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국내 주요언론들은 “북한군이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한 장사정포가 공격받기 어렵도록 동굴 진지를 새로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 잠수함이나 장사정포 같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응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북한 장사정포의 움직임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장사정포에 대비한 대화력전 준비가 화력과 기동장비에만 치중한 나머지 인간의 뇌와 신경망에 해당되는 C4I(Command &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 분야는 더딘 것이 현실이다.
|
 |
|
▲ (참고 사진자료) |
대화력전 C4I에 대한 상반된 인식
천안함 사건 직후 청와대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창설하고 국가 안보 현안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에 착수했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지난 5월13일 첫 회의를 개최한지 3개월만인 8월 초 국방 분야 30개 과제 등이 담긴 230여 쪽의 보고서를 확정하고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대북억제전력 확보, 군 구조 개혁, 복무기간 연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대안을 제시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는 북한의 비대칭적 위협, 특히 수도권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한 부분도 면밀하게 검토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대화력전 체계 중 C4I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군 소식통의 말.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지적한 부분은 바로 대화력전 수행 체계 중 C4I에 대한 것이었다. 안보총괄점검회의는 C4I문제를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과 대화력전 수행의 핵심으로 판단했다. 군 당국은 C4I체계 구축에 대해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했지만,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일정에 대한 부분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대화력전과 관련된 C4I 체계 구축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의 판단은 뜻밖으로 들릴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권 전환 연기가 확정된 직후 군 일각에서 “전작권 전환준비가 부족해서 연기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연기한 것이다. 우리 군은 잘 준비해 왔다”는 반응이 나온 것과는 상반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화력전 관련 C4I 체계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군 소식통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미 태평양사령부와 합참이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가장 큰 문제는 한미 양국군간의 암호체계와 정보저작권 문제였다. 양측의 암호체계가 서로 달라 C4I에 의한 데이터 교환이 어렵고, 미 국내법상 미군이 한국군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일종의 저작권 저촉 여부도 제기됐다. 미국은 원래 저작권에 민감하기 때문에 정보저작권은 미군에게 상당히 큰 문제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지적한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비대칭 위협 중 ‘히든카드’라 불릴 만큼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
|
▲ 이라크 전쟁 직후 미군에게 노획된 이라크 군 소속의 북한산 170mm 자주포. 휴전선에서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 중 하나이다. |
북한이 군사분계선 인근에 배치해 놓은 장사정포 중 수도권에 위협이 되는 것은 300여문 정도. 이중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평가되는 장사정포는 170mm 자주포(사거리 43Km)와 240mm 방사포(사거리 65Km)로 한미연합군의 포격으로부터 안전한 갱도진지에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임진강(판문군) 일대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 지역은 서울에서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지역에 장사정포가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1997년부터 갱도진지 공사가 진행되어 1999년까지 수백 문의 장사정포가 후방으로부터 전진 배치되었다는 것이 군 당국의 평가이다. 이들 갱도진지는 내부가 20평 정도로 갱도에서 포를 꺼내는 즉시 미리 구축해놓은 포대에서 포격이 가능하다. 갱도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산 뒷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동굴 형태로 되어있다. 입구에는 10~20Cm 두께의 철문이 설치되어있고, 입구 주변은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 170mm 자주포 포대는 산의 남쪽 사면에 주로 있고, 240mm 방사포는 북쪽 사면에 있다.
최근 북한군은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한 장사정포가 공격받기 어렵도록 동굴 진지를 새로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올 들어 입구가 남쪽으로 나 있는 산속 갱도진지에 배치해둔 장사정포를 반대쪽인 북쪽에 동굴을 내 재배치하고 있다. 또 한·미 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 방호가 가능하도록 새 장사정포 진지 위에 보호 덮개를 만드는 공사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새 장사정포 진지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만큼 한·미군의 K-9 자주포와 MLRS 다연장로켓포 등으로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전투기로 투하하는 유도폭탄인 합동직격탄(JDAM)이나 미사일 등으로만 파괴할 수 있어 공격 방식에 제한이 크기 때문에 군 당국은 북한군 장사정포 진지의 보호 덮개를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 개발을 검토 중이다.
