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공군 병력은 11만여 명, 전투임무기 820여 대, 공중기동기 330여 대로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두배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군 전력의 40% 이상을 평양-원산선 이남에 배치해 놓고 있어, 우리 군의 핵심 시설을 기습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초음속 제트전투기 MIG-21
- ▲ 베트남의 하늘에서 당대 최강의 F-4를 상대로 경이로운 전과를 보여, 미국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준 베트남 공군 소속의 MiG-21PF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공산품은 소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진다. 시장 원리에 충실한 자본주의 체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같은 계획 경제하에서도 이런 법칙은 예외가 없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고, 반대로 많이 사용된다면 당연히 많이 만든다. 특히 제작자의 경제적 이해타산이 걸려있는 경우라면 이런 반응은 신속히 이루어진다.
그런데 많이 만들고 사용된다고 반드시 품질이 최고라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고 탐낼 만큼 품질이 매우 뛰어나거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적다면 가격이 비싼데, 이런 경우는 누구나 쉽게 소비하기는 어렵다. 비싼 고급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가 아닌 것처럼, 많이 만들고 사용되는 재화라면 많은 이들이 품질과 가격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공산품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극히 제한된 무기도 마찬가지다. 무기는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우선시 되므로 신기술이 접목된 최신예 무기일수록 가격이 비싸다. 어느 나라 어느 군대든 값비싼 이런 무기를 원하지만 전부를 그렇게 무장할 수 없다. 따라서 고가의 최신 무기와 더불어 별도로 적당한 가격에 품질도 무난한 무기를 합리적으로 혼합하여 전력을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MiG-21 피쉬베드(Fishbed)는 가히 발군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생산된 초음속 제트전투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단 주목을 받을 만하다. 지금은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만 사실 MiG-21은 탄생 당시에도 경쟁 기종에 비해 그리 앞선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양산되었고 현재도 현역에서 일부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한마디로 가격 대 성능비가 좋다고 하겠다.
- ▲ MiG-21 피쉬베드. 수평 미익이 부착된 테일드 델타(Tailed Delta) 형태이다. <출처: (cc) Kaboldy at Wikimedia.org>
- ▲ (좌)소련 공군이 사용하던 MiG-21SMT
(우)자국 국기 모양으로 도색 한 크로아티아 공군의 MiG-21UMD <출처: (cc) Chris Lofting>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전투기
1950년 11월 8일, 소련이 한반도 상공에 전격 데뷔시킨 MiG-15는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유유자적 하늘을 날아다니며 작전을 펼치던 미군기들은 이들이 언제 어디서 비호같이 뛰어 올라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아직 전진배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F-86의 조기 등판을 촉진시켰다. 이 사건은 그 동안 한 수 아래로 내려 보던 소련의 전투기 제작 능력을 재평가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소련도 MiG-15를 실전에 투입하면서 많은 고민을 얻었다.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1:10의 교전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과가 불리하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결과가 기계적 성능 때문이 아니라 조종사의 능력과 수세적인 교전 태세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는 것은 보다 뛰어난 새로운 전투기에 대한 소요를 제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핵심은 속도였다. 제2차 대전 후, 제트기는 프로펠러 전투기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속도를 자랑하며 하늘의 주역이 되었다. 아직까지 눈으로 상대를 보며 싸우는 독파이팅(Dog Fighting)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빠른 속도는 승리의 해법이었다. 남보다 빠르기 위해 세계 각국은 경쟁에 돌입하였고 그 결과 1954년 F-100이 실전 배치되면서 초음속 시대로 진입하였다. 제2세대 전투기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소련도 이런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다. 곧바로 MiG-19로 대응시킴과 동시에 이미 1950년대 초부터 마하 2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최신예 전투기 개발에도 나서던 중이었다. 소련은 실전 결과를 토대로 신예기는 속도, 상승력, 기동력이 좋고 야전에서 정비가 용이하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체는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하되 엔진은 강력해야 했다.
- ▲ 편대 비행 중인 불가리아 공군의 MiG-21bis <출처: (cc) Chris Lofting>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개발
그런데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대신 희생하여야 할 부분도 많았다. 무장, 연료, 항전 장비를 충분히 탑재할 공간 확보가 어려웠고 항속거리나 작전반경도 작아졌다. 하지만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였던 소련 공군에게 이런 제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흔히 많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Su-27 등장 이전까지 전통적으로 소련 전투기의 주 임무는 공격이나 공대공 전투보다 주로 방어 임무인 요격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목표는 소련 본토를 위협하는 미국의 엄청난 폭격기 전력이었다. 특히 제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B-47, B-52, B-58 같은 미국의 고속 폭격기는 커다란 고민거리였다. 따라서 이들보다 빠르면서 고속으로 빨리 치고 올라가 신속히 요격할 수 있는 요격기가 필요하였던 것이었고, 그러한 목적으로 새로운 전투기의 요건이 결정된 것이었다. 그렇게 개발된 실험기인 Ye-2가 1955년 2월 시험 비행에 성공하였다.
속도가 우선시 되었던 당시에 유행하던 흐름 중 하나가 델타윙(Delta Wing)이었다.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마하 2이상의 고속비행에 적합하다 보니 이 시기에 제작된 미국의 F-102, F-106, 프랑스의 미라지(Mirage), 스웨덴의 드라켄(Draken)이 델타윙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소련의 연구진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수평 미익이 부착된 테일드 델타(Tailed Delta) 방식을 선택하였고 1959년 MiG-21이라는 이름으로 실전 배치하였다.
소련의 신예기 개발사를 보면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연구를 토대로 각 설계국이 실제 제작에 나서는데, 그렇다 보니 MiG-29와 Su-27처럼 설계국이 상이해도 비슷한 모양의 전투기들이 나타난다. MiG-21도 그러하였는데 같은 시기에 비슷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대형기인 Su-9와 외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MiG-21의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Su-9는 소련만 사용하였다.
- ▲ (좌)라이선스 생산한 체코슬로바키아의 MiG-21R <출처: (cc) Chris Lofting>
(우)파키스탄 공군이 사용 중인 F-7. MiG-21의 중국산 파생형이다.
