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북한 급변사태 최신 시나리오

醉月 2013. 11. 25. 01:30

[특집 북한 급변사태 최신 시나리오 Ⅰ]

 “중국 공수부대가 평양 선점해 경계선 긋는다”

‘김정은 정권 붕괴 후 한반도 제2의 분단’

 

美 보고서 全文 분석 고명현│아산정책연구원 사회정보관리연구센터장 jsung@asaninst.org

● “평양까지 중국군은 일사천리, 한국군은 지뢰밭”
● “北, 한국군 묶으려 핵·생화학무기 시위성 사용할 수도”
● “한국 육군 병력, 北 장악하기엔 태부족”
● “중국 北 병합 가능성”…유엔 통해 北 영토 보존해야

 

미국 랜드연구소는 최근 “북한 붕괴 후 한반도가 다시 분단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것으로 일부 언론에 알려졌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주목되는 사안임에도 보도 내용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었다. 이에 이 보고서의 저자와 함께 9월 25일 서울에서 북한 관련 학술회에 참가한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사회정보관리연구센터장이 ‘신동아’를 통해 이 보고서 전문(全文)을 분석하고 그 함의를 소개한다. <편집자>

 

미국 랜드연구소는 최근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준비(Preparing for the Possibility of a North Korean Collapse)’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북한 붕괴 후 한국, 미국, 중국이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각각 북한 내 관할구역을 설정한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중국이 북·중 국경선에서 북한 영토 내 50km까지 진군해 완충지대(buffer zone)를 세운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파장을 야기했다. 과연 북한 붕괴 시 제2의 한반도 분단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이 보고서의 저자는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 박사다. 그에 따르면 보고서의 포인트는 북한이 반드시 붕괴한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북한 급변사태 즉, 현 정권이 갑작스럽게 무너질 경우에 대비하는 방안을 밝히는 것이었다.

총 10장(chapter)으로 된 베넷의 보고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 과정, 중국의 개입, 북한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한미 연합군사력의 규모에 대한 예측, 한국이 북한 영토를 접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법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역주행하는 한국 국방 정책

 

 

이 보고서에 나오는 북한 급변사태 시나리오의 시발점은 북한의 현 지도자인 김정은이 암살당한다는 가정이다. 이후 북한군 지도부는 여러 파벌로 갈리면서 군벌화해 동시다발적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보고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인 북한 정권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붕괴해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경우 한국의 안보 상황이 현재보다 훨씬 악화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붕괴 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은 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인도적 위기(Humanitarian Crisis)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곧바로 식량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아사 사태, 정치 보복성 학살, 대량 탈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측한다. 보고서는 한국으로만 약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둘째는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위기다. 사실 북한 정권 붕괴 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사라진다고 북한 땅에 존재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국가가 대량살상무기 통제능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해당 부대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한국을 공격하거나, 내전 상황일 경우 상대편 군벌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설사 지휘체계가 살아남더라도 한국군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의 시위성 사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반도 전체의 정치, 사회적 위기다. 북한 정부 붕괴 시 통일에 대한 기대는 한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단 북한 정권의 기만과 선전술에 오랫동안 길들어온 북한 주민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20만 명쯤 되는 북한 정규군의 무장해제, 제대조치, 사회복귀는 붕괴 이후 북한 사회의 혼란으로 인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한국 사회의 범죄세력과 결탁하거나 무장봉기의 중심 세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보고서가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한국의 군사력만으로 북한을 안정화하는 것이 가능한가’다. 북한 붕괴 시 미군이 수행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미군은 주로 한국군의 병참과 정보 수집을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북한을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은 ‘화력’이 아니라 ‘병력’이라고 잘라 말한다. 미군이 수행해온 평화유지 작전 및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근거로, 북한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선 북한군의 저항이 없을 경우 26만~40만 명, 저항이 있을 경우 60만~80만 명의 한국군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측한다. 붕괴 후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하면 북한 안정화에 필요한 군 병력은 현재 63만여 명 수준인 한국군의 총 병력 규모를 상회한다.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

