 마음이라 하시옵니까?" "어떠한 것이 마음입니까?" 사 일어나 차수(叉手)하면서 "단지 이것 뿐입니다."하였다. 사는 입적 하기 전에 이미 오는 1월15일에는 입적한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 었기 때문에 관속(官俗)이며 단도(檀徒) 제자들과 도하(都下) 많은 사 람들이 사의 열반상(涅槃相)을 본다고 다투어 절에 모여 볾르었다. 왕 의 밀사(密使)도 와서 사의 거지를 살폈다. 그날 큰 재식이 있었는데 사의 왕래거저가 평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이날 재를 파하고 시 자와 속관이 다 같이 방장(方丈)에 들어 갔는데 사는 방에 들어 가서 방문을 꼭 닫았다. 사가 방에 들어 가신후 방장에 있던 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니 다만 원행자(猿行者!평소에 사가 기르던 검은 원숭이)가 한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섰을뿐 사가 보이지 않으므로, 뒷문으로 들 어가 보니 사는 이미 탑 위에서 시적하였다. 원행자가 가진 종이는 바 로 사의 사세송(辭世誦)이었다. 향수 74세.


[2]제(制): 천자의 말씀을 제라 한다.


[3]대승도(大乘道): 소승도(小乘道)에 대한 말로서 범어를 음대로 적어 "마하연(摩訶衍) 마하야나

 

28.대승산 보암단애화상 시중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 가는가? 공부를 짓되, 화두를 참구하지 아니하고 비고 고요한 것을 지켜 앉아있 지 말며, 염화두(念話頭)를 하여 의정없이 앉아 있지 말지니라. 혹 혼침 이 오거나 산란심이 들면 생각을 이르켜서 이를 쫓으려 하지 말고, 곧 힘 차게 화두를 들고 신심을 가다듬어 용맹히 정채를 더 하라. 그래도 아니 되거든 땅으로 내려와 경행하고 혼산이 사라지거든 다시 포단에 앉을지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스스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심되며 가 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잇는 줄을 알지 못하여 오직 참구하는 생각 뿐이어서 공부가 "외로히 헌출하고 뚜렷하게 밝게되면"이곳을 번뇌 가 끊어진 곳이라 하여 또한 아(我)가 없어진 곳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은 아니니 다 시 채찍을 더하여 "저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궁구하라. 이 경지 에 이르러 화두를 드는데는 별다른 절차가 없느니라. 화두가 간단이 없어 오직 의정이 있을 뿐이나, 혹 화두를 잊거든 곧 들지니 그 중에 돌이켜 비추는 마음이 다하게 되면 이때를 법(法)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라 비 로소 무심처(無心處)에 이른 것이다. 이곳을 구경처라 할 것인가? 고인 이 이르시기를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中關) 격(隔)하였네"하였으니 여기서 다시 문득 소리나 빛을 만나 축착 합착하 여 한바탕 크게 웃음치고 몸을 뒤쳐 돌아와야 비로소 "회주소(懷州牛) 여 물 먹고 익주말(益州馬) 배부르다"하게 되는 것이다.


#용어정리
[1]염화두: 화두에 의정을 내지 않고, 염불하듯이 화두를 생각에서 외 우고 있는 것을 말한다.


[2]무심을: 이 구절은 동안상찰(同安常察)선사의 십현담(十玄談)중 심 인송(心印頌)의 일절인데 심인송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그 얼굴이 어떠한가?
심인을 누가 있어 감히 주고 받으랴,
역겁(歷劫)으로 단연(但然)하여 다른 빛이 없으니,
심인이라 부를 때 벌써 허언(虛言)인 것을!
모름지기 본래인 허공심을 알아서,
활활타는 불꽃 속에 핀(發) 꽃으로 비유할까!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 격 하였다.


[3]회주소: 두순(杜順)화상 법신송(法身頌)이다.
"회주 소 여물 먹고,
익주말 배가 불러,
천하명의 구했더니 돼지 좌박(左膊)에 뜸 뜨더라.