생각보다 훌륭했던 결과
이렇게 탄생한 MiG-21은 소련은 물론 동구권과 친소 국가에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실전에도 곧바로 투입되었는데, 이후 MiG-21은 소련이 제작한 제트전투기로 가장 많이 실전에 활약한 기록도 남겼다.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동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에 약방의 감초처럼 반드시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MiG-21의 명성을 가장 많이 날린 전역은 베트남전이었다.
도입 당시 기준으로 MiG-21이 소련 최고의 전투기였지만 미국이 동 시대에 등장시킨 여러 전투기에 비해 열세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하늘에서 당대 최강의 F-4를 상대로 MiG-21이 보여준 전과는 경이로웠다. 우세는 아니었지만 1:3 내외의 교전비는 자부심이 강한 미군에게 망신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이런 결과가 기체 성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전투 외적 요소에 기인한 바 크지만 어쨌든 미국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처럼 MiG-21은 근접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고 최초 개발 목적대로 미국의 전략 폭격기인 B-52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이 다목적 만능 전투기로 자부하던 F-4의 한계를 깨닫고 차세대기로 순수 제공목적기인 F-14와 F-15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동 시대에 활약한 미라지 III와 더불어 MiG-21은 경량 전투기의 효용성을 확실히 입증하였고 이런 결과는 이후 F-16 개발에도 영향을 끼쳤다.
- ▲ (좌)기존 MiG-21 사용국을 겨냥하여 21세기 전장 환경에 적합하도록 이스라엘 IAI에서 최신 기술을 접목하여 개량한 MiG-21-2000
(우)최신 항전 장비로 개량되어 인도에 수출된 MiG-21Bison. 러시아 측은 F-16 초기 형과 맞먹는 성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베스트셀러 초음속 제트전투기
이처럼 MiG-21이 상대를 압도하는 뛰어난 전과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효과면에서 볼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전쟁을 경제적인 성과를 측정하며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군비를 거시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당국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저렴한 가격 그리고 정비의 용이성에 더해서 생각보다 좋은 실전 결과로 말미암아 MiG-21은 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많이 생산되었다.
소련에서는 1985년까지 총 10,645대가 생산되었고 851기가 인도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 여기에 더해 처음에는 면허 생산을 하려다 중소분쟁으로 인하여 일종의 데드카피가 되어 버린 중국의 J-7(수출명 F-7)도 약 2,400여기가 제작되었다. 그래서 정확히 몇 대가 생산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MiG-21은 역사상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초음속 제트기가 되었다.
이처럼 생산량이 많고 파생형도 다양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세대가 별도 구분될 정도인데, 최신 기술이 접목된 MiG-21bis 같은 후기형은 상당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현재도 주력기로 운용 중인 MiG-21은 탄생 당시에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언급한 것처럼 어느 한 기종이 가장 많이 생산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적당히 좋았던 전투기였다.
제원(MiG-21bis 기준)
전장 15m / 전폭 7.154m / 전고 4.125m / 최대이륙중량 8,725kg / 최대속도 마하2.05 / 항속거리 1,210km / 작전고도 17,800m / 무장 23mm GSh-23 기관포 1문, K-13A AAM 2발 또는 R-60 AAM 2발 또는 500kg 폭탄 2발
미국 F-16에 맞서는 소련의 걸작 MIG-29 펄크럼(Fulcrum)
- ▲ 1989년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알래스카 영공을 통과하는 소련 공군의 MiG-29
제2차대전 당시에 YAK같은 준수한 전투기를 자체 생산하여 독일과 싸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냉전 초기에 서방측은 소련의 항공기, 특히 전투기 제작 능력을 은연 중 폄하하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인 한국전쟁 당시에 홀연히 등장한 MiG-15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전쟁 초기에 제공권을 장악한 유엔군은 지금까지 전선에 투입한 어떠한 전투기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대의 등장에 당혹해 하였다.
- ▲ 미 공군의 F-16C와 비행 중인 폴란드 공군의 MiG-29A. 비록 두 기종간의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지만 라이벌이라 부를만 하다.
치열했던 냉전시대 미국-소련 전투기 경쟁
사태의 심각성에 놀란 미국은 이제 막 배치 중이었던 최신예 전투기인 F-86을 조기 등판시켰는데, F-86이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와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MiG-15가 처음 등장한지 불과 한 달 후인 12월 13일이었다. 이후 F-86과 MiG-15는 막상막하의 성능을 자랑하며 진정한 제트 시대를 개막한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소련이 만든 일련의 전투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주의 대상이 되었다.
초음속 시대를 개시한 F-100과 MiG-19처럼 이후 소련은 비슷한 시기에 대등한 성능의 전투기를 속속 등장시켰다. 월남전쟁과 중동전쟁에서 소련제 전투기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서방측, 특히 미국은 소련제를 압도할 새로운 전투기의 개발에 절치부심하였다. 하지만 정작 소련도 미국제 전투기에 맞설 수 있는 신예기 제작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처지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쫓아가기 급급하였던 형편이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이 20세기 말까지 주력으로 사용할 ‘차세대 전투기 계획(F-X)’을 수립하고 새로운 전투기 제작에 나서자 소련의 초조함은 더해 갔다. 각종 정보를 취합한 결과 미국이 대형 제공전투기와 경량의 보조전투기의 이원 체계로 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고 소련도 이에 대응하여 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서방측의 베스트셀러인 F-16에 맞서는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MiG-29 펄크럼(Fulcrum)이다.
- ▲ 러시아 공군 Swifts 시범 비행대의 MiG-29UB <출처 (cc) Dmitry A. Mottl>
요구와 현실
결과적으로 제공전투기인 F-15에 맞서는 Su-27 그리고 다목적 경량전투기인 F-16에 필적하는 MiG-29로 자연스럽게 구도가 정리되었지만, 사실 소련이 처음부터 그렇게 대응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LWF(경전투기) 계획은 F-15의 엄청난 도입 가격에 놀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지만, 소련은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이원화의 길을 밟게 되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처음부터 다층적인 라이벌 체계가 굳어져 버렸다.