 

 

더 큰 문제는 북한 안정화 작업의 주축이 될 한국 육군의 병력 규모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 계획 2012-2030’에 따르면 현재 50여만 명인 육군 병력은 2022년경 38만여 명까지 줄어든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될 경우 육군 병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 2026년경 30만 명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본다. 육군 병력이 30만 명 이하일 경우 북한군의 저항이 전혀 없더라도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전체를 장악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북핵 지원 들통날까봐…”

이처럼 다운사이징 일변도의 한국 정부 국방계획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군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할 수도 없고 한반도 통일을 수행할 수도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병력 부분을 차치하고, 지정학적으로도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 전역을 안정화하고 200여 개로 추산되는 대량살상무기 현장(WMD sites)과 1만여 개의 지하시설을 장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북한 핵 시설의 대부분은 평양 이북에 위치해 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약 320km인데 북한군 병력의 70%가 평양과 휴전선 사이에 주둔해 있다. 따라서 한국군이 북한군 밀집지역인 휴전선~평양 지역을 넘어 대량살상무기 현장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군이 평양 이북에 도착하기전에 이미 대량살상무기의 행방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면, 또한 이러한 대량살상무기가 반란세력이나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장기간 전쟁을 수행하면서 얻은 뼈아픈 교훈은 ‘전쟁 시 적국 영토 전역으로 병력을 빠르게 전개하지 않으면 테러집단과 반란세력의 활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육군 병력 부족 문제는 급변사태 시 한국군 주도의 개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보고서는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은 북중 접경지대를 통한 대규모 탈북을 일차적으로 우려한다고 예상한다. 그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자국을 향해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만큼이나 북한에 개입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보고서는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을 장악하는 데 성공해 과거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한 흔적을 발견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따르기 때문에 중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북한에 개입함으로써 미군이 중국 국경에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는 것도 중국의 또 다른 전략적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개입하기 전에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한을 장악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상황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군 병력의 한계 때문에 단시간 내 북한 전역을 장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결국 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개입을 반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북·중 국경에서 평양까지는 130km밖에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평양 이북 지역은 북한엔 후방에 해당되어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중국은 북한 영토를 장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중국이 개입 결정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게 하는 요인들이다.

 

“한국, 단호하게 북진 결정해야”

 

 

보고서 저자인 브루스 베넷 박사.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38선이 북한을 어떻게 양분할지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이 대두된다. 북·중 국경선에서 50km 떨어진 곳에서 분할선이 그어질 수도 있고, 평양 부근에서 분할선이 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과는 달리 중국군은 3개 사단 규모의 공수부대를 곧바로 북한에 투입해 평양에 누구보다도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이들 부대 외에도 중국이 동원할 수 있는 지상 병력은 상당하다. 선양, 베이징, 지난, 난징 등 4개 군구에서 100만여 명의 병력이 유사시 동원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본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지리적 이점과 군사적 우위를 최대한 살려 북한 전역을 신속하게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것.

따라서 한국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인지를 단호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한다. 만약 중국이 북한에 먼저 개입해 친중 정권을 세우면 제2의 분단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한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가 먼저 평양에 도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국군이 북한 영토에 주둔할 경우 한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중국이 친중 정권을 세우거나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중국군과 한미 연합군 간의 충돌을 막는 군사적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에 합의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까지 랜드연구소 보고서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냉정한 한반도 판세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현재의 한국군은 북한이 먼저 전면전을 도발해오면 이를 방어하는 데 특화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한국군으론 북한 급변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의 이러한 군사적 한계가 향후 북한 영토 보존 및 한반도 통일에 상당한 맹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이 이런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국방전략을 다시금 검토해야 한다는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점은, 이 보고서가 북한 정권 붕괴를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만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정권 붕괴는 북한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북한의 여러 가지 미래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그 가능성은 외부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고 봐야 한다.