 

29.고졸선사 시중

제 대덕이여, 어찌하여 대정진을 일으켜 삼보전에 대하여 깊이 큰원 을 발하지 않느냐! 만약 생사를 밝히지 못하여 조사관을 뚫지 못하면 결코 산을 내려가 지 않겠다고 장련상상(長連床上) 칠척단전(七尺單前)을 향하여, 높이 바랑을 걸어 놓고 천길되는 절벽위에 앉은듯 생각하고, 온 평생을 다하 여서라도 기어이 이 일을 철저히 밝히고야 말기로 작정하고 지어가야 하니, 만약 이와 같은 마음만 결정되면 결코 어긋남은 없는 것이다.


만약 발심이 참되지 아니하고 입지(立志)도 맹령하지 못하여 이곳에 서 겨울을 나고 저곳에서 여름을 지내며, 금일은 전진하고 내일을 후퇴 하며 이와같이 닦고서, 혹 오래 지어도 얻지 못하면 문득 반야에 영험 이 없다하고 도리어 외변으로 달려, 헛된 문서나 한배 그득히 기억하거 나 한부질 베끼어 가지고 제 살림을 삼아, 마치 저 냄새나는 수채통과 같게하여 듣는자로 하여금 구토를 참을 수 없게하니 이와 같이 하고서 는 비록 미륵하생까지 지어간들 공부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딱한 노릇 이다.


#용어정리
[1]고졸(古拙): 호는 조정(祖庭). 남악하 24세. 법을 복림도(福林度) 선사에 이었다. 10세때 벌써 법화경을 매일 한편씩 외웠다 한다. 13세 에 일주사(日鑄寺)에서 출가, 뒤에 고매(古梅)선사에 참예하면서 손가 락 셋을 연지하고 지성을 다하여 공부하여 9일만에 대오하였다.


[2]칠척단: 승당 상전(床前)의 단판(單板) 1척과 상(床)의 길이 6척 을 합한 것인듯.


30.태허 선사 시중.
너희들 아직도 깨치지 못하였거든 모름지기 10년 20년 내지 30년이라도 포단위에 앉아 배겨 "부모가 낳기전 면목"을 참구하라.


#용어정리
[1]태허원(太虛圓): 남악하 30세. 법을 묵당조(默堂照)선사에 이었다.


31.초석기선사 시중


형제들, 입만 열면 곧 내가 선화(禪和)라 하나 혹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이 선인고?"하면, 어름 어름 하다가 마침내 입이 흡사 목두대(扁擔)같 이 되고마니 이 어찌 딱한 일이 아니며 굴욕이 아니랴!


버젓이 불조의 밥은 처먹고 본분사는 까맣게 알지 못하면서, 다투어 말 귀나 세속 지식을 가지고 조금도 기탄 없이 큰 소리로 떠들며, 그러고도 온전히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또 어떤자는 포단에 앉아 "부모가 낳기 전 면목"은 구명하려 하지않고 부질없이 품팔이 방아나 찧으면서 복이 되기 를 바라며 업장을 참회한다 하니 참으로 도와는 10만 8천리로구나!


혹 마음을 한곳으로 굳히고 생각을 거두어서, 사(事)는 잡아 공(空)으 로 돌리며, 생각이 겨우 일기만하면 곧 늘려 막는다면, 이러한 견해는 공 에 떨어진 외도며 흔히 돌아오지 않은 죽은 사람이다. 혹 어떤 자는, 망 녕되이 능히 성내고 기뻐하며 보고 듣는 물건을 가져 명백히 알아 마친 것으로 삼고, 일생 공부 다 해마쳤다 하니, 내 잠깐 그대에게 묻겠다."문 득 죽음이 닥쳐와 불구덩이 속의 한줌재가 되면 저 능히 성내고 기뻐하고 보고 듣는 물건이 어느 곳에 있느냐!"이와 같이 공부를 짓는 것을 "약홍 은선(藥汞銀禪)"이라 하는 것이니 이 은(銀)은 원래 참 은이 아니므로 한 번 불에 달이면 곧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혹 묻기를 "너 평시에 어떻게 공부를 짓느냐?"하면 대답 하기를 "어떤 스님이 이르시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간하라고 하셨읍니다."하며 또는 "나로 하여금 다만 이러 이러하게 알라 하시오나 금일에야 비로소 이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았아오니 청하옵건데 화상께서는 화두를 일러 주옵소서"한다. 내 말하기를 "고인의 공안에 어 찌 잘못이 있으랴. 너의 눈이 본래 바르건만 스승으로 인하여 그릇되었 구나!"하니 거듭 화두 이르기를 청하여 마지 않기에 내 이르기를 "너 "개 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참구하라. 만약 홀연히 칠통을 타파 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산승 손에 방망이를 맞 으라"하였느니라.