소련 군부가 처음에 요구한 차세대 전투기의 성능은 속도가 마하 2이상,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하며, 근접전은 물론 BVR(가시권 밖) 전투에서도 우세를 달성할 수 있는 기동력과 장거리 작전 능력 그리고 강력한 무장이었다. 이를 ‘당대에 가장 좋은 전투기’라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정작 이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사실 전투기 설계자들이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초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에서 개념 연구에 들어갔는데 하나의 기체로 요구 조건을 모두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결국 기동력이 좋은 소형 전투기와 장거리 작전이 가능한 대형 전투기로 나누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1971년 수립된 LPFI(경량 전선 전투기) 계획에 따른 경전투기 개발은 미그 설계국이 담당하였다. 이때 대형 전투기는 수호이 설계국이 담당하였는데, 그렇게 탄생한 또 다른 걸작이 Su-27이다.
이들은 TsAGi의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어서 크기만 다를 뿐 외형이 상당히 유사하다. 역설적이지만 MiG-29는 기존 소련제 전투기와 차별되는, 한마디로 소련제답지 않은 전투기였다. 기존 전투기들은 지상관제에 의존하여 요격, 공격처럼 단일 전술 능력만 가지고 있던 반면, MiG-29는 서방 전투기처럼 강력한 장비를 탑재하여 독자적으로 다목적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제작 된 최초의 소련제 전투기였다.
- ▲ 1986년 핀란드를 방문하여 그 모습을 최초로 외부에 노출하였을 당시
개발 그리고 등장
MiG-29는 구형인 MiG-21, Su-15는 물론 야심만만하게 도입하였지만 운용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MiG-23, Su-17의 대체가 우선 목적이었다. 근접전에서 뛰어난 기동력을 보여준 기존 소련제 전투기의 장점을 더욱 강화하면서, 이륙하여 목표물까지 고속으로 다가가 신속히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 향상에 신경을 섰다. 이는 내습한 적국의 폭격기를 조속히 차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다.
소련 전투기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워낙 국토가 넓다 보니 지상의 악조건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인데, MiG-29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이륙 시 외부에서 이물질의 엔진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차단판으로 공기 흡입구을 막고 보조 흡입구를 통해 공기를 엔진에 공급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활주로가 파괴된 진흙 밭에서도 이륙이 가능하다.
강력한 2대의 크리모프(Klimov) RD-33 터보 팬 엔진과 탄소 섬유의 일종인 허니컴으로 제작된 수직 미익처럼 기체에 신소재를 대폭 적용하여 추력 대 중량비가 좋다. 속도를 중시하는 소련의 사상을 이어받아 최대 마하 2.3까지 비행이 가능하여 서방 전투기 보다 앞선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소련 전투기보다 향상된 기능은 1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하여 상황에 맞게 공격할 수 있는 레이더와 컴퓨터가 연동 된 사통 장치다.
초도 비행은 1977년 10월에 실시되었고, 이후 지속적인 개량 끝에 1982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었다. 서방측은 개발 직후부터 MiG-29의 존재를 포착하고 ‘펄크럼’이라는 코드명을 부여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1986년 7월, 소련제 전투기의 주요 사용국 중 하나인 핀란드에 시범 비행대가 방문하여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냉전 말기인 1988년 영국 판보로(Farnborough) 에어쇼에 참가하면서 정체를 완전히 공개하였다.
- ▲ (좌)동독 공군의 MiG-29를 통일 후 독일 공군이 운용하게 되면서 그 성능이 서방측에 완전히 밝혀졌다. 이후 계속하여 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이들은 폴란드에 판매되었다.
(우)R-60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이륙 중인 세르비아 공군의 MiG-29. 지난 유고 내전 당시에 F-15C와 교전을 벌였지만 일방적으로 격추 당하였다. <출처 (cc) Krasimir Grozev>
밝혀진 성능
하지만 MiG-15, MiG-25의 등장 당시 같은 충격은 없었다. 사실 소련 국내 배치와 비슷한 시기인 1985년에 인도를 시작으로 친소 국가에 공급하였을 만큼 소련에게 MiG-29가 최고의 비밀 무기는 아니었다. 더불어 이미 서방은 F-16 같은 든든한 존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특히 1990년에 있었던 독일 통일은 MiG-29에 대해 샅샅이 알게 된 기회였다.
NATO는 동독 공군이 보유하였던 MiG-29의 성능을 세밀히 평가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같이 근접전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독일은 2003년 더 이상 운용을 포기하고 저렴한 가격에 폴란드 공군에게 판매해 버렸을 만큼 항공 전력으로 계속 보유하고 있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후에 여러 차례 벌어진 MiG-29의 실전 결과는 성능에 많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1년 걸프전에서 5기의 이라크 MiG-29가 격추되었고, 1999년 유고내전 당시에 2기의 세르비아 MiG-29가 일방적으로 격추당하였다. 물론 이들 사례만으로 MiG-29의 능력을 단정 짓기는 곤란하지만 현대 공중전에서 기동력을 앞세워 근접전을 벌일 가능성이 많지 않아 MiG-29의 장점을 발휘할 일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사실 근접전 능력 또한 압도적인 우세를 장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
- ▲ (좌)항공모함 탑재용으로 인도 해군에 공급 예정인 MiG-26K. <출처 (cc) Oleg Belyakov>
(우)MiG-35는 4.5세대로 평가 받는 최신예 MiG-29 시리즈이지만 아직 대외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양산이 되지 않고 있다. <출처 (cc) Dmitriy Pichugin>
궁금해지는 앞날
소련 및 러시아에 공급된 MiG-29는 1992년도에 생산이 완료되었지만 대외 수출용은 현재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30년이 넘게 생산이 이루어지다 보니 MiG-29는 다양한 파생형을 가진 전투기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MiG-29M은 동시 교전 능력이 강화된 레이더를 탑재하여 공대공, 공대지 작전 능력을 향상시켰고 더불어 항속 거리와 추력도 늘어나 진정한 다목적 전투기로 평가 받는다.