 

‘실패한 국가’의 견고한 지속성

북한 정권은 김일성 사후 20여 년 동안 매우 견고하게 지속됐다. 소련 붕괴로 인한 대외무역 증발, 초유의 경제 붕괴, 대규모 아사사태, 경제정책 실패, 외부 정보 유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대 세습을 이뤄냈다. 그 사이 핵 개발 또한 꾸준히 진행한 것은 물론이다. 정상적인 잣대로는 북한은 분명히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다. 하지만 정권의 지속성에서만큼은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흘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어느 날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 또한 여전히 상존한다.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랜드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인지하고 또 어떠한 해결책을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 보고서의 가장 큰 쟁점은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이 취할 행동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현 시점에서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급변사태 시에는 중국의 역할이 거의 절대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에 대해 좀 더 숙고해봐야 한다.

 

‘2400만 소수민족’ 어떻게 감당?

 

 

북한 핵 시설. 북한 급변사태 시 1차적 확보대상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북한 난민의 대규모 유입을 꺼리는 이유로 동북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과의 연계를 언급하고 있다. 소수민족 분규가 전혀 없는 동북 3성에서 북한 난민 유입으로 민족 문제가 발생할 것을 중국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중국은 평양 이북 또는 북한 전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0만이 약간 넘는 조선족과 북한 난민의 연계조차 우려한다는 중국이 1300만 명(평양 이북)~2400만 명(북한 전역)에 달하는 북한 주민을 자국에 편입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중국이 골치를 앓고 있는 티베트자치구의 경우 티베트 민족의 숫자는 600만 명이다. 한족과 민족갈등을 겪고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 민족은 1000만 명 정도다. 최소 1300만 명에서 최대 2400만 명의 북한인을 북한 영토와 함께 편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민족 문제는 지금까지 중국이 당면해온 소수민족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 자명하다. 더욱이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짐으로써 중국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군사적으로 직접 맞닿게 되는 지정학적 위험에도 노출된다. 과연 중국이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영토를 편입할 것인지는 의문시된다.

그렇다면 북한 급변사태에 대처하는 중국의 실제 행동은 어떻게 진행될까.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하기 이전에 북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치·외교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변사태로 인한 혼란이 하루이틀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중국은 군 투입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으로서도 개입 시점을 찾는 게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개입 시점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는 시리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려는 내부 봉기가 시작된 2년 전부터 2013년 현재까지 적절한 개입 시점을 찾고 있었지만 결국 개입하지 못해왔다. 사태 초기에는 아사드 정권이 곧 전복될 것이라고 믿어 개입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반대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지 않고 내전이 심화하자 미국은 군사행동이 너무 위험하다고 보고 개입을 주저하게 됐다.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생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현 시점에도 미국은 군사행동이 몰고올 예측불허의 결과를 우려해 개입하지 않고 있다.

미래의 중국도 북한의 상황이 자체적으로 호전되기를 바라면서 개입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들어갈 정확한 시점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중국이 개입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중국의 일방적인 개입은 국제사회의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물론 개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국의 이득이 더 크다면 중국은 비판적 국제여론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득을 볼 지가 불확실하고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면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진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유엔 업고 北에 민주 정권 수립’

 

훈련 중인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

 

한국 헌법은 북한을 영토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급변사태에 이를 경우 자동적으로 한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하지만 한국이 헌법을 근거로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특히 베넷 박사가 상정하는 내전 상황에서 한국이 단독으로 개입하기에는 군사력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적지 않다. 또 북한이 유엔 회원 국가인 이상 한국의 일방적인 개입은 한국엔 통일 과정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강제 병합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두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수 있을까.

보고서가 지적했듯이 한국군이 북한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중국도 개입 시기를 저울질하며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각자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은 후 개입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꼭 그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주변국의 개입이 국제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보호 책임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로 북한 내에서 대규모 인권침해와 아사사태가 벌어질 경우 국제사회는 인도적 차원에서 다른 나라의 개입을 허용할 수 있다.