<<평>> 천여(天如) 이하는 모두 원말(元末)과 명초(明初)의 존숙(尊宿) 인데 저 걸봉(傑峰), 고졸(古拙), 초석(楚石)같은 분은 즉 원 명 양대를 지낸 분이다. 초석은 묘희(妙喜-大慧)의 5세손인데 그 견지는 해가 빛나 고 달이 밝은 것과 같으며, 그 기변은 우뢰와 같이 맹렬하고 바람과 같이 빨라서 근원을 바로 끊고 곁가지를 쳐버리는 것이 참으로 묘희노인에 부 족함이 없느니라. 천여는 금일에 이르도록 그 아름다움을 짝할 사람이 없 으니 그의 말은 모두가 향상(向上)의 극칙사만을 들어 말하였으므로 초학 인으로 하여금 공부짓기를 가르친 것은 극히 드물어 여기에는 그 하나 둘을 얻어 위와 같이 적는다.


#용어정리
[1]초석범기(楚石梵琦): (1296-1270) 남악하 20세, 법을 경산(徑山) 원 수단(元수端)선사에 이었다. 명주(明州) 상산(象山)에서 출생. 속성은 주 (朱)씨. 그의 모 장씨가 꿈에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회임 하였고, 낳 아서 아직 감보속에 있을때 어떤 스님이 와서 아기의 이마를 만지면서 "이것이 불일(佛日)이니 후일에 능히 어둠을 파 할 것이라" 하였다 하여,

 

어려서 이름은 담요(曇耀)라고 하였다. 7세에 독서하니 한번 읽고 대의를 통했고, 9세에 출가하고 능엄경을 보다가 깨친바가 있었다. 그 후 원수단 선사에 참예하여 계합하지 못하고 하루는 성루의 북소리를 듣고 홀연 땀 을 비오듯 흘리더니 마침내 깨치고 말하기를 "이제야 경산의 콧뿌리를 손 에 잡았다"하고 게송을 짓기를 "활활 타는 화로 속에 한점 눈을 버리고 나니, 이것이 황하(黃河)의 유월 얼음이라"하였다. 다시 경산으로 단화상 을 찾으니 단은 한번보고 "서래밀의(西來密意)를 네가 알았구나!"하고 인 가 하였다. 그후 출세하여 대보사(大寶寺)를 창건하였는데, 거기에는 천불성상과 25 장(丈)의 7층부도, 그리고 만불각(萬佛閣)등 그 웅려하기가 천궁을 옮겨논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때에 나라(元)에서 불일보조혜변(佛日普照慧辯)선 사의 호를 드렸으니, 앞서의 예언이 적중하였다. 임종계에 "진성이 뚜렷이 밝아 본래로 생멸 없으니, 목마(木馬)가 밤에 울고, 서쪽에서 해가 뜬다(眞性圓明 本無生滅 木馬夜鳴 西方日出)하고 곁 에 있던 몽당(夢堂)화상에 "나는 이제 가렵니다." "가면 어디로 가시오?" "서방(西方)으로 가지." "아! 서방에만 불이 있고 동방에는 불이 없소!" 하니 사 큰 목소리로 한 "할"하고 그만 갔다. 명 태조 3년이다. 향수75세. 저서로 육회어록(育會語錄), 정토시(淨土詩), 상생게(上生偈), 북유집(北 遊集), 봉산집(鳳山集), 서재집(西齋集), 화천태삼성집(和天台三聖集)등 을 남겼다.


[2]목두대: 목두대는 배가 부르고 양쪽 끝이 가느르니 이것은 입을 다 물고 아무 말도 못하는 모양에 비한 것이다.


[3]품팔이 방아: 진실한 뜻은 알지 못하고 "예불"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꾸벅 꾸벅 방아를 찧으나, 그것이 자기의 방아가 아니고 품삯을 받고 찧는 남의 방아라는 것이다. 오대(五臺) 무상(無相)선사 시중에 "너 희들은 흙덩이 부처(泥佛)만 보면, 흡사 방아를 찧는 것과 같이 하고 일 찌기 그 뜻은 없구나!"하고 있다.