특히 2007년에 초도 비행에 성공한 개량형 MiG-29M은 MiG-35이라는 별개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MiG-35는 주익을 대형화하고 카나드 및 추력편향노즐엔진 그리고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를 장착하여 4.5세대 전투기로 구분될 정도로 뛰어난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더 이상 MiG-29 시리즈의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MAPO(구 미그 설계국)는 대외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진화는 라이벌인 F-16의 꾸준한 발전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공교롭게도 MiG-29와 F-16은 더 이상 개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보조 경량전투기로써 개발되어서 그런 것인데, 그렇다 보니 정작 해당 시리즈의 최고 성능 개량형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전투기를 도입하고자 하는 나라에 수출용으로 제작되거나 개발되고 있는 형편이다. 변신을 거듭한 MiG-29의 앞날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제원
전장 17.37m / 전폭 11.4m / 전고 4.73m / 최대이륙중량 20,000kg / 최고속도 마하 2.25 / 항속거리 1,430km / 작전고도 18,013m / 무장 GSh-30-1 기관포 1문, 7개 하드포인트에 3,500kg 무장
코브라 기동으로 유명한 SU-27 플랭크
- ▲ 플레어를 터뜨리며 화려하게 비행하는 Su-27UB. 러시아 공군의 곡예비행팀인 러시안 나이츠의 시범 장면이다. <출처: (cc) Alexander Mishin>
1989년, 파리 에어쇼에서 소련의 시범 비행 조종사인 빅토르 푸가쳬브(Victor Pugachev)가 자국산 최신예 전투기에 올랐다. 사실 1984년 처음 배치된 이 전투기의 존재를 서방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고 1987년 NATO군 소속 EP-3 정찰기가 소련 영공근처에서 요격 나온 이전투기와 접촉한 적도 있어 결코 낯선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번 비행은 서방 세계에 그 능력을 처음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 ▲ 흔히 코브라 기동으로 더 많이 알려진 푸가쳬프 기동. 에어쇼에서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전에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출처: (cc) Henrickson at Wikimedia.org>
코브라 기동으로 화려하게 데뷔
모두의 관심 속에 하늘로 올라간 신예기는 놀라운 기동을 연이어 선보여 모든 이들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제1차 대전 당시의 복엽기처럼 저속의 비행기들이나 할 수 있던 고각의 선회도 거뜬히 하였다. 하지만 절정은 기수를 위로 향하고 제자리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코브라 기동을 선보였을 때였다. 거대한 전투기가 마치 중력의 제한을 벗어난 듯이 하늘에 정지된 듯한 모습에 모두는 경악하였다. 바로 Su-27 플랭커(Flanker)의 충격적인 데뷔였다.
이런 모습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었다. 노후화된 전폭기를 교체하기 위한 한국 공군의 차세대전투기사업이 이른바 FX이었는데 당시 Su-27의 개량형인 Su-37이 후보 중 하나였다. 1996년 러시아는 서울 에어쇼에 Su-37을 출품하여 코브라 기동이 포함된 시범비행을 선보여 많은 관람자들에게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그 만큼 이 전투기의 기동 능력은 최고라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 ▲ 시범을 보이는 러시안 나이츠 소속 Su-27UB. <출처: (cc) Dmitry A. Mottl>
하늘을 가르는 양대 축, 러시아제 전투기
프랑스, 스웨덴이나 다국적 기업인 EADS처럼 일부 제3세력이 존재하지만 지금 지구상에 날아다니는 전투기들은 크게 미제와 러시아제(소련제)로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도 국산 전투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하이(High)급 전투기들은 이들 국가로부터 도입한 것들이다. 바로 이런 구도 상황에서 Su-27은 미국제 전투기의 확실한 대항마가 등장하였음을 의미하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사실 러시아제 전투기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 친 계기는 1950년 겨울 한반도 북부에 등장한 MiG-15 때문이었다.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소련은 수많은 자국산 전투기를 생산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을 만큼 항공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지만 전투기의 명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의 개시와 더불어 제트 시대가 본격 도래 하면서 소련제 전투기는 의미 있는 변화를 선도하였다.
F-15, F-16에 맞설 새로운 전투기의 조건
그런데 한국전쟁, 월남전쟁, 중동전쟁에서 미제 전투기에 대항하여 소련제 전투기들은 대단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객관적으로 성능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월남전에서 MiG-21같은 경우는 미국이 당혹할 정도의 격추비를 교환하였지만 전투기의 성능이 좋아서 그러한 결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MiG-25는 한때 서방을 극도로 긴장시켰지만 엄청난 속도에 지레 겁먹고 성능을 과대평가하였을 뿐이었다.
당연히 소련 군부는 미국의 전투기와 충분히 대적할만한 신예기를 원하였다. 특히 1960대 말 미국이 기존의 F-4를 대체할 차기 전투기의 개발(그 결과 탄생한 것이 F-15)에 착수하자 초조함은 더해 갔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전투기는 마하 2이상의 속도, 장거리 비행능력, 단거리 이착륙 능력, 중무장이 가능하도록 개념을 정리하고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차세대 전투기의 기본 형태를 TsaGi(중앙 유체 역학 연구소)에서 연구하도록 지시하였다.
- ▲ (좌)Su-27의 비행모습. 1988년 미군의 촬영한 모습.
(우)AA-10 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Su-27. 1988년 미군이 촬영한 모습.
수호이와 미그 두 갈래로 나뉜 개발 방향
그런데 장기간의 연구 결과, 하나의 기체로 군이 요구한 모든 사항을 충족하기가 기술적으로 힘들다고 보고 대형의 장거리 요격전투기와 소형의 제공전투기로 각각 나누어 개발하게 되었다. 전자는 수호이 설계국이 후자는 미그 설계국이 담당하였는데 TsaGi 연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전투기는 체급만 다른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일부로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체급을 달리한 F-15와 F-16을 개발한 미국과 같은 결과였다.
이렇게 미그 설계국이 제작한 것이 F-16에 맞서는 동구권의 대표적 경량 전투기로 유명한 MiG-29로 현재 북한도 보유 중이다. Su-27은 이 보다 훨씬 큰 만큼 성능도 월등하다. 소련 최초로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제어 시스템을 사용하였을 만큼 최첨단의 기술이 접목되었다. 특히 소련 국토를 고려한 넓은 작전 반경의 확보를 위해 채택한 TsaGi의 공기 역학적 디자인 덕분에 상당히 미려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 ▲ 러시아 유일 항공모함 쿠즈네쵸프에서 운용 중인 함재기형 플랭커인 Su-33. <출처: (cc) Russian Presidential Executive Office>
개발 과정의 도전과 시련
사실 무기가 예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있게 생겨서 굳이 나쁠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Su-27은 둔중해 보이는 기존 소련 전투기들의 이미지를 일거에 바꾸어 놓은 걸작이기도 하였다. Su-27의 실험 원형기인 T-10이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것은 1977년 5월이었는데 실험 도중 추락사고가 있었을 만큼 많은 시련도 겪었다. 미 공군의 F-15와 F-14를 염두에 두다 보니 개발 중에 수 차례의 설계 변경도 있었다.