둘째,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위협이다. 북한이 내전에 빠져들어 북한 정부가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의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믿을 만한 징후가 있을 때 이런 무기에 의해 피해를 볼 우려가 있는 국가는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셋째, 북한 내부로부터의 요구다. 북한 내 상당한 세력이 외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 후 내전이 일어나면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은 이러한 근거에 의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이 중 북한 내부의 요구에 의해 중국이 개입해 북한을 장악했을 때 중국은 친중 정권을 세우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통일은 요원해진다. 한국은 이를 막기 위해 중국과의 군사충돌을 무릅쓰고서라도 북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국제사회 차원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주된 방법은 분쟁지역에 투입할 평화유지활동(PKO·Peace Keeping Operation)을 유엔 안보리에서 재가하는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 방안에 반대하더라도 최소한 한국은 국제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만약 PKO가 허용되면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은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일본 자위대의 북한 주둔은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PKO는 무정부 상태의 북한을 안정화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내전을 종식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해야 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어 북한 주민들이 자유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은 북한 사회가 안정된 후 남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천천히 진행할 수 있다.

이 방식은 북한의 영토를 보존해주고 한반도에 제2의 38선이 그어지는 것을 막는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바로 충족해 주지는 못하지만, 북한에 민주 정권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긍정적인 변화다. 이는 북한 경제의 회생, 남북한 자유왕래, 한반도 통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일단 군사 부분의 함의를 보자면, 북한의 전면전 도발을 억제하는 데 맞춰진 한국의 현 군사력으론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 영토 장악과 한반도 통일을 완수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한국 국방 당국은 감군(減軍) 등 기존 전력마저 약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자각과 대응책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즉, 중국군의 북한 전개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을 만큼의 군사력을 갖추는 문제가 반드시 국방 정책에 담겨야 하는 것이다.

 

중국군 전개 늦출 군사력 갖춰야

미국 부분의 함의를 보면, 미국은 중국의 개입을 무력으로 억제하기보다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평양을 중국보다 선점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점이 나타난다. 동시에 미군의 북한 직접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이라는 점도 확인된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도 한국군이 북한 개입에 필요한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중국 부분의 함의를 보면, 한국군이 현실적으로 북한 전역을 장악하기가 어렵다면 중국의 개입을 반사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에는 강한 군사력,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중국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외교, 유엔과 국제사회의 동참을 이끌어낼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 최신 시나리오Ⅱ]

 ‘제2 청일전쟁’은 한중분쟁?

 “中의 센카쿠 다음 목표는 北”

 

김영림 | 재일 군사평론가 c45acp@naver.com

 

센카쿠 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동북아 해양 패권을 겨냥한 우회 침투로, 확보를 위해 급변사태를 당한 북한 장악을 시도할 수 있다. 중일분쟁이 순식간에 북한을 무대로 한 한중분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가.

9월 10일, 중국 경비함(아래)이 센카쿠 열도에 접근하자 일본 순시선들이 밀어내기 위해 추격하고 있다.

 

동북아의 해상 패권을 놓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19세기말 우세한 해군력을 동원해 중국을 핍박한 서구와 그에 동참한 일본에 설욕하려는 듯 해군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용틀임에 대한 불안감을 이유로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제도 국유화를 단행하자 중국은 이 해역에서 무력시위를 벌였고, 그해 9월엔 항공모함 ‘랴오닝’을 진수했다. 일본은 지난 8월 6일 준(準)항공모함 ‘이즈모’를 이 해역에 띄웠다.