[4]약홍은선: 공부는 모름지기 실다워야 하니 반드시 명안종사의 감변 (堪辯)을 거쳐야 한다. 고래로 스승없이 깨치기는 만중희유라고 하고 있 다. 여기 약홍은선이란 실지가 없는 거짓 공부란 말인데 수은을 홍(汞)이 라 한다. 이것은 금이나 은을 제련할 때 불에 달리면 금이나 은은 달리 면 달릴수록 더욱 분명하여지나 수은이면 단번에 흘러 버리는 것이니 이 것을 명안종사의 감변을 견디어 내지 못하는 실없는 공부에 비한 것이다.


[5]근원을 끊고: 증도가에 "근원을 바로 끊음을 불이 인가 하시는 바 요. 가지를 더듬고 잎을 따는 것은 나로선 못하는일이라 하고 있다.


32.고려 보제선사 이상국에게 답함


이미 일찌기 "무"자 화두를 들었을진대 반드시 화두를 고칠것이 없느니 라. 더우기다른 화두를 들어도 어느듯 "무"자가 들린다 하니, 이는 반드 시 "무"자에 이미 적지않이 익음이 있음이니, 부디 뜻을 옮기지 말며 화 두를 바꾸지 마라.


다만 26시중 4위의(行住坐臥)내에 한결같이 화두를 들지니, 어느 때에 깨치고 못깨칠 것을 생각하지 말며 또한 재미가 있고 없고 득력하고 득력 못하고에 개의하지 말고 오직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분별이 끊어진 곳에 밀어대어 이르러야 하니 이곳이 즉 제불제조사가 신명을 버린 곳이니라.


<<평>> 이 어록은 만력 정유년에 복건(福建)의 허원진(許元眞)이 동정 (東征)하였을때 조선에서 얻어온 것이라, 중국에는 아직 없는 것이기에 그 요점만을 적어서 이에 알게 한다.


[1]보제(普濟): (1320-67) 우리나라 조도(祖道) 중흥조인 고려의 나옹 (懶翁)스님이다. 위는 혜근(慧勤). 고려 충숙왕 7년에 영해에서 출생. 속 성은 아(牙)씨. 사의 모 정씨 꿈에 금빛 매가 와서 그의 머리를 쪼고 알 을 품에 떨어뜨리고 간 것을 보고 잉태하였다 한다. 어려서 출가 하고저 하는데 부모가 허락하지 않더니, 20세에 이르러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사방에 물어 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이 들어 마침내 사불산 묘적암 요연(了然)스님 에게 출가하였다.


요연이 묻기를 "너 왜 머리를 깎고저 하느냐?" "삼계를 뛰어나 중생을 이익하고져 합니다."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능히 왔읍니다마는 보려고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읍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읍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 으니 다른 스님을 찾아 물어라." 이에 사는 그곳을 떠나서 여러 곳을 다 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이르러 여기서 4년동안 주야 장좌 하고 극진히 좌선하여 마침내 깨친바가 있었다. 그후 원(元) 북경에 가서 지공(指空)스님을 찾아갔다. 지공은 서천(西天) 제 108대 조사다. 지공 묻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고려에서 왔읍니다." "배로 왔느냐, 육지 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느냐?" "신통으로 왔읍니다." "신통을 나투어 보 라."사가 차수하고 가까이 가서 서니, 다시 묻기를 "네가 고려에서 왔다 니 동해는 다 보았느냐?" "아니보았던들 어찌 여기를 왔겠읍니까?" "무슨 일로 왔느냐?" "후대를 위하여 왔읍니다."이에 지공스님이 입실을 허락 하였다.


하루는 게송을 짓기를 "산하 대지는 눈앞의 헛꽃이요, 삼라만상이 또한 그러하네. 이제야 자성이 원래로 청정한 것을 아니, 진진찰찰(塵塵刹刹) 이 법왕신이라"하였다. 지공 "서천 20여인이나 동토 72인들이 다 지공에 있어서는 한물건도 아닌데 지공이 출세하여사는데 법왕인들 어디 있으랴! " "법왕신이여, 삼천(三天)의 주인되고 모든 백성 이익하네. 천검(千劍) 잡아 들고 불조를 내려치니, 백양(百陽 - 지공의 方丈이름)이 널리 퍼져 모든 하늘을 비춘다. 내 이제 소식을 알아 얻음에 흡사 내집의 정혼(精 魂)을 희롱함이라. 기특하다 기특하다 크게도 기특하다. 부상(扶桑-海東) 의 일월이 서천을 비추누나!" "애비도 개(狗)고 어미도 개고 너도 또한 개다"하는데, 이에 사가 곧 예배하고 물러섰다. 그후 다시 게송을 짓기를 "미한즉 산과 물이 경계가 되고, 깨친즉 온 세계가 온전히 내몸이라, 미 (迷)거니 오(悟)거니 모두 다 쳐부수니 아침마다 오경(五更)에는 닭이 우 누나"하니 지공이 "나도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다"하고 사의 법기(法器) 됨을 인정하였다.