Su-27의 연구와 병행하여 새로 개발한 AL-31F 터보팬 엔진은 12.5톤의 강력한 추력을 발휘하는데 그 결과 중무장상태에서도 고속, 고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 설명한 놀라운 기동 능력도 공기 역학적 기체 구조와 더불어 강력한 엔진의 힘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거대한 동체에 9.4톤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어 외부연료탱크가 없이도 넓은 반경 내에서 작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 ▲ Su-35. Su-27의 개량형으로 제공 목적의 전투기이다. Su-35에 추력 편향 노즐 엔진을 장착한 것이 Su-37로, 한국 공군의 FX사업 후보 기종이기도 했다.<출처: (cc)Oleg Belyakov>
등장과 동시에 얻은 명성
무장으로 강력한 30mm 구경의 GSh-30-1 기관포 1문을 우측 날개에 내장하고 12개의 하드 포인트에 최대 8톤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무장을 장착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동안 소련 전투기의 약점이었던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전자 장비도 성능이 대폭 향상된 것들이 장착되었다. 이처럼 서방의 최신 전투기에 맞설 수 있는 Su-27은 1984년 12월 1호기가 군에 인도되었고 소련 공군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오래 동안 미그가 소련의 전투기 설계국의 대표로 명성이 높았는데 Su-27이후부터 수호이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Su-27은 다양한 파생형으로도 유명한데 스트라이크 기능을 개량한 Su-30, 항공모함용 함재기형으로 개발된 Su-33, 장거리 타격용인 Su-34, 최신예 개량형인 Su-35, 추력 편향 노즐 엔진을 장착한 Su-37등이 있다. 흔히 이를 합하여 서방에서는 플랭커 시리즈(Flanker Series)라 부른다.
미제 전투기에 대한 인상적인 대항마
지금까지 인상적인 실전 투입 기록은 없지만 탄생 이후부터 곧바로 Su-27과 그 파생 기종들은 동구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도 판매되었고 1990년대 이전까지 감히 생각지도 못하였던 대한민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후보로까지 거론되었을 정도였다. 이것은 그만큼 Su-27과 그 시리즈들의 성능이 훌륭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록 에어쇼에서 선보이는 현란한 기동은 BVR(가시권 밖) 전투가 대세인 현대 공중전에서는 불필요하다고 폄하되지만 Su-27 시리즈의 성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트레이드 마크다. 한마디로 둔해 보이던 북극곰들의 인상을 바꾸어버린 인상적인 대항마로 결코 모자람이 없다. 어느덧 스텔스 시대가 도래 하며 서서히 지난 세대의 전투기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오래 동안 멋지고 강한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Su-27 전투기 제원 (Su-27SK 기준)
전장 : 21.9m / 전폭 : 14.7m / 전고 : 5.9m / 최대이륙중량 : 30,450kg / 최고속도 : 마하 2.35 / 항속거리 : 3,530km / 작전고도 : 18,500m / 무장 : GSh-30-1 기관포 1문, 8,000kg 폭장, E-2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6발, R-73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2발
아파치의 대항마 Mi-28 하보크(Havoc)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냉전의 시대로 돌입한다. 미국과 구 소련은 끝없는 군비경쟁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라이벌 관계를 갖는 수많은 무기들이 탄생하게 된다. 구 소련은 공격은 물론 병력과 물자의 수송이 가능한, Mi-24 하인드(Hind) 공격헬기를 개발한다. 그러나 미국은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압도하는 AH-64 아파치(Apache) 공격헬기를 개발하게 되고, 구 소련은 이에 맞서 Mi-28 하보크 공격헬기를 개발한다.
- ▲ (좌)미국의 AH-64 아파치. 구 소련의 신형 공격헬기 개발을 촉발했다.
(우)구 소련 공군이 80년대 신형 공격 헬기로 선정했던 카모프사의 Ka-50 공격헬기 <출처: 카모프사>
구 소련 최초의 공격전용헬기 개발
1972년 Mi-24 공격헬기가 본격적으로 구 소련에서 양산될 무렵, 당시 미국은 오늘날 공격헬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AH-1 코브라(Cobra) 공격헬기를 베트남전에서 운용 중에 있었다. 또한 AH-1 코브라 공격헬기 보다 성능이 향상된 AH-64 공격헬기의 개발에 나선다. 이에 자극을 받은 구 소련 공군은 적의 전차와 공격헬기를 공격하고, 아군의 공중강습작전 을 엄호할 수 있는 공격헬기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구 소련을 대표하는 헬기 제작사인 밀(Mil)사와 카모프(Kamov)사는 신형 공격헬기 개발 경쟁에 참여하게 된다. 양사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에서 밀사는 우선 기존 Mi-24 공격헬기의 수송능력을 최소화 시키고, 탠덤(Tandem) 방식의 조종석을 가진 Mi-28 공격헬기를 설계하게 된다.