중일분쟁은 우리에게 ‘강 건너 불 구경’거리가 아니다. 중국은 센카쿠 해역 무력시위 와중에 우리의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주변에도 군함을 보냈다. 중국은 지난해 3월부터 이어도 수역을 중국 EEZ(배타적 경제수역) 관할이라고 선포한 바 있다.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센카쿠 제도 영유권을 탈취한다면 이어도 수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해상패권주의가 센카쿠와 이어도 쯤에서 멈출 것이냐 하는 점이다. 지난 역사와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을 돌아보면 필자는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행보는 결국 한반도까지 엄습하리라고 본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인 북한의 체제 불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중국이 근대 이후 사활을 걸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日本의 대만 출병에 놀란 淸

임진왜란 이후 중국과 일본이 처음 충돌한 것은 1874년이고, 장소는 대만과 오키나와 섬이 있는 동지나해(동중국해) 일대였다. 먼저 공세를 편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로서 팽창하던 일본이었다. 일본은 1873년 국민개병제를 실시해 무사(사무라이) 계급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로 인해 무사 계급들의 불만이 높아져 소요 조짐이 보이자 이를 외부로 배출시킬 기회를 엿보게 됐다.

사이고 다카모리(1828~1877)를 비롯한 ‘불만 사족(士族)’들은 쇄국정책을 내세워 일본의 유신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선의 대원군을 비판하며 정한론(征韓論)을 거론했다. 그러나 내정 개혁과 근대화가 급선무라는 반론에 밀려 실각(1873)했다. 그런 상황에 일본이 조선 대신 시선을 돌린 곳이 동지나해였다. 일본은 청나라와 일본 양쪽에 조공을 바쳐온 류큐(지금의 오키나와) 왕국을 귀속시키기 위해 1872년부터 행정 작업을 진행했다.

1874년 류큐 어민들이 거센 풍랑을 당해 대만에 표착했다가 대만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하자 일본은 병력을 파견해 대만을 공격했다. 일본의 대만 출병은 청나라에 큰 충격을 줬다. 아편전쟁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의 침략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후발 근대화국 일본에까지 청조의 권위를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조(淸朝)는 군비(軍備)가 불충분했기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의 배상금까지 지불하며 겨우 사건을 수습했다.

청조의 외무 전반을 대행했던 리훙장(1823~1901)은 일본에 우호적이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해 해군력 증강에 매진했다. 일본이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로 근대화한 해군력을 앞세웠던 만큼 청으로서도 국가 위신을 위해 일본을 능가하는 해군력 확보가 시급했다. 일본은 1879년 류큐를 오키나와 현으로 명명해 자국에 편입시켰다.

리훙장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최신예 전투함을 도입해 일본 해군력을 압도할 대함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1880년 청조는 현대 전함(battleship·대형 포를 탑재한 함정)의 시조 격인 8000t급 갑철함(甲鐵艦)인 ‘정원(定遠)’과 ‘진원(鎭遠)’, 그리고 어뢰정 10척을 독일에 발주했다. 이어 먼저 영국에 발주한 순양함들과 묶어 ‘북양(北洋)함대’를 편성했다.

청조의 해군력은 북양함대만으로도 세계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전투력은 영국의 동양함대와 동등한 것으로 평가됐다. ‘정원’과 ‘진원’은 300mm 두께의 철판으로 장갑했고, 구경 30cm의 거포 4문을 탑재했으니 가히 ‘불침(不沈)전함’이라 불릴 만했다. 자신감을 얻은 청조는 일본을 역습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무대가 바로 한반도였다.

   

북양함대에 자극받은 日

1882년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잡은 민씨 척족이 일본식 훈련을 받은 신식 군대 ‘별기군’을 편성해 구식 군대를 차별하자 반발한 병사들이 일본인 교관과 한양 거류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대원군을 복위시키려는 반란을 일으켰다(임오군란). 민비 세력이 구원을 요청하자 청조는 갓 도입한 영국제 순양함 3척이 호위하는 수송선단으로 지상군을 신속히 조선에 전개해 반란을 진압했다.