그후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평강(平江)의 휴휴암(休休庵)과 정자선사 (淨慈禪寺)를 거쳐 평산처림(平山處林)선사에게 가니, 평산은 마침 승당 에 있었다. 사가 곧장 승당에 들어가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니, 평산 묻기를 "대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대도(大都)에서 왔읍니다." "이제까지 누구를 만났는 가?" "서천 지공을 뵈었읍니다." "지공의 일용이 어떠한가?" "하루에 천 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너의 한칼을 가져오라."사 가 좌구(座具)를 들어 평산스님을 치니 평산은 쓰러지면서 큰 소리로 "이 도적놈이 사람을 죽인다!"하니 사 "저의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 기도 합니다."하면서 부축하여 일으키니, 평산은 크게 웃으면서 사의 손 을 잡고 방장으로 들어갔다. 평산스님의 법의를 받아가지고 보타낙가산 등 여러 곳을 지나 고목영(枯木榮)선사에게 갔는데 한참만에 "수좌는 좌 선할때 어떻게 용심하는가?" "가히 쓸 마음이 없읍니다." "이미 마음이 없을진대 12시중에 누가 너를 가져 운동하는가?" 사가 눈을 들어 바로 쳐다보니 고목 "그것은 부모가 낳은 눈이 거니와 부모가 낳기전에는 무엇 으로 보는가?"" 사가"엑! 한 할하고 "무슨 낳고 안 낳고를 말하는거요?" 하니 고목이 사의 손을 잡으면서 "누가 고려가 바다 건너에 있다하랴!"하 는 것을 손을 부리치고 나와 복룡산(伏龍山) 천암장(千巖長)선사에게 갔다.


마침 그때는 강호선객 천여명이 모였었다. 천암이 묻기를"대덕은 어디 서 왔는가? "정자(淨慈)에서 왔읍니다." "부모가 낳기전 어디서 왔는가?" "오늘 아침이 4월 2일 입니다." "눈 밝은 사람은 속일 수 없구나!"하고 입실을 허락하였다. 여기서 한여름을 지내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 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받고, 공민왕 7년에 귀국하여 여러곳에 있으면서 가는 곳마다 크게 종풍을 현양하였다. 공민왕이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였고, 공민왕 20년에는 왕사가 되고 대조계선교도 총섭근수본지 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禪敎都總攝勤修本智 重興 祖風福國佑世 普濟尊者라 호를 받았다. 희암사를 크게 중건하고, 고려 우 (禑)왕 2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임종을 당하여 한 중이 묻기를 "이때 를 당하여 어떠합니까?"사가 주먹을 번쩍 들어 보였다. 다시 묻기를 "사 대가 각각 헤어지니 어느 곳을 향하여 가시렵니까?" "따로 기특한 도리가 없다" "어떠한 것이 기특한 도리 입니까?" 사 눈을 들어 중을 바로 쳐다 보면서 "내가 너와 만났을 때 무슨 기특한 것이 있느냐!"하고 대중을 불 러서 "너희들은 제각기 잘 공부지어가라. 노승은 오늘 너희들을 위하여 열반불사를 지어 마쳤다"하고 조용히 시적하였다. 향수 57세. 시호는 선 각(禪覺)선사. 사리를 나누어 신륵사와 희암사에 부도를 세워 봉안하였다.


[2]동정(東征): 임진왜란때 명군(明軍)이 우리나라에 출동하였던 것을 말한다. 만력 정유는 선조 30년, 왜군이 제차 침공 하였을때.


