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큐피드’가 맺어준 포세이돈의 짝사랑
독수리자리
여름만큼 별과 사랑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계절도 없을 것이다. 이달에는 나의 첫사랑을 얘기해볼까 한다. 내 나이 비록 중년이지만, 첫사랑을 기억하고 설레는 맘을 갖는 건 나이와 무관하다는 걸, 별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1990년 8월 11일. 입대를 한 달 남겨두고 차를 빌려 혼자서 일주일간 전국일주를 하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이 태안반도의 천리포해수욕장이다. 동아리 후배들이 거기서 관측회를 열고 있어서 하루쯤 머물며 격려해주고 싶었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어울리다 바닷가로 갔다. 먼저 바닷가에 와 있던 후배 둘이 있어 별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 만난 1학년생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졸립다며 금방 숙소로 돌아갔고, 다른 한 명과는 이틀 밤을 새우며 별자리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그 후배는 내게 돌고래 모양의 작은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이틀간 내게서 들은 별 이야기 중에 돌고래자리가 가장 인상적이어서 만리포까지 나가 선물을 사왔다고 했다. 그 정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소라껍데기로 만든 돌고래 열쇠고리는 그때까지 내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
돌고래 열쇠고리
나는 만리포로 달려가 기념품 가게마다 뒤져가며 같은 모양의 열쇠고리를 찾았다. 주인 말로는 두 개가 있었는데, 좀전에 한 개를 어떤 여학생이 사갔다고 했다. 결국 그 가게에 있던 한 쌍의 돌고래가 밤하늘 별자리가 되어 두 사람에게 전해진 셈이다.
그날 나는 여행을 계속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후배들이 빌린 버스에 자리가 모자라 내 차에 후배들을 태워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그 여자후배가 조수석에 앉게 됐다. 뒷자리 녀석들은 바로 잠이 들었지만, 그녀는 내가 혼자 운전하기 힘들까봐 졸음을 참고 깨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별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그녀와 약속을 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매일 만나 내가 알고 있는 별 이야기를 모두 해주겠다고. 그녀는 강남구청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서 만나곤 했다. 정말 밤하늘 별만큼 해야 할 별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그녀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 중에 김민우의 ‘사랑일뿐야’가 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수많은 이 별(star)을 했는지 몰라….’ 내 귀에 가사가 이렇게 들릴 정도로 그녀를 만난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 나는 대학원을 마친 나이였고,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더구나 보름 후면 군대에 가야 했다. 나는 입대 전 그녀에게 추억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일요일 오전, 우리는 신촌에서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속초로 날아가 택시를 타고 낙산사로 갔다. 두 시간가량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을 거닐다 다시 택시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 인제로 갔다. 거기서 쾌속정을 타고 소양댐이 있는 춘천으로 왔다. 다시 버스로 춘천 공지천으로 가서 둘이서 나룻배를 탔다. 그리고 ‘이디오피아’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황혼에 취해 있던 우리는 철길을 따라 달린 끝에 가까스로 서울행 마지막 기차에 올랐다. 청량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그녀 집 근처에 오니 밤 11시가 조금 넘었다. 12시간 동안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한 낭만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눈물 떨구는 그녀를 두고 나는 입대했다. 그 후에도 소설 같고 만화 같은 일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렸다. 내가 떠나주는 것이 그녀를 위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혹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분이 있다면 술 한 병 사들고 찾아오기 바란다.
베가와 알타이르
8월이 오고 밤하늘에 빛나는 돌고래자리를 보면 나는 또 가슴이 설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 때문이리라. 내년 여름에는 프랑스 뤼브롱 언덕을 찾아 목동이 보았던 그 별자리를 찾아봐야겠다. 자, 이제 8월의 별자리를 만나보자. 사랑의 별자리인 돌고래자리와 독수리자리가 주인공이다.
칠월칠석(七月七夕)이 가까워지면 하늘의 중앙에 3개의 밝은 1등성이 커다란 직각삼각형 모양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 중 정점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이 직녀이고, 그 남쪽에 있는 별이 견우다. 견우별 주위를 자세히 보면 마치 우산 모양으로 별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날짐승이 날아가는 모습 같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독수리자리다.
견우별만 찾으면 독수리자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견우 양쪽으로 약간 덜 밝은 2개의 별이 견우를 호위하고 있다. 이 3개의 별과 그 아래에 우산 윗부분에 해당하는 마름모꼴의 4개 별이 독수리자리를 구성한다.
우리나라에선 은하수를 사이에 놓고 밝게 빛나는 두 별을 사랑하는 남녀로 표현했지만, 서양에서는 사랑하는 독수리 쌍으로 얘기한다. 직녀는 ‘날개를 접은 독수리’란 뜻의 베가(Vega)로 부르고, 견우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독수리’란 뜻의 알타이르(Altair)로 부른다.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옛날에는 칠석과 관련한 풍습이 여럿 있었다. 칠석날 까치가 지붕에 앉아 있으면 ‘빨리 하늘의 강으로 날아가라’고 말하면서 돌을 던져 쫓아버렸다고 한다. 또 칠석날 꽃가지에 엽전을 달아 사랑하는 사람의 신발에 넣어두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보통 칠석날을 전후해서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는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의 먼지를 씻어내느라 내리는 비라고 여겼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독수리자리는 가니메데(Ganymede)를 납치하기 위해 제우스가 변신한 모습이라고 한다. 청춘의 여신 헤베(Hebe)는 신들을 위해 술을 따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발목을 삐어 더 이상 달콤한 술과 음식을 나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녀의 일을 대신할 젊은이를 찾기 위해 독수리의 모습으로 땅으로 내려와 이다(Ida) 산에서 트로이(Troy)의 양떼를 돌보고 있던 아름다운 왕자 가니메데를 발견하고 그를 납치했다. 그 후 가니메데는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을 위해 술을 따르는 일을 하게 됐다. ‘불멸의 컵’에 물이 넘쳐흐르도록 가득 채우고 있는 물병자리의 잘 생긴 젊은이가 바로 납치된 가니메데라고 한다.