청조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데 직접적인 발판이 될 수 있는 한반도에서만은 일본에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개입했다.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장악을 낙관하던 일본에 선수를 치는 데 성공했다. 청조는 1884년의 갑신정변 때도 조선에 병력을 신속하게 투입해 영향력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거문도 사건) 1886년에도 북양함대를 파견해 위세를 떨쳤다.

당시 일본은 예산의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청의 갑철함과 동급인 전함을 구입해 대항하는 ‘대칭전략’ 대신 저렴한 순양함과 당대의 최신 병기인 어뢰정을 구입해 대항하는 ‘비대칭전략’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던 1891년 북양함대가 일본을 친선 방문하자 일본인은 자국의 해군력이 크게 열세라는 것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1893년 일본은 왕의 칙어를 통해 전 공무원 급료의 10%를 헌납하고 왕실 내탕금까지 투입해 ‘정원’과 ‘진원’을 능가하는 1만2000t급 영국제 최신 전함 ‘후지(富士)’와 ‘야시마(八島)’를 도입하기로 했다. 2척을 도입하는 데 들어간 예산이 GDP의 1.2%에 달했다. 현재 일본의 국방예산이 GDP의 1%에 묶여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일본이 최신 전함 확보에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후지’와 ‘야시마’가 진수된 것은 청일전쟁 종전 이듬해였다.

그런데도 청나라 해군은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으로는 청조의 전술적 불운과 인프라 미비를 꼽을 수 있다. 청일전쟁 초기 청의 북양함대와 일본 연합함대가 황해에서 벌인 결전에서 ‘정원’과 ‘진원’은 수백 발이 넘는 포탄을 맞았지만 치명탄은 단 한 발도 허용하지 않는 방어력을 과시했다. 거꾸로 ‘진원’이 발사한 30cm 거포탄 한 발이 일본 해군 지휘함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했다.

그럼에도 일본 함대가 승리한 요인은 수병들의 우수한 숙련도에 있었다. 청조는 대함대를 확보한 순간부터 자만에 빠져 해군 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병의 훈련도와 사기가 크게 저하됐다. 교육과 훈련이라는 기초적 인프라가 워낙 불비(不備)했기에 북양함대는 수많은 포탄을 수면으로 떨궈야 했다.

 

日 꺾고 美와 태평양 半分?

일본 연합함대는 기본 전력은 열세였지만 수병들의 숙련도, 보급, 정비 등 인프라가 탄탄했다. 그 결과 ‘정원’ ‘진원’을 격침하진 못했지만 주변의 호위함을 다수 침몰시켜 판정승을 이끌어냈다. 싸움에 임하는 진지함이 승부를 가른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패권 확보가 향후 자국의 명운을 결정하리라는 비상한 각오로 싸웠다.

1885년부터 3년간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낸 독일인 메켈은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와 같다”고 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일본 최초 총리 역임)는 1890년 ‘외교정략론’을 통해 일본 영토를 절대적으로 방어해야 할 ‘주권선’으로, 한반도를 주권선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이익선’으로 설정했다.

청도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진 않았다. 리훙장의 심복 마젠충(1845~1899)은 북양함대 구축이 한창이던 1880년대 초 ‘정원’급 갑철함 9척과 순양함 36척을 확보하고 조선의 거문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며 동아시아의 해양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조는 일본을 능가하는 전력을 확보한 것에 자만해 더 이상의 증강을 중단함으로써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패했다. 그 결과 청은 한반도에 대한 이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대만을 일본에 할양했는데, 그때 센카쿠 제도도 함께 일본에 넘어갔다.

그 후 중국은 기나긴 내리막길을 걷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설욕을 꾀하고 있다. 청일 간 해상 패권 경쟁의 종착점이던 센카쿠 제도를 새로운 동북아 해상 패권 경쟁의 출발점으로 삼은 중국의 다음 목표는 어디가 될 것인가.