33. 초산기 선사 해제 시중


여러 대덕들아, 90일중에 증오(證悟)가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아직도 입처가 없다면 이 한 삼동을 또 헛되이 마쳤구나!
만약 본색도류(本色道流)일진댄 시방법계로 원각 기일을 삼고 장기 단기와 백일천일과 결제해제를 논하지 않고, 다만 화두를 드는 것으로 시작을 삼아서 1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참구하되, 가사 평생을 다해 서라도 만약 깨치지 못하면 결정코 뜻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기어코 진실한 구경처를 보도록 하여야 하니, 이때가 비로소 해제하는 날이다.


혹 아직도 앞에서 말한 뜻을 계합하지 못하거든, 다만 <아미타불> 일 구를 깊이 생각에 두고 묵묵히 체구하여 항상 스스로 채찍질하여 의정을 이르키되,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라. 생각생각 끊임이 없고 마 음과 마음에 빈틈이 없으면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데, 물이 다하고 산이 다 한곳에 이르면 몸을 뒤집는 도리가 있듯이 기어이 "왁!"한 소리 치고 심체(心體)에 계합하여 들어갈 것이다.


<<평>> 화두를 드는 것으로 결제를 삼고 진실을 구경(究竟)한 것으로 해제를 삼는다 하니 이말을 명심해 두라.


[1]초산소기(楚山紹琦): 남악하 28세. 법을 동림(東林) 무제오(無際 悟)선사에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처음 현극(玄極)스님에게 의지하고 최후에 무제(無際)선사에 이르렀다. 묻기를 "나에게 "무"자의 뜻을 가져 오너라"하는데 사 게송으로 답하기를 "저 중의 묻는 곳이 너무나 많았으 나, 조주는 일찌기 한 생각인들 하였으랴, 있는대로 한마디에 남김없이 털어낸걸, 도리어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는구나."하니, 다시 묻기를, "어떠한 것이 의심이 없는 곳인고?" "산은 푸르고 물은 맑고, 제비는 조잘대고 꾀꼬리는 우짖어, 역역 분명커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까?" 무제는 인가하고 법을 전하였다.


34. 천진 독봉선 선사 시중


진실로 생사에서 해탈 하고져 할진댄, 반드시 먼저 대신심을 발하고 큰 서원을 세우되, "만약 본참공안을 타파하여 부모가 낳기전 면목을 분명히 보아 미세한 망상을 끊지 못하면 맹세코 본참화두를 놓아서 진선지식을 멀리하며, 명리를 탐축(貪逐)하지 않으리라. 만약 짐짓 이 서원을 어기면 내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리라."하여 큰 서원으로 마음을 방호하면 바야 흐로 공안을 받아 가질만 하다 하리라.


혹 "무"자를 참구한다면, 요긴은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는가?"에 둘것이요, 혹 "만법귀일"을 참구한다면, 요긴은 "하나는 어데로 돌아가는 가?"에 있으니,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살펴 깊이 의정에 들어가야 한다. 혹 화두가 들어도 안들리면 다시 공안을 처음부터 끝귀까지 들어서 수 미일관(首尾一貫)하게 되면 바야흐로 두서가 잡혀 의정이 날것이니, 의정 이 끊이지 않도록 간절히 용심하면 불각중에 발을 들고 몸을 뒤쳐, 허공 에서 한바탕 곤두박질을 치게 될 것이니 이때에 다시와서 산승의 방망이 를 맞도록 하라.


[1]독봉계선(毒峰季善): 남악하 27세. 월계징(月溪澄)선사의 법을 이었 다. 17세에 출가하여 원명(源明)선사에 참예하여 "무"자를 참구하여 대오 하였는데, 사의 정진고공의 일단이 위의 제조고공절약 22에 보인다.


[2]곤두박질: 현공근두(懸空筋斗)인데 근두는 斤斗의 뜻으로, 우리말 로 "도끼를 가리킨다. 이것은 머리가 무거우므로 땅에 놓으면 머리가 먼 저 땅에 닿는데, 여기에 허공에서 곤두박질이란 의정이 타파하는 형용이다.

 

35. 공곡륭 선사 시중


공부를 짓되, 정신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염화두(念話頭)를 하거나, 또 한 생각으로 공안을 헤아려 계교 추직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항상 분심을 내 어 이 일 밝힐 것만 생각하라. 홀연 천길 절벽에서 손을 놓아 몸을 뒤집으면, 바야흐로 "외로히 밝고 분명 한 도리"를 보게될 것이니, 여기에 이르러 부디 탐착심을 내지마라. 이때에 다시 뒤통수에 한 방망이를 맞아야하니 이곳이 극히 뚫기 어려운 곳이니라.너 희들은 다만 이와 같이 지어가라.