- ▲ Mi-28 공격헬기는 최고 시속 300Km 이상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기동성이 우수하다. <출처: 밀사>
호컴에 패배한 하보크, 그러나 포기는 없다
1982년 10월 10일 첫 비행에 성공한 밀사의 Mi-28 공격헬기 시제 1호기는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관측되면서 1980년대 중반 하보크(Havoc)라는 암호명을 부여 받게 된다. 구 소련 공군은 1983년부터 1984년 까지, 밀사의 Mi-28 공격헬기와 카모프사의 Ka-50 호컴(Hokum) 공격헬기의 시제기를 비교 평가한다. 구 소련 공군은 신형 공격헬기로 야간 공격 능력이 우수하고, 공중전 성능이 뛰어난 카모프사의 Ka-50 공격헬기를 낙점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에서 패배한 밀사는 Mi-28 공격헬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1988년 1월에는 Mi-28A 공격헬기가 등장한다. 1989년 6월 Mi-28A 공격헬기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파리 에어쇼에도 참가해, 서방세계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1991년 구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로 국가 체제가 바뀌면서, 러시아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이 심화되었다. 결국 밀사는 1993년 Mi-28 공격헬기의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Mi-28 공격헬기의 뛰어난 점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동안 개발이 중단되었던 Mi-28 공격헬기는, 1995년 야간 공격 능력이 강화된 Mi-28N 공격헬기로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Mi-28N 공격헬기는 1996년 첫 비행에 성공한다. Mi-28N 공격헬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메인 로터(Main Rotor)위에, 아파치 공격헬기에 장착된 롱보우(Longbow) 레이더와 유사한 레이더가 장착된 점이다. 이밖에 적외선 전방 감시 장치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 ▲ (좌)Mi-28의 조종석은 방탄유리와 장갑으로 보호된다. <출처: 밀사>
(우)Mi-28 공격헬기는 BMP-2/3 장갑차에 사용되는 2A42 30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출처: 밀사>
공격 전용 헬기로 개발된 Mi-28
Mi-28 공격헬기는 이전의 Mi-24 공격헬기와 달리 철저하게 공격 전용 헬기로 개발되었다. Mi-28 공격헬기는 최고 시속 300Km 이상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수송능력이 최소화 되면서 기동성이 향상되고 보다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Mi-28 공격헬기는 Mi-24 공격헬기 보다 강화된 생존성을 자랑한다. 엔진의 경우 동체 양 옆에 각각 장착하여, 적의 공격에 동시에 파괴될 가능성을 줄였다. 조종석은 방탄유리와 두터운 장갑이 장착되어, 12.7mm 중 기관총탄이나 23mm 기관포탄에 공격을 받아도 조종사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Mi-28 공격헬기의 착륙장치와 좌석은 초속 12m의 추락 시에도, 조종사의 부상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다.
- ▲ Mi-28 공격헬기는 최대 16발의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하는 등 강력한 무장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헬기이다. <출처: 밀사>
강력한 무장을 갖춘 공중의 약탈자
MI-28 공격헬기는 공격전용헬기임에도 불구하고, 유사시 2~3명을 기체 내부에 태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공간은 적지에 추락한 조종사나 특수부대 요원들을 수송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탑재 무장으로는 기수 아래의 회전포탑에, BMP-2/3 장갑차에 사용되는 2A42 30mm 기관포를 장착하고 있다. 2A42 30mm 기관포의 최대발사속도는 900여 발에 달하며, 높은 포구초속으로, 전차의 상부장갑을 관통하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한다. 기관포외에도 Mi-28 공격헬기는 최대 16발의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한다. AT-6 스파이럴(Spiral) 대전차 미사일과 최신형 대전차 미사일인 아타카(Ataka)가 탑재되며, 레이저 빔 유도 방식을 사용하는 아타카 대전차 미사일의 경우 최대 8Km의 사정거리를 갖는다. 이밖에 각종 기관포 포드(Pod)와 로켓포를 장착할 수 있다.
- ▲ 2006년부터 러시아 공군에 인도된 Mi-28 공격헬기. <출처: 밀사>
뒤집기에 성공한 Mi-28 공격헬기
강력한 공격력과 생존성을 가진 Mi-28 공격헬기는 덩치 면에서도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자체 중량의 경우, 8.6톤(t)으로 현존 하는 공격헬기 가운데 가장 무거운 공격헬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냉전 종식 후에 러시아가 두 차례의 체첸전쟁을 치르면서, 공중전에 특화된 Ka-50 공격헬기는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오히려 Mi-24 공격헬기와 많은 유사성을 가진, Mi-28 공격헬기가 러시아 군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2003년 러시아 군은 Mi-24 공격헬기의 대체기로 Mi-28N 공격헬기를 선택한다. 2006년부터 러시아 공군에 인도된 Mi-28N 공격헬기는 2015년까지 67대가 도입되어, Mi-24 공격헬기를 완전히 대체할 예정이다.
서방을 공포에 빠뜨렸던 구소련 요격기 미그-25 폭스베트
- ▲ 구소련의 요격기 MiG-25 폭스배트
1967년 7월, 모스크바 근교인 도모데도포(Domodedovo) 공군기지에 소련의 신형 전투기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외관에서 풍기는 강력함이 기존 전투기와 차원이 다를 만큼 인상적이었다. 바로 MiG-25 폭스배트(Foxbat)의 역사적인 등장이었다.
- ▲ (좌)빠른 속도와 높은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미국의 정찰기인 SR-71
(우)MiG-25의 동체는 예상과 달리 강철이 주성분인 평범한 합금으로 만들어졌다.사진은 카메라가 장착된 정찰 형 MiG-25RB의 동체
서방을 공포에 빠뜨렸던 북극곰의 무기, MiG-25
이 신예기에 대해 서방측이 두려움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시무시한 속도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투기를 평가하는 제1의 잣대가 속도였다. 본격적으로 일선에 배치 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반부터 나토의 방공레이더망에 포착된 MiG-25는 최고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며 고도 70,000피트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측정되어 이전에 알려진 첩보 내용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MiG-25의 등장은 마침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을 추진 중이던 미군 당국을 서두르게 만든 채찍이 되었고, 그 결과 F-14가 1974년에, F-15가 1976년에 서둘러 배치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모르지만 F-14와 F-15가 채택한 고주익(高主翼), 쌍수직미익(雙垂直尾翼) 구조가 MiG-25를 카피한 것이 아닌가하는 수군거림이 있었을 만큼 MiG-25의 외형적 메커니즘은 탁월하였다. 이전에 소련이 새로운 전투기를 차례로 등장시켰을 때마다 미국은 충분히 맞설 수 있는 기종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 배치된 F-4 팬텀 같은 서방 전투기로는 MiG-25을 맞상대하기 불가능해 보였고 공포는 극에 달하였다. 그런데 두려워만 하던 괴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1976년 9월, 일본 북부의 하코다테(函館)공항에 소련 극동공군 소속의 MiG-25P가 비상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행을 원하던 조종사 벨렌코(Viktor I. Belenko)의 망명사건이었는데 그 파장은 엄청났다. 미국은 생각지도 않은 귀한 손님의 암살을 염려하여 이동 중에 여러 명의 가짜를 투입하였을 만큼 난리법석을 떨었다. 당시 포드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안전한 망명지 제공을 약속할 정도였다. 그만큼 당대 소련의 1급 기밀이라 할 수 있는 MiG-25를 고스란히 분석하게 된 미국의 흥분은 대단하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MiG-25를 향해 달려든 미국의 기술진들은 철저한 조사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 ▲ 등장 초기 마하3의 엄청난 속도로 서방을 아연 긴장시켰으나, 상세한 분석 후 그 환상은 깨졌다.