중국은 국력 신장에 따른 자신감과 함께 축적된 내부 모순에서 비롯된 사회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려는 의도에서 해양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동북아 패권의 경쟁자가 될 개연성이 높은 구적(仇敵) 일본을 꺾고, 2차적으로는 태평양의 절반을 미국과 양분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 의회 조사국 보고에 의하면 중국은 2020년대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확보하려 한다. 반면 미 해군은 예산 축소 때문에 11척인 항모를 8척으로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미 해군은 항모를 대서양과 태평양 등 전 세계 바다에 분산 배치하고 있으니 서태평양에서는 오히려 중국에 비해 열세에 놓일 수도 있다.

 

 

1884년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북양함대를 공격하는 일본 연합함대 함정. 일본은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였으나 치밀한 준비로 승리해 동북아 해상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중국의 목표는 청사진에 불과하고, 그 앞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도 놓여 있다.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펴온 중국은 2020년을 기점으로 급속한 노령화에 봉착할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 해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면 그전에 ‘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만과 센카쿠 일대에서 직접적인 군사행위를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침략전쟁을 한다는 맹비난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그런 시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국제적인 비난을 걱정하지 않고 패권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지정학적 돌파구가 바로 북한이다.

 

한반도 ‘비수론’과 ‘방아쇠론’

지금의 한반도는 청일전쟁기의 조·청·일 구도와 비교하면 분단 상태라는 큰 차이가 있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 현재 한반도의 북쪽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며 소수가 권력을 전횡하는 조선 말기적 상황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조선과 다른 것은 군사력만이 국가를 유지하는 생명줄이라는 인식에서 핵무장까지 감행해 주변을 협박하고 있다는 정도다.

핵무장에 기반을 둔 ‘선군정책’은 생명줄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인식시켜 스스로를 옥죄게 하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은 그러한 북한에 대해 청조가 조선을 속방으로 유지하려 했던 것처럼 적절하게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6·25전쟁에서 명운을 같이한 우방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의 지하자원이 아니라 한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가치다.

대륙세력 중국 처지에서 보면 한반도는 해양세력이 중국을 향해 겨누는 방아쇠와 같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한반도를 장악하면 그들은 곧바로 대륙으로 쇄도할 것이다. 지난 세기 일본은 이를 실증해 보였다. 중국이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논리로 감싸 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상 패권을 장악하려면 지정학적 돌파구인 한반도를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중국의 해양전략은 ‘도련선(島鍊線·Island Chain)’ 확보와 돌파로 요약된다. 1980년대 중반 중국 해군사령원 류화칭은 ‘근해 적극방위전략’으로 제1, 제2 도련선 전략을 제창했다. 그에 따르면 쿠릴 열도에서 시작해 일본, 대만, 필리핀,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중국 근해가 ‘제1 도련선’이고, 그 바깥의 오가사와라, 괌, 사이판, 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선이 ‘제2 도련선’이다. 중국은 1차적으로 잠수함 전력을 증강하고 원거리에서 적국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대함탄도탄(ASBM)을 확보해 ‘접근거부전략(A2/AD·Anti-Access/Area-Denial)’을 펼치고 있다.

제1 도련선 안에서 타국 해군세력을 배제하면 제2 도련선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한다. 항모세력이 완비되는 2020년경에는 제2도련선 안의 절대 우세를 확보하고 그 외연을 확장한다. 최근 공언한 대로 미국과 태평양을 반분하는 것이다.

센카쿠 분쟁은 이를 위한 준비단계다. 제1 도련선을 확보하고 돌파하려면 대만과 센카쿠, 오키나와를 차지해야 하는데, 여기엔 필연적으로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과의 충돌을 유발한다는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리스크를 피해가는 우회로가 북한이다.