한․미 대화력전 능력, 하늘과 땅 차이
이러한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연합사령부는 1993년부터 ‘지상구성사령부 대화력전 수행본부’를 설치했다. 미 2사단이 운용한 대화력전 수행본부는 한강 이북의 미군과 한국군 포병화력을 종합적으로 통제하여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그러다 2005년 10월 1일, 주한미군 감축계획의 일환으로 대화력전 수행임무는 한국군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군이 대화력전 수행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2004년부터 수 차례의 합동 훈련을 거친 끝에야 임무 인수인계 일자를 확정할 정도로 난항을 겪어야 했다.
북한 장사정포 위협과 관련한 대화력전 수행능력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북한 장사정포의 위협을 경감시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대화력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C4I는 대화력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요소다.
▲실시간 대응 체계 갖췄던 미군
2005년 대화력전 임무가 한국군으로 이양되기 전 주한미군에 의한 대화력전 수행체계는 말 그대로 ‘실시간’에 가까웠다. 2005년까지 미 2사단이 운영하던 대화력전 수행본부는 취합된 정보를 다루는 분석통제반(ACE), 정보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장사정포를 타격할 것인지 결정하는 화력지원반(FSE), 포병부대를 통제하는 포병여단 작전통제소(OCC), 공군 전력을 담당하는 항공지원작전대대(ASOS)로 구성되어 있었다.
|
 |
|
▲ AN/TPQ-36 대포병레이더. 한미 양국군의 장사정포 탐지 전력이다. |
북한 장사정포가 이상 징후를 보이면 미군이 보유한 군사위성 KH-12, 무인정찰기, 합동감시표적공격레이더체계(JSTARS) 등의 정보자산이 수집한 정보는 모두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ADOCS)라는 C4I 체계를 통해 자동으로 분석통제반에 수집되고, 분석통제반은 이를 분석해 보고한 다음 화력통제반, 포병여단 작전통제소, 항공지원작전대대와 협조하여 대응 조치를 준비한다. 미군의 대응은 크게 항공지원작전대대가 담당하는 하늘과 포병여단 작전통제소가 맡는 땅으로 나뉜다. 무장한 F-15E가 휴전선 상공을 비행하는 동안 땅에서는 155mm 팔라딘 자주포와 MLRS가 비상대기에 돌입한다.
북한 장사정포가 갱도에서 나와 포격 준비에 들어갈 경우 이들 전력이 일제히 불을 뿜는다. 이를 통해 장사정포의 상당수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만약 장사정포 중 일부가 살아남아 포격을 감행하면 대포병 레이더인 AN/TPQ-36, 37과 주한미군의 무인정찰기가 장사정포의 위치를 추적한다. 여기서 수집된 정보는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에서 자동 수집되어 공격 수단과 당장 사격 가능한 것이 어느 것인지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는 미 2사단 예하 팔라딘 자주포와 MLRS에 연결되어 있어 탐지에서 목표 좌표 설정에 이르는 전 단계가 한 번에 이루어진다.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에서 사격 명령을 받은 미군 포병여단은 첨단야전포병전술자료체계(AFATDS)라는 C4I체계를 통해 어떤 포에서 어떤 포탄을 발사할 것인지, 그 결과는 어떤지 확인하는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미군의 대화력전 수행체계는 ‘사람이 할 일이 거의 없는’ 정도의 강력한 자동화 체계로 미군은 탐지에서 실제 사격까지 2~3분 안에 이루어지도록 훈련을 진행한 바 있다. 미군이 이렇게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대화력전을 수행하는 이유는 북한의 장사정포 수량이 압도적이어서 대응 속도와 시간이 대화력전 성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력전을 구성하는 대화력전 수행본부, 정찰자산, 타격 자산이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있지 않으면 시간이 많이 걸려 대응 속도가 떨어지고, 예상 피해도 커진다. 이것이 바로 미 2사단이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ADOCS)와 첨단야전포병전술자료체계(AFATDS)라는 C4I 체계를 운용한 이유이다.