별 이름을 도둑질한 사내
공해 없는 맑은 시골 하늘에서 은하수와 그 주위 별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이 작은 보석들로 장식돼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별은 어떤 보석일까. 당연히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별을 보면 은하수 바로 곁에 작지만 아주 멋진 다이아몬드 모양의 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다의 귀염둥이, 돌고래자리다.
돌고래자리는 오래전부터 알려지긴 했지만, 그 크기가 워낙 작고 밝기(광도)도 낮아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찾아내기 쉽지 않다. 돌고래자리는 독수리자리의 동쪽에 위치한다. 사랑의 전령사인 돌고래가 직녀의 메시지를 전하러 은하수를 건너 견우 앞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이 별자리의 위치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돌고래자리의 알파(α)별 수아로킨(Sualocin·4등성)과 베타(β)별 로타네브(Rotanev·4등성)는 오랜 세월 그 이름의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의혹의 별이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아마추어 천문가 웨브(Thomas William Webb·1807~1885) 목사가 이들 이름의 기원을 밝혀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이름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팔레르모 천문대에서 1814년 피아치(Giuseppe Piazzi·1746~1826)가 발간한 팔레르모 별 목록(Palermo Catalogue)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이 천문대에는 니콜로 카시톨(Niccolo Cacciatore)이라는 사람이 조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별에 자기 이름을 붙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피아치 밑에서 별 이름을 정리하던 그는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라틴어로 바꾸고 이를 다시 거꾸로 써서 이 두 개의 별에 원래부터 있던 이름처럼 적어놓았다. 즉, 그의 라틴어 이름인 니콜라우스-베나토르(Nicolaus-Venator)를 거꾸로 써서 수아로킨-로타네브(Sualocin-Rotanev)란 이름을 만든 것이다.
결국 웨브 목사에 의해 이 이름이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붙여진 것이란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어 다시 바꿀 수가 없었다. 니콜로 카시톨은 많은 사람에게 욕을 먹었지만, 자기 소원은 이룬 셈이 됐다.
별에 자기 이름을 몰래 붙인 니콜로 카시톨도 대단하지만, 이를 파헤친 웨브 목사의 집념이 더 대단한 것 같다. 그는 19세기에 활동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천문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1859년에 출간한 ‘소형망원경을 위한 천체 가이드(Celestial Objects for Common Telescopes, 2 vols)’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전 세계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관측 교재로 보급됐다.
우리나라에선 돌고래자리의 중심이 되는 마름모꼴의 별을 ‘베틀의 북’으로 불렀다. 북은 베를 짤 때 씨실을 풀어주는 구실을 하는 배(舟)처럼 생긴 나무통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생뚱맞게 베틀의 북이 등장하는 걸까. 힌트는 베틀이다.
내가 대학 시절 은사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견우와 직녀가 헤어진 것은 사실 부부싸움 때문이라고 한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들판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생활하던 목동 견우에게 궁궐 생활은 따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궁전에서 책만 읽고 베만 짜던 직녀에게 견우의 자유분방한 행동은 낯설기만 했을 것이다. 매일 놀기만 하는 견우에게 직녀는 실망했고, 어느 날 베틀을 돌리다 화가 나서 놀고 있던 견우를 향해 창밖으로 베틀의 북을 던져버렸다. 견우별 옆에 보이는 돌고래자리의 마름모꼴 별들이 바로 견우의 머리에 맞고 옆으로 튕겨 나간 흰 베틀의 북인 것이다.
화가 난 견우는 옥황상제를 찾아가 이혼을 요구했으나, 체면을 중시하는 옥황상제는 딸의 이혼을 허락할 수 없었다. 대신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별거하게 했고, 1년에 하루만 서로 만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견우는 보기 싫은 아내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은하수를 건너야 했고, 이때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눈물을 흘리는데 이를 칠석비라고 한다.
견우와 직녀, 이별 아닌 별거?
돌고래자리 신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심부름꾼으로 암피트리테(Amphitrite)를 설득해 포세이돈과 결혼하게 해준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신화에서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신이 바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다. 큰 키에 턱수염을 기르고 늘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은 불타는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랑 앞에선 나약한 남자일 뿐이었다. 어느 날 포세이돈은 낙소스(Naxos) 섬에서 춤을 추고 있던 바다의 님프, 암피트리테를 보고 그만 사랑에 빠졌다. 포세이돈은 암피트리테에게 달려가 사랑을 받아줄 것을 간청하지만,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의 무서운 외모에 겁을 먹고 도망친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하인 바다의 동물들에게 그녀를 찾아올 것을 명령했고, 충실한 부하인 돌고래가 마침내 그녀를 찾아냈다. 돌고래는 암피트리테에게 포세이돈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했고, 결국 돌고래의 설득에 감명을 받은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과 결혼해 바다의 여왕이 됐다. 그 공로로 돌고래는 하늘의 별자리가 됐으며, 사랑을 전하는 동물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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