북한은 핵무장에 성공했으나 국제사회로부터 뭔가 조치를 당해야 한다는 명분도 제공했다. 그래서 2011년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을 때 ‘북한 급변사태’라는 말이 회자됐다.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로 이는 3대 세습 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이유로 북한을 장악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은 북한 체제에 위기가 올 경우 자동적으로 군사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인 중조(中朝)우호조약을 1960년대 북한과 맺어놓았다. 이 조약이 없어도 중국은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북한은 악명을 떨치는 ‘불량국가’이니 ‘치안 유지와 대량살상무기 통제’를 이유로 군대를 북한에 진입시켜도 국제사회가 크게 비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방치하고 있다면 우리는 통일의 기회를 영구히 잃게 된다. 반대로 통일비용을 걱정하던 쪽은 근심을 덜었다며 도리어 환영할 수도 있다.

중국의 북한 장악은 중국이 동해를 향한 출구를 얻었다는 의미가 된다. 도련선 전략을 대신할 새로운 우회로를 확보한 것이 된다. 센카쿠와 오키나와를 거치지 않고도 일본을 압박하고 러시아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냉전 이래 유지돼온 동북아 균형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대륙의 거스름돈’

중국이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해 사전 공작을 벌이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 가까운 동해의 요충지 나진·선봉지구에 대한 항만 조차권(租借權) 확보가 그것이다. 나진·선봉지구는 러시아 극동전략의 요체인 블라디보스토크와도 인접해 있다. 따라서 중국이 나진·선봉에 해군기지를 설치한다면 러일전쟁 때 일본이 해군과 육군으로 러시아의 뤼순 요새를 동시 포위한 것과 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북한도 나진·선봉의 지정학적 가치를 인식해 항만 사용권을 놓고 러시아와 중국을 저울질해오다 최근 중국으로 기울었다. 계기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 포격전 후 미 해군 항모전단이 북한에 경고하기 위해, 중국이 그들의 내해(內海)라고 주장해온 서해에 진출했다. 중국은 체면을 구기게 된 것. 그 반작용으로 중국은 위기의 북한과 나진항 4·5·6호 부두 건설에 합의했다. 북한은 중국에 50년 부두 사용권을 주고 중국 해군 생도실습함의 나진항 입항을 허가했다.

이러한 이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 때 군을 파병해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생겨난다. 중국이 그렇게 행동할 경우 재무장을 시도하는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북한지역에서 행사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사실상 ‘청일전쟁의 재래(再來)’가 된다. 중일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한국은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다. 대한민국은 대륙의 말단에 붙은 지정학적 ‘거스름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거스름돈’은 중국에 서서히 흡수되고 있는 홍콩처럼 점진적으로 중국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중국의 해상 패권주의와 재무장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한반도 북부에서 충돌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이 생존하는 묘수는 없을까. 있다. 아주 간단하지만 각오와 결단을 요구하는 묘수가 있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그것이다.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보다 먼저 북한을 장악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현재의 한중일 구도는 청일전쟁기의 조청일 구도와는 다르다. 청일전쟁기 조선에 해당하는 나라는 북한이다. 핵전력을 제외한 재래식 전력만 놓고 보면 한중 간의 전력 격차는 청일전쟁기 청조와 일본의 전력 격차보다 작다. 북한을 놓고 한중 간에 제2의 청일전쟁과 같은 분쟁이 벌어지면 일본이 했던 결단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일은 ‘필수사항’

“강대국 패권 싸움에 왜 우리가 끼어드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인접한 데다 한반도를 수천 년 영유해온 역사적 연고성, 휴전 이래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60여 년 동안 군비를 갈고닦은 대한민국이 북한 급변 때 수수방관한다면 모순이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은 중국의 해상 패권주의 확대에 쐐기를 박고, ‘중국의 동진(東進)에 대한 방어’라는 이유로 추진되는 일본의 재무장 명분도 희석시킬 수 있다.

 

그동안 통일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감성적 민족주의 차원에서 논의된 ‘옵션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북아의 주도권 확보와 대한민국의 항구적 존속을 위해 전략적 차원에서 행동에 옮겨야 하는 ‘필수 사항’으로 봐야 한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반도 주도권 장악을 위한 독트린 정립이 시급하다. 지금 우리의 ‘주권선’과 ‘이익선’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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