참선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깨친 이는 옛적에 혹 없지 아니하나, 그 밖에는 아직 힘써 참구하지 아니하고 깨침을 얻은 자는 없느니라.
우담(優曇) 화상은 "염불하는 놈이 이 무엇인가?"하라 하시나, 너 반드시 이 법을 쓸 것 없으니 다만 평상대로 염불 해가되 단지 생각만 잊지 아니하면, 홀연 경계에 부딪치거나 인연을 만남에 몸을 뒤집는 소식을 알 것이니, 이때 에 비로소 적광정토(寂光淨土)가 이곳을 여의지 않았고 아미타불이 자심(自 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평>> "다만 어느 때나 분연히 이 일을 밝힐 것만 생각하라"하니 이 말씀 이 심히 묘하다. 참구하는 법을 남김없이 다하여 곡진하고나!


#용어정리
[1]공곡경륭(空谷景隆): 자(字)는 조정(祖庭), 남악하 25세. 백련(白蓮) 눈 운지안(嫩雲智安)선사의 법을 이었다.


[2]외로히 밝고: 임제록에 "어느 물건이 설법청법을 해득하는가! 이 너의 목전에 분명하되 오히려 형단없으면서 외로히 밝은 한 물건이다. 이것이 설법 청법을 해득한다. 이와 같이 알면 불조와 다르지 않으리라"하고 있다.


[3]적광정토: 여기서는 극락세계를 가리키고 있다. 상적광토(常寂光土)라고 도 하니 무상지(無上智)를 성취한 각자(覺者)의 경계를 말한다.


36.천기화상 시중


너희들, 이제부터 결정심을 내어서 주야로 참구할지니, 본참공안을 단단히 잡고 "이것이 무슨 도리일까?"하라. 오직 명백하게 이 일 밝힐 것만 힘써야 하니 날이 가고 해가 가면 혼침은 저절로 힘쓰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물러가 며, 산란은 제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없어질 것이며, 이리하여 공부가 한결 같이 맑고 섞임이 없으며 심념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홀연 깨쳐 얻을 것이니 이때는 마치 꿈속에서 깨어남과 같을 것이다. 이때에 종전을 돌이켜 보면 모 두가 허망한 환이며 당체가 본래로 온전히 드러남이요, 삼라만상이 그대로 실상의 면목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이 대명나라 천지에 다시 사람으로 굽힐 것 없으며 이 법문을 돌이켜 보아도 또한 중이 됨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이에 인연 따라 남을 지내면 이 어찌 창쾌하지 않으랴.


종일 염불하는 이것이 온전히 부처의 생각임을 알지 못하니, 만일 알지 못 하거든 모름지기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고 참구하라. 반드시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굳건히 하여 기어이 이 도리를 밝혀낼 것만 힘쓰도록 하라.


<<평>> 독봉(毒峰) 천기(天奇)는 다 "참구염불"을 권하는데 공곡은 어찌하 여 이법이 필요없다 할까? 이것은 학인의 근기가 같지 않음을 인한 것이니 각기의 편리를 따라 무방하다.


#용어정리
[1]천기(天]奇): 남악하 30세, 보봉명선(寶峰明瑄)선사의 법을 이었다. 20 세에 출가하여 "만법귀일"을 참구하는데, 눈으로 분명히 보려는 듯이 살피고 귀로는 뚫어지게 들을듯이 기울이고, 공안의 구구자자를 명명백백히 살피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비벼대어, 마침내 대오하고 보봉의 인가를 받 았다.