▲미군보다 3~7배 느린 한국군
이렇게 현란하기 그지없는 미군의 대화력전에 비해 한국군의 대화력전 체계는 2005년 10월 미군으로부터 대화력전 수행임무를 넘겨받을 당시에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2005년 당시 한국군의 타격 자산은 미국의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ADOCS)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 별도의 연락반이 배치되어 통신으로 좌표를 부르는 방식이었다. 군단 포병여단 역시 탐지에서부터 실제 발사에 이르는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지 않고 유무선 통신을 사용하거나 일일이 손으로 입력 하는 방식이어서 소요시간이 C4I체계를 사용하는 미군에 비하면 3~7배까지 차이가 났다.
|
 |
|
▲ 구룡 다연장로켓. MLRS와 더불어 전략 타격을 수행한다. |
이 때문에 2005년 한국군이 대화력전 임무를 미군으로부터 넘겨받을 때, 한국군이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가 바로 C4I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국군이 그 동안 미군의 정보자산에만 의존하다보니 C4I가 현대전의 중요요소로 자리 잡은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합참, 육군 등은 대화력전 임무 이양이 결정된 직후 미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북한 장사정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준비를 거쳐 2005년 10월 3군 사령부에 대화력전 수행본부를 설치했다. 이 당시 군 당국은 “난제를 매우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고 자평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한국군의 C4I체계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상태이다. 1990년대 제작된 지휘소자동화체계(CPAS)와 전술사격지휘체계(BTCS)로는 탐지에서 사격까지 6~11분이 걸리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2005년 당시 국방부가 공식 설명했던 대화력전 C4I관련 설명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당시 국방부와 합참은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을 통해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미군이 한국군의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 사용 능력을 우려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는 한국군이 훈련을 위해 대여한 것이었고, 그나마 한국군의 탐지․타격 자산과 연동하는 것에는 관련이 없었다. 게다가 미 7공군이 수집한 정보를 직접 수신할 수 있는 장비가 미흡해 미 7공군의 막강한 탐지자산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던 군은 2004년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구축에 들어가 2008년 1월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는 육해공군의 모든 정보와 작전을 취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인 만큼 대화력전 전용은 아니지만 대화력전 부분은 2007년 말에 조기 전력화하여 미군의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를 일부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는 대화력전에 관한 제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화력전에서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전력이 실시간으로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를 주한미군 자산과 대화력전 수행본부를 연결하는 합동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JADOCS)에 연동시켜야 한다. 하지만 2008년 1월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의 가동은 합동 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와 연결하지 않은 채 시작되었으며, 두 체계의 연동은 빨라야 2011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즉, 2011년까지 한국군은 대화력전 수행에서 미군 자산을 이용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구축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시험운용과 훈련, 시스템 안정화 등에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대화력전 C4I 체계가 언제 미군 수준으로 향상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C4I부실, 화력에만 집중한 결과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해 보면,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대화력전 능력은 2005년 이후 취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미 전력의 실시간 연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수집한 정보를 일일이 손으로 입력하거나 통신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채 대화력전 임무가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C4I체계를 구축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한국군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풍부한 노하우를 보유한 미군의 C4I운용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군의 C4I 운용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도 대화력전 수행을 위해 화력과 기동 전력 확보에 쏟아부은 10조 원의 예산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군은 대화력전 임무를 위해 수 년 동안 1개 대대에 4,300억원이 넘고 탄약 구매에 1조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MLRS, 1발에 25,000달러가 넘는 JDAM, K-9자주포와 현무 미사일 등을 구입했다. 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를 완전히 구축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1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 당국이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C4I 분야를 소홀히 취급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6년 7월 1군사령부가 예하 포병부대와 실시간으로 표적 정보를 공유하는 C4I체계를 구축한 결과 소요시간이 기존의 4분의 1로 단축된 사례를 보면 화력과 기동 분야에 집중하는 것과 C4I에 집중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C4I 승수효과’라는 말이 있다. 같은 규모의 탐지․타격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이를 연결하는 C4I 체계가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느냐에 따라 몇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화력전 임무를 인수받은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인수 당시의 문제점인 C4I가 계속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과시적인 무기체계 도입에만 열중한 한국군의 ‘인과응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체의 신경망이 끊어지면 몸을 움직일 수 없듯이, 촌각을 다투는 대화력전에서 정보의 실시간 전달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서울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