무서운 놈 알고 보니 별 것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초고속 비행을 연구하면서 기체의 소재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다. 비록 미국도 마하 3을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SR-71이 있었지만 전투기가 아닌 정찰기였다. 결국 초고속 전투기는 무리라고 결론을 내려놓았다가 MiG-25의 등장으로 인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좌절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MiG-25의 재질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조사해보니 허무하게도 자석이 짝짝 달라붙는 강철이었다. 정확히 스테인리스스틸 80퍼센트, 알루미늄 11퍼센트, 티타늄 9퍼센트로 이루어진 합금이었는데 당연히 내구성은 좋았지만 동급의 서방 전투기와 비교하여 터무니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를 내려면 당연히 엔진이 강력하여야 했다. 그런데 탑재된 투만스키(Tumansky) R-15 엔진은 강력한 힘을 낼 수는 있었지만, 수명이 미국제 엔진의 1/10 정도로 짧아서 효율적이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장착된 전자장비는 최신예 전투기라는 환상을 깨게 만들었다. 당시 서방의 전투기들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데 반하여 MiG-25는 일부 장비에 진공관이 장착되어 있었다. 후에 고고도의 극저온에서 작동할 때 안정성이 좋아 일부로 장착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정적인 트랜지스터를 생산하지 못할 없을 정도로 소련의 전자기술이 뒤져있다는 증거였다. 속도와 더불어 비행 능력의 주요 지표인 선회력은 가히 극악한 수준이어서 과연 MiG-25가 전투기로 적합한가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들었다.
굳이 장점이라면 고고도까지 빨리 치고 올라가 엄청난 속도로 비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막연한 공포와 달리 '몰랐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이었다'라는 결과물을 얻었고 당연히 그동안 MiG-25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졌다. 이러한 결론이 결코 만용은 아니었다. 대응차원에서 서둘러 배치한 F-15가 F-4로 요격에 실패한 MiG-25를 실전에서 잡을 수 있었을 만큼 미국 전투기들의 성능이 훨씬 좋은 것으로 판명 났다. 1981년 격추당한 시리아 공군 소속의 MiG-25R은 정찰 기종이고 이스라엘이 사전에 요격계획을 잘 세워 놓은 덕분이었지만 만일 공대공전투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MiG-25로 F-15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 ▲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MiG-15는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그 맥을 이은 MiG-25의 개발 목적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MiG-25라는 괴물을 만든 목적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MiG-25의 존재가 F-15의 개발에 자극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정작 소련이 MiG-25를 만든 목적은 미국 전투기를 제압하는 공중우세기를 보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웃기는 사실이지만 소련이 괴물을 만든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 소련이 MiG-25를 보유하자 미국은 지금까지 우세를 보였던 공대공전투능력이 역전당할 것을 우려하여 공포를 느꼈지만, 오히려 서둘러 MiG-25를 만들어야 했을 만큼 소련은 미국이 추진 중인 하나의 프로젝트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군의 핵심 전략은 '폭격기 만능론'이었는데 특히 핵폭탄의 등장은 이러한 확신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그러나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폭격기 만능론에 의구심을 들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MiG-15의 등장이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에 참가하자마자 제공권을 확보하였고 당시 최고의 전략폭격기인 B-29는 한반도 상공을 유유자적하게 날아다니며 임무를 펼쳤다. 하지만 1950년 11월에 홀연히 등장한 MiG-15가 비호같이 날아와 요격에 나서자 둔중한 중폭격기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도 MiG-15에 맞설 수 있는 F-86이 등장하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이후 이 둘은 진정한 제트시대를 개막한 라이벌로 전사에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종종 간과하는 사실인데 비슷하게 생긴 이 두 라이벌은 탄생 목적이 달랐다. F-86은 공중우세확보목적의 제공기였지만 MiG-15는 소련 본토 공격에 나선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탄생한 방공 요격기였다.
- ▲ MiG-25의 탄생을 촉진시킨 XB-70 전략폭격기
미국은 개발 계획을 취소하였지만 그 결과로 인하여 MiG-25의 공포를 겪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다.
공중 장갑차의 개발
MiG-25도 아버지인 MiG-15처럼 그러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요격기였다. 비록 B-29를 효과적으로 요격하는데 성공하였지만 20여 년이 지나도 미국의 전략폭격기는 여전히 소련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전쟁에서 MiG-15에 예상하지 못한 아픔을 겪은 미국은 개발 중에 있던 차세대 폭격기의 개념을 속도에 맞추었다. 소련의 요격기들이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고공비행이 가능한 폭격기라면 적진까지 안전하게 날아가 폭탄을 던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러한 야심만만한 구상을 가지고 1950년대 중반부터 개발에 착수한 것이 고고도에서 마하 3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차세대 전략폭격기 XB-70 발키리(Valkyrie)였다. 경악한 소련은 XB-70의 비행고도 및 속도와 맞먹는 요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하여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고 오로지 고고도로 빨리 치고 올라가 고속으로 비행이 가능한 요격기의 개발에 전력투구하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MiG-25였다.
그런데 XB-70의 개발사상은 이미 시대에 뒤쳐진 것이었다. 전략핵폭탄을 목표지점까지 실어 나를 수단은 폭격기가 아닌 대륙간탄도탄 같은 장거리미사일로 넘어가고 있었고 강력하고 정밀한 방공 체계의 등장은 폭격기의 침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추락사고 등이 겹치면서 XB-70은 개발이 취소되며 막을 내렸지만 막상 서둘러 대응 수단의 개발에 나선 소련은 MiG-25를 이미 배치하고 있던 단계였다.