 

37. 고음금 선사 시중


좌선중에 보이는 바 모든 선악경계는 다 좌선시에 관찰을 분명히 하지 않거나 바르게 공부를 짓지 않음으로 인함이니, 다만 눈을 감고 정좌하여 마음에 정채 (精采)가 없고 생각이 경계를 따라 흐르며 꿈속인 듯 생시인 듯하며, 혹은 고요 한 경계를 탐착하여 재미를 붙이므로 마침내 가지가지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무릇 올바르게 공부를 지을진댄, 잠이 오면 곧 자고 한숨 자고는 다시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두 눈을 비비고 어금니를 단단히 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곧 화두를 들되 "이것이 무슨 도리 일까?"하라. 부디 혼침에 끌려가지 말며 털 끝만큼이라도 바깥 경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중에 "아미타불" 한 생각을 놓치지 말라. 모름지기 인(因) 도 깊고 과(果)도 큼을 깊이 믿어 마침내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되어 능 히 염념히 헛되지 않게되면 생각이 한덩어리를 이룰 것이니 이에 당념(當念)에 서 염불하는 놈을 발명하면 곧 미타가 너와 더불어 함께 나타나리라.


#용어정리
[1]고음법금(古音法琴): 남악하 30세, 수당송(壽堂松)선사의 법을 이었다. 자 호를 옥천노인(玉泉老人)이라 하였다. 25세에 적석산주(赤石山主)에 출가하고 여러 종사에 참예하여 결택하고 마침내 보명수당(寶明壽堂)의 인가를 받았다.


38. 초산기 선사 해제 시중


여러 대덕들아, 90일중에 증오(證悟)가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아직도 입처가 없다면 이 한 삼동을 또 헛되이 마쳤구나!
만약 본색도류(本色道流)일진댄 시방법계로 원각 기일을 삼고 장기 단기와 백일천일과 결제해제를 논하지 않고, 다만 화두를 드는 것으로 시작을 삼아서 1년이든 10년이든 20년이든 참구하되, 가사 평생을 다해 서라도 만약 깨치지 못하면 결정코 뜻을 옮기지 말아야 한다. 기어코 진실한 구경처를 보도록 하여야 하니, 이때가 비로소 해제하는 날이다.


혹 아직도 앞에서 말한 뜻을 계합하지 못하거든, 다만 <아미타불> 일 구를 깊이 생각에 두고 묵묵히 체구하여 항상 스스로 채찍질하여 의정을 이르키되, "이 염불하는 놈이 무엇인가?"하라. 생각생각 끊임이 없고 마 음과 마음에 빈틈이 없으면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데, 물이 다하고 산이 다 한곳에 이르면 몸을 뒤집는 도리가 있듯이 기어이 "왁!"한 소리 치고 심체(心體)에 계합하여 들어갈 것이다.


<<평>> 화두를 드는 것으로 결제를 삼고 진실을 구경(究竟)한 것으로 해제를 삼는다 하니 이말을 명심해 두라.


[1]초산소기(楚山紹琦): 남악하 28세. 법을 동림(東林) 무제오(無際 悟)선사에 이었다. 9세에 출가하여 처음 현극(玄極)스님에게 의지하고 최후에 무제(無際)선사에 이르렀다. 묻기를 "나에게 "무"자의 뜻을 가져 오너라"하는데 사 게송으로 답하기를 "저 중의 묻는 곳이 너무나 많았으 나, 조주는 일찌기 한 생각인들 하였으랴, 있는대로 한마디에 남김없이 털어낸걸, 도리어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는구나."하니, 다시 묻기를, "어떠한 것이 의심이 없는 곳인고?" "산은 푸르고 물은 맑고, 제비는 조잘대고 꾀꼬리는 우짖어, 역역 분명커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까?" 무제는 인가하고 법을 전하였다.


39. 월심화상 시중


생생한 뜻과 씩씩한 기운을 분연히 일으켜서 화두를 들되, 끝을 맺는 말에서 의정을 일으키어 침통하고 간절하게 지어가야 하니, 혹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참구하며 혹은 소리를 내어 추심하되 마치 귀중한 물건을 잊은거와 같이 하여 친히 얻기를 힘써야 하며 또한 일용중 일체시 일체처에 다시 두 생각이 없어야 하느니라.


#용어정리
[1]월심덕보(月心德寶): 남악하 32세, 법을 용천총(龍泉聰)선사에 이었다.

** 이제까지는 제조법어절요(諸祖苦功節要)로써 여러 조사의 요긴한 법문을 간추려 올렸습니다만,

다음편 부터는 제조고공절략(諸祖苦功節略) 즉,애 써 공부하심을 간추려 올려 드립니다.
거듭 첨언하옵건데, 문자나 소리나 색에 걸림이 없이 근기에 따라 여여 하십시요. 때론 자가당착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법과는 8만4천리나 멀어질 수도 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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