- ▲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 이라크 군이 모래 속에 묻어 숨겨 놓은 MiG-25를 발굴하는 미군
한때 최강이라 평가 받던 MiG-25였지만 이처럼 전쟁 중에 숨어 있어야 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하였다.
MiG-25, 서로를 모르고 두려워했던 냉전시대의 산물
그런데 자신들 때문에 벌어진 MiG-25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모르던 미국은 MiG-25에 되레 겁을 먹고 전전긍긍하였다.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제대로 모르던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고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알았을 때는 자신감이 생기지만 모를 때에는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단순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다 필요 없고 오로지 XB-70같은 고고도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단일 임무를 위해 탄생하였지만 막상 목표 대상이 사라지자 엉뚱하게도 본의 아니게 서방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졌던 MiG-25는 그래서 무기사의 재미있는 이단아라 할 수 있다.
"사탄의 마차"로 불린 공격헬기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오늘날 지상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다. 지상전의 왕자인 전차도 공격헬기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력해진다. 그러나 공격헬기는 철저하게 공격용으로 설계되어, 다른 임무에는 사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반면 구 소련이 개발한 공격헬기인 Mi-24 하인드(Hind)는 공격뿐만 아니라, 병력과 물자의 수송도 가능한 공격헬기이다.
공중 장갑차의 개발
1964년에 베트남에서 벌어진 통킹만 사건으로, 미군은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한다. 베트남에 도착한 미군은, 헬기를 본격적으로 전장에서 활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베트남전에서 첫 선을 보인 UH-1 휴이(Huey) 헬기는,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헬기였다. 피스톤 엔진을 장착한 이전의 헬기들과 달리 고성능을 자랑했고, 병력 수송은 물론 무장을 장착하면 지상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장헬기로 운용 할 수 있었다. 이에 자극 받은 구 소련은 신형 헬기 개발에 나선다. 당시 구 소련군이 원하던 헬기는 적의 대공화기에 방어가 가능한 장갑을 갖추고, 병력의 수송과 지상공격이 가능한 일종의 공중 장갑차였다. 구 소련을 대표하는 헬기 제작사인 밀(Mil)사와 카모프(Kamov)사가 개발 경쟁에 참여했다.
공중 전차로 발전된 하인드 공격헬기
경쟁 끝에 밀사의 안이 채택되었고, 1969년 9월 Mi-24 공격헬기의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한다. 1972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고, 한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Mi-24 공격헬기는 동독 지역의 구 소련군에 배치되면서 서방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는 이 신형 헬기에 하인드라는 암호명을 부여한다. 초기형인 Mi-24B 하인드A 공격헬기의 경우 무장헬기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중기형인 Mi-24D 하인드D 공격헬기에서는 조종석을 사이드 바이 사이드(Side by side) 방식에서 탠덤(Tandem) 방식으로 바꾸고, 포탑형 12.7mm 4연장 개틀링건(Gatling gun)를 장착해 공격헬기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후기형인 Mi-24P 하인드F 공격헬기는 공중 전차로 발전되었다. Mi-24P 하인드F 공격의 동체 좌측에는 전차의 장갑도 관통시킬 수 있는 강력한 30mm GSh-30K 기관포 2문을 장착했다.
사탄의 마차로 불린 하인드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1977년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분쟁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1979년 구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다. 아프간 작전 초기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기관포와 로켓탄 그리고 각종 폭탄을, 이용해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공격했다. 무자헤딘 게릴라들은 각종 대공화기로 대응했다. 그러나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동체는 기본적으로 7.62mm기관총 사격에도 견딜 수 있었고, 중요한 동체 부위는 12.7mm기관포에 견딜 수 있도록 티타늄으로 특별히 제작되었다. 무자헤딘 게릴라들의 공격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 했고, 혼비백산해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두려움에 떨던 무자헤딘 게릴라들은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사탄의 마차로 불렀다.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지원하던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중앙정보국)는 당시 최신예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인 스팅거(Stinger)를 긴급하게 지원했다. 스팅거의 등장으로 일시적으로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위력이 반감되었지만 구 소련군은 공격전술의 변화로 이를 만회했다.
하인드 VS 코브라
1980 9월에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발생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 군의 Mi-24 하인드 공격헬기와 이란 군의 AH-1J 시코브라(Sea Cobra) 공격헬기는, 전사상 최초로 공격헬기간의 공중전을 벌이기도 했다. 구 소련과 미국을 대표하는 이들 공격헬기들의 첫 대결은, 1980년 9월 22일에 벌어졌다. 이란 군의 AH-1J 시코브라 공격헬기 2대는 이라크 지상군을 지원하기 위해 나타난 Mi-24 하인드 공격헬기 2대를, 토우 대전차 미사일로 공격한다.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맞은 이라크 군의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모두 격추 당했다. 전쟁 초반에는 이란 군의 AH-1J 시코브라 공격헬기가 압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공중전에서는 이라크 군의 Mi-24 하인드 공격헬기가 우세한 경우가 많았다. 1988년 종전이 될 때까지 이라크 군의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6대가 손실되었고, 이란 군의 AH-1J 시코브라 공격헬기는 10대가 손실되었다. 손실은 이란 군의 AH-1J 시코브라 공격헬기가 많은 편이지만, 대공화기와 전투기에 의한 손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공격헬기의 공중전 결과는 자세하게 밝혀진 적이 없지만, 이후 구 소련은 병력 수송 능력을 생략하고, 공격 헬기간의 공중전에 특화된 Ka-50 블랙샤크(Black Shark) 공격헬기를 개발하게 된다.
분쟁지역에서 효과적인 하인드 공격헬기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총 2,000여대가 생산되었고, 개발국인 러시아를 포함하여 전 세계 50여 개 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북한도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운용중인 동구권 국가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항공전자장비들을 서방 기준에 맞게 개량했다.
러시아는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야간작전능력과 항공전자장비를 개량한 Mi-35 공격헬기를 개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ATE사는 Mi-24 하인드 공격헬기를 기반으로 서방제 항공전자장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자체 개발한 무장을 탑재한, Mi-24 Mk.Ⅴ 슈퍼 하인드 공격헬기를 개발해 알제리 공군에 수출하기도 했다. 최첨단 공격헬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과거와 같은 명성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분쟁지역에서는 여전히 위력적인 공격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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